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3정태인/새사연 원장

도대체 뭐가 국가경쟁력이고 국익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오늘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번주 미국 국빈방문을 계기로 미국 의회에서도 조만간 비준이 완료될 예정"이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은 국가경쟁력 측면에서 시급히 처리돼야 할 사안"이니 "우리 국회에서도 국익을 고려해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해주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맞다. 미국 의원들은 2007년 4월 한미 FTA가 체결된 이래 두 번의 재협상을 통해 챙길 걸 다 챙겼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 수출 밖에 경기회복을 할 방도가 없으니 FTA에 목을 매다는 것이다. 나서기 좋아하는 대통령에게 의회에서 연설 한번만 하게 해 주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왜?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이익을 좀 챙겼는지? 또 우리 경제가 그동안 수출에 목을 매단 결과가 그리도 바람직했는지? 예컨대 수출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이 물가를 뒤흔드는데 재벌기업의 천문학적 이익이 우리 국민들 살림살이에 좀 도움이 되었는지?

이 대통령은 "조만간 한미 FTA가 비준되면 우리는 세계 3대 경제권인 미국과 유럽연합(EU), 아세안 등과 FTA를 체결한 유일한 국가로, 세계 최대의 경제영토를 가진 나라가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경제영토를 이렇게 따진다면 지금까지 세계 최대의 경제영토를 가진 나라는 멕시코였다. "천국은 너무 멀고 미국은 너무 가까워." 미국과 FTA를 맺은 멕시코는 2009년 -7.1%의 경제성장율을 기록했다. 미국과의 FTA가 발효된 지 이제 18년째, 멕시코의 국가경쟁력은 얼마나 높아졌고 국익은 또 얼마나 신장됐는가? 아메리카 대륙의 복지선진국이었던 캐나다는 또 어떻게 되었는가? 놀랍게도 캐나다는 대표적 불평등지수인 지니계수순위에서 한국에도 뒤진 나라가 되었다(멕시코는 부동의 1위, 미국은 4위이다). 이런 미래를 위해 번역본도 믿을 수 없는 한미 FTA 비준을 이리도 서둘러야 하는가?

미국의 선진 시스템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애초에 한미 FTA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제안했던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현재 삼성 사장)은 2005년 5월, 청와대 브리핑 제1호에서 한미 FTA는 낡은 일본식 법과 제도를 버리고 미국식 시스템을 받아 들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김현종은 자신의 자서전 격인 책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선진 시스템을 갖춘 국가와 FTA를 체결해서 우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p59)라고 기술했다.

맞다. 2005년 3월 내가 만난 대통령도 마찬가지 얘기를 했다. 그 미국식 시스템, 특히 서비스산업이 붕괴한 것이 작금의 세계경제위기이다. 지난 30년을 세계를 지배해서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블리웠던 이 시스템은 앞으로 계속 무너져 나갈 것이다. 한국의 기획재정부에는 아직도 금융허브의 꿈을 소중히 간직한 채 의료 민영화를 먼저 추진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미 FTA가 비준되면 장차 건강보험이 없어져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어도 우리는 현재 상태로도 되돌아올 수 없다. 투자자-국가 제소권은 그렇게 무섭다.

미국과의 단교를 각오하고 한미 FTA를 폐기하지 않는 한 그렇다. 미국과 정말 단교하고 싶은가? 딱 1년만 미국에서 무슨 일어 벌어지나 지켜보자. 2007년부터 정부는 즉각 한미 FTA를 비준하지 않으면 무슨 큰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5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한미 FTA가 발효돼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당시 기획재정부 주장대로 리만 브라더스를 인수했다면 또 어떻게 됐을까? 현재의 상황에서 미국과 FTA를 먼저 맺겠다고 할 얼빠진 나라도 없으니 남들보다 먼저 FTA를 맺어야 한다는 정부의 안달은 그야말로 기우다. 과연 미국식 시스템이 그리도 좋은 건지 딱 1년 더 기다리는 게 그리도 어려운가?

1년 더 기다리면 우리나라가 망할까?


▲ ⓒ한미FTA 저지 범국본

금융이나 공공서비스, 의료나 교육분야의 국내 규제를 '개혁'하는 것, 즉 규제를 풀고 민영화하는 게 정부의 최종 목표였지만 국민에게는 수출이 대폭 늘어나서 GDP가 6%나 증가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과연 그럴까? 이미 한-EU FTA가 발효됐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무역흑자가 대폭 감소하고 있다. 물론 정부 주장대로 선진국과의 FTA가 우리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1년만 더 기다려 보자. 한-EU FTA가 우리의 생산성, 수출, 그리고 성장률을 그렇게 많이 증가시킨다면 그 때 한미 FTA도 발효시키자. 멕시코나 캐나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 과연 우리나라에선 일어날지 한번 지켜보자. 만일 한-EU FTA가 한국의 무역흑자를 대폭 증가시키고, 정부 주장대로 GDP를 매년 0,6% 이상 증가시킨다면, 그리하여 어느 순간 6% 추가 경제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약간의 기미만 보여도 난 아무 말 않고 한미 FTA 비준에 찬성하겠다.

한미 FTA를 맺지 않으면 단 1년 만에 우리나라가 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몇%나 될까? 참여정부 때 한미 FTA를 목청껏 외쳤다 하더라도 민주당 의원 중 그 어느 누가 1년 연기에 반대할 수 있을까? 내심 한미 FTA 비준에 찬성한다면, 그래서 한나라당이 적당히 통과시켜 주길 바란다면 나에게, 아니 국민에게 그래야 마땅한 이유를 말해주기 바란다. 아마 한나라당 의원이라도 경제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이 있다면 이 정도의 신중함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꼭 미의회에서 대통령이 몇분 연설하는 대가로 이런 정도의 침착함마저 버려야 하는가?

내 지식으로는, 그리고 현재 상황에 비춰 봐서는 한미 FTA는 우리 앞날에 어마어마한 걸림돌, 아니 낭떠러지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천보, 만보 양보하겠다. 이 어마어마한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또 미국경제가 갑자기 되살아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러니 딱 1년만 기다려 보자. 한미 FTA에 버금가는 한 EU FTA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리고 미국의 그 '선진 시스템'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결정하자. 지금 미국 월가를 점령한 수 많은 목소리를 들어보라. 미국의 '선진 시스템' 의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딱 1년을 더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1년만 더 기다리자는데 그것도 안되겠는가?

이 글은 프레시안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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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10 / 07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행동으로 찾아 나선 경제위기 대안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차]

1. 1%가 일으킨 경제위기, 99%가 문제해결에 나서다
2. 매우 명료한 요구, ‘전쟁을 끝내고 부자에게 과세를’
3. 어설픈 직접 민주주의 시위방법?
4. 99%의 중심에는 ‘무력했던’ 청년들이 있었다.

[요약]

지금 월가에서는 십 여 년 전 ‘금융혁명’이 유행한 이후 오랜만에 ‘혁명’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예의 금융혁명이 아니라 금융혁명으로 창조해낸 월가의 금융시스템을 바꾸자는 혁명이 월가의 시위대들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관심도 주식 시세 전광판과 서구의 지도자들을 떠나 월가 거리의 시위대들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9월 17일 수 십 명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시간이 가면서 수 백 명, 수 천 명, 그리고 10월 6일에는 수 만 명 단위로 불어나자, 좀처럼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던 벤 버냉키 미국 연준(Fed)의장도 의회 청문회에서 이를 언급하기에 이른다.

"(미국) 시민은 지금 어려운 미국 경제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때문에 매우 불행해 하고 있다" "시위대는 금융부문에서 발생한 문제점들 때문에 나라가 이 지경이 됐다고 비난하고 있다"

월가의 시위가 단 3주 만에 미국사회의 중심 의제로 떠올랐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년 만에 재발된 세계경제위기로 주가가 폭락하고 남유럽 국가들의 부도가 발끝까지 닥쳐오고 은행들이 다시 부실화되는 상황에서도 유럽과 미국의 지도자들이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평범한 젊은이들과 시민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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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6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Occupy Wall Street!")는 거창한 구호아래 지난 9월 17일 주말에 월가에서 시작된 미국 청년들의 작은 움직임이 3주째를 넘기면서 조금씩 확산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어느덧 그 수가 수 천 명을 넘기 시작했고 뉴욕 경찰이 830여명을 체포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6일에는 전 세계적인 저항운동을 하겠다고 한다. 주류 언론 매체들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정도가 된 것이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수년째 계속된 고 실업으로 고통 받는 미국의 청년들이 ‘아랍의 봄’을 보고 착안하여 ‘미국의 가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 미국 시민들은 월가가 일으킨 전대미문의 글로벌 경제위기로 실업과 소득감소를 당하며 수년째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구제 금융으로 위기를 탈출한 월가는 반성 없이 고액 연봉과 인센티브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작은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3년 만에 발밑까지 닥쳐온 경제침체를 목도하면서, 그리고 미국 정치권이 합의한 긴축으로 미래에 겪을 추가적인 고통을 바라보면서 표현되고 있는 절박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우리는 99%이다.(We are the 99%)”, "월가는 미국인 99%와는 무관하다. 그들은 대기업과 부자 등 1%의 미국인만을 위해 일한다. 정부도 의회도 모두 이들 편이다.", “어떻게 재정적자를 해결할 것인가. 전쟁을 중단하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려라” 등의 구호들은 지금 미국 시민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저항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분노의 화살이 월가의 금융자본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 자본주의의 정점에 재벌로 표현되는 대기업 집단이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친 기업적인 정부의 규제완화, 감세, 고환율정책 지원을 받으면서 경제위기 와중에서도 사상 최고의 실적을 거두고 있다. 삼성그룹이 지난해 24조원, 현대 그룹이 13원 이상의 당기 순이익을 거두는 등 재벌 대기업 집단은 지난 2년 동안 당기 순이익이 각각 40%, 66%라는 경이적인 증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실질 소득은 감소하거나 정체했다.

미국의 월가에 비견할 수는 없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또 다른 축에는 철저히 수익논리에 의해 움직이게 된 은행이 있다. 지금 국민들은 9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를 안고 있지만 은행들은 올해 상반기에만 10조 원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경제위기가 다시 몰아치기 시작했던 3분기에도 대략 3조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주로 예대 마진 격차가 확대되면서 얻은 수익이다. 예금 이자는 낮게 주고 대출 이자를 올리면서 발생한 것이다.

확실히 한국도 고용불안과 소득정체, 그리고 가계부채의 그늘을 3년째 벗어나고 있지 못한 99%의 국민이 있다. 반면에 경제위기 와중에서 감원과 임금 동결, 정부의 지원 등에 힘입어 위기를 모르고 수익행진을 벌이고 있는 1%의 재벌 대기업 집단과 은행들이 존재하고 있다. 미국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청년실업이 심각하고 소득이 낮아 일하는 빈곤층(Working Poor)이 계속 늘어나 7.7%에 이른다. 전체 빈곤층은 1/5를 넘고 있는 실정이다. 복지요구가 거센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국민들의 분노는 정부와 여당에게 집중되고 있을 뿐 정작 자본, 특히 한국에서 자본을 대표하고 있는 재벌 대기업 집단과 은행으로 향하고 있지 않다. 일하는 노동자와 국민에게 분배되어야 할 몫이 정부의 곳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위기 와중에서도 현금과 자산이 넘쳐나는 곳은 재벌 대기업 집단의 창고이며 은행의 금고이다.

그 중 적지 않은 부분이 파견직을 직접고용하지 않거나 납품단가를 부당하게 인하하거나 골목상권을 잠식하여 채워진 현금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국민이 지불한 이자로 채워진 금고일 가능성이 있다. 이제 99%의 한국 국민들도 1%의 거대자본을 향해 정당한 분노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여당에 맞서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99:1의 불공정한 역학관계가 바뀌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경제 불황의 긴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다. 현재 세계적인 우려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유럽의 위기가 일시적인 구제 금융과 유동성 공급으로 치유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의 더블 딥 위기도 중앙은행의 양적완화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지난 3년간의 교훈이다.

“외국인 투자 비중이 30%나 되는 나라가 없다. 또 대외의존도가 90%를 넘는다”며, “이 때문에 세계적 침체의 영향을 한국이 많이 받게 된다”는 것이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고백이다. 유럽과 미국의 위기가 조만간 우리 경제에도 심대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1%의 자본에 저항해야 할 절박한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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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스코프스키

    한국의 생활인 - 새사연의 표현대로 - 들만 이런 건 아니고 세계 여기저기서 항거를 하는 진영 일반에서 자본에 대한 문제제기가 너무 적습니다. 그리고 더 문제는 한국엔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단체나 당의 세가 미약할 뿐더러 있다고 해도 체제적 이해가 아닌 단편적 합리화가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문서도 현상적인 부분은 적어놓고 체제적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의 단어가 안 보일 뿐더러 생활인이란 표현을 만들었으면서도 왜 국민을 굳이 사용했는지요 좀 의심이 드네요.
    다만 표면적인 관심은 더 심층적인 곳으로 향해야 한다는 당위를 일깨운 점은 수용할 지점입니다.

    2011.10.09 19:03 [ ADDR : EDIT/ DEL : REPLY ]
  2. 만들었으면서도 왜 국민을 굳이 사용했는지요 좀 의심이 드네요.
    다만 표면적인 관심은 더 심층적인 곳으로 향해야 한다는 당위를 일깨운 점은

    2011.11.11 13:12 [ ADDR : EDIT/ DEL : REPLY ]

2011.08.18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미국 신용등급 강등은 새로운 금융의 시대를 알리는 것이다.(US downgrade heralds a new financial era)"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추고 향후 전망도 부정적으로 평가한 직후인 지난 8월 6일, 세계적인 채권회사 PIMCO 최고 경영자 모하메드 엘 에리언이 파이낸셜 타임즈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발언을 한 것일까.

미국 재무성 채권(국채)과 ‘무위험(risk free)’은 거의 같은 말일 정도로 세계 금융시스템은 미국 신용등급이 AAA라는 최고 등급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아래 움직여왔다.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은 다른 모든 금융자산 평가의 기준이 된다. 각 국가나 주요 금융회사들이 자산을 관리할 때 기준이 되는 것도 미국 국채다. 기본적으로 최고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 보유 비중을 정해 놓고 그 다음으로 다른 국공채나 위험자산인 주식을 배분하면서 자산관리를 하게 되는 것이 상식이다. 미국 국채가 근간이 된다는 뜻이다.

또한 국채의 등급은 곧 미국 국채거래의 통화이자 기축 통화인 달러의 가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주요 국가들은 외환보유고를 달러 자산으로 비축해 두고 있는데 , 그 자산이 바로 달러 표시 채권, 그 가운데 미국 재무성 채권인 것이다. 때문에 미국 국채 신용 등급이 흔들린다는 것은 곧 그렇지 않아도 약세에 빠진 달러 가치가 다시 한 번 근저에서 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연 이은 주요 공기업들의 강등은 곧 미국 국공채에 대한 신용 등급의 강등을 뜻하고, 이는 다시 미국 국공채가 이론적으로는 가장 안전한 자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국공채를 중심으로 하는 달러 자산이 역시 최고 안전자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S&P의 결정이 달러 가치와 달러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는 많은 분석들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물론 세계 경제위기가 오면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신용 등급 강등과 상관없이 미국 채권으로 돈이 몰렸다. ‘아직 대안이 없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도 마찬가지다. 흔들릴 것이라는 주장이 다시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대안이 없기 때문에 먼 미래에나 가능’하다는 진단이 대부분이다.

정말 그러할까. 이미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달러의 위상은 심각한 타격을 받은 바 있다. 물밑에서만 논의 되던 기축통화체제 개편 논의가 주요 국가 정상들의 입에서 서슴없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중국은 2009년 3월 인민은행장이 직접 달러 대신 IMF 특별인출권(SDR)을 사용하자는 주장을 해서 세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자국에서 올해 10월 개최될 G20정상회의에서 기축통화체제 개편 문제를 논의하자고 일찌감치 제안해 둔 상태다.

이뿐이 아니다. 국지적이긴 하지만 중국은 BRICs와 아시아 주변국가들을 상대로 무역결제 분야에 한정해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위안화 결제 규모를 빠른 속도로 늘려오고 있다. 금융위기가 터지자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과 위안화로 통화스왑을 체결하기도 했다. 물론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적어도 세 가지 조건, 무역결제 통화일 것, 각 국가의 외환 준비자산으로 기능할 것, 그리고 국제 금융상품거래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요건을 만족시키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시장이 말하는 자본시장 자유화 정도가 낮다. 그러나 이 역시 홍콩과 싱가폴을 일종의 금융특구로 삼아 자본시장 거래를 허용하는 등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세기 중반에 기축 통화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오랜 과정이 있었듯이 지금 역시 경제패권 교체의 과정에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언제까지 태평양 너머 미국의 지위가 확고할 것이라는 가정을 할 것인가. 에리언 말대로 새로운 금융의 시대가 계속 한 발씩 다가오고 있다.

이 글은 '진보정치'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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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위기: 국가를 굶기는 전략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차]

 1. S&P,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2. 국가를 굶겨라(Starve the beast)
3. 1920년대를 꿈꾸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
4. 신자유주의 모델: 저성장, 양극화, 그리고 재정위기
5. 재정위기 해법: 신자유주의 모델을 버려라

[본문]
1. S&P,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8월5일,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S&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시켰다. 현재 S&P는, 중국과 일본은 미국보다 두 단계 낮은 AA-, 한국은 일본보다 두 단계 낮은 A를 부여하고 있다. 세계적인 재정위기를 촉발시킨 그리스는 현재 투기등급인 CCC를 받고 있다.

통상 신용등급이란 채무를 갚을 능력의 높고 낮음을 평가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국채 상환능력이 하락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국제금융시장에서 미 국채의 가격이 하락하여 차입 금리가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S&P의 등급 강등 이후 오히려 미 국채의 수익률은 떨어지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안전자산인 달러나 미 국채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호가 증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S&P의 신용평가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의문을 반영하기도 한다.

S&P를 비롯한 3대 신용평가기관은 악성 부동산 파생상품들에 대해 AAA라는 터무니없는 등급을 매겼다. 심지어 9월15일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할 당시에도 리먼에 대해 A라는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하였다. 신용등급 A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에 해당한다. 한 마디로 신용평가기관은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하고 확산시킨 주범 중의 하나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가신용등급 평가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국가부채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스페인, 아일랜드에 대해서는 2009년 이전까지 AAA 등급을 부여했다. 국가부도사태를 맞아 IMF 구제금융을 받은 아이슬란드도 현재 미국과 같은 AA+를 부여하였다. 국가 재정위기를 촉발시킨 그리스의 신용등급도 현재 우리나라와 같은 A였다. 그리스는 2009년 1월이 되어서야 강등하기 시작했는데, 2010년 3월까지도 투자등급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이 글은 신용평가기관의 평가 기준의 자의성이나 평가 잣대의 형평성 등을 비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또한 미국 국가신용등급의 적절성에 대해서 평가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신용평가기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 중의 하나로 지목되었고 금융규제와 개혁 대상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신용평가란 시장에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으로 언론과 마찬가지로 ‘공공’의 영역에 해당된다. 따라서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적절한 규제나 감독과 함께 공공신용평가기관을 설립하여 민간신용평가기관의 독점적 횡포와 시장 혼란을 예방해야 할 것이다.
 
재정위기는 ‘복지국가’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미래 전망에 대한 정치권의 담론 지형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줄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10일 비상점검회의에서 세계 금융시장 불안을 ‘미국 부채위기에 따른 글로벌 재정위기’로 규정한 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며 복지지출 확대를 ‘복지 포퓰리즘’이라 매도하였다. 미국의 재정위기의 원인을 과도한 복지지출로 본 것이다. 이는 지난 해 무상급식 논쟁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리스 문제를 언급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따라서 미국 재정위기의 원인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밝히는 것은 향후 복지국가와 재정건전성 논쟁에서 적지 않은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글은 미국 재정위기의 원인을 ‘국가를 굶기는’ 재정전략을 중심으로 역사적 맥락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2. 국가를 굶겨라(Starve the beast)

위의 그림은 1930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09년에는 GDP의 10%인 1.4조 달러, 2010년에는 8.9%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2011년에는 1.7조 달러로 10.9%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막대한 재정적자는 비단 미국만 기록한 것은 아니다. 2009년에 EU 27개국은 평균 GDP의 6.8%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기록하였다. 특히 아일랜드(14.3%), 그리스(13.6%), 스페인(11.2%) 등 최근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의 재정적자 비율이 높았다. 현재 미국보다 높은 AAA를 받고 있는 영국(11.4%)과 프랑스(7.5%)도 예외가 아니었다. 재정적자는 경기침체기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경제적 현상이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기업의 이윤과 자산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세수는 하락하고, 실업보험과 사회안전망 같은 ‘자동안정화’ 프로그램에 따라 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발생한 10%에 달하는 재정적자는 역사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43년에 30.3%가 최고 수준이었고 전쟁 기간 평균은 22.2%에 달했다. 따라서 2차 세계대전을 제외하면, 2010~2011년의 10%에 달하는 재정적자는 대공황 기간을 포함하더라도 역사상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는 1980년대 레이건 시절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스타워즈로 대변되는 소련과의 군비 경쟁과 천문학적인 감세정책에서 비롯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재정적자는 1983년에는 GDP의 6%로 증가하였고, 8년의 재임 기간의 평균도 4.2%로 매우 높았다.

실제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1980년 70%에서 1988년 28%로 대폭 줄어들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공화당이 여러 번 집권하기는 했지만, 전쟁으로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소득세율이 정상화되었을 뿐 본격적으로 감세정책이 실현된 적은 없었다.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닉슨, 포드 등은 균형재정을 목표로 감세보다는 오히려 증세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감세에 소극적인 포드의 재선 패배 이후, 공화당 내부에서 ‘국가를 굶기는’ 재정전략이 정치적으로 이슈를 선점하게 되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미디어와 프리드먼을 주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감세정책 확산에 결정적인 기여를 담당하였다. 예를 들어 1976년 월스트리트저널에 논설위원인 워너스키(Wanniski)는 ‘감세와 두 산타 이론’이라는 유명한 글을 통해 공화당은 감세 전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창하였다.

“미국경제가 건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간 분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각각은 다른 형태의 산타클로스가 되어야 한다. 소득재분배의 당인 민주당은 지출 산타클로스의 역할에 적합하다. 전통적으로 소득성장의 당인 공화당은 감세의 산타클로스가 되어야 한다.” Wanniski(1976), Taxes and a Two-Santa Theory.

즉 야당이 복지지출을 늘려 유권자의 표심을 얻을 경우, 여당이 이에 반대하여 복지지출을 삭감하자고 주장하면 표심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공화당은 감세를 통해 표심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지출 축소라는 의도한 목표도 궁극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급진적인 공급주의 경제학을 신봉한 그는 감세는 민간부문의 인센티브를 자극하여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감세와 경제성장은 유권자에 호소할 수 있는 정치적으로 매력적인 옵션임과 동시에 사회복지와 정부를 축소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으로 훌륭한 도구였다.

뉴스위크 잡지의 칼럼을 통해, 밀턴 프리드먼 또한 국가를 굶기는 감세전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였다. “개인이나 가계의 지출에 대한 유일한 효과적인 제약이 소득 한도에 있는 것처럼, 정부 지출을 제약하는 유일한 효과적인 방식은 정부의 명시적인 세수를 제한하는데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Friedman(1977), The Kemp-Roth Free lunch, Newsweek.

그리고 1980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레이건이 감세정책을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그의 당선으로 국가를 굶기는 전략은 본격적으로 실현되게 되었다. 국가를 굶기는 전략은 여러 변종이 있지만, 핵심은 감세정책을 통해서 우파가 염원하는 작은 정부와 사회복지지출 축소를 목적으로 한다. 간단한 예로, 사나운 맹수를 잡기 위해 구덩이의 덫을 놓은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맹수를 구덩이로 유인하기 위해 구덩이에 먹을 것을 놔두고 맹수가 구덩이에 들어갈 때 까지 굶기는 방식이다. 이른바 채찍과 당근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감세정책을 통해 국가의 재정수입이 줄어들면, 심각한 재정적자를 초래하게 되고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사회복지지출 축소를 강제할 수 있다는 논리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보수우파의 경제정책이 실패하면 실패할수록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감세정책은 근시안적인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하는 유력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실패해도 위기를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이른바 ‘꽃놀이패’에 해당한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재정적자가 늘어날수록 재정적자 문제는 확대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복지지출을 축소하려는 요구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재정위기 담론은 지난해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남유럽 전체로, 이제는 미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금융위기를 경고하지도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며 숨죽이고 있던 ‘신자유주의’와 보수우파의 정치적 공세가 국가재정위기(Sovereign-debt crisis)라는 용어를 빌려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지난 해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도 반영되었다. "선진국 경제는 2013년까지 재정적자를 적어도 절반으로 줄이고, 2016년까지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을 줄이거나 안정화시킬 재정계획을 공언"한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S&P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이에 따른 세계경제 불안은 보수우파의 정치적 승리의 정점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재정위기 논란은 길게는 대공황을 전후로 만들어진 미국의 뉴딜체제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을 부정하기 위한 1980년대 신자유주의 기획의 화려한 복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가의 역할이나 재정정책의 유효성을 부정하기 위한 정치적 시도이다.

3. 1920년대를 꿈꾸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

대공황 직전 당시 미국에서 산업과 금융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었다. 소득세율 또한 25%로 매우 낮았으며 금융버블에 따른 천문학적인 재산가치 상승은 소수의 부자에 집중되었다. 1923년부터 1929년까지 소득증가의 70%는 상위1% 계층에 집중되었고, 하위90%는 불과 15%만을 가져갔다. 우파가 꿈꾸던 세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극단적인 ‘자유시장’ 경제체제는 본질적으로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공황이나 사회적 불안에 직면하게 된다. 1929년 대공황 이후, 1933년에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고 실질GDP는 27%나 떨어졌다. 경제적 붕괴는 자본주의 체제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만큼 심각한 사회정치적 혼란을 초래하였다.

따라서 규제되지 않는 자본주의는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자체의 존립에도 심각한 위험을 제기한다는 관점이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사회적 질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서 기존의 자유방임적 시각에 대한 수정을 기득권 또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견해가 득세함에 따라 루즈벨트가 1933년 집권하게 되고, 뉴딜(New Deal)이라는 사회적 프로그램을 전개할 수 있었다. 금융시장 규제, 사회보장 및 실업보험 프로그램, 산업별 노조운동에 대한 지원, 대규모 공공고용 프로그램 등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프로그램의 일부가 미국의 뉴딜체제에 수용되었다.  
 
따라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의 경제적 역할은 더욱 확대되었다. 정부의 재정지출은 1929년에 GDP의 3%에 불과했지만, 1950년대는 16%로 늘어났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유사한 사회보장(Social Security) 프로그램은 직업과 계층을 보편적으로 포괄하며 더욱 확대되었다. 1965년에는 사회보장법 형태로 고령자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 프로그램들이 실시되었다. 노동조합 운동이 활성화되어 1920년대 10%에 불과하던 노조조직률은 1954년에는 역사상 최고치인 34%까지 올랐다.

노동조합은 자동차를 비롯한 미국경제의 핵심 산업에서 강력했기 때문에, 노조의 임금 및 단체협상은 노조가 없는 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생산성에 동반한 실질임금 상승을 주도하였고 전후 경제성장과 불평등 해소의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강력한 노동조합은 민주당에 금전적 지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선거운동에 시민들을 동원하고 조직하였다. 특히 노동조합은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 대기업과 부유층의 권력을 제한하고, 정부의 경제정책이 빈곤층과 중산층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견인하는 중요한 세력이었다. 

물론 미국의 보수우파는 뉴딜에 대해서 강력히 저항하였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완화,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감세, 노동조합 운동의 소멸, 정부의 사회복지지출 축소, 대공황 이전 수준의 소득분배 등, 한 마디로 1920년대 시스템으로 회귀하고자 하였다. 뉴딜에 대한 우파의 반대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것이지만, 도덕적, 이데올로기적 요소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즉 뉴딜과 노동조합은 기득권에게 이윤축적과 재산권에 대한 위협이기도 했지만, 보수적 가치와 생활방식에 대한 위협으로도 인식하였다. 그러나 노동조합과 뉴딜복지는 전후 5~60년대 미국에서 두터운 중산층과 ‘자본주의 황금기’를 형성한 양 날개였다. 따라서 1970년대 초반까지 뉴딜에 대한 보수우파의 저항은 정치적으로도 표면화되지 못하였다. 실제로 1970년대 초반에 집권한 공화당의 닉슨은 뉴딜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하는 등 오늘날의 민주당보다 더욱 진보적인 정책들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사의 전환점은 모두가 주지하듯이 1970년대 중반이었다. 1970년대에 두 차례 석유위기가 역사의 전환점을 촉발시킨 방아쇠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 결과 물가가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경제정책은 경제의 총수요를 관리하기 위해 재정 및 통화정책에 배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인플레이션의 비용을 치루고 성장과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총수요를 자극하던지, 실업과 저성장의 비용을 무릅쓰고 물가를 잡기 위해 총수요를 억제할 수 있었다. 당시 1973년 석유위기에 대응하여 미국은 후자의 정책옵션을 선택하였다. 그 결과 실업률은 1973년 4.9%에서 2년 후에는 8.5%까지 치솟았고, 1974년에 물가상승률은 11%까지 상승하였다. 이른바 물가는 상승하고 실업률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성장률 하락에 따른 이윤과 주가 하락, 그리고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동반상승은 경제적 불만을 촉발하기에 충분하였다. 한편, 경제적 불만에 편승한 인종 갈등과 1960년대부터 전개되기 시작한 ‘문화전쟁(Culture wars)’ 등으로 사회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경제적, 사회적 혼란과 불만은 우파의 경제적 파워와 문화적 보수주의자들 간에 정치적 동맹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들은 보수우파의 이데올로기적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싱크탱크와 대학에 막대한 돈을 지출하였고, 미디어를 통하여 보수적 프리즘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 사건을 대중에게 직접 해설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1980년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은 1920년대로의 회귀를 꿈꾸는 보수우파의 정치적 승리를 표출하는 사건이었다. “정부는 문제에 대한 해법이 아니라, 정부가 바로 문제”라고 주장한 레이건의 당선은 정부가 경제에 유익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뉴딜의 근본 사상을 뒤엎은 것이다.

레이건은 1920년대 모델의 현대적 버전인 글로벌 신자유주의 모델을 강력히 추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재임 기간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70%에서 28%로 줄어들었고, 노조조직률은 23%에서 15.7%로 줄어들었다. 금융시장 탈규제, 대규모 감세, 친기업 기조에 따른 노조 공격, 높은 실업률은 불가피하게 양극화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
 
위 그림 에서 보는 것처럼, 전체 소득에서 상위 10%와 1%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공황 이후 1950~60년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상위1%가 차지하는 비중은 1928년 18.4%를 정점으로 1976년에는 6%까지 하락하였다. 그러나 레이건 재임 마지막 해인 1988년에는 12%까지 오른 후 2008년 경제위기 직전에는 19.3%까지 오를 정도로 양극화는 확대되었다.

레이건은 대규모 감세정책을 추진했을 뿐만 아니라, 소련과의 군비경쟁으로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지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재정적자는 1976년으로 GDP의 4.2%였고, 3%를 초과한 해가 3년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연평균 재정적자는 5.9%까지 상승하였다. 대규모 감세와 천문학적인 국방비 지출의 전철을 그대로 밟은 대통령이 익히 알려 진대로 2001년 집권한 부시였다.

4. 신자유주의 모델: 저성장, 양극화, 그리고 재정위기

1970년대 말 이후 신자유주의 모델로 전환된 이후 미국경제는 성장률이 정체되고, 양극화는 구조적으로 확대되었다. 1950~1979년 실질 성장률은 3.75%를 기록했지만, 1979~2010년 기간은 2.75%에 불과하였다.

아래 왼쪽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1946~1976년 기간은 1976~2007년에 비해 1인당 평균소득 증가율이 더 높았다. 뿐만 아니라, 하위90%의 평균소득 증가율도 상위1%보다 현저하게 높았다. 그러나 1976~2007년 기간, 1인당 실질GDP가 평균 66% 증가했지만, 하위 90%는 불과 8% 소득이 증가하는데 그쳤다. 상위1%는 놀랍게도 280%나 소득이 증가하였다. 소수의 부자가 부를 독점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위의 오른쪽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부시 재임 기간 양극화 수준은 1920년대 후반보다 더욱 심각해졌다. 2002~7년 경제호황 기간, 상위1%는 61.8%(상위0.1%는 94.1%) 만큼 실질소득이 증가했지만, 하위90%는 불과 3.8%(연평균 0.8%) 증가하는데 그쳤다. 

한편 신자유주의 모델은 대규모 감세정책과 경제성장률의 정체를 초래하므로, 구조적으로 정부의 재정수입을 줄이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정부의 재정지출을 줄일 것을 공약하지만, 국방비 지출은 체계적으로 상승하는 특징도 보인다.

정부의 채무상환능력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는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다. 동 비율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 100%를 초과했지만, 뉴딜체제 도입 이후 경제성장률이 부채증가율을 상회하여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 레이건이 집권하기 이전 이 비율은 25.8%까지 하락하였다. 그러나 레이건 재임 기간 거의 60% 이상 상승하여 1988년에 41%까지 상승하였다. 클린턴 시절 이 비율은 49.3%에서 34.7%로 하락하였다. 온건한 증세와 높은 성장률로 재임 기간 마지막 3년은 재정흑자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당시 2001년 부시 취임 이후 의회예산청(CBO)에서는 클린턴 시절의 재정정책을 유지할 경우, 향후 10년 동안 누적적으로 5.6조 달러에 달하는 재정흑자를 달성할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보수우파에게 재정흑자 또한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다. 정치권에서는 재정흑자가 큰 정부를 양산한다는 논리로, 금융권에서는 미국의 국채시장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를 쏟아내었다. 그리고 월가와 워싱턴의 보수우파들이 재정흑자를 줄인다는 명목 하에 꺼내든 수단이 또한 ‘감세’였다. 미국에서 재정문제가 발생하면 ‘감세’는 녹슨 칼집을 헤집고 만능보검처럼 등장하였다.

그리고 실제 2001~11년 동안 5.6조 달러의 흑자 예상은 4.7조 달러 적자로 전환되었다. 부시가 취임했을 때 GDP 대비 부채비율은 32.5%였지만, 그가 퇴임했을 때 이 비율은 40.3%로 증가하였다. 물론 부시가 대규모 감세와 천문학적인 전비 지출만 남겨놓고 떠난 것은 아니다. 바로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남겨두었다. 아래 그림은 미국의 예산정책우선센터(Center on Budget and Policy Priorities)가 미국의 재정적자를 초래한 요인별로 분석하여 추정한 것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부시 감세정책, 2008년 경기침체가 향후 10년 동안 재정적자를 초래하는 주요 요인들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매년 1.3~1.4조 달러의 재정적자를 보이고 있는데, 그들의 추정에 따르면 감세와 중동전쟁이 매년 약 5000억 달러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의 재정정책이 지속되면 연방부채는 2019년 20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절반인 10조 달러가 부시 감세와 전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업보험, 사회보장, 의료보험 등 뉴딜 복지 프로그램은 위의 재정적자 목록 그 어디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미국의 보수우파는 재정위기는 사회복지 지출이 지나치게 늘어나서 초래되었다고 주장한다. 사실과 다른 원인을 제기하는 것은 감세정책을 방어하고 그들의 일관된 기획인 국가를 굶기는 전략에서 비롯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실 재정위기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출 감소와 수입 증가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이것이 재정을 바라보는 보수의 균형 있는 시각이다. 그러나 부채한도 증액 협상에서 미국의 보수우파는 증세를 비롯한 재정수입 증가 방안은 전혀 고려하지는 않는다. 오직 복지지출 삭감만을 요구한다. 문제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 그릇되게 진단했기 때문에, 해법도 엉터리로 제시할 수밖에 없다. 

5. 재정위기 해법, 신자유주의 모델을 버려라

2009년 이후 미국의 재정적자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지급 부담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이 2009년 이후 제로금리 정책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980년대보다 현재 20%p 정도 늘어난 상태다. 그러나 1980년대에 국채의 평균 수익률이 10%를 넘었지만 현재 2%에 불과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자지급 부담은 줄어들었다. 1960~2010년 정부지출 대비 이자지급 비중은 평균 9.9%였지만, 2010년에는 5.7%로 떨어졌다. 부채 부담의 실질적인 지표가 GDP 대비 국가부채의 스톡 개념이 아니라, 정부지출 대비 이자지급의 플로우 개념이라면 미국의 재정적자는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국가를 굶기는 전략은 1920년대 시장만능 경제모델을 현대적으로 복구하려는 미국 보수우파의 거대한 재정전략이다. 국가의 역할과 사회복지 지출을 축소하기 위해, 감세정책을 통해 의도적으로 재정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다. 재정위기의 지속 불가능성을 정치적으로 확산하여, 실제 재정위기가 초래되면 복지지출 삭감을 선택이 아닌 재정위기의 유일한 해법으로 강제하려는 전략이다. 따라서 재정적자나 재정흑자에 상관없이 1980년대 이후 감세정책은 클린턴 시절을 제외하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특히 지난해부터 재정위기 담론이 국제적으로 확산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숨죽이고 있던 보수우파의 정치적 공세가 성공하고 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향후 미국이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은 어렵지 않다. 원인에 따른 처방, 이보다 현명한 경제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부시 감세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부자와 대기업에 대해서는 증세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이고 있는 두 개의 전장에서 하루속히 철군해야 한다. 그리고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산업정책을 통한 제조업 경쟁력 회복, 소득정책을 통한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동반 상승, 금융투기에 대한 거래세를 비롯한 금융규제정책 등을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조합과 대기업의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국가가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 지출 축소를 통한 ‘작은 정부’가 아니라, 시장경제에 대한 ‘유능하고 책임 있는 정부’의 유익한 개입을 실시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 전환은 비단 미국경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현 정부에서 발생한 재정적자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발생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감세, 4대강 사업을 비롯한 시대착오적 토목공사 지출, 남북대결에 따른 국방비 지출 확대 등은 수입과 지출 양 방면에서 재정적자를 확대시킨 주요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수준이 7~8%에 불과한 우리의 현실에 ‘복지 포퓰리즘’ 주장은 사실이라기보다는 선동에 가깝다. 따라서 미국의 재정위기의 원인을 반면교사삼아, 대규모 감세와 4대강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남북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정치가 건전한 재정을 만드는 법이다. 보수가 국가를 굶기는 전략으로 재정을 파탄 낸다면, 진보는 미래를 살찌우는 전략으로 재정을 튼튼하게 가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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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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