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북]2012년 경제, 유럽을 알아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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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여는글

◆ 유럽 국채시장은 왜 붕괴하고 있는가(여경훈)
1.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쩔쩔매게 만든 유로 퍼즐
2. 통화주권을 포기한 처절한 대가
3. 국채시장 붕괴의 배경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있다.

◆ 유럽위기: 긴축은 위기해법이 될 수 없다(여경훈)
1. 긴축, 그 위대한(?) 반전
2. 합성의 오류, 가계와 정부는 다르다.
3. 조정, 손뼉을 마주쳐야 한다.

◆ ‘하나의 통화, 하나의 시장’꿈의 좌절(김병권)
1. 그리스 디폴트를 넘어 유로 존 존립이 의문
2. ‘하나의 시장, 하나의 통화’에 대한 꿈
3. 유럽 연방과 유로 지역 해체 사이에서

◆ 유럽위기와 동아시아, 한국. (정태인)
1. “유럽의 꿈은 사라졌는가.”
2.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과 한국경제에 대한 함의

<<분열의 벼랑 끝에 몰린 유럽, 세계경제를 흔들다.>>

 “그리스는 지난해 최대 공기업 그리스 전력과 피레우스 항구, 엠포리키 은행 등 팔릴만한 정부 재산은 모조리 매물로 내놨다. 국유자산을 매각해 2015년까지 500억 유로를 마련한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11월 이동통신 주파수를 3억 800만 유로에 매각한 것을 제외하곤 투자자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유서 깊은 고대국가 그리스가 팔리고 있다면서 국가 채무의 늪에 빠진 그리스가 중요 국유자산을 팔아 빚을 갚아야 하는 처참한 현실을 소개한 언론의 보도 일부이다. 위기의 진원지인 남유럽 국가들의 생활현장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 세계가 2008~2012년까지 중앙은행 자금을 풀고 정부 빚까지 내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반짝 회복 효과에 그쳤을 뿐, 2008년 이후 세계경제는 좀처럼 성장활력을 찾지 못하고 장기 침체 국면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지난 30년 동안 누적시켰던 구조적 문제, 즉, 국내적 소득 불평등과 국제적 무역 불균형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난제 때문이다.

1%를 위한 경제가 한계에 이르다.

신자유주의 금융화, 단기 수익추구, 노동 유연화는 다수 노동자와 국민들의 소득을 억제하면서 기업과 금융의 이익을 극대화시켜왔다. 그 결과, 사회 구성원의 1%는 소득이 비약적으로 팽창했고 99%의 소득은 제 자리 걸음이었다. 각 국가 국민경제의 소득 불평등이 구조화된 것이다. 그러나 99%의 국민들의 소득으로 소비를 늘리지 않고서는 기업이 생산한 상품을 팔수도 없고 경제가 발전할 수 도 없다. 그것이 경제다. 빼앗기는 자가 죽어 나가면 빼앗는 자도 살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2007년까지 경제가 발전한 것은 빚을 얻어서 소비를 늘렸기 때문이다.

전 세계 소비를 주도했던 미국 시민은 매년 자신이 번 소득의 110%를 소비했다. 저축을 한 푼도 하지 않고 소득을 모두 써버렸을 뿐 아니라, 추가로 빚을 얻어 소비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외형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른바 ‘적자 호황’국면이 그렇게 1990~2000년대를 풍미하면서 미국인들이 ‘대 안정기’라고 부르는 호시절을 누렸던 것이다. 특히 구입비용이 많이 드는 주택과 자동차 등을 빚을 얻어서 구매했고 그 결과가 2008년 금융위기다. 이제 금융위기로 부채를 더 늘리는 것은 고사하고 이미 늘어난 빚을 줄이는 국면으로 반전되었다. 번 소득의 최소한을 빚 갚는 곳에 쓰고 나머지를 모조리 소비해도 이제 2007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소비가 늘지 않고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 근본적이 이유다.

그러면 적자호황 뒤에 이어진 부채 축소의 긴 침체기를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 상식적으로 간단하다. 이제부터라도 1%에 집중된 부를 99%에게로 되돌리고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것이다. 돈을 쓰고 먹고살 수 있는 여력을 확충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1%가 과거처럼 탐욕스럽게 이익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규제를 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1%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서 99%에게 재분배 해주어야 한다. 사적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게 하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공공일자리를 만들어 국민들이 일을 하고 소득을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에 전 세계 청년들과 시민들이 불평등을 혁파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게 된다. 그것이 2011년 타임지가 선정한 인물인 바로 ‘시위자(Protesters)'이다. 아랍의 민주화 시위자, 스페인의 분노하는자. 미국의 월가시위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우리는 99%(We are the 99%)‘라는 구호를 걸고 1%의 탐욕에 저항하는 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2012년 세계경제의 희망은 99%운동이 얼마나 더 사회지형을 바꿀 것인지에 달려 있을지 모른다.

 역내 불균형이 유로 통화권의 진짜 위기

국내적인 소득 불평등에 이어 또 하나의 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국제적인 불균형이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과 미국 사이의 무역 불균형이다. 미국은 미국 시민을 고용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대신 중국의 값싼 상품을 수입해 소비했고 월가를 중심으로 금융 산업만 비대화시켰다. 그 결과 돈은 중국과 월가로 집중되었다. 중국으로 흘러간 돈은 다시 미국 국채와 교환되면서 미국으로 되돌아 왔고 미국 시민들은 그것을 빚으로 얻어서 또 소비를 했다. 그럴수록 중국에는 미국 국채로 표시된 외환 보유고가 쌓여갔고, 반대로 미국은 국가부채와 가계 부채가 늘어났다. 2008년 금융위기의 국제적인 요인이 이것이다.

한편, 중국과 미국 사이의 불균형에 비견되는 국제적 불균형이 바로 최근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유럽의 위기 속에도 있었다. 유럽의 위기는 흔히 그리스를 필두로 한 남유럽 국가들이 재정위기로 알려졌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상에 불과하다. 정부의 방만한 살림운영과 ‘놀고 먹은’ 남유럽 시민들에 대한 과도한 복지지출 때문에 재정위기가 발생했다는 평가는 사태를 전혀 잘못 파악한 것이다. 복지지출이라면 남유럽 국가 보다는 북유럽 국가가 더 많다. 재정적자 수자만 놓고 보면 일본이 국내총생산 대비 220%로 세계 최고다. 미국도 100%에 근접했다.

유럽 국가채무위기는 유로 통화권 내부의 경상수지 흑자 국가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오스트리아와 적자국가인 남유럽 국가 사이의 무역 불균형에 있는 것이다. 유로 통화와 단일시장으로 이들 사이의 경쟁력과 무역수지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차가 커졌다. 그 결과 남유럽 국가들은 독일과 프랑스 은행 등에 국채를 발행하고 돈을 빌려왔다. 그럴수록 남유럽 국가들의 대외채무는 점점 늘어갔다. 그러나 단일 통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통화정책, 금리정책, 환율정책을 사용하여 경상수지 불균형을 조정할 수도 없다. 이것이 남유럽 국가들의 대외 채무위기로, 그리고 북유럽 은행들의 채권부실 위기로 표현된 것이다. 유로 통화권의 불균형이 유럽을 위기로 몰아넣고 유로 존을 붕괴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중국만이 세계경제의 유일한 희망인가?

국내적 소득 불평등과 국제적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함으로써 세계경제는 동력을 잃고 또 다시 어려운 국면에 진입했다. 2012년은 유럽의 붕괴위기가 미국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파급되면서 한국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경제는 세 개의 주요 축에 의해 움직여왔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와 유럽의 유로 통화동맹과 그리고 세계의 생산기자 중국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는 2008년을 분기점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금융은 이제 미래의 성장 동력이 아니라 규제의 대상이고 구조조정의 대상이다.

2010년부터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한 유로 통화동맹도 점점 더 근원적인 문제들을 노출하고 있다. 유로 존의 해체냐 유럽 합중국을 향한 재정통합이냐의 갈림길에 들어선 것이다. 유럽 시민의식(European citizen)이라는 연대의식도 갖춰지지 않은 채 자유 시장 논리에 의해 유럽의 통합을 기대했던 희망은 무너졌다. 현재로서는 유럽 주변국을 향한 거대한 마샬플랜 정도가 아니라면 재정통합은 불가능하다. 유로 존의 해체가 임박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세계경제 지탱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규모 10%를 차지하면서 2위 경제권으로 부상한 중국이 세계경제의 마지막 지탱축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수출을 매개로 글로벌 무역불균형에 편승하여 10%대의 안정적인 고성장을 구가해왔다. 신자유주의 세계경제호황의 덕을 보면서 그 한 축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대외적 요인에 의지해 성장할 수 없게 되었다. 유럽 위기가 현재화되자 2011년 말부터 중국 수출은 10%대로 줄었고 2012년은 한자리 수를 지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표현대로 ‘중국 경제발전 모델을 전환‘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과연 중국은 2012년에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를 지탱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어쨌든 2012년 세계경제 향방은 일단 유럽이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세계경제를 알려면 유럽을 먼저 파악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연구원은 지난해 연말, 긴박해지는 유럽위기 국면을 해부하고자 시사 주간지 <시사 IN>에 4차례에 걸쳐 유럽위기를 연재하고 유럽은 구조적 결함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어 전망이 매우 비관적임을 예시한 바가 있다. 올해 유럽의 향방을 판단하는 준거로 충분히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테마북으로 엮어 보았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2012년 1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김병권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12.19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 12월 9일과 12일에 한국은행(이하 한은)과 정부가 각각 경제전망을 발표했다. 이번엔 두 기관의 전망이 똑같이 3.7%다. 정부가 자신의 정책 의지를 표현한다며 0.5%p 정도 성장률을 추가하던 짓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사뭇 신중해 보이는 이 수치들은 과연 믿을만 할까? 작년 예측이 1% 이상 틀렸듯이(작년 이맘때 정부는 금년 성장률이 5%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금년에도 답은 “아니오”다. 나는 작년보다 훨씬 더 자신있게 내년 경제성장률은 2%대에 머물 것이라고, 상황이 나쁘면 마이너스 경제성장의 위기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은과 정부는 세계경제가 내년에 3.6% 성장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이 수치는 IMF(국제통화기금)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11월 초 전망을 받아들인 것이다. 특히 OECD는 유럽 재정위기의 전개를 기본(baseline), 낙관, 비관 시나리오로 나눠 각각 세계경제성장률이 3.4%, 4.0%, 2.1%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비관시나리오의 가정대로 유럽 일부 국가가 무질서한 국가부도에 빠지고 이들 나라의 국채를 대량으로 소유하고 있는 프랑스, 독일의 은행들이 파산하는데도 세계경제성장률이 2.1%를 유지한다는 게 합리적인 전망일까?

필자가 보기에 가장 그럴듯한 것은 UN의 최근 전망(“World Economic Situation & Prospect", 2011.11) 이다. 똑같이 유럽의 상황을 기준으로 세 시나리오 별로 UN은 각각 2.6%, 3.9%, 0.5%로 예측했다. 낙관 시나리오의 경우 OECD와 유사하지만 기본인 경우 0.8%p, 그리고 비관은 1.6%p나 차이가 난다.

한은과 정부는 각각 내년에 수출이 5.0%, 7.4%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실 경제에서 통용되는 주먹구구 계산법에 따르면 세계경제성장률이 1% 줄어들 때 우리 수출 증가율은 4%가량 감소한다. EU가 그럭저럭(muddling through) 사태를 수습하는 기본 시나리오라 해도 UN의 예측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6%p 정도 낮춰 잡아야 한다.

한은과 정부의 전망에서 내년 경제성장률을 끌어 올리는 주된 국내 요인은 민간 소비다. 내년 우리의 소비는 3.2% 증가한다니 금년의 2.5%에 비해서 약 0.7%p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물가상승률이 낮아져서 실질소득이 증가한다거나 교역조건이 나아져서 실질구매력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민간소비가 금년 수준에 머무른다고 가정하면 정부의 경제성장율 예측에서 약 0.35%p 정도를 줄여야 한다. 수출과 소비의 변동만 합쳐도 2%p 가량이 낮아져야 한다. 물론 수입도 감소할 것이기 때문에 전체로는 이보다 덜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2%대 성장이 합리적인 예측일 것이다.

그러나 이 얘기 역시 내년 세계경제가 그럭저럭 지뢰밭을 통과한다는 걸 전제한다. UN의 음울한 전망대로 우리는 또 다른 위기로 향하는 모퉁이를 돌아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우리는 부동산거품과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747 비행기는 이륙도 못하는 고물이라는 게 판명났지만 금년에도 정부의 항로는 똑같다. 수출이 어려우니 “내수활력제고”를 위해 경제자유구역의 투자를 활성화하고, 민자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상향 조정하고 창업 중소기업과 에너지 절약시설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하며 FTA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단다.

물론 전가의 보도인 “서비스산업 선진화”, 즉 개방, 민영화, 규제완화도 빠지지 않는다. 새롭다면 “국유지 수의매각 요건 완화”라는 이름으로 국가 소유 땅도 팔아먹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지난 4년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MB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지경이니 국민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빚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총수요 감소에 대한 단기해법은 과감한 소득재분배, 자산재분배 외에는 없다. 부자감세가 아니라 부자증세가 가장 쉬운 답이다.

내년의 총·대선에 나설 후보들은 금년 또는 늦어도 내년에 터질 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발표해야 한다. 특히 부동산 버블 폭발에 따른 서민경제 위기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는가가 선택의 기준이 될 것이다.

이 글은 PD저널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 / 01 / 19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1. 경제개혁이 실종된 2010년

 

미국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이 현재화된 2007년 이후 4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폭발시켰던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기점으로 잡아도 2년이 더 될 만큼 세계경제 불황은 장기화되고 있다.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라고 표현하든 아니면 대침체(Great Recession)이라고 표현하든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깊고 큰 상처를 남기면서 인류에게 경제 사회적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경제 불황을 지금도 여전히 겪고 있는 중인 것만은 확실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경제위기에 직면한 세계 주요 국가들이 1929년 대공황의 학습경험을 살려 유래 없이 신속하게 재정과 통화를 투입하고 국제 공조를 과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채 1년도 지속되지 못한 채 2010년 2분기를 정점으로 회복세가 꺾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미국 등 주요 경제 선도국가들이 1929년과는 달리 국내 산업기반이 상당히 취약할 뿐 아니라 재정과 채무구조도 매우 허약한 상태여서 1929년 방식의 케인주의적 부양책을 효율적으로 구사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한 1929년과는 달리 국제적 생산 분업 구조가 아시아를 포함하여 훨씬 복잡하게 얽혀있고, 글로벌 금융자산의 세계화 정도 역시 연간 세계 무역규모 32조 달러의 5배가 넘는 175조 달러로 팽창한 조건에서 일부 국가의 재정적, 금융적 역량만으로 세계 금융시장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는 사정도 있을 것이다.

 

경제적 혼란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어느 쪽에서도 향후 ‘지속적이고 균형적인 경제발전’ 방향을 제대로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진다. 재정긴축인가 재정 팽창인가, 통화 공급 확대인가 축소인가, 무역과 경상수지 불균형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글로벌 통화체제의 안정성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금융 규제의 정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 고용여건을 해소하면서 국가와 개인이 안고 있는 부채를 어떻게 축소시킬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누구도 내놓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현실이 불안정할 뿐 아니라 방향도 불확실한 상태인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과거 경제발전을 약속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실제로는 경제 불안정성만 확대해왔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인 개방화, 자유화, 금융화, 민영화, 작은 정부 기조에 대 수술을 감행하여 경제의 구조개혁과 체질개선에 착수하는 것만이 세계경제위기가 안겨준 심각한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공감대는 꾸준히 확산되어 갔다. 한국 경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명목으로 집권한 이명박 정부의 핵심 경제 비전이 바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경제였으며 여기에 1970년대식 토건 경제를 얹은 정도였기 때문이다. 집권 초반에 글로벌 경제위기에 직면한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은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2010년 외형적인 경기지표가 뚜렷한 호조를 보이면서 경제개혁과 정책전환 이슈들은 급격히 탄력을 잃어갔다. 국내총생산은 전년도의 기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예상을 뛰어넘는 6% 이상을 달성했으며, 주가는 금융위기 이전 사상 최고치였던 2000선을 넘어섰다. 마이너스 7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던 일자리도 외형적으로는 30만 개 이상이 신규로 만들어졌다. 수출 증가율도 30% 가깝게 가파르게 회복되기 시작하여 외환 보유고는 3000억 달러에 접근하게 되었고 세계 무역규모 7위로 올라서면서 2011년에는 무역 규모가 1조 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등장하게 되었다. 1인당 국민소득도 3년 만에 2만 달러로 복귀했다. 지표 경기 수치 자체로만 놓고 보면 경제정책의 대전환이나 절박한 경제구조개혁을 해야 할 이유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를 반영한 듯, 정부가 무려 1년 동안을 뜸들이며 준비하여 2010년 10월에 발표했던 ‘국가 고용전략 2020’은 2020년 선진국 수준의 고용률 70%달성이라는 거창한 목표와 달리 그 어떤 획기적인 고용구조개혁 방안도 없었다. 금융개혁과제 역시 무성했던 논의와 달리 현실적으로 취해진 조치는 은행 예대율 개선이나 외화 예금 조달에 대한 약간의 규제 말고는 없었다. 오히려 논란이 되었던 외환은행은 하나은행에 인수 합병되고 우리은행 민영화 일정도 속도를 붙이는 등 신자유주의적 기존 정책이 수순에 따라 집행되고 있다.

 

지표경기 실적 회복세를 배경으로 각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은 강행되었으며 2010년 8월 부동산 부양책을 내놓으면서 주택거품도 유지시켜갔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경제 불황을 우리 경제 구조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창했던 진보세력은 경제개혁을 위한 핵심 의제들을 국민들과 호흡하지 못한 채, 4대강 사업을 저지하고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유지, 확대하고자 복지의제를 확산하는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의미 있는 경제개혁 의제가 사실상 실종된 것이다.

 

 

 

2. 개혁 동력도 회복 체력도 상실한 글로벌 경제

 

그렇다면 세계 경제 차원에서는 위기를 초래한 구조적 문제점들이 해결되면서 안정적인 회복세로 접어들게 된 것인가. 그 결과 경제개혁 과제들이 더 이상 절박하지 않게 되었고 그것이 한국경제에도 그대로 투영된 것인가. 안타깝게도 글로벌 경제의 현실 상태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경제위기를 막으려 했던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 덕분에 2009년 2분기부터 약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글로벌 경제는 자유낙하를 멈추고 일정하게 수습국면에 돌입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한 숨 돌릴 여유를 확보했던 2010년은 글로벌 경제가 위기를 초래한 구조적 문제점들에 대한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여 경제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한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던 시점이기도 했다. 2010년에 접어들면서 각 국가들은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위기 수습대책들을 서서히 거둬들이면서 경제작동을 시장으로 되돌려주는 ‘출구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위기를 초래했던 핵심 영역인 금융규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악화된 고용사정이 미처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잠복되었던 재정위기, 통화위기 등이 전면에 불거져 나옴으로써 생산과 소비 모든 부문에서 경제 회복세는 짧은 수명을 다하고 다시금 둔화국면으로 진입한다. 2010년 상반기에 터져 나온 남유럽의 재정위기는 그리스 구제 금융으로 이어졌고 시차를 두면서 그 해 11월 아일랜드 구제 금융으로 확산되었다. 2010년 하반기부터 불거진 미국 경기의 재 침체 우려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조치를 수반했고, 결국 치열한 환율전쟁(Currency Wars) 개시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 사이 기대 섞인 출구전략 시행과 위기 이후의 새로운 세계경제질서 구상은 실종되었고 다시금 2차 위기관리 시스템이 속속 도입되었다.

 

미국경제가 추가적인 6000억 달러의 양적완화 조치로 위기관리에 들어가고 유럽은 1000억 유로에 가까운 아일랜드 구제 금융으로 재정위기 확산 차단에 부심한 가운데, 신흥국들과 아시아는 선진국들의 넘쳐나는 과잉 유동성의 여파로 커져가는 금융시장과 부동산 시장 거품을 막기 위한 대책에 부심하고 있는 상황, 그것이 지금 세계경제의 현주소이다. 문제는 이들 대책들이 전혀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추가적인 재정확대의 한계에 몰린 오바마 정부가 재정이 아닌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여 양적완화 정책을 써서 고용회복과 경기부양을 기대하고 있지만, 이는 실물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 보다는 자본시장을 경유해 미국 밖으로 빠져나갈 가능성만 높다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미국 안에서도 적지 않다.

 

사정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아이슬란드와 그리스에 이어 아일랜드에까지 구제 금융을 결정하면서 재정위기 확산을 막으려 하고 있지만, 지급 불능에 빠진 이들 국가들에게 부채 규모 자체를 축소하지 않은 채 부채 금리를 조금 인하거나 만기일을 연장해 줄 뿐인 구제 금융으로는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위기를 해결하기 보다는 위기를 지연시키는 쪽의 대책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 결과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고용부담을 내재한 채 세계경제는 뚜렷한 둔화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대부분의 전망 기관들이 2010년 세계경제 성장률이 4.5%전후였던 것에서 2011년에는 4.0%전후로 둔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2010년 하반기 표면화되었던 환율전쟁은 각 국가들이 국제 공조아래 자국의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만으로 고용회복 등 실물경제를 회복시킬 수 없다는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즉, 무역 상대국에게 통화 절상 압박을 가하는 등 타국 경제의 일정한 희생을 담보로 자국 경제의 회생을 도모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국제 공조체제의 사실상의 균열이자 무역전쟁의 전초전 성격이라는 우려할 만한 조짐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당초 이명박 정부의 기대와 달리 환율전쟁의 격전지가 되고 말았던 2010년 11월 서울 G20정상회의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환율 문제도 일단 흔히 쓰는 전쟁에서는 벗어났다"면서 환율전쟁 종식을 선언했지만 사실 환율전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 우선 환율전쟁을 초래하게 된 내적 동인인 각 국가의 실물경제가 앞으로도 회복세를 타기 보다는 둔화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자국 경제 회복을 위해 타국 경제의 희생을 요구하는 환율전쟁의 유인은 여전히 강력하게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축 통화국가인 미국의 적자구조가 앞으로도 지속되면서 달러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글로벌 달러체제에 대한 불신과 도전이 더 확대될 것이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글로벌 경제는 아직도 위기관리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위기적 조짐들을 잠복시킨 채 불안한 봉합국면을 이어오고 있는 중이고, 그런 점에서 경제개혁의 필요성은 더욱 절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3. 실물경제는 중국의 손에, 금융경제는 미국의 손에

 

그렇다면 세계경제로부터의 탈 동조화(de-coupling)가 사실상 허구라고 하는 것이 입증된 지금, 한국경제는 세계경제의 재 침체와 여전한 불안정성 환경 아래에서도 어떻게 기대 이상의 높은 실적을 달성하면서 경제개혁 과제들을 묻어버리고 있는가. 더욱이 자유화, 개방화 경제를 성장 동력으로 삼아 발전해왔던 한국경제가 유사한 경제 모델을 채택했던 아이슬란드나 아일랜드, 두바이와 같은 전철을 밟는 것은 고사하고 어째서 실물과 금융 양쪽에서 OECD 국가 가운데 최고의 성적을 올리면서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국가 재정투입임은 부인할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GDP 대비 30% 미만의 양호한 국가부채 규모를 유지해왔던 한국정부가 상대적으로 큰 충격 없이 대규모 재정투입을 단행하여 떨어지는 경기지표들을 떠 받쳐온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은 거의 모든 국가들이 동시에 시행한 정책이었다. 더구나 2009년에 비해 2010년에는 재정지출 효과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2011년에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정부 재정지출만으로는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여기서 대외지향적인 한국경제가 2000년대를 경과하면서 정착시켰던 경제구조 변화를 재검토해봐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구조와 체질 면에서 상당한 변화를 겪어왔지만, 대외 경제관계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양상이 두드러진다.

 

첫째는 금융시장의 개방화와 자유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한국 금융시장이 월가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금융시장 안에 유력 신흥시장으로서 편입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자본 차입시장, 주식 채권시장, 외환시장은 대외적으로는 해외자본의 유출입 규제가 거의 사라지면서 글로벌 자본의 움직임에 따라 동조화되는 경향이 높아졌고, 대내적으로는 소매금융시장이 급팽창하면서 가계의 대출과 유가증권 거래 규모가 확대되어왔다. 그리고 이는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촉진하는 금융적 기초가 되었다.

 

월가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금융자본은 개방화와 자유화 정도가 매우 높아진 신흥시장인 한국 금융시장에 다양한 경로로 진출하여 한국 소비자 금융시장을 급 팽창시켰고, 은행과 보험,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을 통해 막대한 금융수익을 실현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례하여 규모화와 겸업화를 내걸고 덩치를 키워온 국내 은행들과 외은지점들의 수익성은 빠른 속도로 증가했으며, 주가는 2007년 2000포인트를 찍고 시가 총액 기준으로 1000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양적인 팽창을 거듭했다.

 

한국 금융시장 변동의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변수가 외국자본이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외국자본의 영향력이 얼마나 되는가는 G20서울 정상회의가 열리던 지난 2010년 11월 11일 충격적인 옵션 쇼크 사태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장 마감 10여분을 남기고 동시호가가 이루어지는 시간대에, 도이체 방크 런던 법인 통합계좌를 통해 헤지펀드로 추정되는 한 펀드가 한국 도이치 증권을 경유하여 매수차익거래로 무려 2조 3천억 원이 넘는 현물매도와 선물 매수를 쏟아내면서 순식간에 주가를 50포인트 이상 떨어뜨렸던 것이다. 이제 한국 경제의 미국 의존도는 과거처럼 무역시장이나 기술 의존 관계보다는 금융시장에서의 의존도가 가장 중요하게 되었다.

 

 

둘째로, 한국의 실물경제와 상품 무역에서 중국경제와의 연관도가 압도적으로 높아진 점이다. 불과 10년 전인 2000년만 해도 한국의 중국 무역 의존도는 수출이 10%, 수입이 8%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정확히 미국 의존도의 절반에 불과했다. 그 나마도 상당수 무역이 유력 대기업들의 핵심 제품이 아니라 열악한 중소기업들의 저가 상품 거래가 차지했다.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부차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불과 10년 만에, 특히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한국의 전체 수출 가운데 25%를 대 중국 수출이 차지하게 되었다. 홍콩을 포함하면 무려 30%에 이른다. 그것은 이제 미국의 3배에 가까운 규모가 되었고 1980년대 말까지 미국이 누려왔던 절대적 수출시장의 지위를 중국이 대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영세한 중소기업의 중국 진출이 줄어들고 있는 반면, 유력 대기업들 중심의 중국 진출과 중국 수출이 대 중국 무역을 주도하게 되면서 한 중 무역은 한국 실물경제 변동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수입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국 자본주의 역사 이래 언제나 최대 수입국이었던 일본마저 중국이 대체하게 되었다.

 

특히 한 중 무역을 주도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사내 유보율이 700%에 달할 만큼 막대한 자체 자금조달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에 국내 금융시장 변동성에는 크게 좌우되지 않는 반면 중국경제의 성장 여부에 따라 기업 실적이 영향을 받는 구조가 되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여, 2000년대 이후 한국경제는 금융경제와 실물경제가 이원화되면서 금융경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자본시장에 깊숙이 편입되었고 실물경제는 중국경제와의 연관도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구조로 대외 지향적 경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의 국민경제라는 틀 속에서 실물경제와 금융경제가 정합적으로 맞물리지 못하고,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축을 향한 원심력 형태로 이원화된 한국경제의 대외 의존성은 금융위기에 대한 한국경제의 대처 양상과 이후 회복 양상에도 그대로 특징이 드러나게 된다.

 

 

4. 미국 효과로 부풀려진 금융시장 활황, 중국 효과에 의지한 실물경제 회복

 

우선 미국 발 금융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2008년 말 무렵, 한국경제는 개방화된 외환시장과 증권시장, 그리고 은행의 차입시장 경로를 통해 위기 충격이 가감 없이 전달된다. 환율 폭등과 주가폭락, 은행 대외차입 시장 경색이 현재화되면서 외국자본 유출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질주했다. 그런데 2009년 2분기 이후 경기회복세가 시작되자 이번에는 반대 방향의 흐름이 뚜렷해졌다. 한국 금융시장으로의 자본유입이 시작된 것이다. 2010년 까지 매해 30조원 규모의 해외 자금이 증권시장에 유입되었고 채권시장에는 그 두 배에 달하는 자금이 들어왔으며, 국내 은행의 차입시장도 신용경색이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환율은 하락세로 돌아서게 되었다.

 

특히 2010년 하반기 이후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 발표 여파로 자본유입이 가속화되자 주가는 2000선에 육박할 정도로 빠른 속도의 상승세를 구가했다. 이제는 과도한 자산거품을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고 유입된 외국자본이 또 다시 유출로 방향을 틀 경우 예상되는 충격을 대비해야 하는 실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다수 정책 결정자들과 매체들은 주가 2000 재 돌파에 환호하면서 한국 증시의 활황이 마치 한국경제의 탄탄함을 입증해주는 징표가 되는 것처럼 들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물경제로 주의를 돌려보자.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 차원에서 실물경제로 전이되자 한국경제도 곧바로 침제에 접어 들어섰지만 오래지 않아 강한 반전 국면으로 진입했다. 그것은 한국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풀려 은행들이 적극적인 신용공급을 재개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흔히 지목되는 요인은 정부의 재정지출 효과와 환율효과이다. 부분적으로는 타당한 진단이지만 실물경제 회복 요인을 온전히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특히 환율효과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봐야 한다. 우리나라 원 달러 환율은 2008년 1100원대에서 2009년 1270원대로 올라감으로써 확실히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출증대 효과가 있었으며, 주요 경쟁 상대국인 일본의 환율 하락이나 대만의 미미한 환율상승에 비해 유리한 효과를 누렸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2010년에는 환율이 반대로 1160원 수준으로 전년에 비해 100원 이상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 30%의 수출 증가율을 기록했던 것을 일반적인 환율효과로 돌릴 수는 없다.

 

한국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던 수출증가는 2009~2010년 사이 매년 1%이상씩 수출비중이 커지면서 평균 수출 증가율을 훨씬 상회하는 수출 확대를 가능하게 한 중국효과(China Effect)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산업연구원의 분석결과에 의하면 2008년 상반기에서 2010년 상반기 2년 동안 한국경제 GDP성장률 4.2% 가운데에서 그 절반이 넘는 2.2%는 대 중국 수출이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3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우리의 외환보유고 확대 역시 대 중국 무역이 절대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2010년 중국과의 무역수지 흑자는 390억 달러를 초과하면서 규모가 늘어나는 반면, 미국과는 겨우 76억 달러 흑자로 흑자폭마저 줄어들고 있고, 일본과는 -310억 달러 적자로 적자폭이 늘어나는 것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이처럼 한국의 실물경제 회복과 성장에는 환율효과에 감춰진 중국효과가 작용했던 것이고 그 수혜를 주로 대기업이 입으면서 대기업 실적도 크게 호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경제의 대침체 가운데에서도 중국경제가 8~9%의 고성장을 지속시키면서 세계 경제규모 2위에 등극했던 효과를 인접 무역 상대국인 한국이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중국 경제가 1% 성장하면 전 세계 국가들에게 3년 뒤에는 0.2%포인트, 5년 뒤엔 0.4%포인트 추가 성장 전이 효과를 낸다는 분석도 있을 만큼 현재 중국경제가 한국 경제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 전체를 견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 중국 수출 비중 27%를 차지하고 있는 대만에 이어 두 번째로 대 중국 무역비중이 큰 중국의 인접 국가가 한국이다. 중국 효과가 그 어떤 나라보다 가장 크게 파급되었을 것임은 자명하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대중국 수출의 70%가 중국의 대외수출을 위한 중간재 형태이고 중국이 최종 소비지로 수출되는 비중은 아직 30%정도이기 때문에 중국 효과란 사실상 선진국 경제회복 효과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경제 침체로 제한된 세계 시장에서 한국경제가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수출을 확대하는 문제와 중국의 수출 경쟁력을 등에 업고 수출을 확대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또한 아직 제한적이지만 중국 내수시장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한국경제가 수혜를 입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5. 한국경제의 자생력 회복을 위한 경제개혁 과제

 

한편에서는 미국경제가 위기 탈출방안으로 내놓은 2차 양적완화 기류를 타고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자금이 밀어올린 주가상승 분위기와, 또 다른 편에서 중국경제의 고 성장에 편승하여 늘어나는 수출로 얻는 경제 성장률과 무역수지 흑자에 도취되어 구조 개혁과제를 도외시하고 있는 상황이 오늘의 한국경제이다. 한국경제의 취약한 체질개혁은 제대로 시작도 못한 채 불안정한 대외변수가 만들어 준 기대 이상의 성적에 환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대외변수에 기댄 양호한 실적들은 글로벌 경제의 재 둔화 추이로 인해 부정적 측면들이 확대되고 있다. 거시 경제 지표만 보더라도 2010년 상반기 국내 총생산이 전년 대비 7.6%였지만 하반기에는 4.6%로 추세가 꺾이기 시작했고 이는 2011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 선행지수를 포함하여 광공업 생산지수, 설비투자와 수출 동향, 취업자 수 동향 등 대부분의 경기 지표들도 거의 대부분 상승 보다는 둔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경제 역시 ‘짧은 회복, 재 둔화’라고 하는 글로벌 경제의 추이를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대외변수에 의해 창조된 성장 실적의 마취에서 깨어나 우리 경제의 실체를 제대로 진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대외적 변동성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안전장치를 확보해야 한다. 대외 요인이 언제까지나 한국경제에 우호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불안정하게 과열되고 있는 금융시장에 방화벽을 구축해 안전장치를 서두르는 것이 한국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긴요하다. 금융 산업이 현대 경제 발전을 위해 여전히 필수적인 영역인 것은 틀림없지만, 실물경제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는 미래 성장산업이라는 발상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발상아래 추진된 금융 개방화, 자유화 역시 긍정적 효과 보다는 부정적 문제점이 크다는 것이 공유되면서 신흥국들이 앞 다퉈 자본 유출입 통제(Capital Control)에 나서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어쩌면 2010년 11월 G20서울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가장 중요한 결론은 “변동환율제하에서 환율의 고평가가 심화되고 있는 신흥국들은 신중하게 설계된 거시건전성 규제 도입을 통해 대응할 수도 있다”는 대목일 것이다. 외환에 대한 거시건전성 규제라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상 자본 유출입 통제를 정당화해준 문구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자본통제로 방화벽 구축 -> 안전성이 확보된 금융시장의 공익적 성격 확대 -> 실물경제 지원 복원이 금융경제 개혁의 기본 방향이 되어야 한다.

 

 

 

신흥국들이 취하고 있거나 예정인 자본 유출입 통제

구분

국가

(예상) 조치

이미 도입

브라질

외국인의 자국통화 표시 채권, 주식투자에 부과하던 거래세율을 6%로 계속 인상

인도네시아

외국인의 중앙은행채권 매입시 최소 1개월 보유 의무를 부과

태국

외국인 채권투자 소득에 대한 원천징수(15%) 면세조치를 폐지

대만

유입된 외국인 투자 자금 중 대만 국채 및 MMF 상품 투자 비중을 30% 이내로 제한

중국

금융회사들의 차입규모 쿼터제를 더욱 철저히 준수하고 외화유입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입장

추가 도입

브라질

거래세율 인상, 국채 투자에 대한 자본 소득세 부과 가능성

인도네시아

단기 국채에 대한 보유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추가 연장

태국

주식 투자 과세 등

인도

통화 당국은 부인중이나 시장에서는 규제 도입 가능성 전망

대만

국내 유입 자금 중 투자되지 않은 자금에 대한 fee부과 고려

신규 도입

말레시아

중앙은행 총재, 필요시 해외자본유입에 대한 공동대응 시사

콜롬비아

통화 당국은 부인중이나 시장에서는 규제 도입 가능성 전망

필리핀

역내 NDF에 대한 규제강화 고려, 외채 구조 및 상환일시 변경 고려

* 한국은행, “신흥시장 주가, 채권가격, 환율 강세의 배경과 정책 대응”, 2010.12

둘째로, 한국 실물경제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한 중 경제관계가 상호이익이 지속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한 중 무역 의존도는 되돌릴 수도 없고 대체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2010년대 내내 더욱 강화되어 갈 것이 분명하다. 특히 중국효과는 무역뿐 아니라 국내 경제구조와 고용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인데, 금융위기 이후 370만까지 떨어졌던 제조업 노동자가 최근 410만 명까지 회복되면서 경기상승과 고용흡수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중국효과와 연관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문제는 2000년대 초반까지 대 중국 관계에서 중소기업 중심의 저가 임가공이 퇴조하고 이후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주력 상품들의 생산기지로 변모했던 것처럼, 향후에도 빠르게 경제 무역관계의 형태가 변화해갈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한국경제가 기술력과 자본력의 비교우위를 앞세워 무한 팽창할 수 있는 ‘기회의 땅’처럼 중국시장이 간주되었지만, 언제까지나 중국이 시장을 내주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고 오히려 격차가 줄어들거나 역전될 소지도 얼마든지 있다. 조선업의 사례에서 이미 그 단초가 나타나고 있고 중국이 최근 외자에 대해 베풀었던 대부분의 특혜를 철회하면서 외자 의존도를 줄여가는 것도 이와 연관된다. 국가적 차원에서 한국 산업전망과 무역전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 중 경제 전략이 필요한 지점이다.

 

특히 우리의 최대 무역상대국이며 인접국가로서 중국 경제는 적어도 생산과 무역 면에서 세계경제의 중심지대로 떠오르고 있으며 세계경제의 한 축을 아시아로 이동시키고 있다. 향후 한국의 실물경제는 글로벌 차원 이전에 ‘아시아 속의 한국경제’라는 구조 틀, 특히 한 중 경제 관계라는 구조에 의해 규정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이에 비하면 정부가 그토록 많은 양보를 통해 타결한 한미 FTA가 한국경제에 주는 영향은 부차적인 것이다.

 

또한 2010년 11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이 입증해주고 있는 것처럼, 현재의 중국 효과는 일부 대기업과 정규직 이상으로 수혜의 범위가 확대되지 않고 있으며, 어떤 측면에서는 대기업들의 중국으로의 생산기지 이전이 늘어나면서 국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대 중국 경제 전략이 일부 대기업만의 ‘황금 시장’이 아니라 다수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도록 국가가 나서서 대중 경제 전략을 펴야 하는 이유다. 한미 FTA 변수가 아니라 중국 변수를 고려한 한국경제의 산업구조 개혁과 무역구조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금융시장에서의 미국변수와 실물시장에서의 중국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고 하더라도 국내 경제구조 개혁에 대한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대외적인 호조건 그늘에 감춰진 국내 경제의 허약 체질은 예상보다 심각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를 통 틀어 한국의 내수시장은 금융업 - 건설업 -부동산 시장이 서로 얽히면서 주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지금도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한국 국민들의 경제생활을 짓누르고 있는 3대 악재, 즉 고용의 양과 질 악화, 가계 부채의 증가,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충격 우려를 안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를 겪은 2009~2010년 2년 동안 고용은 연 평균 10만 명 남짓밖에 늘어나지 않았으며, 반대로 가계 부채는 2008년 말 688조원, 2009년 말 734조원으로 늘었고 2010년 9월말까지는 다시 770조원으로 불어났다. 소득 여력과 차입 여력이 소진된 국민들이 더 이상에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 수 없기 때문에 각종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은 하락세를 피할 수 없으며 ‘집 있는 빈곤층’이라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는 그간의 중산층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건전한 국내경제 체질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금융과 건설, 부동산을 엮는 개발방식을 접어야 한다. 대신 중소기업 중심의 제조업 기반을 확충하고, 영세 자영업을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발전적으로 유도하며, 절대 취약 분야인 사회서비스를 산업적 중추 분야로 육성해야 한다. 금융위기 와중에서 사회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은 상당한 공감대를 얻었지만 여전히 정부의 일회성 예산지원이나 의료산업 개방화나 민영화처럼 신자유주의적 사고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간 한국 내수의 주력 산업이었던 건설업을 대체하는 주력산업으로 정부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공익적 성격을 살려 육성할 필요가 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9.12.09 08:43
11월, 미 고용시장 회복의 시그널

지난 주 금요일 미 노동부는 11월 고용동향을 발표하였다. 2007년 12월 경기침체가 시작된 이후, 거의 2년 만에 극심한 고용시장이 점차 개선되는 징후들이 포착되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 일자리 감소 규모가 만 명 수준으로 확연히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아래 그림은 경기침체 기간, 고용이 감소한 시점부터 이전 고용수준을 회복하기 까지 걸린 시간을 역사적으로 비교한 것이다. 수직 낙하하던 고용 감소 규모가 8월부터 점차 완화되어 거의 바닥을 확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올 초만 해도 74만(1월) 개의 일자리가 감소했고, 이전 3개월(8-11월) 평균이 13만 5000 수준이었음에 비하면 매우 양호한 수준으로 개선되었다. 또한 9월(21만 9000→13만 9000)과 10월(19만→11만 1000) 고용지표도 수정 발표되어, 16만 명 정도 감소 규모가 줄어들었다.

실업률 또한 대부분의 예상을 벗어나 10.2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줄어들었다. 또한 주당 노동시간도 33시간에서 33.2시간으로 0.6퍼센트 증가하였다. 통상 고용시장이 회복되는 시점에, 신규 노동자를 채용하기 전에 기존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먼저 늘리는 점을 고려하면 긍정적인 시그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실업자가 32만 명 정도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경제활동인구의 감소(9만 8000명)와 비경제활동인구의 증가(29만)에 기인한 것으로 본격적인 고용시장 회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유로 시간제 고용에 종사하는 노동자 924만(비자발적 시간제 노동자), 구직을 하고 있지 않은 노동자 232만, 그리고 공식적인 실업자 1540만 명을 모두 포함하면 2695만 명이 사실상 실업상태에 놓여 있다(U-6 실업률 17.2퍼센트).

아직도 ’갈 길은 멀어’

2007년 12월, 경기침체가 시작된 이후 현재 약 800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매년 인구성장 추세를 고려하면, 매월 약 12만 개, 현재 23개월 간 침체가 지속되고 있으므로 290만 개의 추가적인 일자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경기침체 이전의 고용 수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1090만 개의 일자리가 필요한데, 앞으로 2년 동안 매월 58만 개의 일자리 증가가 요구된다. 이와 같은 지속적인 고용시장 회복은 지난 시기 미국경제의 회복 속도를 고려하면 불가능한 수치다. 따라서 현재 바닥을 확인하고 있는 고용시장은 내년 2사분기가 되어야 반등이 가능하고, 예전의 고용 회복 규모(매월 2-30만)를 가정하면, 최소 3년에서 길게는 5년의 경기회복 기간이 요구된다.

종합하면 미 노동시장은 점차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추세가 지속되면 내년 봄 즈음에 본격적으로 고용이 증가하겠지만, 경기침체 이전 수준으로 고용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수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경기가 회복되는 시점에, 그 동안 구직을 포기한 노동자(300만 명)들이 취업시장에 추가로 진입하므로 실업률 하락은 내년 여름까지 상승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8.07.08 10:10

7월 7일부터 9일까지 ‘부자 국가들의 클럽’ G8(선진 8개국) 정상회의가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린다. 선진 7개국과 1998년에 합류한 러시아로 이루어진 G8 국가들, 그리고 온실가스 감축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005년부터 동참하기 시작한 ‘신흥 경제개발도상국’인 중국, 인도, 남아공, 멕시코, 브라질 등 5개국 정상이 합류한다. 여기에 개최국인 일본이 특별 초청한 한국, 호주, 인도네시아 정상이 참여한다. 일본의 초청 덕택에 한국도 처음으로 G8 정상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수렁에 빠진 세계경제와 G8

원래 이번 회의의 주요 주제는 탄소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포스트 교토 의정서’ 제정 이지만 현실적으로 눈앞에 닥친 글로벌 경제위기 대처방안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지난 7월 2일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G8 정상들에게 서한을 보내 “세계 경제가 위험지대로 진입하고 있다. 유가와 식량가격이 동반상승하면서 세계 인구 중 1억 명이 극도의 가난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G8 정상들이 위기타개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세계 경제는 1년 전 미국에서 촉발된 신용경색과 금융 불안이 채 진정되기도 전에 글로벌 인플레이션이라는 매우 심각한 경제적 수렁으로 깊이 빠져 들고 있다. 특히 식량가격과 석유가격이 인플레이션을 주도하고 있고 이는 다시 달러와 환율, 금리 그리고 국제 금융자본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즉, 달러가치 폭락과 금융자산 투기화가 식량가격과 유가를 상승시키고, 이렇게 상승한 고유가는 다시금 물가상승과 주가폭락을 일으키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화의 선도자 G8의 시대는 가고

이와 같은 세계 경제 난맥상은 오히려 세계 최고 경제대국들의 모임인 G8 정상회의를 돋보이게 만들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G8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선진8개국 G8의 위상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1990년대 초 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미국이 군사, 정치적으로 유일 패권을 장악하던 시절, 자본주의적 세계 질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선진국들의 확신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넘쳐났다. 이들이 거침없이 주도하였던 ‘세계화(Globalisation)’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확고한 대세였다. 21세기라는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될 때 까지만 해도 그 기조는 유지되었다.

그러나 21세기를 통과한 지 8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첨단 금융메커니즘을 타고 전세계로 급속하게 전염되어 갔을 때, 선진국 중앙은행들과 정부들이 보인 행보는 신속하지도 협조적이지도 못했다. 그로 인한 심각한 영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매우 강력한 세계적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는 식량위기와 석유가격 폭등에 대해서도 아직 통일된 원인 진단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제 G8국가들의 위상과 능력은 20세기의 그것과 같지 않다. 이는 1997년 전세계에서 G8의 경제 비중이 65퍼센트였던 것이 10년 뒤인 2007년에 58퍼센트로 줄어들었던 데서도 드러난다. 이를 반영하듯 골드만 삭스 로버트 호매츠 부회장은 “세계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세계 경제권력 조직은 예전과 같지 않다. G8 회원국에 변화를 맞는 첫 시점이 찾아올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유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건 “매우 우려한다” 는 공허한 선언

국제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를 돌파하여 세계경제를 심각한 위기국면으로 몰고 가고 있지만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아직 유가상승의 원인 진단조차 제대로 모아지지 않은 상태다. 국제 금융자본의 투기적 거래가 유가 상승의 주요원인이라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지만,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즉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들의 수요 급증이 원유가격 급등의 원인”이라는 미국정부 주장이 여전히 거세다. 유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 수급차질인지, 투기거래인지가 합의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 의회 내부에서는 투기적 거래가 유가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행정부와 투자은행들은 투기효과를 크게 보지 않고 있다.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은 최근 “달러가 유가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작다.”, “고유가를 부추기는 몇몇 요소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지배적인 요인은 수급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급격한 원유가격 상승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 따위의 공허한 선언이 G8에서 합의될 석유문제 처방법이라는 황당한 보도가 나오고 있다.

실효성 없는 “식량 생산국 수출규제 원칙적 폐지”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나서서 투기성 자본이 석유와 농산물 등의 1차 산품 시장에 유입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를 제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참관인 자격인 브라질의 제의가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 의문이다. 결론적으로 석유가격 폭등을 막기 위한 투기자본 규제 대안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고유가에 대한 G8의 허술한 인식 수준은 식량위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G8 국가들은 식량문제 역시 주로 인도, 중국 등 신흥 성장국의 영향으로 인해 수요는 늘어나고 공급은 줄어드는 수급문제로 진단하고 있다. 때문에 대처 방안도 식량생산 증산문제와 식량수출통제 완화방안에 초점이 맞춰진다. 또한 식량 공급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별 식량비축제도(국가별로 곡물 비축량을 할당하여 할당된 식량을 보관하면서 비상시 시장에 방출해 가격을 안정시키는 시스템)를 만들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국제식량기구를 창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식량위기에 대한 G8의 결론은 “식량 생산국들의 수출규제를 원칙적으로 폐지한다.”는 정도로 모아지고 있다. 또 다시 의미도, 실효성도 없는 방안이 제출된 것이다. 사실 주요 식량 수출국들은 우크라이나, 아르헨티나, 인도, 카자흐스탄, 브라질, 파키스탄 등으로 G8과는 관계가 없는 국가들이다. 유일하게 러시아가 식량 수출국이자 G8 국가로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니 G8의 수출규제 폐지선언이 무슨 실효가 있겠는가?

전농과 민노총 소속 투쟁단 일본 입국 거부당해

이와 동시에 G8은 ‘식량으로 사용되지 않는 식물을 사용하는 제2세대 바이오 연료 보급 추진’을 합의 내용에 포함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영국 가디언이 폭로한 세계은행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바이오 연료 생산으로 인해 식량가격이 75퍼센트나 상승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바이오 연료 문제는 더욱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자선단체인 액션에이드도 보고서를 통해 선진국들이 바이오 연료에 대해 부과하고 있는 보조금을 철폐하고 경지를 바이오연료 생산지로 전용하는 것을 5년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번 G8 정상회의에서는 G8 국가들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세계 NGO들이 일본 삿포르에서 ‘반대 및 대안 서밋’ 행사를 열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자, 농민단체들도 참석을 위해 지난주 출국했다. 그러나 7월 3일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투쟁단 19명이 일본정부에 의해 입국을 거부당했고, 7월 4일에는 민주노총 투쟁단 5명 역시 입국을 거부당했다.

아시아의 경제대국 일본과 세계 일등 경제 강국들의 격에 맞지 않는 민감한 반응이다. 이들이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더 이상 자신들이 세계를 주도할 능력과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은 생활인과 함께 한국사회의 진보적 대안을 모색하는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 새사연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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