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2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여기 두 사람이 있다. 박근혜와 정동영. 2007년 대선에서 이 두 사람은 각각 예선과 본선에서 패배하였다. 그리고 최종 승자는 현 대통령 MB다. 그리고 4년이 지났다.

먼저 정동영을 보자.

"저는 신자유주의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 부작용을 대비하기 위한 어떤 구체적 전망과 비전을 갖고 잊지도 못했습니다. 관료 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어떤 실효성 있는 대안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무지했습니다. 2007년 대선이 끝나고 불과 9개월 만에 터져 나온 미국의 금융위기를 바라보면서 저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서서히 침몰하는 거대한 타이타닉호 였다는 사실을..."

2010년 8월,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동영의 ‘반성문’ 내용의 일부이다. 그가 진단한 대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된 계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다. “IMF가 강제한 금융자유화, 민영화, 규제완화, 노동유연화, 정리해고의 깃발을 들라는 강요”와 신자유주의 본질에 대한 무지가 우리사회에 양극화, 비정규직, 실업의 재앙을 초래하였다.

한편, IMF 체제 10년 뒤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손쉽게 정권을 교체하였다. 그들이 당시 내세운 정책기조는 다음과 같다.

"기업의 성장과 투자를 저해하는 과도한 규제와 높은 세율을 정비하여 기업하기 좋은 친기업·친시장 정책을 추진할 것입니다. 그리고 법질서를 확립하여 노사관계를 안정시키고 사회갈등 구조를 해소하는데 적극 노력하겠습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공약 자료집에서...)

이는 또 다른 정치인, 박근혜의 경제정책 공약인 ‘줄푸세’이고 MB가 그대로 수용하여 가열차게 추진하였다. 결과는 어떠한가? 그렇게 비난하던 참여정부 5년에 비해 성장률은 1.25%p 떨어지고, 물가는 0.67%p 상승하였다. 연평균 투자증가율은 3.2%에서 0.4%로, 내수증가율은 3%에서 1.4%로 떨어졌다. 5년 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나 10년 내 세계 7대 경제강국에 진입하겠다는 야심찬 비전도 한낱 공수표에 불과하였다.

지난 4년 동안 박근혜가 줄푸세나 MB노믹스에 대해서 반성하고 새로운 경제정책기조를 제시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다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변명만 있을 뿐이다.

"당시는 경기가 너무 침체돼 있었기 때문에 경기부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줄’(감세)을 내세웠던 것이고, 지금은 양극화가 심하기 때문에 이 간격을 좁히는 게 중요하다. 그 시대 상황마다 필요한 게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오마이뉴스, 2012/3/14)

박근혜가 줄푸세를 내세웠을 시점인 참여정부 말기에는 5%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지금보다 경기가 나았으며, 양극화 지표는 이미 그 당시 심각한 수준에 도달하였다. 그녀의 변명에는 국민과 시대의 요구에 상황이 변했다는 이유로 마지못해, ‘생애주기형 맞춤형 복지’를 내세우고 있을 뿐이다. 맞춤형(targeted)복지란 특정계층에만 복지수혜를 지원하는 시혜적이고 잔여적 개념이다. 실상 복지에 대해서도 철학과 비전의 진정성을 찾아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정동영은 신자유주의 본질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담대한 진보’의 핵심인 ‘역동적 복지국가의 건설’을 국가모델로 제시하였다.

"역동적 복지국가는 부의 재분배를 넘어 적극적으로 부를 창출하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복지국가입니다. 고용, 주거, 교육, 의료, 노후 등 삶의 전 과정에서 국민의 기본적 경제인권을 보장하고 이를 근거로 경제의 역동성까지 확보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제가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의 성공을 확신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최고의 자산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4대강, 한미FTA, 강정마을 등 그를 필요로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청년 실업자, 농민...”들의 현장에 그는 항상 맨 앞에 서 있었다. ‘사람’을 최고의 자산으로 여기며 실천하는 정치인 정동영, ‘사람’을 선거의 도구로만 여기며 성찰 없는 정치인 박근혜. 2012년 우리는 두 번의 선거를 통해 그 둘의 행보를 기억하고 주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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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2이은경/새사연 연구원

복지담론에서 승리하기

복지가 대세입니다. 선거시즌을 맞아 모든 정당과 정치인들은 복지확충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특별히 우열을 가리기도 힘들어 보입니다. 이렇게만 간다면 선거이후 우리는 제대로 된 복지국가를 맞이하게 되는 걸까요?

복지국가는 경제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얼마를 누구에게 주는가에 대한 문제만으로 바라봐선 안됩니다. 세계화와 양극화로 인해 발생한 빈곤의 문제를 복지혜택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원인을 그대로 두고 현상에만 손을 대는 ‘언발에 오줌누기’ 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화가 복지에 미친 영향

신자유주의는 세계화와 그로인한 양극화의 심화를 불러왔습니다. 국경이 없어진 다국적 기업들은 보다 규제가 적고 임금이 낮은 곳으로 이동하거나 혹은 옮기겠다고 협박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법인세로 대부분의 국가들은 기업에 대한 세금을 지속적으로 낮춰주고 있습니다. 또 한 측면으로는 노동의 유연화가 진행됩니다. 정식 고용을 줄이고 하청이나 위탁형태로 바꾸어 그 과정에서 노동자는 양극화 되거나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세계화는 이런 식으로 복지의 영역을 약화시킵니다.

복지에 사용할 수 있는 재원과 정책적 수단은 줄어드는 반면, 높은 고용강도와 노동의 양극화, 질높은 일자리의 감소로 복지 수요는 크게 늘어나는 악순환을 겪는 것입니다. 여기에 심각한 경제위기상황이 오면 막대한 공적자금은 자본을 살리는 데로 투자되며 국가경제는 갈수록 취약해지게 됩니다. 이것이 현재 복지국가의 위기 현상의 본질입니다. 여기에 국가지출에 대한 비효율이 지적되고 복지망국병이란 말을 덧씌웁니다.

결과적으로 경제구조와 복지문제가 분리되어 경제가 어떻게 굴러가든 재원을 확충해서 필요한 복지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목표가 되고 복지의 핵심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제도를 설계하느냐가 되고 있습니다.

복지프로그램의 차별성을 넘어

무상의료, 무상보육, 무상교육이 이야기 되고 있고 재정 마련을 위한 논쟁이 치열합니다. 누가 더 많은 지원을 약속하는지가 선거 차별전략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유지한 채 복지를 통해 문제점을 완화하겠다는 방법은 출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4대보험의 보장성을 강화도 중요하지만 보험에 가입조차 할 수 없는 저소득층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그를 위해서는 자본통제와 재벌개혁, 적극적 일자리 창출정책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복지국가 건설 논쟁의 진정한 핵심입니다.

복지프로그램 확충을 넘어 경제-복지의 선순환 사회로 갈 수 있는 선거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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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3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신자유주의의 진정한 붕괴가 시작되고 있다. 그 날은 리먼이 파산했던 2008년 9월 15일이 아니라 2011년 9월 17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일자리와 집과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99% 미국 시민들이 변화를 요구하는 행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든 변화는 객관적 시스템의 붕괴가 아니라 그 시스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변화를 갈망하며 스스로 움직일 때 시작된다.

관적으로는 이미 3년 전에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어야 할 신자유주의가 지금까지도 견고하고, ‘재정위기’를 빌미로 오히려 강화되려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었다면, 그것은 단 1%라도 그 시스템으로 인해 이익을 보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그 1%는 월가에 있었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가 분노를 표현하며 월가에 몰린 이유다. 반세계화 활동가인 나오미 클라크가 시위대 앞에서 “더 이상 부유한 국가와 국민은 없고 부유한 사람들만 있다”고 주장한 그 부유한 사람들의 상징이 월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의하면 월가의 초대형 6대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 JP모건체이스, 웰스파고, 모건 스탠리, 골드만삭스는 미국 국내총생산의 60%가 넘는 자산을 축적했다고 한다. 선두 4개 대형은행은 신용카드 시장의 2/3를 장악했고 전체 모기지 대출의 절반, 그리고 전체 예금의 40%가까운 시장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뿐인가. 자신들이 축적한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정치권력에 엄청난 로비를 하여 자신들을 옭아맨 규제를 풀면서 통제받지 않는 수익행진을 했다. 1998년에서 2008년까지 이들은 글래스-스티걸 법과 같은 금융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50억 달러 이상의 로비자금을 뿌렸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규제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드-프랭크(Dod-Frank)법안을 약화시키기 위해 수억 달러, 법안 통과 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또한 수억 달러를 썼다고 알려졌다.

이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시키고 거의 아무런 대가도 없이 7000억 달러 구제 금융을 받는 장본이다. 그러고도 폴 크루그먼의 표현대로 이들은 “동전의 앞면이 나오면 자신들이 이익을 보고, 뒷면이 나오면 미국 시민들이 손해를 보는”식으로 손쉬운 돈벌이를 해온 것이다. 한마디로 월가의 초대형 은행들은 너무 커서 파산 시킬 수 없는(too big to fail)것을 뛰어넘어, 너무 커서 존재해서는 안 되는(too big to exist)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월가 시위대들의 분노의 표적이 된 월가 초대형은행에 견줄만한 대한민국의 1%는 누구인가. 우리 경제에서 ‘너무 커서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는 누구인가. 바로 삼성, 현대, SK, LG로 대표되는 재벌 대기업 집단이다.

삼성과 현대 그룹의 공식적인 자산 총액은 한 해 국가 예산규모를 상회하는 330조원이 넘는다. SK와 LG까지를 포함하는 4대그룹의 작년 매출액 603조 원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규모의 절반을 웃돈다. 이들은 금융위기 이후에도 그 규모를 계속 키워서 2007년 대비 계열사 수자가 최소 30%이상 늘어났다. 현재 삼성그룹이 78개, 현대 그룹이 63개, 그리고 SK그룹이 86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너무 커져서 파산시킬 수 없을 지경이 아닌가. 더욱이 이들은 과거처럼 정권의 눈치나 보는 위약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정권에게 훈수를 두고 여의도 국회에 촘촘하게 로비를 하며 자사 싱크탱크를 동원하여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낼 능력까지 보유하게 되었다. 미국의 월가가 그런 것처럼 진정한 실세로서 권력을 쥐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삼성의 스마트폰 선전의 예로 알 수 있듯이 월가와 달리 부단한 기술혁신과 경쟁력 강화로 얻은 대가이고 때문에 비난받을 수 없는 것인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미 올해 상반기에 크게 공론화된 것처럼, 하청기업에 대한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 골목상권이나 MRO사업 등에 이르기까지 무분별한 시장 잠식, 통신과 유류를 포함한 각종 독과점 가격 등을 통한 이익추구가 대기업 현금창고를 채우는데 기여했던 것이다. 또한 경제위기 와중에 정부의 규제완화, 감세, 고환율 정책의 지원을 받아 수익행진을 구가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고용불안과 경제적 불평등, 불공정의 뿌리이자 부를 독점하는 1%가 있다면 당연히 그 맨 앞자리에 재벌 대기업 집단이 있어야 한다. ‘부유한 월가와 가난한 미국 국민’이 있다면 ‘부자 삼성과 가난한 한국 국민’이 우리 앞에 있는 냉엄한 현실인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미국 시민들이 ‘월가에게 금융규제를, 증세를, 사법처리를’ 구호로 내걸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재벌 대기업 집단에게 규제를, 증세를 해야 하고 불법적인 증여 상속 등에 대해 법의 엄정한 집행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99% 국민운동이 번질 조짐이다. 99%를 환영한다. 당사자의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변화를 열어갈 최후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99% 한국 국민이 저항해야 할 1%는 재벌 대기업집단이며 요구해야 할 핵심구호는 재벌개혁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07.28정태인/새사연 원장

나는 TV광(狂)이다. 한 때 나와 채널 경쟁을 했던 큰 아이가 “아빠가 아줌마야?” 할 정도로 드라마광이다. 지금도 6개월에 한 두 개 쯤 꽂히는 드라마에는 ‘본방사수’를 할 정도인데 요즘은 네 식구가 대충 의견 일치를 보기 때문에 채널 싸움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성균관 스캔들>, <시크릿 가든>, <최고의 사랑>이 그랬고 요즘 유력한 후보는 <무사 백동수>다). 9시 뉴스 시간에 집에 있을 땐 예외 없이 EBS의 <세계 테마 기행>을 보며, 늦은 밤 각 방송사의 다큐도 벅찬 가슴으로, 가끔 눈물까지 흘리며 본다.

요즘 웬만큼 바쁜 일 없으면 집이건, 식당이건 보는 프로그램은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이다. 나는 술 취하면 거의 매번 연구원들을 노래방으로 끌고 가지만 실력은 가끔 빵점이 나올 정도로 형편없다. 하지만 ‘나가수’에서 누가 일등할지, 그리고 누가 꼴등해서 탈락할지를 맞출 정도의 눈치는 있다(어쩌면 우리 청중평가단은 다 나만큼 음치일지도 모른다^^).

그 엉성한 감각에 비춰 볼 때 박정현, YB, 그리고 아마도 김범수는 영원히 탈락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박정현은 금주에 그랬듯, 모든 장르의 도전을 즐기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너무 많이 나와 지겹다”는 이유로 외면당할 이유도 없을 듯 하다. 한편 옥주현은 떨어질 때가 됐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청중평가단은 역시 냉혹했고, 마치 아이돌 출신은 여기 오면 안 된다는 나름의 고집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가 임재범과 한 무대에 서는 건 ‘나가수’가 아니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것이며, 이제 탈락했다 하더라도 그의 노래 인생은 서너 계단을 단숨에 올라섰을 것이다.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 문득 왜 지식인들 사이에선 이런 아름다운 무대가 없는 걸까, 내가 그 무대에 오른다면 어떤 모습일까, 매년 열리는 각종 학술대회는 왜 이런 긴장감이 전혀 없이 그저 때운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아니 지상에서의 간접 경쟁에서 조차 왜 이처럼 목숨을 건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그저 지엽말단의 실수에만 치명적인 칼날을 들이미는 걸까, TV 토론에서 왜 나는 상대의 무지와 옹고집에 방송 중에도 한숨을 쉬는 걸까(아마 상대도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서로 칼날 위의 경쟁을 하면서도, 심지어 아주 깊은 속으론 내 음악이 더 낫다고 생각하면서도, 방금 드러난 다른 이들의 실력에 언제나 공감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왜 전문가 집단 사이에선 벌어지지 않는 걸까. ‘나가수’에선 분명히 이룬 ‘화이부동’이 왜 지식인 사회에선 불가능할까.

지금이야 말로 춘추전국시대처럼 제자백가가 백화제방 할 시기이다. ‘신자유주의’라는 한 시대가 저물고 그 다음 시대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때, 지식인들은 자신의 전문 영역을 넘어 다가올 시대에 대해 큰 그림을 펼쳐야 한다. 미래이기에 증명할 수 없지만, 예술가처럼 감각으로 미래를 예감하도록 할 능력은 없지만 지금이야말로 좁디 좁은 자신의 전문 영역을 넘어 전체 사회와 자연의 미래에 대해 예언할 때이다.

만일 우리 사회가 근시안과 좁은 이기심 때문에 지속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면, 그런데도 오로지 몇몇 정치인의 행보에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나를 포함한 모든 지식인들은 직무태만이라는 역사적 중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의료인들이 히포크라테스나 화타의 삶을 잊고, 교수와 교사가 공맹이나 권정생의 진정을 잊고 모두 각자의 전문가 울타리 안에서 적당한 보수를 누리고 있다면, 이강택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의 말대로 “지금은 언론의 위기가 아니라 언론인의 위기”일 정도로 언론의 공공성을 잊었다면 그 어찌 지식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도대체 시청률이 거의 유일한 잣대가 되고, 심지어 방송사주와 자신의 정치적 행로가 방송의 내용을 규정한다면 그런 방송인이 과연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조선시대 깐깐한 선비의 기준에 도달한 지식인이 몇 명이나 될까? 봉건시대의 선비들은 후대에 자신이 ‘소인’이라고 역사에 기록되는 것 만큼은, 그래서 후손이 부끄러워 하는 것 만큼은 걱정했는데 과연 지금은 그 무엇이 우리들을 규율하고 있는 걸까?

“나는 지식인이다”라고 외치며 광장에서 우리의 미래에 관해 모두와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진보와 보수 모두 지식인으로서 지금 ‘나는 가수다’의 그들처럼 대중 앞에 나서서 그야말로 실력으로 경쟁해야 할 때가 된 게 아닐까? 적어도 20-30년은 지속될 대혼란이 우리 머리 위에 엄습해 있는데 이 시대의 지식인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이 글은 PD저널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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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5정태인/새사연 원장

거짓말 탐지기는 과연 정확할까? 영화를 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내가 진실을 말했더라도 거짓말 탐지기를 들이대면 가슴이 두근두근 뛸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 때문에 거짓말로 판정되면 그 억울함을 어찌 할까? 반대로 아예 후안무치하거나 또는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자각도 없는 사람이라면 거짓말 탐지기를 무사통과하지 않을까?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지금 한국 정치는 혁명 중이다. 민주당이 보편복지를 내세워 중도좌파의 드넓은 땅에 들어선 데 이어 한나라당 역시 중도우파, 합리적 보수 정당이라고 부를만 하게 되었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산하 비전위원회가 내놓은 정책노선만 놓고 본다면 과연 그렇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복지수준, 고용률 60%, 대학등록금 부담 30% 축소, 공천 30% 여성 배정, 대북 지원 등이 포함됐으니 어찌 수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불과 3년 전, 2008년 총선 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약속한 듯 똑같이 ‘뉴타운’ ‘특목고’ 유치를 현수막에 내걸었을 때를 되돌아보면 상전벽해라는 말이 이리도 잘 어울리는 경우가 또 있을까,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두 당의 변화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100% 믿고 싶다. 이미 10년 전부터 복지를 외쳤던 진보정당까지 합쳐서 모든 정당들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아름다운 ‘복지경쟁’을 벌일 것이다. 따가운 여름 볕에 초록이 지치듯 지난 15년간 죽음의 경쟁 속에서 허덕여온, 그래서 ‘루저’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들에게 복지만한 생명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국민은 어떤 복지가 더 현실적인지만 판단하면 된다. 한나라당은 여전히 ‘747’을 포기하지 않았다. 비전위원회도 여전히 2020년 국민소득 4만달러를 약속하고 있으며(그러므로 우리 경제는 매년 7% 성장을 해야 한다), ‘한국형 복지’를 내세운 박근혜씨 쪽 역시 예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를 버린 바 없으니 마찬가지다. 이 여름이 지나기 전에 한미 FTA를 비준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정책기조의 재확인이다. 이렇게 성장을 해야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있으니 자신들의 복지가 더 현실적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나라당은 내심 ‘포퓰리즘과 재정적자’의 우리(프레임) 안에 복지라는 펄펄 뛰는 야생마를 가두는 그림까지 꿈꾸고 있을 것이다.

거짓말 탐지기는 뭐라고 말할까? 지난 15년 간의 우리의 양극화 역사가 바로 그 거짓말 탐지기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한편으로 경제를 시장에 맡기면서(“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는 고 노무현대통령의 한탄) 다른 한편으로 복지를 늘리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시장에서 벌어질대로 벌어진 양극화를 복지로 막는 건 불가능했고 소득 불평등 척도인 지니계수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노동연구원 패널 자료를 이용하여 계산한 자산 지니계수는 무려 0.84(2008년)라는 극도의 불평등 상태를 보이고 있다. 민영화와 규제완화, 그리고 감세라는 시장 만능주의 정책기조를 버리지 않고 양극화를 막을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당연히 더 많은 복지 재원이 필요하고 재정적자는 현실이 된다. 한미 FTA는 이런 정책기조를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초헌법적 장치이다.

한마디로 시장만능을 주장하면서 복지를 내거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 경제의 거짓말탐지기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영미권, 심지어 북유럽에서도 정확성이 증명됐다. 시장만능주의의 원조인 미국(2005년 기준 4위), 그리고 그 나라와 FTA를 맺은 멕시코(1위)와 캐나다(13위)가 모두 소득불평등의 최악의 국가들이고 빈약한 복지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의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모든 당이 내건 복지의 진위를 알려면 그들의 경제정책 기조를 보라.

한미 FTA는 가장 훌륭한 거짓말탐지기이다. 민주당은 최근 금융세이프가드 강화, 투자자 국가소송제도 폐기, 서비스 시장개방 포지티브 방식 전환, 역진불가조항(래칫) 폐지를 포함하여 한미 FTA 재재협상을 요구함으로써 거짓말 탐지기의 1차 관문을 통과할 수 있게 됐다. 반대론자들이 핵심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했던 항목들을 모두 수용한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국민의 정부 시절에 추진했던 철도 등 네트워크 산업 민영화, 금융규제완화를 통해 메가뱅크를 건설하려 했던 금융허브화, 제주도 영리법인 추진 등 의료민영화 정책을 민주당이 어떻게 처리할 것이지 주목하고 있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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