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4정태인/새사연 원장

역시 ‘다이내믹 한국’인가, 했다.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이 의료민영화나 4대강 등 공공성 의제의 들불로 번져나갔던 것, 2010년 무상급식이 순식간에 보편복지 의제로 자리잡은 것처럼 이번엔 ‘경제민주화’가 그럴지도 모른다, 내 가슴은 노래 가사처럼 두근두근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민주통합당은 패배했고 통합진보당은 여전히 대중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진보신당과 녹색당은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김종인 박사 말마따나 새누리당 당선자 중에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야권연대 쪽을 통틀어 당장 정책과 법안을 만들 정도의 실력을 가진 당선자는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 더구나 민주통합당에서는 예의 ‘중도론’이 또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으니 이대로 간다면 대선에서도 별로 기대할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도대체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헌법 119조 2항(김종인 조항)이 그 근거다. 즉 헌법은 소득재분배(복지), 그리고 독점규제(재벌개혁)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헌헌법에는 ‘이익균점권’이 있었으니 우리 헌법은 유구한 ‘경제민주화’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경제민주주의’를 향하여 간다는 뜻일텐데 경제민주주의라는 목표는 어떤 모습일까? 불행하게도 이 질문에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확한 답이 없고 그야말로 백화제방의 상태이다.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곧 민주주의라는 프리드만(Freedman, M)의 강변 이래 별 관심이 없었고 정치학자들만 띄엄띄엄 의견을 개진했을 뿐이다.
 
경제민주주의 하면 떠오르는 학자는 정치학자 달(Dahl, R)이다. 그는 적어도 선진 사회의 정치에서는 ‘1인 1표’라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규범인데, 경제에서는 왜 ‘기업 괴물(corporate leviathan)’의 전제주의가 규범인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따라서 정치와 경제가 대칭적이기 위해서는 ‘작업장 민주주의(workplace democracy)’가 필수적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1980년대 진보적 경제학자들에게도 나타나는데 보울스(Bowls, S) 등의 ‘민주적 기업’이 그것이고 지난번에 소개한 프리먼(Feeman, R)은 30년 넘게 이 문제에 천착해서 ‘공유자본주의론’을 완성했다.
 
기업 내 민주주의를 넘어 롤스(Rawls, J)는 경제에도 자신의 정의론을 적용한 결과 ‘재산소유 민주주의(property-owning democracy)’를 이상적 사회로 내세우기에 이르렀다(또 하나의 대안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놀랍게도 롤스는 스웨덴의 복지국가를 강하게 비판했는데 복지국가가 자산 소유(‘생산 자산’, production assets)의 양극화를 용인해서 정의의 원칙인 ‘기회 평등의 원칙’, ‘차등의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자유의 원칙도 위반했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결국 롤스는 자산 및 자본재분배까지 주장한 것이다. 

우리 헌법은 사실상 독점의 시정(즉 산업구조 상의 문제)을 중심으로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국가가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고 달과 프리먼은 기업의 민주화를, 그리고 롤스는 재산소유의 민주화까지 주장한 것이다. 이 모두를 일반화한다면 자신의 삶과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차원의 의사결정에 시민들이 참여해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경제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착한 경제학’은 경제민주주의를 어떻게 볼까? 독자들은 지금까지의 정책 처방이 경제민주주의론자들의 주장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이 얘기는 다음 번에 계속하기로 하자.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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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2정태인/새사연 원장

“아이들이 밝힌 촛불이 점점이 일렁인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중년 사내의 시야가 이내 흐려지면서 촛불은 파스텔톤의 들불로 부옇게 번져간다.” 4년 전 이맘때 쓴 글의 첫머리다. 2008년 5월2일, “나 이제 15살, 살고 싶어요”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여중생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이 아이들도 이번 총선에서 한 표를 던졌을 테지만 우리는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또 한 번 그들을 실망시켰다.

극적으로 변한 건 정부와 여당, 그리고 보수언론이었다. 촛불에 놀라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반성’을 하고 결국 국민에게 사과까지 했던 대통령은 2010년 5월, “촛불시위 2년이 지났는데 많은 억측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고 다그쳤다. 조·중·동은 시민들에게 “좌파의 선동에 놀아났다”는 반성을 강요했고 검찰과 법원은 1000명이 넘는 촛불시민에게 벌금형 이상을 때렸다. 심지어 정부의 광우병 대책을 비판한 지식인들을 쫓아다니며 허위의 폭로 기사를 쓰는 것도 그들의 일이었고, 사소한 흠결을 문제삼아 MBC 팀을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될 때까지 끊임없이 괴롭혔다.

확률로 볼 때 썩 괜찮은 전략이었다. 실제로 고전적 광우병(CJD)은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였고 도축 소의 0.05%에서 0.1%만 검사하는 미국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내에 광우병 소가 발견될 확률은 지극히 낮으니 말이다.

광우병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프루시너 교수가 미 하원에서 “은폐는 좋은 방책이 아니”라며 전수검사를 지지했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캔자스주립대학의 폭스와 피터슨 교수가 미국에서도 유럽 수준으로 ‘고위험 소’를 검사한다면 99.999%의 확률로 광우병 양성 소를 찾아낼 것이라고 단언한 사실도 무시됐다.

그러나 미국은 영국이 광우병을 막기 위해 차례로 취한 3단계 사료 조치 중 1단계만 시행하고 있을 뿐이며 등뼈에 붙은 살을 기계로 뜯어내는 AMR도 허용하고 있다. 결국 광우병 소가 발견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오로지 미국 축산대기업의 이익 때문이다. 미국에선 버려야 하는 창자, 혀, 목둘레살 등 소의 부산물을 한국에 수출하면 이윤율을 10% 가까이 올릴 수 있다.

정부는 이번에 발견된 소가 비정형광우병(atypical BSE, BASE)에 걸린 것이며 인간의 식품체계에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코모이 등 유럽과 미국의 수의학자, 의학자 16명의 공동연구는 원숭이 실험에서 비정형광우병이 CJD보다 더 병원성이 높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따라서 이들은 CJD가 감소하는 추세라고 해서 기존의 규제조치를 완화해서는 안된다고 권고한다.

미국에서는 늙거나 죽은 소를 닭과 돼지와 같은 다른 가축의 사료로 만든다. 이들 가축이 죽으면 또다시 소의 사료가 되니 언제든 광우병의 교차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 직접 먹지 않는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언제까지 국민을 속일 것인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우리 수준으로 개방하지 않으면 위생검역조건을 재개정하겠다는 거짓말, 언제든지 수입중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했던 뻔한 거짓말, 그리고 지금 별 위험이 없으므로 검역만 강화하면 된다는 거짓말….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기 마련이다. 장차 인간 광우병까지 발견되면 또 어떤 거짓말을 할 것인가?

아이들에게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어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지난 총선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오늘 나는 이제 훌쩍 컸을 촛불소녀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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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년 전에 그렇게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 대해 의사를 표시했는데 이 놈의 정부는 이번에 새로 광우병이 발병하자 그 때의 약속은 온데간데 없고 "검역을 강화하겠다" 는 말로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고 있지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정부부터가 이렇게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어떤 국민이 나라에서 만드는 법을 지키려고 하겠습니까? 정부는 이번에 약속 파기에 대해서 그야말로 큰 댓가를 치르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회는 모름지기 서로간의 신용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정부부터가 국민과의 약속을 깼으니 법치주의를 내세우는 정부부터가 명분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건 우스운 것 같아도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정부의 입장과 태도에 대하여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큰 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정말 욕먹고 지탄을 받아도 쌉니다. 정말 대책 없어요.

    2012.05.14 13:55 [ ADDR : EDIT/ DEL : REPLY ]

2011.05.23정태인/새사연 원장

“정말 몰라서 묻는 건데, 그날 왜 교정으로 돌아가자는 결정을 했죠?” 11년 전 내가 CBS의 <시사자키>를 진행하던 때, 5·18 특집에 출연한 유시민(현 국민참여당 대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1980년 5월15일 오후 우리는 서울역에 있었다. 관악에서 영등포로, 그리고 신촌으로 돌고 돌아 서울역 광장에서 농성했다. 회현고가도로 위에서 수많은 시민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시청으로 돌진하던 버스에 불이 붙었다. 이내 신군부가 효창운동장에 공수부대를 집결시켰다는 둥, 아니 관악산에 도착했다는 둥 각종 소문이 나돌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온갖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교정으로 돌아가자는 결정을 내렸다. 아니 사실상 해산을 했다. 바로 ‘서울역 회군’이다.

 “무서워서 그랬죠.” 그는 허탈할 정도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나중에 확인한 증언에 따르면, 당시 서울대 대의원회 의장이었던 유시민은 “여기서 해산하면 끝이다. 여기서 신군부의 실상을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현 한나라당 의원)은 “잠시 물러나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다시 움직이자”고 했다. 당시 배후세력이라 할 만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의장은 이해찬(전 총리)이었다. 이들을 비난하려 함이 아니다. 나 역시 “망했다”고 생각했지만 저 깊은 속으론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았던가.

 80년 5월 ‘서울역 회군’의 한탄

그리고 광주에서 학살이 시작되었다. ‘체계적인 계획’은 하나도 실행되지 않았다. 계엄령이 내려질 경우, 영등포 시장에서 모이자고 했지만 나 역시 그 시간에 약속장소를 버스 타고 지나쳤을 뿐이다. 또 한번 사람들이 모이지 않은 것을 한탄했지만 내 안에선 “살았다”는 속삭임이 흘러나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우린 정체불명의 체포 명단을 빌미로 각자 숨어들었다. 그 이듬해 정말 말이 없었던 동기, 그래서 목소리조차 기억나지 않는 김태훈이 “전두환은 물러가라”를 세 번 외치고 도서관 6층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광주일고 출신이었다.

 훗날 보고 들은 광주는 화엄의 공동체였다. 김밥을 나르고 물을 건네며, 저들이 기대했던 방화와 약탈을 간단하게 우스갯거리로 만들었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 승리의 공동체였다. 광주는 1987년 6월항쟁으로 군부독재를 영원히 종식시켰고, 위기마다 촛불을 일으켜 두 번이나 개혁정부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우리는 화엄의 공동체를 재현하기에 터무니없이 무능했다.

 치욕의 부끄러움은 2008년 5월 또다시 되살아났다. 여중생들이 “이제 15살, 살고 싶어요”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모두가 하나 되는 ‘화엄 광주’가 서울 광화문에서, 대구 동성로에서, 광주 금남로에서, 전주 덕진로에서 그리고 강릉에서 한점 한점 촛불이 되어 피어났다. 그것도 어린아이들의 손에서 일렁이며 번져나갔다.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 100일이 넘도록 그 뒤를 따랐지만 우리는 ‘명박산성’을 넘지 못했다.

 여전히 살아있는 우리는, 또한 여전히 무능하다. 광주의 학살자들 쪽에서 쇠고기 전면 수입 자유화를 받아들여 기어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준하려 하는데 일부는 ‘원죄’ 때문에, 또 일부는 힘이 없어서 입으로만 반대하고 있다.

 변혁 위한 ‘희망의 불씨’ 살려야

어디 이뿐인가. 살고 싶다는 그 아이들을 죽음의 경쟁 속으로 더 깊숙이 밀어넣고 있는 것도 살아남은 우리다. 아이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남을 못 믿고, 가장 불행하다고 호소하는데도 그저 경쟁 교육의 내용만 이리저리 변주하고 있을 뿐이다.

 언제 화엄의 공동체를 꿈꿨느냐는 듯, 오로지 개인적 승리에 매달리던 우리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린 것일까. 지방선거는 아직 희망의 불씨가 살아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단순히 정권을 바꿔서 될 일이 아니다. 진정한 ‘화엄 광주’를 이 나라에 되살리기 위해선 죽음으로 치닫게 하는 전 시스템을 바꿀 구체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실천하는 것만이 이 치욕에서 벗어날 길이다. 다시 한번 화엄의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야 한다.


이글은 경향신문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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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민주화 이후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완만하게 진행된 민주주의 공고화가 2008년 이명박 정권 집권 1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후퇴하는 적신호가 어려 방면에서 감지되고 있다. 물론 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한미자유무역협정 추진방식의 절차적 정당성이 문제가 되면서 국민적 저항이 발발하기도 했으나, 2008년 촛불집회로 나타난 민심의 이반 현상만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반면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에 대한 반대로 시작된 2008년 촛불정국에서 확인된 한국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는 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규모의 국민적 저항으로 분출되었다. 대통령과 의회를 중심으로 정책결정이 이루어지는 한국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국민의 직접행동 민주주의와 다방면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주권자인 국민의 민주적 의지가 현재의 대의정치 시스템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징후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을 거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시대정신은 신자유주의 보수 혁명으로 귀결되는 듯했다.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범보수세력이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그리고 의회의석 200석을 장악하면서 제도정치적 수준에서 범보수세력의 각종 정책들에는 어떠한 제약도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민주화 이후 반복된 여소야대 분점정부 상황은 통치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비판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특정 세력의 독주를 막는 안전판이라는 긍정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제18대 총선 결과 범보수세력에 의한 무소불위의 권력행사가 가능해졌다. 따라서 총선 이후 제도정치의 지형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공역방송 장악, 학원 자율화, 노동유연화의 지속적 추진, 공공부문 사유화, 대운하 추진, 의료보험 민영화와 같은 신자유주의의 핵심 정책들이 발 빠르게, 그러나 어떠한 제약도 없이 추진될 것으로 보였다.

신자유주의 보수혁명을 막아낸 촛불혁명

그러나 제도정치 수준에서 통제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집권 극초반부에 추진된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대한 전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면서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중학교 여학생들로부터 촉발된 촛불집회가 단기간에 87년 6월항쟁의 동력을 뛰어 넘는 수준으로 상승하게 된 일련의 사건들은 어느 누구도 감히 짐작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2008년은 죽지 못해 사는 절망의 시간이었으나 촛불은 그나마 삶의 빛을 뿌려주는 희망의 아이콘이었다. 만약 2008년 5~7월 동안 지속되었던 촛불집회가 없었다면 2008년 연말부터 2009년 연초까지 진행되었던 국회 입법전쟁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절대 다수의 한나라당에 맞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강한 민주적 의식으로 무장한 국민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는 사실만큼 대의 민주주의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발 빠르게 추진하고자 했던 이명박 정권이 2008년에 보수혁명을 성공시키지 못한 가장 직접적 원인은 집권세력의 무능함 때문이다. 만약 이명박 정권이 선거에서의 승리를 주권자가 위임한 권한의 한계까지 벗어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았다면, 만약 이명박 정권이 집권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과 정책 실현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을 혼동하지 않았다면, 만약 이명박 정권이 일거에 총체적인 목적을 달성하려 하지 않고 협상과 타협의 기술을 발휘했더라면, 만약 이명박 정권이 외형적으로나마 민주적 가치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했더라면, 만약 이명박 정권이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 수준의 좀 더 부드러운(?) 신자유주의 정책을 느긋하게 추진했더라면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은 보다 용이했을 것이다. 단언컨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통치 엘리트 집단과 현재 한나라당 지도부는 국정운영의 기술이나 정치적 기예라는 측면에서 수권 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집권 초반기를 허송세월로 보냈다. 이들이 사실 얼마나 무능한 집단인지는 미네르바 현상이 잘 보여주고 있다. 준비 되지 않은 대통령과 무능한 집권여당이 선거 승리에 도취되어 그 동안 크게 성숙한 국민의 민주적 의식을 전략적으로 고려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것이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권의 향후 정국 운영 스타일에 근본적인 수정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일차적으로는 한번 잘못 끼워진 단추를 다시 풀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경로의존성이 작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 반(反)이명박 연대의 핵심축이 될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 대한 선별적 공격, 입법전쟁 이후 동등한 헌법기관인 국회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 발언 등과 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2009년이 2008년의 암울한 연장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2009년 정국의 핵으로 등장할 재보권 선거

2009년 정치 일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4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다. 수도권을 비롯하여 대략 8곳에서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재보궐 선거는 향후 정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독립변수이자, 선행변수에 영향을 받는 종속변수다. 4월 재보궐 선거에 영향을 미칠 선행변수는 지난 1년 간 이명박 정권의 실정, 연초연말에 진행되었던 1차 입법전쟁과 2월에 재연될 것으로 보이는 2차 입법전쟁, 2008년 촛불집회와 2009년 2월 임시국회 결과에 따라 활성화될 것으로 보이는 촛불집회 및 시민사회단체의 행보 그리고 경제상황 등이다. 어느 변수 하나도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 유리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재보궐 선거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역시 소수파로서 어렵게 우위를 지켜온 잠재적인 정국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면 이명박 정권의 정국 장악력은 급속도로 약화될 것이고, 이어질 2차 촛불집회를 비롯한 국민적 저항운동도 탄력을 받게 된다. 나아가 2009년 후반기 재보궐 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제는 실제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단순다수대표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호남을 제외한 지역에서 야당이 한나라당 후보에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후보 단일화가 필수적이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고정 지지율은 여전히 30퍼센트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을 잠식할 경우 민주당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할 가능성이 높고, 민주당 후보가 출마하는 한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후보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매우 어렵다. 근래에 반이명박 전선을 주장하는 이들은 단순히 사회운동적 수준의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4월 재보궐 선거, 나아가 2010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이러한 주장은 단순다수대표제를 채택하는 선거제도의 특성상 타당한 측면이 있다.

수평적 반이명박 연대가 관건이다

진보세력은 매우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진보세력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그들이 속한 정당을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는 신자유주의 세력이라면서 비판해 왔다. 그러나 현재의 조건에서는 보다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무능력하며 파시즘적 행태마저 보이는 한나라당과 대적하기 위해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대를 암묵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여기에서 연대는 사회운동적 수준에서의 연대가 아니라 ‘비판적 지지론’을 연상시키는 당면한 선거 국면에서의 연대를 말한다. 과거 비판적 지지론을 둘러싼 진보세력 내의 첨예한 갈등이 재생산되고 자칫 두 동강 난 진보세력의 역량이 더욱 축소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후보단일화를 비롯한 다양한 수준의 반이명박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과거의 비판적 지지론은 진보세력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일방적인 지지에 불과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연대는 동등한 정당 간의 수평적 연대이기 때문이다. 각 지역구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가 있고, 그 후보에게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없다면 그가 민주당이든,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단일 후보를 출마시켜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주객관적인 조건상 선거 패배가 확실한 한나라당이 선거제도의 약점을 이용하여 부활하는 것을 막아 내야 한다. 이는 무원칙한 선거연합이 아니라 각 정당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며, 지난 1년 동안 지속된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는 것이다.

적어도 선거정치를 둘러싼 반이명박 연대는 2010년 지방선거까지 지속될 필요가 있고, 그 연대가 잠정 중단되는 시점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각종 악법과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추진을 민주적 압력에 밀려 포기할 때다. 나아가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민주당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자신들이 추진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근본적 오류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대안적인 사회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면, 반이명박 연대는 반신자유주의 연대로 확장·강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의 저항에 대해 제도정치가 답해야 할 때

반이명박 연대를 구축하는데 있어 핵심 열쇠는 민주당이 쥐고 있다. 적어도 이명박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추진한 민주당인 한 그 책임의 깊이는 두말할 나위 없다. 거두절미하고 민주당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지역구를 먼저 양보하고, 적극적인 연대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의지를 갖추어야 한다. 민주당이 국회의원 의석 1~2석을 추가로 욕심낼 경우에는 한나라당에게 부활의 기회를 주는 것이 될 것이고, 1~2석을 과감히 포기할 경우에는 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정국 장악력을 확보할 수 있다. 민주당은 단기적이고 편협한 이해관계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이와 같이 2009년의 정치 일정에서 4월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로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패배는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을 거치면서 만연된 선거정치에 대한 불안감과 냉소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줄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촛불집회를 비롯한 국민들과 시민사회세력의 운동에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탄탄한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2008년 제도정치의 암울한 상황을 국민들의 민주적 역량이 투입되어 구원해 줬으니, 이제 제도정치가 다소 잠잠해진 국민들에게 보답해야 할 때이다. 제도의 정치가 운동의 정치와 선순환 관계를 맺을 때 2009년 한국정치는 2008년의 암울한 연장에 단절선을 그을 수 있다.

엄관용/새사연 객원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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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o

    좋은 내용이네요.

    2009.01.14 13:29 [ ADDR : EDIT/ DEL : REPLY ]
  2. 촛불은 30대중반인 저도 참가했는데 여중생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얘기는 좀 어패가 있네요. 그리고 경제칼럼 중에 신자유주의를 자꾸 언급하며 칼럼을 쓰시는 분들이 있는데 전 신자유주의냐 아니냐가 중요한게 아니라고 봅니다. 경제정책을 만드는데 있어, 경제주체들 서로간에 피해를 받지 않고 최대한의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쪽으로 정책을 다듬는 것이 중요한게 아닐까요? 그게 꼭 단순히 신자유주의냐 아니냐로 구분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잖아요.

    2009.01.14 21:40 [ ADDR : EDIT/ DEL : REPLY ]

주제별 이슈 2009. 1. 7. 11:58
우연한, 그러나 필연적인 그리스 반란

‘아고라’ 광장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했던 아테네의 후손들은 2009년 새해를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맞았다. 신다그마 광장과 국회의사당 앞, 오모니아 광장, 아테네 공대 앞 파티시온 거리와 엑사르히야 지역, 피살당한 소년 장례식이 이루어진 팔레오 팔리로 지역에서는 연일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으며, 지난해 12월 10일에는 노동자총연맹과 공공노조연맹의 파업으로 24시간 동안 공항이 마비되기도 했다.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시위대는 은행과 고급상점, 각종 세금관련 서류가 있는 관공서를 공격하고 있고, 방송국과 고등학교, 대학을 점거하는 등 급진적이고 과격한 투쟁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위대의 요구사항은 다양하다. 소년을 살해한 폭동진압부대의 해체와 경찰의 총기 휴대 금지 등 주로 이번 살해 사건에 국한된 요구를 내세운 이들도 있고,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는 ‘반-테러법’의 무효화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가하면 정부의 교육과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거나, 정부 타도와 전면 파업, 노동자들의 자주관리를 통해 자본주의 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의 지난 촛불시위에서 미국산 쇠고기 문제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의제가 분출되었던 것처럼, 이번 그리스의 시위는 이질적인 운동세력과 대중을 하나의 흐름으로 결집시키고 있다. 이러한 그리스의 시위 역시 우리의 촛불 사례처럼 다양하고 광범위한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그리스 당국은 정국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희망은 시위 주력군인 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자연스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겠지만, 시위가 잦아들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시위대의 조기총선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별다른 타협점도 없어 보인다.

게다가 2009년 1월 9일에는 1991년 신민주당 청년지도자에게 살해된 키노스 템포너라스라는 젊은 교사의 추모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신민주당은 현 집권당이기도 하며 1991년의 사건이 이번 소년살해 사건을 상기시키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시위대는 템포러라스 추모대회를 통해 다시 한번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지적했듯이, 이번 그리스 민중들의 분노를 단순히 경찰관의 ‘소년살해’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은 명백한 한계를 가진다.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살해했기 때문에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이 아니며, 미국의 남북전쟁이 샘 요새에서 한 발의 총성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듯, 분노가 분출된 시발점이 사건의 원인을 모두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집단행동은 치밀하게 준비된 의도적 행위보다, 아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 예측하지 못한 순간 폭발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 민중저항은 몰락해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장송곡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그리스 사례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리스 민중들의 현실, 그리고 현 집권당인 신민주당의 정책대응이 우리의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어제에서 우리의 오늘을 읽을 수 있고, 그리스의 오늘에서 우리의 미래를 읽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 정부와 민중 저항
 
                                                                    [표1] 최근 그리스 관련 주요 사건
현 그리스의 집권당은 우파정당인 신민주당(New Democracy Party)이다. 신민주당은 2004년 총선에서 중도좌파를 표방한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에 대한 대중적 불만을 바탕으로 집권할 수 있었다. PASOK은 사회주의운동당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들의 무능과 반민중적 정책에 질려버린 민중들의 저항에 줄곧 직면해야 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또 다른, 아니 더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부의 집권으로 이어진 것은 우리의 경험과 매우 유사하다. 이런 경향은 경쟁하는 두 거대 정당이 존재하고, 정치적 경쟁이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현실을 반대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정치구도에서는 쉽게 나타난다. 무엇을 실현하기보다 누군가를 반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광범위한 대중의 동의를 얻기에 수월하지만, 호랑이든 여우든 먹이사슬 아래쪽에 서 있는 이들의 살점을 노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PASOK이나 신민주당은 민중에겐 여우와 호랑이일 뿐이었다.

2004년 집권 이후부터 그리스 우파 집권당은 정부지출을 축소하고 은행, 항공, 통신, 전력회사 등 국영기업에 대한 민영화를 강력히 추진하는 등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본격화 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2006년 12월 개발촉진법을 개정하고 국책사업 추진에 민간자본을 참여시켰고, 국가 소유의 부동산을 개발할 때도 민간기업의 투자를 유인하면서 기업이윤에 대한 세율을 3년에 걸쳐 5~10퍼센트를 줄여 주었다.

당시 그리스는 유로화 채택에 따른 저금리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최로 경기가 활성화 되는 등 경제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맞았다. 2003년 그리스의 GDP 성장율은 4.9퍼센트를 기록했고, 2004년 4.7퍼센트, 2005년 3.7퍼센트, 2006년 4.3퍼센트, 2007년 4퍼센트의 성장을 지속했다. 물론 성장률은 올림픽이 끝난 후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지만, EU 회원국 가운데에서는 꽤 높은 수준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충분히 확인했듯이 단순히 GDP가 성장한다고 해서 모든 서민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역시 경제성장의 성과는 모든 그리스인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다른 EU 국가에 비해서도 심각한 만성적인 실업문제는 그리스가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4년 그리스 실업율은 공식 통계로만 10.5퍼센트에 이르렀으며, 조금씩 낮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OECD 평균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표2] 그리스의 주요 경제지표 현황

특히 그리스 청년실업문제는 최악의 상황이다. 신자유주의 정부가 등장한 이후 양적인 노동 유연성만이 강조되면서 파트타임 등 임시직의 일자리만 늘었을 뿐, 안정적인 직업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통상 청년실업율은 전체 실업율에 비해 2~3배 가량 높기 마련인데, 그리스의 청년실업율은 공식 통계로만 30퍼센트에 가깝다. 이는 만성적인 청년실업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EU국가들 가운데서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공식 청년실업율(20~29세)이 7퍼센트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현 그리스 청년세대는 부모세대보다 삶의 수준이 더 나빠지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5명 중 1명, 즉 200만 그리스인이 빈곤층에 속해 있는 상황에서 가족에게 기생하며 사는 청년층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그리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그나마 상황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이웃나라로의 이민을 택하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 젊은층이 이번 시위의 주력으로 등장한 이면에는 노동인력 유출을 심각하게 여긴 정부당국이 젊은이들의 이민 신청서를 장기간 처리해주지 않은 데 쌓인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당의 대학정책은 거꾸로 갔다. 극심한 취업난에 대학졸업장이 아무런 쓸모가 없어졌는데도 교육시장화 정책을 일관되게 밀어붙인 것이다. 그리스 헌법은 사립대학을 금지하고 있고, 외국인을 제외한 대학생들의 학비는 전액 무료인데, 구집권당인 PASOK은 대학 민영화가 가능하도록 헌법조항 수정을 추진하다가 교수와 학생, 노조는 물론 PASOK 일반당원까지 거세게 반발하는 바람에 결국 포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신민주당 정부는 2004년 집권 이후 대학 민영화 계획을 다시 추진했으며, 대학생들은 2006년 대규모 대학점거 시위로 이에 맞섰다. 2000년대 초반의 반전시위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오늘의 그리스 대학생들은 2008년 10월에도 동시다발 대학 점거 계획을 결정했다. 이런 대학생들의 점거 시위 계획은 2008년 10월 공공무문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그리스 노동자들의 대규모 총파업 시위와 맞물려 하반기 격렬한 대정부 투쟁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 소년 살해 사건 직후 100여개의 고등학교와 15개의 대학이 시위대에 점거된 것은 돌발적이라기보다 계획된 것이었다.

어쨌든 연금개악, 공공부문과 대학 민영화에 대한 반발이 고조되는 가운데 터진 집권당의 부패 스캔들은 그리스 민중의 인내심에 한계를 가져왔다. 집권당이 정부 소유의 아테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와 수도원의 값싼 땅을 맞바꾸고 뒷돈을 챙긴 것이 드러난 것이다. ‘내각 총사퇴’와 ‘조기총선’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신민주당 정부는 세계 금융위기를 맞아 복지예산을 삭감하는 대신 은행에 280억 유로를 지원하기로 결정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은행이 시위대의 주된 공격목표가 된 것도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려 했던 은행과 역시 서민을 외면하고 은행만 살리려는 집권당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이런 국민들의 불만에 대한 그리스 정부의 대응은 우리 정부와 경찰청장처럼 공권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뿐이었다. 결국 피살된 소년은 우연히 선택되었을 뿐, 그리스에서의 반란은 이미 예정된 결과였다. 부패한 정부의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정책,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 청년들의 심화된 불만은 그리스를 화약고로 만들어 버렸고,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해있던 세계 대다수 나라의 정부들은 민중반란이 자국에서 재현되지 않도록 고심하고 있다.

한편, 그리스 민중들이 명박산성을 앞에 두고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놓고 허송세월했던 우리와 달리, 결단 있는 반정부 시위로 정국을 주도할 수 있었던 데는 과거 미국의 후원을 받고 있던 군부독재세력을 몰아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1973년 학생저항이 일종의 ‘정신적 유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1967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이 1973년 학생회 선거를 조작하는 등 정치공작활동을 펼친 것이 드러나자, 아테네 과학기술대학생들은 11월 14일부터 대학 점거 투쟁을 벌여 나갔다. 바로 다음 날, 군사정부에 반대하는 30만 명의 그리스 민중들은 아테네에 집결했고, 아테네 과학기술대학생은 군사정부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군사정부가 11월 17일 탱크를 동원해 대학을 점령하는 와중에 수많은 학생들이 살해되었지만, 8개월 후 군사정부는 더 이상 권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1973년 학생들의 반란은 우리의 4월혁명, 광주항쟁과 1987년 6월항쟁 등의 민중저항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국민을 배반한 권력을 심판한 민중의 힘은 2008년 한국의 촛불시위에서도, 12월의 그리스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아직까지 우리 대학생들은 여전히 바늘구멍에 희망을 걸고 있고, 우리 국민들은 그리스 국민에 비해 ‘지나치게’ 평화주의자라는 점 뿐이다.

그리스는 한국의 미래?

이제까지 살펴보았듯이, 서민층의 극심한 생활고에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정권, 다양하게 분출되는 대중의 저항을 오로지 억압적 공권력에만 의존하려는 정권은 결국 그리스에서 극도의 폭력시위를 낳았다. 지난 촛불시위에서 불탄 은행과 상점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촛불시위 조차 ‘불법폭력시위’로 규정한 이명박 정권의 눈에 그리스는 이미 생지옥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단지 비제도적인 집회·시위의 자유만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의회체제에서도 힘으로 밀어붙이는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 12년만의 날치기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한미 FTA 비준안을 상정한 데 이어, 최저임금법, 국가정보원법, 통신비밀보호법, 불법집단행위에 관한 집단소송법, 집시법개정안,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신문법 등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후퇴시키는 일련의 법안들도 곧 줄줄이 강행처리할 테세다.

이런 법안들은 정치세력 간 협상과 타협으로 통과 시기가 미뤄질 수는 있지만, 2009년 상반기 정부·여당과 국민 간의 관계가 최악으로 멀어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최근 정부여당의 강경드라이브는 4월 재·보궐 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는 정책을 밀어붙이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 해 놓을 건 다 해놔야 한다는 조급함이 만들어 낸 결과다. 애초에 국민적 합의는 포기했고, 할 수 있을 때 확고하게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기반을 닦아 놓겠다는 심산이다.

따라서 2008년 3, 4월은 우연한 계기가 있건 없건 정부와 국민간의 갈등이 최고점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작년 12월 26일 총파업을 시작한 언론노조는, 언론마저 재벌이 장악할 수 있는 7대 악법을 통과시킨다면 ‘정권퇴진투쟁’을 벌여 나가겠다고 선언했고, 기간제 사용기간을 3~4년으로 확대하고 파견대상을 전면 확대하는 비정규직법 개악과 한미 FTA,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 등을 둘러싼 노동계의 불만이 연초부터 강하게 표출될 것이다. 이미 촛불시위가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3월 대학생들의 등록금 시위 등 잠재되어 있는 불만이 어디에서 어떻게 폭발하게 될지 불안한 상황이다. 지금 우리 상황은 마치 반란 직전의 그리스를 보는 듯하다.

만일 2009년에 대규모 민중저항이 다시 전개된다면 그 형태는 2008년 촛불시위와는 다른 방식이 될 것이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조직되지 않은 대중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평화적인 행진을 통한 여론 확대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2009년의 충돌은 조직된 대오와 공권력 간의 ‘난타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장본인은 이명박 정부다. 미조직 대중의 평화로운 시위참여마저 철저히 봉쇄하고 있기 때문에 구속과 연행을 감당할 수 있는 조직대오에게만 저항가능성을 허용하고 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정부에 대한 문제제기를, 그리스에서와 같은 극단의 물리적 방식을 통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도록 만들어 버렸다.

한국 민주진영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스와 같은 충돌이 현실화될 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설령 극단적인 대립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반MB의 연대를 모색하는 조직된 진영(편의상 여기서는 ‘민주진영’이라 하자)은 크게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 번째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국운영을 저지할 수 있는 민주적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반MB 전선의 단결문제다.

먼저 민주적 리더십을 형성하는 과제를 살펴보자. 이명박 정부의 독주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지난 촛불시위에서처럼 단순한 의견 표출로는 불가능함을 이미 확인했다. 정부가 귀를 닫은 상황에서 민주진영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최대한 역량을 보전하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대여론을 지속시켜 나가면서 4월 재·보궐 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것이 첫 번째다. 이것은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가장 불투명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 선택은 이명박 정부의 독주를 어느 정도 허용해 주는 것을 전제로 하며, 대중의 여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언론악법과 마스크만 써도 현행법으로 잡혀가는 집시법 개악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이런 조건에서 얼마나 선거에 승산이 있을까?

폭압적인 유신체제도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되었으며, 이것이 가능한 배경에는 언론사를 떡 주무르듯 했던 권력과 자본의 힘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독주를 지나치게 ‘인내하는’ 저항세력의 모습은 대중으로 하여금 정치적 냉소주의를 갖게 만들며, 경향적으로 낮아지는 투표율 속에서 촘촘히 뿌리박힌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는 거대 보수여당의 당선 가능성을 높여줄 뿐이다.

만일 다시 한 번 대중저항을 조직하겠다면 정부의 물리적 억압을 돌파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리더십이 절실하다. 합법과 불법 사이, 가두와 광장 사이, 폭력과 비폭력 사이의 간극은 명박산성 만큼이나 견고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활동반경을 옭아매어 버린 지루한 논쟁들은 촛불을 꺼뜨린 여러 문제 중 하나다.

그러나 리더십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현 정치세력 중 대중에 대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지도자나 단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기대해야 할 리더십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의 등장이 아니라 지난 촛불시위에서 확인된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힘의 발현이다.

민주진영이 해결해야할 두 번째 과제는 ‘단결’ 문제다. DJ가 자신을 방문한 민주노동당 지도부에게 ‘민주대연합’을 제시하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민주진영 단결론은 민생민주국민회의의 출범 논쟁과 맞물려 2009년에도 민주·진보진영의 주된 화두가 될 것이다.

특히 2010년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후보단일화’ 문제는 민주진영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이명박 정부에 맞선 반MB 전선의 확립과 강화에 대한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지만,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반MB 진영의 정치판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것이다.

이 가능성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탄생에서부터 민주당의 분열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만일 정부여당과 민주당이 협상과 타협이라는 정치관계를 회복시킨다면 민주당의 분열과 운동의 급진화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고, 민주당과 정부여당의 대립관계가 확대된다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민주노총 등 전형적인 민중진영 내의 논쟁이 심화될 것이다. 이런 구도는 1987년 이후 진보진영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 왔던 연대·연합의 갈등과 딜레마를 반영하는 것으로, 그 만큼 한국 민주주의가 1987년 이후 수준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많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연합관계의 형성에 따른 이해득실이 아니라 민주대연합과 후보단일화의 성격이 단순히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연대’에 머무는 것이다.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닌 단지 과거 어떤 순간으로의 회귀만을 추구하는 연대체라면,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는 제2의 노무현, 제2의 이명박뿐이다. 민주진영은 단결이 필요한가 아닌가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어떤 형태와 내용의 단결이 되어야 하는가를 논쟁하는 편이 훨씬 발전적이다.

2009년을 만드는 힘

그리스의 상황이 우리와 아무리 흡사하다 하더라도, 우리의 2009년이 그리스와 같을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설령 그리스와 같은 민중반란이 한국에서 재현되더라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이미 한국사회는 그리스에 버금하는 내부 모순과 사회적 갈등이 폭발직전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서 정부의 실정과 부패 스캔들, 그리고 국민의 저항에 폭력으로 응수한 정권을 목도한 그리스 민중들이 느꼈던 좌절감과 답답함은 2009년 초 한국사회를 휘감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촛불시위가 또 발생하면 당당하게 대처하라고 주문했다. 각종 공안기구가 부활하고 정부에 반대하는 여론 형성도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정권의 모습에서 이명박식 선진화 정책에 대한 대중 저항을 어떻게 다룰지 예측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2009년을 결정지을 변수는, 지난 2008년이 그랬듯이 민주진영의 주체적 선택에 달려 있다. 정부의 억압을 뚫고 갈 수 있는 조직 대오의 결단, 이질적인 구성세력의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디를 향해 갈지에 대한 지혜, 기존의, 또 새롭게 제시될 명박산성 딜레마에 대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어떤 일들이 가능할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어쩌면 이 모든 것보다 2009년을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약간의 ‘저돌성’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토록 쩔쩔맸던 다양한 문제들을 거침없이 뛰어넘는 그리스 민중의 모습에서, 우리의 지나친 ‘사려 깊음’을 봤다면 비약일까? 어느 때보다도 저항의 ‘국제적인 눈높이’가 아쉬운 지점이다.

손우정/새사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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