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4 / 10 김병권/ 새사연 부원장

2012년은 선거의 계절이다. 우리나라는 선거만 되면 의례히 ‘굵직한 개발공약’들이 줄줄이 발표되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다르다. 이미 지난해 보편 복지의 파고가 한국사회를 한차례 휩쓴데 이어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의 담론이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5년 전의 ‘성장과 경제 자유화’ 의제 대신에 지금은 ‘복지와 경제 민주화’ 의제가 선거 공약을 좌우하는 판이한 지각변동이 일어난 셈이다. 특히 극적으로 등장한 경제 민주화라는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 민주화는 재벌체제라고 하는 선출되지 않은 경제 권력에 대한 문제제기일까. 아니면 너무 심각해진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것인가. 도대체 지금까지 시장 경제는 얼마나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것인가.

사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자기조절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시장에서 각 개인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 저절로 모두의 이익이 달성되므로, 시장의 자율을 존중하고 국가나 제도가 섣불리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정치가 이른바 ‘정치논리’를 가지고 경제에 개입하면 시장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면서 관치 경제나 정경유착 사례 등을 지목하기도 한다.

이런 논리에 입각해서 보면 시장 경제의 논리구조에 민주주의를 끌어들이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시장은 그 자체로 가장 합리적인 지점을 찾아 움직이는 것인데 여기에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 가치를 들이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이 잘못되어 실패할 가능성은 아예 없어 보였다. 더구나 시장 경제를 논하면서 윤리 도덕적인 냄새가 짙은 정의나 공정, 공평을 말하는 것은 대단히 어색한 것처럼 간주될 수밖에 없다.

한 발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는 전통적인 경제영역뿐 아니라 의료, 교육, 주거 등 사회적 영역, 심지어는 정부 조직과 같은 영역에 이르기까지 시장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모든 사회운영원리를 시장 원리로 작동시키는 사회를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신자유주의를 ‘시장 지상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980년 미국과 영국을 필두로 지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왔던 이데올로기이자 현실에서 관철되어온 규칙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우리나라도 사회 구석구석까지 이러한 논리가 스며들었다.

그러나 세계를 풍미했던 ‘시장 지상주의’는 2008년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시장이 작동을 멈추고 붕괴해버렸기 때문이다. 단순한 금융시장 기능의 실패를 넘어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4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시스템은 복구되지 않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를 역임한 라구람 라잔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목도하면서 시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한탄했다. “도대체 규제기관과 감독 기관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시장 원칙은 어디에서 한눈을 팔고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자기 보존을 위한 민간 기업의 생존 본능은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자유 기업 정신에 의거한 제도가 총체적으로 망가졌단 말인가? 이번 위기가 어느 개도국에서 발생한 그저 그렇고 그런 위기였다면 위와 같은 질문은 절대 나올 수가 없다. 그리고 이번 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해볼 때 쉽게 답을 찾으려 하거나 아무 답이나 갖다 붙이려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시장은 스스로 완벽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조정하는 능력이 매번 있는 것도 아니며, 거대한 시장 실패가 발생했을 때 세계 경제와 인류에게 미치는 충격과 고통은 엄청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목도하게 되었다. 그 동안 알고 있었고 주류 경제학자들이 설교해왔던 시장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확신이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면 진짜 시장의 능력과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시장은 과연 정의롭고 공정한 결과를 가져오기는 하는 것인가. 아니라면 어떻게 시장의 실패를 방지해야 하고 교정해야 하는가.

이정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거의 화두가 되고 있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지를 편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관철되는 의사결정 방식은 1원 1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권리를 행사한다는 점에서 1인 1표의 원칙은 철저하게 평등주의에 입각한 원칙이다. 하지만 1원 1표의 원칙은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돈에 비례해서 더 많은 권리를 부여하는 한편, 돈 없는 사람들의 의사는 아예 묵살한다는 점에서 매우 불평등한 원칙이다.” “시장은 조직 구매력을 가진 선호만을 반영하는 까닭에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는 무시되기 일쑤이지만 부자들의 선호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존중된다.”(이정전, 『시장은 정의로운가』, 142쪽)

바로 시장경제의 1원 1표 원칙에 내재한 불평등성 때문에 정치 영역에서 1인 1표 민주주의는 시장이 초래한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정치에서 민주주의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시장이 만들어내는 불평등은 완화될 수 없고 점점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가 시장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신자유주의 논지와 달리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각각 어떤 적극적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묘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지는 사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비교적 잘 반영되어 있다. 우리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일종의 ‘자유 시장 존중’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항이다. 곧바로 이어서 2항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경제 민주화’ 조항이다.

그런데 외환위기 직후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시장경제라고 도입했던 신자유주의는 고용불안과 가계부채,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라고 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이명박 정부까지 계속되었다. 금융과 교육, 보건과 보육 등 더 많은 삶의 영역이 자유 시장에서 거래 되도록 작동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주적인 의사결정은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자유 시장은 민주주의와 함께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2012년, 우리는 시장의 자유가 아니라 경제의 민주화라는 국민적 요구 앞에 서게 되었다.

이정전 교수는 더 나아가서 우리사회가 시장원리 하나만으로 작동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영역에서 각자 알맞은 운영원리가 있음을 적시해주고 있다. 첫째는 가정과 이웃, 공동체에서 적용되는 필요의 원리다. “가정에서는 성과주의가 별로 지지받지 못하는 가운데 필요의 원칙이 지배적이다.” 엄마는 용돈을 나눠줄 때 아이들에게 필요한 만큼 나눠주지 성적이나 집안일에 기여하는 정도를 가지고 나눠주지 않는다. 둘째는 경제에서 적용되는 성과주의 원리다. “응답자의 80%이상이 직장에서의 소득은 일의 성과 및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보는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에서 적용되는 민주주의 원리 즉 평등의 원칙이다.

시장만이 지배하는 사회를 버리고 2012년 선거를 통해 우리는 어떤 사회를 염원해야 하는가. “경제 영역에서는 성과주의에 입각해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생산을 많이 하도록 하며, 정치 영역은 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분배를 고르게 하고, 사회화 영역에서는 필요의 원칙에 알맞게 나누어 쓴다면 우리 사회는 잘 조화된 사회가 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사회야 말로 정의로운 사회요, 일찍이 그리스 철인 플라톤이 꿈꾸던 이상 사회다.”(이정전, 『시장은 정의로운가』, 279쪽)

이 글은 4월 5일자 기획회의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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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4 / 06 새사연

시장경제, 공공경제, 그리고 사회경제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 차]

1. 정의로운 시장경제

2. 숙의 민주주의에 의한 공공경제

3. 지역 경제에 뿌리박은 사회경제

4. 새로운 사회와 동아시아 시대

 

[본 문]

편집자 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악화되자 한국사회에서는 전례 없는 보편 복지 요구가 확대되고 있고 경제 민주화의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양대 선거를 맞아 정권교체 요구가 거센 가운데 다양한 사회개혁 의제가 정책 공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정말 2013년 체제라고 불릴만한 사회 대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자면, 강력한 경제개혁 전망을 갖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새사연의 문제의식이다.


이에 새사연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시대적 가치와 비전, 새로운 경제모델과 성장모델, 총체적 경제개혁, 보편복지를 망라하는 정책을 모아 2012년 5월 중 단행본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출판될 원고 가운데 일부를 새사연 회원들과 미리 공유하고자 [새로운 사회 2013]이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1. 정의로운 시장경제

재벌개혁으로 시장의 정의를 세워야 한다

한국경제에서 재벌은 시장의 경쟁자가 아닌 지배자였다. 한국 시장경제의 문제는 재벌 문제이다. 우리역사에서 지배층은 일관되게 재벌-보수언론-경제 관료의 삼각동맹이었다. 오죽하면 대통령 입에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이 나왔을까? 재벌은 행정부와 입법부 나아가서 사법부까지, 사실상 우리사회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모든 정책은 수출대기업의 이익을 보장하는 데 집중되고 시민들은 재벌의 성쇠와 자신의 이익을 동일시하는 데 이르렀다. 그러나 지난 15년의 세월이 증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위로부터의 성장이 아랫목을 데워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재벌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앞으로 한국의 사회 전략과 정책을 짤 때 빼 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 지난 10여년 경제개혁연대 등은 기업의 주인은 주주이므로 임금과 이자, 지대 등을 뺀 나머지는 주주의 몫이라는 주주이론(shareholder theory)에 입각한 소액주주운동으로 재벌의 횡포를 견제했다. 기업총수 등 지배주주가 소액주주를 약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주대표소송제, 이중소송제, 사외이사제 등을 도입한 것은 분명 혁혁한 성과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상호출자제한 기업규모의 완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지주회사 설립요건 완화를 통해 재벌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더 거대한 규모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하청기업과 비정규직을 수탈한 결과라면, 따라서 소액주주나 정규직노동자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방조한 결과라면 주주이론에 입각한 재벌규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 재벌을 보는 관점을 이해당사자이론(stakeholder theory)으로 확장해야 한다. 기업은 이해당사자 전체가 이익과 위험을 공유함으로써 더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따라서 기업은 주주 뿐 아니라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기업의 이해관계자는 주주 외에도 노동자, 하청기업, 지역주민 그리고 소비자를 포함한다.

쉬운 이해를 위해 기업을 하나의 팀으로 간주해보자. 팀의 생산성이 높아지려면 내부 구성원 사이에 신뢰와 협동이 필요하다. 신뢰와 협동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이익과 위험을 공정하게 부담한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공정성을 깨뜨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응징이 가해진다는 약속도 필요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팀의 구성원 중에서도 내부자와 외부자를 구분할 수 있다. [그림1]에서 보이듯이 재벌체제에는 중첩적인 내부자와 외부자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예컨대 기업총수가족, 가신과 지배주주는 제1차 내부자로서 나머지 이해당사자를 수탈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수탈당하는 모기업의 정규직 노동자, 1차 공급업체, 소액주주 등은 제2차 내부자로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하청기업을 수탈한다. 소비자와 지역주민은 간접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와 하청기업 수탈에 가담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금 재벌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첫째, 수탈당하는 이해당사자들이 먼저 세력화하여 착취하는 이와의 대등한 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재벌체제 내의 정의를 위해서 다른 이해당사자들이 응징 수단을 구비해야 한다. 완벽한 재벌 개혁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싸울 수 있는 세력을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노동자들의 응징수단은 노조 조직과 파업을 통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퇴사하여 탈출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비정규직 노조 조직율을 높이는 것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높여 재벌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경영참가제도 역시 좋은 방안이다. 독일식의 감독이사회에 참여하는 방법, 일본식의 노동자 이사제도, 지역주민이나 소비자의 경우 위원회제도를 적절하게 응용할 수 있다. 노동자가 퇴사하는 것은 아직 우리사회에서 그다지 효과적인 응징 수단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를 보조하는 방법으로 실업수당을 강화할 수 있다.

하청기업의 응징수단은 공동 교섭단체 조직과 하청 전환이다. 그러나 하청기업은 수직계열로 층층이 네트워크를 이루고 파편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재벌이 핵심 산업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수직계열에서 탈출하는 것은 곧 파산을 의미하므로 탈출도 거의 불가능하다. 하청기업 간의 수평적 네트워크화를 통해 다른 대기업이나 외국 기업에 부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청기업의 응징수단을 강화하는 길이다. 하청기업 역시 이사회나 위원회 등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소비자는 소비자운동이나 제품평가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가장 쉽게는 물건을 사지 않음으로써 불공정 행위를 응징할 수 있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소비자보호를 위한 금융상품 평가 및 정보공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역주민은 기업이 일으키는 사회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둘째로는 공유 이익의 분배 규칙을 정하는 일이다. 물론 각 이해당사자의 세력화가 되어 있는 경우 때에 따라 분배 규칙을 정할 수 있겠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이익과 위험을 공유하는 체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의 경영학자 프리먼(Edward Freeman) 등이 집대성한 공유자본주의론은 영미형 국가에서도 이익고유 체제가 대단히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특정 규칙에 따라 노동자가 자사 주식을 소유하는 노동자주식소유제도(ESOP)를 재벌기업 뿐만 아니라 하청계열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스웨덴의 임노동자기금은 가장 급진적인 형태의 ESOP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역주민과 관련해서는 지금 서울시가 추진하는 것처럼 주민과 기업이 모두 참여하여 지역발전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이 있다. 이 기금은 지역의 자연을 보호하고 사회서비스와 같은 친밀노동을 제공하는 서비스산업, 지역특화산업 등에 사용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의 형성은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

셋째로는 국민경제 전체에 대해 재벌이 유발하는 외부성을 사전에 규제하는 것이다. 한국의 10대 재벌은 이미 대마불사의 경지에 올라서 위기에 처하면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을 수 없다. 재벌이 무너지면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 체제에는 사전규제가 필수적이다. 무엇보다도 금산분리, 2002년 수준의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순환출자제한 등은 미숙한 3세 총수의 판단 오류로 빚어질 수 있는 위기를 막아주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나아가서 정치와 사법부, 언론에 대한 회유는 형법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해당사자의 세력화, 이윤공유 제도, 그리고 사전 규제제도라는 세 가지 범주의 정책을 조합하여 재벌을 규제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독일 상법의 일부인 콘체른법은 공정거래법, 그리고 공동결정법과 더불어 기업집단을 규율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재벌의 실체를 인정하고 전체로서의 효율을 평가하되 각 이해당사자가 제 목소리를 내서 이윤과 위험을 공정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기업집단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 전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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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연의 [잇:북]2012. 4. 4. 10:06

2012 / 04 / 03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테마북]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2012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차]
 

◆ 칼럼 - 정운찬의 동반성장이 실패한 이유

 

◆ 출총제, 2002년으로 부활시키자.

1.주말만 쉬고 매일 하나씩 계열사 생긴다.

2.주력기업의 지분출자 -계열사 확대의 기본 수단

3.삼성그룹의 출자관계는 아직도 전자 회로기판

4.부활하려면 2002년 버전으로 부활시켜라

 

◆ 칼럼 - 동네빵집까지 장악한 재벌가문, 어찌할 것인가

 

◆ 재벌 빵집철수와 선거 없는 권력교체

1. 재벌 자녀들 취미생활 접으면 서민생활 살아나나?

2. 재벌 경제력 집중이 핵심 문제다.

3. 재벌 가문에 의한 경제력 집중 승수 효과

4. 3세 분할 승계 앞둔 경제력 집중 우려

5. 자율 대신 포괄적 규제가 필요하다.

 

◆ 칼럼 - 범죄 저지르고 자수하면 면책받는 재벌게임

 

◆ 재벌개혁 최후수단, 계열분리 명령제를 도입하자

1. 유실될 위기에 몰린 재벌개혁 의제

2. 재벌규제법과 재벌개혁 시민연대, 계열분리 명령제

3. 계열분리 명령제란 무엇인가.

4. 계열분리 명령제의 ‘잠재적 규율효과’가 중요하다.

5.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의 체급을 올려주자.

 

◆ 칼럼 - 국민연금의 자본시장 투자를 생각한다.

 

◆ 재벌개혁과 재벌 규제법

1. 한국경제구조 변화를 향한 재벌체제 개혁

2. 미국과 유럽의 경험이 모두 필요하다.

3. 재벌 규제법에 대한 기존 논의

4. 독일 콘체른법이 모델이 될 수 있나.

5. 재벌 규제법의 성격과 내용

 

◆ 칼럼 - 미국 정치인들은 애플이 아니라 GM이 기특하다

 

◆ 제언: 재벌개혁 시민연대를 제안한다.

1. 위험수위에 도달한 재벌의 경제력 집중

2. 경제력 집중이 과도하면 사회 권력이 된다.

3. 과도한 권력이 견제세력조차 없다.

4. 재벌개혁을 위한 시민들의 연대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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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3 / 29김병권/ 새사연 부원장

 

재벌개혁 최후수단, 계열분리 명령제를 도입하자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 차]

1. 유실될 위기에 몰린 재벌개혁 의제

2. 재벌규제법과 재벌개혁 시민연대, 계열분리 명령제

3. 계열분리 명령제란 무엇인가.

4. 계열분리 명령제의 '잠재적 규율효과'가 중요하다.

5.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의 체급을 올려주자.

 

[본 문]


1. 유실될 위기에 몰린 재벌개혁 의제

3월 29일부터 4.11 총선이 본격적인 선거운동 국면에 돌입했다. 한국사회 변화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국민의 비상한 관심과 기대를 집중시켰던 2012년 양대 선거의 첫 총선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역사의 기록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우리 연구원은 이번 양대 선거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 ‘보편 복지’와 ‘재벌 개혁 경제 민주화’, ‘노동 민주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와 함께 ‘부자 증세’와 ‘공공 복지 서비스’, ‘노동자 경영참여’가 주요 의제로 부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보편 복지는 지난 지방 선거에서 이미 최대 쟁점이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치열한 논쟁으로 부상하지 않고 있고, 노동 민주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미약하기 때문에 쟁점의 전면에 나오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총선 중심 쟁점이 될 수 있는 것은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 그리고 부자증세’라고 판단된다.

일단 중앙 선거관리위원회에 모아진 각 당의 총선 정책 10대 공약 자료를 보더라도 모든 정당들이 공식적으로는 ‘경제 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배치하고 무게를 두고 있다. 과거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변화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연초에 뜨겁게 가열되었던 재벌개혁 의지와 경제 민주화 공약 경쟁에 비하면, 총선을 앞두고 이에 대한 정책 경쟁의 강도는 매우 떨어졌고 의지도 상당히 약해져서 실망스러운 상황이다.

물론 이번 선거 역시 이데올로기 공세나 후보 신상 털기 등으로 집중되면서 정책선거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개혁 의지가 이미 상당히 후퇴한 인상이 짙다. 특히 새누리당의 경우 재벌개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을 만큼 내용이 삭제되고 껍데기만 남게 되었고, 민주 통합당도 구체적 실행계획은 주요 사전 규제 장치 3년 유예를 포함하여 대단히 약화되었다. 따라서 다시 한 번 2012년 시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재벌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만에 의제로 부상한 재벌개혁 기회를 이대로 흘려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2. 재벌 규제법과 재벌개혁 시민연대, 그리고 계열분리 명령제

어쨌든 지금 위기에 몰린 것은 재벌이 아니라 재벌개혁 의제임에 틀림없다. 출발부터 재벌개혁의 목표와 방법을 재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재벌개혁의 출발은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규제 풀린 재벌 권력이 해외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국내시장에서도 중소기업, 자영업, 노동자, 소비자들의 이익을 잠식하면서 ‘나 홀로 성장’함으로써, ‘적하 효과’대신 ‘빨대 효과’만 작동했다는 현실에 기초한다. 따라서 “소득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의 정점에 재벌 대기업 집단이 있으므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살고, 노동자가 살고 내수경제를 살리기 위한 재벌개혁”이라는 원칙아래 재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무소불위의 재벌 권력을 규제의 틀 안에 묶고 경제력 집중을 단계적으로 완화하면서 산업 생태계를 복원하여 각 경제주체들의 살 길을 열자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① 법과 제도적 수단 ② 강력한 독립 감독기구 ③ 조세 수단이라는 3대 정책 수단을 “포괄 패키지로 구성”하여 재벌개혁을 해야만 한다. 혹자는 법만 제대로 집행해도 재벌개혁을 상당부문 할 수 있다거나 하나의 제도라도 실효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 만큼 재벌개혁이 어렵기 때문에 각종 정책수단과 제도를 수 없이 나열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바로 재벌개혁이 어렵기 때문에 이번에야 말로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필요하다면 역사의 박물관 속으로 잊혀간 모든 방안들을 되살려서라도 재벌개혁 대안을 찾아내야한다. 특히 이번에는 무너진 재벌 규제 체제를 총괄적으로 정비하고 향후 미래적인 고려까지를 포함하여 재벌규제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는 차원에서 ‘재벌 규제법’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자고 제안했다.

동시에 모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개혁이 그렇듯이 개혁 동력과 힘이 최종적으로는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④ 재벌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을 키워서 지금부터라도 재벌과의 사회적 힘과 세력의 균형을 이뤄가도록 해야 한다. 기존에서는 주주자본주의 틀 안에서 소액주주를 동원하여 지배주주인 총수를 견제하는 방식들이 주로 제시되었지만 이는 한계가 너무 많다. 이해관계자의 범위를 대폭 확장하여 노동자뿐 아니라, 골목상권 잠식으로 위기에 몰린 소상공인, 부당납품가로 어려움을 겪는 하청기업, 독과점 가격 횡포로 피해를 받는 소비자를 포함하는 민생연대 성격의 재벌 개혁 시민연대를 형성하여 상설화된 시민적 견제세력을 만드는 한편, 제도적인 견제 장치도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재벌개혁 시민연대를 제안했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 재벌에 대한 최후의 견제 수단으로서 우리 국민들에게 “계열분리 명령제”를 쥐어주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3. 계열분리 명령제는 무엇인가.

다시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 버린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규제의 틀을 복원하기 위해서, 이미 과거부터 수차례 검토되었던 재벌 경제력 집중 억제의 주요 세 가지 사전 장치들이 있다. 출자총액 제한 제도를 2002년 수준으로 복귀시키는 것, 변형된 상호출자에 다름 아닌 순환출자를 금지시키는 것, 그리고 지주회사 자회사 최소 지분 요건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그것인데 이를 재벌 규제의 출발로 삼을 수는 있다. 느슨한 형태지만 현재 민주통합당에서 재벌개혁 안에 포함시켜 놓고 있다.

그러나 이들 수단은 재벌 집단이 주로 자금 여력이 부족했던 과거에 설계되었고 유효했던 수단들이다. 또한 사전 규제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 이미 기업결합이 과도하게 되어 있는 상태에서 독과점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할 경우에 막을 방법이 없다. 사후적으로 단순히 가격규제와 같은 ‘행태 규제’만으로는 실효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를 구조적으로 되돌리는 수단과 장치가 있어야 한다. 바로 ‘계열분리 명령제’와 ‘기업 분할 명령제’를 공정거래법 안에 신규로 포함시켜 개정하는 것이 그 수단과 장치다.

그렇다면 국민에게 다소 낯선 계열분리 명령제와 기업분할 명령제란 무엇인가. 정부의 명령만으로 재벌을 해체하자는 것인가? 물론 계열분리 명령제는 재벌을 해체하자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독점과 확장을 억제하자는 것이다. 원리적으로는 독점을 규제하는 두 가지 방법, 원인 금지주의와 폐해규제주의가 있다. 원인 금지주의는 “독과점 그 자체를 위법한 것으로 보아 그 형성 자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일단 독과점이 발생한 경우에도 기업분할 명령, 시장구조 개선 등을 통해 독과점 시장을 경쟁시장으로 규제하는 방식”을 말한다. 폐해규제주의는 “독과점 그 자체를 당연히 위법한 것으로 보지 않고 공공의 이익에 반하여 폐해를 초래하는 경우, 그 독과점 사업자의 남용행위만을 규제하는 입장이다.

계열분리 명령제와 기업분할 명령제는 원인금지주의 원칙에 입각해 있다. 사실 이미 역사적으로 2003년 참여정부 인수위원회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검토한 적이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2003년 당시 국책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도 완화된 형태로 도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낸 바가 있다. 또한 지난해부터 민주당도 경제특위에서 계열분리 명령제를 검토했고 지금도 재벌개혁 정책 범주에서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지금까지 계열분리 명령제는 재벌집단에서 지배주주가 주로 ‘금융계열사’를 이용하여 시장의 공정성과 안정성을 교란하는 행위가 적발되거나 또는 그럴 우려가 있을 때, 정부(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 집단 지배주주에게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는 명령(또는 법원에 청구)하는 제도로서 구상되었다. 참여청부 초기에 시행을 준비했으나 반발로 좌절된 바가 있다.

그런데 계열사 지분 매각 처분 명령으로 계열사를 떼어내는 방식은, 현재의 경우에는 꼭 금융계열사로만 국한할 필요가 없다. 최근 MRO사업의 사례 등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중소기업 영역에 무분별하게 침투하여 해당 시장을 교란시키는 행위 등에 대해서도 계열분리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여지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지 독과점 피해를 줄 뿐 아니라 금융, 보건, 사회복지 서비스 등 공익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야에서 재벌 계열사의 영향이 미칠 때"라는 식으로 '공익'을 명시하면서 동시에 금융을 포함하되 거기에 한정하지 않고 의료나 사회서비스, 중소적합업종서비스로 확장한다는 것을 지정할 수 있다.

아울러 계열분리명령제가 재벌집단의 계열사를 해당 기업의 지분매각을 명령하여 분리해내는 제도라고 한다면, 기업분할 명령제는 단일 거대 독점기업을 쪼개는 명령을 하는 제도다. 거대 독점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과 독점 폐해를 구조적으로 막기 위해 미국, 일본 등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로서 낯설지 않다. 기업분할(또는 계열분리)을 공정위가 직접 행정명령으로 실행할 것인지, 아니면 기업분할을 법원에 청구하고 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리게 할 것인지에 따른 방법상의 차이에 따라 ‘명령제’냐 ‘청구제’냐로 나눌 수 있지만 지금은 핵심 쟁점이 아니다.

 

4. 계열분리 명령제의 “잠재적 규율 효과”가 중요하다.

매우 직접적으로 기업집단의 경제 집중도를 분산시키는 과감한 방법이라고 할 계열분리 명령제나 기업분할 명령제는, 한국에서는 재벌집단이라는 존재의 특수성 때문에 하나의 맥락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데, 특히 지금처럼 이미 너무 높은 수준으로 진행된 독점화와 집중화를 구조적으로 완화하는 방법으로는 거의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또한 미국의 반독점법처럼 비록 명령제 자체가 실제 시행되는 것이 매우 드물다 하더라도 이 법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재벌 집단이 규율되는 “잠재적 규율 효과”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분할, 분리 명령제도는 “비록 수십 년에 한두 차례의 조치가 발동된다 하더라도 ‘잠재적 규율효과’는 엄청날 것”인데, “미국에서도 법원에 의하여 실제로 기업분할 명령이 내려진 경우는 과거 1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몇 건에 불과하였지만 그 잠재적 규율효과는 매우 컸다고 평가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분할, 분리할 것인가. 재벌의 분할, 분리는 ‘지분관계 해소’의 방식이 기본이 될 것이고 일시적으로 ‘의결권만을 제한’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역사적으로 미국 스탠더드 오일 그룹이나 AT&T의 기업분할 사례에서는 지주회사와 자회사 관계에 있던 기업 집단의 분할이 주식교환과 매각을 통해 이루어 졌다. 또한 2차 대전 이후 해체된 독일의 콘체른은 원칙적으로 콘체른을 다수의 기업으로 분할하고 기존 주주들의 권리는 분할 된 개별 기업 중 하나에 집중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본의 재벌 해체 역시 먼저 재벌에 대한 친족 지배력을 배제한 가운데 일본 재벌의 기본 구조였던 지주회사의 지분정리를 했다. 구체적으로 순수 지주회사는 완전 해체하고 사업지주회사는 자회사 증권을 양도시키고 대신 원래 사업부문은 계속하게 했다. 지주회사정리위원회라고 하는 기구를 만들어 재벌해체과정에서 주식을 인수 받았는데, 이때 양도 받은 막대한 주식에 대하여, 종업원에게 우선적으로 매각할 것, 지주회사 및 재벌 동족에 대해 매각하지 않을 것, 지주회시의 자회사 등에도 매각하지 않을 것 등의 원칙에 따라 주식을 처분했던 경험이 있다.

분리, 분할 명령제에서 특히 쟁점이 될 사안은 바로 어떤 상황과 국면에서 명령제 시행을 허용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에 대한 예로서 “특히 개별 시장에서의 경쟁 제한성이 근본적으로 재벌 구조 및 집단적 행태에 기인하는 경우에, 개별 계열기업의 분리가 문제될 수 있으며, 재벌과의 관계를 차단하는 것만이 당해 시장에서 경쟁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 동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 또한 법적 근거로서 입법화가 요구되지만, 당해 계열 기업의 형태가 독점 규제법 제 3조의 2에서 규정한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될 경우에, 동 규정에 의한 시정조치로서 계열기업의 분리를 명령할 수 있는지도 고려될 수 있다. 즉, 충분히 법률적인 요건을 정의한다면 가능하다는 것으로 읽힌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각하다 하더라도, 과연 일정한 기업 집단을 이뤄서 경제활동을 하는 재벌 그룹사를 쉽게 쪼개거나 분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기업 활동이 유지되고 생산 활동을 하는데 심각한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닐까. 국민들이 이런 우려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우려할 필요 없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기업들의 분할과 합병은 지금도 기업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고 반복되고 있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분할이나 계열분리가 매우 과격한 주장처럼 들리지만, 사실 기업세계에서는 사적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거의 일상적으로 기업 결합과 기업 분할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공적 이해관계에 따라서도 제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계열분리의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2011년 상반기, 그 동안 주로 중소업체들이 사업해오던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사업 규모를 재벌계열사들이 팽창시키자 재벌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해당 분야에서 업계 1위는 엘지 계열사이고 (주)엘지 지분이 100%인 서브원이 매출 2.5조원이었고, 다음으로 삼성 계열의 아이마켓코리아(IMK)(삼성전자 등 계열사 지분이 58.7%)인데 매출이 1.5조원이었다.

국민의 비판여론이 거세고, MB정부도 “대기업이 이런 일을 하라고 출총제를 푼 것이 아니다”면서 압력을 가하자, 2011년 8월 1일, 삼성그룹은 IMK의 지분을 전량 매각하는 수순을 밟아가면서 해당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자진하여 계열사 지분 정리를 통한 계열분리를 실행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2011년 연말에 지분을 처분했다. 계열분리 명령제 등은 재벌그룹이 위와 같이 중소기업과 자영업, 소비자의 경제활동에 크게 위협이 되는 방식으로 시장 지배력을 팽창시켜갈 때, 그러고도 위의 사례와 달리 자진해서 계열 분리할 의사가 없을 때,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막는 장치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5.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 체급을 올려주자.

마지막으로 국민의 의지를 대변하여 이토록 막강한 권한인 계열분리 명령제를, 그토록 막강한 재벌집단에게 들이댈 수 있는, ‘더 막강한 기구’이어야 하는 ‘명령 조직’은 누구인가. 공정거래위원회다. 과연 공정거래위원회가 할 수 있을까.

현재 재벌규제가 ‘법치주의’만 확립되어 있어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안 되는 이유는 정치, 관료, 검찰, 언론이 모두 재벌의 영향권 아래 있다는 엄연한 현실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재벌 감독기관이자 ‘재벌의 검찰’이라고 할 수 있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을 감독할 수단과 역량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더욱 문제이다. 1981년 이후 재벌은 놀라운 변화를 겪으면서 권력을 키웠는데 재벌의 검찰인 공정거래위원회의 힘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당장 ‘공정거래위원회’의 인적 구성에서 공정성과 독립성, 권한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형식상 “중앙행정기관으로써 합의제 행정 관청”이고 “독립된 규제위원회로서 각종 고시, 규정. 규칙 제정권을 갖는 준 입법기관이자 이의신청에 대한 재결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준 사법기관”이다.

우선 위원장 포함 9인 위원회 모두가 대통령 임명으로 되어 있는 현행 구조를 보강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임명 위원 외에 정당 추천과 국회 동의로 지명되는 위원을 추가할 필요도 있다. 동시에 정부 기관인 공정위에 상응하는 국회 차원에서의 ‘재벌 규제위원회제도’를 한시적으로 두는 것도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필요하다. 나아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감독과 조사 권한을 대폭 보강하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해야 한다.

특히 지금까지 시민사회단체에서 제기된 공정위의 ‘전속 고발권’은 폐지하여 일반 중소기업이나 소비자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전속 고발제도라는 것이 당초에 “고발권의 남발로 기업인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으므로 전문 기관의 판단에 따라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하고 명백한 경우를 가려”낸다는 명분으로 1996년부터 도입된 것인데 지금의 성숙한 사회문화 환경을 감안할 때 오히려 국민들의 고발권을 제약할 소지가 더 크기 때문이다. 대신 공정위는 ‘강제 조사권’을 부여 받아 재벌집단에 대한 실효적인 조사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이상의 ‘준 사법권’적 권한도 보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공정위는 강제력이 없는 ‘자료제출 요구권’만을 가지고 있다. 엄청나게 커져버린 재벌집단의 권력에 맞게 공정거래위원회의 독립성과 권력을 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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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2  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 10년 동안 5대 재벌의 자산규모는 230조 원에서 620조 원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고 순이익은 4배 증가했다. 기업 일반으로 보아도 2000년에서 2010년까지 기업소득은 연평균 25.5% 증가한 반면 가계소득 증가율은 5.7%에 불과했고, 수많은 집이 가계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재벌을 필두로 기업은 나날이 살찌는데 왜 국민은 가난해질까?

분배 악화의 정점에 재벌이 있다. 일부 재벌은 관료와 검찰 및 사법부마저 장악해서 국민경제 전체를 '약탈적 공생관계'로 몰아넣었다. 이미 오래 전에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경지에 오른 재벌의 위기는 곧 시스템 위기를 불러오므로 약탈을 당하면서도 재벌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현재와 같이 재벌이 지배주주의 이익만 극대화한다면 사회의 양극화가 격심해지고 국가 전체는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년 경제개혁연대 등은 주주이론(shareholder theory·기업의 주인은 주주이므로 임금과 이자, 지대 등을 뺀 나머지는 주주의 몫이다)에 입각한 소액주주운동으로 재벌의 횡포를 견제했다.

기업총수 등 지배주주가 소액주주를 약탈하는 것(tunnelling)을 막기 위해 주주대표소송제, 이중소송제, 사외이사제 등을 도입한 것은 분명 혁혁한 성과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상호출자제한 기업규모의 완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지주회사 설립요건 완화를 통해 재벌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더 거대한 규모가 되었다.

이제 재벌을 보는 관점을 이해당사자 이론(stakeholder theory)으로 더 확장해야 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기업은 이해당사자 전체가 이익과 위험을 공유함으로써 더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따라서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기업이 파산했을 때 주주보다 훨씬 더 고통을 받는 노동자, 하청기업(공급기업), 지역주민, 그리고 소비자가 모두 이해관계자이다.

주류경제학과 기업가들은 이익 극대화의 방정식이 복잡해지므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종업원지주제와 이윤공유가 경영참여와 결합할 때 훨씬 좋은 성과를 거둔다는 증거는 주주자본주의의 원조인 미국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프리먼의 공유자본주의론). 또 애컬로프의 ‘선물로서의 임금’ 이론을 잇는 행동경제학은 이해관계자가 이익과 위험을 공유할 때 훨씬 좋은 성과를 보인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롤즈의 정의론을 여기에 적용한다면 현재 가장 손해를 보고 있는 이해관계자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물론 이론적으로 그렇다 해서 사회적으로 바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주주뿐 아니라 이해당사자 모두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empowerment). 10%라는 미미한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고, 무엇보다도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건설을 지지해야 한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해야 하며, 하청기업은 납품단가의 공동교섭권을 가져야 한다. 지역주민 역시 위원회의 형태로 자신의 의사를 경영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소비자의 권리도 강화해야 하는데, 특히 금융부문에서의 피해를 막기 위한 장치가 절실하다.

둘째로는 이익공유의 시스템을 확대해야 한다. 노동자와 하청기업, 그리고 지역주민이 주식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하며 재벌기업과 하청기업 간의 이윤공유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지금 서울시가 추진하는 것처럼 주민과 기업이 모두 참여하여 지역발전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이 기금은 지역의 자연을 보호하고 사회서비스와 같은 친밀노동을 제공하는 서비스산업, 지역특화산업 등에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는 재벌의 비대화는 시스템 위기를 불러일으키므로 사전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금산분리, 2002년 수준의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순환출자 제한 등은 미숙한 3세 총수의 판단 오류로 빚어질 수 있는 시스템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범주의 정책을 모두 포괄하는 가칭 ‘기업집단법’이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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