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 2015-2016/[칼럼] 고병수의 가슴앓이'에 해당되는 글 35건

  1. 2012.08.21 2012 여름, 몽골 의료봉사를 가다(3) (5)
  2. 2012.08.14 2012 여름, 몽골 의료봉사를 가다(2)
  3. 2012.08.14 2012 여름, 몽골 의료봉사를 가다(1)
  4. 2012.07.18 야동을 처방하는 의사
  5. 2012.07.02 백년 동안의 자영업자 의식

2012.08.21고병수/ 새사연 이사

 

몽골의 넓은 국토는 대부분이 초원이고 40% 정도가 사막이다. 아시아 대륙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고, 일 년 내내 건조한 대륙성 기후를 띄고 있어서 늘 맑은 하늘을 보게 된다. 1년 중 260일 가량 구름이 없다고 하니 우리가 보는 몽골의 하늘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 늘 그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날씨도 8월인 요즘은 낮에는 24도 안팎, 밤에는 18도 정도이니 한국의 가을 날씨 같다. 지금쯤 서울이나 제주는 푹푹 찌는 폭염 소식을 연일 뉴스가 전하고 있을 거다.

몽골의 초원과 끝없는 지평선으로부터 퍼져가는 구름들.

가운데 점점이 보이는 것은 이동하는 수 백 마리 말들이다.

 

돌 하나씩은 지니고 다니는 몽골 주민들

각자 흩어져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아침 진료가 시작되는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몽골 주민들은 거의 자기의 진단명을 붙이고 얘기가 시작한다.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으면 배가 아프다고 하지 않고 ‘쓸개에 돌이 있어요.’라고 하든지, 허리가 아프다가 아니라 ‘신장에 돌이 있어요.’라고 얘기한다. 한두 명도 아니고 거의 다가 돌 하나씩은 몸속에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몇 년 전 처음 몽골에 왔을 때는 너무 황당하고 놀라서 문진도 자세히 하고, 우리가 가져온 이동식 초음파로 검사도 해봤지만 간이나 신장, 쓸개에 돌이 있다고 얘기하더라도 실제는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더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들은 물이 귀해서 잘 걸러지지 않은 물이나 지하수를 먹기 때문에 석회수가 섞여서 몸속에 돌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콩팥에 만들어지는 신장결석이든 쓸개에 생기는 담석이든 석회수에 많이 섞인 칼슘 침착이 이유가 되며, 그들의 섭식 습관 중 육류 섭취에 의한 콜레스테롤 증가도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문제는 허리가 아프면 당연히 콩팥이 나쁜 거고, 그 원인은 주로 신장결석 때문이다 라든가 배가 아프면 담석이 있어서라는 생각을 쉽게 해버린다는 점이다. 그런 것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임시로 사용하고 있는 종합병원에 초음파 기계가 한 대뿐인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초음파나 요로검사를 통해 결석이 있는지 확인해 줄 수 없다보니 의사들마저 ‘돌이 있어서 아픈 거예요’라고 여겨버리는 것 같다. 일종의 관성적 진료이다.

진료중인 필자

 

알러지가 많은 주민들

또 몽골 주민들에게는 특징적인 질환군이 있다. 바로 알러지로 인한 비염과 피부염들이다. 그것들은 검사보다도 증상과 간단한 진찰만으로도 진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여부를 금새 알 수가 있다.

“알러지 비염이 있어요.”, “피부가 늘 간지러워요.” 찾아오는 많은 주민들이 이런 호소를 한다. 알러지(Allergy)란 말 자체가 과민반응을 뜻하므로 코가 민감하게 반응해서 재채기, 콧물 등의 증상을 나타내면 알러지 비염인 것이고, 피부가 어떤 자극에 자주 가려움증을 나타내면 알러지 피부염인 것이다. 몽골은 공기가 맑고 오염되지 않아서 우리와 같은 도시의 오염 때문에 생기는 자극은 적어도 초원의 풀에서 만들어지는 꽃가루나 관련된 물질들이 알러지 증상을 일으키는 주범이 된다.

알러지 비염의 경우 증상을 물어보지 않아도 주민들마다 코 안을 들여다보면 알러지 비염 환자 특유의 점막 부종 현상을 심심치 않게 확인 할 수 있다. 피부는 햇볕에 타서 거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피부 가려움증을 가지고 있다. 항상 예상을 하고 충분히 가지고 온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 연고류는 진료가 끝나기 전에 동이 나 버릴 정도다.

내가 제주도로 이사 와서 진료를 하다가 놀랐던 것 중 하나도 바로 서울보다 제주에서 알러지 비염이 더 많다는 것이다. 알러지 비염이 공기의 오염보다는 알러지 유발 물질(‘알러젠’이라고 한다)이 더 중요한 영향을 받는다는 증거다. 풀과 나무가 많아 여러 종류의 식물성 알러지 유발 물질에 노출될 영향이 크고, 특히 제주 산간 도로를 운치 있게 에워싸거나 감귤나무를 보호하려고 둘러친 방풍림인 삼나무들이 문제였다. 지금부터라도 방풍림으로 삼나무 대신 편백나무로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제주와는 달리 몽골의 그 많은 초원을 다 바꿀 수도 없고…

밤이 되어 간단한 평가가 끝나고 숙소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대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입을 벌리고 힘들게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봐도 어딘가 상당히 불편한 표정이었다.

“어디가 아파요? 또 귀에 벌레가 들어갔나?”
“아니요. 원래 알러지가 있는데, 너무 코가 막혀서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참아보려고 버티다가 어젯밤에는 한숨도 못 잤어요.”

이런 녀석을 미련 곰탱이라고 했던가? 간단히 약을 먹어서 증상을 줄여주면 될 것을 며칠 동안이나 참다니… 서울에 있을 때는 그래도 여름이라서 괜찮았는데, 몽골에 오면서부터 눈이 가렵고 코가 막혀 힘들었다고 했다.

남들은 차타고 오면서 몽골 초원의 푸른 기운을 예찬할 때 이 친구는 남몰래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불쌍하기도 하고, 진작 챙기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급한 대로 주사를 주고, 며칠 먹을 약을 싸주었다.

그 친구가 돌아가고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쳤다. 멀리 개 짖는 소리, 잠 안자고 두런대는 자원봉사자 학생들 목소리도 조금씩 줄어들고… 시간이 잠시 흘러 풀벌레 우는 소리가 짙어질 때쯤, 내일은 마지막 진료를 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을 밤하늘에 전하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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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티스토리 메인 여행카테고리에서 보고 들어왔습니다. 글이 너무 좋아서 그런데요.^^;
    제가 gogossing.co.kr 이라는 여행 정보 사이트를 운영중인데 블로그의 글을 좀 퍼가도 될까요?
    해당 블로그 이름과 주소를 맨위에 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표시를 보긴 했지만, 정확히 가능할까 해서 문의드립니다.

    2012.08.21 14: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안녕하세요. 글이 좋았다니 필자님이 기뻐하시겠어요^^
    퍼가실 때 필자 이름과 이 블로그주소만 링크해주시면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2012.08.22 10:4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몽골이라는 나라는 참 매력적인 곳 같습니다.
    의료 봉사하시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스탠다드차타드도 중국 단동으로 의료 봉사를 다녀왔지요.
    언어와 문화가 다르지만 한 마음으로 이야기 하는 시간이여서 좋았습니다^^
    혹시 다른 나라도 의료봉사 가보신 적이 있는지요^^~?

    2012.08.24 13: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어느 의대생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안녕하세요 고병수 선생님!
    저는 의학공부하고 있는 한 학생인데요
    선생님께 여쭤 볼게 있어서 bj971008@hanmail.net 이곳으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혹시 맞다면 답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2.08.27 17:17 [ ADDR : EDIT/ DEL : REPLY ]
  5. 고병수

    어느 의대생님께....
    메일 주소 맞습니다.

    2012.08.31 13:06 [ ADDR : EDIT/ DEL : REPLY ]

2012.08.14고병수/새사연 이사

 

아침에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일행들과 모여서 밥에 깡통 통조림들을 꺼내서 맛있게 먹었다. 세수를 하고 양치질도 해야 하는데, 앞서 얼굴을 씻고 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영 말이 아니다. 머리를 감고 나오던 봉사단 인솔자인 장석기씨는 물이 너무 차가운 나머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공수부대 출신에 국방부장관 표창까지 받으며 군 생활을 화려하게 했다는 그가 입까지 얼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감히 머리 감을 생각까지는 못하고 그냥 눈곱만 떼고 가야지 마음먹게 된다.


진료 시작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진료 장소에 도착해보니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이 와글와글 모여들어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점심밥 먹을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팍 온다.

단장님, 오늘도 죽음의 진료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고원장, 자기는 엉덩이에 땀띠 좀 나겠는데?”
“나야 땀띠로 족하지만, 단장님은 허리가 뽄질라지겠네요. 하하하…”
“이따가 파스 남은 거 있으면 좀 붙여줄 생각이나 해요. 아이고…”

아침 일찍부터 진료를 받기위해 몰려든 주민들


우리 일행을 책임지는 단장님은 여러 해 동안 알면서 지내온 박형선 한의원 원장이신데, 여러모로 능력이 뛰어난 분이다. 주민들에게 침을 놓으려면 허리를 굽혀야 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진료를 하고나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을 거다. 농담처럼 죽는 시늉을 하지만 박 단장님은 몽골 진료를 벌써 16년가량 해오신 분이라 몽골 오지에 가는 것이나 폭풍진료를 하는 것에는 이골이 났을 것이다.

진료는 가정의학과 2명, 산부인과 1명, 외과 1명, 성형외과 1명, 치과 2명으로 이루어진 의료진들이 맡고, 2명의 약사님들은 약국에서 일을 하게 된다. 간호사는 주민들이 어느 진료실로 갈지 간단한 인터뷰를 하면서 교통정리를 하게 된다. 자원봉사자들은 주민들을 안내하거나 진료실과 약국에서 일손을 돕는다.

다른 진료과목들은 이 지역에서 각자 자기 역할들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성형외과 원장님이신 조준현 선생님이다. 여름휴가 가는 대신 봉사를 오긴 왔지만 몽골 오지에서 성형수술을 하기도 만무하고, 진료 첫날인 오늘은 진료실에 앉아서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내과 환자라도 보겠다며 진료를 하는데, 내과 계통 약을 처방해본지도 20년 가까이 지나서 쉽지는 않았다.


몽골 오지에서 성형 수술을

오전 11시가 넘어갈 때였다. 안내를 맡은 자원봉사자 분이 성형외과 선생님 방에 수술 건이 생겼다고 귀띔을 해줘서 드디어 일거리를 찾으셨구나 마음이 놓였다. 인근에서 교통사고로 입술이 찢어진 청년이라는데, 간단한 수술이니 금방 끝나서 또 할 일이 없나 찾으시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손을 놓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식당으로 향하는 중에 성형외과 선생님이 안 보인다.

“조 선생님은 왜 안 오시죠?”
“수술 하는 게 많이 늦어질 거라고 합니다.”
“어, 입술 봉합하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걸리죠? 시작한지 2시간이 넘었을 텐데…”
“그러게요. 나도 많이 안 걸릴 줄 알았는데, 점심도 못 먹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간단한 봉합은 많이 해봤기 때문에 부위 별로 대강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짐작을 할 수 있다. 듣기로는 큰 손상이 아닌 것 같았는데, 시간이 이렇게 걸리는 게 아무래도 미용 성형만 하시다가 간단하지만 손상된 상처 봉합을 하려니까 어려우신가 보다고 우리끼리 농담을 주고받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진료실로 돌아갈 때쯤 성형외과 조 선생님이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고 계셨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선생님, 많이 힘든 수술이었나 봐요?”

우리들은 인사치레로 그렇게 물었지만, 조 선생님은 바짝 말라 있는 입술을 힘들게 떼며 말한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교통사고로 다쳤다고 해서 청년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입술뿐만 아니라 아래턱 속살까지 다 다쳤더라고요. 상태가 안 좋아서 큰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더니 현지 의사가 이런 수술은 울란바타르로 보내야 한다는데…”
“그 정도였어요? 우리는 가벼운 입술 상처인 줄 알았어요.”
“다행히 차가 정면이 아닌 옆으로 스쳤는지 골절 같은 것은 없고, 입술과 턱 부분 손상만 받았지만 이게 간단한 수술이 아닙니다.”

우리의 짐작과는 다르게 그 몽골 청년은 입술부터 턱 살까지 찢어졌을 뿐만 아니라 안쪽으로 아래턱뼈에 붙은 살이 들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안쪽 구조물과 조화를 시키고, 안에서부터 봉합을 하면서 동시에 겉 피부 봉합을 해야 되는데, 붓기가 빠지면서 입술선이 삐뚤어질 수 있기 때문에 힘들었다는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조 선생님의 설명을 듣던 우리 일행들은 찍어 놓은 사진을 보고서야 상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수술 받기 전 상태(왼쪽)와 3시간 동안의 수술을 받은 후의 모습(오른쪽)


“와, 선생님은 이제 몽골에서 할 일 다 하셨어요. 이젠 진료하지 말고 쉬세요.”
“아이고, 아닙니다. 그래도 역할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제 밥 좀 먹어야겠습니다.”

그 몽골 청년은 비용도 문제였지만 생각지도 않게 힘든 수술을 멀리 울란바타르까지 가서 받아야 할 뻔했는데 참 운이 좋았다. 이후 며칠 동안 조 선생님은 내과 환자들을 보면서도 드문드문 간단한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도 많이 보게 되어서 결코 할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 그 날 밤 평가를 위해 모인 우리는 밤늦도록 오늘 일에 대해서 얘기하며 조 선생님을 칭찬했다. 마치 우리가 겪은 일인 것처럼 보람 있어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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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0고병수/새사연 이사

 

해마다 오는 몽골 의료봉사지만, 언제나 진료하는 것보다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게 가장 힘들다. 올해는 인원이 많아서 3개 지역으로 나누어 봉사활동이 진행되는데, 우리 일행은 헨티 아이막(헨티道)의 운드르항이라는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아침에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저녁 6시 30분이었다. 우리보다 3시간을 더 가야하는 일행들은 밤 10시가 되어야 도착할 것이다(하지만 그 팀은 밤중에 초원에서 버스가 길을 잃어 헤매다가 밤 12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고 한다).

처음 몽골에 갔을 때는 드넓은 초원에 감격해서 버스가 쉴 때마다 사진도 찍고 초원의 풀냄새와 들꽃에 취해 감동을 하곤 했는데, 여러 번 오다보니 이제는 그저 버스에서 책을 읽거나 잠만 자게 된다. 그것은 4년 전 제주도 고향으로 내려와서 처음 산과 바다와 자연에 취해 감동받던 것이 이제는 심드렁해지는 무심한 적응 현상이다.


몽골의 보건의료 현황

몽골은 세계에서 6번째로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 인구는 280만 명 정도라서 인구밀도가 아주 낮다. 징키스칸에 의해 부족이 통일 된 후 원나라를 통해 강국이 됐지만, 이후 내부 분열과 중국의 간섭이 오래도록 지속되다 보니 1920년대까지는 후진국으로 전락해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1924년에는 당시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지원 아래 몽골인민혁명당을 유일 정당으로 해서 몽골인민공화국이 성립되어 독립국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몽골도 처음에는 후진성을 벗고 경제적 발전과 국가의 안정을 이루었다. 가축 수가 증가하고, 공업도 이루어지는 한편 문화발전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경직된 국가사회주의 정책으로 인해 경제발전이 답보되고, 언론?출판의 자유는 억압받게 된다. 더욱이 1990년대 동구권의 몰락과 소련의 붕괴는 몽골에도 자유화 바람을 불게 했고, 여러 정당들이 생기면서 1990년 7월에 비로소 민주적 절차에 의한 첫 자유선거가 이루어지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몽골에서 진료를 하다보면 몽골의 보건의료는 사회주의 정부 당시의 영향이 크고, 그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 많다. 자유주의 국가들처럼 인구가 많고 수입이 되는 지역에 가서 병원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정부 주도 아래 각 아이막의 중심 도시에는 종합병원을 지어서 지역의 중심의료기관이 되게 하였고, 솜(한국에서는 군(郡)에 해당)에는 기본적인 일차의료기관(보건소 비슷)을 만들어서 지역 의료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들은 장티푸스, 천연두, 파라티푸스 등 고질적인 전염병들을 퇴치하는데 앞장섰고, 질병 예방을 위한 기초 검진이 중요시 되었다.

주민들은 누구나 자신의 ‘건강수첩’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디를 가더라도 의사들이 건강상황이나 이전 진료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몽골이 사용하는 키릴문자와 러시아 문자가 비슷하기 때문에 글을 모르는 내가 볼 때는 비슷해 보여도 주민들이 내게 펼쳐보이는 건강수첩을 보면 가끔 러시아어로 쓴 글들이 있다. 의사들이 주로 러시아로 유학을 가거나 러시아어로 된 의학서적을 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미국에서 의학을 배우고, 그들의 의학서적을 가지고 공부하다보니 습관적으로 영어로 기록을 남기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건강수첩 겉표지(왼쪽 그림)와 개인 의료기록이 자세히 정리된 내용(오른쪽 그림)

인구의 절반이 수도인 울란바타르에 거주하고 있고, 각 아이막마다 중심도시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인구 2~5만 안팎의 도시들이다. 그 외의 국민들은 대다수 아직도 유목 생활을 하면서 드넓은 초원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사회주의 정부 아래에서는 모든 병원 이용과 치료는 무료였지만, 1990년대 자유화 이후 국가가 책임지던 보건의료서비스는 일부 개인 책임으로 바뀌게 된다. 여전히 응급치료, 예방, 임신부와 산모, 전염병 및 자연재해로 인한 질병 등은 무료이지만, 그 외는 많은 경우 진료를 받을 때 본인부담이 늘었다. 경제 발전은 더디면서 국가 책임의 의료시스템을 오래도록 하다 보니 국가재정에 부담이 가중되었고, 병원 시설이나 의약품 공급이 상당히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20년 사이에 사유화가 진행되면서 모두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이었던 것이 개인병원도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다. 의료 재정을 보완하고자 1994년부터는 의료보험이 시작되었다.


진료 준비

수도인 울란바타르에서 목적지까지는 400km밖에 안 되어서 서울과 부산 거리이지만, 길이 워낙 안 좋아 운 좋으면 10시간이고, 중간에 길을 잃거나 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새벽에 도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 몽골에 올 때는 몽골의 역사책을 한 권 들고 왔다. 차 안에서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건의료 자료도 조사해서 가지고 왔기 때문에 미리 몽골의 보건의료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에 우리 팀을 이끄는 단장님인 박형선 원장은 자꾸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 어디 갈 때 꼭 책을 읽는 척 하더라 하면서 방해를 놓았지만, 나는 꿋꿋이 책을 놓지 않았다.

몽골은 아직도 결핵이나 바이러스성 간염, 기생충 질환 등 전염병 유병률이 많다. 게다가 그들은 육식을 주로 하면서 채소 섭취가 부족하고, 운동이 부족하다보니 심혈관계 질환들이 많다. 고지혈증, 동맥경화, 고혈압, 당뇨가 정말 많다. 거의 생활습관병들이다. 우리 일행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초원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다. 같이 가는 통역이나 안내원들도 같은 점심을 먹는데, 그들은 그 정도로 양이 안 차는지 비닐에 싸서 가져온 양고기나 다른 육류를 꼭 먹어야 했다. 그들이 자주 먹는 양고기는 기름도 엄청 많다.

목적지인 운드르항에 와서 짐을 풀고 내일부터 있을 진료 준비로 부산하게 움직인다. 다행히도 헨티의 유일한 종합병원에서 일부 진료실을 이용하도록 허락 받았기 때문에 다소 편하게 진료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요한 장비들은 각자 사용할 수 있는 진료실로 가져다 놓고는 병원을 죽 둘러보고는 저녁을 만들어 먹고, 진료 준비 회의까지 마치고서야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숙소는 근처 고등학생들이 학기 중에 묵는 기숙사였다. 침대에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이 지역이 사람들이 많던데, 내일 너무 많은 주민들이 몰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가지고 온 약품이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걱정, 자원봉사자들이 제대로 움직여줘야 힘들지 않을 텐데 하는 걱정......

그래도 구름 낀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면서 몽골의 이틀째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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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8고병수/새사연 이사

 

여성들이 병원을 찾아서 말하기도 뭐하고, 참 난처한 요구가 사후피임약이다. 반면에 남성들에게도 말하기 힘든 처방 요구가 있는데, 바로 발기부전 치료약이다. 흔히 ‘비아그라’니 하는 그런 종류의 약들을 말한다. 꼭 필요하냐고 반문한다면 굳이 더 할 말은 없는데, 남성들에게는 머리털이 빠지는 문제보다 더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모자반을 들고 온 박씨

작년 이맘때일 것이다. 저녁 진료시간이라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추자도에 산다는 박씨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두 달에 한 번씩 고혈압 때문에 내게서 진료를 받는 박씨는 작은 고깃배를 가지고 갈치나 고등어를 잡는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몇 가지 필요한 진찰과 혈압을 측정 후 혈압 상태는 좋다고 말하면서 요즘 고기가 잘 잡히는지 물었다. 내가 낚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수온이나 조황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 분의 생활 모습이 어떤지 겸사겸사 묻는 것이기도 하다.

“글쎄요. 수온이 차서 아직 벵에돔이 올라오지 않네요.”

“아, 난 언제 5자 넘는 놈 잡아보나.....”

“원장님이 낚시하러 갈 시간이나 있으세요? 그런데..... 이런 말 해도 되나 모르겠어요.”

“무슨 거요? 걱정하지 마시고 아무 거나 물어보세요.”

“저.....”

박씨는 한참 머뭇거리더니 6개월 넘게 그 놈이 서지를 않아서 걱정이다, 사람들이 흔히 먹는다는 ‘비아 거시기’ 얻을 수 있냐, 자기처럼 고혈압 있으면 안 된다던데 괜찮나 등 내가 문을 열어드렸더니 줄줄줄 궁금한 것들을 쏟아냈다. 나는 일단 발기부전이 심리적인 원인으로 온 건지, 고혈압이나 만성질환의 후유증으로 온 건지 구분해 본 후 일단 약을 드셔보라고 권했다. 당연히 부작용도 말해주고.

다시 두 달이 지나서 진료실을 찾은 박씨의 손에는 큰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모자반이라고 한다. 제주도 말로는 ‘몸’이라고 하는 건데, 국이나 반찬을 만들 때 많이 들어간다. 추자도에서 제일 좋은 걸로 가져왔다고 하면서 탁자 옆에 두었는데, 지난번에 고민거리를 잘 들어줘서 너무 고맙다는 뜻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약도 효과는 있었지만, 남한테 말 못하는 거였는데, 이것저것 살펴줘서 마음이 놓였고, 가끔 약을 먹어서라도 발기가 되니 너무 좋다는 박씨.

 

발기부전에 대한 연구와 치료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들이 성기나 성관계에 대해 금기시하는 것은 정도 차이만 있을뿐 비슷하다. 발기부전에 대해 처음 발표를 한 것은 우리가 외설처럼 여겼던 ‘킨제이 보고서’를 내놔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킨제이(Alfred Kinsey)라는 생물학자인데, 1948년에 연령별로 발기부전 유병률을 처음 발표하였다. 이후 미국 학계에서는 20대 7%, 30대 9%, 40대 11%, 50대 18%로 조사되어서 미국에서만 발기부전 환자가 3천만 명 이상이며, 유럽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다고 하며, 전 세계적으로는 1억 명 이상의 남성들이 같은 질환으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조사를 하였더니 나이에 따라 비율이 점점 증가해서 60대 36%, 70대 69%로 급격한 증가폭을 가진다고 하였고, 30대 이상 전체 남성의 50% 정도가 발기부전을 호소한다고 하였다. 물론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생명에 지장이 없고, 아파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니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남성들에게는 큰 근심거리이다. 문제는 아직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1999년, 처음 ‘Via(생생한)’이란 말과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힘차다라는 뜻에서 따온 ‘gra(나이아가라의 뒷 글자)’를 따서 비아그라(성분명 실데나필)가 나왔을 때 전 세계는 환호했고, 매출 시장도 엄청났다. 하지만 비뇨기과는 그 이후 하향길을 걸어야 했다. 발기부전에 대해서 주사나 여러 기구 삽입, 수술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는데, 간단히 약만 먹고 같은 효과를 주니 말이다.

전 세계에서 1초에 6알이 팔렸다는 비아그라의 주성분인 ‘실데나필’에 대한 물질특허가 2012년 5월 17일 풀리자, 한국에서도 많은 제약회사들이 너도나도 비슷한 약품을 만들어 의약품 시장에 내놓았다. 세지그라, 스그라, 헤라크라, 오르그라, 바로그라, 자하자, 팔팔 등 이름도 민망할 정도이다. 하긴 비아그라도 그런 이름이었으니까…… 그 외에도 수십 개의 제약회사에서 복제품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알약만 있는 게 아니라 혀 밑에 놔서 녹여서 효과를 보는 필름형 제제도 나왔다.

환자들에게 발기부전 완화약을 처방하다보면 얼굴이 붉어진다든지, 가슴 두근거림, 어지러움 등의 부작용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약을 다른 것으로 바꿔주면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어떤 분은 같은 성분을 가진 약인데도 효과 없기도 해서 바꿔드리면 또 효과를 보기도 한다. 문제는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을 앓는 사람들이 흔히 복용하는 질산염 계열 혈관 확장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이나 ‘~조신’으로 끝나는 알파 차단제 혈압강하 약물을 복용하는 분들이 이 발기부전 치료제를 함께 먹으면 급격한 혈관 확장으로 인해 저혈압이나 쇼크가 올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하는 것과 그 외에도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들이 있어서 의사들과 상담 후 처방을 받고 구입해야 한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발기부전 환자에게 권하는 야동

발기부전은 뇌의 질환이나 실혈관계 질환의 후유증으로도 생길 수 있고,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 환자들에게서 많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진료실에서 나이가 많거나 그런 질환들을 가지고 있는 분이 오시면 조심스럽게 발기 정도를 물어본다. 대부분 괜찮다고 하지만, 발기부전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일단 성욕이 줄어서 생긴 건지, 아무 문제 없지만 기질적으로 생긴 건지 알아본 뒤 성욕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한다. 질병의 후유증으로 생기는 경우가 많지만, 마음에서 발생하는는 문제의 우도 꽤 되기 때문이다. 부인 앞에서는 잘 안 서는데, 다른 여자에게서는 어느 정도 된다고 말하면 부인의 신체 어느 부분이 매력적이냐 생각해보고 그걸 떠올리면서 부인에게서 성적 감정을 느끼려고 애써 보라고 하기도 한다. 야동(야한 동영상)을 보면서 발기 훈련을 해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이러면 나는 비도덕한 의사로 인식될지 모르지만, 환자의 고통 앞에서는 도덕이 상위 개념일 수 없다고 본다.

발기부전 뿐만 아니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질환들을 세상에 보이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그것들을 편안하게 드러내고 만져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의사이다. 적은 수가에 상담을 하려면 시간을 내기도 힘든 우리나라의 의사들이지만, 요즘처럼 수도 없이 발기부전 치료약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 조금씩은 이런 부분들을 잘 헤아리며 환자들을 봐주면 좋겠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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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고병수/새사연 이사

사적 영역에서 일하며 자영업자로 성장하도록 교육받은 한국 의사들…

‘기업가주의’에서 ‘전문가주의’로 변화해야

개원의인 나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지난 몇 년 사이 주변에 동네의원 몇 개가 더 들어서 환자가 줄어 마음이 편치 않은데, 포괄수가제 문제로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부딪치며 분위기가 험악하기 때문이다. 처음 개원한 12년 전에는 의사협회의 방침에 동조했지만, 이제는 상황을 좀더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왜 이렇게 정부 정책마다 반대의 기치를 들며 반발하는 걸까? 한국 의사들은 전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이 이기주의로 가득 찬 의료인이고, 국민의 건강을 영업으로만 바라보는 파렴치한들일까?


유신독재 위세에 의료보험 반대 못한 의료계


의사들이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기를 들었던 것은 의사가 된 이후에 본 것만 여럿이다. 김영삼 정부가 추진하던 ‘주치의등록제도’가 의사협회의 반대로 무산됐고, 김대중 정부 초기에 야심차게 준비하던 ‘단골의사제도’ 역시 시작도 못해보고 묻혔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부와 의사들의 대화가 잘되는가 싶더니 ‘선택의원제’ 문제로 다시 격돌했고, 이번에 포괄수가제 문제로까지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는 의사협회장이 앞장서서 이명박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의사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많은 의사들이 동참했다. 그다음에 돌아온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협하는 정책과 저수가뿐이었다. 주변의 의사들은 하나같이 이전 정부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한다. 의사들에게는 자승자박, 자업자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토양은 도대체 언제부터 만들어진 걸까?


조선 말엽, 서양의학을 도입할 때는 미처 국가적 보건의료 체계를 잡을 여유가 없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 사람들을 문명화하고 위생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조선총독부) 하는 것이 보건정책의 목표였다. 보건정책은 일제의 조선 통치 목적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러니 고등 의학교육과 장기적인 보건정책을 수립하지 않았다. 낮은 단계의 위생에만 중점을 두다 보니 ‘파리잡기’나 ‘쥐잡기’ 등을 중요 보건사업으로 삼았을 정도다. 게다가 배출되는 의사들에게는 아무런 제재 없이 개업할 수 있게 해서 영리를 취하게 하다 보니 이들을 국가 보건사업에 참여하게 하는 조처나 의도조차 없었다.


해방 뒤 미 군정 때도 국가적 차원의 보건의료 정책은 여전히 부족했고, 의사들이 국가정책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개발경제를 외치던 1970년대 이후에 조금씩 변화는 있었다. 그나마 의료기관 인프라를 늘리는 데 정부가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 1977년에는 전국민건강보험의 모태가 되는 의료보험이 잉태됐다. 아마 의사가 사회와 연결돼 공적 관계를 맺는 최초의 의료정책일지 모른다. 1989년에는 지역별·직능별로 나뉜 의료보험이 전국민건강보험으로 확대됐고, 의료전달 체계가 최초로 시행됐다. 당시 낮은 수가에도 공적 건강보험을 의사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박정희 정부의 힘에 눌린 탓이 컸다. 정부는 의사들의 수입이 좋은 것을 보고 수가를 낮춰도 되겠다는 판단을 했고, 서슬 퍼런 유신시대여서 의사들은 크게 소리를 높여보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국가와 공적 관계 맺을 기회 없어


1980년대 이후에는 정부의 의료개혁이 의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거의 뜻을 못 이뤘다. 원인은 과거 정부가 찍어내린 진료 수가에 대한 저항감이 컸다. 그러나 한국의 의사들 사이에서 지난 120년 동안 몸에 밴 자영업자 의식도 한몫했다.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비싼 수업료를 내고, 의사자격증을 따서 전문의 과정을 거쳐 개원하기까지 국가는 의사로 성장하는 개인에게 어떤 지원도 한 적이 없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의사면허증을 받는 순간을 제외하고 의사들은 국가나 사회와 어떤 공적 관계를 맺어볼 기회가 없었다. 외국처럼 국가와의 계약을 통해 주민의 보건의료를 책임지는 위치에 서보지도 않았고, 의사들은 전문가임을 자처하지만 그 전문성을 배타적인 것으로 만들어 수입을 얻는 것에 주력할 뿐이었다. 오히려 보건소가 지역에서 환자 진료를 하는 것을 못마땅해하거나, 그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의료사회학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의사들의 이런 정체성을 ‘기업가주의’(Entrepreneurism)에서 찾기도 한다. 병원 운영을 기업 운영처럼 여기고 이익 창출을 주된 목표로 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의사로서 가지는 전문성을 사회적 관계 속에 역할하도록 하고 존경받는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와 대조되는 개념이다. 외국에서도 동네의원은 대부분 개인 사유물이지만, 의사들은 교사나 경찰관, 소방관처럼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군으로 인식된다. 의사들은 그 속에서 보람을 찾는다. 물론 충분한 의료재정과 ‘의료를 공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문명화된 시대에 의료는 분명 공적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의사들은 종합병원이든 동네의원이든 대부분 사적 영역에서 일을 한다. 그 토양 속에서 자영업자로 성장하도록 교육을 받아왔다. 포괄수가제 같은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에 보이는 의사들의 집단적인 거부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속 시원한 답을 내기는 어렵다. 몇 가지 실마리는 있다. 먼저 우리 의사들도 이제는 의료를 국민에게 돌려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의사가 자영업자 정신을 유지하는 한,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의료 문제에 대해 이익집단으로서만 목소리를 높이는 한, 의사집단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는 힘들다. 요즘 포괄수가제를 둘러싼 여론의 싸늘한 반응을 봐도 이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주장이 때로 타당할지라도 이를 자기만의 언어로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정부가 의료 공공성 강화 앞장서야

 
정치인이나 정부도 의료의 공공성을 유도해내고, 필요한 재정과 인력 배치를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의사들이 믿음으로 의료개혁 정책을 같이 만들어나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먼저 자영업자를 양산하는 의과대학 교육 시스템부터 손봐야 한다. 또 종합병원 이상은 전문성을 갖추려고 노력하되, 동네의원들은 지역 주민이 편안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지속적이고도 포괄적인 1차 의료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형태가 주치의제도가 됐든, 다른 어떤 형태일지라도 근본적인 제도 변화가 필요할 때다. 자영업자로 위축된 의사들이 이제는 스스로의 의료 행위에 대해 공적 개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제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지난 의약분업 때는 정부와 의사들 사이에 아무런 타협 없이 서로 등을 돌렸다. 이번 포괄수가제 문제를 계기로 정부와 시민, 의사들이 현재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작업을 하며 신뢰를 쌓는 계기를 마련하면 좋겠다.

이 글은 한겨례21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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