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07정태인/새사연 원장

 

착한 경제학에 어울리는 정치체제는 어떤 모습일까? 앞으로 차분하게 쓸 기회가 있겠지만 답부터 말하자면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이다. 착한 경제학의 핵심은 ‘신뢰와 협동’인데 최근 대부분의 연구들은 신뢰와 시민참여, 사회적 자본의 상관관계를 강조한다. 스웨덴의 로스슈타인은 정부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보편적 복지국가의 성패를 결정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런 기준에 비춰서 최근 초미의 관심사인 단일화부터 들여다보자.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쪽은 현재의 단일화 움직임이 세계에 유례가 없는 비정상이요, 야합이며 설령 단일후보가 선거에 이긴다 해도 과거의 DJP연합처럼 배반의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선 단일화, 더 일반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정치연합’은 비정상이 아니라 일상적인 현상이다. 다만 내각제에서처럼 선거 후에 득표 결과에 따라 몇몇 정당이 연합해서 내각을 구성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통령제에서는 ‘선거 전 연합’(pre-electoral coalition), 즉 후보 단일화라는 특징을 가질 뿐이다. 이들은 선진국 중 대통령제를 하는 나라는 미국, 한국, 프랑스, 러시아인데 그 중 한국만 단일화를 하니 이런 비정상이 어디 있냐고 주장한다.
 
한 사람이 대통령과 총리를 번갈아 하는 러시아를 정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으니 일단 제외하고, 프랑스는 이원집정제 하의 결선투표제를 택한 나라다. 우리나라도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굳이 선거 전에 단일화라는 정치연합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이제 남은 나라는 미국과 한국 두 나라뿐인데, 미국은 정상이고 한국은 비정상이라는 건 사대주의가 아니라면 말이 되지 않는다. 2010년 포츠담대학의 프로이덴라이히는 대통령제 하에서도 절반 정도 이상이 정치연합을 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대부분의 대통령제 하에서 연합은 예외가 아니라 규범이다”.
 
선거 전 단일화의 장점도 있다. 내각제 하의 연합은 선거 결과에 따라 이합집산이 이뤄지지만 선거 전 연합은 그 대상이 뚜렷하기에 정책기조와 내각을 미리 제시할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해서 선거 때의 공약을 뒤집어 정반대로 나라를 끌고 갈 수도 있는 나라라면 이런 정치연합은 국민들에게 조금 더 확실한 미래를 보장한다.
 
현재 논의되는 단일화는 DJP연합과 확연히 구별된다. 1997년 DJP연합은 정치학 개념으로 말한다면 ‘최소규모연합’(윌리엄 라이커)이다. 즉 승리를 따내기 위해 최소한의 자리를 보장하는 단일화였다. 하여 임동원 장관 해임 사건이라는 정책기조 상의 문제로 쉽게 깨질 수밖에 없었다. 승리에 연연해서 이념과 정책을 저버린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했던 것이다. 반면 이번의 정치연합은 정책을 중심으로 한 ‘최소연결승리연합’(로버트 악셀로드)을 노리고 있다. 즉 자리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연합을 하는 것이다. 즉 승리를 위한 정책연합, 우리 용어로 ‘가치연합’인데,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정치행위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로 수렴하는 경향을 갖는데(‘뒤베르제의 법칙’) 그것이 다양한 정책과 이념(예컨대 직접민주주의나 녹색정치)을 가로막는 역할을 한다면, 심지어 거대 양당의 나태와 오만을 조장한다면 다당제 하에서 정치연합으로 대통령을 뽑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물론 현재 문재인 후보가 약속한 것처럼 비례대표가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나아가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한다면 훨씬 순조롭게 정치연합이 이뤄질 것이고, 안철수 후보가 바라 마지않는 ‘타협의 정치’도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단일화가 아니라, 진보진영까지 참여하는 ‘따로 또 같이’이다. 각 정당과 정파가 새로운 시대에 절실한 정책과 실천방안을 제시하여 합의 목록을 만들고, 그 정책을 수행할 내각 풀을 제시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시민정부’를 세울 수 있고 한국 최초의 ‘성공한 대통령’도 가능해진다. 앞으로 다가올 장기침체기에 제대로 된 개혁이라면 지배 삼각동맹의 목숨을 건 저항에 직면할 텐데, 시민들이 ‘우리의 정부’를 지켜줄 때만 그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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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3정태인/새사연 연구원

 

SEQ!!! 이번 호를 쓰면서 나는 ‘꿈꾸는 그대’로 우리나라 사회적 경제의 활동가들, 그 중에서도 박원순 서울시장을 떠올렸다. 8월 초 나는 캐나다 퀘벡 지역에 다녀 왔다. 퀘벡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협동조합이 가장 발전한 곳으로 알려진 지역이다. 예컨대 1900년에 시작된 데자르댕 신협그룹은 현재 퀘벡지역뿐 아니라 캐나다 전체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금융기관인데 설립의 역사나 현재의 사업방식으로 보아 전형적인 협동조합 은행에 속한다.
 
이번 학습여행의 말미에 내 머리를 친 아이디어는 SEQ였다. 서울~에밀리아로마냐~퀘벡을 연결하는 세 대륙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를 만들면 어떨까? 내 생각에 퀘벡은 불모지 한국의 사회적 경제 운동에 환하게 머리를 밝히는 영감을 줄 것 같다. 따라서 이번 호의 얘기는 그저 즐거운 상상이라 해도 좋다.


 
우선 세 지역을 비교해보자. 표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넓이와 인구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넓이에서 퀘벡주는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의 7배가 넘고, 서울의 거의 300배(경기도에 비해서도 15배 정도)에 이르는 반면 인구는 서울이 제일 많다. 1인당 GDP는 에밀리아로마냐와 퀘벡이 엇비슷하고, 서울은 이 둘의 약 70% 수준이다. 소득수준을 제외하곤 이들 지역을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 왜 퀘벡인가? 재작년 에밀리아로마냐를 둘러보고, 또 관련 논문을 읽으면서 나는 절망에 빠졌다. 이미 이 지면에서 몇 번 말했듯이 에밀리아로마냐는 영세 중소기업들과 협동조합으로 이뤄진 경제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의 힘은 신뢰와 협동에서 나온다. 문제는 어떻게 이런 ‘신통방통한’ 일이 가능해졌는지 물을 때마다 내가 들은 답이었다. “우리는 원래 그래”, “우리 문화야”. 한마디로 복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퀘벡에도 이런 문화의 뿌리가 상당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퀘벡에 분 사회연대경제의 열풍이다. 님탄(Nancy Neamtan)이라는 걸출한 여성운동가를 비롯한 시민운동 그룹은 퀘벡지역의 여성운동, 문화운동, 환경운동 등 각종 시민운동과 기존의 ‘공동체경제발전운동’(CED)을 연결해냈다. 주정부는 이들과 협정을 맺어 지역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했는데, 그 수단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다. 즉 시민운동과의 결합이 이 지역 사회적 경제 발전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런 새로운 실험에 드는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물론 주정부가(그리고 2002년에서 2006년까지는 연방정부도) 이 실험에 적극 참여했기에 정부 재정이 투입되었지만 훨씬 더 많은 부분은 각종 기금에서 나온다. 이 지역의 기금은 개발기금, 연대기금, 정부기금으로 나뉘는데 이 세 기금은 목적을 약간씩 달리하면서도 모두 사회적 경제를 지원한다. 스스로 돈을 모으고 스스로의 투자 결정에 의해서 사회적 경제에 돈을 대는 기금은 우리에게 그 얼마나 절실한가.
 
퀘벡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지역 노동운동의 역할이다. 님탄은 2010년 ‘인간중심 경제에 관한 캐나다 전국회의’에서 “노동조합과의 통합은 사회연대경제 성공의 열쇠”라고 단언했다. 노동조합은 1980년대 초에 노동자연대기금을 만들었는데 이 기금은 지금도 3대 개발기금 중 하나이다. 노동자 스스로의 노후 복지를 위해 연금을 만들어 이 기금의 60%를 일자리 창출과 보전에 쓰도록 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가야 할 지도는 대충 이런 모습이 아닐까? 퀘벡을 거쳐 에밀리아로마냐로 가는 여정. 우리의 사회적 경제, 나아가서 민주적 경제를 이룰 퍼즐 조각을 하나씩 찾아서 맞추는 여행을 다 함께 떠나자. SEQ라는 지도를 따라….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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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28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3)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협동조합의 7가지 원칙

협동조합은 사회경제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협동조합은 노박의 <협동 진화의 5가지 규칙> 중 혈연선택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 규칙인 직접 상호성, 간접 상호성, 네트워크 상호성, 집단선택을 모두 만족한다. 스페인의 몬드라곤이나 이탈리아의 볼로냐 등과 같이 특정 지역에서 특히 협동조합이 발달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혈연선택도 일정 정도 부합한다고 볼 수 있겠다.

협동조합은 7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 역사 속에서 많은 협동조합이 등장했다 사라지면서 운영 원칙들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졌다. 이를 19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 100주년 총회에서 정리하여 선언한 것이 다음과 같다.

첫째, 조합원의 참여는 자발적이고 개방적이다. 협동조합은 자발적인 조직이다. 협동조합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조합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의지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적, 사회적, 인종적, 정치적, 종교적 차별 없이 열려 있다. 개방성에 의해 시장실패에서 나타나는 정보비대칭성을 극복함으로써 간접 상호성이 보장될 수 있으며, 외부에 배타적이지 않은 네트워크가 될 수 있다.

둘째,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조합원들은 정책 수립과 의사 결정에 참여하면, 선출된 임원들은 조합원에게 책임을 갖고 봉사해야 한다. 조합원은 1인 1표의 동등한 투표권을 가진다. 이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내가 협동한다 해도 남이 배신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줄여준다. 협동하지 않는 이에 대한 응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셋째, 경제적으로 공동 소유하고 공동 이용한다. 인류 최초의 협동조합은 식량을 공유하는 원시부족이었을 것이다. 위험을 공유하는 보험 역시 협동조합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원 또는 자본의 소유와 이용에 있어서 개인이 아닌 집단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조합원은 협동조합에 필요한 자본을 조성하는데 공정하게 참여하며 조성된 자본을 민주적으로 통제한다. 일반적으로 자본금의 일부분은 조합의 공동재산이다. 출자 배당이 있는 경우에 조합원은 출자액에 따라 제한된 배당금을 받는다.

넷째,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협동조합이 정부나 시장 등 다른 조직과 약정을 맺거나 외부에서 자본을 조달하고자 할 때는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가 보장되고, 협동조합의 자율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정부의 규제나 지원은 협동을 촉진할 수도 있지만 제도에 의존할 경우 오히려 구성원의 자발적 선의는 줄어드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다섯째, 교육과 훈련 및 정보를 제공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 선출된 임원, 경영자, 직원들이 협동조합의 발전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도록 교육과 훈련을 제공한다. 협동조합은 일반 대중, 특히 젊은 세대와 여론지도층에게 협동의 본질과 장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는 공유 가치를 확산하여 집단 정체성을 높이고 간접 상호성을 제고하는 효과가 있다. 교육을 통해 기술적 수준을 높여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효과도 있다. 또한 협동은 때때로 내적 생산성 향상 수단인 경쟁과 대립되는데, 이를 보완하는 효과도 있다.

여섯째, 협동조합은 서로 협동한다. 협동조합은 지방, 전국, 지역 및 국제적으로 함께 협력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협동조합운동의 힘을 강화시키고 조합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봉사한다. 이는 네트워크를 확대함으로써 신뢰를 형성하는 네트워크의 외부성을 증가시킨다.

일곱째,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동의를 얻은 정책을 통해 조합이 속한 지역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이는 간접 상호성과 네트워크 상호성을 촉진시키며, 사회경제 생태계를 형성하고 발전시킨다. 사회경제 생태계가 발전할수록 협동조합의 사회적 위치는 커지게 된다.

이렇듯 협동조합의 원칙이란 협동이라는 인류의 오랜 지혜가 체화된 것이며, 앞서 살펴보았던 협동 진화의 규칙들을 사회적 규범으로 만든 것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John Stuart Mill), 자본론을 쓴 마르크스(Kar Marx), 심지어 주류경제학의 핵심인 한계혁명의 창시자 왈라스(Leon Walras)까지 역사 속의 많은 지식인들이 협동조합을 예찬했다. 그만큼 협동조합은 민주적일 뿐 아니라 잘 운영될 경우 효율성마저 높을 수 있다. 특히 시장경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딜레마의 경우 사회경제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협동조합이 대세가 되지 못한 이유

그런데 왜 현실에서 협동조합은 희귀한 것일까? 기본적으로 협동조합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온통 시장경제이다. 협동조합은 시장경제의 바다에 홀로 떠있는 사회경제의 섬인 셈이다. 이런 조건은 분명 불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현재 협동조합의 한계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렇다면 협동조합의 내부적 노력과 정부의 정책을 통해서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를 찾아야 한다.

일반적인 자본주의 기업이 투자자관리기업(KMF, Kapital Managed Firm)이라면 협동조합은 노동자관리기업(LMF, Labor-Managed Firm)이다. 둘의 차이는 투자자가 기업을 소유하는가 아니면 노동자가 기업을 소유하는가에 달려 있다. 바꿔 표현하자면 투자자가 노동을 고용하느냐, 노동자가 투자를 고용하느냐의 차이가 있다. 현실에서는 투자자관리기업이 월등히 많지만, 경제학적으로 둘 중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미국의 경제학자 다우(Dow)는 “경제학은 자본주의 기업의 우위에 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경제학자 사무엘슨(Samuelson) 역시 완전경쟁시장 모델에서 자본이 노동을 고용하느냐 아니면 노동이 자본을 고용하느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자본과 노동은 특성면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 첫째 물리적 자산의 소유권은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인간에 대한 소유권은 쉽게 이전될 수 없다. 즉, 자본은 쉽게 이동하고 양도될 수 있지만 노동은 그렇지 못하다. 둘째 노동은 저마다 상당한 이질성을 보이지만 물리적 자산이나 금융 자산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 따라서 자본은 화폐의 양으로 환원이 가능하지만 노동은 사람의 속성이어서 하나의 양으로 환원할 수 없다.

이런 근본적 차이점 때문에, 우선 협동조합은 자본조달에 있어서 불리하다. 자본주의 기업은 주식시장을 통해 유한책임의 소유권을 자유롭게 이전할 수 있기 때문에 대규모 자본을 동원할 수 있다. 반면 협동조합은 조합비로만 자본을 동원할 수 있으며 자본의 사회적 성격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자산이 개인에게 반환되거나 상속되지 못하는 불가분의 자산(Indivisible reserve)이라는 한계를 가지며, 소유권의 이전은 조합원 구성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

또한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기업에 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기가 힘들다. 매우 평범하고도 일반적인 이유 때문인데, 금융기관이 협동조합의 구조에 익숙하지 않아서 적절한 신용평가를 내릴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금융기관은 통제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비민주적인 자본주의 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 기업처럼 주식을 발행한다면 어떨까? 협동조합의 경우 주식을 구입한다는 것은 조합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쉽게 매매가 일어날 수 없다. 한 편 조합원의 자격을 매매한다는 점에서 과도한 주식 발행은 협동조합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기존 조합원을 상대로 신주를 발행한다면 어떨까? 이 경우 1인 1표의 민주적 결정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무의결권 우선주를 발행하게 된다. 이를 구매하는 투자자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프리미엄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운영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자본주의 기업에서의 1주 1표에 의한 의사결정은 최대 주주에 의해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지만 협동조합의 1인 1표에 의한 의사결정은 구성원 간의 갈등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 노동자의 구성이 이질적이고 규모가 클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수결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면 평균적 노동자들이 높은 생산성을 가진 노동자의 임금을 깎으려 할 것이므로 숙련 노동자의 경우 노동조합을 기피할 것이다.

이 외에도 조합원 1인당 순수입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공급대응에 비탄력적이어서 수익성이 좋을 때 고용을 줄이거나 비조합원을 고용하여 투자자관리기업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한 은퇴에 가까운 조합원일수록 미래의 투자수익을 누릴 수 없으므로 현재의 투자에 반대하면서 투자는 줄고, 새로운 조합원을 받지 않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단점을 장점으로

협동조합의 불리함을 주장한 위의 주장들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현재 사회에서 지배적인 기업이 투자자관리기업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기업이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모든 제도가 이에 맞춰 구성되므로 협동조합이 점점 더 불리해지는 경로의존성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이런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자본 동원의 경우 협동조합은 신규 가입자가 상당한 액수의 입회비를 내고 불가분의 자산을 일정한 규모로 축적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왔다.

둘째는 한편으로는 단점이었던 것이 다른 편으로는 장점으로 작용함으로써 주장이 기각되는 경우이다. 예컨대 조합의 자금이 가진 불가분의 자산이라는 특징은 경기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에는 어렵지만 안정적 축적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경기 변동기에 일반 기업은 주로 임금을 조정함으로써 대응하지만, 협동조합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 실제로 경제학자 펜카벨(Pencabel)이 2004년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탈리아 협동조합은 일반 기업에 비해 평균 임금은 14% 낮았지만, 고용이 안정되어 있어서 경기가 악화되어도 조합원의 77.6%가 해고의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불가분의 자산이 경기변동에 대해서 일종의 자동안정장치의 역할을 해주면서 노동자에게는 보험을 제공해주는 셈이다.

또한  협동조합의 민주주의로부터 비롯되는 동료 간의 상호감시가 주주 감시보다 더 효율적이며, 노동자 간에 상대적으로 높은 합의와 신뢰가 존재한다면 생산성은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로 현실에서 협동조합은 적은 감시자와 이윤공유로 높은 생산성을 누리는 경우가 많다.

다우는 이러한 노동자관리기업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이것이 성공할 조건을 제시하였는데 대체로 자본의 규모가 적고, 자산의 특수성이 적으며, 동질적 노동자가 팀워크와 정보공유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의 양도 불가능성에 비롯되는 문제들은 남아 있다. 대규모 자본의 동원과 신속한 의사결정, 그리고 고급 노동력 유치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은 하나의 노동자관리기업, 하나의 협동조합이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이제부터 살펴볼 협동조합의 네트워크화와 새로운 형태의 협동조합 출현이다.

 

발전하는 협동조합

최근 연구에 의하면 협동조합 성공의 필수 요건으로 네트워크의 존재가 제기된다. 그림에서와 같이 협동조합 생태계는 저밀도 균형(A)과 고밀도 균형(B)의 복수균형을 가질 수 있는데 네트워크는 외부성을 내부화함으로써 고밀도균형을 가져오는 필수 요건이라는 것이다. 즉, 초기에 협동조합이 생겨나면서 일정 수준에 이르면 저밀도 균형(A)에 이르게 되고 계속해서  밀도가 높아지면 수익성 곡선이 S자 형태가 되면서 체증한다. 이후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각각의 협동조합을 연결하여 지원해주면 수익성 곡선 자체가 위로 이동하는 것이다. 당연히 수익성은 더욱 증가한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협동조합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스페인의 몬드라곤과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에서도 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네트워크가 형성돼 지원기관, 특히 교육과 사업 서비스 분야의 지원기관이 생기면서 수익성이 크게 증가할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설명은 모든 성공한 클러스터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협동조합이 네트워크를 더욱 필요로 할 것이라는 점 또한 사실이다. 네트워크는 자본동원이나 대출의 어려움 등 협동조합의 취약점을 극복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개별 협동조합 능력의 한계를 넘는 돌파혁신(break-through innovation)도 가능해진다. 무엇보다도 협동조합 네트워크 내에 가치의 공유에 따른 신뢰가 쌓이고 조합원으로서의 만족도가 증가한다면 고급 노동력의 충원도 가능하다. 네트워크는 노동자관리기업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대부분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앞서 협동조합의 7가지 원칙 중 협동조합 간의 협조를 강조하고 교육과 훈련을 원칙으로 삼은 것도 네트워크 효과를 증폭시키기 위한 것이다.

한편 전통적 협동조합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협동조합 유형이 나타나고 있다. 신세대협동조합(NGC, New Generation Co-ops)조합원은 조합원이 출자지분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본조달의 문제와 안정적인 경영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했다. 또한 출자 규모에 따라 조합원이 이용할 수 있는 조합의 권리에 차이를 두었다. 후원자투자협동조합(PIC, Patron Investment Co-ops)은 후원자와 투자자가 출자를 하되 그 외의 사람들도 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전통적 협동조합이 조합원의 출자로 이루어지며, 모든 조합원이 동등한 권리를 누렸던 것에서 조금씩 변형된 모습이다.

협동조합에 공동체와 공공부문이 더 많이 결합할 수 있도록 지역공동체의 발전 전략의 하나로 만들어가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캐나다의 공동체경제발전운동(CED, Community Economic Development Movement)으로 협동조합 뿐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조직들이 연합하여 지역공동체를 움직이는 방식이다. 초기에는 협동조합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지역의 공동체가 발전하면서 다양한 비영리기구와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생겨났다. 캐나다의 퀘벡 지역의 사회경제위원회에는 정부까지 포함되어 있다. 한국처럼 사회경제의 형성이 미흡한 곳에서는 공동체나 공공부문과의 결합이 중요하다. 특히 공공보조금을 받으면서도 사적 기관에 의해 운영되어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의료, 보육, 교육 등의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사회경제와 공공경제의 보완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컨대 건강보험공단이 인두당 수가제를 도입하여 지역 의료 생협의 수입을 보조하는 식이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4)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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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20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1)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누루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회적 자본이란 무엇인가?

앞서 사회적 딜레마의 해결을 위해서는 서로 협력해야 하며,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서로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여기서는 신뢰를 촉진하는 사회적 자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인도 출신 경제학자이며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파샤 다스굽타(Partha Dasgupta)의 논문 <신뢰 : 사회적 자본과 경제발전(A Matter of Trust : Social Capital and Economic Development)>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다스굽타는 사회적 자본 분야의 대표적 경제학자이며 경제학의 지평을 확장하는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경제학 연구의 본질은 자본주의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특정 사회적 조건에서 인간 행동에 관한 광범위한 분석에 맞닿아 있다.”는 그의 말은 이러한 견해를 잘 보여준다. 최근에는 환경자산을 포함하는 '포괄적 부(inclusive wealth)'라는 개념을 만들어 지속가능한 경제에 관한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우선 무엇을 사회적 자본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정의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사회적 자본에 해당하는 것들은 매우 많고, 다양하며, 대체로 무형의 것이다. 그만큼 그에 대한 정의도 학자마다 다양하다.

합리적 선택이론을 추구했던 미국의 사회학자 콜만(Coleman)은 1988년 연구에서 사회적 자본을 “거래비용의 감소와 효용의 극대화를 이루도록 하는 사회적 관계나 사회적 구조, 즉 생산적인 사회적 관계망” 으로 보았다. 이는 최소비용으로 최대효용을 거두는 합리적 선택에 초점을 맞춘 정의이다.

이후 1993년 미국의 정치학자 퍼트넘(Robert Putnam)은 사회적 자본을 “행위의 조정을 촉진하여 사회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 조직의 속성” 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라는 각각 다른 개념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너무 포괄적인 설명이라는 단점이 있다.

2002년 미국의 경제학자인 보울스와 진티스(Bowles and Gintis)는 “사회적 자본은 일반적으로 신뢰, 소속단체에 대한 관심, 공동체의 규범에 따라 살려고 하는 의지, 규범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 대한 응징을 말한다.” 고 정의했다. 이는 사회조직 뿐 아니라 구성원의 태도까지 포괄한 설명이다.

다스굽타의 경우 더 원초적인 개념인 신뢰에 초점을 맞추고 사회적 자본을 정의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자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더 근원으로 내려가서 서로 협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문제가 무엇인지에서부터 출발했다. 다른 이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기본적인 문제는 결국 신뢰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조건은 무엇인지를 질문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을 사회적 자본이라 명명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다스굽타에 의하면 사회적 자본은 “합의된 상호강제 구조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 라고 정의된다. 즉,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상호작용이 신뢰를 촉진시킨다면 그것은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은 신뢰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건물이나 토지가 버려져 있는 경우처럼 네트워크도 작동하지 않은 채 버려져 있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을 수도 있다. 좋은 네트워크도 있고 나쁜 네트워크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사회적 자본도 있고, 나쁜 사회적 자본도 존재한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든 관개시설이나 상호보험, 상호저축대부조합 등은 좋은 네트워크이다. 반면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나 마피아의 경우는 나쁜 네트워크이다.

 

신뢰를 촉진하는 4가지 조건들

그렇다면 어떤 조건이 만족되어야 신뢰를 촉진하는 좋은 사회적 자본이 만들어질까? 앞에서도 많이 살펴보았지만, 다스굽타의 견해를 한 번 더 정리해보자. 신뢰란 매우 광범위한 개념이다. 개인 간의 약속을 의미하기도 하고, 공동체의 관습적 규범을 함축하기도 하는 개인적 문제에서 정치적 문제에까지 관련된다.

다스굽타는 신뢰란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의 어딘가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이 상호성을 서로 주고받는 가운데 신뢰가 생겨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구체적으로 신뢰가 형성되는 두 가지 단계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첫째, 서로 상대방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둘째, 상대방이 약속을 지킬 경우 나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그 자체로 자기강제적(self-enforcing)이며, 내쉬균형을 이룬다. 나도 약속을 지키는 게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이 명확하므로 다른 선택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두 번째 조건이 만족되어야 첫 번째 조건이 형성될 수 있으며, 반대로 첫 번째 조건이 만족되어야 두 번째 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 즉, 두 조건은 서로 맞물려 있으며, 둘 다 만족될 때 신뢰는 형성될 수 있다. 이를 신뢰의 두 가지 조건이라고 하자.

다스굽타는 신뢰의 두 가지 조건을 형성하는 요인으로 다음의 4가지를 꼽는다. 상호애정(mutual affection), 친사회적 태도(pro social disposition), 외적강제(external enforcement), 상호강제(mutual enforcement)이다. 이 중에서도 상호강제를 사회적 자본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상호애정과 친사회적 태도, 외적강제

첫 번째 요인은 상호애정이다. 가족이나 친구 등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이에서는 서로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다. 단순히 감정적 유대감에 의해서일 수도 있고 나와 친근한 사람이 잘 되는 것이 곧 나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를 경제학적으로는 상호의존적인 효용함수를 가졌다고 표현할 수 있다. 자신의 효용 뿐 아니라 상대방의 효용이 나에게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이를 다른 말로 사회적 선호를 가졌다고도 표현한다. 또한 관계가 매우 긴밀하기 때문에 서로 약속을 지키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손쉽게 감시할 수 있다는 점도 신뢰를 강화시킨다. 즉, 도덕적 해이나 역선택이 덜 일어난다. 하지만 구성원의 숫자가 늘어나면 상호애정이라는 요인이 가지는 설득력은 떨어진다. 이는 마치 우리가 앞서 살펴본 노박의 협력을 유도하는 다섯 가지 규칙 중 혈연선택과 같은 맥락이다.

두 번째 요인은 친사회적 태도인데, 이는 다른 사람과 협동하려고 하는 상호적 태도를 뜻한다. 자신이 맡은 의무를 다하는 것, 대가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 남을 돕거나 은혜를 갚는 것,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 등이 상호적 태도이다. 사람들이 상호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면 서로 신뢰할 수 있다.

상호성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는데,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다. 유전적 요인이란 인류의 오랜 역사를 통해서 상호성이 생존본능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것인데, 진화심리학에서 주로 제기되는 주장이다. 자연선택의 압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상호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환경적 요인이라 어린 시절의 교육이나 생활방식을 통해서 보상과 응징의 과정을 거치며 상호적 태도를 습득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둘 중 어느 하나가 꼭 옳다고 따질 필요는 없다. 두 가지 입장은 상호배타적이지 않다.

어떤 요인 때문이던지 사람들은 상호성에 기반을 둔 사회 규범을 내면화함으로써 이를 따르려고 한다. 규범을 어겼을 때는 부끄러워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이는 규범을 어기는 것을 예방한다. 우리가 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꼭 처벌 받기 싫어서만은 아니다. 최근 행동경제학에서도 친사회적 태도 또는 상호성이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의 심성, 태도, 본성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제기되는 세 번째 요인이 외적강제이다. 약속을 지키고, 협동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제도, 기구, 기반시설이 있다면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외적강제를 통해 약속은 권력이나 권위에 의해 보장받는 명확하고 강제력 있는 계약으로 확고해진다. 실제 다양한 사회에서는 이런 식의 외적강제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다양한 외적강제의 방식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면, 약속을 파기했다는 것이 확실히 증명될 때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에게 응징을 한다는 것이다.

외적강제의 하나로 국가를 상상해보자. 흔히 국가와 배치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자유로운 시장에서의 거래도 법적 구조에 의해 보호받기 때문에 가능하다. 법은 국가의 강제력에 의해 보장된다. 결국 시장에서의 거래는 국가라는 외적강제에 의해 보호받는 합법적 계약이다.

그렇다면 외적강제 그 자체는 신뢰해도 괜찮은가? 국가를 믿을 수 있는가? 국가는 사람에 의해 조정된다. 여기서 대리인 딜레마(Agency dilemma)라고도 하는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le-Agency problem)가 발생할 수 있다. 개인 또는 집단이 의사 결정 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때, 주인과 대리인 사이에 정보의 불균형, 감시의 불완전성이 존재하면서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 뿐 아니라 모든 외적강제가 대리인 딜레마에 해당한다. 협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외적강제 수단에 맡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적강제에만 의존해서 신뢰를 형성할 수는 없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언론과 공정한 선거 제도 등을 통해서 대리인이 국가가 잘못된 결정을 할 경우 국민들이 다음 선거에 이들을 퇴출시킬 수도 있다. 이탈리아 사회를 연구한 퍼트넘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활동에 참여할수록 국가 관료들은 더 정직하고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을 보였다. 이는 외적강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상호강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적 자본의 핵심은 상호강제

네 번째 요인은 상호강제이다. 다스굽타는 앞의 세 번째 요인들이 각각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상호애정은 그 범위가 협소하고, 친사회적 태도는 사람의 심성에만 의지한다는 점에서 불완전하고, 외적강제는 그 자체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때문에 이런 세 가지 요인에 앞서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요인이 상호강제이다.

상호강제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정한 규칙에 따라 응징을 가하는 것이다. 집단 구성원에 의한 믿을만한 응징 위협은 약속을 어기는 것을 막아준다. 단 이 때의 응징이 충분히 가혹하고 위협은 믿을만해야 한다. 결국 상호강제란 사회적 규범에 따르는 행동에 의해 신뢰를 형성하는 방안이다.

상호강제는 장기적 관계일수록,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협동 관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을수록 잘 작동한다. 각각의 경우를 직관적으로 생각해보자. 만약 관계가 일회적이라면 응징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어진다. 장기로 갈수록 평판과 응징이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 미래가 안정적이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지금 당장 배반하여 얻을 수 있는 현재의 이익 대신 협동하여 얻을 수 있는 미래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협동 관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하나의 관계가 끊어지면 다른 관계도 끊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배반할 유인을 줄일 수 있다.

이를 다스굽타가 소개한 예를 들어 다시 확인해보자. A와 B가 있다. A는 자본금 4000원을 가지고 있으며 상품을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유통구조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 반면 B는 생산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자본금도 유통구조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B가 가진 생산기술의 가치를 2000원이라고 하자. 즉, A와 B는 각각 4000원 어치와 2000원 어치의 부를 갖고 있다.

이제 A와 B가 협동할 경우를 생각해보자. A가 4000원을 B에게 빌려주자 B는 그것을 통해 8000원 어치의 상품을 만들고, A는 그것을 시장에 판매하였다. 협동하기 전에는 A와 B의 부를 모두 합쳐도 6000원에 불과했는데 협동을 함으로써 8000원이 되었다. 총 2000원의 이윤이 발생한 것이다. 이를 각각 1000원씩 나눠가진다고 하자. 즉, A와 B는 협동을 통해서 매번 1000원의 이익을 더 얻게 된 것이다. 대신 미래의 거래에 대해서는 할인율을 계산해주어야 한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A와 B가 거래를 계속하여 얻게 되는 이익은 다음과 같다. r은 미래에 대한 할인율이다.

1000 + 1000/(1+r) + 1000/(1+r)2 + 1000/(1+r)3 + .... = 1000(1+r)/r

A는 협동하여 얻게 되는 이익 1000(1+r)/r원이 4000원보다 크면 계속 협동할 것이다. 이 때 r은 약 0.33 이하여야 한다. r이 작을수록 A가 동할 유인은 커진다. 반대로 r이 0.33보다 커지면 A는 배반할 유인이 커진다.

이번에는 A와 B의 거래 외에 A와 C의 거래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자. 앞의 경우와 비슷하다. C는 1000원어치의 생산기술을 가지고 있고, A가 3000원을 빌려주면 6000원어치의 상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즉, 협동하기 전의 A와 C는 각각 3000원과 1000원의 부를 갖고 있었는데, 협동을 하면 6000원으로 늘어나서 2000원의 이윤을 얻는 것이다. 역시 2000원의 이윤을 각각 1000원씩 나눠가지기로 했으므로 앞서와 같이 1000(1+r)/r원이 장기적으로 협동할 경우 얻는 이익이 된다.

이 거래에서 A는 1000(1+r)/r원이 3000원보다 크면 계속 협동할 것이다. 따라서 이 때 r은 0.5 이하여야 한다. r이 0.5보다 커지면 A는 배반할 유인이 커진다. 만약 A와 B의 거래, A와 C의 거래가 따로 존재하고, A의 미래할인율 r이 0.4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A는 C와의 거래는 지속하지만 B와의 거래는 배반할 것이다.

하지만  A와 B의 거래, A와 C의 거래가 모두 연결되어 있어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 경우라고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A가 대기업이고 B와 C는 부품을 만들어 제공하는 중소기업인데, 하나의 상품을 만들 때 두 개의 부품이 모두 필요한 경우이다. 이 경우 A가 누구와도 협동하지 않는다면 원래 자본금 7000원만을 갖게 된다. 하지만 A가 B와 C 모두와 협동할 때 얻게 되는 이익은 다음과 같다.

2000 + 2000/(1+r) + 2000/(1+r)2 + 2000/(1+r)3 + .... = 2000(1+r)/r

따라서 2000(1+r)/r원이 7000원보다 크면 양쪽 모두와 협동할 것이다. 이 때 r은 0.4 이하면 된다. 즉, 두 개의 거래가 연결되어 있다면 A는 C와의 거래 뿐 아니라 B와의 거래도 유지하게 된다. 거래가 많이 연결되어 있을수록 이윤율이 낮은 쪽과도 협동할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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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4 / 25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0)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협력의 시작, 신뢰

 

이제까지 사회적 딜레마의 해법은 협력이며, 협력이 일어나는 조건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협력을 가져오는 조건들은 핏줄, 반복적인 관계, 정보, 집단 등 다양했다. 이런 조건들이 만족될 때는 협력하는 것이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되었다. 또 동기, 전략, 구조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협력을 유도할 수 있다.

이런 외적인 조건과 함께 많은 학자들이 주목한 점은 협력을 촉진하는 가치를 찾는 것이었다. 사회가 어떤 가치를 선택해야 협력이 촉진될 수 있을까? 그 답으로 제시된 것이 신뢰이다.

우리는 앞에서 인간은 상호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남이 잘해주면 나도 잘해주고, 남이 잘 대해주지 않으면 나도 잘 대해주지 않는 것, 다시 말해 받은 만큼 베푸는 것이 상호성이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처음 행동이다. 처음에 상대방이 나에게 잘해주면 나도 똑같이 잘해줄 것이고 그러면 다시 상대방이 나에게 잘해주는 선순환이 이어진다. 하지만 처음에 누군가 이기적 행동을 보여 상대를 배반한다면 배반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어떻게 해야 처음의 행동으로 배반이 아닌 협력을 선택하게 만들 수 있을까? 당신이 협력을 택할 경우 나도 협력을 택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면 된다. 내가 협력을 택할 때 상대방 역시 협력으로 화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된다. 바로 여기서 필요한 것이 서로에 대한 신뢰이다.

만약 인간이 이타적이라면 신뢰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남이 날 도울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도 상대방을 위해서 이타적으로 행동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은 것처럼 이타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상정하는 인간은 매우 상식적인 상호성에 기반한 인간이고, 그래서 신뢰가 중요하다.

정리하자면 기존의 시장경제에서는 이기적 인간을 상정했고, 이 경우 사회적 딜레마가 닥쳤을 때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호성을 지닌 인간을 상정하면 협력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슴사냥게임으로 전화할 수 있다. 사슴사냥게임의 경우 서로 힘을 합쳐 사슴을 잡는 경우와 각자 토끼를 잡는 경우 두 가지의 해가 있었다. 이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모두에게 더 큰 이익을 주는 것은 서로 힘을 합쳐 사슴을 잡는 경우이다. 이것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신뢰이다.

 

신뢰란 무엇인가?

굳이 이렇게 따지지 않아도 인간관계에서 신뢰는 매우 중요하다. 사랑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상대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랑은 얼마나 괴로운가? 비행기를 탈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비행기 조종사와 항공업체를 신뢰하고 목숨을 맡기는 셈이다. 불우이웃돕기에 참여할 때도 모금된 돈이 횡령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사회생활은 신뢰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불신이 시작되면 우리는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신뢰(Trust)란 무엇일까? 미국의 정치학자인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신뢰란 ‘공동체 내에서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보편적인 규범에 기초하여 규칙적이고 정직하며 협동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라고 정의한다. 즉, 신뢰란 공동체가 공통으로 받아들이는 규범을 따르는 것이다. 신뢰의 판단기준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이다. 규범의 내면화, 그것이 신뢰이다.

이런 점에서 신뢰란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정보의 문제와도 구분이 된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정보가 완벽하게 주어져서, 상대방의 유형과 전략을 파악할 수 있다면 협력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상태를 미국의 정치학자 하딘(Russel Hardin)은 신뢰성(Trustworthiness)이라 하여 신뢰와 구분하였다. 정보에 의존하는 신뢰성과 달리 신뢰는 규범이 내면화된 경우로 정보의 유무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일본의 사회심리학자 야마기시(Yamagishi)는 신뢰란 ‘사회적 불확실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대한 믿음 때문에 상대가 자신에게 선한 행동을 하리라 기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상대가 반드시 내가 기대한대로 행동할 것이라는 확실성이 없는 상태에서도 믿는 것인 신뢰이다.

이런 점에서 야마기시는 신뢰를 장담(Assurance)과 구분한다. 장담은 확실한 상황에서의 믿음이다. 흔히 조직폭력배의 상하관계를 예로 든다. 조직폭력배 간에는 서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배신할 경우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다거나 내 가족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나온다. 불확실한 상황을 확실하게 만드는 어떤 조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신뢰가 아니라 장담이다.

이상을 정리해보면 신뢰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상대방이 '공동체의 보편적 규범'을 따라 협력할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신뢰 중에서도 일반적 신뢰(Generalized Trust)가 중요하다. 이는 특정 관계나 특정 대상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만하다'는 생각을 뜻한다. 불특정 다수의 대한 믿음, 인간 본성이 악하지 않다는 믿음인 것이다.

일반적 신뢰가 높을수록 사회 구성원 전반은 처음 행동으로 협력을 택하게 된다. 일반적 신뢰는 인간의 본성인 상호성을 협동으로 유도한다. 반대로 일반적 신뢰가 낮다면 사회 전반적으로 협동이 일어나기 어렵다. 아이들에게 "모르는 사람과는 말하지 말고, 따라가지도 말아라"고 말하는 사회는 일반적 신뢰가 낮은 것이다.

20년 넘게 세계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는 "당신은 남을 얼마나 믿습니까?" 라는 질문을 통해서 각 국의 일반적 신뢰도를 측정한다. 조사 결과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 언제나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상위 수준이었지만, 불행하게도 가장 빠른 속도로 순위가 추락하고 있는 국가이다. 더 끔찍한 것은 15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같은 질문의 조사에서는 압도적으로 꼴찌를 차지했다.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신뢰를 만들어낼까? 자연과학의 문제였다면 실험을 통해서 어떤 현상의 원인을 상대적으로 쉽게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사회과학의 경우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변수를 통제하기가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계량경제학이나 통계학이 발달하여 실증연구가 활발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회적 현상에 대해 명확한 인과관계를 밝혀내기란 쉽지 않다. 특히 변수들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밝혀진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인과관계는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며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검토해보면, 일반적 신뢰와 상관관계를 갖는 요인들로 다음과 같은 것이 제기된다. 개인의 경우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다른 이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특히 가정교육과 초등교육의 영향이 컸다. 또한 전문직이고 고소득 집단일수록 그러했다. 반면 이혼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 실업자, 차별의 역사를 가진 소수인종, 건강이 나쁜 사람의 경우 일반적 신뢰가 낮았다. 교육, 소득, 직업, 건강 등이 일반적 신뢰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를 대상으로 분석한 경우 경제발전, 종교는 일반적 신뢰와 양의 상관관계가 있었다. 경제발전이 높을수록 신뢰가 높았다. 경제발전이란 일반적으로 재산권 확립 및 공정한 경쟁과 동반된다. 즉, 계약이나 제도에 의한 최소한의 공정성이 보장된다. 이것이 신뢰를 촉진하는 요인이 되었을 수 있다. 혹은 반대로 신뢰가 높았기 때문에 공공재의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무임승차자가 줄어서 경제발전이 촉진되었을 수도 있다. 종교가 발달한 곳일수록 신뢰가 높았다. 종교는 이타적으로 살 것을 권하므로 신뢰를 촉진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국가부패, 소득불평등, 범죄율은 일반적 신뢰와 음의 상관관계가 있었다.

 

소득불평등은 신뢰를 떨어뜨린다

특히 소득불평등와 일반적 신뢰의 관계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부분이기에 자세히 짚어보고자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양극화이기 때문이다. 덴마크 정치학자 나네스터(Peter Nannestad)는 소득불평등이 집단 간 신뢰의 차이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소득불평등이 일정 수준 이상 심해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부족하거나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위 집단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거나 사회 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소득불평등은 일반적 신뢰를 떨어뜨린다. 특히 이 같은 불만과 의혹이 높은 상황에서 상위 집단의 부정부패와 같은 증거가 발견되면 적개심으로까지 발전한다.

소득불평등에 관해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한 소득재분배는 흔히 평등의 가치로 이야기된다. 그리고 평등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평등이 효율성을 강화시킨다는 연구들도 많다. 먼저 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이 이를 뒷받침한다. 케인즈는 불황기에 중요한 것은 총수요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고소득층의 경우 소비성향이 낮다. 10억 원을 번다고 생각해보자. 그 중에 얼마나 소비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많이 소비해도 10억 원 중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투자라도 해야 하는데 불황에는 투자할 곳이 없다. 따라서 고소득층은 총수요 증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저소득층은 소득의 대부분을 생계유지를 위해 소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어나면 그만큼 소비가 늘어나고 총수요가 만들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소득재분배는 경기 회복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

두 번째는 평등이 다양성을 촉진하여 효율성을 높인다는 설명이다. 핀란드의 교육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모든 아이들이 저마다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면, 모두가 일등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개인의 기량 극대화는 사회적 성과의 극대화로 이어질 것이다.

세 번째는 평등이 신뢰를 가져오는데, 신뢰는 거래비용 감소, 공공재 공급 증가, 제도의 성공이라는 결과를 유도하여 효율성을 높인다는 설명이다. 거래비용은 199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코즈(Ronald Coase)에 의해 제기된 문제이다. 코즈는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라면, 그래서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점에서 균형이 이루어진다면 왜 굳이 기업이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그 이유로 거래비용을 제시했다. 어떤 상품을 구입하고 판매할 때는 적절한 대상을 탐색하고, 계약을 맺고, 그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감시와 처벌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노동자를 고용할 때, 그 사람이 해당 일자리에 적합한 사람인지 알아보아야 하고, 근로조건들을 합의하여 계약을 맺어야 하고, 그 후에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감시가 필요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경제활동은 사실 이런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있다. 기업은 필요한 거래와 경제활동을 기업 내부로 끌어들여서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코즈의 설명이다. 서로 간에 신뢰가 있다면 거래비용은 줄어들 수 있다. 비용이 주는 만큼 이익은 늘어날 것이고 이는 효율성 증가로 이어진다. 공공재의 경우 비경합성과 비배재성이라는 독특한 성질로 인해서 무임승차자가 많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서로가 신뢰하는 사회라면 협력을 통한 자발적인 공공재 생산이 활발해질 것이다. 또한 신뢰가 쌓이면 사회 제도가 지켜질 확률이 높아지고, 제도가 튼튼한 상태에서는 경제활동도 안정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제도를 잘 만들면 신뢰가 촉진될까?

다음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제도와 일반적 신뢰의 관계이다.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제도를 만들어야 신뢰가 촉진될 것인가이다. 아니, 그 전에 제도가 신뢰를 촉진할 수 있는가 부터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제도는 보상과 응징으로 구성된다. 협력할 경우 보상을 받고, 배반할 경우 응징을 당한다. 사람들이 제도를 신뢰하면 타인에 대한 신뢰도 높아질 수 있다. 제도가 정확하게 응징과 보상을 한다면 타인이 나를 배반할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에 대해서 불신하게 되면 타인에 대한 불신은 더 심해진다. 타인이 나를 배반해도 제도가 응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만 보면 좋은 제도는 신뢰를 촉진하는 것 같다.

야마기시의 실험은 제도가 신뢰를 촉진시키는 사례를 보여준다. 실험에서 처음에는 물질적 동기에 의해서, 즉 제도에 의해서 사람들이 협동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 물질적 동기가 사라져도 사람들은 여전히 협동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도와 신뢰가 반드시 양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은 노동운동이 강한 나라이지만 정작 노동법은 허술하다. 노르웨이는 성평등이 가장 잘 실현된 나라이지만 성평등법은 약하다. 이 두 나라의 경우를 보자면 신뢰가 강한 곳에서는 제도가 약하다. 내면의 규범만으로도 유지가능하기 때문에 제도가 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도는 사람들의 행동을 하한선으로 추락시킬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하이파 유치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러 오는 시간에 지각을 하자, 벌금제를 도입했더니 오히려 지각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전에는 유치원 교사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지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벌금제가 도입되자 벌금만 내면 된다는 면죄부가 생긴 것이다. 이후 벌금제를 없앴지만 지각은 더 늘어났다.

따라서 제도를 만들 때는 섬세한 고려가 필요하다. 모든 제도를 설계할 때 그것이 신뢰를 구축하는지에 대한 평가가 따라야 한다. (하지만 애초부터 불신이 높은 나라라면 어떨까? 이런 경우에는 강한 제도가 필요할 수도 있다.)

경제학자들은 행정적 규제보다 시장화를 통한 제도를 선호한다. 대표적인 방식이 하딘이 공유지의 비극에서 제시한 것으로, 공유자원에 사적소유를 부과하는 것이다. 즉, 공공재를 시장재로 만든다. 공유자원은 비배재성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도 공유자원을 사용할 수 있어 무임승차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기술이 발전하면서 무임승차자를 걸러낼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원래 방송은 공공재였는데 기술의 발전으로 케이블티비가 등장하면서 요금을 지불한 사람만 방송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시장화를 통한 제도는 신뢰에 어떤 영향을 줄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시장화가 신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다. 행동경제학의 실험에서 ‘시장’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사람들은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공동체’라는 이름을 붙이면 더 이타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제도 역시 마찬가지로 작동하지 않을까?

인간이 만든 제도 중 가장 강력한 제도는 국가이다. 국가는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국가는 일반시민의 권리를 위임한 것이다. 폭력도 쓸 수 있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거나 협력하지 못하는 부분은 국가가 강제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신뢰에 어떤 영향을 줄까? 스웨덴의 저명한 정치학자 로스슈타인(Rothstein)은 정부의 불편부당성(impartiality), 또는 정부의 질(quality)이 신뢰를 촉진하는 핵심적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국가가 공정하다고 생각될 때 사회 구성원 사이의 신뢰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로스슈타인의 분석에 의하면 스웨덴 국민들이 정부의 불편부당성을 공유하게 된 것은 1930년대 총리였던 사회민주당 출신 정치가 한손(Per Albin Hansson)에 의해서이다. 당시 스웨덴에서는 자본가가가 파업하는 노동자를 공격하다가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이들이 모든 자본가와의 타협은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손은 범법행위에 대해서만 처벌할 뿐 나머지 관계는 인정했다. 이 때의 경험이 스웨덴 국민들에게 국가의 불편부당성을 각인시키는 집단기억이 되었다.

우리 국민들이 국가와 정부에 대해서 갖고 있는 집단기억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또한 국가가 이미 지배계층의 특권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때의 불편부당성은 지배계급의 편을 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1)편으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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