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5 / 21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여부가 여전히 세계 경제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반대한다.” 며 사태를 진정시키고자 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추진해온 유럽식 긴축재정과 함께 미국식 경기부양책을 적절히 조화시켜야 한다는데 만장일치했다. 과연 경기부양책을 어떻게 펼칠지 두고 봐야겠지만, 긴축정책에을 고집해오던 시각이 변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사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된다면 이는 무리한 긴축정책을 강요한 결과이다. 유럽은 구제금융을 해주는 대신 그리스 국민의 희생을 요구하는 긴축정책을 조건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국민들의 임금은 대폭 깍였고,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경기는 침체되고 있다. 긴축정책을 계속 할 경우 부채의 규모는 줄어들지 몰라도 경기침체에서 빠져나갈 출구를 찾기 힘들다. 그리고 경기가 계속 침체되는 한 부채의 축소도 불가능하다.

앞서 살펴보았던 경제학자 루비니(Nouriel Roubini)와 크루그먼(Paul Krugman)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해서는 견해 차이가 있었지만, 긴축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아래 소개하는 경제학자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의 견해 역시 긴축정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같다.

스티글리츠는 지금 유럽 경제의 핵심 문제는 재정건전성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경기가 다시 회복될 수 있도록 신뢰를 되찾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이 고집스럽게 긴축정책을 주장한 결과 경제는 더 불안정해졌으며, 가난한 이들과 젊은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비판한다. 심지어 이러한 정치 지도자들의 오판은 범죄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스티글리츠는 재정지출을 확대하여 투자와 수요가 늘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안이며, 하루라도 빨리 유럽이 이 대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긴축정책 이후

(After Austerity)

 

2012년 5월 7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올해 IMF 연례회의는 유럽과 국제 사회의 경제정책이 방향 없이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각 국 재무장관에서 민간 금융기관의 책임자까지 금융계의 지도자들은 위기 국가들이 적자를 줄이고, 국가 부채를 연착륙시키고, 구조적 개혁을 단행하며, 성장을 촉진해야 한다는 등 지금까지 나온 주문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지금은 신뢰의 회복이 필요하다.

중앙은행, 재무장관, 민간은행의 책임자 등 경제의 키를 잡고 있는 이들은 세계 금융 시스템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혼란을 지속시키고 있다. 게다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엉뚱하게 제시하고 있다. 경제위기에 처한 국가들이 침체에 빠진 상황을 그대로 두고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겠는가? 긴축정책이 총수요를 더욱 축소시키고, 생산력과 고용을 줄이는 상황에서 경제가 다시 성장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시장 그 자체는 안정적이지 못하다. 시장은 불안정한 자산 거품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수요가 줄어들 때 이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실업과 공포를 확산시키고 임금과 소득 그리고 소비를 줄어들게 만든다. 가구형성률도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젊은이들 중 독립하였다가 다시 부모에게로 돌아가는 이들이 늘고 있으며, 주택 가격이 떨어지면서 담보로 잡힌 많은 주택이 압류당하고 있다. 균형 재정을 고수하는 지역에서는 세수가 줄어드는 만큼 재정 지출을 줄이고 있는데, 이는 자동적으로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유럽이 부주의하게 잘못 채택한 방법이다.

긴축이 아닌 대안은 존재한다. 독일과 같은 국가는 재정정책을 펼칠 여유가 있었다. 투자를 촉진시키기 위해 재정지출을 사용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성장을 가져온다. 또한 유럽의 나머지 국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세금을 늘리고, 그만큼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소비를 늘리는 것은 오랫동안 사용된 방법이다. 재정지출 확대 정책이 잘 설계된다면(상위층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교육에 지출하는 등의 방법을 잘 혼합하면), GDP와 고용의 증가는 상당할 것이다.

사실 유럽 전체는 재정 상태가 나쁘지 않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은 미국에 비해 낫다. 만약 미국의 각 주가 자체 재정에만 의존한 채로 운영된다면 미국 역시 재정 위기에 빠질 것이다. 각 주에서 자체적으로 실업급여를 준다고 가정하면 더욱 그렇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확하다. 전체는 부분의 합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유럽에서도 유럽중앙은행(ECB)이 재정을 지원해준다면 유럽 전체의 부채 감당 비용은 줄어들 것이고, 성장과 고용을 촉진시킬 수 있는 재정적 여유가 생길 것이다.

이미 유럽 내의 금융기관인 유럽투자은행(EIB)은 현금이 부족한 국가에 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EIB는 대출을 더욱 확대해야 하는데, 특히 중소기업에게 지원되는 자금을 늘려야 한다. 중소기업은 모든 경제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핵심 원천이지만, 은행이 대출을 축소할 경우 가장 어려움을 겪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결같이 긴축을 주장했던 유럽의 판단은 오진이었다. 그리스는 재정에 비해 지출이 과도했다. 하지만 스페인과 아일랜드는 위기 전까지 재정적자나 GDP 대비 부채 비율이 낮았다. 재정건전성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재정건정성과 긴축정책은 역효과를 낳는다. 유럽의 문제가 일시적이든 근본적이든 상관없이 긴축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뿐이다. 유로존은 최적 통화 지역(OCA, Optimal Currency Area)에서 멀어지고 있다. 자유 무역과 자유로운 이민이 가능한 지역에서 조세경쟁(각종 세제혜택을 무분별하게 도입하는 것 - 역주)은 성장할 수 있는 국가를 갉아먹는 요인이다.

유럽이 긴축을 향해 질주한 결과는 장기적이고 엄청난 고통으로 돌아올 것이다. 유럽연합이 살아남는다 해도 높은 실업과 거대한 침체를 대가로 치룰 것이다. 특히 위기 국가들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위기는 유럽 전체로 퍼져나갈 것이다. 이는 불에 기름을 뿌린 격으로, 어떤 방화벽으로도 막기 힘들 것이다.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경제 중 하나인데, 이렇게 큰 규모의 경제가 긴축정책 후 회복된 사례는 아직 없다.

결과적으로 사회의 많은 자산, 인적 자본은 낭비되고 파괴될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오랫동안 빼앗긴 젊은이들은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다. 2008년 이후 청년실업률은 급격히 높아져서, 어떤 국가에서는 50%에 근접하거나 이를 초과하기도 한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한다고 해도 임금을 매우 낮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젊은 시절은 기술을 배우고 능력을 쌓는 시기이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은 퇴화되고 있다.

게다가 많은 국가들이 지진, 홍수, 태풍, 허리케인, 쓰나미 등 자연재해에 취약해지고 있다. 여기에 사람이 만든 재앙까지 더해지는 것은 더욱 더 비극이다. 유럽이 그렇게 되고 있다. 과거 경험을 무시하는 유럽의 지도자들의 고집은 범죄와 다를 바 없다.

유럽의 고통, 특히 가난한 이들과 젊은이들의 고통은 불필요한 과정이다. 다행히도 대안은 존재한다. 대안을 미루면 더 비싼 대가를 치룰 것이다. 지금 유럽은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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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09.10.28 07:00

“개인의 행복이나 삶의 질을 사회 발전의 척도로 삼아야 하며 이를 위한 새로운 지표 개발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이명박 대통령, 제3차 ‘OECD 경제포럼’ 개막식 축사)

우리나라의 3분기 경제성장률(GDP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무려 2.9퍼센트나 성장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단 하루만에 GDP 지표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진앙지는 바로 어제(27일) 막을 연 ‘OECD 세계포럼’이다.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이날 개막식에 앞서 마련된 간담회에서 “이 지표(GDP)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좀더 포괄적이면서 진정한 의미의 발전을 보여주는 지표를 논의하자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나침반이 GPS로 바뀐 것처럼 우리도 이제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다”

GDP와 현실과의 괴리는 과연 어느정도일까. 이번 행사를 앞두고 통계청이 발간한 <OECD 세계포럼의 이해>라는 책자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나라의 명목GDP는 9,291억 달러로 세계 15위이지만 삶의 질을 나타내는 환경지속성지수(ESI)는 2001~2005년까지 OECD 국가 중 최하위인 29위를 기록했고 행복지수(HPI)는 그보다 더 낮은 68위에 머물렀다.
그 뿐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상위 20퍼센트의 소득점유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해 하위 20퍼센트의 소득은 감소하고 있으며, 2000년 이후 OECD국가 중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이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엊그제 발표된 GDP에 그 어떤 것도 반영돼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번에는 역사적인 맥락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률을 살펴보자. 경제학에서는 ‘7퍼센트 규칙’이라는 것이 있다. 매년 7퍼센트씩 경제성장을 계속하면 10년 뒤에는 꼭 두 배만큼 성장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80년대에 연평균 7.7퍼센트, 90년대는 6.3퍼센트 그리고 2000년대는 경제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연평균 5.1퍼센트의 성장률을 보였다. 따라서 ‘7퍼센트’ 규칙대로라면 한국 경제는 80년대에는 두 배 이상 성장을 했고, 90년대에도 거의 두 배 만큼 실질적으로 성장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근 성장률이 5.1퍼센트로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매년 5퍼센트 만큼만 성장해도 10년이면 약 63퍼센트 성장률이 되기 때문에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니다.

즉,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고 GDP가 소득과 삶의 질을 제대로 평가하는 지표라면 현재 우리는 1995년보다 두 배 정도 넉넉하고 풍요로운 삶을 향유하고 있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10년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소득은 별 차이가 없다. 아니 오히려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사회경제적 현상을 측정하는 객관적 통계지표와 구성원이 체감하는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GDP는 실질소득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1930년대 GDP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부터 과연 이것이 사회 진보나 경제의 번영을 측정하는 올바른 지표인지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특히 최근 양극화로 대변되는 소득 분배의 변화는 더 큰 회의를 낳고 있다. 불평등이 증가하면 평균소득은 10년 전에 비해 두 배 증가하더라도 오히려 내 삶은 더욱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은 소득을 측정하는 세 가지 상이한 지표들의 성장률을 추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경제성장률보다 가계소득이 체계적으로 낮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인 2004년 1분기~2008년 3분기에 GDP는 평균 4.7퍼센트 증가했지만, GNI는 3.2퍼센트, 가계소득은 2.2퍼센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민이 실제로 체감하는 ‘소득’을 제대로 반영하는 지표로 그나마 GNI가 GDP보다 우수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GDP와 가계소득 사이에 발생한 2.5퍼센트의 차이는 대체 어디서 발생한 것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GDP란 한 나라에서 특정 기간(1년 또는 분기)에 생산되는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을 측정하는 지표다. 간단한 도식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GDP=민간소비+투자+정부소비+(수출-수입)

그러나 세계화가 급속도로 확산됨에 따라 한 국가에서 생산하는 것과 국민이 최종적으로 벌어들인 실질소득 사이에는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수입가격이 수출가격보다 상대적으로 증가하면 수출품 1단위와 교환되는 수입품의 양이 감소하므로 동일한 재화를 생산하더라도 실질구매력은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GDP에서 교역조건 변화에 따른 실질무역 손실의 차감을 반영해야 하고 이러한 지표가 바로 국내총소득(GDI)이다.
여기에 외국인이 국내에서 벌어간 소득은 차감하고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더하여 산출한 것이 국민총소득(GNI)이다. 우리나라의 GDP가 GNI보다 체계적으로 작은 것은 주로 교역조건의 악화가 반영된 탓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GDP와 가계소득 증가율 사이에 나타난 2퍼센트 이상의 차이를 설명할 수는 없다. 아래 그림은 지난 10년 동안 가계의 실질가처분소득(가계소득-세금을 비롯한 비소비지출)과 실질 GDP 증가율의 평균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나라는 12개 비교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가계의 실질가처분소득은 1퍼센트 남짓 증가하는데 그쳤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우선 명목GDP와 가계소득을 실질지수로 변환할 때 사용하는 디플레이터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가계의 실질소득을 계산할 때 사용하는 지표는 소비자물가지수로서 1996~2006년에 연평균 3.8퍼센트 증가한 데 반해, GDP 디플레이터는 연평균 2.76퍼센트로 증가해 약 1퍼센트 정도 차이가 난다. 여기에 앞서 말했듯이 GDP와 GNI의 차이가 반영되어야 하며 GNI에 포함되지만 가계의 실질소득과 관련이 없는 자본재의 감가상각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소득의 부문 간 이전에서 오는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가계는 자신이 벌어들인 소득에서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정부에 납부한다. 이에 대한 대가로 국민연금이나 실업급여 등 정부로부터 이전소득을 받는다. 또한 가계는 기업으로부터 배당의 형태로 재산소득을 받으며 차입금에 대한 대가로 은행에 이자를 지불한다.
이러한 부문 간 이전을 최종적으로 고려한 것이 가처분소득이다. 따라서 97년부터 도입된 실업급여 등 사회보험료와 은행에 지불하는 이자지출이 늘어난 것도 주요한 설명변수가 될 수 있다.

GDP와 가계소득의 차이를 낳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바로 ‘양극화’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가계소득은 매월 9,000여 일반가구를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를 토대로 작성되는데 일반적으로 부유층은 표본조사에 응하는 것을 매우 꺼려한다. 따라서 양극화가 극심할수록 GDP와 가계소득의 차이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티글리치 보고서>에 담긴 ‘행복GDP’를 살펴보면

2008년 2월 프랑스정부는 GDP 통계가 경제적 성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와 센 교수를 주축으로 ‘경제성과와 사회진보 측정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위원회는 1년이 넘는 연구와 논의 끝에 지난 9월 첫 번째 보고서인 일명 <스티글리츠 보고서>를 발표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번 OECD 세계포럼에서 ‘행복(well-being) GDP’ 도입의 필요성을 직접 밝힐 예정이다.

300여 페이지나 되는 장문의 보고서의 핵심 내용 및 권고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양에서 질로의 전환 혹은 보완이다. GDP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생산량’의 총합을 나타낸다. 따라서 상품의 품질 증가에 따른 실질 소득 또는 소비의 증가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상품의 품질 개선에 따라 가격이 증가했다고 가정하자. 이 때 통계 처리 과정에서 가격 변화를 조정하게 되는데, 물가상승을 과대평가하면 품질개선(과 실질소득 증가)을 과소평가하게 된다.
또한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와 서비스만 포괄하므로 정부나 가계에서 수행하는 비시장 영역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예를 들어, 가계에서 수행하는 부모의 가사 및 육아는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동일한 노동이라 하더라도 가사 및 아이 도우미 서비스를 활용하면 GDP가 증가한다. 따라서 가계 및 정부의 경제 활동이 시장 거래로 전환한 미국과 같은 나라는 체계적으로 GDP가 과대평가되는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 

둘째, 경제적 ‘생산’보다는 인간의 ‘행복’으로 강조점의 전환이다. GDP는 시장의 생산량을 화폐 단위로 측정하기 때문에 경제 구성원이 체감하는 물질적 ‘복지’를 제대로 측정하기 위해서는 GDP보다 ‘가계’의 소득과 소비가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GDP에서 교역조건과 국가 간 소득 이전을 차감한 GNI, 더 나아가 자본재의 감가상각과 부문 간 이전을 고려한 NNDI(net national disposable income) 지표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GDP와 가계소득이 체계적으로 차이가 나는 점을 중시한다. 따라서 물질적 복지의 관점에서는 가계의 ‘실질가처분소득’에서 의료와 교육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현물이전을 고려한 지표 개발의 필요성을 밝히고 있다.

셋째, 분배를 통한 평균 지표의 보완이다. 평균소득이 증가하더라도 계층 간 소득이 불균등하게 분배되면, 일부 계층에서는 오히려 물질적 후생이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평균 개념의 소득, 소비보다는 중간(median) 지표에 평가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또한 재산의 변화, 계층별 소득 분배를 포괄할 수 있는 지표 개발의 필요성도 밝히고 있다.

넷째, 행복은 물질적 생활수준의 일차원적 지표가 아님을 강조한다. 즉 새로운 대안지표는 보건, 교육, 정치 환경, 사회적 관계, 환경 그리고 사회경제적 안정 등을 모두 포괄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왜냐하면 ‘삶의 질’은 GDP라는 객관적 지표에서는 포괄하지 못하는 인간의 ‘역량(capability)’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UNDP에서 매년 발표하는 HDI(인간개발지수)는 이번 위원회에 자문으로 참여하는 아마티아 센 교수의 ‘역량’ 개념에 기초한 것이다. ‘역량’이란 행위자의 목적ㆍ지향ㆍ가치 등을 실제로 수행 또는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개발’이란 객관적 물질 조건을 개선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위 ‘능력’을 형성하고 수행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으로 확장한다.
이는 철학적으로도 약간의 차이를 반영한다. ‘GDP’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행복을 효용의 극대화로 보는 데 비해 ‘역량’ 관점은 자신과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를 수행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 그리고 역량을 강조하는 차이점을 지닌다.
따라서 보고서는 보건, 교육, 환경 등 여러 상이한 영역의 측정을 모두 포괄하는 HDI와 같은 복합지수의 개발뿐만 아니라 실제 체감하는 행복 정도를 반영하기 위해 설문조사 등을 활용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다섯째, 지속가능성과 환경에 대한 강조다. GDP는 더 이상 재생되지 않는 자원을 더욱 더 많이 소모할수록, 그리고 환경을 더 심각하게 파괴할수록 늘어나는 태생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미래세대, 아니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자원과 환경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속가능성은 현재의 물질적 복지가 미래에도 유지 가능한지를 측정하며 규범적 선택의 문제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의 단일한 지수로 환원할 수는 없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차를 운전할 때 현재의 속도와 남아있는 휘발유의 양을 동일 계기판에 하나의 숫자로 표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환경 문제로 인한 온난화와 수자원 고갈 등을 포괄할 수 있는 환경위험지수의 개발도 고려하고 있다.

이명박정부는 “새로운 지표” 개발하겠다는 약속 지킬까

스티글리츠 교수가 세계은행 부총재로 재직할 당시 세계화와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논쟁을 촉발한 것처럼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대안 지표를 둘러싼 세계적 논의의 출발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의 맨 처음에 소개한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도 어제 개막식 축사를 통해 “새로운 지표”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수십 조 원을 쏟아 붓는 4대강 사업에는 엄청난 건설 장비와 자재, 노동력이 소요되므로 GDP 상승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돈으로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다른 대안과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이미 파탄 난 747 공약인가, 아니면 국민의 행복인가, 어느 것을 선택할 지는 물론 정부의 몫이다. 그러나 정치란 국민의 ‘행복’ 증진이고, 통계란 그에 대한 적절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OECD 세계포럼(OECD World Forum)
OECD 세계포럼은 GDP의 한계를 극복하고 경제, 사회, 환경 등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발전 개념을 정립하고, 발전 측정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및 글로벌 차원의 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OECD 최대규모 국제회의이다.
공식명칭은 ‘통계, 지식, 정책’의 OECD 세계포럼(OECD World Forum on Statistics, Knowledge and Policy)으로 OECD 통계국 주관 하에 OECD 회원국 중 한 곳을 선정하여 2년에 한 번씩 개최된다. 유엔(UN), 세계은행(World Bank), 유엔개발계획(UNDP), 유럽 연합(EU, European Union),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 등이 후원단체로 참여한다.
2004년 이탈리아 팔레르모, 2007년 터키 이스탄불 회의에 이어 2009년에는 10월 27일부터 10월 30일까지 대한민국 부산에서 제 3차 회의가 개최된다.
-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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