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18정태인/새사연 원장

 

“아무도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 삼성의 광고 문구다. “부자 되세요!”와 함께 희망차게 맞은 새 밀레니엄의 첫 10년 한국 사회를 이보다 잘 보여주는 카피는 없었다. 이들이 부추긴 ‘죽음에 이르는 경쟁’의 결과 한국은 자살률 세계 1위이고, 더구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이 1등을 기록하고 있는 수치는 많다. 특히 성차별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그렇다. 남녀 임금격차는 38.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5배이고 여성 임금 근로자 중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42.7%로 역시 1위다. 대체로 가사 및 돌봄노동 시간을 의미하는 무급노동 시간은 여성 135분, 남성 45분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격차가 크다. 여성의 비중이 큰 노인 빈곤율 또한 세계 1위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각종 성평등 지수에서 100위 밖에 머무르는 것은 당연하다. ‘다이내믹 한국’에서 다이내믹하게 자신의 지위, 특히 발언권이 위축되는 걸 체감하는 남성들로선 이 수치 자체를 믿을 수 없다. 단칸방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 그것도 몸짓 발짓으로 담배와 재떨이를 갖다 바치게 하는 걸 보며 컸는데 이젠 아파트 단지 외진 구석에서 숨어 피워야 하니 이런 수치를 믿지 못할 수밖에. 등수와 느낌의 차이는 성평등 지수가 남녀 간 상대적 격차를 기초로 해서 산정됐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 여성의 문자해독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남성과 비교한 상대적 해독률은 여전히 낮기 때문에 이 격차를 대상으로 순위를 매기면 이 부문에서도 한국은 100위권으로 전락한다.

그러므로 “이 수치로 호들갑을 떨지 말자”는 주장은 그래서 더 못나 보인다. 문제는 여성들의 능력은 과거에 비해 훨씬 증가했는데 능력 발휘의 기회는 여전히 적다는 점에 있다. 1990년대 인기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처럼 공부를 훨씬 잘하는 딸이 아들을 위해 대학을 포기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겠지만 대학을 졸업한 딸이 취직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즉 시장은 여전히 고루한 성차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주류경제학의 진단은 아주 명쾌하다. 시장이 알아서 불평등을 없애줄 것이란 얘기다. 그 논리도 아주 쉽다. 만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능력 있는 여성을 채용하지 않는 기업이 있다면 결국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기 때문에 시장은 능력 순서대로 고용할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현실의 시장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최근 최고경영자들에게 그저 이름만 늘어놓고 채용 순위를 정하라는 실험을 한 결과, 이들은 앵글로색슨계 남성 백인의 전형적 이름들을 꼽았다. 냉혹한 시장의 논리와 달리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이야말로 정의나 배려, 평등과 같은 다른 가치가 스며들 수 없기 때문이다. 효율성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 시장이 실은 비효율의 강고한 토대인 것이다.

고용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 맡기려고 하는 일을 누가 더 잘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관행에 따라 고정관념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보다는 남녀 간, 지역 간, 학력 간 또 다른 어떤 기준에 따른 차별을 없애는 게 더 효율적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해마다 돌아가면서 성평등지수 1, 2, 3위를 차지하는 북유럽 국가들의 높은 성장률은 이런 추론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노르웨이 정부는 남녀의 능력이 동일하다는 단순한 가정하에 공기업 최고경영자 비율을 30% 이상으로 단숨에 끌어올렸고 이를 민간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나아가 성평등은 성차에 따른 다양성을 확보해 주기 때문에 효율성을 더욱 북돋운다. 평등은 여러 경로로 효율을 높일 수 있는데 기회 닿는 대로 살펴보기로 하자.

이 글은 여성신문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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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18 김수현/새사연 연구원

 

 

용어해설

임시직 노동자(temporary worker)?

전체 임금근로자 중 계약기간이 제한된 노동자들을 의미하며, 근로계약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무기노동자(permanant worker)와 구분된다.

 

문제현상

임시직 비율 24.8%,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

OECD 통계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의 전체 임금근로자 중 임시직 노동자 비율은 24.8%로 폴란드(27.3%), 스페인(24.9%)에 이어 OECD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높았다. 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고용불안정성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있음을 의미한다.

48% 임금근로자의 절반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임시직 노동자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용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개념에 포함되는데, 노동계에서는 이런 임시직 노동자에 시간제 노동자, 장기임시일용직 노동자를 더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모를 산출하고 있다. 이런 노동계의 개념을 따를 때 20123월 우리나라의 전체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은 48.0%로 절반에 가깝다.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 임금과 사회보험에 있어서도 차별받아

여러 통계들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동일한 일자리에서 동일한 일을 하더라도 임시직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 사회보험 가입비율도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 진단과 해법

임시직 고용을 줄이고,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으로의 전환

임시직 고용이 노동시장을 벗어나 빈곤, 불평등, 양극화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를 줄이기 위한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정해진 업종과 작업에서만 임시직 고용이 가능하게 하며, 장기적인 파견노동자의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파견노동자의 고용에 있어 불법이 발견될 경우 고용의제를 통해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하는 정책 전환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비자발적으로 임시직을 택하지 않게 할 수 있도록 청년고용할당제 등을 통해 청년층에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는 한편, 민간수요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사회서비스업에 정부투자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여성과 중고령자 등 실업, 임시직의 비율이 높은 취업애로계층에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임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환경 개선

한편, 현재 시점에서 높은 고용불안정성, 저임금, 낮은 사회보험 지원수준에 직면해 있는 임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환경을 개선하는 정책도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제나 근로장려세제를 활용해 근로빈곤 상황에 처한 노동자를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소득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저임금 임시직, 비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정부지원을 통해 사회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정책방안을 역시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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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15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6월 12일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 교수가 췌장암으로 타계했다. 오스트롬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유일한 여성 학자였으며, 경제학자가 아니라 정치학자였다. 그는 ‘공유자원의 비극’으로 알려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다시 말해 어떻게 인간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상호 협동할 수 있을지를 연구해왔다.

공유자원의 비극은 1968년 미국의 생물학자 하딘(Hardin)의 논문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지하자원이나 공기 등과 같이 공동체가 함께 사용하는 공유자원의 경우 과도한 소비로 인해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이런 공유자원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딘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첫째, 국가에 의한 규제와 둘째, 소유권 분할을 통한 사적 관리를 제시했다.

하지만 실제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공유자원들이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어왔다. 오스트롬은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는지를 연구했다. 전 역사와 전 세계 속에서 공유자원을 보유하고 보존해온 다양한 공동체를 조사했다. 그 결과 정부나 국가에 의한 규제보다는 공유자원 문제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인 공동체의 구성원들끼리 자발적인 규제와 협동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해법임을 찾아냈다. 이는 인간이 어떻게 이기심을 극복하고 협동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이어져 정치학, 행정학, 경제학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오스트롬 교수는 지난해 췌장암에 걸린 사실을 알고도 연구를 위해 멕시코를 방문했으며, 논문 발표를 계속했다. 그가 타계한 날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는 다음 날 열릴 유엔 지속가능발전정상회의에 대한 그의 글이 실렸다. 아마도 그가 공식적으로 남긴 마지막 글일 것이다. 역시나 그는 다양한 지역적 공동체들의 각성과 협동을 통해서 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풀뿌리에서 시작되는 녹색혁명

(Green form the Grassroots)

 2012년 6월 12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

 

유엔 지속가능발전정상회의, Rio+20(리오 회의 이후 20년)에는 수많은 의제들이 걸려 있다. 이 중 많은 문제들이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시급한 대책이다. 많은 이들은 생태계를 보호하고, 지구상에 발생하는 인도주의적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하나의 국제 협약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Rio+20이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심각한 재앙이다. 하지만 하나의 국제 협약에만 매달리는 것 역시 심각한 실수가 될 수 있다. 공유자원은 우리 삶에 필요한 환경을 제공하는 바다, 대기, 숲, 물길은 물론이며 매우 다양한 생명체와 70억 인구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단 하나의 국제 협약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전 세계가 연결된 엄청난 규모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누구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상황에 빠르게 진화하고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수십 년 간의 연구는 도시적, 국가적 그리고 국제적 수준에서 다양하게 중첩되는 정책들이 단 하나의 정책, 단 하나의 협약보다 더 성공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정책을 고민하는 발전된 관점으로서 하나 이상의 정책이 실패했을 때 중요한 안전망이 되어준다.

좋은 소식은 이 같은 발전된 정책 만들기가 이미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온실가스를 막기 위한 효과적인 법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점점 더 많은 도시 지도자들이 그들의 시민과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며, 앞으로 더 많이 일어날 것이다.

대부분의 큰 도시들은 해안가나 강가, 혹은 취약한 삼각지에 위치해 있다. 이 도시들은 앞으로 몇 십년 안에 해수면 상승이나 홍수 등에 직면할 것이다. 이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70%를 이 도시들이 줄여간다면, 상황은 나아질 수 있다.

현재 미국 연방정부에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요구하거나 장려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하지만 작년 5월 미국의 30개 주에서는 자체적으로 기후변화 대책을 만들었. 900개 이상의 도시에서도 미국 기후 보호 협약에 서명했다.

환경 정책 결정에 있어서 풀뿌리 조직의 다양성은 경제적 논리에도 부합한다. “지속가능한 도시”는 창조적이고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그들은 환경오염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삶에 적합한 근대적 도시 환경을 원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경제성장은 여기에 달려있다. 휴대폰의 성능이 개선되면 사람들이 오래된 모델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사는 것처럼, 일단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도시를 통해 이득을 보게 되면 오래된 모델은 순식간에 잊혀질 것이다.

물론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환경오염을 예방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도시의 개발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지방자치제의 한계를 넘어야 하며, 에너지, 음식, 물, 사람과 같이 도시로 들어오고 나가는 자원의 흐름을 분석해야 한다.

세계는 다양한 도시의 집합이며, 이들의 상호작용은 지구 전체의 생태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도시들은 서로 배우면서 좋은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잘못된 것은 고쳐나갈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환경오염을 완화시키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 그러나 베이징의 경우는 빠르게 시스템을 전환하고 있다. 다가오는 몇 십 년 안에 우리는 서로 연결된 지속가능한 도시로 이루어진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성공한다면, 모든 사람이 따르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구조적으로 위기를 조정하고, 상호연결된 복잡한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공유자원 문제의 성공적 해결을 위한 적절한 대책이다. 그것이 온실가스 배출에 미치는 영향이 아직은 미약하더라도 말이다.

Rio+20회의는 매우 결정적이고, 말할 수 없이 중요한 회의이다. 20년 동안 지속가능한 발전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목표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열린 '위기에 처한 지구(Planet Under Pressure)'라는 대규모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지구 선언(Planet Declaration)의 첫 번째 단계는 지속가능성이 미래 발전을 위한 선결조건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전 세계적 지속가능성은 지역의 지속가능성과 국가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고 결합될 때 가능하다. 이런 생각이 국가 경제의 기본이자 우리 사회의 조직 구성원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의 목표는 세계적으로 연결된 사회적 DNA 를 기반으로 지속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시간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자원이다. Rio+20회의는 세계를 깨워야 한다. 우리는 전 세계적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불평등을 해소하는 동시에 에너지, 음식, 사회안전망, 공중위생, 도시계획, 빈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전 세계적 문제를 다루는 방법 중 하나로 UN의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와 같은 것을 세우는 방식이 있지만, 이런 방식은 계속 실패하고 있다. 이 계획들은 2015년까지 이루어지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관성을 극복하게 해줄 것이다. 모든 주, 도시, 조직, 기업, 사람들이 목표 수립에 함께해야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곳곳에서 개발되고 있는 다양하고, 중첩적으로 연결된 정책들이 어떻게 실행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적어도 10년 안에 대책을 찾아야 한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생태계에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 위기를 가져오고 말 것이다.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미래 세대의 삶이 위협당하지 않도록 환경 위기에 대한 지구적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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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4정태인/새사연 원장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지난 5월 1일 <PD저널>에 ‘패배 이후’라는 칼럼을 쓴 이후, 통합진보당 상황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해 주는 문장이 있을까.

통합진보당 정파들은 정확히 ‘치킨게임’을 치르고 있다. 어느 쪽이든 탈당하면 망할 거라는 예측 때문에 당이 깨지진 않겠지만, 비극은 이 게임이 ‘미친 놈’이 이긴다는 사실(<PD저널> 2011년 11월 30일자 ‘미친놈과 바보의 게임’을 참조하시라)에 있다.

만일 두 집단이 냉정하다면 어느 한 쪽이 양보를 하는 것이 치킨게임의 균형인데 양 쪽은 6월말로 예정된 당대표 선거로 양보 집단을 결정할 요량이다. 다수결은 어떻게든 결론을 낸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최후의 선택지라고 할 수 있지만 또한 민주주의의 여러 해법 중 가장 덜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문제는 다수결에 의한 양보가 진정한 통합으로 이어질 것이냐에 있고 더 큰 문제는 이런 해결이 땅에 떨어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는지 여부다. 어쩌면 통합진보당은, 발목을 매단 탄력 좋고 튼튼한 밧줄도 없이 100m쯤 더 떨어져야 하는 번지점프 중인지도 모른다.

영국의 정치학자 부체크(Boucek)는 최근 한 논문 ‘정파주의를 다시 생각한다’에서 정파주의를 세 가지로 분류했는데 ‘협력적 정파주의’, ‘경쟁적 정파주의’, 그리고 ‘퇴행적 정파주의’가 그것이다. 내 보기에 통합진보당의 각 집단은 ‘퇴행적 정파주의’에 빠져 있다. 이 정파주의 구도에서 각 집단은 당 전체의 가치보다 개별 집단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 골몰해서 당의 공유자원을 파괴하며 당은 분열과 잠재적 붕괴 상태에 빠진다. 부체크는 1994년에 붕괴한 이탈리아 기독민주당의 70년대 행태를 대표적 사례로 들고 있다.

정파주의는 거의 모든 정당에서 언제나 나타나는 현상이며 집단 간 경쟁은 각 집단 내의 신뢰와 협동을 촉진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더 큰 가치를 공유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동선을 향해 경쟁할 수 있다면 퇴행적인 정파주의도 어느 덧 협력적 정파주의로 승화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집단 간 경쟁은 ‘집단 의견의 양극화’(선스타인), ‘집단 환상’(베너부)으로 이어지기 일쑤여서 선스타인은 자신의 관찰 결과에 ‘법칙’이라는 낙인마저 찍었다. 실제로 현재 통합진보당은 진보라는, 모두 추구한다고 공언한 전체 가치를 가차 없이 붕괴시키고 있는 중이다. 흔히 집단 간 경쟁은 상대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집단 내에 퍼뜨리고 상대의 의도에 관한 추측을 양산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각 집단의 지도자나 지식인이 이런 왜곡을 방조하거나 적극적으로 이용할 때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게시판이나 SNS에 난무하는 추측과 동조 댓글들을 보라).

협력적 정파주의는 흔히 정당 창립기에 나타난다. 새로 추구할 가치에 합의하고 희망에 부풀어서 구체적 실천 방안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통합진보당 내외에서 ‘제 2의 창당’, ‘새로 나기’, 그리고 ‘진보 시즌 2’라는 구호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과연 새로 합의할 수 있는 가치, 전략은 무엇일까. 나는 현재 각 정파의 가치 자체부터 철저한 성찰을 통해 재탄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주성’, ‘노동중심성’같은 가치가 바로 그러하다. 현실은 과거의 ‘자주 노선’으론 남북통일이나 동아시아의 평화체제를 이룰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시에 과거의 ‘노동 중심성 노선’으론 평등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반복해서 증명하고 있다. 세계의 대전환기에, 즉 진보가 대도약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이 무슨 시대착오란 말인가.

가치의 다원성을 인정하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며 나아가서 자신의 의견을 기꺼이 바꿀 용의가 없다면 집단 간 경쟁이 협동으로 승화할 가능성 또한 사라진다.

현재야말로 리더십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각 집단의 리더가 아니라 당의 리더로서, 진보진영 전체의 리더로서 집단 간에 만연한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고 모두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 파괴된 국민의 신뢰야 말로 빨리 채워야 할 진보진영 모두의 공유자원이다. 과거 가치의 재해석, 새로운 가치에 대한 합의, 그리고 당내 (숙의) 민주주의야말로 추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오솔길이다.

이 글은 PD저널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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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3정태인/새사연 원장

 

해결 방향은 명확하다. 서로의 생존을 보장하는 해법에 합의하고 보수를 확정해서 사슴사냥 게임으로 바꾸는 것, 그리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번에 현재 통합진보당은 치킨게임이라는 사회적 딜레마에 빠졌다고 말했다. 물론 복잡다단한 현실을 이렇게 간단한 게임으로 파악할 때 언제나 주의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이다. 예컨대 현실에서는 두 당사자(정파)가 마음 속에 서로 다른 보수(報酬)표를 품고 있기 일쑤다. 하지만 양쪽 당사자 모두 ‘지금 밀리면 끝’이라고 생각해서 자기 뜻을 고집한다는 점, 그리고 지금처럼 나가면 진보 전체가 망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치킨게임 상황임에 틀림없다.

<착한 경제학>을 꼼꼼히 읽은 독자라면 이번 사태에서 ‘공유지의 비극’도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 각 정파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진보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해도 마찬가지다) 수십년 동안 진보가 목숨을 걸고 쌓아온 대중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런 신뢰야말로 우리 모두의 공유자원이다. 그렇다면 노박의 ‘인간 협동의 다섯 가지 규칙’이나 오스트롬의 공유지 비극 해결의 7가지 원칙은 이 사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배운 걸 당장 써먹어보자!

노박의 ‘규칙’, 그리고 오스트롬의 ‘공동체적 해법’도 단순화하면 결국 ‘죄수의 딜레마’나 ‘치킨게임’을 ‘사슴사냥 게임(stag hunt game, 또는 assurance game)’으로 바꾸는 방안들이다. 옛날 사람들이나 심지어 동물들이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협동했던 사례들을 잘 관찰해보면 나 홀로 살려고 해서는 풀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 가능한 문제로 바꿔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스트롬의 공유자원에 관한 방대한 연구도 결국 사람들이 공유 저수지나 삼림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지혜를 정리한 것인데, 이 역시 게임으로 정리하면 사슴사냥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슴사냥 게임의 보수표는 위와 같다. 이 게임의 균형은 (협동, 협동)=(4, 4), 그리고 (배신, 배신)=(2, 2) 두 개다. 즉 상대가 협동한다면 나도 협동하는 게 낫고 상대가 배신한다면 나도 배신하는 게 답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상대가 협동할 때 그걸 이용해서 이익을 취하는 게 이익이지만(모두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애만 사교육시키면 등수가 왕창 올라갈 것이다), 사슴사냥 게임 상황이라면 나도 협동을 하는 게 더 낫다(우리 모두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 돈도 굳고 애들도 행복해지며 그래도 공정한 게임이 가까워질 것이다).

기실 노박의 ‘규칙’은 혈연관계일 때, 반복해서 만날 때, 서로를 잘 알 때, 그리고 친한 사람끼리 모일 때 서로 협동하는 것이 모두에게 더 이익이 되는 상황, 즉 보수가 바뀌어서 이제 사슴사냥 게임이 된다는 얘기다. 드디어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상대가 협동하리라 믿지 못하는 경우에는 사슴사냥 게임 상황에서도 (배신, 배신)을 택하게 된다.

통합진보당같이 서로를 극도로 믿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결국 자신의 이익마저 저버리는 (그러므로 균형이 아닌) 비극을 택하게 된다. 해결 방향은 명확하다. 서로의 생존을 보장하는 해법에 합의하고 보수를 확정해서 사슴사냥 게임으로 바꾸는 것, 그리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한쪽이 상당한 손해를 보는 합의에 이르더라도 둘 다 망하는 (배신, 배신)보다는 낫다. 합의안을 확정하고, 그 합의를 어길 경우 강력하게 응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밀실이 아니라 광장에서에서 합의안을 만들면 대중이 응징하게 될 것이므로 가장 강력하다. 그럼 난마 같은 현재 상황에서 구체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퇴행적 정파주의에서 협동의 정파주의로’가 내 나름의 답이다. 독자들도 이 글이 제시한 방향에 따라 묘책을 찾아내기 바란다.
 

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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