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16김병권/새사연 부원장

 


18대 대통령 선거가 두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세 명의 유력 후보들 사이의 지지율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그런데 정책이 구체화되고 우선순위가 명확히 선별돼 국민 앞에 제시되지 않고 있다.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완성된 공약집을 선보인 캠프는 단 한 군데도 없으니 말이다.

그 와중에 정책 비전은 일단 화려한 모습으로 선보이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창조경제’를 제시했다. 문재인 후보는 ‘포용적 성장’을 내세웠고, 안철수 후보는 최근 '혁신경제'라는 것을 화두로 꺼냈다. 모두 낙관적인 비전들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외적인 경제환경은 대선후보들의 낙관적인 비전을 수용해 줄 여건이 도무지 아닌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올해와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모두 떨어뜨린 바 있는데, 단기적 전망뿐 아니라 장기 진단도 우울하기만 하다. 국제통화기금 수석 이코노미스트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세계경제가 괜찮은 상태로 되돌아가는 데는 금융위기 시작(2008년)으로부터 적어도 10년은 확실히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무슨 소리인가. 최소 2018년까지는 경기불황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결국 차기 정권(2013~2017년)은 집권기간 내내 세계경제 불황의 터널 속에서 생존하고 견뎌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국제통화기금의 최근 전망에서만 거론된 것이 아니다. 새사연은 올해 상반기에 펴낸 대선 정책 단행본 ‘리셋 코리아’에서 “2008년 금융위기는 대침체를 넘어 장기침체(Long Recession)로 전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올해 대통령 선거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시대교체가 될 정도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야 침체 극복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장기불황을 탈출하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한국경제의 외형을 마사지하거나 성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체질을 바꾸고 구조를 개편하는 그런 수준의 개혁안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무엇보다 기존의 수출의존형, 부채의존형 경제발전 모델로부터 탈출하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수출의존형 발전전략이나 부채의존형 발전전략 자체가 이미 불황 속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을 정점으로 지난해와 올해, 그리고 내년 이후까지 경기가 악화될 것으로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수출이 둔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난 수년 동안은 이웃 국가 중국의 호조로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중국이 9~10% 성장하던 시대는 끝났다. 게다가 모든 나라들이 위기탈출 대책으로 환율전쟁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출을 늘리려 한다. 수출의존형 발전전략이 고스란히 불황 속으로 들어가는 전략인 이유다.

부채의존형 발전전략도 마찬가지의 한계에 봉착했다. 이제 1천100조원의 가계부채는 부동산 경기하락과 맞물리면서 우리 경제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어마어마한 장애물이 됐다. 가계부채로 인해 금리정책 등 많은 거시정책이 제한을 받고 있다. 가계부채는 얼마 안 되는 국민들의 소득을 이자와 원금상환으로 빠져나가게 한다. 심각한 구매력 약화를 불러와 내수를 약화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소득 불평등 문제로 돌아가서 국민경제 총수요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가계에 대해 소득이라는 ‘성장 연료’를 주입해 줘야 한다. 우리는 내수와 수출의 동시 위축이라는 총수요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경제체제로의 구조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두 가지 과제가 만나는 지점에 놓여 있는 해결책이 바로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동반성장 전략이다. 다시 말해 ‘소득주도 성장전략(Income-led Growth Strategy)’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문재인 후보가 자신의 포용적 성장전략 안에 소득주도 성장을 매우 중요하게 위치시켰다는 점이다. 안철수 후보도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고용이 따르지 않는 성장은 궁극적으로 상품에 대한 수요를 위축시켜서 파괴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분배와 보상을 해 줘서 구매력을 키우는 것이 결국 내수시장 활성화를 가져와 기업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라고 적시했다. 소득주도 성장전략에 대한 이해의 틀을 흡수하고 있다. 물론 박근혜 후보에게는 노동자와 중소상인의 소득을 키워 내수를 발전시킨다는 전략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다시 걱정스러워지는 대목도 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이처럼 수출주도·부채주도 성장전략이라는 낡은 시스템을 폐기하고, 국민의 호주머니를 채워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소득주도 성장전략으로 전환하겠다는 비전이 더 이상 구체화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두 후보의 정책 창고에서 벌써 녹슬고 있는 것인가. 10년 장기불황이 언급되는 마당이어서 더욱 걱정스럽다.


이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10 / 03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지금부터 2년 전인 2010년 10월, 더블 딥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2차 양적완화를 발표하고 중국에 대해 환율절상을 촉구하면서 이른바 ‘환율전쟁(Currency Wars)’이라는 신조어가 회자되었다. 당시 서울 G20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고, 한국도 환율을 절상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국내 관심도 매우 높았다.

당시에 환율전쟁을 두고 미국과 신흥국들 사이에 입장이 매우 명확히 엇갈렸다. 미국은 중국, 한국 등 신흥국이 인위적으로 환율을 절하하여 수출경쟁력을 키우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대로 중국이나 브라질 등 신흥국들은 기축 통화 보유국인 미국의 양적완화로 인해 대규모 유동성이 신흥국으로 유입되어 신흥국의 환율을 절상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는 한국은행 최근 보고서에서도 확인된 바 있는데, 위기 이후 선진국의 “대규모 공적 유동성 공급으로 증가된 글로벌 유동성의 일부가 신흥국으로 유입”되어 신흥국의 자본유입 변동성이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 “글로벌 유동성이 신흥국으로의 자본이동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2012.9)

그런데 2년 뒤인 최근,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이 앞 다퉈 확장적 통화정책을 결정하면서 또 다시 환율전쟁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유럽 중앙은행은 무제한적인 국채매입을 선언했고, 일본 중앙은행도 자산매입기금 규모를 10조엔 증가시켰다. 그리고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3차 양적 완화를 결정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특히 2년 전 환율전쟁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꺼낸바가 있던 만테가 브라질 재무 장관은 미국의 3차 양적완화가 달러화 가치를 낮춰 미국의 수출을 늘리는 데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 주장하면서 “보호무역주의적인 조치”이며 “통화전쟁이 재점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 강도를 높였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지난 9월 26일 미국 하원에 속해 있는 미쇼드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부 장관과 론 커크 무역대표부 대표에게 "한국이 원화를 달러대비 10% 가량 평가 절하하는 등 인위적으로 원화 가치를 낮춰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한국도 환율전쟁에서 비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선진국의 양적 완화 -> 글로벌 유동성 팽창 -> 신흥국으로의 자본유입 -> 신흥국 환율 절상효과 발생 -> 상품 수출경쟁력 약화 -> 신흥국 경상수지 악화라는 기제가 작동하는 것은 사실이고, 우리나라도 이런 메커니즘에 크게 영향을 받는 만큼 주의해서 살펴봐야 한다.

컬럼비아 전 재무장관이자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올랐던 현 컬럼비아 대학 교수인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는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도 정당성이 있고, 신흥국의 환율전쟁 우려도 정당성이 있다고 인정한다. 미국 등 선진국과 신흥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자면, 단기적으로 국제적 차원에서 합의된 자본이동 규제안을 만들어야 하고, 장기적으로 달러를 대체할 진정한 국제준비통화체제를 창설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최근에 실린 그의 컬럼을 요약한다.

   

연방준비제도(미국 중앙은행)와 환율전쟁

(The Federal Reserve and the Currency Wars)

 

2012년 10월 2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Jose Antonio Ocampo)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최근 결정한 세 번째 “양적 완화(quantative easing)"에 대해, 브라질 재무장관 만테가(Guido Mantega)는 미국이 ”환율전쟁“을 촉발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흥국들은 이미 빠르게 절상되는 자국통화가치 충격이 (자국 제품의 수출) 경쟁력에 영향을 줄까 고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주 동안 유럽 중앙은행과 일본 중앙은행들이 확장적 통화정책을 잇달아 발표한데 이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결정으로 환율전쟁 우려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미국이 양적 완화 정책을 결정한 것이나 만테가 장관이 환율전쟁 우려를 표명한 것은 모두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미국연방준비제도는 더딘 미국경제 회복속도에 직면하여 확장적 통화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맞다. 더 나아가 특히나 노동시장 개선에 초점을 맞춘 것은 중요하며 유럽중앙은행도 그렇게 해야 한다.

물론 선진국에서 확장적 통화정책은 조금 덜 긴축적인 재정정책과 함께 수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선진국들에서는 2007~2008년에 비해 재정적 수단을 동원할 여지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는 상황이고,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정치적 교착상태가 악화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 예산 확대를 통한 경기 자극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만테가 주장대로 3차 양적완화 효과가 상당히 제한될 것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 연방준비제도로서는 그것 말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미국의 양적 완화가 환율전쟁을 촉발시킬 것이라는) 만테가의 주장 역시 정당하다. 세계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에게 주어진 역할에 비추어 볼 때 연방준비제도의 확장적 통화정책은, 확실히 일부러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세계경제에 중요한 외부성을 발생시킨다. 그것은 특정 국가(미국) 통화를 세계의 주요 준비통화로 사용하는데 따른, 현재 국제통화체제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 결함에 기초한다.

이 문제는 일찍이 1960년대의 벨기에 경제학자 트리핀(Robert Triffin)에 의해 제기된 바 있고, 뒤에 이탈리아 경제학자 파도아 스키오파(Tommaso Padoa-Schiopa)에 의해서도 제되었다. 스키오파에 따르면, “대체로 국제 통화시스템이 안정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은, 국내적 이유 하나에 기반하여 구축된 경제정책이나 통화정책과는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실제로는 모든 선진국들)에서 확장적 통화정책이 실시되면 신흥국들에게 위험성이 높아진다. 선진국들은 적어도 앞으로 수년 동안 매우 낮은 금리가 유지될 것이므로, (확장적 통화정책으로 팽창한 선진국) 자본이 상대적 고금리의 신흥국으로 수출될 강력한 유인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흥국 입장에서) 그와 같은 신흥국으로의 자본유입은 자국통화가치를 절상시킴으로써 경상수지 적자를 키우게 되며 자산 가격 거품을 만들어낸다. 이런 것들은 모두 과거에 신흥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것들이다.

즉, (확장적 통화정책으로) 미국경제가 빠르게 성장력을 회복해서 중기적 관점에서 볼 때 신흥국이 수혜를 입게 될 수도 있겠으나, 그 이전에 브라질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가 “자본 쓰나미(capital tsunami)"라고 명명한 단기적 위험에 의해 중기적 이익이 묻혀버리게 된다.

기본적인 문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다른 신흥국들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좀 더 폭 넓은 아젠다가 아직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아젠다는 아직 풀지 못한 채 남아있는 두 가지 글로벌 통화개혁 이슈를 포함한다. 하나는 단기적으로 국제적 자본이동에 대한 글로벌 규제 방안을 합의하는 이슈이고, 다른 하나는 IMF의 특별인출권(SDR; Special Drawing Right)과 같은 진정한 글로벌 준비통화에 기반한 새로운 국제통화체제를 향해 장기적인 전환을 하는 이슈다.

미국도 위의 두 가지 정책으로 이익을 보게 될 것인데, 우선 자본계정 규제는 (미국) 투자자들로 하여금 자국에서 투자기회를 찾도록 강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달러를 대체할) 진정한 글로벌 준비통화가 만들어진다면, 미국은 자국통화정책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신흥국들은 (미국의 확장적 통화정책이) 신흥국들의 대미 수출을 위한 미국내 수요를 증대시킬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확장적 통화정책으로부터 (지금처럼 위험이 아니라) 큰 이익을 얻을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 국제통화기금(IMF)총재는 글로벌 경제 회복을 지탱하기 위한 합의된 행동을 요구해왔다. 특히 이번 10월에 국제통화기금은 자본계정 규제에 대한 공식적인 규범(rules of the road)을 발표할 예정이다. 10월 12~13일에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연차총회는 보다 광범위한 국제통화 아젠다를 시작하는 이상적인 기회가 될 것이다. 국제적 자본이동에 관한 합의된 규제를 승인하고, 국제 통화체제의 미래에 관해 토론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 원문 보러가기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5 / 18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유럽위기가 또 다시 위험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그 여파로 하루에 50포인트 이상씩 연속적으로 주가가 추락하고 있는 국내 주식시장도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 중심에 그리스의 채무위기가 있다. 2010년 5월에 1차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만 2년이 지났지만 그리스 채무위기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었고, 2차 구제금융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전혀 해소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지난 5월 6일 총선에서 긴축에 반대하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제2당이 된 후 연립정부 구성이 실패하고, 6월 17일로 재총선 실시가 확정되면서 위기는 증폭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스 국민들이 총선을 통해 유럽연합이 요구하는 긴축을 거부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리스가 긴축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경고의 의미로 4개의 그리스 은행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전격적으로 차단했다. 그러자 5월 14~15일 동안 그리스 은행에서 12억 유로의 예금이 인출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스의 위기는 이제 마지막 임계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5월 16일자 기사에서 향후 그리스의 상황은 4가지 시나리오가 있다고 전했다. 첫째는 그리스의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로서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라고 보고 있다. 둘째는 유로 존에 남아있되 유럽이 요구하는 긴축안을 거부하는 것이다. 6월 총선에서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좌파연합도 이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에서 이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셋째는 지난 3월에 유럽과 그리스가 합의한 긴축안을 재협상하는 것인데, 그러자면 유럽 국가들이 그리스에 대한 구제 금융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 유럽 전체가 침체에 돌입한 상황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다. 마지막은 그리스가 기존 합의대로 긴축을 수행하는 것인데 거의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현재 그리스의 디폴트 선언과 유로 존 탈퇴 가능성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뉴욕대학교의 루비니(Nouriel Roubini) 교수는 그리스가 유로 존을 탈퇴하고, 유로 국가들은 이 과정이 질서있게 진행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실 루비니 교수는 지난해부터 계속 그리스의 유로 존 탈퇴가 불가피할 뿐 아니라 탈퇴하는 것이 그리스와 유로 존을 살리는 방법이라고 주장을 해왔다..("Greece should default and abandon the Euro", 파이낸셜 타임즈 2011.9.19) 긴급한 유럽의 상황과 그리스의 운명을 진단해보는데 루비니 교수의 주장은 검토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스는 유로존을 탈퇴해야 한다

(Greece Must Exit)

 

2012년 5월 17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그리스의 비극이 막바지 상황까지 이르렀다. 올해 또는 내년 중에 그리스가 채무 디폴트를 선언하고 유로존을 탈퇴 할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6월 17일 2차 총선을 통해 들어선 새 정부가 유로존 탈퇴를 유보한다고 해도 지금까지처럼 긴축과 구조개혁이라는 실패한 정책을 답습한다면, 그리스 경제는 회복되기 어렵다. 그리스는 채무부담의 악순환, 경쟁력 상실, 대외 부채, 그리고 계속 악화되어 가는 경기침체에 직면해 있다. 이를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질서 있는 디폴트와 유로 존 탈퇴이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위원회(EC),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라고 하는 '트로이카(Troika)'가 이 과정을 조정하고 그리스와 나머지 유로 국가에 닥칠 붕괴 충격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트로이카의 감독아래 이뤄진 최근의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은 그리스가 필요로 하는 것에 비해서 많이 부족한 규모였다. 그러나 설사 더 많은 공공부채가 경감되어도, 조속한 경쟁력 회복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리스 경제는 성장 국면으로 되돌아오기 어렵다. 성장 국면으로 되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리스는 더 이상 부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결국 실질 통화가치 절하를 실시할 수밖에 없다.

첫 번째 가능한 선택은 유로화 가치를 급격히 떨어뜨리는 것인데, 이는 독일이 워낙 완강하고 ECB도 확장적 통화정책을 공격적으로 시행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다. 두 번째는 임금을 초과하는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도록 구조적 개혁을 통해 단위 노동비용을 급격히 줄이는 것인데 역시 가능성이 없다. 독일이 이런 방법으로 경쟁력을 회복하는데 10년이 걸렸다. 그리스가 앞으로 10년 동안이나 침체상태로 있을 수는 없다. 세 번째 선택지는 내부적 평가절하(internal devaluation)라고 부르는 방식인데, 상품가격과 임금을 급격하게 떨어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향후 5년 동안 더욱 심각한 경기침체를 가져올 것이다.

위의 세 가지 방법이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남은 유일한 방법은 유로존을 떠나는 것이다. 자국통화 드라크마화로 복귀하여 급격한 통화절하를 통해 조속히 경쟁력을 회복하고 경제를 성장세로 돌려놓는 것이다.

물론 유로존 탈퇴 과정은 상당한 외상을 남길 것이며, 이는 그리스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로존의 핵심 금융기관들이 겪게 될 자본 손실이다. 그리스 정부와 은행,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유로표시 대외채무도 갑작스럽게 폭등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들은 모두 극복 가능하다. 2001년 아르헨티나도 달러 부채를 페소화(pesofied)시키면서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미국도 1933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당시 국제 규범을 무시하고 달러를 69%나 절하시켰다. 그리스도 유로 부채의 드라크마화(drachmatization)가 필요하고 불가피하다.

만약 은행들이 적절하고도 적극적으로 재자본화(recapitalization, 역주 - 화폐 가치나 물가가 변동할 때 그 수준에 맞도록 자본의 화폐표시액을 수정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표시된 가격은 변할지라도 자본의 가치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를 수행한다면, 유로존의 은행들이 겪게 될 자본 손실로 인한 고통은 관리할 수 있다. 그리스 은행 체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은행 일시 휴업이나 자본 통제와 같은 임시적인 비상수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무질서한 예금 인출사태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안정기금(EFSF/ESM)은 직접적인 자본공급을 통해 그리스 은행의 재자본화를 수행해야 한다. 유럽 납세자들에게 그리스 은행을 인수인계해주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의 드라크마화로 인해 채권자가 부담하는 손실을 부분적으로 보상해줄 수 있다.

또한 그리스의 공공부채를 구조적으로 조정하여 감축시켜야 한다. 트로이카가 그리스에 요구할 것은 부채의 액면가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만기를 10년 정도 연장시켜주고 이자를 줄이는 것이다. 이자 지불 유예 선언과 함께 민간 채권자에 대한 추가적인 헤어컷(채무탕감)도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 지금보다 실질 GDP가 더 많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지금의 경기침체 상태에서는 실질 구매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부채의 실질 가치는 증가한다. (이를 부채 디플레이션이라 한다.) 하지만 유로존 탈퇴는 장기침체를 겪지 않고도 통화 가치 하락을 통한 즉각적인 경제회복을 가져올 수 있다. 드라크마화로 인해 유로존 내에서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 무역 손실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유로존 GDP에서 그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로화에서 드라크마화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경쟁력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것 이상의 환율 하락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도 있고 대외 부채가 드라크마화 되면서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트로이카는 그리스의 환율이 오버슈팅(일시적 급등)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본통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다른 국가들도 위험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 역시 적절하지 않다. 다른 주변 국가들은 이미 그리스와 같은 심각한 부채를 문제를 갖고 있으며,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 그러한 예로 포르투갈을 들 수 있는데, 마침내는 부채를 구조조정하고 유로존을 탈퇴할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와 스페인과 같은 경우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여부와 관계없이 유럽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IMF와 ESM, ECB의 유동성은 유로존내의 문제가 되는 모든 국가와 은행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스가 어떻게 되는지와 상관없이 유로존의 은행들은 조속한 재자본화를 필요로 한다. 유럽연합의 직접적인 자본 개입을 통한 광범위한 해결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아이슬란드의 경험과 지난 20년 동안 많은 신흥시장에서 볼 수 있듯이 명목 통화가치 절하와 대외 부채에 대한 질서있는 구조조정과 감축은 경제의 지속성, 경쟁력, 성장을 가져왔다. 이런 경우들처럼 그리스 역시 유로존 탈퇴가 가져오는 부수적 피해를 감수하며 회복되어야 한다.

지금은 이혼을 피할 수 없는 불행한 결혼과 같다. 결국 양쪽 모두에게 최소한의 피해를 주는 이별이 되도록 규칙을 잘 세워야 한다. 실수가 있어서는 안된다. 질서있게 진행된다 해도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서히 무질서하게 그리스 경제와 사회가 붕괴되는 것이 훨씬 더 나쁘다.

 

원문보러가기 ☞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