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10 / 10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도대체 유럽 위기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유력 기관들의 올해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전망을 모조리 엉터리로 만들어놓았을 뿐 아니라, 향후 세계경제 전망을 대단히 어둡게 만들고 있는 유럽위기에 대해 아직 누구도 해결을 실마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5000억 유로 규모의 유로 안정화기구(ESM)도 공식 출범했고, 유럽중앙은행이 단서를 달긴 했지만 회원국 국채 무제한 매입까지도 선언해 놓았지만 그리스와 스페인 등 유럽위기가 진정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 와중에 성장률은 계속 추락하고 반대로 실업률은 뛰어오르고,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저항의 대열을 이루고 있다.

사실 근원적 해법은 나와 있었다. 경제 동맹에 상응하는 정치동맹을 만들어 미국과 유사한 진정한 유럽 합중국으로 발전시키든지, 아니면 채무위기국가들이 유로 통화 동맹을 빠져나와 독립적인 환율정책과 통화정책을 사용하게 해주든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동맹으로 가는 길은 이상적이지만 아득히 먼 길이고, 통화동맹에서의 이탈은 위험성을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공포’스럽다는 이유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판적인 안목으로 세계화를 접근해온 선두주자이자 하버드 대학 케네디 스쿨 국제정치경제학 교수인 대니 로드릭(Dani Rodrick)은 유로 존이 당면한 구조적 문제를 ‘세계화와 민주주의, 주권의 트릴레마’로 분석하고 세 가지 모두를 선택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유럽이 민주주의를 지속시킨다는 전제아래 각 국가의 주권을 버리고 정치통합을 이루든지, 아니면 세계화를 버리면서 통화동맹을 깨고 민주주의와 각 국가의 정치, 경제 주권을 적극 사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든지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유럽의 구조적 문제와 해법에 대한 한층 진전된 설명 틀을 제공해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아래는 10월 8일자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게제된 대니 로드릭 교수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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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에 관한 진실

(The Truth About Sovereignty)

2012년 10월 8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대니 로드릭(Dani Rodrick)

유럽의 신재정협약에 대한 프랑스 의회의 최근 논쟁에서, 사회당 정부는 그 협약의 비준이 프랑스 주권을 침해할 것이라면서 완강하게 거부했다. 장 마크 아이로(Jean Marc Ayrault) 총리는 그 협약이 “공공지출 차원에 국한된 제한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면서, “예산 주권을 프랑스 의회가 계속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아이로 총리가 자신의 사회당 멤버를 포함해서 신재정협약에 회의적인 동료들을 안심시켜고 하던 시점에, 유럽 집행위원인 호아킨 알무니아(Joaquin Almunia)는 브뤼셀의 사회민주당 동료들에게 유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뒤를 이어 그는 세계화와 주권은 서로 충돌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구도 국가 주권을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고, 특히 좌파 정치가들은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국가의 주권을 상당 수준 제한할 수 있느냐 여부에 유로 존의 생존이 달려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유럽 지도자들은 유권자들을 오도시키고 있고 민주 정치의 유럽화를 지연시키고 있으며, 결국은 치러야 할 정치 경제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있다.

유로 존이 완전한 경제적 통합을 열망하면, 국가 사이의 무역과 금융활동을 지연시키는 거래비용이 제거된다. 명백히 경제통합은 국가 사이의 무역과 자본 이동에 대한 직접 규제를 각국 정부가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 제품 안전 표준이나 은행 규제와 같은 국내법이나 국내 규제들을 다른 유로 국가들의 것과 조화시킴으로써 간접적 무역 장벽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불확실성 그 자체가 거래비용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런 유형의 정책 변경 자체를 각국 정부들은 포기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유럽 단일시장 계획안에 내포되어 있었다. 유로 존은 한 발 더 나가 통화를 통합함으로써 국가별 통화와 관련된 거래비용과 환율 위험을 제거하고자 했다.

간단히 말해서, 유럽 통합 프로젝트는 유로 소속국가들의 국가 주권을 얼마나 제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만약 지금 유럽 통합의 미래가 의심스러워졌다면, 그것은 다시 한 번 국가 주권이 통합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맹 수준의 정치적 기구에 의해 뒷받침되는 진정한 경제동맹이었다면, 경제 동맹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그리스나 스페인 등의 금융 문제가 지금 상황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을 생각해보자. 플로리다 주는 다른 주들과의 거래에서 기록적인 경상수지적자를 내고 있다. 만약 플로리다 주 정부가 파산한다 하더라도 플로리다 은행은 정상적으로 계속 영업을 할 것이다. 은행들은 주정부 관할이 아니라 연방 정부의 관할 아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플로리다의 은행이 파산하더라도 주정부의 재정이 투입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은행은 최종적으로 연방기구의 책임아래 있기 때문이다.

플로리다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면, 워싱턴(연방정부)으로부터 실업수당을 받게 된다. 플로리다 유권자들이 경제에 불만을 갖게 되더라도 플로리다 주 수도에 와서 폭동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연방정책을 바꾸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해 자기들이 뽑은 연방 의회 의원들을 압박할 것이다. 아무도 미국의 주정부들이 상당한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주권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이해 역시 잘못되었다. 주권의 행사를 제한하는 것이 모두 비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정치학은 ‘민주적 위임(democratic delegation)'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보다 나은 결과를 위해서 국제기구나 독립적인 기관에 위임되는 등의 방식으로 어떤 형태의 주권을 넘겨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독립적인 중앙은행에게 통화정책을 위임하는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물가안정을 이루기 위해 일상적인 통화정책 관리는 정치로부터 분리되어 있게 된다.

주권에 대한 선택적인 제한이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고 하더라도, 시장 통합으로 인해 초래되는 모든 (주권) 제한들이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국내정치에서는 (주권)위임이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진다. 그리고 사안이 대단히 기술적이거나 정당들의 견해 차이가 크지 않은 좁은 영역으로 국한된다.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 세계화라면 이런 한계들을 존중할 것이다. 그것은 민주적 위임에 정확히 부합하는 한도에서, 그리고 자국의 민주적 숙고를 증진시킬 수 있는 제한된 절차적 표준(예를 들어 투명성, 책임성, 대표성, 과학적 명확성 등)을 따라서 수행될 때 허용될 것이다.

미국의 사례가 말해주는 것에 따르면, 플로리다, 텍사스, 캘리포니아, 그리고 다른 미국의 주정부들이 그랬던 것처럼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시장통합을 하면서 민주주의를 살려내려면 대표성과 책임성이 담보된 초국가적 정치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화가 각 국가의 국내적 정책을 우선 시행하는 권한을 제한하면서도 그를 보완할 수 있도록 지역과 글로벌 차원에서 민주적 공간을 확장해주지 않을 때, 민주주의와 세계화 사이의 갈등은 심화된다. 스페인과 그리스에서의 정치적 불안정이 말해주듯이 유럽에서는 이미 이런 한계를 넘어서 잘못 접어들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정치적 트릴레마가 착목하려는 지점이다. 우리는 세계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국가 주권을 동시에 확보할 수 없다. 우리는 셋 중에 두 개를 선택해야 한다.

유럽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다면 정치적 동맹이냐 경제통합 해체냐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들은 명시적으로 경제 주권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자국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경제주권을 사용하든지 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 (주권을 유로 차원으로 위임한다는 사실을 - 역자)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해주고, 민족국가 수준을 넘어선 유로 차원의 민주적 공간을 구축하는 것을 수반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장기적인 회복을 기대하면서 각 국가의 통화와 재정 정책을 펴도록 하기 위해 유로 통화 동맹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 선택이 지연되면 될수록, 궁극적으로 지불해야 할 경제적 정치적 비용은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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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9 / 06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유럽이 잠잠하다. 두 달 전만 해도 세계경제를 금방이라도 위기로 몰아넣을 것처럼 시끄러웠는데 말이다. 정치가와 관료들이 여름 휴가를 갔기 때문이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도 들린다.

프랑스 경제학자 장 피사니 페리(Jean Pisani-Ferry)는 유럽 정치가들이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위기를 수습하는 것을 뛰어넘어서 이제는 과연 유럽연합의 통합이 계속 진전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연방국가인 미국의 통합과 유럽의 통합을 비교하고 있다. 단일시장과 단일통화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유럽의 통합은 유사하다. 하지만 유럽이 미국과 다른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연합 차원의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연합 차원의 공공지출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위기에 처한 국가를 지원함에 있어서 조건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조건은 개별 국가의 주권을 제약하게 된다. 또한 사실상 채무국에 대한 지원금이 연합정부 차원의 자금이 아니라 개별 국가들이 각출한 자금의 합이다 보니 채권국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이유로 인해 유럽의 통합정치가 실현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나마 해결책이 있다면 유럽연합의 기구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유럽연합 기구에 각 국가의 대표들이 모여서 유럽 전체 차원의 토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위기에 대한 보험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럽연합 회원국의 공동의 이익이라는 개념이 점점 희박해지는 가운데 더 이상의 통합을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장 피사니 페리는 브뤼셀에 위치한 경제정책 싱크탱크 브뢰겔 연구소의 대표이며, 파리 도핀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유럽연합의 행정부라 할 수 있는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의 자문위원이었으며, 프랑스의 국제 경제 연구 기관인 CEPⅡ의 대표이기도 했다.

 

 

유럽, 연방이 될 것인가, 붕괴할 것인가?

(Federalism or Bust of Europe?)

 


2012년 8월 31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장 피사니 페리(Jean Pisani-Ferry)

 

유럽 채권시장의 8월은 위기감을 넘어 침묵의 상태였다. 휴가를 떠난 유럽의 정치가들은 지난 몇 달 간의 고민의 시간에서 물러서서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유럽은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이 될 수 있을까?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갈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 뿔뿔이 흩어지고 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단. 생산, 노동, 자본 시장이 대부분 통합되었고, 연방 차원의 예산 편성은 개별 주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혼란을 상쇄했으며, 은행 부문에서의 문제와 같이 기타 주요 위기의 처리에 있어서 연방 정부가 책임을 졌다. 주 정부는 지역에 필요한 공공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지만, 거시경제 안정화에 있어서 실질적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유럽 연합에게 하나의 모형이 되어 준다. 특히 단일화된 시장과 단일통화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유럽은 미국의 모형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유럽은 연방 차원의 예산이 자리 잡지 못했다. 1970년대 유럽 공공지출을 유럽 GDP의 5~10%에 달하도록 높이고자 했지만 이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오늘날 유럽의 예산은 GDP의 1%에도 미치지 못해 30년 전보다 늘어나지 않았다.

20세기를 거치면서 유럽 연합의 공공지출은 새로운 단계로 발전했고, 유럽이 통합을 시작했을 때 공공지출은 이미 국가 수준으로 높아졌다. 연방 지출은 매우 중요한데, 국가별 수준에서 유럽 전체 차원으로 전환되어야 했다. 당연히 이러한 변화는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최근에 유로존은 회원 국가 사이의 상호 보험 제도를 만들고자 시도하고 있다. 2010년부터 유로존 사이의 원조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그리고 사이프러스로 확장되었다. 스페인도 조만간 은행 부문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과 함께 원조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들끼리 서로 돕는 특수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연대는 공짜가 아니다. 수혜자는 예산의 책임가 있는 운영을 약속하는 재정 조약을 따라야 하며, 준자동적 제재(이는 유렵연합 차원에서 개별 국가에 제재를 가하기 전에 회원국들의 찬반을 묻는 것이다. 인구와 영향력을 고려한 가중 다수결을 통해 제재 여부에 대해 찬성의 결과가 나오거나 또는 분명한 반대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제재를 가할 수 있다. - 역자 주)도 뒤따른다. 또한 원조의 수혜자들은 제안된 정책을 시행하고, 정치에 있어서도 외부의 감시를 받아들이도록 요구받는다. 다시 말해 연대의 대가로 주권의 제한이 뒤따르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유럽연합의 회원국 정부와 의회는 여전히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원조 자금이 연방 차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들이 제공한 자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확실히 채권국은 이웃국가의 지원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더 많은 힘을 요구한다. 그 결과 통화는 단일화되었지만 유럽의 상태는 미국과 다르다. 단일통화가 오히려 유럽의 각 국가들을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미국에서 연방 정부는 공동의 위기에 대응하는 방패로서 행동하며 각 주 정부가 곤경에 처했을 때 자동적이고 무조건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그렇다고 파산한 주 정부를 구제하거나 주 정부의 자치권을 가져오는 수준까지 가지는 않는다. 반대로 유럽에서는 전체를 보호하는 방패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곤경에 처한 회원국을 위한 자동적인 지원도 거의 없다. 다만 상황이 더 나은 국가가 조건이 따르는 지원을 하는 정도이다. 따라서 미국은 힘의 집중과 경쟁하지만 유럽은 서로 각각 경쟁한다.

이같은 국가 간 경쟁은 유럽의 통합 정치를 어렵게 만든다. 모든 연방은 중앙 정부와 주 정부 간의 긴장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웃국가로부터 감시당하고 지시받는 것은 중앙으로부터의 감시와 지시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더 불쾌하고 두려운 일이다.

현재 유럽의 국가가 겪는 문제의 중요한 이유는 유럽연합 기구의 취약함이다. 유럽연합의 기구는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고, 유럽인들 전체가 책임을 지는 기구여야 한다. 공동의 유럽은 단지 국가 단위의 유권자에 국한된 정부와 의회에 의해 국가적 이익을 계산하는 식으로는 탄생할 수 없다.

유럽이 자신만의 모델을 발전시키는 과정에 있는지 아니면 표준적인 연방 모델 근처에서 오락라가락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해법이라면 유럽 전체의 토론을 소집하고, 각 국가의 대표를 파견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유럽 의회가 책임지는 유럽연합의 기구가 보험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환시키는 것이다.

어떤 길을 가든지 앞으로 유럽은 공동의 이익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 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아니면 통합의 길을 유지할 만큼 공동의 이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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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9 / 04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미국에서는 11월 열릴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대선 후보 미트 롬니(Mitt Romney)의 탈세 혐의가 집중 부각되고 있다. 롬니와 그가 만든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은 케이먼 군도와 같은 조세피난처에 가짜회사를 만드는 방법 등을 통해 세금을 회피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펀드회사가 고객으로부터 받는 수입은 35%의 소득세율이 적용되어야 하지만, 이를 다시 투자 펀드에 넣어서 15%의 자본이득세율을 적용받도록 한 것이다.

이를 두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가 또 한 번 롬니 후보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간 스티글리츠는 롬니 후보가 불평등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롬니의 긴축정책은 경기를 둔화시키고 일자리 부족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해왔다.

스티글리츠의 글을 요약하자면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롬니의 탈세를 비판하고 있다. 우선 현대 경제를 유지하는데 교육이나 기술과 같은 공공재가 필수적인데, 공공재의 생산을 위해서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공정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유지에 필요한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믿음을 주어야 하는데, 탈세는 그러한 믿음을 훼손시킨다는 것이다.

셋째, 불평등이 악순환한다는 것이다. 고소득자의 탈세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은 악화되고, 이는 금권정치를 통해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다시 정치적 불평등은 특권층에게 유리한 사회경제적 제도를 만들어냄으로써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롬니의 탈세 혐의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비난은 결국 공정하지 못한 사회가 어떤 문제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단지 세금 문제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경제 문제에 적용될 수 있으며, 미국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

 

롬니가 내야 할 공정한 몫

(Mitt Romney's Fair Share)

 

2012년 9월 3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

미트 롬니의 소득세가 미국 대선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단순한 정치적 공세일까? 아니면 진짜 중요한 문제일까? 답하자면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미국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토론의 밑바닥에 깔린 주된 주제는 국가의 역할과 공동체 행동의 필요성이다. 현대 경제의 핵심이라 할 민간부문조차 혼자서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을 포함한 효과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현대 경제는 기술적 혁신 위에 세워져있다. 기술적 혁신은 정부에 의한 기본연구기금 덕분에 가능했다. 이는 생산될 경우 모두가 이익을 얻지만, 민간부문에만 맡겨놓을 경우 적게 공급되거나 아예 공급되지 않을 수 있는 공공재 중 하나이다.

미국의 보수당은 공적으로 제공되는 교육, 기술, 기반시설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정부가 공공재를 제공하는 경제는 그렇지 않은 경제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낸다.

하지만 공공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공정한 몫을 지불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신고된 소득(케이먼 군도나 다른 조세피난처에 숨겨진 자산은 미국 정부에 신고되지 않는다)의 15%만을 세금으로 지불하는 고소득자들은 분명 공정한 몫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

물고기는 머리부터 썩는다는 오래된 속담이 있다.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이 공정한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이들이 그러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모두가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에게 필요한 공공재를 마련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세금 납부를 통해 이루어지는 신뢰와 협동의 정신에 기반하고 있다. 부자들이 그러듯이 모든 사회구성원이 조세 회피에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한다면, 조세 제도는 무너져버리거나 훨씬 더 강압적이고 강제적인 구조로 바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모든 약속이나 계약이 법을 통해 강제되어야 지켜질 수 있다면, 결국 시장 경제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제도가 공정하다는 믿음만 존재한다면, 신뢰와 협동은 유지될 수 있다. 최근 한 연구결과는 경제제도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협동과 노력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의 경제제도가 불공평하며, 조세 제도는 불공정의 상징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억만장자 투자가인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그가 내야 하는 세금을 모두 납부하고 있지만 그의 비서보다 그의 소득 세율이 더 낮으며, 이는 제도 자체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옳다. 세금을 면제 받은 롬니도 워렌 버핏과 유사한 지위에 있다. 실제로 닉슨이 중국에 방문했던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부자에게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할 것을 주장했던 최고 권력의 위치에 선 부유한 정치인이 역사의 진로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롬니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낮은 세율로 인한 세금 투기가 결국은 경제를 망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상위층의 세금 투기는 경제학자들이 ‘지대(rent)'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는 경제의 파이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파이의 큰 조각을 집어 가는 것일 뿐이다.

소득 상위층에는 경쟁을 저해하고 생산을 제한하는 방식을 통해서 자신들의 소득을 늘리려는 많은 독점가들이 존재하고 있다. 협동으로 얻은 수익 중 자신이 더 많은 부분을 얻기 위해서 노동자를 위한 몫은 거의 남겨두지 않은 채 회사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CEO들,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정을 대상으로 약탈적 대출을 자행하고 신용카드 남용을 부추긴 은행들이 그들이다. 이들의 지대추구행위와 불평등은 소득 상위층의 세율이 낮아지면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규제는 사라져버렸고, 그나마 존재하는 규제는 약화되었다. 지대추구행위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늘어났고,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부당한 이득도 매우 커졌다.

오늘날 총수요의 부족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괴로운 문제이다. 높은 실업률과 낮은 임금, 엄청난 불평등을 가져왔으며, 악순환은 이어져서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 불평등과 경제적 불안정과 취약성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인식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여기 또 다른 악순환이 있다.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며, 다시 정치적 불평등은 롬니와 같은 사람들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제도를 만들어 내면서 경제적 불평등을 강요한다. (롬니는 지난 10년 간 최소 13%의 세율로 세금을 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장에 의한 정치가 가져온 경제적 불평등은 오늘날 전세계 경제를 약화시키는 중요 원인 중 하나이다.

롬니는 조세 회피를 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결과는 국세청의 조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최고 한계 소득세율이 35%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는 상당 규모의 조세 를 회피한 것이 분명한다. 물론 문제는 단지 롬니만이 아니다. 이같은 수준의 조세회피는 공공재의 생산과 분배를 어렵게 한다, 공공재 없이 현대 경제는 번영할 수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롬니와 같은 규모의 조세 회피는 제도의 근본적 공정성에 대한 믿음을 훼손한다는 것, 그리하여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곳으로 만들어 주는 연대의식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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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6정태인/새사연 원장

한국 관료들, 미국의 통상전략을 실행하다
 
2001년 정권을 잡은 부시는 새로운 통상전략으로 ‘경쟁적 자유화’를 내세웠다. 당시 미 무역대표부 대표였던 로버트 졸릭(현 세계은행 총재)의 작품이었다. 목표는 뚜렷했다. 첫째,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 경쟁을 불러일으킨다. 둘째, 미국식 시장친화적 기업법과 규제완화를 받아들이도록 한다. 셋째,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사전략, 나아가서 미국적 가치를 지지하도록 한다.

한 나라만 덜컥 미끼를 물면 다른 나라들도 부나방처럼 달려들도록 고안된 이 전략은 저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를 응용한 것이다. 2005년까지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전체 아메리카 대륙으로 확대하는 전미자유무역협정(FTAA)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아무리 달콤할지라도 ‘악마와의 키스’(멕시코 관료의 표현)는 역시 두려운 일이었다. 첫 단추가 아쉬운 미국에 제 발로 찾아간 나라가 있었다. 쇠고기 완전수입 자유화, 스크린쿼터 축소,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완화, 새로운 약값 정책 도입 불가를 협상 개시의 선결요건으로 내걸었는데도 이 나라는 더더욱 매달렸다.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미 통용되지 않는 일본식 경제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미국과의 FTA를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한국 경제를 달성하자는 것이 한·미 FTA 추진의 핵심입니다”(청와대 브리핑 1호). 그의 후임이 된 김종훈은 더 친절하게 “한·미 간 상호방위조약에 뒤이어 FTA 체결은 경제동맹”이라고 덧붙였다.

ABR(Anything But Roh·노무현이 아니면 전부 다)를 외치던 이명박 정부도 한·미 FTA는 예외였다. 참여정부의 “서비스 산업화”와 이명박 정부의 “서비스 선진화”는 똑같이 민영화와 규제완화였고 동시에 미국의 목표였다. 한·미 FTA는 한국 사회의 사실상 지배자인 재벌, 경제관료, 보수언론 삼각동맹의 오랜 꿈을 실현시키는 강력한 무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 금융위기는 바로 그런 꿈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복지와 양립 가능한가
 
금년 양대 선거의 화두는 단연 복지다. 한·미 FTA는 복지와 양립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미래의 서비스는 모두 개방한다는 의미의 ‘네거티브 방식 개방’, 현재유보 항목도 언젠간 모두 개방해야 한다는 의미의 ‘역진방지 장치’, 다른 나라에 더 많이 개방할 경우 자동적으로 미국에도 적용된다는 뜻의 ‘미래 최혜국대우’, 그리고 이 모든 독소조항을 합한 것보다 더 큰 위협이 될 투자자-국가소송제(ISD)가 있는 한, 복지 확대는 불가능하다. 아메리카 대륙의 복지국가 캐나다가 미국과 FTA를 맺은 후, 2000년대 소득불평등 정도가 13위인 한국보다 악화된 것(12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멕시코는 부동의 1위, 미국은 4위). 예컨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연합정책으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약속했다. 이들의 약속대로 보장성 90%, 연간 1인 진료비 상한 100만원이 되면 민간의료보험(특히 보장성 보험)은 사실상 필요 없어진다. 한국에서 암보험을 많이 판 미국계 보험회사의 한국지사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만일 이 회사의 투자자가 ISD를 걸면 어떻게 될까? 단 세 명의 법률가가 한·미 FTA 위반 여부만 들여다본다. 더구나 단심이다. 특히 ‘최소기준대우’(국제관습법에 비춰 과도한가, 아닌가)를 위반한 것일까, 아닐까?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의 관습법을 어긴 건 분명해 보이는데 세 명은 어떻게 판단할까?
 
지금 정부가 추진 중인 KTX 일부 민영화에 미국인 투자자가 끼어든다면 그 역시 한·미 FTA 적용 대상이 된다. 만일 새누리당이 또다시 정권을 잡는다면 공공서비스(전기, 철도, 가스, 우편, 수도 등) 민영화가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미국인 투자자는 컨소시엄 형태로 여기에도 들어올 것이다. 공공요금이 폭등하고 지방서비스가 끊어지고, 심지어 대형사고가 터진다 해도 우리는 영국 철도처럼 재국유화를 할 수 없다. ISD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잘해야 FTA 피해 줄인다
 
지난해 11월, 당시 한나라당의 날치기 통과로 “한·미 FTA 시즌2”가 시작되었고 몇 달이 흘러 또 하나의 굽이를 넘어가고 있다. 한·미 FTA의 피해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는 정권의 성격에 달려 있다. 특히 서비스 분야에서 한·미 FTA는 자발적 민영화 및 규제완화와 결합할 때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공공성 강화라는 세계의 흐름에 역행하는 후보를 잘 살펴서 떨어뜨려야 한다.

다음으로는 복지를 강조하는 후보를 찍어야 한다. 국민의 요구대로 가능한 빠른 속도로 복지를 과감하게 확대하면 한·미 FTA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농산물 무상급식이나 골목상권 보호 정책, 우체국 보험 확대, 환경규제 강화, 심지어 공공요금 규제도 모두 한·미 FTA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요컨대 선거를 잘해야 한·미 FTA의 피해를 줄이고 나아가서 독소조항을 제거하거나 통째로 폐기할 수 있다.

외교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금융위기 이후 뚜렷이 드러난 미국과 중국의 대립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두말할 나위 없이 엄정 중립이다. 지금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한 호혜적 협력의 새로운 틀을 짜야 할 때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서 중국을 자극할 때가 아니다. 한·미 FTA 폐기를 중국에 약속하고, 환경·에너지 협력, 철도·가스관·통신망 연결, 외환보유액 공동관리 등 각종 협력 프로그램으로 짠 새로운 국제조약 틀을 논의해야 한다. 우리의 대미 수출의존도는 10%도 되지 않는다. 문제는 100%가 훨씬 넘는 관료와 지식인들의 정신적 의존도이다. 이런 젖먹이들에게 이 나라를 맡길 수는 없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1% 경제 분노한 월가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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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월가시위는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2. 1%가 소득과 재산을 지배하는 사회
3. 고용없는, 그리고 임금없는 회복
4.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동반상승
5. 1%경제는 지속가능한가?

[본문]
1. 월가시위는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최근 월가점령 시위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내일은 서울을 비롯한 세계 400여개 주요 도시에서 ‘99%의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될 계획이다. 미국의 월가시위대는 왜 분노하고 있으며,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대답은 아주 간명하다.

“1%의 탐욕과 부패를 우리들 99%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99%, 전쟁종식, 부자과세(We are the 99%, End the War, Tax the Rich!)”라는 대중적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주의를 아주 쉽고 명료하게 정의하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 할 수 있다. 국민이 나라의 주권을 가지고 스스로 정부를 구성하여 국민을 위해서 복지를 향상시키는 정치를 하는 시스템을 바로 민주주의라 한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 교수가 명쾌한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사회다. 1%와 99%로 구분된 사회를 시티그룹은 2005년 한 투자보고서를 통해 “부자가 권력을 행사하는” 플루토노미(Plutonomy)라는 신조어로 정의하기도 하였다.

2. 1%가 소득과 재산을 지배하는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통제는 소득이나 재산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통상 재산이라고 하면 개인(또는 가계)이 소유한 모든 자산의 가치에서 부채를 차감한 순자산을 말한다. 그러나 소득분포 연구에서 부동산, 주식, 채권과 같이 부의 축적 수단으로서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으로 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득은 임금, 배당금, 이자, 임대수익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론적으로는 소득은 재산의 수익률에 의존하기 때문에 재산이 많다고 해서 꼭 소득이 높은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재산분포의 꼭대기를 차지하는 부자들의 소득이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상위1% 소득의 상당수는 노동으로부터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08년 미국 국세청(IRS)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000만 달러 이상을 번 13,480 슈퍼리치의 총소득 4000억 달러 중 노동에서 발생한 소득은 19%에 불과하였다.

미국의 상위1% 가계는 대략 전체 소득의 21%, 재산의 35.6%, 금융자산의 42.4%를 차지하고 있다. 극소수 상위1%(100만 가구)가 직접적인 금융수익을 제공하는 금융자산의 거의 절반을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하위90%는 소득 53%, 재산 25%, 금융자산 17.3%를 차지하고 있다. 상위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하위90%의 재산을 전부 합해도 상위1%보다 적으며, 금융자산은 상위1%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극심한 양극화다.

역사적 추세로 소득 및 재산 분포의 악화 정도를 비교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1982년에 상위1%는 전체 소득의 12.8%, 하위 90%는 63.6%를 차지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1980년대 이후, 전체 소득의 8% 이상이 하위90% 가계에서 상위1%로 이전된 것이다.

좀 더 긴 역사적 안목으로 살펴보면 소득 양극화의 추세는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전체 소득에서 상위10%와 1%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공황 이후 1950~60년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상위1%가 차지하는 비중은 1928년 18.4%를 정점으로 1976년에는 6%까지 큰 폭으로 하락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레이건 재임 기간 7%에서 12%로 상승하였다. 그리고 이 추세가 이어져 2008년 경제위기 직전에는 19.3%까지 올랐다. 1950~60년대 ‘자본주의 황금기’ 시대에 양극화가 완화되었다면,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는 양극화가 확대되는 특징을 보인다.

통상 가계 소득분포의 장기적 추세를 가지고 양극화의 정도를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누가 사회를 지배하는가?”, 즉 경제 민주화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소득보다는 재산 분포가 더욱 중요하다. 재산이 발생하는 여러 가지 경제적 편익을 차지하더라도, 의회민주주의 시스템에서 권력의 분포는 소득보다는 재산과 더욱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1990년대 신경제로 주식시장이 폭등하던 시기, 미국의 상위1%는 전체 재산의 38.1%를 차지하였다.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붕괴로 상위1%가 차지하는 재산 비중은 조금 감소하였다. 그러나 감소한 부분이 하위 계층으로 이전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상위1~4%가 차지하는 비중이 21.3%에서 25.8%로 이전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상위5%, 또는 상위10%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였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상위10%가 차지하는 재산비중은 더욱 증가하여 75.1%를 차지하고 있다. 그에 상응하여 하위90%는 1963년 33%에서 2009년에는 24.9%로 줄어들었다. 하위90%를 조금 구분하면 하위60%는 전체 재산의 2.2%만을 차지하고 있다. 금융자산은 불과 0.3%에 불과하다. 국민의 절반이 넘는 60%가 재산의 2.2%, 금융자산의 0.3%를 차지하고 있다니 놀라운 양극화 현상이다. 하위40%는 재산 및 금융자산 모두 마이너스로 각각 -0.9%, -1.0%를 차지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빚이 더욱 늘어나 재산은 -0.5%에서 -1.4%로 더욱 감소하고 있다.

아래 그림은 상위1%의 평균재산과 보통(median) 가구의 평균재산의 격차가 얼마나 확대디고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1962년에 상위1% 부자들은 보통 가구보다 평균적으로 125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9년 이 격차는 최고치로 늘어나 무려 225배에 달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금융위기로 모든 계층의 재산가치가 하락했지만, 주택가격 하락에 따라 중산층에 미치는 재산상의 손실이 더욱 컸기 때문이다.

상위1% 내에서도 슈퍼리치라 불리는 400대 부자들의 재산 격차 또한 더욱 늘어나고 있다. 400대 부자들의 평균 재산을 2009년 달러로 환산할 경우, 1982년 5억 달러에서 2000년에는 37억 달러로 무려 633% 증가하였다. 1980년대 이후 뚜렷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지만 두 번의 하락기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주로 2000년 IT 버블 붕괴와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주식가치의 손실에서 비롯되었다. 2009년 기준, 재산 10억 달러가 되면 400대 부자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데 이들의 재산을 모두 합하면 1.3조 달러에 달한다.

400대 부자의 재산축적의 이면에는 하위계층의 몰락이 나타나고 있다. 재산이 거의 없거나 마이너스 상태인 극빈층의 증가가 뚜렷이 증가하고 있다. 2009년을 보면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재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이 마이너스 상태다. 12000달러 미만인 가구는 37.1%로 1/3 이상을 차지한다. 다른 말로 하면 경제위기나 실업에 매우 취약한 가구가 1/3을 넘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금융자산의 경우 상위1%가 2007년 기준 42.4%를 차지하고 있다. 상위1%는 평균적으로 420만 달러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중간가구(40~60%)는 10200달러, 하위40%는 불과 1700 달러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금융자산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상위1%는 주식의 48.3%, 채권의 60.6%를 차지하고 있다.

[그림 4]는 펀드나 연기금 등 모든 주식을 포괄하여 계층별 주식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상위1%는 대략 40%, 상위10%는 80%를 점유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하위80%는 10%도 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주식 소유가 매우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있기 때문에 주식시장 호황은 대부분 상위1% 부자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위의 그림은 1989년부터 2007년까지 소유 계층별로 주식시장 호황의 수혜를 나타낸 것이다. 상위1%는 36.8%, 상위10%까지 확대하면 81.1%의 이득을 향유하였다. 이에 비해 하위80%는 불과 8.5%에 불과하였다. 미국의 대다수 국민들에게 주식시장 호황은 부자들의 잔치에 불과한 것이었다. 

3. 고용 없는, 그리고 임금 없는 회복

미국의 월가 시위대는 소득 및 재산의 극심한 양극화에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더욱 분개하게 만든 것은, 금융위기에 따른 고통분담과 경기회복의 과실 또한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의 경기침체는 공식적으로 2009년 중반 종결되었다. 그러나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실업률과 고용률은 여전히 과거 경기침체의 최저 수준보다도 악화된 상태다. 실업률은 여전히 9.1%로 매우 높은 상태이고, 실질실업률(U-6)은 16.2%에 달한다. 경기침체가 시작되기 전(44개월 전)보다 실업률은 4.4%p 높고, 고용률은 4.7%p 낮은 상태다. 노동시장의 경제지표만 놓고 보면 미국은 여전히 경기침체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2009년 중반부터 시작된 경기회복은 기업에 천문학적인 이윤을 안겨다 주었다. 

2009년 2사분기부터 2011년 1사분기까지, 물가상승률을 차감한 실질 기업이윤은 39.6% 증가하였다. 두 차례 양적완화와 기업이윤 증가에 따라 금융시장 또한 호황을 맞이하였다. 같은 기간 S&P 500과 다우존스 지수는 40% 이상의 수익률을 보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측정한 여러 지표들은 거의 변함없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마찬가지로 고용의 총량 또한 경기가 회복된 7분기 동안 거의 증가하지 못하였다. 즉 미국의 경기회복은 고용 없는, 그리고 임금 없는 회복이다. 노동자들은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잃었으며, 노동시장 악화의 영향으로 해고되지 않은 노동자들 또한 실질임금이 정체 또는 하락하고 있다.

이에 비해 금융위기로 파산에 직면한 월가의 금융기업들은, 정부가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자금을 금융시장에 쏟아 부은 덕택으로 회생하였다. 그리고 두 차례 양적완화 조치로 월가는 천문학적인 자산 가격 상승의 수혜 또한 입었다. 극소수 1%부자들이 경기회복의 수혜 또한 모두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천문학적인 이윤에 기초하여 또 다시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있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S&P 500에 속한 대기업 CEO들은 노동자의 평균임금보다 344배나 높은 보상을 받았다. 이 수치는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2009년 263배로 다소 감소하였다. 그러나 작년에 325배로 거의 금융위기 직전 수준을 회복하였다. S&P 500에 속한 대기업 CEO들의 평균보수는 2009년보다 27.8% 증가하여 1000만 달러가 넘었다. 이에 비해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명목상 3.3% 증가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좀 더 장기적인 시계열로 보면, 1960~70년대 2~30배 수준이던 격차가 80년대부터 가파르게 상승하여, 90년대 이후에는 200배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월가 시위대가 분노할 만한 분명한 경제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4.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동반성장

미국경제는 고통분담, 성장의 과실, 소득 및 재산분포가 극도로 왜곡되어 있다. 비정상적인 시스템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미국경제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여러 분석이 있겠지만, 근본문제를 가장 간명하게 나타낸 것은 위의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1947년을 기준(=100)으로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추세를 나타낸 것이다.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1950~60년대에는 생산성과 실질임금은 거의 같은 추세로 증가하였다. 기업의 공급능력 증대와 더불어 노동자의 임금이 동반상승했기 때문에 총수요 부족의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결과, 기업의 생산성은 증가하는데 노동자의 실질보수는 증가하지 못하였다. 그러한 격차의 확대는, 기업 CEO들의 보상 증가와 금융 산업의 이윤 증가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는 소득분포에서 상위1%의 소득 및 재산 증가로 이어졌다. 양극화는 기본적으로 실질임금이 생산성에 조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통상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기업의 이윤증가는 투자증가로 이어져 소비부족을 보충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기업의 투자는 비교우위가 있는 금융 산업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총수요 부족의 갭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정책실패를 보이게 된다.

첫 번째가 부유층과 대기업 감세를 통한 소비 및 투자 유인책이다. 왼쪽 그림은 소득세의 최고세율, 오른쪽은 법인세의 최고세율과 실효세율의 장기적 추세를 나타낸 것이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소득세의 최고세율은 70%에서 28%로 큰 폭으로 인하되었다. 그리고 법인세 실효세율은 1952년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 52.8%에서 지난해에는 10.5%까지 떨어졌다. 따라서 연방정부의 세수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1945년 35%에서 지난해 9%까지 하락하였다. 이는 최근 재정문제가 발생한 원인이기도 하다.

둘째, 부채의 증가다. 경제적 생산성이 증가하면 개인적?사회적 소비수요 또한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질임금이 정체되어 구매력이 늘어나지 않으면 빚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금융규제 완화의 정책이 추진되었고 금융기업은 새로운 금융혁신으로 부채를 늘릴 수 있는 금융상품들을 개발하였다. 따라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1980년대 이후 거의 두 배 가까이 상승하여 2007년 137.6%로 늘어났다.

셋째, 주기적인 자산시장 버블이다. 소비수요가 늘어나기 위해서는 자산 가격의 상승이 필요했다.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노린 것이다. 자산 가격 상승으로 재산이 증가하여 부유해졌을 때 투자자와 부유층은 더 많이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금융시장 호황이라는 경제적 환경과 부유층의 소비증가는 일반 소비자들의 소비 또한 늘리게 된다. 금융시장 호황으로 투자자와 부유층의 소비성향 증가가 위에서 아래로 경제 전반적인 소비성향을 늘리기 때문에 자산시장 트리클 다운 효과라고도 한다. 주로 금융당국의 규제완화, 금융기업의 금융혁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3박자가 어우러져 추진되었다. 그리고 최근 양적완화 또한 이러한 기조의 연장선에 다름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필연적으로 총수요 부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정책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감세는 재정위기, 부채는 가계의 상환능력 악화, 그리고 버블과 붕괴는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경기침체를 초래한다. 그리고 위 세 가지 경제정책은 모두 양극화를 확대하는데 기여하였다. 다시 말해, 실질임금과 생산성의 괴리가 근본적인 정책전환으로 극복되지 않으면 미국경제는 저성장, 저고용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다. 미국경제의 현주소다.
 
5. 1%경제는 지속 가능한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미국 사회는 한마디로 상위1%가 사회의 소득과 재산을 사실상 지배하는 ‘1%경제’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발표된 시티그룹 보고서도 “플루토노미의 핵심은 소득양극화”로 분석하고 있다. 플루토(Pluto)란 사회의 재산과 소득을 실제로 통제하는 최상위1%를 지칭한다. 따라서 플루토노미를 우리말로 옮기면 '1%경제'라 부를 수 있다.

시티그룹에 따르면 소득불평등을 기꺼이 인내하거나 인정하려는 사회는 1%경제 또한 인내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리고 기술혁명과 금융혁신, 친기업적 정부와 감세정책이 지속되는 한 1%경제도 지속될 것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소득양극화가 지속되거나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또한 시티그룹은 1%사회를 위협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수단은 세제 개편이라고 보았다. 법인세, 소득세, 자본소득세 등의 인상은 1%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 또한 이윤 몫 감소를 통해 부유층의 재산축적이 증가하는 것을 완화할 수도 있다. 이는 자본과 노동의 권력관계의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고전적인 예로서, 최저임금제, 노동시간 단축 등을 통한 국내 노동시장 규제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1%-친화적인 정부의 경제정책과 세계화가 지속되는 한 1%경제의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예측하였다.

이러한 분석과 함께 시티그룹은 1%의 수중에 재산과 소비가 집중되는 사회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전망도 빼놓지 않았다. 물론 1%경제가 지체되거나 전복될 가능성에 대한 검토는 사회적 분석의 영역에 속한다. 유권자가 이 시스템을 계속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시스템을 원할 것인가의 문제, 즉 정치적 영역이다.

1%경제에서 1%는 사회의 재산과 소득을 통제하여 1%를 위한 정치적 이득 또한 향유할 수 있다. 그러나 99%는 1%와 동등한 투표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힘이 통제하는 정치적 영역에서 1%경제는 가장 큰 위협이 된다고 보았다.

1%경제를 사회가 용인하는 이유는 유권자의 대다수가 1%가 될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자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면 그 시스템을 폐지할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부자클럽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부자가 되는 것을 동경하기 보다는 재산의 파이를 나누려 할 것이라고 경계하였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고 유권자의 대다수가 상대적으로는 열악해졌지만 절대적 기준으로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판단하는 한, 사회적 소요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다만 경기가 지속적으로 침체되고 재산가치가 하락하는 기간에 사회적 소요나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시티그룹의 전망에 견주어 월가시위를 분석하면, 99%의 1%클럽에 대한 동경과 열망이 1%경제에 대한 99%의 절망과 분노로 전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자리, 소득, 재산, 그리고 희망을 잃은 99%가 1%경제의 부정의와 탐욕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선 것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이라는 제목을 단 칼럼에서 아래와 같이 상위1%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부자와 정책 당국 또한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우리 사회의 희망과 미래를 위해서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상위1%는 최고의 주택, 최고의 교육, 최고의 의사, 최고의 생활양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상위1%의 운명은 다른 99%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다. 역사를 통해, 이것은 상위1%가 결국에는 배워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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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