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5 / 08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로라 타이슨(Laura Tyson)은 클린턴 대통령 시절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이었다. 지금은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하스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이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장관을 했던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교수와 함께 산업정책과 무역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윌가를 대변하는 관료들에게 밀려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이시 교수는 ‘세계의 시선’을 통해서 몇 차례 소개한 바가 있는데 경제위기의 원인이 심각한 소득 불평등 때문이라는 주장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타이슨 역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인들이 소득에 비해 너무 많이 소비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전 연준 의장 볼커(Paul Volcker)의 주장을 반박하며, 진짜 문제는 미국 국민들의 소득이 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아래 요약하여 소개하는 글에서 타이슨은 법인세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소득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면 부유세와 법인세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타이슨은 지금과 같이 자본이동이 자유로운 조건에서는 법인세 인상이 미국 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다고 본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이나 기술에 의존하는 산업의 경우 낮은 법인세를 찾아 이동하기 더 수월한데, 이런 산업이 미국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법인세 상승으로 인해 투자와 일자리가 줄어들 경우 결국 그 부담은 노동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문제라고 본다.

타이슨이 법인세를 낮추는 대신에 내놓은 방안은 배당금과 자본이득에 부과하는 세금을 높이는 것이다. 즉, 자본소득에 직접적으로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법인세 인상으로 인해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고,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기업의 경우 개인보다 조세회피 방법이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법인세보다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자본소득세가 세금 부과에 더 수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미국에서 자본소득에 부과되는 세율은 15%로 미국 역사상 가장 낮다.

타이슨의 주장을 그대로 한국사회에 적용할 수 있을까? 삼성의 세금을 올리는 것보다 이건희의 세금을 올리는 것이 적절할까? 한국의 상황에서 어느 쪽이 소득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조세 평등에 적절한지 판단해 보아야 한다. 또한 재벌개혁의 일환으로서 법인세가 사용된다는 점에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까다로운 법인세 문제
(The Corporate-Tax Conundrum)


2012년 5월 3일
로라 타이슨(Laura Tyson)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현재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법정 법인세가 가장 높다. 다양한 세제 혜택을 감안한 실효세율에 있어서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자본이동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법인세는 중요하다.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의 법인세율은 미국 기업들로 하여금 해외에 나가서 투자하고, 생산하고, 고용하도록 만든다. 또한 미국에 들어온 외국 기업을 위축시킨다. 결국 경제성장은 더뎌지고, 일자리는 줄어들며, 생산성과 실질임금은 낮아진다.

일반적인 통념에 의하면 법인세 부담은 주로 자본을 가진 이들의 몫이다. 하지만 자본의 이동이 자유롭다면, 자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동이 불가능한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과 일자리 부족이라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많은 국가들이 법인세를 낮추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게다가 높은 법인세는 재정수입 측면에 있어서도 비효율적이다. 혁신적인 금융 거래와 합법적인 세금회피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법적 거주지와 소득을 얻는 지역을 조작할 수 있다. 이는 자본과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분야일수록 그러한데, 이런 분야는 미국 경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분야이다.

법인세에 대한 긴밀하고 광범위한 국제 공조가 없는 상황이라면 미국은 다른 국가처럼 법인세를 낮추어야 한다. 대신에 수익 뿐 아니라 부채에도 세금을 부과하며 법인 뿐 아니라 법인이 아닌 대상에도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통해 세수를 확대하는 것이 미국 조세법을 덜 훼손하는 것이며 효율적인 방법이다.

물론 법인세가 1%포인트 낮아질 때마다 연방정부의 재정수입은 매년 120억 달러씩 줄어든다. 이는 조세기반을 확대하고, 조세지출을 줄임으로써 상쇄시킬 수도 있다. 조세지출은 세제 혜택으로 인한 세수의 손실을 의미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사업세(business tax) 개혁과 심슨-보울스(Simpson-Bowles)의 재정적자 감축 계획은 모두 이러한 조세지출 축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석유와 가스, 항공기 사업 같은 ‘특별 이익단체’들은 그들이 받는 상당한 수준의 세율 혜택에 비해서 충분한 수입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세제혜택을 줄여야 한다 - 역자주) 하지만 가속 상각의 할인, 제조업의 세금 감축, R&D 세제혜택 등은 의미있는 세제혜택이다. 이런 항목에서의 세제혜택을 증가시키는 것은 투자를 감소시키고, 혁신을 늦추어서 결국 법인에 대한 세금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법인세를 낮추는 대신에 법인의 주주에 대한 세율을 높임으로써 세수의 손실을 해결해야 한다. 법인세를 낮춘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러한 방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미국만 반대로 가고 있다.

미국의 배당과 자본소득에 대한 세율은 15%로 미국 역사상 가장 낮다. 하지만 국민소득 중 이윤이 차지하는 몫은 언제나 높았다. 자본 소유자에 대한 낮은 세율을 주장하는 이들은 법인 소득에 대한 이중과세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인세에도 세금을 부과하고, 개인의 자본소득에도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것이다. 법인세를 낮추면 이런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

법인 소득에 대해서 개개인이 세금을 낼 경우 세후 실질 소득은 감소하겠지만, 이런 세금은 법인의 투자를 방해하는 효과는 적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노동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본 소유자에게 바로 과세를 할 수 있다. 게다가 개개인의 주주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것이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것보다 훨씬 쉽다. 애플은 복잡한 기술을 써서 그들이 법인 소득을 얻는 지역을 조작한다. 하지만 애플의 주식을 갖고 있는 개개 미국 시민은 그들이 세계 어느 곳에서 얻었던지에 상관없이 배당금과 자본 소득을 신고한다.

최근의 연구는 자본소득과 배당금에 대해서 일반 소득과 똑같이 과세할 경우, 그래서 1997년 이전 세율로 장기 자본 소득에 대해서 최대 28%의 세율을 부과할 경우에 법인세를 35%에서 26%까지 하락시켜도 무방하다고 밝히고 있다.

법인세의 인상은 미국 국민들로 하여금 법인이 그들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으며, 소득 불평등을 확산시킨다는 이미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자본이동이 가능한 조건에서 법인세의 인상은 좋지 않다. 심지어 지금 수준을 유지하는 정도조차도 좋지 않다. 이는 재정수입을 축소시키고, 세제의 누진성을 악화시키며,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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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5 / 04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미국 사례로 돌아보는 ‘주택 소유 정책’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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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4.11 총선의 여파- 마지마 남은 규제 풀기

2. 소득 불평등을 가계 대출로 은폐하라.

3. 2008년 금융위기와 물거품으로 돌아간 소유의 꿈

 

[본 문]

1. 4.11총선의 여파 - 마지막 남은 규제 풀기

4.11총선이 야당의 패배와 보수 집권 여당의 승리로 결론나면서 웃었던 것은 여당의 대선후보 박근혜의원만이 아니었다. 우선 재벌들이 희색이 되었다고 각 언론매체들이 분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재벌들이 야당의 패배를 반긴 것은 공인된 분위기다. 물론 야당이 이겼다고 한들 이들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강도 높게 재벌개혁을 추진했을지, 그리고 그에 대해 과연 당사자인 재벌들이 두려워 하기는 했을지는 미지수다.

재벌과 함께 총선 결과를 크게 반긴 세력은 부동산 부양에 이해관계가 큰 집단이 아닐까 싶다. 총선이 끝난 바로 다음날인 4월 12일,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주택협회가 19대 국회에게 1) 분양가 상한제 폐지 2) DTI(총부채상환비율) 등 금융규제 완화 3) 투기지역 해제 4) 다주택자 양도세 일반세율 적용 5) 매입임대주택사업 규제완화 등에 대한 협조를 요청키로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던 것이다. 투표결과가 미처 정리되기도 전에 차기 국회에게 이런 보내는 요청을 언론에 내보낼 정도이니 얼마나 이들의 요구가 간절했던 것인가?

기업 친화적일뿐 아니라 지독히 건설업 친화적인 이명박 정부가 무려 6차례를 통해 부동산 규제완화를 해주어 거의 다 풀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가격규제, 금융규제, 조세규제, 제도규제들마저 최종적으로 풀어달라는 것이다. 규제라고 이름붙이기도 민망한 마땅히 기초적인 시장질서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만이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또한 현재 인구학적 주택 수요로 보나, 가계부채와 같은 금융여건을 보나, 소득수준 등 어떤 측면을 보아도 과거 10여 년 동안의 과잉 거래, 과도한 가격, 과도한 차입을 지속할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그 수준으로 복귀하려는 부질없는 열망을 담고 있다. 지금은 자산 투기장 노릇을 해온 주택시장을 마감하고 다수 국민들의 주거를 위한 복지정책으로 전환하려는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다. 그런데 건설업자와 다주택 소유자들, 투기세력과 금융업자들이 총선결과를 등에 업고 다시 이를 되돌리려는 것이다.

사실 6월에 개원하는 19대 국회를 기다릴 것도 없다. 임기를 1년도 남지 않은 현 정부가 5월 안으로 건설업자들이 바라는 강남 투기지역 해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완화, 매입 임대주택 규제완화 등을 발표할 준비를 서두른다는 소식이 들리기 때문이다. 물론 마지막 남은 규제를 푼다고 해서 시대를 되돌릴 가능성이 많아보이지는 않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여전히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거래 활성화’라는 명목이, 위에서 사례를 든 부동산 규제완화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른바 ‘주택을 소유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주택을 소유하는 것이 진정 우리 국민의 염원인가, 아니면 안정된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국민의 바램인가?

주택 소유가 염원이라면 어떻게 해든 많은 국민들에게 자기 소유의 집을 갖게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주택거래시장에 넉넉한 주택을 공급해야 하며 거래가 활성화되도록 정부가 각종 정책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소유가 아니라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주거복지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주택 소유’를 정책적으로 극점에까지 밀어붙인 결과 전대미문의 부동산 시장 붕괴와 가계 파산, 그리고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의 사례를 돌이켜보고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마침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 출신인 시카고대학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교수가 금융위기를 다룬 2010년 저작『폴트라인( Fault Lines)』에서 이 문제를 실감나게 다루고 있어 일부 논지를 확인해 보겠다. 2008년 금융위기를 금융시스템 문제 뿐 아니라 미국 정부의 주택 소유정책과 연계시키면서 잘 풀어나간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하의 인용 글들은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라잔 교수를 인용한 것이다.

 

2. 소득 불평등을 가계대출로 은폐하라.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가 소득 불평등을 주택 소유로 은폐하고자 했던 미국 정치의 유혹이 작동했음을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시카고 대학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교수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 출신이기도 한 그는 금융위기를 다룬 2010년 저작『폴트라인( Fault Lines)』에서 소득 불평등과 주택 소유를 조장한 정치세력, 그리고 이를 지원하며 고수익을 올린 금융회사들의 행위를 상당히 실감나게 묘사해주고 있다.

우선 1980년대 이래 미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라잔 교수가 지목한 것은 ‘소득 불평등’이다. 로버트 라이시 교수가 소득 불평등이 경제위기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불평등이 위기를 일으킨 근본 원인이기도 하고, 또 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는 분석이 훨씬 더 광범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라잔 교수가 풀어냈던 논지는 이렇다. 미국 정치권은 심화되어가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유럽처럼 세금을 걷어 소득 재분배를 시행하고 복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생활수준을 개선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금융 대출 규정을 완화하는 것이었다.

소득 불평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미국의 중산층 가구들은, “원래 하던 소비 패턴을 계속 유지할 수만 있다면, 몇 년에 한 번씩 차를 바꾸고 외국으로 가끔 휴가를 떠날 수 있다면, 월급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눈치 챘다. 그리하여 정치권이 소득 불평등 심화 대응책으로 찾아낸 것이 바로 저소득 가구에 대한 신용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이 대응책이 주는 소비증대와 고용 증가 효과는 바로 나타나는 반면 이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는 미래로 미룰 수 있다.”

“가계 대출 확대야말로 여러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정치인들은 믿었다. 가계 대출을 확대하게 되면 집값이 상승하고, 집값이 상승하면 국민은 자신들이 더 부자가 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소비가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다. 가계 대출 확대는 금융 산업 뿐 아니라 부동산 중개업, 주택 건설 분야의 수익과 고용증대를 가져오는 효과도 유발할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모든 면에서 안전한 방법으로 보였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1990년대 클린턴 정부가 선택한 것이 ‘저소득 계층위한 서민용 주택 건설’이었다. 저소득 계층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시켜준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집을 살 자금이 있을 턱이 없으니 저소득 계층을 위한 대대적인 대출 규제완화 방안들이 강구되었고 실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정책의 정점에 2000년대 부시행정부의 선거공약이기도 했던 ‘주택소유사회(Ownership Society)'가 있었다. 2002년 행한 부시 대통령의 연설 일부를 보면 주택 소유사회라는 환상을 미국 시민들에게 어떻게 심어주었는지를 금방 알 수가 있다.

“무엇인가를 보유한다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일부이기도 하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국민 누군가가 내 집을 마련한다면,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현실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어제 아틀랜타에서 새롭게 집을 마련한 주민들의 신규 주택단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되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집 주인은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내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얼굴은 자부심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와 같은 자부심이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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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4 / 25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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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협력의 시작, 신뢰

 

이제까지 사회적 딜레마의 해법은 협력이며, 협력이 일어나는 조건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협력을 가져오는 조건들은 핏줄, 반복적인 관계, 정보, 집단 등 다양했다. 이런 조건들이 만족될 때는 협력하는 것이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되었다. 또 동기, 전략, 구조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협력을 유도할 수 있다.

이런 외적인 조건과 함께 많은 학자들이 주목한 점은 협력을 촉진하는 가치를 찾는 것이었다. 사회가 어떤 가치를 선택해야 협력이 촉진될 수 있을까? 그 답으로 제시된 것이 신뢰이다.

우리는 앞에서 인간은 상호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남이 잘해주면 나도 잘해주고, 남이 잘 대해주지 않으면 나도 잘 대해주지 않는 것, 다시 말해 받은 만큼 베푸는 것이 상호성이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처음 행동이다. 처음에 상대방이 나에게 잘해주면 나도 똑같이 잘해줄 것이고 그러면 다시 상대방이 나에게 잘해주는 선순환이 이어진다. 하지만 처음에 누군가 이기적 행동을 보여 상대를 배반한다면 배반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어떻게 해야 처음의 행동으로 배반이 아닌 협력을 선택하게 만들 수 있을까? 당신이 협력을 택할 경우 나도 협력을 택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면 된다. 내가 협력을 택할 때 상대방 역시 협력으로 화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된다. 바로 여기서 필요한 것이 서로에 대한 신뢰이다.

만약 인간이 이타적이라면 신뢰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남이 날 도울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도 상대방을 위해서 이타적으로 행동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은 것처럼 이타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상정하는 인간은 매우 상식적인 상호성에 기반한 인간이고, 그래서 신뢰가 중요하다.

정리하자면 기존의 시장경제에서는 이기적 인간을 상정했고, 이 경우 사회적 딜레마가 닥쳤을 때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호성을 지닌 인간을 상정하면 협력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슴사냥게임으로 전화할 수 있다. 사슴사냥게임의 경우 서로 힘을 합쳐 사슴을 잡는 경우와 각자 토끼를 잡는 경우 두 가지의 해가 있었다. 이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모두에게 더 큰 이익을 주는 것은 서로 힘을 합쳐 사슴을 잡는 경우이다. 이것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신뢰이다.

 

신뢰란 무엇인가?

굳이 이렇게 따지지 않아도 인간관계에서 신뢰는 매우 중요하다. 사랑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상대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랑은 얼마나 괴로운가? 비행기를 탈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비행기 조종사와 항공업체를 신뢰하고 목숨을 맡기는 셈이다. 불우이웃돕기에 참여할 때도 모금된 돈이 횡령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사회생활은 신뢰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불신이 시작되면 우리는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신뢰(Trust)란 무엇일까? 미국의 정치학자인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신뢰란 ‘공동체 내에서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보편적인 규범에 기초하여 규칙적이고 정직하며 협동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라고 정의한다. 즉, 신뢰란 공동체가 공통으로 받아들이는 규범을 따르는 것이다. 신뢰의 판단기준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이다. 규범의 내면화, 그것이 신뢰이다.

이런 점에서 신뢰란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정보의 문제와도 구분이 된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정보가 완벽하게 주어져서, 상대방의 유형과 전략을 파악할 수 있다면 협력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상태를 미국의 정치학자 하딘(Russel Hardin)은 신뢰성(Trustworthiness)이라 하여 신뢰와 구분하였다. 정보에 의존하는 신뢰성과 달리 신뢰는 규범이 내면화된 경우로 정보의 유무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일본의 사회심리학자 야마기시(Yamagishi)는 신뢰란 ‘사회적 불확실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대한 믿음 때문에 상대가 자신에게 선한 행동을 하리라 기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상대가 반드시 내가 기대한대로 행동할 것이라는 확실성이 없는 상태에서도 믿는 것인 신뢰이다.

이런 점에서 야마기시는 신뢰를 장담(Assurance)과 구분한다. 장담은 확실한 상황에서의 믿음이다. 흔히 조직폭력배의 상하관계를 예로 든다. 조직폭력배 간에는 서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배신할 경우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다거나 내 가족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나온다. 불확실한 상황을 확실하게 만드는 어떤 조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신뢰가 아니라 장담이다.

이상을 정리해보면 신뢰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상대방이 '공동체의 보편적 규범'을 따라 협력할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신뢰 중에서도 일반적 신뢰(Generalized Trust)가 중요하다. 이는 특정 관계나 특정 대상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만하다'는 생각을 뜻한다. 불특정 다수의 대한 믿음, 인간 본성이 악하지 않다는 믿음인 것이다.

일반적 신뢰가 높을수록 사회 구성원 전반은 처음 행동으로 협력을 택하게 된다. 일반적 신뢰는 인간의 본성인 상호성을 협동으로 유도한다. 반대로 일반적 신뢰가 낮다면 사회 전반적으로 협동이 일어나기 어렵다. 아이들에게 "모르는 사람과는 말하지 말고, 따라가지도 말아라"고 말하는 사회는 일반적 신뢰가 낮은 것이다.

20년 넘게 세계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는 "당신은 남을 얼마나 믿습니까?" 라는 질문을 통해서 각 국의 일반적 신뢰도를 측정한다. 조사 결과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 언제나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상위 수준이었지만, 불행하게도 가장 빠른 속도로 순위가 추락하고 있는 국가이다. 더 끔찍한 것은 15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같은 질문의 조사에서는 압도적으로 꼴찌를 차지했다.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신뢰를 만들어낼까? 자연과학의 문제였다면 실험을 통해서 어떤 현상의 원인을 상대적으로 쉽게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사회과학의 경우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변수를 통제하기가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계량경제학이나 통계학이 발달하여 실증연구가 활발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회적 현상에 대해 명확한 인과관계를 밝혀내기란 쉽지 않다. 특히 변수들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밝혀진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인과관계는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며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검토해보면, 일반적 신뢰와 상관관계를 갖는 요인들로 다음과 같은 것이 제기된다. 개인의 경우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다른 이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특히 가정교육과 초등교육의 영향이 컸다. 또한 전문직이고 고소득 집단일수록 그러했다. 반면 이혼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 실업자, 차별의 역사를 가진 소수인종, 건강이 나쁜 사람의 경우 일반적 신뢰가 낮았다. 교육, 소득, 직업, 건강 등이 일반적 신뢰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를 대상으로 분석한 경우 경제발전, 종교는 일반적 신뢰와 양의 상관관계가 있었다. 경제발전이 높을수록 신뢰가 높았다. 경제발전이란 일반적으로 재산권 확립 및 공정한 경쟁과 동반된다. 즉, 계약이나 제도에 의한 최소한의 공정성이 보장된다. 이것이 신뢰를 촉진하는 요인이 되었을 수 있다. 혹은 반대로 신뢰가 높았기 때문에 공공재의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무임승차자가 줄어서 경제발전이 촉진되었을 수도 있다. 종교가 발달한 곳일수록 신뢰가 높았다. 종교는 이타적으로 살 것을 권하므로 신뢰를 촉진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국가부패, 소득불평등, 범죄율은 일반적 신뢰와 음의 상관관계가 있었다.

 

소득불평등은 신뢰를 떨어뜨린다

특히 소득불평등와 일반적 신뢰의 관계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부분이기에 자세히 짚어보고자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양극화이기 때문이다. 덴마크 정치학자 나네스터(Peter Nannestad)는 소득불평등이 집단 간 신뢰의 차이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소득불평등이 일정 수준 이상 심해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부족하거나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위 집단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거나 사회 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소득불평등은 일반적 신뢰를 떨어뜨린다. 특히 이 같은 불만과 의혹이 높은 상황에서 상위 집단의 부정부패와 같은 증거가 발견되면 적개심으로까지 발전한다.

소득불평등에 관해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한 소득재분배는 흔히 평등의 가치로 이야기된다. 그리고 평등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평등이 효율성을 강화시킨다는 연구들도 많다. 먼저 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이 이를 뒷받침한다. 케인즈는 불황기에 중요한 것은 총수요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고소득층의 경우 소비성향이 낮다. 10억 원을 번다고 생각해보자. 그 중에 얼마나 소비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많이 소비해도 10억 원 중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투자라도 해야 하는데 불황에는 투자할 곳이 없다. 따라서 고소득층은 총수요 증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저소득층은 소득의 대부분을 생계유지를 위해 소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어나면 그만큼 소비가 늘어나고 총수요가 만들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소득재분배는 경기 회복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

두 번째는 평등이 다양성을 촉진하여 효율성을 높인다는 설명이다. 핀란드의 교육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모든 아이들이 저마다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면, 모두가 일등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개인의 기량 극대화는 사회적 성과의 극대화로 이어질 것이다.

세 번째는 평등이 신뢰를 가져오는데, 신뢰는 거래비용 감소, 공공재 공급 증가, 제도의 성공이라는 결과를 유도하여 효율성을 높인다는 설명이다. 거래비용은 199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코즈(Ronald Coase)에 의해 제기된 문제이다. 코즈는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라면, 그래서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점에서 균형이 이루어진다면 왜 굳이 기업이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그 이유로 거래비용을 제시했다. 어떤 상품을 구입하고 판매할 때는 적절한 대상을 탐색하고, 계약을 맺고, 그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감시와 처벌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노동자를 고용할 때, 그 사람이 해당 일자리에 적합한 사람인지 알아보아야 하고, 근로조건들을 합의하여 계약을 맺어야 하고, 그 후에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감시가 필요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경제활동은 사실 이런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있다. 기업은 필요한 거래와 경제활동을 기업 내부로 끌어들여서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코즈의 설명이다. 서로 간에 신뢰가 있다면 거래비용은 줄어들 수 있다. 비용이 주는 만큼 이익은 늘어날 것이고 이는 효율성 증가로 이어진다. 공공재의 경우 비경합성과 비배재성이라는 독특한 성질로 인해서 무임승차자가 많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서로가 신뢰하는 사회라면 협력을 통한 자발적인 공공재 생산이 활발해질 것이다. 또한 신뢰가 쌓이면 사회 제도가 지켜질 확률이 높아지고, 제도가 튼튼한 상태에서는 경제활동도 안정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제도를 잘 만들면 신뢰가 촉진될까?

다음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제도와 일반적 신뢰의 관계이다.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제도를 만들어야 신뢰가 촉진될 것인가이다. 아니, 그 전에 제도가 신뢰를 촉진할 수 있는가 부터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제도는 보상과 응징으로 구성된다. 협력할 경우 보상을 받고, 배반할 경우 응징을 당한다. 사람들이 제도를 신뢰하면 타인에 대한 신뢰도 높아질 수 있다. 제도가 정확하게 응징과 보상을 한다면 타인이 나를 배반할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에 대해서 불신하게 되면 타인에 대한 불신은 더 심해진다. 타인이 나를 배반해도 제도가 응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만 보면 좋은 제도는 신뢰를 촉진하는 것 같다.

야마기시의 실험은 제도가 신뢰를 촉진시키는 사례를 보여준다. 실험에서 처음에는 물질적 동기에 의해서, 즉 제도에 의해서 사람들이 협동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 물질적 동기가 사라져도 사람들은 여전히 협동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도와 신뢰가 반드시 양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은 노동운동이 강한 나라이지만 정작 노동법은 허술하다. 노르웨이는 성평등이 가장 잘 실현된 나라이지만 성평등법은 약하다. 이 두 나라의 경우를 보자면 신뢰가 강한 곳에서는 제도가 약하다. 내면의 규범만으로도 유지가능하기 때문에 제도가 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도는 사람들의 행동을 하한선으로 추락시킬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하이파 유치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러 오는 시간에 지각을 하자, 벌금제를 도입했더니 오히려 지각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전에는 유치원 교사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지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벌금제가 도입되자 벌금만 내면 된다는 면죄부가 생긴 것이다. 이후 벌금제를 없앴지만 지각은 더 늘어났다.

따라서 제도를 만들 때는 섬세한 고려가 필요하다. 모든 제도를 설계할 때 그것이 신뢰를 구축하는지에 대한 평가가 따라야 한다. (하지만 애초부터 불신이 높은 나라라면 어떨까? 이런 경우에는 강한 제도가 필요할 수도 있다.)

경제학자들은 행정적 규제보다 시장화를 통한 제도를 선호한다. 대표적인 방식이 하딘이 공유지의 비극에서 제시한 것으로, 공유자원에 사적소유를 부과하는 것이다. 즉, 공공재를 시장재로 만든다. 공유자원은 비배재성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도 공유자원을 사용할 수 있어 무임승차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기술이 발전하면서 무임승차자를 걸러낼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원래 방송은 공공재였는데 기술의 발전으로 케이블티비가 등장하면서 요금을 지불한 사람만 방송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시장화를 통한 제도는 신뢰에 어떤 영향을 줄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시장화가 신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다. 행동경제학의 실험에서 ‘시장’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사람들은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공동체’라는 이름을 붙이면 더 이타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제도 역시 마찬가지로 작동하지 않을까?

인간이 만든 제도 중 가장 강력한 제도는 국가이다. 국가는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국가는 일반시민의 권리를 위임한 것이다. 폭력도 쓸 수 있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거나 협력하지 못하는 부분은 국가가 강제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신뢰에 어떤 영향을 줄까? 스웨덴의 저명한 정치학자 로스슈타인(Rothstein)은 정부의 불편부당성(impartiality), 또는 정부의 질(quality)이 신뢰를 촉진하는 핵심적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국가가 공정하다고 생각될 때 사회 구성원 사이의 신뢰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로스슈타인의 분석에 의하면 스웨덴 국민들이 정부의 불편부당성을 공유하게 된 것은 1930년대 총리였던 사회민주당 출신 정치가 한손(Per Albin Hansson)에 의해서이다. 당시 스웨덴에서는 자본가가가 파업하는 노동자를 공격하다가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이들이 모든 자본가와의 타협은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손은 범법행위에 대해서만 처벌할 뿐 나머지 관계는 인정했다. 이 때의 경험이 스웨덴 국민들에게 국가의 불편부당성을 각인시키는 집단기억이 되었다.

우리 국민들이 국가와 정부에 대해서 갖고 있는 집단기억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또한 국가가 이미 지배계층의 특권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때의 불편부당성은 지배계급의 편을 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1)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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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4 / 10 김병권/ 새사연 부원장

2012년은 선거의 계절이다. 우리나라는 선거만 되면 의례히 ‘굵직한 개발공약’들이 줄줄이 발표되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다르다. 이미 지난해 보편 복지의 파고가 한국사회를 한차례 휩쓴데 이어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의 담론이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5년 전의 ‘성장과 경제 자유화’ 의제 대신에 지금은 ‘복지와 경제 민주화’ 의제가 선거 공약을 좌우하는 판이한 지각변동이 일어난 셈이다. 특히 극적으로 등장한 경제 민주화라는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 민주화는 재벌체제라고 하는 선출되지 않은 경제 권력에 대한 문제제기일까. 아니면 너무 심각해진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것인가. 도대체 지금까지 시장 경제는 얼마나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것인가.

사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자기조절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시장에서 각 개인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 저절로 모두의 이익이 달성되므로, 시장의 자율을 존중하고 국가나 제도가 섣불리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정치가 이른바 ‘정치논리’를 가지고 경제에 개입하면 시장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면서 관치 경제나 정경유착 사례 등을 지목하기도 한다.

이런 논리에 입각해서 보면 시장 경제의 논리구조에 민주주의를 끌어들이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시장은 그 자체로 가장 합리적인 지점을 찾아 움직이는 것인데 여기에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 가치를 들이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이 잘못되어 실패할 가능성은 아예 없어 보였다. 더구나 시장 경제를 논하면서 윤리 도덕적인 냄새가 짙은 정의나 공정, 공평을 말하는 것은 대단히 어색한 것처럼 간주될 수밖에 없다.

한 발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는 전통적인 경제영역뿐 아니라 의료, 교육, 주거 등 사회적 영역, 심지어는 정부 조직과 같은 영역에 이르기까지 시장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모든 사회운영원리를 시장 원리로 작동시키는 사회를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신자유주의를 ‘시장 지상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980년 미국과 영국을 필두로 지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왔던 이데올로기이자 현실에서 관철되어온 규칙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우리나라도 사회 구석구석까지 이러한 논리가 스며들었다.

그러나 세계를 풍미했던 ‘시장 지상주의’는 2008년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시장이 작동을 멈추고 붕괴해버렸기 때문이다. 단순한 금융시장 기능의 실패를 넘어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4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시스템은 복구되지 않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를 역임한 라구람 라잔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목도하면서 시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한탄했다. “도대체 규제기관과 감독 기관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시장 원칙은 어디에서 한눈을 팔고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자기 보존을 위한 민간 기업의 생존 본능은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자유 기업 정신에 의거한 제도가 총체적으로 망가졌단 말인가? 이번 위기가 어느 개도국에서 발생한 그저 그렇고 그런 위기였다면 위와 같은 질문은 절대 나올 수가 없다. 그리고 이번 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해볼 때 쉽게 답을 찾으려 하거나 아무 답이나 갖다 붙이려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시장은 스스로 완벽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조정하는 능력이 매번 있는 것도 아니며, 거대한 시장 실패가 발생했을 때 세계 경제와 인류에게 미치는 충격과 고통은 엄청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목도하게 되었다. 그 동안 알고 있었고 주류 경제학자들이 설교해왔던 시장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확신이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면 진짜 시장의 능력과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시장은 과연 정의롭고 공정한 결과를 가져오기는 하는 것인가. 아니라면 어떻게 시장의 실패를 방지해야 하고 교정해야 하는가.

이정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거의 화두가 되고 있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지를 편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관철되는 의사결정 방식은 1원 1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권리를 행사한다는 점에서 1인 1표의 원칙은 철저하게 평등주의에 입각한 원칙이다. 하지만 1원 1표의 원칙은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돈에 비례해서 더 많은 권리를 부여하는 한편, 돈 없는 사람들의 의사는 아예 묵살한다는 점에서 매우 불평등한 원칙이다.” “시장은 조직 구매력을 가진 선호만을 반영하는 까닭에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는 무시되기 일쑤이지만 부자들의 선호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존중된다.”(이정전, 『시장은 정의로운가』, 142쪽)

바로 시장경제의 1원 1표 원칙에 내재한 불평등성 때문에 정치 영역에서 1인 1표 민주주의는 시장이 초래한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정치에서 민주주의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시장이 만들어내는 불평등은 완화될 수 없고 점점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가 시장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신자유주의 논지와 달리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각각 어떤 적극적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묘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지는 사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비교적 잘 반영되어 있다. 우리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일종의 ‘자유 시장 존중’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항이다. 곧바로 이어서 2항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경제 민주화’ 조항이다.

그런데 외환위기 직후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시장경제라고 도입했던 신자유주의는 고용불안과 가계부채,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라고 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이명박 정부까지 계속되었다. 금융과 교육, 보건과 보육 등 더 많은 삶의 영역이 자유 시장에서 거래 되도록 작동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주적인 의사결정은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자유 시장은 민주주의와 함께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2012년, 우리는 시장의 자유가 아니라 경제의 민주화라는 국민적 요구 앞에 서게 되었다.

이정전 교수는 더 나아가서 우리사회가 시장원리 하나만으로 작동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영역에서 각자 알맞은 운영원리가 있음을 적시해주고 있다. 첫째는 가정과 이웃, 공동체에서 적용되는 필요의 원리다. “가정에서는 성과주의가 별로 지지받지 못하는 가운데 필요의 원칙이 지배적이다.” 엄마는 용돈을 나눠줄 때 아이들에게 필요한 만큼 나눠주지 성적이나 집안일에 기여하는 정도를 가지고 나눠주지 않는다. 둘째는 경제에서 적용되는 성과주의 원리다. “응답자의 80%이상이 직장에서의 소득은 일의 성과 및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보는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에서 적용되는 민주주의 원리 즉 평등의 원칙이다.

시장만이 지배하는 사회를 버리고 2012년 선거를 통해 우리는 어떤 사회를 염원해야 하는가. “경제 영역에서는 성과주의에 입각해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생산을 많이 하도록 하며, 정치 영역은 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분배를 고르게 하고, 사회화 영역에서는 필요의 원칙에 알맞게 나누어 쓴다면 우리 사회는 잘 조화된 사회가 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사회야 말로 정의로운 사회요, 일찍이 그리스 철인 플라톤이 꿈꾸던 이상 사회다.”(이정전, 『시장은 정의로운가』, 279쪽)

이 글은 4월 5일자 기획회의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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