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16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최근 국민연금이 다시 뉴스의 초점이 됐다. 지난 13일 하이닉스의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하이닉스 주주총회에서 최태원 SK 회장의 이사 선임 건에 대해 소극적인 ‘중립’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공적자금 투입기업 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SK텔레콤이 약 3조4천억원으로 구주 6.4%와 신주 14.7%(모두 21.1%)를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SK그룹으로 편입됐다.

그러나 인수절차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주주는 9.15%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다. 여기서 배임 혐의로 재판에 걸려 있는 최태원 회장을 이사로 선임하는 것이 적정한가 하는 논쟁 속에서 국민연금이 중립의견을 낸 것이다. 그리고 2명의 의결권행사전문위원이 사퇴를 하는 국면까지 갔던 것이다. 반면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의 이사를 거쳐 대표이사 회장까지 직행했다.

이처럼 국민연금의 하이닉스 주주총회 주주권 행사에 많은 관심이 집중된 것은 지난해부터 정부측에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를 통해 재벌 대기업을 견제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면서부터다. 알려진 것처럼 현재 350조원 규모의 엄청난 자금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3대 은행인 KB금융과 신한금융·하나금융의 최대주주일 뿐 아니라 삼성전자와 엘지전자·현대 글로비스 등 국내 재벌 핵심 기업에서도 1~2대 주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150여개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볼 때 국민연금은 주주총회에서 약 95% 정도는 제기된 안건에 찬성했고, 기존 경영진이나 대주주가 제기한 안건에 반대한 것은 5% 남짓에 불과했다.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했다고 전혀 생각할 수가 없다. 올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통상적인 의결권 행사 외에 사외이사 후보 추천이나 주주대표소송 참여, 주주 제안권, 이사 해임 청구권, 임시주총 소집권, 장부 열람권 등의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발동하겠다는 의지도 계획도 여전히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불거진 기회에 한 번쯤 국민연금과 자본시장의 관계에 대한 본원적인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민연금의 자금 규모는 엄청나고 그중 대략 20% 미만을 주식시장에 투입해도 주요 기업의 대주주가 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투자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극적인 포트폴리오 투자를 넘어 주주권 행사까지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단순 논리만으로는 부족한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시장, 특히 파생상품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자본시장의 과잉 팽창으로 인한 위기였다. 자본시장의 규제완화와 세계화로 금융은 엄청나게 팽창하면서 고수익을 올렸고, 반대로 노동시장에서는 각종 규제완화로 온갖 변칙적인 비정규직 고용형태와 저임금 노동이 난무하면서 소득 불평등과 근로빈곤이 팽창했다. 이러한 불균형이 깨지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그런데 규제 풀린 노동시장에서 각종 어려운 근로여건을 감수하면서 겨우 벌어들인 소득 가운데 미래를 위해 떼어 놓은 저축을 모은 것이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이 자본시장으로 흘러들어가서 금융의 팽창과 금융거품 형성에 중요한 자금 공급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과 유사한 민간보험도 마찬가지다.

한 전문가는 이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금융자본의 폭발적 증가에 가장 많이 기여한 기관들 중에 연기금과 보험회사들이 포함된다. 세계적으로 보면, 연기금들이 소유한 자산규모가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전 세계 GDP의 40% 이상에 해당했다. 미국과 영국 두 나라만 봐도 민간 연기금들이 주식시장에서 가장 큰 기관투자자 위치를 지키고 있다. 양국의 주식 3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민간 연기금들이 빠진다면 투기경제가 지금과 똑 같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물론 순수하게 봐서 국민들이 미래를 위해 저축한 국민연금의 투자 수익률을 높여서 낸 돈 이상으로 혜택을 보게 하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약간의 수익률이 더 얹어진 미래의 혜택”을 보기 위해 국민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국민경제의 운영이 크게 바뀌는 경험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수익률을 더 높여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거의 유일한 명분 아래 국민연금은 주식시장에 참여해 주가 안정을 떠받치는 가장 확실한 플레이어 역할을 했다. 아마 국민연금이 없었다면 외국자본에 의해 휘둘리는 한국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훨씬 컸을 것이다.

딱 거기까지다. 국민연금이 자본시장의 최대 플레이어로서 주가를 떠받치는 역할 외에,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고려해 주요 기업의 주요 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하고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지 않는 이유는 불분명하다. 주가를 떠받치는 것은 자본의 이익에 부합하지만,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인가. 더 나아가 왜 국민연금이 자본시장의 안정화 장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일까. 왜 금융시장의 자금 수혈자가 되려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더 불분명하다. 투자할 곳이 없어서? 투자할 자금이 없는 것이지 투자할 곳은 널려 있지 않을까.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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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가를 떠받치는 것은 자본의 이익에 부합하지만,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인가.

    2012.02.21 11:19 [ ADDR : EDIT/ DEL : REPLY ]

2011.08.1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금융시장 대혼란이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위기는 2008년처럼 자산시장 거품이나 금융시스템 그 자체라기보다는 실물경제 침체와 정부 대응력 불신이 금융시장에 반영된 것인 만큼 무한정 붕괴는 당초 예상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심각성이 덜한 것은 아니다. 양상이 다를 뿐이다. ‘급성 간염’과 ‘만성 간염’ 중 어느 것이 더 심각한가 하는 질문과 비교될까. 당초 문제가 실물에서 시작됐으니 이제 실물로 다시 돌아가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금융패닉을 심하게 겪은 지금은 그 이전에 비해 실물경제 진단도 혼란의 크기만큼 많이 변했다. 더블딥 가능성이 50%를 넘으며 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루비니 교수의 진단이 주요 언론에 비중 있게 소개되기 시작했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도 달라진 진단을 이렇게 표현했다. “시장이 지금까지는 더블딥 확률이 아주 낮은 것으로 평가했는데 지금은 그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몇 달 전에 15~20%였던 것이 지금은 35~45%까지 뛰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식변화를 잘 보여 주는 것은 바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지난 9일 회의를 갖고 다음과 같은 발표문을 냈다.

“올 들어 지금까지 경제성장세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느리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각종 지표는 전반적인 노동시장 상황이 최근 몇 개월간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실업률도 높아졌다. 가계의 소비지출은 둔화되고 있으며, 비(非)주거용 건축물에 대한 투자도 여전히 취약하고 주택시장도 계속 침체돼 있다. 그러나 기업의 장비·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 같은 논조는 7월에 경기가 둔화되고 있지만 일시적이어서 추가 국채 매입을 하지 않을 것이라던 것과는 상당히 달라진 것이다. 원래 급변동하는 금융시장과는 전혀 다른 실물시장 전망에 대한 시각이 이처럼 1개월 만에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FOMC는 어두운 경기전망 진단에 이어 적어도 향후 2년 동안 사실상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 역시 장하준 교수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2년 동안 제로 금리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적어도 2년 동안 경기가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라고 평가한 것을 수긍하게 만든다.

이 모든 상황은 금융시장이 제자리로 돌아오더라도 완전히 바뀌어 버린 실물경제에 대한 인식과 전망을 제자리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블딥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다. 물론 미국 정부가 인정하는 경기침체(recession)는 기술적으로 2분기 연속 성장률이 마이너스여야 한다. 아직 누구도 당장 하반기에 미국 경기가 마이너스로 진입할 것이라고 확언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문자 그대로 기술적인 문제일 뿐 실제 경기는 예상을 넘는 하향세를 타고 있는 중이며 금융불안으로 인한 자금경색 경향이 이를 강화시킬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현재의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사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크게 할 역할이 많지는 않아 보인다. 문제는 신뢰를 잃은 정부의 역할이다. 사태를 악화시킨 핵심 이슈는 재정위기라고 표현하지만 좀 더 다르게 보면 재정위기 자체보다는 ‘긴축’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다. 문제는 미국이나 유럽이나 재정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긴축’만을 얘기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실질구매력 향상에 도움이 될 서민의 복지지출을 긴축한다는 것이다.

다른 긴축도 있다. 예를 들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방비 지출 긴축이다. 올해 미 국방부 예산은 5천290억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국방비 축소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합의되지 않았으며 공화당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또 다른 방안은 세입을 늘리는 것이다. 기업과 부유층을 상대로 한 증세다. 그런데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감세 일몰 연장에 미국 정부가 합의한 것이다.

수출 비중이 50%가 넘는 한국경제도 미국경제의 더블딥 현실화로 인해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올해 정부가 전망한 4.5% 성장은 고사하고 4% 성장률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미국경제가 1% 하락하면 한국경제는 약 0.44% 성장률이 떨어진다고 한다. 최근 각 기관들이 미국경제 성장률을 1%이상 낮게 수정하고 있으니 이는 기정사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효과가 있는 재정지출정책을 세우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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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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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08 / 10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과연 우리 금융시장이 튼튼해서 충격이 적었을까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차]
1. 최근 한국 금융시장 혼란의 특징- 주식시장에 집중하여
2. 2008년과 달리 금융시장 전체 충격이 적었던 이유
3. 왜 모건스탠리는 한국 금융위험도를 여전히 높게 볼까

[요약]
▶ 금융시장의 충격이 극심했던 지난 8월 2일~9일 동안을 돌이켜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금융시장 가운데 주식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높은 변동성을 보였지만 그 외에 채권시장, 외환시장, 차입시장에서는 혼란 조짐이 훨씬 적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 금융시장이 받은 충격은 예상보다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 물론 외환 충격에 대비해서 정부가 세워둔 정책들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순전히 정부 정책 덕분에 2008년과 달리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고 보는 것은 역시 과장된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히 2008년과 다른 상황적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 2008년 10월은 한국에 투자한 주요 금융회사들과 헤지펀드 등의 부실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현금 유동성 동원이 절실했다.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뿐 아니라 채권과 같은 안전자산까지도 가릴 것 없이 팔아치워 현금화해서 본국으로 송금을 해야 했다. 수익률을 계산할 여유도 없었으며 자금을 묶어둘 여지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달랐다. 위험자산인 주식시장에서 자금이 이탈했지만 급히 본국으로 송금해야 할 유인이 적었기 때문에 주식매도 자금이 외환시장으로 유입되는 정도가 약했고 채권 매도나 차입금 회수 움직임도 없었기 때문이다. 위험 지대를 피해서 일단 상대적 안전자산인 채권에 옮겨 놓은 것이지 회수했던 것은 아니다.

▶ 만약 8월 2일~9일 동안 외국인이 매도한 3조 원이 넘는 주식 대금에 그와 비슷한 수준의 채권 매도가 발생했다고 가정한다면, 일주일 사이 50~60억 달러 이상의 규모가 외환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연쇄적인 작용이 발생할 수 있었다. 여기에 환투기까지 가세하면 그 혼란은 지금의 몇 배의 대가를 치러야 했을 수준일 것이다. 정부의 몇몇 개선된 조치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의 대외충격 완충장치는 여전히 부실하기 때문이다.

▶ 앞으로도 실물경기 장기 침체를 동반한 금융 불안정성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으며 2009년 이후 한국 자본시장에 유입된 엄청난 외국 자금 규모를 생각할 때 급격한 자본 유출에 대한 대비는 여전히 우리 금융시장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국내외적으로 이에 대한 무성한 논의가 있었지만, 실제 취해진 조치는 매우 미흡하다.


※ PDF파일 원문에서는 그래프를 포함한 본문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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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01 / 19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1. 경제개혁이 실종된 2010년

 

미국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이 현재화된 2007년 이후 4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폭발시켰던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기점으로 잡아도 2년이 더 될 만큼 세계경제 불황은 장기화되고 있다.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라고 표현하든 아니면 대침체(Great Recession)이라고 표현하든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깊고 큰 상처를 남기면서 인류에게 경제 사회적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경제 불황을 지금도 여전히 겪고 있는 중인 것만은 확실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경제위기에 직면한 세계 주요 국가들이 1929년 대공황의 학습경험을 살려 유래 없이 신속하게 재정과 통화를 투입하고 국제 공조를 과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채 1년도 지속되지 못한 채 2010년 2분기를 정점으로 회복세가 꺾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미국 등 주요 경제 선도국가들이 1929년과는 달리 국내 산업기반이 상당히 취약할 뿐 아니라 재정과 채무구조도 매우 허약한 상태여서 1929년 방식의 케인주의적 부양책을 효율적으로 구사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한 1929년과는 달리 국제적 생산 분업 구조가 아시아를 포함하여 훨씬 복잡하게 얽혀있고, 글로벌 금융자산의 세계화 정도 역시 연간 세계 무역규모 32조 달러의 5배가 넘는 175조 달러로 팽창한 조건에서 일부 국가의 재정적, 금융적 역량만으로 세계 금융시장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는 사정도 있을 것이다.

 

경제적 혼란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어느 쪽에서도 향후 ‘지속적이고 균형적인 경제발전’ 방향을 제대로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진다. 재정긴축인가 재정 팽창인가, 통화 공급 확대인가 축소인가, 무역과 경상수지 불균형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글로벌 통화체제의 안정성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금융 규제의 정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 고용여건을 해소하면서 국가와 개인이 안고 있는 부채를 어떻게 축소시킬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누구도 내놓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현실이 불안정할 뿐 아니라 방향도 불확실한 상태인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과거 경제발전을 약속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실제로는 경제 불안정성만 확대해왔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인 개방화, 자유화, 금융화, 민영화, 작은 정부 기조에 대 수술을 감행하여 경제의 구조개혁과 체질개선에 착수하는 것만이 세계경제위기가 안겨준 심각한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공감대는 꾸준히 확산되어 갔다. 한국 경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명목으로 집권한 이명박 정부의 핵심 경제 비전이 바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경제였으며 여기에 1970년대식 토건 경제를 얹은 정도였기 때문이다. 집권 초반에 글로벌 경제위기에 직면한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은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2010년 외형적인 경기지표가 뚜렷한 호조를 보이면서 경제개혁과 정책전환 이슈들은 급격히 탄력을 잃어갔다. 국내총생산은 전년도의 기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예상을 뛰어넘는 6% 이상을 달성했으며, 주가는 금융위기 이전 사상 최고치였던 2000선을 넘어섰다. 마이너스 7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던 일자리도 외형적으로는 30만 개 이상이 신규로 만들어졌다. 수출 증가율도 30% 가깝게 가파르게 회복되기 시작하여 외환 보유고는 3000억 달러에 접근하게 되었고 세계 무역규모 7위로 올라서면서 2011년에는 무역 규모가 1조 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등장하게 되었다. 1인당 국민소득도 3년 만에 2만 달러로 복귀했다. 지표 경기 수치 자체로만 놓고 보면 경제정책의 대전환이나 절박한 경제구조개혁을 해야 할 이유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를 반영한 듯, 정부가 무려 1년 동안을 뜸들이며 준비하여 2010년 10월에 발표했던 ‘국가 고용전략 2020’은 2020년 선진국 수준의 고용률 70%달성이라는 거창한 목표와 달리 그 어떤 획기적인 고용구조개혁 방안도 없었다. 금융개혁과제 역시 무성했던 논의와 달리 현실적으로 취해진 조치는 은행 예대율 개선이나 외화 예금 조달에 대한 약간의 규제 말고는 없었다. 오히려 논란이 되었던 외환은행은 하나은행에 인수 합병되고 우리은행 민영화 일정도 속도를 붙이는 등 신자유주의적 기존 정책이 수순에 따라 집행되고 있다.

 

지표경기 실적 회복세를 배경으로 각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은 강행되었으며 2010년 8월 부동산 부양책을 내놓으면서 주택거품도 유지시켜갔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경제 불황을 우리 경제 구조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창했던 진보세력은 경제개혁을 위한 핵심 의제들을 국민들과 호흡하지 못한 채, 4대강 사업을 저지하고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유지, 확대하고자 복지의제를 확산하는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의미 있는 경제개혁 의제가 사실상 실종된 것이다.

 

 

 

2. 개혁 동력도 회복 체력도 상실한 글로벌 경제

 

그렇다면 세계 경제 차원에서는 위기를 초래한 구조적 문제점들이 해결되면서 안정적인 회복세로 접어들게 된 것인가. 그 결과 경제개혁 과제들이 더 이상 절박하지 않게 되었고 그것이 한국경제에도 그대로 투영된 것인가. 안타깝게도 글로벌 경제의 현실 상태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경제위기를 막으려 했던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 덕분에 2009년 2분기부터 약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글로벌 경제는 자유낙하를 멈추고 일정하게 수습국면에 돌입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한 숨 돌릴 여유를 확보했던 2010년은 글로벌 경제가 위기를 초래한 구조적 문제점들에 대한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여 경제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한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던 시점이기도 했다. 2010년에 접어들면서 각 국가들은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위기 수습대책들을 서서히 거둬들이면서 경제작동을 시장으로 되돌려주는 ‘출구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위기를 초래했던 핵심 영역인 금융규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악화된 고용사정이 미처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잠복되었던 재정위기, 통화위기 등이 전면에 불거져 나옴으로써 생산과 소비 모든 부문에서 경제 회복세는 짧은 수명을 다하고 다시금 둔화국면으로 진입한다. 2010년 상반기에 터져 나온 남유럽의 재정위기는 그리스 구제 금융으로 이어졌고 시차를 두면서 그 해 11월 아일랜드 구제 금융으로 확산되었다. 2010년 하반기부터 불거진 미국 경기의 재 침체 우려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조치를 수반했고, 결국 치열한 환율전쟁(Currency Wars) 개시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 사이 기대 섞인 출구전략 시행과 위기 이후의 새로운 세계경제질서 구상은 실종되었고 다시금 2차 위기관리 시스템이 속속 도입되었다.

 

미국경제가 추가적인 6000억 달러의 양적완화 조치로 위기관리에 들어가고 유럽은 1000억 유로에 가까운 아일랜드 구제 금융으로 재정위기 확산 차단에 부심한 가운데, 신흥국들과 아시아는 선진국들의 넘쳐나는 과잉 유동성의 여파로 커져가는 금융시장과 부동산 시장 거품을 막기 위한 대책에 부심하고 있는 상황, 그것이 지금 세계경제의 현주소이다. 문제는 이들 대책들이 전혀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추가적인 재정확대의 한계에 몰린 오바마 정부가 재정이 아닌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여 양적완화 정책을 써서 고용회복과 경기부양을 기대하고 있지만, 이는 실물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 보다는 자본시장을 경유해 미국 밖으로 빠져나갈 가능성만 높다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미국 안에서도 적지 않다.

 

사정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아이슬란드와 그리스에 이어 아일랜드에까지 구제 금융을 결정하면서 재정위기 확산을 막으려 하고 있지만, 지급 불능에 빠진 이들 국가들에게 부채 규모 자체를 축소하지 않은 채 부채 금리를 조금 인하거나 만기일을 연장해 줄 뿐인 구제 금융으로는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위기를 해결하기 보다는 위기를 지연시키는 쪽의 대책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 결과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고용부담을 내재한 채 세계경제는 뚜렷한 둔화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대부분의 전망 기관들이 2010년 세계경제 성장률이 4.5%전후였던 것에서 2011년에는 4.0%전후로 둔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2010년 하반기 표면화되었던 환율전쟁은 각 국가들이 국제 공조아래 자국의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만으로 고용회복 등 실물경제를 회복시킬 수 없다는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즉, 무역 상대국에게 통화 절상 압박을 가하는 등 타국 경제의 일정한 희생을 담보로 자국 경제의 회생을 도모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국제 공조체제의 사실상의 균열이자 무역전쟁의 전초전 성격이라는 우려할 만한 조짐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당초 이명박 정부의 기대와 달리 환율전쟁의 격전지가 되고 말았던 2010년 11월 서울 G20정상회의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환율 문제도 일단 흔히 쓰는 전쟁에서는 벗어났다"면서 환율전쟁 종식을 선언했지만 사실 환율전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 우선 환율전쟁을 초래하게 된 내적 동인인 각 국가의 실물경제가 앞으로도 회복세를 타기 보다는 둔화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자국 경제 회복을 위해 타국 경제의 희생을 요구하는 환율전쟁의 유인은 여전히 강력하게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축 통화국가인 미국의 적자구조가 앞으로도 지속되면서 달러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글로벌 달러체제에 대한 불신과 도전이 더 확대될 것이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글로벌 경제는 아직도 위기관리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위기적 조짐들을 잠복시킨 채 불안한 봉합국면을 이어오고 있는 중이고, 그런 점에서 경제개혁의 필요성은 더욱 절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3. 실물경제는 중국의 손에, 금융경제는 미국의 손에

 

그렇다면 세계경제로부터의 탈 동조화(de-coupling)가 사실상 허구라고 하는 것이 입증된 지금, 한국경제는 세계경제의 재 침체와 여전한 불안정성 환경 아래에서도 어떻게 기대 이상의 높은 실적을 달성하면서 경제개혁 과제들을 묻어버리고 있는가. 더욱이 자유화, 개방화 경제를 성장 동력으로 삼아 발전해왔던 한국경제가 유사한 경제 모델을 채택했던 아이슬란드나 아일랜드, 두바이와 같은 전철을 밟는 것은 고사하고 어째서 실물과 금융 양쪽에서 OECD 국가 가운데 최고의 성적을 올리면서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국가 재정투입임은 부인할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GDP 대비 30% 미만의 양호한 국가부채 규모를 유지해왔던 한국정부가 상대적으로 큰 충격 없이 대규모 재정투입을 단행하여 떨어지는 경기지표들을 떠 받쳐온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은 거의 모든 국가들이 동시에 시행한 정책이었다. 더구나 2009년에 비해 2010년에는 재정지출 효과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2011년에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정부 재정지출만으로는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여기서 대외지향적인 한국경제가 2000년대를 경과하면서 정착시켰던 경제구조 변화를 재검토해봐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구조와 체질 면에서 상당한 변화를 겪어왔지만, 대외 경제관계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양상이 두드러진다.

 

첫째는 금융시장의 개방화와 자유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한국 금융시장이 월가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금융시장 안에 유력 신흥시장으로서 편입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자본 차입시장, 주식 채권시장, 외환시장은 대외적으로는 해외자본의 유출입 규제가 거의 사라지면서 글로벌 자본의 움직임에 따라 동조화되는 경향이 높아졌고, 대내적으로는 소매금융시장이 급팽창하면서 가계의 대출과 유가증권 거래 규모가 확대되어왔다. 그리고 이는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촉진하는 금융적 기초가 되었다.

 

월가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금융자본은 개방화와 자유화 정도가 매우 높아진 신흥시장인 한국 금융시장에 다양한 경로로 진출하여 한국 소비자 금융시장을 급 팽창시켰고, 은행과 보험,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을 통해 막대한 금융수익을 실현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례하여 규모화와 겸업화를 내걸고 덩치를 키워온 국내 은행들과 외은지점들의 수익성은 빠른 속도로 증가했으며, 주가는 2007년 2000포인트를 찍고 시가 총액 기준으로 1000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양적인 팽창을 거듭했다.

 

한국 금융시장 변동의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변수가 외국자본이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외국자본의 영향력이 얼마나 되는가는 G20서울 정상회의가 열리던 지난 2010년 11월 11일 충격적인 옵션 쇼크 사태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장 마감 10여분을 남기고 동시호가가 이루어지는 시간대에, 도이체 방크 런던 법인 통합계좌를 통해 헤지펀드로 추정되는 한 펀드가 한국 도이치 증권을 경유하여 매수차익거래로 무려 2조 3천억 원이 넘는 현물매도와 선물 매수를 쏟아내면서 순식간에 주가를 50포인트 이상 떨어뜨렸던 것이다. 이제 한국 경제의 미국 의존도는 과거처럼 무역시장이나 기술 의존 관계보다는 금융시장에서의 의존도가 가장 중요하게 되었다.

 

 

둘째로, 한국의 실물경제와 상품 무역에서 중국경제와의 연관도가 압도적으로 높아진 점이다. 불과 10년 전인 2000년만 해도 한국의 중국 무역 의존도는 수출이 10%, 수입이 8%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정확히 미국 의존도의 절반에 불과했다. 그 나마도 상당수 무역이 유력 대기업들의 핵심 제품이 아니라 열악한 중소기업들의 저가 상품 거래가 차지했다.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부차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불과 10년 만에, 특히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한국의 전체 수출 가운데 25%를 대 중국 수출이 차지하게 되었다. 홍콩을 포함하면 무려 30%에 이른다. 그것은 이제 미국의 3배에 가까운 규모가 되었고 1980년대 말까지 미국이 누려왔던 절대적 수출시장의 지위를 중국이 대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영세한 중소기업의 중국 진출이 줄어들고 있는 반면, 유력 대기업들 중심의 중국 진출과 중국 수출이 대 중국 무역을 주도하게 되면서 한 중 무역은 한국 실물경제 변동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수입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국 자본주의 역사 이래 언제나 최대 수입국이었던 일본마저 중국이 대체하게 되었다.

 

특히 한 중 무역을 주도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사내 유보율이 700%에 달할 만큼 막대한 자체 자금조달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에 국내 금융시장 변동성에는 크게 좌우되지 않는 반면 중국경제의 성장 여부에 따라 기업 실적이 영향을 받는 구조가 되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여, 2000년대 이후 한국경제는 금융경제와 실물경제가 이원화되면서 금융경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자본시장에 깊숙이 편입되었고 실물경제는 중국경제와의 연관도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구조로 대외 지향적 경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의 국민경제라는 틀 속에서 실물경제와 금융경제가 정합적으로 맞물리지 못하고,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축을 향한 원심력 형태로 이원화된 한국경제의 대외 의존성은 금융위기에 대한 한국경제의 대처 양상과 이후 회복 양상에도 그대로 특징이 드러나게 된다.

 

 

4. 미국 효과로 부풀려진 금융시장 활황, 중국 효과에 의지한 실물경제 회복

 

우선 미국 발 금융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2008년 말 무렵, 한국경제는 개방화된 외환시장과 증권시장, 그리고 은행의 차입시장 경로를 통해 위기 충격이 가감 없이 전달된다. 환율 폭등과 주가폭락, 은행 대외차입 시장 경색이 현재화되면서 외국자본 유출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질주했다. 그런데 2009년 2분기 이후 경기회복세가 시작되자 이번에는 반대 방향의 흐름이 뚜렷해졌다. 한국 금융시장으로의 자본유입이 시작된 것이다. 2010년 까지 매해 30조원 규모의 해외 자금이 증권시장에 유입되었고 채권시장에는 그 두 배에 달하는 자금이 들어왔으며, 국내 은행의 차입시장도 신용경색이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환율은 하락세로 돌아서게 되었다.

 

특히 2010년 하반기 이후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 발표 여파로 자본유입이 가속화되자 주가는 2000선에 육박할 정도로 빠른 속도의 상승세를 구가했다. 이제는 과도한 자산거품을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고 유입된 외국자본이 또 다시 유출로 방향을 틀 경우 예상되는 충격을 대비해야 하는 실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다수 정책 결정자들과 매체들은 주가 2000 재 돌파에 환호하면서 한국 증시의 활황이 마치 한국경제의 탄탄함을 입증해주는 징표가 되는 것처럼 들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물경제로 주의를 돌려보자.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 차원에서 실물경제로 전이되자 한국경제도 곧바로 침제에 접어 들어섰지만 오래지 않아 강한 반전 국면으로 진입했다. 그것은 한국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풀려 은행들이 적극적인 신용공급을 재개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흔히 지목되는 요인은 정부의 재정지출 효과와 환율효과이다. 부분적으로는 타당한 진단이지만 실물경제 회복 요인을 온전히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특히 환율효과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봐야 한다. 우리나라 원 달러 환율은 2008년 1100원대에서 2009년 1270원대로 올라감으로써 확실히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출증대 효과가 있었으며, 주요 경쟁 상대국인 일본의 환율 하락이나 대만의 미미한 환율상승에 비해 유리한 효과를 누렸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2010년에는 환율이 반대로 1160원 수준으로 전년에 비해 100원 이상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 30%의 수출 증가율을 기록했던 것을 일반적인 환율효과로 돌릴 수는 없다.

 

한국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던 수출증가는 2009~2010년 사이 매년 1%이상씩 수출비중이 커지면서 평균 수출 증가율을 훨씬 상회하는 수출 확대를 가능하게 한 중국효과(China Effect)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산업연구원의 분석결과에 의하면 2008년 상반기에서 2010년 상반기 2년 동안 한국경제 GDP성장률 4.2% 가운데에서 그 절반이 넘는 2.2%는 대 중국 수출이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3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우리의 외환보유고 확대 역시 대 중국 무역이 절대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2010년 중국과의 무역수지 흑자는 390억 달러를 초과하면서 규모가 늘어나는 반면, 미국과는 겨우 76억 달러 흑자로 흑자폭마저 줄어들고 있고, 일본과는 -310억 달러 적자로 적자폭이 늘어나는 것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이처럼 한국의 실물경제 회복과 성장에는 환율효과에 감춰진 중국효과가 작용했던 것이고 그 수혜를 주로 대기업이 입으면서 대기업 실적도 크게 호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경제의 대침체 가운데에서도 중국경제가 8~9%의 고성장을 지속시키면서 세계 경제규모 2위에 등극했던 효과를 인접 무역 상대국인 한국이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중국 경제가 1% 성장하면 전 세계 국가들에게 3년 뒤에는 0.2%포인트, 5년 뒤엔 0.4%포인트 추가 성장 전이 효과를 낸다는 분석도 있을 만큼 현재 중국경제가 한국 경제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 전체를 견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 중국 수출 비중 27%를 차지하고 있는 대만에 이어 두 번째로 대 중국 무역비중이 큰 중국의 인접 국가가 한국이다. 중국 효과가 그 어떤 나라보다 가장 크게 파급되었을 것임은 자명하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대중국 수출의 70%가 중국의 대외수출을 위한 중간재 형태이고 중국이 최종 소비지로 수출되는 비중은 아직 30%정도이기 때문에 중국 효과란 사실상 선진국 경제회복 효과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경제 침체로 제한된 세계 시장에서 한국경제가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수출을 확대하는 문제와 중국의 수출 경쟁력을 등에 업고 수출을 확대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또한 아직 제한적이지만 중국 내수시장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한국경제가 수혜를 입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5. 한국경제의 자생력 회복을 위한 경제개혁 과제

 

한편에서는 미국경제가 위기 탈출방안으로 내놓은 2차 양적완화 기류를 타고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자금이 밀어올린 주가상승 분위기와, 또 다른 편에서 중국경제의 고 성장에 편승하여 늘어나는 수출로 얻는 경제 성장률과 무역수지 흑자에 도취되어 구조 개혁과제를 도외시하고 있는 상황이 오늘의 한국경제이다. 한국경제의 취약한 체질개혁은 제대로 시작도 못한 채 불안정한 대외변수가 만들어 준 기대 이상의 성적에 환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대외변수에 기댄 양호한 실적들은 글로벌 경제의 재 둔화 추이로 인해 부정적 측면들이 확대되고 있다. 거시 경제 지표만 보더라도 2010년 상반기 국내 총생산이 전년 대비 7.6%였지만 하반기에는 4.6%로 추세가 꺾이기 시작했고 이는 2011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 선행지수를 포함하여 광공업 생산지수, 설비투자와 수출 동향, 취업자 수 동향 등 대부분의 경기 지표들도 거의 대부분 상승 보다는 둔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경제 역시 ‘짧은 회복, 재 둔화’라고 하는 글로벌 경제의 추이를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대외변수에 의해 창조된 성장 실적의 마취에서 깨어나 우리 경제의 실체를 제대로 진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대외적 변동성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안전장치를 확보해야 한다. 대외 요인이 언제까지나 한국경제에 우호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불안정하게 과열되고 있는 금융시장에 방화벽을 구축해 안전장치를 서두르는 것이 한국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긴요하다. 금융 산업이 현대 경제 발전을 위해 여전히 필수적인 영역인 것은 틀림없지만, 실물경제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는 미래 성장산업이라는 발상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발상아래 추진된 금융 개방화, 자유화 역시 긍정적 효과 보다는 부정적 문제점이 크다는 것이 공유되면서 신흥국들이 앞 다퉈 자본 유출입 통제(Capital Control)에 나서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어쩌면 2010년 11월 G20서울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가장 중요한 결론은 “변동환율제하에서 환율의 고평가가 심화되고 있는 신흥국들은 신중하게 설계된 거시건전성 규제 도입을 통해 대응할 수도 있다”는 대목일 것이다. 외환에 대한 거시건전성 규제라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상 자본 유출입 통제를 정당화해준 문구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자본통제로 방화벽 구축 -> 안전성이 확보된 금융시장의 공익적 성격 확대 -> 실물경제 지원 복원이 금융경제 개혁의 기본 방향이 되어야 한다.

 

 

 

신흥국들이 취하고 있거나 예정인 자본 유출입 통제

구분

국가

(예상) 조치

이미 도입

브라질

외국인의 자국통화 표시 채권, 주식투자에 부과하던 거래세율을 6%로 계속 인상

인도네시아

외국인의 중앙은행채권 매입시 최소 1개월 보유 의무를 부과

태국

외국인 채권투자 소득에 대한 원천징수(15%) 면세조치를 폐지

대만

유입된 외국인 투자 자금 중 대만 국채 및 MMF 상품 투자 비중을 30% 이내로 제한

중국

금융회사들의 차입규모 쿼터제를 더욱 철저히 준수하고 외화유입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입장

추가 도입

브라질

거래세율 인상, 국채 투자에 대한 자본 소득세 부과 가능성

인도네시아

단기 국채에 대한 보유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추가 연장

태국

주식 투자 과세 등

인도

통화 당국은 부인중이나 시장에서는 규제 도입 가능성 전망

대만

국내 유입 자금 중 투자되지 않은 자금에 대한 fee부과 고려

신규 도입

말레시아

중앙은행 총재, 필요시 해외자본유입에 대한 공동대응 시사

콜롬비아

통화 당국은 부인중이나 시장에서는 규제 도입 가능성 전망

필리핀

역내 NDF에 대한 규제강화 고려, 외채 구조 및 상환일시 변경 고려

* 한국은행, “신흥시장 주가, 채권가격, 환율 강세의 배경과 정책 대응”, 2010.12

둘째로, 한국 실물경제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한 중 경제관계가 상호이익이 지속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한 중 무역 의존도는 되돌릴 수도 없고 대체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2010년대 내내 더욱 강화되어 갈 것이 분명하다. 특히 중국효과는 무역뿐 아니라 국내 경제구조와 고용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인데, 금융위기 이후 370만까지 떨어졌던 제조업 노동자가 최근 410만 명까지 회복되면서 경기상승과 고용흡수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중국효과와 연관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문제는 2000년대 초반까지 대 중국 관계에서 중소기업 중심의 저가 임가공이 퇴조하고 이후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주력 상품들의 생산기지로 변모했던 것처럼, 향후에도 빠르게 경제 무역관계의 형태가 변화해갈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한국경제가 기술력과 자본력의 비교우위를 앞세워 무한 팽창할 수 있는 ‘기회의 땅’처럼 중국시장이 간주되었지만, 언제까지나 중국이 시장을 내주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고 오히려 격차가 줄어들거나 역전될 소지도 얼마든지 있다. 조선업의 사례에서 이미 그 단초가 나타나고 있고 중국이 최근 외자에 대해 베풀었던 대부분의 특혜를 철회하면서 외자 의존도를 줄여가는 것도 이와 연관된다. 국가적 차원에서 한국 산업전망과 무역전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 중 경제 전략이 필요한 지점이다.

 

특히 우리의 최대 무역상대국이며 인접국가로서 중국 경제는 적어도 생산과 무역 면에서 세계경제의 중심지대로 떠오르고 있으며 세계경제의 한 축을 아시아로 이동시키고 있다. 향후 한국의 실물경제는 글로벌 차원 이전에 ‘아시아 속의 한국경제’라는 구조 틀, 특히 한 중 경제 관계라는 구조에 의해 규정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이에 비하면 정부가 그토록 많은 양보를 통해 타결한 한미 FTA가 한국경제에 주는 영향은 부차적인 것이다.

 

또한 2010년 11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이 입증해주고 있는 것처럼, 현재의 중국 효과는 일부 대기업과 정규직 이상으로 수혜의 범위가 확대되지 않고 있으며, 어떤 측면에서는 대기업들의 중국으로의 생산기지 이전이 늘어나면서 국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대 중국 경제 전략이 일부 대기업만의 ‘황금 시장’이 아니라 다수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도록 국가가 나서서 대중 경제 전략을 펴야 하는 이유다. 한미 FTA 변수가 아니라 중국 변수를 고려한 한국경제의 산업구조 개혁과 무역구조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금융시장에서의 미국변수와 실물시장에서의 중국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고 하더라도 국내 경제구조 개혁에 대한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대외적인 호조건 그늘에 감춰진 국내 경제의 허약 체질은 예상보다 심각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를 통 틀어 한국의 내수시장은 금융업 - 건설업 -부동산 시장이 서로 얽히면서 주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지금도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한국 국민들의 경제생활을 짓누르고 있는 3대 악재, 즉 고용의 양과 질 악화, 가계 부채의 증가,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충격 우려를 안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를 겪은 2009~2010년 2년 동안 고용은 연 평균 10만 명 남짓밖에 늘어나지 않았으며, 반대로 가계 부채는 2008년 말 688조원, 2009년 말 734조원으로 늘었고 2010년 9월말까지는 다시 770조원으로 불어났다. 소득 여력과 차입 여력이 소진된 국민들이 더 이상에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 수 없기 때문에 각종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은 하락세를 피할 수 없으며 ‘집 있는 빈곤층’이라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는 그간의 중산층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건전한 국내경제 체질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금융과 건설, 부동산을 엮는 개발방식을 접어야 한다. 대신 중소기업 중심의 제조업 기반을 확충하고, 영세 자영업을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발전적으로 유도하며, 절대 취약 분야인 사회서비스를 산업적 중추 분야로 육성해야 한다. 금융위기 와중에서 사회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은 상당한 공감대를 얻었지만 여전히 정부의 일회성 예산지원이나 의료산업 개방화나 민영화처럼 신자유주의적 사고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간 한국 내수의 주력 산업이었던 건설업을 대체하는 주력산업으로 정부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공익적 성격을 살려 육성할 필요가 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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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2008.11.14 10:58

1. 금융위기의 세계화와 거품경제의 한계

1) 금융시스템에 내재된 위기와 오류의 세계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는 2007년 4월 미국 2위 모기지 업체인 뉴센트리파이낸셜(New Century Financial)의 파산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후, 모기지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복잡한 파생상품(derivatives), MBS(Mortgage Backed Securities),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CDO2 등의 부실로 이어졌다. 자기 자본의 30~40배에 이르는 차입(Leverage)을 동원하여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헤지펀드는 모기지 증권 부실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헤지펀드에 자금을 투자했던 투자은행 역시 손실을 입으면서 금융위기는 월가 전체로 번졌다. 2007년 8월 프랑스 BNP파리바(Paribas) 은행이 미국 모기지 증권의 환매 중단을 발표하면서 월가의 금융위기는 세계 금융위기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2007년 9월 영국의 노던록(Northern Rock) 은행의 파산을 거쳐 2008년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적 금융부실이 실체를 드러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8년 10월 미국의 금융부실 규모를 1조 4,000억 달러로 추산했고, 영국 중앙은행은 전 세계 금융부실 규모를 2조 8000억 달러로 추정하기도 했다. 엄청난 규모의 세계 금융위기는 금융자본이 월가를 탈출해 상품시장으로 이동하도록 만들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초래했고, 최근에는 장기적인 실물경기 침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2006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은 단지 미국의 주택시장과 모기지 대출시장의 붕괴에 머물지 않고,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파생상품과 레버리지의 연쇄고리를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80년대 말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위기나 90년대 일본 부동산 부실과도 전혀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우리 금융정책의 수장인 금융위원회 전광우 위원장은 최근의 금융위기를 교통사고에 빗대어 자동차의 구조적 결함보다는 운전과실이나 잘못된 교통신호체계, 단속에 소홀한 교통경찰의 책임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의 자체의 문제이기 보다는 경영자의 모럴헤저드나 감독기관/시스템의 문제가 크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단순히 금융기업 경영자의 과잉 탐욕이나 감독기관의 감독 소홀, 감독시스템의 허술함 때문에 이 정도 규모의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번 금융위기이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① 우선 신자유주의가 지배했던 지난 30여 년 동안 영미권을 중심으로 금융 비중의 팽창과 제조업 위축, 그리로 이를 가능케 한 금융기법의 혁신(?)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위기의 토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흔히 이를 ‘경제의 금융화, 금융의 세계화’라고 부른다. 1980년 세계 명목 GDP는 10.1조 달러, 세계 금융자산은 12조 달러 규모였던 것이, 2006년 말 기준으로 GDP는 48.3조 달러, 금융자산은 167조 달러로 급격하게 격차가 벌어졌다. 전 세계 금융자산의 급격한 팽창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기업들의 이윤 가운데 금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1980년대 10퍼센트 수준에서 2000년대에는 30퍼센트를 넘어설 정도로 늘어났다. 그러나 금융부문이 담당하는 고용비중은 5퍼센트 내외에 불과했다. 즉, 제조업에 비해 금융부문이 비대하게 팽창하고 금융 자체에서 수익성을 추구하려는 방향으로 산업구조가 변한 것이 현재 금융위기를 유발시킨 일차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② 1980년대 이후 금융 부흥을 이끌었던 선물, 옵션, 스왑 등의 각종 파생상품은 한때 금융혁신의 상징이자 금융에 내재한 위험도를 제로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험을 분산(Hedge)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류와 위험을 확산하는 매개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 최근 확인되었다. 워렌 버핏 마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Nobody knows who is doing what)’에 지나치게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투자’한 월가의 위험 통제기능 상실이 현 금융위기의 원인”이라며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인정했다.

이처럼 기초자산으로부터 끝없이 분화되어가는 파생상품은 위험도 측정과 관리감독이 거의 불가능하다. 금융시장 내부에서도 위험에 대한 인식과 그 분산기능, 위험시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따라서 현대 금융자본주의 금융시스템 자체에 결함이 존재하고 이것이 현재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③ 미국 금융팽창을 선도했던 주요 플레이어들 가운데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는 사실상 법인체로 규정받지 않는 사조직으로서 금융규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투자은행 역시 금융규제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 이들은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로부터 강제적인 감독이나 규제를 받아야할 대상이 아닌, 투자은행지주회사와의 상호합의에 근거한 자발적인 감독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규제로부터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상업은행들조차 규제를 피하기 위해 구조화 투자기관(SIV, Structured Investment Vehicle) 등을 별도의 자회사로 두고 신용공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부외거래를 하면서 이들을 통해 파생상품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여기에 더해 실제로는 사적 기업에 불과한 3대 신용평가기관들이 부실 모기지를 기초로 발행된 각종 파생상품에 최고 신용등급을 부여해 대량유통을 지원하기도 했다. 물론 신용평가기관들은 파생상품을 발행하는 금융회사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의 중심에 서 있던 헤지펀드는 한때 1조 9,000억 달러 규모, 펀드 수로는 1만 개에 달할 정도로 고속 성장을 했지만 모기지 증권 부실의 타격으로 2007년 7월 파산하기 시작했다. 파산의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은 베어스턴스(Bear Stearns)와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였다. 1992년 ‘영국 파운드화 투매’로 영국 중앙은행을 손들게 하고 보름 만에 10억 달러의 수익을 챙겨 세상을 놀라게 했던 헤지펀드는 사실 1990년에는 전체 규모가 39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10년 뒤인 2000년에는 4,900억 달러로 커졌고 2006년 말이 되자 1조 5,000억 달러로 성장한다. 엄청난 고속성장을 한 것이다. 물론 이들 헤지펀드 역시 이번 금융위기의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2008년 1/4분기 헤지펀드 규모는 1조 8,800억 달러 까지 늘어났지만 예년에 비해 성장률은 현저히 둔화되었고 헤지펀드로의 자금유입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또한 1/4분기 평균수익률도 마이너스 3퍼센트로 20여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금융위기가 심각한 금융경색과 자금순환의 단절로까지 번졌던 2008년 9월과 10월에는 약 700여 개의 헤지펀드가 청산되면서 주가 폭락과 펀드 환매사태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급팽창한 금융부문에 규제 없이 치명적인 위험이 누적되도록 방조한 것 역시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이다. 여기에는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 작용했을 것이다. 파생상품에 대한 위험성 평가 및 규제, 주요 금융회사들에 대한 감독과 규제, 그리고 신용평가기관들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논의들은 앞으로 이어질 미국 청문회 등을 통해 가시화될 것이다.
④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 뒤에도 미국 정부는 1년 가까이 모든 걸 시장에 맡긴 채 금리인하를 통한 유동성 공급에만 열중했다. 지난 3월 14일 미국 5위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무너지자 뒤늦게 공적자금 3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등 시장에 개입했지만 그 때만 해도 “시장에 맡기고 간섭하지 말라”는 목소리에 눌려 보다 적극적인 예방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9월 14일 리먼 브라더스 파산에 이어 메릴린치와 AIG보험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뒤에야 비로소 7,000억 달러 구제금융 법안을 서둘러 내놓았지만 이미 상황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뒤였다. 미국 정부는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것을 보고서야 ‘시장이 자기통제 기능을 상실’했음을 인정했고 7,000억 달러 구제금융법안 통과에 이어 은행지분 인수, 기업어음(CP) 직접 매입 등의 적극적인 개입정책으로 돌아서게 된다.

따라서 위기가 표면화 된 뒤에도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에 대한 과신으로 정부가 적극적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점 역시 이번 위기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2) 저고용, 저소득에 기초한 신용팽창(부채) 소비 경제의 한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 월가 금융위기 → 글로벌 금융위기 → 글로벌 인플레이션 → 글로벌 외환위기 → 글로벌 경기침체’의 연쇄파장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미국식 금융시스템 자체의 결함과 규제 및 감독의 소홀, 그리고 금융시장의 자기 조정능력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나친 믿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문제의 원인을 짚어볼 수도 있다.

바로 고용과 소득개선에 기초하기 보다는 이른바 신용창출(부채)에 기초한 소비로 지탱했던 미국경제의 구조다. 1980년대부터 가속화된 경제의 금융화로 미국경제에서 차지하는 금융비중은 갈수록 커졌고, 금융회사들은 전통적인 예대마진을 벗어나 고수익 투자에 집중했다.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고용을 늘려 다수 국민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성장은 멈춰버렸다. ‘소득 향상 → 저축 증가 → 대출 증가 → 투자 확대’의 선순환 구조가 깨지고 대신에 ‘소득 정체 → 부채(신용)에 의한 소비 → 가수요와 거품 확대’로 이어지는 취약한 버블경제로 전환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뒤 미국에서도 예외 없이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소득수준 하위 20퍼센트 계층의 실질소득은 사실상 정체상태라 할 수 있는 1퍼센트 성장에 그친 반면, 상위 1퍼센트 계층의 실질소득은 111퍼센트나 성장했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심화된 결과 미국 중산층은 급격히 붕괴되었고, 1970년 전 국민의 58퍼센트에 달하던 중산층 비중은 2000년에 접어들면 거의 1/3이 줄어든 41퍼센트로 하락한다.

미국 경제가 잘나가던 90년대조차 미국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되었고, 서민들의 생활형편도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금융의 발달로 인한 신용가수요 덕에 마치 소비여력과 자산이 늘어난 것 같은 착각에 빠져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이렇게 양극화로 소득이 전혀 늘어나지 않았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약탈적인 대출행위를 자행하면서 월가의 금융가를 키워온 것이다.

그 약탈적인 대출이 바로 한때 전체 모기지 대출의 20퍼센트까지 팽창했던 서브프라임 대출이며, 국민의 소비가 경제성장의 70퍼센트를 담당하는 미국경제에서 대다수 국민의 소득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다.

실질소득이 전혀 늘지 않은 하위 20퍼센트의 저소득층이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까지 떠안고 있는 동안, 금융회사들은 미국 전체 기업 이윤의 1/3을 독차지할 만큼 엄청난 성장을 구가했다. 2006년 기준 헤지펀드 매니저 소득순위 상위 25명의 평균 보수는 5억 7,000만 달러로, 이들 소득을 다 합치면 자그마치 140억 달러에 달한다. 대부분의 미국 국민이 연봉 6만 달러 이하를 받을 때 이들은 웬만한 국내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을 넘어서는 연봉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과 금융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문제를 일으킨 초고액 연봉의 펀드 매니저가 아니라 바로 미국의 서민들이었다. 주택 거품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연체, 압류, 가계 파산으로 자산과 소득이 부족했던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이 가장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소득과 고용에 기초하지 않은 채, 부채를 통해 이루어진 경제성장은 절대 지속될 수 없으며, 거품이 꺼지는 순간 중하위 소득의 서민이 제일 먼저 피해를 입게 된다는 사실을 오늘 미국의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

덧붙여 둘 것은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매년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기축통화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그동안 ‘국내 제조업 기반 위축 → 수입에 의한 소비 → 경상수지 적자 → 달러 유출 → 미국 국채발행 → 주요 수출국(경상수지 흑자국)으로부터의 달러 회수’라는 메커니즘으로 세계경제를 선도해왔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기축통화인 달러 유동성이 경색되었고, 이는 곧바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동유럽이나 아시아와 같은 국가들의 외환위기로 이어지고 있으며 유럽 역시 자유롭지 않은 형편이다. 이번 금융위기로 달러 기축통화체제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화두로 등장했으며, 2008년 11월 15일 개최될 G20 정상회담을 필두로 본격적인 신(新) 브레튼우즈 체제에 대해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2008 회계연도 기준으로 이미 4,500억 달러의 적자를 안고 있는 미국은 2009 회계연도를 시작한 첫 달인 2008년 10월에 이미 그 절반에 해당하는 2,30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 정부는 그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자국의 거대 금융기업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축소되고 있는 금융기업들의 자산상태로 볼 때 이들의 부실과 금융불안은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심지어 85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진정될 것 같던 AIG보험의 부실은 갈수록 커져서 2008년 11월 기준 그 두 배에 해당하는 1,500억 달러를 투입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렇게 투입한 국민의 세금이 과연 금융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을 회복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금융기업들의 몸집 불리기를 위한 인수합병의 실탄으로 사용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GM(제너럴모터스)을 비롯한 제조업체들도 금융기업들처럼 구제금융을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미국의 거대 가전유통업체인 서킷 시티가 2008년 11월 11일자로 파산보호 신청에 들어갔고, GM 역시 구제금융을 받는다고 해도 파산상태나 다름없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해 집을 차압당하고 파산상태에 몰린 수많은 미국 국민들을 위한 직접적인 대책이 2008년 11월 현재까지도 전혀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부시 대통령에 이어 민주당의 오바마 당선인이 문제 해결사로 나서게 된 지금도 여전히 전망이 불투명한 이유는 미국 금융위기와 실물경제의 위기가 지도자 한 사람의 교체로 해결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기 때문이다.

2.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으로 무너지는 한국 금융시장

미국 발 금융위기는 다양한 전달경로로 한국경제에 파장을 미치고 있다. 그 가운데 외환시장과 자본시장 등 한국 금융시장에 준 충격은 특히 위기가 고점에 달했던 9, 10월에 심각한 양상으로까지 발전했고 여파는 계속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이는 단지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의 자유화 정도가 매우 높아진 탓에 금융시장에서 외부의 금융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2007년 한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시장이 미국경제와 탈동조화(decoupling)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해야 대미 수출입 의존도가 줄어든 상품무역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나타난 현상일 뿐, 특히 금융시장은 과거보다 훨씬 강한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오히려 재동조화(recoupling) 주장이 중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9, 10월 위기 국면에서는 하루 전의 미국증시 동향이 거의 실시간으로 우리 증시에 반영되는가 하면, 반대로 아시아 증시가 곧바로 미국 증시에 반영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1)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변동을 보인 외환시장
미국 금융위기가 준 충격으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금융시장은 바로 외환시장이었고 이는 곧바로 큰 폭의 환율변동과 외환위기설로 나타났다. 2008년 원화의 달러대비 환율 변동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컸는데, 원-달러 환율은 달러가치와는 상관없이 폭등세를 이어갔고 미국 금융위기가 증폭될 때 마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환율 상승이 수출기업들에게 호재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수입물가 상승을 부추기면서 전반적인 소비자물가, 수입원자재 가격 등을 급등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달러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원화의 초약세가 시작된 2007년 11월부터 이미 원화표시 수입물가는 달러화 표시 수입물가를 역전하기 시작했다. 2008년 7월 147달러까지 치솟은 원유가격이 8월 이후 폭락하기 시작했음에도 환율상승폭이 컸던 9월에 원화표시 수입물가는 8월과 같은 42.6퍼센트를 그대로 유지했다.

최근 한국은행 자료를 보더라도 환율이 10퍼센트 상승하면 물가는 2.62퍼센트(공산품의 경우 3.95퍼센트) 상승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는데 반해, 원유 가격이 10퍼센트 하락할 때 물가의 하락효과는 0.49퍼센트에 그치고 있다. 결국 원유가격 하락보다 환율상승이 물가에 5배 이상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최근 1년간 원-달러 환율만 폭등 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큰 폭으로 원-엔 환율도 가파르게 상승했고 이는 일본으로부터 부품과 소재를 들여와야 하는 수입구조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올해 들어 대일 수입액이 늘어나면서 2008년 1~8월 대일 무역역조 규모는 약 230억 달러(누적)에 이른다. 특히 고려할 것은 일본에서 들여오는 부품과 소재의 수입단가가 올라가면 이들을 2차 부품으로 가공하여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의 채산성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원가는 높아지지만 대기업 납품가는 이를 따라가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환율 상승과 달러 부족 현상은 다양한 요인으로부터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① 기본적으로는 2008년 접어들며 경상수지가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된 뒤 9월까지 지속되었고 ② 2007년 6월부터 외국인 주식 순매도와 달러화 환전 송금이 이어졌으며 ③ 이 밖에도 조선업 수출액 선물환 매도 물량이나 해외펀드 헤지 물량도 적지 않았고 ④ 일부 역외 환투기 세력의 개입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2008년 9, 10월에 접어들면서 국제적인 신용경색으로 국내은행과 외국은행 간, 국내 은행 간, 또 은행과 수출기업들 간의 달러 유통이 막히면서 달러 거래 자체가 축소된 상황에서 환율은 비정상적으로 폭등하게 되었고 급기야 외환위기에 노출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10월 초까지 외환시장에 외환보유고를 푸는 방식을 취하다가 하루 이상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외환스왑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다시 은행권에 달러 지급보증과 직접 공급을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폭으로 환율이 요동치고 일부 NDF시장에서의 환투기까지 의심되는 상황에서 국내 금융시장은 이를 적절히 제어할 어떤 정책적 기제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2) 과잉 수익추구로 위험도에 노출된 한국의 금융기관들
미국 금융위기에서 씨티그룹이나 JP 모건 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같은 상업은행들도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주요 진원지는 투자은행들이었다. 때문에 2008년 9월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주요 상업은행들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부실과 연체가 높은 저축은행들이 먼저 위험수위에 들어설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극단적인 신용경색을 몰고 왔던 2008년 10월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은행권이 위기의 진원지로 돌변했고, 외신 발 외환위기도 대부분 은행권을 대상으로 나온 것이었다. 때문에 2008년 10월에 정부에서 발표한 대부분의 금융 안정화 대책은 증권시장이 아니라 은행권에 맞추어져 있는데, 1,000억 달러 지급보증, 300억 달러 자금 직접지원, 은행채 직접 매입, 유동성 비율 완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외환위기 이후 수차례의 인수합병을 거치면서 자본 건전성을 강화해왔다고 자부해왔고, 최근에는 글로벌 메가뱅크로 발돋움하기 위해 우리, 신한, 하나은행에 이어 국민은행까지 지주회사 전환을 서둘렀던 은행권이 어떤 연유로 미국 금융위기 충격에 그토록 쉽게 노출될 수 있었던 것인가.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변동을 겪었던 은행들은 이후 ‘금융기관’으로서 자금 중개기능 보다는 철저히 수익을 추구하는 ‘금융회사’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규모화 겸업화를 모토로 변신을 거듭해왔다. 그 결과 국내 은행들은 지난해까지 국민은행의 당기순이익 2조 7,000억 원을 필두로 조 단위의 이익을 실현하며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나 통신회사에 견줄만한 수익창출력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현금 배당으로 돌려왔다. 국내 거의 모든 은행의 외국인 주식소유 비중이 60퍼센트를 넘은 상황에서 이 배당의 대부분은 당연히 외국인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은행들의 수익성 위주 경영과 규모화에 대한 압박은 2003년 신용카드 대란과 2006년 과잉 주택담보대출을 낳은 무리한 대출영업으로 이어졌는가 하면, 보험과 펀드 판매 수수료에 집착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처럼 은행들이 대출을 늘려가는 상황에서 2006년 이후 증시 호황과 펀드상품 판매 호조로 시중 자금이 은행저축에서 펀드와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저축성 수신이 줄어들게 된다. 저축성 은행수신이 전체 금융기관 유동성(Lf)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말 42.4퍼센트에서 2008년 상반기 33.5퍼센트로 줄어들은 반면, 같은 기간 펀드 잔액은 14.7퍼센트에서 19.9퍼센트로 증가했다.

이 결과 나타난 현상이 바로 예금수신 금액을 뛰어넘는 대출의 증가, 즉 예대율의 증가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일반적인 예금은행의 총예금(요구불 예금과 저축성 예금) 대비 대출비율은 2008년 8월말 현재 말잔 기준으로 149.2퍼센트(총 예금잔액은 635조 원, 대출잔액은 891조 원)로 나타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예금에 양도성예금증서(CD)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6월 말 기준 예대율은 103퍼센트로 적정선인 80퍼센트를 훨씬 뛰어넘기는 마찬가지다.
예대율이 높아지던 조건에서 은행들이 규모를 키우고 수익을 얻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은행채나 양도성예금증서(CD)와 같은 시장성 수신을 대폭 늘리는 것이었다. 즉, 대출자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규모화 경쟁에 가속도를 붙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저축성 수신이 아닌 시장성 수신이 급격히 팽창했는데 CD와 은행채 등 시장성 수신이 총 자본 조달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잔 기준으로 21.4퍼센트나 되었다. 만일 이런 식으로 조달해 대출을 감행한 자금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을 경우 은행은 만기가 도래한 CD와 은행채를 갚지 못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조달금리가 높아진 은행채의 경우 2008년 상반기 현재 추가로 25조 4,000억 원이 늘어나 발행잔액이 290조 4,000억 원에 이르고 있다.

2008년 9, 10월 금융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자금경색도 극심해졌고 결국 잠재돼있던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편에서는 기업과 가계대출의 부실 정도가 높아지면서 추가 대출은 고사하고 대출회수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과잉 발행된 CD나 은행채가 소화되지 않으면서 자금조달은 더욱 어렵게 되었고 그럴수록 이들의 수신금리도 올라갔다.

은행들의 대출금리가 올라 중소기업 대출의 경우 금리가 7.5퍼센트를 넘어섰고 고정금리부 주택담보 대출금리는 10퍼센트를 돌파했다. 2008년 10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퍼센트 내린 데 이어 다시 0.75퍼센트 내려 4.25퍼센트까지 인하했만 시중금리는 오히려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문제는 원화 유동성만이 아니었다. 은행들은 국내은행이나 외국은행 지점을 막론하고 2005년 이후에 단기 대외차입을 급격히 늘려갔고, 그 결과 정부발표로도 2008년 10월 현재 800억 달러의 대외채무를 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역시 2008년 9, 10월이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달러 유동성 경색이 심화되자 기존 대외채무의 만기연장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추가 해외차입도 단절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여기에 기존 수출대기업들 조차 수출대금을 시중에 풀어놓지 않으면서 은행들은 극심한 달러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은행 발 외환위기설까지 등장했던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미국과 300억 달러의 통화스왑을 체결하면서 일시적인 안정세가 오기는 했지만, 그 동안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고를 축내면서 2008년 1월 기준으로 6,618억 달러이던 것이 10월 말 기준으로 2,122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경상수지 적자로 감소한 금액을 감안하더라도 줄잡아 300억 달러 이상을 환율 방어에 소진한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둘 것은 2008년 11월 접어들면서 원화 유동성 경색은 은행을 넘어 캐피탈, 카드사 등 제2금융권으로 번져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객 수신 기반을 갖춘 은행과 달리 카드, 캐피탈 등 여신 전문 금융기관들은 은행채보다도 신용이 낮은 카드채와 같은 여전채나 기업어음(CP) 발행이 더욱 어려워지고, 자신들이 보유한 채권을 담보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 Asset backed Securities) 발행이 여의치 않으면서 더욱 궁지로 몰리게 된 것이다.

증권사나 보험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증권사가 보유한 채권을 담보로 빌린 자금이 이미 대폭 늘어난 상태이고, 보험사도 채권과 주식 등의 보유자산 가치가 하락하여 지급여력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은행의 위기가 카드사의 위기, 캐피탈사의 위기, 증권사와 보험사의 위기로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3) 자본시장 개방이 가져온 후과, 폭락하는 주식시장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4조 9,000억 원 순매도, 채권시장에서 역시 4조 1,000억 원 순매도. 이것이 미국 금융위기로 인한 한국 자본시장의 충격이 가장 심했던 2008년 10월 외국인투자자들이 취했던 포지션이었다. 이로서 2008년 10월까지 한국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주식을 팔고 빠져나간 자금이 총 41조 8,000억 원이었고 외국인 비중은 2000년 이후 8년 만에 30퍼센트 밑으로 주저앉게 된다. 주식 매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높은 금리를 노리면서 꾸준히 매수세를 유지했던 채권마저 주식 매도에 버금갈 정도의 대규모 매도세로 전환되었다.

그 사이 한때 코스피지수는 1,000선 밑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종합주가 기준으로 정확히 1년 만에 반 토막이 난 것이다. 80퍼센트나 떨어져 1/5로 폭락한 종목도 무려 20여 개에 달했다.

사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개방된 것은 1990년대 초의 일이다. 1992년 1월 3일 국민주를 제외한 모든 상장 종목에 대해 외국인 1인당 3퍼센트, 종목당 10퍼센트 한도에서 외국인 투자를 허용함으로써 우리 주식시장은 본격적인 개방 시대를 맞았다. 그 후 외환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종목 당 26퍼센트 미만이던 외국인투자 허용한도가 1997년 12월을 기해 급격히 무너지면서 결국 이듬해인 1998년 5월 25일 외국인 투자와 관련한 모든 제한은 사라졌다. 2008년은 그로부터 만 10년이 되는 해이다.

외환위기를 맞아 정책 당국자들이 외자 유치를 가장 중요한 정책구호로 들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외국인 직접투자보다는 주식, 채권과 같은 포트폴리오 투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한때 지수 300선을 밑돌던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자본은 시장개방과 함께 포트폴리오 투자를 확대하기 시작한다. 한국경제 최악의 상황이 외국 금융자본에게는 헐값에 주식을 매수할 절호의 기회가 되었던 셈이다.

1998년까지만 해도 20퍼센트를 밑돌던 국내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지분율은 2000년 들어30퍼센트를 넘어섰고, 그 후 2004년까지 외국자본은 가파른 속도로 국내주식을 사들여 지분율을 40퍼센트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멕시코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외국인이 순매수를 이어간 1999년~2004년 주가는 대체로 지수 500~800 수준에서 움직였다. 이 기간 동안 외국인 지분율은 18퍼센트에서 42퍼센트로 무려 24퍼센트포인트나 증가했는데 이때 외국인이 순수하게 투입한 금액은 대략 41조 7,000억 원 정도였다.

그러나 2005년에 접어들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차익실현에 나서면서 주식 매도세가 시작되었다. 외국인이 매도 기조로 돌아서기 시작한 2005년 1월의 주가는 지수 1,000포인트를 돌파했고 이러한 가파른 상승세 속에서 외국인은 막대한 차익실현에 성공한다. 외국인이 2005년~2007년에 주식매도로 회수한 돈은 39조 9,000억 원에 달한다.

결과적으로, 외국인은 1999년~2004년 지분율을 24퍼센트 늘리기 위해 42조 원의 자금을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했고, 2005~2007년에 그 가운데 단지 10퍼센트의 지분만을 팔아 투자원금에 가까운 40조 원을 회수한 셈이며, 14퍼센트에 해당하는 지분은 고스란히 순평가 이익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이것이 국내 자본시장에 외국인 투자를 유치한 지난 10년의 대차대조표다.

미국 발 서브프라임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 2007년 6월부터는 단순한 차익실현을 위한 매도를 넘어 새로운 양상이 전개된다. 금융위기로 심각한 유동성 부족을 겪게 된 외국 금융자본이 과거에 한국과 같은 신흥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외국인은 주가가 오르든 내리든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신흥시장의 주식을 처분하여 달러로 환전한 뒤 송금하는 행위를 이어간다.

이런 모습은 특히 한국이 두드러졌는데, 아시아 국가 가운데에서 2007년부터 외국인이 대규모 주식매도에 나선 국가는 거의 한국이 유일하며, 2008년에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주식매도가 이어졌지만 역시 한국은 일본을 뛰어넘을 정도의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2007년 하반기부터 금리차이를 이용한 재정거래 이익을 위해 채권투자가 잠깐 늘어났지만 2008년 10월 들어서는 이마저도 매도세로 바뀌었다.

이 국면에서 주가는 가파른 폭락을 거듭했으며 그나마 낙폭을 줄인 것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매수 덕분이었다.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지고 금융불안이 시작되던 2007년 한 해 동안 개인투자자들은 오히려 80만 명이 늘어나서 2007년 말 기준 444만 명으로 늘어났다. 직접적인 주식투자 인구가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10월 들어 투신권을 포함한 기관투자가마저 펀드 환매사태에 대비해 주식을 매도하면서 한때 주가가 지수 1,000선 밑으로 떨어지는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 주식시장의 외국인 비중은 29퍼센트 전후를 유지하고 있어 일반적인 선진국 수준인 25퍼센트보다는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한 규모가 조금 줄어들 수는 있어도 외국인 매도 행진은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사실상 무제한으로 자본시장을 개방한 결과 금융위기 국면에서 위기는 오히려 증폭되고 있으며, 그 피해는 결국 440만 직접 투자자와 2,000만이 넘는 펀드 투자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종합해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환시장이 전면 개방되고 은행이 외국인 소유로 넘어가면서 수익추구형 금융회사로 탈바꿈하고, 자본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금융시장이 구조전환 된 결과, 국내 금융시장의 내성과 안정성이 강화되기 보다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되었음이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다음편에 계속)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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