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2 / 01 김수현/새사연 연구원

 

새사연은 2012년 1월부터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관해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2013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외에 사회 분야까지  확장하여 해외의 좋은 주장과 의견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국제노동기구(ILO)는 세계임금리포트를 통해 전세계 국가들의 주요 임금 추이와 노동, 임금과 관련된 주요 이슈들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이번 2012/13년 세계임금리포트(Global wage report 2012/13)의 주요 주제는 점점 심화되고 있는 소득불평등이다. 본문에서는 전세계적으로 노동몫이 줄어들고, 임금소득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한편, 그로 인한 유효수요 부족이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과 관련해 생산성과 연계된 노동몫 배분 정책, 최저임금제 등과 같은 임금관련 제도의 개선, 사회보장제도의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세계임금리포트 2012/13 : 임금과 공정한 성장

(Global wage report 2012/13 : Wages and equitable growth)


1. 주요 임금 추이

□ 위기 이후 임금성장율에 있어 약세가 계속되고 있음

- 전세계적으로 실질임금성장률은 위기 이전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음

- 상대적으로 보았을 때 개발도상국에 비해 선진국에서 더 낮은 임금성장률을 보이고 있음

- 인플레이션을 조정한 실질임금으로 보았을 때, 2011년의 임금성장률은 1.2%로 나타남. 이는 2010년 2.1%, 2007년 3%보다 낮은 수치임

- 여기서 중국을 제외할 경우, 2011년의 임금성장률은 0.2% 밖에 되지 않음. 2011년의 임금성장률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음

 

□ 임금성장률은 지역간 차이를 보임

- 실질임금성장률은 지역간 큰 격차를 보이고 있음

- 선진국들은 더블딥을 겪으면서 임금상승률이 낮은 수준에 머물렀음

- 반면, 라틴아메리카나 아시아 국가들은 유럽 선진국들에 비해 높은 수준의 임금증가세를 보임

- 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임금성장률에는 중국의 기여도가 큼. 중국을 제외할 경우 2011년의 임금성장률은 -0.9%임

- 임금변동폭이 가장 큰 것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로 나타남. 하지만 이는 경제위기 이전 시장경제로의 변화로 인한 임금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보임

- 중동에서는 2008년 이후 임금이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남

 

□ 2000년에서 2011년까지로 관측 연도를 확대할 경우 임금성장률의 지역 간 격차는 더욱 두드러짐

- 선진국들이 이 기간 5%의 임금성장률을 보이는 동안, 아시아 국가들은 거의 두 배로 임금이 증가함

-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실질임금은 이 기간 동안 거의 세 배로 증가함. 하지만 이는 시장경제로의 이행으로 인한 임금상승 때문이기도 함. 예를 들어, 러시아에서는 임금의 실질가치가 1990년대의 40% 수준으로 떨어짐

 

□ 임금수준의 지역별 격차는 여전히 큼

- 개발도상국의 임금이 크게 증가하기는 했지만,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임금수준의 격차는 여전히 큼

- 제조업 노동자들의 시간당 평균임금을 비교해보면, 필리핀 1.4달러, 브라질 5.4달러, 그리스 13달러, 미국 23.3달러, 덴마크 34.8달러로 지역별 큰 격차를 보임을 알 수 있음

 


2. 노동몫의 감소

□ 전세계적으로 경제성장에 대한 노동자들의 몫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남

- 1999년에서 2011년 사이 선진국의 평균노동생산성은 평균임금의 두 배 만큼 증가함

- 미국에서는 비농가경제 부문에서의 실질시간당 노동생산성이 1980년 이후 85%가 증가했지만, 실질보수는 약 35% 증가하는데 그침

- 독일의 경우 지난 20년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거의 25%가 증가했지만 실질임금은 이전과 같은 수준임

- 전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노동의 몫이 줄어들고 자본소득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임. 자본의 몫이 더욱 빠르게 증가한 것임

-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임. 지난 10년 사이 임금이 거의 세 배나 증가했지만, GDP는 임금수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함. 이에 따라 노동의 몫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남

- 노동몫의 감소의 이유로는 기술의 발전, 전지구적 차원의 무역, 금융시장의 팽창, 노동조합의 쇠퇴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금융의 세계화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음

 


□ 노동몫 감소의 영향

- 노동몫 감소는 소득 분배의 공정성을 악화시키며 가구의 소비를 줄이고 유효수요 부족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 유효수요의 부족은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침

- 실제 일부 국가들에서는 이와 같은 유효수요 부족을 순수출의 증대로 매워왔음. 하지만 모든 국가가 순수출을 증대시킬 수는 없음

- 경제위기 상황에 직면한 국가의 경우 단위노동비용 감소 전략으로 인해 수출의 증가보다 국내 소비감소가 더 커져 위기가 더욱 심화될 수 있음

- 순수출 증대를 위한 방안으로 여러 국가들에서 경쟁적으로 임금감소전략을 실시할 경우, 노동몫은 더욱 작아질 것이고 유효수요는 더욱 줄어들 것임

 


3. 공정한 성장을 위해

□ 노동몫 감소, 임금불평등 심화

- 세계임금리포트는 국가별 소득분포와 임금수준의 변화에 대해 다루고 있음

- 이를 통해 소득불평등이 더욱 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음

- 우선 여러 국가들에서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노동의 몫이 줄어들고 자본의 몫이 늘어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음

- 그리고 개별 임금소득자들 사이에서도 불평등이 심화되었음을 찾을 수 있음. 상위 10%의 임금과 하위 10%의 임금 사이의 격차는 과거보다 더욱 증가했음

- 이러한 내적 불균형은 저임금으로 인한 부족한 유효수요를 부채나 순수출로 매워야 하는 외적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더욱 악화시킬 수 있음

 


□ 생산성 증대가 임금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함

- 내적, 외적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수준 혹은 전지구적 수준에서 균형을 다시 맞추는 재균형 정책이 수행되어야 함

- 외적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정책입안자들은 노동생산성과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이 잘 연계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함

- 특히, 경상수지 흑자폭이 큰 국가의 경우, 생산성 증가 수준과 임금 증가 수준을 잘 연계할 경우 국내 소비수요를 활성화시키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임

- 재정이 적자일 경우 정책입안자들은 유효수요의 감소를 가져올 수 있는 노동몫 감소 정책을 실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함. 특히, 사회적 파트너들의 동의를 건너뛴 외부로부터 강요된 긴축정책은 효율적인 노사관계를 해칠 수 있음

 

□ 임금결정 관련 제도의 강화

- 임금결정과 관련된 제도의 강화를 통해 내적 균형을 맞추는 작업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임

- 노동자들을 조직하는데 있어서의 어려움, 가속화된 노동시장 분단, 급속한 기술 변화 등과 같은 현실을 감안했을 때, 노사간 제대로 된 단체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한 환경을 지원하고 만들어 줄 필요가 있음

- 저임금 노동자들의 경우 임금 결정에 있어 더욱 강한 보호가 필요함. 최저임금제는 제대로 시행될 경우 적절한 수준의 최저임금 제공을 통해 저임금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보장해 주는 효과적인 정책임이 증명되었음

- 최저임금제를 통한 저임금 노동자 지원정책이 필요함

 

□ 노동시장 밖의 제도 개선 역시 필요함

- 노동시장 정책만으로 소득불평등을 개선할 수 없음

- 소득재분배를 위해서는 금융시장으로 하여금 생산적이고 지속가능한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등 노동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제도들의 변화 역시 필요함

- 이와 관련해 자본소득에 대한 세율과 노동소득에 대한 세율을 조정해 분배를 개선하는 정책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임

 

□ 임금소득자 외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도 마련되어야 함

- 임금소득자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 수준임. 다른 절반을 이루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생산성과 소득을 증가시키기 위한 방안이 필요함

- 전반적인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교육수준을 높이고, 생산성 향상과 경제발전에 필요한 능력을 강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함

- 제대로 된 사회보호시스템이 갖추어질 경우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예방차원의 저축을 줄이고, 자녀의 교육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해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편, 더 많은 소비를 통해 국내소비수요의 증대와 생활수준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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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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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01 / 22 이수민/새사연 연구원

 

새사연 2013년 회원 캠페인- “새사연과 함께하는 희망 북클럽”을 시작하면서


우려했던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의 집권 연장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사회가 진보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힘들어 하는 다수 국민이 존재하는 한 변화에 대한 모색은 멈출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진보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진보가 노력을 기울여온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일자리를 의제로 하여 치러진 18대 대선임에도 진보가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수가 손쉽게 의제를 차용해도 아무런 차별화가 되지 않을 만큼 진보 정책의 폭과 깊이가 짧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진정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생각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살아있는 진보 정책’을 모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평범한 생활인들과 손잡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추구해온 새사연은 진보 학습으로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것을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제안합니다. 그 첫 출발점으로 새사연 연구원들이 각자 회원님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 한권씩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진보의 깊이를 위한 물음을 던지겠습니다.

아울러 이후에 회원님들이 추천하는 책, 새사연과 함께하는 독서 토론, 저자와의 대화 등을 다양하게 시도할 생각입니다. 회원님들의 관심과 참여 기대 하겠습니다.


 

 <새사연 희망 북클럽 ④>『현시창』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추천도서 4 -현시창

(임지선, 2012, 알마)

청년 담론의 큰 출발이었던 우석훈, 박권일의 88만원 세대, 많은 청년들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냈던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지금까지 나왔던 여타 청년이야기들과는 전혀 다르다. 위로도 격려도 하려하지 않는다. 그저 차분히 한 세대를 들여다본다.

뜨거웠던 청년 담론의 거품도 가라앉고, 청년들의 주먹에도 힘이 빠지기 시작한 듯 보인다. 이 시점에서 현직 기자이자 30대 청년이 쓴 이 책은 청년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제시한다. 요즘 누구를 만나든 무작정 추천하는 책이다.

그 많던 청년들은 다 어디로 갔나

웬일인지 조용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늦둥이 외동아들 마냥 세상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청년 세대’에 대한 목소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호통치고 야단치면 정신 차릴까, 어르고 달래면 일어설까 기대했던 어른들은 이제 시들해졌다. 두 번의 선거를 마치고 그들의 헹가래에 보답하지 못한 청년들은 이제 작은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대선 이후 찾지 않는 청년. 누군가는 역시 ‘젊은 것’들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진짜 변하지 않는 것은 청년들의 삶, 청년들을 둘러싼 지금의 이 현실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청년 담론’을 다시 시작할 새로운 그리고 고마운 책 한권이 우리 앞에 던져졌다. 임지선 저 『현시창』이 바로 그것이다. 제목이 이상하다 싶겠다. 사실 ‘현시창’이란 말은 저자가 처음 꺼낸 말이 아니다. 이는 ‘현실은 시궁창’의 줄임말로, 영화 ‘8마일’에서 가수 에미넴이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노래한 데서 시작되어 인터넷 상에서 널리 퍼진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 임지선은 시궁창인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청년 현실의 이면에 숨어 있는, 그러나 너무 단단하게 그들을 옥죄고 있는 ‘보이지 않는 룰’을 꺼내어 친절히 보여준다.

뜨거웠던 이전 세대에게는 불합리한 현실에 눈감는 개xx였던, 하지만 동정심 많은 자선가에 의해 ‘88만 원 세대’이라는 조금은 안쓰러운 이름을 얻게 되었던, 그래서 앞선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짱돌을 들고 거리에 나서기를 강요받았던 청년은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오늘의 대학을 거부하고, 명품빽 마냥 비싸면 좋은 줄로만 알았던 대학 등록금이 반 토막이 되는 것을 상식으로 만들고, 관성화 된 노동운동의 새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시청률에 급급해 하는 막장드라마 피디처럼 구는 어른들의 장단까지 맞춰주기에 청년들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고, 학자금 대출 이자 상환일은 참 부지런히도 찾아온다.

노동, 경쟁, 여성, 돈이라는 네 가지 절벽에 가로막힌 세대

이 책은 현직 기자인 저자가 취재를 하던 중 만난 청년들의 이야기다. 기자로서의 궁금증과 개인적 관심으로 다시 취재하여 기사에서는 차갑고 간결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미안함을 자신의 진짜 문체로 풀어냈다. 그 문체가 무척이나 섬세하고 따뜻하고, 때로는 날카로워 문학적으로도 훌륭하다. 단지 이 모든 이야기가 문학이었다면 좋았으련만.

책은 크게 네 파트로 나눠져 있다. 누군가가 사는 세상이 ‘음, 양, 오, 행’의 네 가지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청년들의 세계는 ‘노동, 경쟁, 여성, 돈’의 네 가지 원리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네 가지 주제에 해당하는 청년들의 ‘진짜’ 이야기가 지면을 채우고 있다. 그런데 첫 장부터 무척 낯익다. 우연인가 했는데 그 다음 장도 낯익다. 우리가 한 번쯤은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다르다. 신문에서 뉴스에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과는 많이 다르다.

고객님의 쾌적한 쇼핑을 위해 이마트 지하에서 냉방설비를 고치다 유독가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청년. 손님들의 비상식적인 요구에도 배꼽인사를 넙죽넙죽하는 대형마트는 자신의 매장에서 죽은 청년에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어린 여동생은 오빠가 남긴 학자금 대출금이 걱정이다. 용광로에서 야간작업을 하던 청년이 추락하여 뜨거운 불길에 타 죽어도 회사는 어떠한 안전장치 하나 마련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회사는 매년 흑자를 내지만 죽은 청년에게는 본전이라는 것도 없었다. 그 청년은 다음 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계획이었다. 이제는 너무 유명한 삼성의 반도체 소녀는 다시 들어도 제왕적 대기업에 대한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무력함이 동시에 차오른다. 한편 고작 ‘따뜻한 피자’ 때문에 다치고 죽어가는 어린 소년들은 오늘도 미끄러운 길을 질주하고 있고, 이번 주에는 또 눈 소식이 있다. 스물네 살의 어린 나이에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청년은 그 날이 마지막 근무였다고 한다.

이처럼 책의 처음은 가난한 청년들의 노동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듣지 못한 이야기가 가슴을 치게 한다. 이 책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은 무기력하거나 혹은 대부분 무척이나 성실하다.

“군 복무 중에도 월급 5만 원을 집으로 부쳤다. 짧은 휴가를 나와서도 인력사무소를 찾아 아르바이트를 했다. 여동생의 공부를 도와주고 빈곤노동에 지친 어머니를 위로했다. 휴가 동안 쓰라며 어머니가 건넨 3만 원을 여동생의 책상 위에 남겨두고 부대에 복귀하는 사람이었다.”(p17, 1-1. 이마트에서 잠들다)

“백혈병으로 죽어간 삼성의 어린 노동자들은 대부분 100~130만 원의 월급을 받았다. 가난해서 그 월급을 포기할 수 없었고, 순진해서 공장과 기숙사만 오가며 하라는 대로 일만 했으며, 너무 착해서 아픈데도 아프다 말하지 못한 채 참고 살다 죽었다.”(p52, 1-2. 소녀와 백혈병, 그리고 삼성)

“ㅎ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평일에는 학교를 다니고 주말이면 피자 배달원이 됐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다니는 일이 위험하다고 걱정하실까봐 부모님께는 피자집 매장에서 서빙을 한다고 말해두었다. 그런 아들이 “오늘까지만 일한다”며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혼수상태로 돌아왔다.”

듣고 있으면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마저 나오게 하는 환경에서 일하는 청년들에게 어른들이 주는 것이란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과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위험 그리고 ‘네가 못나 이런 일 밖에 못 한다’는 자괴감이다. 식상한 레퍼토리 다시 한 번 읊어 보자.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대학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눈높이가 높다 타박하고, 끝끝내 생사의 기로까지 밀려나 120만 원 받으며 일을 하게 되면 결국 남는 것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줄어들 줄 모르는 대출금뿐이다.

“힘들고 위험한 업무는 자연히 비정규직의 몫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은 라인이 돌아가듯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p36, 1-3. 비정한 세상, 비정규직)

“조합원 대부분이 30대 젊은이들입니다. 다들 불법 파견 노동자로서 6~7년씩 고용 불안과 차별에 시달리며 고통을 받아왔다는 공감대가 바닥에 깔려 있죠. 현대자동차에서 공정이 없어져 회사에서 쫓겨나는 비정규직이 1년에 300명입니다. 그런 시기가 되면 노동자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말을 안 하고 툭 하면 싸움이 벌어지죠.”(p40, 1-3. 비정한 세상, 비정규직) 

그렇다면 가난이 비껴간 청년들의 삶은 조금 나을까. 페이지를 넘겨보면 차라리 대놓고 탓할 가난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으로 느껴진다. 세상에 냉소하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결국에는 스스로를 옭아 메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홀로 우두커니 전쟁터에 서있는 청년들의 발밑에는 ‘경쟁’이라는 뿌리가 너무나도 깊다.

2006년 한국의 천재들만 모인다는 카이스트에 서남표 총장이 신자본주의의 검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100% 영어강의와 차등적 등록금제로 누군가는 꼭 죽어야 하는 그리고 죽여야 하는 새로운 전쟁터를 마련해 주었다. 학생들이 목을 매고, 옥상에서 뛰어 내려도 성장통이라 웃어넘기는 사람도 있다. 서울 소재 대학의 법대 4년 장학생으로 합격한 한 청년은 명문대가 아닌 이상 창피해서 대학을 다닐 수 없다며 미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 곳에서의 부적응이 우울증과 대인기피, 그리고 게임중독을 나았고 몇 개월을 방안에서 게임만 하다 결국 어느 날 새벽 부엌에서 칼을 들고 나가 제일 처음 만나는 사람을 찔렀다. 일명 ‘묻지마 살인’. 알고 보니 피해자는 새벽까지 일을 하고 귀가하던 같은 또래의 청년이었다. 대학에 꼭 진학하고 싶었던 소녀는 이제 자신이 공부를 잘 한 것을 후회한다. 더 이상 가난은 명문대 대학교 졸업장으로 극복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돈을 많이 벌어도 괴롭다. 보험 영업으로 월 천만 원 이상을 버는 청년은 미래를 준비 할수록 미래가 두렵다. 자꾸만 가슴이 답답하고, 밤에 쫓기는 꿈을 꾼다.
 
책 속의 이야기들에서 ‘경쟁’은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보다 훨씬 더 크고 깊게 청년들을 병들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끼리 싸우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 시킬 뿐이다. 청년들은 서로 연대하여 기득권을 가진 세대와 싸워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이 입 밖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주입된 경쟁이며, 심지어 타인의 상처를 나의 자양분 삼아 살게 만든다.

각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동료들은 서로에게도 예민하게 날을 세웠다. 말 한마디 곱게 오가는 일이 없었다. 전화 안내를 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어 ‘홀드’를 걸어놓고 옆자리 동료에게 물어보면 “공지사항 뜬 것도 못 봤어?”라며 타박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새 상담원들은 고객에게 받은 상처를 동료들에게 되갚아주고 있었다.”(p146, 3-2. 그놈 목소리, 콜센터는 우울하다)

삼성 내의 성희롱 문제를 고발하며 홀로 오랜 싸움을 참아왔던 이인의 씨는 골리앗 같은 회사도 미웠지만, 자신을 외면하는 동료들에게서 받은 상처로 몇 번이나 죽음을 생각했다고 한다.

갈수록 바빠졌지만 이 모든 일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내야 했다. 싸움이 커지자 “문제 제기를 하면 도와주겠다”던 동료들도 증언을 기피했다. 회사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그를 보며 “선배를 응원하지만 선배처럼 살 수는 없다”고 말하는 후배도 있었다.”(p138, 3-1. 당신도 여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삼성맨’이 된 그녀. 그때까지는 경쟁의 먹이사슬에서 위쪽에 차지했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모두에게 가시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모든 싸움을 끝낸 뒤 그녀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한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드는 의문 중 하나가 사회생활의 진리인 양 회자되는 텍스트인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었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흔히, ‘여자들 사이에 서열이 더 엄격하다’느니 ‘여자들끼리 견제와 질투가 더 심하다’느니 하는 것들이다. 외형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일들 대부분은 그저 개개인의 성격문제나 여성성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직장 내 여성은 대개 약자이기 마련이다. 이런 구조에서 발생하고 누적되는 억울함과 박탈감은(핵심적인 원인이나 근본적인 해결방향을 찾는 쪽으로 발현되기보다는) 외관상 비슷해서 상대적이니 처우 등 각종 차이가 쉽게 비교되는 동성의 여성들을 향해 발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이인의, 『삼성을 살다』, 사회평론, p50)

경쟁을 기본원리로 하는 사회 구조가 왜 약자들에게 불리하며, 그것을 알면서도 왜 스스로 그 불합리함을 해결할 수 없는지를 경험으로부터 알려준다.

구조적 모순을 내제한 사회, 이곳에서 청년이라는 하위 계급에 여성이라는 결함까지 갖추면 그 시궁창의 깊이는 배가 된다. 여성을 단순한 성적 대상으로 상품화하여 판매하는 일은 이제 너무나 진부해서 거론하기도 피곤하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억지로 주입한 약하고 순종적인 여성성을 쾌락의 대상을 넘어 착취의 대상으로 이용한다. 감정노동. 백화점, 대형마트, 콜센터 등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녀들의 시중으로 품위를 유지하고, 우리는 오늘도 그녀들의 전화를 받을 것이다.

책은 돈에 의해 일어난 반인륜적인 사건들로 마무리 된다. 만삭의 부인을 죽인 것으로 의심되는 의대생, 본사에 ‘상납’해야 하는 리모델링 공사비용 때문에 쥐식빵을 만들어 낸 제빵사, 세 살배기 아이를 죽인 철없는 부모. 모두 ‘신문에나 날’ 이야기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내 이웃의 이야기다. 세상은 점점 화려해 지고 가난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대도시의 반지하와 옥탑 방 구석구석에 알차게 들어 차 있다.

‘청년 담론’ 다시, 그러나 새롭게 이야기 하자

앞에서 언급 했듯이 저자 임지선은 30대의 현직 기자다. 특히 그는 식당 노동자로 위장 취업해 여성 빈곤 노동을 생생하게 그려낸 ‘노동OTL’, 30주 연속으로 인권문제를 써나간 ‘인권OTL’, 영구임대 아파트 121가구를 심도 있게 그려낸 ‘영구빈곤 보고서’ 등과 같은 르포르타주로 꽤나 많은 상을 받았다. 그 와중에 책도 몇 권 썼다. 나이에 비에 화려한 스펙이다. 그런 그가 써 낸 『현시창』이 그저 같은 세대에 대한 동질감이나 기자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가 말하는 ‘현시창’은 ‘현실은 시궁창’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라, 그리고 창을 들어라’이며 또한 ‘지금, 노래 부르며, 창의적으로’ 오늘의 현실을 이겨나가기 위한 시작인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누구도 해결 해 줄 수 없는 답 없는 세상사에 먹먹해 질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책 귀퉁이마다 작은 해답들이 숨어 있다.

로스쿨에 가서 다시 시작한 캠퍼스 생활은 행복하기 그지없다. ‘기숙사 침대에서 아침에 눈을 뜨는데 너무 행복했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아무도 나를 감시하지 않고 경계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것이더라.”(p140, 3-1. 당신도 여자라면)

“그래도 미연 씨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울시 한부모가족센터에서 피부 마사지와 발 마사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수업을 듣고 있다. “아이를 낳고 전 더 건강해 졌어요. 더 이상 남자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고 삶을 개척 해볼 거에요.” 미연 씨처럼 미혼모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은 한 해 6,500명을 넘어선다.“(p187, 3-6. 미혼모로 살아간다는 것)

솔직히 말해보자면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은 지금까지 있어 온 적도 없고, 앞으로도 불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행복 대신 ‘평화, 즐거움, 재미, 건강, 안락함, 도전’ 등 세상에 존재하는 그리고 각자가 원하는 가치는 다양하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일수도 있다.

청년 세대가 진짜 원하는 것은 더 이상 동정이나 다독임, 치유나 격려 같은 것들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존감과 자립이다. 획일화된 일방통행의 사회가 아닌 가치의 다양성,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미약하지만 부모에게 기생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환경과 때로는 무모한 도전이 실패했을 때의 죽지 않아도 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이 정도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청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 소개

70년대도 80년대도 아닌 듯한 1980년에 태어나 90년대도 2000년대도 아닌 듯한 99학번으로 어정쩡하게 살았다. 대학에서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국어국문학을 부전공했다. 2006년 <한겨레>에 입사해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을 기자로 살았다. <한겨레21>에서 30주 연속으로 인권 사각지대를 조명한 ‘인권OTL’ 시리즈, 식당 노동자로 위장 취업해 여성 빈곤노동의 현실을 알린 ‘노동OTL’ 시리즈, 국내 최초로 영구임대아파트 121가구를 심층 조사한 ‘영구빈곤 보고서’ 등을 취재하며 인권 보도에 눈을 떴다. 이 같은 기획으로 국제앰네스티언론상(2008), 한국기자상(2009), 민주언론상(2010)을 수상했다. 또한 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 산재 의혹과 관련한 보도로 국제앰네스티언론상(2010)을 다시 한 번 수상했다. <한겨레> 사회부에서는 신문기사의 틀을 벗어나 ‘사람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사를 쓰고자 노력했다. ‘낮은 목소리’ 시리즈를 통해 언론인권상(2012)을 수상했다. 《4천원 인생》《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를 공저했다.

* 출처: 알라딘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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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01 / 08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새사연 2013년 회원 캠페인- “새사연과 함께하는 희망 북클럽”을 시작하면서


우려했던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의 집권 연장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사회가 진보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힘들어 하는 다수 국민이 존재하는 한 변화에 대한 모색은 멈출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진보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진보가 노력을 기울여온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일자리를 의제로 하여 치러진 18대 대선임에도 진보가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수가 손쉽게 의제를 차용해도 아무런 차별화가 되지 않을 만큼 진보 정책의 폭과 깊이가 짧기 때문이라 생각 됩니다. 또한 진정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삶과 생각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살아있는 진보 정책’을 모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평범한 생활인들과 손잡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추구해온 새사연은 현 시점에 꼭 필요한 고민이 담긴 책들을 함께 읽는 것으로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것을 회원들과 시민들에게 제안합니다. 그 첫 출발점으로 새사연 연구원들이 각자 회원님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 한권씩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진보의 깊이를 위한 물음을 던지겠습니다.  

아울러 이후에 회원님들이 추천하는 책, 새사연과 함께하는 독서 토론, 저자와의 대화 등을 다양하게 시도할 생각입니다. 회원님들의 관심과 참여 기대하겠습니다.

 

<새사연 희망 북클럽①>『날아라. 노동』
-‘재산권’을 규제하고 ‘노동권’을 되살려야 대안사회가 열린다-

날아라. 노동(은수미, 2012, 부키)

미래지향적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이 새로운 길을 열어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바로 주변이 중심이 되어버린 노동시장의 현실위에서, ‘노동권의 회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날아라. 노동은 이를 깨닫게 해주고 확인시켜주는 최고의 책이 아닐까. 새로운 노동운동의 교과서로 삼아도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에 새해, 새 회원 캠페인의 첫 번째 책으로 자신 있게 추천한다.


18대 대통령 선거 공약, ‘노동’ 아닌 ‘일자리’였지만

“새로운 시대로 가는 다섯 개의 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것은 일자리 혁명의 문입니다. 복지국가의 문입니다. 경제민주화의 문입니다. 새로운 정치의 문입니다. 그리고 평화와 공존의 문입니다.” 야당 단일후보였던 문재인 후보가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문에서 밝힌 내용이다. 가장 중요한 공약이 바로 일자리 혁명이었다. 그리고 일자리 혁명의 방안으로 ‘만.나.바(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나누고, 기존의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꾼다.)’를 제안했다.

“저는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그리고 ‘한국형 복지의 확립’을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삼겠습니다.” 박근혜 당선자가 2012년 7월 새누리당 경선에서 승리한 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말한 대목이다. 경제 민주화, 복지와 함께 일자리 문제가 역시 공약의 최상단에 자리 잡고 있다. 박근혜 당선자의 일자리 공약은 ‘늘.지.오(일자리를 늘리고, 지키고,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올린다.)’이다. 틀 자체에서는 야당의 문재인 후보와 다를 것이 없다.

물론 두 대선 후보들의 공약은 ‘노동’이 아니라 ‘고용(일자리)’을 기본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개념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단순히 양적으로 일자리 몇 개를 늘리겠다는 숫자 논쟁(예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은 5년 동안 일자리 300만개 늘리겠다는 것이 공약이었다. 실제로는 절반도 늘지 않았지만.)을 했던 과거와는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 일자리의 ‘질’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과 격차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일자리 질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지 해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차별과 격차의 해소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해고요건 강화 등을 포함하여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한 최소한의 일련의 규제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단초이지만 ‘노동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 최고의 책 한권, ‘노동권’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금 일자리, 고용불안, 비정규직, 고용 차별, 노동시장 유연화, 각종 불법적 고용행태, 정리해고와 직장폐쇄 등 정말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는 고용과 노동문제의 중심부에는 다름 아닌 ‘노동권’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 논리에 따라 노동에 대한 자본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압박이 진행되었다. 그에 따라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무너져갔으며 노동자들의 협상력은 극도로 약화되었다. 그 결과,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으로 협상력이 상실된 노동자들에게 자본이 대대적으로 강요한 정리해고와 임금압박, 수많은 유형의 비정규직, 아웃소싱과 파견, 근로 빈곤, 저임금 노동은 노동시장을 교란시켰고 1700만 노동자 내부를 차별과 격차로 가득 차게 했다. 이 모든 문제의 뿌리에는 ‘노동권’의 와해가 있다.

‘노동권이 비용 앞에서 맥을 못 추는’ 현실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노동권’이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주장한 책이 2012년에 출간되었다. 19대 국회의원이 된 은수미 박사의 『날아라. 노동』이 바로 그 책이다. “노동권은 헌법상의 자유권이고 사회권이라는 점에서 생존권을 넘어선다. 절대로 침해해서는 안되는 게 자유권이고, 정부가 존중하고 보호해줘야 하는 것이 사회권이며, 노동권은 그 두 영역에 걸쳐 있는 권리다.”(65쪽)

신자유주의는 ‘재산권’ 특히 ‘주주권’을 마치 ‘자연권’의 범주인 것처럼 끝없이 신성 불가침한 것으로 확장해왔다. 반면에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노동권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려왔다. 이제는 헌법 23조에 따라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다시 자기 자리를 찾게 해야 한다. 반면 헌법 32조~35조에 명시된 바에 따라 노동권을 복원하고 확장시켜야 한다. 이런 맥락을 가장 정확히 짚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식하고 노동권에 민감해져야 한다. 노동권이 시민권의 일부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함께 지켜야”한다고 호소한다.

 

주변이 중심을 압도하는 현실, 지금 우리의 일터다.

일자리 문제, 비정규직 문제, 차별 문제, 저임금과 근로 빈곤 문제의 해결의 근저를 이루는 것이 바로 ‘노동권’ 회복임을 가장 정확히 짚어낸 저자의 통찰력은 정확한 현실 이해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1997년을 전후하여 중심 - 주변 노동시장으로의 분리는 더욱 뚜렷해져 전체 노동자의 20퍼센트 정도만 중심부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나머지 80퍼센트는 주변부에서 일한다.”(184 쪽)고 진단한다. 그리고 저자는 20퍼센트 속에서가 아니라 80퍼센트의 현실에 더 많은 주목을 하면서, 주변이 중심을 압도하게 된 이유를 ‘노동권 붕괴’로부터 찾는 것이다. 이미 비정규직이 절반이 된 노동시장 현실이나, 이를 ‘이중 노동시장’으로 표현했던 사례들이 있지만, 오랜 기간 실제 주변노동에 대한 면담과 사례조사를 통해 주변이 중심이 된 현실을 설명해준 글들은 없다.

이러한 현실인식에 기초하여 저자는 ‘가장 최신의 현실 모습으로 노동의 개념’을 부활시켜내고 있다. 사실 지금 진보 안에서는 전통적인 노동해방이나 노동계급 지도성 등의 개념을 다소 바꿔서 노동존중, 노동중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이것이 진보의 기준점인 것처럼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노동존중과 노동중심의 실제 내용이 무엇인지는 설득력 있게 말해주지 않는다. 추상적인 당위이거나 아니면 현실 형태로서 ‘민주노총 주도’와 등치시키는 정도다.

그러나 저자는 전체 취업자의 70%가 생활하는 현장, 다시 그 중 80%가 생활하는 현장에서 ‘노동권의 와해’를 목도하고, 그곳에서 인권과 시민권, 사회권을 되살리는 것, 바로 ‘노동권의 회복’이 사회개혁의 최고 과제임을 강조한다. 그것이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길이며, 경제 민주화의 시작점이며, 사회통합의 기반임을 확인해준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직접 고용이든 간접고용이든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부여하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 또한 원청이든 하청이든, 작은 기업이든 큰 기업이든 동일 지역이나 업종에 종사할 경우 하나의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186 쪽)

미래지향적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이 새로운 길을 열어가자면 바로 ‘주변이 중심이 된 노동시장 현실’위에서 ‘노동권 회복’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를 깨닫게 해주고, 확인해주는 최고의 책이 바로 『날아라. 노동』이다. 새로운 노동운동의 교과서로 삼아도 부족하지 않을 듯싶어 추천한다.

저자 은수미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대학에서 제적된 1984년부터 현재까지 '노동'을 화두처럼 붙들고 있다. 6년간 옥고를 치른 뒤 1998년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단독 저서나 공저, 수많은 논문을 통해 노동문제와 노동 정책을 제기해 왔으며 2012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에도 불합리한 노동 현안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면서 그녀의 화두인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28년간 노동문제에 천착해 온 그녀는 특히 지난 10년 가까이 현장 인터뷰를 하면서 수많은 노동자를 만났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데 왜 열심히 일해도 봄을 맞을 수 없을까, 회사에서 성실한 근무자라는 평가를 받아도 1년이나 2년 후에 해고되어야 한다면 도대체 그 원인은 무엇이고 대안은 없을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과 고민을 한번쯤 매듭짓고 싶었으며 노동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다운 존엄성과 권리를 찾는 실마리로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 출처: 알라딘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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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10 / 23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우리는 언제까지 경제성장을 위해 달려가야 하는가? 경제성장이 더 나은 삶의 질을 보장해주는가?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교수는 이 같은 의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최근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져들면서 이런 의문이 더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우리는 대체로 1인당 소득이 높아지면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구결과에 의하면 아주 기본적인 요구들이 해결되는 수준을 넘어서면 소득과 사람들의 행복은 연관성이 없다고 한다. 또한 사람들의 행복은 소득의 절대값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의 상대적 크기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스키델스키 교수는 이러한 연구결과를 설명하면서 성장이 행복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아니며, 지금과 같은 양극화의 상황에서는 평등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평등은 사회안전망과 건강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기도 하고, 더 많은 여가를 즐기고, 더 많은 시간을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내고, 동료 간에 더 많은 존경을 받으며, 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을 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덧붙인다.

그래, 이제 좀 다르게 살아야 한다. 국민총소득이 아니라 국민총행복지수가 중요한 시대가 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데에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다. 2012년 대선에서 대한민국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논의하고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행복은 평등이다
(Happiness Is Equality)

2012년 10월 19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부탄의 국왕은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그는 정부는 국민들의 국민총소득(GNP)이 아니라 국민총행복지수(GNH, Gross National Happiness)를 최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행복을 강조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은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유행인걸가?

왜 정부가 경제성장을 덜 강조해야 하는지는 경제성장이 어려울수록 잘 알 수 있다. 올해 유로존은 전혀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영국 경제는 긴축 상태에 들어갔으며, 그리스 경제는 몇년 동안 위축되어 있다. 심지어 중국도 침체에 들어설 전망이다. 성장을 포기하고 우리가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살면 안되는 걸까?

경제성장이 회복된다면 이런 분위기는 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강조하는 태도에 대한 진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선진국에서 성장은 덜 중요한 미래 가치가 되고 있다.

성장을 강조하던 태도가 변하게 된 첫번째 요인은 지속가능성에 관한 관심이다. 과연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이전과 같은 속도로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1970년대 사람들은 성장을 계속 하기에는 자연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식량의 고갈이나 재생불가능한 천연 자원이 걱정거리였다. 최근에는 탄소 배출이 주요 문제로 떠올랐다. 2006년 스턴보고서(Stern Review)가 강조했듯이 미래에 뜨거워진 지구에서 튀겨지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는 오늘날의 성장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만 한다.

신기하게도 이 토론에서 한가지 금기시되는 내용은 인구에 관한 것이다. 인구수가 적을수록 뜨거워지는 지구 위에서 우리가 직면하게 될 위험은 줄어든다. 하지만 선진국 정부는 자연스러운 인구의 감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임금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흡수하고 있다. 그래서 선진국은 더 빨리 성장한다.

최근 들어 성장이 가져오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드시 더 많은 성장이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계속 성장해야 하는가?

이 질문의 시작은 몇십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974년 경제학자 로버트 이스터린(Robert Easterlin)은  "경제 성장은 인간의 삶을 개선시키는가? 몇가지 실증 증거들" 이라는 유명한 논문을 발표한다. 많은 국가에서 1인당 소득과 스스로 느끼는 행복의 정도가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던 상황에서 그는 놀라운 결론을 이끌어낸다.

기본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정도의 최소 소득이 충족된 상황이라면, 행복과 1인당 GNP는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GNP는 삶의 만족도를 측정하기에 매우 부족한 지표라는 뜻이다.이후 대체 지표를 고안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 1972년 두 명의 경제학자 윌리암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와 제임스 토빈(James Tobin)이 순경제적후생(Net Economic Welfare)이라는 지표를 도입한다. GNP에서 환경오염과 같이 나쁜 생산물을 제외시키고, 여가와 같이 시장 밖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추가한 것이다. 더 많은 여가를 즐기고 더 적은 노동을 하는 사회가 더 많이 일하고 따라서 GNP도 높지만 여가를 덜 즐기는 나라만큼 후생이 높다는 것을 보였다.

최근 들어서는 삶의 질을 측정하는 지수의 범위가 더 넓어지고 있다. 문제는 삶의 양은 측정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삶의 질을 측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양과 질을 어떻게 종합하여 삶의 만족도를 측정하는 지표를 만들어낼 것인가의 문제는 경제학보다는 윤리학의 문제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양을 측정하는 후생 지표에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또 다른 발견이 있다. 한 국가 안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보다 덜 행복하다는 것이다. 즉,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확보된 경우 사람들의 행복 수준은 그들의 절대 소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집단과 비교한 상대적 소득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다른사람과 나를 비교하면서 우월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열등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결국 후생은 성장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분배되는가에 달려 있다.

삶의 만족도는 평균 소득의 성장이 아니라 중위 소득의 증가, 다시말해 일반인들의 소득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10명의 사람이 있는데 이 중 1명은 관리자로 1년에 15만 달러를 번다. 다른 9명은 노동자로 1년에 1만 달러를 번다. 이들의 평균 소득은 2만 5천 달러이다. 하지만 90%는 1만 달러를 벌 뿐이다. 이런 식의 소득 배분에서는 성장이 되어도  일반인의 후생이 높아질 리가 없다.

특수한 사례를 든 것이 아니다. 지난 30년간 이어진 부자들의 사회에서 평균 소득은 꾸준히 늘어났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소득은 정체되거나 심지어 하락했다. 즉, 미국이나 영국에 거주하는 매우 소수의 사람들이 성장의 과실을 대부분 가져갔다. 이런 경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이 아니라 평등이다.

더 많은 평등은 사회안전망과 건강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기도 하고, 더 많은 여가를 즐기고, 더 많은 시간을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내고, 동료 간에 더 많은 존경을 받으며, 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을 때 이루어진다.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끊임없이 자극당하면서 더 많은 상품을 구매하도록 강요당할 것이다. 우리는 터보엔진을 단 아빠와 호랑이 같은 엄마가 아이들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라고 끊임없이 외치는 빡빡한 사회에 살고 있다.

오히려 19세기에 살았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더 훌륭한 시민의 소양을 보여준다.

"나는 다른 이를 짓밟고 밀어제끼며, 다른 이와 충돌하고 싸우는 방식을 통해 유지되는 삶을 바라지 않는다. 사회적 삶으로서 가장 바람직한 인간...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좋은 상태는 아무도 가난하지 않고 아무도 더 부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앞으로 나가기를 강요당하며 뒤처질까봐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상태이다."

부탄의 왕을 비롯하여 수량화할 수 있는 부의 한계를 깨달은 많은 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다.  

▶ 원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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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25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2)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회적 자본은 “합의된 상호강제 구조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라고 했다. 앞서 상호강제를 살펴보았다면 이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생각해보자.

 

신뢰의 네트워크가 경제성장을 가져온다

네트워크는 개인 간 관계를 보호하고 촉진하기 위한 소통 채널 구조이다. 일종의 통로이다. 이 통로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공통의 이해관계를 나누면서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공동체적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네트워크는 가족처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부터 자발적 조직까지 광범위하다. 우리는 어떤 네트워크에 속한 채로 태어나기도 하고, 새로운 네트워크에 들어가기도 한다. 네트워크의 연결은 개인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하고 집단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에는 사람과 시간을 비롯하여 다양한 비용이 들어간다. 기본적으로 네트워크가 확장되어 통로가 늘어날수록 비용은 늘어나지만 이익은 줄어든다. 쉽게 말하자면 친구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친구의 친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더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네트워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양의 외부성을 창출하여 유지비용을 상쇄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신뢰가 형성되고, 신뢰가 다시 신뢰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의 이런 장점을 경제모델로 설명하면 이렇다. 기본적으로 생산함수는 노동(L)과 물적자본(K)을 투자하여 생산물(Y)을 만들어내는 함수인데, 여기서는 노동 대신에 인적자본(H)을 대입한다. 그리고 생산함수에 영향을 주는 총요소생산성(A)이 있다. 이는 지식이나 기술, 제도의 발전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를 식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

Y=AF(K,H) (A>0)

인적자본과 물적자본의 양이 늘어날수록, 그리고 총요소생산성이 늘어날수록 생산물의 양은 늘어난다. 이 때 네트워크를 통한 협동은 인적자본이나 총요소생산성의 증가를 가져온다. 네트워크의 외부성이 확대되는 범위가 좁아서 협동에 참가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칠 경우에는 인적자본이 증가할 것이다. 네트워크의 외부성이 경제전체로 확대된다면 총요소생산성이 증가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지 결국 생산물의 증가로 이어진다. 늘어난 생산물을 다시 물적자본이나 인적자본에 투자하면 더 빠른 성장이 일어난다.

이에 대한 실증연구로는 퍼트넘이 이탈리아 20개 행정구역을 조사한 연구가 있다. 이 연구에서 퍼트넘은 1900년대 초 시민참여지표와 1970년대 초 고용, 소득 간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시민사회라는 사회적 자본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을 증명한 것이다. 또한 세계은행의 나라얀(Narayan)과 프리체트(Pritchett)는 탄자니아의 50개 마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마을의 사회조직에 많이 참여하는 곳일수록 가계의 평균 1인당 소득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네트워크의 문제점 : 배제성과 불평등

하지만 네트워크로 구성된 사회적 자본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네트워크에서의 활동은 구성원 사이에 유대, 애정을 형성하고 이것이 발전하여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을 이루게 된다. 때로는 이런 정체성이 네트워크를 협소하고, 배타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특정 네트워크에서 편안함과 이익을 얻을수록 배타적이기 쉽다. 이를 잠김효과(Lock-in effect)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소속될 수밖에 없는 가족, 민족, 인종 등의 네트워크나 종교적 네트워크의 경우 특히 잠김효과가 나타난다. 이런 특수한 네트워크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협동의 네트워크에는 언제나 잠김효과의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협동하는 네트워크라 해도 그 내부에 불평등과 착취가 존재할 수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매킨(Mckean)은 지역 엘리트들이 공동체가 소유한 자원의 이익을 부적절하게 획득하고 있는 사례를 밝혔다. 이 외에도 많은 실증연구들에서 협동을 통해 얻은 이익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의 불평등이 나타났다. 물론 죄수의 딜레마 상태일 때에 비하면 협동을 통해서 이익을 얻은 게 사실이지만, 공동체적 관계에서도 착취적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네트워크와 시장

공동체적 제도인 네트워크와 달리 시장은 익명의 교환이다. 모든 사회는 비인격적 시장과 공동체적 제도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둘 사이의 관계는 보완적이어서 함께 있을 때 더 좋은 성과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적대적이어서 서로를 방해하기도 한다.

네트워크와 시장이 보완적인 경우를 살펴보자. 네트워크를 통한 상품의 생산과 교환은 시장을 활성화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경제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주목해왔던 지점은 기업의 존재 이유가 바로 내부의 네트워크를 통한 거래비용 감소라는 것이다. 기업 내의 교환은 기업 간의 관계와는 달리 공동체적 네트워크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기업 간의 관계에서도 공동체적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파월(Powell)과 브랜틀리(Brantley)는 바이오산업에서 경쟁기업의 연구자들이 특정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비밀로 유지하는 정보도 있었다. 공개와 비밀 사이에 미묘한 균형이 존재했다. 만약 정보를 공유하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과학자는 배제당했다. 경영자들 역시 이런 정보 공유의 네트워크를 알고 있었으며, 오히려 이를 장려했다. 정보의 공유를 통해 기술과 산업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네트워크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반면 시장과 네트워크가 대체재라면 둘은 적대적이다. 시장이 공동체적 제도를 대체하는 경우 반드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반대로 네트워크가 시장의 원활한 작용이나 존재를 방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혈연적 유대가 매우 강력한 전통사회를 생각해보자. 여기에는 개인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긍정적 기능이 있지만, 개인의 투자동기를 저하시킨다는 부정적 기능도 있다.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사회적 자본이란 구성원들이 신뢰하고 협동할 수 있도록 돕는 규범이며, 이 규범을 지키기로 구성원들끼리 상호강제하는 네트워크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할 일은 현재까지의 모든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흔히 승리의 기쁨을 나눌 때 동료애와 신뢰는 촉진되기 쉽다. 선거에서 승리한다거나 정부가 효과적으로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뢰 형성 방식이다. 또한 퍼트넘이 강조한대로 자발적 시민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은 일반적 신뢰와 협동을 제고한다. 특히 그 자체가 오랜 신뢰와 협동의 결정체인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에서 활동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일반적 신뢰를 높이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지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도자는 이타적 행위를 선택함으로써 신뢰의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한 사회의 역사적 집단 기억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신뢰와 협동을 이루어냈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경험이 없다. 대신 폭발적 경험의 기억은 생생하다. 87년 민주항쟁, 97년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2002년 월드컵과 그해 대선에서의 노풍, 이후 수많은 촛불집회 등을 겪었다.

이런 경험을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제도가 모든 것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하다. 사람들 사이의 자발적 신뢰와 협동까지 제도에 의존하도록 되어서는 안 되지만, 무임승차를 막고 신뢰와 협동의 정체성을 장려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더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 네트워크가 배제성과 불평등의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단 내부의 신뢰와 협동을 촉진하려는 시도가 내부의 이견을 억압하고, 외부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유발하는 식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서 공동의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리고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사회가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하거나 진전된 남북관계를 이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3)편으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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