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9.03.19 11:29

2009년 들어 1,250원대로 시작한 달러 대비 환율은 꾸준히 상승하여 2월 16일에는 1,400원대를 돌파했다. 그 시점에 미국 상업은행과 동유럽 은행에서 시작된 제2의 금융위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외국 언론에서는 한국의 외채 상환능력을 우려하는 기사가 이어지자 보름도 안 돼 1,600원 선에 근접하더니 최근에는 다시 1,400원대로 추락하는 등 널뛰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림1] 2009년 원/미 달러 일일 변동 추이(한국은행)


한 달 사이에 무려 200포인트가 오갔던 것이다. 이처럼 환율이 널뛰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금융관계자는 “원화 값이 달러당 1,400원대로 접어들면서 역외세력이 투기적 매수에 가담하기 시작했다”면서 외부 환투기 세력을 지목했다(<매일경제> 2009.3.17).

실제 최근 대외 금융충격에 약하고 은행 단기차입과 외환보유고 축소 등 환율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국내 외환시장의 약점을 틈타 역외 환투기 세력이 집중적으로 달러를 매수해 비이상적인 환율 폭등을 조장한 뒤 고점에서 다시 달러를 대량으로 팔아서 환차익을 얻는 방식으로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특히 환투기 세력은 서울외환시장에서 현물환 거래를 통해서가 아니라 역외 선물환 시장(NDF)에서 주로 투기행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외국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들인데, 조세회피 지역에 거점을 두고 홍콩, 싱가포르, 뉴욕과 같은 역외 선물환 시장(NDF)에서 집중적으로 달러를 매수해 환율을 올려놓고 다시 팔아서 차익 실현을 하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환율이 폭등하고 원화가치가 떨어지면서 달러 환산 한국 채권가격이 내려가자 이번에는 대규모 환차익을 거둔 투기세력이 환차익 자금을 채권에 투자하여 채권 수익을 올리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외환시장과 채권시장을 자유로이 오가면서 시장을 교란시키고 대신 본인들은 환차익과 채권 수익을 거두어가고 있었다.

한국 물가만 떨어지지 않는 이유

가뜩이나 취약한 외환시장에서 환투기 세력마저 제한 없이 활동하면서 환율폭등을 초래한 결과, 국민들은 물가상승 부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8년 7월까지만 해도 국제 석유가격이 145달러까지 오르는 등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고생하던 세계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어지는 자산 가치 축소로 빠르게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 결과 2008년 7월, 5퍼센트에 육박하던 OECD국가들의 소비자 물가는 2009년 들어 1.3퍼센트까지 추락하고 있고,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미 0퍼센트까지 떨어졌다(OECD, ‘OECD Consumer Price Index’, 2009.3.3).

2008년 초까지만 해도 다른 선진국과 비슷하게 3퍼센트 수준을 맴돌던 한국의 소비자 물가는 2008년 7월 5.9퍼센트를 정점으로 다소 내려앉기는 했으나 여전히 한국은행의 물가관리 범위인 2.5~3.5퍼센트를 훨씬 웃돌고 있다. 환율이 폭등했던 지난 2월에는 그나마 꺾이던 물가가 다시 올라서 4.1퍼센트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OECD 국가의 3배, G7 국가의 7배에 이르는 수치이다.

                   [그림2] OECD와 한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 추이 비교(전년동월대비)

어째서 한국 국민들만 유독 소득감소와 자산 가치 축소에 이어 고물가 고통에서조차 헤어나고 있지 못한 것일까. 그 이유는 타국에 비해 월등이 높은 환율 상승 때문이다. 국제원유가격 하락 등으로 계약통화(주로 달러화) 기준으로 한 수입 물가는 이미 2008년 11월 이후 4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하고 있다.

그러나 환율이 폭등한 결과, 원화로 표시되는 수입 물가는 그보다 훨씬 더디게 떨어졌고, 환율 폭등이 극심했던 2008년 9월과 10월, 그리고 2009년 2월에는 오히려 오르기까지 했다. 2007년 11월까지만 해도 오히려 원화표시 수입물가가 달러 표시 물가보다 더 저렴했지만, 2008년 10월부터는 환율상승으로 인해 무려 40퍼센트포인트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원화표시 수입물가가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그림3] 환율변화에 따른 수입물가 변동추이

환투기 세력에 대책 없는 정부

그렇다면 구조적으로 신흥국에 투자된 자금이 선진국으로 역류하는 흐름이 지속되는 현재,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본질적으로 자국 통화를 국제결재 통화로 쓸 수 없는 신흥국들이 어떤 대처를 해야 할까. 무작정 외환보유고를 더 늘리고 한미 통화스왑 규모를 확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지난해 9, 10월과 올해 2월에 그랬던 것처럼, 외환시장에 달러를 풀어서 환율을 안정시킬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림4] 글로벌 금융위기가 환율 상승에 주는 영향 전달 경로

인터넷 논객들이나 일각의 논의처럼 고금리 정책을 유지해서 달러가 한국의 고금리를 보고 유입되게 하는 것이 대안이 될 것인가. 그러나 지금과 같이 국내적인 자금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가계와 기업의 채무이자 상환부담을 고려하지 않고 금리를 올리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국내 자금압박을 감수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선진국 유동성 부족 상황에서 한국의 고금리를 보고 금리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외국에서 들어오는 선진국 자금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지극히 회의적일뿐 아니라, 현재는 이와 같은 시장주의적 대처가 실효성을 발휘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인 것만은 틀림없다.

가장 긴급한 것은 주식시장에서의 공매도 금지와 같이, 외환시장에서의 투기적 거래를 금지시킬 수 있는 정책적 방안이다. 국제결재은행(BIS)에 따르면 2007년 기준 세계 외환거래 규모는 연간 802조 5,00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반면 2006년 세계 상품 수출액은 12조 달러에 불과하다. 이를 감안하면 외환거래 가운데 1.5퍼센트만이 실물거래와 연결되어 있고 나머지 98.5퍼센트는 순수하게 금융부문 내에서 투자(투기) 수익을 좇아 움직이는 자금인 셈이다(신장섭,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2008, 193쪽).

실물거래와 관계없는 외환거래가 절대적인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고, 오히려 실물 무역거래가 금융적 외환거래에 의해 좌지우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관계자는 “지난 1999년 이후 외환거래 실수요 증빙 규제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누구나 가수요를 바탕으로 외환을 거래하는 것이 가능하다” 면서도 “환투기 세력에 대한 직접 조사나 규제강화는 거래위축 등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매일경제> 2009.3.17).

결국 2008년 9, 10월에도, 그리고 2009년 2월에도 외환 당국은 “투기성 매개가 짙은 것으로 의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대책을 취하지 않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서울경제> 2009.2.20).

언제까지 외환시장을 시장에 맡길 것인가

외환시장에서 헤지펀드와 같은 외국 금융자본의 투기적 행위를 금지할 수 있는 조치가 시급한 동시에, 원천적으로는 환투기가 활동할 여지를 없애고, 나아가 외부 금융충격에 의해 외환시장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는 현재의 시스템을 개혁할 필요가 절실하다. 왜냐하면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2008년 9, 10월, 2009년 2월의 환율 급변동 상황은 여러 차례 재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는 “자유변동환율제에 대해 확립된 사실이 하나 있다면, 환투기하려는 세력들에게 가장 편리한 제도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외환시장을 오직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되도록 방치하는 자유변동환율제는 사실 글로벌 스탠더드도 아니고, 더욱이 금융시장 규모가 작은 신흥국에서 유리한 제도도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1998년 IMF의 요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외환시장을 개방했던 것이지 자연스런 경제흐름을 탔던 것도 아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시장의 실패가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으며 특히 금융시장의 실패는 전 세계를 불황의 늪으로 빠뜨릴 만큼 심각한 국면을 만들어냈다. 한국에서는 특히 외환시장의 실패가 두드러지고 있는 형국이다.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돈을 빼내 가게하고, 빼내 가더라도 일부만 갖고 가게하고, 환투기도 지금보다 훨씬 어렵게 만드는 긴급 자본통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정부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신장섭, 앞의 책, 201쪽).

그러나 최근까지 정부 당국자의 말을 들어보면 이런 기대를 하기가 쉽지 않다. 런던을 방문했던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경기침체로 압박받으면서 원화가치가 하락하고 있지만 자본통제 조치는 도입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한국이 지금까지 외국 투자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자유 시장에서 자본통제는 생각도 할 수 없다”고 한 발언이 알려졌다(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 <매일경제> 2009.3.13).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8.11.14 10:58

1. 금융위기의 세계화와 거품경제의 한계

1) 금융시스템에 내재된 위기와 오류의 세계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는 2007년 4월 미국 2위 모기지 업체인 뉴센트리파이낸셜(New Century Financial)의 파산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후, 모기지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복잡한 파생상품(derivatives), MBS(Mortgage Backed Securities),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CDO2 등의 부실로 이어졌다. 자기 자본의 30~40배에 이르는 차입(Leverage)을 동원하여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헤지펀드는 모기지 증권 부실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헤지펀드에 자금을 투자했던 투자은행 역시 손실을 입으면서 금융위기는 월가 전체로 번졌다. 2007년 8월 프랑스 BNP파리바(Paribas) 은행이 미국 모기지 증권의 환매 중단을 발표하면서 월가의 금융위기는 세계 금융위기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2007년 9월 영국의 노던록(Northern Rock) 은행의 파산을 거쳐 2008년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적 금융부실이 실체를 드러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8년 10월 미국의 금융부실 규모를 1조 4,000억 달러로 추산했고, 영국 중앙은행은 전 세계 금융부실 규모를 2조 8000억 달러로 추정하기도 했다. 엄청난 규모의 세계 금융위기는 금융자본이 월가를 탈출해 상품시장으로 이동하도록 만들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초래했고, 최근에는 장기적인 실물경기 침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2006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은 단지 미국의 주택시장과 모기지 대출시장의 붕괴에 머물지 않고,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파생상품과 레버리지의 연쇄고리를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80년대 말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위기나 90년대 일본 부동산 부실과도 전혀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우리 금융정책의 수장인 금융위원회 전광우 위원장은 최근의 금융위기를 교통사고에 빗대어 자동차의 구조적 결함보다는 운전과실이나 잘못된 교통신호체계, 단속에 소홀한 교통경찰의 책임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의 자체의 문제이기 보다는 경영자의 모럴헤저드나 감독기관/시스템의 문제가 크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단순히 금융기업 경영자의 과잉 탐욕이나 감독기관의 감독 소홀, 감독시스템의 허술함 때문에 이 정도 규모의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번 금융위기이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① 우선 신자유주의가 지배했던 지난 30여 년 동안 영미권을 중심으로 금융 비중의 팽창과 제조업 위축, 그리로 이를 가능케 한 금융기법의 혁신(?)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위기의 토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흔히 이를 ‘경제의 금융화, 금융의 세계화’라고 부른다. 1980년 세계 명목 GDP는 10.1조 달러, 세계 금융자산은 12조 달러 규모였던 것이, 2006년 말 기준으로 GDP는 48.3조 달러, 금융자산은 167조 달러로 급격하게 격차가 벌어졌다. 전 세계 금융자산의 급격한 팽창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기업들의 이윤 가운데 금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1980년대 10퍼센트 수준에서 2000년대에는 30퍼센트를 넘어설 정도로 늘어났다. 그러나 금융부문이 담당하는 고용비중은 5퍼센트 내외에 불과했다. 즉, 제조업에 비해 금융부문이 비대하게 팽창하고 금융 자체에서 수익성을 추구하려는 방향으로 산업구조가 변한 것이 현재 금융위기를 유발시킨 일차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② 1980년대 이후 금융 부흥을 이끌었던 선물, 옵션, 스왑 등의 각종 파생상품은 한때 금융혁신의 상징이자 금융에 내재한 위험도를 제로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험을 분산(Hedge)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류와 위험을 확산하는 매개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 최근 확인되었다. 워렌 버핏 마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Nobody knows who is doing what)’에 지나치게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투자’한 월가의 위험 통제기능 상실이 현 금융위기의 원인”이라며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인정했다.

이처럼 기초자산으로부터 끝없이 분화되어가는 파생상품은 위험도 측정과 관리감독이 거의 불가능하다. 금융시장 내부에서도 위험에 대한 인식과 그 분산기능, 위험시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따라서 현대 금융자본주의 금융시스템 자체에 결함이 존재하고 이것이 현재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③ 미국 금융팽창을 선도했던 주요 플레이어들 가운데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는 사실상 법인체로 규정받지 않는 사조직으로서 금융규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투자은행 역시 금융규제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 이들은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로부터 강제적인 감독이나 규제를 받아야할 대상이 아닌, 투자은행지주회사와의 상호합의에 근거한 자발적인 감독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규제로부터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상업은행들조차 규제를 피하기 위해 구조화 투자기관(SIV, Structured Investment Vehicle) 등을 별도의 자회사로 두고 신용공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부외거래를 하면서 이들을 통해 파생상품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여기에 더해 실제로는 사적 기업에 불과한 3대 신용평가기관들이 부실 모기지를 기초로 발행된 각종 파생상품에 최고 신용등급을 부여해 대량유통을 지원하기도 했다. 물론 신용평가기관들은 파생상품을 발행하는 금융회사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의 중심에 서 있던 헤지펀드는 한때 1조 9,000억 달러 규모, 펀드 수로는 1만 개에 달할 정도로 고속 성장을 했지만 모기지 증권 부실의 타격으로 2007년 7월 파산하기 시작했다. 파산의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은 베어스턴스(Bear Stearns)와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였다. 1992년 ‘영국 파운드화 투매’로 영국 중앙은행을 손들게 하고 보름 만에 10억 달러의 수익을 챙겨 세상을 놀라게 했던 헤지펀드는 사실 1990년에는 전체 규모가 39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10년 뒤인 2000년에는 4,900억 달러로 커졌고 2006년 말이 되자 1조 5,000억 달러로 성장한다. 엄청난 고속성장을 한 것이다. 물론 이들 헤지펀드 역시 이번 금융위기의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2008년 1/4분기 헤지펀드 규모는 1조 8,800억 달러 까지 늘어났지만 예년에 비해 성장률은 현저히 둔화되었고 헤지펀드로의 자금유입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또한 1/4분기 평균수익률도 마이너스 3퍼센트로 20여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금융위기가 심각한 금융경색과 자금순환의 단절로까지 번졌던 2008년 9월과 10월에는 약 700여 개의 헤지펀드가 청산되면서 주가 폭락과 펀드 환매사태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급팽창한 금융부문에 규제 없이 치명적인 위험이 누적되도록 방조한 것 역시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이다. 여기에는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 작용했을 것이다. 파생상품에 대한 위험성 평가 및 규제, 주요 금융회사들에 대한 감독과 규제, 그리고 신용평가기관들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논의들은 앞으로 이어질 미국 청문회 등을 통해 가시화될 것이다.
④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 뒤에도 미국 정부는 1년 가까이 모든 걸 시장에 맡긴 채 금리인하를 통한 유동성 공급에만 열중했다. 지난 3월 14일 미국 5위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무너지자 뒤늦게 공적자금 3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등 시장에 개입했지만 그 때만 해도 “시장에 맡기고 간섭하지 말라”는 목소리에 눌려 보다 적극적인 예방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9월 14일 리먼 브라더스 파산에 이어 메릴린치와 AIG보험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뒤에야 비로소 7,000억 달러 구제금융 법안을 서둘러 내놓았지만 이미 상황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뒤였다. 미국 정부는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것을 보고서야 ‘시장이 자기통제 기능을 상실’했음을 인정했고 7,000억 달러 구제금융법안 통과에 이어 은행지분 인수, 기업어음(CP) 직접 매입 등의 적극적인 개입정책으로 돌아서게 된다.

따라서 위기가 표면화 된 뒤에도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에 대한 과신으로 정부가 적극적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점 역시 이번 위기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2) 저고용, 저소득에 기초한 신용팽창(부채) 소비 경제의 한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 월가 금융위기 → 글로벌 금융위기 → 글로벌 인플레이션 → 글로벌 외환위기 → 글로벌 경기침체’의 연쇄파장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미국식 금융시스템 자체의 결함과 규제 및 감독의 소홀, 그리고 금융시장의 자기 조정능력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나친 믿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문제의 원인을 짚어볼 수도 있다.

바로 고용과 소득개선에 기초하기 보다는 이른바 신용창출(부채)에 기초한 소비로 지탱했던 미국경제의 구조다. 1980년대부터 가속화된 경제의 금융화로 미국경제에서 차지하는 금융비중은 갈수록 커졌고, 금융회사들은 전통적인 예대마진을 벗어나 고수익 투자에 집중했다.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고용을 늘려 다수 국민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성장은 멈춰버렸다. ‘소득 향상 → 저축 증가 → 대출 증가 → 투자 확대’의 선순환 구조가 깨지고 대신에 ‘소득 정체 → 부채(신용)에 의한 소비 → 가수요와 거품 확대’로 이어지는 취약한 버블경제로 전환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뒤 미국에서도 예외 없이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소득수준 하위 20퍼센트 계층의 실질소득은 사실상 정체상태라 할 수 있는 1퍼센트 성장에 그친 반면, 상위 1퍼센트 계층의 실질소득은 111퍼센트나 성장했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심화된 결과 미국 중산층은 급격히 붕괴되었고, 1970년 전 국민의 58퍼센트에 달하던 중산층 비중은 2000년에 접어들면 거의 1/3이 줄어든 41퍼센트로 하락한다.

미국 경제가 잘나가던 90년대조차 미국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되었고, 서민들의 생활형편도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금융의 발달로 인한 신용가수요 덕에 마치 소비여력과 자산이 늘어난 것 같은 착각에 빠져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이렇게 양극화로 소득이 전혀 늘어나지 않았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약탈적인 대출행위를 자행하면서 월가의 금융가를 키워온 것이다.

그 약탈적인 대출이 바로 한때 전체 모기지 대출의 20퍼센트까지 팽창했던 서브프라임 대출이며, 국민의 소비가 경제성장의 70퍼센트를 담당하는 미국경제에서 대다수 국민의 소득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다.

실질소득이 전혀 늘지 않은 하위 20퍼센트의 저소득층이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까지 떠안고 있는 동안, 금융회사들은 미국 전체 기업 이윤의 1/3을 독차지할 만큼 엄청난 성장을 구가했다. 2006년 기준 헤지펀드 매니저 소득순위 상위 25명의 평균 보수는 5억 7,000만 달러로, 이들 소득을 다 합치면 자그마치 140억 달러에 달한다. 대부분의 미국 국민이 연봉 6만 달러 이하를 받을 때 이들은 웬만한 국내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을 넘어서는 연봉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과 금융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문제를 일으킨 초고액 연봉의 펀드 매니저가 아니라 바로 미국의 서민들이었다. 주택 거품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연체, 압류, 가계 파산으로 자산과 소득이 부족했던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이 가장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소득과 고용에 기초하지 않은 채, 부채를 통해 이루어진 경제성장은 절대 지속될 수 없으며, 거품이 꺼지는 순간 중하위 소득의 서민이 제일 먼저 피해를 입게 된다는 사실을 오늘 미국의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

덧붙여 둘 것은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매년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기축통화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그동안 ‘국내 제조업 기반 위축 → 수입에 의한 소비 → 경상수지 적자 → 달러 유출 → 미국 국채발행 → 주요 수출국(경상수지 흑자국)으로부터의 달러 회수’라는 메커니즘으로 세계경제를 선도해왔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기축통화인 달러 유동성이 경색되었고, 이는 곧바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동유럽이나 아시아와 같은 국가들의 외환위기로 이어지고 있으며 유럽 역시 자유롭지 않은 형편이다. 이번 금융위기로 달러 기축통화체제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화두로 등장했으며, 2008년 11월 15일 개최될 G20 정상회담을 필두로 본격적인 신(新) 브레튼우즈 체제에 대해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2008 회계연도 기준으로 이미 4,500억 달러의 적자를 안고 있는 미국은 2009 회계연도를 시작한 첫 달인 2008년 10월에 이미 그 절반에 해당하는 2,30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 정부는 그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자국의 거대 금융기업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축소되고 있는 금융기업들의 자산상태로 볼 때 이들의 부실과 금융불안은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심지어 85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진정될 것 같던 AIG보험의 부실은 갈수록 커져서 2008년 11월 기준 그 두 배에 해당하는 1,500억 달러를 투입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렇게 투입한 국민의 세금이 과연 금융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을 회복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금융기업들의 몸집 불리기를 위한 인수합병의 실탄으로 사용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GM(제너럴모터스)을 비롯한 제조업체들도 금융기업들처럼 구제금융을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미국의 거대 가전유통업체인 서킷 시티가 2008년 11월 11일자로 파산보호 신청에 들어갔고, GM 역시 구제금융을 받는다고 해도 파산상태나 다름없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해 집을 차압당하고 파산상태에 몰린 수많은 미국 국민들을 위한 직접적인 대책이 2008년 11월 현재까지도 전혀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부시 대통령에 이어 민주당의 오바마 당선인이 문제 해결사로 나서게 된 지금도 여전히 전망이 불투명한 이유는 미국 금융위기와 실물경제의 위기가 지도자 한 사람의 교체로 해결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기 때문이다.

2.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으로 무너지는 한국 금융시장

미국 발 금융위기는 다양한 전달경로로 한국경제에 파장을 미치고 있다. 그 가운데 외환시장과 자본시장 등 한국 금융시장에 준 충격은 특히 위기가 고점에 달했던 9, 10월에 심각한 양상으로까지 발전했고 여파는 계속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이는 단지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의 자유화 정도가 매우 높아진 탓에 금융시장에서 외부의 금융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2007년 한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시장이 미국경제와 탈동조화(decoupling)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해야 대미 수출입 의존도가 줄어든 상품무역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나타난 현상일 뿐, 특히 금융시장은 과거보다 훨씬 강한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오히려 재동조화(recoupling) 주장이 중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9, 10월 위기 국면에서는 하루 전의 미국증시 동향이 거의 실시간으로 우리 증시에 반영되는가 하면, 반대로 아시아 증시가 곧바로 미국 증시에 반영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1)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변동을 보인 외환시장
미국 금융위기가 준 충격으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금융시장은 바로 외환시장이었고 이는 곧바로 큰 폭의 환율변동과 외환위기설로 나타났다. 2008년 원화의 달러대비 환율 변동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컸는데, 원-달러 환율은 달러가치와는 상관없이 폭등세를 이어갔고 미국 금융위기가 증폭될 때 마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환율 상승이 수출기업들에게 호재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수입물가 상승을 부추기면서 전반적인 소비자물가, 수입원자재 가격 등을 급등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달러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원화의 초약세가 시작된 2007년 11월부터 이미 원화표시 수입물가는 달러화 표시 수입물가를 역전하기 시작했다. 2008년 7월 147달러까지 치솟은 원유가격이 8월 이후 폭락하기 시작했음에도 환율상승폭이 컸던 9월에 원화표시 수입물가는 8월과 같은 42.6퍼센트를 그대로 유지했다.

최근 한국은행 자료를 보더라도 환율이 10퍼센트 상승하면 물가는 2.62퍼센트(공산품의 경우 3.95퍼센트) 상승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는데 반해, 원유 가격이 10퍼센트 하락할 때 물가의 하락효과는 0.49퍼센트에 그치고 있다. 결국 원유가격 하락보다 환율상승이 물가에 5배 이상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최근 1년간 원-달러 환율만 폭등 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큰 폭으로 원-엔 환율도 가파르게 상승했고 이는 일본으로부터 부품과 소재를 들여와야 하는 수입구조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올해 들어 대일 수입액이 늘어나면서 2008년 1~8월 대일 무역역조 규모는 약 230억 달러(누적)에 이른다. 특히 고려할 것은 일본에서 들여오는 부품과 소재의 수입단가가 올라가면 이들을 2차 부품으로 가공하여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의 채산성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원가는 높아지지만 대기업 납품가는 이를 따라가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환율 상승과 달러 부족 현상은 다양한 요인으로부터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① 기본적으로는 2008년 접어들며 경상수지가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된 뒤 9월까지 지속되었고 ② 2007년 6월부터 외국인 주식 순매도와 달러화 환전 송금이 이어졌으며 ③ 이 밖에도 조선업 수출액 선물환 매도 물량이나 해외펀드 헤지 물량도 적지 않았고 ④ 일부 역외 환투기 세력의 개입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2008년 9, 10월에 접어들면서 국제적인 신용경색으로 국내은행과 외국은행 간, 국내 은행 간, 또 은행과 수출기업들 간의 달러 유통이 막히면서 달러 거래 자체가 축소된 상황에서 환율은 비정상적으로 폭등하게 되었고 급기야 외환위기에 노출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10월 초까지 외환시장에 외환보유고를 푸는 방식을 취하다가 하루 이상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외환스왑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다시 은행권에 달러 지급보증과 직접 공급을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폭으로 환율이 요동치고 일부 NDF시장에서의 환투기까지 의심되는 상황에서 국내 금융시장은 이를 적절히 제어할 어떤 정책적 기제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2) 과잉 수익추구로 위험도에 노출된 한국의 금융기관들
미국 금융위기에서 씨티그룹이나 JP 모건 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같은 상업은행들도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주요 진원지는 투자은행들이었다. 때문에 2008년 9월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주요 상업은행들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부실과 연체가 높은 저축은행들이 먼저 위험수위에 들어설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극단적인 신용경색을 몰고 왔던 2008년 10월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은행권이 위기의 진원지로 돌변했고, 외신 발 외환위기도 대부분 은행권을 대상으로 나온 것이었다. 때문에 2008년 10월에 정부에서 발표한 대부분의 금융 안정화 대책은 증권시장이 아니라 은행권에 맞추어져 있는데, 1,000억 달러 지급보증, 300억 달러 자금 직접지원, 은행채 직접 매입, 유동성 비율 완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외환위기 이후 수차례의 인수합병을 거치면서 자본 건전성을 강화해왔다고 자부해왔고, 최근에는 글로벌 메가뱅크로 발돋움하기 위해 우리, 신한, 하나은행에 이어 국민은행까지 지주회사 전환을 서둘렀던 은행권이 어떤 연유로 미국 금융위기 충격에 그토록 쉽게 노출될 수 있었던 것인가.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변동을 겪었던 은행들은 이후 ‘금융기관’으로서 자금 중개기능 보다는 철저히 수익을 추구하는 ‘금융회사’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규모화 겸업화를 모토로 변신을 거듭해왔다. 그 결과 국내 은행들은 지난해까지 국민은행의 당기순이익 2조 7,000억 원을 필두로 조 단위의 이익을 실현하며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나 통신회사에 견줄만한 수익창출력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현금 배당으로 돌려왔다. 국내 거의 모든 은행의 외국인 주식소유 비중이 60퍼센트를 넘은 상황에서 이 배당의 대부분은 당연히 외국인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은행들의 수익성 위주 경영과 규모화에 대한 압박은 2003년 신용카드 대란과 2006년 과잉 주택담보대출을 낳은 무리한 대출영업으로 이어졌는가 하면, 보험과 펀드 판매 수수료에 집착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처럼 은행들이 대출을 늘려가는 상황에서 2006년 이후 증시 호황과 펀드상품 판매 호조로 시중 자금이 은행저축에서 펀드와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저축성 수신이 줄어들게 된다. 저축성 은행수신이 전체 금융기관 유동성(Lf)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말 42.4퍼센트에서 2008년 상반기 33.5퍼센트로 줄어들은 반면, 같은 기간 펀드 잔액은 14.7퍼센트에서 19.9퍼센트로 증가했다.

이 결과 나타난 현상이 바로 예금수신 금액을 뛰어넘는 대출의 증가, 즉 예대율의 증가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일반적인 예금은행의 총예금(요구불 예금과 저축성 예금) 대비 대출비율은 2008년 8월말 현재 말잔 기준으로 149.2퍼센트(총 예금잔액은 635조 원, 대출잔액은 891조 원)로 나타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예금에 양도성예금증서(CD)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6월 말 기준 예대율은 103퍼센트로 적정선인 80퍼센트를 훨씬 뛰어넘기는 마찬가지다.
예대율이 높아지던 조건에서 은행들이 규모를 키우고 수익을 얻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은행채나 양도성예금증서(CD)와 같은 시장성 수신을 대폭 늘리는 것이었다. 즉, 대출자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규모화 경쟁에 가속도를 붙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저축성 수신이 아닌 시장성 수신이 급격히 팽창했는데 CD와 은행채 등 시장성 수신이 총 자본 조달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잔 기준으로 21.4퍼센트나 되었다. 만일 이런 식으로 조달해 대출을 감행한 자금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을 경우 은행은 만기가 도래한 CD와 은행채를 갚지 못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조달금리가 높아진 은행채의 경우 2008년 상반기 현재 추가로 25조 4,000억 원이 늘어나 발행잔액이 290조 4,000억 원에 이르고 있다.

2008년 9, 10월 금융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자금경색도 극심해졌고 결국 잠재돼있던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편에서는 기업과 가계대출의 부실 정도가 높아지면서 추가 대출은 고사하고 대출회수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과잉 발행된 CD나 은행채가 소화되지 않으면서 자금조달은 더욱 어렵게 되었고 그럴수록 이들의 수신금리도 올라갔다.

은행들의 대출금리가 올라 중소기업 대출의 경우 금리가 7.5퍼센트를 넘어섰고 고정금리부 주택담보 대출금리는 10퍼센트를 돌파했다. 2008년 10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퍼센트 내린 데 이어 다시 0.75퍼센트 내려 4.25퍼센트까지 인하했만 시중금리는 오히려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문제는 원화 유동성만이 아니었다. 은행들은 국내은행이나 외국은행 지점을 막론하고 2005년 이후에 단기 대외차입을 급격히 늘려갔고, 그 결과 정부발표로도 2008년 10월 현재 800억 달러의 대외채무를 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역시 2008년 9, 10월이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달러 유동성 경색이 심화되자 기존 대외채무의 만기연장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추가 해외차입도 단절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여기에 기존 수출대기업들 조차 수출대금을 시중에 풀어놓지 않으면서 은행들은 극심한 달러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은행 발 외환위기설까지 등장했던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미국과 300억 달러의 통화스왑을 체결하면서 일시적인 안정세가 오기는 했지만, 그 동안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고를 축내면서 2008년 1월 기준으로 6,618억 달러이던 것이 10월 말 기준으로 2,122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경상수지 적자로 감소한 금액을 감안하더라도 줄잡아 300억 달러 이상을 환율 방어에 소진한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둘 것은 2008년 11월 접어들면서 원화 유동성 경색은 은행을 넘어 캐피탈, 카드사 등 제2금융권으로 번져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객 수신 기반을 갖춘 은행과 달리 카드, 캐피탈 등 여신 전문 금융기관들은 은행채보다도 신용이 낮은 카드채와 같은 여전채나 기업어음(CP) 발행이 더욱 어려워지고, 자신들이 보유한 채권을 담보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 Asset backed Securities) 발행이 여의치 않으면서 더욱 궁지로 몰리게 된 것이다.

증권사나 보험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증권사가 보유한 채권을 담보로 빌린 자금이 이미 대폭 늘어난 상태이고, 보험사도 채권과 주식 등의 보유자산 가치가 하락하여 지급여력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은행의 위기가 카드사의 위기, 캐피탈사의 위기, 증권사와 보험사의 위기로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3) 자본시장 개방이 가져온 후과, 폭락하는 주식시장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4조 9,000억 원 순매도, 채권시장에서 역시 4조 1,000억 원 순매도. 이것이 미국 금융위기로 인한 한국 자본시장의 충격이 가장 심했던 2008년 10월 외국인투자자들이 취했던 포지션이었다. 이로서 2008년 10월까지 한국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주식을 팔고 빠져나간 자금이 총 41조 8,000억 원이었고 외국인 비중은 2000년 이후 8년 만에 30퍼센트 밑으로 주저앉게 된다. 주식 매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높은 금리를 노리면서 꾸준히 매수세를 유지했던 채권마저 주식 매도에 버금갈 정도의 대규모 매도세로 전환되었다.

그 사이 한때 코스피지수는 1,000선 밑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종합주가 기준으로 정확히 1년 만에 반 토막이 난 것이다. 80퍼센트나 떨어져 1/5로 폭락한 종목도 무려 20여 개에 달했다.

사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개방된 것은 1990년대 초의 일이다. 1992년 1월 3일 국민주를 제외한 모든 상장 종목에 대해 외국인 1인당 3퍼센트, 종목당 10퍼센트 한도에서 외국인 투자를 허용함으로써 우리 주식시장은 본격적인 개방 시대를 맞았다. 그 후 외환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종목 당 26퍼센트 미만이던 외국인투자 허용한도가 1997년 12월을 기해 급격히 무너지면서 결국 이듬해인 1998년 5월 25일 외국인 투자와 관련한 모든 제한은 사라졌다. 2008년은 그로부터 만 10년이 되는 해이다.

외환위기를 맞아 정책 당국자들이 외자 유치를 가장 중요한 정책구호로 들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외국인 직접투자보다는 주식, 채권과 같은 포트폴리오 투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한때 지수 300선을 밑돌던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자본은 시장개방과 함께 포트폴리오 투자를 확대하기 시작한다. 한국경제 최악의 상황이 외국 금융자본에게는 헐값에 주식을 매수할 절호의 기회가 되었던 셈이다.

1998년까지만 해도 20퍼센트를 밑돌던 국내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지분율은 2000년 들어30퍼센트를 넘어섰고, 그 후 2004년까지 외국자본은 가파른 속도로 국내주식을 사들여 지분율을 40퍼센트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멕시코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외국인이 순매수를 이어간 1999년~2004년 주가는 대체로 지수 500~800 수준에서 움직였다. 이 기간 동안 외국인 지분율은 18퍼센트에서 42퍼센트로 무려 24퍼센트포인트나 증가했는데 이때 외국인이 순수하게 투입한 금액은 대략 41조 7,000억 원 정도였다.

그러나 2005년에 접어들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차익실현에 나서면서 주식 매도세가 시작되었다. 외국인이 매도 기조로 돌아서기 시작한 2005년 1월의 주가는 지수 1,000포인트를 돌파했고 이러한 가파른 상승세 속에서 외국인은 막대한 차익실현에 성공한다. 외국인이 2005년~2007년에 주식매도로 회수한 돈은 39조 9,000억 원에 달한다.

결과적으로, 외국인은 1999년~2004년 지분율을 24퍼센트 늘리기 위해 42조 원의 자금을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했고, 2005~2007년에 그 가운데 단지 10퍼센트의 지분만을 팔아 투자원금에 가까운 40조 원을 회수한 셈이며, 14퍼센트에 해당하는 지분은 고스란히 순평가 이익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이것이 국내 자본시장에 외국인 투자를 유치한 지난 10년의 대차대조표다.

미국 발 서브프라임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 2007년 6월부터는 단순한 차익실현을 위한 매도를 넘어 새로운 양상이 전개된다. 금융위기로 심각한 유동성 부족을 겪게 된 외국 금융자본이 과거에 한국과 같은 신흥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외국인은 주가가 오르든 내리든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신흥시장의 주식을 처분하여 달러로 환전한 뒤 송금하는 행위를 이어간다.

이런 모습은 특히 한국이 두드러졌는데, 아시아 국가 가운데에서 2007년부터 외국인이 대규모 주식매도에 나선 국가는 거의 한국이 유일하며, 2008년에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주식매도가 이어졌지만 역시 한국은 일본을 뛰어넘을 정도의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2007년 하반기부터 금리차이를 이용한 재정거래 이익을 위해 채권투자가 잠깐 늘어났지만 2008년 10월 들어서는 이마저도 매도세로 바뀌었다.

이 국면에서 주가는 가파른 폭락을 거듭했으며 그나마 낙폭을 줄인 것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매수 덕분이었다.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지고 금융불안이 시작되던 2007년 한 해 동안 개인투자자들은 오히려 80만 명이 늘어나서 2007년 말 기준 444만 명으로 늘어났다. 직접적인 주식투자 인구가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10월 들어 투신권을 포함한 기관투자가마저 펀드 환매사태에 대비해 주식을 매도하면서 한때 주가가 지수 1,000선 밑으로 떨어지는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 주식시장의 외국인 비중은 29퍼센트 전후를 유지하고 있어 일반적인 선진국 수준인 25퍼센트보다는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한 규모가 조금 줄어들 수는 있어도 외국인 매도 행진은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사실상 무제한으로 자본시장을 개방한 결과 금융위기 국면에서 위기는 오히려 증폭되고 있으며, 그 피해는 결국 440만 직접 투자자와 2,000만이 넘는 펀드 투자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종합해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환시장이 전면 개방되고 은행이 외국인 소유로 넘어가면서 수익추구형 금융회사로 탈바꿈하고, 자본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금융시장이 구조전환 된 결과, 국내 금융시장의 내성과 안정성이 강화되기 보다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되었음이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다음편에 계속)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8.07.15 00:12

4개월 남짓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재정부 장관을 지켜본 결과 그들이 진정 신자유주의자, 시장주의자들인가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경제에 대해 강제적인 통제와 규제를 가하려는 정책적 발언을 서슴치않기 때문이다.

MB의 시장개입, 효과 없는 물가잡기와 고환율 정책

취임초인

지난 3월, 52개 생필품(이른바 MB물가)을 정해서 물가 통제를 하겠다고 나설 때가 그랬다. 마치 강력한 가격 통제를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결과는 어떠했나. 3월에 MB물가 상승률은 소비자 물가 상승률 3.8퍼센트를 훨씬 뛰어넘는 6.7퍼센트를 기록했다. 52개 품목을 지정해서 오르는 가격을 지켜본 것 외에 무엇을 했는가 하는 비난이 쏟아진 이유다.

4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최근 고유가와 외국인 주식시장 탈출로 환율이 급등하자, 정부는 아예 한국은행과 공동으로 시장에 외환보유고를 대거 풀어서라도 환율을 잡겠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당국이 외환시장에 의도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5월 이후 정부는 이미 환율개입을 해왔다. 그러나 두 달 동안 100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외환시장에 쏟아 부었지만 1,030원을 넘는 고환율을 꺾지 못했다. 오히려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불신을 사서 외국인 주식 매도를 부추겼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이제는 국민생활까지 통제하려나

한술 더 떠서 정부는 70년대나 80년대를 방불케 하는 민간생활 통제의지도 내보였다. 정부는 최근 고유가 대응 에너지 절약 3단계 대책을 발표했는데, 유가가 150달러를 넘기면 2단계 위기관리 대책을 발동하고 공공부문뿐 아니라 민간부문에 대해서도 ‘강제적’인 에너지 절약 정책을 취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민간에게 강제적으로 시행하겠다는 내용은 이렇다. 대중 목욕탕의 격주 휴무, 유흥음식점 등의 야간 영업시간 단축과 TV 방영시간 제한, 골프장과 놀이공원의 영업시간 단축 등이 그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를 의무화 한다면서 수천명의 인원을 풀어 전국 100만개가 넘는 음식업소를 조사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다. 가뜩이나 형편이 어려운 자영업인들에게나, 조사를 하겠다고 나온 공무원에게나, 불안에 떨며 원산지를 확인하고 음식을 먹을 국민들에게나 모두 못할 짓을 하는 셈이다. 당초에 광우병 우려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았다면 이같이 소란스런 수고를 할 필요가 있었겠나.

물가 통제도 그렇고, 환율개입도 그렇고, 에너지 강제 절약 방침마저도 시장주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반시장적인 국가 개입양상으로 보인다. 마치 21세기 신자유주의와 70년대 국가 자본주의가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모양이라고 할까. 그러나 실체를 들여다보면 확실히 이명박 정부는 매우 분명한 신자유주의자이고 시장주의자임을 알 수가 있다. 대기업과 대자본에 대한 규제완화, 개입 철폐는 철저히 지키고 있는 대신 국민생활에 대한 개입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위한 법인세 감면과 수도권 규제완화, 한미FTA 추진, 공기업 매각과 민영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는 이를 입증하는 증거다.

시장은 정말 신성불가침한 곳인가

그렇다면 정말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면 안 되는 것일까. 시장 개입을 조금 다른 차원에서 얘기해보자. 10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을 포함한 태국, 인도네시아 등은 이른바 시장을 확대하는 시장주의적 해법을 택했다. 반면 말레시아는 시장개입 해법으로 대처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수습하고자 금리인상과 재정긴축에 들어갔을 때, 말레시아는 금리를 인하하고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사용했다. 한국이 관리변동환율제도를 풀어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전환했을 때, 말레시아는 고정환율제로 외환을 통제했다. 특히 외국인 자금 유출을 적극적으로 차단하여 사실상 말레시아 증권시장에 투입된 외국자금을 반출하지 못하도록 1년 동안 묶어두는가 하면, 나중에는 이를 다소 완화하여 외국자본의 유출입에 대해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국외유출세(exit tax)를 도입했다. 상황이 진정된 2001년에 가서야 자본통제는 해제되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유가를 포함한 물가관리, 환율관리, 그리고 자본시장에서 빠져나가는 외국인으로 인한 주가 폭락 등 산적한 난제들을 앞에 두고 있다. 특히 정부의 공개적인 환율개입을 두고 실효성과 정당성 논쟁이 분분하다. 필요한 조치인가 아니면 환율 조작국이란 오명을 받을 수 있으니 시장에 맡겨야 하는가, 실효성이 있기나 한 것인가 아니면 투기자본에게 이용만 당할 것인가.

진보도 시장개입을 준비할 때

분명한 것은 외환을 시장에 풀어 환율을 통제하는 것은 시장에 제동을 거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흐름을 타는 것으로 반시장주의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 이후 현실적으로 외환 자유화와 변동환율제가 거의 100퍼센트 실시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반시장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큰 틀의 외환 거래 자유화와 변동 환율제를 인정하면서도, 외화 거래 규모 상한선을 두거나 환율 변동폭의 상한선을 두는 식의 일정한 제한을 두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영업시간 제한 등 일반 국민의 생활마저 통제해야 할 ‘비상적’ 상황이라면 왜 자본은 통제하지 못하는가. 이는 명백히 시장 개입에 대한 엄청난 피해의식이며 공포의식이다. 외환을 통한 시장개입은 말레시아가 외환위기시 적용했던 자본통제나 국외유출세(exit tax)보다도 약한 것이다. 심지어 환율을 완전히 시장에 맡기는 변동환율제도 조차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현재 변동환율제도를 사용하는 나라는 절반도 안 되니 말이다.

시장개입이 사실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월가와 FRB는 지난 3월 미국 금융위기가 정점에 이르고 베어스턴스가 파산상황에 이르자, 구제 금융을 실시하고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금융위기를 막고 있지 않은가. 최근 식량위기가 발생하니 주요 식량 수출국들이 서슴없이 자국 국민의 식량 확보를 위해 식량수출 통제를 가하지 않는가.

시장은 사실 신성불가침의 영역도 아니고, 개입하는 순간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역사에서도 시장에 개입한 역사가 개입하지 않은 역사보다 더 길다. 이미 시장개입은 누구에 의해서든 시작되었다. 혹시 진보조차도 시장개입을 두려워하고 시장개입 수단을 기피한 것은 아닌가. 이제 시장개입을 준비할 때가 된 것은 아닌지 상황을 돌아볼 일이다.

김병권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

* 이 글은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에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8.07.14 11:17

4개월 남짓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재정부 장관을 지켜본 결과 그들이 진정 신자유주의자, 시장주의자들인가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경제에 대해 강제적인 통제와 규제를 가하려는 정책적 발언을 서슴치않기 때문이다.

MB의 시장개입, 효과 없는 물가잡기와 고환율 정책

취임초인 지난 3월, 52개 생필품(이른바 MB물가)을 정해서 물가 통제를 하겠다고 나설 때가 그랬다. 마치 강력한 가격 통제를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결과는 어떠했나. 3월에 MB물가 상승률은 소비자 물가 상승률 3.8퍼센트를 훨씬 뛰어넘는 6.7퍼센트를 기록했다. 52개 품목을 지정해서 오르는 가격을 지켜본 것 외에 무엇을 했는가 하는 비난이 쏟아진 이유다.

4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최근 고유가와 외국인 주식시장 탈출로 환율이 급등하자, 정부는 아예 한국은행과 공동으로 시장에 외환보유고를 대거 풀어서라도 환율을 잡겠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당국이 외환시장에 의도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5월 이후 정부는 이미 환율개입을 해왔다. 그러나 두 달 동안 100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외환시장에 쏟아 부었지만 1,030원을 넘는 고환율을 꺾지 못했다. 오히려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불신을 사서 외국인 주식 매도를 부추겼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이제는 국민생활까지 통제하려나

한술 더 떠서 정부는 70년대나 80년대를 방불케 하는 민간생활 통제의지도 내보였다. 정부는 최근 고유가 대응 에너지 절약 3단계 대책을 발표했는데, 유가가 150달러를 넘기면 2단계 위기관리 대책을 발동하고 공공부문뿐 아니라 민간부문에 대해서도 ‘강제적’인 에너지 절약 정책을 취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민간에게 강제적으로 시행하겠다는 내용은 이렇다. 대중 목욕탕의 격주 휴무, 유흥음식점 등의 야간 영업시간 단축과 TV 방영시간 제한, 골프장과 놀이공원의 영업시간 단축 등이 그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를 의무화 한다면서 수천명의 인원을 풀어 전국 100만개가 넘는 음식업소를 조사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다. 가뜩이나 형편이 어려운 자영업인들에게나, 조사를 하겠다고 나온 공무원에게나, 불안에 떨며 원산지를 확인하고 음식을 먹을 국민들에게나 모두 못할 짓을 하는 셈이다. 당초에 광우병 우려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았다면 이같이 소란스런 수고를 할 필요가 있었겠나.

물가 통제도 그렇고, 환율개입도 그렇고, 에너지 강제 절약 방침마저도 시장주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반시장적인 국가 개입양상으로 보인다. 마치 21세기 신자유주의와 70년대 국가 자본주의가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모양이라고 할까. 그러나 실체를 들여다보면 확실히 이명박 정부는 매우 분명한 신자유주의자이고 시장주의자임을 알 수가 있다. 대기업과 대자본에 대한 규제완화, 개입 철폐는 철저히 지키고 있는 대신 국민생활에 대한 개입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위한 법인세 감면과 수도권 규제완화, 한미FTA 추진, 공기업 매각과 민영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는 이를 입증하는 증거다

시장은 정말 신성불가침한 곳인가

그렇다면 정말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면 안 되는 것일까. 시장 개입을 조금 다른 차원에서 얘기해보자. 10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을 포함한 태국, 인도네시아 등은 이른바 시장을 확대하는 시장주의적 해법을 택했다. 반면 말레시아는 시장개입 해법으로 대처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수습하고자 금리인상과 재정긴축에 들어갔을 때, 말레시아는 금리를 인하하고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사용했다. 한국이 관리변동환율제도를 풀어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전환했을 때, 말레시아는 고정환율제로 외환을 통제했다. 특히 외국인 자금 유출을 적극적으로 차단하여 사실상 말레시아 증권시장에 투입된 외국자금을 반출하지 못하도록 1년 동안 묶어두는가 하면, 나중에는 이를 다소 완화하여 외국자본의 유출입에 대해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국외유출세(exit tax)를 도입했다. 상황이 진정된 2001년에 가서야 자본통제는 해제되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유가를 포함한 물가관리, 환율관리, 그리고 자본시장에서 빠져나가는 외국인으로 인한 주가 폭락 등 산적한 난제들을 앞에 두고 있다. 특히 정부의 공개적인 환율개입을 두고 실효성과 정당성 논쟁이 분분하다. 필요한 조치인가 아니면 환율 조작국이란 오명을 받을 수 있으니 시장에 맡겨야 하는가, 실효성이 있기나 한 것인가 아니면 투기자본에게 이용만 당할 것인가.

진보도 시장개입을 준비할 때

분명한 것은 외환을 시장에 풀어 환율을 통제하는 것은 시장에 제동을 거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흐름을 타는 것으로 반시장주의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 이후 현실적으로 외환 자유화와 변동환율제가 거의 100퍼센트 실시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반시장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큰 틀의 외환 거래 자유화와 변동 환율제를 인정하면서도, 외화 거래 규모 상한선을 두거나 환율 변동폭의 상한선을 두는 식의 일정한 제한을 두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영업시간 제한 등 일반 국민의 생활마저 통제해야 할 ‘비상적’ 상황이라면 왜 자본은 통제하지 못하는가. 이는 명백히 시장 개입에 대한 엄청난 피해의식이며 공포의식이다. 외환을 통한 시장개입은 말레시아가 외환위기시 적용했던 자본통제나 국외유출세(exit tax)보다도 약한 것이다. 심지어 환율을 완전히 시장에 맡기는 변동환율제도 조차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현재 변동환율제도를 사용하는 나라는 절반도 안 되니 말이다.

시장개입이 사실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월가와 FRB는 지난 3월 미국 금융위기가 정점에 이르고 베어스턴스가 파산상황에 이르자, 구제 금융을 실시하고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금융위기를 막고 있지 않은가. 최근 식량위기가 발생하니 주요 식량 수출국들이 서슴없이 자국 국민의 식량 확보를 위해 식량수출 통제를 가하지 않는가.

시장은 사실 신성불가침의 영역도 아니고, 개입하는 순간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역사에서도 시장에 개입한 역사가 개입하지 않은 역사보다 더 길다. 이미 시장개입은 누구에 의해서든 시작되었다. 혹시 진보조차도 시장개입을 두려워하고 시장개입 수단을 기피한 것은 아닌가. 이제 시장개입을 준비할 때가 된 것은 아닌지 상황을 돌아볼 일이다.

김병권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

* 이 글은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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