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7.11.20 21:02
 

지난 10월 31일자 모 경제신문의 사설은 참으로 용감(!)하다. 전직 고위임원의 ‘자수’로 삼성 왕국의 검은 돈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불완전한 인간이 모여 사는 곳엔 ‘합리적 무시’가 필요하다”고 대놓고 주장한 것이다. 말하자면, 자그마한 일에 우리들의 소중한 정신을 허비하지 말고 그냥 덮자는 것이다.


과연 무시하고 넘길 문제인가?


삼성의 뇌물은 3억 원이라는 액수가 밝혀진 1960년 3.15 부정선거 때부터 시작하더라도 이미 반세기에 가까운 역사를 가졌으니 기실 새삼스러울 바는 없다. 더구나 정경유착은 한국사회 모든 재벌의 공통된 경험이고, 선진국의 대기업들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 삼성은 내심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걸 다 아는 사람이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을 그냥 묻어둘 수 없는 이유는 ‘못된 놈 버릇고치기’의 차원에만 있지 않다. 삼성의 최근 행태는 IMF 사태 이후 완료된 ‘1대 재벌체제’가 한국사회 전반을 장악해 가고 있음을 드러낸 사건이다. 군사정부와 그 후예들에게 노골적으로 뒷돈을 대주던 삼성은 1998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야당이 정권을 잡자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이후 10년 동안 삼성은 스스로 국가권력을 넘어서려는 준비를 착착 진행시켜 왔다. 오늘에 이르러 삼성은 정치권은 물론 경제계, 법조계, 언론계를 비롯한 각계의 핵심부를 ‘돈으로 장악할 수 있는 수준’에 까지 도달하였다.


재벌총수가 내는 ‘승수효과’의 실체


삼성을 포함한 재벌의 불법, 탈법을 ‘법대로’ 처리하자는 여론이 등장할 때마다 검찰과 법원은 스스로 총대를 메고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재벌총수들을 선처(!)해 주었다. 이른바 재벌총수의 ‘승수효과(1단위의 변화가 전체 경제에 파급시키는 변화의 크기)’를 고려했다는 것인데, 과연 ‘승수효과’에는 긍정적인 것만 있는가?


한국에서 대기업의 최대주주가 고유명사인 ‘재벌(Chaebol)’이 된 것은 박정희 개발독재 체제의 산물이다. 국가와 대통령은 정치적 충성을 대가로 특정 자연인에게 금융 특혜를 포함한 각종 지원을 제공하고, 중소기업과 소비자들의 희생을 묵시적으로 용인해왔다. 재벌은 문어발식 확장과 상호출자, 교차복선출자를 통해 동일한 자본으로 수십 배 많은 자산을 지배하는 ‘한국식 자본주의’를 낳았다.


이런 구조는 1997년 외환시장의 완전자율화 과정에서 또 다른 ‘승수효과’를 낳았다. 물밀듯이 주식시장으로 들어 온 해외자본이 보기에 한국의 대기업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지분 90%를 넘나드는 주주들이 경영에 참가하지 않고, 일본이나 독일처럼 사회적으로 경영이 감시되지도 않는 상태에서 투기 자본들은 적은 자금으로도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었다. 해외 자본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은 가속화되고 기업 경영은 투자 기피 현상을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주요 대기업들의 지분 구조는 완전히 다국적화-외국인 주식 50% 이상-되면서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깊숙이 종속되었다.


더 심각한 ‘악의 승수효과’는 단순한 경제적 문제에 있지 않다. 경제학에서 ‘승수효과’를 널리 확립시킨 케인즈의 이론을 잠깐 보자. 케인즈는 개인들의 과잉 저축은 사람들의 소비를 위축시켜 기업은 물건을 팔 수 없어 생산량을 줄이게 된다고 보았다. 그러면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게 되고 그 실직자는 또다시 소비를 줄이게 된다. 이렇게 반복될 경우 개인들의 합리적인 행위는 경제 전체로는 큰 해악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재벌의 생존전략은 경제에 해악만 줄 뿐


삼성그룹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인’ 행위를 했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불법 비자금의 조성과 검은 로비는 삼성그룹이 아니라 정확히 말해서 재벌총수 일가를 위한 행위일 뿐이며, 지금 이 순간 합리적으로 보이는 행위가 경제를 포함한 사회 전체에는 해악으로 돌아올 것임은 너무나 자명하다.


“양심을 잃어버려, 자식들도 더 이상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법무팀장으로 있으면서 자신이 했던 일들에 대한 절절한 참회가 느껴지지 않는가? 특별검사를 통해 그를 구속하도록 하자. 특별검사가 그를 통해 삼성의 추악한 행태를 법대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고, 자식들의 존경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잊지 말자. 한국사회의 ‘1대 재벌 체제’와 ‘금융 종속’의 문제를 하나씩 풀며 싸워가야 한다는 사실을.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TAG 삼성
주제별 이슈 2007.11.20 21:01
 

이명박 후보의 신자유주의 정책 공세가 거침이 없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재경부 국정감사에서 <삼성 금융 계열사의 금융 지주회사 전환 로드맵(2005.5)> 보고서를 공개함으로써 여론과 정재계를 겨냥한 삼성그룹의 치밀한 준비 작업이 세간에 알려진 뒤, 지난 한 주간 이 후보의 발언 수위가 한층 노골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수면 위로 올라온 재벌의 요구


막강한 재벌그룹이 은행까지 소유하려 하는 데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질 법도 한데 이 후보는 삼성 보고서가 공개된 뒤 참석한 세계지식포럼에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추어 너무나 경직된 금산분리 원칙을 가지고 있다”며 금산분리 원칙 폐지를 강하게 시사했다. 며칠 뒤 한 시사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 후보는 또 “규제는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투자와 성장 부진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며 기업의 지배구조는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출총제에 대한 과감한 철폐”를 주장했다.


10년 전을 돌이켜 보자. 대기업의 방만한 문어발식 확장과 투명하지 못한 지배구조는 과잉 중복 투자와 불공정한 내부 거래로 귀결되어 국내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외환위기를 부르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출자총액제한제는 이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계열사 간 순환출자 축소를 규정한 것이다. 금산분리 원칙 역시 외환위기의 뼈아픈 경험을 반영한다. 당시 대기업들이 소유한 종금사는 금융기관으로서의 공익적 역할을 포기하고 재벌 대기업의 사금고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취약한 금융 시스템을 조장했다.


재계가 그동안 출총제와 금산분리에 대해 드러내놓고 강력하게 반발하지 못했던 것은 이 제도들이 가진 연원과 국민 감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삼성 보고서의 기획 의도대로 2005년부터 금산분리 정책에 대한 이의 제기가 관료사회 일각에서부터 솔솔 흘러나오고 일부 언론이 분위기를 조성하는 물밑작업이 이루어지더니 대선 국면에서 마침내 일제히 수면 위로 분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제2금융권 1위만으로는 만족 못하는 삼성


금산분리가 완화 또는 폐지될 때 가장 큰 혜택을 입는 재벌이 삼성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미 삼성은 그룹 전체 자산 중 금융 계열사 자산 비중이 절반을 넘는 ‘금융 재벌’로 변모했다. 2005년 기준으로 삼성 그룹 총자산 217조 원 가운데 금융사 자산이 132.8조 원으로 전체의 58.6%에 이른다. 자산규모 2위인 현대그룹과 4위인 SK그룹의 금융 계열사 자산 비중이 각각 23.3%, 3.1%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삼성은 은행만 소유하지 못했을 뿐 제2금융권에서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선물, 삼성투신 등 모두 10개의 금융 계열사를 소유중이며 각 계열사는 대부분 해당 업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삼성 금융계열사 자산 규모는 은행계인 국민, 신한, 우리, 농협에 이어 국내 5위다. 전체 금융사 자산에서 삼성 금융계열의 비중은 외환위기가 발발한 97년 말 4.4%에서 8.2%로 두 배로 늘었다. 금산분리 정책이 폐지되고 삼성이 우리금융을 인수하면 단번에 금융그룹 1위 규모로 올라가게 된다.


삼성은 그룹의 장기적인 무게중심을 금융 쪽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여러 차례 노출시켜 왔다. 국내 생명보험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의 매출을 2010년까지 47조 원 규모로 늘려 아시아 5대 종합금융회사로 도약한다는 목표, 역시 업계 1위인 삼성증권을 2020년까지 글로벌 톱10 투자은행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 등이 그러한 계획의 일환이다. 게다가 출총제와 금산분리 폐지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 구도에도 긴요한 조건이다. 결국 이명박 후보의 금산분리 폐지 공약은 슈퍼 금융그룹을 노리는 삼성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한 세기 전 그리고 10년 전의 교훈


금산분리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는 이명박 후보의 발언은 전혀 근거가 없는 선동임이 금융연구원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세계 100대 은행과 보험사 중 지배주주가 산업자본인 경우는 각각 4개, 8개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다. 세계적 스탠더드는 금산분리이며 제2금융권에 국한해 본다면 오히려 우리 나라가 너무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셈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융합은 시민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온갖 독과점과 투기, 과잉 투자와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낳고 끝내는 제국주의 세계대전을 불러왔다. 이러한 세기 전의 교훈으로부터 서구 국가들은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의 거센 도전에도 불구하고 금산분리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문어발 경영과 과잉 중복투자로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하여 금융시스템과 국민경제를 망가뜨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재벌그룹이 불과 10년 만에 다시 금융에 깊숙이 손을 뻗고 있다. 게다가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후보는 근거도 없는 논리로 앞장서서 이를 선동하고 재벌을 대변한다. 우리에게는 역사의 교훈이 아직 부족한 것일까?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