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26정태인/새사연 원장

 

보편복지, 경제민주화, 그리고 협동조합(사회적 경제), 이 셋은 이번 대선 사회·경제분야의 핵심 쟁점이다. 보편복지는 2010년 지자체 선거에서, 경제민주화는 지난 총선부터 전쟁터가 됐고, 처음에는 포퓰리즘이라고 부정하던 새누리당(한나라당)과 박근혜 후보도 본격적으로‘끼어들기’에 나섰다. 가히 경천동지에 상전벽해라 할 만한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심지어 새누리당이 자신의 기존 정체성을 전면 부정할지도 모를 이런 변화를 꾀하는 것은 이 셋이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새로운사회연구소(새사연)가 책 한 권에 걸쳐 자세히 논증한 것처럼(<리셋 코리아>) 이 셋은 2008년부터 본격화한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양극화에 대한 대응이다.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1944)에서 갈파한 것처럼 사회를 시장원리로 일원화하면 사회가 갈기갈기 찢어질 수밖에 없고 대중은 대항운동에 나서게 된다. 1929년 대공황은 루스벨트의 ‘경제민주화’(금융규제, 재벌개혁과 노동조합의 강화)와 비버리지의 보편복지(‘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낳았다. 또한 협동조합은 커다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세계 곳곳에서 급팽창했고 이제 유럽과 캐나다에서는 지속가능한 경제의 필수 범주가 되었다. 실로 협동조합은 위기를 스스로의 협동에 의해 극복하려는, 인류의 오랜 지혜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셋이 대선의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나라의 천운이자 시민들의 능력이라고 할 만하다.
 
작년 말 협동조합기본법 통과를 계기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협동조합 붐이 일어나고 있다. 이 뜨거운 열기가 한순간 냉소로 변하면 어떻게 하나, 슬슬 걱정이 될 정도다. 왜냐하면 협동의 근원인 신뢰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수천, 수만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되면 그만큼 많이 파산할 것이고, 개중에는 심지어 사기극도 벌어질 것이다. 뜨거운 열정과 함께 협동조합의 원리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신뢰와 협동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노박은 게임이론을 이용하여 협동이 일어나는 5가지 조건을 추출했고(2006), 오스트롬은 전 세계의 공유자원(공동으로 이용하는 숲이라든가 강) 관리 사례를 경험적으로 연구해서 8가지 규칙을 찾아낸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2009). 협동조합연맹(ICA)의 7원칙은 1840년대 로치데일의 경험 이래 그동안 쌓인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정리한 조직·운영원리이다. 오른쪽 표는 이들을 병렬한 것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논리와 경험에서 추론된 여러 차원의 지혜가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이 표는 협동에 관한 인류의 지혜를 총집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자세한 설명은 <주간경향> 한 권을 통째로 내준다 하더라도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협동조합에 참여한 분들이(뿐만 아니라 구성원의 협동을 고민하는 어떤 분들도) 이 표를 머리맡에 붙여놓고 시간 날 때마다 음미한다면 시시때때로 무릎을 치는 활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협동조합의 제1원칙인 공유와 공동이용은 협동조합에 오스트롬의 8가지 규칙이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적 의사결정(그리고 참여와 교육) 원칙은 자본주의적 기업의 경영에 비해 굼뜨고 중구난방이 되어 비효율적일 것 같지만 오스트롬과 노박의 규칙에서 협동을 촉진하는 필수적 수단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협동조합이 돈과 사람의 동원에서 취약하다는 점을 보완하는 데 필수적인 제6원칙 협동조합의 네트워크는 오스트롬의 더 넓은 거버넌스의 존재, 그리고 노박의 네크워크 상호성과 집단선택(집단정체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물론 공유자원 관리의 핵심 주체인 지역공동체는 또한 혈연선택과 집단선택이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니 협동조합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저도 틈틈이 오른쪽의 표를 해설하겠지만 자신의 해석과 경험을 함께 나누고 토론하고 싶은 독자들은 정태인의 경향신문 블로그(모지리의 경제방 mojiry.khan.kr)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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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3정태인/새사연 원장

 

해결 방향은 명확하다. 서로의 생존을 보장하는 해법에 합의하고 보수를 확정해서 사슴사냥 게임으로 바꾸는 것, 그리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번에 현재 통합진보당은 치킨게임이라는 사회적 딜레마에 빠졌다고 말했다. 물론 복잡다단한 현실을 이렇게 간단한 게임으로 파악할 때 언제나 주의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이다. 예컨대 현실에서는 두 당사자(정파)가 마음 속에 서로 다른 보수(報酬)표를 품고 있기 일쑤다. 하지만 양쪽 당사자 모두 ‘지금 밀리면 끝’이라고 생각해서 자기 뜻을 고집한다는 점, 그리고 지금처럼 나가면 진보 전체가 망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치킨게임 상황임에 틀림없다.

<착한 경제학>을 꼼꼼히 읽은 독자라면 이번 사태에서 ‘공유지의 비극’도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 각 정파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진보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해도 마찬가지다) 수십년 동안 진보가 목숨을 걸고 쌓아온 대중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런 신뢰야말로 우리 모두의 공유자원이다. 그렇다면 노박의 ‘인간 협동의 다섯 가지 규칙’이나 오스트롬의 공유지 비극 해결의 7가지 원칙은 이 사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배운 걸 당장 써먹어보자!

노박의 ‘규칙’, 그리고 오스트롬의 ‘공동체적 해법’도 단순화하면 결국 ‘죄수의 딜레마’나 ‘치킨게임’을 ‘사슴사냥 게임(stag hunt game, 또는 assurance game)’으로 바꾸는 방안들이다. 옛날 사람들이나 심지어 동물들이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협동했던 사례들을 잘 관찰해보면 나 홀로 살려고 해서는 풀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 가능한 문제로 바꿔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스트롬의 공유자원에 관한 방대한 연구도 결국 사람들이 공유 저수지나 삼림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지혜를 정리한 것인데, 이 역시 게임으로 정리하면 사슴사냥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슴사냥 게임의 보수표는 위와 같다. 이 게임의 균형은 (협동, 협동)=(4, 4), 그리고 (배신, 배신)=(2, 2) 두 개다. 즉 상대가 협동한다면 나도 협동하는 게 낫고 상대가 배신한다면 나도 배신하는 게 답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상대가 협동할 때 그걸 이용해서 이익을 취하는 게 이익이지만(모두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애만 사교육시키면 등수가 왕창 올라갈 것이다), 사슴사냥 게임 상황이라면 나도 협동을 하는 게 더 낫다(우리 모두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 돈도 굳고 애들도 행복해지며 그래도 공정한 게임이 가까워질 것이다).

기실 노박의 ‘규칙’은 혈연관계일 때, 반복해서 만날 때, 서로를 잘 알 때, 그리고 친한 사람끼리 모일 때 서로 협동하는 것이 모두에게 더 이익이 되는 상황, 즉 보수가 바뀌어서 이제 사슴사냥 게임이 된다는 얘기다. 드디어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상대가 협동하리라 믿지 못하는 경우에는 사슴사냥 게임 상황에서도 (배신, 배신)을 택하게 된다.

통합진보당같이 서로를 극도로 믿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결국 자신의 이익마저 저버리는 (그러므로 균형이 아닌) 비극을 택하게 된다. 해결 방향은 명확하다. 서로의 생존을 보장하는 해법에 합의하고 보수를 확정해서 사슴사냥 게임으로 바꾸는 것, 그리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한쪽이 상당한 손해를 보는 합의에 이르더라도 둘 다 망하는 (배신, 배신)보다는 낫다. 합의안을 확정하고, 그 합의를 어길 경우 강력하게 응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밀실이 아니라 광장에서에서 합의안을 만들면 대중이 응징하게 될 것이므로 가장 강력하다. 그럼 난마 같은 현재 상황에서 구체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퇴행적 정파주의에서 협동의 정파주의로’가 내 나름의 답이다. 독자들도 이 글이 제시한 방향에 따라 묘책을 찾아내기 바란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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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8정태인/새사연 원장

고용없는 성장, 불안한 성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본이동통제, 자산가격규제, 재벌규제를 먼저 해야 한다. 아래로부터, 안으로부터의 성장을 하기 위해선 임금 상승, 에밀리아형 중소기업 클러스터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여기 또 하나의 성장동력이 있다. 바로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사회경제(social economy·사회적 경제로도 번역한다)’다.
 
경제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가정 아래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꾀한다. 반면 사회경제는 인간의 상호성(reciprocity)을 근거로 공정성(fairness)의 기준에 의해 연대를 도모한다. ‘착한 경제학’이 누누이 강조한 신뢰와 협동은 사회경제가 사회정의뿐만 아니라 효율성도 달성할 수 있도록 한다.
 
기실 사회경제의 역사는 시장경제보다 오래 되었다. 수렵채취시대에는 어느 종족이나 식량 공유의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또 동물을 잡거나 열매를 딸 때도 협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농경시대의 관습으로 아직도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두레나 계 역시 사회경제에 속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협동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윈의 생존경쟁은 동시에 협동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사회경제는 협동조합으로 재탄생했다.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는 노동조합을 만들어 착취를 막았지만 소비과정에서 또 다시 수탈을 당했던(예컨대 가짜 밀가루를 팔았다)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 최초의 협동조합이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 추구하지만 동시에 지역공동체 등의 사회적 목표도 달성하려고 한다.
 
1980년대 이래 서구의 복지국가가 재정위기에 빠지자 사회경제는 다시 각광을 받았다. 역사를 살펴보면 자본주의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사회경제는 대안으로 떠올랐고 부피를 늘려 왔다. 하여 최근에는 국가가 담당했던 복지서비스 중 사회서비스를 사회경제가 떠맡는 경우가 많이 생겨났다.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연대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이 바로 새롭게 생겨난 사회경제의 범주들이다. 이탈리이아 볼로냐의 카디아이(CADIAI)라는 사회적 협동조합은 과거 시정부가 하던 복지의 70%를 떠맡았는데 공급가격은 떨어지고 서비스 질은 훨씬 좋아지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에서도 자활공동체운동, 실업극복 국민운동 등으로 이어지던 사회경제의 흐름이 2007년 사회적 기업법, 그리고 최근의 협동조합 기본법의 제정으로 법제화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복지사회를 여는 한국에서는 처음부터 사회경제에 연계한 복지를 설계할 수 있다. 예컨대 국가의 건강보험시스템에서 마지막 의료서비스 전달(1차 진료)을 의료생협이 맡는다면 우리는 대통령이나 재벌이나 누리는 주치의제도를 확보하게 된다. 의료생협은 자체로 주치의 역할을 하지만 만일 건강보험에서 일정한 보조금을 준다면 말 그대로 영국식의 주치의가 생겨날 수 있다.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안성 의료생협의 경우 조합원 1인당 연간 1만원에서 2만원 정도의 보조금만 줘도 명실상부한 주치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많은 병을 예방할 수도 있고, 3차 의료기관에 직접 갈 필요도 줄어들 뿐 아니라, 값비싼 검사도 대폭 감소할 것이다. 따뜻한 경제가 동시에 효율성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사회경제는 지역공동체 속에 뿌리박아야 한다. 캐나다의 경우처럼 지역공동체의 사회경제정책을 사회경제부문이 담당할 수도 있다. 로컬푸드운동이나 재생에너지 사업, 제주 올레길이 불을 붙인 트레킹코스 사업, 숲 가꾸기 등이 모두 사회경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이다. 수많은 사회경제가 네트워크를 이뤄서 신뢰와 협동이 번져나가면 그것이 곧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축적이다. 이미 증명된 것처럼 사회적 자본은 사회혁신을 낳아 따뜻하면서도 효율적인 경제를 이루게 한다.

현재 2~3%에 불과한 사회경제를 최소한 10% 수준으로 늘린다면 우리 아이들은 훨씬 더 안전하고 따뜻한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을만들기 등의 사업도 1000만명 대상의 거대한 사회경제 프로젝트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사회경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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