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29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경제 민주화, 대선 최대 쟁점이 정말 맞는가?

네 달도 남지 않은 18대 대선의 최대 쟁점이자 이슈가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지 최근 상당한 회의를 갖게 한다.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를 가지고 도무지 여와 야의 구분, 보수와 진보의 구분, 대선 후보들 사이의 차별성이 생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민주통합당과 대선 후보들이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재벌개혁-경제 민주화 전망과 방안을 만들어내지 못한데 있다.

단적인 사례가 새누리당 경제 민주화 실천모임이 준비하는 금산분리 법안 내용이다. 새누리당 법안은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9%에서 4%로 되돌리는 것을 넘어서, 기존에 재벌이 제한없이 소유했던 보험, 증권 등 비은행 금융회사들을 중간금융지주회사로 묶어서 따로 분리하기로 했다고 알려졌다. 비록 소유관계를 끊어내는 진정한 금산분리는 아니지만, 은행이 아닌 금융계열사에 대해서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민주통합당이 준비해온 법안보다 더 전진된 것이다.

이처럼, 민주통합당과 대선 후보들은 과거부터 전통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재벌개혁 의제들, 예를 들어 출자총액 제한,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지분요건 강화, 금산분리 등을 의례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넘어서 시대와 상황변화에 맞는 혁신적인 개혁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관성적이고 소극적인 경제 민주화 의지 때문에 쟁점이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여의도를 나와 민생현장의 경제 민주화를 실천하라.

이러한 것들이 실제로는 어렵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민주당의 손학규 후보는 “비대화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것을 (경제 민주화를 위한) 네거티브 접근이라고 한다면, 경제적 약자들이 적극적으로 경제 민주화를 펼치는 능동적인 접근이 있다”는 분석을 했다. 매우 적당한 지적이다. 민주통합당 후보들은 즉시 능동적인 접근으로 돌아서야 한다.

능동적인 접근은 현대차에서 사내하청으로 일하고 있는 8000 명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불법파견 판결에 따라 즉시 정규직 전환을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이미 인근에 1개 대형마트와 3개의 SSM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4300평 규모의 대형마트를 마포 합정에 입점시키려는 홈플러스를 막는 것이다. 경제적 약자들이 적극적으로 경제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는 생활현장에서 그 요구를 함께 실현하고 이를 제도화해주는 것이다.

 

월 2회 휴무제도 간단히 무력화 되는 상황에서 경제 민주화라니.

특히 중소상인들은 마포 합정 홈플러스 입점 저지를 위해 농성을 시작하면서 시민 사회단체와 함께 세 가지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대형 마트의 추가 입점 중지’, ‘대규모 점포의 영업시간 제한 확대와 모든 공휴일 의무 휴업제 시행’, ‘유통재벌의 도매업 신규 진출 중지’가 그것이다. 최근 유통재벌의 소송으로 월 2회 휴무제가 불과 4개월 만에 완전히 무력화된 상황을 중소상인들은 지켜보았다. 선거 국면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모든 정치세력이 경제 민주화를 소리 높여 외치는 현실에서도 유통재벌의 공세에 따라 월 2회 휴무제가 간단히 무력화되는 이런 상황에서 경제 민주화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롯데, 이마트, GS 등 유통재벌들은 우리나라 1,2,3위 재벌도 아니지 않는가? 이들에게도 쉽게 굴복하는 경제 민주화라면, 만약에 대선이 끝나고 정치권이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자마자 모든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여의도에서 사라질 것이다. 정치권이 정말 경제 민주화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가 있다면 9월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대형 점포 공휴일 휴무제를 입법화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 국민들도 지역의 중소 상인들과 연대하여 ‘착한 소비운동’ 차원에서 대형마트 휴무제 요구를 함께 해나갈 필요가 있다. 시민의 힘이 뒷받침 되지 않는 사회개혁은 이루어진 역사가 없음을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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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8 / 02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차라리 홍준표가 안철수를 비판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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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박근혜 후보가 안철수 원장에게 경제 민주화를 훈계하다.

2. “박근혜 후보에게 재벌개혁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됨”

3. 박근혜는 본인부터 철저히 친 재벌 정책을 반성하라.

 

[본 문]

 

박근혜 후보가 안철수 원장에게 경제 민주화를 훈계하다

최근 안철수 원장의 재벌개혁 의지에 대한 검증이 관심을 받고 있다. 9년 전인 2003년, 안 원장이 당시 벤처기업가와 대기업 최고경영자로 구성된 브이소사이어티의 같은 멤버로서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되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 석방 탄원서에 서명한 것이 재벌 감싸기라고 지적된 것이다. 이어 11년 전인 2001년, 결국 좌절되고 말았던 인터넷 은행 설립 시도 과정에 브이소사이어티 멤버로서 참여했던 것을 두고 금산분리를 훼손했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사회에 살면서 친구가 법정에 갔는데 탄원서 써달라고 하면 나도 안 써줄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는 정운찬 전 총리의 언급처럼 기업 경영자들이 일반적으로 겪을 수 있는 사건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안 원장이 기업가가 아니라 책임이 가장 무거운 대선 후보로 거명되는 만큼 이 문제는 확인하고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유력한 대선 후보이자 안철수 원장과 지지율 경합을 벌이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거들고 나섰다. 안철수 원장이 재벌 총수의 범죄행위를 감싸는 탄원서에 서명한 사실을 비판하면서, “그런 것을 우리가 고치려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라고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드디어 박근혜가 안철수 원장에 대해 경제 민주화의 원칙을 들이대며 직접 반격했다고 언론들도 일제히 다투어 보도했다. 벤처기업가 출신 교수 안철수 원장에게 박근혜 후보가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에 대해 훈계를 두게 될 줄이야.


“박근혜 후보에게 재벌개혁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됨”

“재벌개혁과 관련하여 참여정부에서 재벌개혁 정책이 대폭 후퇴한 것에 대한 평가도 없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전면적 폐지, 금산분리의 점진적 완화를 주장하고 있어 이명박 후보와 마찬가지로 재벌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음. 재벌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됨.”

위의 인용문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7년 여름. 경향신문 2007년 7월 3일자에 실렸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당내 경선에 나와서 발표한 경제 공약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연합에서 총괄 평가한 내용이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한나라당 경선 후보들 가운데 경제 공약 면에서는 이명박 후보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의 친 재벌 시장 지상주의 경향을 보였다. 특히 출자총액 제한제도에 대해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유독 즉각 폐지를 주장, 금산분리에 대해서서도 이명박, 박근혜 후보만이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 법인세에 대해서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즉시 인하를 주장하여 두 후보의 경제 공약에 차이가 없었다고 당시 언론들이 공통적으로 보도했다.

“우리 경제, 어떻게 살릴 것인가?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살 수 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권부터 바꿔야 한다. 크기만 하고 무능한 정부, 불법파업과 집단이기주의, 기업은 규제로 묶이고 국민의 마음은 갈라져 있는 것이 우리 경제의 큰 병이다. 이 병을 고치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 ...  ‘줄.푸.세 정책’으로 우리 경제를 확실히 살려 놓겠다. 세금과 정부 규모는 줄이고 불합리한 규제는 과감히 풀고 법질서와 원칙은 바로 세우겠다.”

위 인용문은 당시 한나라당이 2007년 5월 29일 광주에서 대선 후보 경제 정책 토론회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박근혜 후보가 한 발언의 일부이다. 동아일보 2007년 5월 30일자에 실렸다. 바로 ‘줄.푸.세 정책’을 정점으로 한 경제 자유화와 친 재벌 정책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5년 전 박근혜 후보의 경제 공약 어디에도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들어갈 틈 자체가 없었다. 박근혜에게 경제 민주화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박근혜는 본인부터 철저히 친 재벌 정책을 반성하라

“국민 여러분에게 서민경제론을 주창한다. 성장 동력 회복을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이다. 재벌 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될 때까지 ‘출자총액제한제’와 금산법은 유지되어야 하고, 재벌의 상속세 탈세를 막아 불법적인 부의 대물림을 없애겠다.”

위 인용문은 당시 박근혜 후보와 함께 경선에 나선 홍준표 전 의원이 자신의 경제 공약을 설명한 내용이다. 한나라당에서 다소라도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 의지를 가진 후보가 있었다면 홍준표 전 의원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박근혜 후보가 “홍준표 후보는 출자총액제한제를 유지한다고 했다. 경제가 살기 위해서는 투자가 살아나야 하는데, (재벌에 대한) 역차별 아닌가.” 하면서 홍준표 후보의 재벌개혁을 비판하고 재벌 옹호를 했다.

오죽하면 또 다른 대선후보였던 원희룡 의원이 “(박근혜의) 줄.푸.세가 혹시 복지는 줄이고 재벌규제와 난개발, 투기를 풀어서 생기는 시장의 실패, 약자의 저항을 공권력으로 군기 세우는 것 아닌가” 하고 비판을 할 정도였다. 원희룡 의원의 줄.푸.세 해석이 정확했음은 이 정책을 현실화시킨 이명박 정부 5년이 증명해주었다.

바로 5년 전에 자기 당 동료의 최저 수준의 재벌개혁 방안조차 비판했던 박근혜 후보가 이제 ‘경제 민주화의 전도사’로 나서서 누군가를 비판하는 엄청난 비약이 일어난 것이다. 비약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말이다.

어쨌든 안철수 원장은 9년 전 기업가 커뮤니티 회원의 일원으로 최태원 SK 회장 구명 탄원서에 서명했던 점에 대해 공개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후보는 5년 전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수없이 반복한 친재벌 정책 공약에 대해 국민 앞에 무릎 꿇고 반성을 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다른 사람을 훈계할 처지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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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5 / 07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이스라엘은 어떻게 2012년판 재벌해체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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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재벌개혁은 정말 불가능한 것인가.

2. 이스라엘 재벌경제

3. 이스라엘의 강도높은 재벌개혁 결정

4. 불평등에 저항하는 시민의 힘이 재벌해체의 동력

5. 다시생각해보는 삼성의 금산결합 구조

 

[본 문]

1. 재벌개혁은 정말 불가능한 것인가?

보편 복지에 이어 한국 사회개혁의 중심 담론으로 부상한 경제 민주화 논의가 다양하게 내용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경제 민주화의 출발점이자 대 전제이기도 한 재벌개혁조차 회의적인 분위기가 많은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여전히 어떻게 재벌개혁을 할 것인가 보다는 ‘정말 재벌개혁이 레토릭을 넘어 현실로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하는 의문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대략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현실적 경제에서 과감한 재벌개혁이 미치는 충격이 너무 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재계도 이런 일부 국민의 걱정을 악용하여 마치 재벌개혁을 하면 경제가 망가질 것처럼 국민을 협박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재벌이 압도적 힘을 행사하면서 이익을 독식하고 있는 바로 지금의 경제 시스템이 국민에게 미치는 충격이 너무 크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충격을 줄이자고 재벌개혁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 오지도 않은 충격을 논하기 전에 당장 지금 받고 있는 충격을 줄이는 것이 과제다.

그런데 재벌개혁에 대한 보다 본원적인 회의는 다른데서 나온다. 재벌집단의 다양한 저항과 로비, 협박을 제압하고 개혁을 관철할 힘이 과연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정(치), 관(료), 언(론), 경(제) 유착이라는 말이 상식이 될 정도로 이미 우리사회의 핵심 권력들은 재벌에 의해 포섭되거나 영향권 범위 안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정당이나 정치인, 그를 보도하는 언론, 집행해야 할 관료들이 이미 재벌과 이해관계를 같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거철이 지나면 재벌개혁 이슈도 슬그머니 사라질 것이라는 예단이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이 재벌 개혁을 현실화 시킬 핵심일까. 개혁이든 혁명이든 모든 사회적 변화가 그러한 것처럼, 더구나 변화에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이 강력할 때에는 그 개혁의 현실 가능성과 힘은 국민들에게서 나온다. 재벌개혁이 특히 그러하다. 재벌개혁은 정치권이나 권력의 의지도 아니고, 제도나 수단의 문제도 아니고 시민들이 얼마나 강력하게 재벌개혁을 원하는지를 말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가에 달려있다. 과거의 재벌개혁이 실패했다면 그 이유도 바로 시민적 동력에 기초하지 않고 정권의 의지나 정책적 수단에만 의지했기 때문이다.

1980~90년대 발전도상국 시절도 아닌 2010년대에도 재벌개혁은 전혀 낡은 이슈가 아니라는 것, 뿐만 아니라 재벌개혁이 가능하기조차 하다는 것, 그리고 그 비결은 재벌개혁을 원하는 시민적 힘이 조직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준 최신의 사례가 이스라엘에서 나와서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국내 언론에서 충분히 주목하지 않아 지나쳐 버렸지만 충분히 검토해야 할 시사점이 적지 않다. 그런데 재벌개혁을 논하는 마당에 뜬금없이 웬 이스라엘이 거명되는가. 이스라엘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2. 이스라엘의 재벌경제

국내 언론에서 짧게 소개되고 지나갔지만, 지난 4월 22일 이스라엘 내각은 사실상 재벌해체(break-up of conglomerates)를 의미하는 결정을 내리고 의회 승인 절차로 넘겼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재벌개혁이 한국이 아닌 이스라엘에서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중동의 전쟁과 종교밖에 크게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국인들에게 느닷없이 한국에만 있는 줄 알았던 재벌문제가 이스라엘에서 튀어나오다니.

우선 이스라엘 경제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고, 자료 접근도 쉽지 않지만, 간단한 경제 정보부터 확인해보자. 이스라엘 인구가 760만 명이니 우리나라의 1/6정도라고 보면 된다. GDP규모는 달러 환산기준 2011년에 2420억 달러로서 우리나라 1조 1164억 달러의 1/5쯤 된다. 1인당 국민소득은 31000달러다. 이 정도면 군사적 강국인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경제적으로도 선진국 수준에 이른 강소국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한국과 유사하게 군사 대국화와 급속한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재벌체제를 만들고 키우는데 의존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냈던 드로르 스트롬(Dror Strum)은 파이낸셜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경제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산업의 영역을 벗어나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벌들에 의해 시장이 장악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본시장이다. 여기도 재벌과 은행이 사실상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5대 은행 모두 재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예루살렘 헤브루 대학 경제학부 야페(Yishay Yafeh)교수는 “재벌들은 시너지 효과가 거의 없는 분야까지 사업을 확장하는 등 지나친 다각화를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두 관계자의 말을 요약하면 이스라엘 재벌체제가 한마디로 금산분리도 안되어 있고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도 심각하다는 것인데 한국재벌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그 결과 이스라엘 시민들에게 재벌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실감나게 묘사해주고 있다.

“최근 교외에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한 이스라엘의 일반 가정을 예로 들어보자. 이 집과 이웃집들 모두 같은 대기업에서 지은 것이고, 보험이나 휴대폰과 인터넷 서비스도 다 같은 회사가 제공한다. 냉장고에는 역시 같은 회사가 운영하는 수퍼마켓에서 사온 제품들로 가득 차 있다. 옷장에 들어있는 옷들이나 구도도 같은 회사에 속하는 상점들에서 구입한 것이다.”

“이 집에서 보는 신문도, 재테크를 위해 이용하는 금융업체도 다 같은 재벌의 계열사다. 아버지는 이스라엘 최대의 화학 공장에서 일하고 어머니는 신생 바이오텍 기업에서 일한다. 그런데 이 회사들도 같은 재벌 소유다.”

어떤가. 한국의 삼성을 그대로 대입해도 될 만큼 유사하지 않은가. 이스라엘은 현재 최대의 통신재벌인 IDB그룹과 에너지 재벌인 델렉(Delek)그룹을 주축으로 주요 재벌 집단들이 경제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최대 재벌인 IDB의 경우를 보면, 이동 통신사, 건설, 수퍼마켓, 시멘트, 종이, 화학, 소매업, 보험, 의료, 여행, 신문 등 다양한 업종에서 선두기업을 거느리고 있고 자산이 300억 달러 직원이 4만 명에 이른다. 물론 2000억 달러(원화로 255조 원) 이상의 자산과 21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한국의 삼성그룹과 비교해서는 왜소하지만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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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해법, 달러 무제한 공급이라는 초강수까지 등장


미국을 필두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가는 금융위기를 수습하고자, 선진 각국들이 각자 자국에 필요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에서 7,000억 달러 구제금융법안을 통과시키고 정부가 직접 기업어음(CP)을 매입하겠다고 발표하는 동안, 영국과 아일랜드는 부실은행 국유화 방침을 내놓는가 하면 독일을 중심으로 국가가 예금자 예금보호를 전액 보장한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부도위기에 몰린 아이슬란드는 러시아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조용하기만 했던 국제통화기금(IMF)마저 나서고 있다.

그러나 내용이나 시점이 서로 어긋나면서 이들 대책의 효과는 반감되었고, 이미 금융위기는 개별 국가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금융위기는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미국 연방정부의 통제를 넘어서, 개방된 금융 연쇄고리를 타고 전 세계로 급격히 전이되었고, 이제는 문자 그대로 지구적 범위의 해법을 요구하는 단계까지 왔다.

10월 8일, 오랜만에 주요 선진 7개국(G7) 중앙은행이 일제히 금리를 인하하는 ‘공조’를 취했지만 그 효과 역시 하루를 가지 못했다. 그러자 10월 10일 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담, 11일 우리나라와 BRICs 등을 포함한 G20 재무장관 회담, 12일 유로존 15개국 정상회의를 잇달아 개최하고 금융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책을 논의했다.

부실 자산 인수를 넘어 금융회사에 직접 자금투입을 하는 방안, 은행 간 자금거래에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는 방안 등의 강력한 국가 개입 대책이 쏟아져 나와,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가 사실상 국가자본주의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더니 13일 미국, 일본, 유럽, 영국, 스위스 등 5개 중앙은행이 “상업은행들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달러 무제한 공급 선언을 하기까지 이른다. 심장이 멎어버린 상태를 한시도 지연시킬 수 없어 일시적인 전기충격 요법을 사용해야 할 국면에 이른 것이다.

단지 교통경찰의 태만과 운전과실 때문에 금융대란이 발생했다?

그러나 전기충격 요법으로 이미 실물경제까지 전이된 세계 경제위기가 얼마나 회복될지는 여전히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 한국은 자본시장 통합법과 함께 금융규제완화 논쟁의 초점이었던 ‘금산분리 완화’ 방안을 미루고 미룬 끝에 13일 전격 발표하였다.

우리 금융정책의 수장인 금융위원회 전광우 위원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시작되어 전 세계 금융공황국면까지 치달은 최근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 바 있다.

“교통사고(금융위기)의 원인이 자동차의 구조적 결함(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운전과실(경영자의 모럴헤저드)이나 잘못된 교통신호체계(감독시스템), 또는 과속을 막지 못한 교통경찰(감독기관)의 책임일 수도 있다” (<아시아투데이> 10월 10일)

금융정책 수장다운 대단히 적절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광우 위원장 발언의 취지는 ‘금융자본주의 그 자체나 규제 시스템이 문제라기보다는 감독소홀이나 금융회사의 과욕이 문제’일 가능성이 높으니, 우리나라는 향후에 ‘금융산업 혁신을 그대로 강행하고 규제완화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금융감독을 효율화하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한 접촉사고도 아니고, 전 세계가 무제한 달러 공급을 해야 하는 ‘전 국가적 교통마비 사고’라고 표현해야 할 지금의 금융위기가 과연 교통경찰의 근무태만과 운전자의 과실 때문에 발생했다고 간주할 수 있을까. 미국 금융시스템이 어떻게 30년 동안 부실 위험성을 누적시켜 왔는지를 추적해 보면서 전광우 위원장 발언의 타당성을 가려보자.

전통 제조업 투자를 선호했던 월가의 유명한 투자자 워렌 버핏은 이번 세계 금융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Nobody knows who is doing what)’에 지나치게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투자’한 월가의 위험 통제기능 상실에 지금의 금융위기가 있다고.

미국 금융 고속도로에는 신호등도, 보안관도 없었다

1980년 이후 미국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던 금융시스템 엔진에는 워런 버핏의 말처럼 ‘대량 살상무기’ 수준의 위험성이 있는 파생상품, ‘시한폭탄 결함’이 자라고 있었다. 또한 투자자와 기업의 자금 중개 수수료를 넘어서 자기자본의 몇 십 배의 차입(leverage)까지 동원해서라도 고수익을 좇으려는 ‘급가속 결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정책 결정자들은 금융시스템에 내재한 근본 결함을 고치려 하거나 문제발생을 방지하려는 최소한의 어떤 사전적인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반대로 “파생상품은 위험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그 위험을 기꺼이 부담하려는 사람들에게 넘길 수 있는 놀라운 수단”,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2003년)이라며 시장이 위험성을 자율적으로 정화시킬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또한 미국 정부는 금융회사들이 ‘위험을 기꺼이 부담’하면서까지 고수익을 추구하도록 금융에 가해졌던 각종 규제를 오히려 풀어버렸고, 금융회사들은 그나마 남아있던 규제도 피해나갔다. 1929년 대공황의 교훈을 근간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엄격한 분리를 규정했던 은행법(Glass-Steagall Act)은 1999년 은행현대화법(Gramm-Leach-Bliley Act)으로 대체되면서, 금융지주회사라는 이름아래 사실상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장벽이 사라졌다.

이들 금융지주회사와 투자은행들은 연방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는 투자전문 자회사와 모기지 전문회사를 세워, 이제는 악명 높아진 서브프라임 대출을 남발했다. 특히 투자은행들은 상업은행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로부터 과다 차입 등에 대해 전혀 규제를 받지 않았고, 미국 증권선물거래소(SEC)로부터도 그 어떤 강제적이고 명시적인 규정도 받지 않아, ‘자발적 합의’에 기초한 느슨하기 그지없는 규제 틀에서 마음껏 대규모 차입과 자기자본 투자를 강행했다.

더욱이 90년대에 접어들면서 파생상품을 주업으로 하는 헤지펀드와 인수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사모펀드라고 하는 초고속 경주용차를 허용하여 이들이 금융고속도로를 폭주하도록 했다. 이들에게는 기본적인 규제마저 없었고 최소한의 정보공개의무조차 없었다. 얼마나 위험한 상품에 투자를 하든, 얼마나 과도한 차입을 동원하든 규제는 없었다.

말하자면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라고 하는 초고속 경주용차가 과속주행을 하고 신호위반을 일삼고 중앙선을 침범하는 극히 ‘위험한 주행’을 해도 그들만 다치고 만다면 보안관은 전혀 단속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가드레일만 들이박고 끝난 것이 아니라 대규모 인명 살상을 했으며 전체 교통을 마비시키고야 말았다.

위험성을 알면서도 시장이 자율적으로 통제하리라 믿었던 파생상품, 그리고 점점 더 풀려나가는 규제 속에서 위험도 높은 파생상품과 모기지 대출을 자유롭게 일삼았던 금융기관들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미국 금융 감독의 최종 보안관이라고 할 재무부 관계자들은 대부분 월가 출신들이었고 시장주의 추종자들이다. 자신이 교통법규를 위반한 전력을 가진데다가, 위반을 저지른 운전자와 친분이 두터운 이들 보안관에게 감독을 더 잘하라고 한들 감독이 제대로 되겠는가.

신자유주의 금융 엔진의 과열과 폭발

그뿐이 아니다. 미국 금융상품의 불량 여부를 판단해왔던 기관이 바로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Fitch)인 3대 신용기관이다. 그런데 이들은 공적기관이 아니라 철저히 수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이었다. 이들의 수익원은 바로 불량여부를 판단해야할 그 금융상품을 제조, 유통하는 투자은행들이다. 애당초 객관적 평가는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금융회사의 책임자들도 문제를 비켜가지 않는다. 이제 94년 역사의 메릴린치를 파산시켰다는 오명을 안게 된 전 CEO 스탠리 오네일의 경우, 부채담보부증권(CDO) 자산의 위험성을 경고한 임원들을 해고하면서까지 오로지 고수익을 추구했다.

도대체 서브프라임 대출을 받은 미국 서민 가구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발생한 문제가, 어떻게 태평양 건너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세계 경제를 흔들면서 첨단 금융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규제 풀린 월가의 전통적 금융회사들과 규제 없는 신종 금융조직들이 주택 담보대출 채권을 모기지담보부증권(MBS)나 부채담보부증권(CDO)와 같은 파생상품과 접목시켜, 고위험을 안은 채 고수익을 무제한 추구하면서 위험을 내부에 축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적되는 위험성은 ‘시장이 스스로 치유’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월가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월가의 신념은 현실에서 여지없이 무너졌고 자유시장 금융시스템이라는 자동차 엔진은 과열로 폭발되었다. 이번 금융위기가 시장주의의 파산임을 고백한 파이낸셜타임즈 마틴 울프는 결국 지난 3월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8년 3월 14일 금요일을 기억하라. 자유시장 자본주의(global free-market capitalism)의 꿈이 사망한 날이다. 30년 동안 우리는 시장 주도의 금융 시스템(market-driven financial system)을 추구해왔다. 베어스턴스를 구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미국 통화정책 책임 기관이자 시장자율의 선전가인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이 시대의 종결을 선언했다.”

이제 월가의 금융시스템 자체에 구조적인 결함이 있었고, 그 결함을 미연에 방지하는 규제체계에도 결함이 있었으며 감독조차도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월가의 금융가들과 펀드매니저들은 수익에 대한 극단적인 과욕을 멈추지 않았음이 증명된 것이다.

‘규제’가 없다면 ‘구제’도 없어야 하지 않나

지금 섣불리 신자유주의 종언을 주장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금융시스템이라는 엔진 자체의 폐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규제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규제할 필요가 있는 곳에 규제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 “규제라는 것이 비용이 들지만 미리미리 규제했다면 이처럼 더 큰 국민의 혈세를 퍼붓는 상황까진 오지 않았을 것”(장하준 교수, <이코노믹리뷰> 10월 9일)이라는 주장은 그런 점에서 매우 당연한 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장 자율규제의 신화를 철석같이 신봉했던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조차도 “지금 세계의 금융시스템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정비해야 한다. 금융시장이, 금융산업이 자율규제를 한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지금의 위기는 정부가 손을 놓고 아무 규제도 없이 방임한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은 자본주의가 빚은 위기가 아니라 ‘금융 자본주의’가 빚은 위기이다. ‘규제 자본주의(regulated capitalism)’만이 해법”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리고 규제를 받지 않거나 규제를 피해 그동안 승승장구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대신에, 저소득층에게 그만큼의 부채를 안겨주고 이들을 거리로 내몬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규제를 받지 않았던 만큼 구제도 스스로 하는 것이 사실 논리적으로 맞다.

브레이크 없는 미국 금융자본주의 앞길에 미국 정부가 알아서 고속도로를 깔아주고 신호등마저 없애주고 보안관도 철수시킨 상황에서 교통대란과 대규모 인명 살상이 났는데, 오히려 인명 피해를 당해 병원에 실려 간 미국 시민들에게 돈을 걷어서 금융회사라는 자동차 수리비에 쓰겠다니 누가 찬성을 할 것인가.

어쩔 수 없이 거액의 세금을 쏟아 부어 상황을 수습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면, 최소한 수습 후 교통사고 책임 추궁과 재발방지를 위한 규제책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11월 4일 미국 대선이 치러지고 새 정부가 들어서도 당분간 금융혼란을 쉽게 잠재우지는 못할 것이지만, 당분간 계속될 금융회사 파산이 한계점에 이르고 실물경기 침체가 장기 국면으로 돌입하면 각종 의회 청문회를 통해 제도적인 수습방안들이 모색될 것이다. 사실 우리 정부가 굳이 미국 모델을 따라 하려거든 이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뚫어준 고속도로, 무슨 차로 달리지 고민하는 행복한 삼성

그러나 우리 정부는 그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10월 13일 미국발 금융위기로 몇 차례 미루어 왔던 금산분리 완화(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방안을, 전 세계가 금융파국을 막고자 비상한 대책을 세우고 있는 와중에 용감하게(?) 발표했다.

예고되었던 대로 금산분리 완화는 1) 의결권 있는 은행지분을 산업자본이 종전 4퍼센트에서 10퍼센트까지 소유하도록 확대하고, 2) 종전 10퍼센트에서 30퍼센트까지 산업자본이 출자한 사모펀드(PEF)도 은행소유를 가능하게 하며, 3) 해외에서 산업자본을 보유한 외국은행에게도 국내은행의 인수를 허용하고, 4) 금융투자(증권)지주회사는 증권자회사가 제조업체를 산하에 둘 수 있게 하며, 5) 보험지주회사도 자회사로 제조업체를 지배할 수 있게 길을 터주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여기에 보너스로 재벌들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돕기 위해 각종 제한 규정마저 최장 7년을 유예하기로 했으며, 공정거래위원회는 6) 일반지주회사도 금융자회사를 소유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거들고 있다.

월가의 금융인들보다 더욱 확고한 규제완화, 시장 자율규제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삼성생명이나 삼성증권 등 금융회사를 안고 있는 삼성그룹은 이제 명동 한복판에 정부가 만들어 놓은 아우토반을 달릴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셈이다. 그것도 어떤 차를 타고 갈지 골라야 할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공한 제조업 금융 자회사 허용을 선택하여 그룹사를 재편할지, 금융위원회가 제공한 금융투자(증권)지주회사로 갈지, 아니면 삼성생명을 주축으로 하는 보험지주회사를 세울지 고민하면서 삼성이 가장 편한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초보 운전자가, 신호등도 없는 곳에서 엔진 결함이 있는 자동차를 몰면?

결국 우리 정부는 여전히 끝을 모르고 확산되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보면서도,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결함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된다. 규제 체계 역시 금융산업의 고속성장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신호등 정도로 여겨서 가급적 없애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 우리 정부가 얻은 교훈은 경찰관을 잘 세워서 감독 잘하고 운전자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는 것 정도인 듯하다.

심지어 미국 금융위기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라는 표식을 내기 위해서, “금산분리의 모국인 미국의 경우에도 최근 금융위기에 따른 은행자본 확충을 위해 은행주식 보유규제를 종전 10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완화”했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금융위원회 10월 13일 보도자료) 놀라운 해석이다. 지금 미국은 은행 부실로 인해 연방정부가 엄청난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 어디서라도 자금을 동원하여 은행에 자금을 공급해야 하는 극단적인 처지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마치 자동차 사고로 망가진 차를 어쩔 수 없이 도색하고 있는 미국을 흉내 낸다면서, 우리는 방금 나온 신차인데도 자랑스럽게 새로 도색하는 것이 최신 유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할까.

우리 정부는 미국에서 이미 엔진 구조에 결함이 있다고 검증된 자동차를 수입하면서도, 인파로 뒤덮여 있는 명동 대로에 고속도로를 내려고 하고 있다. 신호등도 모두 없애고 오직 교통경찰만 세워놓겠다는 것이다. 신호등도 없이 초고속으로 질주할 미국산 금융시스템이 앞으로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성장 동력임을 믿어달라고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있다. 정부는 미국산 금융시스템이 폭발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극히 조심해서 엔진을 과열시키지 않고 기술적으로 운전을 하면 엔진이 폭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굳세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고의 금융시스템 전문가들로 구성된 월가도 엔진 과열과 폭발을 막을 수 없었다. 하다못해 이제 막 면허시험에 통과한 한국에게 이런 자동차를 주고 조심해서 운전하면 사고가 안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정당하겠는가, 아니면 아예 문제가 있는 엔진 결함을 근본적으로 고친 후에 운전을 하는 것이 정당하겠는가.

신현송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의 은행들이 그나마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을 덜 받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이) 월가의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던 셈이다. 일본의 경우도 90년대에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한 후 금융기법을 체득하지 않고 후퇴적인 경영을 하면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피할 수 있었다. 규제 때문에 ‘촌놈’ 행세를 한 것이 맞았다” (<이데일리> 10월 9일)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주제별 이슈 2007.11.20 21:01
 

이명박 후보의 신자유주의 정책 공세가 거침이 없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재경부 국정감사에서 <삼성 금융 계열사의 금융 지주회사 전환 로드맵(2005.5)> 보고서를 공개함으로써 여론과 정재계를 겨냥한 삼성그룹의 치밀한 준비 작업이 세간에 알려진 뒤, 지난 한 주간 이 후보의 발언 수위가 한층 노골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수면 위로 올라온 재벌의 요구


막강한 재벌그룹이 은행까지 소유하려 하는 데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질 법도 한데 이 후보는 삼성 보고서가 공개된 뒤 참석한 세계지식포럼에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추어 너무나 경직된 금산분리 원칙을 가지고 있다”며 금산분리 원칙 폐지를 강하게 시사했다. 며칠 뒤 한 시사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 후보는 또 “규제는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투자와 성장 부진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며 기업의 지배구조는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출총제에 대한 과감한 철폐”를 주장했다.


10년 전을 돌이켜 보자. 대기업의 방만한 문어발식 확장과 투명하지 못한 지배구조는 과잉 중복 투자와 불공정한 내부 거래로 귀결되어 국내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외환위기를 부르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출자총액제한제는 이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계열사 간 순환출자 축소를 규정한 것이다. 금산분리 원칙 역시 외환위기의 뼈아픈 경험을 반영한다. 당시 대기업들이 소유한 종금사는 금융기관으로서의 공익적 역할을 포기하고 재벌 대기업의 사금고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취약한 금융 시스템을 조장했다.


재계가 그동안 출총제와 금산분리에 대해 드러내놓고 강력하게 반발하지 못했던 것은 이 제도들이 가진 연원과 국민 감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삼성 보고서의 기획 의도대로 2005년부터 금산분리 정책에 대한 이의 제기가 관료사회 일각에서부터 솔솔 흘러나오고 일부 언론이 분위기를 조성하는 물밑작업이 이루어지더니 대선 국면에서 마침내 일제히 수면 위로 분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제2금융권 1위만으로는 만족 못하는 삼성


금산분리가 완화 또는 폐지될 때 가장 큰 혜택을 입는 재벌이 삼성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미 삼성은 그룹 전체 자산 중 금융 계열사 자산 비중이 절반을 넘는 ‘금융 재벌’로 변모했다. 2005년 기준으로 삼성 그룹 총자산 217조 원 가운데 금융사 자산이 132.8조 원으로 전체의 58.6%에 이른다. 자산규모 2위인 현대그룹과 4위인 SK그룹의 금융 계열사 자산 비중이 각각 23.3%, 3.1%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삼성은 은행만 소유하지 못했을 뿐 제2금융권에서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선물, 삼성투신 등 모두 10개의 금융 계열사를 소유중이며 각 계열사는 대부분 해당 업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삼성 금융계열사 자산 규모는 은행계인 국민, 신한, 우리, 농협에 이어 국내 5위다. 전체 금융사 자산에서 삼성 금융계열의 비중은 외환위기가 발발한 97년 말 4.4%에서 8.2%로 두 배로 늘었다. 금산분리 정책이 폐지되고 삼성이 우리금융을 인수하면 단번에 금융그룹 1위 규모로 올라가게 된다.


삼성은 그룹의 장기적인 무게중심을 금융 쪽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여러 차례 노출시켜 왔다. 국내 생명보험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의 매출을 2010년까지 47조 원 규모로 늘려 아시아 5대 종합금융회사로 도약한다는 목표, 역시 업계 1위인 삼성증권을 2020년까지 글로벌 톱10 투자은행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 등이 그러한 계획의 일환이다. 게다가 출총제와 금산분리 폐지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 구도에도 긴요한 조건이다. 결국 이명박 후보의 금산분리 폐지 공약은 슈퍼 금융그룹을 노리는 삼성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한 세기 전 그리고 10년 전의 교훈


금산분리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는 이명박 후보의 발언은 전혀 근거가 없는 선동임이 금융연구원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세계 100대 은행과 보험사 중 지배주주가 산업자본인 경우는 각각 4개, 8개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다. 세계적 스탠더드는 금산분리이며 제2금융권에 국한해 본다면 오히려 우리 나라가 너무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셈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융합은 시민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온갖 독과점과 투기, 과잉 투자와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낳고 끝내는 제국주의 세계대전을 불러왔다. 이러한 세기 전의 교훈으로부터 서구 국가들은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의 거센 도전에도 불구하고 금산분리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문어발 경영과 과잉 중복투자로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하여 금융시스템과 국민경제를 망가뜨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재벌그룹이 불과 10년 만에 다시 금융에 깊숙이 손을 뻗고 있다. 게다가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후보는 근거도 없는 논리로 앞장서서 이를 선동하고 재벌을 대변한다. 우리에게는 역사의 교훈이 아직 부족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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