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6 / 20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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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회적 자본이란 무엇인가?

앞서 사회적 딜레마의 해결을 위해서는 서로 협력해야 하며,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서로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여기서는 신뢰를 촉진하는 사회적 자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인도 출신 경제학자이며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파샤 다스굽타(Partha Dasgupta)의 논문 <신뢰 : 사회적 자본과 경제발전(A Matter of Trust : Social Capital and Economic Development)>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다스굽타는 사회적 자본 분야의 대표적 경제학자이며 경제학의 지평을 확장하는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경제학 연구의 본질은 자본주의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특정 사회적 조건에서 인간 행동에 관한 광범위한 분석에 맞닿아 있다.”는 그의 말은 이러한 견해를 잘 보여준다. 최근에는 환경자산을 포함하는 '포괄적 부(inclusive wealth)'라는 개념을 만들어 지속가능한 경제에 관한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우선 무엇을 사회적 자본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정의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사회적 자본에 해당하는 것들은 매우 많고, 다양하며, 대체로 무형의 것이다. 그만큼 그에 대한 정의도 학자마다 다양하다.

합리적 선택이론을 추구했던 미국의 사회학자 콜만(Coleman)은 1988년 연구에서 사회적 자본을 “거래비용의 감소와 효용의 극대화를 이루도록 하는 사회적 관계나 사회적 구조, 즉 생산적인 사회적 관계망” 으로 보았다. 이는 최소비용으로 최대효용을 거두는 합리적 선택에 초점을 맞춘 정의이다.

이후 1993년 미국의 정치학자 퍼트넘(Robert Putnam)은 사회적 자본을 “행위의 조정을 촉진하여 사회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 조직의 속성” 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라는 각각 다른 개념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너무 포괄적인 설명이라는 단점이 있다.

2002년 미국의 경제학자인 보울스와 진티스(Bowles and Gintis)는 “사회적 자본은 일반적으로 신뢰, 소속단체에 대한 관심, 공동체의 규범에 따라 살려고 하는 의지, 규범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 대한 응징을 말한다.” 고 정의했다. 이는 사회조직 뿐 아니라 구성원의 태도까지 포괄한 설명이다.

다스굽타의 경우 더 원초적인 개념인 신뢰에 초점을 맞추고 사회적 자본을 정의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자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더 근원으로 내려가서 서로 협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문제가 무엇인지에서부터 출발했다. 다른 이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기본적인 문제는 결국 신뢰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조건은 무엇인지를 질문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을 사회적 자본이라 명명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다스굽타에 의하면 사회적 자본은 “합의된 상호강제 구조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 라고 정의된다. 즉,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상호작용이 신뢰를 촉진시킨다면 그것은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은 신뢰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건물이나 토지가 버려져 있는 경우처럼 네트워크도 작동하지 않은 채 버려져 있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을 수도 있다. 좋은 네트워크도 있고 나쁜 네트워크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사회적 자본도 있고, 나쁜 사회적 자본도 존재한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든 관개시설이나 상호보험, 상호저축대부조합 등은 좋은 네트워크이다. 반면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나 마피아의 경우는 나쁜 네트워크이다.

 

신뢰를 촉진하는 4가지 조건들

그렇다면 어떤 조건이 만족되어야 신뢰를 촉진하는 좋은 사회적 자본이 만들어질까? 앞에서도 많이 살펴보았지만, 다스굽타의 견해를 한 번 더 정리해보자. 신뢰란 매우 광범위한 개념이다. 개인 간의 약속을 의미하기도 하고, 공동체의 관습적 규범을 함축하기도 하는 개인적 문제에서 정치적 문제에까지 관련된다.

다스굽타는 신뢰란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의 어딘가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이 상호성을 서로 주고받는 가운데 신뢰가 생겨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구체적으로 신뢰가 형성되는 두 가지 단계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첫째, 서로 상대방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둘째, 상대방이 약속을 지킬 경우 나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그 자체로 자기강제적(self-enforcing)이며, 내쉬균형을 이룬다. 나도 약속을 지키는 게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이 명확하므로 다른 선택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두 번째 조건이 만족되어야 첫 번째 조건이 형성될 수 있으며, 반대로 첫 번째 조건이 만족되어야 두 번째 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 즉, 두 조건은 서로 맞물려 있으며, 둘 다 만족될 때 신뢰는 형성될 수 있다. 이를 신뢰의 두 가지 조건이라고 하자.

다스굽타는 신뢰의 두 가지 조건을 형성하는 요인으로 다음의 4가지를 꼽는다. 상호애정(mutual affection), 친사회적 태도(pro social disposition), 외적강제(external enforcement), 상호강제(mutual enforcement)이다. 이 중에서도 상호강제를 사회적 자본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상호애정과 친사회적 태도, 외적강제

첫 번째 요인은 상호애정이다. 가족이나 친구 등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이에서는 서로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다. 단순히 감정적 유대감에 의해서일 수도 있고 나와 친근한 사람이 잘 되는 것이 곧 나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를 경제학적으로는 상호의존적인 효용함수를 가졌다고 표현할 수 있다. 자신의 효용 뿐 아니라 상대방의 효용이 나에게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이를 다른 말로 사회적 선호를 가졌다고도 표현한다. 또한 관계가 매우 긴밀하기 때문에 서로 약속을 지키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손쉽게 감시할 수 있다는 점도 신뢰를 강화시킨다. 즉, 도덕적 해이나 역선택이 덜 일어난다. 하지만 구성원의 숫자가 늘어나면 상호애정이라는 요인이 가지는 설득력은 떨어진다. 이는 마치 우리가 앞서 살펴본 노박의 협력을 유도하는 다섯 가지 규칙 중 혈연선택과 같은 맥락이다.

두 번째 요인은 친사회적 태도인데, 이는 다른 사람과 협동하려고 하는 상호적 태도를 뜻한다. 자신이 맡은 의무를 다하는 것, 대가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 남을 돕거나 은혜를 갚는 것,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 등이 상호적 태도이다. 사람들이 상호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면 서로 신뢰할 수 있다.

상호성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는데,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다. 유전적 요인이란 인류의 오랜 역사를 통해서 상호성이 생존본능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것인데, 진화심리학에서 주로 제기되는 주장이다. 자연선택의 압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상호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환경적 요인이라 어린 시절의 교육이나 생활방식을 통해서 보상과 응징의 과정을 거치며 상호적 태도를 습득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둘 중 어느 하나가 꼭 옳다고 따질 필요는 없다. 두 가지 입장은 상호배타적이지 않다.

어떤 요인 때문이던지 사람들은 상호성에 기반을 둔 사회 규범을 내면화함으로써 이를 따르려고 한다. 규범을 어겼을 때는 부끄러워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이는 규범을 어기는 것을 예방한다. 우리가 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꼭 처벌 받기 싫어서만은 아니다. 최근 행동경제학에서도 친사회적 태도 또는 상호성이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의 심성, 태도, 본성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제기되는 세 번째 요인이 외적강제이다. 약속을 지키고, 협동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제도, 기구, 기반시설이 있다면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외적강제를 통해 약속은 권력이나 권위에 의해 보장받는 명확하고 강제력 있는 계약으로 확고해진다. 실제 다양한 사회에서는 이런 식의 외적강제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다양한 외적강제의 방식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면, 약속을 파기했다는 것이 확실히 증명될 때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에게 응징을 한다는 것이다.

외적강제의 하나로 국가를 상상해보자. 흔히 국가와 배치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자유로운 시장에서의 거래도 법적 구조에 의해 보호받기 때문에 가능하다. 법은 국가의 강제력에 의해 보장된다. 결국 시장에서의 거래는 국가라는 외적강제에 의해 보호받는 합법적 계약이다.

그렇다면 외적강제 그 자체는 신뢰해도 괜찮은가? 국가를 믿을 수 있는가? 국가는 사람에 의해 조정된다. 여기서 대리인 딜레마(Agency dilemma)라고도 하는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le-Agency problem)가 발생할 수 있다. 개인 또는 집단이 의사 결정 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때, 주인과 대리인 사이에 정보의 불균형, 감시의 불완전성이 존재하면서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 뿐 아니라 모든 외적강제가 대리인 딜레마에 해당한다. 협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외적강제 수단에 맡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적강제에만 의존해서 신뢰를 형성할 수는 없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언론과 공정한 선거 제도 등을 통해서 대리인이 국가가 잘못된 결정을 할 경우 국민들이 다음 선거에 이들을 퇴출시킬 수도 있다. 이탈리아 사회를 연구한 퍼트넘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활동에 참여할수록 국가 관료들은 더 정직하고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을 보였다. 이는 외적강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상호강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적 자본의 핵심은 상호강제

네 번째 요인은 상호강제이다. 다스굽타는 앞의 세 번째 요인들이 각각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상호애정은 그 범위가 협소하고, 친사회적 태도는 사람의 심성에만 의지한다는 점에서 불완전하고, 외적강제는 그 자체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때문에 이런 세 가지 요인에 앞서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요인이 상호강제이다.

상호강제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정한 규칙에 따라 응징을 가하는 것이다. 집단 구성원에 의한 믿을만한 응징 위협은 약속을 어기는 것을 막아준다. 단 이 때의 응징이 충분히 가혹하고 위협은 믿을만해야 한다. 결국 상호강제란 사회적 규범에 따르는 행동에 의해 신뢰를 형성하는 방안이다.

상호강제는 장기적 관계일수록,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협동 관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을수록 잘 작동한다. 각각의 경우를 직관적으로 생각해보자. 만약 관계가 일회적이라면 응징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어진다. 장기로 갈수록 평판과 응징이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 미래가 안정적이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지금 당장 배반하여 얻을 수 있는 현재의 이익 대신 협동하여 얻을 수 있는 미래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협동 관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하나의 관계가 끊어지면 다른 관계도 끊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배반할 유인을 줄일 수 있다.

이를 다스굽타가 소개한 예를 들어 다시 확인해보자. A와 B가 있다. A는 자본금 4000원을 가지고 있으며 상품을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유통구조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 반면 B는 생산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자본금도 유통구조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B가 가진 생산기술의 가치를 2000원이라고 하자. 즉, A와 B는 각각 4000원 어치와 2000원 어치의 부를 갖고 있다.

이제 A와 B가 협동할 경우를 생각해보자. A가 4000원을 B에게 빌려주자 B는 그것을 통해 8000원 어치의 상품을 만들고, A는 그것을 시장에 판매하였다. 협동하기 전에는 A와 B의 부를 모두 합쳐도 6000원에 불과했는데 협동을 함으로써 8000원이 되었다. 총 2000원의 이윤이 발생한 것이다. 이를 각각 1000원씩 나눠가진다고 하자. 즉, A와 B는 협동을 통해서 매번 1000원의 이익을 더 얻게 된 것이다. 대신 미래의 거래에 대해서는 할인율을 계산해주어야 한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A와 B가 거래를 계속하여 얻게 되는 이익은 다음과 같다. r은 미래에 대한 할인율이다.

1000 + 1000/(1+r) + 1000/(1+r)2 + 1000/(1+r)3 + .... = 1000(1+r)/r

A는 협동하여 얻게 되는 이익 1000(1+r)/r원이 4000원보다 크면 계속 협동할 것이다. 이 때 r은 약 0.33 이하여야 한다. r이 작을수록 A가 동할 유인은 커진다. 반대로 r이 0.33보다 커지면 A는 배반할 유인이 커진다.

이번에는 A와 B의 거래 외에 A와 C의 거래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자. 앞의 경우와 비슷하다. C는 1000원어치의 생산기술을 가지고 있고, A가 3000원을 빌려주면 6000원어치의 상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즉, 협동하기 전의 A와 C는 각각 3000원과 1000원의 부를 갖고 있었는데, 협동을 하면 6000원으로 늘어나서 2000원의 이윤을 얻는 것이다. 역시 2000원의 이윤을 각각 1000원씩 나눠가지기로 했으므로 앞서와 같이 1000(1+r)/r원이 장기적으로 협동할 경우 얻는 이익이 된다.

이 거래에서 A는 1000(1+r)/r원이 3000원보다 크면 계속 협동할 것이다. 따라서 이 때 r은 0.5 이하여야 한다. r이 0.5보다 커지면 A는 배반할 유인이 커진다. 만약 A와 B의 거래, A와 C의 거래가 따로 존재하고, A의 미래할인율 r이 0.4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A는 C와의 거래는 지속하지만 B와의 거래는 배반할 것이다.

하지만  A와 B의 거래, A와 C의 거래가 모두 연결되어 있어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 경우라고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A가 대기업이고 B와 C는 부품을 만들어 제공하는 중소기업인데, 하나의 상품을 만들 때 두 개의 부품이 모두 필요한 경우이다. 이 경우 A가 누구와도 협동하지 않는다면 원래 자본금 7000원만을 갖게 된다. 하지만 A가 B와 C 모두와 협동할 때 얻게 되는 이익은 다음과 같다.

2000 + 2000/(1+r) + 2000/(1+r)2 + 2000/(1+r)3 + .... = 2000(1+r)/r

따라서 2000(1+r)/r원이 7000원보다 크면 양쪽 모두와 협동할 것이다. 이 때 r은 0.4 이하면 된다. 즉, 두 개의 거래가 연결되어 있다면 A는 C와의 거래 뿐 아니라 B와의 거래도 유지하게 된다. 거래가 많이 연결되어 있을수록 이윤율이 낮은 쪽과도 협동할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2)편으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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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5 / 13 새사연

부상하는 사회적경제, 협동조합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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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협동조합의 발전은 네트워크에 달렸다.

2. 지역 공동체를 강화해주는 협동조합

3. 복지국가의 전달체계로서 사회경제

4. 두 개의 네트워크와 숙의 민주주의

[본 문]

편집자 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악화되자 한국사회에서는 전례 없는 보편 복지 요구가 확대되고 있고 경제 민주화의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양대 선거를 맞아 정권교체 요구가 거센 가운데 다양한 사회개혁 의제가 정책 공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정말 2013년 체제라고 불릴만한 사회 대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자면, 강력한 경제개혁 전망을 갖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새사연의 문제의식이다.


이 에 새사연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시대적 가치와 비전, 새로운 경제모델과 성장모델, 총체적 경제개혁, 보편복지를 망라하는 정책을 모아 <<리셋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단행본을 출간했다. 그 원래 원고들을 가지고 회원들과 공유하고자 [새로운 사회 2013]이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2007년 사회적 기업법 제정, 그리고 2011년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으로 한국에서도 사회경제에 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사회경제는 세계적으로도 1990년대 이래 각광을 받고 있다. 사회경제란 인간의 상호성(reciprocity)에 기초해서 공동체 구성원의 연대라는 가치를 달성하려는 경제다. 따라서 집단소유와 민주적 결정, 국가와 시장으로부터의 자율, 개방 등이 사회경제의 특징이다. 협동조합은 대표적인 사회적 경제의 형태이다. 이름 자체에 들어 있듯이 사회경제의 효율성은 협동에서 비롯된다. 특히 인간의 이기성에 기초해서 효율성이라는 가치를 달성하는 시장경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즉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는데 사회경제의 역할이 크다.

사회적 딜레마란 사회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뜻한다. 이런 문제는 모두가 이기적으로 행동할 경우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 전 인류의 생명이 걸려 있는 기후변화문제는 지금 맞닥뜨린 가장 큰 규모의 사회적 딜레마이다.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협동이다. 협동은 심리학이나 사회학, 그리고 근년에는 경제학자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많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노박의 ‘협력 진화의 5가지 규칙’을 대표로 하여 협력이 일어나는 조건이 밝혀지고 있다.

협력의 조건이 잘 갖추어진 사회에서는 협동이 사회규범(social norm)이 되고 협동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집단 정체성를 갖게 된다. 협동하는 사회에서는 상호적 행동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협동하는 사람에게는 협동하고 사회규범을 어기는 사람에 대해서는 스스로 손해를 보더라도 응징하거나 아예 상종을 하지 않는 것이 상호성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협동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모두가 서로 협동하게 된다. 즉, 협동의 전제는 신뢰이다. 그런데 신뢰라는 사회자본은 쌓아 올리는 데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배반할 것이라고 믿는 순간 신뢰는 깨지고 협동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경제에서는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의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사회경제가 실현되는 서로 신뢰하고 협동하는 집단이 형성된다는 것은 그에 따르는 위험도 수반한다. 강력한 집단 정체성은 흔히 외부에 대한 폐쇄성과 공격성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협동의 공동체라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이탈리아 출신 사회학자 감베타(Diego Gambetta)는 마피아나 거리의 갱단도 협동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협동하는 집단은 외부에 대한 개방성, 그리고 내부의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 기술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잠금현상이 발생하면 그 집단은 정체하거나 심지어 반사회적일 수 있다. 즉 민주주의의 원리가 없는 집단, 특정 가치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가진 집단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협동조합 역시 이를 조심해야 한다.

협동조합의 7원칙

1.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

협동조합은 자발적인 조직으로서, 협동조합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조합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의지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적, 사회적, 인종적, 정치적, 종교적 차별 없이 열려 있다.

2.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

협동조합은 조합원에 의해 관리되는 민주적인 조직으로서, 조합원들은 정책 수립과 의사 결정에 활발하게 참여한다. 선출된 임원들은 조합원에게 책임을 갖고 봉사해야 한다.

단위 조합에서는 조합원마다 동등한 투표권(1인 1표)을 가지며, 연합 단계의 협동조합도 민주적인 방식으로 조직하고 운영한다.

3.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조합원은 협동조합에 필요한 자본을 조성하는데 공정하게 참여하며 조성된 자본을 민주적으로 통제한다. 일반적으로 자본금의 일부분은 조합의 공동재산이다. 출자 배당이 있는 경우에 조합원은 출자액에 따라 제한된 배당금을 받는다.

조합원은 다음과 같은 목적에 따라 잉여금을 배분한다.

(1) 협동조합의 발전을 위해 잉여금의 일부는 배당하지 않고 유보금으로 적립

(2) 조합원의 사업 이용 실적에 비례한 편익 제공

(3) 조합원의 동의를 얻은 여타의 활동을 위한 지원

4. 자율과 독립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에 의해 관리되는 자율적인 자조 조직이다.

협동조합이 정부 등 다른 조직과 약정을 맺거나 외부에서 자본을 조달하고자 할 때는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가 보장되고, 협동조합의 자율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5. 교육, 훈련 및 정보 제공

협동조합은 조합원, 선출된 임원, 경영자, 직원들이 협동조합의 발전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도록 교육과 훈련을 제공한다.

협동조합은 일반 대중, 특히 젊은 세대와 여론 지도층에게 협동의 본질과 장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6. 협동조합 간의 협동

협동조합은 지방, 전국, 지역 및 국제적으로 함께 협력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협동조합 운동의 힘을 강화시키고 조합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봉사한다.

7.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동의를 얻은 정책을 통해 조합이 속한 지역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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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8정태인/새사연 원장

고용없는 성장, 불안한 성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본이동통제, 자산가격규제, 재벌규제를 먼저 해야 한다. 아래로부터, 안으로부터의 성장을 하기 위해선 임금 상승, 에밀리아형 중소기업 클러스터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여기 또 하나의 성장동력이 있다. 바로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사회경제(social economy·사회적 경제로도 번역한다)’다.
 
경제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가정 아래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꾀한다. 반면 사회경제는 인간의 상호성(reciprocity)을 근거로 공정성(fairness)의 기준에 의해 연대를 도모한다. ‘착한 경제학’이 누누이 강조한 신뢰와 협동은 사회경제가 사회정의뿐만 아니라 효율성도 달성할 수 있도록 한다.
 
기실 사회경제의 역사는 시장경제보다 오래 되었다. 수렵채취시대에는 어느 종족이나 식량 공유의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또 동물을 잡거나 열매를 딸 때도 협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농경시대의 관습으로 아직도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두레나 계 역시 사회경제에 속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협동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윈의 생존경쟁은 동시에 협동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사회경제는 협동조합으로 재탄생했다.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는 노동조합을 만들어 착취를 막았지만 소비과정에서 또 다시 수탈을 당했던(예컨대 가짜 밀가루를 팔았다)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 최초의 협동조합이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 추구하지만 동시에 지역공동체 등의 사회적 목표도 달성하려고 한다.
 
1980년대 이래 서구의 복지국가가 재정위기에 빠지자 사회경제는 다시 각광을 받았다. 역사를 살펴보면 자본주의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사회경제는 대안으로 떠올랐고 부피를 늘려 왔다. 하여 최근에는 국가가 담당했던 복지서비스 중 사회서비스를 사회경제가 떠맡는 경우가 많이 생겨났다.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연대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이 바로 새롭게 생겨난 사회경제의 범주들이다. 이탈리이아 볼로냐의 카디아이(CADIAI)라는 사회적 협동조합은 과거 시정부가 하던 복지의 70%를 떠맡았는데 공급가격은 떨어지고 서비스 질은 훨씬 좋아지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에서도 자활공동체운동, 실업극복 국민운동 등으로 이어지던 사회경제의 흐름이 2007년 사회적 기업법, 그리고 최근의 협동조합 기본법의 제정으로 법제화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복지사회를 여는 한국에서는 처음부터 사회경제에 연계한 복지를 설계할 수 있다. 예컨대 국가의 건강보험시스템에서 마지막 의료서비스 전달(1차 진료)을 의료생협이 맡는다면 우리는 대통령이나 재벌이나 누리는 주치의제도를 확보하게 된다. 의료생협은 자체로 주치의 역할을 하지만 만일 건강보험에서 일정한 보조금을 준다면 말 그대로 영국식의 주치의가 생겨날 수 있다.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안성 의료생협의 경우 조합원 1인당 연간 1만원에서 2만원 정도의 보조금만 줘도 명실상부한 주치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많은 병을 예방할 수도 있고, 3차 의료기관에 직접 갈 필요도 줄어들 뿐 아니라, 값비싼 검사도 대폭 감소할 것이다. 따뜻한 경제가 동시에 효율성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사회경제는 지역공동체 속에 뿌리박아야 한다. 캐나다의 경우처럼 지역공동체의 사회경제정책을 사회경제부문이 담당할 수도 있다. 로컬푸드운동이나 재생에너지 사업, 제주 올레길이 불을 붙인 트레킹코스 사업, 숲 가꾸기 등이 모두 사회경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이다. 수많은 사회경제가 네트워크를 이뤄서 신뢰와 협동이 번져나가면 그것이 곧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축적이다. 이미 증명된 것처럼 사회적 자본은 사회혁신을 낳아 따뜻하면서도 효율적인 경제를 이루게 한다.

현재 2~3%에 불과한 사회경제를 최소한 10% 수준으로 늘린다면 우리 아이들은 훨씬 더 안전하고 따뜻한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을만들기 등의 사업도 1000만명 대상의 거대한 사회경제 프로젝트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사회경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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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4 / 06 새사연

시장경제, 공공경제, 그리고 사회경제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 차]

1. 정의로운 시장경제

2. 숙의 민주주의에 의한 공공경제

3. 지역 경제에 뿌리박은 사회경제

4. 새로운 사회와 동아시아 시대

 

[본 문]

편집자 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악화되자 한국사회에서는 전례 없는 보편 복지 요구가 확대되고 있고 경제 민주화의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양대 선거를 맞아 정권교체 요구가 거센 가운데 다양한 사회개혁 의제가 정책 공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정말 2013년 체제라고 불릴만한 사회 대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자면, 강력한 경제개혁 전망을 갖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새사연의 문제의식이다.


이에 새사연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시대적 가치와 비전, 새로운 경제모델과 성장모델, 총체적 경제개혁, 보편복지를 망라하는 정책을 모아 2012년 5월 중 단행본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출판될 원고 가운데 일부를 새사연 회원들과 미리 공유하고자 [새로운 사회 2013]이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1. 정의로운 시장경제

재벌개혁으로 시장의 정의를 세워야 한다

한국경제에서 재벌은 시장의 경쟁자가 아닌 지배자였다. 한국 시장경제의 문제는 재벌 문제이다. 우리역사에서 지배층은 일관되게 재벌-보수언론-경제 관료의 삼각동맹이었다. 오죽하면 대통령 입에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이 나왔을까? 재벌은 행정부와 입법부 나아가서 사법부까지, 사실상 우리사회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모든 정책은 수출대기업의 이익을 보장하는 데 집중되고 시민들은 재벌의 성쇠와 자신의 이익을 동일시하는 데 이르렀다. 그러나 지난 15년의 세월이 증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위로부터의 성장이 아랫목을 데워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재벌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앞으로 한국의 사회 전략과 정책을 짤 때 빼 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 지난 10여년 경제개혁연대 등은 기업의 주인은 주주이므로 임금과 이자, 지대 등을 뺀 나머지는 주주의 몫이라는 주주이론(shareholder theory)에 입각한 소액주주운동으로 재벌의 횡포를 견제했다. 기업총수 등 지배주주가 소액주주를 약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주대표소송제, 이중소송제, 사외이사제 등을 도입한 것은 분명 혁혁한 성과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상호출자제한 기업규모의 완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지주회사 설립요건 완화를 통해 재벌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더 거대한 규모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하청기업과 비정규직을 수탈한 결과라면, 따라서 소액주주나 정규직노동자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방조한 결과라면 주주이론에 입각한 재벌규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 재벌을 보는 관점을 이해당사자이론(stakeholder theory)으로 확장해야 한다. 기업은 이해당사자 전체가 이익과 위험을 공유함으로써 더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따라서 기업은 주주 뿐 아니라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기업의 이해관계자는 주주 외에도 노동자, 하청기업, 지역주민 그리고 소비자를 포함한다.

쉬운 이해를 위해 기업을 하나의 팀으로 간주해보자. 팀의 생산성이 높아지려면 내부 구성원 사이에 신뢰와 협동이 필요하다. 신뢰와 협동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이익과 위험을 공정하게 부담한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공정성을 깨뜨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응징이 가해진다는 약속도 필요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팀의 구성원 중에서도 내부자와 외부자를 구분할 수 있다. [그림1]에서 보이듯이 재벌체제에는 중첩적인 내부자와 외부자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예컨대 기업총수가족, 가신과 지배주주는 제1차 내부자로서 나머지 이해당사자를 수탈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수탈당하는 모기업의 정규직 노동자, 1차 공급업체, 소액주주 등은 제2차 내부자로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하청기업을 수탈한다. 소비자와 지역주민은 간접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와 하청기업 수탈에 가담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금 재벌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첫째, 수탈당하는 이해당사자들이 먼저 세력화하여 착취하는 이와의 대등한 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재벌체제 내의 정의를 위해서 다른 이해당사자들이 응징 수단을 구비해야 한다. 완벽한 재벌 개혁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싸울 수 있는 세력을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노동자들의 응징수단은 노조 조직과 파업을 통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퇴사하여 탈출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비정규직 노조 조직율을 높이는 것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높여 재벌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경영참가제도 역시 좋은 방안이다. 독일식의 감독이사회에 참여하는 방법, 일본식의 노동자 이사제도, 지역주민이나 소비자의 경우 위원회제도를 적절하게 응용할 수 있다. 노동자가 퇴사하는 것은 아직 우리사회에서 그다지 효과적인 응징 수단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를 보조하는 방법으로 실업수당을 강화할 수 있다.

하청기업의 응징수단은 공동 교섭단체 조직과 하청 전환이다. 그러나 하청기업은 수직계열로 층층이 네트워크를 이루고 파편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재벌이 핵심 산업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수직계열에서 탈출하는 것은 곧 파산을 의미하므로 탈출도 거의 불가능하다. 하청기업 간의 수평적 네트워크화를 통해 다른 대기업이나 외국 기업에 부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청기업의 응징수단을 강화하는 길이다. 하청기업 역시 이사회나 위원회 등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소비자는 소비자운동이나 제품평가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가장 쉽게는 물건을 사지 않음으로써 불공정 행위를 응징할 수 있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소비자보호를 위한 금융상품 평가 및 정보공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역주민은 기업이 일으키는 사회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둘째로는 공유 이익의 분배 규칙을 정하는 일이다. 물론 각 이해당사자의 세력화가 되어 있는 경우 때에 따라 분배 규칙을 정할 수 있겠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이익과 위험을 공유하는 체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의 경영학자 프리먼(Edward Freeman) 등이 집대성한 공유자본주의론은 영미형 국가에서도 이익고유 체제가 대단히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특정 규칙에 따라 노동자가 자사 주식을 소유하는 노동자주식소유제도(ESOP)를 재벌기업 뿐만 아니라 하청계열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스웨덴의 임노동자기금은 가장 급진적인 형태의 ESOP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역주민과 관련해서는 지금 서울시가 추진하는 것처럼 주민과 기업이 모두 참여하여 지역발전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이 있다. 이 기금은 지역의 자연을 보호하고 사회서비스와 같은 친밀노동을 제공하는 서비스산업, 지역특화산업 등에 사용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의 형성은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

셋째로는 국민경제 전체에 대해 재벌이 유발하는 외부성을 사전에 규제하는 것이다. 한국의 10대 재벌은 이미 대마불사의 경지에 올라서 위기에 처하면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을 수 없다. 재벌이 무너지면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 체제에는 사전규제가 필수적이다. 무엇보다도 금산분리, 2002년 수준의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순환출자제한 등은 미숙한 3세 총수의 판단 오류로 빚어질 수 있는 위기를 막아주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나아가서 정치와 사법부, 언론에 대한 회유는 형법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해당사자의 세력화, 이윤공유 제도, 그리고 사전 규제제도라는 세 가지 범주의 정책을 조합하여 재벌을 규제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독일 상법의 일부인 콘체른법은 공정거래법, 그리고 공동결정법과 더불어 기업집단을 규율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재벌의 실체를 인정하고 전체로서의 효율을 평가하되 각 이해당사자가 제 목소리를 내서 이윤과 위험을 공정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기업집단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 전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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