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 12 / 05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유럽 재정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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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쩔쩔매게 만든 Euro Puzzle

- 통화주권을 포기한 처절한 대가

- 국채시장 붕괴의 배경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있다.

[본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쩔쩔매게 만든 Euro Puzzle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 714일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컬럼에서 유럽위기의 퍼즐은 자신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라고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과 이탈리아의 국채금리에서 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일본의 10년 국채금리는 1.09%인데 비해, 이탈리아는 5.76%에 달한다. 실제 나는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풀어야 할 중요한 퍼즐이다.”

지금 남유럽 위기는 재정위기라고 말하고 있지만 표현되는 방식은 국채시장의 금리가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뛰어오르면서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남유럽 이탈리아나 일본이나 고령화 문제와 높은 정부부채 문제 등 두 나라가 겪고 있는 상황은 유사하다. 더욱이 일본은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200%가 넘지만 이탈리아는 그 절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시장의 압력에 총리가 사임할 정도로 이탈리아의 금융 상황은 심각하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재정적자 문제는 스페인보다 훨씬 심각하다. 하지만 영국의 국채금리는 2% 미만이지만 스페인은 이미 6%를 넘어섰다. 그리고 스페인 또한 정권이 교체되었다.

왜 그런 것일까. 노벨경제학상의 권위가 무색하게 크루그먼은 4개월이 지난 11월이 되어서야 퍼즐을 풀어낸다.

유로화에 가입함으로써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실제로 다른 나라의 통화로 차입해야 하는 제3세계 국가와 동일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특히 유로지역 국가들은 금융시장에 위기상황이 발생해도 자신의 통화를 발행할 수 없기 때문에, 국채시장의 자금조달 경로가 붕괴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무슨 말인가. 이탈리아나 스페인은 유로표시 국채를 발행하고 있지만, 국채금리를 조절하기 위한 통화정책에 개입할 수 없다.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채택함으로써 남유럽 국가들은 통화, 환율, 재정정책을 포기했기 때문에 국채시장에서 심각한 문제를 떠안게 된다. 이는 유로시스템의 근본 문제를 연방국가인 미국과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미국도 연방정부 재정적자 이상으로 주 정부 재정위기가 심각하다. 하지만 미국의 연방정부는 GDP20%에 달하는 예산을 통해 재정위기에 직면한 주 정부에 자금을 이전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유럽의회의 예산은 GDP1%에도 미치지도 못하고 재정 지원 메커니즘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재정위기에 직면한 유럽 국가들이 국채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에서 주 정부의 재정위기는 연방정부와 공동으로 책임을 지지만 유럽에서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이 개별적으로 떠안는 것이다. 이것이 유럽위기가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첫 번째 원인인 것이다.

통화주권을 포기한 처절한 대가

또 하나는 유럽과 달리 미국은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통해 장기국채 매입을 함으로써 정부가 부담해야 할 국채 이자비용을 낮게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일본과 영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유럽중앙은행은 구제금융 금지 조항’(리스본 조약 125)에 따라 회원 국가의 국채를 원칙적으로 매입할 수 없다. 더구나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독일이 매입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유럽 국채시장에서 개별 국가는 회사채나 지방채를 발행하는 기업이나 주정부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시장 논리에 따라 이자를 물어야 한다. 더욱이 가능하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민간 경제주체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재정위기로 시장의 불신을 산 남유럽 국가의 국채 금리가 천정부지로 뛰어올라도 대책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 위기가 심화되기 시작한 20105월부터 유럽중앙은행은 채권매입 프로그램(Securities Market Programme)을 추진하고 있고, 최근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위기가 확산되자 시장의 압박에 못 이겨 다시 국채를 매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매입한 총액이 2000억 유로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 연준이 1, 2차 양적완화를 통해 2조 달러가 넘는 채권을 매입하였고 적어도 2013년 중반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천명한 것과 확연히 비교된다.

그 결과 최근 그리스 포르투갈은 물론 이탈리아의 국채 금리가 4% 수준에서 2%p 이상 상승하여 7%를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리가 1%만 상승해도 연간 80억 달러 상당의 이자비용이 증가한다. 금리상승에 따른 담보가치 하락은 추가 증거금(margin call) 확대와 신용등급 강등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로 인해 유럽과 미국, 일본의 기관투자가들은 남유럽 국채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앞 다퉈 인출하고 있다. 뱅크런(Bank run)과 비슷하게 이른바 국채런(Bond run)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물 만난 고기처럼 신용부도스왑(CDS)의 투기적 거래는 국채시장의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남유럽 위기의 현재인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한발 더 나아가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등 중심국으로 위기가 확산되려는 조짐이 뚜렷하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경우 국채금리가 3.5%까지 상승하여 독일 국채와의 스프레드가 1.6%까지 확대된 것이다. ‘유로존 붕괴의 리스크가 국채시장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프랑스와 독일이 자국의 은행이나 유로화를 방어하기 위해 구제금융에 개입하면 신용평가기관은 프랑스와 독일의 신용등급을 강등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의 국채 매입 개입에 따라 국채금리가 하락하면 시장이 안정을 찾고, 다시 금리가 상승하면 시장이 불안에 떠는 것도 유로체제의 본질적 문제점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지금 유럽의 위기는 유로화에 갇혀있는 국채시장이 나라별로 차례로 붕괴되면서 유로 존 전체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국채시장 붕괴의 배경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있다.

그런데 유로 채권시장의 붕괴 뒤에는 이를 촉발시킨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바로 유로체제 내부 국가 사이의 경상수지 불균형이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로 17개국을 하나로 보면, 2010GDP대비 0.1% 수준의 흑자를 이룰 만큼 경상수지는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경상수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로화의 평가절하를 단행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유로 통화 통합이후 독일 등 산업경쟁력이 있는 국가와 남유럽 국가들 사이에 경쟁력 격차가 줄어들기 보다는 오히려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경상수지가 적자인 남유럽 국가들은 국채 발행을 통해서 흑자 국가로부터 자본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 통상 이러한 불균형은 적자국의 명목환율을 평가절하 하고, 흑자국은 평가절상 하여 불균형을 시정할 수 있다. 그러나 단일통화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명목환율의 조정은 불가능하다. 명목환율의 조정 메커니즘이 사라진 후부터 적자는 지속적으로 확대된다. 이에 비해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의 흑자는 더욱 늘어났다. 독일의 경우 1990년 통일 이후 -1% 정도의 적자를 기록했으나, 유로화를 채택한 이후 2002년부터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하여 현재 GDP5%가 넘는 막대한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환율로 무역불균형을 조정할 수 없다면 유로지역 내부의 수출경쟁력은 물가의 상대적 수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단일통화가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되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남유럽 국가들은 유로화를 사용함에 따라 금리와 환율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포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각국 정부는 유로화로 표시된 국채를 발행할 수 있었고, 상업은행은 이를 담보로 유럽중앙은행에서 아주 저렴하게 유로화를 빌릴 수 있었다.

각국 정부는 저렴하게 국채를 발행하여 재정지출을 늘리고, 상업은행 또한 풍부한 유동성으로 버블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여 수익을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적극 활용하였다. 지속적인 금리인하 또한 투자 및 소비 수요를 진작시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유로화 편입에 따른 일시적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이른바 저금리 특수를 누리게 되었고, 남유럽 국가들의 물가 또한 상승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독일은 금리 특수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작았고, 전통적인 수출주도 성장정책에 따라 저임금 정책을 고수하여 독일의 수출경쟁력은 갈수록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거품이 꺼지고 경제가 침체되면서 이러한 순환은 끝나게 되고 감춰졌던 유로체제의 약점이 전면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유럽의 위기는 이미 일시적인 복지지출 축소나 일시적인 유동성 공급으로 수습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나버렸다. 유로 단일 통화체제가 가지는 근원적인 제약성이 국채시장의 붕괴를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상수지 불균형이 확대되는 한 남

유럽 국가들이 국채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 해결을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위기는 눈앞에 있는데 재정통합이나 경상수지 조정과 같은 해법은 긴 시간을 요하는 과제다. 남은 길은 강력한 정치적 결단일 텐데 정권이 잇달아 바뀌고 있는 지금도 정치력은 복원되지 않고 있다.

이 글은 주간지 시사인에 기고한 글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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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11 / 03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투자자국가소송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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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최근 환율 및 주식시장 변동성 심화

2. 자본유출입 규제와 한미FTA 투자 조항

3. 실효성 없는 한미FTA 세이프가드 조항

4. 자본유출입 규제와 ISD 폐기

[본문]

■ 최근 환율 및 주식시장 변동성 심화

- 지난 9월 국내 주식 및 외환 시장은 심각한 혼란에 빠짐.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에 따라 국제 금융시장의 혼란이 지속되었기 때문.

- 조건부 표준편차로 측정한 변동성 지표를 살펴보면, 환율 변동성은 2008년 금융위기의 30% 수준, 주가지수 변동성은 57% 수준까지 확대되었음.

- 주식시장은 2011년 1~8월 평균의 2.4배, 외환시장은 1.4배로 높은 변동성을 보였으며, 최근 시장이 호전되고 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임.

- 위의 오른쪽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국내 주식시장은 환율의 움직임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님. 즉 원화가치가 상승하는 기간에는 주가 또한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 역으로, 원화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 주가 또한 급격히 하락함. 금융위기는 통상 원화가치와 주식 및 채권 가격의 급격한 하락을 동반함.

- 국내 주식시장의 현?선물 거래에서 외국인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이 한꺼번에 주식을 매도하기 때문. 또한 주가하락에 따른 외국인의 환매와 국내은행의 달러유동성 부족, 투기적 달러매수 가세로 외환시장의 달러수요 급증은 원화가치의 평가절하를 초래함.

- 2008년 금융위기의 전달 경로는 은행의 단기차입 급증에 따른 만기 및 통화 불일치 → 달러유동성 부족에 따른 달러수요 급증 → 원화가치 폭락에 따른 국내은행의 실질적인 채무 상환액 급증 → 외화부채 상환요구 충족을 위한 국내 증권과 채권 자산 매도 → 자본 및 외환 시장에서 ‘복합위기(twin crisis)’ 발생.

- 최근 금융 불안정은 외국인의 포트폴리오 급증에 따른 자산 가격 버블 → 국제 금융시장 불안과 환차손 우려에 따른 국내 포트폴리오 자산 매각 → 외국인의 달러 환매와 투기적 달러 수요 → 원화가치 및 포트폴리오 가격 동반 하락의 매커니즘.

- 유럽의 재정위기와 미국의 경기침체는 현재 진행형. 또한 국내 경기침체와 기업 영업이익률 하락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향후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

- 따라서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대규모 금융 및 실물경제 침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본유출입 규제를 사전에 강화해야 함.


■ 자본유출입 규제와 한미FTA 투자 조항

- 한미FTA 11.7조 송금(transfer) 조항은 투자 부문의 핵심 원리를 담고 있음. “각 당사국은 적용대상투자에 관한 모든 송금이 자국 영역 내외로 자유롭고 지체 없이 이루어지도록 허용”해야 함.

- 따라서 송금 조항의 의무를 위반할 경우 ISD에 제소당할 수 있음. 대부분의 자본유출입 규제는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송금’ 조항을 위반하게 됨.

- 또한 한미FTA는 직접 및 간접 수용을 엄격히 금지함. 따라서 ‘간접수용’ 으로 해석될 경우 역시 ISD에 제소당할 수 있음. 간접수용이란 투자의 가치를 침해할 수 있는 정부의 규제나 관련 행위를 의미함.

- 간접수용을 구성하는지 여부는 정부행위가 투자자의 ‘합리적인 기대를 침해하는 정도’, 정부행위의 ‘목적 및 맥락을 포함한 정부행위의 성격’에 따라 사안별 사실에 기초한다고 규정되어 있음.

- 간접수용 조항이 너무나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하여, 책임 있는 정책 및 감독 당국은 ISD 제소를 염려하여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심각한 위축효과(chilling effect)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

- 아래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전후로 하여 여러 나라에서 실시한 자본유출입 규제의 사례와 한미FTA 투자 협정과의 충돌 가능성을 예시함.

- 자본유입 규제의 경우, 13장 서비스 챕터의 내국민 대우(2조)와 시장접근(4조) 의무 조항을 위반한다고 해석할 수 있음.

- 예를 들어, 국내에 투자한 시티은행이 정부의 사전예치금 제도에 따라, 투자챕터 5조의 최소대우기준,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와 충분한 보호 및 안전”한 대우를 부여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

- URR이나 MSR 제도에 따라 특정 기간 중앙은행에 예치할 경우 자유로운 송금이 제한되게 되는데, 이는 투자 챕터의 송금 조항 의무를 위반하게 됨.

- 또한 자본유출에 대한 규제는 거의 대부분 송금 조항 의무를 위반하게 됨. 통상 과세의 경우 간접수용에 해당되지 않으나, 유출에 대한 과세는 차별적으로 적용되므로 간접수용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음.

- 국내 금융회사와 내국인에 대한 달러 차입과 대출 제한도 문제가 될 수 있음. 투자 챕터는 국내투자자에 적용되지도 않고, 국내투자자는 ISD를 제기할 수도 없음.

- 그러나 미국은행의 달러 대출 서비스를 제한하기 때문에, 즉 원화를 상대적으로 우호 대우하였기 때문에 내국민대우 조항을 위반했다고 제소할 수 있음. 위에서 언급했듯이 최소대우기준인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를 위반했다고 제소할 수도 있음. 2011년 8월부터 실시되고 있는 외환건전성 부담금 조치 또한 한미FTA 발효 이후 실시되었을 경우, 원화부채를 외화부채보다 우호적으로 대우했기 때문에 외국인투자자에 대해서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를 요구하는 최소대우기준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 설령 소송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정책 입안과 입법 과정에서 소송 제기의 위협으로 정책 무력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음.

■ 실효성 없는 한미FTA 세이프가드 조항

- 투자 챕터 부속서 11-사는 외국환거래법 6조를 적용할 수 있는 일종의 세이프가드 조치가 마련되어 있음.

- 외국환거래법에 따르면, “국제수지 및 국제금융상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거나 처할 우려가 있는 경우”나 “통화정책, 환율정책, 그 밖의 거시경제정책을 수행하는 데에 심각한 지장을 주거나 줄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할 수 있음.

- 그러나 자본유입 규제는 금융시장이 안정적일 때 실시하는 것이 효과적임. 실제 금융위기가 발생하여 원화가치가 폭락할 때 자본유입 규제를 실시하면 금융위기는 더욱 가중됨.

- 또한 내국민대우 조항 등 8개 요구 조항을 두었기 때문에 세이프가드 조치의 실시가 매우 제한적임. 내국민대우란 국내 금융서비스 투자에서 미국투자자에 대해 국내투자자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을 권리를 말함.

- 또한 “가격에 기초한 조치가 되도록 노력”한다는 단서 조항이 있는데, 외국환거래법 6조 2항의 자본거래 “허가” 조항과 지급수단의 일부에 대한 예치 의무 조항 등은 양에 기초한 조치에 해당함.

- 즉 거래의 일시 정지, 허가, 예치 의무 조항 등은 모두 양에 기초한 조치로 가격에 기초한 조치가 되도록 노력한다는 단서 조항을 위반하게 됨.


■ 자본유출입 규제와 ISD 폐기

- 지난 해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에 “신흥국은 과도한 자본유출입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해 거시건전성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선언함.

-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본통제를 적극적으로 실시한 브라질, 중국, 인도 등 신흥국에서는 심각한 금융위기를 방지했음. 이에 따라 IMF 또한 자본유출입 규제의 정당성을 인정함.

- 아이슬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경우, 자본유출에 대한 규제 또한 지속할 것을 권고하기도 함. 최근 브라질의 각종 자본유출입 규제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적절했다(appropriate)”고 평가함.

- 2011년 1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 교수를 비롯한 250여명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미 재무부와 무역대표부에 신흥국이 자본유출입 규제를 실시할 수 있도록 FTA 협정문을 변경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냄.

- 즉 자본유출입 규제에 대한 IMF 등 국제금융기구와 주류경제학계의 포지션에 적지 않은 변화가 발생함.

- 그러나 신흥국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본유출입 규제가 기축통화국인 미국에는 필요하지 않음. 따라서 월가와 미국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기존의 정책을 고수하고 있음.

- 자본유출입 규제는 한미FTA 투자, 서비스 챕터의 의무사항을 위반할 수 있으므로 ISD 제소당할 가능성이 높음.

- 2001~2년 아르헨티나는 외환위기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해외 송금 제한, 해외선물환 금지 제한 등의 자본유출입 규제를 실시함. 이에 따라 미국투자자에 44건의 수억 달러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음.

- 한미FTA 투자 챕터의 송금(7조), 간접수용(6조), 이행요건(8조), 내국민 및 최혜국 대우(3/4조), 대우의 최소기준(5조) 등은 자본유출입 규제를 엄격히 제한함.

- 또한 금융시장이 안정적인 상황에서 자본유입규제가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부속서의 세이프가드 조항은 실효성이 없음.

- 무엇보다 ‘간접수용’과 ‘공평하고 공정한 대우’ 조항이 너무나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하므로, 정책 및 감독 당국이 ISD 제소를 염려하여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심각한 위축효과(chilling effect)가 발생할 위험이 있음.

- 따라서 자본유출입 규제의 근거가 마련되도록 투자 챕터를 수정해야 하며, ‘사법주권의 민영화’인 ISD 조항은 반드시 폐기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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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보고서2011. 9. 26. 12:04

2011.09.26여경훈 새사연 연구원

최근 저축은행 사태에는 부동산 경기침체에 따른 PF(프로젝트 파이낸싱)대출 부실, 금융규제당국의 정책실패, 대주주의 방만 경영과 비리 등 온갖 문제가 겹쳐 있다. 하지만 모든 현상의 밑에는 정책실패가 도사리고 있다. 본디 상호저축은행은 영세 자영업자 및 소규모 기업 등에 금융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일반 시중은행이 이들에게 돈을 잘 빌려주지 않으니 그 보완 역할을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떼돈을 벌 욕심으로 부동산PF 등 고수익-고위험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한국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그리고 현재의 미국 금융위기를 일으킨 투자은행에 가까운 영업행태를 보인 것이다. 한국의 시중은행보다도 적은 몸집으로 미국의 투자은행처럼 행동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문제는 그런 행위를 규제해야 할 금융당국이 오히려 그 행위를 조장했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저축은행 사태는 ‘규제완화’와 ‘위험증가’라는 두 바퀴가 서로 맞물려서 일으킨 대규모 “인재”이다.

먼저 금융당국은 이해당사자들에게 포획되었다(규제포획, regulatory capture). 부산저축은행에서 보듯이 정치권 로비와 회전문 인사 관행로 인해 당국은 자신의 존재이유조차 잊어버렸다. 또한 금융당국은 ‘대형화’ 신화에 사로잡혀 저축은행의 외형 확대를 적극적으로 방조했다. 작년 상반기 기준, 11개 계열저축은행의 총자산 합계는 53.2조원으로 총 105개 저축은행 총자산의 61.8%나 차지하였다. 위험관리능력도 경험도 없는 몇몇 저축은행이 이렇게 몸집을 부풀린 것은 그만큼 동반부실의 위험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산, 토마토, 제일 등 3개 대형 저축은행 앞에서 울부짖는 서민들의 고통을 만든 것은 이들 앞에서 “염려 말라”며 2000만원짜리 저축 쇼를 하고 있는 바로 그들이다.

두 번째는 규제퇴보다. 당국은 과거 금융위기의 교훈을 너무도 빨리 잊어버리고 ‘금융허브’와 같은, 이제 망상으로 판명난 정책목표를 고집했다(불행하게도 아직도 고집하고 있다). 2005년 말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제로베이스 금융규제 개혁방안’이 대표적이다. 이른바 88클럽이 탄생하고 법인에 대한 80억 금액규제의 한도도 폐지했다. 80억 초과 여신의 60.8%(10.7조)가 부동산 대출이었고 2005년 6.3조원이던 PF대출은 1년 만에 84%나 증가하였다. 이 규제퇴보가 부동산 PF를 불러온 것이다.

세 번째로 규제회피란 새로운 금융상품과 기법을 개발하여 기존 규제의 틀 밖에서 새롭게 위험을 발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저축은행이, 사실상 스스로 지배하는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비업무용 부동산 투자행위, 한도 초과 여신 및 투자행위, 분식회계와 편법대출을 자행하는데도 당국은 수수방관으로 일관했다. 지금 서민 고통의 핵심인 후순위 채권은 2009~10년에만 9000억 넘게 발행되었고, 그 발행금리가 수신금리보다 3~4%p 높아 은행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당국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끝없이 오르고 있던 부동산가격은 1997, 2004년 금융위기의 뼈저린 기억마저 망각의 늪으로 밀어넣었다. 시중에는 부동산 재테크 관련 뉴스와 책이 넘쳐났고 투기꾼과 건설사, 그리고 저축은행은 부동산버블의 향연을 마음껏 즐겼다. 우리의 금융당국은 ‘자율규제’라는 명분을 내세워 잔치의 흥을 돋울 뿐이었다.

현재 정부는 어떻게든 이 위기를 미봉해서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진단은 저축은행이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감독과 규제시스템을 철학부터 수단까지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안정과 실물과 금융의 균형발전전략이 금융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대형화를 통한 투자은행 육성, 금융허브와 같은 망상을 하루 빨리 버려야 한다. 그런 기조 하에서만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위한 서민금융기관으로서 저축은행은 부활할 수 있다. 미봉이냐, 근본적 전환이냐, 금융감독의 기조도 어떤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을 것인가의 시금석 중 하나이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실린 글 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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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축은행 사태, 정말 곁에서 봐도 너무 말도 안됩니다. 은행이 고객돈을 빌려다 이자는 못 줄 지언정 원금까지 까먹고 거기다가 정부까지 5천만원 한도 보장이라고 엄포를 놓으니 예금자들은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 아니겠습니까? 물론 은행의 부실을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대손충당금이나 자기자본 비율 제도만 잘 정비해 놓았어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사실 은행이 비상시 고객의 돈을 변제할 능력도 안되면서 은행업을 하거나 정부가 사업을 허가해 준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됩니다. 그리고 극도의 불황으로 부도업체가 급증하는 시기에 이번 저축은행 사태가 터진 것도 아니고 어찌보면 내막에 석연치 않은 부조리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예금자들이 맡긴 돈 중엔 노후자금이나 평생 모아서 저축한 돈들도 있었을텐데 이런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 금융시스템과 법적 제도가 얼마나 취약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아마도 이런 취약한 제도가 도입된 데에는 말씀하신대로 선진국들의 위험한 금융제도를 아무런 검토나 연구없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우리네 감독당국과 은행들의 한심한 베끼기가 한몫 했을 겁니다. 무엇이 상식이며 무엇이 예금자들에게 안전한 시스템인지는 배제된 채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선진국들의 금융제도를 도입해 돈벌이를 하려고 하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거지요.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 이런 허술함의 기본적인 재정비를 통해 돈을 맡긴 선량한 국민들이 이런 무능하고 비도덕적인 은행으로부터 돈을 떼이지 않게 하기 위한 철두철미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자꾸 업계를 대변하려 하지 말고 정말로 예금자 편에 서서 국민들 편에 서서 이런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여기에 대해 너무나 소극적이었고 선진국의 금융 제도를 그대로 베끼기에만 급급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문제라고 볼 수 있죠.

    2011.10.01 14:48 [ ADDR : EDIT/ DEL : REPLY ]

재정위기: 국가를 굶기는 전략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차]

 1. S&P,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2. 국가를 굶겨라(Starve the beast)
3. 1920년대를 꿈꾸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
4. 신자유주의 모델: 저성장, 양극화, 그리고 재정위기
5. 재정위기 해법: 신자유주의 모델을 버려라

[본문]
1. S&P,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8월5일,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S&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시켰다. 현재 S&P는, 중국과 일본은 미국보다 두 단계 낮은 AA-, 한국은 일본보다 두 단계 낮은 A를 부여하고 있다. 세계적인 재정위기를 촉발시킨 그리스는 현재 투기등급인 CCC를 받고 있다.

통상 신용등급이란 채무를 갚을 능력의 높고 낮음을 평가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국채 상환능력이 하락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국제금융시장에서 미 국채의 가격이 하락하여 차입 금리가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S&P의 등급 강등 이후 오히려 미 국채의 수익률은 떨어지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안전자산인 달러나 미 국채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호가 증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S&P의 신용평가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의문을 반영하기도 한다.

S&P를 비롯한 3대 신용평가기관은 악성 부동산 파생상품들에 대해 AAA라는 터무니없는 등급을 매겼다. 심지어 9월15일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할 당시에도 리먼에 대해 A라는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하였다. 신용등급 A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에 해당한다. 한 마디로 신용평가기관은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하고 확산시킨 주범 중의 하나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가신용등급 평가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국가부채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스페인, 아일랜드에 대해서는 2009년 이전까지 AAA 등급을 부여했다. 국가부도사태를 맞아 IMF 구제금융을 받은 아이슬란드도 현재 미국과 같은 AA+를 부여하였다. 국가 재정위기를 촉발시킨 그리스의 신용등급도 현재 우리나라와 같은 A였다. 그리스는 2009년 1월이 되어서야 강등하기 시작했는데, 2010년 3월까지도 투자등급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이 글은 신용평가기관의 평가 기준의 자의성이나 평가 잣대의 형평성 등을 비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또한 미국 국가신용등급의 적절성에 대해서 평가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신용평가기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 중의 하나로 지목되었고 금융규제와 개혁 대상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신용평가란 시장에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으로 언론과 마찬가지로 ‘공공’의 영역에 해당된다. 따라서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적절한 규제나 감독과 함께 공공신용평가기관을 설립하여 민간신용평가기관의 독점적 횡포와 시장 혼란을 예방해야 할 것이다.
 
재정위기는 ‘복지국가’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미래 전망에 대한 정치권의 담론 지형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줄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10일 비상점검회의에서 세계 금융시장 불안을 ‘미국 부채위기에 따른 글로벌 재정위기’로 규정한 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며 복지지출 확대를 ‘복지 포퓰리즘’이라 매도하였다. 미국의 재정위기의 원인을 과도한 복지지출로 본 것이다. 이는 지난 해 무상급식 논쟁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리스 문제를 언급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따라서 미국 재정위기의 원인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밝히는 것은 향후 복지국가와 재정건전성 논쟁에서 적지 않은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글은 미국 재정위기의 원인을 ‘국가를 굶기는’ 재정전략을 중심으로 역사적 맥락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2. 국가를 굶겨라(Starve the beast)

위의 그림은 1930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09년에는 GDP의 10%인 1.4조 달러, 2010년에는 8.9%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2011년에는 1.7조 달러로 10.9%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막대한 재정적자는 비단 미국만 기록한 것은 아니다. 2009년에 EU 27개국은 평균 GDP의 6.8%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기록하였다. 특히 아일랜드(14.3%), 그리스(13.6%), 스페인(11.2%) 등 최근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의 재정적자 비율이 높았다. 현재 미국보다 높은 AAA를 받고 있는 영국(11.4%)과 프랑스(7.5%)도 예외가 아니었다. 재정적자는 경기침체기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경제적 현상이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기업의 이윤과 자산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세수는 하락하고, 실업보험과 사회안전망 같은 ‘자동안정화’ 프로그램에 따라 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발생한 10%에 달하는 재정적자는 역사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43년에 30.3%가 최고 수준이었고 전쟁 기간 평균은 22.2%에 달했다. 따라서 2차 세계대전을 제외하면, 2010~2011년의 10%에 달하는 재정적자는 대공황 기간을 포함하더라도 역사상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는 1980년대 레이건 시절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스타워즈로 대변되는 소련과의 군비 경쟁과 천문학적인 감세정책에서 비롯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재정적자는 1983년에는 GDP의 6%로 증가하였고, 8년의 재임 기간의 평균도 4.2%로 매우 높았다.

실제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1980년 70%에서 1988년 28%로 대폭 줄어들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공화당이 여러 번 집권하기는 했지만, 전쟁으로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소득세율이 정상화되었을 뿐 본격적으로 감세정책이 실현된 적은 없었다.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닉슨, 포드 등은 균형재정을 목표로 감세보다는 오히려 증세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감세에 소극적인 포드의 재선 패배 이후, 공화당 내부에서 ‘국가를 굶기는’ 재정전략이 정치적으로 이슈를 선점하게 되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미디어와 프리드먼을 주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감세정책 확산에 결정적인 기여를 담당하였다. 예를 들어 1976년 월스트리트저널에 논설위원인 워너스키(Wanniski)는 ‘감세와 두 산타 이론’이라는 유명한 글을 통해 공화당은 감세 전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창하였다.

“미국경제가 건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간 분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각각은 다른 형태의 산타클로스가 되어야 한다. 소득재분배의 당인 민주당은 지출 산타클로스의 역할에 적합하다. 전통적으로 소득성장의 당인 공화당은 감세의 산타클로스가 되어야 한다.” Wanniski(1976), Taxes and a Two-Santa Theory.

즉 야당이 복지지출을 늘려 유권자의 표심을 얻을 경우, 여당이 이에 반대하여 복지지출을 삭감하자고 주장하면 표심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공화당은 감세를 통해 표심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지출 축소라는 의도한 목표도 궁극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급진적인 공급주의 경제학을 신봉한 그는 감세는 민간부문의 인센티브를 자극하여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감세와 경제성장은 유권자에 호소할 수 있는 정치적으로 매력적인 옵션임과 동시에 사회복지와 정부를 축소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으로 훌륭한 도구였다.

뉴스위크 잡지의 칼럼을 통해, 밀턴 프리드먼 또한 국가를 굶기는 감세전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였다. “개인이나 가계의 지출에 대한 유일한 효과적인 제약이 소득 한도에 있는 것처럼, 정부 지출을 제약하는 유일한 효과적인 방식은 정부의 명시적인 세수를 제한하는데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Friedman(1977), The Kemp-Roth Free lunch, Newsweek.

그리고 1980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레이건이 감세정책을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그의 당선으로 국가를 굶기는 전략은 본격적으로 실현되게 되었다. 국가를 굶기는 전략은 여러 변종이 있지만, 핵심은 감세정책을 통해서 우파가 염원하는 작은 정부와 사회복지지출 축소를 목적으로 한다. 간단한 예로, 사나운 맹수를 잡기 위해 구덩이의 덫을 놓은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맹수를 구덩이로 유인하기 위해 구덩이에 먹을 것을 놔두고 맹수가 구덩이에 들어갈 때 까지 굶기는 방식이다. 이른바 채찍과 당근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감세정책을 통해 국가의 재정수입이 줄어들면, 심각한 재정적자를 초래하게 되고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사회복지지출 축소를 강제할 수 있다는 논리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보수우파의 경제정책이 실패하면 실패할수록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감세정책은 근시안적인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하는 유력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실패해도 위기를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이른바 ‘꽃놀이패’에 해당한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재정적자가 늘어날수록 재정적자 문제는 확대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복지지출을 축소하려는 요구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재정위기 담론은 지난해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남유럽 전체로, 이제는 미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금융위기를 경고하지도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며 숨죽이고 있던 ‘신자유주의’와 보수우파의 정치적 공세가 국가재정위기(Sovereign-debt crisis)라는 용어를 빌려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지난 해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도 반영되었다. "선진국 경제는 2013년까지 재정적자를 적어도 절반으로 줄이고, 2016년까지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을 줄이거나 안정화시킬 재정계획을 공언"한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S&P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이에 따른 세계경제 불안은 보수우파의 정치적 승리의 정점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재정위기 논란은 길게는 대공황을 전후로 만들어진 미국의 뉴딜체제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을 부정하기 위한 1980년대 신자유주의 기획의 화려한 복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가의 역할이나 재정정책의 유효성을 부정하기 위한 정치적 시도이다.

3. 1920년대를 꿈꾸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

대공황 직전 당시 미국에서 산업과 금융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었다. 소득세율 또한 25%로 매우 낮았으며 금융버블에 따른 천문학적인 재산가치 상승은 소수의 부자에 집중되었다. 1923년부터 1929년까지 소득증가의 70%는 상위1% 계층에 집중되었고, 하위90%는 불과 15%만을 가져갔다. 우파가 꿈꾸던 세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극단적인 ‘자유시장’ 경제체제는 본질적으로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공황이나 사회적 불안에 직면하게 된다. 1929년 대공황 이후, 1933년에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고 실질GDP는 27%나 떨어졌다. 경제적 붕괴는 자본주의 체제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만큼 심각한 사회정치적 혼란을 초래하였다.

따라서 규제되지 않는 자본주의는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자체의 존립에도 심각한 위험을 제기한다는 관점이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사회적 질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서 기존의 자유방임적 시각에 대한 수정을 기득권 또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견해가 득세함에 따라 루즈벨트가 1933년 집권하게 되고, 뉴딜(New Deal)이라는 사회적 프로그램을 전개할 수 있었다. 금융시장 규제, 사회보장 및 실업보험 프로그램, 산업별 노조운동에 대한 지원, 대규모 공공고용 프로그램 등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프로그램의 일부가 미국의 뉴딜체제에 수용되었다.  
 
따라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의 경제적 역할은 더욱 확대되었다. 정부의 재정지출은 1929년에 GDP의 3%에 불과했지만, 1950년대는 16%로 늘어났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유사한 사회보장(Social Security) 프로그램은 직업과 계층을 보편적으로 포괄하며 더욱 확대되었다. 1965년에는 사회보장법 형태로 고령자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 프로그램들이 실시되었다. 노동조합 운동이 활성화되어 1920년대 10%에 불과하던 노조조직률은 1954년에는 역사상 최고치인 34%까지 올랐다.

노동조합은 자동차를 비롯한 미국경제의 핵심 산업에서 강력했기 때문에, 노조의 임금 및 단체협상은 노조가 없는 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생산성에 동반한 실질임금 상승을 주도하였고 전후 경제성장과 불평등 해소의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강력한 노동조합은 민주당에 금전적 지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선거운동에 시민들을 동원하고 조직하였다. 특히 노동조합은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 대기업과 부유층의 권력을 제한하고, 정부의 경제정책이 빈곤층과 중산층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견인하는 중요한 세력이었다. 

물론 미국의 보수우파는 뉴딜에 대해서 강력히 저항하였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완화,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감세, 노동조합 운동의 소멸, 정부의 사회복지지출 축소, 대공황 이전 수준의 소득분배 등, 한 마디로 1920년대 시스템으로 회귀하고자 하였다. 뉴딜에 대한 우파의 반대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것이지만, 도덕적, 이데올로기적 요소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즉 뉴딜과 노동조합은 기득권에게 이윤축적과 재산권에 대한 위협이기도 했지만, 보수적 가치와 생활방식에 대한 위협으로도 인식하였다. 그러나 노동조합과 뉴딜복지는 전후 5~60년대 미국에서 두터운 중산층과 ‘자본주의 황금기’를 형성한 양 날개였다. 따라서 1970년대 초반까지 뉴딜에 대한 보수우파의 저항은 정치적으로도 표면화되지 못하였다. 실제로 1970년대 초반에 집권한 공화당의 닉슨은 뉴딜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하는 등 오늘날의 민주당보다 더욱 진보적인 정책들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사의 전환점은 모두가 주지하듯이 1970년대 중반이었다. 1970년대에 두 차례 석유위기가 역사의 전환점을 촉발시킨 방아쇠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 결과 물가가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경제정책은 경제의 총수요를 관리하기 위해 재정 및 통화정책에 배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인플레이션의 비용을 치루고 성장과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총수요를 자극하던지, 실업과 저성장의 비용을 무릅쓰고 물가를 잡기 위해 총수요를 억제할 수 있었다. 당시 1973년 석유위기에 대응하여 미국은 후자의 정책옵션을 선택하였다. 그 결과 실업률은 1973년 4.9%에서 2년 후에는 8.5%까지 치솟았고, 1974년에 물가상승률은 11%까지 상승하였다. 이른바 물가는 상승하고 실업률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성장률 하락에 따른 이윤과 주가 하락, 그리고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동반상승은 경제적 불만을 촉발하기에 충분하였다. 한편, 경제적 불만에 편승한 인종 갈등과 1960년대부터 전개되기 시작한 ‘문화전쟁(Culture wars)’ 등으로 사회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경제적, 사회적 혼란과 불만은 우파의 경제적 파워와 문화적 보수주의자들 간에 정치적 동맹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들은 보수우파의 이데올로기적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싱크탱크와 대학에 막대한 돈을 지출하였고, 미디어를 통하여 보수적 프리즘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 사건을 대중에게 직접 해설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1980년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은 1920년대로의 회귀를 꿈꾸는 보수우파의 정치적 승리를 표출하는 사건이었다. “정부는 문제에 대한 해법이 아니라, 정부가 바로 문제”라고 주장한 레이건의 당선은 정부가 경제에 유익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뉴딜의 근본 사상을 뒤엎은 것이다.

레이건은 1920년대 모델의 현대적 버전인 글로벌 신자유주의 모델을 강력히 추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재임 기간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70%에서 28%로 줄어들었고, 노조조직률은 23%에서 15.7%로 줄어들었다. 금융시장 탈규제, 대규모 감세, 친기업 기조에 따른 노조 공격, 높은 실업률은 불가피하게 양극화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
 
위 그림 에서 보는 것처럼, 전체 소득에서 상위 10%와 1%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공황 이후 1950~60년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상위1%가 차지하는 비중은 1928년 18.4%를 정점으로 1976년에는 6%까지 하락하였다. 그러나 레이건 재임 마지막 해인 1988년에는 12%까지 오른 후 2008년 경제위기 직전에는 19.3%까지 오를 정도로 양극화는 확대되었다.

레이건은 대규모 감세정책을 추진했을 뿐만 아니라, 소련과의 군비경쟁으로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지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재정적자는 1976년으로 GDP의 4.2%였고, 3%를 초과한 해가 3년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연평균 재정적자는 5.9%까지 상승하였다. 대규모 감세와 천문학적인 국방비 지출의 전철을 그대로 밟은 대통령이 익히 알려 진대로 2001년 집권한 부시였다.

4. 신자유주의 모델: 저성장, 양극화, 그리고 재정위기

1970년대 말 이후 신자유주의 모델로 전환된 이후 미국경제는 성장률이 정체되고, 양극화는 구조적으로 확대되었다. 1950~1979년 실질 성장률은 3.75%를 기록했지만, 1979~2010년 기간은 2.75%에 불과하였다.

아래 왼쪽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1946~1976년 기간은 1976~2007년에 비해 1인당 평균소득 증가율이 더 높았다. 뿐만 아니라, 하위90%의 평균소득 증가율도 상위1%보다 현저하게 높았다. 그러나 1976~2007년 기간, 1인당 실질GDP가 평균 66% 증가했지만, 하위 90%는 불과 8% 소득이 증가하는데 그쳤다. 상위1%는 놀랍게도 280%나 소득이 증가하였다. 소수의 부자가 부를 독점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위의 오른쪽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부시 재임 기간 양극화 수준은 1920년대 후반보다 더욱 심각해졌다. 2002~7년 경제호황 기간, 상위1%는 61.8%(상위0.1%는 94.1%) 만큼 실질소득이 증가했지만, 하위90%는 불과 3.8%(연평균 0.8%) 증가하는데 그쳤다. 

한편 신자유주의 모델은 대규모 감세정책과 경제성장률의 정체를 초래하므로, 구조적으로 정부의 재정수입을 줄이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정부의 재정지출을 줄일 것을 공약하지만, 국방비 지출은 체계적으로 상승하는 특징도 보인다.

정부의 채무상환능력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는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다. 동 비율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 100%를 초과했지만, 뉴딜체제 도입 이후 경제성장률이 부채증가율을 상회하여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 레이건이 집권하기 이전 이 비율은 25.8%까지 하락하였다. 그러나 레이건 재임 기간 거의 60% 이상 상승하여 1988년에 41%까지 상승하였다. 클린턴 시절 이 비율은 49.3%에서 34.7%로 하락하였다. 온건한 증세와 높은 성장률로 재임 기간 마지막 3년은 재정흑자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당시 2001년 부시 취임 이후 의회예산청(CBO)에서는 클린턴 시절의 재정정책을 유지할 경우, 향후 10년 동안 누적적으로 5.6조 달러에 달하는 재정흑자를 달성할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보수우파에게 재정흑자 또한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다. 정치권에서는 재정흑자가 큰 정부를 양산한다는 논리로, 금융권에서는 미국의 국채시장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를 쏟아내었다. 그리고 월가와 워싱턴의 보수우파들이 재정흑자를 줄인다는 명목 하에 꺼내든 수단이 또한 ‘감세’였다. 미국에서 재정문제가 발생하면 ‘감세’는 녹슨 칼집을 헤집고 만능보검처럼 등장하였다.

그리고 실제 2001~11년 동안 5.6조 달러의 흑자 예상은 4.7조 달러 적자로 전환되었다. 부시가 취임했을 때 GDP 대비 부채비율은 32.5%였지만, 그가 퇴임했을 때 이 비율은 40.3%로 증가하였다. 물론 부시가 대규모 감세와 천문학적인 전비 지출만 남겨놓고 떠난 것은 아니다. 바로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남겨두었다. 아래 그림은 미국의 예산정책우선센터(Center on Budget and Policy Priorities)가 미국의 재정적자를 초래한 요인별로 분석하여 추정한 것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부시 감세정책, 2008년 경기침체가 향후 10년 동안 재정적자를 초래하는 주요 요인들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매년 1.3~1.4조 달러의 재정적자를 보이고 있는데, 그들의 추정에 따르면 감세와 중동전쟁이 매년 약 5000억 달러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의 재정정책이 지속되면 연방부채는 2019년 20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절반인 10조 달러가 부시 감세와 전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업보험, 사회보장, 의료보험 등 뉴딜 복지 프로그램은 위의 재정적자 목록 그 어디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미국의 보수우파는 재정위기는 사회복지 지출이 지나치게 늘어나서 초래되었다고 주장한다. 사실과 다른 원인을 제기하는 것은 감세정책을 방어하고 그들의 일관된 기획인 국가를 굶기는 전략에서 비롯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실 재정위기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출 감소와 수입 증가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이것이 재정을 바라보는 보수의 균형 있는 시각이다. 그러나 부채한도 증액 협상에서 미국의 보수우파는 증세를 비롯한 재정수입 증가 방안은 전혀 고려하지는 않는다. 오직 복지지출 삭감만을 요구한다. 문제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 그릇되게 진단했기 때문에, 해법도 엉터리로 제시할 수밖에 없다. 

5. 재정위기 해법, 신자유주의 모델을 버려라

2009년 이후 미국의 재정적자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지급 부담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이 2009년 이후 제로금리 정책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980년대보다 현재 20%p 정도 늘어난 상태다. 그러나 1980년대에 국채의 평균 수익률이 10%를 넘었지만 현재 2%에 불과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자지급 부담은 줄어들었다. 1960~2010년 정부지출 대비 이자지급 비중은 평균 9.9%였지만, 2010년에는 5.7%로 떨어졌다. 부채 부담의 실질적인 지표가 GDP 대비 국가부채의 스톡 개념이 아니라, 정부지출 대비 이자지급의 플로우 개념이라면 미국의 재정적자는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국가를 굶기는 전략은 1920년대 시장만능 경제모델을 현대적으로 복구하려는 미국 보수우파의 거대한 재정전략이다. 국가의 역할과 사회복지 지출을 축소하기 위해, 감세정책을 통해 의도적으로 재정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다. 재정위기의 지속 불가능성을 정치적으로 확산하여, 실제 재정위기가 초래되면 복지지출 삭감을 선택이 아닌 재정위기의 유일한 해법으로 강제하려는 전략이다. 따라서 재정적자나 재정흑자에 상관없이 1980년대 이후 감세정책은 클린턴 시절을 제외하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특히 지난해부터 재정위기 담론이 국제적으로 확산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숨죽이고 있던 보수우파의 정치적 공세가 성공하고 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향후 미국이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은 어렵지 않다. 원인에 따른 처방, 이보다 현명한 경제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부시 감세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부자와 대기업에 대해서는 증세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이고 있는 두 개의 전장에서 하루속히 철군해야 한다. 그리고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산업정책을 통한 제조업 경쟁력 회복, 소득정책을 통한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동반 상승, 금융투기에 대한 거래세를 비롯한 금융규제정책 등을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조합과 대기업의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국가가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 지출 축소를 통한 ‘작은 정부’가 아니라, 시장경제에 대한 ‘유능하고 책임 있는 정부’의 유익한 개입을 실시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 전환은 비단 미국경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현 정부에서 발생한 재정적자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발생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감세, 4대강 사업을 비롯한 시대착오적 토목공사 지출, 남북대결에 따른 국방비 지출 확대 등은 수입과 지출 양 방면에서 재정적자를 확대시킨 주요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수준이 7~8%에 불과한 우리의 현실에 ‘복지 포퓰리즘’ 주장은 사실이라기보다는 선동에 가깝다. 따라서 미국의 재정위기의 원인을 반면교사삼아, 대규모 감세와 4대강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남북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정치가 건전한 재정을 만드는 법이다. 보수가 국가를 굶기는 전략으로 재정을 파탄 낸다면, 진보는 미래를 살찌우는 전략으로 재정을 튼튼하게 가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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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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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11. 6. 27. 11:50
2011 / 06 / 24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QE2: 자산버블 트리클다운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차]

1.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

2. 양적완화와 FRB의 자산-부채 증가

3. 양적완화와 인플레이션

4. 양적완화와 실물경제

5. 양적완화와 금융시장

1.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

중앙은행이 총수요를 자극하기 위해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은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처럼 명목금리가 0% 수준으로 내려가면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다. 왜냐하면 장롱 속에 현금을 보관하는 편이 낫지, 금리를 주면서까지 돈을 빌려주려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상 이 시점에서 명목금리는 제로하한(zero bound)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물론 유사 이래 한국경제는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적이 없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이러한 상황에 부딪혔고, 1999년 초반 일본경제도 제로하한에 도달하였다.
이 때 중앙은행이 붕괴된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시장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안정 또는 상승하도록 중앙은행이 제로금리를 장기간 유지하겠다는 약속이다. 이번 달(6/22) 미국의 통화정책을 반영하는 FOMC 성명서에도, “이례적으로 낮은 금리를 확장된 기간 동안 유지”하겠다는 문구가 이어졌다. 이는 경기회복이 가시화 될 때 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금융시장에 시그널을 보임으로써, 기대인플레이션이 하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를 지닌다. 만약 중앙은행의 지속적인 제로금리 정책으로 시장의 기대인플레이션이 상승했다고 가정해 보자. 통상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을 차감한 것으로 정의되므로,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면 실질금리는 하락하는 효과를 지닌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리먼 사태 이후 기대인플레이션은 -1% 이하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금융시장에서 디플레이션까지도 예상한 것이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그리고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기대인플레이션은 2% 수준까지 회복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국경제 하강에 대한 우려로 다시 떨어지고 있다. 양적완화가 디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성과라 평가할 수도 있다.

“오늘 1온스의 금이 300달러 정도에 팔린다. 이제 현대의 연금술사가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고, 새로운 금을 무한대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의 오랜 난제를 해결했다고 가정해보자. 또한 그의 발견은 대중에게 공표되고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으며, 몇 일내로 금을 대량 생산할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발표한다. 금 가격에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짐작컨대 저렴한 금을 무한대로 공급하면 금의 시장가격은 폭락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금 시장이 상당한 정도로 효율적이면, 연금술사가 금을 생산해서 1온스의 황금을 시장에 내놓기도 전에 발명했다는 발표가 나오자마자 즉시 폭락할 것이다.”

이 말은 2001년 일본에서 디플레이션 우려로 양적완화가 실시되고 미국 내 학계에서도 디플레이션 논의가 있을 때, FRB 의장인 버냉키가 디플레이션 해법의 기본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다. 즉 상품화폐인 금처럼, “유통 중인 미 달러의 양을 늘림으로써 미국 정부는 재화와 서비스로 표시한 달러의 가치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재화와 서비스의 양이 변함이 없다고 할 때, 그것의 가치를 표현하는 화폐의 공급을 늘려 화폐가치를 줄여서 디플레이션을 방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디플레이션 방지의 핵심은 통화 단위인 ‘달러’ 가치의 하락이며, 실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 정책도 이러한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장의 기대인플레이션은 측정하기도 통제하기도 매우 어렵기 때문에 통화정책 도구로 논란이 많은 변수다. 또한 이미 제로하한에 도달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에 계속 유지하겠다는 시그널만으로 시장의 기대를 상승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기대인플레이션은 경제성장률 등 실물경제를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음으로, 중앙은행이 취할 수 있는 정책도구는 유동성의 공급이다. 즉 ‘가격’ 변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양’의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이는 크게 2008년 9월 리먼 사태를 기준으로 금융기관과 금융시장에 대한 유동성 공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를 유동성 부족의 문제로 간주한 FRB는, 2007년 12월부터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에 유동성 공급을 늘리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나 리먼 사태 이후 금융시장이 총체적으로 붕괴되자 정책수단의 변화를 가져왔다. 따라서 부동산 파생상품의 증권화 과정과 관련된 ABCP, CP, ABS 등 단기신용시장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통상 개별 금융기관과 금융시장에 대한 중앙은행의 자금공급, 이에 따른 중앙은행 대차대조표 상의 자산구성의 변화를 초래하는 프로그램을 신용완화(credit easing)라 부른다. 즉 신용완화 정책이란 민간 금융회사에 예외적인 방식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민간의 금융자산을 중앙은행이 인수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에 비해,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이란 중앙은행의 장기국채 인수, 이에 따른 대차대조표의 규모 확대를 초래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따라서 2008년 12월부터 2010년 3월까지 1.725조 달러의 MBS와 국채를 매입한 프로그램을 1차 양적완화라 부른다. FRB는 양적완화를 통해 MBS와 장기국채를 대량 매입하여 침체된 주택시장을 부양하고 장기금리를 내려서 실물경제 회복을 노렸다. 그러나 FRB의 양적완화 효과가 끝나고 더블딥 우려가 시장에 팽배할 때 또 다시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재개한다고 선언하였다. 이에 따라 지난 해 11월부터 6000억 달러에 달하는 국채를 추가로 매입하고 있다. 그리고 2차 양적완화 정책은 이번 달 말 종료된다. 그리고 1차 양적완화가 종료될 때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미국경제 하강에 대한 우려가 시장에 팽배되어 있다.

2. 양적완화와 FRB 자산-부채 증가

위의 그림은 FRB의 신용 및 양적 완화 프로그램에 따른 대차대조표의 자산 상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 FRB의 총자산 규모는 대략 9000억 달러에 달했다. 2007년 여름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한 이후 자산규모에는 큰 변함이 없었다. 다만 자산의 구성 상 단기국채(treasury bills)가 감소하고 신용완화에 따른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에 대한 단기대출이 증가하였다.

아주 간단한 예를 통해 FRB의 신용완화에 따른 민간은행의 대차대조표 변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두 종류의 은행을 상정하고 법정지급준비금은 예금의 10%라고 상정하자. 두 은행 모두 동일한 자본금과 예금으로 영업활동을 한다. 다만 B은행이 위치한 지역의 경기가 활성화되어 A은행보다 대출 기회가 더 많은 환경을 가정하고 있다. 단기 은행 간 신용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위의 예처럼 B은행은 A은행에서 차입하여 대출을 증가시킬 수 있다. 당연히 지급준비금을 최소화하려는 은행의 행위에 따라 초과지급준비금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때 신용경색이 발생하게 되면, A은행은 B은행에 차입금 상환을 요구할 것이다. B은행이 다른 은행에서 차입하거나 더 많은 예금을 유치할 수 없다면, A은행에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대출을 줄여야 한다. 따라서 가계를 비롯한 차입자는 대출을 상환해야 하고 이는 예금 인출을 초래한다. 결국 대출을 상환함에 따라 경제 전체의 통화량과 경제활동은 줄어들게 된다. 이른바 연속적인 대출회수와 부채축소의 악순환, 디레버리징이 발생하는 것이다.

통상 중앙은행이 신용경색에 대응하는 방법은 기준금리를 낮추는 것이다. 기준금리를 낮추면 차입비용이 줄어들고 따라서 전에는 수익을 맞출 수 없었던 대출 활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B은행의 대출감소를 상쇄할 만큼 A은행에서 대출을 늘리면 경제활동 규모는 줄어들지 않는다. 신용완화란 기준금리를 낮출 수 없는 환경에서, 디레버리징을 최소화하기 위해 A은행이 했던 자금중개 기능을 중앙은행이 직접 대신하는 것이다. 즉 중앙은행이 직접 A은행에 자금을 입금시키면 된다. 특별 유동성 확대 프로그램이란 이런 원리에 따라 작동하였다.

중앙은행에 예치된 B은행의 지급준비금 계좌에 중앙은행이 40을 입금시키면, B은행은 이 자금으로 A은행에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다. 즉 B은행 입장에서 중앙은행 대출은 은행 간 시장을 대체한 것이고, 결국에는 A은행의 지급준비금 확대로 귀결된다. 증가한 지급준비금을 회수하기 위해 공개시장조작 정책을 통해 단기국채를 매각하였다. 그 기간 단기국채는 2770억 달러에서 184억 달러로 감소하였다.[위 그림의 연두색] 그러나 2008년 9월 신용완화 프로그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FRB가 보유하고 있던 단기국채가 소진되자 공개시장조작을 통한 단기국채 매각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 FRB는 재무부와 공조하여 재무부가 단기채권을 발행하고, 채권 매각대금을 중앙은행 계좌에 입금하는 프로그램(SFP)을 도입하여 지급준비금을 흡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SFP 프로그램의 규모보다 2008년 11월 이후 도입된 1~2차 양적완화 규모가 훨씬 컸다. 양적완화가 시행될수록 지급준비금 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금융위기 이전 평균 400억 달러에 달하는 지급준비금 규모는 현재 1.65조 달러로 증가했다. 그리고 이의 대부분은 법정지급준비금을 초과한 초과지급준비금이다.

3. 양적완화와 인플레이션

경제학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은 아주 유명한 방정식이 존재한다.

M = mH

(M: 통화량, m: 통화승수, H: 본원통화)


즉 경제 전체의 통화량은 본원통화(지급준비금+유통 중인 화폐)에 통화승수만큼 곱해져서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신용창조’라고도 해석되는데, 지급준비율이 10%이고 민간이 모든 현금을 은행에 예금하면 통화승수는 10이 된다. 즉 중앙은행이 지급준비금을 10%만큼 증가시키면 ‘신용창조’ 과정을 통해 통화량은 100%만큼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은행에 1달러의 자본금을 투입하면 실제로 가계와 기업에 8~10달러의 대출을 초래할 수 있는 통화승수 효과는 궁극적으로 더 빠른 경제성장의 속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2009년 4월, “구제금융에 사용된 돈이 어디로 갔는가?” 라며 대중의 분노가 폭발할 즈음,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조지타운 대학에서 실시한 연설 내용 중 일부다. 금융회사에 대한 구제금융은 신용창조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음과 같은 유명한 식도 경제학 교과서에 잘 기술되어 있다.

경제 전체의 통화량과 유통속도의 곱은 명목소득과 같다는 항등식인데, 이를 통해 통화량 증가는 물가상승률을 초래한다고 설명한다. 중앙은행의 막대한 유동성 공급이 초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이의 두 가지 유명한 경제적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즉 양적완화가 초인플레이션을 초래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고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 중앙은행이 국채매입을 통해 지급준비금이 증가해야 한다. 둘째, 지급준비금 증가는 통화량 증가를 초래해야 한다. 셋째, 통화량 증가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해야 한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중앙은행의 신용 및 양적완화 정책은 시중은행의 지급준비금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그러나 지급준비금 증가가 반드시 통화량 증가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통화량이 증가하기 위해서는 초과지급준비금이 가계와 기업 대출 증가에 활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FRB에 예치한 지급준비금에 0.25%의 금리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적 불확실성과 부채축소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리스크를 감안한 기대수익률이 0.25%를 초과하지 않는다면 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지 않게 된다. 무엇보다 가계의 기존 대출금 상환 규모가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규모보다 크면 오히려 통화량은 줄어들 수도 있다.

지난 1사분기 기준, 미국의 가계부채는 11.5조 달러로 2008년 3분기보다 1.03조 달러(8.2%) 감소하였다. 즉 지급준비금이 1.6조 달러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동안 가계의 부채축소 또한 진행되어 통화량(M1 또는 M2)의 증가규모는 지급준비금에 미치지 못하였다. 즉 유통속도가 하락하여 M1으로 측정한 통화승수는 금융위기 이전 1.6~1.7에서 0.84까지 떨어졌다. 따라서 통화량이 증가하더라도 유통속도가 하락하면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즉 증가한 통화량이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정도는 경제활동의 수준에 의존한다.

4. 양적완화와 미국의 실물경제

천문학적인 양적완화 정책은 미국경제에 무엇을 남겼을까? 각종 실물 및 금융시장 지표를 통해 양적완화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 평가할 수 있다.


우선 실업률은 여전히 9.1%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금융위기 직전 5% 수준이던 실업률은 2009년 10월 10.1%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2009년 중반부터 경기가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2년 동안 불과 1%p 하락하는 데 그쳤다. 고용률은 상황이 더욱 안 좋다. 금융위기 이전 63%에 달하던 고용률은 현재 58.4%로 5%p 낮은 상태다. 특히 2차 양적완화 조치 이후 실업률과 고용률 지표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최근 이 두 지표는 동시에 악화되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2차 양적완화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2010년 10월, 1.2%에서 5월에는 3.4%로 상승하였다. FRB가 중시하는 근원물가 또한 0.6%에서 1.5%로 상승하였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과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 초래한 것이다. 즉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FRB가 공식적으로 의도한 소비와 투자 증가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양적완화의 부정적 효과가 초래한 간접적인 결과이다.


다음으로 생산 측면을 살펴보면, 제조업 구매력 지수는 지난 5월 53.5로 큰 폭으로 떨어졌다. 주택시장의 신규주택 착공 건수 또한 56만 건으로 침체 국면에서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6000억 달러의 국채를 매입하는 2차 양적완화 시행 이후, 실물경제는 거의 회복되지 못하였다. 오히려 최근 양적완화가 종료되는 시점을 앞두고 다시 하강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1차 양적완화가 종료되던 작년 상반기와 모든 지표의 추세가 거의 동일하다. 즉 양적완화는 실물경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양적완화는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사실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easy money)이나 버냉키의 양적완화 정책은 이름만 달리할 뿐 그것이 의도한 목적은 동일하다. 이른바 자산버블 트리클다운(Asset Bubbles Trickle down) 효과를 노린 것이다.

5. 양적완화와 미국의 금융시장

FRB는 양적완화를 통해 장기금리 하락을 유도하여 실물경제를 부양하겠다는 의도를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그러나 1~2차 양적완화 기간 동안 실제 장기금리는 거의 하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1차 양적완화가 종료되는 시점에서 장기금리가 하락하는 모습이 뚜렷이 나타난다.

통상 중앙은행이 장기국채를 매입하면 국채의 시장가격은 상승하고, 이에 따라 수익률이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오히려 양적완화가 시행되기 전에 수익률이 하락하고 실제 시행될 때 수익률이 상승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이는 양적완화가 시작되기 전, 시장에 이미 양적완화에 대한 ‘투기적 기대’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국채를 보유하고 있던 금융회사는 양적완화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막대한 시가차익을 얻게 된다. 그리고 실제 양적완화가 시행되기 전후에 국채를 내다팔고 증권이나 원자재 등 투기적 시장으로 자금을 이전하였다. 최근 장기금리는 2월 3.77%까지 오른 후 최근 다시 3%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이는 또 다시 양적완화가 시행될 것이라는 투기적 수요, 안전자산인 국채에 대한 수요, 그리고 실물경제 침체 등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FRB가 의도한 것은 공개적으로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자산가격 부양이다. FRB가 안전한 국채를 높은 가격에 시장에서 매입하여 증권과 회사채, 그리고 원자재 시장으로 자금을 이동시켜 자산가격을 부양하려는 의도다.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금융위기 이전 장단기 금리는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비록 양적완화가 시행되었음에도 장단기금리 차이는 여전히 3%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투기등급 회사채 수익률은 급격히 하락하였다. 예를 들어, 무디스 Baa 채권의 수익률은 금융위기 직후 9%를 상회했으나 최근 5% 수준까지 떨어졌다.


주식시장 또한 양적완화의 수혜를 입은 대표적인 시장이다. S&P 500을 기준으로 금융위기 직후 저점보다 거의 90% 정도 상승하였다. 최근 글로벌 증시가 전반적인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유럽의 부채문제도 있지만 미국의 양적완화 종결에 대한 월가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한편 미국의 양적완화는 기축통화인 달러가치 하락과 이에 따른 원자재 시장의 버블을 초래하였다. 달러는 2009년 3월의 저점에 비해 17% 정도 가치가 하락하였다. 시장의 달러가치 하락에 대한 기대는 고금리와 환차익을 노린 캐리 트레이드의 증가를 초래하였다. 따라서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상승하였고, 이는 작년 양적완화를 전후로 이른바 ‘환율전쟁(Currency War)’을 촉발하기도 하였다. 즉 FRB의 대규모 국채매입은 금융시장에서 미 국채와 달러를 매각하고 신흥국 통화를 포함한 고수익 위험 자산으로 자산의 재분배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금융시장의 포트폴리오 조정이 자국의 수출시장 확대를 목적으로 환율전쟁을 일으킨 배후이기도 하다.

그리고 달러가치 하락은 원유를 비롯한 상품시장의 버블도 추동하였다. 금융위기 직후 40달러 이하로 떨어진 원유가격은 최근 100달러를 넘어서기도 하였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원유가격 상승은 달러가치 하락과 거의 추세를 같이 한다. 대부분의 원자재 가격은 ‘달러’로 거래된다. 따라서 동일한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달러가치 하락은 상품의 가격상승을 초래한다. 또한 주식과 회사채 시장과 마찬가지로, 상품시장 또한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가격상승 기대로 투기적 수요가 증가한 것도 적지 않은 요인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양적완화는 실업률을 비롯한 실물경제 침체를 극복하는데 거의 기여를 하지 못하였다. 이에 비해 주식과 회사채, 그리고 상품시장에서 투기적 자산가격 버블을 초래하였다. 한 마디로 양적완화 정책은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지 않은 집단에게 가장 많은 수혜를 안겨다 주었다. 반면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적은 수혜와 가장 많은 손실을 보게 만들었다.

사실 그린스펀을 계승한 버냉키는 월가를 비롯한 금융회사와 부유층의 버블 수혜가 실물경제를 부양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자산가격 상승은 재산효과(wealth effect)와 부채차입 증가가 민간소비를 통해 실물경제를 회복하고, 추가적 자산수요가 금융시장의 활황을 기대한 것이다. 이른바 자산버블 트리클다운 효과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실업률과 주택시장 침체에서 보듯 양적완화는 실물경제 회복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였다. 높은 실업률과 가계부채의 부담이 투기적 금융자산 버블이 중하위 계층으로 ‘대출’과 ‘투기’가 확산되는 것을 자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경제정책은 소득 및 자산 양극화, 높은 가계부채 비율, 취약한 미국 제조업 경쟁력 등 미국경제의 근본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통화정책으로는 실물경제의 근본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통화정책이 새로운 ‘버블’을 위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부채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부채를 늘려 부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집단은 월가의 금융회사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부채와 리스크를 다른 집단으로 이전시킬 수 있다. 이에 비해 소득양극화와 고용창출, 그리고 제조업 경쟁력이 회복되어야 미국의 가계부채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1990년대 이후 일본경제가 그랬던 것처럼 장기 제로금리와 실물경제 침체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2차 양적완화는 각종 경제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명백히 실패한 정책이다. 따라서 3차 양적완화는 당분간 거론되기 어려울 것이다. FRB는 기존 자산의 원리금 상환금액을 재투자하여 현 수준대로 자산 규모를 유지할 것이다. 다만 실물경제가 현재보다 더욱 악화되면 또 다시 3차 양적완화가 월가에서 대두될 것이다. 1차 양적완화가 끝나기 전후에 실물경제가 침체되자 월가에서는 또 다른 양적완화를 잔뜩 기대하였다. FRB가 움직이지 않으면 월가에서 먼저 양적완화의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작년 양적완화가 발표되기 전에도 골드만삭스는 최대 1조 달러의 2차 양적완화가 이루어 질 것이라고 시장의 기대치를 잔뜩 끌어올렸다. 월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자산가격 부양이라는 FRB의 암묵적 의도는 물거품난다. 따라서 FRB는 월가의 의도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다만 2차 양적완화가 실패로 판명이 났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팽배된 상태에서 3차 양적완화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FRB는 월가의 기대와 정치적 부담 사이에서 적절히 3차 양적완화를 조율할 것이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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