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29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경제 민주화, 대선 최대 쟁점이 정말 맞는가?

네 달도 남지 않은 18대 대선의 최대 쟁점이자 이슈가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지 최근 상당한 회의를 갖게 한다.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를 가지고 도무지 여와 야의 구분, 보수와 진보의 구분, 대선 후보들 사이의 차별성이 생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민주통합당과 대선 후보들이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재벌개혁-경제 민주화 전망과 방안을 만들어내지 못한데 있다.

단적인 사례가 새누리당 경제 민주화 실천모임이 준비하는 금산분리 법안 내용이다. 새누리당 법안은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9%에서 4%로 되돌리는 것을 넘어서, 기존에 재벌이 제한없이 소유했던 보험, 증권 등 비은행 금융회사들을 중간금융지주회사로 묶어서 따로 분리하기로 했다고 알려졌다. 비록 소유관계를 끊어내는 진정한 금산분리는 아니지만, 은행이 아닌 금융계열사에 대해서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민주통합당이 준비해온 법안보다 더 전진된 것이다.

이처럼, 민주통합당과 대선 후보들은 과거부터 전통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재벌개혁 의제들, 예를 들어 출자총액 제한,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지분요건 강화, 금산분리 등을 의례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넘어서 시대와 상황변화에 맞는 혁신적인 개혁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관성적이고 소극적인 경제 민주화 의지 때문에 쟁점이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여의도를 나와 민생현장의 경제 민주화를 실천하라.

이러한 것들이 실제로는 어렵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민주당의 손학규 후보는 “비대화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것을 (경제 민주화를 위한) 네거티브 접근이라고 한다면, 경제적 약자들이 적극적으로 경제 민주화를 펼치는 능동적인 접근이 있다”는 분석을 했다. 매우 적당한 지적이다. 민주통합당 후보들은 즉시 능동적인 접근으로 돌아서야 한다.

능동적인 접근은 현대차에서 사내하청으로 일하고 있는 8000 명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불법파견 판결에 따라 즉시 정규직 전환을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이미 인근에 1개 대형마트와 3개의 SSM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4300평 규모의 대형마트를 마포 합정에 입점시키려는 홈플러스를 막는 것이다. 경제적 약자들이 적극적으로 경제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는 생활현장에서 그 요구를 함께 실현하고 이를 제도화해주는 것이다.

 

월 2회 휴무제도 간단히 무력화 되는 상황에서 경제 민주화라니.

특히 중소상인들은 마포 합정 홈플러스 입점 저지를 위해 농성을 시작하면서 시민 사회단체와 함께 세 가지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대형 마트의 추가 입점 중지’, ‘대규모 점포의 영업시간 제한 확대와 모든 공휴일 의무 휴업제 시행’, ‘유통재벌의 도매업 신규 진출 중지’가 그것이다. 최근 유통재벌의 소송으로 월 2회 휴무제가 불과 4개월 만에 완전히 무력화된 상황을 중소상인들은 지켜보았다. 선거 국면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모든 정치세력이 경제 민주화를 소리 높여 외치는 현실에서도 유통재벌의 공세에 따라 월 2회 휴무제가 간단히 무력화되는 이런 상황에서 경제 민주화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롯데, 이마트, GS 등 유통재벌들은 우리나라 1,2,3위 재벌도 아니지 않는가? 이들에게도 쉽게 굴복하는 경제 민주화라면, 만약에 대선이 끝나고 정치권이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자마자 모든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여의도에서 사라질 것이다. 정치권이 정말 경제 민주화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가 있다면 9월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대형 점포 공휴일 휴무제를 입법화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 국민들도 지역의 중소 상인들과 연대하여 ‘착한 소비운동’ 차원에서 대형마트 휴무제 요구를 함께 해나갈 필요가 있다. 시민의 힘이 뒷받침 되지 않는 사회개혁은 이루어진 역사가 없음을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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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2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앞으로 5년 이상의 의미가 있을 18대 대선이 이제 4개월을 채 남겨 놓지 않았다. 지난 20일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경선결과 대선후보가 확정됐다. 예상했던 대로 대세론을 등에 업고 83.9%라는 압도적인 경선득표를 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곧이어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 경선도 본격화될 예정이다. 장외의 강력한 후보로 인정받고 있는 안철수 원장의 움직임도 더 빨라질 것이다.

첫 대선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는 지난 7월10일 출마선언과 이번의 후보 수락 연설에서 공통적으로 ‘국민행복’을 강조했다. “지금은 국가의 성장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의 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에 국가의 성장과 국민의 행복이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액면 그대로 주장을 받아들이면 더할 수 없이 좋은 얘기다. 더욱이 국가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해야 했던 박정희시대를 기억하는 우리는, 그 딸이 아버지 시대와는 다른 개념을 들고 나왔으니 반길 일이 아닌가.

그런데 사실 정책 결정자들이 국가 안의 살아있는 국민들을 보면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국가의 경계선을 넘어 지역공동체와 인류를 고려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는 최근 유럽 합중국을 꿈꾸면서 통화통합을 했던 유로공동체에서도 너무 잘 드러난다. 현재 남유럽국가 중에서도 그리스는 유로통화권 탈퇴를 고려해야 할 만큼 경제위기가 심각하고, 스페인이라는 유로 4위의 경제대국은 국가적 구제금융이 임박해 있다. 구제금융에 얼마가 들어갈지, 국채금리 안정화가 될지, 성장률이 회복될지 등 갑론을박이 벌써 3년째를 이어오고 있는 중인데도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런데 막상 그 경제통화권과 그 국가들 안에 살고 있는 국민들과 노동자들의 삶을 살피는 모습은 드물다. 정말 그들의 현실적 삶은 경제위기로 인해 어떻게 돼가고 있을까. 가장 간단한 세 가지 실업지표를 살펴보자. 유로존의 실업률은 2007년 1월의 7.9%에서 올해 5월 11.2%로 높아졌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독일은 9.4%에서 5.5%로 낮아졌다. 네덜란드의 경우 4.0%에서 5.1%로 약간 높아졌지만 평균의 절반에 그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면 문제가 되고 있는 그리스와 스페인은 어떤가. 그리스는 같은 기간 8.7%에서 23.1%로, 스페인은 8.2%에서 24.7%로 뛰어 올랐다. 실업률이 3배가 늘어났고 유로 평균의 2배가 넘는다. 두 번째 실업지표인 청년실업을 보면 더욱 극적이다. 같은 기간 독일은 12.6%에서 7.9%로 낮아졌고 네덜란드도 10% 미만이다. 그러나 그리스는 25.5%에서 53.8%, 스페인은 17.6%에서 52.6%로 뛰었다. 그리스와 스페인은 청년의 절반 이상이 공식적인 실업자인 것이다. 하나의 연방을 지향하는 하나의 통화국가들이라고 보기에는 독일·네덜란드 등과 그리스·스페인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 더 문제는 이런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과감한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독일 등의 정치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리스와 스페인 국민들에게 더 내핍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1년 이상의 장기 실업률을 보도록 하자. 예상대로 독일은 2007년 4.9%에서 지난해에 2.8%로 줄었고 네덜란드는 1.5%로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런데 4.1%로 장기 실업률이 독일보다 낮았던 그리스는 2011년 8.6%로 뛰었다. 스페인은 2007년 1.7%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그리스보다 높은 8.8%다. 이쯤 되면 도대체 그리스·스페인 노동자와 시민들의 삶이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치권과 유럽 중앙은행·유로집행위원회 등은 그리스와 스페인의 삶이 아니라 채권은행의 손실규모를 따지고 있고 긴축을 통한 부채상환을 압박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와 스페인 시민들에게 유로통화는 무슨 의미가 있으며 유로 합중국의 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계 곳곳에서 유로존 붕괴 여부를 놓고 논쟁하는 것이 부질없는 것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다시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 보자. 최근 현대경제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8.1%가 향후 계층상승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예 모든 국민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고 산다는 것이다. 그 주된 이유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더욱이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이 ‘안정된 삶’과 ‘소득분배의 공평성’을 주요인으로 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의 행복지수를 산출한 결과 우리나라는 34개국 가운데 32위로 꼴찌에 가까운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가장 불행한 우리 국민에게 행복을 주겠다는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 반갑기는 하다. 그런데 대통령의 딸로서 보수적 세계에서 단 한발도 나온 적이 없는 박근혜 후보에게 국민의 불행이 과연 어느 정도 공유가 될까. 불행에 대한 공유가 있어야 행복에 대한 진정한 갈구가 함께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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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4정태인/새사연 원장

 

<안철수의 생각>은 훌륭하다. 평생 정책만 다룬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그렇다. 물론 적잖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 자기의 생각을 섞어서 여러 사람의 의견 짜깁기한 것과 <안철수의 생각>은 다르다. 일관된 생각의 다발이 굵은 흐름을 이루고 있다.

예컨대 재벌개혁에 대한 그의 생각이 그렇다. 그는 놀랍게도 학계에서도 채 소화되지 않은 ‘이해당사자 이론’에 입각해서 재벌 문제를 진단하고 법조계에서도 아직 내용을 채우지 못했지만 방향이 뚜렷한 ‘기업집단법’을 대안으로 내세웠으며 그 생각의 틀은 ‘산업생태계’이다.

더구나 그는 종업원지주제나 이윤공유, 경영참가라는 미시적 실천 방안을 이미 실행해서 성공해본 사람이다. 그는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보편적 증세가 필요한 이유 또한 정확히 지적한다. 당장 표에 도움이 되는 복지정책을 나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책<안철수의 생각>을 읽기 전까지 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의 높은 지지율도, 확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우리 국민의 장점이자 단점이 고스란히 반영된 팬덤 현상으로 간주했다. 하여 간간히 보도되는 그의 ‘공자 말씀’도 곧 사라지려니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내 선입견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그는 내공을 지니고 있다. 폭발적 매력이란 면에선 뒤처질지 몰라도, 정책에 관한 한 2001년 내가 처음 만난 노무현을 훨씬 능가한다. <안철수의 생각>은 바이러스처럼 국민 안에 퍼질 것이고 현재까지의 대통령 후보 그 어느 누구도 마땅한 백신을 내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안철수 스스로가 가장 뛰어난 백신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흔히 언론은 안철수 교수를 중도로 분류한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중간쯤이라는 뜻일테고 <안철수의 생각>이 나온 뒤에는 민주통합당 쪽에 더 가까운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 굳이 자리를 따지자면 이 책은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중간쯤, 아니 진보파의 일부 그룹보다 더 왼쪽에 있다. 새로운 사회를 연구원 6년의 연구와 내 뼈저린 실패의 경험이 결합되어 금년 초에 나온 <리셋 코리아>와 ‘싱크로율’ 거의 100%라는 게 그 증거다.

안 교수의 또 하나의 장점은 그의 생각이 진보적이라 하더라도 ‘색깔공세’에 시달릴 우려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물론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이야 세가 불리하면 어떻게든 붉은 색을 덧칠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삶 어느 편린에도, 책 속의 어떤 낱말 하나에도 그럴 구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억지춘향은 역풍을 맞을 뿐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어야 하고 반대 세력을 설득하는 데 필수적인 지지세력이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있어야 정책을 실행할 수 있다. 안 교수의 취약점이다. 갑자기 정당을 만들고 현재의 팬덤을 조직적인 정책지지 집단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실로 난감한 일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정답을 알고 싶은 분들에겐 오연호와 김헌태가 쓴 <안철수>를 권한다. 한마디로 이번 대선을 통해 ‘시민정부’를 만들자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기존 정당도 환골탈태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내각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보기에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후보, 그리고 안철수가 정책의 위치를 놓고 겨루는 것은 말다툼 이상의 의미가 없다. 같은 정책 목록 안에서 누가 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내 놓는가, 어떻게 반대편 국민을 끌어들일 것인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강준만 교수가 <안철수의 힘>에서 역설한대로 이제 증오의 정치는 끝내야 한다. 반대 쪽 후보에 표를 던진 국민이라 하더라도 흔쾌하게 승복할 수 있는 정책을 내 놓고 소통과 타협으로 실천해야 한다. 물론 안철수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더더구나 아니다. <안철수의 생각>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는 협동은 세계와 한국의 장기 위기 속에서 우리가 살아날 길인 동시에 대선 승리의 유일한 전략이기도 하다.

이 글은PD저널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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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김병권/새사연 부원장

 

2012년 상반기가 마무리되고 하반기를 준비하는 시점이다. 5월부터 걱정해 왔던 경기하락이 이제 기정사실화한 느낌이다. 비록 지난 17일 그리스 총선에서 이변이 일어나지 않았고, 유로화 탈퇴사건도 없었지만 그래서 달라진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예정된 유럽의 침체와 그리스와 스페인을 필두로 한 위험요인은 그대로 남아 있다. 유럽에 국한되지 않는다.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유럽과 미국·중국이 내년에는 모두 침체로 돌아서는 퍼펙트 스톰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은행 의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앨런 그린스펀도 "전 세계적 불황이 우려된다"는 언급을 공개적으로 할 정도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꺾인 것은 틀림없다. 우리나라 경제도 당초에는 상저하고(上低下高)를 기대했지만, 하반기에 경기가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은 이제 완전히 빗나가게 됐다. 이를 입증하듯 가장 최근에 경기전망을 수정한 엘지경제연구원은 올해 성장률을 3.0%로 설정했다. 조만간 2% 수준의 전망이 나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가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역진해 ‘성장과 일자리’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당장 민주통합당의 대선주자들이 ‘스스로’ 성장담론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성장과 분배의 동행’이라든지 ‘진보적 성장’, ‘사람이 성장동력’이라면서 대선후보 출사표 앞자리에 자진해 성장을 놓고 있다. 아울러 일자리 창출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뒤이어 조만간 재벌대기업 쪽에서 불황 예상국면을 이유로 분규 자제 요청이나 심지어 임금삭감 요구까지 들고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2009년에도 임금삭감을 들고 나온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성장론과 일자리 창출론 등이 경제위기와 닥쳐올 장기 침체를 막는 향후 5년의 비전이 돼야 할까. 우리는 여기서 잠시 1929년 미국 대공황 이후 35년 제정된 노동보호법인 와그너법(Wagner Act)에서 배울 점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법으로 평가받는 와그너법은 30년대 미국이 처했던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연방법 차원에서 처음으로 인정해 줬다. 뿐만 아니라 이를 방해하려는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했던 법이다. 나아가 부당노동행위를 물리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준 사법기관인 전국노동관계위원회를 설치하게 했던 법이다.

그러면 어떻게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불황을 타개하는 대책이 될 수 있는가. 와그너법 전문에 의하면 “완전한 결사의 자유 또는 실질적인 계약자유를 가지고 있는 않은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교섭력 불평등은 임금 및 임금 소득자의 구매력을 억압하며, 산업 간 경쟁임금과 근로조건의 안정을 방해해 지속적으로 기업 불황을 악화시킨다”고 돼 있다. 즉 입법자인 와그너 상원의원에 의하면 노동자의 단체교섭은 높은 임금과 국민소득을 확보하게 해 보다 나은 분배를 촉진하며, 올바른 단체교섭은 사용자의 지배가 없는 독립적인 노동조합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경제위기와 비견되는, 29년 대공황을 탈출하기 위해 노동정책에서 사용됐던 해법이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와그너법의 입법취지가 앞서 언급한 경기회복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하나 더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와그너 의원은 경기회복 못지않게 산업 민주주의의 정착을 중시했다. 심지어 노동자의 민주적 동의와 실질적 자유의 성취를 경제적 안정과 성장보다 우선했다는 연구도 있다.(김진희·2006·'뉴딜 단체협상법의 생성과 변형')

특히 와그너는 자유시장과 권위주의 정부 모두를 폭정으로 비난했다. 자유시장은 실상 노동자의 권리가 상실되고, 계약관계를 통해 노동자가 사용주의 볼모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와그너는 권위주의 정부와 자유시장이라고 하는 두 가지의 폭정을 종식시킬 정당하고 민주적인 대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한다. 권위주의 정부도 자유시장도 거부했던 그가 생각했던 대안은 공적이익을 보호하는 민주정부였다. 그 일환으로 와그너법을 생각했다. 지금의 표현법으로 바꾸면 노동 민주화이자 경제 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어떤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을까. 닥쳐올 경제위기와 장기 침체를 극복할 대안은 노동시장 억제를 통해서도 아니고, 단순히 일자리 개수를 늘리는 정책도 아니다. 노동자 권익을 보장하고 협상력을 높여 더 나은 임금과 소득을 확보하게 함으로써 구매력을 높이는 대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자의 민주적 권리와 결사를 보장하는 노동 민주화, 경제 민주화를 통해서 달성된다. 단순한 성장전략이 아니라 경제 민주화를 통한 성장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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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5 / 02 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 4월 11일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의회 권력을 수성했다. 이로써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이 목소리 높였던 재벌 개혁 추진이 힘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설사 대선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새로운 정부가 재벌 개혁을 추진할 때 새누리당이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나온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대담을 엮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쾌도난마 한국경제>(부키 펴냄)와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오마이북 펴냄).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는 지난 2005년 펴낸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펴냄)에서 참여연대의 소액 주주 운동을 정면 비판했다. 이들은 '복지 국가'를 전면에 내세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도 "재벌 개혁을 말하며 한국 경제를 주주 자본주의로 재편하려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를 겨냥했다.

이들이 이 책에서 비판하는 "시장 경제론자" 혹은 "경제 민주화론자"의 대표 주자가 바로 민주통합당의 재벌 개혁 정책을 만드는데 참여한 유종일, 홍종학 그리고 <종횡무진 한국 경제>의 저자 김상조다. (이 중 홍종학은 민주통합당의 비례 대표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 지점에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가 눈에 띈다. 김상조는 이 책에서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등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온 소액 주주 운동을 비롯한 재벌 개혁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고, 좀 더 진전된 재벌 개혁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야권이 패배한 가장 큰 이유로 시민들의 고달픈 삶을 개선할 비전, 정책의 제시가 없었다는 점이 꼽힌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덟 달 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개혁 진영이 시민들의 사회 경제적 삶의 개선을 위해 제시할 미래 비전은 무엇일까?

진보 개혁 진영이 그간 제시한 프레임은 복지 국가론과 경제 민주화론이다.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복지 국가론을 대변한다면,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경제>는 경제 민주화론을 대변한다. 물론 양자 간의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양자 간에는 본질적인 견해 차이도 적지 않다.

앞으로 이 두 접근 간에는 치열한 논쟁이 진행될 것이며, 이 논쟁이 생산적으로 진행될수록 진보 개혁 진영의 미래 비전은 더 명확해지고 더 구체적으로 될 것이다. 따라서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어설프게 봉합하는 것보다 양자 간의 견해 차이를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프레시안>은 본격적인 논쟁을 위해서 새로운 장 '한국경제 성격 논쟁'을 마련한다. 앞으로 이 장을 통해서 한국의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이 한국 경제의 현재 상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치열한 논쟁을 벌이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이미 '프레시안 books' 86호, 87호를 통해서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 원장과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이 논쟁의 물꼬를 텄다. 한차례의 공방에 이어서 정태인 원장이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같이 공부했던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에게 공개편지 형식의, 하지만 날선 글을 보냈다. <편집자>

☞관련 기사

정태인 : 4월 11일, 회장님 얼굴에 웃음꽃 핀 까닭은?(링크)
정승일 : 진보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자를 고발한다!(링크)

장하준 교수에게

알고 지낸 지 이미 30년이 넘었습니다. 네 살 위라서 계속 반말을 써왔는데, 이렇게 갑자기 높임말을 쓰려니 참 어색하기 이를 데 없군요. 아마 장하준 교수도 그럴 거예요.

사실 경어 체를 쓰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가 생물학적 나이가 더 많더라도 학문적 나이로 친다면 장 교수가 훨씬 위니까요. 읽기의 양이나 사색의 시간, 학계에서의 성취를 고려하면 분명히 그렇습니다. 하여 이 말투에는 공개편지에 걸 맞는 형식일뿐만 아니라 존경과 부러움도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약간의 소란스러움은 내 서평에서 비롯되었지만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사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년 전 한 대담에서 "우리는 이론, 정책, 거의 모든 면에서 다 같지만 '재벌 개혁' 문제와 '한국은행' 문제는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정리할 때가 됐습니다.

그 두 가지가 산업, 금융 정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또 상호 간에 일정한 공감이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재벌 개혁의 필요 불가결성", 그리고 이 둘을 포함한 "진보적 경제 개혁의 방향과 경로"에 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하여

1996년 내가 영국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국은행 문제에 관한 이견이 있었고, 장하준 교수가 돌아가고 나서, 동석했던 김대환 교수에게 왜 저렇게 강한 반응을 보이는지 물었습니다. 그 때 김 교수는 유럽 논쟁의 시각에서 보기 때문이라고, 즉 한국 상황과는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었지요.

당시에는 그러려니 했던 장하준 교수의 그 반응을 이해하게 된 건, 엉뚱하게도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책임에 관한 스티글리츠의 논문을 읽었을 때였습니다. 거기서 스티글리츠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통령자문회의(CEA) 의장을 맡았을 때의 경험을 털어 놓았죠.

조각조각 남아 있는 기억(우리와 너무나 달라서 강한 인상을 받았으니까요)을 거칠게 말한다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연준)는 도대체 대통령의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조직이라는 것, 대통령자문회의에서 불만이 많았지만 아예 내색도 하지 않았다는 것, 온통 통화주의자로 가득한 그 동네에서 논쟁을 벌이면 오히려 불리해졌을 거라는 애처로운 얘기였습니다. 그런 경험을 토대도 스티글리츠는 왜 선출되지도 않은 몇몇 은행가가 자기들 멋대로 나라를 좌지우지 하느냐, 이들이 사회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스티글리츠는 은행 출신들이 아니라 금융을 잘 아는 경제학자가 들어가야 하고 실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연준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서 장 교수의 주장이 떠올랐습니다. '아, (유럽도) 이런 상황이라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해서 장 교수가 그토록 거부 반응을 보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스티글리츠의 글에서 또 하나 명확히 남아 있는 기억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맞느냐, 틀리느냐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독립성인가, 정책의 방향이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하다"는 언급이었습니다. 만일 한국은행이 미국의 연준처럼 자기만의 논리에 의해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더구나 통화주의로 똘똘 뭉쳐 있는 집단이라면 저도 장 교수처럼 한국은행 독립에 반대하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한국은행은 아무런 권한도 없습니다. 그 많은 우수한 인력을 가지고 탁월한 보고서도 생산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찌라시 수준의 보고서는 언제나 언론에 노출되고, 한국은행보다 훨씬 더 신자유주의적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도 비중 있게 다뤄지지만 한국은행은 GDP(국내 총생산)이나 경상수지 발표 때만 주목을 받습니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전 재정경제부)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시장 만능주의/주주 자본주의에 가까울까요?

기획재정부에는 최중경과 같은 중상주의자가 간혹 섞여 있긴 하지만 이헌재류의 시장 만능론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한국은행은 힘이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명확하게 시장 만능론을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법으로 규정돼 있는 물가 안정조차 줏대 있게 내세우지 못합니다. 한국은행은 오히려 말을 하지 않아서 문제인 조직, 자기 지키기 바쁜 조직입니다. 오죽했으면 내가 "고슴도치 같은 조직"이라고 했겠어요?

물론 앞으로 정말 힘이 생기면 한국은행이 자신의 존재 이유인 "물가 안정"을 내세워 실업과 같은 시민의 삶의 질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목표를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비서관일 때 한국은행 직원을 꼭 상근으로 불렀고 '개혁'에 중요한 기초 자료는(때론 기본 방침도) 한국은행을 통해서 얻었습니다. 재정경제부 관료나 KDI를 이용할 경우에는 내 의도가 드러나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 되었거든요.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도 중앙은행에 대해서 장하준 교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케인스나 스티글리츠의 생각도 그랬듯이 중앙은행은 정부와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움직여야 합니다. 한 기관이 하나의 목표만 맡는 게 아니라, 다수의 목표를 놓고 다수의 기관이 서로 협동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지금 그런 이상적 상황을 가로막는 집단은 어디일까요? 난 단호하게 기획재정부(이들은 삼성과 조·중·동과 같은 보수 언론과 함께 움직입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한국의 잡종 신자유주의의 근원이자 재생산지가 바로 거기입니다. 그들은 과장이 되면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단기간에 받고 국장쯤 되면 (장 교수의 주적인)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에 파견 나가 신자유주의 교조의 세례를 받습니다. 얼치기로 알기에 더 과격한 시장 만능론자가 되는 거죠. 장 교수가 1960~70년대의 역사 속에서 관찰한 그 관료들이 아닙니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이라는 단일 목표가 아니라 자산 가격 안정을 포함한 경제 안정까지 추구해야 합니다(한국은행법 개정 사항이죠!). 물론 기획재정부 등 경제 부처와 협의를 하는 채널을 둬야겠지만 지금은 더 많은 독립성이 필요합니다. 한국은행이 실업 등 중요한 정책 목표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기획재정부 차관이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통화위원회의 구성 변화입니다. 지금처럼 각 부처를 대변하는 "민간" 전문가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중소기업 그리고 시민 일반을 대표하는 금통위원이 들어가야겠지요.

(나보다 훨씬 잘 알겠지만 케인스는 상황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꿨습니다(그래서 하이에크가 매번 당했지요). 그런 정책 변화를 일관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는 게 바로 케인스의 천재 증명이었습니다. 예컨대 케인스도 인도라는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의 필요성뿐 아니라 독립성도 강조했습니다. 당시 인도에는 (루피와 스털링의 안정적 환율 때문에) 그게 꼭 필요했으니까요.)

재벌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자, 이제 본론 격인 재벌 문제입니다.

1980년대 말 이래 재벌은 옛날의 재벌이 아닙니다. 내 기억으로는 1988년 금리 논쟁 때 처음으로 당시 재정경제부(조순 부총리)에 반기를 든 이래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이들이 재벌-재정경제부 연합을 결성했고 이제 한 몸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때부턴 재벌이 우위에 섰습니다. 발전 국가론에서 상정하는,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과 힘의 우위는 이미 한국에서 현실이 아닌 지 오래 됐습니다.

장하준 교수가 재벌 문제에 관해 본격적인 논문을 쓴 건 본 적이 없지만(장기의 역사 속에서 시장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게 장 교수 작업의 본령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쓸 시간이 없다는 건 잘 압니다) 짧은 평론이나 인터뷰에서 받은 느낌은 장 교수가 재벌을 주주 자본주의, 금융 자본주의 논리의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마르크스 식으로 주주 자본주의/시장 만능론을 한 시대의 '에테르'(헤겔식으로는 시대정신이겠죠)라고 표현한다면 그 안의 어떤 존재도 그 풍조에 물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존재는 환경에 적응하는 거니까요. 일제 강점기에는 동네의 똘똘하고 진취적인 농부가 일본인 지주의 마름이 되었을 겁니다. 농민을 최대한 수탈하려고 최초로 "근대적 경영"(경영형 지주론)을 도입하기도 했을 겁니다.

당연히 재벌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최고의 실적을 올리려 합니다. 단기 시야의 수탈이 벌어지죠. 그런데 어떤 외적인 힘에 의해서 주주 자본주의가 사라지거나 약해진다면(분명 역사는 이 방향으로 가겠죠) 정말 재벌은 장 교수가 생각하는 것처럼 설비 투자와 새로운 산업 진출에 매진하게 될까요? 해방이 되어서 일본인 지주가 사라졌을 때 우리의 마름들은 착한 농업 경영인이 되었나요? 국가가 어떤 외적 충격이 와도 마름의 지위를 유지시켜 준다고 약속하면 이들이 소작인들의 삶의 질도 높이는 착한 존재가 될까요? (비유를 이렇게 했지만 현재의 재벌은 일제 강점기 마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존재입니다.)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이나 한국경제연구원의 얘길 들어서 알겠지만 그들은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면 아무런 이론이나 차용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논리적 일관성 따위는 단물 빠진 껌처럼 언제든 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강한 건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거래 비용 이론이나 대리인 이론으로 재벌 구조를 합리화하는 동시에 전형적인 시장 만능론으로 국가의 규제를 비판하지요. 자유주의자 같지만 기업 내의 전제는 당연하게 여깁니다(사실 이 모순이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론의 핵심입니다) 서로 모순되는 얘기도 그들에겐 아무런 문제도 안 됩니다. 그게 바로 자본이지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재벌과 주주 자본주의(또는 외국인 주주)를 대립 관계로만 보는 건 단편적인 시각입니다. 그들은 경쟁을 하는 동시에 협력해서 주주 집단 바깥의 이해 당사자들을 최대한 수탈하는 동맹군이지요.

주주 간의 관계(즉, 자본 간의 경쟁)라는 쪽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장 교수는 소액 주주 운동과 실은 똑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소액 주주 운동 역시 지배 주주와 소액 주주(이 중엔 대규모 외국인 주주도 있지요)의 대립에 주목하니까요. 즉, 장 교수나 소액 주주 운동가나 모두 자본 간 경쟁이라는 차원에서 재벌을 보고 있는 겁니다. 장 교수는 재벌을 그 경쟁 속에서 외국인 자본에 시달리는 존재로 보고, 김상조 교수는 재벌을 그 경쟁 속에서 소액 주주를 수탈하는 존재로 본다는 차이만 있는 거지요.

나아가 재벌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도 두 주주 집단(지배 주주, 소액 주주(외국인 주주 포함))과 협동해서 비정규직과 하청 기업을 수탈하는 데 동참하고 있습니다. 장 교수가 이해 당사자론을 제대로 적용한다면 오히려 이런 중층의 수탈 관계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난 번 서평에서 이 문제는 대부분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주주 자본주의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도 지금 해야 할 일이고, 동시에 "재벌 개혁"을 하는 것도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중층적 수탈 관계를 이해 당사자론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고 또 거기서 도출되는 정책 방향에 관해서는 이미 밝혔습니다.

논란이 남은 사항은 시스템 위기의 가능성에 관한 겁니다. 장 교수도 정승일 박사처럼 재벌이 제약 산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재벌이 제약 산업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청와대 비서관일 때 제약 산업을 검토했는데 생물학계 제약 같은 것은 가능하지만 신약 개발과 같은 화학계 제약은 영 어렵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물론 학자 출신 풋내기 비서관의 판단일 뿐, 재벌이나 박정희류의 관료는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랬다 망한다 하더라도, 이미 지급 보증이 해소된 상태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삼성제약'을 만들려면 삼성생명이나 삼성전자 등 여러 계열 회사가 출자를 하고 그 '삼성제약'이 발행한 회사채를 계열사가 인수해서 초기 자본을 형성하겠죠. 그 이후에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소액 투자자들을 모집할 겁니다. 만일 이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한다면 단지 지급 보증이 없다고 해서 문제가 안 생길까요? 신약 개발과 같은 분야에는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하고 성공 가능성은 지극히 낮습니다. 10년, 20년 계속 투자해야 합니다. 더구나 이런 쪽은 눈덩이 효과(snow ball effect)도 많이 작용할 겁니다. 기존의 지식이 많이 쌓여 있는 곳일수록 유리하겠죠.

만일, 그야말로 만에 하나 산업계와 정부가 이런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마음먹는다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매우 많습니다. 우선 교육 투자를 통해서 전문 인력을 충분히 길러야 하고(10년 이상 걸리겠죠?) 관련 산업 간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작업에도 정부가 관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초기 연구개발 투자에 대해서도 마치 미국의 국방부나 보건부가 하듯이 프로젝트를 발주해야겠지요.

제 아무리 삼성이나 현대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정승일 박사의 가정대로 재벌이 나 홀로 한다면? 당연히 정부는 시스템 위기를 예방하는 최소한의 조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장 교수와 내가 옹호하는 산업 정책이 바로 이런 거겠죠(내 경험에 비춰보면 정 박사가 청와대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재벌들은 십중팔구 조·중·동을 동원해서 정부가 시장이 할 일에 개입한다고 비판할 겁니다).

재벌의 경영권을 보호해 주기만 하면 그들이 이런 장기 모험 투자를 할 것이라는 건 실로 안이한 생각입니다. 제로 리스크로 쉽게 돈 벌 수 있는 일이 널려 있는데 왜 하겠어요? 주식이나 땅 투기, 동네 빵집, 심지어 순대국집…. 재벌 규제, 자산 투기 규제와 산업 정책이 같이 갈 때만 실제로 필요한 장기 투자가 가능해질 겁니다.

또 따라잡기(catch up)를 넘어서는 단계에 들어선 나라의 산업 정책에 대해서도 이론적으로 고민해 봐야 합니다. 나는 지역 클러스터와 공동체의 발전 전략을 결합하는 것이 이 단계의 유력한 산업 정책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주제야말로 우리 같은 산업 정책 옹호론자들이 진지하게 붙들어야 할 주제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재벌의 은행 소유까지도 막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정말 놀랐습니다. 설마 장하준 교수도 같은 생각은 아니겠지요? 이건 정확히 시스템 위기를 자초하는 일입니다. 예의 제약 회사가 망해가면 재벌계 은행들이 어떻게 하겠어요? 일반적인 계열 분리명령(또는 청구)의 도입은 더 철저한 논증이 필요하지만 금융 계열 분리 명령은 시스템 위기 가능성만으로도 도입 근거가 충분하지 않을까요?

재벌 개혁 또 경제 민주화 운동이 복지 국가 운동을 가로막는다?

장하준 교수도 아시다시피 나는 노무현 정부에 들어갈 때, 막연하지만 스웨덴 모델을 꿈꿨습니다(조금 더 유연한 이정우 교수는 네덜란드 모델을 상정했죠). 그리고 이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국민들의 복지에 대한 열망으로 우리는 그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섰죠.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스웨덴에서 한 일 하나하나를 그대로 한국에 도입한다고 해서 스웨덴 모델처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삼성이 발렌베리처럼 행동한다거나, 민주노총이 스웨덴 노동조합총연맹(LO)처럼 커지고 또 '연대 임금' 같은 획기적인 상상력 넘치는 연대 사업을 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건 환상이겠지요. 또 북유럽 국가들이 주로 소득세로 재원을 조달하니까 우리도 소득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도 그런 기계적 도입 중 하나일 겁니다(종합부동산세 등 자산세는 불평등 심화를 일단 막아야 하기 때문에 절실합니다).

물론 그런 조건이 없다고 해서 복지 국가로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서도 안 됩니다. 우선 다음 그림 두개를 한번 보시죠.

한국에서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건 1995년경입니다. 이건희가 정부를 "3류"라고 일갈하고 김영삼이 "세계화"를 선언했으며 관료들이 마음 깊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시점이죠. 그리고 외환 위기는 그런 시장 만능의 기조를 이 땅에 뿌리 내리게 했습니다. 국민들도 이제 믿을 건 나 밖에 없다, 살고 보자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지만, 불행히도 IMF의 지배 하에서, 더구나 관료들이 이 기회를 이용해서 IMF가 요구한 것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예를 들자면, 노동 시장 유연화)을 추구한 결과 사회의 양극화는 가파르게 진행됐습니다.

 

[그림1] 지니계수 변화 추이

[그림2]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추이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그래도 복지에 돈을 투입한 결과(붉은 그래프와 푸른 그래프의 차이)가 가처분 소득 지니계수지만 양극화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핵심 원인은 두 번째 그림에 나타납니다. 같은 시기에 임금 몫이 줄어들었으니까요.

만일 시장에서 이런 양극화를 방치한다면 제 아무리 복지에 돈을 쏟아 부어도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의 분배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도 언감생심일 겁니다.

이 모두 세계화와 주주 자본주의의 자장 안에서 일어난 일인 건 확실합니다. 그러나 재벌-관료-조·중·동이라는 삼각 지배 동맹이 앞장서서 실천한 것 또한 명백합니다. 재벌 개혁, 경제 민주화 없이 복지만 내세워서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물론 사회적 합의, 또는 대타협 없는 보편 복지 국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삼각동맹이 왜 타협을 할까요? 물론 나는 수출 대기업 위주 정책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고 미국이나 유럽, 일본이 동시에 장기 침체의 수렁에서 계속 허우적거리면 곧 파탄이 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위기가 온다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세력 관계라면 위기가 닥쳤을 때 오히려 수탈을 더 강화해서 그야말로 파국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혹시 스웨덴의 시장 지니계수는 한국보다 더 나쁜데도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은 한국의 시장 지니계수가 과소 추계됐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소득 재분배에 의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분배를 달성했으니 그리 염려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금을 내도록 하는 힘은 또 어디서 나올까요?

노동자-자본 간의 힘의 균형이 없는 상태에서, 더구나 핵심 세력인 민주노총이 국내외 주주 집단과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 기업의 수탈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는 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정당도 흡수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시민들의 힘밖에는 없습니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 운동은 같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삼각 지배 동맹과 힘의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사회적 대타협도 가능해질 겁니다.

내가 장하준 교수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내 짧은 청와대 경험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단언합니다. 혹시 우리가 정권을 다시 잡더라도 "경영권 보장해 줄 테니, 세금을 왕창 내서 복지 국가 만드는 걸 도와 달라"는 장 교수의 제안은 일언지하에 거절당할 겁니다. 삼각 지배 동맹이 왜 그러겠어요? 그들은 나름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시장 만능의 사회가 되면 한국이 잘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데요. 더구나 현재의 제도 하에서도 재벌들은 경영권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한국은 스웨덴처럼 타인에 대한 일반 신뢰,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은 사회가 아닙니다. 재벌이 합리적 계산 하에 먼저 임금의 중앙 교섭을 제안하는 상황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수탈할 수 있는데도 타협하는 자본이란 지구 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극한의 경쟁 속에서도, 나와 내 아이만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헛된 꿈에서 이제 막 깨어난 일반 시민들이 시장 만능주의/주주 자본주의와 재벌의 연관을 직시하게 할 때만 우리가 꿈꾸는 복지 국가도 가능해질 겁니다.

장 교수가 놀랄지 모르겠지만, 이해 당사자론자인 나와 주주 이론을 채택한 김상조 교수 사이에 현재의 운동 방향에 대한 이견은 조금도 없습니다. 경제 민주화 운동과 복지 국가 운동이 같이 가야 한다는 데 한국 대부분의 시민 운동가, 경제학자들은 동의합니다. 추상적인 이론으로 이런 합의를 갈라놓으려 하는 건 지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마 기업 집단법의 목적에 대한 강조점이나 세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요. 김상조 교수 외의 재벌 개혁론자는 기업 집단법에 대해 더 회의적입니다만 "절대로 안 된다"는 수준의 반대 또한 아닙니다.)

장 교수는 50만이 넘는 독자를 거느린 강력한 지식인입니다. 그러기에 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나라가 역사적 기로에 서 있을 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내가 보기에 장 교수는 아주 구체적인 상황에 너무 깊이 발을 들여 놨습니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뛰어나도 한국과 영국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메울 수는 없습니다.

장 교수 뜻대로 경제 민주화 운동이 뜻을 펴지 못하고 사그라진다면 복지 국가 운동도 같이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상황에 대해서 일개 지식인이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겠어요?

난 이 논쟁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마치 절대적 대립이라도 있는 양 비춰지고 있는 이 상황(막연하게 같은 편이리라 짐작하고 복지 국가 운동과 재벌 개혁 운동을 모두 지지하던 시민들은 적잖이 당황스러울 겁니다)은 쉽게 극복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엉성한 논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학계 심포지엄 같은 형식으로 치밀하게 따져 볼 수도 있겠죠.

쓰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그럼, 조만간 직접 얼굴 맞대고 이런 얘기를 나눕시다.

2012년 5월 2일

정태인 드림.

* 이 글은 인터넷 일간지 프레시안에 서평 기고한 것임을 밝힙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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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낭만과 자유

    재벌개혁 과연 현실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듭니다. 인구의 과잉으로 인한 무개념 국민들이 넘쳐나면서 투표로써 심판받지 않는 정치가들의 오만과 독선에 치가 떨리는 즈음입니다. 이런 국민들이 자신의 이익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과연 현명한 선택이 가능할 것인가? 바람앞에 등불 처럼 불쌍한 인생들이 흔들리는 듯 합니다.

    2012.05.05 13:37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