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4정태인/새사연 원장

역시 ‘다이내믹 한국’인가, 했다.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이 의료민영화나 4대강 등 공공성 의제의 들불로 번져나갔던 것, 2010년 무상급식이 순식간에 보편복지 의제로 자리잡은 것처럼 이번엔 ‘경제민주화’가 그럴지도 모른다, 내 가슴은 노래 가사처럼 두근두근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민주통합당은 패배했고 통합진보당은 여전히 대중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진보신당과 녹색당은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김종인 박사 말마따나 새누리당 당선자 중에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야권연대 쪽을 통틀어 당장 정책과 법안을 만들 정도의 실력을 가진 당선자는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 더구나 민주통합당에서는 예의 ‘중도론’이 또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으니 이대로 간다면 대선에서도 별로 기대할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도대체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헌법 119조 2항(김종인 조항)이 그 근거다. 즉 헌법은 소득재분배(복지), 그리고 독점규제(재벌개혁)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헌헌법에는 ‘이익균점권’이 있었으니 우리 헌법은 유구한 ‘경제민주화’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경제민주주의’를 향하여 간다는 뜻일텐데 경제민주주의라는 목표는 어떤 모습일까? 불행하게도 이 질문에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확한 답이 없고 그야말로 백화제방의 상태이다.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곧 민주주의라는 프리드만(Freedman, M)의 강변 이래 별 관심이 없었고 정치학자들만 띄엄띄엄 의견을 개진했을 뿐이다.
 
경제민주주의 하면 떠오르는 학자는 정치학자 달(Dahl, R)이다. 그는 적어도 선진 사회의 정치에서는 ‘1인 1표’라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규범인데, 경제에서는 왜 ‘기업 괴물(corporate leviathan)’의 전제주의가 규범인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따라서 정치와 경제가 대칭적이기 위해서는 ‘작업장 민주주의(workplace democracy)’가 필수적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1980년대 진보적 경제학자들에게도 나타나는데 보울스(Bowls, S) 등의 ‘민주적 기업’이 그것이고 지난번에 소개한 프리먼(Feeman, R)은 30년 넘게 이 문제에 천착해서 ‘공유자본주의론’을 완성했다.
 
기업 내 민주주의를 넘어 롤스(Rawls, J)는 경제에도 자신의 정의론을 적용한 결과 ‘재산소유 민주주의(property-owning democracy)’를 이상적 사회로 내세우기에 이르렀다(또 하나의 대안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놀랍게도 롤스는 스웨덴의 복지국가를 강하게 비판했는데 복지국가가 자산 소유(‘생산 자산’, production assets)의 양극화를 용인해서 정의의 원칙인 ‘기회 평등의 원칙’, ‘차등의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자유의 원칙도 위반했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결국 롤스는 자산 및 자본재분배까지 주장한 것이다. 

우리 헌법은 사실상 독점의 시정(즉 산업구조 상의 문제)을 중심으로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국가가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고 달과 프리먼은 기업의 민주화를, 그리고 롤스는 재산소유의 민주화까지 주장한 것이다. 이 모두를 일반화한다면 자신의 삶과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차원의 의사결정에 시민들이 참여해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경제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착한 경제학’은 경제민주주의를 어떻게 볼까? 독자들은 지금까지의 정책 처방이 경제민주주의론자들의 주장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이 얘기는 다음 번에 계속하기로 하자.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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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5 / 02 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 4월 11일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의회 권력을 수성했다. 이로써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이 목소리 높였던 재벌 개혁 추진이 힘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설사 대선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새로운 정부가 재벌 개혁을 추진할 때 새누리당이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나온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대담을 엮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쾌도난마 한국경제>(부키 펴냄)와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오마이북 펴냄).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는 지난 2005년 펴낸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펴냄)에서 참여연대의 소액 주주 운동을 정면 비판했다. 이들은 '복지 국가'를 전면에 내세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도 "재벌 개혁을 말하며 한국 경제를 주주 자본주의로 재편하려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를 겨냥했다.

이들이 이 책에서 비판하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의 대표 주자가 바로 민주통합당의 재벌 개혁 정책을 만드는데 참여한 유종일, 홍종학 그리고 <종횡무진 한국 경제>의 저자 김상조다. (이 중 홍종학은 민주통합당의 비례 대표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 지점에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가 눈에 띈다. 김상조는 이 책에서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등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온 소액 주주 운동을 비롯한 재벌 개혁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고, 좀 더 진전된 재벌 개혁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야권이 패배한 가장 큰 이유로 시민들의 고달픈 삶을 개선할 비전, 정책의 제시가 없었다는 점이 꼽힌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덟 달 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개혁 진영이 시민들의 사회 경제적 삶의 개선을 위해 제시할 미래 비전은 무엇일까?

진보 개혁 진영이 그간 제시한 프레임은 복지 국가론과 경제 민주화론이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복지 국가론을 대변한다면,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경제>는 경제 민주화론을 대변한다. 물론 양자 간의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양자 간에는 본질적인 견해 차이도 적지 않다.

앞으로 이 두 접근 간에는 치열한 논쟁이 진행될 것이며, 이 논쟁이 생산적으로 진행될수록 진보 개혁 진영의 미래 비전은 더 명확해지고 더 구체적으로 될 것이다. 따라서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어설프게 봉합하는 것보다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프레시안>은 본격적인 논쟁을 위해서 새로운 장 '한국경제 성격 논쟁'을 마련한다. 앞으로 이 장을 통해서 한국의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이 한국 경제의 현재 상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치열한 논쟁을 벌이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이미 '프레시안 books' 86호, 87호를 통해서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 원장과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이 논쟁의 물꼬를 텄다. 한차례의 공방에 이어서 정태인 원장이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같이 공부했던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에게 공개편지 형식의, 하지만 날선 글을 보냈다. <편집자>

☞관련 기사

정태인 : 4월 11일, 회장님 얼굴에 웃음꽃 핀 까닭은?(링크)
정승일 : 진보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자를 고발한다!(링크)

장하준 교수에게

알고 지낸 지 이미 30년이 넘었습니다. 네 살 위라서 계속 반말을 써왔는데, 이렇게 갑자기 높임말을 쓰려니 참 어색하기 이를 데 없군요. 아마 장하준 교수도 그럴 거예요.

사실 경어 체를 쓰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가 생물학적 나이가 더 많더라도 학문적 나이로 친다면 장 교수가 훨씬 위니까요. 읽기의 양이나 사색의 시간, 학계에서의 성취를 고려하면 분명히 그렇습니다. 하여 이 말투에는 공개편지에 걸 맞는 형식일뿐만 아니라 존경과 부러움도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약간의 소란스러움은 내 서평에서 비롯되었지만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사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년 전 한 대담에서 "우리는 이론, 정책, 거의 모든 면에서 다 같지만 '재벌 개혁' 문제와 '한국은행' 문제는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정리할 때가 됐습니다.

그 두 가지가 산업, 금융 정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또 상호 간에 일정한 공감이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재벌 개혁의 필요 불가결성", 그리고 이 둘을 포함한 "진보적 경제 개혁의 방향과 경로"에 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하여

1996년 내가 영국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국은행 문제에 관한 이견이 있었고, 장하준 교수가 돌아가고 나서, 동석했던 김대환 교수에게 왜 저렇게 강한 반응을 보이는지 물었습니다. 그 때 김 교수는 유럽 논쟁의 시각에서 보기 때문이라고, 즉 한국 상황과는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었지요.

당시에는 그러려니 했던 장하준 교수의 그 반응을 이해하게 된 건, 엉뚱하게도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책임에 관한 스티글리츠의 논문을 읽었을 때였습니다. 거기서 스티글리츠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통령자문회의(CEA) 의장을 맡았을 때의 경험을 털어 놓았죠.

조각조각 남아 있는 기억(우리와 너무나 달라서 강한 인상을 받았으니까요)을 거칠게 말한다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연준)는 도대체 대통령의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조직이라는 것, 대통령자문회의에서 불만이 많았지만 아예 내색도 하지 않았다는 것, 온통 통화주의자로 가득한 그 동네에서 논쟁을 벌이면 오히려 불리해졌을 거라는 애처로운 얘기였습니다. 그런 경험을 토대도 스티글리츠는 왜 선출되지도 않은 몇몇 은행가가 자기들 멋대로 나라를 좌지우지 하느냐, 이들이 사회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스티글리츠는 은행 출신들이 아니라 금융을 잘 아는 경제학자가 들어가야 하고 실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연준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서 장 교수의 주장이 떠올랐습니다. '아, (유럽도) 이런 상황이라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해서 장 교수가 그토록 거부 반응을 보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스티글리츠의 글에서 또 하나 명확히 남아 있는 기억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맞느냐, 틀리느냐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독립성인가, 정책의 방향이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하다"는 언급이었습니다. 만일 한국은행이 미국의 연준처럼 자기만의 논리에 의해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더구나 통화주의로 똘똘 뭉쳐 있는 집단이라면 저도 장 교수처럼 한국은행 독립에 반대하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한국은행은 아무런 권한도 없습니다. 그 많은 우수한 인력을 가지고 탁월한 보고서도 생산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찌라시 수준의 보고서는 언제나 언론에 노출되고, 한국은행보다 훨씬 더 신자유주의적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도 비중 있게 다뤄지지만 한국은행은 GDP(국내 총생산)이나 경상수지 발표 때만 주목을 받습니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전 재정경제부)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시장 만능주의/주주 자본주의에 가까울까요?

기획재정부에는 최중경과 같은 중상주의자가 간혹 섞여 있긴 하지만 이헌재류의 시장 만능론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한국은행은 힘이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명확하게 시장 만능론을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법으로 규정돼 있는 물가 안정조차 줏대 있게 내세우지 못합니다. 한국은행은 오히려 말을 하지 않아서 문제인 조직, 자기 지키기 바쁜 조직입니다. 오죽했으면 내가 "고슴도치 같은 조직"이라고 했겠어요?

물론 앞으로 정말 힘이 생기면 한국은행이 자신의 존재 이유인 "물가 안정"을 내세워 실업과 같은 시민의 삶의 질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목표를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비서관일 때 한국은행 직원을 꼭 상근으로 불렀고 '개혁'에 중요한 기초 자료는(때론 기본 방침도) 한국은행을 통해서 얻었습니다. 재정경제부 관료나 KDI를 이용할 경우에는 내 의도가 드러나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 되었거든요.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도 중앙은행에 대해서 장하준 교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케인스나 스티글리츠의 생각도 그랬듯이 중앙은행은 정부와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움직여야 합니다. 한 기관이 하나의 목표만 맡는 게 아니라, 다수의 목표를 놓고 다수의 기관이 서로 협동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지금 그런 이상적 상황을 가로막는 집단은 어디일까요? 난 단호하게 기획재정부(이들은 삼성과 조·중·동과 같은 보수 언론과 함께 움직입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한국의 잡종 신자유주의의 근원이자 재생산지가 바로 거기입니다. 그들은 과장이 되면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단기간에 받고 국장쯤 되면 (장 교수의 주적인)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에 파견 나가 신자유주의 교조의 세례를 받습니다. 얼치기로 알기에 더 과격한 시장 만능론자가 되는 거죠. 장 교수가 1960~70년대의 역사 속에서 관찰한 그 관료들이 아닙니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이라는 단일 목표가 아니라 자산 가격 안정을 포함한 경제 안정까지 추구해야 합니다(한국은행법 개정 사항이죠!). 물론 기획재정부 등 경제 부처와 협의를 하는 채널을 둬야겠지만 지금은 더 많은 독립성이 필요합니다. 한국은행이 실업 등 중요한 정책 목표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기획재정부 차관이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통화위원회의 구성 변화입니다. 지금처럼 각 부처를 대변하는 "민간" 전문가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중소기업 그리고 시민 일반을 대표하는 금통위원이 들어가야겠지요.

(나보다 훨씬 잘 알겠지만 케인스는 상황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꿨습니다(그래서 하이에크가 매번 당했지요). 그런 정책 변화를 일관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는 게 바로 케인스의 천재 증명이었습니다. 예컨대 케인스도 인도라는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의 필요성뿐 아니라 독립성도 강조했습니다. 당시 인도에는 (루피와 스털링의 안정적 환율 때문에) 그게 꼭 필요했으니까요.)

재벌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자, 이제 본론 격인 재벌 문제입니다.

1980년대 말 이래 재벌은 옛날의 재벌이 아닙니다. 내 기억으로는 1988년 금리 논쟁 때 처음으로 당시 재정경제부(조순 부총리)에 반기를 든 이래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이들이 재벌-재정경제부 연합을 결성했고 이제 한 몸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때부턴 재벌이 우위에 섰습니다. 발전 국가론에서 상정하는,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과 힘의 우위는 이미 한국에서 현실이 아닌 지 오래 됐습니다.

장하준 교수가 재벌 문제에 관해 본격적인 논문을 쓴 건 본 적이 없지만(장기의 역사 속에서 시장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게 장 교수 작업의 본령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쓸 시간이 없다는 건 잘 압니다) 짧은 평론이나 인터뷰에서 받은 느낌은 장 교수가 재벌을 주주 자본주의, 금융 자본주의 논리의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마르크스 식으로 주주 자본주의/시장 만능론을 한 시대의 '에테르'(헤겔식으로는 시대정신이겠죠)라고 표현한다면 그 안의 어떤 존재도 그 풍조에 물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존재는 환경에 적응하는 거니까요. 일제 강점기에는 동네의 똘똘하고 진취적인 농부가 일본인 지주의 마름이 되었을 겁니다. 농민을 최대한 수탈하려고 최초로 "근대적 경영"(경영형 지주론)을 도입하기도 했을 겁니다.

당연히 재벌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최고의 실적을 올리려 합니다. 단기 시야의 수탈이 벌어지죠. 그런데 어떤 외적인 힘에 의해서 주주 자본주의가 사라지거나 약해진다면(분명 역사는 이 방향으로 가겠죠) 정말 재벌은 장 교수가 생각하는 것처럼 설비 투자와 새로운 산업 진출에 매진하게 될까요? 해방이 되어서 일본인 지주가 사라졌을 때 우리의 마름들은 착한 농업 경영인이 되었나요? 국가가 어떤 외적 충격이 와도 마름의 지위를 유지시켜 준다고 약속하면 이들이 소작인들의 삶의 질도 높이는 착한 존재가 될까요? (비유를 이렇게 했지만 현재의 재벌은 일제 강점기 마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존재입니다.)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이나 한국경제연구원의 얘길 들어서 알겠지만 그들은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면 아무런 이론이나 차용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논리적 일관성 따위는 단물 빠진 껌처럼 언제든 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강한 건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거래 비용 이론이나 대리인 이론으로 재벌 구조를 합리화하는 동시에 전형적인 시장 만능론으로 국가의 규제를 비판하지요. 자유주의자 같지만 기업 내의 전제는 당연하게 여깁니다(사실 이 모순이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론의 핵심입니다) 서로 모순되는 얘기도 그들에겐 아무런 문제도 안 됩니다. 그게 바로 자본이지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재벌과 주주 자본주의(또는 외국인 주주)를 대립 관계로만 보는 건 단편적인 시각입니다. 그들은 경쟁을 하는 동시에 협력해서 주주 집단 바깥의 이해 당사자들을 최대한 수탈하는 동맹군이지요.

주주 간의 관계(즉, 자본 간의 경쟁)라는 쪽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장 교수는 소액 주주 운동과 실은 똑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소액 주주 운동 역시 지배 주주와 소액 주주(이 중엔 대규모 외국인 주주도 있지요)의 대립에 주목하니까요. 즉, 장 교수나 소액 주주 운동가나 모두 자본 간 경쟁이라는 차원에서 재벌을 보고 있는 겁니다. 장 교수는 재벌을 그 경쟁 속에서 외국인 자본에 시달리는 존재로 보고, 김상조 교수는 재벌을 그 경쟁 속에서 소액 주주를 수탈하는 존재로 본다는 차이만 있는 거지요.

나아가 재벌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도 두 주주 집단(지배 주주, 소액 주주(외국인 주주 포함))과 협동해서 비정규직과 하청 기업을 수탈하는 데 동참하고 있습니다. 장 교수가 이해 당사자론을 제대로 적용한다면 오히려 이런 중층의 수탈 관계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난 번 서평에서 이 문제는 대부분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주주 자본주의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도 지금 해야 할 일이고, 동시에 "재벌 개혁"을 하는 것도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중층적 수탈 관계를 이해 당사자론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고 또 거기서 도출되는 정책 방향에 관해서는 이미 밝혔습니다.

논란이 남은 사항은 시스템 위기의 가능성에 관한 겁니다. 장 교수도 정승일 박사처럼 재벌이 제약 산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재벌이 제약 산업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청와대 비서관일 때 제약 산업을 검토했는데 생물학계 제약 같은 것은 가능하지만 신약 개발과 같은 화학계 제약은 영 어렵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물론 학자 출신 풋내기 비서관의 판단일 뿐, 재벌이나 박정희류의 관료는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랬다 망한다 하더라도, 이미 지급 보증이 해소된 상태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삼성제약'을 만들려면 삼성생명이나 삼성전자 등 여러 계열 회사가 출자를 하고 그 '삼성제약'이 발행한 회사채를 계열사가 인수해서 초기 자본을 형성하겠죠. 그 이후에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소액 투자자들을 모집할 겁니다. 만일 이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한다면 단지 지급 보증이 없다고 해서 문제가 안 생길까요? 신약 개발과 같은 분야에는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하고 성공 가능성은 지극히 낮습니다. 10년, 20년 계속 투자해야 합니다. 더구나 이런 쪽은 눈덩이 효과(snow ball effect)도 많이 작용할 겁니다. 기존의 지식이 많이 쌓여 있는 곳일수록 유리하겠죠.

만일, 그야말로 만에 하나 산업계와 정부가 이런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마음먹는다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매우 많습니다. 우선 교육 투자를 통해서 전문 인력을 충분히 길러야 하고(10년 이상 걸리겠죠?) 관련 산업 간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작업에도 정부가 관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초기 연구개발 투자에 대해서도 마치 미국의 국방부나 보건부가 하듯이 프로젝트를 발주해야겠지요.

제 아무리 삼성이나 현대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정승일 박사의 가정대로 재벌이 나 홀로 한다면? 당연히 정부는 시스템 위기를 예방하는 최소한의 조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장 교수와 내가 옹호하는 산업 정책이 바로 이런 거겠죠(내 경험에 비춰보면 정 박사가 청와대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재벌들은 십중팔구 조·중·동을 동원해서 정부가 시장이 할 일에 개입한다고 비판할 겁니다).

재벌의 경영권을 보호해 주기만 하면 그들이 이런 장기 모험 투자를 할 것이라는 건 실로 안이한 생각입니다. 제로 리스크로 쉽게 돈 벌 수 있는 일이 널려 있는데 왜 하겠어요? 주식이나 땅 투기, 동네 빵집, 심지어 순대국집…. 재벌 규제, 자산 투기 규제와 산업 정책이 같이 갈 때만 실제로 필요한 장기 투자가 가능해질 겁니다.

또 따라잡기(catch up)를 넘어서는 단계에 들어선 나라의 산업 정책에 대해서도 이론적으로 고민해 봐야 합니다. 나는 지역 클러스터와 공동체의 발전 전략을 결합하는 것이 이 단계의 유력한 산업 정책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주제야말로 우리 같은 산업 정책 옹호론자들이 진지하게 붙들어야 할 주제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재벌의 은행 소유까지도 막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정말 놀랐습니다. 설마 장하준 교수도 같은 생각은 아니겠지요? 이건 정확히 시스템 위기를 자초하는 일입니다. 예의 제약 회사가 망해가면 재벌계 은행들이 어떻게 하겠어요? 일반적인 계열 분리명령(또는 청구)의 도입은 더 철저한 논증이 필요하지만 금융 계열 분리 명령은 시스템 위기 가능성만으로도 도입 근거가 충분하지 않을까요?

재벌 개혁 또 경제 민주화 운동이 복지 국가 운동을 가로막는다?

장하준 교수도 아시다시피 나는 노무현 정부에 들어갈 때, 막연하지만 스웨덴 모델을 꿈꿨습니다(조금 더 유연한 이정우 교수는 네덜란드 모델을 상정했죠). 그리고 이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국민들의 복지에 대한 열망으로 우리는 그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섰죠.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스웨덴에서 한 일 하나하나를 그대로 한국에 도입한다고 해서 스웨덴 모델처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삼성이 발렌베리처럼 행동한다거나, 민주노총이 스웨덴 노동조합총연맹(LO)처럼 커지고 또 '연대 임금' 같은 획기적인 상상력 넘치는 연대 사업을 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건 환상이겠지요. 또 북유럽 국가들이 주로 소득세로 재원을 조달하니까 우리도 소득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도 그런 기계적 도입 중 하나일 겁니다(종합부동산세 등 자산세는 불평등 심화를 일단 막아야 하기 때문에 절실합니다).

물론 그런 조건이 없다고 해서 복지 국가로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서도 안 됩니다. 우선 다음 그림 두개를 한번 보시죠.

한국에서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건 1995년경입니다. 이건희가 정부를 "3류"라고 일갈하고 김영삼이 "세계화"를 선언했으며 관료들이 마음 깊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시점이죠. 그리고 외환 위기는 그런 시장 만능의 기조를 이 땅에 뿌리 내리게 했습니다. 국민들도 이제 믿을 건 나 밖에 없다, 살고 보자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지만, 불행히도 IMF의 지배 하에서, 더구나 관료들이 이 기회를 이용해서 IMF가 요구한 것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예를 들자면, 노동 시장 유연화)을 추구한 결과 사회의 양극화는 가파르게 진행됐습니다.

 

[그림1] 지니계수 변화 추이

[그림2]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추이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그래도 복지에 돈을 투입한 결과(붉은 그래프와 푸른 그래프의 차이)가 가처분 소득 지니계수지만 양극화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핵심 원인은 두 번째 그림에 나타납니다. 같은 시기에 임금 몫이 줄어들었으니까요.

만일 시장에서 이런 양극화를 방치한다면 제 아무리 복지에 돈을 쏟아 부어도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의 분배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도 언감생심일 겁니다.

이 모두 세계화와 주주 자본주의의 자장 안에서 일어난 일인 건 확실합니다. 그러나 재벌-관료-조·중·동이라는 삼각 지배 동맹이 앞장서서 실천한 것 또한 명백합니다. 재벌 개혁, 경제 민주화 없이 복지만 내세워서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물론 사회적 합의, 또는 대타협 없는 보편 복지 국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삼각동맹이 왜 타협을 할까요? 물론 나는 수출 대기업 위주 정책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고 미국이나 유럽, 일본이 동시에 장기 침체의 수렁에서 계속 허우적거리면 곧 파탄이 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위기가 온다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세력 관계라면 위기가 닥쳤을 때 오히려 수탈을 더 강화해서 그야말로 파국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혹시 스웨덴의 시장 지니계수는 한국보다 더 나쁜데도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은 한국의 시장 지니계수가 과소 추계됐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소득 재분배에 의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분배를 달성했으니 그리 염려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금을 내도록 하는 힘은 또 어디서 나올까요?

노동자-자본 간의 힘의 균형이 없는 상태에서, 더구나 핵심 세력인 민주노총이 국내외 주주 집단과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 기업의 수탈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는 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정당도 흡수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시민들의 힘밖에는 없습니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 운동은 같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삼각 지배 동맹과 힘의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사회적 대타협도 가능해질 겁니다.

내가 장하준 교수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내 짧은 청와대 경험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단언합니다. 혹시 우리가 정권을 다시 잡더라도 "경영권 보장해 줄 테니, 세금을 왕창 내서 복지 국가 만드는 걸 도와 달라"는 장 교수의 제안은 일언지하에 거절당할 겁니다. 삼각 지배 동맹이 왜 그러겠어요? 그들은 나름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시장 만능의 사회가 되면 한국이 잘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데요. 더구나 현재의 제도 하에서도 재벌들은 경영권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한국은 스웨덴처럼 타인에 대한 일반 신뢰,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은 사회가 아닙니다. 재벌이 합리적 계산 하에 먼저 임금의 중앙 교섭을 제안하는 상황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수탈할 수 있는데도 타협하는 자본이란 지구 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극한의 경쟁 속에서도, 나와 내 아이만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헛된 꿈에서 이제 막 깨어난 일반 시민들이 시장 만능주의/주주 자본주의와 재벌의 연관을 직시하게 할 때만 우리가 꿈꾸는 복지 국가도 가능해질 겁니다.

장 교수가 놀랄지 모르겠지만, 이해 당사자론자인 나와 주주 이론을 채택한 김상조 교수 사이에 현재의 운동 방향에 대한 이견은 조금도 없습니다. 경제 민주화 운동과 복지 국가 운동이 같이 가야 한다는 데 한국 대부분의 시민 운동가, 경제학자들은 동의합니다. 추상적인 이론으로 이런 합의를 갈라놓으려 하는 건 지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마 기업 집단법의 목적에 대한 강조점이나 세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요. 김상조 교수 외의 재벌 개혁론자는 기업 집단법에 대해 더 회의적입니다만 "절대로 안 된다"는 수준의 반대 또한 아닙니다.)

장 교수는 50만이 넘는 독자를 거느린 강력한 지식인입니다. 그러기에 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나라가 역사적 기로에 서 있을 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내가 보기에 장 교수는 아주 구체적인 상황에 너무 깊이 발을 들여 놨습니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뛰어나도 한국과 영국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메울 수는 없습니다.

장 교수 뜻대로 경제 민주화 운동이 뜻을 펴지 못하고 사그라진다면 복지 국가 운동도 같이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상황에 대해서 일개 지식인이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겠어요?

난 이 논쟁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마치 절대적 대립이라도 있는 양 비춰지고 있는 이 상황(막연하게 같은 편이리라 짐작하고 복지 국가 운동과 재벌 개혁 운동을 모두 지지하던 시민들은 적잖이 당황스러울 겁니다)은 쉽게 극복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엉성한 논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학계 심포지엄 같은 형식으로 치밀하게 따져 볼 수도 있겠죠.

쓰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그럼, 조만간 직접 얼굴 맞대고 이런 얘기를 나눕시다.

2012년 5월 2일

정태인 드림.

* 이 글은 인터넷 일간지 프레시안에 서평 기고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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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낭만과 자유

    재벌개혁 과연 현실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듭니다. 인구의 과잉으로 인한 무개념 국민들이 넘쳐나면서 투표로써 심판받지 않는 정치가들의 오만과 독선에 치가 떨리는 즈음입니다. 이런 국민들이 자신의 이익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과연 현명한 선택이 가능할 것인가? 바람앞에 등불 처럼 불쌍한 인생들이 흔들리는 듯 합니다.

    2012.05.05 13:37 [ ADDR : EDIT/ DEL : REPLY ]

2012 / 04 / 23 새사연

왜 지금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인가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 차]

1. 왜 다시 재벌개혁을 말하는가.

2. 구조개혁인가, 불법규제인가.

3. 구조개혁을 정말 할 수 있는가.

4. 재벌경제력 집중 억제의 목표

 

[본 문]

편집자 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악화되자 한국사회에서는 전례 없는 보편 복지 요구가 확대되고 있고 경제 민주화의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양대 선거를 맞아 정권교체 요구가 거센 가운데 다양한 사회개혁 의제가 정책 공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정말 2013년 체제라고 불릴만한 사회 대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자면, 강력한 경제개혁 전망을 갖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새사연의 문제의식이다.

이에 새사연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시대적 가치와 비전, 새로운 경제모델과 성장모델, 총체적 경제개혁, 보편복지를 망라하는 정책을 모아 2012년 5월 중 단행본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출판될 원고 가운데 일부를 새사연 회원들과 미리 공유하고자 [새로운 사회 2013]이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2012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재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재벌 2~3세 본인들은 취미로 할지 모르지만 빵집을 하는 입장에서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이명박 대통령까지 문제 삼겠다고 나서면서 분노는 더 크게 번져갔다. 재벌가의 2~3세들이 해외 생활을 하면서 먹고, 입고, 메고, 타고 다녔던, 그들에게 익숙한 것들을 국내로 수입해서 파는 사업에 꽤 많이들 손을 댔던 모양이다. 그런데 재벌가 자녀들은 하나의 트렌드 비슷하게 취미생활 삼아 빵집 사업을 했을지 모르지만 인근의 상인들이나 자영업자들은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언론 인터뷰에서 한 동네 상인이 “대기업들은 목 좋은 곳에 점포를 내 땅 짚고 헤엄치기인데 우린 익사 직전”이고 하소연 한 것이 공연한 엄살일 수는 없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만이다. 실로 15년 만에 우리사회에서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15년 전 외환위기 때는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외국자금을 무리하게 끌어와 과잉 중복투자를 하는 바람에 환란을 맞았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불러들인 장본인이 재벌이라는 국민적 분노가 있었다. 그래서 재벌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매우 컸었고 김대중 정부는 이를 배경으로 재벌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면 지금은 무엇이 재벌개혁을 사회적 관심사로 끌어 올렸을까. 2008년 이명박 정부 집권 4년, 그리고 글로벌 경제위기 4년 동안 국민들의 소득은 늘지 않고 고용은 더 불안정해졌으며 사회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그런데 규제완화와 감세를 통해 대기업을 살리면 중소기업과 노동자, 서민들이 살아날 수 있다던 ‘적하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반대로 위기의 와중에서도 삼성과 현대차 등 재벌 대기업 집단들은 ‘나 홀로 성장’을 구가했다. 문제의 정도가 심각해지자 친 기업 정부를 자임하던 이명박 정부 자신이 집권 후반기인 2009년 하반기부터 ‘공정사회’와 ‘동반 성장’을 말해야 할 정도였다.

특히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한국의 재벌기업집단들이 총수의 2세, 3세들을 동원하여 늘린 계열사들이 기껏 동네의 빵집, 자전거 가게, 라면, 순대 등 서민 업종에 손을 대고 있다는 사실들이 속속 들어나면서, 규제를 풀어주었더니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세계로 나간 것이 아니라 서민이 생활 터전으로 삼고 있는 동네골목으로 치고 들어왔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어났다. 국민경제의 작은 부분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재벌의 경제력 집중도가 다시금 엄청나게 커졌음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경제력 집중 억제의 상징적 정책 수단이었던 ‘출자총액 제한 제도’ 부활 얘기가 정치권에서 제기되었던 배경도 여기에 있었다.

경제력 집중이란 크게 1)시장 집중, 2) 소유 집중, 3) 일반집중의 문제로 요약되는데 우리 재벌은 그 가운데에서도 ‘일반집중’에 대한 문제가 핵심이다. 일반 집중이란 “산업이나 제조업 일반에서 또는 국민경제 전체에서와 같은 광범위한 경제영역에서 특정한 기업, 또는 기업집단이 차지하는 비중”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지난 10년 동안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얼마나 심화되었기에 빵가게까지 진출하게 되었을까? 우선 재벌의 일반 집중도를 ‘양적 규모’ 차원에서 자산, 매출, 순익, 계열사 수 같은 몇 가지 지표로 확인해 보자. 특히 55개 대기업 집단 가운데 삼성, 현대차, SK, LG, 그리고 롯데 등 5대 재벌 집단이 매출의 절반, 순이익의 2/3 이상을 차지하면서 압도적인 지위를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5대 재벌 집단을 기준으로 2000년대 10년 동안 자산, 매출, 순이익, 계열사 수의 변동 추이를 살펴보겠다.

(1) 자산규모: 10년 동안 삼성과 현대차의 자산규모가 3배 이상 늘어나는 등 전체적으로 3배 정도의 자산이 팽창했고 삼성은 70조원에서 230조원으로, 5대 재벌집단은 230조 원에서 620조 원 규모로 팽창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200조 원이 늘어나서 가장 속도가 빨랐다.

 

... 전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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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8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보수주의자들은 경제가 시장의 원리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품 공급자 또는 수요자로서 각자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시장에 참여해 거래를 하면 가장 효율적인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인위적인 개입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전 세계는 앞다퉈 재정지출을 했다. 4년 이상 공격적인 금리 통화정책으로 시장 개입을 하고 있는 지금도 시장의 효율성과 자기조정 능력에 대한 과신은 크게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역사적 현실은 시장의 자율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에 대한 일정한 규제가 자본주의 시장을 존립시켜 왔을지도 모른다. 1920년대의 금융자유의 시대, 1980년 이후 금융자유주의 시대는 대공황을 초래하면서 잔인하고도 거대한 시장의 붕괴, 시장의 실패를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그러니 규제 자본주의가 시장경제에 가장 적합한 것일지 모른다는 주장이 나올 법도 한 것이다.

그런데 조폭 세계도 아닌 시장경제에서 국가의 합법적인 개입은 고사하고 때때로 공포와 협박을 동원해 시장 참여자들로 하여금 어떤 선택을 강제하는 경우가 21세기 첨단의 시대에도 발견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것도 특히 시장의 자율을 주장하는 보수적 세력들에 의해 조장된다는 것이 더 역설적이다.

첫 번째 사례는 가장 혁신적인 금융시장에서 발견된다. 최근 몇 년 동안 저출산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보편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실제로 정치권에서 은퇴 후 생활과 노후생활을 위한 복지정책을 활발하게 개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출산 고령화 대비책으로 나온 것은 복지정책만이 아니다. 보험과 연금을 비롯한 금융상품이 이에 못지않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개인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며 이를 상품판매로 연결시키려는 보험사들의 공포마케팅이다.

지난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100세 보장’을 앞세워 마케팅을 하고 있는 상품은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를 합쳐 140여종에 달한다고 한다. 비슷한 마케팅전략을 내세우는 증권사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200여개까지 늘어난단다. 국민들은 정부의 복지정책을 신뢰하고 공공복지에 의지할 것인가, 아니면 사적 금융시장의 공포조장에 밀려 금융상품에 노후를 걸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시장에 참여하는 각자가 합리적인 자기 이익을 가지고 거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두 번째가 부동산 시장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시장의 정체, 또는 실질적 하락세가 4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기를 이어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상당 기간 추세가 반전될 기미도 없다. 지난 4년 동안 끊임없이 나왔던 것이 부동산 폭락사태와 시장 붕괴 우려의 목소리다. 그런데 그중에 국민경제의 급격한 충격을 걱정하는 차원에서 폭락을 걱정하고 연착륙 대책을 고민하는 부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쪽도 적지 않았다.

부동산 시장 폭락에 대한 두려움을 시장에 유포해 정부와 국민으로 하여금 부동산 경기부양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하려는 심산이다. 건설업자들이나 주택대출을 해준 은행들, 그리고 주택 투기세력들이 그들이다. 실제로 그 결과 이명박 정부는 4년 동안 지속적으로 부동산 관련 규제를 완화해주고 세제 경감조치를 발표하고 경기부양 대책을 내놓았다. 그로 인해 누가 이익을 봤을까.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부동산 시장에서도 시장의 자율과 참여자들의 합리적 이익추구라는 경제학 교과서의 그림은 잘 구현되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대기업·재벌이다. 올해부터 재벌개혁 요구가 거세지고 있고 재벌에 대한 규제와 증세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중이다. 당장 재벌들은 “투자를 줄일 수 있다”는 전형적인 협박과 공포 분위기를 흘리기 시작한다. 몇 년 전부터 재벌들은 심지어 “자꾸 규제나 과세를 해서 기업하는 환경을 어렵게 하면 본사를 옮길 수도 있다”는 그야말로 어이없는 협박과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미 재벌들은 싼 임금을 찾아 공장을 끊임없이 해외로 옮겨왔다. 만약 본사를 옮기는 것이 이익을 내는 데 유리하다면 미국이든, 중국이든, 유럽이든 벌써 떠났을 것이다. 그들에게 무슨 애국심이 있어 본사를 한국에 일부러 두고 있겠는가. 한국처럼 알짜배기 고급인력을 충분히 수혈받을 수 있는 곳, 제품 만들면 즉각적이고 충분한 규모로 구매해서 테스트해 주는 국민이 있는 곳, 그처럼 많은 이익이 나는데도 여전히 엄청난 특혜를 제공해 주는 정부가 있는 나라. 관료와 학계, 법조와 회계 분야에 몽땅 내 사람들로 포진해 있는 인적환경이 되는 한국보다 나은 국가가 있다면 삼성과 재벌들은 지금 이 시각 짐을 싸서 떠났을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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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2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재벌 개편’ 법적 틀 제시
권한과 책임 명문화해야
독과점 규제 가능케 되고
주주·노동자 권리도 보장

막상 총선에서는 주요 쟁점이 되지 못하고 누그러졌지만 재벌개혁이 절박하다는 문제의식은 정치권이나 학계, 시민사회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넓은 공감대가 있다. 그러나 지금 어떤 개혁이 필요하고 어떤 개혁 수단이 동원되어야 하는지는 백인백색이다. 2009년에 폐지된 출자총액 제한제도를 부활하자는 의견에서부터 순환출자 금지 같은 새로운 사전규제 장치를 동원하자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재벌과 총수일가의 범법행위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하고 편법 증여를 막는 것이 긴요하다는 주장과 원-하청 불공정 거래가 가장 시급하다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조금 호흡을 길게 하고 역사적 맥락에서 재벌개혁 논쟁을 파악해 보자. 1986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구축되었던 출자총액제한제도와 큰 틀의 재벌규제 체제는 외환위기 이후 지난 15년 동안 점차 약화되고 대신 시장 자율이나 자본시장을 통한 견제에 맡겨지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시장의 자율적 조정능력이나 자본시장에서의 소수 주주권 강화 방식만으로는 재벌 집단이 적절히 견제되지 못했다. 오히려 재벌의 경제력 집중 정도가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지금은 재벌의 독점적 횡포와 경제력 집중을 억제할 마땅한 사회적·제도적 장치가 없는 규율의 공백상태에 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마저 친기업정책을 내걸면서 지난 4년 동안 유통 재벌은 골목상권을 휩쓸고, 석유·통신재벌은 독과점 가격을 밀어붙였다. 전자와 자동차 재벌은 하청단가를 깎아 거대한 수익을 달성하는 등 국민경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포식자로 커져버렸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만에 재벌개혁이 새롭게 국민적 의제로 부상한 배경이다.

지금은 한두 가지 수단으로 재벌의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적어도 앞으로 10년 한국 경제를 내다보면서 규제 공백상태에 있는 재벌을 어떤 제도적 틀로 규율해나갈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 학계 등에서 그동안 간간이 나왔던 ‘기업집단법’ 제정 주장은 이미 한국 경제의 중심에 착근되어 버린 재벌체제를 공식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성문법적 틀 안에서 규제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어 현재의 시점에서 적합한 대안일 수 있다.

기업집단법은 개별 기업 범위를 넘는 기업집단이 독립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실체’라는 점을 상법 차원에서 인정하고, 그 존재와 구성 요건을 법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즉 현실적 실체이면서도 법적 규정이 없었던 기업집단과 기업집단을 이루고 있는 계열 회사들 사이의 지분관계는 물론 통제 권한과 책임 범위, 구조조정본부 같은 기업집단 전체의 지휘통제 구조를 법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나아가 전체 기업집단과 소속 기업 사이의 이해 상충 관계를 규율하며, 이른바 내부 거래 허용범위 등도 규정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합의한 재벌체제의 구조 개편 방향을 법적 틀로 제시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재벌과 관련해 제기돼온 여러 쟁점이 정리되어 기업집단법에 종합적으로 반영되어야 하므로 경제학계와 법학계의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고 현실 경제여건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더 이상 규제의 공백상태를 방치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의 시급성도 있다. 출총제를 부활시켜서라도 재벌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재벌의 횡포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공정거래법에, 기업집단법에 포함될 주요 맥락들이 있는 상황이고 추가적으로 어떤 규율이 필요한지도 알려져 있다. 의지만 있다면 19대 국회가 구성되면 곧바로 논의에 들어가고 법률 제정을 서두를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확인해둘 것은 기업집단법이 어떤 측면에서는 재벌 인정법이지 반재벌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재벌 규제법과 동시에 공정거래법의 전면 재개정이 같은 무게로 다뤄져야 한다. 독일은 주식회사법에 콘체른 규정을 삽입했던 1965년 이전(1958년)에 경쟁제한방지법(GWB)을 제정하여 독과점 규제를 하고 있다. 나아가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보편화시킨 1976년의 공동결정법이 기업집단에 대한 노동자의 견제 수단으로 존재한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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