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9.07.16 09:27
이제는 '금융구조의 안정성'이다... 재무건전성 한계 드러낸 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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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시안정성 금융감독의 중요성 증가

2007년 7월에 서브프라임 사태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니, 이제 거의 만 2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수 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했음에도, 미국에서는 2차 경기부양책 논의가 부상할 만큼 공황의 충격은 아직도 금융 및 실물경제에 남아 있다.
지난 달 17일 미 재무부는 1930년대 뉴딜 금융체제 이후 80여 년 만에 대대적인 금융 감독구조 개편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금융규제 개혁안을 발표하였다. 88쪽에 달하는 장대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한국의 금융시장을 어떻게 규제하고 감독해야 할 지 논의해야 한다.
비록 자본시장통합법, 금융지주회사법 등을 필두로 금융규제 완화가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 기조지만, 금융시장 규제와 감독이라는 국제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예를 들어 금융감독원이 역점에 두고 있는 기존 Basel 협약에 기초한 미시건전성 감독의 경기순응성(Pro-cyclical)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구축하기 위한 거시건전성 감독 강화가 학계나 국제금융기관에서 국제적 흐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금융시장의 감독과 규제를 재편하기 위해서는 금융공황이 발생한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은 미국처럼 서브프라임 시장이 발달하지 않았다거나, 한국의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우수하기 때문에, 금융시스템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논리 등은 모두 인식상의 오류에서 비롯된다. 특히 서브프라임 시장의 버블 붕괴는 전 세계 금융시장의 동시적 붕괴를 초래한 방아쇠(trigger)를 당긴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수천억 달러에 불과(?)한 서브프라임 시장이 주식, 채권, 외환, 상품, 부동산 등 거의 모든 금융시장을 초토화시켰다. 이는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또한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이는 외환과 채권시장으로 전염되었으며, 금융기관의 부의 레버리지 과정을 통해 실물경제의 침체로 전이되었다.
개별 금융기관의 재무건전성이 전체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가져온다는 기존의 패러다임에 기초한 규제와 감독체계의 한계가 분명해졌다. 어떻게 이런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는지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2. 금융공황을 초래한 금융산업의 구조적 변화

현 위기의 근원이 되는 주택대출 붐과 부동산 광풍의 배경에는 은행산업에서 나타난 몇 가지 새로운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우선 은행의 재무제표에 대출을 남겨두고 원리금의 상환을 관리하던 기존 방식(Lend and Hold; L&H)이 대출한 다음 다른 투자자에게 매각하는 모델(Originate to Distribute; OTD)로 전환된 점을 꼽을 수 있다. 다음으로, 은행은 기존의 예금에 의존하던 관행에서 탈피하여 점점 더 만기가 짧은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게 되었다.
실물경제에서 기업지배구조가 이윤 유보 후 재투자 모델에서 주주가치 극대화 모델로 전환한 것처럼, 단기 수익 극대화 모델로 변질된 것이다. 물론 인과관계를 따지면 은행 및 금융 산업의 변화가 실물경제의 기업지배구조를 강제하였다.

■ 만기불일치 위험 증가
자본시장의 발달로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은 유동성이 필요할 경우에 대비하여, 언제든지 자금을 인출할 수 있는 만기가 짧은 금융상품을 선호한다. 펀드 또한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에 대하여 자신감을 보여주기 위해 일정기간만 지나면 환매할 수 있는 개방형 펀드가 일반적이다. 이에 비해, 대부분의 실물 투자나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이 완전히 들어오기 위해서는 수년 혹은 십 수 년이 필요하다.
이러한 만기 불일치 위험은 그림자금융 체제에서 더욱 확대되었다. 그림자금융체제의 대표 격인 구조화투자회사(Structured Investment Vehicle; SIV)를 예로 들면, MMF에서 평균 90일의 만기를 지닌 자산담보상업어음(ABCP)이나 1년 만기의 중기채권(Medium-term note)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였다. ABCP는 MBS나 다른 대출채권 등을 담보로 발행한 단기어음으로, 2005년 말부터 단기 CP시장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만약 ABCP가 부도날 경우, 투자자들은 담보가 되는 MBS나 대출채권을 압류하거나 매각할 권리를 지닌다.
SIV는 단기로 자금을 조달하고 장기자산에 투자하므로, 유동성 위험(funding liquidity risk)에 빠질 수 있다. 즉 일시에 ABCP 시장이 경색되어 자금을 조달할 수 없고, 단기부채를 차환하지 못하게 될 때 발생한다. 물론 유동성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스폰서 은행(SIV의 모회사)이 유동성 백스톱(liquidity)이라 하여 마이너스통장과 같은 기능을 하는 신용공여라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따라서 은행은 자신의 재무제표에 있지 않지만, 자회사가 보유한 단기대출과 장기자산으로 인해 유동성 위험에 간접적으로 노출되게 된다.
투자은행의 경우에도 이러한 만기불일치 위험이 최근 증가했는데, 이는 환매조건부채권(repo) 거래가 급증한 데서 비롯되었다. 전형적인 RP 계약에서는, 미래의 특정시점에 담보자산을 매입(환매)할 조건으로, 오늘 담보자산을 매각함으로써 자금을 차입한다. 특히 통상 3개월이 만기일인 장기 RP는 투자은행의 재무제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반면, 하루짜리 초단기 RP는 2000~7년 사이 거의 두 배로 증가하였다.
요약하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은 유동성 백스톱과 단기 RP의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만기불일치 위험이 증가하였고, 2007년 여름부터 금융시스템의 연쇄적인 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 증권화: 신용 강화, 리스크 회피(?)
은행은 이러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CDO를 비롯한 구조화된(투자자의 입맛에 맞게 설계된) 금융상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선 주택담보대출, 회사채, 신용카드채권, 자동차채권 같은 여러 채권들을 한 데 묶는다. 이를 Pooling이라 하는데, 여러 이질적인 채권들을 묶어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위험을 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투자자에게 이전하고 분산시킬 수 있다는 ‘다각화’ 이론에 기초하였다.
다음으로 이를 투자자의 다양한 입맛에 맞게 분해한 다음 금융상품으로 판매한다. 이 과정에서 주택담보대출에 따른 원리금은 법적으로 특수목적회사(SPV)에 양도되고, 원리금은 다시 다양한 트랑세(tranche)를 구매한 투자자에게 배분되며, 트랑세의 판매는 SPV의 모회사인 투자은행(underwriter)이 담당하였다. 통상 CDO 트랑세 하나의 가격은 7,000만 달러에 달하고 8~10개의 트랑세로 구성된다고 했을 때 CDO 하나의 가격은 5억 달러를 초과한다. 주택담보대출만으로 CDO를 구성한다면 20만 달러짜리 주택 2,500채 이상이 필요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골드만삭스는 모기지 업체 뉴센추리(New Century)가 발행한 3,949개(8.8억 달러)의 서브프라임 대출을 구입하여 GSAMP Trust 2006-NC2를, Fremont, Long Beach 등이 발행한 8,274개(4.8억 달러)의 2차 모기지를 구입하여 GSAMP Trust 2006-S3를 각각 발행하였다.
가장 안전한 트랑세(super senior tranche)는 투자자에게 낮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대신, 포트폴리오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가장 먼저 받는다. 이에 반해, 가장 낮은(junior) 트랑세(equity tranche 또는 toxic waste)는 다른 모든 트랑세의 원리금이 지불된 후에나 수익을 받게 된다. 이 양 극단의 가운데에 중간급(mezzanine) 트랑세가 있는데, 원리금의 수취와 위험 감수에서 선-후순위채 구조를 띠고 있다.
트랑세의 구분은 주로 신용등급과 관련되는데, 상위 트랑세는 대부분 AAA 등급을 받고, 여러 기관투자자에게 판매되었다. 가장 낮은 트랑세는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판매자인 투자은행이 일부를 보유하고 상당수는 헤지펀드에게 팔렸다. 특히 연기금을 비롯한 일부 공적 성격의 기관투자자는 우량 채권만 투자하도록 제한되어 있는데, BBB 등급이 AAA 트랑세로 각색되면 이 채권을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장은 날로 성장해갔다. 물론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또한 부동산 파생상품을 적극적으로 구입하였다.
또한 트랑세를 구입한 투자자들은 채권이 부도날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일정한 수수료를 정기적으로 지불하고 신용부도스왑(CDS)을 구입하였다. 2007년 기준, CDS의 명목가치는 45~62조로 추정되었다. 또한 미국에서는 CDS의 포트폴리오를 기초로 지수(CDX)를 개발하여 거래했으며, 유럽에서는 iTrxx로 거래되었다. 특정 기업이 파산할 것에 베팅하여, 채권이 부도나고 CDS 프리미엄이 급등하면 대박을 얻을 수도 있다.
CDS와 연계되어 설계된 CDO(합성 CDO)를 구입한 투자자들은 설마 CDS 판매자(보증업체)가 파산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안전하면서도 높은 수익률, 이건 모든 투자자가 꿈꾸는 황금알 거위였다.
구조화 상품이 첨단 금융기업으로 요란하게 선전되었지만, 사실 신용등급과 규제의 차익을 매개로 유행했을 뿐이다. 바젤Ⅰ(BaselⅠ) 협약에 따르면, 상업은행은 위험가중자산에 대해 8퍼센트의 자기자본을 보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신용공여를 통한 대출에 대해서는 그 비율이 매우 낮고, 은행의 브랜드나 평판을 이유로 자회사에 제공하는 신용공여에 대해서는 규정이 아예 없다. 따라서 은행 입장에서 자산(대출채권)을 부외거래단위로 이전하면, BIS 규제에 필요한 자기자본의 규모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다각화 이론과 달리 신용위험(채권이 부도날 위험)은 은행시스템에서 결코 분산되지도 이전되지도 않았다.
물론 바젤Ⅱ에서는 부외거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몇몇 조치를 내놓았고 유럽에서는 2007년부터 시행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제대로 시행되지도 않았고, 신용등급 위주로 자기자본을 규제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은행은 부외거래단위를 통해 대출을 이전하고 자회사를 보증함으로써 높은 신용등급을 받아 규제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바젤Ⅱ 규제에서는 은행 자체의 신용등급과 보유한 자산의 신용등급에 따라 요구되는 자기자본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즉 A등급 자산을 증권화를 통해 AAA등급으로 둔갑시켜 다시 구매하거나, 높은 신용등급으로 인해 낮은 금리 등의 비용 측면의 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신용평가기관이 구조화 상품에 매우 낙관적인 등급을 매겼는데, 과거에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이 매우 낮았던 것도 한 몫을 담당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부 지역의 집값 하락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전국적인 부동산 폭락은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채권(주택) 간 부도가 발생할 상관관계가 낮다면, 다각화 이론에 기초하여 높은 신용등급을 매기게 되었다. 물론 채권을 발행하는 투자은행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이해상충 문제는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Fitch에 따르면 회사채의 경우 AAA등급 채권의 연간 부도율이 0.02퍼센트라고 하는데, 수많은 구조화 상품이 폭락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게다가 치열한 ‘수익률 게임’에 빠져든 펀드매니저들은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면서도 부도율이 낮은 구조화 상품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구조화 상품이 대유행하면서 대출 기준, 심사, 그리고 감독은 체계적으로 완화될 수밖에 없었다. 즉 증권화, 구조화 상품 성장이라는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서브프라임 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부동산 광풍이 초래되었다. 즉 서브프라임 대출 증가나 부실은 금융공황을 발생시킨 계기로 작용했을 뿐, 그 근원에는 금융산업의 구조적 변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부실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2007년 7월, 시티그룹 프린스(Prince) 전 회장은 일본에서 파이낸셜 타임즈와 인터뷰 도중 다음과 같은 유명한 발언을 하였다.
“음악이 멈출 때, 유동성의 관점에서 보면, 사업은 뒤얽혀 질 수 있다. 그러나 음악이 연주되는 한, 일어나 춤을 춰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춤을 추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낭만적인 발언인가! 당시 서브프라임 부실이 사모펀드(Private Equity) 거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에 대한 답변이었다. 파티가 계속되고 음악이 울려 퍼지는 동안 시티그룹은 신나게 춤을 추었다. 그러나 너무 신나게 추던 나머지 금융위기 과정에서 정신을 잃고 거의 파산 문턱에까지 이르렀다. 그 생생한 전개 과정을 다시 짚어보자.

3. 2007~8년 금융공황의 기록

■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방아쇠(trigger)
2007년 2월 서브프라임 부실 문제가 처음으로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 증가였는데, 결국 서브프라임 부실은 금융공황의 방아쇠를 당겼다. 아래 [그림. 1]은 CDS 가격에 기초한 ABX 지수의 추세를 나타낸 것이다. 2007년 초부터 ABX 지수 중에서 BBB급 이하가 폭락했는데, 채권 부도에 대비한 CDS의 프리미엄이 증가했음을 나타낸다.
또한 CDS 프리미엄이 증가했다는 것은 기초자산이 되는 서브프라임 MBS 가격의 하락을 동시에 의미한다.
이어서 2007년 3월, 베어스턴스 산하 헤지펀드(High-Grade Structured Credit Fund; 2004년 설정)가 손실이 났다고 발표한다. 4월에는 또 다른 헤지펀드(High-Grade Structured Credit Enhanced Leveraged Fund)에서도 10퍼센트 손실이 났다고 발표한다. 5월에는 23퍼센트로 손실이 늘었다고 발표하면서 시장은 사태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5월, UBS의 헤지펀드(Dillon Read Capital Management)가 서브프라임 관련 1.25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발표하고 청산해 버린다. 이후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미국의 21개 서브프라임 관련 채권에 대해, ‘등급 하향’을 검토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Fitch와 S&P 또한 신용등급 하향을 발표하였다.
6월 중순, 베어스턴스 산하 헤지펀드는 손실이 불어나자 결국 환매 동결 조치를 선언한다. JP 모건, 시티은행, 메릴린치 등(총 140억 이상 차입)은 추가 담보(margin call)를 요구하고, 베어스턴스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회사에 32억 달러를 투입할 것을 공약한다. 급기야 7월18일에는 펀드 설정액이 90퍼센트이상 손실이 났다고 발표하고, 8월1일에는 헤지펀드의 청산을 선언해 버린다.
그 와중에 7월24일, 미국 최대 모기지 대출업체인 컨츄리와이드(Countrywide Financial)의 수익이 급락했다고 발표하고, 26일에는 신규주택판매가 6.6퍼센트 감소했다는 소식이 시장에 알려진다. 그 시점을 즈음하여 미국의 주택가격은 폭락하기 시작하였다.

■ 단기 금융시장의 급격한 몰락
한편 기존 신용평가기관의 신뢰성에 금이 간 이후, 시장에서는 구조화 상품에 대한 가격 재평가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는 ABCP 시장의 폭락으로 나타났다. 아래 [그림. 2]에서 보는 것처럼, ABCP 시장은 8월부터 폭락하기 시작했지만, CP(무담보 단기어음) 시장은 이내 회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당시 금융시장의 충격은 주로 MBS 시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ABCP 시장(4,560억 달러)은 정점을 달리던 2007년 8월(1.225조 달러)에 비해 거의 1/3토막 수준으로 몰락하였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대서양을 건너 독일의 소규모 은행인 IBK의 자회사인 Rhinebridge(ABCP-Conduit)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채권에 투자 손실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7월30일, 대주주인 KFW(2차 세계대전 이후 마샬 플랜의 일환으로 설립된 정부소유은행)가 자본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8월1일, 35억 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통해 IBK는 회생했는데, 유럽에서 발생한 첫 번째 희생양이었다.
7월31일에는 모기지 투자회사(American Home Mortgage)가 주택대출 중단을 발표하고, 일주일도 채 안 돼 8월6일에 파산을 선언하였다. 이 회사의 일부는 인디맥(Indymac)에 인수되었는데, 인디맥 또한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다음 해 8월에 파산하였다.
8월9일에는 프랑스의 3대 은행 중 하나인 BNP 은행이 구조화 상품에 투자한 세 개의 투자펀드에 대한 환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다. 유럽중앙은행이 968억 유로에 달하는 신용공여라인을 개설해 준 후에야 정상화되었다.
혼란이 가중됨에 따라 8월 초(8.8~10) 단기 금융시장이 얼어붙고, 은행 간 시장에서 하루짜리 대출도 꺼리게 되자 금리는 순식간에 폭등하였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은행들은 RP 시장, 연방기금시장, 은행 간 시장에서 단기 자금을 조달한다. 은행 간 시장에서 적용되는 지표로는 통상 Libor(London inter-bank offered rate)를 말하는데, 은행끼리 남는 자금을 1일~3개월 만기로 빌려주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평균금리를 말한다.

또한 금리 스프레드란 만기나 위험도가 차이가 나는 두 채권의 금리 차이를 말한다. 이를 신용 스프레드라고도 하는데, 그린스펀의 ‘저금리 기조(유동성 버블)’ 아래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으로 접근하였다. 그러나 2007년 여름 신용경색이 발생한 이후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통상 신용위험(부도위험)을 측정하는 지표로 TED 스프레드가 사용되는데, 이는 단기 자금시장에서 거래되는 3개월 Libor 금리와 단기 재무부 채권(T-bill) 금리의 차이로 계산된다. 전자는 은행 간 무담보 거래에 활용되는 지표이므로, 신용이 경색되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함에 따라 높아진다. 반면 후자는 무위험 채권의 대표 격인 미 재무부 채권으로 시장에서 최상으로 선호되는 담보다. 따라서 수요가 증가하여 가격은 올라가 금리는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아래 그림처럼 TED 스프레드가 확대되고, 위기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활용된다.
TED 스프레드의 장기평균은 30~50bp 인데, 2007년 8월 200bp를 초과하였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에는 300bp를 초과하고 10월10일은 465bp로 역사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장기평균치보다 10배 정도 상승했는데, 단기자금을 빌리기가 그 정도로 심각하게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 때를 놓친 중앙은행의 개입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연방기금금리(federal fund rate)란, 중앙은행의 지급준비금 규정을 충족시키기 위해 은행끼리 남는 지급준비금을 서로 빌려주는 대가로 지불하는 콜금리를 말한다.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는 중앙은행에 예치한 지급준비금에 이자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지급준비금을 초과 보유한 은행들은 부족한 은행에 대출을 할 유인이 생긴다. 중앙은행은 RP 거래를 활용하여 공개시장조작 정책을 통해 이러한 지급준비금을 흡수 또는 방출하여 기준금리를 조정한다.
8월9일, 단기 은행 간 시장이 경색됨에 따라 유럽 중앙은행은 950억 유로를, 미국의 중앙은행 또한 유럽의 전철을 따라 240억의 유동성을 쏟아 붓는다. 이미 7월부터 일부 ABCP-Conduit에서 만기 연장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그림. 2]에서 보는 것처럼 8월에는 ABCP 시장 전체가 심각해졌다. 이에 따라 ABCP 금리가 8일부터 10일 사이에 5.39퍼센트에서 6.14퍼센트로 폭등한 것이다.
8월17일, 연준은 재할인 금리를 6.25퍼센트에서 5.75퍼센트로 인하하고 대출기간도 30일로 확대하였다. 그러나 약 7,000여 개의 은행이 재할인 창구에서 중앙은행의 자금을 빌릴 수 있지만, 이는 의도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재할인 시장은 8억 달러 수준으로 규모가 작고, 해당 은행은 시장에서 단기 자금시장에서 자금을 차입할 수 없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같은 날,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인 작센 은행(Sachsen LB)이 자회사인 Conduit(Ormond Quay)에 대한 유동성 보증을 떠맡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결국 8월26일 LLBW에 인수되었다.
연준은 9월18일이 되어서야 기준금리를 4.75퍼센트로 0.5퍼센트p, 재할인금리도 추가로 0.5퍼센트p 내렸다. 반면 서브프라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영란은행은 9월6일 고집대로 금리를 5.75퍼센트로 동결하였는데, 이는 Northern Rock의 뱅크-런으로 이어졌다. 9월28일에는 미국의 인터넷 뱅킹 회사의 선두 주자인 NetBank가 파산하고 결국 ING 은행에 인수되었다.
10월부터는 주요 글로벌 은행들의 대규모 상각과 국부펀드로부터 신규 자본투자가 진행되었다. 은행들의 재무제표가 건전해지고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으로 시장은 언뜻 진정된 것처럼 보였다. 실제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0월15일 장중 6,124를 찍었고, 11월1일 코스피 지수도 최고치인 2,085를 기록하였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펀드 바람’이 정점을 달리고 있었다. 이에 흥분한 현 ‘경제대통령’은 14일 여의도 대우증권 본사를 방문하여, “내년에 주가지수 3,000, 임기 내 5,000”을 달성할 수 있다는 뻔뻔스런 거짓말로 유세를 하고 다녔다.
IMF 금융안정보고서(08/4)에 따르면, 07.11~08.1월까지 380억 달러의 자금이 국부펀드로부터 미국에 유입되었다. 한국투자공사(KIC) 또한 2008년 1월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는데, 현재 약 마이너스 60퍼센트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연준은 10월31일 또 다시 기준금리를 0.25퍼센트p 인하했지만 11월부터 상황은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림. 1]에서 보는 것처럼, ABX 지수가 급락하여 11월 즈음에 BBB 이하 서브프라임 채권은 80퍼센트 이상 폭락했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부실의 초기 추정치(1500~2000억 달러)가 5000억 달러 수준으로 대폭 늘어나고 TED 스프레드는 12월 중순 최고치를 또 다시 갈아치웠다.
12월11일, 상황이 급박해지자 연준은 기준금리를 추가로 0.25퍼센트p 인하하고, 다음 날 기간입찰대출제도(Term Auction Facility; TAF)을 실시하겠다고 전격 발표하였다. 연준의 재할인 창구를 이용하면 시장에 낙인이 찍히는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 MBS를 포함하여 담보 유형을 확대하고 ‘익명’으로 28일짜리 기간 대출을 실시하였다. 이 조치는 ‘익명’ 방식을 제외하면 기존 재할인 창구와 비슷한데, Libor 금리를 낮추고 국채 수요를 떨어트려 [그림. 3]에서 보는 것처럼 시장에 실제 효과가 있었다.

■ 파산이 시작되다
해가 바뀌어 2008년 연초부터 시장의 우려는 채권보증업체의 부실로 급격히 확산되었다. 채권보증업체는 원래 우량 지방채만을 보증했기 때문에 통상 Monoline이라 부른다. 이들은 부동산시장이 폭발하자, MBS, CDO 등 여러 부동산 관련 채권 보증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였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보증을 선 채권이 모든 신용평가기관에 의해 신용 강등되었다. 채권보증업체의 신용강등뿐만 아니라 이들이 보증한 다른 지방채, 회사채 등의 신용강등마저 초래하였다. 순식간에 우량 단기채권에 투자하는 MMF가 경색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Money Market Fund는 투자자에게 원금 보장(break the buck)을 약속하기 때문에, buy-back(환매) 조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통상 buy-back 조항은 신용등급이 유지되면 유효한데, 신용강등 우려는 사전에 대량 환매가 유발될 수 있다.
1월19일(토요일), 신용평가기관인 피치가 채권보증업체인 Ambac의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미국은 월요일 휴장(Martin Luther King day)했는데, 전 세계 금융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국은 21일(월요일) 50.44p, 22일 74.54p로 이틀 사이 7.2퍼센트 떨어졌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시장의 주가는 15퍼센트 이상 폭락하였다. 미국의 선물시장이 5~6퍼센트 폭락하자, 1982년 이후 처음으로 연준은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전격적으로 0.75퍼센트p 금리인하 조치를 단행한다. 그러나 시장이 진정되지 않자 1월30일 정기 FOMC 회의에서 또 다시 0.5퍼센트p 인하하였다.
3월 초부터, Agency 채권(프레디맥, 패니매이 등 정부보증업체가 발행한 채권)의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는 또 다시 헤지펀드 Carlyle Capital로 우려의 손실이 미치기 시작했다. 3월2일 마진 콜을 받고 이를 이행하지 못하자 담보자산이 압류되고 채권가격은 추가로 폭락하였다. 뜻하지 않은 불똥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로 번지기 시작했다. 베어스턴스는 Agency 채권에 많이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칼라일 캐피털에 상당수의 자금을 빌려주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악화되자 3월11일, 뉴욕연방은행은 2,000억 달러 상당의 기간증권대출제도(Term Securities Lending Facility; TSFL)를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앞서 말한 TAF는 주로 상업은행을 대상으로 국채를 담보로 현금을 대출해주는 제도인데 비해, TSFL은 투자은행을 대상으로 28일 동안 Agency나 부동산 관련 채권을 국채와 교환(스왑)시켜주는 제도다. 역시 시장의 불신을 우려하여 ‘익명으로’ 실시하며 첫 경매일은 27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부 똑똑한(?) 투자자들 사이에서, 뉴욕연방은행의 특별 조치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즉 일부 투자은행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중앙은행은 알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한 것이다. 자연스레, 시장에서는 5대 투자은행 중 가장 규모가 작고 레버리지가 높은 베어스턴스를 지목하기 시작했다. 베어스턴스의 파산은 순식간이었다. 베어스턴스의 신용거래계좌에 예치된 600억 달러 가량의 예금이 순식간에 인출되고, RP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없게 되자 현대적 의미의 ‘투자은행 런’이 발생하였다.
3월13일(금요일) 다급해진 베어스턴스의 경영진이 뉴욕연방은행 관리와 접촉하기 시작했고, 다음 날 JP 모건을 통해 ‘긴급대출’을 제공하기로 합의하였다. 당시 JP 모건은 일종의 Conduit으로 기능했는데, 상업은행으로서 재할인율 창구를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RP 시장에서 베어스턴스의 청산은행이었기 때문이다. 청산은행(Clearing bank)이란 자금을 중개하면서 자금을 조달하고자 하는 투자은행에 담보를 요구하고 담보가치를 매기는 기능을 담당한다.
결국 뉴욕연방은행이 JP 모건에 300억 달러를 빌려준 대가로, 베어스턴스는 JP 모건에 헐값(2억 3,600만 달러)에 팔기로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1년 전만 해도 주당 150달러에 주식이 거래되던 베어스턴스는 고작 주당 2달러 가격에 매각되었는데, 헐값 매각 의혹이 일자 결국 주당 10달러로 조정되었다.
3월15일(일요일) 저녁, 연준은 재할인율을 0.25퍼센트p 다시 인하하고 투자은행에도 재할인 창구를 개방하는 PDCF(Primary Dealer Credit Facility)를 실시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상업은행에만 적용되던 재할인 창구를 투자은행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 조치는 리먼브러더스를 비롯한 다른 투자은행의 유동성 개선에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 금융공황의 정점: 리먼브러더스, AIG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6월 중순부터 Agency 채권의 가격은 추가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프레디맥과 페니매이는 한국의 주택금융공사와 역할은 유사하지만 법적인 형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정부가 인가했지만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민영화 된 공기업인데 비해, 주택금융공사는 정부와 한국은행이 출자한 준정부기관이다. 특히 7월11일, 모기지 업체인 인디맥(IndyMac)이 FDIC의 관리체제로 편입된 이후, 정부보증업체 문제는 시장에서 다시 확산되었다. 국유화는 없다고 공언하던 폴슨 재무부장관은 결국, 9월7일 두 정부보증업체에 대해 사실상 국유화 조치를 단행하게 된다.
2008년 3월, 베어스턴스의 파산에 살아남은 리먼브러더스는 중앙은행의 PDCF를 통해 단기자금을 조달하며 간신히 생명을 연장해갔다. 2008년 상반기에만 73퍼센트 폭락한 주가는 계속해서 하락하였고, 부실자산은 늘어났음에도 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노력은 기울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다른 은행의 유사한 조치가 뒤따르지 않은 채, 특정 은행이 단독으로 유상증자를 단행하면 시장에서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리먼은 2004년 서브프라임 대출업체 BNC mortgage를 인수했는데, 부실이 확산되자 8월22일 영업을 아예 폐쇄해 버렸다. 2000년대 이후 부동산이 돈이 되자, 월스트리트의 큰 손들이 개입하여 모기지 대출업체들을 인수하였다. 예를 들어 2006년 베어스턴스가 ECC Capital을, 메릴린치가 First Franklin 등을 인수했는데, 자회사의 부실도 투자은행의 몰락에 한 몫을 담당했다.
8월부터 리먼 인수를 타진하던 한국의 산업은행이 포기한다고 발표하자, 9월9일 주가는 45퍼센트 폭락하여 결정타를 날렸다.
12~14일 뉴욕연방은행 의장이던 가이스너(Geithner)는 리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월가의 주요 CEO들을 긴급 소집하였다. 초기에 영국의 바클레이즈(Barclays)와 BOA가 인수 후보로 물색되었지만, 전자는 영국의 중앙은행과 금융감독청(FSA)과 중앙은행의 반대로, 후자는 정부보증을 전제로 내걸고 거절하였다. 리먼의 파산 발표가 예정된 시점에 앞서, 메릴린치는 잽싸게 일요일 500억 달러에 BOA에 매각하겠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리먼이 파산을 공식 발표하자 한국의 코스피는 90p 넘게 폭락하고 미국의 다우지수는 500p 이상 폭락하였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리먼의 파산은 세계 최대 보험회사 AIG에 대한 우려로 이어져, 다음 날 AIG의 주가는 90퍼센트 이상 폭락하였다.
리먼 파산으로 AIG가 보유한 부실자산 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는 투자은행과 달리 통상 장기자산을 보유한다는 이유로, 시장가치에 따른 회계방식(mark-to-market)을 적용받지 않는데, 리먼이 자신의 부실자산을 공개하면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동일한 서브프라임 부칠채권에 대해 리먼은 66퍼센트 평가손을 반영했지만, AIG는 31퍼센트만 반영하였다. Alt-A 부실자산 또한 리먼이 61퍼센트를 반영했는데, AIG는 33퍼센트만 반영하였다. 따라서 리먼의 회계방식을 적용하면 AIG는 추가로 14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처리해야 한다. 이 뿐만이 아니라, CDO에도 대규모로 투자했는데 우량 트랑세에 420억 달러(25퍼센트 평가손), 160억 달러(30퍼센트 평가손) 가량의 투기등급 트랑세도 보유하고 있었다.
주목할 것은, 전 세계 130개 국가에서 11만 6,000명을 고용하던 AIG의 몰락은 AIG Financial Products라고 알려진 소규모 런던 지사의 부실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AIG는 AAA 등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채권 보증에 담보가 요구되지 않는 사업상의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400명도 채 되지 않은 이 조그만 회사는 엄청난 규모의 신용부도스왑(CDS)을 거래하였다. 회사채(2,940억 달러), 유럽의 주택담보대출(1,410억 달러), 서브프라임 CDO(780억 달러) 등 5,130억 달러에 달하는 CDS를 거래하였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달리자, 2005년에는 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17.5퍼센트(99년 4.2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하였다. 파생상품에 주로 투자했기 때문에,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은 2002년 44퍼센트에서 2005년에는 83퍼센트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AIG Financial Products의 유동성 문제로, 9월15일 S&P가 AA-에서 A-로 한꺼번에 세 단계나 신용등급을 내려 150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 담보가 필요했다.
AIG가 파산을 검토하던 9월16일 저녁, 뉴욕연방은행은 79.9퍼센트 지분을 대가로 850억 달러를 긴급 대출하였다. 구제금융은 추가로 이어져 10월 370억 달러, 11월 400억 달러 등 총 1,825억 달러를 대출받았다. 이 자금은 CDS 거래의 손실을 보전하는 등, 다른 금융기관의 구제금융에 간접적으로 사용되었다. AIG는 9월22일 다우존스 편입에서 빠지고, 올해 3월, 지난해 4사분기에만 617억 달러에 달하는 기록적인 손실을 냈다고 발표하여 또 한 번 시장을 경악시켰다.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다. MMF에서 대량 환매사태가 발생하였다. 리먼이 파산한 다음 날, MMF 중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Reserve Primary Fund가 리먼이 발행한 채권을 상각한 후 손실이 발생하였다. Reserve Primary Fund를 필두로 불안을 느낀 투자자들의 환매가 연쇄적으로 이어져,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한 소매펀드에서만 3.4조 달러의 자산 중 5퍼센트인 1,690억 달러의 대형 환매가 발생하였다. 9월19일, 미 재무부가 800억 달러의 ‘채권안정화펀드’를 투입하여 MMF의 원금을 보장하겠다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하고서야 시장은 안정되었다.
예금보험공사의 은행예금에 대한 원금 보장과 유사한 이 조치는 1971년부터 시작된 MMF 시장에서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MMF는 주로 최우량 단기 CP, RP, 국채 등에 투자하기 때문에 손실이 발생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MMF 시장은 투자은행을 비롯한 그림자금융 체제가 자금을 조달하는 주요 원천이기 때문에, 신규 채권을 발행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채권의 만기를 연장하지 못하면 파산 도미노가 발생할 치명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거래상대방 위험이 증가하여 CDS 프리미엄이 급등하고, [그림. 2]에서 보는 것처럼 CP 시장이 급속히 경색되었다.
연준은 10월27일, CP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CPFF(Commercial Paper Funding Facility) 조치를 단행한다. 뉴욕연방은행의 자금으로 특수목적회사(SPV)를 설립하여 3개월짜리 CP나 ABCP를 구매하여 단기 자금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조치였다.
리먼 파산의 후폭풍은 이후 ‘소리 없는 파산(silent run)’과 인수 행렬로 이어졌다. 현대적 의미에서 은행 창구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뱅크 런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고객과 기관투자가들의 환매나 예금 인출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순식간에 발생한다.
9월25일, OTS(저축은행감독기관)는 미국에서 가장 큰 저축은행이자 자산 규모 여섯 번째인 워싱턴 뮤추얼(Washington Mutual)의 자산을 압류한 후 FDIC(연방예금보험공사)가 관리하도록 하였다. 리먼 파산 이후 열흘 동안 164억 달러(전체 예금의 9퍼센트)의 예금인출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3,000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가진 미국의 6대 은행인 워싱턴 뮤추얼은 19억 달러라는 초라한 가격으로 또 다시 JP 모건의 수중으로 떨어졌다.
와코비아(Wachovia) 역시 2006년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저축은행인 Golden West Financial을 인수한 후, 역시 서브프라임 부실에 빠졌다. 9월26일 하루에만 4,480억 달러의 총 자산 중 1퍼센트인 50억 달러가 순식간에 인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와코비아 또한 워싱턴 뮤추얼의 전철을 따라 시티그룹과 웰스파고 간 인수 전쟁을 거쳐 결국 웰스파고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다른 은행의 사례를 따르면 시티그룹 또한 파산 또는 인수되었을 것이다. 10월 재무부로부터 250억 달러를 지원받았지만 시티에 대한 불안은 진정되지 않았다. 11월24일 추가로 200억 달러를 지원하고 3,000억 달러가 넘는 자산에 대해 보증을 서 준다는 특단의 조치를 발표하였다. 이의 대가로 34퍼센트의 보통주 지분을 정부에 넘겨주었지만, 다른 사례에 비하면 확실히 ‘특혜’라고 할 만 하다.
미 재무부는 7,000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 계획을 발표하고, 중앙은행은 CP, ABCP, MBS 등 거의 모든 유형의 채권을 구매하겠다는 조치들을 연달아 발표한다. 이에 따라 2007년 11월, 1.2조 달러에 달하던 중앙은행의 재무제표는 2008년 12월, 2.3조 달러로 거의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 그리고 12월16일에는 기준금리를 0~0.25퍼센트로 내렸다. 이제 더 이상 내릴 수도 없다.
그리고 금융공황은 금융기관의 부의 레버리지 과정을 통해 8,000억 달러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실물위기로 전파되어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나마 미국경제를 지탱해 준 것은 전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의 힘이다. 하지만 6월 기준 이미 1조 달러를 넘어서고 올해만 1조 8,000억 달러(GDP의 12퍼센트)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적자로 달러의 지위는 서서히(?) 추락할 것으로 보인다.

* 다음 편에서는 금융위기의 체계적 증폭 과정을 개념적으로 설명하고, ‘외부성’을 중심으로 거시안정성 금융규제 강화의 필요성을 밝히도록 하겠다.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그림자 금융체제와 금융 불안정성의 세 단계
도표가 포함된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http://saesayon.org에서 PDF파일 다운로드

1. Shadow Banking 시스템

2007년 8월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세계적 경제침체가 지속된 지 벌써 3년이 돼가고 있다. 그리고 그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얘기들 한다. 필자가 보기에도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폭등하는 등 지난 연말과 올 초에 보이던 극단적인 금융 불안정성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오히려 달러 약세에 따른 세계적인 리플레이션으로 또 다른 버블이 우려될 정도다.

그러나 경기 ‘회복’을 위해 중앙은행과 정부는 금융시장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천문학적인 유동성을 쏟아 부었음에도 금융위기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경제체제 ‘개혁’은 거의 실시하지 못하였다. 파산한 금융시스템을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또 다시 버블-붕괴(Boom-Burst) 동학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의 구조적 불균형과 달러체제의 불안, 그림자 금융체제의 폭발적 성장, 실물시장의 과잉공급, 가계ㆍ기업ㆍ금융기관의 레버리지,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다. 최근 일부 금융시장에서 이러한 우려가 나타나고 있고 유가가 치솟고 있는 것은 단적인 예다.

기억을 되살려 유가가 폭등하던 2008년을 되돌아보자. 2008년 5월 ‘골드만삭스’가 유가가 2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자 실제로 유가는 147달러까지 치솟았다. 원유 선물 거래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골드만삭스의 파워와 투기세력의 결탁으로 시장의 수급과 별 상관없이 유가는 치솟았다. 이들은 2005년에도 ‘슈퍼 스파이크’ 이론을 내세워 원자재 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 단언하기도 하였다.

골드만삭스의 예언(?)과 달리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속에 올 초에 유가는 34달러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최근 또 다시 유가가 치솟아 70달러를 넘어섰다. 역시 골드만삭스가 올해 말 85달러, 내년 95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올해 말 전망치는 기존의 65달러에서 85달러로 30퍼센트 이상 올렸는데, 유가가 80달러 근방으로 오르고 이들이 또 다시 수정전망을 내놓으면 유가는 더 오를 수도 있다. 투자은행에서 은행지주회사로 간판만 바뀌었지, 골드만삭스의 투기적 행태는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화려한 ‘말잔치’로 오르는 가격은 결국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금융 버블의 역사를 고찰하면 모든 버블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투기 대상은 자신의 내재적 성격이나 가치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금융상품으로서만 구입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금융상품의 가격은 기초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이탈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음으로, 금융상품의 가격 상승은 구매력의 지속적인 확대를 동반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기관이 더 풍부하게 자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금융혁신’을 자극한다.

이번 금융위기도 이러한 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80년대 초반부터 추진된 탈규제 정책의 결과, 구조적으로 그림자 금융체제(Shadow Banking System)가 구축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증권화’라고 하는 신종 금융기법으로 버블을 키웠기 때문에 모든 금융시스템에 확산되었다.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서 은행의 본연적 기능이 무엇인지부터 고찰하자. 통상 은행을 금융 중개기관이라 하는데, 개별 가계의 예금을 집단적으로 수취하여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 대출하는 중개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계의 저축과 기업의 투자를 연계하며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 앞에 줄을 서서 일시에 예금을 인출하는 사태 혹은 부실 대출로 인한 파산 가능성 등에 대비하여, 현대 금융체제는 ‘예금보험’이라는 안전망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금융안전망의 기능은 국방, 치안, 의료, 교육과 마찬가지로 공공재에 해당한다. 개인적으로 보험료를 지불할 인센티브가 작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세금을 활용하여 예금보험공사를 설립함으로써 그러한 기능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대공황의 교훈을 삼아 1933년 미국에서 연방예금공사(FDIC)를 설립한 이후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또한 은행은 중앙은행의 재할인율 창구를 통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며, 위기 시에는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으로 유동성을 공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가로 금융 감독기관으로부터 안정성, 건전성 규제와 감독을 받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은행 기능과 달리, 탈규제의 환경에서 규제와 감독의 레이더를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를 하는 금융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들을 그림자금융이라 하는데 투자은행, 헤지펀드, 사모펀드, 구조화 투자회사(SIV), 컨듀잇(Conduit)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자금을 조달했을까? 통상 단기 자금시장에서 은행 간 차입이나 CP(기업어음)를 발행하여 담보 없이도 자금을 조달한다. 또한 담보를 조건으로 Repo나 ABCP 등 담보 채권을 발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중앙은행의 재할인율 창구에 접근할 수 있는 상업은행과 신용라인(Credit line)을 개설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들의 자본금 대비 부채 비율인 레버리지는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투자은행은 통상 자본금의 30배, 헤지펀드는 그 이상으로 레버리지 비율을 높여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윤을 극대화하는 기업으로서 레버리지 비율을 높이면 당연히 시장에서 평가하는 자기자본수익률(ROE)도 높아진다. 구조적으로 ‘수익률 추구’ 게임에 내몰리고 감독과 규제가 취약해지면 금융기관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그림자 금융체제로 편입하려는 인센티브를 지니게 된다.

다음 그림은 상업은행 총자산에 대한 투자은행과 헤지펀드의 자산 비율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헤지펀드의 자산은 고객이 위탁한 운용자산(Asset under management)만을 표시하고 있는데, 헤지펀드의 총자산은 통상 운용자산의 두 배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 이미, 투자은행과 헤지펀드의 자산은 상업은행 자산의 50퍼센트를 넘을 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높은 레버리지에 위험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감행하지만, 그림자 금융은 정부가 제공하는 금융안전망의 레이더 밖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이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바로 정부와 신용평가기관 에 있었다.

정부는 ‘금융혁신’과 ‘유동성’이라는 명목 아래, 그림자금융에 대해서는 규제와 감독을 느슨하게 실시하였다. 따라서 그림자금융은 당연히 규제차익의 이익과 높은 레버리지 비율로 버블 기간에 높은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또한 무디스나 S&P와 같은 신용평가기관은 그림자금융이 발행하는 (무)담보 채권에 높은 신용등급을 매겨주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금융당국과 신용평가기관의 도움으로 그림자 금융이 발행하는 금융상품은 은행의 예금처럼 ‘안전하다’고 믿게 되었다.

2. 케인즈와 민스키

그림자금융의 폭발적인 성장과 붕괴는 경제학자 민스키(Minsky)의 금융 불안정성 가설이 제시한 경로와 매우 흡사하다. 그는 비록 1996년에 죽었지만 그의 이론은 미국의 금융위기를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서 폭넓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비단 그가 활동했던 포스트 케인즈학파 내부뿐만 아니라, 월가에 종사하고 있는 금융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확대되어 왔다. 1998년 헤지펀드 LTCM 파산 사건에서 ‘민스키 시점(Minsky Moment)’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세계 최대 채권투자회사 PIMCO의 McCulley, UBS의 수석 경제자문 Magnus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주류 언론매체에도 반영되어 월스트리트 저널에 ‘무명의 경제학자가 명성을 얻고 있다’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리기도 하였다. 거기에는 “최근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은 ‘민스키 시점’을 방지하거나 연기하기 위함이며, 이는 시장실패의 증거”라는 CLSA 그룹에서 활동하는 Wood의 말도 인용되어 있다.
‘민스키 시점’이란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우량 자산마저 매각해야 하는 상황, 즉 금융자산에 대한 수요는 순식간에 감소하고 이와 반대로 유동성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는 케인즈의 유동성 함정이나 민스키의 부채-디플레이션 개념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지난해 나스닥 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매도프가 희대의 사기꾼으로 밝혀져 1920년대의 찰스 폰지를 무덤에서 불러낸 것처럼 서브프라임 사태는 케인즈와 민스키를 다시 불러내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표현대로, ‘민스키 시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금융 불안정성 가설은 신뢰를 얻고 있다.

민스키는 시카고 대학에서 주류경제학을 공부한 후, 하버드 대학에서 학위를 따는 과정에서 케인즈 학파로 ‘전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75년 ’John Maynard Keynes’를 출간한 이후, 케인즈의 투자이론을 현대 금융자본주의 체제의 틀로 더욱 발전시켰다.

거시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한 케인즈는 아담스미스의 세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스미스에 따르면, 모든 개인은 자본과 노동을 투입하여 최대의 가치를 획득하게 되는데,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기울여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공공의 이익을 개선하게 된다. 시장경제는 한 마디로 유토피아와 같은 이상향이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언제나 공공의 이익을 달성한다는 스미스의 세계와 달리 케인즈는 공공의 이익과는 다른 방향으로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음을 상정하고 있다.

이러한 원리를 흔히 ‘구성의 원류’ 혹은 ‘집계(총합)의 오류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절약의 역설’이다. 저축을 늘리고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소비를 줄이는 것은 미시적 관점에서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지출은 다른 사람의 소득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지출을 축소하여 저축을 늘리면 경제 전체적으로 저축이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게 된다.

이는 비단 저축과 소비 행위뿐만 아니라 여러 경제 현상, 특히 현재의 금융위기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예를 들어 개별 자본가의 입장에서 임금을 삭감하고 고용을 줄여 이윤을 늘리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동시에 그러한 결정을 실행하면 경제 전체적으로 소득과 유효수요가 줄어 오히려 총이윤도 줄어들 수 있다.

굳이 고상한 경제학적 원리를 도입할 필요도 없다. 관중이 가득 찬 야구장에서 우리는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의 차이를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일어서서 관람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거시적 관점에서 모든 개인이 동시에 일어서면 비합리적인 결과를 양산하게 된다. 좌석의 배열을 바꾸는 것처럼 거시적 입장에서는 경제구조의 개혁이 더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스미스의 전통을 따른 것이 바로 70년대 초반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시장이 가장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고 정보를 제공한다는 ‘시장효율성 가설’이다.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내재적 불안정성’과 ‘취약성’을 분석한 것이 바로 ‘금융 불안정성 가설’이다.

3.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성 가설

민스키의 이론은 경기변동에 관한 케인즈의 투자이론에 기초하였다. 케인즈는 경기변동이 투자에 기초한다는 것을 밝혔지만 투자에 필요한 자금이 어떻게 조달되며 자금조달에 수반한 부채구조 변화가 투자와 이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지는 않았다. 이에 비해 민스키는 자본주의의 제도적 변화와 금융혁신에 따라 기업의 자금조달 행위가 어떻게 진화하며, 역사적 진화의 특정 단계에서 금융의 불안정성이 어떻게 확대되는지를 보여주었다.

투자-이윤-레버리지의 자기 파괴적 불안정성이 진행되는 경로는 세 가지 경제적 단위의 진화와 밀접한 관련을 보인다. 바로 헤지(Hedge), 투기(Speculative), 폰지(Ponzi) 단위로의 진화다.

헤지 단위는 기업 운영을 통한 현금흐름(cash flow; 가계의 입장에서 소득)이 부채상환액(원금+이자)을 초과하는 단위로, 부채구조에서 자기자본을 통한 자금조달이 우세한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헤지 단위는 일시적으로 위험이나 투자의 불확실성에 직면할 수 있지만, 금리 변동과 같은 금융시장 조건에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실물시장의 현금흐름에만 영향을 받는 안전한 단위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투기 단위는 상환해야 할 금액이 현금흐름을 초과하는 경우로, 통상 원금을 제외한 이자만을 감당할 수 있는 단위를 말한다. 원금을 상환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의 부채를 연장하여 부채구조를 유지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지막, 폰지 단위는 운영상의 현금흐름으로 원금은 물론 이자 상환도 어려운 단위로, 다른 자산을 매각하거나 신규 차입을 통해 이자를 상환하는 매우 불안한 부채구조를 지니고 있다.

특히 헤지 단위가 실물시장의 현금흐름에만 영향을 받는데 비해 투기나 폰지 단위는 금융시장 변동이나 중앙은행의 정책, 특히 금리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경제에서 헤지 단위의 비중이 높을수록 경제적 안정성은 높아지는데 비해 투기나 폰지 단위의 비중이 높을수록 경제는 점점 더 취약해진다.

금융 불안정성 가설은 Boom-Burst의 두 동학으로 구성된다. 먼저 경기 침체기에 기업이 실현한 이윤과 투자자들의 기대는 낮아진다. 동시에 위기 해소를 위해 정부의 재정지출이 늘어나고, 과잉부채를 지닌 기업이 파산하는 자본의 구조조정 결과 금융구조는 상대적으로 안정된다. 그러나 경제가 침체기에서 점차 벗어남에 따라 기업의 실현 이윤은 서서히 증가하는데, 투자자의 위험성향은 과거의 버블 붕괴의 기억이 지배하는 한 여전히 높게 유지된다. 결국 실현된 이윤이 낮아진 기대를 초과함에 따라 금융자산의 수요가격은 점차 상승한다. 기업이 실현한 이윤이 형편없이 낮았음에도 주가가 상승하는 것 또한 이러한 이치다.

Better than expected! 시장이 현실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의 기대가 시장을 창조하는 것이다. 금융구조가 더욱 안정됨에 따라 위험추구 성향이 점차 증가하면 금융자산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한다. 이는 자산 가격, 그리고 담보가치 상승으로 이어져 레버리지를 더욱 높이게 된다. 물론 실현된 이윤을 기존 부채의 상환이나 내부자금조달에 사용할 경우 레버리지 비율은 하락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경쟁압박은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산업 내 다른 기업에도 동일한 행위를 강제하게 된다. 특히 금융 산업의 경우 주식시장에서 자기자본수익률(ROE)로 수익성을 평가하고, 증권화에 의존하는 금융구조의 내부적 변화, BIS 비율 등 자산 안정성 규제 등이 경기 순응적이므로 체계적으로 레버리지 비율은 상승한다.

경제적 호황기에 투자자들은 ‘도취적(euphoric) 기대’에 빠지게 되고, 부채 증가율이 이윤 증가율을 초과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윤은 생산성 증가에 따라 제약을 받지만 신용 확장은 금융혁신에 따라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호황기 안정적인 부채상환은 경제주체로 하여금 운영상 현금흐름과 시장의 자금조달 환경에 점점 더 신뢰를 부여하게 된다. 따라서 안전 마진(혹은 위험회피성향)이 줄어들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강해지고 안전마진은 점차 줄어든다. 즉 경제상황의 변화에 따라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경제주체의 관점과 유동성 선호 또한 변화한다.

이처럼, 거시경제 변수의 변동에 따른 경제체제와 경제주체의 반응은 체계적으로 변수의 운동을 증폭시킨다. 자본주의 경제는 안정기에 파국의 씨앗을 키우며 불안정을 이미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안정기가 잉태하는 자산 가격과 신용확장은 필연적으로 불안정성을 양산한다. 안정기는 결코 최종 종착역이 될 수 없으며 불안정기로 향하는 하나의 정거장에 불과한 것이다.

민스키의 이론은 한 마디로 ‘자본주의 경제의 내재적 불안정성과 취약성’을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경제적 번영기에 안정적인 금융관계에서 불안정한 금융관계로 자연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현 금융위기를 특징짓는 자산 가격, 주택담보대출, 그림자금융의 버블을 포함한 Boom-Burst 동학은 이러한 이론적 틀로 잘 설명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시장은 효율적이고 ‘발견 과정’을 통해 올바른 가격을 항상 찾아가도록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은 멋진 기능을 발휘하지 않느냐고, 멋진 손을 지닌 그 보이지 않는 사람은 도대체 어디로 갔느냐고 말이다.

실제로, 금융시장에서 가장 흥분되고 높은 수익이 발생할 때는 역설적으로, 스미스의 멋진 녀석이 사라질 때다. 금융시장의 높은 변동성은 헤지를 명분으로 파생상품을 만들고 그것이 장외시장에서 알 수 없는 가격에 거래될 때 ‘투기’는 최대한의 수익을 내는 것이다.

4. 부동산시장의 금융 불안정성 : Boom-Burst

금융 불안정성 이론은 경기변동을 진화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부채 단위 - 헤지, 투기, 폰지 - 로의 누적적 진화를 통해 개체가 전이되면 될수록 주택담보대출, 자산 가격, 그림자 금융 그리고 파생상품과 같은 다른 음성적 버블들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버블이 터졌을 때, 기존의 모든 위험과 자산 가격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만약 중앙은행과 정부의 개입이 없었다면 시장은 효율적으로 작동하여 스스로 병을 치료하는 과정이 아니라 스스로 더 큰 파멸의 늪으로 더 깊이 빠졌을 것이다.

그러면 미국의 주택시장에서 어떻게 버블이 누적적으로 확대되었는지 헤지ㆍ투기ㆍ폰지 단위로 각각 나누어 이를 살펴보자. 실제로 미국의 주택시장은 정확히 금융 불안정성의 세 단계 경로를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부채 단위인 헤지 단위 - 차입자의 현금흐름(소득)으로 원금과 이자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단위 - 는 전통적인 주택담보대출 형태에 해당한다. 30년 모기지는 우리 아버지 세대가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서 주로 행했던 대출로 미국에서는 아직도 보편적이다. 매월 지정된 계좌를 통해 원금과 이자가 균등하게 상환된다. 국민은행의 주택금융수요실태조사를 보면 한국에서는 2008년 기준으로 45.6퍼센트가 이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좀 더 위험한 부채구조 - 현금흐름으로 이자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단위 - 를 지닌 투기 단위는 집값 상승을 거의 확신하는 단위다. 신문지상에 연일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데 합리적인(?) 투자자라면 30년 동안 원리금을 균등하게 상환하는 일상이 지루할 법도 하다. 통상 이러한 대출을 미국에서는 Interest-Only 대출이라 하며 국내에서는 좀 더 세련된 말로 ‘만기일시상환’이라 한다. 매월 이자만 납부하다 만기에 원금을 한꺼번에 상환하는 대출로 부동산 투기 붐에 따라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한국의 경우 2006년 36.1퍼센트에서 2008년에는 41.퍼센트까지 늘었다. 2~3년 마다 주기적으로 만기를 연장하는데 최소한 다음 세 가지에 대해 ‘투기’하고 있는 셈이다.
금리가 상승하지 않을 것이며 만기를 포함한 대출 조건이 변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집값이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헤지 단위에서 투기 단위로 전환하더라도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한 아무런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다. 게다가 동일한 금액을 대출받더라도 원리금 균등상환보다 만기일시상환이 매월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적다. 따라서 동일 소득으로 만기일시상환은 더 많은 금액, 더 비싼 주택을 구입할 수 있게 만든다. 즉 만기일시상환의 비중이 높을수록 수요 자체만 보면 집값 상승의 요인이 된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다른 내구재와 마찬가지로 부동산은 사는 순간부터 가치가 떨어지고 관리 및 유지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가며 유동성 또한 매우 낮다. 게다가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미분양은 넘쳐 난다는데 왜 그렇게 투기의 광풍이 부는 것일까? 자산 시장에서는 ‘가치’ 투자가 아니라 ‘모멘텀(Momentum)’ 투자가 돈을 벌기 때문일 것이다. 싼 값에 사서 비싸게 팔아라. 아니다! 가격이 올라갈 때 사서 더 비싼 가격에 파는 것이다. 이른바 Greater fool theory가 작동한다. 즉 나보다 어리석은 사람이 최소한 한 사람쯤은 돈다발을 들고 대기하고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쉬운 말로 하면 폭탄 돌리기다.

이러한 투자 관행에 따라, 이자 상환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가장 취약한 폰지 단위가 확산된다. 이런 비합리적 대출 관행은 어떻게 발생했을까? 두 가지 조건이 구비되었기 때문인데 하나는 집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비이성적 기대, 다른 하나는 ‘증권화’라고 하는 새로운 금융 모델이다.

2003년부터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자, 은행들은 초기에 시장금리보다 낮은 유혹적인 미끼를 내던지기 시작했다. Negative Amortization! 낮은 금리를 지불하는 대신 원래 금리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원금에 추가된다. 국내 제도권에서는 이런 약탈적 대출 관행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 사채시장에는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관행이다. 연체이자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면, 이자를 원금에 합산하여 새로 부채계약을 갱신한다. 미국에서는 만기에 상환해야 할 원금이 늘어나는 데 비해, 국내에서는 주기적인 계약 갱신을 통해 원금이 늘어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원래는 부동산 가치와 차입자의 상환 능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지만, 집값 폭등 시 차입자의 상환능력은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대출을 하자마자 여러 건수를 묶어서 새 상품으로 둔갑시킬 곳에 팔아버리면 되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자산이 증권이나 파생상품이 되는 금융 연금술, 바로 증권화 모델(Originate to distribute model)이다. 국내 부동산 증권화(혹은 유동화) 시장은 미국처럼 크게 발달한 것은 아니다. 다만, 증권화 모델로 가는 도중에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을 뿐이다.

그림자 금융체제는 새로운 버블을 만들 상품과 그 상품을 만들 회사만 있으면 된다. 바로 몰락한 미국의 투자은행들이다. 물론 이들이 부동산 파생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대출수요가 필요했다. 어떻게? 간단하다. 더 많이 대출할 수 있도록 대출 기준을 체계적으로 완화해 준 것이다. 구비 서류가 부족(Low doc)해도, 서류가 없거나(No doc) 거짓으로 꾸며도(Liar doc) ‘마구마구’ 대출하였다. 심지어 Ninja(no income, no job, no asset) 대출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였다. 대출 과정의 진화뿐만 아니라 증권화 과정에서도 진화가 있었다. MBS, ABCP, CDO, CDO2 등등.
신용평가기관은 과거의 연체율을 기준으로 AAA 도장을 쉴 새 없이 쾅쾅 찍어주었다. 상업은행은 대출을, 투자은행은 파생상품을, 신용평가기관은 ‘안전하고 수익이 높다’는 보증서를... 그림자 금융체제의 부동산버블 대량생산 시스템은 잘도 돌아갔다.

좋게 말하면 ‘금융연금술’, 나쁘게 말하면 ‘사기’에 버금가는 이런 기막힌 일은 가계에 만기일이 다가오고 집값 상승이 멈추면서 전환되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경제체질 혹은 Valuation의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집값이 상승하지 않으면 폰지 단위는 애초부터 Burst 동학의 첫 번째 희생양으로 예고되어 있지 않은가. 물론 집값이 하락하면 투기적 단위도 마찬가지다. 어제까지 그렇게 온화하던 은행이 순식간에 대출금을 상환하던지, 아니면 금리를 올리겠다고 요구하지 않는가.

미시적 관점에서 그러한 대출기준 강화는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거시적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진다. 부채의 구조조정을 위해서 가계는 주식이나 채권을 매각해야 하고, 이는 다른 금융시장의 추가적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BIS 비율 강화도 마찬가지다. 개별 은행 입장에서 BIS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실자산을 매각하던지 대출을 축소해야 하는데 이는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급격히 위축시킨다. 자산의 출혈매각은 자산가격의 하락을 초래하고, 이는 다시 자산매각을 강요하여 디플레이션을 악화시킨다. 인플레는 인플레를 키우고 디플레는 디플레를 키운다.

특히 경제주체가 자산을 동시에 매각해야 할 때, 자산가격 하락으로 자본손실이 발생하고 담보가치 또한 하락하여 우량자산마저 매각해가나 대출을 축소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버블이 붕괴될 때는, 가격(금리)이 문제가 아니라 공급(유동성)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절약의 역설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부(負)의 레버리지의 역설이 발생한다.

5. 정책 반응 : 정책개입의 역설

그림자 금융체제에 내재한 Boom-Burst 동학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금융 불안정성이 자본주의의 내재적 성격임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럴 때만이 단기적 금융시장 회복과 장기적 금융체제 개혁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외부 쇼크로만 이해할 경우 체계적인 정책 반응은 나올 수 없고 오직 위기극복이라는 명분하에 리플레이션 정책만이 뒤따르게 된다. 미국에서 회계기준을 완화하고, 요란한 스트레스 테스트 쇼를 벌이는 것도 리플레이션 정책의 일환이다. 국내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투기 방지, 자원의 생산적 배분,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 등을 위해 지난 수십 년간 구축해 온 부동산 규제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버블로 무너진 경제, 더 큰 버블로 일으켜 세우겠다고.

물론 급격한 자산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 어느 정도 리플레이션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부동산시장처럼 눈에 보일 정도로 버블이 확연한 곳에서는 버블이 바닥을 찾고 다질 수 있도록 디플레의 고통을 감당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음으로 정부지출 측면을 살펴보자. 소득 원천과 지출 측면으로 국민계정을 고려하면, 다음과 같은 항등식을 정의할 수 있다.

즉 (왼쪽부터 순서대로) 임금, 이윤, 세금의 합은, 소비, 투자, 정부지출, 무역흑자(수출-수입)와 같게 된다. 소비가 노동자의 소비와 자본가의 소비로 구분된다고 가정하고 양변에서 임금과 세금을 빼면, 결국 (왼쪽부터 순서대로) 이윤은 자본가의 소비에서 노동자의 저축을 빼고 여기에 투자와 재정수지와 무역수지를 더한 것이 된다.

여기에서 (노동자의 저축)이 0이라고 가정하면, 투자가 부족할 경우 정부 재정지출 증가로 파국적 붕괴 과정을 막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가계와 기업,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가 무너지고 투자와 소비가 극도로 위축되는 시점에서 이를 상쇄할 정도의 정부 재정지출로 이윤 수준의 급격한 붕괴를 피할 필요는 있다. 또한 중앙은행은 최종대부자로서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여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러나 취약한 금융구조를 유지하는 한 정부개입 정책은 파국적 경기침체를 방어 또는 연기할 뿐이다. 오히려 앞으로 발생할 경기침체는 더욱 길어지고 심각해 질 수밖에 없다. 금융부문의 취약성이 증가하더라도 정부개입에 따른 누적적 학습효과는 더욱 더 위험한 투자 행위를 추구할 인센티브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또한 위험한 투자 행위에 대한 비용은 정부가 흡수하여 사회화하고, 위기 해소 과정에서 금융기관의 몸집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취약한 금융시스템을 개혁하지 않으면 정책개입의 효과와 편익은 감소하는데 비해 정책개입의 비용은 증가하는 ‘민스키의 역설’을 반복적으로 맞게 된다. 5~70년대 자본주의 황금기 시절에 비해 정부개입의 효과가 떨어지고 경기순환의 주기가 짧아지는 것도 금융시장의 취약한 구조 때문이다.

미국이 1980년대 초 금융시장 탈규제를 추진했다면 한국은 그보다 10년 늦은 90년대 초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그것의 정점이 1999년 금융현대화법(Gramm-Leach-Billey Act)이었다면 한국에서는 200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자본시장통합법이다. 비록 투자은행 모델이 사라졌지만, 위기가 해소되면 상업은행과 증권회사의 경계는 점차 허물어지고 ‘증권화’를 비롯한 미국식 모델의 치명적 문제들이 점차 드러날 것으로 본다.

그림자 금융체제의 대안은 금융업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 즉 은행 중심 모델로 개혁하는 것이다. 최소한 소비자와 국민경제의 안전판은 마련해 두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비자와 국민건강에 미치는 유해식품의 해독을 예방하기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식약청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독성자산, 투기적 파생상품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유해함은 유해식품이 국민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따라서 유해한 금융상품에 대해서 투자자를 보호하고 금융위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금융상품안전청’ 설립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9.05.13 10:45
'스트레스 테스트'와 세계 경제위기 2라운드
도표가 포함된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http://saesayon.org에서 PDF파일 다운로드

세계경제 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던 미국 금융기관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자산 건전성 평가) 결과가 나오자 미국 내에서조차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하나마나한 검사였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워낙 완화된 기준에서 평가가 실시된 데다가 세부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탓에 금융기관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테스트

생물학에서 ‘스트레스’란 외부의 자극에 대한 유기체의 ‘자동적 반응’을 의미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유기체가 다른 개체로부터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게 하거나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생명체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으나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생존에 있어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심지어 아주 미미한 스트레스가 주어졌을 때 생명체는 오히려 저항의 정도를 감소시키고 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외부 자극이 얼마나 크냐는 것 못지않게 생명체의 자기 조절 반응이 어떻게 전개되느냐 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란 용어가 처음 물리학에서 사용되었을 때는 단순히 물체에 가해진 ‘외부 힘의 크기’를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생물학에서는 호르몬의 변화와 같이 ‘내부의 역량’이 훨씬 중요하게 취급된다.

금융부문의 스트레스 테스트는 외부의 충격을 시나리오 형태로 가정해 손실을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떤 충격이 가해졌을 때 이것이 개별적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연속된 사건으로 결합되는 것을 다루기 위해 시나리오를 사용한다. 테스트에서 핵심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금융기관의 자산이 적절하게 배분되어 있는지, 유동성이 확보될 수 있는지를 따져 충격에 대한 조직의 내성(robustness)를 평가하는 데 있다. 지난 5월 7일 미국 정부가 자국의 19개 대형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는 ‘외부 충격’과 ‘내부 반응’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검증이 결여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스트레스 테스트가 사기인 이유

현재의 경제위기는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 월가가 안고 있는 막대한 부실 자산이 해소되지 않는한 본질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스트레스 테스트가 부실 자산의 정리와 금융기관의 개혁으로 이어지기를 원했던 세계인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애초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제시한 기본 가정 자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연준이 테스트를 시작하면서 2월에 제시한 기본 시나리오에 따르면, 2009년 미국 경제의 실업률은 8.4퍼센트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미 이 수치는 지난 3월에 돌파해 실업률은 8.5퍼센트가 되었고, 최근 발표된 4월 실업률은 8.9퍼센트에까지 치솟았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지적대로 실제 경제지표들이 이미 테스트가 상정한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더 나빠졌기 때문에 이미 테스트의 의미는 상실된 것이다.

이외에도 미국 정부가 금융기관들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한 정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기업들의 1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회계기준을 완화해 수익성이 높게 나오도록 해준 것, 자본 확충 여부 결정의 기준을 유형 보통주(TCE) 자본비율 3퍼센트로 잡아 19개 은행 평균 4.39퍼센트보다 지나치게 낮게 잡아 준 것, 그리고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자본의 규모를 의미하는 무수익여신(NPL)이나 자본 잠식의 규모를 알 수 있는 대손율과 같은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은 것 등 무수히 많다.

미국 정부가 이런 하나마나한 심사를 실시한 이유는 애초부터 이번 심사의 목적이 금융기관의 부실 정도를 파악하는 데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취임 청문회에서부터 호기롭게 스트레스 테스트를 강조했으나 정작 그 동안의 진행 과정을 보면 오히려 금융시장의 요구에 충실히 따르고자 노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4월 말에서 5월 4일, 다시 5월 7일로 발표 시점을 연기한 것도 이런 맥락에 있다. 미국 정부는 주식시장을 예의주시하면서 주가가 불안한 기미를 보일 때마다 발표 시점을 연기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들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추가 자본의 규모를 축소시킨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결국 이번 스트레스 테스트는 금융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은행들의 부실을 모두 덮어주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 혹은 모의였던 것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결과는 예상 또는 사전에 흘러나온 내용 그대로였다. 막판에는 유형보통주(TCE) 비율 3퍼센트에서 자기자본비율(Tier-1) 4퍼센트로 금융기관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준을 바꾸면서 손실의 규모를 축소시켰다. 앞으로 2년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손실로 인해 19개 대형 금융기관들이 충당해야 할 자본의 규모가 뱅크오브아메리카의 340억 달러를 비롯해 총 750억 달러 규모로 나타난 것이다.

4월 21일 IMF가 ‘국제금융안정화보고서’에서 이미 발생한 부실자산 상각 규모가 2조 7,000억 달러이고, 당장 추가 투입해야 할 자금이 2,750억 달러에 이르는 것과 비교해 보았을 때 터무니없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KBW라는 투자은행은 자체적으로 시행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미국계 은행이 조달해야 할 자금은 모두 1조 달러에 이른다는 결과를 지난 4월 22일에 발표한 바 있다. 결국 미국 정부의 발표는 부실 규모를 최대 10분의 1까지 축소한 셈이다.

월가에 볼모로 잡힌 자본주의

지난 2월 말 스트레스 테스트가 처음 시작되고 발표되기 전까지 금융기관들의 ‘살생부’ 운운하며 주식시장이 잔뜩 긴장했던 것이 사실이다. 테스트 결과가 더욱 급격한 국유화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는 지난 해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의 사태를 경험하고 난 뒤, 금융기관의 파산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공인해왔다. 파산을 용인하지 않는다면, 부실 금융기관은 국유화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미국 정부는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씨티그룹에 각각 450억 달러를 지원하는 등 19개 대형 금융기관들에 수천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여하고 있다. 이미 정부가 최대 주주이므로 국유화되어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급격한 국유화’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정부가 경영권에 개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입된 공적자금이 ‘의결권 없는 우선주’에서 ‘의결권 있는 보통주’로 전환하면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 희석과 대주주들의 경영권 상실이 동반되는 것이다.

완전 자유 시장의 원리에서 보자면,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진 금융기관은 파산 절차를 밟거나 최소한 손실의 책임을 기존 주주들과 경영진에게 돌리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이럴 경우 발생할 수밖에 없는 주식시장의 경색을 정부가 두려워한다는 데 있다. 해당 금융기관들의 주가 폭락은 파생상품의 연결 고리를 타고 다른 금융기관의 부실로 전이될 것이고, 연이어 실물경제의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공포 말이다.

결국 돌이켜 보면, 이번 스트레스 테스트의 결과는 애초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더 이상의 진전된 국유화도 없고 금융자본의 퇴출도 없다면 결국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위기를 덮어두는 것 뿐이다. “예상보다 호전될 것이다(better than expected)” 이 한 마디가 금융기관의 부실을 덮고 경기바닥론을 전파하기에는 궁색해 보일 뿐이다.

금융위기 2라운드 국면 돌입

이번 테스트에서 기준으로 삼은 자기자본비율(Tier-1) 4퍼센트는 1998년 IMF 환란 당시 한국에서 사용한 8퍼센트에 비해 지극히 관대한 기준이다. 당시 IMF가 강요한 기준이 지나치게 혹독하며 실물경제와 고용의 피해를 외면한다는 비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기준 미달된 금융기관들을 강제로 구조 조정했다. 미국은 이제 자신의 차례가 되었으나 예전에 개발도상국들에 강요했던 기준은 쳐다볼 의사조차 없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런 완화된 기준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746억 달러 전체를 충당하지 못할 것이고 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당국은 우선주 형태의 기존 구제 자금을 보통주로 전환시키는 방안을 제시해 왔다. 엄밀히 말해서 이 방안은 은행들의 실제 보유자금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회계 상의 트릭(trick, 눈속임)인 셈이다. 은행들은 이 외에도 또 다른 형태의 트릭을 향후 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자산과 관련된 속임수였다면 아마도 앞으로는 영업매출에 집중되지 않을까 한다.

스트레스 테스트라는 요란한 쇼는 일단락되고 금융위기의 2라운드가 시작되고 있다. 1라운드와 같은 강력한 충격이 재발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이지만 금융기관들의 불안한 움직임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금융기관들은 정부가 제시한 이행 시한인 6개월 이내에 자본 확충에 성공해야 한다. 국유화를 피하기 위해 신주 발행을 통한 자본 확충에 주력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와 같이 주식시장이 신뢰를 갖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방법이 실패한다면 자산 처분이나 구제 자금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국유화의 논란도 계속될 것이다.

이상동/새사연 경제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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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위기설이 금융시장을 휩쓸더니, 이제는 ‘3월 위기설’이 등장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3월 위기설이 현실화 될 가능성은 낮다고 말한다. 불안과 위기가 만연한 지금의 경제 상황에서 새로운 위기설이 불거졌다고 해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럼 이번에는 어떤 문제들로 인해 또 하나의 ‘위기’가 점쳐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불안정한 외환시장은 위기설의 확산에 있어서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25일 현재 원-달러 환율은 1,516원으로 기록했고, 이 여파로 주가는 1,067원으로 떨어졌다. 이로써 올해 달러 대비 원화 환율 하락률은 -16.37퍼센트로 일부 동유럽 국가를 제외하고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에 투자된 자금이 미국과 유럽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금융시장 위협하는 3대 위기

구체적으로 미국의 상업은행발 금융위기, 동유럽발 금융위기, 일본발 금융위기라는 3가지 요인이 현 위기설의 진원지로 꼽힌다. 먼저 상업은행발 금융위기에 대해 알아보자. 지난해 9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시작으로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세계 금융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올해는 상업은행들이 이런 위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씨티그룹, 메릴린치,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 웰스파고 등 미국 주요 상업은행들이 지난해 4분기 실적에서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다. 무너진 투자은행을 인수하면서 부실이 확대되기도 하였고, 경기 침체로 순익 자체가 감소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태의 심각성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은행 국유화 방안이 무게있게 제기되고 있다.

다음으로 동유럽발 금융위기이다. 1990년대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자본주의로 복귀한 동유럽 국가들은 서유럽 자본의 유입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어왔다. 자체적인 경제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대외의존형 경제를 추구해온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그동안 투자된 자본은 급격하게 빠져나갔다. 결국 경제의 기반이 무너지고 국가채무는 갚을 수 없을 정도로 쌓여서 파산의 문턱에 서게 되었다. 이미 헝가리, 우크라이나, 리트비아 등 3개 나라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으며 루마니아, 불가리아, 리투아니아 등도 구제금융이 결정되었다. 문제는 이들의 파산이 이들에게 자본을 투자한 서유럽 은행들의 파산으로 이어지면서 세계 금융위기로 확산될 것이라는 점이다.

선진국 투자 자본의 급격한 유출 가능성

마지막으로 일본발 금융위기가 제기되고 있다. 국내에 유입된 일본계 자금이 3월 일본 기업들의 결산기를 맞아 일시에 회수되면서 금융시장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엔화 대출은 총 130억 달러에 불과하고, 이 중 3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금액은 20억 달러 미만이라고 한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위기는 현실화 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일본 역시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경제가 전 세계에 투자한 엔화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한다면 이로 인한 자금경색도 무시할 수 없다.

정리하자면 미국 상업은행 부실과 동유럽의 파산으로 인한 서유럽 은행의 위기, 일본의 자금회수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우리 경제에 투자된 자본이 급격히 유출될 수 있다. 자본 유출은 자금경색으로 인한 환율 폭등을 시작하여 채권금리상승,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매도로 인한 주가 하락 등 우리 금융시장에 위기를 가져올 것이다. 이것이 현재 이야기되는 제2의 금융위기다.

달러 확보 힘들어 불안한 외환시장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외환시장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이에 대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외환보유고를 축적하는 것 정도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정부의 외환보유고는 2,000억 달러를 겨우 넘어선 정도이다. 여기에 10월에 갚아야 하는 한미 통화스왑 자금 300억 달러를 계산하면 사실상 외환보유고는 2,000억 달러 미만인 셈이다. 시중은행들 역시 외화차입 사정이 좋지 않다. 이제까지 지나친 단기 해외차입을 해온 탓에 지난해 10월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 바 있어 달러 확보를 기대하기 힘들다.

게다가 최근 무역 감소와 선박 시장의 위축으로 조선업체에 발주 취소나 연기 요청이 늘어나고 있다. 조선업은 우리의 주력 수출 부문으로 달러 확보에 큰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조선업의 불황은 외환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특히 선박 수주가 취소되면 미리 받아놓은 선물환을 되돌려주기 위해 달러가 필요해진다. 초기 계약 당시보다 높아진 환율로 달러를 사서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위기설이 퍼지는 근본 원인

이렇듯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흥국의 금융위기는 대외적 금융충격에 따라 자금이 이탈하면서 환율이 급변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따라서 지금 정부가 취해야 할 대책은 외환시장에 자금을 풀거나 외환보유고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는 거대한 자금 변동에 대처하기 힘들다. 결국 본질적이면서 효과적인 대안은 대외적 금융충격으로부터 국민경제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다. 투기자본의 활동을 규제하고, 단기자본의 급격한 유출을 통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툭하면 터져나오는 위기설과 경제불안의 원인은 미네르바와 같은 경제 논객들의 비관론이 아니라 우리 경제 구조 자체에 있다.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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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09.02.23 10:50
실물경제 추락 속 커지는 ‘제2 금융위기’ 위험성
도표가 포함된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saesayon.org에서 PDF 파일 다운로드

세계 최고의 환율 폭등... 재연되는 환율 1,500↑, 주가 1,000↓

지난해 11월 이후 소강상태를 보이던 우리 금융시장의 위험 징후가 다시 뚜렷해지고 있다. 외환시장, 주식시장, 채권시장, 대출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제2의 금융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우선 한국 금융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외환시장이 또 다시 무너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결국 1,500원대를 돌파하고 말았다. 지난해 11월 25일 1,502.30원으로 마감된 이래 처음이다. 환율은 2월 20일 하루 동안 25원 오른 1,506원으로 마감했고, 그 여파로 주가 지수는 41.15포인트(3.72퍼센트) 급락하며 1,065.95로 무너져 내렸다.

이로써 올해 달러 대비 원화 환율 하락률은 -16.37퍼센트를 기록하면서 일부 동유럽 국가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최고의 하락률을 보였다(연합뉴스 2009.2.21, 그림 참조). 원-엔 환율도 1,599원까지 치솟으면서 1977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지난해 10월에 이어 또 다시 ‘환율 1,500원 이상, 주가 1,000포인트 이하’라는 위험 경계선을 넘게 되면 우리 금융시장은 심각한 문제들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 주식시장 역시 환율 폭등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1,100선이 무너졌다.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이 하루에 3,610억 원을 순매도한 결과다. 이 규모는 대대적인 주가폭락이 있던 2008년 10월 하루 평균 매도금액에 맞먹는 것으로 9거래일 연속으로는 그 규모가 1조 5,000억 원이 넘는다.

그간 주식시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온 외국인은 금융위기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던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주식 매수행진을 이어왔고, 그로인해 한국 금융시장은 안정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낙관론이 다시 무너진 것이다. 지난해 증시 구원투수역할을 했던 연기금이 또 다시 1,330억 원을 사들이면서 주가 방어를 하려고 했지만 자산운용사를 필두로 한 기관들은 전체적으로 주식팔기에 동참했다. 언제나 주가흐름에 역행하면서 손해를 떠안기만 하던 개미들은 또 다시 잘못된 예측으로 3,443억 원을 순매수하면서 큰 손실을 입게 되었다.

외국인들은 2월 20일 주식 선물시장에서도 무려 1,271억 달러를 순매도했다. 당분간 외국인 팔자 공세를 막을 유인은 없으며, 따라서 주가 1,000선이 붕괴할 것이라는 예상 시나리오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셋째, 채권시장 역시 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채권선물시장에서 3년물 국채선물은 28포인트 하락한 111.22로 마감했고, 그 결과 채권 금리는 다시 올라갔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16포인트 상승한 3.91퍼센트, 그리고 5년 만기 국고채는 5포인트 상승한 4.75퍼센트를 기록한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 불안 → 외국인 자금 이탈 → 환율폭등/주가폭락/채권금리 상승이라는 한국 금융시장의 취약한 위험 전달 시스템이 다시 한 번 전형적으로 작동하면서 금융시장의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모든 정책 수단을 다 썼는데도 금융위기가 재발한다면?

“전 세계 어디에도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기댈 만한 지표가 전무하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침체를 막고 세계 경제를 지탱해 줄 지역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지역이 침체에 빠졌다.”(워싱턴 포스트 2009년 2월 18일자)

IMF의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0퍼센트(2008년 10월) → 2.2퍼센트(2008년 11월) → 0.5퍼센트(2009년 1월)로 하향조정 돼왔다. 급기야 지난 2월 18일 도미니크 칸 IMF 총재는 “세계 경제 성장률이 ‘0’에 근접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0.5퍼센트 성장을 한다고 해도 60년 만에 최악의 침체로 가는 것인데 0퍼센트까지 추락한다면 적어도 올 한해 세계경제는 멈춰있는 상태를 피할 길이 없다. 한국에 대한 IMF 성장 전망치는 G20국가 가운데 최악인 -4퍼센트였다.

1979년 스태그플레이션 해결사로 나서면서 1987년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맡았던 폴 볼커(Paul Adolph Volcker) 미국 경제회복자문위원회(ERAB) 위원장은 2월 20일, “미국은 현재 ‘강력한 경제위기(massive economic crisis)’의 한 복판에 놓여있다”며 “이러한 위기는 과거 미국이 경험했던 전형적인 리세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해외 대부분 국가들의 산업생산이 미국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며 세계 경제가 아마도 지난 30년대 대공황 시절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악화될지 모른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이처럼 2009년 세계 경제전망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각 국가들의 경제 손상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으며 글로벌 경제 불균형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마당에, 그나마 2009년 들어 세계 경제 회복의 유일한 희망이 미국 신임 오바마 행정부의 신속한 경기부양책이었다.

그러나 취임 이후 7,870억 달러 경기부양책, 최대 900만 명의 주책 대출자를 위한 2,750억 달러 주택 지원 방안 등을 잇달아 발표했지만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이른바 오바마 기대효과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심지어 미국 국민들도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경제 회생에 효과를 발휘할 것이냐’는 질문에 단지 9퍼센트만이 긍정적으로 답했을 뿐이다(CNN머니가 네티즌 대상 설문조사한 결과).

오바마 기대효과도 잦아들고, 위기 극복을 위한 각국의 정책적 수단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위기가 재연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해 9월 이후 미국을 비롯한 각국은 이미 0퍼센트 수준까지 금리를 인하했고 양적 완화 정책까지 내놓았으며, 나라 간 통화스왑 체결을 통한 달러 유동성 협조, 구제금융 실시를 통한 은행부실 지원, 나아가 대규모 경기 부양책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가능한 정책은 대부분 풀어놓았다. 그럼에도 금융위기가 재연된다면 위기 방지를 위해 더 이상 쓸 수 있는 처방이 마땅치 않게 된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조속히 실시하고 부실은행을 국유화 하지 않는다면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를 쏟아내고 있다. 핌코(PIMCO)의 오제키 코요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는 2월 11일, “경기후퇴는 아직 초기 단계”라며 “주택가격의 추가 하락이 경기후퇴를 심화시켜 향후 6~12개월 이내에 제2의 금융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국 금융시장을 위협하고 있는 3대 금융위기 진원지

실물경제의 추가적인 추락이 계속되고 각 국가의 경기부양책이 별반 효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시 제기되고 있는 제2의 금융위기설은 한국 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현 금융위기의 특징은 자금이 신흥국으로부터 선진국으로 역류해 들어간다는 데 있다. 자금의 흐름이 투자용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부실 복구용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금융 부실은 알다시피 금융 본가인 미국과 유럽에서 터지고 있다. 따라서 금융위기가 터질 때마다 전 세계 자금은 신흥국에서 이탈해 주요 선진국들인 미국으로, 유럽으로, 일본으로 쏠리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과 같은 신흥국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연되면 주식시장, 채권시장, 대출시장에서 큰 폭의 자금유출이 발생하고, 곧바로 환율폭등, 주가폭락, 채권금리와 은행대출 금리 폭등으로 이어지면서 금융시장의 대혼란이 벌어진다.

이번에도 ▶ 미국과 유럽의 상업은행 발 금융위기 ▶ 동유럽에서 서유럽으로 확산되는 금융위기 조짐이 나타나고 있고, 여기에 이른바 ‘3월 위기설’과 관계되는 ▶ 일본 발 금융위기라는 3중의 금융위험 신호가 어김없이 한국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1) 선진국의 상업은행 발 금융위기 위험
지난해 9월 14일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부터 시작된 ‘투자은행 발’ 금융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 확산의 결정적인 기폭제였다면, 일찍이 올해 1월부터 가장 먼저 위기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른바 ‘상업은행 발’ 금융위기 움직임이다.

가장 큰 손실로 2008년 이미 구제 금융까지 받고 현재 금융그룹 자체의 해체과정을 밟고 있는 씨티그룹을 필두로 지난해 3위 투자은행 메릴린치를 인수했던 뱅크오브아메리카(BOA), 5위 투자은행을 인수했던 JP모건(JP Morgan Chase), 와코비아은행을 인수했던 웰스파고(Wells Fargo) 등 미국 주요 상업은행들의 인수기업 부실 확대와 본사의 실적 악화 등이 겹치면서 금융위기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유럽의 은행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전 세계 상업은행의 기능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1월 15일 CNBC와의 회견에서 “세계 금융회사들의 손실이 지금의 세 배인 3조 달러에 이르는 등 실물 경기 침체에 따른 금융 추가 부실로 상업은행들이 제2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를 한 바 있다.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으로 인해 결국 일시적이나마 은행 국유화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 2월 20일에는 은행 국유화를 끝까지 회피해왔던 미국에서도 크리스 도드 상원 은행위원회 위원장이 “나는 전혀 이를(국유화) 원하지 않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을 보고 있다”는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는 정부 관료와 의회관계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은행 국유화 가능성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이 같은 발언은 씨티은행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와 같은 상업은행의 부실이 국유화 이외의 다른 처방이 소용없을 만큼 막다른 상황에 이른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같은 날 이들 은행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미국 증시 전체를 끌어내렸다. 그 결과 올해 개장 첫날인 1월 2일 8,772포인트를 기록하며 출발한 미국 증시는 2월 20일에는 7,365.67로 추락했다. 한 달 20일 만에 1,407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마켓워치의 표현대로 “월스트리트가 또 다시 피로 얼룩진 한 주”를 보낸 지난주는 상업은행 발 금융위기가 재발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했다.

2) 급격히 부상하는 동유럽 발 금융 위기
높은 대외의존도와 심각한 국가채무로 이미 지난해 초부터 위험경고가 끊이지 않던 동유럽 발 금융위기가 2월부터 본격적인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사태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1990년 잇따른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로 복귀한 동유럽 국가들은, 한때 자본주의적 번영을 꿈꾸기도 했지만 불과 20년이 지나지 않아 국가채무로 인한 경제파산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다.

사실 그 동안 동유럽 국가들의 경제성장은 자체적인 경제체질 강화에 따른 것이기 보다는 대부분 서유럽의 자본유입의 결과였다. 즉, 대외의존형 경제를 추구해온 것이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그 동안 투자되었던 금융자본이 다시 미국과 유럽으로 급격하게 빠져나가면서 동유럽 경제의 기반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결국 늘어난 국가채무를 갚을 길이 없어진 것이다.

이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2009년 동유럽 판 외환위기로 재현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미 헝가리, 우크라이나, 리트비아 등 3개 나라는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았으며, 루마니아, 불가리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도 구제 금융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올해 들어서면서 2월 18일자 기준으로 폴란드(-24), 헝가리(-23), 체코(-18.4)의 통화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동유럽 국가들의) 통화가치 하락이 지난 1997년 태국 바트화 급락으로 인해 촉발되었던 아시아 금융위기와 유사한 규모를” 보이고 있다(이데일리 2009.2.18).

또한 동유럽 국가들의 GDP 대비 대외 부채비율은 체고슬로바키아가 86퍼센트, 폴란드가 49퍼센트, 헝가리가 93퍼센트에 이르는 등 대단히 높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국가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적어도 -2~-5퍼센트까지 추락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국가들은 -10퍼센트 이하로 무너질 수도 있어 위험에 대처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동유럽의 국가채무 위험을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시킨 것은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2월 17일 발표한 보고서였다. 무디스는 이 보고서에서 동유럽 금융과 채무위험이 서유럽 은행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고, 이것이 다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디스 보고서에 따르면 동유럽 국가들의 대외부채 규모는 약 1조 5,000억 달러로, 이 가운데 유로 지역 은행(서유럽 은행)들의 대출이 약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서유럽 은행들과의 연관도가 높다. 지난 수년간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독일, 스웨덴 등 6개국 은행들은 동유럽 국가와 은행들에 대규모 투자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Financial Times, , 2009.2.11).

그런데 동유럽 은행들이 점차 자산건전성 악화, 통화가치 하락, 단기자금 차입의 어려움 등으로 경영위기에 빠지고 있다. 단기차입금 약 4,000억 달러는 올해 안에 갚아야 하지만 부실이 커서 상환이 쉽지 않은 상태이고 자칫하면 총대출의 1/3까지도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동유럽 은행의 부실을 막기 위해서는 서유럽 은행들이나 유럽연합(EU)이 추가로 자금을 투입해야 하지만, 현재 자신들도 부실자산으로 유동성 부족을 겪고 있는 상황이니 자금지원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유럽 은행의 부실이 서유럽 은행의 부실로 이어져 결국 유럽 발 금융위기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는 ‘동유럽 금융위기 → 서유럽 은행 유동성 부족 → 서유럽 은행들의 자금회수 → 한국 채권시장과 주식/대출시장의 유럽자금 회수 → 한국 금융시장 위기’의 흐름을 따라 한국 금융시장에도 전이될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은행권의 총 외화차입 850억 달러 가운데 25퍼센트가 서유럽 은행에서 조달한 것이고, 이 가운데 100억 달러 가량이 2009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한국경제 2009.2.20).

덧붙인다면 우리나라 은행들이 동유럽 국가 은행들과 기업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직접적 손실위험금액(exposure)은 총 18억 달러, 한화로 환산하여 약 2조 6,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유럽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금액과 이들 은행들에 대한 대출금, 지급 보증금등이 있다(이데일리 2009.2.18)

3) 꺼지지 않는 일본 발 ’3월 위기설’
국내에 유입된 일본계 자금들이 3월 일본 기업들의 결산기를 맞아 일시에 회수되면 국내 금융시장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3월 위기설’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제기된 이슈였다. 위기설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엔화 대출이 총 130억 달러에 불과하고 그 가운데 3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금액은 20억 달러 미만이라며 차입 내역을 공개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9월 위기설’의 요인이 되었던 만기 채권 67억 달러에도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고 보면 3월 위기설은 정부 말대로 근거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20억 달러는 직접적인 상환 부담 자금일 뿐이다. 사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일본조차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마당이라서 일본경제가 자국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에 투자했던 엔화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제3국들의 자금 경색이 심화되면 이것이 다시 한국 금융시장에 미치는 간접적인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즉, 일본 은행의 한국 투자자금 회수 → 한국 시중은행 외화난 뿐 아니라, 일본 은행의 세계적 자금 회수 → 유럽/아시아 은행 자금난 → 한국의 시중은행 자금난으로 충격파가 전달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 주장대로 ‘3월 위기설’이 그저 설로 끝난다 하더라도 다른 금융위기 요소와 결합해 한국 금융시장을 당분간 불안하게 할 것이라는 점만은 틀림없다.

결론적으로, 글로벌 실물경제 추락이 예상을 뛰어넘어 가속화되는 가운데 각 국가의 경기부양책은 아직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업 은행 발 금융위기, 동유럽 발 금융위기, 일본 발 금융위기가 복합적으로 한국의 금융시장을 엄습해오고 있는 것이 ‘제2의 금융위기’의 실체다.

외환시장 붕괴조짐, 기댈 곳이 없다

외부에서 발생한 제2의 금융위기는 한국 금융시장 가운데 외환시장에 가장 먼저 충격을 미친다. 우리나라 대미 환율은 2008년 말 1,259원에서 2월 20일 현재 1,506원으로 폭등하여 주요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이 와중에 21일 역외 선물환(NDF) 시장에서는 전날 서울 외환시장보다도 높은 1,514원의 환율을 기록하기도 했다(연합뉴스 2009.2.21). 달러 대비 환율 폭등에 따라 엔화 대비 환율 역시 2월 20일 1,599원까지 상승했다.

사실 달러 기축통화 체제 아래에서 자국 통화를 국제거래의 결재수단으로 사용할 수 없는 한국과 같은 신흥국가들은 급격한 환율변동 앞에서 언제나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외환보유고를 축적하여 대비하는 것이 그나마 유일한 해법이겠지만, 그 조차도 3개월 수입결제 대금을 축적하면 되는지, 아니면 1년 안에 돌아오는 대외채무를 지급할 정도면 되는지도 불확실하다. 더구나 기축통화국가인 미국의 유동성 부족으로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과 같은 포트폴리오 투자자금마저 급격히 회수하는 상황에서는 대비 자체가 용이하지 않다.

특히 이번의 환율 불안은 2008년 하반기와는 달리 실물경제 하락과 국제적/동시다발적 금융위험이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발생한 탓에 위험을 완화시킬 환경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로 인해 해외 달러 차입 차단, 외국인 주식과 채권 투매, 경상수지 적자 우려와 외환보유고 축소가 서로 맞물리면서 환율이 올라갈 요인만 쌓여있고, 반대로 환율안정을 위한 어떤 환경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환율 불안으로 수출업체들마저 달러를 국내 외환시장에 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정확히 2008년 10월의 상황과 같다.

환율 불안정성이 고조되자 잠잠하던 해외 환투기세력도 다시 환율급등을 부추기고 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환율이 1,400선을 넘어서면서 해외 환투기 관련 펀드를 주축으로 한 역외세력이 대거 달러 매수에 나서고 있다”며 “투기성 매매가 짙은 것으로 의심”된다고 분석했다(서울경제 2009.2.20).

해외 발 금융위기가 확산되고 수출 감소폭이 커지는 가운데, 3월에 돌아올 주주총회에서 외국인 배당이 실시되면 환율은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환율이 폭등하면 국내 금융시장의 신용위험이 높아질 뿐 아니라 농산물, 석유제품, 원자재를 포함한 수입물가와 중간재 부품 수입가격도 높아져 실물경제를 직간접적으로 다시 위협할 것이다.

1) 외환보유고를 동원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
환율 공포가 다시 확산되는 가운데 정부당국은 “걱정스럽게 지켜보기만”할 뿐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008년 강만수 경제팀처럼 외환보유고를 시장에 풀어 환율방어를 하는 방식은 전혀 효과가 없음이 이미 증명되었다. 더욱이 현재는 외환보유고가 겨우 2,000억 달러에 턱걸이 하고 있는 상태인 데다 한미 통화스왑 자금도 이미 300억 달러 가운데 150억 달러 이상을 인출해 사용한 상황이라 외환보유고를 움직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9월부터 사실상 순채무국으로 돌아선 한국의 외채는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해외자금 차환이나 추가 차입이 어려워져 빚을 갚았기 때문에 대외채무(갚을 돈)가 약 450억 달러 줄어들었지만, 국내 외환유동성 공급을 위해 정부당국이 보유했던 해외채권(받을 돈)을 대거 처분한 탓에 대외채권은 더 큰 폭으로 줄어들어 534억 달러나 되었다. 그 결과 순대외채무는 2008년 말 현재 323억 4,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그 결과 단기 외채를 갚아서 유동외채가 다소 줄었다고는 하지만 외환보유고는 더욱 큰 폭으로 줄어 유동외채/외환보유고(외환보유고로 1년 안에 갚아야 할 외채)를 의미하는 유동외채 비율은 1년 전의 77.8퍼센트에 비해 큰 폭으로 올라 거의 100퍼센트에 근접한 96.4퍼센트나 된다. 단순하게 보면 가지고 있는 외환보유고 거의 전부를 소진해야 1년 안에 돌아오는 해외 채무를 갚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10월까지 만기가 연장되었다고는 하지만 한미 통화스왑 자금 300억 달러를 감안하면 이미 사실상 외환보유고는 2,000억 달러 미만으로 줄어든 것이나 다름없어 정부의 외환시장 관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2) 은행의 대외차입 여건 재 악화
2008년 10월 우리나라의 외환위기에 대한 우려는 주로 시중은행들의 지나친 단기 해외차입 때문이었다. 갚아야 할 대외차입이 막대함에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차입금 만기연장이 불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해외은행으로부터의 추가적인 달러 차입 자체가 가로막힌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 뒤 은행에 대한 정부의 달러 직접 투입과 지급보증, 300억 달러 한미 통화스왑 체결 그리고 은행 자본 확충 등으로 한동안 완화된 것처럼 보였으나, 최근 국내은행의 달러 유동성과 원화 유동성 문제가 다시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최근 은행들이 단기 외화차입 만기연장 비율이 종전 50퍼센트 수준에서 100퍼센트 이상으로 호전되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3개월에서 6개월로 단기연장 되었을 뿐이고, 한미 통화스왑 300억 달러를 동원해 역시 외환보유고 축소를 일시적으로 막은 효과일 뿐이다. 즉, 위기가 지연되긴 했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시중은행의 외화사정 악화는 지난 2월 10일에 있었던 한국의 달러 경쟁 입찰 20억 달러가 모두 낙찰된 데서, 또 최근 한국 시중은행들이 해외에서 차입할 때 물어야 하는 가산금리가 5퍼센트 후반대로 올라간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은행이 회수할 것으로 예상했던 4억 달러 대외채권을 회수하지 않는(콜옵션 미행사) 상황이 벌어지자 시중은행들의 외화 유동성 여력을 다시 의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국내 시중은행들의 외환 유동성 경색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금 글로벌 신용경색이 심화되자 시중은행들의 달러 부족과 외화 차입금 상환에도 다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2009년 2~3월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외화 차입금은 총 104억 달러, 올해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은 약 245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한국은행, 국내 은행의 외화차입 동향, 2009.2)

이들 단기 차입을 근원적으로 해결하자면 외화 장기채권 발행을 늘려야겠지만 현재로는 이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설사 국가가 보증을 선다 해도 국가의 신용등급 자체가 높지 않기 때문에 효과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3) 조선사의 선박수주 계약 연기와 취소 위험성
국제적인 무역 거래 감소와 선박 금융시장 위축으로 중소 조선사뿐 아니라 대형 조선업체들에게도 발주 취소나 인도 연기 요청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그 동안 조선업을 주력 수출부문으로 삼아 달러를 확보해온 한국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을 주고 있다. 외환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또 다른 변수가 생긴 셈이다.

특히 선박 수주가 취소될 경우 선물환을 미리 팔아놓은 조선사와 이를 받아준 은행들이 선물환을 청산하기 위해 달러를 사들여야 한다. 물론 계약 연기나 취소시에 환헤지 조건을 어떻게 협상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반적으로 과거에 선물환 매도 계약을 할 때에는 달러 값이 1,000원 전후였지만, 지금 선물환 청산을 위해 달러를 사들이자면 1,400원 이상을 줘야 한다.

“조선사는 지난 2~3년간 선박을 수주하면서 환헤지를 위해 수주 계약금액에 해당하는 달러를 선물환거래시장에서 미리 팔아버리게 된다. 2009년 2월 현재 선박수주 잔량이 2,000억 달러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90퍼센트가 선물환 매도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선주가 발주를 취소하게 되면 당연히 선박납품 대금(달러)을 받지 못하게 되고 조선사는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일부러 사서 선물환 매도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한국경제 2009년 2월 18일자)

4) 채권시장 자금유출 가능성도 확대
정부의 가용 외환보유 여력의 축소와 은행의 차입여건 악화에 이어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서의 외국인 자금의 추가 이탈 역시 외환시장의 주요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 지적한 주식시장 외국인 이탈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확률이 높은데다가 채권시장에서마저 이탈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

이미 2008년 10~12월 국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이 지속적으로 이탈했던 적이 있다. 최근에는 국내 기준 금리가 2퍼센트로 내려가면서 우리나라의 높은 금리를 노리고 들어오려던 동인마저 사라졌다(LG경제연구원, <국내 외국자본의 흐름진단>, 2009.2). 여기에 특히 한국 채권을 상당한 규모로 사들이던 유럽 은행들이 동유럽 발 금융위기에 몰리면서 채권 매도로 돌아설 가능성도 짙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결국 ‘선진국 유동성 부족 재발 → 국내 주식매도/채권 매도 → 환율 폭등 → 국내 증권가치 하락 → 추가적인 주식/채권 매도’의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마저 안고 있다. 이처럼 주식시장, 채권시장, 은행의 해외차입, 그리고 수출 증대를 통한 달러획득 등 외환시장을 시장 시스템 안에서 안정화 시킬 수 있는 방안들이 모두 어렵게 되면서 한국 금융시장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한국 금융 시스템의 2대 과제

세계적으로 실물경기 침체가 예상을 뛰어넘어 빠르게 역성장 하고 있는 가운데 동시다발적으로 밀어닥친 제2의 금융위기 위험성은 미처 수습되지도 않은 한국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다시 실물경제를 악화시킬 것이다.

특히 금융위기가 소강국면에 접어든 지난해 12월~올해 1월에 정부와 한국은행이 금리를 잇달아 인하하고 원화유동성과 외화유동성 공급에 나서는 한편, 은행을 상대로 자본 확충을 요구하면서 은행의 자금사정은 나소 나아졌다. 하지만 이 자금이 가계와 기업으로 흘러들어가지는 못했다. 늘어난 자금은 머니마켓펀드(MMF)와 같은 단기 금융시장으로 흘러들어갔을 뿐이었다. 올해 접어들어 MMF 잔액이 110조 원으로, 120조 원으로 늘어나고 고정적 투입처를 찾지 못하는 부동자금이 500조 원을 넘었던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 결과 A등급의 준우량 기업까지는 겨우 회사채 발행이 되고 있지만 여전히 BBB등급 이하는 회사채 발행 자체가 쉽지 않다. BBB+ 회사채 금리는 2월 현재 12.5퍼센트 수준으로 지난달에 비해 오히려 올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2008년 9월부터 시작된 1차 금융위기 이후에도 국내 금융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3개월 만에 다시금 2차 금융위기 위험성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 대외적인 금융충격으로부터 국민경제의 자율성을 일정하게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고, ▶ 대내적으로는 금융의 정상적 자금 중개기능을 확보하는 공적 금융서비스를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금융의 양대 과제다.

대외적인 금융충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했던 것과 같은 외환시장에 자금을 풀거나 외환보유고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대책들이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의 대응은 이제 시장개입이라는 방식을 넘어 제도적 개편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선진국의 금융위기는 자국 금융회사의 부실과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의 부족 등으로 발생하지만 신흥국의 경우는 대외적 금융충격에 따라 환율이 급변하고 국내 유입자금이 이탈하면서 발생한다는 사실이 이미 명확해졌다. 그렇다면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는 환율제도 자체의 개혁을 포함하여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에서의 투기적 자본의 활동에 대한 규제 그리고 단기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 장치를 확보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선진국 발 금융충격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특히 은행의 공공성 회복과 가계와 기업의 자금흐름을 보장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대책과 처방이 필요하다. 특히 그동안 국유화와 같은 공격적인 처방에 미온적인 미국마저도 일시적인 국유화 정책을 검토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을 만큼 긴박한 비상국면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형적인 자유시장주의자이자 현 금융위기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앨런 그린스펀 FRB 전 의장조차 국유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있는 현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그는 “잘못된 금융시스템을 바로잡고 신용경색을 풀기 위해 미국정부가 일부 은행에 대해 일시적인 국유화 조치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그다지 나쁜 선택이 아니라고 주장했다(파이낸셜 타임즈, 2009.2.17)

뿐만 아니라 일부 공화당 의원들까지 국유화에 대해 적극적 찬성 입장으로 돌아서고 있는 중이다. 그야말로 극적인 방향전환이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이에 대해 “미국 정치권이 은행 국유화 쪽으로 무게가 실리는 데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미국의 대책은 세계적으로 가장 늦게 실행되면서 위기를 키우는 면이 있는데, 아마도 우리는 미국에서 실행이 된 뒤에서야 겨우 흉내를 내기 시작할 것이다. 정부의 말과는 전혀 다르게 선제적인 대책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한국경제의 금융과 실물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공적자금 조성의 불가피성, 은행 국유화 불가피성, 중소기업 직접지원 불가피성, 감세 유보 불가피성 등 적어도 4가지의 정책적 불가피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는 이념적인 문제를 떠나서 경제위기를 수습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실질적 공적자금 조성과 은행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소극적으로나마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이 이를 입증한다. 허경욱 기획재정부 차관은 2월 19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이 8퍼센트 이상인 은행에 대해서도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입법안을 4월 중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또한 금융위원회는 같은 날 외환위기 이후 11년 만에 실질적인 공적자금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전담해온 자산관리공사(캠코, KAMCO) 산하에 ‘구조조정기금(가칭)’을 신설하기로 하고 구조조정채권을 발행하기로 한 것이다. 아울러 캠코의 자산도 3조 원 이상으로 확충할 예정이다.

불가피할 때 가장 효과적인 대처법이 무엇인가. 정부가 여러 번 되풀이해 주장한대로 끌려가기보다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이자 가장 효율성이 높은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병권/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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