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20정태인/새사연 원장

원전 공화국으로 역주행


안녕하세요? 경제뉴스의 흐름을 짚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굵직한 정책을 밝힐 때마다 대선 공약을 뒤집는 일은 이제 “비정상의 정상화”가 됐습니다.

 

에너지정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여파로 박 대통령이 대선 때 밝힌 에너지정책 기조는 “국민의견을 수렴하고,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 아래 재검토한다는 것”, 즉 축소한다는 것이었죠.

 

정부는 1월 14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2035년까지의 에너지정책 방향을 담은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했습니다. 이번 계획에 따르면, 최종 에너지원별 구성에서 전력 비중은 2011년 19.0%에서 2035년 27.2%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그리고 2035년 전력설비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26.4%에서 29%로 높이기로 했습니다. 전력 수요와 원전 비중이 동시에 늘어남에 따라 현재 보유하고 있는 원전 23기 외에, 건설 중이거나 건설계획이 나와 있는 11기를 더 짓고도 추가로 최소한 5기(150만㎾급 기준)의 신규 원전 건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직전 TV 연설에서 “최악의 정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는데, 그 “최악의 정치”를 매일 되풀이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지속 가능한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를 거쳐야 할까요? 박 대통령의 말대로, 국민의 의사를 물어서 최소한의 합의를 이뤄내야 합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앞으로 전력을 더 많이 쓰고 핵발전으로 이를 충당하겠다는 발표를 한 겁니다.

 

에너지 관련 세계적 학술지인 <에너지 정책(Energy Policy)>은 지난해 52호에서 ‘영국의 저탄소 경제 이행 경로’를 특집으로 다뤘습니다. 티머시 폭슨(Timothy Foxon)은 시장 주도 경로(시장규칙), 정부 주도 경로(중앙 조정), 시민사회 주도 경로(천 송이 꽃)를 제시했는데요(Foxon, 2013, Transition pathways for UK low carbon electricity future, Energy Policy, V52.), 다음 표는 이 논문을 요약한 겁니다.

 

 

<표1> 저탄소 경제로의 이행 경로

시장 규칙(시장)

중앙 조정(정부)

천 송이 꽃(시민사회)

가버넌스 원리

시장 논리 우위. 시장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상호 작용

정부 논리, 정부가 에너지 시스템을 직접 조정

시민사회 논리. 시민이 지방과 국가 에너지 시스템에 관한 의사 결정

핵심 기술

탄소 포획 및 저장 기술(CCS)을 갖춘 석탄과 가스, 원자력, 해양풍력(offshore wind)

석탄과 가스 CCS, 원자력, 해양 풍력, 내륙 풍력, 조력

육지 풍력, 해양 풍력, 재생 가능 CHP, 태양 PV, 조력

핵심 주체

기존 에너지 대기업

에너지 대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정부

ESCO(신생 기업, 기존 기업의 변화), 지역공동체, NGO

목표

2010년에서 2050년까지 전기 수요 50% 증대. 560TWh 공급

2050년까지 전기 수요 20% 증대, 448TWh 공급

2050년까지 전기수요 7% 감축, 328TWh 공급

위험 요인

CCS의 실패,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반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북부의 반대, 소비자 행동 변화 필요의 무시

CCS 실패, 저탄소 투자 증대에 따른 에너지 서비스 비용 상승에 대한 반대, 소비자 행동 변화 경시

분산 발전이 비싸고 건설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명 나는 경우, 지역 해법의 취약성(중앙정부와 대기업에 대한 여전한 의존), 최종 에너지 수요 감축 노력이 리바운드 효과로 상쇄되는 경우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기업과 정부는 전력 사용의 증가를 전제하는 반면 시민사회 논리는 전기 소비량의 감축, 시민들의 행동 변화를 전제로 합니다.

 

영국에서도 에너지 대기업과 정부의 시각은 대단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시장에 맡기자”라고 주장한다 해도, 결국 에너지 투자에 대한 보조금을 요구할 것이고 정부가 효과적으로 정책을 구사하기 위해서도 에너지 대기업이 결국 행동 주체로 나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대기업은 탄소 포획 및 저장(CCS : Carbon Capture & Storage)과 같은 기술의 발전, 핵 발전 등 중앙 집중형 대규모 발전과 고압 송전을 선호합니다. 반면, 시민사회는 분산형 소규모 발전과 공동체 내부의 소비를 주장하며 시민의 행동 변화와 근본적인 경제사회체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죠.

 

하지만 CCS의 상업적 이용이 실패한다면(불가능한 기술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핵과 석탄 중심의 중앙 집중형 발전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우리의 이행 경로는, 아니 전 세계의 이행 경로는 폭슨의 ‘천 송이 꽃’을 중심으로 삼아야 할 겁니다.

 

바로 이웃 나라 일본에서 핵 발전 문제가 터지고 태평양 건너에 있는 나라들도 생선을 먹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기는커녕 오히려 그 방향으로 나라를 끌고 가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요? 지난주에도 똑같은 한탄을 했습니다만, 박 대통령은 모든 분야에서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삼성과 현대 공화국으로 가는 대한민국

 

새해 들어 주가가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는군요. 작년 4분기 삼성전자의 ‘어닝 쇼크(예상 실적에 못 미치는 데 따른 충격)’가 출발점이었습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포스코·SK하이닉스 등 시가 총액 상위 5개 기업이 전체 시가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83%(지난해 말 기준)에 이르고 삼성전자 하나의 시가 총액이 전체의 15.47%에 이르렀으니까, 삼성전자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전체 주가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겠지요.

 

[관련 기사] (☞ 갈수록 커지는 ‘빅2’…한국경제 혁신 동력은 약해진다)

 

여기에 덧붙여, 1월 13일 기업경영 성과 평가 사이트 ‘시이오(CEO)스코어’가 발표한 수치들이 ‘삼성과 현대차 그룹이 한국경제에서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해도 괜찮을까’에 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발표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삼성과 현대차 그룹이 거둔 영업이익 합계는 43조1000억 원으로 국내 전체 법인(국세청 기준) 영업이익의 22.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8년의 11.2%에 비해서 두 배나 증가한 거죠.

 

과연 이 현상은 바람직한 걸까요? <한겨레> 곽정수 기자는 삼성과 현대차(또는 삼성)의 경제력 집중이 가져올 위험을 1) 경제성장 저해 리스크 2) 경제안정성 저해 리스크 3) 민주주의와 법질서 저해 리스크로 요약합니다. 이 주장에 덧붙여 약간의 해설을 덧붙이겠습니다.

 

[관련 기사] (☞ 삼성 ‘쏠림’과 3대 리스크)


1)의 위험은 삼성(과 현대차)의 실적과 임금이 압도적으로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거시 경제 전체에는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사실 삼성의 높은 수익률은 우리나라의 자원이 총집중된 결과로 볼 수 있죠. 그런데 어느덧 낙수효과, 즉 삼성이 고용을 늘리고 하청기업들과 이익을 공유해서 경제 전체에 이익이 골고루 돌아가는 현상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결국 삼성은 성장하고 다른 부문은 점점 더 취약해지는 현상이 벌어진 거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점이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의 위험은 삼성의 위기가 금융시장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을 말합니다. 작년 말에 나타났듯이 주가가 급락해서 패닉 현상이 나타날 수 있죠. 실물 면을 보더라도 반도체 가격 하락이 1997년 외환위기의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재벌 지배구조는 총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이죠.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 나라 전체를 뒤흔들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3)의 위험은 삼성이 정부와 국회는 물론 사법제도까지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미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로 잘 알려진 얘깁니다. 제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을 때도 삼성의 힘을 느꼈으니까요. 그런데 박근혜 정부처럼 투자활성화를 이유로 규제는 다 풀어주고 이에 저항하는 세력에는 법을 내세우는 걸 정책기조로 삼는다면, 이 나라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될 겁니다.

 

도대체 경제와 민주주의 모두에 해로운 일극(一極) 집중을 왜 방치해야 하는 걸까요? 진화경제학이나 복잡계경제학, 그리고 산업경제학 쪽의 최근 논문들은 경제의 다양한 구성이 형평성은 물론 효율성에도 훨씬 낫다고 주장합니다. 시민들 역시 삼성이나 현대차를 김연아 선수처럼 바라보는 시각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핀란드처럼 노키아가 망한 게 오히려 경제에 도움이 되는 그런 다양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부채의 늪에 빠진 청년과 서울 시민

 

기업은 나날이 성장하는데, 일반 시민의 삶은 점점 고달파지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재벌-경제관료-조중동’의 삼각동맹이 힘을 발휘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1월 10일 토닥토닥협동조합과 금융정의연대 등이 서울에 거주하는 35세 미만 미혼자 807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부채가 발생한 사유를 보면 교육이 39%, 가족문제가 17%, 생활비 부족과 창업이 각각 11%와 8%의 비율로 나타났습니다.

 

즉 대학에서 학자금 대출을 하거나 집안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청년들이 빚을 떠안게 되었는데, 지금처럼 청년 실업률이 높다면(2013년 8.2%) 연체를 할 수밖에 없고 이 빚을 갚기 위해 훨씬 조건이 나쁜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게 되는 겁니다. 그야말로 빚의 악순환입니다.

 

금융정의연대 최계연 사무국장이 청년부채 악성화를 방지하는 방안으로 '소득 수준에 맞는 원리금 면책과 6개월 단기로 완료되는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제시했습니다. 소득에 따라 채무를 빠른 시일 안에 조정해서 부채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겁니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학자금 대출을 졸업 후의 소득에 따라 갚는 방안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즉 많이 버는 사람은 자기가 빌린 돈보다 더 많이 갚고 그러지 못한 사람은 적게 갚게 함으로써 청년들 간 연대에 의해 과중한 채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죠. 이 방안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관련 기사] (☞ 청년부채 실상, 예상대로 참담했다)


아래 기사는 일반 시민도 별로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는 서울연구원 보고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 “빚 내서 빚 갚는다…” 부채상환의 악순환)

 

매주 희망적인 기사 하나 정도는 반드시 소개하겠다는 약속, 지킵니다. 주류업계가 재정을 끊어 '영구 폐원 위기'에 처했던 국내 유일한 알코올 중독 치료·재활 공익 병원인 카프(KARF) 병원을 성공회대학교가 인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이로써 '환자 강제 퇴원' 논란을 낳았던 카프 병원 폐업 사태는, 평소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았던 성공회대의 결단으로 일단락된 셈입니다. 하지만 술(과 담배)에 대한 세금을 강화하고, 이 세수를 바탕으로 정부가 알코올(니코틴) 중독 예방과 치료를 하는 것이 더 올바른 방향이겠죠.

 

[관련 기사] (☞ 성공회대, '영구 폐원 위기' 카프 병원 인수)

 

 

 

 

 

 

*본 글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칼럼지인 <프레시안 뷰>에 기고되었습니다.

 <프레시안 뷰>는 조합원만 볼 수 있으나 일부 칼럼을 선별해 전체 공개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싶으신 분들은 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되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3.11.05정경진/새사연 이사장

환자를 처음 본 날은 아마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처음 환자를 보면서 은사의 말이 떠올랐다.  “의서의 내용을 보면 환자가 생각나야 하고 환자를 보면 의서의 구절이 떠올려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다. 하지만 임상 첫날 환자에게 전 이런 말을 한 게 기억이 난다.  “책에 나오지 않는 환자시네요.”라고 말이다. 고지식한 나로서 그때의 이야기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물론 곧이곧대로 책에 환자가 나오고 환자가 책에 있는 증상과 병증을 그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훨씬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는 정말로 답답하고 낙담한 게 사실이었다. 


세상의 모든 교육은 이성과 경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서양에서는 이성의 능력을 신의 영역과 비유해서 수학의 발달을 가져 왔지만 보통사람들의 경우는 경험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교육의 범위는 즉 경험의 범위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많은 경험은 시간 속에서 제약받는다. 따라서 한정된 시간 속에서 본인의 자유 의지를 가지고 많이 보고 듣고 만지는 경험이 교육의 출발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수학의 영역은 예외라서 경험을 많이 한다고 잘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해서 좋은 의사란 경험을 많이 해야 될 수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의사야 말로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의서를 많이 읽는다고 좋은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환자 혹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연륜도 있어야 하고 총명도 해야 하며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동의수세보원』에서 이제마는 사람이 다투는 것은 서로 자기만을 위하는 마음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을 위주로 발전된 사회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서로가 충돌하는 사회이다 보니 개인의 능력을 중요시 여기는 사회이다.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생 혹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매우 어렵다. 어렵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이타적인 마음 협동하는 마음 신뢰하는 마음을 초심대로 유지하는 것만이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음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배우고 환자는 의사에게 존경의 마음을 갖는 관계가 그리울 뿐이다. 아주 오래된 옛날에는 바로 그러하였는데 근대식 교육으로 바뀐 이후에는 사람의 마음이 아닌 의사 능력의 전수만 이뤄지고 있는 게 아쉬울 뿐이다.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배우는 자세야말로 좋은 의사의 첫 번째 덕목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경진 새사연 이사장은 구리에서 정경진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의사입니다. 진료 현장 속에서 경험한 부분과 상념을 토대로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사회적 안녕상태를 위하여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칼럼을 연재합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3.10.14정경진/새사연 이사장

 좋은 의사란 누구를 말함인가? "좋다 나쁘다" 라는 개념이 과연 의사를 규정하는데 합당한 말인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좋은 의사는 존재한다. 의사들은 누구나 좋은 의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나 환경 속에서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좋은 의사에 대한 기대나 마음을 잃어버리곤 한다. 의사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다. 


물론 예외는 있다. 좋은 의사들은 되기 위한 생각한대로 행동하고 행동하는 대로 생각했다. 바로 머리와, 마음과, 말과, 몸이 일치한 것이다. 의사로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아픈 병자를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 그대로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현실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초심의 마음을 갖기란 대단한 유혹이고 이를 극복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좋은 의사는 칭송받고 박수 받을 만하다. 


좋은 의사란 아픈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의사를 말한다. 아픈 사람의 병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의사자 좋은 의사이다. 사람과 질병이 한 몸이고 그 사람의 아픈 마음에서 질병이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 의사가 좋은 의사이다. 단순히 질병을 잘 고치고 수술을 잘하는 의사는 좋은 의사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의사는 질병을 고치도록 훈련되고 숙련된 전문가이다. 하지만 환자는 그런 기술적인 전문가보다는 나의 몸과 마음을 헤아리고 사랑할 수 있는 의사를 기대한다.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라는 말이다. 


발목이 겹질린 환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35세의 약간 통통한 환자인데 이 분은 발목을  자주 겹질린다고 하신다. 질병만을 보면 발목 겹질린 염좌 질환이고 약간의 시간이 경과하면 치료가 잘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환자는 심리적으로 생각이 많아서 위장질환도 앓고 있다. 그 환자의 마음과 염좌 질환을 하나로 이해할 수 있을 더 좋은 처방을 내릴 수 있다. 나아가 그 환자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원인을 사회적으로 확장한다면 정말로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음은 자명하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서로 사람들과 연결되어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과 같은 것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크고 작던 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산다.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우리는 희노애락을 느끼며 서로에게 사랑과 상처를 교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사람의 마음 속에서 질병은 싹트고 성장하게 되기도 하고 사멸하기도 한다. 질병은 싹이고 마음은 뿌리인 것이다. 뿌리를 볼 수 있는 의사야말로 현대사회에서, 아니 전 인류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칭송받아온 좋은 의사가 아닐까 싶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선생도 중국의 독립을 이끈 손문선생도 볼리비아의 해방을 이끈 체게바라도 바로 좋은 의사임을 부정할 수만은 없으니 말이다. 



*정경진 새사연 이사장은 구리에서 정경진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의사입니다. 진료 현장 속에서 경험한 부분과 상념을 토대로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사회적 안녕상태를 위하여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칼럼을 연재합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3.09.26정경진/새사연 이사장

81세 할머니가 이른 아침에 내원했다. 경험상으로 아침 일찍 이나 저녁 늦게 오는 환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로 한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긴장이 풀어지기도 하고 태만한 진료를 할 때가  있기도 하다. 꼭 퇴근 무렵에 오는 환자일수록 실수 할 확률이 높다. 


할머니는 진료실에 들어오면서 한눈에 병이 진행 중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중했다. 왼쪽 손발이 힘이 없고 말이 어둔하기까지 하였으며 머리가 아프다고 하신다. 나이도 있으시고 임상 정황상 중풍전조증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증상이 명확하였다. 진맥을 해보니 맥도 또한 洪數하고 과거에도 여러 번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고 하신다. 맥이 홍삭하다는 것도 또한 중풍의 맥이기도 하다. 하지만 환자는 기운이 없다고 기운이 좀 났으면 하신다. 지금 드시는 약이 뭐냐고 물으니 혈압약 과 당뇨약 그리고 신경과 계통의 약을 복용한다고 했다. 얼굴 표정도 일정 정도 경직이 되어 있는 정도로 봐서 치매도 진행중인 듯하다. 동네 한의원이라 치료해달라고 하는 보호자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큰 병원에 가보라고 이야기를 하고 진료를 마쳤다. 


맥이 홍삭한 것은 아마 어느 부위가 막혀서 강한 압력을 동반한 혈액량이 급류처럼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존에 여러 가지 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봐서 혈관이 낡거나 부식도 되고 막혀 있음은 자명하다. 해당 부위는 신선한 혈액과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여 제 기능을 잃을 수도 있으며 세포가 죽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어 혈관성 치매를 동반한 뇌경색이 진행 중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작은 병원이라 만일의 사태(솔직히 방어 진료적인 측면)를 위하여 큰 병원으로 보냈던 것이다. 혈관은 나이에 따라 노화가 진행된다. 더구나 장기간의 약물 복용은 혈관의 노화를 가속한다. 혈압약과 당뇨약 그리고 정신신경과 약물을 오랫동안 복용한 할머니의 경우를 보더라도 장기간 약물을 복용하게 되면 약물의 효능과는 별도로 혈관의 노화를 증가시키고 또 다른 약물 복용을 유혹한다. 


이제는 혈압약을 복용한다고 당뇨약을 복용한다고 혈압이나 당뇨가 낫지 않는다고 의사들이 말해야 할 시점이다. 정상적인 숫치를 조정해주는 약이라 하고 평생 동안 복용해야만 하는 약이며 자연적인 질서가 아닌 인위적인 조치에 불과할 뿐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제 좋은 의사로 거듭 태어나야만 한다. 우리 몸의 해독 매커니즘은 간과 신장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간과 신장이 제 고유의 기능을 잃게 되었을 경우에 우리는 성인병 혹은 생활습관 병을 앓게 된다. 따라서 장기간의 약물복용은 또 다른 질병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약물에 의존하는 우를 범하진 말아야 한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서로 연결되었고 서로 다른 시그널을 교환하면서 살아간다. 서로 다른 시그널을 이해해고 우리 몸과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만이 의사의 덕목이라 생각이 든다.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과 개인의 양생 그리고 사회적인 제도화가 건강한 길로 인도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건강한 삶을 향하여 출발해 보자. 



*정경진 새사연 이사장은 구리에서 정경진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의사입니다. 진료 현장 속에서 경험한 부분과 상념을 토대로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사회적 안녕상태를 위하여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칼럼을 연재합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4.01.07정태인/새사연 원장

 

해가 바뀔 즈음에 보통 사람들이 토정비결을 보듯 나는 경제전망 통계를 들여다본다. 유엔 경제사회국(UN DESA),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의 2014년 세계경제 전망치는 작년보다 확실히 나아졌다. 구매력지수를 사용하는 유엔의 경우 3.0%, 그리고 나머지 둘은 3.6%인데 어느 쪽이든 2013년 전망치(3분기까지의 실적 반영)보다 약 1%포인트 높여 잡았다.

세 기관이 보는 2014년 전망을 한마디로 줄이면 모두 “꽤 나아지겠지만 하방 위험은 상존한다”는 것이다. 작년보다 확실히 좋아 보이는 지역은 미국이다. 양적완화로 인해 풀린 돈이 주가와 부동산 가격을 부추기고 달러 가치가 떨어짐에 따라 수출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셰일가스 특수 또한 확실한 플러스 요인이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양적완화 축소는 작년 5~6월 같은 대혼란을 일으키지야 않겠지만, 미국의 내수와 수출 증가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고 공화당은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들이 2012년 말에 전망했던 작년 성장률은 3.5% 언저리였지만 실적치는 2% 후반대에 머물렀다. 바꿔 말하면 이른바 ‘하방 위험’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매년 예측이 빗나가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2009년 런던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한목소리를 냈던 금융규제 강화도 거의 진전이 없으니 버블은 또 한번 골칫덩어리가 될 수 있고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벌써 수명이 다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유럽의 역내 불균형이나 중국의 각종 격차를 해소하는 일도 실로 요원한 일이다.


만일 세계경제가 3.6% 성장한다면 지난해 12월27일의 정부 발표대로 한국 경제도 3.9%를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이건 전망이라기보다 차라리 희망이다. 지난 몇 년간 정부의 경제전망이 1% 이상 틀린 것은 투자와 소비, 즉 내수 증가율을 한껏 낙관적으로 보았기 때문인데 금년도 예외가 아니다.

설비투자 실적은 2012년 마이너스 1.9%, 2013년(3분기까지) 마이너스 1.6%였는데 정부는 금년에 6.2%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2012년 12월에 했던 2013년 전망치가 3.5%였으니 이번 수치 역시 미덥지 못하다. 박근혜 정부는 작년 네 번에 걸친 ‘투자활성화 대책’을 통해 몇 십년 묵은 재벌들의 숙원을 다 들어 주었다. 수도권 규제 완화 등 각종 규제완화, 나아가 지금 전방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공공서비스 산업의 민영화가 그것이다. 해서 이런 수치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지 않으면 정부의 희망은 한낱 꿈으로 판명날 가능성이 높다.

투자야 원래 ‘동물적 본능’에 따르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소비는 그다지 크게 출렁거리지 않는다. 2011년부터 3년 연속 정부는 민간소비가 3% 이상 증가할 거라고 예측했지만 실적은 1%대였다. 정부는 가계흑자율과 고용의 증가를 근거로 댔지만 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넘어 계속 증가하는 추세인 데다 사교육비, 의료비, 주택 관련 비용이 여전히 ‘등골 브레이커’인 한 다른 소비를 늘리기 어렵다. 또 고용이 증가하곤 있다지만 주로 50대 여성의 재취업이 늘어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요약하자면 별다른 대형사고가 터지지 않는다 해도 세계경제와 우리 경제 성장률은 3% 언저리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이 정도도 규제완화에 따른 건설경기의 덕을 톡톡히 본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이런 총량 수치와 관계없이 사회의 양극화가 더욱더 심각해질 거라는 데 있다. 빈부격차야말로 세계경제가 7년째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 가장 중요한 구조적 원인이다. 그사이 양극화는 더 심해졌고 따라서 세계의 총수요도 증가할 길이 없으니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의 ‘진격의 줄푸세’는 세계에서도 최악이다.

지난해 11월의 통계청 조사에서 국민 절반(46.7%)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층이라고 대답했다. 1988년 처음 조사를 실시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나아가 “일생 동안 노력하면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응답한 국민이 57.9%였다. 다음 조사에서 또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다. 일대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제발 ‘독재의 추억’을 벗어나 현실을 보기 바란다.


 

* 본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되었습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