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5 / 22 새사연

세계 식량위기와 식량주권 의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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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신자유주의 개방농정 20년

2. 식량안보에서 식량주권으로

 

[본 문]

편집자 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악화되자 한국사회에서는 전례 없는 보편 복지 요구가 확대되고 있고 경제 민주화의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양대 선거를 맞아 정권교체 요구가 거센 가운데 다양한 사회개혁 의제가 정책 공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정말 2013년 체제라고 불릴만한 사회 대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자면, 강력한 경제개혁 전망을 갖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새사연의 문제의식이다.

이 에 새사연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시대적 가치와 비전, 새로운 경제모델과 성장모델, 총체적 경제개혁, 보편복지를 망라하는 정책을 모아 <<리셋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단행본을 출간했다. 그 원래 원고들을 가지고 회원들과 공유하고자 [새로운 사회 2013]이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1.  신자유주의 개방농정 20년

한국 농업정책의 기조는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이다. 1989년 농축산물수입자유화조치와 1991년 농어촌구조개선대책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은 농산물의 시장개방, 농업의 구조조정, 농촌과 농민에 대한 보완대책으로 구성된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협상 타결과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을 계기로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시장이 완전 개방되었고, 이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쌀시장의 의무수입물량 확대 등으로 시장개방이 빠르게 확대되었다. 그 대신 정부는 대내적으로 농업구조조정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었다. 농업구조조정의 핵심은 소위 ‘선택과 집중’에 따라 농지와 농기계 등 농업자원을 소수의 정예농가에 선별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규모화를 통해 경쟁력을 갖추도록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농민과 농촌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및 국민연금 일부 지원, 농가부채 상환기간 연장 및 이자 일부 경감, 직접지불제도 도입 등의 보완대책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원천적인 소규모 농지면적의 한계와 생산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와 토지용역비를 고려할 때 규모화를 통한 가격경쟁력은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목표였다. 결국 정부도 내부적으로는 가격경쟁력을 포기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에는 친환경, 기능성 등을 중요시하면서 품질경쟁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수의 전업농에 대한 선별적인 집중지원이라는 농정기조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는 더욱 규모화된 극소수의 주업농과 기업농을 강조하여 과거로 회귀했다. 농민과 농촌에 대한 보완대책 역시 일부를 폐지하거나 축소하였다.

그 결과 농업, 농민, 농촌의 위기는 급격히 찾아왔다. 1990년 약 43%에 달했던 식량자급률은 2011년 현재 약 25.1% 수준으로 급격히 하락하면서 먹거리의 약 4분의 3을 해외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농가인구는 1990년 약 715만 명에서 2010년 현재 약 315만 명으로 절반 이상 감소하였다. 그나마 남아 있는 농민층은 소수의 상층농다수의 중소농으로 분화되는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1990년 농가소득은 도시가구소득의 97.4% 수준이었지만 2009년 현재 66.0% 수준으로 급락하여 도농간 소득격차가 크게 악화되었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명목 농가소득은 약 3000만 원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는데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표1]참조). 이에 반해 농가부채는 1990년 약 417만 4천 원에서 2009년 현재 약 2626만 8천 원으로 약 6.3배나 급증했다.

이와 같이 농촌지역을 지탱하고 있던 농업과 농민층이 몰락하면서 농촌지역도 빠르게 붕괴되었다. 전국 대부분의 농촌지역에서 공통적으로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였고 빈곤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농촌인구의 초고령화 및 여성화 현상이 일반화되었으며, 대도시 지역의 절대 빈곤율 6.6%에 비해 농촌지역의 절대 빈곤율은 14.8%로 두 배 이상 더 높은 빈곤율을 기록하였다.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에 따른 농업의 몰락 과정은 동시에 세계식량체계(Global food system)로의 편입되는 과정이었다. 국내 먹거리 생산과 공급의 기반이 붕괴된 빈자리를 세계식량체계에서 공급되는 먹거리가 채우게 되었다. 세계식량체계는 먹거리의 생산에서 소비까지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촘촘한 연계망을 구축하고 있는 글로벌시스템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 세계 곡물무역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5대 곡물메이저(Grain major)를 중심으로 종자, 비료, 농약, 농산물유통, 식품가공 등과 같은 분야의 초국적 기업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 곡물메이저와 초국적 기업들은 서로간에 전략적 제휴, 인수합병 등의 방법으로 수직적 혹은 수평적 결합체계를 갖고 있는데, 이를 모두 포괄하여 농식품복합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미국의 군산복합체에서 빌려온 표현이다.

한편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대표되는 농산물 자유무역은 관세를 제외한 모든 국경장벽을 철폐하도록 만들고, 농업보호정책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도록 만들어 세계식량체계가 전지구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

세계식량체계가 확대되면서 경지이용률의 감소, 중소 가족농의 몰락이 이어졌고, 이는 2000년대 이후 대규모 식량부족 사태와 국제 곡물가격의 폭등을 불러온 주요 원인이 되었다. 또한 유전자조작농산물(GMO) 종자, 대규모 화학농업과 공장식 축산, 장거리와 장시간 운송에 따른 화학처리 등의 문제도 확산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먹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로 돌아왔다.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이 농업의 위기를 불러오고, 세계식량체계로의 편입은 먹거리의 위기를 불러왔다. 이들 상호 간에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겨 위기가 악화되고 있다([그림2] 참조). 국내 농업은 해체되어 식량자급률은 25%로 떨어졌고, 이 때문에 수입 먹거리에 의존하면서 먹기리 위험은 더욱 커졌다. 그럴수록 국내 농업생산기반은 취약해졌고, 가격파동은 대형화되었다.

이러한 원인과 배경에서 발생한 지금 우리의 먹거리 위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식량생산기반이 극도로 취약하다. 식량자급률이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둘째, 안전한 먹거리의 생산 및 공급 기반도 매우 취약하다. 친환경 유기농산물은 여전히 틈새시장에 머물러 있다. 셋째, 취약한 생산 및 공급 기반에 불안정한 기상변화가 겹쳐 농산물 가격폭등이 빈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가격정책과 제도장치는 여전히 미약하다. 넷째, 먹거리의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하위계층으로 갈수록 값싼 먹거리를 많이 구입하고,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각종 질병과 사망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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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5 / 08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지금 어떤 성장을 모색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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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이라는 난제

2. 신자유주의 두 가지 성장모델

3.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성장모델

4. 소득주도 성장모델이 내수기반 경제다.

 

[본 문]

1. 양극화와 소득불평등이라는 난제

지금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앞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커다란 난제가 가로막혀 있다.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심화된 소득 불평등을 어떻게 완화시키면서 지금의 경제 위기 국면을 탈출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나아가 우리 경제를 다시 안정적인 성장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1%에 맞서는 99%저항운동에 나섰던 월가 점령운동에 대한 전 세계적 호응을 보건데,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정치 사회적으로도 소득 불평등은 이미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 성장체제가 명확한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을 기준으로 본다면 2007년 경기침체 이후 5년이 지나도록 경제가 위기의 늪에서 빠져나와 확실한 회복을 도모할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성장 동력이 효력을 다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한계에 도달한 자본주의가 기존의 성장체제를 폐기하고 신자유주의를 대신하는 새로운 성장모델, 성장전략을 찾아야 함을 말해준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악화된 소득 불평등과 파국에 몰린 신자유주의 성장체제는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외형적으로는 규제 풀린 금융과 위험한 파생상품 거래가 2008년 경제위기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그 배경에는 신자유주의 성장체제 자체가 악화시킨 소득 불평등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아직도 경제가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채 번번이 위기가 재발하는 것도 실업 개선이 극히 부진한데서 알 수 있듯이 소득 불평등이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수준의 소득불평등 개혁 없이 자본주의 위기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90년대 미국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다. 라이시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상위 1%로 소득이 집중되었을 때 발생했으며, 반대로 자본주의의 안정적 발전과 성장은 소득 격차가 낮아졌을 때 실현되었음을 강조한다. 그런데 총 소득 중 상위 1%에게 돌아간 몫이 1928년과 2007년 둘 다에서 23퍼센트를 넘으면서 최고치에 달했다는 것이다.(그림 1참조) 이 점에서 보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필연적이었던 셈이다. 소득 불평등은 경기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북미와 유럽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성장세가 나은 아시아에서도 매우 중대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결국 심화되는 소득 불평등과 기존 성장체제의 한계라는 당면한 한국경제의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 곧 한국경제의 개혁과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기존에 한국경제를 추동해왔던 성장체제를 세계 경제적 범주에서 다시 조망해보고 그 한계를 검토해보도록 하겠다. 동시에 기존 성장모델을 뛰어넘기 위해서 가장 유력한 대안체제로 제기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전략을 제안해볼 것이다.

 

2. 신자유주의 두 가지 성장모델

우리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전면적으로 수용되었지만 이미 1980년부터 미국과 영국에서 확립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자본 활동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책면에서 규제완화와 감세를 함으로써 자본으로 하여금 투자를 촉진하자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투자가 촉진되면 고용도 늘어날 것으로 보는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가 작동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론적인 신자유주의 논리였다. 이명박 정부의 성장논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확신했던 투자 촉진은 대체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신자유주의가 추진했던 금융 규제완화로 자본시장이 팽창하면서 투자자의 단기 수익추구 요구에 의해 기업 이윤이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배당 몫이 팽창하거나 주가관리 비용으로, 또는 실물이 아닌 금융 자산투자로 이윤의 상당부분이 돌려졌다. 결국 낙수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가 이처럼 자본의 이윤주도 성장(profit-led growth)을 추구했기 때문에, 설비 투자를 위한 이윤 몫 확대가 우선이었고 이를 위해 노동자의 임금은 줄여야 할 비용으로 간주되었다. 당연히 신자유주의는 임금 상승 억제를 추구했고 이를 위한 포괄적 정책이 ‘노동시장 유연화’였다. 따라서 임금인상 -> 소득증대 -> 총수요 확대 -> 설비투자 확대라고 하는 연쇄 효과는 처음부터 작동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규제완화, 감세, 임금인상 억제를 통해 최대한 자본의 이윤 몫을 확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로 연결되는 선순환을 만들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실제 신자유주의가 작동시킨 경제 발전모델, 성장 모델은 무엇이었을까.

신자유주의 시대에 현실에서는 두 개의 불균형 성장과정이 있었다. 하나는 신용주도 성장(credit-led growth), 금융주도 성장(finance-led growth), 또는 부채주도 성장(debt-let growth)이다. 이것은 임금상승 억제 ->소득 불평등 -> 국내적 수요 부족 ->외국자본 유입과 신용팽창 -> 부채에 의한 소비의 경로를 밟게 된다. 선진국에서는 영국과 미국이 대표적이고 유럽을 위기에 몰아넣은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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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4 / 10 김병권/ 새사연 부원장

2012년은 선거의 계절이다. 우리나라는 선거만 되면 의례히 ‘굵직한 개발공약’들이 줄줄이 발표되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다르다. 이미 지난해 보편 복지의 파고가 한국사회를 한차례 휩쓴데 이어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의 담론이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5년 전의 ‘성장과 경제 자유화’ 의제 대신에 지금은 ‘복지와 경제 민주화’ 의제가 선거 공약을 좌우하는 판이한 지각변동이 일어난 셈이다. 특히 극적으로 등장한 경제 민주화라는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 민주화는 재벌체제라고 하는 선출되지 않은 경제 권력에 대한 문제제기일까. 아니면 너무 심각해진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것인가. 도대체 지금까지 시장 경제는 얼마나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것인가.

사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자기조절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시장에서 각 개인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 저절로 모두의 이익이 달성되므로, 시장의 자율을 존중하고 국가나 제도가 섣불리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정치가 이른바 ‘정치논리’를 가지고 경제에 개입하면 시장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면서 관치 경제나 정경유착 사례 등을 지목하기도 한다.

이런 논리에 입각해서 보면 시장 경제의 논리구조에 민주주의를 끌어들이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시장은 그 자체로 가장 합리적인 지점을 찾아 움직이는 것인데 여기에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 가치를 들이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이 잘못되어 실패할 가능성은 아예 없어 보였다. 더구나 시장 경제를 논하면서 윤리 도덕적인 냄새가 짙은 정의나 공정, 공평을 말하는 것은 대단히 어색한 것처럼 간주될 수밖에 없다.

한 발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는 전통적인 경제영역뿐 아니라 의료, 교육, 주거 등 사회적 영역, 심지어는 정부 조직과 같은 영역에 이르기까지 시장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모든 사회운영원리를 시장 원리로 작동시키는 사회를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신자유주의를 ‘시장 지상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980년 미국과 영국을 필두로 지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왔던 이데올로기이자 현실에서 관철되어온 규칙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우리나라도 사회 구석구석까지 이러한 논리가 스며들었다.

그러나 세계를 풍미했던 ‘시장 지상주의’는 2008년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시장이 작동을 멈추고 붕괴해버렸기 때문이다. 단순한 금융시장 기능의 실패를 넘어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4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시스템은 복구되지 않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를 역임한 라구람 라잔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목도하면서 시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한탄했다. “도대체 규제기관과 감독 기관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시장 원칙은 어디에서 한눈을 팔고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자기 보존을 위한 민간 기업의 생존 본능은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자유 기업 정신에 의거한 제도가 총체적으로 망가졌단 말인가? 이번 위기가 어느 개도국에서 발생한 그저 그렇고 그런 위기였다면 위와 같은 질문은 절대 나올 수가 없다. 그리고 이번 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해볼 때 쉽게 답을 찾으려 하거나 아무 답이나 갖다 붙이려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시장은 스스로 완벽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조정하는 능력이 매번 있는 것도 아니며, 거대한 시장 실패가 발생했을 때 세계 경제와 인류에게 미치는 충격과 고통은 엄청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목도하게 되었다. 그 동안 알고 있었고 주류 경제학자들이 설교해왔던 시장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확신이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면 진짜 시장의 능력과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시장은 과연 정의롭고 공정한 결과를 가져오기는 하는 것인가. 아니라면 어떻게 시장의 실패를 방지해야 하고 교정해야 하는가.

이정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거의 화두가 되고 있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지를 편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관철되는 의사결정 방식은 1원 1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권리를 행사한다는 점에서 1인 1표의 원칙은 철저하게 평등주의에 입각한 원칙이다. 하지만 1원 1표의 원칙은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돈에 비례해서 더 많은 권리를 부여하는 한편, 돈 없는 사람들의 의사는 아예 묵살한다는 점에서 매우 불평등한 원칙이다.” “시장은 조직 구매력을 가진 선호만을 반영하는 까닭에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는 무시되기 일쑤이지만 부자들의 선호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존중된다.”(이정전, 『시장은 정의로운가』, 142쪽)

바로 시장경제의 1원 1표 원칙에 내재한 불평등성 때문에 정치 영역에서 1인 1표 민주주의는 시장이 초래한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정치에서 민주주의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시장이 만들어내는 불평등은 완화될 수 없고 점점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가 시장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신자유주의 논지와 달리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각각 어떤 적극적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묘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지는 사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비교적 잘 반영되어 있다. 우리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일종의 ‘자유 시장 존중’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항이다. 곧바로 이어서 2항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경제 민주화’ 조항이다.

그런데 외환위기 직후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시장경제라고 도입했던 신자유주의는 고용불안과 가계부채,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라고 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이명박 정부까지 계속되었다. 금융과 교육, 보건과 보육 등 더 많은 삶의 영역이 자유 시장에서 거래 되도록 작동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주적인 의사결정은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자유 시장은 민주주의와 함께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2012년, 우리는 시장의 자유가 아니라 경제의 민주화라는 국민적 요구 앞에 서게 되었다.

이정전 교수는 더 나아가서 우리사회가 시장원리 하나만으로 작동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영역에서 각자 알맞은 운영원리가 있음을 적시해주고 있다. 첫째는 가정과 이웃, 공동체에서 적용되는 필요의 원리다. “가정에서는 성과주의가 별로 지지받지 못하는 가운데 필요의 원칙이 지배적이다.” 엄마는 용돈을 나눠줄 때 아이들에게 필요한 만큼 나눠주지 성적이나 집안일에 기여하는 정도를 가지고 나눠주지 않는다. 둘째는 경제에서 적용되는 성과주의 원리다. “응답자의 80%이상이 직장에서의 소득은 일의 성과 및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보는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에서 적용되는 민주주의 원리 즉 평등의 원칙이다.

시장만이 지배하는 사회를 버리고 2012년 선거를 통해 우리는 어떤 사회를 염원해야 하는가. “경제 영역에서는 성과주의에 입각해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생산을 많이 하도록 하며, 정치 영역은 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분배를 고르게 하고, 사회화 영역에서는 필요의 원칙에 알맞게 나누어 쓴다면 우리 사회는 잘 조화된 사회가 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사회야 말로 정의로운 사회요, 일찍이 그리스 철인 플라톤이 꿈꾸던 이상 사회다.”(이정전, 『시장은 정의로운가』, 279쪽)

이 글은 4월 5일자 기획회의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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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4 / 08 새사연

새로운 성장전략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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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1. 부채와 수출주도 성장전략의 한계

2. 낙수효과는 왜 실패했는가.

3. 실질임금과 생산성 간극확대

4. 부자기업, 가난한 가계

[본 문]

편집자 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악화되자 한국사회에서는 전례 없는 보편 복지 요구가 확대되고 있고 경제 민주화의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양대 선거를 맞아 정권교체 요구가 거센 가운데 다양한 사회개혁 의제가 정책 공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정말 2013년 체제라고 불릴만한 사회 대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자면, 강력한 경제개혁 전망을 갖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새사연의 문제의식이다.

이에 새사연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시대적 가치와 비전, 새로운 경제모델과 성장모델, 총체적 경제개혁, 보편복지를 망라하는 정책을 모아 2012년 5월 중 단행본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출판될 원고 가운데 일부를 새사연 회원들과 미리 공유하고자 [새로운 사회 2013]이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1. 부채와 수출주도 성장전략의 한계

신자유주의는 노동에서 금융까지 모든 시장에서 규제를 완화하면 높은 경제성장과 복지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투자의 불확실성과 소득 양극화를 가져오고, 유효수요 부족으로 이어져서 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소비자들의 수요를 창출해내는 기본은 임금이다. 생산성은 증가하여 경제는 성장하지만 그만큼 실질임금이 상승하지 못한다면 공급에 비해 수요가 부족하게 된다. 수요의 부족은 성장률 정체, 양극화, 그리고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킨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부족한 수요를 대신해 줄 새로운 수요를 발굴했다. 첫 번째 방법은 부채를 통해서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금융규제 완화를 소리 높여 주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금융시장의 규제완화에 따라 새로운 금융상품이 만들어지고, 레버리지 증가가 자유로워지면서 더 많은 부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여기에 저금리, 자산시장 거품 형성, 낮은 저축률을 유도하였다. 덕분에 민간 총수요는 늘었지만, 가계부채는 커져만 갔다. 임금에 의한 소비가 불가능해지자, 부채를 통한 소비를 만들어낸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가계부채와 자산시장 거품을 통해서 중하위 계층의 실질소득은 높이지 않고 양극화를 유지하면서도 유효수요는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부채주도 성장전략 혹은 신용주도 성장전략이라 부른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과 영국이다.

두 번째 방법은 수출을 통해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독일과 일본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국가들은 수출을 통해 해외 수요를 확보함으로써 국내 총수요 부족의 한계를 극복하였다. 이를 수출주도 성장전략이라 부른다.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는 수출주도 성장국가의 경상수지 흑자로 나타났다. 이것이 금융위기 이전 심화된 글로벌 불균형의 본질이다. 신자유주의 성장 모형은 한쪽에서는 가계부채와 자산버블, 다른 한쪽에서는 수출증가로 총수요를 유지하는 불안한 공생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표1] 유형별 신자유주의 성장 모형

부채주도 성장전략

수출주도 성장전략

중심부

미국,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일본

주변부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중국

* 인용: Stockhammer(2011), Wage-led growth: An Introduction

그러면 한국경제는 어떠한가? 한국경제는 수출주도 성장전략과 부채주도 성장전략을 모두 활용하고 있다. 여전히 수출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 펼치고 있으며, 그 덕분에 위기 이후에도 빠른 회복을 보였다. 또한 자본시장 개방을 강화하면서 가계부채와 부동산 경기 부양으로 총수요 부족에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과도한 자본유출입, 폭발적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 거품이 일상적으로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으며 경제 여러 곳에서의 불균형 역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수요 증가 역시 기대에 못 미쳐서 내수경제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를 통해 가계부채과 자산가격 거품을 통한 유효수요 관리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해법이 아님을 여실히 깨달았다. 가계의 레버리지 상승과 낮은 저축률은 신규차입 여력과 부채상환 능력의 감소를 의미하고, 더 이상 부채를 감당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하면 버블은 붕괴되고 만다. 또한 선진국경제의 장기침체가 전망되는 속에서 선진국경제의 성장에 의존하는 수출 역시 지속가능하지 않다.

단기적으로는 가계 소득에 비해서 지나치게 상승한 부동산 가격이 정상 수준으로 하락하고, 가계부채가 줄어드는 과정이 닥쳐올 것이다. 이는 자산시장 붕괴로 이어져 가계의 재산은 감소할 것이며, 금융기관은 신용을 축소하고 부채상환 압력을 높일 것이다. 고용 악화에 따른 소비 축소도 이어지면서 내수 부족 충격에 빠질 수 있다. 여기에 선진국경제 장기침체에 따른 수출 위축까지 따를 것이다. 우리는 내수와 수출의 동시 위축이라는 총수요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경제체제로의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두 가지 과제가 만나는 지점에 놓여 있는 해결책이 바로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동반성장 전략이다. 다시 말해 소득주도 성장전략(Income-led Growth Strateg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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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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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3 / 27 새사연

90년대 한국경제는 어떻게 불평등을 줄였을까?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 차]

1. 한국경제도 자본주의 황금기가 있었다
2. 소득상승이 경제발전 동력이 되다
3. 불평등이 가장 낮았던 시절
4. 높은 저축과 안정된 부동산 시장
5. 잠깐 동안 존재했던 내수 기반 경제의 가능성

[본 문]

편집자 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악화되자 한국사회에서는 전례 없는 보편 복지 요구가 확대되고 있고 경제 민주화의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양대 선거를 맞아 정권교체 요구가 거센 가운데 다양한 사회개혁 의제가 정책 공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정말 2013년 체제라고 불릴만한 사회 대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자면, 강력한 경제개혁 전망을 갖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새사연의 문제의식이다.

이에 새사연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시대적 가치와 비전, 새로운 경제모델과 성장모델, 총체적 경제개혁, 보편복지를 망라하는 정책을 모아 2012년 5월 중 단행본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출판될 원고 가운데 일부를 새사연 회원들과 미리 공유하고자 [새로운 사회 2013]이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1. 한국경제도 자본주의 황금기가 있었다.

선거를 앞두고 심각한 소득 불평등이 문제라고 한다. 무너진 중산층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는 소리도 높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보편복지 정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경제적 불평등을 그대로 두고 복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천문학적인 재원이 문제다.

지금의 문제는 재벌 중심의 수출경제로부터 기대했던 적하효과가 소멸한 탓이라는 지적이 공감을 얻고 있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모든 정당들이 내수기반 경제를 회복해야 한다고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내수를 살리려면 민간소비가 회복되어야 한다. 민간소비는 국민들의 호주머니에 소득이 없으면 살아날 수 없다. 결국  소득 불평등과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부채가 문제다. 도대체 내수기반을 회복시킬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 없어 보인다. 

우리경제에서 ‘소득 상승을 동력으로 한 내수기반 경제’가 가능할까? 이론에 불과할 뿐 우리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역사적 경험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불과 15년 전까지만 해도 임금과 소득이 꾸준히 오르고, 불평등은 줄어들고, 소비와 투자는 활기차게 이뤄졌다. 정말이다. 한국경제도 그렇게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또 지금을 안타까워하며 한국경제의 지난 30년을 돌아보자.

1987년과 1997년은 한국경제를 돌아볼 때 꼭 짚어야 할 두 번의 큰 분기점이다. 먼저 1987년이 가져다 준 한국경제의 황금기를 살펴보고, 이후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한국경제가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살펴보자. 

1987년 한국경제는 3저 호황이라는 매우 유리한 대외 경제적 환경을 맞는다. 1985년 열린 선진국들의 플라자 합의 덕분이다. 또한 6월 민주화 항쟁이 일어나 민주화의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확산되었고, 뒤이은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조합 결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임금인상 요구도 높아졌다. 이처럼 내외적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요인들이 작용하면서 1987년에서 1996년 동안의 한국경제는 그 이전 시기와 확연히 다른 거시경제 지표를 기록한다. 물론 그 이후 시기와도 확연히 다르다. 이 시기는 한국경제의 전 역사를 통틀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모습이 나타났던 시기다. 한국 자본주의 경제사에 유일했던 황금기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987년 이후 10년 동안의 흐름이 이어졌다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한국경제의 굵직한 난제들은 상당부분 해결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당시 노동자의 임금과 소득은 가장 빠르게 증가했고, 노동소득 분배율이 개선되면서 소득 불평등 정도가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저축률을 자랑하면서 국민경제의 투자 잠재력을 키웠고,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은 큰 변동 없이 일정수준을 유지했다.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민간 구매력이 향상되고 내수기반은 탄탄해졌다. 이를 바탕으로 재벌 대기업은 자본과 기술을 축적하여 글로벌 기업으로 뻗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해보자. 

2. 소득상승이 경제발전 동력이 되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조합 결성이 폭발적으로 확대되었다. 1989년에는 노동조합 조직률 20%, 조합원수 200만 명으로 정점에 올랐다. 2011년 기준 10% 밑으로 내려간 노동조합 조직률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이다.

노동조합이 활성화되면서 유례없는 노사 분규와 임금인상 요구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연 평균 실질 경제성장률이 8.3%였을 정도로 상당히 높은 경제성장을 지속했다. 2001년에서 2010년까지 평균 경제 성장률은 4.2%였다. 이와 비교하면 당시에는 확실히 고성장 기조가 이어진 반면 2000년대에는 저성장 기조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고성장이 이어지면서 일자리는 매년 50만 개 가량 늘어났고, 고용률도 매우 가파르게 상승하였다([그림1] 참조). 1994년에서 1996년 동안에는 역사상 최고치인 고용률 61%에 근접했다. 최고의 일자리 창출 시기였다. 반면 외환위기 이후에는 고용률이 급격히 하락하여 60% 밑을 맴돌았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 추락했다. 아울러 이 시기는 노동유연화가 사회적으로 확대되기 전이어서 비정규직과 같은 고용불안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일자리가 늘어나니 당연히 노동자 임금과 가계 소득이 안정적인 상승세를 이어갔다. 한국은행이 집계하고 있는 명목상 피용자보수가 당시에 매년 15~25%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 점이 이를 입증해준다([그림2]참조).

임금상승에 따라 기업의 생산원가나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비중도 높은 수준을 기록하게 된다. 당시 전 산업 기준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12~14%까지 달했다. 반면 2000년대에는 10% 전후로 하락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업들이 인건비 부담으로 적자행진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경제 성장의 과실이 충분했으며, 이를 노동자와 기업이 어느 정도 나눠 갖는 양상이었다.

요약하자면 1987년 이후 10년은 ‘노동조합운동 활성화 → 취업자 수 증가 → 고용률 증가 → 임금 상승’이라는 선순환의 연쇄적 상승작용이 바람직하게 작동했던 시기다. 특히 이 시기의 경험은 당시의 노동운동 활성화와 노동 민주화가 경제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수 기반을 강화시키면서 경제의 선순환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이다. 반면 2000년대는 ‘노동조합운동 약화 → 취업자 수 증가세 약화 → 고용률 하락 → 실질임금 정체’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매우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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