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4정태인/새사연 원장

역시 ‘다이내믹 한국’인가, 했다.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이 의료민영화나 4대강 등 공공성 의제의 들불로 번져나갔던 것, 2010년 무상급식이 순식간에 보편복지 의제로 자리잡은 것처럼 이번엔 ‘경제민주화’가 그럴지도 모른다, 내 가슴은 노래 가사처럼 두근두근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민주통합당은 패배했고 통합진보당은 여전히 대중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진보신당과 녹색당은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김종인 박사 말마따나 새누리당 당선자 중에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야권연대 쪽을 통틀어 당장 정책과 법안을 만들 정도의 실력을 가진 당선자는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 더구나 민주통합당에서는 예의 ‘중도론’이 또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으니 이대로 간다면 대선에서도 별로 기대할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도대체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헌법 119조 2항(김종인 조항)이 그 근거다. 즉 헌법은 소득재분배(복지), 그리고 독점규제(재벌개혁)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헌헌법에는 ‘이익균점권’이 있었으니 우리 헌법은 유구한 ‘경제민주화’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경제민주주의’를 향하여 간다는 뜻일텐데 경제민주주의라는 목표는 어떤 모습일까? 불행하게도 이 질문에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명확한 답이 없고 그야말로 백화제방의 상태이다.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곧 민주주의라는 프리드만(Freedman, M)의 강변 이래 별 관심이 없었고 정치학자들만 띄엄띄엄 의견을 개진했을 뿐이다.
 
경제민주주의 하면 떠오르는 학자는 정치학자 달(Dahl, R)이다. 그는 적어도 선진 사회의 정치에서는 ‘1인 1표’라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규범인데, 경제에서는 왜 ‘기업 괴물(corporate leviathan)’의 전제주의가 규범인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따라서 정치와 경제가 대칭적이기 위해서는 ‘작업장 민주주의(workplace democracy)’가 필수적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1980년대 진보적 경제학자들에게도 나타나는데 보울스(Bowls, S) 등의 ‘민주적 기업’이 그것이고 지난번에 소개한 프리먼(Feeman, R)은 30년 넘게 이 문제에 천착해서 ‘공유자본주의론’을 완성했다.
 
기업 내 민주주의를 넘어 롤스(Rawls, J)는 경제에도 자신의 정의론을 적용한 결과 ‘재산소유 민주주의(property-owning democracy)’를 이상적 사회로 내세우기에 이르렀다(또 하나의 대안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놀랍게도 롤스는 스웨덴의 복지국가를 강하게 비판했는데 복지국가가 자산 소유(‘생산 자산’, production assets)의 양극화를 용인해서 정의의 원칙인 ‘기회 평등의 원칙’, ‘차등의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자유의 원칙도 위반했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결국 롤스는 자산 및 자본재분배까지 주장한 것이다. 

우리 헌법은 사실상 독점의 시정(즉 산업구조 상의 문제)을 중심으로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국가가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고 달과 프리먼은 기업의 민주화를, 그리고 롤스는 재산소유의 민주화까지 주장한 것이다. 이 모두를 일반화한다면 자신의 삶과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차원의 의사결정에 시민들이 참여해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경제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착한 경제학’은 경제민주주의를 어떻게 볼까? 독자들은 지금까지의 정책 처방이 경제민주주의론자들의 주장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이 얘기는 다음 번에 계속하기로 하자.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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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8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2010년부터 무상급식과 무상교육·무상보육 등에서 발화된 보편복지 요구가 주거복지로까지 확산되면서, 이제는 주택 문제가 부동산 시장 살리기 문제가 아니라 국민에게 적정 비용으로 안정된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문제로 대전환을 시작하고 있다. ‘주택은 팔리는 상품이나 가치가 불어나는 자산이기 이전에 살아가는 공간’이고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갈 공간’이라는 공감대가 국민들에게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로 획기적인 인식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변화는 민심에 민감한 선거공약에 그대로 반영된다. 처음부터 주거문제를 복지로 접근했던 통합진보당은 물론이고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까지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주택 바우처 제도를 도입해 전세자금을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전월세 상한제도 원칙적으로 모두 찬성한다. 그러자 ‘복지 포퓰리즘’이라면서 시장의 불만이 거세다. 특히 전월세 상한제에 불만이 집중되고 있는데,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려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장의 불만은 정확히 표현하면 모든 시장 참여자가 아니다. 전월세 임대 공급자와 건설업체·금융회사, 그리고 이들에 동조하고 있는 보수언론을 지칭한다. 시장에서 전월세를 구해야 하는 세입자가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 늘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투기적 성향이 강했던 부동산 시장에서 시장가격이 합리적으로 결정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물론 시장이 국민 주거생활 향상에 미친 긍정적 효과도 많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인구당 주택수나 주거면적, 상하수도 환경 등을 기준으로 보면 주거수준이 획기적으로 향상됐다고 한다. 최저주거 기준 미달 가구 비중도 2010년 기준 8%를 넘지 않을 만큼 개선됐다. 상당부분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개선된 것이다.

또한 질적인 개선은 앞으로도 계속돼야겠지만 양적으로는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어섰다. 주택 소유를 기준으로 봐도 주택이 없는 가구가 38.7%, 주택 소유 가구는 다주택 보유자를 포함해 61.3%로 올라갔다. 1천조원의 가계부채를 대가로 한 것이지만 선진국 사례에 비춰 볼 때 자가소유 비율이 대체로 올라갈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역시 시장기제로 만들어진 결과다.

하지만 시장이 가장 잘못한 것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다름 아닌 주택가격이다. 교육과 보건·보육 등 대부분 복지를 시장으로 해결하면 늘 고비용 문제를 일으켜왔지만, 주택문제는 그 정도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한마디로 시장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지금도 서울지역 아파트 기준으로 가격이 평균 1년 소득의 10배가 넘는다. 만약 자기소득으로 아파트를 샀다면 금리를 5%로 계산해도 매년 소득의 절반을 주거를 위해 지불하는 것과 다름없다. 아파트 가격의 절반을 대출받았다면 계산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매년 소득의 4분의 1 이상을 은행에 이자로 지불해야 하며, 나아가 연소득의 5배가 되는 원금까지 상환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일반적인 개인이 “살아갈 공간을 위해서” 사적으로 감당하기에는 실로 어마어마한 비용이 아닌가.

주택을 소유하지 않고 전세나 월세로 임대해서 살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서울 기준으로 전세가격이 주택가격의 50%를 넘어서기 시작했으니 전세자금이 연간소득의 5배가 넘게 된다. 이 자금은 말만 금융자산이지 단 한 푼의 이자도 창출하지 않고 유동성도 전혀 없다. 그만큼이 모두 비용이다. 월세도 마찬가지다. 매년 소득의 절반을 주거를 위해 임대료로 지불해야 한다.

어쩌다가 주택가격이 소득의 10배를 넘어가게 됐고 또한 임대비용이 커지게 됐을까. 결과적으로는 모두 시장이 스스로 조정해 도달한 가격이다. 이제는 정부가 임의로 왜곡한 것도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재건축 규제완화, 세제 완화, 투기지역 규제완화, 그리고 다주택자 중과세 규제완화 등 거의 모든 규제를 풀어서 오직 ‘시장의 자율적 가격 조정기능’만 남게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주거비용은 아직 국민이 기대하는 합리적인 선으로 오지 않았다. 반대로 2년 연속 소비자 물가 상승률의 4~6배로 전세가격이 폭등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주거비용에 관한한 시장이 가격조정 기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주택가격을 포함해 전체적인 주거비용을 완화시키기 위한 포괄적인 대책이 필요하겠으나 당장 전월세 상한제를 통해서 ‘시장에 의해 왜곡된’ 주거비용을 바로잡는 것은 주거복지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02.17     이상동/새사연 연구센터장

보편교육, 의무교육 가로 막는 교육재정 구조

 

무상복지와 보편 복지에 대한 관심과 논쟁이 뜨겁다. 복지를 무어라 정의하던지 간에 핵심 분야 중에 교육은 빠질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교육은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분야이기도 하다. 여전히 정국의 쟁점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이 선거 때 위력을 발휘한 이유도 이것이 교육의 문제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교육재정에 대해서 한번 들여다보자. 한국사회에 교육 기회가 균등하게 제공되고 공동체의 복지로써 교육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재정 문제를 빠뜨릴 수 없다.

 

보편교육, 의무교육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교육재정 구조는 어떤 문제를 갖고 있을까? 최근 시도 교육청과 자치단체, 그리고 교육과학기술부가 사사건건 재정 문제로 대립하는 것을 보면 어떤 갈등유발 구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것이다.

 

특별교부금으로 시도교육청 압박하는 교과부

 

우리나라 지방교육재정은 교육 자치의 측면에서 상당한 제약 요인이 있다. 한 마디로 교육자치단체가 재량 지출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협소하다고 하겠다. 그 이유는 높은 경직성 비용 비중 이외에도 중앙 관료의 재정 통제 때문이기도 하다. 의무교육에 필요한 재원을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중앙정부의 정치인과 관료가 횡포를 부릴 수 있는 재원 배분구조를 갖고 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별히 특별교부금이 그러하다.

 

2008년도에 중앙정부가 시도교육청에 지급한 특별교부금은 약 1조 2천 억원인데, 이 재원을 가지고 교과부는 시도교육청에 많은 요구를 한다. 시책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특정한 정책사업을 수행하도록 유도하고, 더 많은 교부금을 받으려면 재정평가를 받아야 하고-현행 법률에서는 시도의회가 이런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심지어 ‘민자사업’을 도입하도록 강요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특별교부금 제도가 갖는 문제가 끊임없이 지적되자 2008년에 감사원이 감사에 나서 시책사업의 약 75%가 사실은 시도 교육청이 주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평가하였다. ‘특별’ 교부금이 아니라 일반적인 방법으로 재원을 돌리라는 것이다.

 

특별교부금이 단순 금액 이상으로 중앙 통제의 강력한 수단이 되는 이유는 첫째, 지방교육재정의 자립도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2010년 예산안 기준으로 지방교육재정 세입의 약 72%가 중앙정부 교부금이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교육청을 제외할 경우 중앙정부 교부금 의존도는 평균 80%에 육박하고 90%가 넘는 곳도 있다. 솔직히 서울교육청조차도 학교시설 수요를 감안하자면 재량 지출의 여지가 크다고 볼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동안 시도 교육청은 조금이라도 더 지원을 얻어내는 데 관심을 두었고, 제도가 갖는 부정적 효과에는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국회 심의를 받지 않는 희한한 예산 !

 

둘째, 특별교부금은 국회의 심의를 받지 않는 희한한 정부 예산이기 때문에 중앙 정치와 관료의 통제 의도가 강하게 개입될 수 있다. 정부 예산안에는 특별교부금이 보통교부금과 함께 총액으로만 기재되어 있고, 그것의 사용시기와 방법은 교과부 장관의 결재로써 임의적으로 결정된다. 특별교부금 제도를 애초 도입한 취지에 따르자면 ‘예비비’의 성격을 갖는다 하겠는데, 다른 예비비가 추경 편성 등을 통해 국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과 대조된다.

 

완전히 정치인과 관료의 손아귀에 떨어진 예산이다. 앞서 언급한 감사원 감사보고서는 특별교부금의 금액이 지나치게 과도하고 낭비가 심하다고 지적하면서 폐지까지 권고한 바 있다. 국정감사에서 특별교부금의 문제는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의식은 현 교과부 장관이 공감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주호 장관은 국회의원 시절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을 발의한 장본인이다.

 

산적한 교육재정 현안, 관료 통제의 해체와 함께 가야 한다.

 

특별교부금은 지방교육재정의 약 3% 수준에 불과하다. 전체 교육재정 구조의 핵심적인 문제라 볼 수는 없다. 더욱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들도 널려 있다. 예컨대, OECD 국가 가운데 최저 수준의 공교육 투자, 최고 수준의 사교육 투자라는 전체 재정규모의 문제는 진보 진영에서 오랫동안 지적해 온 문제이다. 교육계는 지방교육재정의 세입구조가 경기변동에 취약하도록 설계된 점을 지적한다. 의무교육의 확대에 충당해야 할 필수재정은 안정적으로 확보되어야 하는데, 세입규모가 들쑥날쑥하고 필수재정이라는 개념은 희박하다.

 

최근 가장 시급한 교육재정 문제는 시설투자 비용이라는 지적도 늘고 있다. 인구 변화에 조응하고 교육환경 개선이 필요한 지역이 많아 교육시설 확충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무분별한 도시개발이 학교부지와 건물 비용을 치솟게 만들고 있다. 이 비용의 부담이 교육청에 집중되고 개발업자나 정부로 적절히 돌리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시설 민자사업’이라는 편법이 도입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이상의 문제들은 다른 사회적 문제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고 구조화된 것들이라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특별교부금 문제는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고 비교적 쉬운 해결책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편 교육, 의무 교육의 확대와 동행해야 할 교육 자치의 원리가 여기서부터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교육이야말로 관료 통제에서 벗어나 자치로, 나아가 학교 자치를 뛰어 넘어 학생 자율로 가야 할 복지가 아닌가?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1 / 02 / 15      정태인/새사연 원장

뜨거워지는 복지논쟁

 

설을 맞아 각 언론사가 여론조사를 했다.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복지에 관한 설문도 물론 포함됐다. 어떻게 물었느냐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지만 놀랍게도 국민의 2/3 가량이 “증세를 해서라도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가히 경천동지요, 상전벽해라고 할 만하다. 2002년 정초에 탤런트 김정은씨가 “부자 되세요”라고 외친 것이 신호탄이었을까? 우리 대부분은 그동안 투기에 목숨을 걸었다. 주식과 부동산시장에서 나만은 승리해서 떼돈을 벌 것이라고, 우리 아이만은 특목고를 거쳐 일류대에 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어느 재벌의 황당한 선동에 따라 우리 모두 정상을 향해 온갖 경쟁을 다 벌였고, 거기서 복지란 패자의 구질구질한 구걸일 뿐이었다. 2008년 4월의 총선이 최악이었다. 서울과 경기도의 모든 선거구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선거공약은 똑같았다. “뉴타운”, 그리고 “특목고”. 이런 낯 뜨거운 공약을 내걸지 못한 진보-개혁 후보는 하나 같이 “지못미”가 되었다. 드디어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나도 패자가 될 수 있다, 아니 패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일까?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40대 남자들은 샌델의 “정의론”을 뒤적이고 장하준의 “23가지”를 들춰 본다.

 

하여 정치권에서 복지 논쟁이 뜨겁다. 야권의 “모두에게 복지를”(보편복지)에 맞서 한나라당은 “필요한 사람에게 복지를”(선별복지)를 내세웠고 민주당 내에서는 “증세없는 복지”와 “증세를 통한 복지”가, 그리고 진보진영에서는 “부자들의 증세”(내라)와 “우리 모두의 증세”(내자)가 맞서고 있다. 복지의 백화제방, 아름다운 풍경이다. 굳이 내 생각을 말하라면 “우리 모두의 증세에 의한 보편 복지”라고 대답하겠지만 지금은 단번에 정답을 내 놓는 경쟁을 할 때는 아닌 듯 하다. 예컨대 OECD 평균에 도달하려면 약 100조원이 필요하므로 증세를 해야 한다는 건 분명 맞는 말이지만 어떤 복지부터 늘려 나가야 하는지, 증세 이전에 국민들의 복지에 대한 믿음을 높일 방법은 없는지도 논의해야 한다. 그런 우선순위나 방식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행동경제학으로 보는 복지논쟁

 

문제를 들여다 보는 방법은 수없이 많겠지만 여기서는 지난 10년간 빛나는 성과를 거둔 행동/실험경제학, 그리고 진화심리학이라는 안경을 써 보자. 그간의 연재를 통해 “작은책”의 독자들은 이런 논리에 익숙할 것이다. 보편복지 역시 공공재나 공유자원(common pool reource)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딜레마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가장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가 밝혀 냈듯이 이기적 인간이라면 최적의 답을 찾을 수 없다.

 

다행히 이들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관찰하듯, 아니 우리 스스로 그러하듯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한다. 맹자의 ‘측은지심’은 하이예크나 프리드만이 주장하듯 원시적 감정이 아니라 지금도 엄연히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인간 본성 중 하나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은 상호적(reciprocal)으로 행동한다. 칸트가 말한 것처럼 “내가 대접받기 원하는 것처럼 남을 대접”하려고 한다. 나아가서 눈에 띠게 공정함을 벗어나는 사람에 대해서는 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가까운 미래에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기꺼이 응징을 한다. 이런 속성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협력이 이뤄져온 이유이며 그렇게 우리는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해 온 것이다. 예컨대 인간이 정말로 이기적이기만 한 존재라면 우리 나라에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없을 것이다.

 

이런 협력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 즉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말한다면 남의 선의를 이용하려는 내 탐욕(greed)이 그 하나요, 또 하나는 남에게 이용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fear)이다. 복지에 관한 한 후자가 더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세금은 내지 않고 복지의 이익만 누리려 한다면 아무도 기꺼이 세금을 내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게임 룰 바깥의 이야기이다. 사회적 딜레마 게임에는 확실한 규칙이 있다. 예컨대 공공재게임에서는 내가 얼마를 기여하면 공유자원이 그 액수의 세배만큼 늘어나므로 모두에게 확실히 이익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세금을 내 봤자 국가가 복지가 아닌 곳에 쓴다면, 예컨대 4대강 사업에 써버린다면 당연히 증세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정권이 바뀌는 것이 당연한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지금 정권은 믿는다 해도 만일 다음 정권이 복지 예산을 삭감한다면 또 어찌 할 것인가? 따라서 사회복지세와 같이 복지를 용처로 정해 놓은 목적세를 거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한 정권이 바뀌어도 전혀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모두에게 확실한 이익과 만족을 주는 복지부터 시행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는 복지 수혜자(수급자)의 무임승차이다. 한나라당이 들고 나온 “공짜 점심은 없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요, 1990년대 초 스웨덴 경제위기 때 경제학자들이 맹공한 지점이 기도 하다. 내가 낸 세금으로 누군가 놀고 먹는다면 그런 복지에는 선의를 지닌 사람도 찬성하기 어렵다. 행동경제학/진화심리학이 밝힌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의도나 노력과 관계없이 가난에 빠진(빠졌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기꺼이 도우려 하며 특히 그가 자립의 의지를 보일 때는 더욱 더 그렇다. 따라서 모든 복지에는 자활 프로그램이 동시에 붙어야 한다. 예컨대 실업급여에는 실효성 있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필수적이고 충분한 노력이 뒤따르지 않을 때는 급여가 중단되도록 해야 한다. 아동수당과 저축을 결합시킨 아동발달계좌도 그런 유의 정책이다. 이런 복지가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산업정책과 결합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북유럽 나라들은 경제학자들이 맹공했던 “공짜 점심”이 매우 유익했다는 것을 훌륭하게 실증했다. 실제로 의료와 교육에 대한 공공지출은 장기적으로 가장 수익성이 높은 투자임이 증명되어 있다.

 

이런 무임승차 문제를 복지 수혜자의 자격 제한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잔여복지/선별복지이다. 잔여복지란 시장과 가족이라는 ‘정상적 메커니즘’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에 한해서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시장과 가족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사람임을 증명해야 한다. 즉 자산조사(means test)가 필수적이다. 불행히도 이런 방식은 균형해가 없는 ‘통제게임(control game)'을 만들어낸다. 정부는 되도록 수급자를 줄이려 하고 국민은 자신의 자산을 줄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사회의 불신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물론 자산조사가 필수적인 복지도 있다.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사회부조가 그러하다. 그러나 보편복지가 충분히 제공된다면 그 대상자는 줄어들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자산조사의 기준도 완화할 수 있다.

 

셋째는 납세자의 무임승차이다. 장관들의 청문회를 보면 이런 의심은 불행하게도 우리의 냉엄한 현실이다. 공공재게임에서 처음에 기꺼이 기여했던(납세) 사람들도 남들이 돈을 덜 낸다는 걸 확인하고 나선 자신도 기여를 줄이다가 결국엔 아무도 한푼도 내놓지 않는 비극적 결과를 맞게 된다. 이 게임에서는 돈을 안 내는 것이 무임승차자에 대한 유일한 응징 수단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 게임에 응징을 가능하게 하면 다시 기여가 늘어난다. 예컨대 스스로 100원의 비용을 물고 무임승차자를 지목하면 그 사람의 보수에서 300원을 빼앗는 제도를 도입하면 전체의 기여는 획기적으로 증가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을 상호적 응징자(reciprocal punisher), 또는 이타적 응징자라고 부른다.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세금을 사회 계층 별로, 또는 지역 별로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 합의하고 탈세 등 무임승차자를 엄격하게 응징하면 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이 응분의 돈을 내면 나도 기꺼이 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상호적 응징자의 역할을 국가 복지의 경우에는 법이 담당하여야 하는 것이다. 즉 문제는 증세 자체가 아니다. 부담을 어떻게 배분하느냐, 또 규칙 위반자를 어떻게 응징할 것인지 합의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복지에 기여를 많이 하는 부자들을 사회적으로 존경받도록 하는 제도를 고안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컨대 사회복지세 상위 기여자 명단을 발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간접상호성, 즉 평판에 의해 협력을 촉진하는 방식이다.

 

넷째는 나의 이익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나도 결정적인 혜택을 볼 수 있는 복지라면 더욱 더 기꺼이 세금을 낼 것이다. 어떤 복지냐에 따라 보편주의는 서로 다르게 적용될 수 밖에 없다. 무상급식은 모든 아이에게, 똑같은(학교별로,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겠지만) 점심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없는 사람은 혜택을 보지 못한다. 한편 건강보험은 모든 국민이 대상이 된다. 그러나 모두에게 똑같은 혜택(benefit)을 주는 것은 지극히 비합리적이다. 암의 세계적 권위자도 암에 걸릴 수 있는 것처럼 건강은 지극히 불확실성이 크다. 이런 복지라면 국민 모두 기꺼이 납세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건강보험은 비용 부담의 규칙도 정해져 있는 상태이므로(물론 더 나은 쪽으로 규칙 개정에 합의할 수도 있다) 용이하게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늙는다. 따라서 노인복지 역시 모두 혜택을 볼 수 있는 항목이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 아직 먼 일이라고 생각해서 절박하게 느끼지 않을 뿐이다(인간은 불행하게도 대부분 근시안이다. 담배를 아직도 피는 나도 그렇다).

 

다섯째, 서로 협력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다면 기꺼이 세금을 납부할 것이다(네트워크 상호성, 집단 선택). 진화 게임에서 협력적 인간은 이기적 인간에게 언제나 당한다. 결국 이기적 인간이 아니고선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만다. 그러나 만일 협력적 인간끼리 모여 있는 네트워크나 집단이 있다면 그 단위 전체는 이기적 인간들의 집단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물론 국가 단위로 시행되는 복지라면 나라간 비교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복지를 나라가 운영할 이유는 없다. 예컨대 근거리의 친밀 노동이 중요한 사회서비스는 국가가 자금을 지원하되 지자체가 운영할 수도 있고 나아가서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경제가 담당할 수도 있다. 만일 그런 지자체나 사회경제가 더욱 더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면 다른 집단이 모방하게 될 것이다.

 

여섯째, 행동경제학과는 무관하게 우리 나라의 특성에 비춰 볼 때 복지의 공급 측면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아동수당을 획기적으로 늘린다면 보육료가 일시에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터무니 없이 부족한 국공립 보육원의 공급을 늘리는 정책이 동시에 시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은 의료나 노인복지도 마찬가지이다. 복지 전달 시스템을 시장에 맡겨 놓은 채 수당만 늘린다면 오히려 가격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해서 원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는 점도 잊으면 안 된다.

 

북유럽 나라들이 이런 세세한 제도를 다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부분을 신뢰(trust)로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규범(social norm)이 상호적 응징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믿는다면 많은 경우 거래비용을 비롯한 각종 비용이 줄어들게 된다. 무임승차자가 사회의 제재를 받게 되고 이런 규범이 내면화한다면 (국가) 제도가 져야 할 부담, 즉 감시비용이나 처벌비용은 훨씬 더 줄어들게 된다. 보편복지의 모범인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이 사회적 신뢰를 측정하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 항상 최상위를 차지하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우리의 복지제도도 잔여복지의 자산조사처럼 상호 불신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쌓는 쪽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어쩌면 위에서 말한 모든 것보다 이 사항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역진불가능한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이런 점들을 다 고려하면 어떤 순서로 복지를 시행하고 어떤 방식으로 재정을 조달하는 것이 좋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진 바 없지만 스웨덴 국민을 상대로 한 20여년에 걸친 반복 조사에서는 일관되게 1위는 의료, 2위는 초중등교육, 3위는 노인복지, 4위는 아동수당, 5위는 고용정책으로 나타났다. 반면 사회부조와 주택수당은 최하위로 나타났다. 물론 이미 기본 복지가 갖춰진 스웨덴과 우리를 바로 비교할 수는 없다. 최소한의 소득보장이라는 기본복지도 갖추지 못한 우리에게는 사회부조가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해야 하고 부동산 가격이 지금처럼 흔들린다면 주택 수당 역시 스웨덴보다는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논의가 예측하는 바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행동경제학/실험경제학이 밝혀낸 인간 본성에 맞춘 복지제도에 관해 아주 거친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복지국가를 향한 몇가지 큰 경로를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어느 경로가 완벽하게 우월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다른 경로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제는 체계적인 논리와 수치를 갖춘 구체적인 논쟁이 필요하다. 이 논쟁에 우리 모두 참여해서 합의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는 역진불가능한 복지국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월간 '작은책'에도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11.03.28 14:39
2011 / 01 / 25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1. 복지확대 VS 세금폭탄

 

■ 최근 정치권에서 복지논쟁이 뜨겁게 전개


- 최근 정치권에서 복지 방향, 재원 규모 등을 중심으로 복지논쟁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음.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을 필두로, 최근에는 보육과 교육, 그리고 의료 부문까지 복지논쟁이 확대되고 있음.

- 이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은 무상급식은 ‘망국적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격렬히 반대. 심지어 “부자한테 공짜 점심을 줄 필요가 없다”며 무상급식 정책을 ‘부자급식’으로 왜곡하기도 함.

- 대통령 또한 지난 14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열린 ‘2011년 여성계 신년인사’에서 “대기업 그룹의 손자, 손녀는 자기 돈 내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사람들 손자 손녀는 용돈을 줘도 10만원, 20만원 줄 텐데 5만원 내고 식비 공짜로 해준다면 오히려 그들이 화가 날 것”이라고 복지논쟁에 가세.

-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 또한 지난 18일,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무상복지는 “서민들 주머니를 털어 부자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전개함.

- 기득권을 대표하는 한나라당은 복지정책 왜곡에서 ‘세금폭탄’ 논리로 복지정책 확대를 정면으로 비판하기 시작함. “민주당의 무상시리즈는 공짜로 포장한 세금폭탄, 국민 기만극”이라는 한나라당 대변인의 논평은 이를 간명하게 드러냄.

 

[표1] 2009년 종합부동산세 납부 현황

 

인원

세액

주택분

종합합산토지분

별도합산토지분

2007

482,622

2조7671억

1조2611억

9170억

5890억

상위10%

48,262

1조9599억

(70.8%)

6196억

(49.1%)

7667억

(83.6%)

5735억

(97.4%)

2009

212,618

9677억

1946억

4413억

3318억

상위 10%

21,261

8292억

(85.7%)

996억

(51.2%)

3994억

(90.5%)

3302억

(99.5%)


- 지난 노무현 정부 때 상위2%를 대상으로 실시한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를 ‘세금폭탄’으로 호도하여 실제 현 정부에서 이를 무력화시킨 사례를 다시 활용하고 있음.

 

 

- 2005년 도입된 종부세는 2007년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48만 명을 대상으로 2.76조 원을 부과함. 1인당 평균 570만원으로 과세 대상 48만 명은 인구 대비 1%, 경제활동인구 대비로는 1.9%에 해당하는 수치.

- 주목할 것은 부동산 보유 상위 계층 내에서도 자산집중도가 심각하여, 상위10%인 4만8천명이 전체 세금의 70.8%를 납부함. 4만8천명은 인구 대비 0.1%, 경제활동인구 대비 0.2%에 해당하는데, 이들이 1인당 평균 4060만원을 납부함. 나머지 43만 명(90%)은 1인당 평균 223만원을 납부한 셈.

- 2008년 11월 종부세 헌재 판결 이후 2009년 과세대상자는 21만 명으로 2007년 대비 56% 감소. 세금은 2007년 대비 1조8천억(65%) 감소한 9677억을 부과.

- 2009년만 보면, 상위10%인 2.1만 명이 85.7%인 8300억을 납부. 상위10%는 경제활동인구 대비 불과 0.08%에 해당하는 수치로 이들이 평균 3900만원을 납부. 특히 상위10%는 전체 토지 대상 종부세의 90.5~99.5%를 납부하였는데, 주택보다 토지의 집중도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남.

- 상위10%인 4만8천명(2007년)의 부동산 부자들은 2009년(4만2천명) 8800억을 납부했는데, 이들이 전체 감세 혜택(1.8조)의 60%인 1조원, 1인당 평균 2540만원의 감세혜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남.

- 사실상 경제활동인구의 0.1~0.2%의 극소수 부동산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종부세가 ‘세금폭탄’이라는 현실을 왜곡시키는 폭력적 언어를 통해 무력화 됨.

- 2005년 종부세 과세 대상을 확대하는 8.31 부동산 대책에 대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중산층의 세금을 짜는 것은 재정파탄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반대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

 

- 복지논쟁은 기득권 세력을 대표하는 한나라당의 특성상, 세금 등 재원 확보 논쟁을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음. ‘세금폭탄’에서 보듯, 중산층과 서민에게 세금 증가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려 하기 때문.

- 따라서 실제 세금을 계층별로 어떻게 납부하고 있으며, 현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어떤 계층이 얼마만큼의 수혜를 입었는지 밝힐 필요가 있음.

- 2008년 이후 현 정부가 대대적으로 감세정책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발표하고 있는 감세 규모에 대해 계층별로 구체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임.

- 2008년 이후 2009년 8월까지 있었던 세제개편 결과, 정부는 전년대비 방식으로 2008~2012년 5년 동안 총 33조 8,826억의 세수감소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 그러나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를 기준년도 대비 방식으로 전환할 경우 90조 1,533억원으로 늘어남.

- 그러나 극소수의 연구조차 전체적인 감세규모만을 추정할 뿐, 소득 계층별로 감세혜택의 차이를 밝히는 연구는 거의 없음. 따라서 본문에서는 국세청의 ‘국세통계연보’를 통해 먼저 어떤 계층이 얼마만큼 세금을 납부하고 있으며, 실제 2009년에 2008년 대비 감세혜택이 계층적으로 어떻게 분배되었는지를 주로 분석함.

- 주요 분석 세목은 소득세, 종합소득세, 법인세를 대상으로 하며, 세법개정이 없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세수의 변화를 과세표준에 따라 계층별로 분석함.


5. 결론 및 정책함의

 

■ 경제력에 비해 형편없는 복지후진국

 

- 위 그림은 OECD 30개 국가의 2005년 기준, 1인당 순국민소득(NNI)과 사회복지지출 비중을 비교한 것임. 2005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순국민소득은 18385 달러로, OECD 평균 24925달러의 74%에 달함.


- 그러나 NNI 대비 사회복지비중은 8%로, OECD 평균 24.4%의 1/3 수준에 불과함.

- 우리나라와 필적할 만한 국가는 멕시코인데, 1인당 NNI가 9911달러로 우리나라의 54%에 불과함. 1인당 NNI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국가는 뉴질랜드(19677), 포르투갈(16227) 등의 국가인데, 복지지출 비중은 각각 24.3%와 18.2%로 우리보다 훨씬 높음. 따라서 추세선을 기준으로 할 경우 사회복지 비중은 순국민소득 대비 22.5%로 14.5%p 상승해야 함.


- OECD 평균 또는 추세선에 비추어, 우리나라는 경제력에 비해서 복지지출은 형편없는 복지후진국. 즉 국민들은 매우 열심히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시스템의 열위로 국민들은 국가로부터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음.

- 현 정부의 감세정책 결과, 2009년에만 2008년 대비 원천징수 소득세 1.6조, 종합소득세 0.5~0.6조, 법인세는 2.4조, 종합부동산세는 1.8조(2007년 대비) 감소함. 이를 4대 세목만 모두 합해도 2009년에만 전년대비 6.4조 감소함.

   

- 현 정부의 ‘감세’, ‘작은 정부’, ‘선별적 복지’는 OECD 국가에 비해서 형편없는 복지수준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조세부담률 증가, ‘보편적 복지’ 등 시대적 추세와 전혀 조응하지 못함.

-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확대로 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지속적으로 상승했음. 그러나 2008년과 2009년에, 경기침체와 현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이 비율은 오히려 하락함. 사회보험료를 포함한 국민부담률은 26.5%에서 0.9%p 감소하였고, 조세부담률은 21%에서 1.2%p 감소함.

 

■ 고소득/대기업 증세와 보편적 복지를 통해 양극화와 차별 해소해야

 

- 2009년 기준 종합부동산세는 2.1만(경제활동인구 대비 0.08%)명이 85.7%를 납부하였고 이들이 전체 감세의 60%인 1조원의 혜택을 입음.

- 소득세는 전체 납세대상자의 0.56%(과표 8800 초과)가 전체 소득세의 30.2%를 납부. 전체 납세대상자의 2.84%(과표 4600 초과)가 소득세 비중 52.5%를 차지함. 이들이 전체 소득세 감세의 21~22%를 차지함.

- 종합소득세는 전체 납세대상자의 2.6%(과표 8800초과)가 종합소득세의 70.2%를 차지함. 이들이 전체 종합소득세 감세의 5% 정도를 차지함.

- 법인세는 전체 42만 개 법인의 0.01%인 48개 대기업이 총 법인세의 37.7%를 차지함. 과세소득 100억을 초과한 대기업 1729개(0.4%)가 총 법인세의 77.2%를 차지함. 이 중 과표 5000억 초과 44개 대기업의 법인세는 14.2조에서 13.1조로 1.14조 감소하여 전체 감세 총액의 46.7%를 차지함.

- 2010년 또한 과표 1200~4600 구간과 4600~8800 구간에서 추가로 1%p 세율이 감소함. 내년 2012년에는 소득세 최고세율(35%→33%)이 2%p 인하되고, 법인세 최고세율(22%→20%) 역시 2%p 인하가 예정되어 있어 감세규모는 해마다 더욱 늘어나고 고소득층에 집중될 것으로 보임.


- 소득이 올라갈수록 세율이 확대되는 누진세의 특성상, 전반적 감세와 증세는 모두 상위계층에 집중될 수밖에 없음. 따라서 복지확대를 ‘세금폭탄’이라 주장하며 국민의 불안감을 조장하고 겁주는 것은 사교육 학원의 ‘공포마케팅’ 상술에 불과한 것으로 전혀 근거 없음.

- 종합부동산의 경우, 부동산 거품과 더불어 자산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로 인해 보수 정치권과 언론의 ‘세금폭탄’ 공세가 실제 효과를 발휘함. 그러나 소득세나 법인세는 ‘거품’이 발생할 수 없고, 계층별 소득 및 세금 납부 현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세금폭탄’을 통한 복지확대 반대는 재고할 필요가 있음.

- 복지지출 확대에 필요한 재원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의 감세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음. 우선 내년 예정된 소득세와 법인세의 최고세율 인하를 폐기해야 함. 이는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적 과제에도 전혀 부응하지 못한 조치임.

- 오히려 고소득 계층에 대한 증세를 추진할 필요가 있음. 실제 2004년 대비 과표 8000만 이상 고소득자는 145%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세율 변화나 과표 조정이 이루어지지 못함.

 

- 같은 기간 종합소득세 8000 초과 고소득자는 77,565명에서 150,365명으로 94% 증가함. 이 중 2억~3억은 17,791명, 3~5억은 10,901명, 5~10억은 5,890명, 10억 초과는 3,037명으로 나타남.

- 특히 현행 법인세는 과표 기준 2억을 기준으로 두 단계로 되어 있는데, 5000억을 초과하는 대기업과 2억을 초과하는 중소기업에 같은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 등의 측면에서 매우 문제가 많다고 지적되어 왔음.

- 실제 2008년 세제 개편에서 감세 규모가 가장 큰 분야가 법인세로 과표 100억을 초과하는 대기업이 집중적으로 혜택을 입음. 대기업에 이윤이 집중되는 경제구조에 비추어, 과표와 세율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음.

- 즉 고소득자 및 대기업에 대한 증세를 통해 양극화를 시정하고, 보편적 복지를 통해 차별과 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조세와 재정지출을 전면 개편해야 함.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