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06정태인/새사연 원장

 

안녕하세요? 경제기사를 읽어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갑오년 새해 첫 주니만큼 2014년 경제 전망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큰 흐름에 관해 말씀드리려고 노력했으니, 제대로 했다면 1년 치 전망이라고 해서 별다른 얘기가 안 나올 테죠? 하지만 각 기관의 공식적 발표를 모아서 한번 훑어보는 것도 의미는 있을 겁니다.

세계경제 -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회복

우선 UN 경제사회이사국(DESA), OECD, IMF의 세계경제 전망을 살펴보면, 세 곳 모두 내년에는 성장률이 약 1%포인트 가량 올라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UN 쪽의 수치가 다른 것은 이 기관이 구매력 지수(PPP)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후진국들의 비중이 높아질 테니 세계경제의 경우엔 수치가 사뭇 달라지죠).


 

▲ 표1. 각 기관의 세계경제 전망 ⓒUN DESA, World Economic Situation and Prospect 2014, 12. 18 / OECD, Economic Outlook No14, 11.19 / IMF, World Economic Outlook, 10

 


지역별로 보면, 미국은 2% 중반대까지 성장하고 유로지역은 플러스로 반전하며 중국은 횡보할 것으로 전망됐군요.

세 기관의 보고서 제목을 보면 "세계경제는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신구 역풍에 대해 여전히 취약하다"(UN), "더 강한 성장이 앞에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위험도 공존한다"(OECD), "세계 성장은 저단 기어에 있다, 행위의 추동력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하방 위험은 여전하다"(IMF)입니다. 공통점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IMF가 말한 변화란, 선진국이 회복세를 주도하게 될 거라는 점입니다.

미국의 성장은 우선 양적완화로 넘쳐나는 돈이 주식시장을 부추겼고, 이제 부동산 시장도 들썩이는 데 기인한 걸로 보입니다. 다음으로는 달러화 가치가 떨어짐에 따라 수출도 증가했고, 미국으로 제조업이 되돌아오는 조짐도 일조했죠. 특히 셰일가스의 생산에 의해서 에너지 가격이 떨어진 것은 미국 특수라고 할 만합니다.

지난해 12월 23일 IMF의 라가르드 총재는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올리겠다고 발표하면서 그 이유로 양적완화 축소와 채무 상한선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일단 해소됐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양적완화를 월 100억 달러 만큼 실제로 축소했는데도 지난 5~6월과 같은 대혼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늦어지기만 했던 화폐의 유통 속도가 조금 빨라지기만 해도 단기 금리가 상승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런 회복이 2015년에도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세 기관 모두 회의적입니다. 우선 미국의 회복은 단기적인 자산효과에 기대고 있어서 거품이 더 커지는 걸 방치할 수 없을 테고 재정적자의 문제나 글로벌 불균형의 문제도 거의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미 스티글리츠나 블라인더의 글을 통해 소개해 드린 대로, 위기를 낳았던 금융 시스템의 규제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죠. 현재의 성장세가 꺾이거나 다시 버블이 터질 경우엔 또다시 금융위기로 발전할 가능성도 여전한 상태입니다.

유럽(유로 지역)의 문제는 더 근본적입니다. 언젠가 말씀 드렸듯이 공동의 통화를 쓰면서도 재정이 통일되지 않으면, 역내 불균형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력이 약한 그리스 등 남부유럽은 무역적자가 쌓일 텐데 똑같은 유로를 쓰니까 환율이 불균형을 조정할 수도 없습니다. 현재의 유럽이야말로 비전통적 금융정책(신용 확대+)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 재정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재의 통합을 다시 느슨한 상태로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죠.

중국은 3중전회에서 금융시장의 개방과 국유기업 개혁 의지를 밝히며 복지의 확대(국유기업 이윤의 30%를 연금 및 의료에 사용)를 통해 소비 주도 성장으로 이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만, 중국 내의 각종 불균형과 지방정부와 은행의 부실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 역시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UN과 IMF가 새로운 위험이라고 한 건 이른바 취약 5인방(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터키 등 국내외 적자가 많은 나라)이 양적완화나 원자재 가격 하락 등의 외부충격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때문입니다. 만일 이들 나라가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을 맞는다면, '음의 되먹임 효과(negative feedback, 복잡계 이론의 개념으로 두 요소 간 상호작용이 특정 상황을 진정시키는 방향으로 순환될 때를 말한다)'에 의해 모처럼 일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선진국 경제도 휘청거리게 되겠죠.

이들 세 기관은 모두 구조 개혁을 강조합니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만일 그 내용이 과거 IMF가 강조하던 금융시장의 자유화나 노동시장 유연화라면 강도 높은 구조개혁이 오히려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이들이 말하지 않은 진정한 구조적 문제가 더욱 악화될 테니까요. 그 문제란 전 세계에 걸쳐 나라 간 불평등, 그리고 나라 안의 불평등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미국 버클리 대학의 들롱 교수는 흥미로운 칼럼을 썼는데요. 위기 전후의 불평등 상황을 보면, 미래 경제사(經濟史)는 자본주의 사상 최대 위기를 1929년 대공황이 아니라 현재의 장기침체라고 평가할 거라는 얘깁니다. 위기 이후에도 불평등이 더욱 심해지는 한 장기적인 회복 역시 요원한 일이 되겠죠.


[관련 글] (☞ The Strange Case of American Inequality)


한국경제 - 성장률과 위험의 동반 상승?

 

▲ 표2. 한국 경제 전망 ⓒ 기획재정부, 2014년 경제전망, 12. 27

 


정부는 12월 27일 2014년 경제전망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10월의 발표와 거의 같습니다. 정부는 2012년 12월에 2013년 전망치를 1%포인트 낮춘 바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차기 정부의 부담을 없애려는 의도일지라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죠. 하지만 박근혜 정부 역시 정권을 잡으니까 미래가 장밋빛으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우선 과거의 행적을 보면 이번의 발표도 그리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 표3. 예산안 편성 시(매년 9월) 정부의 전망치와 실제치의 차이 ⓒ국회 예산정책처 '2014년 재정운용방향 및 주요 현안'(2013.8, p13)

 


국회 예산정책처가 정리한 표3를 보면 정부의 전망은 2011년 1.3%포인트, 2012년 2.5%포인트나 빗나갔습니다. 어디서 전망이 어긋났는지를 살펴보면, 매년 정부는 설비투자와 민간소비의 증가에 기대를 걸고 높은 성장률을 전망했다가 3년 연속 실적이 이에 못 미쳤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세계경제가 조금 나아질 테니까 이번엔 과거처럼 많이 틀리지는 않겠지만, 소비와 설비투자에 대한 과도한 낙관은 이번에도 반복된 걸로 보입니다.

우선 투자를 보면(표2 참조) 2012년 -1.9%, 2013년 3/4분기까지 -1.6%를 기록했던 수치가 2014년에는 갑자기 6.2%로 치솟는다고 전망했습니다. 2012년 12월의 2013년 전망치도 3.5%였는데 실적은 훨씬 못 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전망치도 그리 미덥지 않습니다. 정부 발표문을 보면, 1인당 GDP가 3만 달러로 오르려면 설비투자가 훨씬 더 많이 늘어야 합니다. 우리 경제의 생산성 역시 그렇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투자가 늘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거죠.

물론 투자는 기업의 '야성적 충동'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낙관적 기대가 차오르기 시작하면 갑자기 증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발표문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럴듯한 이유를 찾기 힘듭니다. "세계 경제의 완만한 회복세"(이 표현은 3년째 똑같습니다)로 인해 수출이 6.4%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유일한 근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수출의 50%가량을 차지하는 중국 등 동아시아가 특별히 수입을 늘릴 이유가 없는데(오히려 하방 위험이 더 큰데) 우리 수출이 3% 이상 증가할 거라는 기대는 과도한 게 아닐까요?

어쩌면 정부는 '투자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전방위 규제완화와 민영화 정책을 펴고 있으니까 재벌이 대규모 설비투자를 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이런 예측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소비는 더욱 문제입니다. 2011년부터 3년 연속 정부는 민간소비가 3% 이상 증가할 거라고 예측했습니다만, 실적치는 1%대였습니다. 투자와 달리 소비는 그다지 변화가 심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자산 가격이 상승해서 흥청망청하는 시기를 빼곤 그렇죠.

정부가 소비 증가의 근거로 삼는 건 물가안정과 고용조건의 개선, 그리고 가계흑자율의 증가입니다(p40). 하지만 1~2%의 가계흑자율 개선이 소비 확대로 이어지기는 대단히 어려워 보입니다. 가계 부채 1000조를 넘어 계속 증가하는 추세인 데다 사교육비·의료비·주택 관련 비용이 여전히 가계를 억누르고 있는 한, 소득이 조금 증가한다고 바로 내구재나 준내구재의 소비가 늘기는 어렵겠죠. 미래의 불안에 대비하기 위해 저축을 하거나 조금이라도 부채를 줄이려고 할 테니까요.

고용이 증가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정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50대 여성의 취업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50대의 재취업이기 때문에 임금이나 고용의 질이 그다지 높지 않을 겁니다.

기획재정부의 발표를 직접 보실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십시오.


[관련 기사] (☞ 정부, 내년 성장률 3.9% 전망…"경제 활성화ㆍ민생 안정'에 역점)


한국의 지뢰밭은 정부 스스로 만들고 있습니다.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 어떻게든 주가와 집값을 올리려는 정책은 더 많은 가계 부채를 만들어낼 겁니다. 재벌급 회사들의 경영상태도 그다지 좋지 못한 상태입니다. 좀처럼 위기 얘기를 하지 않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제2의 위기'를 예견할 정도니까요.

더구나 현 정부가 전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규제완화와 민영화는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더 심화시킬 겁니다. 한국 경제에서도 가장 큰 구조적 문제는 빈부격차입니다.

지난해 11월 통계청 조사에서 국민의 절반(46.7%)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층이라고 대답했습니다. 1988년 처음 조사를 실시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죠. 나아가서 "일생 동안 노력하면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없다"라고 응답한 국민이 57.9%였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행복은커녕 희망마저 잃은 거죠. 현재의 정책을 일관되게 그리고 지금처럼 무대포로(막무가내로) 추진한다면, 이 수치는 더욱더 높아질 겁니다.

 

 

 

*본 글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칼럼지인 <프레시안 뷰>에 기고되었습니다.

 <프레시안 뷰>는 조합원만 볼 수 있으나 일부 칼럼을 선별해 전체 공개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싶으신 분들은 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되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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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30정태인/새사연 원장

 

■ 지속적 침체(secular stagnation)와 양적 완화 축소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으로 일본까지 가세한 '양적 완화'란 돈을 풀었다는 의미입니다. 각국의 중앙은행은 경기가 나빠지면 금리를 낮추기 위해 돈을 풀죠. 주로 시중 은행이 보유하는 단기 국채를 사들여서 통화량을 늘리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양적 완화가 별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정책을 '비전통적(non traditional)'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의 대차대조표가 한눈에 보여 줍니다.


 

▲ 미국 연준의 대차대조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2007년까지 미국 연준은 단기 재무성증권(짙은 푸른색)을 매매해서 통화량을 조절해 왔습니다. 이것이 전통적 방법이라면 2009년부터 민간의 부실채권(MBS, 모기지에 기초한 증권, 갈색 부분)과 장기 국채를 직접 사들이는 방식을 추가했습니다. 단기 명목 이자율이 0에 가까워지면 더 이상 낮출 방법은 없죠. 그런데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니까 이제 장기 이자율까지 정책 목표로 삼아 민간 채권을 직접 사들여서 통화량을 증가시킨 겁니다. 그 결과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3배 이상 부풀어 올랐고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세 차례에 걸친 양적 완화로 본원통화(M1)는 4배 증가했습니다.

 

▲ 주요국 본원통화와 광의통화(M2)의 추이. ⓒ금융감독원

 


이론으로 말하자면, 돈이 풀려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실질 이자율은 마이너스(-)가 될 것이고 사람들은 반강제로 소비에 나설 수밖에 없겠죠. 2010년 '재정 위기'를 맞은 유럽연합(EU), 그리고 아베노믹스를 내세운 일본 역시 미국을 뒤따랐습니다. 일본은행은 아예 2%의 인플레이션을 목표라고 공포했죠. 1980년대 이래 각국 중앙은행은(당연히 한국은행도) '물가 안정'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추구했고 그것이 중앙은행 독립성의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정반대의 목표를 추구하다니 과연 '비전통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말하자면 전 세계가 '돈의 쓰나미'를 맞은 겁니다. 하지만 현실의 돈을 의미하는 광의의 통화(M2)는 그만큼 증가하지 않았습니다('주요국 본원통화와 광의통화(M2)의 추이' 참조). 쉽게 얘기하면, 풀린 돈이 투자와 소비로 연결되지 않고 금융 기관 사이에서 맴돌고 있는 거죠. 이런 현상은 통화승수(M2/M1)의 하락으로 표현됩니다. 달러의 통화승수는 2008년 8월 말 9.2에서 2013년 6월 말 3.3으로, 유로는 8.6에서 7.0으로, 그리고 엔은 11.8에서 6.7로 떨어졌습니다. 한마디로 돈이 돌지 않고 있는 겁니다. 케인스가 '유동성 함정'이라고 표현한 현상이죠. 하여, 경제 상황을 정확히 반영한다는 주가는 미국에서 이미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전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100% 이상 올랐고 부동산 시장마저 들썩거리지만 고용은 별로 회복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미국의 실업률과 고용률의 비동조화 현상. ⓒ새로운사회를위한연구원

 


금융 위기 직후 10%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지난 5월 7%대에 도달했고, 연준은 6.5% 이하로 떨어지면 양적 완화 정책을 서서히 거둬들이겠다고 발표했죠(사실 이런 예고 정책도 '비전통적'입니다). 하지만 <그림3>을 보면 고용률도 동시에 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아예 구직을 포기해서 통계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많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곧 임기를 끝낼 버냉키는 12월에 고집스럽게도 양적 완화 축소 정책을 실행했습니다. 물론 매달 750억 달러어치의 채권 매입을 650억 달러로 줄인 데 불과하니까 본격적인 양적 완화 축소라기보다는 양적 완화의 속도를 늦췄다고 표현하는 게 더 옳을 겁니다.

 


양적 완화를 축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앞으로도 미국이 더 빠른 속도로 양적 완화 축소를 단행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우선 현재는 인플레이션보다는 경기 침체와 실업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이래 진행된 금융 세계화로 인해 미국의 정책은 자본 이동을 통해 전 세계를 뒤흔듭니다.

자본의 이동을 결정하는 것은 환율, 이자율 격차, 그리고 글로벌 위험성인데 이 정책은 모든 면에서 위에서 거론한 나라들은 물론 다른 신흥 시장들까지 일거에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으니까요.

선진국들의 양적 완화로 돈은 신흥 경제로 몰려갔고, 이들 나라에 이른바 '버냉키 버블'이 형성되었는데 이젠 '버냉키 쇼크'를 계기로 돈이 빠져나가 거품이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거죠. 특히 동남아 국가들은 1997년 외환 위기의 진원지였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2월에 실제로 양적 완화 축소를 단행했을 때 세계 금융 시장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정책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전망 : 장기 침체

앞으로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까요? 우선 차이메리카(중국과 미국의 시대) 시대는 끝났습니다. 과거에 엄청난 무역 흑자를 낸 중국이 미국의 국채들 사들이고 미국은 그 돈으로 다시 소비를 늘리는 상황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죠. 중국은 1994년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외환 보유액의 60% 정도를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데 썼습니다. 이를 통해 중국은 위앤화 가치의 가파른 절상을 막을 수 있고 미국은 이자율(약 1%)을 떨어뜨릴 수 있었죠.

하지만 중국은 앞으로 수출 주도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국내 소비를 늘리려는 쪽으로 정책 기조를 바꿨습니다(2011년 3월의 12차 5개년 계획과 11월의 3중전회). 즉 글로벌 불균형과 국제 통화 체제라는 면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고 양적 완화와 같은 비전통적 정책이 더 이상의 침체를 막을 수는 있지만 실물 경제의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새로운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깁니다.

중국의 <신화통신>은 지난 10월 13일 "한 위선적인 국가에 의해 세계가 좌지우지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는 논평을 실었습니다. 가히 선전포고라고 할 만합니다. <신화통신>은 관영 언론이고, 이 논평은 중국 지도자들의 뜻이라고 보아야 하니까요. 이 글은 "탈(脫) 미국화 개혁의 핵심으로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기축통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새로운 세계 질서가 들어서야 한다. 여기서는 크건 작건, 부자건 가난하건 모든 나라가 그들의 핵심 이익을 존중받고 공정한 입장에서 보호받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타협의 길이 없는 건 아닙니다. 예컨대, 다극 질서에 맞게 복수의 국제 통화를 택하고 IMF에서도 미국이 거부권을 포기해서 거버넌스를 바꾸면 됩니다. 하지만 그건 미국이 누리던 특권을 일정 부분 포기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자국의 디폴트 상황에서도 벼랑 끝까지 맞서는 미국의 정치가 이런 어마어마한 결정을 택할 수 있을까요? 불행하게도 다시 위기는 찾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전환기 한 복판에, 지리적으로도 양국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겁니다.

11월 들어, 로렌스 서머스와 폴 크루그먼은 현재의 상황을 지속적인 침체(secular stagnation)라고 진단하며 마이너스 실질 금리 상황은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장기간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얘기죠. 미국 정부의 재정이 공화당에게 묶여 있는 동안 빈부 격차는 더욱 심해질 겁니다. 침체는 더욱더 장기화하겠죠. 양적 완화는 세계 경제를 공황 상태로 빠지는 걸 막았습니다. 하지만 실물 경제는 여전히 침체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 TPP에 한국은 참여할 것인가?

1972년 이래, 미국의 대 중국 전략은 경제적 포용(engagement)과 군사적 봉쇄(containment)입니다. 이를 합쳐서 '봉쇄 포용(congagement)' 전략이라고 부르죠.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의 외투를 입고 경제 성장에 주력했고 미국 역시 '대순항(Great Moderation)'의 호시절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는 모든 상황을 뒤바꿔 버렸습니다. 우선 경제면에서 양국의 밀월관계에 금이 갔고, 미국으로선 그저 포용만 할 수는 없게 됐죠. 미국이 중국의 제조업 제품을 수입하고 중국은 무역 흑자로 미 재무성 증권을 사서 달러를 되돌려 주는 '차이메리카'라는 아름다운 공생관계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진 거죠. 이제 포용보다는 간섭, 나아가서 환율 전쟁과 같은 갈등이 수면에 떠오르고 있습니다. 미국이 참여하기로 선언해서 갑자기 커져 버린 TPP는 중국 주변국의 경제 제도를 미국식으로 개조할 겁니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가 동시다발적으로 중국에 압력을 가하게 될 겁니다. TPP의 플랫폼이 한미 FTA+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군사 봉쇄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재정 적자가 이미 천문학적인 데다 공화당은 정부 폐쇄라는 극약 처방까지 꺼내서 정부 부채 비율 축소를 요구하는 판이죠. 당연히 미국은 한일 등 동맹국에게 제공되던 대중 봉쇄의 비용을 떠맡기 원합니다. 더 이상 핵우산에 무임승차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을 거란 얘기죠. 아시아판 미사일방어체제(MD)에 참여하라고 강요하거나 미군 기지의 신설, 또는 재배치 비용을 떠넘기는 게 대표적 예입니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내세웠던 하토야마 총리의 민주당 정권은 하텐마 기지 이전과 소비세 인상 문제로 허망하게 무너졌죠. 아베 총리는 이런 국제적 상황을 우파의 오랜 염원인, 일본 재무장화에 이용했습니다. 한국과 중국 간의 영토 분쟁, 역사 분쟁은 아주 유용한 수단이었죠.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요구를 수용했고 그 대가로 일본은 TPP 참여를 결정했습니다. 아베의 '세 번째 화살', 충격에 의한 내부 개혁이 바로 그겁니다.

도광양회 대신 중국이 내세웠던 평화 발전은 주변국에게 '패권굴기'로 비쳤습니다. 2010년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 중국과 영토 갈등을 일으킨 나라들은 중국이 얼마나 무섭게 성장했는지 체감했고, 결국 줄줄이 미국 품으로 달려갔죠. 제가 보기에는 중국 정부의 뼈아픈 실수입니다. 10여 년 이상 공들여온 아세안 나라들과의 관계도 망가졌으니까요. 그 결과 TPP는 미국의 원래 구상보다도 더 커졌습니다. 중국은 태연한 척, 언뜻 참여 의사까지 내비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미 FTA보다도 더 강해진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분야의 독소 조항은 물론이고 새로 추가된 '국유 기업 분야'까지 중국이 수용하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지난 3중전회에 제출된 개혁들이 무사히 완수된다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또 다시 맞은 갑오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다른 12개국 시민과 힘을 합쳐 TPP 협상의 공개를 요구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현재 협상 중인 한중 FTA를 RCEP(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의 플랫폼으로 완전히 다시 짜야 합니다. 여기에 외환 보유고의 공동 관리를 포함한 금융 협력, 환경 협력, 에너지 협력 등을 집어넣어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두 손 벌려 환영하도록 할 수 있다면 TPP 역시 예의 독소 조항을 제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요컨대 TPP와 RCEP가 아시아 주변국들을 향해 구애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셋째로, 어차피 우리가 이 지역의 방위 비용을 내야 한다면, 동아시아 공동 안보 체제를 만드는 편이 대중국 봉쇄망보다 훨씬 안전할 테죠.


■ 공약의 파기

금년 한국의 경제 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근혜본색, 줄푸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민들의 요구인 경제 민주화와 보편 복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2006년 구호이자 본령인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은 세운다)'는 경제 민주화-보편 복지와 절대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대선 과정에서도 이미 경제 민주화와 줄푸세는 다른 것이 아니라는 황당한 얘기를 하더니, 박 대통령은 2월 22일 경제 민주화에 대한 유권 해석을 내렸습니다. 경제 민주화란 "어디를 내리치고 옥죄는 게 아니라 각 경제 주체가 열심히 노력하고 땀 흘려서 일하면 꿈을 이룰 수 있고, 성공할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며 "누구의 희망을 꺾자는 것이 아니"랍니다.

여기서 내리치고 옥죄어서 희망이 꺾일 주체는 물론 재벌입니다. 박 대통령의 이어진 말은 그의 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피부에 와 닿게 확실하게 규제를 풀어(야 하며) 그냥 찔끔찔끔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격화되는 국제 경쟁 때문이랍니다. 그에게 경제 민주화란 재벌 규제가 아니라 경쟁적 규제 완화인 겁니다.

예를 들어, 재벌의 무분별한 하도급 단가 인하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몇 배의 벌금을 물리는 것은 "어디를 내리치고 옥죄는" 규제를 추가하는 것이니 해선 안 될 일이겠죠. 즉, 그는 대선 때의 가면을 벗고 5년 전 공약이었던 '줄푸세'로 명명백백하게 돌아갔습니다. '근혜본색'이죠.

이어서 박 대통령은 자신이 내세웠던 복지 공약도 줄줄이 폐기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복지 공약 수정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공약 수정은 없다'고 강조해왔다. 인수위원회 시절인 지난 1월 대선 공약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자 박 대통령은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통해 "'공약을 모두 지키면 나라 형편 어려워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쐐기를 박았죠. 정부 출범 뒤 3월 18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하나도 빠짐없이 공약을 지키라"고 주문했습니다. 당시에도 청와대는 여권의 복지 공약 수정론에 대해 "복지 공약을 지키지 말라 하니 굉장히 당황스럽다"고 불쾌함을 드러낼 정도였습니다.

 

▲ 박근혜 정부 1년, '근혜 본색'이 드러났다. ⓒ연합뉴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공약 뒤집기는 곧 시작됐죠. 대선 공약집에서 박 대통령은 '4대 중증 질환 총 진료비'를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모두 포함해 모두 무료로 해주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6월 26일, 보건복지부는 '4대 중증 질환 전액 국가부담' 공약의 이행방안에서 고가 항암제와 MRI 등에 한해서만 건강보험을 적용시키고 의학적 비급여 일부에 대해서만 진료비 20~50%를 지원하고 가격을 통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기초연금 공약은 노인 표를 끌어 모았죠. 그러나 논란 끝에 소득 70% 미만 일부 노인에게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 10~20만 원을 차등 지급하는 것으로 축소해서 사실상 공약은 파기되었습니다.

2014년부터 무상 교육을 매년 25%씩 확대해 2015년 50%, 2016년 75% 실시한다는 것이 공약이었지만, 올해 이에 대한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320만 채무 불이행자의 신용 회복을 지원하고 서민 과다 채무를 해소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 공약의 핵심은 18조 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설립한다는 것인데, 이 기금 규모가 1조 원 미만으로 축소되어 사실상 공약 이행이 시늉에 그쳤습니다.

또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안전우선주의에 입각한 원전 이용'과 '국민 여론을 수렴, 향후 20년간의 전원 믹스를 원점에서 재설정하며, 추가로 계획하고 있는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하에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2035년까지 핵발전소를 현재 23기에서 41기까지 늘리는 것을 뼈대로 한 2차 에너지기본계획(2013~2035년)안을 내는 과정에서 단 한 차례도 국민들의 의사를 물은 적이 없습니다.

 


■ 동시다발적 민영화

박근혜 대통령은 가을로 접어들면서 모든 분야의 민영화를 한꺼번에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기실 이 민영화는 문민 정부가 '세계화'를 외친 이래 기획돼 외환 위기를 거친 후 국민의 정부가 'IMF 조건'을 실천했으며 참여정부 역시 무슨 무슨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야금야금 진행해온 일이었죠. 삼성 등 재벌은 마지막 남은 '황금의 땅'인 공공 서비스 부문을 집어삼키고 싶어 합니다. 목표는 전기, 철도, 가스, 우편, 수도 등 네트워크 산업, 그리고 건강보험입니다.

재벌의 이 장기 기획은 한미 FTA에 이르러 돌이킬 수 없는 외길 수순이 되었습니다. 아뿔싸, 재벌들이 보기에 참으로 기꺼웠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의 촛불에 놀라 주춤거렸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거침이 없습니다. 과거의 정권들은 국민들의 눈치를 보아 가며 하나 또는 두 분야의 민영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그는 '투자 활성화'라는 이름하에 철도, 의료, 교육을 단숨에 시장에 넘기고 이제 가스마저 넘보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11월 18일의 국회 시정 연설에서 "제조업, 입지, 환경 분야 중심으로 추진돼 온 규제완화를 전 산업 분야로 확산해 투자 활성화의 폭을 넓혀가고자 의료, 교육, 금융, 관광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나갈 것이다"고 발언했습니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11월 27일 '금융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신제윤 위원장은 이 방안이 박근혜 정부의 금융 청사진이라고 했습니다. "(금융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의 가장 큰 주제는 새로운 시장과 역할을 찾아나서는 금융 회사에 '무한한 기회'를 열어주고 그렇지 않은 회사들은 '경쟁의 압력'을 통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라며 "(금융사 간) 경쟁을 저해하는 규제를 없애고 금융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겠다"는 것이죠. 그는 심지어 "세계적인 추세가 재규제에서 약간씩 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는데요. 제대로 거시 건전성 규제를 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규제 강화가 제대로 안 돼서 새로운 금융 위기를 맞을 거라고 경고한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앨런은 과연 금융을 제대로 몰라서 그러는 걸까요?

철도의 개방과 민영화도 문제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월 4일 프랑스 방문 때 현지 기업인들에게 "도시 철도 시장 개방과 관련해 정부조달협정 비준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해서 우리 국민은 비로소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 개정 의정서가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리고 15일 박대통령이 비준을 재가했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확인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재가한 개정 의정서는 도시철도(지하철) 운영, 지하철과 일반철도의 설계·건설·감독을 비롯해 시설의 유지·보수 등과 관련된 정부조달사업에 세계무역기구 가입 국가가 국내 기업과 똑같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12월 '수서발 KTX'를 운영할 주식회사를 설립을 실행했습니다. 물론, 정부는 새로운 수서발 KTX주식회사가 "철도공사 지분이 30%, 연기금 등 공적 자금 70%"로 해서 정부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죠. 그러나 국회 국정 감사에서 연기금은 그런 결정을 한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설령 대통령의 지시로 연기금 지분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한국철도공사와 분리된 주식회사는 연기금이 지분을 매각하면 민영화의 길로 들어설 것이 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발적 민영화'와 '개방(한미 FTA나 WTO 정부조달협정)'이 연결되면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예컨대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형 사고가 빈발해도 다시 공기업 체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철도 민영화, 추진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경제 민주화, 복지 공약 등에서의 후퇴에 이어, 철도 민영화 추진 중단 공약도 파기하고 있는 거죠.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세계는 아직도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바로 위기를 촉발했던 시장 만능주의 정책, 그 한국식 번역인 '줄푸세'를 빠른 속도로 추진하는 박근혜 정부. 정치와 함께 경제에서도 시대착오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11월에는 정부가 민간 사업자의 액화천연가스(LNG) 직도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연히 가스 수급 안정성이 악화되고 요금도 인상될 거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는 12월 2일 국회 앞에서 '실질 임금 쟁취 및 가스 민영화 저지를 위한 경고 파업' 기자 회견을 열고 '도시가스법 개정안'이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할 경우 필수 인원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낸 '천연가스 직도입 확대가 가스 및 전력 시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직도입 사업자는 천연가스 가격이 낮은 시기에는 값싼 연료를 도입하겠지만 가격이 오를 때에는 직수입 대신 가스공사를 통해 천연가스를 공급받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본색은 12월 13일의 '4차 투자 활성화 대책'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2차 대책'에서 수도권 규제가 풀렸다면, 이젠 네트워크 산업과 의료 민영화가 대상이 된 겁니다. 이번 대책의 특징은 공기업 자회사라는 우회로를 택했다는 점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의료법인이 영리회사를 자법인으로 둬 관광호텔·여행 등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병원은 수익을 의료업에 투자해야 하는 비영리법인으로 두더라도 자법인의 수익은 법인 구성원에게 배분할 수 있게 된 거죠. 만일 의사가 의료 기기, 의약품 영리자회사의 제품, 심지어 호텔과 여행까지 포함된 치료 패키지를 제시하면, 어떤 간 큰 환자가 거부할 수 있을까요? 결국 건강보험의 비급여 부문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건강보험은 무력화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건강보험까지 포함한 민영화를 걱정하고 있는 겁니다. 한 마디 덧붙이면 정부는 자회사의 이익을 모기업의 공공성 강화에 쓸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건 자회사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경제학에서 말하는 '터널링'에 해당합니다) 배임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공교육 기반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12월 13일 연간 교육비가 5000만 원대에 달하는 국제학교의 잉여금 배당, 외국학교·국내학교 법인의 합작설립, 방학 중 영어캠프 등을 허용했습니다. 투자 활성화를 앞세워 국내외 대자본에 값비싼 교육 상품을 만들어 팔 수 있는 물꼬를 터줬고, 정부가 사교육과 비싼 특권 교육을 부채질하고 있는 셈이죠. 교육 부문은 학부모의 '선택권'을 확대해 주는 데 비례해서 공공성이 무너집니다. 지금 한국 교육은 수능 점수 등 등수 올리기를 향한 무한경쟁체제인데 '다양한' 학교 형태란 그런 점수 따기에 용이하도록 만들어질 게 틀림없으니까요. 외국어고, 특목고, 자사고 등이 모두 그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민영화를 막는 정도가 아니라 공공성을 확대하는 개혁안도 내 놓아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정당이 원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민주당은 이참에 확실히 당론을 정해야 합니다. 만일 여전히 과거에 추진했던 정책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렇다고 선언하는 편이 낫겠죠.

두 번째의 걸림돌은 공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입니다. 세계 어느 정부나 본격적 민영화에 앞서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과 부채, 철밥통 고임금 등을 폭로했습니다. 관료적 경직성이나 '참호 파기'는 모든 거대 조직이 지니고 있는 것이지만, '내 돈으로 한다'는 것 때문에 분노가 폭발합니다.

따라서 반대의 목소리만 높일 것이 아니라 동시에 공공 기관 노조와 시민, 그리고 정당이 함께 공공성을 강화하는 개혁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공공 기관은 시민의 세금으로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니 시민이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2011년 이래 공공기관 노조, 시민단체, 그리고 일부 국회의원이 주도한 '공공기관을 서민의 벗으로' 운동은 이제 결실을 맺어야 합니다.

한 손으론 반대의 촛불을, 다른 한 손으론 개혁의 청사진을 치켜들지 못한다면 우리들의 소중한 재산은 물론, 아이들의 삶도 재벌들의 손에 넘어가고 말 겁니다.


■ 가계 부채와 실패한 부동산 정책

올해 가계 부채가 100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2002년 말 465조 원 수준이었던 가계 부채는 연내 1000조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나라 GDP와 맞먹을 정도의 규모니 이 자체로 문제입니다.

또한 가계 부채의 질도 악화되고 있습니다. 제2금융권, 사채 쪽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거죠.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2008년 말 149.7%에서 올 9월 말 169.2%로 5년간 무려 19.5%포인트 상승했습니다. 미국은 2008년 말 132.7%에서 지난해 말 114.9%로 하락했고, 영국(151.9%), 일본 (131.1%), 독일(95.2%) 등과 비교해도 국내 가계부채 상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빚이 아래쪽으로 전가되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지난 11월의 한은 보고서를 보면 임대업을 하는(즉 전세를 주는) 부자들의 빚이 줄어들었는데요. 한은은 전셋값을 올려서 자기 빚을 갚은 거라고 분석했습니다. 즉, 세입자가 빚을 내서 전세금 증가분을 충당했다면 부자의 빚이 아래쪽으로 전가된 거에 다름 아닙니다. 전세금 대출이 60조원에 이르렀는데 금년 가계 부채 증가의 주원인입니다.

우리 가계 빚은 집을 얻으려고 빌렸거나, 집을 담보로 해서 빌린 게 대부분입니다. 주택담보대출이 411조4000억 원이죠. 이럴 때 모두 집값이 떨어질 거라고 예상하면 전체가 다 문제가 될 수 있죠.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곧바로 금융위기로 갈 수 있습니다. 예컨대 담보로 잡힌 부동산 값이 20% 떨어지면 LTV(Loan to Value)를 맞추기 위해 상환해야 할 원리금이 늘어납니다. 결국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거죠.

금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한마디로 '잘해 줄 테니 집 사라'는 겁니다. 전셋값 상승에 대한 대책도 '돈 빌려 줄 테니까 집 사라'고 하는 거였죠.

하지만 보통 사람의 경우 집값이 떨어질 확률이 반반이라고 하면 전 재산이 걸린 주택 구매를 단행하긴 어렵겠죠.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될까요? 1년 내내 정부가 정책을 내 놓았지만 결국 실패한 건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모든 정책에는 '행복'이라는 낱말이 붙어 있는데요. 원래 2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던 '행복주택'은 애초에 '철도 유휴부지 등 국공유지에 짓는 임대주택'으로 규정됐었죠. 하지만 철도 유휴부지, 역 근처 공영주차장 및 유수지 등을 모두 긁어모아도 3만8000가구 공급에 그쳤고, 정부는 아예 행복주택 개념을 아예 바꿔버렸습니다. 행복주택이란 '직장과 주거지역이 가까운 곳에 젊은 층이 사는 저렴한 임대주택'이라고….

출시 이후, 단 2건만 판매된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I'도 사실상 폐지되고 은행이 자율적으로 취급하는 틈새상품으로만 명맥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의 1998년 교수 시절 논문을 정책으로 만들었지만, 무능만 증명한 셈이죠. 하지만 집값을 올려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기조는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정부 1년, 동아시아의 질서는 격동하고 있는데 2008년 금융 위기로 이미 파산이 선고된 '줄푸세', 즉 신자유주의 정책만 난무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내년에 또 하나의 위기를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외환보다는 정부가 스스로 키운 내우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본 글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칼럼지인 <프레시안 뷰>에 기고되었습니다.

 <프레시안 뷰>는 조합원만 볼 수 있으나 일부 칼럼을 선별해 전체 공개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싶으신 분들은 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되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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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3정태인/새사연 원장

 

안녕하세요? 경제기사를 꼭꼭 씹어서 전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안녕 못 합니다"가 세밑 인사가 됐네요. 연말이라, 제가 올해에 썼던 글들을 한군데 모아 봤습니다. 신문 등에 쓴 시론만 60여 편이 넘네요. 지나치게 낙관적인 정부의 경제 전망에 관한 비판들,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는 '줄푸세'라고 강조하면서도 은근히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촉구한 글들, 그리고 여름에 들어가면서 쓴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 후퇴에 관한 글들, 그리고 최근 TPP와 민영화로 완전히 드러난 '근혜 본색'에 관한 글들이 대종을 이룹니다.

이번 주에도 이런 기조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특히 민영화에 관한 정책 발표와 이에 대한 찬반 논쟁이 두드러졌습니다. 그 동안 3주에 걸쳐 소개해 드렸던 TPP 얘기를 짧게 요약한 제 글을 먼저 읽어 보시죠.

[관련글] (☞ [정동칼럼]갑오년의 TPP)

TPP 4대 선결요건

이번 주에 TPP 관련 보도는 웬디 커틀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가 한 토론회에서 한 얘기가 눈에 띕니다. 커틀러 대표보는 "최근 조 바이든 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미 FTA 이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소개하고 한미FTA 이행과 관련한 한국 측이 풀어야 할 과제로 △원산지 표시 문제 △금융서비스분야의 자료공유 △자동차분야의 비관세 장벽 △유기농 제품의 인증 문제 등 네 가지를 거론했다는군요.

다시 한번 한미 FTA가 떠오릅니다. 2006년 당시 정부는 '4대 선결요건'이란 말 자체를 극구 부정하다가 MBC <PD수첩>이 문건을 공개하자, 결국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인정했죠. 기억나시나요? 쇠고기 수입자유화, 새로운 약값 정책 도입 불가,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완화, 스크린 쿼터 폐지 등 미국 거대 기업의 직접적 이익이 달린 요구들이었죠. 당시에도 정부는 '통상현안'일 뿐이고 한미 FTA와 상관없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한미 FTA를 맺으면서(재협상까지 하면서) 이들 요구를 거의 100% 들어줬기 때문에 이번의 선결요건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이번에도 TPP의 입장료를 받으려고 하는 거죠.

커틀러 대표보는 TPP 협상방향과 관련해 "우리가 잠재적 TPP 참가국들과 협의하는 내용은 크게 '투트랙'(Two-track)"이라며 "첫 번째는 TPP가 요구하는 높은 수준을 이행할 준비체제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이고, 둘째는 의회와 이해당사자들이 우려하는 양자적 현안들을 해결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말했는데요. 전자는 지적재산권·서비스·투자·의약품 그리고 TPP에 추가된 국영기업 분야를 의미하는데, 한미 FTA를 통해 우리 제도를 이미 미국식으로 바꾼 바 있죠. 따라서 추가된 부분, 예컨대 의료기술에 대한 특허와 같은 새 독소조항만문제가 되겠죠. 그리고 후자는 4대 선결요건 더하기 미국 기업들의 새로운 요구들이 될 겁니다. 물론 다른 11개 나라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정부는 '이행 체제', 즉 룰에 관해서는 이미 대부분 갖춘 상태니까 각국과의 현안을 다루는 쌍무협상을 하다가 일정한 단계에 TPP 협상 테이블에 들어오라는 얘깁니다. 한-호주 FTA를 서둘러 타결한 것도 이런 작업의 일환이겠죠.

'자회사 설립'이라는 우회로를 통한 민영화

박근혜 대통령의 본색이 12월 13일 '4차 투자활성화 대책'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2차 대책'에서 수도권 규제가 풀렸다면 이젠 네트워크 산업과 의료 민영화가 대상이 된 겁니다. 이번 대책의 특징은 공기업 자회사라는 우회로를 택했다는 점입니다.

민영화 논의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후 IMF의 요구로 본격화했지만, 공공성 문제가 덜한 포철(포스코), 한국통신(KT), 한국담배인삼공사(KT&G)를 민영화했고 철도와 전기 민영화의 전 단계로 철도의 상하분리(운영과 시설부문 분리), 발전회사 분할까지만 진행됐습니다. 본격적인 민영화는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혀서 무산됐죠. 이명박 정부도 민영화를 본격화하고 싶었겠지만, 2008년의 촛불과 세계금융위기 상황 때문에 여의치 않았을 겁니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 때 경제민주화 공약을 집권한 이후, 투자활성화로 대체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규제 완화는 돈 안 들이고 투자를 촉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규제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을 빼고는 모두 없애고, 새로운 규제 하나를 만들 때도 잘못 만들었다가는 큰일 난다는 두려운 마음으로 돌다리를 두드리듯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재벌들의 투자활성화가 필요하니, 특히 공공성 때문에 규제가 강한 서비스 산업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 즉 규제완화 또는 민영화해야 한다는 없애야 한다는 말입니다.

해서 이 대책에는 의료법인이 영리회사를 자회사 법인으로 둬 관광호텔·여행 등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병원은 수익을 의료업에 투자해야 하는 비영리법인으로 두더라도, 자회사 법인의 수익은 법인 구성원에게 배분할 수 있게 된 거죠. 만일 의사가 의료기기 및 의약품 영리 자회사의 제품과 호텔 및 여행까지 포함된 치료 패키지를 제시하면, 어떤 간 큰 환자가 거부할 수 있을까요? 결국 건강보험의 비급여 부문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건강보험은 무력화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건강보험까지 포함한 민영화를 걱정하고 있는 겁니다. 한 마디 덧붙이면 정부는 자회사의 이익을 모기업의 공공성 강화에 쓸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건 자회사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경제학에서 말하는 '터널링(tunneling, 대기업이 기업그룹의 이익을 특정기업에 몰아주어 재산과 기업을 편법으로 상속하는 것)'에 해당합니다) 배임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공교육 기반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12월 13일 연간 교육비가 5000만 원대에 달하는 국제학교의 잉여금 배당, 외국학교·국내학교 법인의 합작설립, 방학 중 영어캠프 등을 허용했습니다. 투자활성화를 앞세워 국내외 대자본에 값비싼 교육상품을 만들어 팔 수 있는 물꼬를 터줬고, 정부가 사교육과 비싼 특권교육을 부채질하고 있는 셈이죠. 교육 부문은 학부모의 '선택권'을 확대해 주는 데 비례해서 공공성이 무너집니다. 지금 한국 교육은 수능 점수 등 등수 올리기를 향한 무한경쟁체제인데 '다양한' 학교 형태란, 그런 점수 따기에 용이도록 만들어질 게 틀림없으니까요. 외국어고, 특목고, 자사고 등이 모두 그랬습니다.

[관련기사] (☞ 빗장 풀린 민영화… 공공성이 무너진다)

철도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간 가운데, 철도 민영화를 둘러싼 공방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코레일의 부채 문제와 책임 소재를 놓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네요. 정부는 "코레일의 방만 경영과 부채 문제는 묵과할 수 없는 지경"이라며 수서 발 KTX 분리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국토부는 12월 17일 보도자료에서 "철도 경쟁체제 도입은 부채를 스스로 갚기 위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연평균 5700억 원의 영업적자가 누적되면서 코레일의 부채가 급증하고 있으며, 지난 6월 기준 부채 비율이 435%를 넘어서게 됐다"며 "철도운영의 구조를 바꿔내지 않으면 그 부담은 모두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영화를 시도할 때 세계의 다른 정부들도 공기업의 부채나 노동자 월급을 문제 삼았죠.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켜서 민영화를 합리화하려는 겁니다.

물론 철도노조는 "그 빚의 대부분은 나라 대신 떠안은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국민들도 철도 민영화가 요금 인상, 시골 노선의 폐지, 대형 사고의 빈발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노조 스스로 공공성 강화와 내부혁신안을 내놓아야 국민들도 마음 놓고 노조를 지지할 수 있을 겁니다. 전국교직원노조의 '참교육', 전국공무원노조의 '공직사회 개혁', 전국과학기술노조의 '연구 자율성 보장', 전국보건의료노조의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과 '보호자 없는 병원 만들기' 운동 등을 모범사례로 삼아서 국민이 공기업 거버넌스(governance)에 참여하는 공공성 강화 전략을 내놔야 할 겁니다.

또 하나의 공약 위반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안전우선주의에 입각한 원전 이용'과 '국민 여론을 수렴, 향후 20년간의 국가 에너지믹스를 원점에서 재설정하며, 추가로 계획하고 있는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하에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2035년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현재 23기에서 41기까지 늘리는 것을 뼈대로 한 '2차 에너지기본계획(2013~2035년)안'을 내는 과정에서 단 한 차례도 국민들에게 의사를 물은 적이 없죠. 또 하나의 공약 위반입니다.

[관련기사] (☞ 박대통령 여론 듣는다더니…"원전증설 공론화 안거쳐")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조만간 원전 신규 건설 추진 여부 등을 묻는 국민투표 실시 촉구 결의안을 발의할 예정입니다. 한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은 "원전의 위험성은 숨긴 채 당장의 편리함만을 좇는 과도한 홍보사업 등 원전 예산에 대해 새롭게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심사가 보류됐다"고 지난 12월 18일 밝혔습니다. 가끔 국회가 기특한 일도 하는데, 어떤 결론이 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관련기사] (☞ 국회, 원전예산 전액 심사보류) 

독자들도 아시다시피, 저는 사회적 경제를 연구하는 학자이기도 합니다. 온통 잿빛인 국내외 경제에서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인 사회적 경제 얘기를 앞으로 한 꼭지씩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주는 <한겨레>가 보도한 모데나의 농업 관련 협동조합들 얘깁니다.

[관련글] (☞ 협력과 연대의 힘, 농민이 시장을 주도한다)

농민들의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농산물 가격 안정화에도 힘을 기울여 동시에 소비자들의 이익도 보호하는군요. 물론 우리도 그렇게 못 하라는 법은 없겠죠. 이제 연말입니다. 다음 주에는 2013년, 한 해의 경제흐름을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보내기 직전 마지막 교정을 보고 있는데, 미국에서 양적완화 축소 소식이 들려오네요. 지난 9월에 미 연방준비위원회(FRB)가 양적완화 축소를 연기했을 때 '태산명동 서무필(泰山鳴動 鼠無匹)'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제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 되었네요. 매달 850억 달러 치의 채권을 사들이다가 이젠 750억 달러 치만 사들이기로 한 겁니다. 즉, 달러 풀기의 속도를 늦췄다는 정도의 의미입니다. 버냉키의 마지막 작품인데, 역시 경제학자의 고집은 누구도 꺾기 힘든가 봅니다.

2013년 연말, 추운 날씨에 바쁜 일정이 겹칠 텐데요. 건강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칼럼지인 <프레시안 뷰>에 기고되었습니다.

 <프레시안 뷰>는 조합원만 볼 수 있으나 일부 칼럼을 선별해 전체 공개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싶으신 분들은 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되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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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9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 1일 방송된 SBS 창사특집 대기획 <최후의 권력- 제4부 금권천하>는 참으로 훌륭했다. 제작진 모두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마이클 무어의 <식코>보다 뛰어나다. 두 아이의 이름이 지금도 내 귓가에 맴돈다. 아샨 존슨과 디어몬트 죠지. 한 아이의 눈물과 한 아이의 죽음은 자본의 논리를 단번에 무너뜨렸다. 무엇을 위한 효율성이고 무엇을 위한 (선택의) 자유란 말인가.

 

디어몬트는 단지 충치를 앓았을 뿐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 치주염을 방치하다가 바이러스가 뇌까지 침투해서 숨졌다. 아이는 메디케이드(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국가의료시스템)의 대상이었지만 병원은 치료를 거부했다. 아샨은 단지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세 번째로 잘 사는 도시인 시카고의 이매뉴얼 시장은 공립학교의 예산을 20% 가량 삭감했다. 아샨의 학교는 폐쇄됐고 아이는 길거리에서 “교육은 우리의 권리”라고 목청을 높인다.

 

방송에서 한 전문가는 “의료수가를 시장 원리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야바위를 의심하지만 “시장에서 결정되었다”고 하면 뭔가 객관적인 법칙이 작용한 것으로 믿게 됐다. 아픔을 참을 때 쓰라고 안겨 주는 테디베어 인형이 7~21만원, 약을 먹을 때 4~5일 동안 쓴 작은 컵 값이 530만원이라고 찍힌 의료비 청구서를 <최후의 권력>은 보여준다. 어떤 경제학자도 이런 가격을 공정하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 지난 1일 방송된 SBS 특별기획 <최후의 권력> ‘금권천하’ 편 ⓒSBS 

▲ 지난 1일 방송된 SBS 특별기획 <최후의 권력> ‘금권천하’ 편 ⓒSBS

 

 

의료 시장만큼 온갖 시장실패가 횡행하는 곳은 없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소비자의 선택 따위는 작동할 수 없고, 둘 사이에 끼어 있는 보험시장 역시 정보의 불완전성으로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대형병원과 대형보험회사는 가공할 독점력마저 지니고 있으며 방송이 보여주듯 정치도 좌지우지한다. 수익성(돈)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이들 병원과 보험회사는 효율성이 극단적으로 높은 기업이다. 또 만일 그런 이유로 적자에 허덕이는 공공병원을 폐쇄한다면 의료비와 보험료는 더 올라갈 것이다.

 

재정문제를 들어 교육 예산을 줄이려는 시카고의 경우도 또한 마찬가지다. 수익성이 높은 곳부터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면 무상 공립학교는 당연히 맨 뒤로 밀릴 것이다. 시 전체의 예산이 줄어들지 않았는데도 공립학교 예산이 삭감된 이유다. 방송에서 가문의 세 번째 미국 대통령을 꿈꾸는 젭 부시(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는 말한다. “학교도 쇼핑할 수 있어야 한다”. <최후의 권력>은 이런 일을 꾸미고 실행하는 곳이 알렉(American Legislative Exchange Council, 미국 입법 교류회)와 같은 단체, 그리고 티파티와 같은 우파 운동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국민 건강보험이 있는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훨씬 낫지만 그리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예컨대 지난 13일에 발표된 제4차 투자활성화정책의 핵심은 의료와 교육의 민영화이다. 정부는 그저 의료 자회사를 허용할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의사가 특정 의료기기와 의약품의 사용, 특급병실과 관광을 마치 점심 메뉴처럼 세트로 제시할 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환자가 얼마나 있을까.

 

교육재정을 깎자고 주장하는 간 큰 정치가는 아직 없지만 교육을 하나의 수치로 환산해서 순위를 매기는 일은 한국에서 훨씬 더 발전했다. 규제완화에 의해 학교가 다양해지고 학부모의 쇼핑 권한이 높아질수록 등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아이들은 죽음으로 내몰린다. 관찰하기 쉽고 순위매기기 좋은 부분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걸면 교육이나 의료의 공공성이 붕괴한다는 사실은 이미 경제학에서 증명된 바다.

 

한국의 재벌-고위관료-새누리당, 나아가 조·중·동의 동맹관계는 이미 알렉이나 티파티의 경지를 넘어섰다. ‘최후의 권력’이 한국을 지배한 지 오래다. 방송은 아이들의 경쾌한 노래로 끝난다. “우리의 호소를 들어주세요. 우리가 내일이에요. 우리가 변화를 가져올 거에요” 초등학생들이 이런 절규를 할 때까지 이렇게 내버려 둬도 괜찮은 걸까. 정말로….

 

 

 

*본 글은 PD저널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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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7정태인/새사연 원장

 

안녕하세요? 경제뉴스 읽어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뻔한 사실을 아니라고 상대가 잡아떼는데 딱히 증명할 길도 없을 때, 더구나 그가 힘이든 뭔가를 가지고 있어서 주위도 은근히 그의 편을 들 때, 또 싸워 이길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일 때, 우리는 속이 터집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를 들고 나왔을 때가 그랬죠. 그의 본령은 '줄푸세'였는데 말이죠.

FTA는 '줄푸세'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한 이유중 하나에 '외부 충격에 의한 내부 쇼크', 즉 서비스산업의 규제완화가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이 강력하게 요구하는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권 부문의 개방, 즉 미국 제도의 수용이 그에겐 우리 내부구조의 돌이킬 수 없는 '개혁'으로 여겨졌죠. 그러니 그 원조격인 박 대통령이 이 논리를 마다할 리 없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일본의 아베 정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받아들인 미국식 제도의 파탄이 2008년 이래의 경제위기인데도 전혀 달라진 바가 없죠.

TPP 협상 난항

연내에 협상을 마무리하겠다고 호언했던 TPP는 일단 내년으로 넘어갔습니다.

12월 10일 싱가포르에서 폐막한 TPP 각료 회의는 미국과 일본이 주요 쟁점 사안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국 협상이 내년으로 연기됐습니다. 이번 TPP는 FTA 등 그동안의 FTA보다도 더 비밀스럽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공무원들도 자기 분야 외에는 잘 모를 정도여서 기자들의 질문에 그저 "모른다"고 대답하는 게 일반적일 정도입니다. 한미 FTA 때는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CRS 리포트)를 보면 큰 줄기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그런 정보도 제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이 얘긴 미국이 협상을 타결한다 하더라도 조목조목 미 의회의 심사를 받아야 하고 결국 재협상이 불가피할 거란 얘기이기도 합니다(지금 미국 정부는 신속협상권이 없이 TPP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일본의 농산물 개방이 암초인 것처럼 보여도 마지막엔 미국 의회의 요구가 빗발쳐서 결국 재협상, 또다시 재협상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이런 TPP를 왜 하게 된 걸까요? 미국과 중국의 패권이 맞붙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은 처음엔 아세안과 낮은 수준의 FTA를 맺었고 이어서 한·중·일이 참여하는 ASEAN+3, 이어서 호주 등이 참여를 요구해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로 점점 범위를 넓혀 가고 있었거든요. 중국이 동아시아 FTA를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한미 FTA를 체결하고 나서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등이 맺은 TPP에 2008년부터 눈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국이 결정적인 실수를 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G2로 급속하게 부상한 뒤 중국은 일본, 베트남 등과의 영토분쟁에서 힘을 과시했습니다. 석유와 다른 자원의 해상 수송로를 확보하는 게 주된 이유였지만, 내부 갈등(중국 내의 빈부격차, 이민족의 분리 움직임 등)을 대외 갈등으로 봉쇄하는 것도 노렸겠죠. 그런데 그 후과는 너무나 컸습니다. 아세안 국가들이 TPP로 몰려가게 된 겁니다.

결정타는 2012년 일본이 날렸는데요. 농산물 문제나 비관세장벽 문제 때문에 FTA 등 개방에 소극적이었던 일본이 TPP 참여를 선언한 겁니다. 일본은 왜 이렇게 급변한 걸까요?

1972년 이래 미국의 대중국전략은 경제적 관여(engagement)와 군사적 봉쇄(containment)입니다. 이를 합쳐서 congagement라고도 부르죠.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 전략에 문제가 생깁니다. 첫째는 너무 빠른 중국의 성장 때문에, 그리고 이른바 '차이나메리카 구도'(미국의 중국의 제조업 제품을 수입하고 중국은 무역흑자로 미국의 증권을 사서 달러를 다시 돌려주는 구도)의 붕괴 때문에 더 이상 아름다운 공생이 불가능해진 겁니다. 따라서 경제 분야에서도 환율 등에서 중국에 압력을 높이고 있었죠.

다른 쪽인 군사적 봉쇄에서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중국을 군사적으로 봉쇄하는 데 드는 돈을 대기 어려워진 겁니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이미 천문학적이거든요. 해서 일본이나 한국이 대중 군사 봉쇄의 비용을 대도록 요구하고 있죠. 무임승차는 이제 그만하라는 겁니다. 아시아 판 미사일방어망(Missile Defense) 구축에 참여를 요구하거나 미군 기지들의 이전 비용 분담 요구가 다 그런 전략에서 비롯된 거죠. '핵 우산', '달러 우산'은 이제 옛날 얘기가 된 겁니다.

후텐마 기지 이전과 소비세 인상 문제로 일본의 민주당 정권이 무너지고 새로 집권한 아베 현 총리는 민족주의를 등에 업고 정상국가화를 추진합니다. 일본의 재무장이 미국의 비용 분담 요구와 맞아떨어진 거죠. 아시아 국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주장을 수용한 미국은 그 대가로 TPP 참여를 요구했을 겁니다. 아베가 내세운 경제의 '세 화살'(양적완화, 재정지출 확대, 개방과 개혁)과도 맞아 떨어집니다. 즉, 아베 역시 외부충격에 의한 내부개혁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이렇게 되니까 중국의 고립 양상이 나타나게 된 거죠. 중국은 현재 진행 중인 한중 FTA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하겠죠. TPP 참여 의사도 슬쩍 내비쳤지만 한미 FTA를 플랫폼으로 삼은 현재의 미국 주도 TPP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챕터에 들어 있는 한미 FTA의 독소조항이 그대로 있는 건 물론이고(나아가서 지적재산권과 의료 분야에선 훨씬 독한 초안을 미국이 제출했습니다) 동남아 국가들을 겨냥한 거지만 중국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는 '국유기업에 관한 부분(chapter)'도 추가됐으니까요.

한-호주 FTA의 타결

이런 격변 한 가운데서 한국 정부는 호주와의 FTA 협상 타결을 선언했습니다.

현재 약간의 적자를 내고 있는 대 호주 무역수지는 더 악화될 겁니다. 우리와 GDP가 비슷한 호주는 미국이 꺼릴 정도의 농산물 대국인 반면 인구는 2300만 명 정도로 남한 인구의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강점을 지닌 제조업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기는 어렵다는 얘깁니다. 미-호주 FTA에서 필사적으로 막아낸 투자자국가중재제도(ISD)를 호주가 수용했다는 얘기가 화제인데요. 보수 정권이 들어선 것도 이유겠지만 상대가 한국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겁니다. 어쨌든 호주로서는 TPP에서도 ISD를 거부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한국으로선 TPP 12개국 중 일본을 제외하고 웬만큼 경제규모가 되는 나라와는 이미 FTA를 맺었거나, 협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셈입니다. 해서 TPP 들어가기 위해 양자 간 협상을 미리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거죠.

TPP와 관련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협상의 공개를 요구해야 합니다. 이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12개국 시민사회 모두의 문제입니다. 두 번째로는 아무 생각 없이 땅따먹기 식으로(이른바 '이익의 균형'이라는 말로 표현돼 왔죠) 한중 FTA를 볼 게 아니라, 전략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겁니다. 중국은 아시아의 지역주의 플랫폼을 서둘러 만들어야 합니다. 한중 FTA의 내용이 새로운 구상의 플랫폼이 되면 금상첨화겠죠. 경쟁보다는 아시아 공동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협력의 프로젝트가 담긴 동아시아판 경제협력협정을 만들어낼 기회입니다. 여기에는 외환보유고의 공동 관리를 포함한 금융협력, 사막화나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환경협력, 에너지의 공동 확보 등을 위한 협력 등이 들어가야겠죠.

'진격의 박근혜', 철도 민영화

FTA와 짝을 이루는 '줄푸세'의 기조가 바로 민영화입니다. 의료민영화에 이어 철도민영화도 중요한 한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작은 지면에 그동안의 경과와 비판을 요령 있게 담은 오건호 박사(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의 글을 보시죠.

[관련 글] (☞ [정동칼럼]철도파업 불편 감수하겠다)

1980년대 초 이런 정책을 추진한 레이건과 대처는 이미 죽었고, 전 세계의 철도민영화는 모두 실패했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코레일 자회사 구상도 모순투성이입니다. 수서에서 평택까지를 빼곤, 기존 코레일과 자회사는 동일 구간을 달리고 요금도 같을 겁니다. 그런데 무슨 경쟁이 될까요?

민주당 박수현 의원이 요구한 자료에 따르면, 자회사 설립으로 KTX 매출은 5120억 원 감소하고 KTX 평균 영업이익률 30%를 적용할 경우 한 해 순손실은 1536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즉 코레일의 이익이 그저 자회사로 넘어간다는 걸 의미합니다. 일반 철도의 손실을 보조하지 않는 자회사가 코레일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릴 것이고, 코레일의 '분할'은 더 속도를 내겠죠. 그만큼 적자 폭이 커진 일반 철도는 외국 회사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고(WTO 정부조달협정의 내용 중 하나입니다), 결국 지방 철도 노선 대부분은 폐쇄되겠죠.

[관련 기사] (☞ 코레일, '수서발KTX' 개통되면 5000억 날린다) 

철도노조는 총파업으로 맞섰고 정부는 6800여 명의 직위해제와 대국민 담화로 노조를 몰아치고 있습니다. 노조는 이사회 12명을 배임혐의로 고발했고요. 언론들은 사태의 '장기화'를 걱정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그 반대를 더 걱정합니다. 전격적으로 경찰특공대를 투입해서 파업을, 그야말로 분쇄하는 거죠. 30년 전에 대처가 사용한 방법입니다. 그 이후론 가스나 전기 등의 민영화도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철도를 지키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2008년 촛불이 이명박 정부 내내 민영화를 막았던 것처럼….

개방과 민영화의 결과는 양극화

한국은행이 12월 10일 발표한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현황'을 보면 10월 말 현재 전체 잔액이 676조 1000억 원으로 전달보다 4조 원 늘었습니다. 월간 증가액이 9월(1조 2000억 원)보다 3배 이상 증가한 겁니다. 여기에 주택금융공사와 국민주택기금의 대출도 4000억 원 가량 늘어, 이를 포함한 전체 금융기관 가계대출 잔액은 748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에 이렇게 가계대출이 급증한 이유를 8.28 부동산 대책으로 주택거래가 증가한 데서 찾았습니다.

풀려난 돈이 금융기관을 돌며 주가와 채권 가격을 부추기다가 드디어 주택시장으로도 들어가기 시작한 겁니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부동산이 중요한 자산인 거죠. 최근의 가계 대출 급증을 연령 별로 본다면 십중팔구 50대가 가장 많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연금연구원 이은영 주임연구원이 12월 10일 발표한 '패널자료를 이용한 노후소득원 추정' 보고서는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55년생에서 63년생까지)가 속한 50대의 자산은 4억 2479만 원으로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유동화가 가능한 금융자산 비율은 25.5%에 불과합니다. 60대와 함께 실물자산을 뺀 금융자산 비중이 가장 낮습니다. 즉, 한 마디로 집 한 채 가진 채 노후에 쓸 돈이 없다는 거죠.

[관련 기사] (☞ 은퇴 앞둔 베이비붐 세대, 부채 많고 노후준비 안돼)

가장 인구 비중이 높은 베이비붐 세대가 집 한 채 달랑 가진 채 생활비가 없는 상태는 한국의 장기성장에 암울한 전망을 드리웁니다. 이들이 7~8년 지나 국민연금을 받는 노령 인구가 되면 중요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니까요. 이런 문제를 다루는 '베이비 붐의 경제학'도 곧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본 글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칼럼지인 <프레시안 뷰>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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