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4정태인/새사연 원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함해서 48% 중 얼마쯤이 ‘멘붕’에 빠졌다 해도 첫사랑이 깨졌을 때보다 더할까? 이런저런 발버둥이 치유의 시간을 얼마나 줄였는지도 의문이지만 결국 영원할 것 같던 시간도 지나지 않았던가? 다음으로 ‘먼저 패배의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 지극히 옳다 해도, 아직 관련 통계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민주진보진영’의 재편은 족히 1년은 걸릴 텐데 ‘정확한’ 진단을 지금 내놓아야 할 이유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48%의 ‘힐링’에 당장 필요한 일은 뭘까? 어쩌면 박근혜 당선인이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이 아닐까? 예컨대 문재인 후보의 공약 중 쓸 만하고, 동시에 본인에 대한 지지를 넓히는 데도 방해가 되지 않는 것들을 인수위에서 확정하면 어떨까? 당선인도 ‘맞춤형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우지 않았던가?

당장 현재의 ‘장기침체’를 벗어나려면 일단 소비가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서민층의 소득이 증가해야 하고 동시에 소비를 가로막는 요인을 없애야 한다. 그렇다고 최저임금 획기적 인상, 노동조합 강화, 하청업체 단체협상권 인정 등 시장에서 양극화를 억제하는 정책은 박 당선인의 정책기조에 비춰 차마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복지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맞춤형 복지’를 늘리는 만큼 경제는 더 빨리 회복된다. 민주당 역시 이런 목적의 적자재정이라면 48%를 위해 찬성해야 한다. 증세냐 국채냐를 따질 때가 아니다(물론 ‘부자증세’가 훨씬 낫지만).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복지인 동시에, 소비 방해 요인을 제거하는 일거양득의 정책이다. 이 정책에 관한 한 문 후보의 정책이 훨씬 더 설득력 있다. ‘4대 중병만 중병인가’를 넘어서 만성병 환자 역시 절망적이다. 보장성을 90%까지 올리는 데 얼마 정도의 보험료 인상이 필요한가는 이미 시민단체에서 정리해 두었으니 계산하느라 뜸을 들일 이유도 없다. 재정 문제나 급작스러운 국민 부담에 신경이 쓰인다면 연간 상한액은 200만원 정도로 조정해도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서민의 소비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역시 가계부채다. 만일 집값까지 폭락한다면 우리 경제는 위기상태에 빠질 것이다. 금년과 내년 역시 2%대의 성장에 머물 것이기에 지금 정부나 언론처럼 안이한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이 역시 문 후보 쪽의 정책 방향이 옳았다. 당선인의 ‘국민행복기금’은 기실 ‘은행행복기금’이다. 은행의 채권회수에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일단 ‘약탈적 대출’을 통해 그동안 천문학적 수익을 올린 금융권이 책임져야 한다. 번번이 금융소비자에게만 이른바 ‘도덕적 해이’의 책임을 묻고 그 원인을 제공한 금융기관, 그리고 감독당국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지 않는다면 이런 금융위기는 또 일어날 것이다.
 
셋째로는 사교육비인데 당선인은 심야 사교육과 선행학습의 규제만 제시하고 있다. 이 문제는 사실 대학입시를 개혁해서 ‘경쟁교육’을 뿌리뽑아야 해결될 문제지만 거기까지 기대하는 건 정책기조상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입시제도를 간소화하고 더 획기적인 사교육 규제를 하면 소비는 대폭(학원 관계자와 학부모의 한계소비성향 차이만큼) 증가할 것이다. 이 정책에는 돈도 들지 않는다.
 
쓴 김에 팁 하나 더. 우리나라 사람 중 어느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고 세수를 확보할 방법도 있다. 바로 토빈세(돈이 국경을 넘을 때 물리는 세금)다. 단 0.01%만 부과해도 약 2조원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탄소세까지 검토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이건 그냥 꿈으로 간직하겠다.
 
이 정도만 인수위에서 확정한다면 48%는 절망을 거두고 생업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대통합’을 원한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엄동설한에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분들이 기꺼이 내려올 수 있도록 중재한다면 어느 누가 당선인을 ‘100%의 대통령’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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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해설

국제학업성취도(PISA,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란?

OECD가 의무교육 종료 시점에 있는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읽기, 수학, 과학 영역의 성취수준을 평가하는 것이다. 3년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각 국가의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기초자료로 제공된다.

학습시간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정규수업과 보충수업, 학교 안팎에서 개인이 스스로하는 자율학습, 학원 등에서 과외강습을 받는 사교육시간 등으로 나누어 조사되었다.

▶문제현상

한국 사교육시간, 핀란드 13배

2003년 PISA와 2005년 OECD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청소년의 학습시간을 핀란드, 일본, 캐나다, 벨기에 영국과 비교해보았다. 이들 나라는 PISA에서의 수학성적이 한국과 비슷한 나라이다. 2003년 PISA 수학 영역 평균 성적을 보면 핀란드가 544점으로 1위였으며, 한국이 542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일본이 532점, 캐나다가 529점, 벨기에가 524점, 영국이 508점으로 뒤를 이었다.

우선 한국 청소년의 1일 사교육 시간은 78분으로 가장 높았다. 이는 6분으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인 핀란드, 벨기에에 비하면 13배나 높다. 뿐만 아니라 캐나다 12분, 영국 18분, 일본 24분으로 우리나라보다 현저히 낮았다.

총 학습시간 역시 최대, 핀란드 2배

한국 청소년의 1일 총 학습시간 역시 8.9시간으로 비교 국가들 중 가장 길었다. 캐나다가 7.9시간으로 2위를 차지했고, 뒤를 이어 일본이 6.6시간, 영국이 6.1시간, 벨기에가 5.9시간, 핀란드가 4.5시간을 기록했다. 그 외 정규수업과 보충수업 시간 역시 각각 1일 4시간, 1.5시간으로 한국이 가장 많았다. 자율학습 시간의 경우만이 다른 국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1일 2.1시간을 보였다.

결국 같은 학업성취도를 낸다 해도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 청소년의 자기주도 학습시간은 짧고, 사교육 시간은 길었다. 또한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 비해 성취도는 높지 않았다.


▶문제 진단과 해법

입시경쟁 교육이 낳은 비효율성

한국 사회에서는 학업시간이 길수록 성적이 높을 것이라는 상식이 자리하고 있다. 때문에 방과 후에도 더 많은 사교육을 받는 것이 성적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국제 비교를 통해 드러나듯이 학업시간과 성적 간에는 큰 관련성이 없다. 특히 사교육시간의 경우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성적과 부(-)의 관계마저 보인다.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을 발굴하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성적이라는 하나의 잣대를 사용하여 상위권 대학 입학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으로 집중되는 한국사회의 교육제도에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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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정태인/새사연 원장

아이를 둔 보통 부모에게 교육만큼 절박하면서도 그저 막막하기만 한 문제도 없을 것이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들여 과외시키고 애들 닦달하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할 때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 사회에서 아이가 과연 승리(?)할지 자신이 없다. 행동경제학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운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마저 없었더라면 벌써 희망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지난번에 말한대로 우리는 모두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고 개인이 홀로 이 함정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모두 남이 시키니 어쩔 수 없이 나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과연 사교육에 들인 돈만큼 등수가 올라가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 그렇게 믿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똑같은 사교육을 시킨다면 등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아이들을 괴롭히기 위해 돈을 썼을 뿐이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더 나쁘다. 우리는 등수를 올리는 ‘더 좋은’ 사교육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 사교육은 더 비쌀 거라고 확신한다. 이제 사교육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요즘 그러하듯 부동산 가격은 주춤거릴 수도, 그리고 곧 곤두박질칠 가능성도 있지만 사교육 값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들이 아이들 대학교육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할아버지의 재산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은 정확히 이 게임의 성격을 짚고 있다. 높은 사교육 가격은 물론 부자들에게 유리하며, 서울대에 가보면 이 농담이 단순한 우스개가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로또 심리라는 가느다란 희망 줄에 매달려 가망 없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만 절망적인 게 아니다. 나라 전체로 보면 더 심각하다. 세습귀족이 생긴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는 게 그 첫째요, 어떻게든 승률을 높이려고 하나만 낳아 인구가 줄어드는 게 그 둘째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머릿속에 구겨넣은 지식이란 게 구글 검색으로 언제든지 즉각 찾을 수 있는 것들뿐이다. 미래에 필요하다는 창조력과 상상력은 암기에 밀려 체계적으로 말살되고 있다. 아이들에게 과연 ‘밝은 미래’가 있을까?

상위 10%를 빼고는(장기적으로는 이들에게도 불행이다) 모두에게 불행인 이런 게임에서 벗어날 길은 과연 없을까? 있다. 지난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오스트롬 여사가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주제로 평생을 연구한 것이 바로 과거에 인류를 죄수의 딜레마에서 해방시켰던 지혜, 그리고 그 논리적 해명이다.

또다시 게임이론으로 단순화하자면 그것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사슴사냥 게임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는 남이 협동하는 경우 나도 협동하는 게 이익이 된다. 즉 남이 배반할 경우엔 나 역시 배반하는 게 낫지만 협동한다면 탐욕에 의해 이를 이용하지는 않는 것이다. 실제로 남들이 안 시킨다면 나도 애들 놀리고 싶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믿는가? 해서 엄마들은 외친다.

“제발 국가라도 나서서 모두 사교육시키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렇게만 된다면 아무리 입시제도가 비합리적이라 해도 최소한 공정경쟁은 확보하는 것이 아닌가? 지난번 교육감 선거의 결과는 그런 엄마들의 소원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가 만든 아이들의 불행이니 우리 스스로 풀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다음 글의 주제이다.

이 글은 '주간경향' 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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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9정태인/새사연 원장

그래도 인간은 이기적인데…. “인간이 이기적이지 않다”고 주장한 지난번 글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한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게 사실이다. 또한 생물학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 동물인 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인간은 본성상 이기적일 것 같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당신은 이기적인가?”라는 질문에는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남들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예”라고 대답한다(스스로에게 질문하시기 바란다). 여기에 중요한 열쇠가 숨어 있다.

앞으로도 자주 등장할 간단한 게임 하나를 소개한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지라도 조금만 익숙해지면 아주 유용한 게임이니 잠깐만 집중하시기 바란다. <뷰티풀 마인드>에서 내쉬가 논문을 제출하자 지도교수는 “자네가 지금 뭘 했는지 아는가? 150년 된 경제학을 모조리 부정하고 있다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진짜로 그랬을까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개인은 자신만의 이윤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개인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결국은 의도하지 않았던 목표, 즉 공익의 증진에 기여하게 된다”는 아마도 경제학에서 제일 많이 인용되었을 아담 스미스의 통찰이 부정됐다는 것이다. 바로 ‘죄수의 딜레마’라고 하는 게임이다.

보수를 나타내는 각 칸의 첫 번째 숫자가 경기자 I(나)의 보수이고 두 번째 숫자가 경기자II(상대방)의 보수이며 C는 협력, D는 배반을 나타낸다. 내가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각 칸의 앞 숫자를 비교해서 더 큰 쪽을 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보수가 (D,C)=4 > (C,C)=3 >(D,D)=2 > (C,D)=1의 순서라면 언제나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된다. 상대방이 협력(C)를 선택했을 경우 내 보수는 C=3, D=4이므로 D를 선택할 것이고, 또 상대반이 배반(D)를 선택한 경우에도 내 보수는 C=1, D=2이므로 역시 D를 택해야 한다. 즉 상대가 배반을 하든, 또는 협력을 하든 나는 배반을 하는 게 이익이다. 상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므로 우리는 동시에 배반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일부러 꾸며낸 숫자 예처럼 보일 테지만 우리 주위에 이런 상황은 널려 있다. 나의 보수 크기가 협력보다 배반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면 그것은 모두 죄수의 딜레마게임이다. 혹시 내가 그 함정에 빠진 게 아닌가 싶을 때, 자문해봐야 할 리트머스 시험지는 이렇다. “남이 다 하면 나도 따라 할 수밖에 없다”(공포), 그리고 “남이 다 안 하는 경우 나만 하면 ‘대박’이다”(탐욕). 이 두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바로 사교육이 그렇다. 그리고 부동산(주식)에 대한 우리 태도도 비슷하다. 남들이 다 과외시키는데 우리 애만 마냥 놔둘 수 없고, 남들이 다 빚내서 집사는데 나만 유유자적, 안빈낙도 하다간 영원히 셋방살이 신세일 거 같다면 우리는 죄수의 딜레마 함정에 빠진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글 첫머리에 한 질문의 답이 있다. 남들 대부분이 이기적이라고 대답한 분들은 바로 위 표의 오른쪽 상황을 맞고 있다. 즉 상대방의 배신에 하릴없이 당하는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도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모두 그렇게 행동한다면? 각자는 이기적이지 않은데 그런 사람들로 이뤄진 사회는 이기로 가득찬 상황이 오는 것이다.

이 글은 '주간 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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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11.04.26 20:41

2011 / 04 / 26 최정은/새사연 연구원

득보다 실 많은 '유아 사교육'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보고서 제목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목차]

1. 들어가기
2. 사교육의 폐단...유아 발달에 ‘직격탄’
3. 유아 사교육비 부담, 초중고생 못지않아
4. 유아 ‘특별활동’ 역시 또 하나의 ‘사교육’
5. 조기교육과 맞닿은 유아 사교육, 부모 탓만?
6. 득보다 실 많은 유아 사교육, 해법은?

 [요약]

마음껏 뛰어놀아야할 유아들이 취학 아동들과 마찬가지로 사교육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최근의 연구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여러 실태조사에서 밝혀진 결과를 보더라도, 사교육은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부모들의 투자행위로 볼 수 있다. 공교육 이외의 다른 교육활동이 아이들의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나아가 학벌중심의 사회에서 좋은 대학이 자녀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할 수 있다는 기대를 높이면서 ‘너나할 것 없이’ 사교육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하지만 사교육의 효과는 과장된 측면이 크다. 초등학생일 경우 사교육 효과는 크지만, 중고등학교로 올라갈 경우 사교육보다는 학업에 대한 태도나 적성이 성적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보고가 있다. 이러한 결과는 유아기에 형성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생활태도나, 인성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실제로 유아인성교육을 잘 받은 아이들이 문제해결력, 의사소통, 사회적 관계, 정서인식 및 표현, 정서조절, 감정이입 등 학습과 관련한 사회적 능력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정작 과도한 사교육으로 아이들의 심신이 병들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낮다. 유아기는 어느 연령대보다도 신체, 정신, 인지 등 모든 면에서 고른 성장이 중요한 시기이다. 때문에 우리의 유아교육은 놀이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하지만 조기교육 열풍과 사교육 시장의 경쟁이 유아의 전인교육을 해치고 있다.

사교육의 출발선이 유아, 심지어 영아로 내려와 있는 현실에서 유아들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우리의 사교육은 순기능보다는 현실 안에서 많은 모순을 낳고 있다. 학습 위주의 교육과정으로 유아들이 받을 스트레스, 정규유아교육의 파행적인 운영, 자유활동의 기회 박탈, 사교육비 증가와 가계 부담 가중, 사회 계층간 갈등 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들이다.

이제는 태어나면 사교육 기관에 등록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태어나면서 사교육을 가장 먼저 접하기 때문일 수 있다. 도를 넘은 사교육이 유아의 전인교육을 무너뜨리고 있는 만큼, 이의 문제를 되짚고 해법을 찾아보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jechoi@saesay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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