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8.11.18 10:06
“금융위기는 아직 진정되지 않았는데, 그보다 더 두려운 실물경기 침체는 이미 시작되었다”

우려하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해결이 아직 실마리조차 잡히지 못한 상황에서 금융위기보다 더 위협적인 실물경기 침체가 오리라던 예상이 눈앞의 현실로 닥쳐오기 시작했다.

실물경기 침체가 다시 금융위기를 증폭시켜

베스트바이(Best Buy)에 이어 미국 2위의 가전 유통업체인 60년 역사의 서킷시티(Circuit City)가 2008년 11월 10일 3/4분기 손실 약 2억 4,000만 달러를 내면서 결국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국제우편과 화물배송 회사인 DHL 역시 미국 법인의 감원규모가 1만 5,000명으로 늘어났으며,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금융가에서는 이미 11만 명이 해고되는 등 미국 내 기업들에 구조조정과 감원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2008년 3/4분기부터 미국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내총생산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소비지출도 급격한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2008년 3/4분기 소비는 이미 3.1퍼센트 감소했고, 4/4분기에는 2.9퍼센트 감소, 2009년 1/4분기에는 1.3퍼센트 감소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2차 대전이후 최대의 소비 침체라고 할 만하다. 미국 경제 성장의 동력이자 세계 경제 성장의 엔진인 미국의 소비가 본격적으로 꺼져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국민의 소비감소는 미국 기업의 감산과 구조조정, 그리고 실업자 증가로 이어진다. 2008년 10월 실업률은 6.5퍼센트로 14년만의 최고치이며 이로써 공식적인 실업자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2009년 실업률을 8퍼센트 이상으로 보고 있다. 2008년 1~10월 사이에 줄어든 일자리만 해도 120만 개에 이르는데, 2008년 9월 비농업 부문 고용 감소는 28만 4,000명이었고 10월은 24만 명이었다. 금융위기가 실물로 전이되기 시작한 2007년 12월 이후 연속되는 감소세다. 그러다 보니 2008년 11월 현재 1주일 이상 실업수당을 신청한 실직자는 25년 만에 최대로 389만 7,000명에 달했다.

‘미국 금융위기 → 유동성 감소와 자금조달 위기 → 소비 위축 → 기업의 감산과 구조조정 → 실업 확대 → 소비위축’의 악순환구조를 따라 미국 경제가 불황의 기나긴 터널로 진입하고 있음이 확실해졌다. 그리고 이 같은 실물경기 침체는 필연적으로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이어지고 기업 실적 악화는 다시금 주식시장 폭락과 금융회사들의 자금회수능력 약화로 이어지면서 금융위기를 증폭시키게 된다.

미국 실물경기가 어느 수준 위기까지 치달을 것인지에 대한 시금석이 바로 자동차 3사가 몰려있는 디트로이트의 경제이며, 그 중심에 미국 최대 자동차 기업이라고 할 GM이 있다. 지금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가 GM의 생사여부를 둘러싸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선거사상 최대의 이변이라고 할 오바마 체제가 2009년 1월 20일 정상적으로 출범할지의 여부도 GM을 중심으로 한 미국 자동차 산업의 회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2000년대 초 최대 93달러를 넘나들었던 GM의 주가는 2008년 2월까지만 해도 28달러 선을 유지했다. 그러나 실물경기 침체가 확산되기 시작한 11월에 접어들자, GM의 주가는 11월 11일자 종가 기준으로 무려 2.92달러까지 무너져 내렸다. 10개월이 채 안 된 기간 동안 1/10토막이 났다.

GM은 제조업의 리먼 브라더스가 될 것인가

주가 2.92달러의 시점에서 GM의 시가 총액을 계산해보면 우리 돈으로 약 1조 원 남짓된다. 이는 시가 총액이 68조 원에 이르는 삼성전자 주식으로 GM을 68개나 살 수 있다는 얘기와 같다. GM을 더욱 황당하게 만드는 사실은 11월 10일 독일 은행 도이체방크(DeutscheBank)가 GM의 ‘목표 주가’를 제로(0) 달러로 제시하면서 투자자에게 매도할 것을 주문했으며, 비슷한 시각 영국 금융기관 바클레이즈(Barclays)도 GM의 목표 주가를 1달러로 전망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GM 주식은 조만간 휴지조각이 될 것이니 보유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상의 ‘사망선고’를 한 셈이다.

그런데 GM의 주가가 추락한 것은 단순히 미국 금융시장의 위기로 주식시장이 폭락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내구재를 중심으로 해서 이미 위축되기 시작한 미국의 실물경기 침체, 특히 소비 위축을 반영하고 있다.

2008년 들어 미국 내 자동차 판매는 이미 감소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특히 미국 자동차 업계의 판매 감소가 두드러진다. 2008년 1월에서 10월 사이 미국 자동차 3사의 미국 판매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1.5퍼센트나 줄어들었는데 이는 일본 자동차의 8퍼센트, 한국 자동차의 1.9퍼센트 감소보다 훨씬 큰 폭이었다. 더욱이 소비위축과 실물경기 침체가 두드러진 10월 GM의 판매는 45퍼센트 감소를 기록했는데, 이는 미국의 다른 자동차 회사는 물론이고 일본이나 한국의 자동차 판매 부진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그러다 보니 GM의 경영실적은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었고, 최근 수년 동안 이어온 적자 행진은 더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GM은 2008년 들어 1/4분기부터 3/4분기까지 연속 적자를 보고 있는 중이며, 3/4분기 손실만 해도 25억 3,2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즉, ‘미국 금융위기 → 실물경기 침체 → 소비위축 → 내구재 소비위축 → 자동차 구입 감소 → GM의 손실 확대’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GM은 당장 운영할 수 있는 유동자금이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으며, 2008년 11월 현재 현금 운영자금이 약 162억 달러로 알려졌다. 운영자금이 한 달에 거의 20억 달러씩 줄어들고 있는 정황을 미루어 볼 때, 정부 지원이 없다면 2009년 상반기에는 결국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은 단순한 우려가 아니다. 이런 상황이니 릭 왜고너 GM회장이 “GM을 파산하게 놔두면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와 같은 사태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 연방정부의 긴급 구제 금융을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전 세계로 실물경기 침체가 확산되고 있는 국면에서 매출 감소는 미국 자동차 산업이나 GM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럽에서 자동차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 역시 2008년 10월까지 자동차 판매량이 310만 대로, 전년 대비 10만 대가 줄어들었으며 BMW를 비롯하여 주요 자동차 산업들이 조만간 공장 가동을 순차적으로 중단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높다고 알려진 일본 자동차 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도요타와 닛산 등 8개 완성차 업체의 감원 규모가 2008년 11월 초 현재 9,700명에 달했고 2008년 안에 1만여 명에 이를 예정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적자 행진에 현금 보유고까지 말라버린 GM의 생존은 그 어느 자동차 회사보다도 절박한 상황이다. 만약 GM이 구제금융을 받지 못해서 지난 9월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와 마찬가지의 운명에 내몰리면 그 파장은 얼마나 될까? 미국 자동차연구센터(CAR)에 따르면 자동차 3사 가운데 단 한군데만 파산해도 당해 실업자가 250만 명, 2011년까지 추가 실업자가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위기 여파로 이미 1,000만 명의 실업자를 양산한 미국 고용상황에 더욱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설비과잉과 부채에 의한 가수요 창출

그런데 GM이 누구인가? 2007년 도요타에게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76년 동안 세계 제1위의 자리를 지켜왔으며 41개국에 지사를 두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통했던 회사가 아닌가? GM은 한 해 1,000만 대가 넘는 자동차 생산능력을 갖고 있으며,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의 13.3퍼센트에 해당하는 940만 대를 판매하며, 한 해 1,78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왔다. GM이 거느리고 있는 전 세계 지사에 고용된 인원은 25만 명을 훌쩍 뛰어 넘는다.

그런 GM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을까? 여기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변해왔던 자동차 산업 환경과 이에 대한 GM의 대응방식에 원인이 있다. 사실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은 이미 설비과잉으로 오랫동안 문제가 누적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2007년 현재 약 1,70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만큼 설비가 과잉되어 있다. 설비과잉은 자동차 회사들의 자산대비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이다. 1970년대에는 약 20퍼센트까지 달했던 자동차회사들의 경상이익률은 현재 5~7퍼센트대로 하락했다.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자동차회사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거대 자동차회사들의 경쟁은 시장이 포화되어가는 미국, 유럽,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신흥국에서도 벌어졌다. 이는 해당 국가에의 공장증설을 필요로 한다. 결국 전 세계적으로는 자동차 설비가 과잉되어 있으나, 계속해서 생산능력을 확대해가는 구조에 빠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GM을 비롯한 미국의 자동차 회사는 적극적인 외주화, 분사화와 제조업 공장의 해외 이전을 통해 경쟁을 돌파하는 전략을 써 왔고 다른 한편에서는 늘지 않는 자동차 수요를 확장하기 위해 자동차 할부금융 시스템을 도입하여 이른바 ‘부채’에 의한 가수요를 창출해왔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중산층은 실질소득이 증가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동차 수요를 일정하게 증가해 왔는데 여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미국의 가계는 차입을 통해 부동산을 구매해 왔던 것처럼 자동차 구매 역시 차입에 의존했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미국 시장에서 GM의 점유율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50퍼센트에 육박하여 반독점법 대상에 오를 정도였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점유율은 점차 떨어지고, 금융위기를 겪기 시작한 2007년과 2008년을 경과하면서 매우 급격하게 하락했다. 2008년 현재 미국 자동차 3사의 미국 점유율은 48.3퍼센트인 반면 일본 자동차는 39.7퍼센트로 올라섰다.

이 같은 점유율 하락은 곧바로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2005년 이후 GM의 적자폭은 커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2007년 387억 달러 적자(최종 조정된 손실은 230억 달러)에 이어 2008년 9월까지 이미 2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미국과 세계의 실물경기 침체와 소비위축까지 본격화되면서 절대적인 시장 축소가 진행되자 GM을 포함한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을 등한시하고 금융을 선택한 대가

그렇다면 왜 미국의 자동차 3사 중에서도 특히 GM의 쇠퇴가 유난히 두드러질까? 1980년대 이후 가속화되기 시작한 ‘경제의 금융화’ 현상이 GM에게도 예외 없이 관철되고 있기 때문이다. GM의 쇠퇴는 이미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2000년 이후에 GM이 거둔 이익의 상당부분은 사실 자동차 판매가 아니라 GM의 금융자회사인 GMAC로부터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GM역시 여타의 미국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보다는 금융회사를 사업영역으로 끌어들이고 금융부문에 주력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 금융회사가 다름 아닌 GMAC였다.

미국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2006년까지만 해도 GMAC는 GM에게 약 22억 달러의 수익을 가져다주면서 GM 자동차 부문의 손실을 메워주던 효자 기업이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터진 2007년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2007년 GMAC가 낸 순손실은 23억 달러에 이르렀고 49퍼센트의 지분을 소유한 GM은 이 가운데 11억 달러의 손실을 흡수할 수밖에 없었다. 2008년 들어서면서 GMAC의 손실은 더욱 증가하여 3/4분기에만 25억 2,000만 달러 손실을 기록한다. 이 가운데 모기지 관련 손실이 19억 달러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데 GMAC 역시 2000년대 과열되었던 모기지 대출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GMAC의 모기지 관련 손실은 10월까지 총 91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GM이 10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에 의하면 GMAC의 자회사인 모기지 금융업체 레지덴셜캐피털(ResCap)은 부실 채권 증가로 생존 가능성 자체가 회의적이다.

GMAC의 위기는 GM에게 직접 재정손실을 가져다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GMAC의 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자동차 신규 할부 대출을 줄여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는 다시 자동차 판매 자체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자동차 산업 부진을 금융으로 메워왔던 GM이 이제 역으로 금융부문의 손실로 인해 GM 전체가 흔들리는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경제의 금융화가 미국의 전통적 제조업인 GM에게 어떤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전통적 제조업들은 설비 투자 기간과 투자 회수기간이 비교적 긴 제조업 경쟁력 강화보다는 회수기간이 짧고 한때 고수익이 보장되던 금융부문에 치중한 결과,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상실했다. 여기에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회생 가능성 자체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강성노조인 전미자동차노조(UAW)의 무리한 복지혜택 요구가 회사 경영을 더욱 어렵게 했으며 의료보험과 연금혜택이 부담이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것이 GM 몰락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미약하다.

미국 정부는 GM을 살려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GM의 운명, 나아가 디트로이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10월 한 때 크라이슬러 지분 80.1퍼센트를 보유한 사모펀드 서버러스캐피털매니지먼트(CerberusCapitalManagement)가 자신이 보유한 GMAC 지분 51퍼센트를 지렛대로 하여 GM과 클라이슬러 합병을 주선했지만, GM의 10월 손실이 커지면서 이마저도 가능성이 희박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GM의 회생 가능성은 좁아지고 있다.

또한 ‘에너지 고효율 자동차 개발’ 명목으로 의회에서 통과된 250억 달러 외에 100억 달러 긴급 구제요청을 한 GM의 요구를 부시행정부가 거절한 상태다. 그런데 부시 정부가 월가를 살려내기에만 여념이 없던 것과 달리 미국 민주당과 새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는 자동차 산업을 살려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주목이 된다.

그러나 다음의 몇 가지 어려움들로 인해 오바마 당선자나 미국 민주당이 나선다고 해서 문제가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다. 첫째, 미국 자동차 산업의 절대적인 경쟁력 약화가 한참 진행된 상태에 있다. 둘째, GM은 이미 상당한 적자를 안고 있어 어지간한 자금 투입으로는 몇 개월도 생존하기 쉽지 않다. 셋째, 아직 금융부문의 구제 금융을 위한 재정지출은 물론, 미국 소비자들의 신용회복을 위한 지원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연방정부의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 넷째, 결정적으로 이미 과잉된 자동차 시장 국면에 더하여 절대적인 내구재 소비위축과 시장축소가 시작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서 월가에서도 GM에 구제 금융을 지원하기 보다 차라리 파산시키는 것이 낫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의 1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인 빌 아크만은 “GM은 부채가 너무 많고 계약 조건들도 경제적이지 않아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어 왔다”면서 “GM이 현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돈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잘 준비된 파산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규모 실업 여파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월가다운 발상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일단 미국 민주당 지도부는 정부가 미국 자동차 3사(GM, 포드, 클라이슬러)의 지분을 인수하는 대신 250억 달러의 긴급 구제 금융을 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금융회사들을 살리기 위해 마련된 7,000억 달러 가운데 일부를 돌려 지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 자동차업계 앞에 놓인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민주당은 미국 자동차 업계가 먼저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실시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이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의지를 가진 오바마 당선자의 취임식인 2009년 1월 20일까지 GM이 견뎌내기에는 힘든 상황에서 의회가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지만, 의회조차 상황을 풀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GM의 위기, 한국경제와 무관하지 않아

그렇다면 GM이 처한 절대 절명의 위기는 미국 경제만의 위기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특히 한국은 더욱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2002년 GM이 인수한 한국 자동차 회사인 GM대우가 있기 때문이다. GM대우는 국내시장 보다는 GM본사를 통한 수출이 전체 판매의 8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회사다. 때문에 GM의 운명은 곧 GM대우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 최근 발표에 의하면 GM대우는 토스카와 윈스톰을 생산하는 부평 2공장은 내년 3월까지 조업일수 기준 총 45일간 조업을 중지할 예정이고, 군산공장은 31일, 부평 1공장과 창원공장은 각각 10일 동안 조업을 중단할 예정이라고 보도되었다. 미국 GM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여하에 따라 더욱 악화될 여지도 있다. 한국 제조업이 세계 실물경기 침체의 타격을 직접 받게 되는 순간이다.

GM 대우 외에 외국계 자동차 업체인 쌍용자동차와 르노삼성 자동차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쌍용자동차는 최근 사내 협력업체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로 했고 르노삼성도 이달 중 팀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받는 방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업계에도 본격적으로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닥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구조조정’, 그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경영문제가 아니다. 11년 전 외환위기를 겪었던 우리 국민들에게는 그 어떤 단어보다 고통스러운 것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외환위기 때처럼 혹독한 구조조정을 했다가는 경제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경제가 동반 침체된 상황에서 대폭적인 구조조정은 경제가 다시 기대고 일어날 언덕 자체를 없애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경제에서도 구조조정은 단지 해당 기업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는 차원을 넘어서 경제의 회생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게 될 수도 있다.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한 손쉬운 답으로서 구조 조정을 쉽게 거론해서는 안 된다.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8.10.29 11:13
주주가 아니라 정부에 손 벌리는 은행들

“주주 이외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2003년 신용카드 대란이 일어나고 그 여파로 지금의 신한카드에 인수합병된 LG카드가 부도위기에 몰리자, 정부가 국민은행에 지원요청을 했을 때 당시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이를 거절하며 내뱉은 말이었다.

기고만장했던 은행들은 세계 금융위기가 한국을 덮친 현재 외화차입이 어려워져 극심한 달러 유동성 부족에, 은행채를 소화하지 못해 원화 유동성 부족마저 겪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카드에도 불구하고 시중금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은행채와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은행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떠받들던 주주가 아니라 정부를 향해 구원의 손을 벌리며 아우성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외환위기와 국내 금융위기를 막겠다며 ① 은행 외화차입에 대한 1,000억 달러 지급 보증, ② 추가로 입찰방식의 300억 달러 자금 직접 공급, ③ 한국은행의 은행채 직접 매입, ④ 기준금리 0.75퍼센트 파격 인하(현재 4.25퍼센트)라는 조치를 연이어 발표하면서 은행 구하기에 적극 나섰다.

승승장구하며 ‘글로벌 메가뱅크’ 외치던 한국 은행들

새사연은 극단적인 외화자금 경색과 금융위기로 벼랑 끝에 선 우리 경제 현실에서 은행을 살려 금융경색을 풀어보자는 정부의 대책에 대해 발목을 잡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상황이 급하다는 명분 아래 마구잡이 대책을 쏟아 놓는다고 상황이 진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매일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전후 상황을 짚어봐야 한다.

불과 두 달 전만해도 한국의 은행들은 지금의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위기는 기회’라며 오히려 호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 9월초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쓰러져가는 리먼 브라더스를 60억 달러나 투입해서 인수하겠다며 구체적인 인수협상까지 벌인 적이 있다.

게다가 지난 9월 지주회사 전환에 성공하여 KB금융지주가 된 국민은행은 여세를 몰아 KB금융지주 회장인 황영기 회장이 메가뱅크를 위한 금융권 재편에 나서겠다고 호언하기도 했다. 황영기 회장은 지난 9월 9일 KB금융지주, 신한, 우리 금융지주 등 자산규모 200조 원대의 은행들이 대등하게 합병을 추진해서 자산규모 500조 원대의 글로벌 은행을 만들자는 주장을 폈다.

2007년까지 수익으로 거액의 배당금 잔치 벌여

그 뿐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철저한 수익 위주의 경영으로 ‘금융회사’로 완벽하게 변신한 한국의 은행들은 신용카드 남발과 과잉 주택담보대출, 각종 펀드상품 수수료 수익을 챙기면서 수익률 고공 행진을 계속해왔고, 그 수익을 주로 외국인 주주들에게 배당금 형태로 돌려주는 관행을 바로 지난해까지 이어왔다.

                                 [그림1] 주요 시중은행 당기순이익 규모


* 단위: 억원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중은행들은 2조 7,000억 원을 벌어들인 국민은행을 비롯해 대부분 조 단위의 당기순이익을 벌어들이면서 최고의 호황을 누려왔다. 그러나 국민들을 상대로 벌어들인 각종 이자 수익과 수수료 수익을 서민들이나 우리 기업들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이미 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은 완전히 외국은행이 되었으며 상장마저도 폐지된 상태이다. 나머지 국내 은행들의 외국인 지분 비중은 우리나라 전체 상장기업들 가운데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다.

                                          [그림2] 외국인지분율 상위사


* 자료: 증권선물거래소


외환은행, 국민은행, 하나금융지주회사 등이 모두 외국인 지분율 상위 10위 안에 들어와 있으며, 신한은행도 재일교포 지분을 감안하면 마찬가지일 정도다. 이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을 매년 수천억 원의 배당금으로 주주들에게 바쳤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외국인들에게 현금 배당되었고, 달러로 송금되었다. 외국인 배당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국민은행, 외환은행, 신한지주회사 등이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림3] 유가증권 외국인 배당총액 상위사 현황


* 단위: 백만원


위기의 순간에 은행 고유의 역할도 상실


올해에도 외국계 은행들을 필두로 한 이들 시중은행들은 단기 외화를 무분별하게 차입해가며 금리차익을 노리고 재정거래를 해왔으며, 유망 중소기업들에게 환헤지 상품인 키코(KIKO)를 팔아 중소기업 도산에 앞장서면서 수수료 수익을 챙겼고, 보유 예금 규모를 뛰어넘는 대출을 강행했다.

그러나 막상 미국발 금융위기로 한국의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지고 주가 폭락, 환율 급등, 금리 급등, 달러와 원화 유동성 부족에 직면하자 무너지는 우리 경제를 위한 금융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기는커녕 오히려 금리를 올리고 기업 대출을 회수하느라 정신이 없다. 자본시장에서 자금 조달 길이 막힌 기업들에게 자금을 중개해주는 은행 고유의 역할은 전혀 못하고 있다. 위기의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증권사나 투자기관들과 달리 적어도 은행들은 위급한 국민경제의 위기 순간에 자사 은행 수익 추구와 생존이 아니라 국민경제를 위해 기능해야만 한다. 그럴 때에만 중앙은행과 정부가 나서서 은행의 자금난을 해소해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

정부가 아닌 주주에게 지원 요청하라

이번 상황을 계기로 명확해진 것은 지금은 투자은행을 신규로 설립하고 메가뱅크를 건설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물경제와 국민경제를 살리기 위해 단기수익을 추구해온 신자유주의적 은행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 이것이 정부의 지원을 받고 치러야할 댓가이다.

우선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민영화를 전면 중단할 필요가 있고, 나아가 우리은행 지분 매각 역시 재검토해야 한다. 그 뿐이 아니다. 나머지 상업은행들에 대해서도 외국인 지분율 제한, 배당금 제한, 기업의무대출 비율 설정과 같은 보다 강력한 규제와 공적 기능 수행을 요구해야 한다.

주주의 눈치만 보면 된다고 큰소리치던 은행들이여, 유동성이 아쉬우면 국가가 아니라 주주들에게 자본금 확충을 요구하라. 그것이 진정 주주자본주의 경영정신이 아닌가. 원화 유동성 비율을 완화해달라고 구걸하지 마라. 아니면 주주를 바꿔라. 지원을 요청한 정부에 은행 지분을 내놓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대신에 기존 주주에게 주던 배당금은 이제부터라도 전면 동결해야 한다. 또한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신에 중소기업 키코 손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고 구제에 나서야 한다.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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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정부가 금융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꺼내든 카드이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은 7,000억 달러를 투입해 금융회사의 부실자산을 매입하기로 가장 먼저 결정을 내렸으며, 독일 5,000억 유로, 프랑스 3,600억 유로에 이어 최근 중국마저 19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실시하기로 했다.

미국민들이 구제금융을 반대한 이유

그런데 각국의 구제금융 결정에 대해 국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다.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범들인 금융회사만 구제해주고 정작 피해를 받게 되는 국민들을 위한 구제책은 담겨있지 않다는 이유이다. 미국의 구제금융법이 하원에서 한 번 부결되었던 것도 국민들이 지역의원들에게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법안에 반대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국민들도 같은 반응이다. 최근 프랑스의 한 여론조사에도 응답자의 70퍼센트가 ‘투자은행이 파산해도 구제금융을 줘서는 안 된다’고 대답할 정도이다. 프랑스의 야당인 사회당 의원들은 “정부가 부담하게 되는 구제금융은 결국 국민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빚”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하원에서 구제금융 법안이 부결되었을 때, 우리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국가경제가 어려움에 빠져서 이를 해결하겠다는 왜 반대할까? 실제 국내 언론은 법안 부결을 두고 “포퓰리즘”(한국경제)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나라가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고통을 분담하고, 국민들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정서가 있었다.

국민 정서 자극하는 '금 모으기'에 이어 '달러 모으기'까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온 국민이 금모으기에 나서지 않았던가? 당시 은행마다 집에서 갖고 나온 금붙이를 들고 길게 줄을 선 모습이 연출되었다. 회사가 힘들다는 말에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비켜준 이들도 수없이 많았다. 금융기관과 기업을 위해 약 170조 원의 공적자금, 다시 말해 우리의 세금이 투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투입된 공적자금은 올해 6월말까지 약 54.4퍼센트밖에 회수되지 못했으며, 그렇게 해서 이겨낸 경제위기 끝에 더 힘들어지는 것은 국민들뿐이었다. 이제는 달러까지 내놓으라고 하는 마당이다.

이제 우리도 구제금융에 대해, 국가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에 대해 날카롭게 반응해야 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구제금융인지, 누구를 위한 국가경제인지 말이다. 최근 정부는 국내 은행들의 대외채무에 대해 총 1,000억 달러 내에서 3년 동안 지급 보증을 하며, 300억 달러를 추가로 시장에 공급하고, 펀드 가입자에 대한 세금 혜택을 주는 방안을 내놓았다.

은행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차원이지만 결국 은행의 부담을 납세자에게 떠넘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 경제에서 필요한 것은 은행에 대한 자금 지원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일 것이다. 더불어 경제의 외부충격을 차단하기 위해 외화반출을 금지하는 등의 구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할 때이다.

위기를 경제 구조 변화의 기회로

미국 국민들은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국민을 구제하라”고 주장한 덕에 그나마 ‘예금보호 한도 상향’ 등의 민심 수습용 조항을 법안에 추가할 수 있었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와 함께 온다. 우리는 97년 외환위기를 한국경제의 구조전환의 기회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신자유주의 경제구조로 전환하는 계기로 놓쳐버렸다. 다시 한 번 세계경제가 흔들리는 위기가 다가왔으며, 다시 말해 한국경제의 새로운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기도 하다.

문득 요즘 미국 국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외신을 모아보니 대략 이런 모습이다. “미국 41개주 경기침체 상태”(<내일신문> 2008.10.22), “금융위기 후폭풍 미 ‘감원 태풍 속으로’... 미시간주서만 2만 8300명 해고”(<문화일보> 2008.10.22), “자산가치 모기지 대출금 밑도는 현상 심화, 약 1200만 명 가량 언더워터 직면”(<이데일리> 2008.10.22), “미 소비자, 침체전망에 약값도 아껴... 대학서는 학업 중단.연기 속출”(<연합뉴스> 2008.10.22).

<용어 공부>

▶ 미국 구제금융법안

공식 명칭은 ’2008 긴급경제안정화 법령(EESA. Emergency Economics Stabilization Act of 2008)’ 이다. 무너진 금융산업을 살리기 위한 법안으로 2008년 10월 3일 최종 통과되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미국 연방정부 재무부 증권을 통해 마련한 7,000억 달러로 금융 부실 자산 매입 △ 자산을 인수한 금융회사에 대한 경영진 스톡옵션과 연봉 제한, 정부가 해당 기업의 주식 매입(의결권은 없음) △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가 예금자 예금보호 한도를 현행 개인당 10만 달러에서 25만 달러로 확대 △ 주택 보유자들에게 최대 1,000달러까지 세액 공제, 세금 1,490억 달러 감면 △ 미국 연방정부 재무부가 민간 부문의 지급보증 펀드를 조성하여 부실자산 보증

* 이 글은 민주노동당 기관지 주간 ’진보정치’에도 실렸습니다.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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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연의 [잇:북]2008.10.28 12:57
[테마북⑤]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국면과 MB노믹스의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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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미국 경제, 7천억 응급치료로 살아날까?
1. 간신히 산소호흡기를 달게 된 미국 금융
2. 첫 번째 문제, 부실자산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3. 두 번째 문제, 수술비 7,000억 달러면 족한가?
4. 세 번째 문제, 근본적인 금융규제 대책은 어디 있는가?
5. 실물경제 안정화를 위한 대책 필요
6. 하이에나와 장의사들의 시대

◆ 금융자본에 볼모로 잡힌 미국 시민들
1. 금융회사를 위한 구제금융과 국민의 파산
2. 금융위기에 실물경기 침체까지, 집 잃고 직장 잃고
3. 금융화로 심각해진 양극화
4. 국민을 위한 정부는 어디에 있나

◆ 망가진 미국 금융과 ‘금산분리 완화’ 발표한 정부
1. 금융위기 해법, 달러 무제한 공급이라는 초강수까지 등장
2. 교통경찰의 태만과 운전과실 때문에 금융대란이 발생했다?
3. 미국 금융 고속도로에는 신호등도, 보안관도 없었다
4. 신자유주의 금융 엔진의 과열과 폭발
5. ‘규제’가 없다면 ‘구제’도 없어야 하지 않나
6. 정부가 뚫어준 고속도로, 무슨 차로 달리지 고민하는 삼성
7. 초보 운전자가 엔진 결함이 있는 자동차를 몰면?

◆ 금융위기 대응, 미국 따라해 될 일이 아니다
1. 강만수 장관의 워싱턴 현장체험 효과
2. ‘시장 자기조정’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한 강만수 장관
3. 외부 금융 충격을 완충할 시스템 구축이 절실
4. 내수기반 붕괴 막는 ‘선제적 대응’만이 살 길
5. 정부가 해야 할 두 가지, 피해야 할 세 가지
6. 보수여 가치체계를 뜯어 고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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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08.10.23 18:13

강만수 장관의 워싱턴 현장체험 효과

미국 금융위기나 우리 경제위기의 심각성에 대해서 상식선 이상의 낙관적인 전망을 가졌던 인물이 바로 강만수 재정부 장관이었다. 강 장관이 10월 13일 국제통화기금(IMF) 연차 총회 방문차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위기의 현장을 체험하면서 지금의 경제위기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를 내심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현장체험의 결과가 10.19 ‘국제금융시장 불안 극복방안’이라는 데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내친김에 부동산 거품 방지를 위한 마지막 안전핀이었던 대출규제를 사실상 풀어버리는 10.21 부동산 부양정책까지 발표했다. 미국 월가의 말투를 빌려 “선제적(Preemptive)이고, 확실한(Decisive), 그리고 충분한(Sufficient) 시장안정 조치를 강구”하겠다며 우리 정부가 마련한 정책들이다.

주요 내용은

① 외국은행으로부터의 차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은행의 대외채무를 총 1,000억 달러까지 3년간 지급보증하고(현재 국내은행 대외채무는 약 800억 달러),

② 은행들이 외화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이미 지원 결정을 한 150억 달러 이외에) ‘외환보유고를 동원하여 300억 달러’를 직접 은행에 공급하며,

③ 원화 유동성마저 막혀버린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금융시장에서 환매조건부 채권(RP), 국채 직매입, 통안증권 중도상환을 통해 원화를 공급하고,

④ 3년 이상 가입한 장기보유 주식과 채권 펀드에 대해 소득 공제나 비과세 등 ‘세제 지원’으로 일반 펀드가입자의 손실보전을 해주며,

⑤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기업은행에게 정부가 보유한 주식, 채권 등 ‘1조 원 상당의 금액을 현물 출자’한다는 것이다.


주로 시장을 통해서 달러와 자금수급을 조절해왔던 이전의 방식과 비교해, 달러와 원화를 정부가 직접 공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점은 워싱턴 방문 효과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아울러 내년 경제성장률도 4퍼센트 이하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해 눈높이도 상당히 낮아졌다.

미국조차 내던진 ‘시장 자기조정’ 기대 못 버린 강만수 장관

사실 9월 접어들면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공황 국면으로 치달은 금융파국을 막고자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동안에, 한국의 쟁쟁한 보수 두뇌집단들은 첨단 금융시스템을 운영해온 미국이 이를 슬기롭게(?) 조기에 수습하리라고 믿고 낙관적인 전망으로 일관했다. 한마디로 미국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과신해온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을 경험하고 그 이후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 다양한 대응기법과 장치들을 만들어왔던 미국이 설마 이정도 금융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겠는가 하는 기대가 깔려있었던 것이다.

후진국에서도 있을 법하지 않은 불투명하고 원시적인 대출을 마구잡이로 남발해 지금의 금융위기 사태를 일으킨 당사자가 바로 미국이라는 사실은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믿는 동안, 미국 정부는 ‘정부의 관리 능력’이 아니라 ‘시장의 조정능력’을 믿고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표면에 떠오르고 1년 가까이 미국이 한 것이라고는 모든 걸 시장에 맡기고 오직 금리인하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해주는 것 뿐이었다. 지난 3월 14일 5위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무너지자 뒤늦게 공적자금 3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등 시장에 개입했지만 그 때만 해도 “시장에 맡기고 간섭하지 말라”는 목소리에 눌려 보다 적극적인 예방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9월 14일 리먼 브라더스 파산과 연이은 메릴린치, AIG보험이 무너지는 걸 목격하면서 서둘러 7,000억 달러 구제금융 법안을 내놓았지만 그 때는 이미 상황이 손쓸 수 없이 악화된 뒤였다. 미국 정부는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것을 보고서야 “시장이 자기통제 기능을 상실"했음을 인정했다. 시장 기능의 붕괴는 곧 미국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상실로, 그리고 한국 정부와 보수세력의 예측능력 상실로 전이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강만수 장관이 의욕적으로 발표한 10.19 금융안정화 대책들은 시점을 놓치면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미국의 위기 대응책을 다시 한발 늦게 뒤따라가는 형국이다.

미국과 유럽이 이미 은행 부분 국유화까지 주저하지 않고 있는 마당에 우리 정부는 신용경색에 몰린 은행들의 어떤 자구책도 담보하지 않고 자금을 풀어주는가 하면, 감세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시장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여 정부가 가지고 있는 외환보유고와 국민세금을 쏟아 부어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발상이다. 미국도 버린 ‘시장에 대한 신뢰’를 우리 정부는 버리지 못하고,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신자유주의적 신념으로 일관하고 있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최근 “보이지 않는 손이 안보이는 것은 그것이 없기 때문”이라며 보이지 않는 손(시장)을 맹신하는 경향을 통박한 바 있다. 우리 정부가 새겨야 할 대목이다.

외부 금융충격을 완충할 시스템 구축이 절실

새사연은 현재의 세계 금융위기가 극단적 신용경색과 금융공황으로, 그리고 한국의 외환위기로 현실화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단 10퍼센트만 되어도 그 후과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막대하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대다수 서민들에게 최소 수 년 이상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적어도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당국자들의 표현대로 “선제적이고 확실하며 충분한 조치”를 시급히 실행해야만 한다. 하나는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인 외부의 금융충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국민경제를 살릴 완충장치를 마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밑에서부터 붕괴되어가는 내수기반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현재 우리 금융시장은 외국발 금융변동에 대한 어떤 완충기제도 없이 거의 실시간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밤사이 뉴욕증시가 폭락하면 바로 다음날 우리 증시에서 외국인 순매도가 폭증하고, 환율이 치솟는 일이 몇 달째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 투기세력마저 제한 없이 들어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국내외 자본이동에 아무런 제동장치도 없어 환율변동이 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요동치고 있으며, 기업들이 도대체 수출입 대금결재 시점을 잡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정부는 150억 달러 이상을 시장에 풀어서 환율 폭등을 막으려고 했지만 그 효과는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정부의 외환대책은 환투기 세력과 시장에 ‘호구 잡힌’ 모양새며, 외환보유고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급기야 외환 스왑시장 등에 150억 달러를 풀고 추가로 300억 달러를 은행에 직접 공급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미 달러 거래는 막혀버렸다. 환율은 1,300선 밑으로 내려올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 동안에도 키코(KIKO) 가입 수출중소기업들의 도산 위험은 더 높아지고 있고, 수입물가는 고공행진을 계속하며, 외국인의 주식매도와 달러 송금은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외환시장의 극심한 불안정성이 시사하는 바는, 국내외의 경제 여건으로 볼 때 우리가 지금 외환시장의 완전한 개방과 제약 없는 자유변동환율제를 능동적으로 운영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장에 의한 안정적인 조절기능이 상실된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사실 1998년에 입법되고 1999년에 시행된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외환시장이 자유화되고 자유변동환율제로 바뀐 것은 외환위기로 인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 때문이지 내부적 여건 성숙에 따른 결과라 보기 어렵다. 그리고 현재 금융규모와 금융관리 능력이 우수한 나라들을 제외하고 외환시장 자유화와 완전 자유변동환율제를 채택하는 나라는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장 외국환거래법을 고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외환시장이 자기조절 능력을 상실한 지금, 심각한 외부 금융충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시장에 자금을 푸는 방식을 뛰어넘어 충격을 완충시킬 ‘시스템적 기제’는 필수적이다.

정부는 예를 들어 ① 칠레 등에서 이미 실시한 바 있는 외화가변예치제도와 같이, 일정 규모 이상의 단기 외화자금의 유출입에 대해 일정한 지연 또는 예치를 통해 급격한 외화유출입을 완화하는 방안, ② 주식시장의 사이드카 발동과 유사하게 일일 환율 변동폭을 일정한 범위로 묶어두는 조치를 일정기간 시행하는 방식, ③ 그리고 현행 외국환거래법에서 허용하는 재정부 장관의 권한을 최대화하여 시스템 차원에서 외환거래와 유출입이 안정화될 수 있는 조치 등을 다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외환시장 자유화가 대세이고 글로벌 스탠더드인데, 여기에 역행한다고 망설일 상황이 아니다. 전 세계 금융시스템의 모든 것이 대전환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어떤 것이 대세이고 어떤 것이 스탠더드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지금은 어떤 심각한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비상사태이다. 아이슬란드, 헝가리, 우크라이나, 파키스탄 등 세계 곳곳에서 외환위기가 터지는 국면이 아닌가.

내수기반 붕괴 막는 ‘선제적 대응’만이 살 길

세계 경제위기의 소용돌이로부터 우리 경제를 살리는 가장 시급한 일이 외부 금융충격을 완충할 시스템적 기제를 확보하는 것이라면, 이와 동시에 내수기반의 붕괴를 막고 장기적인 불황에 대비해 내수경제를 중심으로 내성을 키우는 일이 급하다. 이는 향후 세계 실물경기 침체 여파로 수출마저 한 자리 수로 곤두박질칠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더욱 그러하다.

강만수 장관은 우리 금융기관들이 미국과 달리 파생상품 부실도 미미하고 재무건전성도 좋아서 아직 위기 국면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과 우리가 다른 것은 이것뿐이 아니다. 한국 경제는 자영업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내수기반 경제와 수출 대기업과 단기수익 추구에 몰두한 거대 금융기업들로 양분된 경제이다. 이 두 경제는 사실상 별개의 세계를 형성해 상호 가치사슬 체계가 끊어진 지 오래다.

우리의 경우 미국의 GM과 같은 대기업이나 메릴린치와 같은 금융회사가 부도에 몰리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600만 자영업의 몰락과 중소기업의 도산 위기는 11년 전 외환위기를 능가하는 심각한 국면이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이 미국에 비해 크지 않더라도 내상은 곪아가고 있었다.

새사연은 그 동안 미국발 금융위기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동시에 한국 신자유주의로 인해 발생한 자영업과 중소기업의 기반붕괴를 집요하게 이슈화시켜 왔다. 수입원자재 가격 상승과 극심한 소비부진으로 매출실적에 타격을 입은 이들은 최근 금융위기로 자금조달 길마저 완전히 막혀버린 데다가, 이미 대출받은 자금의 이자 부담도 치솟고 있어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자영업과 중소기업들은 현재 사채 이외에 자금조달 길이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이니, 적어도 이들에게 우리나라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부도난 거나 다름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영업과 중소기업의 경영난을 끝까지 외면할 수 없었던 정부가 10월 초 시중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연장하거나 추가 대출을 해주도록 후선에서 자금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고, 최근 기업은행에 1조 원 현물출자를 통해 자금을 확충해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우리·신한 3개 금융기관은 중소기업이 신보의 보증서를 갖고 가도 대출을 해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할 만큼 철저히 사익을 추구하는 일반 시중은행들에게 중소기업 대출을 독려하는 것은 사실상 ‘지원 대책’이라고 볼 수도 없다. 자금지원으로 시중은행들만 좋은 일 해주는 꼴이 될 것이 분명하다.

유일하게 국책은행으로 남아있는 기업은행이 그나마 대출을 해주고 있는 형편이다. 1조 원 자본확충으로는 턱 없이 부족한데다가, 대출 조건이나 대출이자 부담에 대한 추가조치가 없는 한 고금리 상황에서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구제금융과 공적자금 투입은 거대 금융기관이나 재벌 대기업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정부 자금을 직접 지원해주는 은행들에게는 해외자산 매각, 대주주 배당금 지급 일시 중지 등 강력한 상응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정부는 자영업과 중소기업을 위해 훨씬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구제금융과 공적자금을 기업은행을 경유해서, 또는 특별 기금관리기구를 만들어 직접적으로 자영업과 중소기업에게 지원해주는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해야 할 때다.

동시에 자금 지원시 일반 시중금리가 아닌 이보다 훨씬 낮은 정책금리를 적용함으로써 이자부담을 줄이고 기존 대출을 갈아탈 수 있는 장치를 확보해야 한다. 정부가 지출해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비용을 줄이는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두 가지, 피해야 할 세 가지

외부 금융충격이 이미 내부로 전달된 뒤에 은행 자금지원을 할 것이 아니라 외부 금융충격을 완충시킬 시스템을 신속히 마련하고, 동시에 자영업과 중소기업 기반 붕괴를 막기 위해 강력한 공적자금 투입을 시행하는 것이 현재 위기 국면에서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과제다.

반대로 지금과 같은 국면에서 정부가 절대로 피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감세조치, 부동산 거품 확대, 금융 규제완화가 그것이다.

1) 감세

정부는 이미 지난 9월 1일 법인세율을 5퍼센트 인하하여 약 9조 원의 세금을 감면하고 소득세 3조 6,000억, 재산세 5,000억 등을 포함하는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한 바 있고, 현재에도 이를 수정하지 않은 채 강행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는 감세를 통해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금을 낮춘다고 개인소비나 설비투자가 당장 살아나기 어려운 시점... 섣부른 감세정책은 재정 부담만 가중시킬 수 있다. 특히 소득세나 법인세는 한번 낮춰주면 재인상이 어려운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매일경제> 2008.10.22)고 지적한 초교텐 국제통화연구원 이사장의 주장을 정부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황당한 것은 정부가 감세정책을 고집하면서도 동시에 최근 경제위기 대처를 위해 상당히 많은 재정지출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만수 장관은 “재정은 OECD 국가 중 건전하니까 감세정책과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수출 위축에 따른 것을 내수가 커버”해야 한다고 지난 10월 17일 기자회견에서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내년부터 성장률이 3퍼센트 초반을 넘나들고, 이 국면이 장기화될 경우 소득세와 재산세, 법인세 등이 늘어나지 않을 것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는 것은 백번 옳다. 그러나 그 전제로 감세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향후 장기적인 국면을 감안할 때, 감세를 안 하고도 현재 국가 채무 300조 원을 넘는 추가적인 적자재정 편성을 해야 할 상황조차 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부동산거품 확대

지금의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장본인이 미국 부동산 거품임을 모르는 이는 현재 없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2006년을 정점으로 부동산 거품이 상당하며, 현재 거품이 빠지고 있다. 이미 전국 아파트 미분양 가구가 16만 채에 이르며 건설사들의 부동산 PF대출 연체율이 저축은행 기준으로 14퍼센트를 넘어섰고, 시중은행들 연체율도 급증하고 있다. 고정금리 기준으로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10퍼센트를 넘어서서 기 대출자들의 가계 부담도 위험해지고 있다. 거품이 급격히 빠지지 않고 연착륙하도록 유도하면서 이미 엎질러진 과잉공급과 대출부담을 해소하는 일은 매우 힘들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미 상당 수준에 이른 부동산 거품을 더 키우고 투기를 부활시키려는 우려스런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재건축 규제완화를 요지로 하는 부동산 부양대책을 지난 8월 21일 내놓은 데 이어 종부세를 완화하더니 10월 21일에는 사실상 대출규제를 풀어버리는 투기지역 해제를 다음 달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같은 부동산 위기를 피하고 있는 것은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통해 대출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품 억제를 위한 최후의 안전핀이라고 할 대출규제를 수도권 중심으로 풀어버려 우리 경제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을 맞게 되었다. 현재의 고금리 상태가 대출규제완화에 어떤 작용을 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일정 시점에서 은행들이 적극적인 대출영업을 강행할 경우 매우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3) 금융 규제완화

전 세계적으로 자유시장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특히 금융에 대한 규제논의가 활발하다. 하지만 유독 우리 정부만 지난 10월 13일 ‘금산분리 완화’ 방침을 전격 발표하는 등 금융 규제완화 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또한 우리 정부가 이미 파산한 메릴린치와 같은 투자은행을 모델로 추진해온 ‘자본시장통합법’ 역시 모델이 사라져버린 지금에도 우리 정부는 고수하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금융 규제완화를 보류하라는 비판적인 의견에 대해 정부는 ‘위기는 기회’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참에 우리 금융이 세계적으로 도약할 기회로 삼아 금융 규제완화와 금융혁신의 가속페달을 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회는 준비된 사람들에게만 온다. 금융 선진화를 위해 우리 정부가 준비한 것은 무엇인가. 이미 파산한 투자은행 모델이었다. 잘못된 준비였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은 백번 맞는 말이지만 다른 나라들에게는 기회가 아니고 우리나라만 기회인가. 다른 나라들은 기회가 아니라서 금융규제를 검토하는 것인가.

그래도 굳이 금융 규제완화와 금융선진화를 하고 싶다면 현재의 금융혼란이 진정되고 여타 국가들에서 금융시스템이 재편되는 결과를 보면서 해도 늦지 않다. 고려대 박영철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금융개편이 어느 정도 추진되어 한국의 경쟁상대 투자은행의 형태와 기능의 윤곽이 잡히는 단계에서 제도 개편을 시도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박영철, “미국 금융위기와 한국의 대응”, 2008.9.30). 이는 최소한 보수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보수여 가치체계를 뜯어 고쳐라

조순 전 부총리는 10월 16일 "정부가 은행 주식을 반(半)국유화 하는 경천동지할 일들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등 지금 시기는 역사적인 시간"이라며 "더 많은 파장을 가져올 것이고 그 결과는 경제구조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치는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치는 주가와 환율변동에 어지러움을 느끼지만, 지금은 거시적인 안목에서 보아도 경제사적으로 대변동의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 동안의 우리 경제구조 변화를 보건데 경제가 이 지경이 된 원인이 보수의 주장처럼 좌파정책을 펴왔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신자유주의 보수 경제노선 때문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지난 정부 역시 실제로는 보수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 상황을 악화시켰다.

신자유주의와 결별해야 할 시점에 극단적 신자유주의 정부가 들어선 우리 역사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지금 한가하게 좌우파 이데올로기 논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권의 지지기반을 챙기고 있을 상황은 더더욱 아니다. 앞으로 수 년 간 나라와 국민 전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시는 11년 전의 외환위기와 이어진 국민의 고통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고통을 줄이고 생존을 지켜낼 수 있다면 어떤 이데올로기도 어떤 정책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한국의 보수가 상식선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낡은 가치체계를 미련없이 버리는 것이 상식에 닿는 일이다.

“보수여! 시장을 너무 믿지 말아라. 시장을 믿으면 선제적 대응은 불가능하다.”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