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 06 / 24 정태인/새사연 원장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이끌어온 권영길 의원이 눈물을 흘렸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 향후 건설될 통합 진보정당에서 백의종군하겠다”는 선언까지 덧붙여 의지의 견고함을 확인했다. 가히 결자해지이자 요즘 말로 ‘대인’의 풍모다.

개인적으로 필자의 민주노동당 탈당을 합리화한 건 뻔한 ‘진보의 미래’를 내팽개치고 민주노동당 다수파의 사적 이익에 ‘진보의 산증인’이 타협했다는 혐의였다. 만약 지난 대선에서 심상정이나 노회찬이 진보정당의 후보로 나섰다면, 과연 3%의 득표에 머무르고 그예 분당 사태까지 벌어졌을까? 물론 일어나지 않은 역사에 대한 부질없는 가정은 허망할 수밖에 없지만 필자의 행동을 결정하기엔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권영길 의원의 눈물과 함께 조승수 의원의 사과는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에 얽힌 모든 혐의를 역사의 문제로 돌릴 수 있는 돌파구이다.

벌써 4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당시에 심상정 의원은 민주당의 ‘정권 교체’에 대응하는 말로 ‘시대 교체’를 내세웠다. ‘민주-반민주’의 시대를 넘어 ‘진보와 복지의 시대’가 열릴 것이니 이에 걸맞은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복지 경쟁’의 프레임으로 짜여진 현재의 국면에 비추어 보면 실로 혜안이라 할 만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때는 반 발자국이 아닌 서너 발자국쯤 앞선 선언이었다.

루스벨트에 이어 고 김대중 대통령의 언급으로 유명해진 얘기지만 그 ‘반 발자국’을 실천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아니, 실은 그 반 발자국 앞을 안다는 게 서너 발자국 앞을 내다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지난 15년은 한마디로 ‘투기의 시대’였다. 두 민주 대통령은 자신들이 지난한 투쟁 속에서 배운 삶의 원칙, 즉 서민의 삶을 향상시키려고 나름의 모든 힘을 다했지만 장기적 통계는 지난 15년간 투기와 양극화가 가파른 기울기로 기승을 부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으로 객관적 역사가라면 누구나 1980년대부터 30년간의 자본주의 역사를 ‘신자유주의 시대’ 또는 ‘시장만능의 시대’라고 기록할 것이다. 그 중반쯤 대한민국은 민주화를 이뤘지만 영민한 두 대통령도 시장만능이라는 당시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거스르지는 못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따른 금융 자유화, 민영화, 규제 완화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도입이나 건강보험의 확충을 압도했고 금융과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 애썼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시는 그 모든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시대착오였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탄한 대로 그는 시대의 막내였고, 그의 회한대로 복지 예산에 빨간 줄을 좍좍 그었다고 해도 가파른 양극화의 기울기는 그다지 누그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으로 양극화를 촉진하는 거시 정책을 쓰면서 복지로 서민의 삶을 향상시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한나라당도 ‘반값 등록금’과 같은 교육 투기의 결과를 마냥 외면할 수 없게 되었고, 부동산 투기의 결과인 가계부채는 눈덩이로 불어나 시한폭탄의 초침처럼 째깍거리고 있다. 요즘 여러 글에서 누누이 강조했지만 이들 투기는 죄수의 딜레마 구조를 가졌고, 대통령들뿐 아니라 그들을 비판하는 우리 모두 적어도 소극적인 범죄자들이었다.

우리 아이들을 절망에 빠뜨려 자살에 이르게 한 것은 다름아닌 우리 모두였다. 불과 3년 전인 지난 2008년 총선을 한번 되돌아 보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핵심 공약은 ‘뉴타운’과 ‘특목고’라는 양대 투기 정책이었고, 유권자인 우리의 압도적 다수는 기꺼이 두 정책에 표를 던졌다.

역사만큼 관성의 법칙이 도드라지는 분야는 없을 것이다. 앞에서 이미 시대가 교체되었다고 단언했지만 세계는, 특히 월스트리트의 미국은 시장만능의 관성에 기대다가 또 다시 대위기를 맞을 것이다.

이런 전환기에는 반 발자국이 아니라 서너 발자국을 앞서 가야 한다. 그래야 보통 사람들의 고통, 아니 우리 아이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리트머스 시험지는 간단하다. 양극화를 촉진하는 거시정책, 예컨대 감세나 규제 완화, 민영화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또는 등 뒤에 숨겨 놓은 채 어떤 어떤 복지를 하겠다는 정치인은 가짜다. 한·미 FTA나 사교육, 또는 부동산 투기와 복지를 양립시킬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한치의 어김도 없는 사기꾼이다. 부동산 가격을 내리고 사교육을 없애는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은 정치인만이 시대 교체의 적임자이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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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4손석춘/새사연 이사장

간단하다. 평생을 진보운동에 바친 진보연대 정광훈 대표가 즐겨 쓴 말이다. 권력이 전교조를 ‘빨갱이’로 살천스레 몰아세울 때다. 전교조가 빨간 수박을 먹고 씨를 뱉으면 ‘참교육’이 열린다고 응수했다. 민중의 삶이 어려운 까닭도 간단했다. 전기가 양에서 음으로 흐르듯이, 권력이 민중에서 나와 정치로 흘러야 하는 데 그게 고장이 났다고 풀이했다.

고통 커가고 희망 보이질 않아

아스팔트 농사에 열정을 쏟은 ‘우리 시대의 농민’ 정광훈은 진보정당 선거운동 자리에서 삶을 마쳤다. 투사다운 최후다. 정광훈은 해남 동향인 ‘전사 시인’ 김남주와 오월의 투사들이 묻힌 빛고을 땅에 몸을 섞었다. 여느 윤똑똑이 먹물보다 간명하게 현실을 꿰뚫었던 ‘늙은 투사’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감히 진보대통합이라고 판단한다. 미더운 농민들 앞에서 진보대통합에 방점을 찍고 연단에서 내려오던 내게 건넨 당신의 다사로운 눈길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다. 다시 향을 피우고 애잔하게 타오르는 향연 아래 이 글을 쓴다. 마침 진보대통합이 익어가고 있어서다. 다만 마지막 고비가 강파르다. 왜 지금 진보대통합인가부터 새삼 짚고 싶은 까닭이다. 진보대통합은 특정 정파의 이념을 위해서가 아니다. 특정 정파의 패권을 위해서도 아니다. 진보세력 개개인의 ‘자리’를 위해서는 더욱 아니다. 진보대통합이 절실하고 절박한 이유는 국민 대다수인 민중의 고통이 무장 커져가는 데도 도통 희망이 없어서다.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가 15년째 민중의 삶을 꼭뒤 누르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서 부자 감세에 더해 남북 갈등의 증폭으로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의 폐해는 더 전면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간단하다.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넘어서자는 데 동의하는 모든 사람이 그 최소강령으로 뭉쳐야 옳다. 문제는 그것을 넘어 특정 정파의 논리를 고집하는 데 있다. 더러는 자본주의 폐절을 선언하지 않는다고 진보대통합 논의를 폄훼하지만, 통합의 참뜻을 놓친 무책임한 선동이다. 더러는 신자유주의를 엘리트적 개념이라며 부르대지만,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은 나라에서 국민이 그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예단이야말로 엘리트적 발상이다. 우리가 신자유주의에 또렷하게 선을 긋지 못할 때, 김대중-노무현 정부처럼 비정규직 확산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정당화한다.

 더 큰 갈등은 대북문제에서 불거지고 있다. 분단체제를 넘어서자는 최소강령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른바 ‘종북논쟁’으로 당이 쪼개진 경험을 진보세력은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통합의 자리에선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자신이 ‘종북’으로 시험받고 있다거나, 딴 살림 차릴 명분만 찾는 ‘종파’로 경멸받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면 통합은 어렵다. 남과 북의 신자유주의와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한계를 넘어 선 새로운 사회를 당면목표로 삼고 두 체제의 잘잘못을 따져가자는 데까지 합의한 상황에서 대북문제로 진보대통합이 파국을 맞는다면, 우스개가 될 수 있다.

최소 강령으로 대통합 이뤄내야

더구나 남쪽 진보세력에게 선결과제는 민중의 고통이다. 신자유주의를 넘어서자는 데 합의한 ‘동지’들이 대북문제로 통합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 자체가 분단체제의 굴레다.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넘어서자는 최소강령, 아니 최적강령으로 진보대통합을 이룬 뒤 어떤 경제정책, 어떤 통일정책을 펼 것인가를 실사구시의 자세로 섬세하게 만들고 국민 앞에 내놓는 게 집권을 꿈꾸는 대안 정당이 걸어갈 길이다.

눈 돌려 브라질 노동당을 보라. 3기째 집권하며 빈부차를 줄여가고 있다. 그 간단한 사실만으로도 한국 진보세력은 고통 받는 민중 앞에 석고대죄해야 옳지 않을까. 진보대통합이 최우선으로 섬길 대상은 민중이다. 민중의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면 통합은 어렵지 않다. 반신자유주의, 분단체제 극복, 국정대안 제시, 3항18자다. 진보대통합의 실사구시 철학, 간명하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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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전략이 아닌 구조개혁이 필요한 2010년 한국경제
도표가 포함된 보고 서 원문을 보시려면 http://saesayon.org에서 PDF파일 다운로드

두 전직 대통령이 연이어 우리 곁을 떠나고 세계적 금융위기의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난히도 길게 느껴졌던 2009년이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새사연은 2010년을 전망하는 연속 기획 [2010 전망]을 마련했다. 올해는 ‘불확실의 시대’로 규정된다. 2009년 하반기로 가면서 차츰 소강상태로 접어든 위기가 다시 파국적 결말을 맞을 것이란 전망도 옳지 않지만, 그렇다고 OECD 최고의 경제회복과 G20 국격 제고라는 장밋빛 치장에만 몰두하는 전망 역시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2010년을 보는 시선 속에는 잿빛 비관과 장밋빛 낙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새사연은 이 실타래 속에서 ‘희망’이라는 가늘지만 질긴 실을 찾아 풀어내보려 한다. 여러분도 함께 찾아보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총괄 : 2010년을 새로운 경제 화두의 원년으로
2. 미국 경제 : 불안한 2010년 미국경제 전망
3. 국내 경제 : 출구전략이 아닌 구조개혁이 필요한 2010년 한국경제
4. 고용
5. 정치 분야
6. 교육 분야
7. 보건(사회) 분야
8. 남북관계
9. 가계 부채
10. 2010년 가정 경제 운용을 위한 제언

[요약문]

2010년 한국 경제를 전망하는 데서 확실한 것이 있다면 오로지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뿐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근본원인은 ‘시장의 추이’를 도대체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즉, 경제의 주요한 결과가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시장이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전혀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자유화, 개방화로 인해 글로벌 시장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단순히 국내시장의 불확실성을 넘어 글로벌 시장 불확실성이 예측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불확실성의 시기’인 2010년을 맞아 우리 정부는 어떤 경제정책 운영방향을 가지고 있을까. 한국정부는 단기적으로 외형지표를 끌어올릴 수 있는 건설, 소비, 고용 부문에 대해 집중적으로 재정을 투입함으로써 단기실적을 얻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2009년 시행한 경제회복 정책들은 구조적 차원의 성장기반 확충이라기보다는 대부분 단기 실적주의에 근거한 것이어서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GDP 성장이나 주가 상승 등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민생활을 향상시키겠다는 정책 틀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 틀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구조개혁의 방향은 가계경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국가와 기업, 은행과 자산시장들이 가계경제를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가계경제를 희생양으로 기업과 은행, 자산시장이 팽창하고, 그 결과 외형적인 GDP가 올라갔던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2010년 반드시 단행해야할 3대 구조개혁의 방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계경제가 작동하는 시작점이자 원천이 되는 고용안정을 통한 노동소득의 안정적 상승을 위해 고용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둘째, 그 동안 과도하게 팽창하여 이번 금융위기의 주범이 된 바 있고, 가계경제를 도와주기보다 가계경제의 희생을 대가로 승승장구해온 금융에 대한 근본적 수술을 하는 금융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셋째, 그 동안 한 번도 가계경제를 위해 제대로 된 역할을 해 본 적이 없는 국가가 기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계경제를 위해서 적극적인 경제 정책을 펴야 한다.

2010년부터는 기존 정책과 그 정책의 바탕에 깔려 있는 신자유주의, 시장주의 신념에 대해 본격적으로 재고해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2010년은 선진국 진입의 원년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의 원년이 되어야 하며, 출구전략의 해가 아니라 구조개혁의 해가 되어야 한다.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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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09.08.20 10:49

김대중 대통령 서거, 그러나 그의 시대는 종결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러나 단순히 ‘또 한분의 전직 대통령 서거’로 받아들이기에는 그 무게와 역사성이 너무 크다. 최근까지 줄잡아도 40여 년 동안 김 전 대통령은 격변하는 한국사회에서 언제나 태풍의 눈이었고 역사적 순간의 중심부에 항상 서 있었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시대적 소명이 민주주의 쟁취와 분단체제 극복이었다면 그 시대는 김대중이라는 존재를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가 걸어온 궤적이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세인들이 말하는 ‘3김 시대’가 종결되었다는 언론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자연인 김대중이 역사무대에서 떠나면서 물리적인 ‘3김 시대’는 더 이상 무의미해졌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한국 현대사와 궤적을 함께 하며 필생의 과제로 여겼던 민주화와 분단체제의 극복이라는 시대적 소명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아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고인이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피맺힌 심정으로” 주장했던 민주화, 서민경제, 남북관계의 총체적 위기는 오히려 우리사회의 최대 현안으로 재부상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과거 50년 동안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위태로워 매우 걱정”이라며 한창 왕성했던 시절 호소했던 ‘행동하는 양심’을 생애 끝자락에 국민들에게 유언처럼 남겼다.

생애를 마감하며 ‘물리적인 김대중 시대’를 접었던 그 순간에 80 평생 화두로 삼았던 민주화와 남북관계 문제가 다시 시대의 과제로 재부상하는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그는 남은 생애를 평온히 마무리하는 길을 버리고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젊은 사람도 흉내 낼 수 없는 열정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행동할 것’을 요구하며 자신의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 이로써 김대중 없는 김대중 시대의 과제는 살아있는 우리 세대에게 넘어오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시대도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2009년은 지구상에서 또 다른 역사적 시대가 종결될 것인지에 대해 세인의 관심이 집중된 시기이기도 하다.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가 마감될 것인지의 여부였다.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했던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어진 실물경제 위기는, 지난 30년간 파죽지세로 성장했던 신자유주의의 온갖 폐해가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마침내 그 역사적 파산선고를 받게 되었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보수적인 언론들마저 “로널드 레이건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파이낸셜 타임즈), “미국, 30년 신자유주의의 종언”(중앙일보), “미국 통화정책의 책임기관이자 시장자율 선전가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이 시대의 종결을 선언했다”(파이낸셜 타임즈) 등의 주장을 서슴없이 내놓을 정도였다.

그러나 발 빠른 각국 정부의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은 응급실로 후송된 파산 직전의 금융회사들을 소생시켜냈고,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투입한 경기부양자금은 자유낙하로 추락하는 실물경제의 침체속도를 완화시켜내는 데 성공했다. 어느덧 경기가 바닥을 지났다는 의견이 확대되기 시작했고 IMF도 8월 18일, “글로벌 경제 회복세가 시작되었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던 신자유주의가 일단 성공적인 ‘수명 연장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IMF의 표현대로 “이번 위기가 남긴 깊은 상처”는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으로 하여금 ‘국가의 보호’ 속에서 생존하는 ‘환자’ 신세를 결코 쉽게 벗어나지 못한 채 언제든 깨지기 쉬운 구조적 불안정성을 내재하면서 불안한 생존을 이어가도록 만들었다.

▶ 신자유주의의 실세인 금융자본은 여전히 ‘마땅한 대체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전반적인 금융 규제와 파생상품 규제라는 새로운 장애(?)에 부딪혀 앞으로 고수익 행진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금융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의료보험 개혁과 같은 국가적 사회보장 도입에 격렬히 저항하는 한편, 임원에 대한 고액 보너스 지급 강행 등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이 또한 과거처럼 사회적 동의를 얻기 힘들다.

▶ 금융에서 누적된 부실이 국가로 이전되면서 국가재정 압박은 갈수록 커지고 있고, 결국 금융회사 부실이 정부재정 부실로 바뀐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앞으로 얼마든지 예상되는 추가적인 금융위험과 더블딥과 같은 실물경기 침체에 대한 정부의 대응 능력은 갈수록 약화될 것이며 동시에 정부의 재정 건전성과 증세의 딜레마는 커질 것이다.

▶ 결정적으로 경제의 마지막 지탱점이라고 할 수 있는 ‘민간 소비 능력’의 약화가 쉽게 복원되지 못하면서 경제회복과 성장 능력의 최후의 장애요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노동 소득 감소와 실업 증가, 부채 상환 부담, 저축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소비위축이 긴 시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금융회사의 수익실현 제한, 국가재정 압박 강화, 민간소비 위축 지속 등 주요 경제주체들에게 변화된 환경은, 신자유주의의 성공적인 수명연장이 ‘병실에서의 수명 연장’으로 귀결될 가능성을 높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신자유주의는 전성기를 달리던 ‘전반기 신자유주의’ 국면은 종결되었고, 구조적 취약성을 끌어안고 유지되는 ‘후반기 신자유주의’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 쇠퇴의 길로 접어든 신자유주의 후반기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신자유주의 시대는 극적으로 종결되지도 않았고 극적으로 부활하지도 않았다.

공권력에 의지하여 지탱되는 후반기 신자유주의

1980년대와 1990년대 신흥국들과 개발도상국들에서 신자유주의 도입은 대개의 경우 ‘개혁정부’가 추진했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이전의 개발도상국 정치체제는 ‘저임금 체제 유지’ 등을 위해 국가적 폭력장치 등을 필요로 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정부 경제개입과 규제 시스템 등을 동원했던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기존 정부들이 구축한 국가 산업정책이나 각종 규제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철폐하고 자유화와 시장화를 요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과거시절에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은 금융적 결실의 일부분을 이른바 ‘투자 수익’이라는 명목으로 ‘투자자 국민’에게 줄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그로 인해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국가의 국민들은 양극화가 확대되는 가운데 노동소득이 정체를 면치 못했지만, 이를 보완하고자 국민들이 주식과 펀드 투자, 부동산 투자로 몰리면서 대박의 환상을 좇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최소한 이러한 구조가 작동하던 순간에는 ‘물리적 공권력’이 꼭 필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개혁정부’라는 명분을 가진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것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의 후과로 더 이상 넘쳐나는 금융수익의 창출이 불가능하게 되고, 반대로 늘어나는 가계의 부채 부담 속에서 극도의 고용불안과 양극화를 회피할 수 없게 되는 순간 ‘개혁정부’와 신자유주의가 짝을 이루며 작동하던 시대 역시 끝나게 된다. 다시 신자유주의는 예의 ‘공권력’에 의존하는 선택 아닌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후반기 신자유주의의 정치체제의 특징일 가능성이 높고 바로 후반기 신자유주의 정권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한국의 이명박정권이다. 신자유주의가 고점을 지나버린 시기에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정부를 선택한 한국 사회의 필연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지난 1년 반 동안 고용 문제에서, 민영화 문제에서, 감세 문제에서, 또 금융과 부동산 문제를 비롯한 도처에서 성과가 아니라 문제점만 불거지게 만들었고, 그럴수록 이명박 정부는 점점 더 공권력에 의존하는 길로 가게 된다. 집권 수개월 만에 촛불항쟁이라는 대규모 국민적 저항에 직면해야 했고, 그 이후 지지도가 줄곧 30퍼센트 밑에서 맴돌아야 했다.

이명박 정부가 공권력에 의존할수록 수 십 년 전에 ‘저임금과 저곡가 체제’를 강제로 유지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각종 공권력 도구들을 역사의 박물관에서 되살리게 된다. 경찰과 검찰은 물론 국세청과 심지어는 기무사까지 동원하여 국민들을 압박하고 감시하게 된 것이다.

결국 전성기를 지나 쇠퇴과정에 접어든 후반기 신자유주의 시대에 집권하게 된 이명박정부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표현처럼 서민경제도 위기로 몰면서 민주화도 후퇴시키게 되고, 남북관계도 과거로 돌리게 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난 바로 그 시점에서 그를 가장 필요로 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를 무리하게 연장시키려는 이명박정부라고 할 수 있다.

구시대는 스스로 자연사하지 않는다

쇠퇴하는 신자유주의시대가 공권력을 불러들이고, 공권력으로 짓밟히고 있는 민주화가 김 전 대통령의 시대를 부활시키는 역사적 순간에 그는 자연적 수명을 다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만 여겼던 공안과 독재의 시대, 냉전의 시대가 부활하려는 조짐마저 있다.

역사는 개개인의 주관적인 희망과 무관한 일종의 ‘자연사적인’ 객관적 합법칙성에 의해 규정되지만,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이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역사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떤 구시대도 스스로 종언되거나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규제 풀린 금융자본이 신종 파생상품과 연계되어 극단적인 ‘수익 추구’를 한 결과 내부적인 문제가 폭발하여 신자유주의 스스로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것이지, 민중의 저항과 도전으로 위기에 몰린 것은 아니었다.

물론 앞으로 신자유주의는 글로벌 성공을 배경으로 각국 국민들을 압도했던 과거와 달리, 속속 만들어질 각종 금융 규제에 저항해야 하고 고실업과 저소득으로 쌓여가는 국민들의 불만에 눈치를 봐야 하는 신세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실세인 금융회사들은 국민 세금으로 구제되었지만 같은 시기에 파산 위기로 내몰린 대부분의 미국 국민, 한국 국민은 여전히 구제되지 못한 상황이다. 오히려 신자유주의는 수명 연장을 위해 공권력을 동원하고 미디어를 장악하며 최소한의 복지마저 폐지하는 수순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신자유주의를 종언시키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민중의 준비가 부족한 탓일까.

얼마 전 서거한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시절 새 시대의 맏이 역할을 포기하고 구시대의 막내 역할을 하겠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구시대의 종결과 새로운 시대의 개막은 쉽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85세 노구에 마지막 혼으로 다시 ‘행동하는 양심’을 국민들에게 절규했다. 역사는 학문과 이론이 아니라 실천에 의해 바뀌는 것임을 고인이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실천을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 새로운 실천은 2008년 촛불항쟁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8.09.22 19:31



얼마 전 외국 언론이 ‘한국의 검은 9월’을 운운하며 9월 위기설을 제기하여 한 때 한국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검은 9월은 신흥 금융시장인 한국이 아니라 금융자본주의 심장부인 월가에서, 그것도 가장 잔인한 모습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 정부보증모기지업체(GSE)인 패니매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2천억 달러 구제금융 결정이 내려진지 일주일 만에 미국의 4위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3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합병되었으며, 급기야 7,400만 고객을 보유한 최대 보험업체인 AIG마저 사실상 국유화되었다. 1929년 대공황에서도 살아남았던 투자은행들이 불과 며칠 만에 줄파산 지경에 이르렀으니 명실상부하게 대공황을 능가하는 위기 국면이다.

월가에서 현실화된 '9월 위기설'

미국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다시 주가는 폭락했고 1,2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마저도 불안한 상황이다. 여기에 미국을 넘어 영국 금융가로 사태가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미국 정부는 7천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공적 자금 투입 계획을 의회에 요청하기에 이른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터진 지 1년이 넘도록, 미국정부는 이른바 ‘시장의 자기조정’을 내세우며 기준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만으로 대처했다. 종합적 대책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사건이 터지면 그 때마다 사후 수습에 정신이 없었다. 이런 미국 정부의 대응은 상황을 걷잡을 수 없는 혼란 국면으로 빠트렸다.

급기야 정리신탁공사와 같은 부실자산 인수기구를 만들 여유도 없어서 재무부가 직접 국채를 발행해 상황을 수습하겠다고 나섰으니 그 절박성과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이는 바니 프랭크 미 하원 금융서비스 위원장이 “별도의 법인을 만들기에는 시간이 없다”고 발언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말하자면 미국 재무부가 미국 정부의 세금을 쥐고 위기에 처한 ‘주식회사 미국’을 인수하기 위해, 골드만삭스 출신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앞서서 진두지휘하는 모양새가 연출된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가 시장 감독기능을 넘어서 국가 재정을 투입하는 직접 인수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덕에 위기 국면은 막을 내리게 될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누구도 상황종결을 자신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위기의 심각성을 반증해 주고 있다.

7천억 달러 투입해봤자, 대형 금융기관 파산 막는 정도

그 이유로 첫째, 재무부가 발표한 최저가 매입 방식은 상당 수준의 영업실적과 자금 여력을 갖추고 있는 대형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정리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수많은 금융기관들은 정부의 매입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으며 당분간 이어지는 파산을 피할 수 없다. 향후에 최소 100여 개, 많게는 1천여 개의 금융기관들이 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런 지점에서 발생한다.

둘째, 역사상 가장 파격적이라고 하는 재무부의 대책도 일단은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들의 도산을 막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GM과 같은 제조업의 파산위기에 대한 대책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향후 월가의 신용경색으로 인한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의 급격한 악화와 이로 인한 도산 위협 역시 고려되지 않았다.

셋째로, 지금의 금융위기의 출발점이자 최종 해결점이 될 미국 국민들의 신용회복과 지불능력 회복을 위한 대책 역시 아직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은 여전히 24.48%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고 주택가격도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위기의 초기 국면이었던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일부 연체자 대출전환 정책과 1,600억 달러 세금 환급조치가 내려졌지만, 그 효과는 이미 사라졌다. 이 때문에 민주당 일각에서 상환 연체자와 중산층에 대한 지원방안을 포함시키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가뜩이나 재정여력이 부족한 부시행정부가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위기는 이미 실물경제로 전이되어 장기불황의 조짐이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가고 있는 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7천억 달러의 공적자금투입 결정이 당장의 대형 금융기관 줄파산을 진정시켜 금융시장 붕괴를 일시적으로 진정시킬 수는 있겠으나, 1년 넘게 확대되고 있는 금융위기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기대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멀리 가버렸다. 즉, 미국 정부의 최후의 대책이라고 할 이번 법안은 대형 금융기관 파산을 막기 위한 대책이지 미국 경제위기에 대한 종합대책은 아닌 것이다.

시장 강조하던 금융회사들 이제와 국가에 손벌려

갈수록 확대되는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근거가 되어왔던 ‘시장의 자기 치유력’이 바닥을 드러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동안 정부의 규제완화와 시장조절기능을 앞장서 주장해왔던 굴지의 금융회사들이 너도나도 각국 정부에 손을 벌리면서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 결국 정부가 구제해준 AIG는 회생의 기회를 잡았지만, 정부가 외면한 리먼브라더스는 파산하게 되었다.

금융시장이 스스로 위험을 분산시키면서 투자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투자행위를 보장해야 하며,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과 위험은 시장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는 주장과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단지 게임의 규칙만 정해주며,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개입하면 된다는 신념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3월 베어스턴스가 파산위기에 몰렸을 때만 해도 ‘시장에 맡겨두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주장들이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리처드 실러 미국 뉴욕대 교수는 “지난 20년간 ‘정부는 해결책이 아니라 문젯거리’라는 레이건 행정부의 구호가 시장을 지배했지만, 이제는 모두가 ‘시장이 문제이고 정부는 해결책’이라고 말한다”며 급변한 상황을 비판하고 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될 때에는 시장경제를 주장하더니, 상황이 바뀌니까 국가의 개입을 주장한다” (CNBC)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는 가장 급진적인 민주당 조차 꿈꿀 수 없었던 대책을 부시 행정부가 내놓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 (NYT)
“미국이 다른 국가에 요구했던 것을 자신은 실천하지 않는 국가가 되었다” (NYT)


이런 분위기는 부시 대통령마저 “오늘날 금융시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위험한 사태와 미국 국민의 일상생활에 미칠 중대한 영향을 감안할 때 정부의 개입은 보장되어야 할 뿐 아니라 필수 불가결하다”고 주장하게 만들었으며,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규제완화를 주장했던 존 메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조차 “월스트리트의 규제받지 않는 탐욕과 부패가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발언을 하는 등 극적인 입장 변화를 가져왔다.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미 정부, 감당할 수 있을까?

이제 모든 걸 떠안게 된 미국 정부, 재정 상태는 문제없는 것일까? 이론적으로야 달러화가 국제적인 지불수단인 기축통화이니 달러화의 파산은 거의 있을 수 없고, 미국 정부는 통화를 찍어내어 국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적자를 메워갈 것이다.

그러나 향후 미국 연방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미국 정부의 경제운용 운신의 폭을 갈수록 좁힐 것이며 달러화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는 지속적으로 추락할 것이다. 금융위기 비용 말고도 이미 중동의 누적 전쟁비용 8,500억 달러(이라크 6,500억 달러, 아프칸 2,000억 달러)의 부담이 계속 늘고 있는 마당에 대선을 위해 감세정책을 고수한다면 아무리 미국이라도 감당의 한계가 올 수 밖에 없다.

결국 미국 정부마저 자금조달 능력의 한계에 직면하게 되면 어찌해야 할까. 미국 재무부의 부실을 막기 위해 세계 각국 정부가 다시금 구원투수로 나서야 할까. 그러나 현재 다른 나라 사정도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전통적으로 미국을 지원해 나섰던 영국이나 일본을 포함하여 전 세계가 지금 미국 못지않은 불황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일개 은행의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 (줄리오 트레몬티 이탈리아 재무장관)
“미국 금융시장에 영원한 변화가 생겼다” (블룸버그)
“로널드 레이건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파이낸셜 타임즈)
“미국 금융자본주의가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고 있다” (월스트리 저널)


위는 미국 재무부가 7천억 달러 공적자금 투입결정을 내린 직후 선진국 언론이 보인 반응들이다. 바야흐로 30년 남짓 지속되어온 신자유주의 역사가 중대한 분수령을 넘고 있다. 하다못해 보수적 국내언론마저도 “금융위기에 흔들리는 미, 영 자본주의 모델”(조선일보 9월 19일자), “미국, 30년 신자유주의의 종언”(중앙일보 9월 21일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는 상황이다.

스스로 무너지는 신자유주의

그렇다면 글로벌 스탠더드로 추앙을 받으며 성장가도를 달리던 신자유주의에 이처럼 예기치 못한 급제동을 걸고, 역사적 전환을 압박하는 이는 누구인가? 사실 그 어떤 외부세력도 아닌 바로 신자유주의 자신이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다.

1980년부터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은 규제완화, 감세, 작은 정부 큰 시장, 민영화를 내걸고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기존의 경제 시스템을 재편했다. 이어 남미와 아시아에 자유화, 개방화를 강조하며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를 밀어붙인다. 규제완화와 시장화, 개방화 물결의 가장 큰 수혜를 입으며 신자유주의에서 가장 눈부신 성장을 이룬 것이 바로 금융자본주의다.

신자유주의는 전통적인 금융상품인 예금, 적금 상품이나 주식, 채권 외에 이른바 위험 분산을 명목으로 파생상품을 개발하는 ‘금융혁신’을 이루어 금융시장을 급격히 팽창시킨다. 온갖 첨단 수학 기법이 들어간 파생상품은 위험을 분산시킨다는 당초의 취지 대신 고위험을 감수하여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최고의 고수익 상품으로 활용되고 유통된다.

규제가 여전히 까다로운 전통적인 상업은행을 대신해서 사실상 규제가 전혀 없는 헤지펀드와 사모펀드가 파생상품에 대거 투자하고, 기업 자체를 인수합병하는 기업거래시장을 창출한다. 파생상품 시장과 인수합병 시장에서 고수익이 창출되자, 처음에는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에게 대규모 대출(레버리지)을 해주며 시장을 키우던 투자은행과 상업은행들이 직접 자회사를 세워 투기적 금융상품을 대거 매입하고 유통시키면서 금융시스템의 규제와 감독체제는 더욱 와해된다.

파생상품과 무리한 레버리지, 규제완화가 만든 결과

한편 전통적인 제조업은 점점 경쟁력을 잃어갔다. 오히려 제조업들마저 금융영역에 진출하여 금융부분을 주력사업으로 수익을 올렸으며, 제조업들 자신은 투기적 금융자본의 이익 실현을 위한 기업거래시장의 상품으로 전락한다.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노동자와 중산층의 실질 소득은 늘지 않았고 대신에 금융자본은 갖가지 신용대출로 신용적 가수요를 창출하도록 하여 소비를 조장했고 그 결과 미국 국민들은 대규모의 채무자로 전락한다. 엄청난 금융자본을 동원하여 미국 국민들을 부동산 시장으로 내몰고 미국 국민, 모기지 업체, 정부의 부채를 임계점까지 끌어올리고 마침내 파산하기 시작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최종 결말이다.

다시 말해서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규제완화와 작은 정부, 시장화와 개방의 환경을 배경으로 해서 급성장한 파생상품과 인수합병 시장,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그리고 여기에 자금을 동원했던 투자은행과 금융기관들 자신이 투기적인 부동산 시장에서 스스로 위험을 극대화시키고 전 세계로 전염시킨 것이다.

자기 내부에서 개발한 최첨단 금융시스템 그 자체에 의해 자신의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킨 신자유주의는 이제 그 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신자유주의 밖으로부터 수습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서야 할 상황에 다다랐다.

침묵하는 보수적 기업 연구소들

이렇듯 1백년 만에 올까 말까한 금융위기가 월가를 휩쓰는 동안, 경제의 해외의존도가 높고 특히 외국 금융자본의 자본시장 유입이 높았던 한국경제는 연일 큰 충격으로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국책은행 총재인 민유성 산업은행 총재는 이미 파산보호 신청을 한 리먼브라더스 인수 시도가 글로벌 투자은행 진출의 기회였다는 고집을 여전히 꺾지 않고 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도 “규제완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호언하고 있는 실정이다. 쓰러져가고 있는 미국 금융시스템에 대해 월가의 미국인들 보다 더 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런 와중에 경제현안에 대해 신속하고 발 빠른 대응으로 정평이 나있는 주요 기업 연구소들의 침묵에 가까운 소극적 대응은 당황스러울 정도다. 세계경제의 최신 경향과 동향을 민첩하게 분석해왔던 기업연구소들의 과거 모습과는 전혀 다른 행동이다. 물론 이들 연구소의 개별적인 연구원들이 언론 매체 등을 통해 현재 금융위기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는 있지만, 파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는 연구소의 공식적 보고서는 아직 없다.

이들의 침묵은 여전히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향해 질주하는 이명박 정부의 외골수 경제정책을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 한국이 세계적인 금융위기 국면에 신속히 대처하여 다가올 혼란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을 정부와 보수적인 기업연구소가 함께 막아버리고 있는 것이다.

막 내리는 신자유주의, 그러나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

패니매이와 프레디맥의 구제금융 결정이 났을 때, 리먼이 파산하고 메릴린치가 인수합병되었을 때, AIG가 국유화되기로 결정되었을 때도 한국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이제 경제위기가 끝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번번이 위기는 재발했고, ‘위기의 끝’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끝’이라는 주장에 오히려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신자유주의 앞날에 중대한 전환 국면이 확실해지고 있는 지금, 그것이 신자유주의 시즌 2로 성공적인(?) 진화를 할지 아니면 아예 또 다른 자본주의로 전환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인류가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투기성과 위험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대안적인 경제시스템을 찾기 위해 직접 실험에 나서지 않는다면 신자유주의는 자신의 위험성을 회피하고 유보시키면서 제2, 제3의 신자유주의 변종으로 살아남으려 할 것이라는 점이다. 수백 년 자본주의 역사에서 특정 형태의 자본주의가 스스로 자기를 부정한 적은 없듯이 말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하루를 멀다하고 신자유주의를 찬양했던 보수적인 학계와 기업계가 위기에 대해 침묵으로 답하고 있는 동안,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 최신 버전도 아닌 30년 전 원시버전을 강행하고 있다. 지금의 금융위기를 지켜보면서도 말이다. 규제완화와 감세, 민영화와 자본시장 개방, 금융화는 바로 30년 전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추진하려던 신자유주의 초기버전 그 자체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제라도 세계적인 금융위기 상황을 제대로 보고 추진 중인 경제정책들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변할지 모를 세계 금융시장 속에서 당분간 자본시장 통합법 시행은 전면 유보해야 한다. 지금 미국식 금융모델이 절대 바이블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며, 더구나 30년 전의 미국 모델은 미국인들에 의해 부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통합법, 산은과 기은 민영화 유보해야

정부가 추진하려는 금융회사 신규 설립요건 완화, 파생금융상품 발행과 거래에 대한 규제완화,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지분 한도 확대, 금융지주회사에 제조업 자회사 허용, 헤지펀드 허용, 채권보증 전문회사 설립 허용과 같은 규제완화 정책들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또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민영화 추진도 현재 상황에서 추진하기에는 무리이다. 그나마 몇개 남아있지 않은 국책은행마저 민영화할 경우, 금융불안에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판마저 없어지는 것이며 향후 장기화될 중소기업 자금조달 어려움에 정부가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도 어려워 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자본시장이 극도로 위축된 조건에서 민영화는 자칫 헐값 매각이나 주식시장 폭락을 초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금은 규제완화나 감세, 민영화를 추진할 시기가 아니라 이미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자금조달을 터서 내수를 살리고, 국민들의 소득과 소비여력 확충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준비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보여주는 것처럼, 폭발성이 큰 신자유주의 금융위기가 대부분 부동산 거품과 금융공급이라는 잘못된 만남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유념하고 금융위기 국면에서 부동산 부양책을 동원하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당장 23일 종합부동산세제 개편안 발표, 이후 공기업 선진화 3단계 계획안 발표, 그리고 26일과 30일 내년 예산안 발표에서 이를 즉시 반영할 필요가 있다.

미국 경제학 교수인 루비니 교수는 현재 신자유주의 금융위기를 보면서 “이익은 사적으로 독점하면서 손실은 사회화한다.”고 공박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고집스럽게 경제정책을 이끌고 간다면 일부 대기업과 부동산 부유층은 이익을 볼지 모르겠으나 대다수 국민들이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심각한 손실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전환을 강력히 요구하는 유일한 이유다.

김병권 / 새사연 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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