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20김병권

 

“유로존 탈퇴 공포가 긴축정책에 대한 분노를 이겼다.”

지난 17일 그리스 총선 결과를 본 ‘월스트리트 저널’의 평가다. 투표에 참여하는 그리스 시민들의 마음의 일단을 표현하고 있다. 2008년 이후 5년째 이어진 경기후퇴와 2010년 이후 3년째 계속되는 강도 높은 긴축의 악순환으로 더 버티기 어려워진 그리스 시민들의 분노가 이번 총선에서 어떤 선택으로 이어질 것인지 세계가 초조하게 지켜봐야 했다. 아마 그리스 선거 역사상 세계의 관심을 이렇게 끌었던 경우는 없었으리라.

동시에 그리스 시민들의 분노의 폭발을 두려워한 금융시장과 독일 등 유로 핵심 국가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리스인들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좌파연합인 시리자(Syriza)를 선택하면 그리스가 마치 즉시 끝장날 것처럼 언론매체들을 동원해 선전했다. 심지어 투표 전날 ‘파이낸셜 타임스’ 독일판은 ‘그리스 국민들에게’라는 사설을 싣고 선거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라고 협박해 물의를 일으켰을 정도였다. 좌파연합 시리자는 긴축 재협상을 원했던 것이지, 한 번도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의 집권은 곧 유로존 탈퇴라고 분위기를 몰고 갔다.

어쨌든 금융시장과 유로 중심국들의 협박이 먹혔던지 이변은 없었다. 그리스 유권자들은 60% 미만의 전례 없이 낮은 투표율을 보이며 적지 않게 투표 자체를 포기했다.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는 좌파연합 시리자보다 약 3% 정도 더 많은 표를 긴축지지 정당인 신민당에게 줬다. 그러자 온갖 언론들이 "금융시장은 안도했다"고 대서특필했다.

그리스 시민들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취재한 언론은 없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세계는 여전히 시민이 아니라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유럽 채권시장의 운명이 유럽의 작은 나라 그리스 운명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진정 이번 선거 결과가 그리스 시민들에게 안도할 일인가. 나아가 금융시장과 유로존에게도 안도할 일인가. 선거 전까지 파국을 향해 치닫던 유럽위기가 선거 후에 무엇이 변했는가. 결국 그리스인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안도할 일은 없는 것이 아닌가. 위기의 시계는 계속 작동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버드대학의 케네디스쿨 교수인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은 총선 전인 12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에 기고한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언(The End of the World as We Know it)'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좌파연합 시리자가 승리할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17일 선거에서 시리자가 승리한 후 그리스의 새 정부는 IMF·EU와 맺은 구제금융과 긴축협약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한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가 기존 협약을 준수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금융의 붕괴가 임박한 것을 우려해 그리스에서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진다. 이번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이 도움을 거절하고 그리스은행의 현금은 고갈된다. 그리스 정부는 자본유출입 통제에 들어가고 마침내 국내 유동성 공급을 위해 드라크마(drachma) 통화를 부활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자 모든 시선이 스페인에 쏠린다. 독일을 비롯한 유로국가들은 처음에는 스페인의 뱅크런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라며 단호한 모습을 보인다. 스페인 정부도 추가적 재정 삭감과 구조개혁을 발표한다. 유로안정기구(ESM)의 자금지원에 힘입어 스페인은 수개월 동안 파산을 면한다. 그러나 스페인 경제는 계속 악화되고 실업률은 30%를 향해 올라간다. 마리아노 라호이(Mariano Rajoy) 총리의 긴축조치에 반대하는 시위대들로 인해 총리는 재총선을 소집한다. 그의 정부는 유권자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극도의 정치적 혼란 상황에서 총리는 사임한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납세자들이 이미 충분히 도와줬다면서 더 이상의 스페인에 대한 지원을 거절한다. 스페인 상황은 빠르게 뱅크런·금융 붕괴, 그리고 유로 탈퇴로 이어진다.

독일·핀란드·오스트리아·네덜란드 등으로 이뤄진 미니 유로 정상회의가 급히 소집되고 공동통화로서 유로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다른 회원국에 대한 금융압력을 증대시킬 뿐이다. 유로존의 부분적인 와해가 현실화하면서 금융 용심 융해(Meltdown)는 유럽을 넘어 미국과 아시아로 확산된다.

그런데 이상의 시나리오가 과연 17일 총선에서 좌파연합 정당이 승리해야만 작동할 것인가. 오히려 현재의 총선 결과가 이 시나리오의 작동을 부채질할 개연성도 있지 않을까. 그리스 총선 직후 스페인 국채금리가 7%를 넘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는 소식은 이 가능성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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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18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그리스 위기와 월가 금융자본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 차]

1. 시장은 만족시켰지만, 그리스 국민도 만족시켰나
2. 그리스의 유로 존 가입과 파생금융상품
3. 위기국면에서 다시 엮인 그리스와 골드만삭스
4. 남유럽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5. 금융시장 뒤에 가려진 그리스 시민의 생활

 

[본 문]

2010년부터 각종 수습대책에도 불구하고 악화되어 온 유럽위기는 2012년 6월에 가장 중요한 시련을 맞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우리 연구원은 좀 더 종합적으로 유럽위기를 조망해보고 이후 세계경제와 우리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점검해 보는 기획으로 [유로 2012]를 마련했다. 지금 유럽에서 한창인 축구 경기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유로화의 향방이 2012년에 분기점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을 담고 있다. - 편집자 주

 

1. 시장은 만족시켰지만, 그리스 국민도 만족시켰나?

유럽위기의 향방을 가를 것이라며 세계의 시선을 모았던 그리스 2차 총선이 6월 17일 치러졌다. 여론조사 결과대로 긴축을 지지했던 신민당이 29% 전후 지지율로 신승하고 급진좌파연합 시리자(Syriza)가 27% 정도 지지율로 2위를 했다. 신민당은 3위의 사회당과 연합하여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스 국민 여러분. 불안한 정치 상황을 떨쳐냅시다. 분노가 아닌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고통스럽지만 꼭 필요한 재정 개혁을 위해 표를 던집시다.” 이 내용은 그리스 안에서 나온 주장이 아니다. 독일 판 파이낸셜 타임지 6월 16일자 사설이다. 독일 신문이 그리스 국민들에게 노골적으로 시리자를 찍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 유럽의 언론과 정치세력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그리스 국민을 협박했고 그들은 결국 원하던 결과를 얻었다.

"금융시장의 입장에선 신민당과 사회당의 연정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안도가 된다." 런던의 한 금융 관계자 말이다. 그렇다. 그리스 총선결과는 국제 금융시장을 일시적으로 만족시켰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원하는 ‘시장의 안정’이 과연 그리스 국민이 원하는 ‘생활의 안정’과 일치하는가.

신민당 승리로 귀결된 총선결과는 2001년 유로 존 가입이후 지금까지 사태가 전개되어 오던 방향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 위기가 발생하고, 그리스 국민의 분노가 쌓여서 총선에 이어 재총선까지 이르도록 한 긴축정책의 방향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과연 예전처럼 계속 긴축약속을 이행한다고 하면 시장의 안정은 가능한 것일까?

결국 지금 시장이 얻은 안정은 아주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잠시의 안정을 얻은 대신에 그리스는 지금까지의 국면을 전환시키고 정책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시리자의 급격한 부상과 ‘재협상’ 요구 덕분에 독일과 유럽 연합이 그리스에 대한 재정긴축 압박 강도를 약간 늦출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당장의 급격한 뱅크 런은 완화될지 모르지만 성장능력 침식과 실업률 상승이라는 더 큰 문제는 더 심각하게 누적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 위기의 진짜 원인은 무엇이고 어떤 문제들을 해결해야 진정한 위기 탈출이 가능할까. 과연 그리스 시민들이 부정직하고 게으르며, 그리스 정치인들은 부정부패를 일삼고, 그리스 국가체계는 탈세가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위기가 왔다는 독일과 일부 보수 세력들의 원인 진단은 맞는 것일까.

물론 그리스 시민들과 정치, 조세제도 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를 그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한마디로 유치한 짓이라고 코스타스 라파비타스(Coastas Lapavitsas) 런던대 경제학 교수는 지적한다. 사실 이런 유형의 비판은 당연한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다. 지금 위기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겪고 있는 위기인데, 그들 국가들이 모두 그리스 사회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기의 원인은 그리스 사회의 내부적 문제를 넘어서 다양하게 짚어볼 수 있다. 우선 재정동맹 없는 유로 통화동맹의 구조적 결함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위기가 현실화 된 이후 유럽연합이 위기에 빠진 남유럽 국가들에게 요구한 긴축정책이 위기를 오히려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지적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와 아울러 이번 그리스 위기나 유럽위기 역시 철저히 글로벌 금융위기 반경 안에서 발생한 위기라는 점을 짚어야 한다.

2010년 그리스 1차 구제 금융이후의 시점에만 갇혀서, 마치 그리스와 남유럽 위기가 처음부터 국가채무위기였고 이것이 유럽 국채시장이라는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하고, 독일과 프랑스의 은행의 부실화를 초래해서 지금의 위기가 발생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은 그리스 국가채무위기가 금융위기를 초래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리스와 남유럽의 국가채무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 위기의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유럽에도 예외 없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신자유주의적 금융 세계화와 금융규제 완화, 그것이 초래한 투기적 거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거품붕괴로 세계경제를 휩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남유럽 국가들에서 국가채무위기로 발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리스 위기 해결은 그리스의 부패 척결이나 조세 징수제도 개혁과 같은 개별 국가적 문제로 환원될 수 없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의 일환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2. 그리스의 유로 존 가입과 파생금융상품

알려진 것처럼 그리스와 남유럽위기는 2009년 10월 4일 그리스 총선 직후 새로 집권한 사회당이 2009년 그리스 재정적자가 사실은 6%가 아니라 12.7%라고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유럽 안정협약에 의하면 유로 회원국의 재정적자 한도는 3%인데 그 4배가 넘어가는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발표했으니 국가부도위기가 급격히 확산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그 후 수개월 뒤인 2010년 2월, 더욱 놀라운 사실들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리스의 재정적자 통계 조작은 2001년 그리스가 유로 존에 가입하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통계조작에 월가의 첨단 금융기법들이 또한 동원되었고 월가의 최대 금융회사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이 개입되었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마이클 루이스는 자신의 책 『부메랑(Boomerang)』에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2001년 골드만삭스는 그리스 정부의 실제 부채수준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는 합법적으로 보여도 실제로는 혐오스런 일련의 거래에 가담했다. 언론은 이 거래와 관련해 골드만삭스가 수수료로 3억 달러를 챙겼다고 보도했다. 이때 그리스는 10억 달러를 대출받았다.”

“그리스가 마음대로 돈을 빌리고 지출할 수 있게 해준 방법은 미국 서브프라임 채무자의 신용을 세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과 유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 투자은행의 역할도 동일했다. 나아가 투자은행은 그리스의 정부 관리들에게 국가 운영 복권과 고속도로 통행료, 항공기 착륙료, 그리고 유럽 연합이 제공한 기금에 이르기까지 미래 수입을 증권화해 자금을 조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스 정부는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소득 흐름을 선불로 팔아 지출했다. 채권자들이 그리스에 대한 대출을 유럽연합이 보증한다고 생각하고 그리스 외부에서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 그리스는 실제 재정 상태를 숨길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뉴욕 타임스에 발표된 언론 보도 등의 내용을 종합해서 2001년 그리스가 어떻게 조작된 재정적자 통계를 가지고 유로 존에 가입할 수 있었는지 좀 더 자세히 확인해 보자.   

그리스는 2001년 유로 통화동맹 가입당시 가입 허용 조건인 재정적자 3%보다 더 큰 적자규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금융파생상품을 동원하여 이를 인위적으로 축소했다. 이 때 사용된 파생상품은 그 자체로는 사실 별 문제가 없는 통화스왑(Currency swap)이었다. 그런데 골드만삭스는 그리스로 하여금 달러와 엔화표시 국채를 발행하도록 하고 이를 유로화로 교환할 때 일종의 가상 환율을 설정함으로써, 스왑과정에서 실제 교환할 수 있는 금액보다 10억 달러 이상을 추가로 차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런 식의 파생상품 거래는 부채장부에는 기재되지 않았고, 그리스 정부는 나중에 스왑 청산시 상환해야 할 부담이 훨씬 더 클 지라도 당장은 실제보다 적은 재정적자를 가지게 된 것이다.

골드만삭스 이 거래의 수수료로 3억 달러를 받았다. 물론 이런 수법은 그리스뿐만이 아니었고, 이탈리아도 JP모건과 인위적인 환율 조건으로 유사한 스왑거래를 하여 재정적자를 장부에서 덜어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더 나아가서, 그리스는 2001년 국가공항이 미래에 받을 공항수익을 담보로 현금을 끌어오기도 했는데, 그리스 신화의 이름을 빌러 아이올로스(Aeolos)라고 이 거래를 명명했다. 또한 2000년에는 역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리아드네(Ariadne)라는 이름의 차입을 감행 했는데, 이는 국가복권수익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통화스왑거래(swap transaction)'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모두 '차입(loan)'이 아니고 공항수익, 복권수익 등 미래수익의 선불 ‘판매(sales)'로 잡혔기 때문에 그리스 정부의 공공부채 장부에서 빠져나갔던 것이다.

덕분에 그리스의 재정적자는 유로 존에서 요구하는 3%미만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물론 미래 수익을 골드만삭스에게 판매해버렸기 때문에, 그리스 정부는 2019년까지 골드만삭스에게 거액을 지불해야 한다고 전 그리스 재무장관이 의회에서 증언하기도 했다. 이렇게 그리스와 금융회사, 금융파생상품은 유로 존 가입부터 얽혀있었고, 이들 덕분에(?) 그리스는 처음부터 문제를 안고서 유로 통화동맹의 일원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골드만삭스, JP모건, 그리고 다른 많은 은행들이 개발한 파생상품들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아마도 그 외의 다른 나라들에서 정부가 부채를 늘리는 것을 은폐하도록 도와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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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8정태인/새사연 원장

 

“아무도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 삼성의 광고 문구다. “부자 되세요!”와 함께 희망차게 맞은 새 밀레니엄의 첫 10년 한국 사회를 이보다 잘 보여주는 카피는 없었다. 이들이 부추긴 ‘죽음에 이르는 경쟁’의 결과 한국은 자살률 세계 1위이고, 더구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이 1등을 기록하고 있는 수치는 많다. 특히 성차별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그렇다. 남녀 임금격차는 38.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5배이고 여성 임금 근로자 중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42.7%로 역시 1위다. 대체로 가사 및 돌봄노동 시간을 의미하는 무급노동 시간은 여성 135분, 남성 45분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격차가 크다. 여성의 비중이 큰 노인 빈곤율 또한 세계 1위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각종 성평등 지수에서 100위 밖에 머무르는 것은 당연하다. ‘다이내믹 한국’에서 다이내믹하게 자신의 지위, 특히 발언권이 위축되는 걸 체감하는 남성들로선 이 수치 자체를 믿을 수 없다. 단칸방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 그것도 몸짓 발짓으로 담배와 재떨이를 갖다 바치게 하는 걸 보며 컸는데 이젠 아파트 단지 외진 구석에서 숨어 피워야 하니 이런 수치를 믿지 못할 수밖에. 등수와 느낌의 차이는 성평등 지수가 남녀 간 상대적 격차를 기초로 해서 산정됐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 여성의 문자해독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남성과 비교한 상대적 해독률은 여전히 낮기 때문에 이 격차를 대상으로 순위를 매기면 이 부문에서도 한국은 100위권으로 전락한다.

그러므로 “이 수치로 호들갑을 떨지 말자”는 주장은 그래서 더 못나 보인다. 문제는 여성들의 능력은 과거에 비해 훨씬 증가했는데 능력 발휘의 기회는 여전히 적다는 점에 있다. 1990년대 인기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처럼 공부를 훨씬 잘하는 딸이 아들을 위해 대학을 포기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겠지만 대학을 졸업한 딸이 취직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즉 시장은 여전히 고루한 성차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주류경제학의 진단은 아주 명쾌하다. 시장이 알아서 불평등을 없애줄 것이란 얘기다. 그 논리도 아주 쉽다. 만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능력 있는 여성을 채용하지 않는 기업이 있다면 결국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기 때문에 시장은 능력 순서대로 고용할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현실의 시장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최근 최고경영자들에게 그저 이름만 늘어놓고 채용 순위를 정하라는 실험을 한 결과, 이들은 앵글로색슨계 남성 백인의 전형적 이름들을 꼽았다. 냉혹한 시장의 논리와 달리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이야말로 정의나 배려, 평등과 같은 다른 가치가 스며들 수 없기 때문이다. 효율성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 시장이 실은 비효율의 강고한 토대인 것이다.

고용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 맡기려고 하는 일을 누가 더 잘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관행에 따라 고정관념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보다는 남녀 간, 지역 간, 학력 간 또 다른 어떤 기준에 따른 차별을 없애는 게 더 효율적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해마다 돌아가면서 성평등지수 1, 2, 3위를 차지하는 북유럽 국가들의 높은 성장률은 이런 추론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노르웨이 정부는 남녀의 능력이 동일하다는 단순한 가정하에 공기업 최고경영자 비율을 30% 이상으로 단숨에 끌어올렸고 이를 민간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나아가 성평등은 성차에 따른 다양성을 확보해 주기 때문에 효율성을 더욱 북돋운다. 평등은 여러 경로로 효율을 높일 수 있는데 기회 닿는 대로 살펴보기로 하자.

이 글은 여성신문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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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18 김수현/새사연 연구원

 

 

용어해설

임시직 노동자(temporary worker)?

전체 임금근로자 중 계약기간이 제한된 노동자들을 의미하며, 근로계약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무기노동자(permanant worker)와 구분된다.

 

문제현상

임시직 비율 24.8%,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

OECD 통계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의 전체 임금근로자 중 임시직 노동자 비율은 24.8%로 폴란드(27.3%), 스페인(24.9%)에 이어 OECD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높았다. 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고용불안정성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있음을 의미한다.

48% 임금근로자의 절반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임시직 노동자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용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개념에 포함되는데, 노동계에서는 이런 임시직 노동자에 시간제 노동자, 장기임시일용직 노동자를 더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모를 산출하고 있다. 이런 노동계의 개념을 따를 때 20123월 우리나라의 전체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은 48.0%로 절반에 가깝다.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 임금과 사회보험에 있어서도 차별받아

여러 통계들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동일한 일자리에서 동일한 일을 하더라도 임시직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 사회보험 가입비율도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 진단과 해법

임시직 고용을 줄이고,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으로의 전환

임시직 고용이 노동시장을 벗어나 빈곤, 불평등, 양극화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를 줄이기 위한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정해진 업종과 작업에서만 임시직 고용이 가능하게 하며, 장기적인 파견노동자의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파견노동자의 고용에 있어 불법이 발견될 경우 고용의제를 통해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하는 정책 전환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비자발적으로 임시직을 택하지 않게 할 수 있도록 청년고용할당제 등을 통해 청년층에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는 한편, 민간수요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사회서비스업에 정부투자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여성과 중고령자 등 실업, 임시직의 비율이 높은 취업애로계층에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임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환경 개선

한편, 현재 시점에서 높은 고용불안정성, 저임금, 낮은 사회보험 지원수준에 직면해 있는 임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환경을 개선하는 정책도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제나 근로장려세제를 활용해 근로빈곤 상황에 처한 노동자를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소득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저임금 임시직, 비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정부지원을 통해 사회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정책방안을 역시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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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15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6월 12일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 교수가 췌장암으로 타계했다. 오스트롬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유일한 여성 학자였으며, 경제학자가 아니라 정치학자였다. 그는 ‘공유자원의 비극’으로 알려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다시 말해 어떻게 인간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상호 협동할 수 있을지를 연구해왔다.

공유자원의 비극은 1968년 미국의 생물학자 하딘(Hardin)의 논문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지하자원이나 공기 등과 같이 공동체가 함께 사용하는 공유자원의 경우 과도한 소비로 인해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이런 공유자원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딘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첫째, 국가에 의한 규제와 둘째, 소유권 분할을 통한 사적 관리를 제시했다.

하지만 실제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공유자원들이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어왔다. 오스트롬은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는지를 연구했다. 전 역사와 전 세계 속에서 공유자원을 보유하고 보존해온 다양한 공동체를 조사했다. 그 결과 정부나 국가에 의한 규제보다는 공유자원 문제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인 공동체의 구성원들끼리 자발적인 규제와 협동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해법임을 찾아냈다. 이는 인간이 어떻게 이기심을 극복하고 협동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이어져 정치학, 행정학, 경제학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오스트롬 교수는 지난해 췌장암에 걸린 사실을 알고도 연구를 위해 멕시코를 방문했으며, 논문 발표를 계속했다. 그가 타계한 날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는 다음 날 열릴 유엔 지속가능발전정상회의에 대한 그의 글이 실렸다. 아마도 그가 공식적으로 남긴 마지막 글일 것이다. 역시나 그는 다양한 지역적 공동체들의 각성과 협동을 통해서 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풀뿌리에서 시작되는 녹색혁명

(Green form the Grassroots)

 2012년 6월 12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

 

유엔 지속가능발전정상회의, Rio+20(리오 회의 이후 20년)에는 수많은 의제들이 걸려 있다. 이 중 많은 문제들이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시급한 대책이다. 많은 이들은 생태계를 보호하고, 지구상에 발생하는 인도주의적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하나의 국제 협약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Rio+20이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심각한 재앙이다. 하지만 하나의 국제 협약에만 매달리는 것 역시 심각한 실수가 될 수 있다. 공유자원은 우리 삶에 필요한 환경을 제공하는 바다, 대기, 숲, 물길은 물론이며 매우 다양한 생명체와 70억 인구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단 하나의 국제 협약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전 세계가 연결된 엄청난 규모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누구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상황에 빠르게 진화하고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수십 년 간의 연구는 도시적, 국가적 그리고 국제적 수준에서 다양하게 중첩되는 정책들이 단 하나의 정책, 단 하나의 협약보다 더 성공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정책을 고민하는 발전된 관점으로서 하나 이상의 정책이 실패했을 때 중요한 안전망이 되어준다.

좋은 소식은 이 같은 발전된 정책 만들기가 이미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온실가스를 막기 위한 효과적인 법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점점 더 많은 도시 지도자들이 그들의 시민과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며, 앞으로 더 많이 일어날 것이다.

대부분의 큰 도시들은 해안가나 강가, 혹은 취약한 삼각지에 위치해 있다. 이 도시들은 앞으로 몇 십년 안에 해수면 상승이나 홍수 등에 직면할 것이다. 이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70%를 이 도시들이 줄여간다면, 상황은 나아질 수 있다.

현재 미국 연방정부에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요구하거나 장려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하지만 작년 5월 미국의 30개 주에서는 자체적으로 기후변화 대책을 만들었. 900개 이상의 도시에서도 미국 기후 보호 협약에 서명했다.

환경 정책 결정에 있어서 풀뿌리 조직의 다양성은 경제적 논리에도 부합한다. “지속가능한 도시”는 창조적이고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그들은 환경오염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삶에 적합한 근대적 도시 환경을 원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경제성장은 여기에 달려있다. 휴대폰의 성능이 개선되면 사람들이 오래된 모델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사는 것처럼, 일단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도시를 통해 이득을 보게 되면 오래된 모델은 순식간에 잊혀질 것이다.

물론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환경오염을 예방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도시의 개발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지방자치제의 한계를 넘어야 하며, 에너지, 음식, 물, 사람과 같이 도시로 들어오고 나가는 자원의 흐름을 분석해야 한다.

세계는 다양한 도시의 집합이며, 이들의 상호작용은 지구 전체의 생태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도시들은 서로 배우면서 좋은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잘못된 것은 고쳐나갈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환경오염을 완화시키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 그러나 베이징의 경우는 빠르게 시스템을 전환하고 있다. 다가오는 몇 십 년 안에 우리는 서로 연결된 지속가능한 도시로 이루어진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성공한다면, 모든 사람이 따르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구조적으로 위기를 조정하고, 상호연결된 복잡한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공유자원 문제의 성공적 해결을 위한 적절한 대책이다. 그것이 온실가스 배출에 미치는 영향이 아직은 미약하더라도 말이다.

Rio+20회의는 매우 결정적이고, 말할 수 없이 중요한 회의이다. 20년 동안 지속가능한 발전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목표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열린 '위기에 처한 지구(Planet Under Pressure)'라는 대규모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지구 선언(Planet Declaration)의 첫 번째 단계는 지속가능성이 미래 발전을 위한 선결조건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전 세계적 지속가능성은 지역의 지속가능성과 국가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고 결합될 때 가능하다. 이런 생각이 국가 경제의 기본이자 우리 사회의 조직 구성원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의 목표는 세계적으로 연결된 사회적 DNA 를 기반으로 지속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시간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자원이다. Rio+20회의는 세계를 깨워야 한다. 우리는 전 세계적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불평등을 해소하는 동시에 에너지, 음식, 사회안전망, 공중위생, 도시계획, 빈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전 세계적 문제를 다루는 방법 중 하나로 UN의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와 같은 것을 세우는 방식이 있지만, 이런 방식은 계속 실패하고 있다. 이 계획들은 2015년까지 이루어지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관성을 극복하게 해줄 것이다. 모든 주, 도시, 조직, 기업, 사람들이 목표 수립에 함께해야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곳곳에서 개발되고 있는 다양하고, 중첩적으로 연결된 정책들이 어떻게 실행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적어도 10년 안에 대책을 찾아야 한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생태계에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 위기를 가져오고 말 것이다.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미래 세대의 삶이 위협당하지 않도록 환경 위기에 대한 지구적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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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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