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5 / 18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유럽위기가 또 다시 위험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그 여파로 하루에 50포인트 이상씩 연속적으로 주가가 추락하고 있는 국내 주식시장도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 중심에 그리스의 채무위기가 있다. 2010년 5월에 1차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만 2년이 지났지만 그리스 채무위기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었고, 2차 구제금융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전혀 해소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지난 5월 6일 총선에서 긴축에 반대하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제2당이 된 후 연립정부 구성이 실패하고, 6월 17일로 재총선 실시가 확정되면서 위기는 증폭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스 국민들이 총선을 통해 유럽연합이 요구하는 긴축을 거부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리스가 긴축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경고의 의미로 4개의 그리스 은행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전격적으로 차단했다. 그러자 5월 14~15일 동안 그리스 은행에서 12억 유로의 예금이 인출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스의 위기는 이제 마지막 임계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5월 16일자 기사에서 향후 그리스의 상황은 4가지 시나리오가 있다고 전했다. 첫째는 그리스의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로서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라고 보고 있다. 둘째는 유로 존에 남아있되 유럽이 요구하는 긴축안을 거부하는 것이다. 6월 총선에서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좌파연합도 이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에서 이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셋째는 지난 3월에 유럽과 그리스가 합의한 긴축안을 재협상하는 것인데, 그러자면 유럽 국가들이 그리스에 대한 구제 금융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 유럽 전체가 침체에 돌입한 상황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다. 마지막은 그리스가 기존 합의대로 긴축을 수행하는 것인데 거의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현재 그리스의 디폴트 선언과 유로 존 탈퇴 가능성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뉴욕대학교의 루비니(Nouriel Roubini) 교수는 그리스가 유로 존을 탈퇴하고, 유로 국가들은 이 과정이 질서있게 진행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실 루비니 교수는 지난해부터 계속 그리스의 유로 존 탈퇴가 불가피할 뿐 아니라 탈퇴하는 것이 그리스와 유로 존을 살리는 방법이라고 주장을 해왔다..("Greece should default and abandon the Euro", 파이낸셜 타임즈 2011.9.19) 긴급한 유럽의 상황과 그리스의 운명을 진단해보는데 루비니 교수의 주장은 검토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스는 유로존을 탈퇴해야 한다

(Greece Must Exit)

 

2012년 5월 17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그리스의 비극이 막바지 상황까지 이르렀다. 올해 또는 내년 중에 그리스가 채무 디폴트를 선언하고 유로존을 탈퇴 할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6월 17일 2차 총선을 통해 들어선 새 정부가 유로존 탈퇴를 유보한다고 해도 지금까지처럼 긴축과 구조개혁이라는 실패한 정책을 답습한다면, 그리스 경제는 회복되기 어렵다. 그리스는 채무부담의 악순환, 경쟁력 상실, 대외 부채, 그리고 계속 악화되어 가는 경기침체에 직면해 있다. 이를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질서 있는 디폴트와 유로 존 탈퇴이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위원회(EC),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라고 하는 '트로이카(Troika)'가 이 과정을 조정하고 그리스와 나머지 유로 국가에 닥칠 붕괴 충격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트로이카의 감독아래 이뤄진 최근의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은 그리스가 필요로 하는 것에 비해서 많이 부족한 규모였다. 그러나 설사 더 많은 공공부채가 경감되어도, 조속한 경쟁력 회복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리스 경제는 성장 국면으로 되돌아오기 어렵다. 성장 국면으로 되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리스는 더 이상 부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결국 실질 통화가치 절하를 실시할 수밖에 없다.

첫 번째 가능한 선택은 유로화 가치를 급격히 떨어뜨리는 것인데, 이는 독일이 워낙 완강하고 ECB도 확장적 통화정책을 공격적으로 시행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다. 두 번째는 임금을 초과하는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도록 구조적 개혁을 통해 단위 노동비용을 급격히 줄이는 것인데 역시 가능성이 없다. 독일이 이런 방법으로 경쟁력을 회복하는데 10년이 걸렸다. 그리스가 앞으로 10년 동안이나 침체상태로 있을 수는 없다. 세 번째 선택지는 내부적 평가절하(internal devaluation)라고 부르는 방식인데, 상품가격과 임금을 급격하게 떨어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향후 5년 동안 더욱 심각한 경기침체를 가져올 것이다.

위의 세 가지 방법이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남은 유일한 방법은 유로존을 떠나는 것이다. 자국통화 드라크마화로 복귀하여 급격한 통화절하를 통해 조속히 경쟁력을 회복하고 경제를 성장세로 돌려놓는 것이다.

물론 유로존 탈퇴 과정은 상당한 외상을 남길 것이며, 이는 그리스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로존의 핵심 금융기관들이 겪게 될 자본 손실이다. 그리스 정부와 은행,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유로표시 대외채무도 갑작스럽게 폭등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들은 모두 극복 가능하다. 2001년 아르헨티나도 달러 부채를 페소화(pesofied)시키면서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미국도 1933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당시 국제 규범을 무시하고 달러를 69%나 절하시켰다. 그리스도 유로 부채의 드라크마화(drachmatization)가 필요하고 불가피하다.

만약 은행들이 적절하고도 적극적으로 재자본화(recapitalization, 역주 - 화폐 가치나 물가가 변동할 때 그 수준에 맞도록 자본의 화폐표시액을 수정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표시된 가격은 변할지라도 자본의 가치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를 수행한다면, 유로존의 은행들이 겪게 될 자본 손실로 인한 고통은 관리할 수 있다. 그리스 은행 체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은행 일시 휴업이나 자본 통제와 같은 임시적인 비상수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무질서한 예금 인출사태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안정기금(EFSF/ESM)은 직접적인 자본공급을 통해 그리스 은행의 재자본화를 수행해야 한다. 유럽 납세자들에게 그리스 은행을 인수인계해주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의 드라크마화로 인해 채권자가 부담하는 손실을 부분적으로 보상해줄 수 있다.

또한 그리스의 공공부채를 구조적으로 조정하여 감축시켜야 한다. 트로이카가 그리스에 요구할 것은 부채의 액면가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만기를 10년 정도 연장시켜주고 이자를 줄이는 것이다. 이자 지불 유예 선언과 함께 민간 채권자에 대한 추가적인 헤어컷(채무탕감)도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 지금보다 실질 GDP가 더 많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지금의 경기침체 상태에서는 실질 구매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부채의 실질 가치는 증가한다. (이를 부채 디플레이션이라 한다.) 하지만 유로존 탈퇴는 장기침체를 겪지 않고도 통화 가치 하락을 통한 즉각적인 경제회복을 가져올 수 있다. 드라크마화로 인해 유로존 내에서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 무역 손실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유로존 GDP에서 그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로화에서 드라크마화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경쟁력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것 이상의 환율 하락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도 있고 대외 부채가 드라크마화 되면서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트로이카는 그리스의 환율이 오버슈팅(일시적 급등)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본통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다른 국가들도 위험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 역시 적절하지 않다. 다른 주변 국가들은 이미 그리스와 같은 심각한 부채를 문제를 갖고 있으며,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 그러한 예로 포르투갈을 들 수 있는데, 마침내는 부채를 구조조정하고 유로존을 탈퇴할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와 스페인과 같은 경우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여부와 관계없이 유럽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IMF와 ESM, ECB의 유동성은 유로존내의 문제가 되는 모든 국가와 은행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스가 어떻게 되는지와 상관없이 유로존의 은행들은 조속한 재자본화를 필요로 한다. 유럽연합의 직접적인 자본 개입을 통한 광범위한 해결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아이슬란드의 경험과 지난 20년 동안 많은 신흥시장에서 볼 수 있듯이 명목 통화가치 절하와 대외 부채에 대한 질서있는 구조조정과 감축은 경제의 지속성, 경쟁력, 성장을 가져왔다. 이런 경우들처럼 그리스 역시 유로존 탈퇴가 가져오는 부수적 피해를 감수하며 회복되어야 한다.

지금은 이혼을 피할 수 없는 불행한 결혼과 같다. 결국 양쪽 모두에게 최소한의 피해를 주는 이별이 되도록 규칙을 잘 세워야 한다. 실수가 있어서는 안된다. 질서있게 진행된다 해도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서히 무질서하게 그리스 경제와 사회가 붕괴되는 것이 훨씬 더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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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1 / 04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전망기획(2) 2012년 세계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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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성장 동력을 상실한 선진국 경제
2. 대차대조표 침체(Balance Sheet Recession)
3. 유럽에 찾아온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4. 2012년의 주요 경제 리스크
5. 미국과 유럽발 경제 위기의 국내 전염에 대비해야

[본문]
1. 성장 동력을 상실한 선진국 경제

올해 세계경제 전망이 우울하다. [그림1]은 주요 국가 및 지역의 2008년 이후 경기선행지수를 나타낸 것이다. OECD 국가들은 2010년 2월 102.98로 정점을 찍고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현재 100.1을 기록하고 있다. 경기선행지수는 실물경제에 비해 6개월 정도 선행한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2010년 3사분기부터 OECD 국가들의 실물경제는 이미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고 전망 또한 침체가 지속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의 경기선행지수 움직임과 매우 유사하며 다른 OECD 국가들보다 지수가 1분기 정도 선행함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3사분기부터는 유럽 재정위기가 더욱 확산되면서 경기선행지수 뿐만 아니라 수출, 소매, 생산 등 실물지표와 소비자와 기업의 체감지표 등이 유럽을 중심으로  악화되고 있다. [그림2]에서 보이듯이 수출과 수입을 포함한 세계 무역량도 2010년 5월을 고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지표를 보면 수출과 수입은 전년동월대비 각각 5.1%, 3.2% 증가에 그쳤다. 따라서 2010년 하반기부터 시작되어 지난 해 유럽재정위기의 여파로 가속화 된 긴축적 정책기조가 계속된다면, 올해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표1]은 IMF와 UN이 제시한 2012년 주요 국가 및 지역별 세계경제 전망이다. IMF는 9월 전망에서 6월보다 0.5%p 하락한 4%를, UN은 11월 전망에서 6월보다 1%p 하락한 2.6%를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유럽의 재정위기가 통제되고, 주요 은행의 파산과 새로운 신용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유동성위기를 방지하도록 적절한 정책수단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 기본(baseline)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그림3]에서 보이듯이 유럽

차원의 정책 대응이 실패하고, 유로존에서 무질서한 파산과 디폴트가 이어질 것이라 가정하는 부정적(pessimistic) 시나리오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0.5% 성장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미국은 -0.8%, 유로지역은 -2%의 경제성장을 보여 2009년에 비견되는 경기침체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OECD가 지난 11월 발표한 경제 전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표2]에서 보이듯이 OECD는 2012년 세계경제가 3.4%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지난 5월 전망치에 비해 1.2%p 하향 조정된 수치이다. OECD 국가들의 성장률은 올해 1.9%에서 내년에는 1.6%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였다. 특히 유로지역 성장률은 올해 1.6%에서 내년에는 0.2%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더군다나 이 전망치 또한 유로지역의 “무질서한 디폴트, 급격한 신용붕괴, 체계적 은행파산, 그리고 과도한 재정긴축을 피하기 위해 정책당국이 충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재정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은 스페인(0.3%)을 제외하고 모두 마이너스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마이너스 경제에 빠진 PIGS 국가들은 금융위기와 긴축정책 등으로 내년까지 5년 연속 장기 경기침체에 빠져들 것이 확실하다.

2. 대차대조표 침체(Balance Sheet Recession)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선진국경제는 경기침체 또는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채’가 만들어 낸 자산시장 버블이 전 세계적으로 붕괴되면서 일반적인 경기침체와는 분명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전국적인 부채주도형 자산시장의 버블이 붕괴되어 발생하는 경기침체를 대차대조표 침체(Balance Sheet Recession)라 부른다. 대표적인 예가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시장 버블 붕괴에 따른 장기 경기침체다.

부채 주도의 자산시장 버블이 터질 때, 가계와 기업, 그리고 금융회사의 대차대조표 또한 망가지기 마련이다. 경제주체들은 금융건전성과 신용등급을 회복하기 위해  저축을 늘리고 부채를 상환한다. 이 과정에서 거시경제의 총수요는 줄어든다. 경기침체에 따른 지출 축소를 감당하기 위해 정부는 적극적 재정 및 통화정책을 통해 이에 대응한다. 그러나 유럽처럼 가계 및 금융회사의 위기가 정부의 재정위기로 전환될 경우 긴축정책은 총수요 부족을 더욱 악화시킨다. 긴축정책은 성장률 전망을 낮추고, 부채상환 여력을 뜻하는 GDP 대비 정부부채의 비율을 악화시켜 더욱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요구하는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림4]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의 부동산가격은 2006년까지 대략 2.3~2.4배 상승하였다. 비단 미국만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었다. 최근 유럽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PIIGS 국가들 또한 미국과 거의 유사한 부동산가격 패턴을 보였다. 다만 유럽은 2008년 9월 리먼 사태까지 버블의 붕괴 시점이 지연되었을 뿐이다. 유럽에서 미국처럼 부동산 버블이 심각했던 국가는 스페인과 아일랜드, 그리고 이탈리아다.

버블 붕괴의 근원지는 미국이었지만 경기침체는 미국보다 유럽이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다. 유럽은 부동산 버블 붕괴와 재정위기, 그리고 유로화 시스템의 근본적 문제점이 동시에 표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직전 미국경제가 버블로 호황을 유지했던 것처럼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도 유로화 편입에 따른 저금리와 부동산 버블을 경험하였다. 1999년 유로화가 출범했고 2001년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하였다. 유로존에 편입된 국가들은 유로화를 사용함에 따라 금리와 환율을 통제할 수 있는 정책주권을 포기하게 된다. 기준금리의 통제권은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Bundesbank)의 전통을 따르는 유럽 중앙은행(ECB)이 쥐게 되었다. 각국 정부는 유로화로 표시된 국채를 발행할 수 있었고, 각국의 상업은행은 이를 담보로 유럽중앙은행에서 아주 저렴하게 유로화를 빌릴 수 있었다. 유로화와 유럽 중앙은행의 상징적 안정성은 오히려 부채를 통한 자산시장 버블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미국과 똑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림5]에서 보는 것처럼, 유럽통합과 유로화 출범 과정에서 재정위기를 겪고 있던 국가들의 금리가 급격하게 하락하였다.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를 사용한 덕분에 가장 안정적이라 여겨지는 독일의 국채를 기준으로 국채수익률이 점차 수렴하기 때문이다. 1993년에 스프레드가 18%가 넘었던 그리스의 국채수익률은 유로존에 편입된 2001년에는 1% 아래로 떨어졌다. 외환리스크가 사라지면서 그리스를 포함한 PIIGS 국채를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이 높은 수익률을 좇아 대량으로 매입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1994년에만 해도 그리스 정부 부채의 85%를 국내 금융기관이 보유했지만, 2007년에는 이 비율이 완전히 뒤바뀌어서 75% 이상을 해외 금융기관이 보유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외환리스크는 해소되었지만 채권의 부도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리스크는 증가하였다. 2008년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재정지출 확대와 구제금융은 정부의 재정적자를 증가시켰고, 이는 잠재된 신용리스크를 일시에 표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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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1 / 03 정태인/새사연 원장

전망기획① 2012년 양대 선거와 한국사회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차]
1. "역사로서의 현재" - 3중의 위기와 "대침체에서 장기 침체"로.
2. "87년 체제"의 위기와 "거대한 전환"
3. "정권교체"에서 "시대교체"로.

[본문]
1. “역사로서의 현재” - 3중의 위기와 “대침체에서 장기침체로”

2012년 우리는 양대 선거를 앞두고 있다. 꼭 이겨야 한다는 당위를 확인하기 전에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역사의 좌표를 확인해야 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스위지는 이런 역사의식을 “역사로서의 현재”라는 말에 담았다. 우리의 역사적 현재는 1929년 대공황 이래 자본주의 최대의 위기이다. 1990년대 말 미국정부는 IT 버블이 붕괴하자 재빨리 부동산 버블로 바꿔치기 했다. 그 수단은 금융규제완화와 금리 인하였고 그 결과가 2008년 리만브라더스 파산을 계기로 초래된 현재의 세계 금융위기이다. 2009년 전 세계적 금융완화정책과 재정확대정책으로 각국의 성장률이 회복기미를 보이자 G20의 세계적 차원의 개혁도, 또 오바마의 내부 금융개혁도 흐지부지 끝났다.

2010년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에서 시작된 유럽의 재정위기로 제2차 위기가 촉발되었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같은 통화를 쓰면서도 경쟁력이 취약한 나라에 대한 보조금을 거부했기 때문에 생긴 사태이다. 비유하자면 우리 정부가 강원도에 대한 지역교부금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해서 서울이 강원도로부터 막대한 교역 이익(경상흑자)을 거두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로 현재의 유럽 위기는 내부의 위기이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재정통합을 하는 대신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유로화 표시 국채를 발행해서 독일이나 프랑스 등 역내 강대국의 은행들이 인수하도록 했다. 재정이 해야 할 일을 금융으로 해결한 것이다. 미국이 소비와 재정을 재무성 증권으로 조달하고, 유럽이 재정을 역내 금융으로 바꿔치기 한 것은 모두 신자유주의 금융 시스템을 만능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은, 대규모 적자로 인해 재정확대정책도 쓸 수 없고 이미 0%에 이른 금리 때문에 금융완화정책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바야흐로 선진국 전체가 일본형 장기침체에 빠져들고 있다. 바야흐로 “대침체”(Great Recession, 대공황과 비교하기 위해 학자들이 2008년 위기에 붙인 말)는 “장기침체”(Long Recession)로 전환되고 있다.

세계경제는 글로벌 불균형과 국제통화체제의 위기도 동시에 맞고 있다. 이 위기는 새로운 국제통화와 국제청산시스템을 도입하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는데, 달러를 포기할 수 없는 미국의 힘은 여전히 강하고, G20는 IMF 기금을 조금 늘리는 정도의 밖에 합의하지 못했다. 위기 이후에 어떤 세상이 펼쳐져야 할지에 관한 새로운 정책체계도 나오지 않았다. 1945년 이후의 복지국가를 뒷받침한 케인즈이론이 1930년대에 출간됐고, 1980년대를 풍미한 통화주의이론이 1960년대에 정립된 것에 비하면 위기 이후의 사회의 이론은 오리무중이다. 학문의 제국주의를 일삼으며 오만을 떨던 경제학은 이미 붕괴했다. 중장기 비전이 없는 상태에서 당장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은 “환율법”(환율을 조작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나라에 무역보복을 할 수 있게 한 보호무역법안)과 제3차 양적 완화(달러의 증발)로 또 한편의 환율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100년이 넘는 주기를 갖는 패권 주기도 최저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구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정점에 올랐던 미국의 단일 패권은 쇠퇴 기미가 역력한데 이를 대체할 패권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위기 이후 G2로 급부상한 중국이 새로운 헤게모니 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20년 이상 걸릴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세계는 중미간의 위태로운 힘겨루기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는 그 한 복판에 있다. 이렇게 10년 주기, 60년 주기, 그리고 패권 주기가 모두 최저점에 이른 상태를 나는 “3중의 위기”라고 불렀다(경향신문, 2009. 1.12).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석유의 생산이 정점에 이르는 오일피크가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으며(전문가들은 2015년경으로 예측한다) 글로벌 기후변화 역시 다음 세대의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머지 않은 장래에 에너지/석유 위기가 겹칠 가능성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이 이런 문제를 곧 해결하리라고 믿기에 너무나 큰 위기들이 첩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기가 다른 위기, 즉 시간대(time span)가 다른 위기가 중첩되고 있다는 것은 해결의 주체와 영역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로서의 현재”는 2012년 총-대선이라는 구체적인 한국 상황(알뛰세 표현으로 말하자면 conjuncture)에서 중첩적인 과제의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즉 우리는 위기의 각 영역에 고유한 해결 방향을 찾아내고, 2012년 한국이라는 정세 안에서 그 방향을 당장 실현할 하나의 가치와 비전으로 제시해야 하는 지난한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하나 하나의 위기 해결 방향조차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이런 작업은 고도의 추상성과 상상력을 요구한다.

2. “87년 체제”의 위기와 “거대한 전환”

세계경제 뿐 아니라 한국 내부에도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고 있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부풀어 오른 부동산 버블과 이에 긴밀히 묶여 있는 가계부채가 바로 그것이다. 2009년 세계적 경기자극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한국의 수출대기업이었고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은 버블 붕괴의 초침을 잠깐 묶어두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제 시작된 세계경제의 장기침체는 90%를 넘나드는 대외의존도의 한국경제를 바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고 자동차의 내수는 거의 늘어나지 않고 수출 증가율 역시 반토막 날 지경에 이르렀다. 1100원대에서 방어해 온 환율마저 무너진다면(현재는 유럽위기의 여파로 달러가 강해지고 있지만) 실물침체가 금융경색으로 이어지고, 부동산 버블 붕괴가 다시 금융위기를 불러올 위험마저 있다. 내부에서 파들거리고 있는 부동산 가격이 급락해도 1980년대 후반 미국의 S&L 위기처럼, 제2금융권으로부터 시작하는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진행되어 온 양극화는 사회 전체에 절망, 즉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금융자유화와 가계신용의 확대, 민영화와 규제완화 그리고 부동산/증권 투기는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 지표들을 가파른 비율로 상승시켰다. 주거, 교육/보육, 일자리, 노후, 건강 걱정이라는 이른바 ‘5대 불안’은 그 직접적 결과이다.

한국 정부의 시장만능주의는,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와 외환위기, 뒤이어 IMF의 강요와 내부의 적극적 협력으로 진행된 김대중 정부의 노동유연화, 민영화와 규제완화,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추진과 이명박 정부의 비준으로 그 정점에 이르렀다.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6월 항쟁”으로 시작된 “87년 체제”는 군부독재를 종식시켰을 뿐, 새로운 사회경제체제 모델이 자리를 잡지 못한 체제였다.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정권을 잡은 “민주정부”는 자기 고유의 사회경제모델을 실행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모델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 시기에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클린튼-블레어정부가 그랬듯이 적나라한 신자유주의에 약간의 훈기를 불어 넣었을 뿐 시장만능으로 치닫는 시대를 역전시키지 못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탄했듯이 민주정부는 새로운 시대의 장자가 아니라 구시대의 막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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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북]2012년 경제, 유럽을 알아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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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여는글

◆ 유럽 국채시장은 왜 붕괴하고 있는가(여경훈)
1.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쩔쩔매게 만든 유로 퍼즐
2. 통화주권을 포기한 처절한 대가
3. 국채시장 붕괴의 배경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있다.

◆ 유럽위기: 긴축은 위기해법이 될 수 없다(여경훈)
1. 긴축, 그 위대한(?) 반전
2. 합성의 오류, 가계와 정부는 다르다.
3. 조정, 손뼉을 마주쳐야 한다.

◆ ‘하나의 통화, 하나의 시장’꿈의 좌절(김병권)
1. 그리스 디폴트를 넘어 유로 존 존립이 의문
2. ‘하나의 시장, 하나의 통화’에 대한 꿈
3. 유럽 연방과 유로 지역 해체 사이에서

◆ 유럽위기와 동아시아, 한국. (정태인)
1. “유럽의 꿈은 사라졌는가.”
2.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과 한국경제에 대한 함의

<<분열의 벼랑 끝에 몰린 유럽, 세계경제를 흔들다.>>

 “그리스는 지난해 최대 공기업 그리스 전력과 피레우스 항구, 엠포리키 은행 등 팔릴만한 정부 재산은 모조리 매물로 내놨다. 국유자산을 매각해 2015년까지 500억 유로를 마련한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11월 이동통신 주파수를 3억 800만 유로에 매각한 것을 제외하곤 투자자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유서 깊은 고대국가 그리스가 팔리고 있다면서 국가 채무의 늪에 빠진 그리스가 중요 국유자산을 팔아 빚을 갚아야 하는 처참한 현실을 소개한 언론의 보도 일부이다. 위기의 진원지인 남유럽 국가들의 생활현장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 세계가 2008~2012년까지 중앙은행 자금을 풀고 정부 빚까지 내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반짝 회복 효과에 그쳤을 뿐, 2008년 이후 세계경제는 좀처럼 성장활력을 찾지 못하고 장기 침체 국면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지난 30년 동안 누적시켰던 구조적 문제, 즉, 국내적 소득 불평등과 국제적 무역 불균형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난제 때문이다.

1%를 위한 경제가 한계에 이르다.

신자유주의 금융화, 단기 수익추구, 노동 유연화는 다수 노동자와 국민들의 소득을 억제하면서 기업과 금융의 이익을 극대화시켜왔다. 그 결과, 사회 구성원의 1%는 소득이 비약적으로 팽창했고 99%의 소득은 제 자리 걸음이었다. 각 국가 국민경제의 소득 불평등이 구조화된 것이다. 그러나 99%의 국민들의 소득으로 소비를 늘리지 않고서는 기업이 생산한 상품을 팔수도 없고 경제가 발전할 수 도 없다. 그것이 경제다. 빼앗기는 자가 죽어 나가면 빼앗는 자도 살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2007년까지 경제가 발전한 것은 빚을 얻어서 소비를 늘렸기 때문이다.

전 세계 소비를 주도했던 미국 시민은 매년 자신이 번 소득의 110%를 소비했다. 저축을 한 푼도 하지 않고 소득을 모두 써버렸을 뿐 아니라, 추가로 빚을 얻어 소비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외형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른바 ‘적자 호황’국면이 그렇게 1990~2000년대를 풍미하면서 미국인들이 ‘대 안정기’라고 부르는 호시절을 누렸던 것이다. 특히 구입비용이 많이 드는 주택과 자동차 등을 빚을 얻어서 구매했고 그 결과가 2008년 금융위기다. 이제 금융위기로 부채를 더 늘리는 것은 고사하고 이미 늘어난 빚을 줄이는 국면으로 반전되었다. 번 소득의 최소한을 빚 갚는 곳에 쓰고 나머지를 모조리 소비해도 이제 2007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소비가 늘지 않고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 근본적이 이유다.

그러면 적자호황 뒤에 이어진 부채 축소의 긴 침체기를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 상식적으로 간단하다. 이제부터라도 1%에 집중된 부를 99%에게로 되돌리고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것이다. 돈을 쓰고 먹고살 수 있는 여력을 확충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1%가 과거처럼 탐욕스럽게 이익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규제를 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1%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서 99%에게 재분배 해주어야 한다. 사적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게 하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공공일자리를 만들어 국민들이 일을 하고 소득을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에 전 세계 청년들과 시민들이 불평등을 혁파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게 된다. 그것이 2011년 타임지가 선정한 인물인 바로 ‘시위자(Protesters)'이다. 아랍의 민주화 시위자, 스페인의 분노하는자. 미국의 월가시위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우리는 99%(We are the 99%)‘라는 구호를 걸고 1%의 탐욕에 저항하는 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2012년 세계경제의 희망은 99%운동이 얼마나 더 사회지형을 바꿀 것인지에 달려 있을지 모른다.

 역내 불균형이 유로 통화권의 진짜 위기

국내적인 소득 불평등에 이어 또 하나의 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국제적인 불균형이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과 미국 사이의 무역 불균형이다. 미국은 미국 시민을 고용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대신 중국의 값싼 상품을 수입해 소비했고 월가를 중심으로 금융 산업만 비대화시켰다. 그 결과 돈은 중국과 월가로 집중되었다. 중국으로 흘러간 돈은 다시 미국 국채와 교환되면서 미국으로 되돌아 왔고 미국 시민들은 그것을 빚으로 얻어서 또 소비를 했다. 그럴수록 중국에는 미국 국채로 표시된 외환 보유고가 쌓여갔고, 반대로 미국은 국가부채와 가계 부채가 늘어났다. 2008년 금융위기의 국제적인 요인이 이것이다.

한편, 중국과 미국 사이의 불균형에 비견되는 국제적 불균형이 바로 최근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유럽의 위기 속에도 있었다. 유럽의 위기는 흔히 그리스를 필두로 한 남유럽 국가들이 재정위기로 알려졌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상에 불과하다. 정부의 방만한 살림운영과 ‘놀고 먹은’ 남유럽 시민들에 대한 과도한 복지지출 때문에 재정위기가 발생했다는 평가는 사태를 전혀 잘못 파악한 것이다. 복지지출이라면 남유럽 국가 보다는 북유럽 국가가 더 많다. 재정적자 수자만 놓고 보면 일본이 국내총생산 대비 220%로 세계 최고다. 미국도 100%에 근접했다.

유럽 국가채무위기는 유로 통화권 내부의 경상수지 흑자 국가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오스트리아와 적자국가인 남유럽 국가 사이의 무역 불균형에 있는 것이다. 유로 통화와 단일시장으로 이들 사이의 경쟁력과 무역수지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차가 커졌다. 그 결과 남유럽 국가들은 독일과 프랑스 은행 등에 국채를 발행하고 돈을 빌려왔다. 그럴수록 남유럽 국가들의 대외채무는 점점 늘어갔다. 그러나 단일 통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통화정책, 금리정책, 환율정책을 사용하여 경상수지 불균형을 조정할 수도 없다. 이것이 남유럽 국가들의 대외 채무위기로, 그리고 북유럽 은행들의 채권부실 위기로 표현된 것이다. 유로 통화권의 불균형이 유럽을 위기로 몰아넣고 유로 존을 붕괴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중국만이 세계경제의 유일한 희망인가?

국내적 소득 불평등과 국제적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함으로써 세계경제는 동력을 잃고 또 다시 어려운 국면에 진입했다. 2012년은 유럽의 붕괴위기가 미국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파급되면서 한국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경제는 세 개의 주요 축에 의해 움직여왔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와 유럽의 유로 통화동맹과 그리고 세계의 생산기자 중국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는 2008년을 분기점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금융은 이제 미래의 성장 동력이 아니라 규제의 대상이고 구조조정의 대상이다.

2010년부터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한 유로 통화동맹도 점점 더 근원적인 문제들을 노출하고 있다. 유로 존의 해체냐 유럽 합중국을 향한 재정통합이냐의 갈림길에 들어선 것이다. 유럽 시민의식(European citizen)이라는 연대의식도 갖춰지지 않은 채 자유 시장 논리에 의해 유럽의 통합을 기대했던 희망은 무너졌다. 현재로서는 유럽 주변국을 향한 거대한 마샬플랜 정도가 아니라면 재정통합은 불가능하다. 유로 존의 해체가 임박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세계경제 지탱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규모 10%를 차지하면서 2위 경제권으로 부상한 중국이 세계경제의 마지막 지탱축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수출을 매개로 글로벌 무역불균형에 편승하여 10%대의 안정적인 고성장을 구가해왔다. 신자유주의 세계경제호황의 덕을 보면서 그 한 축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대외적 요인에 의지해 성장할 수 없게 되었다. 유럽 위기가 현재화되자 2011년 말부터 중국 수출은 10%대로 줄었고 2012년은 한자리 수를 지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표현대로 ‘중국 경제발전 모델을 전환‘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과연 중국은 2012년에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를 지탱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어쨌든 2012년 세계경제 향방은 일단 유럽이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세계경제를 알려면 유럽을 먼저 파악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연구원은 지난해 연말, 긴박해지는 유럽위기 국면을 해부하고자 시사 주간지 <시사 IN>에 4차례에 걸쳐 유럽위기를 연재하고 유럽은 구조적 결함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어 전망이 매우 비관적임을 예시한 바가 있다. 올해 유럽의 향방을 판단하는 준거로 충분히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테마북으로 엮어 보았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2012년 1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김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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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12 / 12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유럽 재정위기②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차]
1. 긴축, 그 위대한(?) 반전
2. 합성의 오류, 가계와 정부는 다르다.
3. 조정, 손뼉을 마주쳐야 한다.

[본문]
긴축, 그 위대한(?) 반전

내년 세계경제 전망이 어둡다. 최근 OECD는 회원국들의 성장률이 올해 1.9%에서 내년에는 1.6%로, 유로지역의 경우 1.6%에서 0.2%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 마저도 유로지역의 “무질서한 디폴트, 급격한 신용붕괴, 체계적 은행파산, 그리고 과도한 재정긴축을 피하기 위해 정책당국이 충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재정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은 스페인(0.3%)을 제외하고 모두 마이너스 성장률을 예상했다. 세계경제 이상으로 유럽 재정위기 해결이 어둡다는 것을 말해준다.

재정위기의 바로미터인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재정적자, 금리, 그리고 성장률에 주로 의존한다. 따라서 정부가 균형재정을 유지하더라도 금리가 성장률을 상회하면 이 비율은 증가하게 된다. 현재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 금리가 7%를 넘고 있는데, 성장률이 마이너스이면 부채 비율이 늘어날 것은 확실하다. 그리스의 경우 작년에 트로이카(EU, ECB, 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2014년까지 GDP의 3% 이내로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가부채 비율은 2008년 118%에서 내년에 181%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왜인가? 재정위기에 대한 트로이카의 처방, 즉 긴축정책이 지극히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3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이 대세였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재정지출 축소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 전체와 미국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그리스 재정위기가 방만한 복지지출 탓이라면서 이를 교훈삼아 한국정부도 과도한 복지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하고 재정균형을 조기에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과연 긴축이 재정위기의 해법이고 경제위기를 막기위한 적절한 처방인 것인가.

그렇다면 긴축정책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분기점은 언제일까. “선진국 경제는 2013년까지 재정적자를 적어도 절반으로 줄이고, 2016년까지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을 줄이거나 안정화시킬 재정계획을 약속한다.”고 선언했던 2010년 6월 G20 토론토 정상회의라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180도로 경제정책의 기조가 바뀐 것일까? 당시 경기부양에서 재정긴축으로 정책 기조가 완전히 바뀌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중요한 경제적 환경의 변화가 있었다. 우선 성장률이 예상보다 너무 좋을 정도로 회복속도가 빨랐다. 2009년 4월 런던 정상회의 즈음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은 1.9%였으나 그 해 9월에는 2.6%로 상승했고 토론토 정상회의가 열리던 작년 6월에는 3.5%까지 증가했다. 일시적인 경기회복 분위기에 편승해 안이하게 정책기조를 틀어버린 것이다.

다음으로 토론토 G20회의 직전인 2010년 3월부터 그리스와 남유럽 재정위기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하기 시작했고, 영국의 우파정부 집권과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미국의 재정위기 논란이 정치적으로 국제적 여론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1936년 재선에 성공하고서 재정지출을 삭감하고 금리를 인상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경제정책 실수에 비견할 만하다. 그리고 ‘작은 정부’의 기치를 내건 대처와 레이건의 ‘보수 반혁명’에 필적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큰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금융위기를 예상하지도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며 숨죽이고 있던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국가재정위기’라는 용어를 빌려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분명 ‘위대한 반전’이다. 그러나 그릇된 정치는 경제적으로 심각한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유럽 재정위기, 세계적인 성장률 하락, 그리고 실업률 상승이 바로 그 징표들이다.

합성의 오류, 가계와 정부는 다르다

경제학에 능통하지 않은 일반인들은 자신의 개인적 상황을 사회 또는 경제 전체의 상황으로 추론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가계의 일시적 적자는 저축이나 빚을 활용하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자가 지속되면 빚이 늘어나고 원리금 상환액이 눈사태처럼 불어나면서 파산에 빠지게 된다. 보수적인 정치인이나 언론은 정부의 재정적자 문제를 가계의 예산 문제에 빗대어 “지금 당장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언뜻 그럴싸한 소리다.

그러나 여기에 치명적 오류가 숨겨져 있다. 바로 거시경제학에서 말하는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다. 케인즈가 ‘일반 이론’에서 지적했듯이 “총량으로서 경제적 행위에 대한 이론과 개별 단위의 행동에 대한 이론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케인즈는 ‘저축의 역설’을 통해 합성의 오류를 설명한다. 한 개인은 소비를 줄여 저축을 늘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빵집에서 매일 빵을 아침으로 먹는 길동이가 일주일에 한 번은 빵을 사지 않고 저축하기로 결정했다고 가정하자. 물론 배고픔을 대가로 그의 저축액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이 행동하면 총저축은 늘어날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빵 판매가 줄어들면 점원을 줄이고, 밀가루, 고기, 야채 등의 주문도 줄어 고용이 줄어 들 것이다. 일자리를 잃은 점원은 소득이 줄어들어 오히려 저축을 줄여야 할 것이다. 이 사례에 담겨 있는 함의는 개인의 저축행위가 타인의 소득에 미치는 효과를 간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정부는 개인과 달리 총수요의 한 부문을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경제주체다. 특히 남유럽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정부지출은 GDP의 40%를 초과한다. 경제는 크게 가계와 기업을 포함한 민간, 정부, 그리고 해외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경제 전체적으로 이 세 부문의 지출의 합은 소득의 합과 반드시 같아야 한다. 물론 어떤 한 부문만을 놓고 보면, 소득보다 덜 지출하여 흑자를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부문이 흑자를 이루면 다른 부문은 반드시 적자가 발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해외 부문이 균형(경상수지 균형)이라면, 민간 부문이 흑자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부 부문이 적자 지출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경우, 해외부문 수요 부족(GDP 10% 수준의 경상수지적자) 상황을 정부가 10% 적자 재정지출로 메우고 있는 중이고 민간 부문은 거의 균형을 달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만약 경상수지가 10% 적자 수준에서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재정적자를 GDP의 3% 수준으로 ‘긴축’하게 되면 그에 상응하게 민간 부문이 7% 수준으로 적자를 내서 지출을 늘려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출이 축소된 만큼 국민소득이 줄어들고 성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손바닥이 마주쳐야 박수를 치듯이 재정적자 축소가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부문에서 그 만큼 지출 확대가 수반되어야만 한다. 민간 부문이 더 지출하거나 해외에서 남유럽의 재화를 더 구입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에 긴축을 강요하는 트로이카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한 손으로 손뼉을 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게으르고 방탕한 너희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다그칠 뿐이다. 이는 도덕일지언정 경제정책이 아니다.

물론 1990년대 스웨덴이나 캐나다의 경우 긴축재정을 통해 재정위기를 돌파한 사례가 있다. 당시 이들 국가는 금리나 환율 조정을 통해 내수와 수출 증대를 달성할 수 있었다. 더욱이 당시 세계경제는 미국의 신경제를 필두로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유로화에 가입된 남유럽 국가들은 통화정책을 통해 금리를 낮출 수도, 명목환율의 조정을 통해 수출을 늘릴 수도 없다. 개별 국가의 관점에서 유일하게 남은 선택은 임금을 깎아 가격을 떨어뜨리는 내부 평가절하 방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내핍’은 남유럽 국민들의 엄청난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의 실업률이 2008년 7.7%에서 긴축정책을 실시한 이후 두 배 넘게 상승하여 16.6%를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조정, 손뼉을 마주쳐야 한다.

 가혹한 내핍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유럽 국가의 물가상승률을 독일보다 낮춰야 한다. 독일의 물가상승률이 현재 1.5% 수준인데, 남유럽 국가는 이보다 더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엄청난 내핍을 강요하는 것으로 디플레이션에 따라 오히려 부채의 실질가치가 늘어나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도 있다. 가능한 해법은 유럽중앙은행이 남유럽의 상황에 맞게 현재 2% 수준의 목표물가를 상향 조정하고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제로금리 정책을 취하고 있는데,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의 기준금리가 1.25%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유럽중앙은행은 중앙은행 본연의 임무인 ‘최종대부자’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미국, 일본, 영국의 중앙은행이 실시했던 양적완화 정책은 바로 유럽중앙은행에 필요하다. 남유럽 국채 발행의 차입비용을 낮추기 위해서 ‘무제한적인’ 국채매입 계획을 발표하여 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중심국으로의 전염을 차단해야 한다. 특히 유럽 재정위기가 예상을 넘어 확산된 데에는 유럽채권의 디폴트에 배팅하는 투기세력의 개입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유럽 국채에 대한 신용부도스왑 (CDS)등 파생상품과 헤지펀드에 대한 강력한 규제, 급격한 자본의 유출입을 통제할 수 있는 토빈세 도입 등을 통해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아울러 개별 국가의 긴축에 따른 ‘지출 갭’을 극복하기 위해서 유로화의 최대 수혜국인 독일과 네덜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의 적극적인 내수확대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경기 침체는 재정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이는 또 다시 긴축을 강요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 모든 노력에는 유럽 정상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유럽 위기의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독일이 2016년까지 재정균형을 달성하여 유럽의 본보기가 되려는 야심찬 ‘긴축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우려된다. 여하튼 12월 초로 예정된 유럽 중앙은행 통화정책회의와 유럽 정상회의에서 유로 금리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그리고 유럽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정책에 대한 전환이 있을 것인지의 여부가 갈수록 긴박해지고 있는 유로 붕괴의 향방을 결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글은 주간지 시사인에 기고한 글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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