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18정태인/새사연 원장

고용없는 성장, 불안한 성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본이동통제, 자산가격규제, 재벌규제를 먼저 해야 한다. 아래로부터, 안으로부터의 성장을 하기 위해선 임금 상승, 에밀리아형 중소기업 클러스터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여기 또 하나의 성장동력이 있다. 바로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사회경제(social economy·사회적 경제로도 번역한다)’다.
 
경제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가정 아래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꾀한다. 반면 사회경제는 인간의 상호성(reciprocity)을 근거로 공정성(fairness)의 기준에 의해 연대를 도모한다. ‘착한 경제학’이 누누이 강조한 신뢰와 협동은 사회경제가 사회정의뿐만 아니라 효율성도 달성할 수 있도록 한다.
 
기실 사회경제의 역사는 시장경제보다 오래 되었다. 수렵채취시대에는 어느 종족이나 식량 공유의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또 동물을 잡거나 열매를 딸 때도 협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농경시대의 관습으로 아직도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두레나 계 역시 사회경제에 속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협동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윈의 생존경쟁은 동시에 협동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사회경제는 협동조합으로 재탄생했다.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는 노동조합을 만들어 착취를 막았지만 소비과정에서 또 다시 수탈을 당했던(예컨대 가짜 밀가루를 팔았다)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 최초의 협동조합이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 추구하지만 동시에 지역공동체 등의 사회적 목표도 달성하려고 한다.
 
1980년대 이래 서구의 복지국가가 재정위기에 빠지자 사회경제는 다시 각광을 받았다. 역사를 살펴보면 자본주의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사회경제는 대안으로 떠올랐고 부피를 늘려 왔다. 하여 최근에는 국가가 담당했던 복지서비스 중 사회서비스를 사회경제가 떠맡는 경우가 많이 생겨났다.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연대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이 바로 새롭게 생겨난 사회경제의 범주들이다. 이탈리이아 볼로냐의 카디아이(CADIAI)라는 사회적 협동조합은 과거 시정부가 하던 복지의 70%를 떠맡았는데 공급가격은 떨어지고 서비스 질은 훨씬 좋아지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에서도 자활공동체운동, 실업극복 국민운동 등으로 이어지던 사회경제의 흐름이 2007년 사회적 기업법, 그리고 최근의 협동조합 기본법의 제정으로 법제화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복지사회를 여는 한국에서는 처음부터 사회경제에 연계한 복지를 설계할 수 있다. 예컨대 국가의 건강보험시스템에서 마지막 의료서비스 전달(1차 진료)을 의료생협이 맡는다면 우리는 대통령이나 재벌이나 누리는 주치의제도를 확보하게 된다. 의료생협은 자체로 주치의 역할을 하지만 만일 건강보험에서 일정한 보조금을 준다면 말 그대로 영국식의 주치의가 생겨날 수 있다.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안성 의료생협의 경우 조합원 1인당 연간 1만원에서 2만원 정도의 보조금만 줘도 명실상부한 주치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많은 병을 예방할 수도 있고, 3차 의료기관에 직접 갈 필요도 줄어들 뿐 아니라, 값비싼 검사도 대폭 감소할 것이다. 따뜻한 경제가 동시에 효율성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사회경제는 지역공동체 속에 뿌리박아야 한다. 캐나다의 경우처럼 지역공동체의 사회경제정책을 사회경제부문이 담당할 수도 있다. 로컬푸드운동이나 재생에너지 사업, 제주 올레길이 불을 붙인 트레킹코스 사업, 숲 가꾸기 등이 모두 사회경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이다. 수많은 사회경제가 네트워크를 이뤄서 신뢰와 협동이 번져나가면 그것이 곧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축적이다. 이미 증명된 것처럼 사회적 자본은 사회혁신을 낳아 따뜻하면서도 효율적인 경제를 이루게 한다.

현재 2~3%에 불과한 사회경제를 최소한 10% 수준으로 늘린다면 우리 아이들은 훨씬 더 안전하고 따뜻한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을만들기 등의 사업도 1000만명 대상의 거대한 사회경제 프로젝트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사회경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3.08  정태인/새사연 원장 

전세계가 뒤흔들리고 있다.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 이래 최대의 경제위기에 학자들은 대침체(Great Recession)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무래도 불황(depression)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어감의 침체를 사용해서 빨리 이 수렁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희망도 담았을 것이다. 실제로 2009년에 세계 각국은 동시에 돈을 풀고 재정지출을 확대해, 출구전략의 시점을 가늠할 정도로 문제를 해결해 낸 듯했다.

시장만능 파국 맞아 ‘사회’ 가치 각광

그러나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적극적인 재정확대를 가로막았고 유럽에서는 역내 불균형 때문에 남유럽을 중심으로 경기침체가 시작됐다. 미국과 동아시아 간의 글로벌 불균형 역시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또다시 파국을 맞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미국, 유럽, 일본이 동시에 제로성장 언저리에 머무르는 일본형 장기침체(Long Recession)로 갈 가능성이 높다. 위기 때는 뻔하게 보였던 미시적 금융제도 개혁이나 거시건전성 규제마저 지지부진한 상태이고 완전히 파산한 주류경제학의 교수들은 오늘도 대학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똑같은 이론, 예컨대 효율시장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세계경제의 앞날은 말 그대로 ‘잔뜩 흐림’이다.

당연히 지난 30여년간 이 세계를 지배해 왔던 미국식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라는 말이 특별히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국가의 복지가 공격을 받으면서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가 부상했는데, 이제는 시장경제마저 뒤흔들리고 있으니 더욱 각광을 받는 것이다. 주류경제학의 이론대로, 기업의 단기 주주 이익 극대화로 사회 전체가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던져졌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적 책임 투자’를 새로운 글로벌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졌다. 존 롤스의 정의론이 인기를 얻고, 행정학에서 신공공행정론이 물러간 자리를 ‘공공가치행정론’이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움직임의 일환이다. 가히 칼 폴라니의 말대로, 시장만능이 불러온 파국에 대응해 ‘사회’를 내세우는 대응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 모두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한 몸부림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완전히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가 “짜잔” 하고 나타날 수는 없는 상황이다(예컨대 1929년의 대공황과 비교한다면 지금 시점에는 이미 새로운 경제학이 나타났어야 하고 중국은 미국을 한참 제쳤어야 한다). 하지만 10년 내지 20년의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사회’로부터 분리됐던 경제가 다시 사회 속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즉 경제가 사회적 규제를 받는 쪽으로 나아갈 것은 틀림없다.

‘사회적 경제’는 인간의 상호성에 기초해(Homo Reciprocan) 사회적 연대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경제부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이기성에 기초한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시장경제와는 다른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협동조합은 사회적 경제에서 가장 전통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다. 협동조합의 7원칙은, 진화생물학과 행동경제학이 밝혀낸 인간 협동의 조건을 고스란히 반영한 인류의 오랜 지혜이다.

최근에 만들어지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함께 협동조합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미리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구성하는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가 신뢰와 협동으로, 다소 느리겠지만 아주 단단하게 우리 사회의 공동체에 뿌리박는다면 우리의 시장경제에도 인간과 사회의 따뜻함이 스며들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이나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는 사회적 경제가 시장경제를 지배하여 가격의 움직임마저 부드럽게 규율하는 사회이다.

이기심 대신 협동으로 따뜻한 시장을

지금 국민들의 염원인 복지국가의 형성에도 사회적 경제는 기여한다. 복지의 마지막 전달경로에 공동체의 사회적 경제가 개입할 때 효율과 평등이 동시에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의 건강보험체계에서 의료생협이 1차 진료기관을 담당하게 되면 돈을 절약하면서도 훨씬 더 따뜻한 복지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에서 사상 최대의 사회적 경제 실험을 하고 있다. 복지와 사회적 경제, 이 둘이 손발을 맞출 수 있다면 한국은 어느덧 세계가 뒤따르고 싶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현한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 글은 한겨레에도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