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18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대한민국은 지금 "우리는 모두 경제 민주화론자"라고 말해도 좋을만한 분위기다. 야당에서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를 강도 높게 주장하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여당 유력 후보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대선후보 출마를 선언하면서 경제 민주화를 주요 3대 공약의 하나로 제시했다. 가장 대표적인 성장론자이자 친기업론자인 이명박 대통령까지 경제 민주화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면서 대기업을 훈계했다. 마지막으로 개혁의 대상이고 당사자인 재계조차 "경제 민주화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면서 공식적으로 경제 민주화에 발을 담그게 된다.

이쯤 되면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시대의 화두이자 대세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제 경제 민주화를 위해 무엇이 가장 시급한 것인지를 정해 입법이 필요하면 국회에서 법을 제정하고, 제도 설계를 해야 한다면 정부와 함께 제도 기획을 시작하면 된다. 그런데 일부 정치권에서는 '경제 민주화'가 무얼 말하는지 합의된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학문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명확하다. 우리 헌법 119조 2항에 명시된 것처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 적정한 소득분배의 유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액면 그대로 실행하면 되는 것이다.

또 한 최근 진행되고 있는 논쟁을 보면 실제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를 위한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들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민주통합당에서 "박근혜의 경제 민주화에는 재벌개혁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당사자인 박 전 위원장이 "재벌해체, 때리기는 안 된다"는 식으로 대응한 것이 그 사례다. 권위주의 정치 종식 없이 정치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것처럼, 재벌개혁 없는 경제 민주주의도 무의미한 것이다. 철저한 재벌개혁을 통해 경제 민주화를 해야 한다고 수용하면 되는 명백한 사인이지 논쟁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 아니다.

또한 정치권을 포함한 시민단체 거의 대부분 현재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런데도 재벌개혁 요구를 곧바로 재벌해체로 비약시키는 것은, 마치 지나친 시장 개방과 자유무역협정에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면 '그러면 쇄국을 하자는 것이냐' 하는 식으로 반발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일련의 규제가 필요하다며 요구하는 재벌개혁에 대해 재벌을 해체하자는 것이냐며 국민을 자꾸 불안하 게 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여야 정치권 가릴 것 없이 경제 민주화를 요구하면서도 한 발만 더 들어가 보면, 경제 민주화가 합의된 내용이 없다든지, 재벌 때리기로 가면 안 된다든지 하면서 출발부터 막히는 모양새다. 자칫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는 시작도 해보기 전에 국민들 사이에서 재벌개혁 피로감, 경제 민주화 피로감이 올까 우려된다. 특히 정치권에서 이런 방향으로 몰고 갈까 걱정이 앞선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진정으로 재벌개혁 의지가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여야 정치권이 모두 합의하고 당장 실행 가능한 것들이 있다. 재벌의 횡령, 배임과 같은 경제범죄에 대해 원칙적으로 집행 유예 등이 불가능하도록 엄격한 형벌규정을 강화하는 것이 그 사례다. 미국의 경우 회계부정을 저지른 기업 엔론의 전 CEO가 종신형 에 가까운 24년 징역형을 선고 받아 실형을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은 대부분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 나왔던 전례를 생각한다면 재벌 총수의 경제 범죄에 대한 엄격한 형벌규정을 당장 입법화시킨다면 그나마 재벌개혁의 진정성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있다.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나온 박 전 위원장을 포함해 대부분 대선 후보 출마자들이 경제 민주화와 사회복지를 핵심 공약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두 공약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재벌이 세금을 더 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복지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감면 혜택의 절반 이상이 10대 재벌에게 돌아가는 각종 세액공제 특혜를 폐지하고 최저한세율도 올려야 한다. 나아가 1%미만의 재벌 대기업에 대한 최고세율을 상향 조정해서 복지재원을 확충하는 데까지 진전시켜야 한다.

이 글은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06.27김병권/새사연 부원장

 

2012년 상반기가 마무리되고 하반기를 준비하는 시점이다. 5월부터 걱정해 왔던 경기하락이 이제 기정사실화한 느낌이다. 비록 지난 17일 그리스 총선에서 이변이 일어나지 않았고, 유로화 탈퇴사건도 없었지만 그래서 달라진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예정된 유럽의 침체와 그리스와 스페인을 필두로 한 위험요인은 그대로 남아 있다. 유럽에 국한되지 않는다.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유럽과 미국·중국이 내년에는 모두 침체로 돌아서는 퍼펙트 스톰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은행 의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앨런 그린스펀도 "전 세계적 불황이 우려된다"는 언급을 공개적으로 할 정도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꺾인 것은 틀림없다. 우리나라 경제도 당초에는 상저하고(上低下高)를 기대했지만, 하반기에 경기가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은 이제 완전히 빗나가게 됐다. 이를 입증하듯 가장 최근에 경기전망을 수정한 엘지경제연구원은 올해 성장률을 3.0%로 설정했다. 조만간 2% 수준의 전망이 나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가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역진해 ‘성장과 일자리’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당장 민주통합당의 대선주자들이 ‘스스로’ 성장담론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성장과 분배의 동행’이라든지 ‘진보적 성장’, ‘사람이 성장동력’이라면서 대선후보 출사표 앞자리에 자진해 성장을 놓고 있다. 아울러 일자리 창출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뒤이어 조만간 재벌대기업 쪽에서 불황 예상국면을 이유로 분규 자제 요청이나 심지어 임금삭감 요구까지 들고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2009년에도 임금삭감을 들고 나온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성장론과 일자리 창출론 등이 경제위기와 닥쳐올 장기 침체를 막는 향후 5년의 비전이 돼야 할까. 우리는 여기서 잠시 1929년 미국 대공황 이후 35년 제정된 노동보호법인 와그너법(Wagner Act)에서 배울 점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법으로 평가받는 와그너법은 30년대 미국이 처했던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연방법 차원에서 처음으로 인정해 줬다. 뿐만 아니라 이를 방해하려는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했던 법이다. 나아가 부당노동행위를 물리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준 사법기관인 전국노동관계위원회를 설치하게 했던 법이다.

그러면 어떻게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불황을 타개하는 대책이 될 수 있는가. 와그너법 전문에 의하면 “완전한 결사의 자유 또는 실질적인 계약자유를 가지고 있는 않은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교섭력 불평등은 임금 및 임금 소득자의 구매력을 억압하며, 산업 간 경쟁임금과 근로조건의 안정을 방해해 지속적으로 기업 불황을 악화시킨다”고 돼 있다. 즉 입법자인 와그너 상원의원에 의하면 노동자의 단체교섭은 높은 임금과 국민소득을 확보하게 해 보다 나은 분배를 촉진하며, 올바른 단체교섭은 사용자의 지배가 없는 독립적인 노동조합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경제위기와 비견되는, 29년 대공황을 탈출하기 위해 노동정책에서 사용됐던 해법이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와그너법의 입법취지가 앞서 언급한 경기회복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하나 더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와그너 의원은 경기회복 못지않게 산업 민주주의의 정착을 중시했다. 심지어 노동자의 민주적 동의와 실질적 자유의 성취를 경제적 안정과 성장보다 우선했다는 연구도 있다.(김진희·2006·'뉴딜 단체협상법의 생성과 변형')

특히 와그너는 자유시장과 권위주의 정부 모두를 폭정으로 비난했다. 자유시장은 실상 노동자의 권리가 상실되고, 계약관계를 통해 노동자가 사용주의 볼모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와그너는 권위주의 정부와 자유시장이라고 하는 두 가지의 폭정을 종식시킬 정당하고 민주적인 대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한다. 권위주의 정부도 자유시장도 거부했던 그가 생각했던 대안은 공적이익을 보호하는 민주정부였다. 그 일환으로 와그너법을 생각했다. 지금의 표현법으로 바꾸면 노동 민주화이자 경제 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어떤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을까. 닥쳐올 경제위기와 장기 침체를 극복할 대안은 노동시장 억제를 통해서도 아니고, 단순히 일자리 개수를 늘리는 정책도 아니다. 노동자 권익을 보장하고 협상력을 높여 더 나은 임금과 소득을 확보하게 함으로써 구매력을 높이는 대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자의 민주적 권리와 결사를 보장하는 노동 민주화, 경제 민주화를 통해서 달성된다. 단순한 성장전략이 아니라 경제 민주화를 통한 성장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2012 / 03 / 29 새사연

민주정부 10년 동안 왜 경제 민주화를 못했나?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목 차]

1. 환란으로 사라진 내수기반 경제의 희망
2. 금융시장이 개방된 한국경제
3. 선출되지 않은 절대 경제권력 재벌
4. 벼랑 끝까지 온 불평등과 한국의 99%
5.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 함께 가야한다.

 
[본 문]

편집자 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3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의 퇴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악화되자 한국사회에서는 전례 없는 보편 복지 요구가 확대되고 있고 경제 민주화의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양대 선거를 맞아 정권교체 요구가 거센 가운데 다양한 사회개혁 의제가 정책 공약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정말 2013년 체제라고 불릴만한 사회 대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자면, 강력한 경제개혁 전망을 갖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새사연의 문제의식이다.

이에 새사연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시대적 가치와 비전, 새로운 경제모델과 성장모델, 총체적 경제개혁, 보편복지를 망라하는 정책을 모아 2012년 5월 중 단행본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출판될 원고 가운데 일부를 새사연 회원들과 미리 공유하고자 [새로운 사회 2013]이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1. 환란으로 사라진 내수기반 경제의 희망

김영삼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져온 금융개방은 재벌 대기업의 팽창 욕구와 결합하여 외환위기라는 한국경제사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켰다. 물론 그 뒤에는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주도해온 IMF와 같은 국제금융기구들, 이를 지배해온 미국이 있었다. 외환위기는 한국경제를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분기점이 되었다. 개방과 자유화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기업들은 단기 수익성을 목표로 경영전략을 바꾸고 노동유연화 정책을 속속 도입하였다. 그 결과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고용불안은 확대되었으며, 전반적인 실질 근로소득이 하락하고 실질 구매력이 약화되었다. 중산층은 곧 붕괴되었고 본격적인 사회 양극화가 시작되었다. 기업 금융은 줄고 가계를 대상으로 한 소매 금융이 크게 확대되었다. 실물경제는 4%대의 성장률에 머무르는 대신 자산시장 거품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부동산 가격과 주가가 가파른 상승을 시작했다.

외환위기 와중에 정부 도움으로 살아남은 절반의 재벌 대기업은 부채 축소와 수익성 개선을 내걸고 신자유주의 단기 수익추구에 성공적으로 편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 고용을 축소하면서 내수 시장 대신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추진했고 철저히 수출위주의 성장 전략을 구사했다. 국내 경제와 재벌 대기업의 성장이 단절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시기 재벌 대기업 주도하면서 성장과 고용이 동시에 달성되는 한국형 발전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둘 것은 우리 경제와 국민들의 삶을 파괴했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1998년부터 2007년까지의 민주개혁정부 10년 동안 이루어졌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민주개혁정부는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 생산적 복지, 양극화 해소와 동반성장'을 정책기조로 삼아 일정하게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고 복지를 확충하려는 노력을 했고 성과도 있었다. 게다가 외환위기를 수습해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또한 규제완화와 금융 자유화가 세계적 추세로 진행되면서 한국만 단독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민주개혁정부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금융자유화와 개방화를 추진했고, 재벌 대기업 집단이 경제력 집중을 가속화하여 경제권력화 되도록 방치했던 측면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로 인해 1차분배 영역인 시장에서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각해졌다. 특히 10년 동안 민주정부가 큰 비판 없이 추진한 자본시장 개방과 자유화 정책은 해외 자금이 증권시장으로 자유로이 유입되도록 했고, 부동산과 건설시장으로 자금이 몰리는 것을 통제하지 못함으로써 항시적 금융 불안과 신용카드 대란, 부동산 거품을 자초했다.

요약하자면 민주개혁정부는 한편으로는 강력한 양극화 경향을 갖는 시장주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를 보완하는 사회복지를 확대했지만, 지배계층의 강력한 저항과 투기경제에 발을 담근 시민세력의 소극적지지 속에서 전자가 후자를 압도해버렸다. 그 결과 2007년 대선에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권인 이명박 정권이 당선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민주개혁정부 10년과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한국경제에 이식시킨 금융개방경제, 수출주도경제, 자산거품경제의 뿌리는 향후 한국사회가 사회적 역량을 집중하여 근절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로 남았다.

...전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