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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22 동네 구멍가게, ‘사업조정제도’로 회생할까?
주제별 이슈 2009.07.22 17:35

대형마트가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면서 벼랑 끝까지 밀린 영세 자영업자들이 수퍼수퍼마켓(SSM)이라는 대형마트의 게릴라 전술로 결국은 완전히 소멸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지난 7월 16일 인천수퍼마켓협동조합이 홈플러스를 상대로 제기한 사업조정 신청을 중소기업청이 받아들여 영업일시정지 권고를 내릴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황은 급반전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 곳곳에서 사업조정 신청이 봇물처럼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형유통업체들은 개점을 앞둔 점포의 개점일자를 연기하는 등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여태껏 수세에 몰리면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위해 정치권에 모든 희망을 걸었던 영세자영업인들이 스스로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 새로운 묘수를 발견한 데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우려되는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1. 자율조정이라는 보기 좋은 떡

‘중소기업 사업조정’라는 이름도 낯선 이 제도는 어떤 것일까?
과거 재벌들이 무분별하게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중소기업이 생존할 시장까지 잠식해 나가자, 정부는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라는 것을 만들었다. 어떤 업종은 아예 대기업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칸막이를 쳐놓은 것인데, 진입이 허용되더라도 여러 가지 조건을 달아서 중소기업의 생존을 보호했다. 그러나 시장개방 등 경제 환경이 변하면서 이러한 규제가 자유무역에 반한다는 논리가 확산되고 중소기업도 자체의 경쟁력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 결과 ‘고유업종제도’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문구만 남아있고 사실상 폐지되었다. 왜냐하면 고유 업종을 대통령령으로 지정할 수 있는데 정부가 이미 고유 업종을 다 해제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칸막이를 없애자 대기업의 시장잠식으로부터 중소기업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중소기업 사업조정 제도’만 남게 되었다. 고유 업종 제도와 함께 있던 제도지만 고유 업종 제도보다 실익이 별로 없던 제도였다. 그런데 이 제도가 중소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제도처럼 되면서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문제는 이 제도가 과연 실효성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사업조정 신청 후 정부의 조정 작업까지 간 사례가 단 한 차례도 없었고, 모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자율협상에 의해 사전 조정이 이루어졌다. 자율적인 협상에 의해 갈등이 조정된다면 그만큼 좋은 일은 없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대형서점과 군소서점간의 자율협상의 결과, 1,2층에 매장을 설치하려던 대형서점이 3,4층으로 옮기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대기업의 양보가 크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자율협상 자체에 의의가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율조정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중소기업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해 놓은 상태이지만, 관계자들의 전언은 대체로 대기업이 기업 이미지를 고려해 자진해서 많은 양보안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말대로 된다면 이번 경우의 사업조정 신청이 갖는 의미와 영향력을 감안할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해결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지금의 대형마트와 영세소매점과의 분쟁은 자율적으로 조정되기 어려운 점이 많다. 무엇보다 대형마트들의 태도가 문제다. 새로운 시장 개척전략을 ‘기존 소매업 시장 빼앗기’로 세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경쟁약자를 대상으로 한 안이한 경영전략을 세워왔고 지금까지 영업시간 제한, 품목 제한 등 영세자영업자들이 내놓은 제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게다가 세간의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SSM이라는 신종 업태를 등장시켜 동네 구멍가게를 싹쓸이하고 있는 터다.
대형마트들은 사전 자율협상에서도 불성실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고, 지금까지 추진해온 노력이 무(無)가 될 수도 있는 정부의 조정과정에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할 것이다.
따라서 자칫 자율조정이 보기만 좋지, 먹지는 못하는 떡이 될 수도 있다.

2.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사업조정 제도의 구체적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중소기업단체나 이를 대신하여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 신청을 한다.
중소기업청은 이를 기초로 대기업에 선제적인 일시조치를 권고할 수 있는데, 일시영업정지가 그 예다. 지금 인천의 사례는 홈플러스가 스스로 개점을 유보함으로써 중소기업청의 조치가 필요 없게 되었지만, 다른 지역의 신청이 접수되었을 때 관련 대기업이 진입을 계속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중소기업청이 대기업에 별도의 일시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자율조정이나 정부의 조정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업조정 신청단체는 1개월 내에 사실조사와 피해사례를 모아서 중소기업청장에게 보강 제출하고, 중소기업청장은 사업조정심의위원회를 열어 사업조정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문제는 사업조정의 기한은 법률로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중소기업청이 ‘일시정지’ 조치를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조정심의가 길어질 수 있다. 대기업이 투자와 사업을 강행하여 실질적인 영업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최종 조정심의 결과가 대기업에 불리하게 날 경우 대기업은 그 손실이 엄청날 수도 있다.
일본의 경우는 대기업에 대한 정보 등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대기업의 진입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조사를 신청할 수 있고, 중소기업단체는 조사의 결과가 심각할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조정과정 이전에 대기업에 권고를 내리도록 요청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전과정이 있은 후에도 대기업이 그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조정과정으로 돌입할 수 있다. 우리는 일본에 비해 정부의 적극적 노력 의무가 없는 형태로 제도가 만들어져 있다.
제도의 취약점이 있다 하더라도 정부의 의지가 있다면 부족한 점을 메울 수 있다. 중소기업청이 현재의 조정과정에서 대기업의 일방통행을 제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거나 대기업 스스로 일방통행을 자제하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홍석우 중소기업청장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사업조정 신청을 각 지역별로 하고 있지만 사실 전국적 사안이고, 여론과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인 영세상인들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홍 청장의 행보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대기업들의 압력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홍 청장은 단 하나의 대기업이라도 홈플러스와 같이 자체적인 유보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바로 일시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편, 자율협상이 실패하면 본격적인 조정심의과정으로 넘어가게 된다. 심의위원회는 공정거래위원장과 지식경제부 장관이 추천하는 2인 외에는 7인 이내의 위원과 위원장을 홍 청장이 추천권을 행사한다. 그런 점에서 중소기업청의 수장인 홍 청장의 의중이 중요하다. 법령에 따라 심의위원회의 회의록을 비치하게 되어 있어, 얼마나 객관적인 근거를 기초로 조정을 하게 될지 투명하게 알 수 있겠지만 같은 근거를 놓고도 정책적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중소기업청이야 중소기업의 입장을 잘 고려하겠지만 시장경쟁의 논리가 판을 치는 이 정부의 기존 태도에 비추어 얼마나 소신 있게 조정 역할을 잘 해낼지 우려된다. 노동부가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는 건 익히 경험으로 학습해온 바가 아닌가.

3. 조정도 중요하지만 제도화는 여전히 필요

이미 대형마트와 그 지배하에 있는 SSM과 같은 대형유통업체가 영세소매업의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막거나,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법률을 가진 나라들은 많다. 영세자영업인들이 제도화된 보호 장치가 없어서 그 결과가 불확실한 조정제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조정의 결과 영세자영업인들의 피해가 분명하다면 내릴 수 있는 행정명령에는 진입 제한, 영업시간 제한, 품목 제한 등 다양한 조치가 있다. 지금 국회에는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법률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되어 있다. 매번 다양한 사례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당사자 간의 자율적 협상 그리고 정부가 개입하는 조정제도가 융통성 있는 제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영세자영업인들의 피해가 분명하고 수많은 동네 수퍼마켓이 대형마트의 자본력과 인프라를 이겨내고 생존할 수 있는 대안은 난망한 상태를 직시해야 한다. 몇 개의 성공사례를 가지고 수많은 자영업인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감언이설을 펼쳐서는 안 된다. 한국의 산업구조가 자영업의 인력을 흡수할 수 있는, 새로운 고용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상태로 변화하기까진 유통업에서의 영세자영업인 보호는 중장기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업조정 제도를 통한 문제해결보다 안정적이고 강제성을 가진 제도화는 여전히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

김일영/새사연 정치사회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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