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9 / 06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유럽이 잠잠하다. 두 달 전만 해도 세계경제를 금방이라도 위기로 몰아넣을 것처럼 시끄러웠는데 말이다. 정치가와 관료들이 여름 휴가를 갔기 때문이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도 들린다.

프랑스 경제학자 장 피사니 페리(Jean Pisani-Ferry)는 유럽 정치가들이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위기를 수습하는 것을 뛰어넘어서 이제는 과연 유럽연합의 통합이 계속 진전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연방국가인 미국의 통합과 유럽의 통합을 비교하고 있다. 단일시장과 단일통화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유럽의 통합은 유사하다. 하지만 유럽이 미국과 다른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연합 차원의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연합 차원의 공공지출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위기에 처한 국가를 지원함에 있어서 조건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조건은 개별 국가의 주권을 제약하게 된다. 또한 사실상 채무국에 대한 지원금이 연합정부 차원의 자금이 아니라 개별 국가들이 각출한 자금의 합이다 보니 채권국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이유로 인해 유럽의 통합정치가 실현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나마 해결책이 있다면 유럽연합의 기구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유럽연합 기구에 각 국가의 대표들이 모여서 유럽 전체 차원의 토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위기에 대한 보험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럽연합 회원국의 공동의 이익이라는 개념이 점점 희박해지는 가운데 더 이상의 통합을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장 피사니 페리는 브뤼셀에 위치한 경제정책 싱크탱크 브뢰겔 연구소의 대표이며, 파리 도핀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유럽연합의 행정부라 할 수 있는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의 자문위원이었으며, 프랑스의 국제 경제 연구 기관인 CEPⅡ의 대표이기도 했다.

 

 

유럽, 연방이 될 것인가, 붕괴할 것인가?

(Federalism or Bust of Europe?)

 


2012년 8월 31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장 피사니 페리(Jean Pisani-Ferry)

 

유럽 채권시장의 8월은 위기감을 넘어 침묵의 상태였다. 휴가를 떠난 유럽의 정치가들은 지난 몇 달 간의 고민의 시간에서 물러서서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유럽은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이 될 수 있을까?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갈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 뿔뿔이 흩어지고 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단. 생산, 노동, 자본 시장이 대부분 통합되었고, 연방 차원의 예산 편성은 개별 주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혼란을 상쇄했으며, 은행 부문에서의 문제와 같이 기타 주요 위기의 처리에 있어서 연방 정부가 책임을 졌다. 주 정부는 지역에 필요한 공공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지만, 거시경제 안정화에 있어서 실질적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유럽 연합에게 하나의 모형이 되어 준다. 특히 단일화된 시장과 단일통화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유럽은 미국의 모형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유럽은 연방 차원의 예산이 자리 잡지 못했다. 1970년대 유럽 공공지출을 유럽 GDP의 5~10%에 달하도록 높이고자 했지만 이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오늘날 유럽의 예산은 GDP의 1%에도 미치지 못해 30년 전보다 늘어나지 않았다.

20세기를 거치면서 유럽 연합의 공공지출은 새로운 단계로 발전했고, 유럽이 통합을 시작했을 때 공공지출은 이미 국가 수준으로 높아졌다. 연방 지출은 매우 중요한데, 국가별 수준에서 유럽 전체 차원으로 전환되어야 했다. 당연히 이러한 변화는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최근에 유로존은 회원 국가 사이의 상호 보험 제도를 만들고자 시도하고 있다. 2010년부터 유로존 사이의 원조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그리고 사이프러스로 확장되었다. 스페인도 조만간 은행 부문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과 함께 원조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들끼리 서로 돕는 특수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연대는 공짜가 아니다. 수혜자는 예산의 책임가 있는 운영을 약속하는 재정 조약을 따라야 하며, 준자동적 제재(이는 유렵연합 차원에서 개별 국가에 제재를 가하기 전에 회원국들의 찬반을 묻는 것이다. 인구와 영향력을 고려한 가중 다수결을 통해 제재 여부에 대해 찬성의 결과가 나오거나 또는 분명한 반대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제재를 가할 수 있다. - 역자 주)도 뒤따른다. 또한 원조의 수혜자들은 제안된 정책을 시행하고, 정치에 있어서도 외부의 감시를 받아들이도록 요구받는다. 다시 말해 연대의 대가로 주권의 제한이 뒤따르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유럽연합의 회원국 정부와 의회는 여전히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원조 자금이 연방 차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들이 제공한 자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확실히 채권국은 이웃국가의 지원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더 많은 힘을 요구한다. 그 결과 통화는 단일화되었지만 유럽의 상태는 미국과 다르다. 단일통화가 오히려 유럽의 각 국가들을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미국에서 연방 정부는 공동의 위기에 대응하는 방패로서 행동하며 각 주 정부가 곤경에 처했을 때 자동적이고 무조건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그렇다고 파산한 주 정부를 구제하거나 주 정부의 자치권을 가져오는 수준까지 가지는 않는다. 반대로 유럽에서는 전체를 보호하는 방패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곤경에 처한 회원국을 위한 자동적인 지원도 거의 없다. 다만 상황이 더 나은 국가가 조건이 따르는 지원을 하는 정도이다. 따라서 미국은 힘의 집중과 경쟁하지만 유럽은 서로 각각 경쟁한다.

이같은 국가 간 경쟁은 유럽의 통합 정치를 어렵게 만든다. 모든 연방은 중앙 정부와 주 정부 간의 긴장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웃국가로부터 감시당하고 지시받는 것은 중앙으로부터의 감시와 지시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더 불쾌하고 두려운 일이다.

현재 유럽의 국가가 겪는 문제의 중요한 이유는 유럽연합 기구의 취약함이다. 유럽연합의 기구는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고, 유럽인들 전체가 책임을 지는 기구여야 한다. 공동의 유럽은 단지 국가 단위의 유권자에 국한된 정부와 의회에 의해 국가적 이익을 계산하는 식으로는 탄생할 수 없다.

유럽이 자신만의 모델을 발전시키는 과정에 있는지 아니면 표준적인 연방 모델 근처에서 오락라가락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해법이라면 유럽 전체의 토론을 소집하고, 각 국가의 대표를 파견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유럽 의회가 책임지는 유럽연합의 기구가 보험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환시키는 것이다.

어떤 길을 가든지 앞으로 유럽은 공동의 이익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 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아니면 통합의 길을 유지할 만큼 공동의 이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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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1 / 04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전망기획(2) 2012년 세계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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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성장 동력을 상실한 선진국 경제
2. 대차대조표 침체(Balance Sheet Recession)
3. 유럽에 찾아온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4. 2012년의 주요 경제 리스크
5. 미국과 유럽발 경제 위기의 국내 전염에 대비해야

[본문]
1. 성장 동력을 상실한 선진국 경제

올해 세계경제 전망이 우울하다. [그림1]은 주요 국가 및 지역의 2008년 이후 경기선행지수를 나타낸 것이다. OECD 국가들은 2010년 2월 102.98로 정점을 찍고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현재 100.1을 기록하고 있다. 경기선행지수는 실물경제에 비해 6개월 정도 선행한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2010년 3사분기부터 OECD 국가들의 실물경제는 이미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고 전망 또한 침체가 지속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의 경기선행지수 움직임과 매우 유사하며 다른 OECD 국가들보다 지수가 1분기 정도 선행함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3사분기부터는 유럽 재정위기가 더욱 확산되면서 경기선행지수 뿐만 아니라 수출, 소매, 생산 등 실물지표와 소비자와 기업의 체감지표 등이 유럽을 중심으로  악화되고 있다. [그림2]에서 보이듯이 수출과 수입을 포함한 세계 무역량도 2010년 5월을 고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지표를 보면 수출과 수입은 전년동월대비 각각 5.1%, 3.2% 증가에 그쳤다. 따라서 2010년 하반기부터 시작되어 지난 해 유럽재정위기의 여파로 가속화 된 긴축적 정책기조가 계속된다면, 올해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표1]은 IMF와 UN이 제시한 2012년 주요 국가 및 지역별 세계경제 전망이다. IMF는 9월 전망에서 6월보다 0.5%p 하락한 4%를, UN은 11월 전망에서 6월보다 1%p 하락한 2.6%를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유럽의 재정위기가 통제되고, 주요 은행의 파산과 새로운 신용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유동성위기를 방지하도록 적절한 정책수단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 기본(baseline)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그림3]에서 보이듯이 유럽

차원의 정책 대응이 실패하고, 유로존에서 무질서한 파산과 디폴트가 이어질 것이라 가정하는 부정적(pessimistic) 시나리오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0.5% 성장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미국은 -0.8%, 유로지역은 -2%의 경제성장을 보여 2009년에 비견되는 경기침체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OECD가 지난 11월 발표한 경제 전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표2]에서 보이듯이 OECD는 2012년 세계경제가 3.4%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지난 5월 전망치에 비해 1.2%p 하향 조정된 수치이다. OECD 국가들의 성장률은 올해 1.9%에서 내년에는 1.6%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였다. 특히 유로지역 성장률은 올해 1.6%에서 내년에는 0.2%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더군다나 이 전망치 또한 유로지역의 “무질서한 디폴트, 급격한 신용붕괴, 체계적 은행파산, 그리고 과도한 재정긴축을 피하기 위해 정책당국이 충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재정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은 스페인(0.3%)을 제외하고 모두 마이너스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마이너스 경제에 빠진 PIGS 국가들은 금융위기와 긴축정책 등으로 내년까지 5년 연속 장기 경기침체에 빠져들 것이 확실하다.

2. 대차대조표 침체(Balance Sheet Recession)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선진국경제는 경기침체 또는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채’가 만들어 낸 자산시장 버블이 전 세계적으로 붕괴되면서 일반적인 경기침체와는 분명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전국적인 부채주도형 자산시장의 버블이 붕괴되어 발생하는 경기침체를 대차대조표 침체(Balance Sheet Recession)라 부른다. 대표적인 예가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시장 버블 붕괴에 따른 장기 경기침체다.

부채 주도의 자산시장 버블이 터질 때, 가계와 기업, 그리고 금융회사의 대차대조표 또한 망가지기 마련이다. 경제주체들은 금융건전성과 신용등급을 회복하기 위해  저축을 늘리고 부채를 상환한다. 이 과정에서 거시경제의 총수요는 줄어든다. 경기침체에 따른 지출 축소를 감당하기 위해 정부는 적극적 재정 및 통화정책을 통해 이에 대응한다. 그러나 유럽처럼 가계 및 금융회사의 위기가 정부의 재정위기로 전환될 경우 긴축정책은 총수요 부족을 더욱 악화시킨다. 긴축정책은 성장률 전망을 낮추고, 부채상환 여력을 뜻하는 GDP 대비 정부부채의 비율을 악화시켜 더욱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요구하는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림4]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의 부동산가격은 2006년까지 대략 2.3~2.4배 상승하였다. 비단 미국만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었다. 최근 유럽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PIIGS 국가들 또한 미국과 거의 유사한 부동산가격 패턴을 보였다. 다만 유럽은 2008년 9월 리먼 사태까지 버블의 붕괴 시점이 지연되었을 뿐이다. 유럽에서 미국처럼 부동산 버블이 심각했던 국가는 스페인과 아일랜드, 그리고 이탈리아다.

버블 붕괴의 근원지는 미국이었지만 경기침체는 미국보다 유럽이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다. 유럽은 부동산 버블 붕괴와 재정위기, 그리고 유로화 시스템의 근본적 문제점이 동시에 표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직전 미국경제가 버블로 호황을 유지했던 것처럼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도 유로화 편입에 따른 저금리와 부동산 버블을 경험하였다. 1999년 유로화가 출범했고 2001년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하였다. 유로존에 편입된 국가들은 유로화를 사용함에 따라 금리와 환율을 통제할 수 있는 정책주권을 포기하게 된다. 기준금리의 통제권은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Bundesbank)의 전통을 따르는 유럽 중앙은행(ECB)이 쥐게 되었다. 각국 정부는 유로화로 표시된 국채를 발행할 수 있었고, 각국의 상업은행은 이를 담보로 유럽중앙은행에서 아주 저렴하게 유로화를 빌릴 수 있었다. 유로화와 유럽 중앙은행의 상징적 안정성은 오히려 부채를 통한 자산시장 버블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미국과 똑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림5]에서 보는 것처럼, 유럽통합과 유로화 출범 과정에서 재정위기를 겪고 있던 국가들의 금리가 급격하게 하락하였다.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를 사용한 덕분에 가장 안정적이라 여겨지는 독일의 국채를 기준으로 국채수익률이 점차 수렴하기 때문이다. 1993년에 스프레드가 18%가 넘었던 그리스의 국채수익률은 유로존에 편입된 2001년에는 1% 아래로 떨어졌다. 외환리스크가 사라지면서 그리스를 포함한 PIIGS 국채를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이 높은 수익률을 좇아 대량으로 매입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1994년에만 해도 그리스 정부 부채의 85%를 국내 금융기관이 보유했지만, 2007년에는 이 비율이 완전히 뒤바뀌어서 75% 이상을 해외 금융기관이 보유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외환리스크는 해소되었지만 채권의 부도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리스크는 증가하였다. 2008년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재정지출 확대와 구제금융은 정부의 재정적자를 증가시켰고, 이는 잠재된 신용리스크를 일시에 표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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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북]2012년 경제, 유럽을 알아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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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여는글

◆ 유럽 국채시장은 왜 붕괴하고 있는가(여경훈)
1.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쩔쩔매게 만든 유로 퍼즐
2. 통화주권을 포기한 처절한 대가
3. 국채시장 붕괴의 배경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있다.

◆ 유럽위기: 긴축은 위기해법이 될 수 없다(여경훈)
1. 긴축, 그 위대한(?) 반전
2. 합성의 오류, 가계와 정부는 다르다.
3. 조정, 손뼉을 마주쳐야 한다.

◆ ‘하나의 통화, 하나의 시장’꿈의 좌절(김병권)
1. 그리스 디폴트를 넘어 유로 존 존립이 의문
2. ‘하나의 시장, 하나의 통화’에 대한 꿈
3. 유럽 연방과 유로 지역 해체 사이에서

◆ 유럽위기와 동아시아, 한국. (정태인)
1. “유럽의 꿈은 사라졌는가.”
2.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과 한국경제에 대한 함의

<<분열의 벼랑 끝에 몰린 유럽, 세계경제를 흔들다.>>

 “그리스는 지난해 최대 공기업 그리스 전력과 피레우스 항구, 엠포리키 은행 등 팔릴만한 정부 재산은 모조리 매물로 내놨다. 국유자산을 매각해 2015년까지 500억 유로를 마련한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11월 이동통신 주파수를 3억 800만 유로에 매각한 것을 제외하곤 투자자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유서 깊은 고대국가 그리스가 팔리고 있다면서 국가 채무의 늪에 빠진 그리스가 중요 국유자산을 팔아 빚을 갚아야 하는 처참한 현실을 소개한 언론의 보도 일부이다. 위기의 진원지인 남유럽 국가들의 생활현장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 세계가 2008~2012년까지 중앙은행 자금을 풀고 정부 빚까지 내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반짝 회복 효과에 그쳤을 뿐, 2008년 이후 세계경제는 좀처럼 성장활력을 찾지 못하고 장기 침체 국면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지난 30년 동안 누적시켰던 구조적 문제, 즉, 국내적 소득 불평등과 국제적 무역 불균형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난제 때문이다.

1%를 위한 경제가 한계에 이르다.

신자유주의 금융화, 단기 수익추구, 노동 유연화는 다수 노동자와 국민들의 소득을 억제하면서 기업과 금융의 이익을 극대화시켜왔다. 그 결과, 사회 구성원의 1%는 소득이 비약적으로 팽창했고 99%의 소득은 제 자리 걸음이었다. 각 국가 국민경제의 소득 불평등이 구조화된 것이다. 그러나 99%의 국민들의 소득으로 소비를 늘리지 않고서는 기업이 생산한 상품을 팔수도 없고 경제가 발전할 수 도 없다. 그것이 경제다. 빼앗기는 자가 죽어 나가면 빼앗는 자도 살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2007년까지 경제가 발전한 것은 빚을 얻어서 소비를 늘렸기 때문이다.

전 세계 소비를 주도했던 미국 시민은 매년 자신이 번 소득의 110%를 소비했다. 저축을 한 푼도 하지 않고 소득을 모두 써버렸을 뿐 아니라, 추가로 빚을 얻어 소비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외형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른바 ‘적자 호황’국면이 그렇게 1990~2000년대를 풍미하면서 미국인들이 ‘대 안정기’라고 부르는 호시절을 누렸던 것이다. 특히 구입비용이 많이 드는 주택과 자동차 등을 빚을 얻어서 구매했고 그 결과가 2008년 금융위기다. 이제 금융위기로 부채를 더 늘리는 것은 고사하고 이미 늘어난 빚을 줄이는 국면으로 반전되었다. 번 소득의 최소한을 빚 갚는 곳에 쓰고 나머지를 모조리 소비해도 이제 2007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소비가 늘지 않고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 근본적이 이유다.

그러면 적자호황 뒤에 이어진 부채 축소의 긴 침체기를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 상식적으로 간단하다. 이제부터라도 1%에 집중된 부를 99%에게로 되돌리고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것이다. 돈을 쓰고 먹고살 수 있는 여력을 확충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1%가 과거처럼 탐욕스럽게 이익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규제를 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1%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서 99%에게 재분배 해주어야 한다. 사적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게 하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공공일자리를 만들어 국민들이 일을 하고 소득을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에 전 세계 청년들과 시민들이 불평등을 혁파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게 된다. 그것이 2011년 타임지가 선정한 인물인 바로 ‘시위자(Protesters)'이다. 아랍의 민주화 시위자, 스페인의 분노하는자. 미국의 월가시위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우리는 99%(We are the 99%)‘라는 구호를 걸고 1%의 탐욕에 저항하는 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2012년 세계경제의 희망은 99%운동이 얼마나 더 사회지형을 바꿀 것인지에 달려 있을지 모른다.

 역내 불균형이 유로 통화권의 진짜 위기

국내적인 소득 불평등에 이어 또 하나의 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국제적인 불균형이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과 미국 사이의 무역 불균형이다. 미국은 미국 시민을 고용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대신 중국의 값싼 상품을 수입해 소비했고 월가를 중심으로 금융 산업만 비대화시켰다. 그 결과 돈은 중국과 월가로 집중되었다. 중국으로 흘러간 돈은 다시 미국 국채와 교환되면서 미국으로 되돌아 왔고 미국 시민들은 그것을 빚으로 얻어서 또 소비를 했다. 그럴수록 중국에는 미국 국채로 표시된 외환 보유고가 쌓여갔고, 반대로 미국은 국가부채와 가계 부채가 늘어났다. 2008년 금융위기의 국제적인 요인이 이것이다.

한편, 중국과 미국 사이의 불균형에 비견되는 국제적 불균형이 바로 최근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유럽의 위기 속에도 있었다. 유럽의 위기는 흔히 그리스를 필두로 한 남유럽 국가들이 재정위기로 알려졌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상에 불과하다. 정부의 방만한 살림운영과 ‘놀고 먹은’ 남유럽 시민들에 대한 과도한 복지지출 때문에 재정위기가 발생했다는 평가는 사태를 전혀 잘못 파악한 것이다. 복지지출이라면 남유럽 국가 보다는 북유럽 국가가 더 많다. 재정적자 수자만 놓고 보면 일본이 국내총생산 대비 220%로 세계 최고다. 미국도 100%에 근접했다.

유럽 국가채무위기는 유로 통화권 내부의 경상수지 흑자 국가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오스트리아와 적자국가인 남유럽 국가 사이의 무역 불균형에 있는 것이다. 유로 통화와 단일시장으로 이들 사이의 경쟁력과 무역수지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차가 커졌다. 그 결과 남유럽 국가들은 독일과 프랑스 은행 등에 국채를 발행하고 돈을 빌려왔다. 그럴수록 남유럽 국가들의 대외채무는 점점 늘어갔다. 그러나 단일 통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통화정책, 금리정책, 환율정책을 사용하여 경상수지 불균형을 조정할 수도 없다. 이것이 남유럽 국가들의 대외 채무위기로, 그리고 북유럽 은행들의 채권부실 위기로 표현된 것이다. 유로 통화권의 불균형이 유럽을 위기로 몰아넣고 유로 존을 붕괴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중국만이 세계경제의 유일한 희망인가?

국내적 소득 불평등과 국제적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함으로써 세계경제는 동력을 잃고 또 다시 어려운 국면에 진입했다. 2012년은 유럽의 붕괴위기가 미국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파급되면서 한국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경제는 세 개의 주요 축에 의해 움직여왔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와 유럽의 유로 통화동맹과 그리고 세계의 생산기자 중국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는 2008년을 분기점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금융은 이제 미래의 성장 동력이 아니라 규제의 대상이고 구조조정의 대상이다.

2010년부터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한 유로 통화동맹도 점점 더 근원적인 문제들을 노출하고 있다. 유로 존의 해체냐 유럽 합중국을 향한 재정통합이냐의 갈림길에 들어선 것이다. 유럽 시민의식(European citizen)이라는 연대의식도 갖춰지지 않은 채 자유 시장 논리에 의해 유럽의 통합을 기대했던 희망은 무너졌다. 현재로서는 유럽 주변국을 향한 거대한 마샬플랜 정도가 아니라면 재정통합은 불가능하다. 유로 존의 해체가 임박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세계경제 지탱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규모 10%를 차지하면서 2위 경제권으로 부상한 중국이 세계경제의 마지막 지탱축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수출을 매개로 글로벌 무역불균형에 편승하여 10%대의 안정적인 고성장을 구가해왔다. 신자유주의 세계경제호황의 덕을 보면서 그 한 축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대외적 요인에 의지해 성장할 수 없게 되었다. 유럽 위기가 현재화되자 2011년 말부터 중국 수출은 10%대로 줄었고 2012년은 한자리 수를 지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표현대로 ‘중국 경제발전 모델을 전환‘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과연 중국은 2012년에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를 지탱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어쨌든 2012년 세계경제 향방은 일단 유럽이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세계경제를 알려면 유럽을 먼저 파악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연구원은 지난해 연말, 긴박해지는 유럽위기 국면을 해부하고자 시사 주간지 <시사 IN>에 4차례에 걸쳐 유럽위기를 연재하고 유럽은 구조적 결함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어 전망이 매우 비관적임을 예시한 바가 있다. 올해 유럽의 향방을 판단하는 준거로 충분히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테마북으로 엮어 보았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2012년 1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김병권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 / 12 / 28 정태인/새사연 원장

유럽의 위기와 한국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차]
1. “유럽의 꿈은 사라졌는가”
2.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와 한국경제에 대한 함의

[본문]
“유럽의 꿈은 사라졌는가”

1915년 레닌은 “유럽합중국에 대하여”라는 글을 썼다. 결론은 제국주의국가들끼리 지분을 평화롭게 분할하는 합중국은 불가능하니 헛소리 집어 치우라는 것이다. 굳이 흘러간 옛 얘기를 꺼낸 것은 당시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도 혹할 만큼 ‘유럽합중국’ 또는 유럽공동체는 유럽의 ‘오래 된 미래’였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92년 마스트리트 조약을 맺고 99년 유로를 창설하면서 이 오랜 꿈은 실현되는 듯 했다. “유럽의 꿈”은 사라졌는가?”

지난 세 번의 연재로 현재 유럽 위기의 원인은 명확히 드러났다. 유럽의 문제는 내부 문제이다. 통화는 통합됐으나 재정은 통합되지 않았고 경쟁력이 약한 남부유럽의 곤경에 대해 독일 등 북유럽은 보조금을 주려 하지 않는다. 부르마교수(바드대)가 한탄한대로 “유럽 시민”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재정적자가 아니라 “민주주의 적자”(democracy deficiency)가 문제라는 것이다. 독일은 90년 동서독 통일 후 10년간 막대한 돈을 투입한 경험을 재현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남유럽 국가들의 방탕을 비난함으로써 공동체의 의무를 외면하고 있다.

12월 9일의 유럽 정상회의는 엉뚱하게도 재정긴축을 강화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오루크교수(옥스퍼드대)의 말대로 필요한 것은 “재정동맹”(fiscal union)인데 독일은 “재정안정동맹(fiscal stability union)”을 요구했고 이 회의는 기사회생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정상회의(summit to the death)”로 끝났다. 이제 재정적자는 “투자적자”(investment deficiency, 스펜스)로 이어진다. 케인즈의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이 팸플릿에서 케인즈는 제1차 대전 이후 독일에게 가혹한 배상금을 물리도록 한 베르사이유 협약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한마디로 영국과 프랑스는 총수요를 외면한 인기영합적 결정을 내렸고 결국 자기 발등을 찍으리란 것이었다. 이제 그 주역만 독일로 바뀌었다.

유로가 없어지지는 않더라도 유로존이 축소되면 강한 나라들의 “수퍼유로” 가치는 치솟을 것이고 북유럽 흑자의 대부분을 감당했던 “최종소비자” 남유럽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남유럽 국가들은 이제 유로로 표시된 채무를, 형편없이 평가절하된 드라크마(그리스)와 리라(이탈리아)로 갚아야 하는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한다. 임금과 디플레이션이라는 “내부 평가절하”도 만만치 않다. 루비니에 따르면 “앞으로 몇 년간 가격과 임금이 30% 정도 떨어져도 부채의 실질 가치는 계속 증가할 것이고 정부와 민간 채무자의 지급불능 사태가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흑자국인 북부유럽(독일, 네델란드, 오스트리아, 그리고 프랑스)마저도 깊은 침체에 빠질 것이다.

오루크는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관료의 민주주의에 대한 우위, 반 유럽 감정의 고조, 대중영합주의 정당의 득세가 나타날 것이고 폭력의 난무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음울한 예측을 한 뒤, 이런 시나리오를 피하는 데 필요한 제도 변화를 이루지 못할 거라면 빨리 죽는 게 낫다고 선언했다. 과연 유럽의 꿈은 사라진 것일까?

유럽공동체의 실패는 재정의 문제를 신자유주의적 금융(타국 은행에 의한 국채 매입)으로 해결하려 한 데 있다. 길은 아직 남아 있다. 재정통합같은 중장기 계획(헌법에 해당하는 리스본 조약을 개정해야 한다)을 실행하기 이전에 긴급조치부터 취해야 한다. 일단 유럽 중앙은행이 부실채권을 사들이고 이후에는 통화증발을 해서 유로의 가치를 떨어뜨려야 할 것이다. 동시에 재정적자를 감수하고라도 교육과 의료, 그리고 약한 나라의 인프라 건설에 돈을 써야 한다. 그 이후에야 유럽중앙은행의 강화나 재정통합, 그리고 구조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또 하나 떠올릴 수 있는 정책은 케인즈의 청산동맹 구상이다. 케인즈는 브레튼우즈 회담에서 무역적자국에 돈을 빌려주는 청산기금(나중에 IMF가 되었다)을 구상하면서 흑자국도 그 규모에 따라 일종의 벌금을 물도록 하는 청산동맹을 제안했다. 유로라는 단일 통화를 사용하는 한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유로존 내부에서 실행할만한 제안일 것이다. 현재의 글로벌 위기를 극복하는 데 유효한 제안이라면 유로존에서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와 한국경제에 대한 함의

“동북아 대통령이 되시라”는 단 한마디가 마음에 들었는지 고 노무현 대통령은 나를 “동북아 비서관”에 임명했다. 미국과 EU, 그리고 동북아 공동체로 천하를 삼분해야 안정적인 발전이 가능하다는 내 주장은 당연히 EU를 모델로 했다. 해서 동북아 위원회는 EU형 길을 집중 검토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유럽의 경우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유럽 공동체를 용인했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미국의 주적인 중국이 동아시아 내부에 있고 더구나 세계금융위기 이후 일취월장 해서 G2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미국의 견제가 훨씬 심해질 것이다. 또한 유럽에 비해서 인종, 문화, 종교가 제각각이고 영토분쟁, 역사분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유럽의 위기는 설상가상의 문제를 던져 주고 있다. 나는 최근까지도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특히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통화통합이 먼저 이뤄질 수도 있다는 ‘망상’까지 했다. 1997년 동아시아 위기가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현실화했고 최근의 위기로 더욱 확대되었기 때문에 AMF(아시아 통화기금)로 발전할 전망이 훨씬 밝아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금융위기는 달러의 위상을 여지없이 흔들었고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통화체제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 중 지역통화를 거쳐 새로운 기축통화로 넘어가는 아이켄그린의 경로가 가장 현실적으로 보였으니 아시아 통화(예컨대 ACU)의 창설마저 그럴듯해 보였다.

그러나 유럽의 위기를 목도하고 있는 지금,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점검해서 더 엄격한 필요조건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공동체가 원활하게 흘러가기 위해서 역내 경제 격차는 현재의 유럽 수준보다도 더 좁혀지지 않으면 안된다. 재정통합 없는 통화통합은 역내 격차를 위기로 몰고 갈 것임에 틀림없다. 이를 위해서 현재 4조 달러를 넘어선 동아시아의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공동관리하면서 여유자금(약 2조 달러)을 북한이나 몽골, 중국 내부 등 후진 지역에 투자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재정통합을 위해서는 역내 후진 지역에 대한 보조금이 가능할만큼 “동아시아 시민의식”이 성숙되어야 한다. 현재 곳곳에서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역사 분쟁, 영토분쟁을 고려하면 전혀 낙관적이지 않은 대목이다.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기술, 청소년 문화교류부터 시작해서 동아시아 시민이라는 귀속감을 높여 나가는 프로그램이 시급하다. 환경-에너지 협력도 시급한데 현재 추진되고 있는 시베리아 가스관 사업은 훌륭한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공동의 프로젝트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세계경제의 앞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중국이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보였지만 유럽과 미국, 일본이 동시에 침체에 빠진다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중국이 독야청청하리란 전망은 ‘희망사항’에 가까울 것이다.

한은과 정부는 내년 우리가 경제가 3.7%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이는 세계경제가 3.6% 성장할 것이라는 IMF와 OECD의 11월 초 전망을 받아들인 것이다. 특히 OECD는 유럽 재정위기의 전개를 시나리오 별로 기본(baseline), 낙관, 비관으로 나눠 이에 따라 세계경제성장율을 각각 3.4%, 4.0%, 2.1%로 예측했다.

그러나 유럽 일부 국가가 무질서한 국가부도에 빠지고 이들 나라의 국채를 대량으로 소유하고 있는 프랑스, 독일의 은행들이 파산하는데 세계경제성장율이 2.1%를 유지한다는 게 합리적인 전망일까? 내 보기에 가장 그럴듯한 것은 UN의 최근 전망(“World Economic Situation & Prospect", 2011.11) 이다. 똑같이 유럽의 상황을 기준으로 세 시나리오 별로 UN은 각각 2.6%, 3.9%, 0.5%로 예측했다. 낙관 시나리오의 경우 OECD와 유사하지만 기본인 경우 0.8%p, 그리고 비관은 1.6%p나 차이가 난다.

현실 경제에서 통용되는 주먹구구 계산법에 따르면 세계경제성장율이 1% 줄어들 때 우리 수출 증가율은 약 4% 감소한다. EU가 그럭저럭(muddling through) 사태를 수습하는 기본 시나리오라 해도 UN의 예측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정부 가정보다 1% 덜 성장한다. 따라서 한국의 경제성장율은 1.6% 정도(4%*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40%) 추가로 감소한다.

한국에서 투자는 수출증가율에 강하게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투자증가율도 줄어들 것이다 또 정부는 내년에 소비가 금년의 증가율보다 0,5%p 높아져서 3.2%나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백화점 매출도 줄어드는 지금 이 예측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그야말로 “야성적 충동”에 의존하는 투자를 빼더라도 내년 경제성장율은 정부의 예측에 비해 2% 가까이 낮아질 것이다. 내년 우리 경제의 앞날은 어둡다. 특히 부동산 거품, 그리고 이와 연계된 가계부채 폭탄이 터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내년 총대선은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대안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 글은 시사인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 / 09 / 27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2차 경제위기와 세 가지 의문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차]

1. 반복되는 위기의 전염과 무력한 방화벽
2. 채권자의 권리 앞에 위협받는 민주주의
3. 현존 시스템 역량의 한계
4. 결론: 한국경제의 의문은 없는가

[요약]

미국 더블 딥 위기, 남유럽 국가 채무 위기, 그리고 유럽 은행 위기가 겹치면서 세계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표현대로 ‘새로운 위험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위기의식은 극도로 고조되어 있지만 아직 국제사회는 뚜렷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9월 24일 열린 G20재무장관 회의와 IMF연차총회에서도 아무런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종료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결과 2008년과 비교해서는 아직은 괜찮다던 각 기관의 평가도 바뀌고 있다. 오히려 2008년보다 현재의 위기가 더욱 심각한 국면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3년 전보다 더욱 심각하다”(알리스테어 달리 전 영국 재무장관) “현재 유럽 상황이 2008년 금융위기 초기에 미국의 당시 상황보다 더 심각하다”(조지 소로스) “유럽 부채위기가 2008년 위기보다 심각한 수준이다.”(일본 재무상)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청와대가 3년 전의 ‘벙커 비상대책회의’를 재개했다는 소식으로 입증된다.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되어서 8월 5일 미국 신용강등 시점까지만 해도 심각한 충격은 없을 것 같았던 세계경제가 3년 전 리먼 사태를 능가하는 위험국면으로 진입했는가. 지난 3년 동안 세계경제는 어떻게 움직였으며 각 국가들은 경제 회복과 위험 방지를 위해 어떤 조치를 실행했기에 더 큰 충격에 빠진 것일까. 이 시점에서 세계경제 위기와 관련한 세 가지 근원적인 물음이 제기된다.

1. 반복되는 전염과 무력한 방화벽

재연되고 있는 심각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침체위기 앞에서 최근 가장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바로 전염(contagion)'과 ‘방화벽(firewall)이다.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9월 24일, 유로지역의 재정위기와 은행위기가 현재 세계경제 앞에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라면서 추가적인 전염을 막기 위해 즉시 방화벽을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도 25일, 그리스 재정위기가 여타 유럽 국가들로 확산되지 않도록 그리스 주변에 방화벽을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유로 국가들은 그리스 국가채무에 대해 부분적이든(50%부채 탕감) 전면적이든 디폴트를 기정사실화 시키면서, 더 이상 다른 남유럽 국가들이나 유럽 은행들로 전염되지 않도록 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을 정도로 사태는 심각한 상황으로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아직도 특정 은행, 특정 국가의 위기는 그곳에 국한되지 않고 여전히 빠르게 세계경제로 전염되고 있는가. 특히 유럽 GDP의 2.5%에 불과한 그리스 디폴트 위기가 어째서 전 세계 경제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것인가. 더욱이 9월에 그리스에 지급하려던 구제금융 80억 달러 정도에 세계경제의 운명이 좌우될 상황이 되었는가. 이것이 첫 번째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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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