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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4고병수/새사연 이사

 

아침에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일행들과 모여서 밥에 깡통 통조림들을 꺼내서 맛있게 먹었다. 세수를 하고 양치질도 해야 하는데, 앞서 얼굴을 씻고 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영 말이 아니다. 머리를 감고 나오던 봉사단 인솔자인 장석기씨는 물이 너무 차가운 나머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공수부대 출신에 국방부장관 표창까지 받으며 군 생활을 화려하게 했다는 그가 입까지 얼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감히 머리 감을 생각까지는 못하고 그냥 눈곱만 떼고 가야지 마음먹게 된다.


진료 시작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진료 장소에 도착해보니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이 와글와글 모여들어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점심밥 먹을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팍 온다.

단장님, 오늘도 죽음의 진료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고원장, 자기는 엉덩이에 땀띠 좀 나겠는데?”
“나야 땀띠로 족하지만, 단장님은 허리가 뽄질라지겠네요. 하하하…”
“이따가 파스 남은 거 있으면 좀 붙여줄 생각이나 해요. 아이고…”

아침 일찍부터 진료를 받기위해 몰려든 주민들


우리 일행을 책임지는 단장님은 여러 해 동안 알면서 지내온 박형선 한의원 원장이신데, 여러모로 능력이 뛰어난 분이다. 주민들에게 침을 놓으려면 허리를 굽혀야 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진료를 하고나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을 거다. 농담처럼 죽는 시늉을 하지만 박 단장님은 몽골 진료를 벌써 16년가량 해오신 분이라 몽골 오지에 가는 것이나 폭풍진료를 하는 것에는 이골이 났을 것이다.

진료는 가정의학과 2명, 산부인과 1명, 외과 1명, 성형외과 1명, 치과 2명으로 이루어진 의료진들이 맡고, 2명의 약사님들은 약국에서 일을 하게 된다. 간호사는 주민들이 어느 진료실로 갈지 간단한 인터뷰를 하면서 교통정리를 하게 된다. 자원봉사자들은 주민들을 안내하거나 진료실과 약국에서 일손을 돕는다.

다른 진료과목들은 이 지역에서 각자 자기 역할들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성형외과 원장님이신 조준현 선생님이다. 여름휴가 가는 대신 봉사를 오긴 왔지만 몽골 오지에서 성형수술을 하기도 만무하고, 진료 첫날인 오늘은 진료실에 앉아서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내과 환자라도 보겠다며 진료를 하는데, 내과 계통 약을 처방해본지도 20년 가까이 지나서 쉽지는 않았다.


몽골 오지에서 성형 수술을

오전 11시가 넘어갈 때였다. 안내를 맡은 자원봉사자 분이 성형외과 선생님 방에 수술 건이 생겼다고 귀띔을 해줘서 드디어 일거리를 찾으셨구나 마음이 놓였다. 인근에서 교통사고로 입술이 찢어진 청년이라는데, 간단한 수술이니 금방 끝나서 또 할 일이 없나 찾으시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손을 놓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식당으로 향하는 중에 성형외과 선생님이 안 보인다.

“조 선생님은 왜 안 오시죠?”
“수술 하는 게 많이 늦어질 거라고 합니다.”
“어, 입술 봉합하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걸리죠? 시작한지 2시간이 넘었을 텐데…”
“그러게요. 나도 많이 안 걸릴 줄 알았는데, 점심도 못 먹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간단한 봉합은 많이 해봤기 때문에 부위 별로 대강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짐작을 할 수 있다. 듣기로는 큰 손상이 아닌 것 같았는데, 시간이 이렇게 걸리는 게 아무래도 미용 성형만 하시다가 간단하지만 손상된 상처 봉합을 하려니까 어려우신가 보다고 우리끼리 농담을 주고받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진료실로 돌아갈 때쯤 성형외과 조 선생님이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고 계셨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선생님, 많이 힘든 수술이었나 봐요?”

우리들은 인사치레로 그렇게 물었지만, 조 선생님은 바짝 말라 있는 입술을 힘들게 떼며 말한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교통사고로 다쳤다고 해서 청년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입술뿐만 아니라 아래턱 속살까지 다 다쳤더라고요. 상태가 안 좋아서 큰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더니 현지 의사가 이런 수술은 울란바타르로 보내야 한다는데…”
“그 정도였어요? 우리는 가벼운 입술 상처인 줄 알았어요.”
“다행히 차가 정면이 아닌 옆으로 스쳤는지 골절 같은 것은 없고, 입술과 턱 부분 손상만 받았지만 이게 간단한 수술이 아닙니다.”

우리의 짐작과는 다르게 그 몽골 청년은 입술부터 턱 살까지 찢어졌을 뿐만 아니라 안쪽으로 아래턱뼈에 붙은 살이 들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안쪽 구조물과 조화를 시키고, 안에서부터 봉합을 하면서 동시에 겉 피부 봉합을 해야 되는데, 붓기가 빠지면서 입술선이 삐뚤어질 수 있기 때문에 힘들었다는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조 선생님의 설명을 듣던 우리 일행들은 찍어 놓은 사진을 보고서야 상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수술 받기 전 상태(왼쪽)와 3시간 동안의 수술을 받은 후의 모습(오른쪽)


“와, 선생님은 이제 몽골에서 할 일 다 하셨어요. 이젠 진료하지 말고 쉬세요.”
“아이고, 아닙니다. 그래도 역할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제 밥 좀 먹어야겠습니다.”

그 몽골 청년은 비용도 문제였지만 생각지도 않게 힘든 수술을 멀리 울란바타르까지 가서 받아야 할 뻔했는데 참 운이 좋았다. 이후 며칠 동안 조 선생님은 내과 환자들을 보면서도 드문드문 간단한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도 많이 보게 되어서 결코 할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 그 날 밤 평가를 위해 모인 우리는 밤늦도록 오늘 일에 대해서 얘기하며 조 선생님을 칭찬했다. 마치 우리가 겪은 일인 것처럼 보람 있어 하며.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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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0고병수/새사연 이사

 

해마다 오는 몽골 의료봉사지만, 언제나 진료하는 것보다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게 가장 힘들다. 올해는 인원이 많아서 3개 지역으로 나누어 봉사활동이 진행되는데, 우리 일행은 헨티 아이막(헨티道)의 운드르항이라는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아침에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저녁 6시 30분이었다. 우리보다 3시간을 더 가야하는 일행들은 밤 10시가 되어야 도착할 것이다(하지만 그 팀은 밤중에 초원에서 버스가 길을 잃어 헤매다가 밤 12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고 한다).

처음 몽골에 갔을 때는 드넓은 초원에 감격해서 버스가 쉴 때마다 사진도 찍고 초원의 풀냄새와 들꽃에 취해 감동을 하곤 했는데, 여러 번 오다보니 이제는 그저 버스에서 책을 읽거나 잠만 자게 된다. 그것은 4년 전 제주도 고향으로 내려와서 처음 산과 바다와 자연에 취해 감동받던 것이 이제는 심드렁해지는 무심한 적응 현상이다.


몽골의 보건의료 현황

몽골은 세계에서 6번째로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 인구는 280만 명 정도라서 인구밀도가 아주 낮다. 징키스칸에 의해 부족이 통일 된 후 원나라를 통해 강국이 됐지만, 이후 내부 분열과 중국의 간섭이 오래도록 지속되다 보니 1920년대까지는 후진국으로 전락해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1924년에는 당시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지원 아래 몽골인민혁명당을 유일 정당으로 해서 몽골인민공화국이 성립되어 독립국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몽골도 처음에는 후진성을 벗고 경제적 발전과 국가의 안정을 이루었다. 가축 수가 증가하고, 공업도 이루어지는 한편 문화발전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경직된 국가사회주의 정책으로 인해 경제발전이 답보되고, 언론?출판의 자유는 억압받게 된다. 더욱이 1990년대 동구권의 몰락과 소련의 붕괴는 몽골에도 자유화 바람을 불게 했고, 여러 정당들이 생기면서 1990년 7월에 비로소 민주적 절차에 의한 첫 자유선거가 이루어지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몽골에서 진료를 하다보면 몽골의 보건의료는 사회주의 정부 당시의 영향이 크고, 그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 많다. 자유주의 국가들처럼 인구가 많고 수입이 되는 지역에 가서 병원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정부 주도 아래 각 아이막의 중심 도시에는 종합병원을 지어서 지역의 중심의료기관이 되게 하였고, 솜(한국에서는 군(郡)에 해당)에는 기본적인 일차의료기관(보건소 비슷)을 만들어서 지역 의료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들은 장티푸스, 천연두, 파라티푸스 등 고질적인 전염병들을 퇴치하는데 앞장섰고, 질병 예방을 위한 기초 검진이 중요시 되었다.

주민들은 누구나 자신의 ‘건강수첩’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디를 가더라도 의사들이 건강상황이나 이전 진료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몽골이 사용하는 키릴문자와 러시아 문자가 비슷하기 때문에 글을 모르는 내가 볼 때는 비슷해 보여도 주민들이 내게 펼쳐보이는 건강수첩을 보면 가끔 러시아어로 쓴 글들이 있다. 의사들이 주로 러시아로 유학을 가거나 러시아어로 된 의학서적을 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미국에서 의학을 배우고, 그들의 의학서적을 가지고 공부하다보니 습관적으로 영어로 기록을 남기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건강수첩 겉표지(왼쪽 그림)와 개인 의료기록이 자세히 정리된 내용(오른쪽 그림)

인구의 절반이 수도인 울란바타르에 거주하고 있고, 각 아이막마다 중심도시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인구 2~5만 안팎의 도시들이다. 그 외의 국민들은 대다수 아직도 유목 생활을 하면서 드넓은 초원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사회주의 정부 아래에서는 모든 병원 이용과 치료는 무료였지만, 1990년대 자유화 이후 국가가 책임지던 보건의료서비스는 일부 개인 책임으로 바뀌게 된다. 여전히 응급치료, 예방, 임신부와 산모, 전염병 및 자연재해로 인한 질병 등은 무료이지만, 그 외는 많은 경우 진료를 받을 때 본인부담이 늘었다. 경제 발전은 더디면서 국가 책임의 의료시스템을 오래도록 하다 보니 국가재정에 부담이 가중되었고, 병원 시설이나 의약품 공급이 상당히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20년 사이에 사유화가 진행되면서 모두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이었던 것이 개인병원도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다. 의료 재정을 보완하고자 1994년부터는 의료보험이 시작되었다.


진료 준비

수도인 울란바타르에서 목적지까지는 400km밖에 안 되어서 서울과 부산 거리이지만, 길이 워낙 안 좋아 운 좋으면 10시간이고, 중간에 길을 잃거나 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새벽에 도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 몽골에 올 때는 몽골의 역사책을 한 권 들고 왔다. 차 안에서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건의료 자료도 조사해서 가지고 왔기 때문에 미리 몽골의 보건의료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에 우리 팀을 이끄는 단장님인 박형선 원장은 자꾸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 어디 갈 때 꼭 책을 읽는 척 하더라 하면서 방해를 놓았지만, 나는 꿋꿋이 책을 놓지 않았다.

몽골은 아직도 결핵이나 바이러스성 간염, 기생충 질환 등 전염병 유병률이 많다. 게다가 그들은 육식을 주로 하면서 채소 섭취가 부족하고, 운동이 부족하다보니 심혈관계 질환들이 많다. 고지혈증, 동맥경화, 고혈압, 당뇨가 정말 많다. 거의 생활습관병들이다. 우리 일행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초원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다. 같이 가는 통역이나 안내원들도 같은 점심을 먹는데, 그들은 그 정도로 양이 안 차는지 비닐에 싸서 가져온 양고기나 다른 육류를 꼭 먹어야 했다. 그들이 자주 먹는 양고기는 기름도 엄청 많다.

목적지인 운드르항에 와서 짐을 풀고 내일부터 있을 진료 준비로 부산하게 움직인다. 다행히도 헨티의 유일한 종합병원에서 일부 진료실을 이용하도록 허락 받았기 때문에 다소 편하게 진료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요한 장비들은 각자 사용할 수 있는 진료실로 가져다 놓고는 병원을 죽 둘러보고는 저녁을 만들어 먹고, 진료 준비 회의까지 마치고서야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숙소는 근처 고등학생들이 학기 중에 묵는 기숙사였다. 침대에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이 지역이 사람들이 많던데, 내일 너무 많은 주민들이 몰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가지고 온 약품이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걱정, 자원봉사자들이 제대로 움직여줘야 힘들지 않을 텐데 하는 걱정......

그래도 구름 낀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면서 몽골의 이틀째 밤이 깊어갔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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