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7 / 03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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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중소기업의 네트워크, 산업지구

학계에서는 에밀리아 로마냐의 성공 요인으로 산업지구(Industrial district)를 설명한다. 산업지구란 1809년 영국의 경제학자 마샬(Marshall)이 최초로 제시한 개념으로, 전문화된 작은 규모의 동일기업들의 다수가 특정한 지리공간 상의 지구에 모여 있는 것이다. 마샬은 분업이 심화되면 대기업에 의한 대량생산방식과 중소기업에 의한 산업지구 방식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보았다. 마샬은 산업지구의 특성으로 산업의 국지화를 통한 외부경제의 확보, 지구 내에서 전문화된 기업들 간의 분업 심화, 지구 내부의 건설적인 협력관계, 기업활동을 고취시키는 지역 사회의 분위기 등을 꼽았다. 그리고 이런 특성 덕분에 지구 내의 기업 간에는 물류비용과 거래비용이 감소하고, 전문 분야의 노동력을 공유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재고를 늘리지 않아도 되고, 기술의 학습과 전파를 용이하게 하여 잠재적인 혁신 역량을 강화해준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후 세계 경제는 중소기업에 의한 산업지구보다는 초국적 대기업들의 대량생산체제가 지배하게 된다. 포드주의가 대표적이다. 그러다가 197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대규모 공장들이 잇따라 문을 닫은데 비해 전문 중소기업들의 산업지구는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이탈리아계 산업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제3이탈리아 지방이 떠올랐다.

산업지구론을 연구한 대표적인 이탈리아 학자들이 산업지구에 관해 내린 정의를 몇 가지 살펴보자. 베카티니(Becatini)는 산업지구를 ‘제품생산과정을 여러 단계로 분리하여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의 영역적 체계’로, 스포르자이(Sforzi)는 ‘특정산업으로 전문화된 소기업들의 집적체’로 정의했다. 사벨(Sabel)은 산업지구를 ‘소규모 기업들로 구성된 마샬의 산업지구’와 ‘대기업들이 조직의 각 부분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형태로 재구성된 지역생산 네트워크’로 구분했다. 1990년 포터(Porter)는 관련 기업 간의 연계를 중심으로 대학, 연구개발, 지방정부 등이 복합된 산업클러스터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또한 1991년 이탈리아 법은 ‘전문적 소기업이 고도로 집적되고 기업과 지역 주민 간에 특별히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곳’이라고 산업지구를 정의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이탈리아의 산업지구는 전통적인 공예기술에 바탕을 두었다는 점, 유연적 생산기술과 생산방식을 접합하여 소비자들의 기호변화와 기술혁신에 신속히 대응했다는 점을 추가적인 특징으로 갖고 있다. 또한 기업들의 공동체와 주민들의 공동체가 결합되어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한 특징이다. 이는 공동체 내의 신뢰가 단순히 부수적인 요인이 아니라 필수적 요인이며 주민들의 동의, 다시 말해 민주주의가 동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이탈리아와 산업지구는 우리가 흔히 아는 클러스터와는 조금 다르다.

산업지구가 발전한다는 것은 동시에 그 지역 주민의 삶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적 성장과 함께 그 지역의 가치와 문화 역시 고양되어야 한다.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 사회와 경제의 분리라는 경제학적 이분법의 세계가 적용되지 않는다. 시장경제가 사회 안에 단단히 뿌리 박혀, 묻어 들어간 상태이다. 상호성의 원리가 경쟁의 원리를 제약하는 상태이다.

에밀리아 로마냐에는 9개의 현이 있는데 각각에 특화된 산업지구가 존재한다. 카르피는 섬유 및 의류 산업지구, 모데나와 레지오 에밀리아는 세라믹 및 농기계 산업지구, 라베나는 신발 산업지구, 리미니는 목재생산기계 산업지구, 폴리 세세나는 실내장식과 가구 산업지구, 파르마는 식료품 산업지구, 페라라는 바이오메디칼 산업지구, 볼로냐는 포장기계 산업지구로 유명한다. 우리로 치면 도를 이루는 각 시와 군에 각각 서로 다른 산업이 특화되어 있는 것이다. 2001년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탈리아 전체에 156개의 산업지구가 존재한다.

산업지구 내의 중소기업들은 정보, 장비, 사람, 주문을 공유한다. 수많은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시장조사, 기술 훈련, 인력 관리, 연구개발 등과 같은 사업서비스 기업과 금융서비스 기업이 등장했다. 마케팅과 유통을 돕는 기업도 생겨났다. 기업연합회도 조직되어 정보, 훈련, 금융,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주 작은 전문화된 소기업들이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협력과 동시에 치열한 경쟁을 한다. 다만 공동체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가격경쟁보다는 제품차별화 경쟁을 택한다.

예컨대 세라믹 산업으로 유명한 사수올로의 산업지구에서는 에나멜, 페인트, 풀, 포장, 기술상담, 그래픽과 디자인, 보관과 수송, 법률과 보험 등 세라믹 산업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제공하는 소기업들로 우글거린다. 그 결과 세계 최고의 아름답고 내구성 좋은 고품질의 타일이 탄생하고 있다. 물론 대기업의 경우도 이런 기능을 가진 부서를 모두 갖추고 생산할 수 있겠지만, 기업의 위계질서로 인해 각 부서가 최고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발휘하지는 못할 가능서이 크다. 사수올로의 여러 소기업들처럼 경쟁하면서 창조하는 관계가 되도록 대기업의 각 부서를 설계하고 운영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풍성한 사회적 자본과 기업가 정신

산업지구라는 네트워크가 발생시키는 외부효과를 좀 더 살펴보자. 각 기업의 기술과 노하우는 산업지구 내에서 자유롭게 공유되면서 지역 공동의 지식과 제도로 존재하게 된다. 또한 장기 반복 거래와 평판 효과로 쌓인 신뢰는 각종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공식적 계약이나 제도보다는 비공식적 관계가 저비용 고신뢰의 공유자산이 된다. 만일 공동체 내의 규범을 어긴다면 지역사회에 발붙이기는 어렵다. 지역의 고유문화와 역사는 구성원들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는다. 규범과 정체성은 다시 상호성을 강화하여 협력을 촉진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사회적 자본이 된다.

그 중에서도 사업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소기업이 눈에 띈다. 80년대 이후 에밀리아 로마냐의 고용 증가를 주도한 것은 서비스 산업이다. 이는 또한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이 지역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협동조합들의 협동조합인 레가코프(Legacoop, 협동조합전국연합)와 중소기업중앙회인 CNA는 회계와 금융 등 일반적인 사업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협동조합과 중소기업들이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산업진흥공사인 ERVET(Emilia Romagna Valorizzazione Economica del Territorio)를 세웠다. ERVET에서는 각 지역마다 실질서비스센터(Real service center)를 세워 각 지역별로 전문화된 산업에 필요한 구체적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흔히 금융, 마케팅, 기술개발과 같은 사업서비스는 중소기업의 지속적 발전 앞에 놓인 죽음의 계곡으로 불린다. 하지만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이러한 사업서비스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자산으로 형성되어 있다.

기업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자본이 충만하다는 조건은 기업가 정신의 고양으로 이어진다. 지역의 공유자산을 이용하여 언제든지 기업을 창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와 기업가라는 계급적 차이 또한 절대적이지 않다. 사장과 노동자가 공산당(현재 민주당)에 같이 가입해서 활동한다. 이탈리아에서 노동조합이 가장 강한 지역이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은 기업가 정신에도 익숙하여, 노동조합은 기술변화와 구조조정에 아주 유연하게 대응한다. 사실 노동자라고 해서 시장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창조성을 가지면 안 될 이유는 없다. 왜 노동자는 가치 자체를 새롭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가치 중에서 임금의 몫을 늘리는 데에만 온 몸을 받쳐야 하는가? 한국에서라면 반동적일 수 있는 이런 의문이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스웨덴이나 네덜란드의 노자간 역사적 대타협과 사회적 합의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그런 합의가 일상에서 아주 미시적 차원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역 정부의 지원과 법제화

공산당이나 지역정부와 같은 공공부문에서의 뒷받침도 에밀리아 로마냐의 성공 요인 중 하나이다. 50년대 국제공산당인 코민테른에서는 ‘반독점 테제’가 결정되어 각 국가와 지역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에밀리아 로마냐는 독점적인 대기업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이 지역 공산당과 지역 정부는 반독점을 중소기업 육성으로 해석하고 실천에 나섰다. 당시 기술은 있지만 돈이 없는 중소기업들에게 놀고 있는 땅을 개발해서 시장 가격 이하로 제공했다. 산업지구의 인프라 건설과 금융 지원에 나섰다. 이후 70년대에는 ERVET와 실질서비스센터 등을 설립하여 사업서비스 지원에 나섰다. 80년대에는 공동 브랜드를 개발하고, 수출 촉진 정책을 폈다. 90년대에는 혁신지구 프로젝트에 나섰다. 특히 주정부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하여 공동체 내에서 신뢰와 연대를 지키면서, 다양한 구성원들의 요구를 반영하고자 했다.

또한 협동조합과 관련된 법제화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미 1947년 제정된 이탈리아 헌법 제 45조에는 협동조합의 역할에 규정되어 있다. 같은 해 제정된 바세비법(Basevi law)에서는 혀동조합의 비분리자산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면제하도록 하였다. 1983년 비센티니법(Visentini law)은 협동조합이 주식회사나 유한회사를 서립하거나 지분을 인수 보유하는 것을 인정하였다. 1992년에는 모든 조합이 이윤의 3%를 각출해서 협동조합 발전기금을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기금은 새로운 협동조합을 설립하거나 운영이 어려운 협동조합에 자금을 빌려주는데 쓰였다.


네트워크 안팎에서 오는 위기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네트워크의 단점 중 하나는 폐쇄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잠김효과라 불렀다. 잠김효과는 산업기술적 측면에서도 나타나고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기존의 기술체계에 대한 과신이 외부의 커다란 변화를 제 때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알아차리게 되어도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상호작용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기술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구성원 간의 친밀성이나 유대감은 외부 구성원에 대한 배타적 태도로 나타나거나 새로운 구성원을 유입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산업지구의 성공을 가져왔던 요인들이 역설적으로 위기를 불러오는 것이다.

네트워크 자체가 가진 문제 뿐 아니라 대외 환경의 변화 속에서 과연 에밀리아 모델이 건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화와 정보통신 혁명 속에서,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는 속에서 에밀리아의 중소기업들도 몰락하지는 않을까? 보통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자산특수성과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중소기업들은 수직적으로 통합되거나, 하청기업으로 전락하거나, 해외 이전하는 등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경제학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들은 아직까지는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먼저 에밀리아 로마냐가 가진 매우 강한 인문학의 휴머니즘 전통이 사회문화적 잠김효과를 방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구 40만 명의 소도시 볼로냐에서 온갖 인종을 다 만날 수 있으며, 최대 노동조합인 CGIL은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 증진에도 힘쓰고 있다.

그리고 에밀리아 로마냐의 중소기업들은 서로 연계된 기계제조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외부환경 변화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앞서 사업서비스를 담당하는 중소기업들이 우글대고 있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비중으로 보았을 때 서비스업에만 치중되어 있지 않다. 특화된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기계장비를 해당 지역에서 생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앞서 보았던 타일을 주로 생산하는 세라믹 산업지구에서는 역시 세계 1,2위를 자랑하는 세라믹 기계산업이 발전되어 있다. 세라믹을 생산하는 전 과정에서 필요한 기계들이 세라믹과 함께 그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농업 산업지구에서 우유를 생산하는 농가가 있다면, 그 주위에는 우유 팩을 생산하는 기업이 있고, 우유 팩 생산에 필요한 기계를 만드는 기업이 함께 존재한다. 세계적인 스포츠카 페라니나 람보르기니, 세계적인 오토바이 두카티도 에밀리아 로마냐에서 생산되는데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종적으로 부품을 조립하여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만드는 중소기업, 그에 필요한 수많은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 또 그 부품을 생산하는 기계를 만드는 중소기업이 함께 존재한다.

또한 변화하는 경쟁 환경에 적응하고자 외부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내부의 기술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브랜드, 마케팅, R&D 등 전략부문에 집중하면서 산업지구 전체의 기술 및 조직 변화를 주도하는 선도기업과 지구그룹(district group)이 등장하고 있다. 선도기업이란 말 그대로 새로운 기술과 체계를 가장 먼저 도입하여 변화하는 기업이다. 이런 기업이 있으면 서로 긴밀하게 형성하고 있는 네트워크를 통해 혁신과 변화의 성과가 전파될 수 있다. 지구그룹은 몇 개의 중소기업들이 법적 독립성을 유지한 채 주식의 교차소유를 통해 하나의 집단을 이루는 것이다. 쉽게 말해 여러 기업이 뭉쳐서 선도기업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친밀함이나 연대감 등으로 이어진 비공식적 관계가 계약을 통해 공식적인 것으로 변하고 있다. 이들은 소기업이 담당하기 어려운 마케팅, 금융, 신기술개발 등 전략 분야를 담당한다. 고용규모가 클수록, 글로벌 경쟁에 노출되는 기업일수록 그룹화의 경향은 강하다.

그렇다고 이들을 한국의 재벌이나 일본의 게이레츠(系列) 같은 대기업의 폐쇄적 네트워크 로 볼 수는 없다. 제품차별화를 강화하기 위한 수평적 네트워크와 함께 품질 향상을 위해 수직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의 중소기업 네트워크가 대기업에 흡수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소기업 간의 네트워크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중소기업 간의 인수 역시 합병을 하기 보다는 기존의 브랜드와 시설은 그대로 유지한 채 소유지분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중소기업 간 네트워크와 유연성 있는 체계라는 산업지구의 특징을 지켜가고 있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6)편으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7 / 02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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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에밀리아 로마냐라는 동네

오늘날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는 전 세계 91개국의 227개 협동조합연합체가 참여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가장 강한 나라는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및 캐나다인데 이들 국가에서는 인구의 절반이 조합원이다. 국민소득에서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나라는 핀란드, 뉴질랜드, 스위스, 네덜란드 및 노르웨이였다. 최근 ICA는 전 세계 300대 협동조합을 선정했는데, 여기에 포함된 협동조합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 프랑스,독일, 이탈리아 및 네덜란드였다.

여기서는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에 있는 협동조합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이탈리아는 1854년 토리노 노동자들이 만든 소비자협동조합을 시작으로 하여 150년의 협동조합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도 협동조합이 매우 활발한 곳 중 하나이다. 특히 에밀리아 로마냐에 가장 많은데, 이탈리아의 약 4만 3000여 개의 협동조합 중 1만 5000여 개가 에밀리아 로마냐에 있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이탈리아 20개 주 중 하나로 이탈리아 북동부를 가로지르는 곳이다. 면적이 약 22만Km2, 인구는 430만 명 정도이다. 우리나라 경기도와 비교하면 면적은 2배 정도이고 인구는 3분의 1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2010년 여름 <오마이뉴스>에서 이 지역의 사회적 경제를 취재하는데 동행한 적이 있다. 당시 이곳의 1인당 GDP는 4만 달러로 이탈리아의 국가 평균의 2배에 달했다. 최근에는 유럽이 경제위기에 빠져 유로가 평가절하되면서 지금은 이보다 낮을 것이다. 2006년 캐나다의 레스타키스(Restakis)가 쓴 ‘에밀리안 모델(The Emilian Model)'에 따르면 에밀리아 로마냐의 인구는 이탈리아의 7%이지만 국내총생산의 9%를 생산하고 있다. 이탈리아 전체 수출의 12%를 차지하며, 각종 기술 등 관련 특허도 30%가 이 지방의 협동조합이나 기업들이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곳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예전에 대학원 박사과정 때이다. 이 지역의 독특하고도 우월한 경제발전을 두고 1982년 이탈리아 경제학자 브루스코(Brusco)가 처음으로 ‘에밀리아 모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후 많은 학자들 이 지역을 연구하며 ‘제3이탈리아(3rd Italy)’, ‘유연전문화(flexible specialization)’등의 이름을 붙였다. 이탈리아는 남북의 경제적 격차가 큰데 남부 이탈리아와 북부 이탈리아라는 두 가지 구분에서 벗어나 높은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12개의 주를 가리키는 말이 제3이탈리아였다. 이 제3이탈리아 지역은 10인 이하의 중소기업 네트워크가 수요의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하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유연전문화라 불렀다.

에밀리아 로마냐를 방문했을 때 주 정부의 무차렐리(Muzzareli) 경제장관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가 말하길 “우리 주에는 40만 개의 기업이 있다” 고 했다. 그런데 에밀리아 로마냐의 인구는 약 400만 명, 따라서 하나의 기업 당 구성원의 수는 10명 정도인 셈이다. 여기에 노인과 어린아이를 제한다면 5~6명이 하나의 기업을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곳에는 대기업도 없고, 대규모 공단도 없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내수와 수출을 담당하며 경제를 떠받치고 있었다. 이 중 800개 가량이 협동조합이었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주도(州都) 볼로냐는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이다. 에밀리아 로마냐 국내총생산의 30%를 볼로냐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업 50개 가운데 15개가 협동조합이다. 볼로냐 주민들에게 협동을 통한 생활 방식은 매우 익숙하다. 소비자협동조합부터 농업이나 건설 등 각종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었다. 소비자협동조합 코프 아드리아티카(Coop Adriatica)의 경우는 등록된 조합원 수만 100만 명이 넘는다. 2008년 말 매출액만 20억 유로에 달할 정도이다. 조합원인 시민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을 구입하고, 이곳 마트에 진열된 제품의 70% 이상이 에밀리아 로마냐에서 생산된 것이다. 이들이 해당 조합마트에서 지출한 돈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다시 지역에 투자된다.


 

볼로냐의 다양한 협동조합들

이곳의 대표적인 협동조합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먼저 세계4대 와인협동조합인 ‘리유니트&치브(Riunite&Civ, 이하 리유니트)’를 들 수 있다. 1953년 9개의 양조장의 연합체로 출발한 리유니트에는 2010년 현재 25개 양조장연합과 2600명의 포도 재배 농민들이 가입되어 있었다. 리유니트에서 생산되는 와인 브랜드는 9개, 한 해 1억 1000만 병을 생산하며, 연간 매출 액은 1억 4000만 유로에 달했다. 생산된 와인들은 전 세계로 수출되는데, 저렴한 가격과 높은 질을 인정받은 덕이다.

영세한 규모로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와인을 유통시킬 힘이 없었던 농민들과 개별 양조장들은 이윤은 물론 손실까지 모두 나눠 갖는 공동운명체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원이 된 농민들은 단순히 양조장에 포도를 납품하고 마는 생산자가 아니라 조합의 의사결정 과정에 1인 1표의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가 되었다. 조합원들은 다른 와인 생산업체에 포도를 공급하는 것보다 더 높은 값을 받으며, 와인 판매에 따른 수익금의 일부도 분배 받는다. 조합원에게 분배되지 않은 나머지 수익금은 조합 내에 재투자에 경쟁력 강화에 쓰인다. 물론 조합원으로서의 책임도 따르는데, 개인 매출액의 2.5%를 출자금으로 내야하고 만약 손실이 생길 경우 부담을 나눠져야 한다. 허나 아직까지는 경영위기를 겪은 적이 없다고 한다.

두 번째로 볼 곳은 주택건설협동조합 무리(Murri)이다. 무리는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주택 수요자들이 만든 협동조합이다. 일반 건설회사들이 공급하는 주택을 수동적으로 구입하는 게 아니라 집을 사려는 수요자들이 원하는 집을 직접 짓는 것을 모토로 지난 1963년에 설립됐다. 지금까지 건설한 주택이 1만 2000여 채, 현재 가입된 조합원만 2만 3000명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주택건설협동조합 중 하나다. 무리에서 짓는 집은 가격에 비해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고, 태양광 설비를 갖추는 등 에너지 절약형으로 설계된다. 그러면서도 집값은 최대 20%까지 싸다. 무리에서 지은 임대 주택의 경우 임대료가 일반 임대 주택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집을 짓는 과정도 민주적이다. 건축 허가 과정부터 조합원들에게 상세한 정보가 제공되고 주택의 설계와 시공에 조합원들의 의견이 반영된다. 건축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의 집을 구입하고 싶은 조합원들은 1만 유로(약 1600만 원)를 조합에 내고 분양 신청을 한다. 경쟁률은 3:1 정도로 조합에 가입한 기간이 길수록 기회를 잡을 확률은 높아진다. 만약 주택에 당첨되면 공사 진척에 따라 6번에 걸쳐 중도금을 납입하면 된다.

무리의 경우 은행 빚이 아니라 조합의 내부 적립금으로 주택을 짓기 때문에 당장 집이 팔리지 않아도 자금 압박에 시달리지 않는다. 경기가 침체되어도 타격이 적다. 2010년 기준 무리의 내부 적립금은 4700만 유로에 달한다.

세 번째는 노숙자의 자활을 돕는 사회적 협동조합 라 루페(La Rupe)이다. 이곳은 시로부터 노숙자 시설을 위탁 받아 운영하고 그 대가로 일종의 용역비를 받아 직원들의 월급을 주고 시설을 운영한다. 이런 식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동조합을 사회적 협동조합이라 하는데, 이탈리아에서는 1970년대부터 생겨났다. 1991년에는 사회적 협동조합법이 제정되어 법적 지위가 확립되었고, 2010년 기준 이탈리아 전체 사회서비스 지출의 13%에 해당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볼로냐에서는 민영화된 사회서비스의 60% 이상을 협동조합이 제공하고 있었다.

네 번째는 앞서 잠깐 언급되었던 소비자협동조합 코프 아드리아티카(Coop Adriatica, 이하 코프)이다. 코프에서는 이페르 코프(Iper Coop) 등을 비롯한 대형 쇼핑몰 16개와 중소형 쇼핑몰 138개를 운영하고 있다. 코프의 조합원이 되려면 25유로의 가입비를 내야 한다. 2010년 현재 105만 명의 조합원이 존재하며, 이들이 낸 기금이 무려 19억 유로에 달한다. 2009년 매출액 역시 19억 4900만 유로에 달했다.

코프 조합원이 아니어도 코프 매장을 이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조합원은 코프 매장에서의 할인 뿐 아니라 코프에서 운영하는 서점, 극장, 식당 등에서 최대 30%가지 할인을 받는다. 또한 조합원은 코프에 일정 금액을 적립하여 이자를 받을 수도 있고, 돈을 빌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여기서 발생한 매출이나 수익은 고스란히 해당 지역에 재투자된다는 것이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성공요인은?

그렇다면 협동조합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훌륭한 경제적 성과를 내고 있는 이곳의 비법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우선 이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손꼽을 수 있다. 이곳은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 지역으로 인문주의 전통이 살아있는 도시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며 시인 단테(Dante)를 배출해낸 볼로냐대학교가 이곳에 있다. 옛날 건물들도 매우 잘 보존되어 있는데, 유명한 것이 7개의 성당이다. 유럽 다른 지역의 건물에 비해서는 아주 작고 초라한 성당이지만 무려 1100년 동안 지어졌다는 점에 유명해진 성당이다. 동네가 워낙 가난하다보니 1100년 동안 조금씩 지어서 성당을 완성했다고 한다. 덕분에 온갖 시대별 건축 양식이 다 묻어 있다. 이 성당뿐 아니라 도시 곳곳에 중세의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차가 다니지 못하는 샛길도 많고 건물마다 처마처럼 나와 있는 회랑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인문주의가 발전했고,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연대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의식, 시민의식이 싹트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무솔리니에 대항해서 독립을 쟁취한 빨치산의 전통을 갖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80년대 인기 있었던 지오반니 꽈레스키(Giovanni Guareschi)의 시리즈 소설이자 테렌스 힐(Terence Hill)이 주연한 영화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The Little World of Con Camilo)"에 잘 나타난다. 영화의 배경인 브레첼로(Brescello)는 에밀리아 로마냐의 레지오 에밀리아에 위치한 도시이다. 신부인 돈 카밀로와 기계수리공인 뻬뽀네 시장은 사사건건, 때로는 치졸하게 다툰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파시스트와의 싸움에 있어서는 열렬한 빨친산이었으며,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 일치한다. 공산당원 뻬뽀네는 공식적으로는 천주교를 부정하지만 자기 아들에게는 세례를 받게 한다. 돈 카밀로는 동네 유지들로부터 ‘볼셰비키 사제’라는 별명을 얻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처럼 종교나 정파와 관계없는 끈끈한 공동체 의식이야말로 에밀리아 모델의 핵심이다.

실제로 내가 만나 본 에밀리아 로마냐 주민들은 자신의 인문주의와 빨친산 전통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친일 인사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조차도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야 겨우 가능하지만,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각 동네에 있는 민중의 집(우리나라로 치면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 빨치산 할아버지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설명해주는 풍경이 일상이다. 주민들에게 어떻게 이런 독특한 경제가 가능하냐고 물었을 때도 “우리는 원래 그래, 우리 문화가 그래.” 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는 우리를 곤혹스럽게, 또는 실망스럽게 한다. 문화는 다른 누가 손쉽게 따라하거나 배울 수 있는 요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4)편으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6 / 28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3)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협동조합의 7가지 원칙

협동조합은 사회경제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협동조합은 노박의 <협동 진화의 5가지 규칙> 중 혈연선택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 규칙인 직접 상호성, 간접 상호성, 네트워크 상호성, 집단선택을 모두 만족한다. 스페인의 몬드라곤이나 이탈리아의 볼로냐 등과 같이 특정 지역에서 특히 협동조합이 발달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혈연선택도 일정 정도 부합한다고 볼 수 있겠다.

협동조합은 7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 역사 속에서 많은 협동조합이 등장했다 사라지면서 운영 원칙들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졌다. 이를 19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 100주년 총회에서 정리하여 선언한 것이 다음과 같다.

첫째, 조합원의 참여는 자발적이고 개방적이다. 협동조합은 자발적인 조직이다. 협동조합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조합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의지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적, 사회적, 인종적, 정치적, 종교적 차별 없이 열려 있다. 개방성에 의해 시장실패에서 나타나는 정보비대칭성을 극복함으로써 간접 상호성이 보장될 수 있으며, 외부에 배타적이지 않은 네트워크가 될 수 있다.

둘째,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조합원들은 정책 수립과 의사 결정에 참여하면, 선출된 임원들은 조합원에게 책임을 갖고 봉사해야 한다. 조합원은 1인 1표의 동등한 투표권을 가진다. 이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내가 협동한다 해도 남이 배신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줄여준다. 협동하지 않는 이에 대한 응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셋째, 경제적으로 공동 소유하고 공동 이용한다. 인류 최초의 협동조합은 식량을 공유하는 원시부족이었을 것이다. 위험을 공유하는 보험 역시 협동조합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원 또는 자본의 소유와 이용에 있어서 개인이 아닌 집단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조합원은 협동조합에 필요한 자본을 조성하는데 공정하게 참여하며 조성된 자본을 민주적으로 통제한다. 일반적으로 자본금의 일부분은 조합의 공동재산이다. 출자 배당이 있는 경우에 조합원은 출자액에 따라 제한된 배당금을 받는다.

넷째,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협동조합이 정부나 시장 등 다른 조직과 약정을 맺거나 외부에서 자본을 조달하고자 할 때는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가 보장되고, 협동조합의 자율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정부의 규제나 지원은 협동을 촉진할 수도 있지만 제도에 의존할 경우 오히려 구성원의 자발적 선의는 줄어드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다섯째, 교육과 훈련 및 정보를 제공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 선출된 임원, 경영자, 직원들이 협동조합의 발전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도록 교육과 훈련을 제공한다. 협동조합은 일반 대중, 특히 젊은 세대와 여론지도층에게 협동의 본질과 장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는 공유 가치를 확산하여 집단 정체성을 높이고 간접 상호성을 제고하는 효과가 있다. 교육을 통해 기술적 수준을 높여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효과도 있다. 또한 협동은 때때로 내적 생산성 향상 수단인 경쟁과 대립되는데, 이를 보완하는 효과도 있다.

여섯째, 협동조합은 서로 협동한다. 협동조합은 지방, 전국, 지역 및 국제적으로 함께 협력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협동조합운동의 힘을 강화시키고 조합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봉사한다. 이는 네트워크를 확대함으로써 신뢰를 형성하는 네트워크의 외부성을 증가시킨다.

일곱째,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동의를 얻은 정책을 통해 조합이 속한 지역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이는 간접 상호성과 네트워크 상호성을 촉진시키며, 사회경제 생태계를 형성하고 발전시킨다. 사회경제 생태계가 발전할수록 협동조합의 사회적 위치는 커지게 된다.

이렇듯 협동조합의 원칙이란 협동이라는 인류의 오랜 지혜가 체화된 것이며, 앞서 살펴보았던 협동 진화의 규칙들을 사회적 규범으로 만든 것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John Stuart Mill), 자본론을 쓴 마르크스(Kar Marx), 심지어 주류경제학의 핵심인 한계혁명의 창시자 왈라스(Leon Walras)까지 역사 속의 많은 지식인들이 협동조합을 예찬했다. 그만큼 협동조합은 민주적일 뿐 아니라 잘 운영될 경우 효율성마저 높을 수 있다. 특히 시장경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딜레마의 경우 사회경제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협동조합이 대세가 되지 못한 이유

그런데 왜 현실에서 협동조합은 희귀한 것일까? 기본적으로 협동조합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온통 시장경제이다. 협동조합은 시장경제의 바다에 홀로 떠있는 사회경제의 섬인 셈이다. 이런 조건은 분명 불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현재 협동조합의 한계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렇다면 협동조합의 내부적 노력과 정부의 정책을 통해서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를 찾아야 한다.

일반적인 자본주의 기업이 투자자관리기업(KMF, Kapital Managed Firm)이라면 협동조합은 노동자관리기업(LMF, Labor-Managed Firm)이다. 둘의 차이는 투자자가 기업을 소유하는가 아니면 노동자가 기업을 소유하는가에 달려 있다. 바꿔 표현하자면 투자자가 노동을 고용하느냐, 노동자가 투자를 고용하느냐의 차이가 있다. 현실에서는 투자자관리기업이 월등히 많지만, 경제학적으로 둘 중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미국의 경제학자 다우(Dow)는 “경제학은 자본주의 기업의 우위에 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경제학자 사무엘슨(Samuelson) 역시 완전경쟁시장 모델에서 자본이 노동을 고용하느냐 아니면 노동이 자본을 고용하느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자본과 노동은 특성면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 첫째 물리적 자산의 소유권은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인간에 대한 소유권은 쉽게 이전될 수 없다. 즉, 자본은 쉽게 이동하고 양도될 수 있지만 노동은 그렇지 못하다. 둘째 노동은 저마다 상당한 이질성을 보이지만 물리적 자산이나 금융 자산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 따라서 자본은 화폐의 양으로 환원이 가능하지만 노동은 사람의 속성이어서 하나의 양으로 환원할 수 없다.

이런 근본적 차이점 때문에, 우선 협동조합은 자본조달에 있어서 불리하다. 자본주의 기업은 주식시장을 통해 유한책임의 소유권을 자유롭게 이전할 수 있기 때문에 대규모 자본을 동원할 수 있다. 반면 협동조합은 조합비로만 자본을 동원할 수 있으며 자본의 사회적 성격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자산이 개인에게 반환되거나 상속되지 못하는 불가분의 자산(Indivisible reserve)이라는 한계를 가지며, 소유권의 이전은 조합원 구성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

또한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기업에 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기가 힘들다. 매우 평범하고도 일반적인 이유 때문인데, 금융기관이 협동조합의 구조에 익숙하지 않아서 적절한 신용평가를 내릴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금융기관은 통제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비민주적인 자본주의 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 기업처럼 주식을 발행한다면 어떨까? 협동조합의 경우 주식을 구입한다는 것은 조합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쉽게 매매가 일어날 수 없다. 한 편 조합원의 자격을 매매한다는 점에서 과도한 주식 발행은 협동조합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기존 조합원을 상대로 신주를 발행한다면 어떨까? 이 경우 1인 1표의 민주적 결정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무의결권 우선주를 발행하게 된다. 이를 구매하는 투자자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프리미엄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운영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자본주의 기업에서의 1주 1표에 의한 의사결정은 최대 주주에 의해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지만 협동조합의 1인 1표에 의한 의사결정은 구성원 간의 갈등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 노동자의 구성이 이질적이고 규모가 클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수결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면 평균적 노동자들이 높은 생산성을 가진 노동자의 임금을 깎으려 할 것이므로 숙련 노동자의 경우 노동조합을 기피할 것이다.

이 외에도 조합원 1인당 순수입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공급대응에 비탄력적이어서 수익성이 좋을 때 고용을 줄이거나 비조합원을 고용하여 투자자관리기업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한 은퇴에 가까운 조합원일수록 미래의 투자수익을 누릴 수 없으므로 현재의 투자에 반대하면서 투자는 줄고, 새로운 조합원을 받지 않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단점을 장점으로

협동조합의 불리함을 주장한 위의 주장들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현재 사회에서 지배적인 기업이 투자자관리기업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기업이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모든 제도가 이에 맞춰 구성되므로 협동조합이 점점 더 불리해지는 경로의존성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이런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자본 동원의 경우 협동조합은 신규 가입자가 상당한 액수의 입회비를 내고 불가분의 자산을 일정한 규모로 축적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왔다.

둘째는 한편으로는 단점이었던 것이 다른 편으로는 장점으로 작용함으로써 주장이 기각되는 경우이다. 예컨대 조합의 자금이 가진 불가분의 자산이라는 특징은 경기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에는 어렵지만 안정적 축적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경기 변동기에 일반 기업은 주로 임금을 조정함으로써 대응하지만, 협동조합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 실제로 경제학자 펜카벨(Pencabel)이 2004년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탈리아 협동조합은 일반 기업에 비해 평균 임금은 14% 낮았지만, 고용이 안정되어 있어서 경기가 악화되어도 조합원의 77.6%가 해고의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불가분의 자산이 경기변동에 대해서 일종의 자동안정장치의 역할을 해주면서 노동자에게는 보험을 제공해주는 셈이다.

또한  협동조합의 민주주의로부터 비롯되는 동료 간의 상호감시가 주주 감시보다 더 효율적이며, 노동자 간에 상대적으로 높은 합의와 신뢰가 존재한다면 생산성은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로 현실에서 협동조합은 적은 감시자와 이윤공유로 높은 생산성을 누리는 경우가 많다.

다우는 이러한 노동자관리기업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이것이 성공할 조건을 제시하였는데 대체로 자본의 규모가 적고, 자산의 특수성이 적으며, 동질적 노동자가 팀워크와 정보공유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의 양도 불가능성에 비롯되는 문제들은 남아 있다. 대규모 자본의 동원과 신속한 의사결정, 그리고 고급 노동력 유치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은 하나의 노동자관리기업, 하나의 협동조합이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이제부터 살펴볼 협동조합의 네트워크화와 새로운 형태의 협동조합 출현이다.

 

발전하는 협동조합

최근 연구에 의하면 협동조합 성공의 필수 요건으로 네트워크의 존재가 제기된다. 그림에서와 같이 협동조합 생태계는 저밀도 균형(A)과 고밀도 균형(B)의 복수균형을 가질 수 있는데 네트워크는 외부성을 내부화함으로써 고밀도균형을 가져오는 필수 요건이라는 것이다. 즉, 초기에 협동조합이 생겨나면서 일정 수준에 이르면 저밀도 균형(A)에 이르게 되고 계속해서  밀도가 높아지면 수익성 곡선이 S자 형태가 되면서 체증한다. 이후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각각의 협동조합을 연결하여 지원해주면 수익성 곡선 자체가 위로 이동하는 것이다. 당연히 수익성은 더욱 증가한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협동조합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스페인의 몬드라곤과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에서도 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네트워크가 형성돼 지원기관, 특히 교육과 사업 서비스 분야의 지원기관이 생기면서 수익성이 크게 증가할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설명은 모든 성공한 클러스터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협동조합이 네트워크를 더욱 필요로 할 것이라는 점 또한 사실이다. 네트워크는 자본동원이나 대출의 어려움 등 협동조합의 취약점을 극복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개별 협동조합 능력의 한계를 넘는 돌파혁신(break-through innovation)도 가능해진다. 무엇보다도 협동조합 네트워크 내에 가치의 공유에 따른 신뢰가 쌓이고 조합원으로서의 만족도가 증가한다면 고급 노동력의 충원도 가능하다. 네트워크는 노동자관리기업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대부분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앞서 협동조합의 7가지 원칙 중 협동조합 간의 협조를 강조하고 교육과 훈련을 원칙으로 삼은 것도 네트워크 효과를 증폭시키기 위한 것이다.

한편 전통적 협동조합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협동조합 유형이 나타나고 있다. 신세대협동조합(NGC, New Generation Co-ops)조합원은 조합원이 출자지분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본조달의 문제와 안정적인 경영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했다. 또한 출자 규모에 따라 조합원이 이용할 수 있는 조합의 권리에 차이를 두었다. 후원자투자협동조합(PIC, Patron Investment Co-ops)은 후원자와 투자자가 출자를 하되 그 외의 사람들도 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전통적 협동조합이 조합원의 출자로 이루어지며, 모든 조합원이 동등한 권리를 누렸던 것에서 조금씩 변형된 모습이다.

협동조합에 공동체와 공공부문이 더 많이 결합할 수 있도록 지역공동체의 발전 전략의 하나로 만들어가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캐나다의 공동체경제발전운동(CED, Community Economic Development Movement)으로 협동조합 뿐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조직들이 연합하여 지역공동체를 움직이는 방식이다. 초기에는 협동조합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지역의 공동체가 발전하면서 다양한 비영리기구와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생겨났다. 캐나다의 퀘벡 지역의 사회경제위원회에는 정부까지 포함되어 있다. 한국처럼 사회경제의 형성이 미흡한 곳에서는 공동체나 공공부문과의 결합이 중요하다. 특히 공공보조금을 받으면서도 사적 기관에 의해 운영되어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의료, 보육, 교육 등의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사회경제와 공공경제의 보완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컨대 건강보험공단이 인두당 수가제를 도입하여 지역 의료 생협의 수입을 보조하는 식이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4)편으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6 / 25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2)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회적 자본은 “합의된 상호강제 구조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라고 했다. 앞서 상호강제를 살펴보았다면 이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생각해보자.

 

신뢰의 네트워크가 경제성장을 가져온다

네트워크는 개인 간 관계를 보호하고 촉진하기 위한 소통 채널 구조이다. 일종의 통로이다. 이 통로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공통의 이해관계를 나누면서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공동체적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네트워크는 가족처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부터 자발적 조직까지 광범위하다. 우리는 어떤 네트워크에 속한 채로 태어나기도 하고, 새로운 네트워크에 들어가기도 한다. 네트워크의 연결은 개인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하고 집단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에는 사람과 시간을 비롯하여 다양한 비용이 들어간다. 기본적으로 네트워크가 확장되어 통로가 늘어날수록 비용은 늘어나지만 이익은 줄어든다. 쉽게 말하자면 친구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친구의 친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더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네트워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양의 외부성을 창출하여 유지비용을 상쇄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신뢰가 형성되고, 신뢰가 다시 신뢰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의 이런 장점을 경제모델로 설명하면 이렇다. 기본적으로 생산함수는 노동(L)과 물적자본(K)을 투자하여 생산물(Y)을 만들어내는 함수인데, 여기서는 노동 대신에 인적자본(H)을 대입한다. 그리고 생산함수에 영향을 주는 총요소생산성(A)이 있다. 이는 지식이나 기술, 제도의 발전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를 식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

Y=AF(K,H) (A>0)

인적자본과 물적자본의 양이 늘어날수록, 그리고 총요소생산성이 늘어날수록 생산물의 양은 늘어난다. 이 때 네트워크를 통한 협동은 인적자본이나 총요소생산성의 증가를 가져온다. 네트워크의 외부성이 확대되는 범위가 좁아서 협동에 참가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칠 경우에는 인적자본이 증가할 것이다. 네트워크의 외부성이 경제전체로 확대된다면 총요소생산성이 증가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지 결국 생산물의 증가로 이어진다. 늘어난 생산물을 다시 물적자본이나 인적자본에 투자하면 더 빠른 성장이 일어난다.

이에 대한 실증연구로는 퍼트넘이 이탈리아 20개 행정구역을 조사한 연구가 있다. 이 연구에서 퍼트넘은 1900년대 초 시민참여지표와 1970년대 초 고용, 소득 간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시민사회라는 사회적 자본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을 증명한 것이다. 또한 세계은행의 나라얀(Narayan)과 프리체트(Pritchett)는 탄자니아의 50개 마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마을의 사회조직에 많이 참여하는 곳일수록 가계의 평균 1인당 소득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네트워크의 문제점 : 배제성과 불평등

하지만 네트워크로 구성된 사회적 자본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네트워크에서의 활동은 구성원 사이에 유대, 애정을 형성하고 이것이 발전하여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을 이루게 된다. 때로는 이런 정체성이 네트워크를 협소하고, 배타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특정 네트워크에서 편안함과 이익을 얻을수록 배타적이기 쉽다. 이를 잠김효과(Lock-in effect)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소속될 수밖에 없는 가족, 민족, 인종 등의 네트워크나 종교적 네트워크의 경우 특히 잠김효과가 나타난다. 이런 특수한 네트워크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협동의 네트워크에는 언제나 잠김효과의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협동하는 네트워크라 해도 그 내부에 불평등과 착취가 존재할 수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매킨(Mckean)은 지역 엘리트들이 공동체가 소유한 자원의 이익을 부적절하게 획득하고 있는 사례를 밝혔다. 이 외에도 많은 실증연구들에서 협동을 통해 얻은 이익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의 불평등이 나타났다. 물론 죄수의 딜레마 상태일 때에 비하면 협동을 통해서 이익을 얻은 게 사실이지만, 공동체적 관계에서도 착취적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네트워크와 시장

공동체적 제도인 네트워크와 달리 시장은 익명의 교환이다. 모든 사회는 비인격적 시장과 공동체적 제도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둘 사이의 관계는 보완적이어서 함께 있을 때 더 좋은 성과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적대적이어서 서로를 방해하기도 한다.

네트워크와 시장이 보완적인 경우를 살펴보자. 네트워크를 통한 상품의 생산과 교환은 시장을 활성화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경제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주목해왔던 지점은 기업의 존재 이유가 바로 내부의 네트워크를 통한 거래비용 감소라는 것이다. 기업 내의 교환은 기업 간의 관계와는 달리 공동체적 네트워크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기업 간의 관계에서도 공동체적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파월(Powell)과 브랜틀리(Brantley)는 바이오산업에서 경쟁기업의 연구자들이 특정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비밀로 유지하는 정보도 있었다. 공개와 비밀 사이에 미묘한 균형이 존재했다. 만약 정보를 공유하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과학자는 배제당했다. 경영자들 역시 이런 정보 공유의 네트워크를 알고 있었으며, 오히려 이를 장려했다. 정보의 공유를 통해 기술과 산업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네트워크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반면 시장과 네트워크가 대체재라면 둘은 적대적이다. 시장이 공동체적 제도를 대체하는 경우 반드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반대로 네트워크가 시장의 원활한 작용이나 존재를 방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혈연적 유대가 매우 강력한 전통사회를 생각해보자. 여기에는 개인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긍정적 기능이 있지만, 개인의 투자동기를 저하시킨다는 부정적 기능도 있다.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사회적 자본이란 구성원들이 신뢰하고 협동할 수 있도록 돕는 규범이며, 이 규범을 지키기로 구성원들끼리 상호강제하는 네트워크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할 일은 현재까지의 모든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흔히 승리의 기쁨을 나눌 때 동료애와 신뢰는 촉진되기 쉽다. 선거에서 승리한다거나 정부가 효과적으로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뢰 형성 방식이다. 또한 퍼트넘이 강조한대로 자발적 시민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은 일반적 신뢰와 협동을 제고한다. 특히 그 자체가 오랜 신뢰와 협동의 결정체인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에서 활동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일반적 신뢰를 높이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지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도자는 이타적 행위를 선택함으로써 신뢰의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한 사회의 역사적 집단 기억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신뢰와 협동을 이루어냈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경험이 없다. 대신 폭발적 경험의 기억은 생생하다. 87년 민주항쟁, 97년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2002년 월드컵과 그해 대선에서의 노풍, 이후 수많은 촛불집회 등을 겪었다.

이런 경험을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제도가 모든 것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하다. 사람들 사이의 자발적 신뢰와 협동까지 제도에 의존하도록 되어서는 안 되지만, 무임승차를 막고 신뢰와 협동의 정체성을 장려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더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 네트워크가 배제성과 불평등의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단 내부의 신뢰와 협동을 촉진하려는 시도가 내부의 이견을 억압하고, 외부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유발하는 식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서 공동의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리고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사회가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하거나 진전된 남북관계를 이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3)편으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6 / 20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1)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누루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회적 자본이란 무엇인가?

앞서 사회적 딜레마의 해결을 위해서는 서로 협력해야 하며,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서로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여기서는 신뢰를 촉진하는 사회적 자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인도 출신 경제학자이며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파샤 다스굽타(Partha Dasgupta)의 논문 <신뢰 : 사회적 자본과 경제발전(A Matter of Trust : Social Capital and Economic Development)>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다스굽타는 사회적 자본 분야의 대표적 경제학자이며 경제학의 지평을 확장하는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경제학 연구의 본질은 자본주의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특정 사회적 조건에서 인간 행동에 관한 광범위한 분석에 맞닿아 있다.”는 그의 말은 이러한 견해를 잘 보여준다. 최근에는 환경자산을 포함하는 '포괄적 부(inclusive wealth)'라는 개념을 만들어 지속가능한 경제에 관한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우선 무엇을 사회적 자본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정의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사회적 자본에 해당하는 것들은 매우 많고, 다양하며, 대체로 무형의 것이다. 그만큼 그에 대한 정의도 학자마다 다양하다.

합리적 선택이론을 추구했던 미국의 사회학자 콜만(Coleman)은 1988년 연구에서 사회적 자본을 “거래비용의 감소와 효용의 극대화를 이루도록 하는 사회적 관계나 사회적 구조, 즉 생산적인 사회적 관계망” 으로 보았다. 이는 최소비용으로 최대효용을 거두는 합리적 선택에 초점을 맞춘 정의이다.

이후 1993년 미국의 정치학자 퍼트넘(Robert Putnam)은 사회적 자본을 “행위의 조정을 촉진하여 사회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 조직의 속성” 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라는 각각 다른 개념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너무 포괄적인 설명이라는 단점이 있다.

2002년 미국의 경제학자인 보울스와 진티스(Bowles and Gintis)는 “사회적 자본은 일반적으로 신뢰, 소속단체에 대한 관심, 공동체의 규범에 따라 살려고 하는 의지, 규범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 대한 응징을 말한다.” 고 정의했다. 이는 사회조직 뿐 아니라 구성원의 태도까지 포괄한 설명이다.

다스굽타의 경우 더 원초적인 개념인 신뢰에 초점을 맞추고 사회적 자본을 정의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자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더 근원으로 내려가서 서로 협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문제가 무엇인지에서부터 출발했다. 다른 이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기본적인 문제는 결국 신뢰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조건은 무엇인지를 질문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을 사회적 자본이라 명명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다스굽타에 의하면 사회적 자본은 “합의된 상호강제 구조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 라고 정의된다. 즉,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상호작용이 신뢰를 촉진시킨다면 그것은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은 신뢰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건물이나 토지가 버려져 있는 경우처럼 네트워크도 작동하지 않은 채 버려져 있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을 수도 있다. 좋은 네트워크도 있고 나쁜 네트워크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사회적 자본도 있고, 나쁜 사회적 자본도 존재한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든 관개시설이나 상호보험, 상호저축대부조합 등은 좋은 네트워크이다. 반면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나 마피아의 경우는 나쁜 네트워크이다.

 

신뢰를 촉진하는 4가지 조건들

그렇다면 어떤 조건이 만족되어야 신뢰를 촉진하는 좋은 사회적 자본이 만들어질까? 앞에서도 많이 살펴보았지만, 다스굽타의 견해를 한 번 더 정리해보자. 신뢰란 매우 광범위한 개념이다. 개인 간의 약속을 의미하기도 하고, 공동체의 관습적 규범을 함축하기도 하는 개인적 문제에서 정치적 문제에까지 관련된다.

다스굽타는 신뢰란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의 어딘가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이 상호성을 서로 주고받는 가운데 신뢰가 생겨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구체적으로 신뢰가 형성되는 두 가지 단계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첫째, 서로 상대방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둘째, 상대방이 약속을 지킬 경우 나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그 자체로 자기강제적(self-enforcing)이며, 내쉬균형을 이룬다. 나도 약속을 지키는 게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이 명확하므로 다른 선택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두 번째 조건이 만족되어야 첫 번째 조건이 형성될 수 있으며, 반대로 첫 번째 조건이 만족되어야 두 번째 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 즉, 두 조건은 서로 맞물려 있으며, 둘 다 만족될 때 신뢰는 형성될 수 있다. 이를 신뢰의 두 가지 조건이라고 하자.

다스굽타는 신뢰의 두 가지 조건을 형성하는 요인으로 다음의 4가지를 꼽는다. 상호애정(mutual affection), 친사회적 태도(pro social disposition), 외적강제(external enforcement), 상호강제(mutual enforcement)이다. 이 중에서도 상호강제를 사회적 자본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상호애정과 친사회적 태도, 외적강제

첫 번째 요인은 상호애정이다. 가족이나 친구 등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이에서는 서로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다. 단순히 감정적 유대감에 의해서일 수도 있고 나와 친근한 사람이 잘 되는 것이 곧 나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를 경제학적으로는 상호의존적인 효용함수를 가졌다고 표현할 수 있다. 자신의 효용 뿐 아니라 상대방의 효용이 나에게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이를 다른 말로 사회적 선호를 가졌다고도 표현한다. 또한 관계가 매우 긴밀하기 때문에 서로 약속을 지키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손쉽게 감시할 수 있다는 점도 신뢰를 강화시킨다. 즉, 도덕적 해이나 역선택이 덜 일어난다. 하지만 구성원의 숫자가 늘어나면 상호애정이라는 요인이 가지는 설득력은 떨어진다. 이는 마치 우리가 앞서 살펴본 노박의 협력을 유도하는 다섯 가지 규칙 중 혈연선택과 같은 맥락이다.

두 번째 요인은 친사회적 태도인데, 이는 다른 사람과 협동하려고 하는 상호적 태도를 뜻한다. 자신이 맡은 의무를 다하는 것, 대가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 남을 돕거나 은혜를 갚는 것,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 등이 상호적 태도이다. 사람들이 상호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면 서로 신뢰할 수 있다.

상호성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는데,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다. 유전적 요인이란 인류의 오랜 역사를 통해서 상호성이 생존본능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것인데, 진화심리학에서 주로 제기되는 주장이다. 자연선택의 압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상호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환경적 요인이라 어린 시절의 교육이나 생활방식을 통해서 보상과 응징의 과정을 거치며 상호적 태도를 습득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둘 중 어느 하나가 꼭 옳다고 따질 필요는 없다. 두 가지 입장은 상호배타적이지 않다.

어떤 요인 때문이던지 사람들은 상호성에 기반을 둔 사회 규범을 내면화함으로써 이를 따르려고 한다. 규범을 어겼을 때는 부끄러워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이는 규범을 어기는 것을 예방한다. 우리가 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꼭 처벌 받기 싫어서만은 아니다. 최근 행동경제학에서도 친사회적 태도 또는 상호성이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의 심성, 태도, 본성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제기되는 세 번째 요인이 외적강제이다. 약속을 지키고, 협동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제도, 기구, 기반시설이 있다면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외적강제를 통해 약속은 권력이나 권위에 의해 보장받는 명확하고 강제력 있는 계약으로 확고해진다. 실제 다양한 사회에서는 이런 식의 외적강제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다양한 외적강제의 방식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면, 약속을 파기했다는 것이 확실히 증명될 때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에게 응징을 한다는 것이다.

외적강제의 하나로 국가를 상상해보자. 흔히 국가와 배치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자유로운 시장에서의 거래도 법적 구조에 의해 보호받기 때문에 가능하다. 법은 국가의 강제력에 의해 보장된다. 결국 시장에서의 거래는 국가라는 외적강제에 의해 보호받는 합법적 계약이다.

그렇다면 외적강제 그 자체는 신뢰해도 괜찮은가? 국가를 믿을 수 있는가? 국가는 사람에 의해 조정된다. 여기서 대리인 딜레마(Agency dilemma)라고도 하는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le-Agency problem)가 발생할 수 있다. 개인 또는 집단이 의사 결정 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때, 주인과 대리인 사이에 정보의 불균형, 감시의 불완전성이 존재하면서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 뿐 아니라 모든 외적강제가 대리인 딜레마에 해당한다. 협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외적강제 수단에 맡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적강제에만 의존해서 신뢰를 형성할 수는 없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언론과 공정한 선거 제도 등을 통해서 대리인이 국가가 잘못된 결정을 할 경우 국민들이 다음 선거에 이들을 퇴출시킬 수도 있다. 이탈리아 사회를 연구한 퍼트넘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활동에 참여할수록 국가 관료들은 더 정직하고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을 보였다. 이는 외적강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상호강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적 자본의 핵심은 상호강제

네 번째 요인은 상호강제이다. 다스굽타는 앞의 세 번째 요인들이 각각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상호애정은 그 범위가 협소하고, 친사회적 태도는 사람의 심성에만 의지한다는 점에서 불완전하고, 외적강제는 그 자체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때문에 이런 세 가지 요인에 앞서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요인이 상호강제이다.

상호강제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정한 규칙에 따라 응징을 가하는 것이다. 집단 구성원에 의한 믿을만한 응징 위협은 약속을 어기는 것을 막아준다. 단 이 때의 응징이 충분히 가혹하고 위협은 믿을만해야 한다. 결국 상호강제란 사회적 규범에 따르는 행동에 의해 신뢰를 형성하는 방안이다.

상호강제는 장기적 관계일수록,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협동 관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을수록 잘 작동한다. 각각의 경우를 직관적으로 생각해보자. 만약 관계가 일회적이라면 응징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어진다. 장기로 갈수록 평판과 응징이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 미래가 안정적이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지금 당장 배반하여 얻을 수 있는 현재의 이익 대신 협동하여 얻을 수 있는 미래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협동 관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하나의 관계가 끊어지면 다른 관계도 끊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배반할 유인을 줄일 수 있다.

이를 다스굽타가 소개한 예를 들어 다시 확인해보자. A와 B가 있다. A는 자본금 4000원을 가지고 있으며 상품을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유통구조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 반면 B는 생산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자본금도 유통구조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B가 가진 생산기술의 가치를 2000원이라고 하자. 즉, A와 B는 각각 4000원 어치와 2000원 어치의 부를 갖고 있다.

이제 A와 B가 협동할 경우를 생각해보자. A가 4000원을 B에게 빌려주자 B는 그것을 통해 8000원 어치의 상품을 만들고, A는 그것을 시장에 판매하였다. 협동하기 전에는 A와 B의 부를 모두 합쳐도 6000원에 불과했는데 협동을 함으로써 8000원이 되었다. 총 2000원의 이윤이 발생한 것이다. 이를 각각 1000원씩 나눠가진다고 하자. 즉, A와 B는 협동을 통해서 매번 1000원의 이익을 더 얻게 된 것이다. 대신 미래의 거래에 대해서는 할인율을 계산해주어야 한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A와 B가 거래를 계속하여 얻게 되는 이익은 다음과 같다. r은 미래에 대한 할인율이다.

1000 + 1000/(1+r) + 1000/(1+r)2 + 1000/(1+r)3 + .... = 1000(1+r)/r

A는 협동하여 얻게 되는 이익 1000(1+r)/r원이 4000원보다 크면 계속 협동할 것이다. 이 때 r은 약 0.33 이하여야 한다. r이 작을수록 A가 동할 유인은 커진다. 반대로 r이 0.33보다 커지면 A는 배반할 유인이 커진다.

이번에는 A와 B의 거래 외에 A와 C의 거래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자. 앞의 경우와 비슷하다. C는 1000원어치의 생산기술을 가지고 있고, A가 3000원을 빌려주면 6000원어치의 상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즉, 협동하기 전의 A와 C는 각각 3000원과 1000원의 부를 갖고 있었는데, 협동을 하면 6000원으로 늘어나서 2000원의 이윤을 얻는 것이다. 역시 2000원의 이윤을 각각 1000원씩 나눠가지기로 했으므로 앞서와 같이 1000(1+r)/r원이 장기적으로 협동할 경우 얻는 이익이 된다.

이 거래에서 A는 1000(1+r)/r원이 3000원보다 크면 계속 협동할 것이다. 따라서 이 때 r은 0.5 이하여야 한다. r이 0.5보다 커지면 A는 배반할 유인이 커진다. 만약 A와 B의 거래, A와 C의 거래가 따로 존재하고, A의 미래할인율 r이 0.4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A는 C와의 거래는 지속하지만 B와의 거래는 배반할 것이다.

하지만  A와 B의 거래, A와 C의 거래가 모두 연결되어 있어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 경우라고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A가 대기업이고 B와 C는 부품을 만들어 제공하는 중소기업인데, 하나의 상품을 만들 때 두 개의 부품이 모두 필요한 경우이다. 이 경우 A가 누구와도 협동하지 않는다면 원래 자본금 7000원만을 갖게 된다. 하지만 A가 B와 C 모두와 협동할 때 얻게 되는 이익은 다음과 같다.

2000 + 2000/(1+r) + 2000/(1+r)2 + 2000/(1+r)3 + .... = 2000(1+r)/r

따라서 2000(1+r)/r원이 7000원보다 크면 양쪽 모두와 협동할 것이다. 이 때 r은 0.4 이하면 된다. 즉, 두 개의 거래가 연결되어 있다면 A는 C와의 거래 뿐 아니라 B와의 거래도 유지하게 된다. 거래가 많이 연결되어 있을수록 이윤율이 낮은 쪽과도 협동할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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