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9 / 04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미국에서는 11월 열릴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대선 후보 미트 롬니(Mitt Romney)의 탈세 혐의가 집중 부각되고 있다. 롬니와 그가 만든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은 케이먼 군도와 같은 조세피난처에 가짜회사를 만드는 방법 등을 통해 세금을 회피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펀드회사가 고객으로부터 받는 수입은 35%의 소득세율이 적용되어야 하지만, 이를 다시 투자 펀드에 넣어서 15%의 자본이득세율을 적용받도록 한 것이다.

이를 두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가 또 한 번 롬니 후보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간 스티글리츠는 롬니 후보가 불평등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롬니의 긴축정책은 경기를 둔화시키고 일자리 부족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해왔다.

스티글리츠의 글을 요약하자면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롬니의 탈세를 비판하고 있다. 우선 현대 경제를 유지하는데 교육이나 기술과 같은 공공재가 필수적인데, 공공재의 생산을 위해서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공정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유지에 필요한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믿음을 주어야 하는데, 탈세는 그러한 믿음을 훼손시킨다는 것이다.

셋째, 불평등이 악순환한다는 것이다. 고소득자의 탈세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은 악화되고, 이는 금권정치를 통해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다시 정치적 불평등은 특권층에게 유리한 사회경제적 제도를 만들어냄으로써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롬니의 탈세 혐의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비난은 결국 공정하지 못한 사회가 어떤 문제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단지 세금 문제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경제 문제에 적용될 수 있으며, 미국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

 

롬니가 내야 할 공정한 몫

(Mitt Romney's Fair Share)

 

2012년 9월 3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

미트 롬니의 소득세가 미국 대선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단순한 정치적 공세일까? 아니면 진짜 중요한 문제일까? 답하자면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미국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토론의 밑바닥에 깔린 주된 주제는 국가의 역할과 공동체 행동의 필요성이다. 현대 경제의 핵심이라 할 민간부문조차 혼자서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을 포함한 효과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현대 경제는 기술적 혁신 위에 세워져있다. 기술적 혁신은 정부에 의한 기본연구기금 덕분에 가능했다. 이는 생산될 경우 모두가 이익을 얻지만, 민간부문에만 맡겨놓을 경우 적게 공급되거나 아예 공급되지 않을 수 있는 공공재 중 하나이다.

미국의 보수당은 공적으로 제공되는 교육, 기술, 기반시설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정부가 공공재를 제공하는 경제는 그렇지 않은 경제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낸다.

하지만 공공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공정한 몫을 지불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신고된 소득(케이먼 군도나 다른 조세피난처에 숨겨진 자산은 미국 정부에 신고되지 않는다)의 15%만을 세금으로 지불하는 고소득자들은 분명 공정한 몫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

물고기는 머리부터 썩는다는 오래된 속담이 있다.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이 공정한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이들이 그러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모두가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에게 필요한 공공재를 마련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세금 납부를 통해 이루어지는 신뢰와 협동의 정신에 기반하고 있다. 부자들이 그러듯이 모든 사회구성원이 조세 회피에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한다면, 조세 제도는 무너져버리거나 훨씬 더 강압적이고 강제적인 구조로 바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모든 약속이나 계약이 법을 통해 강제되어야 지켜질 수 있다면, 결국 시장 경제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제도가 공정하다는 믿음만 존재한다면, 신뢰와 협동은 유지될 수 있다. 최근 한 연구결과는 경제제도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협동과 노력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의 경제제도가 불공평하며, 조세 제도는 불공정의 상징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억만장자 투자가인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그가 내야 하는 세금을 모두 납부하고 있지만 그의 비서보다 그의 소득 세율이 더 낮으며, 이는 제도 자체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옳다. 세금을 면제 받은 롬니도 워렌 버핏과 유사한 지위에 있다. 실제로 닉슨이 중국에 방문했던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부자에게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할 것을 주장했던 최고 권력의 위치에 선 부유한 정치인이 역사의 진로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롬니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낮은 세율로 인한 세금 투기가 결국은 경제를 망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상위층의 세금 투기는 경제학자들이 ‘지대(rent)'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는 경제의 파이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파이의 큰 조각을 집어 가는 것일 뿐이다.

소득 상위층에는 경쟁을 저해하고 생산을 제한하는 방식을 통해서 자신들의 소득을 늘리려는 많은 독점가들이 존재하고 있다. 협동으로 얻은 수익 중 자신이 더 많은 부분을 얻기 위해서 노동자를 위한 몫은 거의 남겨두지 않은 채 회사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CEO들,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정을 대상으로 약탈적 대출을 자행하고 신용카드 남용을 부추긴 은행들이 그들이다. 이들의 지대추구행위와 불평등은 소득 상위층의 세율이 낮아지면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규제는 사라져버렸고, 그나마 존재하는 규제는 약화되었다. 지대추구행위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늘어났고,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부당한 이득도 매우 커졌다.

오늘날 총수요의 부족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괴로운 문제이다. 높은 실업률과 낮은 임금, 엄청난 불평등을 가져왔으며, 악순환은 이어져서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 불평등과 경제적 불안정과 취약성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인식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여기 또 다른 악순환이 있다.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며, 다시 정치적 불평등은 롬니와 같은 사람들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제도를 만들어 내면서 경제적 불평등을 강요한다. (롬니는 지난 10년 간 최소 13%의 세율로 세금을 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장에 의한 정치가 가져온 경제적 불평등은 오늘날 전세계 경제를 약화시키는 중요 원인 중 하나이다.

롬니는 조세 회피를 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결과는 국세청의 조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최고 한계 소득세율이 35%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는 상당 규모의 조세 를 회피한 것이 분명한다. 물론 문제는 단지 롬니만이 아니다. 이같은 수준의 조세회피는 공공재의 생산과 분배를 어렵게 한다, 공공재 없이 현대 경제는 번영할 수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롬니와 같은 규모의 조세 회피는 제도의 근본적 공정성에 대한 믿음을 훼손한다는 것, 그리하여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곳으로 만들어 주는 연대의식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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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8 / 04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유럽 재정위기를 두고 채무국가의 빚을 과감하게 탕감하는 것이 대책이라고 주장했던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의 글을 소개한다. 그는 워릭대학교의 정치경제학부 명예교수이며 영국 아카데미에서 역사와 경제학을 연구하는 연구원이다. 국내에서도 출판된 1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케인즈 전기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30~4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 특히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그러한 예로 1970년대 미국 CEO들과 노동자들의 소득 격차가 30배였으나 오늘날에는 263배에 달한다고 지적한다.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이를 옹호하는 논리도 강화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경쟁 시장의 완벽함이며, 임금은 개인의 한계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류경제학의 논리이다. 즉, CEO의 한계생산성은 일반 노동자보다 263배나 많기 때문에 그 만큼의 임금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키델스키는 개인의 한계생산성을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현실에서 임금은 비슷한 직종의 임금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결정된다고 반박한다.

그리고 소득 불평등의 심화가 가져오는 문제점을 크게 두 가지로 꼽았다. 우선 도덕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좋은 삶에 대한 희망을 빼앗기 때문에 문제이며, 현실적으로는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는 토대를 망가뜨리기 때문에 문제라고 보았다.

 

나쁜 사회

(Bad Society)

 

2012년 7월 19일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불평등은 어느 정도나 용인될 수 있을까? 세계 경제위기가 일어나기 전에는 꽤 높은 수준의 불평등이 용인되었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는 그랬다. 신노동당의 피터 맨델슨(Peter Mandelson)은 지난 30년 간 “더러운” 부를 모은 사람들에 대해 매우 “관대해졌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신 경제”에서는 부자가 되는 것이 전부였다. 새로운 부자들은 그들이 가진 것을 점점 늘려갔다. 부자들이 더 부유해지도록 세금은 줄었으며, 파이를 더 공정하게 나누기 위한 노력은 사라졌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1970년대 미국 CEO의 세전수익은 당시 노동자들의 평균 수익보다 30배 많았다. 오늘날은 263배 많다. 1970년대 영국 최고 CEO들의 수당을 제외한 기본금은 노동자들보다 47배 많았다. 2010년에는 81배 많다.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상위 20% 부자의 세후소득은 하위 20%보다 5배 빠르게 증가했다. 영국에서는 4배 빠르게 증가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평균 소득과 중위 소득 사이의 차이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영국과 미국에서 평균 소득 이하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은 국가도 있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지난 30~40년 동안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1980년 이후 한 국가 내에서의 불평등은 물론이며 국가 간 불평등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1990년대 후반 들어서는 불평등 정도가 횡보하다가 2000년 이후에는 다시 약화되었다. 개발도상국이 가속화되면서 선진국의 성장을 따라잡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의 심화는 흔들리지 않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경쟁 시장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한다. 최고 CEO들은 그들이 고용한 노동자들보다 미국 경제에 263배 더 많은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도 정부와 노동조합에 의해 인위적으로 경제적 격차가 줄어든 덕분에 예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주장한다. 더 빠르게 트리클 다운 하는 부를 갖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한계세율을 깎는 것뿐이다. 아니면 가난한 이들의 인적 자본을 향상시켜서 그들의 고용주에게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주도록 해야 한다.

경제에 대한 이러한 사고방식은 소득 피라미드의 상위에 있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계산 방법이다. 하지만 여럿이 협동하는 생산활동 속에서 서로 다른 개인들의 한계 생산을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최고 급여는 그저 유사한 직업의 다른 최고급여와 비교하여 결정될 뿐이다.

과거에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내용을 바탕으로 임금 격차가 결정되었다. 일에 필요한 지식, 기술, 책임감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높은 급여를 받았다.

그리고 최고와 최하 사이의 격차는 일정한 한계 내에서 유지된다. 상위 기업의 월급이 평균 임금보다 20~30배 이상 많은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 임금 격차가 그리 크게 나지 않았다. 의사나 변호사의 소득은 제조업 노동자보다 5배 정도 많았을 뿐이다. 오늘 날처럼 10배 이상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더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인간 활동의 가치에 대해 계산하는 상식적이고 비경제적인 방식이 깨지면서, 오늘날과 같이 임금을 계산하는 잘못된 방식이 등장했다.

가격으로부터 가치를 구별하는데 실패하여 만들어진 이상한 결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소득을 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경제적 성장을 추구하는 것뿐이다. 가난한 국가에서는 이것이 타당할 수 있다. 나눌 만한 충분한 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전체의 번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경제적 성장에만 집중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소득을 1% 올려주려면 경제는 3%씩 증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일반 대중의 인적 자본이 막대한 부, 유리한 가족 환경과 인맥 등에 의해 더 많은 교육적 혜택을 얻는 소수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방법은 없다. 이런 환경에서 더 광범위한 소비의 기반을 얻기 위한 안전한 길이 바로 재분배이다. 또한 재분배 자체가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 준다.

소득 재분배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는 부자, 더 부자, 슈퍼 부자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부를 얻는 식으로 진행되는 끝없는 경제적 성장의 반증이다. 이는 도덕적으로도 잘못이며, 실질적으로도 좋지 않다. 도덕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좋은 삶이란 저멀리에 있어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어 버렸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실질적으로는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사회적 결합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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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7 / 27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세계 경제는 장기 침체에 들어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상태라고 한다. 이런 시기에 그래도 다른 국가보다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조건이 있다면 무엇일까?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국제정치경제학과 교수이며,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 <자본주의 새판짜기> 등의 저서를 쓴 바 있는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은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공공부채가 적은 국가. 둘째, 대외의존도가 낮은 국가. 셋째, 민주주의가 발전한 국가.

과도한 공공부채는 정부가 적극적 재정정책을 펴는데 방해가 된다.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 때문에 경기 침체 극복을 위해 필요한 투자에 나서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공공부채뿐 아니라 민간부채도 적절한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데, 민간부채가 과도해지면 결국 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에 대한 의존도, 즉 국제 무역이나 국제 금융에 기대는 정도가 높을수록 세계 경제 상황에 휘둘리게 된다. 새사연이 꾸준히 주장해왔으며, <리셋 코리아>에서도 썼듯이 내수중심, 소득중심의 경제가 필요한 때이다.

민주주의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분배 문제를 두고 정치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러한 충돌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지,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한 참여와 이해가 가능한지가 향후 국가 경쟁력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될 것이다.

대니 로드릭은 이런 조건들을 고려했을 때 향후 세계 경제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국가로 브라질, 인도와 함께 한국을 꼽고 있다. 왜일까? 한국은 세 가지 조건을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2011년 기준 우리의 국가채무는 420조 원으로 GDP 대비 34% 수준이다. 일본 199.7%, 프랑스 94.1%, 미국 93.6%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하지만 국가채무 외에 공공기관 부채가 463조 원 존재한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세계 경제에 대한 의존도의 경우, 수출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해온 만큼 대외무역의존도는 100%에 가까우며, 외환위기 이후 실시된 자본유출입 자유화로 국제금융자본의 ATM(현금자동인출기)로 불릴 정도이다. 마지막 조건이었던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에 대해서는 각자 판단해보도록 하자.

 

새로운 세계 경제의 승자

(The New Global Economy’s (Relative) Winners)

 

2012년 7월 3일

대니 로드릭(Dani Rodrik)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세계 경제는 단기적으로 심각한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 유로존은 문제를 해결하고 파국을 면할 수 있을까? 미국은 새로운 성장경로를 찾을 수 있을까? 중국은 경제성장의 둔화를 반전시킬 수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앞으로 몇 년 간 세계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결정해 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당면한 위기를 해결한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세계경제가 어려운 국면에 접어든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어려운 상태이다.

현재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던지 심각한 부채, 낮은 성장률, 국내 정책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 등은 여전히 유럽과 미국에 남겨진 숙제이다. 유로존이 온전히 유지될 것이라는 최상의 경우에도, 유럽은 망가진 유럽연합을 재건설하기 위한 작업에 발목이 잡힐 것이다.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의 이데올로기 양극화가 경제 정책에 있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게 할 것이다.

실제로 모든 선진국은 실업과 재정적자라는 문제와 함께 불평등의 심화, 중산층의 축소, 인구 고령화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는 정치적 충돌을 촉발할 수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문제가 급격하게 움츠러들수록, 그 국가는 국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파트너가 되기는 어렵다. 그런 국가는 다자간 무역 체계를 유지하는데 덜 우호적이며, 그들에게 손해라고 여겨지는 경제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국, 인도, 브라질 같은 거대 신흥시장이 그 공백을 채우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신흥국들은 자신들의 국가 주권과 정책 사용 역량을 지키기 위해 날카로운 상태로 대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경제 및 다른 문제에 있어서 국제 협력의 가능성은 더 낮아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모든 국가의 잠재적 성장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된다.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전의 20년 동안 경험했던 세계 경제의 성장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세계 전체의 경제적 불균형은 더 심해질 것이다. 상대적으로 더 불리한 국가와 유리한 국가가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국가들은 세 가지 특징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을 것이다. 첫째, 공공부채가 높지 않을 것이다. 둘째, 세계경제에 과도하게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경제성장의 동력은 외부보다 내부에 존재할 것이다. 셋째, 민주주의가 튼튼할 것이다.

공공부채를 적절한 수준으로 낮추는 것은 중요하다. GDP의 80~90%를 차지하는 부채는 경제성장을 방해하는 심각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부채는 재정정책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며, 금융시스템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오고, 세금에 관한 정치적 싸움을 촉발시키며, 분배에 관한 충돌을 유발한다. 부채를 줄이는 것에 집중하는 정부는 장기적 구조적 변화에 필요한 투자를 감당하기 어렵다. 호주나 뉴질랜드와 같은 몇 개 국가를 제외하고는 세계의 선진국의 대부분은 이러한 문제에 빠질 것이다.

브라질, 터키와 같은 많은 신흥국 경제는 최근 공공부채의 증가를 제어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민간 부문에서의 대출 급증을 막지 못했다. 민간 부문의 부채는 공적 책임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공공부채가 낮다고 해서 생각만큼 안전한 것은 아니다.

과도하게 세계 시장과 세계 금융에 의존하여 경제성장을 이루어온 국가 또한 불리할 것이다. 현재의 세계 경제는 취약해서 대규모의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거나 유출되는 상황은 좋지 않다. 터키와 같이 경상수지 적자가 막대한 국가는 시장 변동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 세계 경제에 휘둘리는 인질이 될 것이다. 중국과 같이 흑자가 큰 국가는 무역보복과 같이 중상주의 정책을 억제하라는 압력을 크게 받을 것이다.

국내 수요 주도의 성장은 수출 주도 성장보다 더 믿을 만한 전략이 될 것이다. 거대한 내수 시장과 풍부한 중산층을 가진 국가가 유리하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는 더 발전할 것이다. 왜냐하면 권위주의적 체제가 사라지면서 충돌을 조정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민주주의는 아주 천천히 변화하거나 정체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협의와 협동의 장을 만들고, 사회를 동요와 충격으로 몰아갈 수 있는 사회적 집단에 반대하면서 다양한 사회 주체 간의 양보와 협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역주-인도는 지역 중심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잘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적 제도가 부족하다면, 분배문제를 두고 일어나는 충돌은 쉽게 사회적 저항이나 동요로 이어질 수 있다. 인도나 남아프리카의 민주주의는 중국이나 러시아보다 우월한 조건이다. 독재적인 지도자의 통치 속에 있는 아르헨티나와 터키 같은 국가는 향후 세계 경제에서 불리하다.

이러한 세 가지 요구조건을 만족시키는 국가는 거의 없는데, 이는 지금 세계에 닥친 새로운 위험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 시대에 가장 장대한 경제적 성장을 이룬 경우인 중국도 이 중 한 가지 조건만을 만족한다. 모두에게 힘든 시기가 다가올 것이다. 그나마 브라질, 인도, 한국은 다른 국가보다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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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4 / 10 김병권/ 새사연 부원장

2012년은 선거의 계절이다. 우리나라는 선거만 되면 의례히 ‘굵직한 개발공약’들이 줄줄이 발표되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다르다. 이미 지난해 보편 복지의 파고가 한국사회를 한차례 휩쓴데 이어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의 담론이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5년 전의 ‘성장과 경제 자유화’ 의제 대신에 지금은 ‘복지와 경제 민주화’ 의제가 선거 공약을 좌우하는 판이한 지각변동이 일어난 셈이다. 특히 극적으로 등장한 경제 민주화라는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 민주화는 재벌체제라고 하는 선출되지 않은 경제 권력에 대한 문제제기일까. 아니면 너무 심각해진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것인가. 도대체 지금까지 시장 경제는 얼마나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것인가.

사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자기조절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시장에서 각 개인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 저절로 모두의 이익이 달성되므로, 시장의 자율을 존중하고 국가나 제도가 섣불리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정치가 이른바 ‘정치논리’를 가지고 경제에 개입하면 시장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면서 관치 경제나 정경유착 사례 등을 지목하기도 한다.

이런 논리에 입각해서 보면 시장 경제의 논리구조에 민주주의를 끌어들이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시장은 그 자체로 가장 합리적인 지점을 찾아 움직이는 것인데 여기에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 가치를 들이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이 잘못되어 실패할 가능성은 아예 없어 보였다. 더구나 시장 경제를 논하면서 윤리 도덕적인 냄새가 짙은 정의나 공정, 공평을 말하는 것은 대단히 어색한 것처럼 간주될 수밖에 없다.

한 발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는 전통적인 경제영역뿐 아니라 의료, 교육, 주거 등 사회적 영역, 심지어는 정부 조직과 같은 영역에 이르기까지 시장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모든 사회운영원리를 시장 원리로 작동시키는 사회를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신자유주의를 ‘시장 지상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980년 미국과 영국을 필두로 지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왔던 이데올로기이자 현실에서 관철되어온 규칙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우리나라도 사회 구석구석까지 이러한 논리가 스며들었다.

그러나 세계를 풍미했던 ‘시장 지상주의’는 2008년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시장이 작동을 멈추고 붕괴해버렸기 때문이다. 단순한 금융시장 기능의 실패를 넘어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4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시스템은 복구되지 않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학자를 역임한 라구람 라잔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목도하면서 시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한탄했다. “도대체 규제기관과 감독 기관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시장 원칙은 어디에서 한눈을 팔고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자기 보존을 위한 민간 기업의 생존 본능은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자유 기업 정신에 의거한 제도가 총체적으로 망가졌단 말인가? 이번 위기가 어느 개도국에서 발생한 그저 그렇고 그런 위기였다면 위와 같은 질문은 절대 나올 수가 없다. 그리고 이번 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해볼 때 쉽게 답을 찾으려 하거나 아무 답이나 갖다 붙이려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시장은 스스로 완벽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조정하는 능력이 매번 있는 것도 아니며, 거대한 시장 실패가 발생했을 때 세계 경제와 인류에게 미치는 충격과 고통은 엄청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목도하게 되었다. 그 동안 알고 있었고 주류 경제학자들이 설교해왔던 시장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확신이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면 진짜 시장의 능력과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시장은 과연 정의롭고 공정한 결과를 가져오기는 하는 것인가. 아니라면 어떻게 시장의 실패를 방지해야 하고 교정해야 하는가.

이정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거의 화두가 되고 있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지를 편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관철되는 의사결정 방식은 1원 1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권리를 행사한다는 점에서 1인 1표의 원칙은 철저하게 평등주의에 입각한 원칙이다. 하지만 1원 1표의 원칙은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돈에 비례해서 더 많은 권리를 부여하는 한편, 돈 없는 사람들의 의사는 아예 묵살한다는 점에서 매우 불평등한 원칙이다.” “시장은 조직 구매력을 가진 선호만을 반영하는 까닭에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는 무시되기 일쑤이지만 부자들의 선호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존중된다.”(이정전, 『시장은 정의로운가』, 142쪽)

바로 시장경제의 1원 1표 원칙에 내재한 불평등성 때문에 정치 영역에서 1인 1표 민주주의는 시장이 초래한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정치에서 민주주의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시장이 만들어내는 불평등은 완화될 수 없고 점점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가 시장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신자유주의 논지와 달리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각각 어떤 적극적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묘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지는 사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비교적 잘 반영되어 있다. 우리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일종의 ‘자유 시장 존중’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항이다. 곧바로 이어서 2항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경제 민주화’ 조항이다.

그런데 외환위기 직후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시장경제라고 도입했던 신자유주의는 고용불안과 가계부채,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라고 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이명박 정부까지 계속되었다. 금융과 교육, 보건과 보육 등 더 많은 삶의 영역이 자유 시장에서 거래 되도록 작동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주적인 의사결정은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자유 시장은 민주주의와 함께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2012년, 우리는 시장의 자유가 아니라 경제의 민주화라는 국민적 요구 앞에 서게 되었다.

이정전 교수는 더 나아가서 우리사회가 시장원리 하나만으로 작동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영역에서 각자 알맞은 운영원리가 있음을 적시해주고 있다. 첫째는 가정과 이웃, 공동체에서 적용되는 필요의 원리다. “가정에서는 성과주의가 별로 지지받지 못하는 가운데 필요의 원칙이 지배적이다.” 엄마는 용돈을 나눠줄 때 아이들에게 필요한 만큼 나눠주지 성적이나 집안일에 기여하는 정도를 가지고 나눠주지 않는다. 둘째는 경제에서 적용되는 성과주의 원리다. “응답자의 80%이상이 직장에서의 소득은 일의 성과 및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보는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에서 적용되는 민주주의 원리 즉 평등의 원칙이다.

시장만이 지배하는 사회를 버리고 2012년 선거를 통해 우리는 어떤 사회를 염원해야 하는가. “경제 영역에서는 성과주의에 입각해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생산을 많이 하도록 하며, 정치 영역은 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분배를 고르게 하고, 사회화 영역에서는 필요의 원칙에 알맞게 나누어 쓴다면 우리 사회는 잘 조화된 사회가 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사회야 말로 정의로운 사회요, 일찍이 그리스 철인 플라톤이 꿈꾸던 이상 사회다.”(이정전, 『시장은 정의로운가』, 279쪽)

이 글은 4월 5일자 기획회의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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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정치2012. 3. 14. 14:12

경제 자유화 대신 경제 민주화가 대세가 되다.

2007년, 그러니까 5년 전에는 ‘성장과 경제 자유화’ 라는 구호가 대통령 선거를 지배했었다. 경부 대운하 공약, 줄,푸,세 공약, 747 공약이 또한 그랬다.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같은 문제들은 성장률을 높이고 시장경제를 확대하면 부수적으로 해결될 것처럼 여겨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의 한국 정치 상황이었다.

다시 찾아온 선거의 계절. 이미 보편 복지의 파고가 한국사회를 한차례 휩쓸고 이어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의 담론이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5년 전의 ‘성장과 경제 자유화’ 의제 대신에 지금은 ‘복지와 경제 민주화’ 의제가 선거 공약을 좌우하는 판이한 지각변동이 일어난 셈이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무엇일까? 극적으로 등장한 경제 민주화라는 말의 의미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재벌개혁만이 경제 민주화인가.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분배개혁을 말하는가. 아니 경제 민주화를 넘어서 아예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어떤 관계인가.

자유 시장은 반드시 민주주의와 충돌한다.

외환위기 직후 국민의 정부가 내건 모토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였다. 하지만 시장경제라고 도입했던 신자유주의는 고용불안과 가계부채,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라고 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참여정부까지 계속되었다. 금융과 교육, 보건과 보육 등 더 많은 삶의 영역이 자유 시장에서 거래 되도록 작동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주적인 의사결정은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자유 시장은 민주주의와 함께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2012년, 우리는 시장의 자유가 아니라 경제의 민주화라는 국민적 요구 앞에 서게 되었다.

우리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일종의 ‘자유 시장 존중’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항이다. 곧바로 이어서 2항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경제 민주화’ 조항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경제 민주화 이전에 자유시장이 먼저 옹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참 앞의 헌법 제 1조 1항은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가 민주 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뜻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시장 경제와 경제 주체들의 자유를 옹호한다면 그 역시 민주주의에 가장 부합하는 경제 형태이기에 선택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시장 경제는 선험적인 절대 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이 잘 작동하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보건이나 교육처럼 시장 메커니즘으로 해결이 안 되는 생활 영역도 있을 것이다. 금융처럼 시장에서 작동시키되 일정한 규제나 공공의 참여가 필요한 영역도 있다.

모두 민주주의라는 가치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자유 시장을 해치지 않는 한도에서 경제 민주화를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시장의 자유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화두가 경제 민주화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제 1 과제는 민주주의 허용범위를 심각한 수준에서 일탈한 동시에 자유 경쟁시장 조차 파괴하고 있는 재벌의 이익추구 행위를 개혁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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