주제별 이슈 /정치2012. 4. 10. 17:50

2012.04.10정태인/새사연 원장

내가 운좋은 사람이란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지만 역사로 공부를 시작한 건 틀림없는 행운이다. 순간 순간 내가, 우리가 역사의 흐름 어디쯤 서 있는가를 점검하도록 훈련을 받은 건 그야말로 천운이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스위지는 “역사로서의 현재”라는 책 제목에 그의 도저한 역사의식을 담았다.

 

신기하게도 역사의 굽이는 가장 단순한 장기 시계열 그래프에 간명하게 나타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모든 사회경제지표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그 이전에도 학자들이나 관료들이 듬성 듬성 시장만능론을 우리 사회에 적용하려 시도한 적은 있지만 우리 나라가 본격적으로 “시장국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세계화” 이후였다.  무분별한 자본시장 개방으로 97년 외환위기를 맞았는데 “준비된 대통령”은 IMF의 요구로 인해 그 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탄대로 그는 “구시대의 막내”였고 “한미 FTA"는 시장국가의 완성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그 ”구시대“는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2008년 사망 진단을 받았다. 이명박 현 대통령은 시대가 바뀐지도 모르고 식어버린 사체에서 호흡의 흔적을 뒤적이고 있다.

2010년 지자체 선거에서 국민은 “치명적 경쟁”을 거부하고 “보편적 복지”를 택했다. 이제야 새로운 시대로 향하는 문을 연 것이다. 그리고 금년에 우리는 두 번의 선거를 치른다. 다시 양극화의 길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사회통합의 새 길로 들어설 것인가? 앵시앵 레짐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뉴 레짐에 맞는 새로운 인물, 새로운 정책을 선택할 것인가? 아이들을 죽음의 경쟁에 계속 내맡길 것인가, 아니면 신뢰와 협동 속에서 살아가도록 할 것인가? 어르신들들 질병과 가난의 늪 속에서 전전긍긍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편안한 노후를 즐기도록 할 것인가?

이제 우리가 선택할 시간이 왔다. 한 표, 한 표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한다. 우리 아이들과 자연의 삶과 죽음을 가른다. “역사로서의 현재”는 엄중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선택이 우리 역사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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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6정태인/새사연 원장

한국 관료들, 미국의 통상전략을 실행하다
 
2001년 정권을 잡은 부시는 새로운 통상전략으로 ‘경쟁적 자유화’를 내세웠다. 당시 미 무역대표부 대표였던 로버트 졸릭(현 세계은행 총재)의 작품이었다. 목표는 뚜렷했다. 첫째,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 경쟁을 불러일으킨다. 둘째, 미국식 시장친화적 기업법과 규제완화를 받아들이도록 한다. 셋째,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사전략, 나아가서 미국적 가치를 지지하도록 한다.

한 나라만 덜컥 미끼를 물면 다른 나라들도 부나방처럼 달려들도록 고안된 이 전략은 저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를 응용한 것이다. 2005년까지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전체 아메리카 대륙으로 확대하는 전미자유무역협정(FTAA)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아무리 달콤할지라도 ‘악마와의 키스’(멕시코 관료의 표현)는 역시 두려운 일이었다. 첫 단추가 아쉬운 미국에 제 발로 찾아간 나라가 있었다. 쇠고기 완전수입 자유화, 스크린쿼터 축소,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완화, 새로운 약값 정책 도입 불가를 협상 개시의 선결요건으로 내걸었는데도 이 나라는 더더욱 매달렸다.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미 통용되지 않는 일본식 경제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미국과의 FTA를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한국 경제를 달성하자는 것이 한·미 FTA 추진의 핵심입니다”(청와대 브리핑 1호). 그의 후임이 된 김종훈은 더 친절하게 “한·미 간 상호방위조약에 뒤이어 FTA 체결은 경제동맹”이라고 덧붙였다.

ABR(Anything But Roh·노무현이 아니면 전부 다)를 외치던 이명박 정부도 한·미 FTA는 예외였다. 참여정부의 “서비스 산업화”와 이명박 정부의 “서비스 선진화”는 똑같이 민영화와 규제완화였고 동시에 미국의 목표였다. 한·미 FTA는 한국 사회의 사실상 지배자인 재벌, 경제관료, 보수언론 삼각동맹의 오랜 꿈을 실현시키는 강력한 무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 금융위기는 바로 그런 꿈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복지와 양립 가능한가
 
금년 양대 선거의 화두는 단연 복지다. 한·미 FTA는 복지와 양립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미래의 서비스는 모두 개방한다는 의미의 ‘네거티브 방식 개방’, 현재유보 항목도 언젠간 모두 개방해야 한다는 의미의 ‘역진방지 장치’, 다른 나라에 더 많이 개방할 경우 자동적으로 미국에도 적용된다는 뜻의 ‘미래 최혜국대우’, 그리고 이 모든 독소조항을 합한 것보다 더 큰 위협이 될 투자자-국가소송제(ISD)가 있는 한, 복지 확대는 불가능하다. 아메리카 대륙의 복지국가 캐나다가 미국과 FTA를 맺은 후, 2000년대 소득불평등 정도가 13위인 한국보다 악화된 것(12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멕시코는 부동의 1위, 미국은 4위). 예컨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연합정책으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약속했다. 이들의 약속대로 보장성 90%, 연간 1인 진료비 상한 100만원이 되면 민간의료보험(특히 보장성 보험)은 사실상 필요 없어진다. 한국에서 암보험을 많이 판 미국계 보험회사의 한국지사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만일 이 회사의 투자자가 ISD를 걸면 어떻게 될까? 단 세 명의 법률가가 한·미 FTA 위반 여부만 들여다본다. 더구나 단심이다. 특히 ‘최소기준대우’(국제관습법에 비춰 과도한가, 아닌가)를 위반한 것일까, 아닐까?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의 관습법을 어긴 건 분명해 보이는데 세 명은 어떻게 판단할까?
 
지금 정부가 추진 중인 KTX 일부 민영화에 미국인 투자자가 끼어든다면 그 역시 한·미 FTA 적용 대상이 된다. 만일 새누리당이 또다시 정권을 잡는다면 공공서비스(전기, 철도, 가스, 우편, 수도 등) 민영화가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미국인 투자자는 컨소시엄 형태로 여기에도 들어올 것이다. 공공요금이 폭등하고 지방서비스가 끊어지고, 심지어 대형사고가 터진다 해도 우리는 영국 철도처럼 재국유화를 할 수 없다. ISD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잘해야 FTA 피해 줄인다
 
지난해 11월, 당시 한나라당의 날치기 통과로 “한·미 FTA 시즌2”가 시작되었고 몇 달이 흘러 또 하나의 굽이를 넘어가고 있다. 한·미 FTA의 피해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는 정권의 성격에 달려 있다. 특히 서비스 분야에서 한·미 FTA는 자발적 민영화 및 규제완화와 결합할 때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공공성 강화라는 세계의 흐름에 역행하는 후보를 잘 살펴서 떨어뜨려야 한다.

다음으로는 복지를 강조하는 후보를 찍어야 한다. 국민의 요구대로 가능한 빠른 속도로 복지를 과감하게 확대하면 한·미 FTA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농산물 무상급식이나 골목상권 보호 정책, 우체국 보험 확대, 환경규제 강화, 심지어 공공요금 규제도 모두 한·미 FTA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요컨대 선거를 잘해야 한·미 FTA의 피해를 줄이고 나아가서 독소조항을 제거하거나 통째로 폐기할 수 있다.

외교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금융위기 이후 뚜렷이 드러난 미국과 중국의 대립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두말할 나위 없이 엄정 중립이다. 지금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한 호혜적 협력의 새로운 틀을 짜야 할 때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서 중국을 자극할 때가 아니다. 한·미 FTA 폐기를 중국에 약속하고, 환경·에너지 협력, 철도·가스관·통신망 연결, 외환보유액 공동관리 등 각종 협력 프로그램으로 짠 새로운 국제조약 틀을 논의해야 한다. 우리의 대미 수출의존도는 10%도 되지 않는다. 문제는 100%가 훨씬 넘는 관료와 지식인들의 정신적 의존도이다. 이런 젖먹이들에게 이 나라를 맡길 수는 없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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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01 / 31      정태인/새사연 원장

- 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



책장을 넘기면서 누군가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0쪽 쯤 읽었을 때 그 이름이 떠올랐다. 바로 루쉰의 “아Q"다. 김현종 전 본부장께서도(이하 존칭 생략)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생활하느라 혹시 불멸의 고전, ”아Q정전“을 아직 못 읽었다면 꼭 보시기 바란다. 


아직도 멕시코가 그리도 자랑스러운가


“그는 곧 패배를 승리로 돌려 버렸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힘껏 자기 뺨을 두세 차례 연거푸 때렸다... 때린 다음에는 기분이 가라앉아 때린 것은 자기고 맞은 것은 다른 사람같은 기분이 되었다”(아Q정전)


김현종은 여전히 멕시코가 자랑스럽다. “보도내용과 달리 멕시코는 나프타 발효후 5년간 연평균 3.0%, 10년간 연평균 3.3%의 건실한 GDP 성장을 기록했으며, NAFTA를 계기로 중남미 제1위의 해외직접투자 유치국으로 부상했다”(120쪽). 수출이 증가하고 FDI가 대폭 유입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1993년에서 2007년까지 수출은 311% 증가했고 외국인투자 역시 세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1인당 경제성장율은 15년간 연평균 1.6%에 불과했다. 도대체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성과인가? KIEP의 CGE 모델처럼 미국과 FTA를 맺으면 생산성이 1% 올라서 성장률은 6-7%를 넘어야 말이 되지 않겠는가? 그의 표현대로 “FTA 후진국”인 아시아 나라들은 물론, 미국과 FTA를 맺지 않고 비정통적인 경제정책을 사용하는 브라질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이다.


그 이후는 더 비참하다. 금융위기 이후 2008년의 GDP는 1.3%, 09년에는 -7.1%를 기록했다. NAFTA의 목적대로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주요 공기업을 민영화했으며, 이들 기업이 외부 자본시장에 의존하고 심지어 파생상품을 다뤘기 때문이다(기업의 금융화). 멕시코 은행을 인수한 미국 대형은행들은 자국이 위기를 맺자 달러를 회수했고 멕시코는 외환위기 상태에 빠졌다. 이웃 나라 아르헨티나가 2001년 금융위기 때 자본통제 조치를 취했다가 2009년까지 47건의 투자자국가제소를 당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멕시코 정부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그가 한 챕터를 할애해 아무 문제도 없다고 곳곳에서 강변하는 투자가국가제소권의 실체이다. 불행하게도 멕시코는 구조적 위기 상태에 빠져서 약간의 외부 충격에도 국민의 삶은 위협받게 되었다. 

 

내부의 양극화도 더욱 심해졌다. 06년 현재 실질임금은 아직도 96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고 지니계수는 0.47 정도로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이다. 그런데도 그는 “나프타가 멕시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정부가 효과적으로 반박했기 때문인지 관심이 캐나다로 바뀌었다”(158쪽)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당한 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캐나다도 NAFTA 이후 미국을 따라 공공지출을 줄인 결과 한국보다도 지니계수가 높은 나라가 되었다. 이것이 우리보다 15년에서 20년(캐나다) 앞서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들의 현재 상태이다.


김현종에게 멕시코는 또 다른 면에서도 모범이다.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와 FTA를 맺어서 그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전 세계 시장을 대부분 ‘선점’했기 때문이다. 바로 김현종의 꿈인 “FTA의 허브”이다. 그러나 냉정한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양자간 협정에서 언제나 허브는 강대국이 되기 마련이다.  FTA 전문 경제학자인 볼드윈은 이를 스포크 함정(spoke trap)이라는 말로, 즉 여러 강대국에게 이리 저리 휘둘리게 되는 현상으로 묘사한다. 불행히도 그 볼드윈은 한국이 멕시코 꼴이라고 예언했다. 


제갈공명, 손오공, 아Q


이 책에 따르면 그는 거의 제갈공명이다. 미국의 협상가들은 언제나 그의 실력과 꾀에 당하고 만다. 그에 따르면 “(의약품 분야에서) 미국 측이 세부 이슈에 대한 요구를 제시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역대표부의 고위급은 물론 분과장마저도 포지티브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 거 같다”. 과연 그럴까? 미국이 한국과 FTA 협상을 하기 직전인 2005년에 체결한 호주-미국 FTA(AUSFTA)의 핵심 쟁점이 바로 바로 이 포지티브리스트에 의한 약값 산정 방식(PBS)이었다. 고작 1년 후 한미 FTA 협상이 되자 USTR(미국무역협상대표부)이 그들의 골머리를 싸매게 만들었던  PBS를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것일까?


기실 약값 적정화 방안의 포지티브 리스트가 뭘 의미하는지 몰랐던 건 김현종 자신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협상이 시작된 후에야 “협상 전에 미국이 이른바 4대 현안 중 하나로 새로운 약가제도 도입 자체를 요구한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퍼즐 조각이 비로소 맞추어진 느낌이었다”(127쪽). 이런 사람이 우리 협상을 지휘한 것이다.


한미 FTA가 체결된 날 미국 제약업계는 대대적인 파티를 열었다.  그런데 그는의약품에서 양보한 것이 없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당한 것일까? 무역구제 분야의 비합산조치처럼 한국 기업들의 숙원이지만 전혀 관철시키지 못한 이슈는 그가 단지 전략적 미끼로 썼기 때문이란다. 맞았는데 오히려 때렸다고 생각한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 아닌가?


그에겐 “경쟁적 자유화"라는 미국의 FTA 전략을 고안한 죌릭도 한수 아래로 보였다. ”미국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 자체가 죌릭이 고안한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알 리 없다. ”김현종을 만났을 때 죌릭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동북아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에 중국을 순응하게 만들 대리인,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노는 손오공이 거기 있었다.“(정태인, 시사저널, 2006. 4) 아Q는 자신이 손오공처럼 신출귀몰하다고 상상한다.



개성공단과 한일 FTA


그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통상교섭본부를 확 바꿔 놓은 인물로 자신을 되풀이해서 묘사한다. 그 중에서도 개성공단을 FTA에 포함시킨 아이디어가 대표적인 보기로 생각하는지 책 곳곳에 개성공단이 등장한다. 그는 2004년 11월 아펙 정상회담 때 대통령에게 한-싱가포르 FTA에 개성공단을 포함시키겠다고 보고했다. 대통령이 흐뭇해 한다. “FTA에서 그런 것도 다룹니까? 개성공단 인정 받으면 거 참 좋겠네”(48-49쪽).


그런데 그는 이미 2004년 6월에 한일 FTA에 관한 보고를 할 때 이미 “개성공단 제조상품의 한국산 인정”을 관철시키지 못하면 한일FTA를 중단시키겠다고 말했다(324쪽). 대통령이 건망증이 있었나? 참 시시콜콜한 걸 다 꼬집는다고 할이지 모르지만 김현종에게 싱가포르와의 FTA에 개성공단을 집어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건 바로 나였다. 또한 서해안 프로젝트 때문에 자주 만나던 싱가포르 대사에게 이 얘기를 강조한 것도 나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을 뿐이다.


반면 나는 한미 FTA에서 개성공단을 아예 꺼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 환경, 심지어 핵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개성공단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으로 결론난 한미 FTA는 앞으로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도 계속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개성공단이 자랑거리이다. 아Q가 따로 없다.


주지하다시피 김현종은 한일 FTA를 중단시켰다. “졸속 FTA를 타결하게 된다면.. 제2의 한일합방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309쪽) 그는 대통령 보고서에서 “부품소재...를 집중 보호해야 하며 자동차, 기계, 정밀화학도 경쟁력이 약해 보호가 필요함을 역설했다”(309쪽) 한편 그는 한미 FTA 때 엽계의 우려를 전달하러 온 화장품업 대표에게 실망한다. “(관세혜택으로) 일종의 ‘국민보조금’을 준 셈이었다... 그런 대기업의 간부가... 관세철폐가 되면 도태된다고 하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일이다”(178쪽).


그러나 화장품은 그가 한일 FTA 때 걱정한 정밀화학의 대표적 상품이고,  정밀화학은 정밀기계와 함께 한미 FTA에서 가장 타격을 받을 제조업 분야이다. 일반적으로 봐도 제조업의 물적 생산성은 일본이 미국의 약 80% 정도이고 한국은 기껏 40% 가량에 머무른다. 그런데도 일본에 대해서는 보호를 해야 하고 더 강한 미국에 대해서는 개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현종은 대통령이 자신의 이런 모순적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대통령은 2005년 2월 1일 “많은 보고가 있었지만 믿지 못하겠다. 정비서관이 한일 FTA를 검토해서 보고하라”고 나에게 지시했다. 그 해 5월에 내가 잘렸지만 나 없이 완성된 한일 FTA 보고서는 2006년 3월, 한미 FTA 반대 보고서와 함께 대통령에게 전해졌다.


한미 FTA 비판자를 쇄국론자로 몰아 붙이는 그가 왜 한일 FTA가 되면 ‘제2의 한일합방’이 된다는 극단적 상상을 하는 걸까? “노대통령은...선진 시스템을 갖춘 국가와 FTA를 체결해 우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59쪽). 그 역시 한미 FTA 청와대 브리핑 제1호에서 “한미 FTA는 낡은 일본식 법과 제도를 버리고 미국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받아 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뿔싸, 그 선진시스템이 붕괴한 것이 작금의 글로벌 금융위기이다.


아Q는 자신의 무지와 허세 때문에 사형을 당한다. 그러나 한국의 아Q는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 그래도 이 책을 보시려거든 먼저 아Q 정전을 읽는 게 낫겠다. 무려 500쪽에 달하는 이 책에 비해 아Q정전은 50쪽도 되지 않는다.

 

*이 글은 '이코노미 인사이트' 2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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