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7 / 02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4)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에밀리아 로마냐라는 동네

오늘날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는 전 세계 91개국의 227개 협동조합연합체가 참여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가장 강한 나라는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및 캐나다인데 이들 국가에서는 인구의 절반이 조합원이다. 국민소득에서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나라는 핀란드, 뉴질랜드, 스위스, 네덜란드 및 노르웨이였다. 최근 ICA는 전 세계 300대 협동조합을 선정했는데, 여기에 포함된 협동조합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 프랑스,독일, 이탈리아 및 네덜란드였다.

여기서는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에 있는 협동조합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이탈리아는 1854년 토리노 노동자들이 만든 소비자협동조합을 시작으로 하여 150년의 협동조합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도 협동조합이 매우 활발한 곳 중 하나이다. 특히 에밀리아 로마냐에 가장 많은데, 이탈리아의 약 4만 3000여 개의 협동조합 중 1만 5000여 개가 에밀리아 로마냐에 있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이탈리아 20개 주 중 하나로 이탈리아 북동부를 가로지르는 곳이다. 면적이 약 22만Km2, 인구는 430만 명 정도이다. 우리나라 경기도와 비교하면 면적은 2배 정도이고 인구는 3분의 1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2010년 여름 <오마이뉴스>에서 이 지역의 사회적 경제를 취재하는데 동행한 적이 있다. 당시 이곳의 1인당 GDP는 4만 달러로 이탈리아의 국가 평균의 2배에 달했다. 최근에는 유럽이 경제위기에 빠져 유로가 평가절하되면서 지금은 이보다 낮을 것이다. 2006년 캐나다의 레스타키스(Restakis)가 쓴 ‘에밀리안 모델(The Emilian Model)'에 따르면 에밀리아 로마냐의 인구는 이탈리아의 7%이지만 국내총생산의 9%를 생산하고 있다. 이탈리아 전체 수출의 12%를 차지하며, 각종 기술 등 관련 특허도 30%가 이 지방의 협동조합이나 기업들이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곳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예전에 대학원 박사과정 때이다. 이 지역의 독특하고도 우월한 경제발전을 두고 1982년 이탈리아 경제학자 브루스코(Brusco)가 처음으로 ‘에밀리아 모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후 많은 학자들 이 지역을 연구하며 ‘제3이탈리아(3rd Italy)’, ‘유연전문화(flexible specialization)’등의 이름을 붙였다. 이탈리아는 남북의 경제적 격차가 큰데 남부 이탈리아와 북부 이탈리아라는 두 가지 구분에서 벗어나 높은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12개의 주를 가리키는 말이 제3이탈리아였다. 이 제3이탈리아 지역은 10인 이하의 중소기업 네트워크가 수요의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하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유연전문화라 불렀다.

에밀리아 로마냐를 방문했을 때 주 정부의 무차렐리(Muzzareli) 경제장관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가 말하길 “우리 주에는 40만 개의 기업이 있다” 고 했다. 그런데 에밀리아 로마냐의 인구는 약 400만 명, 따라서 하나의 기업 당 구성원의 수는 10명 정도인 셈이다. 여기에 노인과 어린아이를 제한다면 5~6명이 하나의 기업을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곳에는 대기업도 없고, 대규모 공단도 없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내수와 수출을 담당하며 경제를 떠받치고 있었다. 이 중 800개 가량이 협동조합이었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주도(州都) 볼로냐는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이다. 에밀리아 로마냐 국내총생산의 30%를 볼로냐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업 50개 가운데 15개가 협동조합이다. 볼로냐 주민들에게 협동을 통한 생활 방식은 매우 익숙하다. 소비자협동조합부터 농업이나 건설 등 각종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었다. 소비자협동조합 코프 아드리아티카(Coop Adriatica)의 경우는 등록된 조합원 수만 100만 명이 넘는다. 2008년 말 매출액만 20억 유로에 달할 정도이다. 조합원인 시민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을 구입하고, 이곳 마트에 진열된 제품의 70% 이상이 에밀리아 로마냐에서 생산된 것이다. 이들이 해당 조합마트에서 지출한 돈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다시 지역에 투자된다.


 

볼로냐의 다양한 협동조합들

이곳의 대표적인 협동조합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먼저 세계4대 와인협동조합인 ‘리유니트&치브(Riunite&Civ, 이하 리유니트)’를 들 수 있다. 1953년 9개의 양조장의 연합체로 출발한 리유니트에는 2010년 현재 25개 양조장연합과 2600명의 포도 재배 농민들이 가입되어 있었다. 리유니트에서 생산되는 와인 브랜드는 9개, 한 해 1억 1000만 병을 생산하며, 연간 매출 액은 1억 4000만 유로에 달했다. 생산된 와인들은 전 세계로 수출되는데, 저렴한 가격과 높은 질을 인정받은 덕이다.

영세한 규모로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와인을 유통시킬 힘이 없었던 농민들과 개별 양조장들은 이윤은 물론 손실까지 모두 나눠 갖는 공동운명체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원이 된 농민들은 단순히 양조장에 포도를 납품하고 마는 생산자가 아니라 조합의 의사결정 과정에 1인 1표의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가 되었다. 조합원들은 다른 와인 생산업체에 포도를 공급하는 것보다 더 높은 값을 받으며, 와인 판매에 따른 수익금의 일부도 분배 받는다. 조합원에게 분배되지 않은 나머지 수익금은 조합 내에 재투자에 경쟁력 강화에 쓰인다. 물론 조합원으로서의 책임도 따르는데, 개인 매출액의 2.5%를 출자금으로 내야하고 만약 손실이 생길 경우 부담을 나눠져야 한다. 허나 아직까지는 경영위기를 겪은 적이 없다고 한다.

두 번째로 볼 곳은 주택건설협동조합 무리(Murri)이다. 무리는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주택 수요자들이 만든 협동조합이다. 일반 건설회사들이 공급하는 주택을 수동적으로 구입하는 게 아니라 집을 사려는 수요자들이 원하는 집을 직접 짓는 것을 모토로 지난 1963년에 설립됐다. 지금까지 건설한 주택이 1만 2000여 채, 현재 가입된 조합원만 2만 3000명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주택건설협동조합 중 하나다. 무리에서 짓는 집은 가격에 비해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고, 태양광 설비를 갖추는 등 에너지 절약형으로 설계된다. 그러면서도 집값은 최대 20%까지 싸다. 무리에서 지은 임대 주택의 경우 임대료가 일반 임대 주택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집을 짓는 과정도 민주적이다. 건축 허가 과정부터 조합원들에게 상세한 정보가 제공되고 주택의 설계와 시공에 조합원들의 의견이 반영된다. 건축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의 집을 구입하고 싶은 조합원들은 1만 유로(약 1600만 원)를 조합에 내고 분양 신청을 한다. 경쟁률은 3:1 정도로 조합에 가입한 기간이 길수록 기회를 잡을 확률은 높아진다. 만약 주택에 당첨되면 공사 진척에 따라 6번에 걸쳐 중도금을 납입하면 된다.

무리의 경우 은행 빚이 아니라 조합의 내부 적립금으로 주택을 짓기 때문에 당장 집이 팔리지 않아도 자금 압박에 시달리지 않는다. 경기가 침체되어도 타격이 적다. 2010년 기준 무리의 내부 적립금은 4700만 유로에 달한다.

세 번째는 노숙자의 자활을 돕는 사회적 협동조합 라 루페(La Rupe)이다. 이곳은 시로부터 노숙자 시설을 위탁 받아 운영하고 그 대가로 일종의 용역비를 받아 직원들의 월급을 주고 시설을 운영한다. 이런 식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동조합을 사회적 협동조합이라 하는데, 이탈리아에서는 1970년대부터 생겨났다. 1991년에는 사회적 협동조합법이 제정되어 법적 지위가 확립되었고, 2010년 기준 이탈리아 전체 사회서비스 지출의 13%에 해당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볼로냐에서는 민영화된 사회서비스의 60% 이상을 협동조합이 제공하고 있었다.

네 번째는 앞서 잠깐 언급되었던 소비자협동조합 코프 아드리아티카(Coop Adriatica, 이하 코프)이다. 코프에서는 이페르 코프(Iper Coop) 등을 비롯한 대형 쇼핑몰 16개와 중소형 쇼핑몰 138개를 운영하고 있다. 코프의 조합원이 되려면 25유로의 가입비를 내야 한다. 2010년 현재 105만 명의 조합원이 존재하며, 이들이 낸 기금이 무려 19억 유로에 달한다. 2009년 매출액 역시 19억 4900만 유로에 달했다.

코프 조합원이 아니어도 코프 매장을 이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조합원은 코프 매장에서의 할인 뿐 아니라 코프에서 운영하는 서점, 극장, 식당 등에서 최대 30%가지 할인을 받는다. 또한 조합원은 코프에 일정 금액을 적립하여 이자를 받을 수도 있고, 돈을 빌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여기서 발생한 매출이나 수익은 고스란히 해당 지역에 재투자된다는 것이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성공요인은?

그렇다면 협동조합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훌륭한 경제적 성과를 내고 있는 이곳의 비법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우선 이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손꼽을 수 있다. 이곳은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 지역으로 인문주의 전통이 살아있는 도시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며 시인 단테(Dante)를 배출해낸 볼로냐대학교가 이곳에 있다. 옛날 건물들도 매우 잘 보존되어 있는데, 유명한 것이 7개의 성당이다. 유럽 다른 지역의 건물에 비해서는 아주 작고 초라한 성당이지만 무려 1100년 동안 지어졌다는 점에 유명해진 성당이다. 동네가 워낙 가난하다보니 1100년 동안 조금씩 지어서 성당을 완성했다고 한다. 덕분에 온갖 시대별 건축 양식이 다 묻어 있다. 이 성당뿐 아니라 도시 곳곳에 중세의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차가 다니지 못하는 샛길도 많고 건물마다 처마처럼 나와 있는 회랑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인문주의가 발전했고,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연대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의식, 시민의식이 싹트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무솔리니에 대항해서 독립을 쟁취한 빨치산의 전통을 갖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80년대 인기 있었던 지오반니 꽈레스키(Giovanni Guareschi)의 시리즈 소설이자 테렌스 힐(Terence Hill)이 주연한 영화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The Little World of Con Camilo)"에 잘 나타난다. 영화의 배경인 브레첼로(Brescello)는 에밀리아 로마냐의 레지오 에밀리아에 위치한 도시이다. 신부인 돈 카밀로와 기계수리공인 뻬뽀네 시장은 사사건건, 때로는 치졸하게 다툰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파시스트와의 싸움에 있어서는 열렬한 빨친산이었으며,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 일치한다. 공산당원 뻬뽀네는 공식적으로는 천주교를 부정하지만 자기 아들에게는 세례를 받게 한다. 돈 카밀로는 동네 유지들로부터 ‘볼셰비키 사제’라는 별명을 얻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처럼 종교나 정파와 관계없는 끈끈한 공동체 의식이야말로 에밀리아 모델의 핵심이다.

실제로 내가 만나 본 에밀리아 로마냐 주민들은 자신의 인문주의와 빨친산 전통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친일 인사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조차도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야 겨우 가능하지만,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각 동네에 있는 민중의 집(우리나라로 치면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 빨치산 할아버지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설명해주는 풍경이 일상이다. 주민들에게 어떻게 이런 독특한 경제가 가능하냐고 물었을 때도 “우리는 원래 그래, 우리 문화가 그래.” 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는 우리를 곤혹스럽게, 또는 실망스럽게 한다. 문화는 다른 누가 손쉽게 따라하거나 배울 수 있는 요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4)편으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5.17정태인/새사연 원장

 

경제민주주의는 경제영역에서도 이해당사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서 공동의 이익을 달성하는 것이다. 또한 경제민주주의는 시장에서 벌어지는 양극화를 시정해서 우리 국민들이 합의한 보편복지를 지속가능하도록 만든다.

주류경제학은 주주(투자자)를 제외한 다른 이해당사자들이 노력과 보상에 대한 계약을 맺었으므로 잉여(또는 잔여·residual)에 대한 아무런 권한도 없고, 따라서 그들은 투자자(또는 그 대리인인 경영자)의 지휘·통제에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그럴 때만 이윤 극대화라는 기업의 목표가 확실해져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우리 주위는 이런 믿음과 실천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착한 경제학’은 시장이론의 차원에서 보자면 계약의 불완전성(모든 상황을 미리 낱낱이 계약서에 반영할 수도 없으며 완벽한 감시와 처벌도 불가능하다) 때문에,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상호성 때문에 기업에서도 이해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더 높은 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주간경향 968호 참조). 따라서 이해당사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voice), 정 안 되면 회사나 하청관계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exit) 힘을 부여하는 것이 경제민주주의의 핵심 과제가 된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적 기업 안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노동조합의 네트워크인 산별노조나 전국노조는 일부 유럽의 경우 노동자 정당으로 발전해서 복지국가의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즉 전국적 노조와 정당은 경제민주주의를 달성하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의 조직률이 5% 수준에 머물고 그들이 지지하는 진보당이 자중지란에 빠진 현실은 한국 경제민주화의 앞날이 매우 어둡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협동조합은 기업 바깥에서 시작되었으며(소비자 협동조합), 그것이 생산자 조합과 금융부문 조합(협동조합 전문 은행이나 보험 등)으로 발전하여 스페인 몬드라곤이나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 캐나다의 노바 스코티스 등에서는 전국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말하자면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 경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바깥에 존재하는 경제민주주의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1원(1주) 1표가 아닌 1인 1표의 원칙에 의해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경제민주주의를 처음부터 내장하고 있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적 경제 역시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노동조합은 시장경제에서, 그리고 협동조합은 사회적 경제에서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할 핵심 주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이 아직 미약하니 한국에서 경제민주주의는 그저 먼 미래의 꿈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미 수십년간의 피와 땀을 통해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일정하게 달성했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경제민주주의의 토대이다. 이 연재에서 여러 번 강조했듯이 무임승차자에 대한 응징과 구성원 간의 소통이야말로 협동을 이루는 지름길이다. 민주주의가 곧 소통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명박 정부를 통해 절절하게 깨달았다. 또 민주주의사회에서 선거는 아무리 미흡하다 할지라도 강력한 응징 수단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선거를 앞두고 금속노조 등 노동단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새사연 등 학술단체가 모여서 가칭 ‘경제민주화를 위한 재벌개혁 시민연대’를 만들고 있는 것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이제 본격적으로 전개될 경제민주화 운동은 기존의 노동운동이나 협동조합운동이 한 단계 도약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시민복지운동, 그리고 경제민주화운동은 우리 아이들을 행복으로 이끄는 두 날개다. 몸통 격인 민주당과 진보당이 정신만 차린다면 시민연대는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5 / 11 새사연

지역 클러스터 정책의 복원과 혁신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 차]

1. 신도시 개발에서 지역 전문화로

2. 글로컬 대학의 역할

3. 중소기업 중심의 에밀리아 로마냐형 클러스터

4. 실리콘 밸리형과의 조화

 


[본 문]

편집자 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악화되자 한국사회에서는 전례 없는 보편 복지 요구가 확대되고 있고 경제 민주화의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양대 선거를 맞아 정권교체 요구가 거센 가운데 다양한 사회개혁 의제가 정책 공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정말 2013년 체제라고 불릴만한 사회 대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자면, 강력한 경제개혁 전망을 갖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새사연의 문제의식이다.

이 에 새사연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시대적 가치와 비전, 새로운 경제모델과 성장모델, 총체적 경제개혁, 보편복지를 망라하는 정책을 모아 2012년 5월 중 단행본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출판될 원고 가운데 일부를 새사연 회원들과 미리 공유하고자 [새로운 사회 2013]이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그간 세계화와 시장중심경제의 위력 앞에서 각국의 산업정책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시장에 맡기면 가장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산업정책의 필요성을 격하시켰다. 하지만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라는 기치를 높이 들었던 WTO 체제, 그리고 한미 FTA를 비롯한 양자간 FTA 체제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현저히 약화될 것이다. 대신에 각국의 산업정책이 차지하는 공간이 넓어질 것이다.

산업정책이란 정부가 자원배분에 영향을 주는 모든 행위를 뜻한다. 산업정책은 산업의 발전과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것을 추구하는데, 구체적으로는 경쟁력과 생산력 향상, 산업구조조정, 국내공급능력의 확대 그리고 시장실패의 조정 등을 목표로 한다. 세계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져서 그동안의 수출 주도, 부채 주도의 성장 전략이 먹히지 않는 지금의 상황, 재벌을 필두로 하여 정의롭지 못한 시장경제가 과도하게 팽창하여 경제주체들 사이의 균형이 파괴된 지금의 상황에서 바로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우리가 주목하는 산업정책은 사회적 경제에 기반한 지역클러스터 정책과 협동조합 정책이다. 사회적 경제의 핵심은 신뢰의 네트워크를 통해 축적되는 사회적 자본이다. 신뢰의 네트워크를 통한 기술적, 사회적 혁신의 창출과 학습을 통한 혁신의 파급이 지역클러스터 정책과 협동조합 정책을 미래의 산업정책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클러스터 정책은 이미 참여정부에서 국가균형사업으로 실시된 바 있다. 구상부터 치면 이제 10년 가까이 진행된 이 정책에 대한 평가는 아직 명확히 합의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중앙정부 주도로 똑같은 형태의 지역혁신협의회를 창설하고 비슷비슷한 첨단산업에 집중했던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또한 기업도시나 혁신도시 등을 외치며 빠른 시간 내에 성과를 거두려는 의욕이 결국 투기화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1. 신도시 개발에서 지역 전문화로

따라서 차기 정부의 클러스터 정책은 기존의 중앙집중형 수직적 운영체계를 분권형 수평적 운형체계로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대표적 중앙집권국가인 프랑스도 광역자치단체인 레지옹(region)의 역할을 강조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영국의 지역개발청(RDA, Regional Development Agency), 프랑스의 국토및지역개발기획단(DATAR, Delegation L'Amenagement du Territoire et L' Action Regionale),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지역개발기구(ERVET, Emilia Romagna Valorizzazione Economica del Territorio)가 대표하는 것처럼 유럽 각국은 지역혁신을 담당하는 기구를 두고 있다. 세계의 연구동향도 산업지구, 클러스터, 혁신환경, 지역혁신체제, 학습지역 등 혁신 주체로서의 지역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이제 지역별, 지방별로 자신의 특성에 걸맞은 실행계획을 세우고 지역공동체 단위에서 사회적 경제의 토대 위에서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 주민이 참여하여 계획을 수립하고 공동체의 경제발전계획과 중소기업 클러스터 정책을 연관해서 수행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현재 각 광역단체가 지역혁신체제(RIS, Regional Innovation System) 구축보다 신도시 개발과 기업유치라는 투기적 발전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앙정부의 ‘밖으로부터, 위로부터의 성장전략’이 지역 수준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지역이 ‘명품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 신도시개발을 통한 기업 유치를 지향하고 있다. 허나 부동산투기 등 부작용이 많고 외자유치 등에 특혜만 부여하고 고용 확대와 생산성 향상 등의 실질적 효과는 거의 없는 상태이다. 기존 기업과 대학, 연구소 간의 네트워크화가 지극히 미흡하고, 지역 주민의 고용과 참여를 배제한 채 지도 상에 화려한 그림만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지역 수준에서도 ‘안으로부터, 아래로부터의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또한 각 지역이 모두 IT, BT 등 고기술 첨단산업을 내세우고 있으며 실리콘밸리를 모델로 하는 것도 문제이다. 각 지역 산업에 필요한 지식의 성격은 서로 다르다. 첨단산업에서 필요한 분석적이고 코드화가 가능한 지식은 실리콘밸리형 클러스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세계의 실리콘밸리 모방이 거의 다 실패로 끝났는데 한국에서만 성공하리란 보장은 전혀 없다.

특히나 우리나라 기업의 99%는 중소기업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필요한 지식은 종합적이고, 코드화가 불가능한 암묵적 지식이다. 기계산업, 부품산업이 이런 지식유형에 속한다. 이런 지식에 필요한 클러스터는 실리콘밸리형이 아니라 에밀리아로마냐형이다. 즉, 지역마다 특정산업을 중심으로 전문화를 꾀하면서, 관련된 기술과 지식이 다양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우리에게 필요한 클러스터 전략이다. 그렇다면 지역혁신체제도 조금 더 구체적이고 암묵적인 지식을 산업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를 ‘연관된 다양성 속의 지역적 전문화(regional specialization in related variety)’라 부를 수 있다. 이것이 현재 한국 클러스터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산업지구를 대상으로 실증분석을 한 결과 중소기업 위주의 산업지구에는 연관된 다양성으로 이루어진 지역적 전문화가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대기업 쪽에서도 기술이나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지역의 다양한 혁신역량을 활용할 필요가 커지는데 이것은 수평적, 협력적 지역혁신체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현재 한국 대기업의 수직적, 폐쇄적 네트워크는 기술의 잠금효과(lock-in effect)를 초래하여 지속적인 혁신을 방해할 수 있다. 잠금효과에 의한 대기업의 몰락은 미국의 자동차산업벨트의 경우처럼 지역 전체의 몰락을 초래할 수도 있다. 반면 독일 슈투트가르트나 이탈리아 토리노 지역은 벤츠(Benz)와 피아트(Fiat)의 위기를 수평적, 협력적 네트워크에 의해 극복하여 산업구조 고도화와 다양화를 달성했다.

 

2. 글로컬 대학의 역할

한 산업의 경쟁력은 지역에 구체적으로 뿌리내리고 있을 때 나타난다. 이를 잘 표현해주는 말이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 Globalization + Localization)이다. 대학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적 수준의 대학은 지역 산업에 뿌리박아야 비로소 출현할 수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지방 대학에 가상 학부 혹은 프로젝트형 학부를 만들어 지역화하는 사업을 대폭 지원해야 한다. 예컨대 대구경북 모바일 클러스터에서 경북대학교가 하는 역할을 복제할 수 있다. 가령 제1호 국가산업단지가 있는 안산의 경우라면 안산에 캠퍼스가 있는 한양대에 안산학부(경영학과, 기계공학과, 디자인학과 등등이 참여하는 가상학부)를 만들어 시화반월 국가산업단지 전체의 리모델링 작업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해당 지역의 중소기업 생산성이 30% 향상된다면 임금과 고용이 동시에 증가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각 도내 시군이 최소 한 개 이상의 대학-전문대학-실업고로 연결되는 글로컬 연구교육 시스템을 정착시켜 각 지역별 혁신 클러스터를 형성해야 한다. 글로컬 연구교육 시스템은 각 지역의 혁신 관련 센터(테크노파크나 중소기업 지원센터, 그 외 각 정부 부처가 만든 혁신센터 등)와 함께 공동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글로컬 대학은 혁신센터와 함께 역내 기업들의 실질 수요에 부응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거나 기업의 투자 또는 장학금을 받아 자체적으로 생존 가능할 수 있다. 지방정부는 자립 때까지만 재정을 지원하면 된다. 현재의 대학생 정원 수급상황을 볼 때 지방대학의 생존은 글로컬라이제이션에 성공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글로컬대학과 클러스터의 성과에 더불어 중소기업 노동자에 대한 사회 보험료 지원 등 노동 복지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에 성공한 중소기업 네트워크는 지속적 발전을 위해 학생들의 장학금과 취업을 보장하고 자체의 자금으로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학-중소기업-고용-복지의 지역 내 선순환 시스템을 갖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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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4.05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 번에 쓴 것처럼 강력한 재벌규제를 이야기하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럼 우리 경제는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이다. 단순한 기우는 아닌 것이 재벌들은 이런 정책에 강하게 저항하거나 아예 국민경제를 볼모로 파업을 할 수 있다. 참여정부 때 강철규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 총수들에게 하도급 단가 인하를 자제하라고 부탁하자 모 회장은 회사로 돌아가자마자 10% 단가 인하를 지시했다. 나는 정권이 싫다고 정말 수익성 있는 투자를 포기하는(파업하는) 재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투자를 미뤄 대통령의 항복을 받아내는 일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다면 재벌규제를 하면서도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확대하는 방법이 있을까? 역시 답은 “안으로부터, 그리고 아래로부터”이다. 자주 듣는 말, ‘9988’이란 우리나라 사업체 수의 99%가 중소기업이고, 이들이 고용의 88%를 담당한다는 말이다. 이들이 매년 투자를 10% 늘리고 한 사람씩 더 고용할 수 있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답은 나왔는데 방법은 뭘까? 우리나라만큼 중소기업 지원정책이 많은 나라도 없다. 그러나 그 효과는 별로 신통하지 않고, 중소기업 사장들은 언제나 불만이다. 과연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높아지는 방법이 있을까? 불행히도 그런 묘수는 없다.
 
그러나 가능성은 있다. 이탈리아에 에밀리아 로마냐라는 동네가 있다. 인구 400만에 기업이 40만개가 넘으니 거의 전부가 다 중소기업, 아니 영세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농촌지역답게 와인 같은 농가공품, 가죽신발과 같은 ‘메이드인 이탈리아’, 가구, 자동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이런 제품들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기계를 만드는 공장들이 즐비하다. 2차대전이 끝났을 때 이탈리아에서 가장 못사는 곳 중 하나였던 이 동네는 지금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전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잘 산다.
 
어떻게 그게 가능해졌을까? 답은 중소기업 산업지구(요즘 말로 클러스터)다. 이들 중소기업은 네트워크를 이뤄서 기술변화나 국제경쟁에 대응한다. 서로 협동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물건 하나를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식과 위험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생산 노하우가 공공재인 셈이라서 누구나 기업을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자동차도 이런 수많은 중소기업이 협력해서 만들어낸다. 설마 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세계 최고의 명품 자동차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그리고 오토바이 두카티가 여기에서 생산된다.
 
중소기업들의 모임인 CNA, 그리고 협동조합의 연합체인 레가는 오래 전부터 이들에게 회계, 법률, 로비, 컨설팅 등 온갖 사업서비스를 제공했다. 지금은 공동브랜드와 품질관리, 해외마케팅에 힘을 쏟는다. 지방정부는 70년대에 산업별로 리얼서비스센터라는 기술컨설팅 서비스를 지원했고, 최근에는 대학과 연구소를 연결해서 바이오메디컬과 같은 첨단산업도 발전시켰다.


이곳엔 하청단가 인하라는 발상이 존재할 수 없다. 수평적 네트워크라 그렇고, 만일 최종 조립하는 기업이 그런 짓을 했다가는 이 사회에서 매장될 테니 그렇다. 물론 장기에 걸쳐 형성된 이런 협동의 네트워크를 당장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방향은 이 쪽이다. 지금 각 지역에 존재하는 유사 중소기업 간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사업을 벌이는 것, 거기에 정부가 사업서비스, 특히 경영과 기술컨설팅을 제공하는 것, 지방대학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모두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이다. 요즘 뜨는 드라마 ‘패션왕’의 동대문이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어디에 있는가?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