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손녀들은 동네 빵집을 휩쓸고

10여 년 전만 해도 동네에 고유한 제과점 빵집을 보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답니다. 당시에만 해도 동네에서 자영업으로 하는 제과점이 약 1만 8천개 정도였다니까요. 지금 길거리에 나가서 주유소 구경하는 것보다 흔했던 것입니다. 전국에 주유소는 1만 3천개 정도이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자영업자가 하는 제과점이 지금은 약 4천 개 정도밖에 남지 않았답니다. 8년 만에 무려 77.8%가 줄어들었다는 것이 중소기업 중앙회 조사 결과랍니다.

반면 전혀 다른 풍경도 있습니다. 이른바 재벌가 딸과 손녀들이 커피전문점과 제과점을 결합한 형태의 '럭셔리 베이커리' 사업에 너도 나도 진출하고 있다는 것이죠. 현재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계열사 보나비를 통해 커피전문점 '아티제'를 운영하고 있고,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은 베이커리 '달로와요'와 '베키아 에 누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답니다. 롯데그룹 장선윤 사장은 '포숑'이라는 브랜드를, 현대차그룹 정성이 전무도 '오젠'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베이커리 사업을 하고 있군요. 재벌가 딸들의 빵집 경연을 방불케 하고 있죠.

규제 풀어주었더니 골목대장 노릇하나

더 가관인 것은 재계 순위 21위인 LS그룹이 최근 계열사인 엘에스네트웍스를 통해 자전거 유통 시장에 진출했답니다. 진출한지 2년도 안되어 전국에 매장을 14개나 열었고, 30~40%씩 할인 행사를 하는 등 공격적으로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답니다. 한발 더 나아가 LG 그룹이 과거 아워홈과 사보텐, LF푸드 등 계열사를 통해 라면·순대 등을 판매하고 있고 CJ역시 비빔밥 등 한식사업에 진출했다는 것이죠. 대명그룹은 계열사 베거백을 앞세워 떡볶이 사업에 뛰어들었구요.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한국의 재벌기업집단들이 총수의 2세, 3세들을 동원하여 늘린 계열사들이 기껏 동네의 빵집, 자전거 가게, 라면, 순대, 떡복이 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규제를 풀어주었더니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세계로 나간 것이 아니라, 서민이 생활 터전으로 삼고 있는 동네골목으로 치고 들어온 것입니다.

한심하다고 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이미 지분을 취득하여 계열사로 편입해버린 상황에서 상법상 법률적 문제는 아무것도 없으니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실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경제 정의에 어긋나고 0.1% 재벌의 독식으로 인해 99.9% 국민의 생계가 위험해진다면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도 위배되는 것이죠.

계열분리 명령제 도입으로 지분 매각처리 시키면 된다.

이와 같이 명백한 재벌의 시장 지배력 행사와 대기업의 독점 횡포를 원천적으로 되돌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계열분리 명령제입니다. 재벌 그룹의 압도적인 독점력을 이용해 골목시장을 잠식하고 해당 지역의 자영업 종사자들을 생계위협에 몰아넣었다면 해당 빵가게 체인이나 계열사에 대해 계열분리를 명령하여 관계된 지분 매각 등을 조치시킴으로써 원인 무효로 만들어야겠지요. 지금은 재벌 대기업에 대해 이런 정도의 강도 높은 규제조치가 수반되지 않으면 꿈쩍도 않을 만큼 우리나라 재벌은 무소불위의 경제권력,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재벌권력이 되었습니다. 정부가 추진했던 중소기업 고유 업종 선정이라는 자발적 규율만 가지고는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연구원은 재벌개혁을 위한 ‘재벌(규율)법’ 제정을 주장하고, 그 재벌법에는 반드시 계열분리 명령제와 기업 분할 명령제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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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보고서2011. 10. 13. 14:18
2011.10.13이은경/새사연 연구원

대한민국은 현재 나꼼수 열풍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가카로 대표되는 현 정권의 비도덕성이 화제다. 가카는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말로 마무리되는 현 정권과 그를 둘러싼 비리는 그들의 표현대로 소설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이다.

현재 세계는 금융위기 이후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해 왔던 신자유주의가 더이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아니 지속해서는 안된다는 99%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세계를 지배해왔던 달러체계는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미래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유럽은 유로체계는 끝날지도 모른다고 자조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상황을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처방을 지나치게 충실하게 실천해온 나머지 양극화, 불평등, 사회불안정이 확대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청년층의 실업문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야하는 부모는 등록금때문에 고통받고 있고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상황에서 기본적인 생계유지도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노인층이 늘고 있다. 세계 1위라는 저출산율은 수조에 달하는 저출산예산을 쏟아부어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미래가 불안정하고 현재의 삶이 고달픈 젊은이들이 출산파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나꼼수에 대한 열광은 이러한 현실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차이점은 그 분노가 금융, 기업 등 자본이 아닌 현 정권과 그를 지지하는 보수세력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현 정권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보수층이 지나치게 한심하기 때문이다. 외국의 보수층 역시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치영역에서는 국가의 이익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보수층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데 모든 노력을 경주한다. 전지적 가카시점이라고 농담처럼 표현되는 현 정권의 행태는 국익, 보수 정당의 유지, 기본적 도덕성마저도 자산축적을 위해 내던지고 있다.

대표적 사건이 이번에 발생한 대통령 아들의 땅문제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계속 발생하면서 상당히 무뎌진 국민 정서에도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다. 석연치 않은 과정을 통해 아들에게 불법적으로 증여를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국가 예산을 아들의 재산증식에 사용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곳곳에 보인다. 시장 재직시절 그린벨트를 해제했고 아들 소유 부지는 싸게, 국가 소유 부지는 비싸게 매입했다. 상식적 차원에서 국가 수장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런 일이 너무나 공공연이 진행되는데도 청와대와 집권여당에서는 정치적 의도로 문제삼는다며 명의만 이전하면 된다고 하고 있다. 조중동과 공중파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으며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한국은 시끄러운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이야기에 국민들은 기가 막힐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적 분노가 현 정부를 향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류언론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 진실을 유쾌하게 까(!)대는 4명의 수다는 잘못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관점을 세우게 해주며 우리가 깨달아가면 세상을 바꿀수도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서울시장 단일화과정에서 보여줬던 서울시민의 적극적 참여는 김어준 총수의 책이름 "닥치고 정치!"의 현실적 표현이다. 국민들은 투표로 현 정권을 심판할 것을 다짐하고 있으며 정치의 중요성을 깨달아 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갈 필요가 있다. 투표를 통해 정치인 몇명을 바꾸는 것은 쉬울 수 있다. 2번의 민주정부 경험과 여러번의 선거 승리는 바람이 불면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는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토대, 자본-보수정치집단-언론-사학재단으로 이어지는 강고한 커넥션에 균열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아니, 오히려 흔들림없이 날이 갈수록 튼튼해지고 있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은 보수정당 비리의 뒷배경임에도 몸통을 드러내지 않는 세련함을 깨우쳤다. 청년실업과 대학서열로 인한 입시전쟁, 사교육 등은 중소기업의 질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이며 이는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을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확충이 더딘 이유는 감세때문이며 감세 해택은 대기업에게 집중되고 있다. 대기업 수출을 보호하기 위한 환율정책을 고물가로 이어지고 있으며 대기업은 고용창출, 이익공유, 중소기업과의 상생 등등 각종 혜택을 받으면서 주장했던 역할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양극화가 심화되어 가면서 사회의 부는 대기업에게 집중되고 있다. 보수정치인들은 그들의 이익을 철저히 대변하면서 떡고물을 챙기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들과 한몸이 되고 있다. 현실의 이면을 보다 깊게 들여다 봐야한다. 나꼼수에서 밝혀지는 기막힌 사실들의 이면에, 우리의 삶이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배경인 대기업과 금융자본에게 분노를 돌려야 한다.

월가에서 시작된 99%의 반란이 우리나라에도 필요하다. 월가의 금융놀이에 희생된 청년들은 자본 전반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들의 구호는 다양하다. 부자증세와 금융규제에서 스티브 잡스에 대한 추모까지 다양한 주제가 다양한 목소리로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그 핵심 주장은 이제는 1%의 세력이 99%를 착취하는 세상을 그만 멈추자! 다른 세상을 찾아보자! 이다. 이 젊은이들에게 대안이 무언지, 구체적 실현방도와 행동지침은 무언지를 묻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현실은 문제가 많고 무언가는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체가 의미있다.

우리도 인터넷만이 아닌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의 광장은 촛불과 인터넷, 트위터, 페북이 넘쳐나는 온오프 혼합공간이다. 우리의 주장은 더 다양할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정권교체로 표현되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무엇인지 정치인들에게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재벌규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청년실업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지,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은 무엇인지 이야기 해야 한다. 이것이 닥치고 정치!!이다.

아무튼 가카덕분에 우리는 정치학습을 너무 열심히 하게 된것 같다. 아마 occupy 역시 occupy seoul이 제일 멋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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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스코프스키

    문서의 몇 몇 구절은 레닌의 <<국가와 혁명(한국에서 모두 3번 번역간행했지만 모두 절판!)>>을 연상하는 구절도 있습니다. 가령 커녁션의 균열 대신 강고해지는 것을 지적한 구절이죠.
    그러나 다른 부분의 언어에서 몇 가지는 이미 이런 세상을 만들어온 공범자들을 포함한 진영까지 사용한 언어인 '국익'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통탄할 점입니다. 물론 도덕도 윤리라는 말로 대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문서가 체제의 골간에 문제삼지 않는 대중(문서에선 국민)을 언급하긴 했지만 더 문제는 지금 해도 될 것을 왜 내년 선거 시기까지 기다리느냐 하는 것이고 제도를 넘어선 상상력을 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냐 하는 거지요. 이것도 문서가 지적했으면 좋겠는데 이 부분 또한 지적을 안 했습니다. 비록 한국보다 소득 등의 수준이 더 낮은 곳들이 주이긴 하지만 이미 예멘, 튀니지, 이집트의 선례처럼이라도 하면 안 되는거냐고 지적을 했어야 합니다.

    암튼 지금의 인식장애를 넘어서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만 문서 역시도 대중에 대한 지적 이전에 부족한 부분들로 인해 빛이 바래네요.

    더불어 중소기업에 대한 걱정이 있기는 하지만 이 걱정을 알바생을 위시한 여타의 비공식/비정규/정규 노동자들과 자영업자, 농민에게 두면 안 되는 지요...

    2011.10.14 18:05 [ ADDR : EDIT/ DEL : REPLY ]

칼럼, 보고서2011. 9. 26. 12:04

2011.09.26여경훈 새사연 연구원

최근 저축은행 사태에는 부동산 경기침체에 따른 PF(프로젝트 파이낸싱)대출 부실, 금융규제당국의 정책실패, 대주주의 방만 경영과 비리 등 온갖 문제가 겹쳐 있다. 하지만 모든 현상의 밑에는 정책실패가 도사리고 있다. 본디 상호저축은행은 영세 자영업자 및 소규모 기업 등에 금융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일반 시중은행이 이들에게 돈을 잘 빌려주지 않으니 그 보완 역할을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떼돈을 벌 욕심으로 부동산PF 등 고수익-고위험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한국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그리고 현재의 미국 금융위기를 일으킨 투자은행에 가까운 영업행태를 보인 것이다. 한국의 시중은행보다도 적은 몸집으로 미국의 투자은행처럼 행동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문제는 그런 행위를 규제해야 할 금융당국이 오히려 그 행위를 조장했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저축은행 사태는 ‘규제완화’와 ‘위험증가’라는 두 바퀴가 서로 맞물려서 일으킨 대규모 “인재”이다.

먼저 금융당국은 이해당사자들에게 포획되었다(규제포획, regulatory capture). 부산저축은행에서 보듯이 정치권 로비와 회전문 인사 관행로 인해 당국은 자신의 존재이유조차 잊어버렸다. 또한 금융당국은 ‘대형화’ 신화에 사로잡혀 저축은행의 외형 확대를 적극적으로 방조했다. 작년 상반기 기준, 11개 계열저축은행의 총자산 합계는 53.2조원으로 총 105개 저축은행 총자산의 61.8%나 차지하였다. 위험관리능력도 경험도 없는 몇몇 저축은행이 이렇게 몸집을 부풀린 것은 그만큼 동반부실의 위험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산, 토마토, 제일 등 3개 대형 저축은행 앞에서 울부짖는 서민들의 고통을 만든 것은 이들 앞에서 “염려 말라”며 2000만원짜리 저축 쇼를 하고 있는 바로 그들이다.

두 번째는 규제퇴보다. 당국은 과거 금융위기의 교훈을 너무도 빨리 잊어버리고 ‘금융허브’와 같은, 이제 망상으로 판명난 정책목표를 고집했다(불행하게도 아직도 고집하고 있다). 2005년 말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제로베이스 금융규제 개혁방안’이 대표적이다. 이른바 88클럽이 탄생하고 법인에 대한 80억 금액규제의 한도도 폐지했다. 80억 초과 여신의 60.8%(10.7조)가 부동산 대출이었고 2005년 6.3조원이던 PF대출은 1년 만에 84%나 증가하였다. 이 규제퇴보가 부동산 PF를 불러온 것이다.

세 번째로 규제회피란 새로운 금융상품과 기법을 개발하여 기존 규제의 틀 밖에서 새롭게 위험을 발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저축은행이, 사실상 스스로 지배하는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비업무용 부동산 투자행위, 한도 초과 여신 및 투자행위, 분식회계와 편법대출을 자행하는데도 당국은 수수방관으로 일관했다. 지금 서민 고통의 핵심인 후순위 채권은 2009~10년에만 9000억 넘게 발행되었고, 그 발행금리가 수신금리보다 3~4%p 높아 은행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당국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끝없이 오르고 있던 부동산가격은 1997, 2004년 금융위기의 뼈저린 기억마저 망각의 늪으로 밀어넣었다. 시중에는 부동산 재테크 관련 뉴스와 책이 넘쳐났고 투기꾼과 건설사, 그리고 저축은행은 부동산버블의 향연을 마음껏 즐겼다. 우리의 금융당국은 ‘자율규제’라는 명분을 내세워 잔치의 흥을 돋울 뿐이었다.

현재 정부는 어떻게든 이 위기를 미봉해서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진단은 저축은행이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감독과 규제시스템을 철학부터 수단까지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안정과 실물과 금융의 균형발전전략이 금융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대형화를 통한 투자은행 육성, 금융허브와 같은 망상을 하루 빨리 버려야 한다. 그런 기조 하에서만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위한 서민금융기관으로서 저축은행은 부활할 수 있다. 미봉이냐, 근본적 전환이냐, 금융감독의 기조도 어떤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을 것인가의 시금석 중 하나이다.

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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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축은행 사태, 정말 곁에서 봐도 너무 말도 안됩니다. 은행이 고객돈을 빌려다 이자는 못 줄 지언정 원금까지 까먹고 거기다가 정부까지 5천만원 한도 보장이라고 엄포를 놓으니 예금자들은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 아니겠습니까? 물론 은행의 부실을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대손충당금이나 자기자본 비율 제도만 잘 정비해 놓았어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사실 은행이 비상시 고객의 돈을 변제할 능력도 안되면서 은행업을 하거나 정부가 사업을 허가해 준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됩니다. 그리고 극도의 불황으로 부도업체가 급증하는 시기에 이번 저축은행 사태가 터진 것도 아니고 어찌보면 내막에 석연치 않은 부조리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예금자들이 맡긴 돈 중엔 노후자금이나 평생 모아서 저축한 돈들도 있었을텐데 이런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 금융시스템과 법적 제도가 얼마나 취약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아마도 이런 취약한 제도가 도입된 데에는 말씀하신대로 선진국들의 위험한 금융제도를 아무런 검토나 연구없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우리네 감독당국과 은행들의 한심한 베끼기가 한몫 했을 겁니다. 무엇이 상식이며 무엇이 예금자들에게 안전한 시스템인지는 배제된 채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선진국들의 금융제도를 도입해 돈벌이를 하려고 하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거지요.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 이런 허술함의 기본적인 재정비를 통해 돈을 맡긴 선량한 국민들이 이런 무능하고 비도덕적인 은행으로부터 돈을 떼이지 않게 하기 위한 철두철미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자꾸 업계를 대변하려 하지 말고 정말로 예금자 편에 서서 국민들 편에 서서 이런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여기에 대해 너무나 소극적이었고 선진국의 금융 제도를 그대로 베끼기에만 급급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문제라고 볼 수 있죠.

    2011.10.01 14:48 [ ADDR : EDIT/ DEL : REPLY ]

칼럼, 보고서2011. 3. 28. 15:41
2011.03.28     손석춘/새사연 이사장

정치권력과 신문권력이 서로 부추기며 젊은 세대를 호명하고 있습니다. 처음 그 말을 만든 <중앙일보>는 신문 1면에 다음과 같이 P세대를 정의했습니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실체를 인식하고, 애국심(Patriotism)을 발휘하고 있는 20대 젊은 층을 지칭하는 것으로 중앙일보가 만든 말이다. 애국적인 태도 외에 진보·보수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실용(Pragmatism)적인 자세를 보인다.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Power n Peace)는 신념을 지녔고 국방의 의무를 유쾌하게(Pleasant) 받아들이며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개성(Personality)세대다.”


물론, 어떤 신문이든 말을 만들 ‘자유’가 있겠지요. 실제로 너무 많은 말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요. 문제는 그 말이 얼마나 보편타당성을 지니는가에 있습니다. 보편성도 타당성도 없으면서 어느 신문사가 자신이 만든 말을 여론으로 만들어간다면 ‘직권 남용’ 아닐까요.

 

2003년과 2011년의 P세대와 삼성

 

P세대 이야기는 처음이 아닙니다. <중앙일보> 못지않게 삼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제일기획이 이미 2003년에 젊은 세대에게 쓴 말입니다. 당시 P는 참여(participation), 열정(passion), 힘(potential power), 패러다임 변화(paradigm-shifter)를 뜻했습니다. 알다시피 그 시기는 월드컵의 ‘붉은 악마’ 열기가 뜨거웠지요. 노무현 바람이 불어 ‘참여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삼성이 정치기류에 따라 젊은 세대를 호명하는 게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굳이 기회주의라는 말을 쓸 필요도 없겠지요.


기실 우리는 젊은 세대를 겨냥한 숱한 호명을 들어왔습니다. 한결 같이 이윤을 목적으로 한 자본의 논리나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의도가 짙었지요. 2003년의 P세대와 2011년의 P세대가 대표적 보기입니다.


아마도 정치적 판단이었겠지요. 이명박 대통령까지 적극 가세했더군요.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 1주기를 맞아 “P세대라고 하고 G20세대라고도 하는 젊은이들이 매우 합리적으로 또 진정으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며 “이들을 보면 대한민국의 희망을 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떤가요. 아직 진실이 온새미로 규명되지 못한 사건을 두고 저들이 몰아가는 여론은 너무 얄팍하지 않은가요? 과연 무엇이 진정한 ‘애국’이고, ‘평화’를 지키는 길이고, ‘실용주의’인지 ‘유쾌한 개성’을 지닌 젊은 세대에게 새삼 말 건네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이 블로그를 통해 강조해온 말이니까요.


다만 2030세대에게 R세대라는 말을 다시 상기해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세대 규정과 달리 R세대라는 말은 자본이나 권력의 호명이 아니지요. 2000년이 열릴 때 젊은 세대 스스로 그렇게 호명했습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판에 뛰어들어(rush) 저항하고(resistance) 마침내 혁명(revolution)을 이루겠다”는 그 다짐이 11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는 그해 오월 을 인터넷에 연재하기 시작했지요. 지금 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뉴스레터로 매주 발행되고 있습니다(http://www.saesayon.org).


2030 스스로 규정한 세대 이름―R세대

 

저는 R세대가 단순히 2000년 시점에 머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 월드컵 열기 때 붉은 물결을 두고 자본 쪽에서 R세대라는 호명이 나온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현실에 뛰어들어 비판하고 변화를 일궈내는 R세대의 정신은 젊음의 영원한 특권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P세대와 R세대의 호명 가운데 실제 젊은 세대는 무엇을 선택할까요? P세대 뒤에는 막강한 삼성자본이 있습니다. 젊은 세대 스스로 밝힌 R세대는 그렇지 않지요. P세대와 R세대 사이에 PR할 수 있는 힘의 차이가 큽니다.


저는 PR의 차이를 젊은 세대가 벅벅이 넘어서리라 믿습니다. 2000년 그때처럼 정치판은 부패하고 무능하기 때문이지요. 썩고 구린 정치로 젊은 세대가 살아갈 객관적 조건은 무장 열악해져가고 있습니다.


2000년 R세대는 2002년의 촛불, 2008년의 촛불로 곰비임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미래는 열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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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보고서2011. 3. 28. 14:24
2011.01.20     손석춘/새사연 이사장

조계종 총무원이 다부지게 나섰다. 서울 청계광장에서 1월10일 열린 ‘민생 안정과 민족문화 수호를 위한 1080배 정진’은 그 상징이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로 칼바람 혹한이 몰아쳤지만 스님들은 죽비소리에 맞춰 흔들림 없이 절을 했다. 스님과 종무원 300여 명이 참여해 3시간 내내 얼어붙은 땅으로 몸을 던졌다. 조계종의 대정부 비판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회의적 눈길을 던지던 시민사회에서도 새롭게 종단을 바라보고 있다(앞선 칼럼 ‘불교가 더 수모당하지 않으려면’ 참고).


총무원 대변인 장적 스님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명토박아 “민족 문화에 대한 편향된 정책을 갖고 있다”며 그들에게 산문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조계종이 1080배 정진의 마당으로 청계광장을 선택한 까닭도 분명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언제나 자신의 치적으로 자랑하는 청계광장에서 그에게 ‘참된 깨우침’을 주겠다는 뜻이다. 장적 스님이 강조했듯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민주주의 후퇴”와 “한나라당의 민족문화에 대한 편향된 정책‘은 조계종의 한계와 인내를 넘어섰다. 다부진 결기는 다음날인 ‘성도재일’에 삼보일배와 신도들의 동참으로 이어졌다.


조계종 사부대중의 정당한 비판 모르쇠


문제는 조계종 사부대중의 정당한 비판에 대해 이 땅의 신문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신문대기업들이 보이는 냉소적 반응이다.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는 조계종의 산문 폐쇄와 1080배 정진, 삼보일배를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축소해서 편집했다. 특히 민주주의 후퇴나 민생에 대한 조계종의 문제 제기는 철저히 묵살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시절 특보가 사장 자리에 앉아있는 ‘공영방송’ 또한 소극적이거나 모르쇠다.


조계종 총무원으로선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기실 1080배든 삼보일배든 조계종이 지닌 문제의식을 여론화하기 위한 것이라면, 신문대기업들의 외면은 진지하게 짚어보아야 할 문제다. 왜 그들은 조계종이 제기하는 문제를 여론화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을까. 아니, 더 나아가 여론화를 방해하는 걸까.


그 이유는 명확하다. 너무 또렷해서 마주보기를 두려워했을 뿐이다. ‘있는 그대로’ 여여하게 바라보자. 조계종이 애면글면 비판해 온 ‘4대강 토목사업’에 신문대기업들은 그동안 진실을 보도해오지 않았다. 문수 스님이 자신의 온 몸을 불살라 소신공양을 했을 때도 침묵했다. 결식아동 급식비를 전액 삭감하면서 대통령의 고향에 천억 원 넘는 예산을 언죽번죽 배정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소극적으로만 보도해왔다. 조계종이 제기한 민주주의 후퇴에 신문대기업들의 모르쇠는 그 연장선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들에게 종합편성채널을 하나씩 주는 것으로 보답했다. 2011년이 가기 전에 우리는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가 각각 소유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게 된다. 그들이 신문시장 독과점에 이어 방송까지 진출할 때 여론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조계종 조롱받을 때 각각 방송 선물 받아


그렇다. 조계종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으로부터 조롱받고 있을 때, 신문 대기업들은 저마다 방송 채널을 하나씩 ‘선물’받았다. 4대강 토목사업이든, 민족문화 외면이든, 서민들의 복지 예산 삭감이든,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신문대기업들이 호의적이거나 비판을 하더라도 짐짓 시늉만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조계종 총무원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참된 깨우침을 주려면, 1080배와 같은 실천적 행동과 더불어 한국 사회의 여론을 형성해나갈 장기적 전망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후퇴와 민생의 고통에 대한 날카로운 담론과 대안 제시가 그것이다. 만일 조계종이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가는 사업에서 ‘좌고우면’하거나 두루뭉술하게 접근한다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조계종 무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마침 212개 시민사회단체가 2011년 1월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조중동 종편 선정 취소 및 추가 특혜 반대 시민사회단체 선언문’을 발표했다. 조계종이 연대해나갈 ‘우군’은 많은 셈이다. 조롱받은 조계종이 시민사회와 더불어 저들의 냉소를 당당하게 이겨가길 기대한다.


* 주간 법보신문(http://www.beopbo.com)에 기고한 칼럼을 일부 보완한 글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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