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 03 / 10      정태인/새사연 원장

‘승자의 저주’란 흔히 경매에서 승자가 됐지만 너무 많은 가격을 불러 실속이 없거나 심지어 망하는 경우를 말한다. 직관으로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정보를 총동원해서 매물의 미래 가치를 판단했다면 아마도 그 중간 값 정도가 실제 가치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경매에서 승리한 사람은 가장 큰 값을 써 낸 사람, 즉 매물의 잠재성을 극도로 과대평가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경매에 승리하고도, 아니 승리했기 때문에 그가 파산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승자의 저주’가 언론에 오르내린 건 금호아시아나의 대우건설 인수 실패 때문이었다. 인수 당시의 한 주당 가격이 반토막났고. 또 재무적 투자자에 대한 수익보장 때문에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현대건설 인수에 성공했던 현대그룹에 대해서도 똑같은 우려가 제기되었다.

 

‘승자의 저주’란  책을 펴낸 쎄일러에 따르면 승자의 저주는 출판권 경쟁이나 프로선수 스카웃 경쟁 등 경제에서 흔히 관찰되는 현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런 오판을 한 회사, 그리고 그런 행동에 동조한 주주나 투자자가 최악의 경우 파산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시장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러나 그 회사가 대단히 크다거나 금융기관이라면 얘기는 사뭇 다르다. 우리의 외환위기나 작금의 미국 금융위기가 익히 보여 주었듯이 재벌이나 은행이 위험해지면 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특히 대형 은행은 경제 시스템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다.

 

지금 진행 중인 하나금융그룹의 외환은행 인수가 바로 그렇다. 하나지주는 조회 공시 2주일만에 4조 7000억원에 외환은행을 인수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호주계 은행인 ANZ가 3개월의 실사작업 후에 4조2000억원을 제시한 것에 비하면 참으로 신속하고 과감하다. 뿐만 아니라 이미 확정한 수익보장 배당금 3000억원에, 수출입 은행이 동반매도권(tag-along)을 행사할 경우의 6000억원까지 합치면 인수가는 5조원을 훌쩍 넘어간다.

 

더구나 하나지주 내부 조달은 45%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증자(27%)나 회사채(28%)로 채우는데, 증자에 참여한 재무적 투자자마저 김승유 회장의 호언과 달리 미국의 헤지펀드들로 알려져 있으니 금호처럼 수익보장을 약속했을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기업의 자금수요가 확 늘어나거나(또는 부동산 붐이 일거나) 대단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한, 바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까지 하나지주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려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경제학이 제시하는 답은 두가지이다. 첫째는 대리인 문제다. 하나금융그룹의 대리인인 김승유 회장은 자산 1위의 은행을 만든 신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할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이라는 든든한 ‘백’이 있으니 이 위험한 야망을 가로막을 세력도 없다. 둘째는 대마불사의 문제이다. 따라서 거대은행 경영자들은 고수익 위험투자를 할 유인을 가진다.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해도 은행은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부문에서 ‘승자의 저주’와  ‘대마불사’(大馬不死)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리를 해서라도 인수하는 게 정답이 된다. 만일 곤경에 빠지면 공적자금이 투입될 것이다. 조기의 최대 공적 자금회수를 목표로 정부가 되살아난 회사를 경매에 붙이면 다시 ‘승자의 저주’를 무릅쓴 인수합병이 시도되고  ‘대마불사’의 신화는 더욱 공고해진다.
 
이 정도 위험한 상황이라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수수방관 중이다. 외환은행의 대주주가 론스타이기 때문이다. 론스타는 애초에 한국 은행법 상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없었지만 한국 정부는 그 당시에도, 그리고 또 그 이후에도 당국의 의무인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제대로 한 바 없다. 기재부나 금융위원회로서는 론스타가 얼마를 챙기든 빨리 떠나기를 바랄 것이다. 이런 정부의 태도는 금융위기 이후 G20가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의 규제 방안을 놓고 고심하는 것과 일치하는 방향일까? 이제 은행 대형화와 투자은행화는 이제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닐까? 어떤 이유로든 현재의 외환은행 인수건은 최소한 중지되어야 한다.

*이 글은 PD저널(http://www.pdjournal.com)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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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02 / 15      정태인/새사연 원장

뜨거워지는 복지논쟁

 

설을 맞아 각 언론사가 여론조사를 했다.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복지에 관한 설문도 물론 포함됐다. 어떻게 물었느냐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지만 놀랍게도 국민의 2/3 가량이 “증세를 해서라도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가히 경천동지요, 상전벽해라고 할 만하다. 2002년 정초에 탤런트 김정은씨가 “부자 되세요”라고 외친 것이 신호탄이었을까? 우리 대부분은 그동안 투기에 목숨을 걸었다. 주식과 부동산시장에서 나만은 승리해서 떼돈을 벌 것이라고, 우리 아이만은 특목고를 거쳐 일류대에 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어느 재벌의 황당한 선동에 따라 우리 모두 정상을 향해 온갖 경쟁을 다 벌였고, 거기서 복지란 패자의 구질구질한 구걸일 뿐이었다. 2008년 4월의 총선이 최악이었다. 서울과 경기도의 모든 선거구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선거공약은 똑같았다. “뉴타운”, 그리고 “특목고”. 이런 낯 뜨거운 공약을 내걸지 못한 진보-개혁 후보는 하나 같이 “지못미”가 되었다. 드디어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나도 패자가 될 수 있다, 아니 패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일까?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40대 남자들은 샌델의 “정의론”을 뒤적이고 장하준의 “23가지”를 들춰 본다.

 

하여 정치권에서 복지 논쟁이 뜨겁다. 야권의 “모두에게 복지를”(보편복지)에 맞서 한나라당은 “필요한 사람에게 복지를”(선별복지)를 내세웠고 민주당 내에서는 “증세없는 복지”와 “증세를 통한 복지”가, 그리고 진보진영에서는 “부자들의 증세”(내라)와 “우리 모두의 증세”(내자)가 맞서고 있다. 복지의 백화제방, 아름다운 풍경이다. 굳이 내 생각을 말하라면 “우리 모두의 증세에 의한 보편 복지”라고 대답하겠지만 지금은 단번에 정답을 내 놓는 경쟁을 할 때는 아닌 듯 하다. 예컨대 OECD 평균에 도달하려면 약 100조원이 필요하므로 증세를 해야 한다는 건 분명 맞는 말이지만 어떤 복지부터 늘려 나가야 하는지, 증세 이전에 국민들의 복지에 대한 믿음을 높일 방법은 없는지도 논의해야 한다. 그런 우선순위나 방식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행동경제학으로 보는 복지논쟁

 

문제를 들여다 보는 방법은 수없이 많겠지만 여기서는 지난 10년간 빛나는 성과를 거둔 행동/실험경제학, 그리고 진화심리학이라는 안경을 써 보자. 그간의 연재를 통해 “작은책”의 독자들은 이런 논리에 익숙할 것이다. 보편복지 역시 공공재나 공유자원(common pool reource)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딜레마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가장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가 밝혀 냈듯이 이기적 인간이라면 최적의 답을 찾을 수 없다.

 

다행히 이들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관찰하듯, 아니 우리 스스로 그러하듯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한다. 맹자의 ‘측은지심’은 하이예크나 프리드만이 주장하듯 원시적 감정이 아니라 지금도 엄연히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인간 본성 중 하나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은 상호적(reciprocal)으로 행동한다. 칸트가 말한 것처럼 “내가 대접받기 원하는 것처럼 남을 대접”하려고 한다. 나아가서 눈에 띠게 공정함을 벗어나는 사람에 대해서는 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가까운 미래에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기꺼이 응징을 한다. 이런 속성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협력이 이뤄져온 이유이며 그렇게 우리는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해 온 것이다. 예컨대 인간이 정말로 이기적이기만 한 존재라면 우리 나라에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없을 것이다.

 

이런 협력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 즉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말한다면 남의 선의를 이용하려는 내 탐욕(greed)이 그 하나요, 또 하나는 남에게 이용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fear)이다. 복지에 관한 한 후자가 더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세금은 내지 않고 복지의 이익만 누리려 한다면 아무도 기꺼이 세금을 내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게임 룰 바깥의 이야기이다. 사회적 딜레마 게임에는 확실한 규칙이 있다. 예컨대 공공재게임에서는 내가 얼마를 기여하면 공유자원이 그 액수의 세배만큼 늘어나므로 모두에게 확실히 이익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세금을 내 봤자 국가가 복지가 아닌 곳에 쓴다면, 예컨대 4대강 사업에 써버린다면 당연히 증세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정권이 바뀌는 것이 당연한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지금 정권은 믿는다 해도 만일 다음 정권이 복지 예산을 삭감한다면 또 어찌 할 것인가? 따라서 사회복지세와 같이 복지를 용처로 정해 놓은 목적세를 거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한 정권이 바뀌어도 전혀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모두에게 확실한 이익과 만족을 주는 복지부터 시행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는 복지 수혜자(수급자)의 무임승차이다. 한나라당이 들고 나온 “공짜 점심은 없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요, 1990년대 초 스웨덴 경제위기 때 경제학자들이 맹공한 지점이 기도 하다. 내가 낸 세금으로 누군가 놀고 먹는다면 그런 복지에는 선의를 지닌 사람도 찬성하기 어렵다. 행동경제학/진화심리학이 밝힌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의도나 노력과 관계없이 가난에 빠진(빠졌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기꺼이 도우려 하며 특히 그가 자립의 의지를 보일 때는 더욱 더 그렇다. 따라서 모든 복지에는 자활 프로그램이 동시에 붙어야 한다. 예컨대 실업급여에는 실효성 있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필수적이고 충분한 노력이 뒤따르지 않을 때는 급여가 중단되도록 해야 한다. 아동수당과 저축을 결합시킨 아동발달계좌도 그런 유의 정책이다. 이런 복지가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산업정책과 결합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북유럽 나라들은 경제학자들이 맹공했던 “공짜 점심”이 매우 유익했다는 것을 훌륭하게 실증했다. 실제로 의료와 교육에 대한 공공지출은 장기적으로 가장 수익성이 높은 투자임이 증명되어 있다.

 

이런 무임승차 문제를 복지 수혜자의 자격 제한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잔여복지/선별복지이다. 잔여복지란 시장과 가족이라는 ‘정상적 메커니즘’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에 한해서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시장과 가족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사람임을 증명해야 한다. 즉 자산조사(means test)가 필수적이다. 불행히도 이런 방식은 균형해가 없는 ‘통제게임(control game)'을 만들어낸다. 정부는 되도록 수급자를 줄이려 하고 국민은 자신의 자산을 줄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사회의 불신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물론 자산조사가 필수적인 복지도 있다.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사회부조가 그러하다. 그러나 보편복지가 충분히 제공된다면 그 대상자는 줄어들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자산조사의 기준도 완화할 수 있다.

 

셋째는 납세자의 무임승차이다. 장관들의 청문회를 보면 이런 의심은 불행하게도 우리의 냉엄한 현실이다. 공공재게임에서 처음에 기꺼이 기여했던(납세) 사람들도 남들이 돈을 덜 낸다는 걸 확인하고 나선 자신도 기여를 줄이다가 결국엔 아무도 한푼도 내놓지 않는 비극적 결과를 맞게 된다. 이 게임에서는 돈을 안 내는 것이 무임승차자에 대한 유일한 응징 수단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 게임에 응징을 가능하게 하면 다시 기여가 늘어난다. 예컨대 스스로 100원의 비용을 물고 무임승차자를 지목하면 그 사람의 보수에서 300원을 빼앗는 제도를 도입하면 전체의 기여는 획기적으로 증가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을 상호적 응징자(reciprocal punisher), 또는 이타적 응징자라고 부른다.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세금을 사회 계층 별로, 또는 지역 별로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 합의하고 탈세 등 무임승차자를 엄격하게 응징하면 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이 응분의 돈을 내면 나도 기꺼이 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상호적 응징자의 역할을 국가 복지의 경우에는 법이 담당하여야 하는 것이다. 즉 문제는 증세 자체가 아니다. 부담을 어떻게 배분하느냐, 또 규칙 위반자를 어떻게 응징할 것인지 합의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복지에 기여를 많이 하는 부자들을 사회적으로 존경받도록 하는 제도를 고안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컨대 사회복지세 상위 기여자 명단을 발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간접상호성, 즉 평판에 의해 협력을 촉진하는 방식이다.

 

넷째는 나의 이익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나도 결정적인 혜택을 볼 수 있는 복지라면 더욱 더 기꺼이 세금을 낼 것이다. 어떤 복지냐에 따라 보편주의는 서로 다르게 적용될 수 밖에 없다. 무상급식은 모든 아이에게, 똑같은(학교별로,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겠지만) 점심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없는 사람은 혜택을 보지 못한다. 한편 건강보험은 모든 국민이 대상이 된다. 그러나 모두에게 똑같은 혜택(benefit)을 주는 것은 지극히 비합리적이다. 암의 세계적 권위자도 암에 걸릴 수 있는 것처럼 건강은 지극히 불확실성이 크다. 이런 복지라면 국민 모두 기꺼이 납세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건강보험은 비용 부담의 규칙도 정해져 있는 상태이므로(물론 더 나은 쪽으로 규칙 개정에 합의할 수도 있다) 용이하게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늙는다. 따라서 노인복지 역시 모두 혜택을 볼 수 있는 항목이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 아직 먼 일이라고 생각해서 절박하게 느끼지 않을 뿐이다(인간은 불행하게도 대부분 근시안이다. 담배를 아직도 피는 나도 그렇다).

 

다섯째, 서로 협력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다면 기꺼이 세금을 납부할 것이다(네트워크 상호성, 집단 선택). 진화 게임에서 협력적 인간은 이기적 인간에게 언제나 당한다. 결국 이기적 인간이 아니고선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만다. 그러나 만일 협력적 인간끼리 모여 있는 네트워크나 집단이 있다면 그 단위 전체는 이기적 인간들의 집단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물론 국가 단위로 시행되는 복지라면 나라간 비교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복지를 나라가 운영할 이유는 없다. 예컨대 근거리의 친밀 노동이 중요한 사회서비스는 국가가 자금을 지원하되 지자체가 운영할 수도 있고 나아가서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경제가 담당할 수도 있다. 만일 그런 지자체나 사회경제가 더욱 더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면 다른 집단이 모방하게 될 것이다.

 

여섯째, 행동경제학과는 무관하게 우리 나라의 특성에 비춰 볼 때 복지의 공급 측면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아동수당을 획기적으로 늘린다면 보육료가 일시에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터무니 없이 부족한 국공립 보육원의 공급을 늘리는 정책이 동시에 시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은 의료나 노인복지도 마찬가지이다. 복지 전달 시스템을 시장에 맡겨 놓은 채 수당만 늘린다면 오히려 가격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해서 원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는 점도 잊으면 안 된다.

 

북유럽 나라들이 이런 세세한 제도를 다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부분을 신뢰(trust)로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규범(social norm)이 상호적 응징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믿는다면 많은 경우 거래비용을 비롯한 각종 비용이 줄어들게 된다. 무임승차자가 사회의 제재를 받게 되고 이런 규범이 내면화한다면 (국가) 제도가 져야 할 부담, 즉 감시비용이나 처벌비용은 훨씬 더 줄어들게 된다. 보편복지의 모범인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이 사회적 신뢰를 측정하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 항상 최상위를 차지하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우리의 복지제도도 잔여복지의 자산조사처럼 상호 불신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쌓는 쪽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어쩌면 위에서 말한 모든 것보다 이 사항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역진불가능한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이런 점들을 다 고려하면 어떤 순서로 복지를 시행하고 어떤 방식으로 재정을 조달하는 것이 좋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진 바 없지만 스웨덴 국민을 상대로 한 20여년에 걸친 반복 조사에서는 일관되게 1위는 의료, 2위는 초중등교육, 3위는 노인복지, 4위는 아동수당, 5위는 고용정책으로 나타났다. 반면 사회부조와 주택수당은 최하위로 나타났다. 물론 이미 기본 복지가 갖춰진 스웨덴과 우리를 바로 비교할 수는 없다. 최소한의 소득보장이라는 기본복지도 갖추지 못한 우리에게는 사회부조가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해야 하고 부동산 가격이 지금처럼 흔들린다면 주택 수당 역시 스웨덴보다는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논의가 예측하는 바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행동경제학/실험경제학이 밝혀낸 인간 본성에 맞춘 복지제도에 관해 아주 거친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복지국가를 향한 몇가지 큰 경로를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어느 경로가 완벽하게 우월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다른 경로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제는 체계적인 논리와 수치를 갖춘 구체적인 논쟁이 필요하다. 이 논쟁에 우리 모두 참여해서 합의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는 역진불가능한 복지국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월간 '작은책'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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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가 세금 내서 쬐그마한 복지 받을 것 같으면 아마도 국민들이 복지논쟁을 꺼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기존의 세수입이 제대로 또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못하고 세는 돈이 그만큼 많기 때문에 그런 낭비되는 세금을 찾아서 세출구조조정을 하고 그걸 통해 무상복지를 실현하자는 것이지요. 예를 들자면 한해 예산이 320조원이 걷히는데 현재 어디어디에 가장 세금이 많이 투입되고 있으며 거기엔 어떤 낭비요소가 없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서 재원을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인건비로 나가는 국회의원 세비나 고위(or 장기근속) 공직자들의 월급이 지나치게 많지 않은지 따져보아 그걸 절약하고 또 SOC/국방/교육에 지출되는 터무니없이 많은 예산 중에 불요불급한 예산을 구조조정해서 예산을 대거 확보해야 합니다. 그러면 추가적인 세부담 없이 복지예산을 확충할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불경기에 국민들은 월 88만원도 못받고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면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는데 나라부터가 방만한 살림을 꾸리고 국민들에게 낙후된 복지환경을 제공한다면 이것도 크나큰 죄악일 것입니다.

    한해 나라살림 규모라는 320조원을 해부해서 일단 의료복지에 65조 정도를 할당하고 나머지 금액을 공무원 인건비/운영비/각종 연금/장애인 복지/실업정책 등에 전격적으로 쏟아부어야 합니다. 약 255조 정도 되는 예산인데요 충분히 세출구조조정으로 배분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구조조정을 하고도 부족한 예산이 있다고 했을때 그때가서야 국민들이 추가적인 세부담을 고려해볼 수가 있는 것이지 현재와 같이 복지혜택이 보잘것 없는데 무턱대고 국민들에게 추가적인 세부담을 강요한다면 아무리 능력있는 국민이라 할지라도 이를 탐탁치 않게 생각할 겁니다.

    제 얘기의 핵심은 현재의 예산세출구조를 분석해 국책사업이나 기물조달, 공무원 임금, 관사운영비, 기존의 복지예산 등에서 낭비요소를 철저하게 색출해 의료복지나 기초생활보장/의무 교육 등에 재할당 하자는 것입니다.

    최근의 복지논쟁에 있어 이런 논의들이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1.04.03 20:08 [ ADDR : EDIT/ DEL : REPLY ]

2011 / 01 / 31      정태인/새사연 원장

- 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



책장을 넘기면서 누군가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0쪽 쯤 읽었을 때 그 이름이 떠올랐다. 바로 루쉰의 “아Q"다. 김현종 전 본부장께서도(이하 존칭 생략)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생활하느라 혹시 불멸의 고전, ”아Q정전“을 아직 못 읽었다면 꼭 보시기 바란다. 


아직도 멕시코가 그리도 자랑스러운가


“그는 곧 패배를 승리로 돌려 버렸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힘껏 자기 뺨을 두세 차례 연거푸 때렸다... 때린 다음에는 기분이 가라앉아 때린 것은 자기고 맞은 것은 다른 사람같은 기분이 되었다”(아Q정전)


김현종은 여전히 멕시코가 자랑스럽다. “보도내용과 달리 멕시코는 나프타 발효후 5년간 연평균 3.0%, 10년간 연평균 3.3%의 건실한 GDP 성장을 기록했으며, NAFTA를 계기로 중남미 제1위의 해외직접투자 유치국으로 부상했다”(120쪽). 수출이 증가하고 FDI가 대폭 유입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1993년에서 2007년까지 수출은 311% 증가했고 외국인투자 역시 세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1인당 경제성장율은 15년간 연평균 1.6%에 불과했다. 도대체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성과인가? KIEP의 CGE 모델처럼 미국과 FTA를 맺으면 생산성이 1% 올라서 성장률은 6-7%를 넘어야 말이 되지 않겠는가? 그의 표현대로 “FTA 후진국”인 아시아 나라들은 물론, 미국과 FTA를 맺지 않고 비정통적인 경제정책을 사용하는 브라질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이다.


그 이후는 더 비참하다. 금융위기 이후 2008년의 GDP는 1.3%, 09년에는 -7.1%를 기록했다. NAFTA의 목적대로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주요 공기업을 민영화했으며, 이들 기업이 외부 자본시장에 의존하고 심지어 파생상품을 다뤘기 때문이다(기업의 금융화). 멕시코 은행을 인수한 미국 대형은행들은 자국이 위기를 맺자 달러를 회수했고 멕시코는 외환위기 상태에 빠졌다. 이웃 나라 아르헨티나가 2001년 금융위기 때 자본통제 조치를 취했다가 2009년까지 47건의 투자자국가제소를 당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멕시코 정부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그가 한 챕터를 할애해 아무 문제도 없다고 곳곳에서 강변하는 투자가국가제소권의 실체이다. 불행하게도 멕시코는 구조적 위기 상태에 빠져서 약간의 외부 충격에도 국민의 삶은 위협받게 되었다. 

 

내부의 양극화도 더욱 심해졌다. 06년 현재 실질임금은 아직도 96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고 지니계수는 0.47 정도로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이다. 그런데도 그는 “나프타가 멕시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정부가 효과적으로 반박했기 때문인지 관심이 캐나다로 바뀌었다”(158쪽)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당한 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캐나다도 NAFTA 이후 미국을 따라 공공지출을 줄인 결과 한국보다도 지니계수가 높은 나라가 되었다. 이것이 우리보다 15년에서 20년(캐나다) 앞서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들의 현재 상태이다.


김현종에게 멕시코는 또 다른 면에서도 모범이다.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와 FTA를 맺어서 그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전 세계 시장을 대부분 ‘선점’했기 때문이다. 바로 김현종의 꿈인 “FTA의 허브”이다. 그러나 냉정한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양자간 협정에서 언제나 허브는 강대국이 되기 마련이다.  FTA 전문 경제학자인 볼드윈은 이를 스포크 함정(spoke trap)이라는 말로, 즉 여러 강대국에게 이리 저리 휘둘리게 되는 현상으로 묘사한다. 불행히도 그 볼드윈은 한국이 멕시코 꼴이라고 예언했다. 


제갈공명, 손오공, 아Q


이 책에 따르면 그는 거의 제갈공명이다. 미국의 협상가들은 언제나 그의 실력과 꾀에 당하고 만다. 그에 따르면 “(의약품 분야에서) 미국 측이 세부 이슈에 대한 요구를 제시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역대표부의 고위급은 물론 분과장마저도 포지티브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 거 같다”. 과연 그럴까? 미국이 한국과 FTA 협상을 하기 직전인 2005년에 체결한 호주-미국 FTA(AUSFTA)의 핵심 쟁점이 바로 바로 이 포지티브리스트에 의한 약값 산정 방식(PBS)이었다. 고작 1년 후 한미 FTA 협상이 되자 USTR(미국무역협상대표부)이 그들의 골머리를 싸매게 만들었던  PBS를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것일까?


기실 약값 적정화 방안의 포지티브 리스트가 뭘 의미하는지 몰랐던 건 김현종 자신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협상이 시작된 후에야 “협상 전에 미국이 이른바 4대 현안 중 하나로 새로운 약가제도 도입 자체를 요구한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퍼즐 조각이 비로소 맞추어진 느낌이었다”(127쪽). 이런 사람이 우리 협상을 지휘한 것이다.


한미 FTA가 체결된 날 미국 제약업계는 대대적인 파티를 열었다.  그런데 그는의약품에서 양보한 것이 없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당한 것일까? 무역구제 분야의 비합산조치처럼 한국 기업들의 숙원이지만 전혀 관철시키지 못한 이슈는 그가 단지 전략적 미끼로 썼기 때문이란다. 맞았는데 오히려 때렸다고 생각한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 아닌가?


그에겐 “경쟁적 자유화"라는 미국의 FTA 전략을 고안한 죌릭도 한수 아래로 보였다. ”미국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 자체가 죌릭이 고안한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알 리 없다. ”김현종을 만났을 때 죌릭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동북아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에 중국을 순응하게 만들 대리인,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노는 손오공이 거기 있었다.“(정태인, 시사저널, 2006. 4) 아Q는 자신이 손오공처럼 신출귀몰하다고 상상한다.



개성공단과 한일 FTA


그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통상교섭본부를 확 바꿔 놓은 인물로 자신을 되풀이해서 묘사한다. 그 중에서도 개성공단을 FTA에 포함시킨 아이디어가 대표적인 보기로 생각하는지 책 곳곳에 개성공단이 등장한다. 그는 2004년 11월 아펙 정상회담 때 대통령에게 한-싱가포르 FTA에 개성공단을 포함시키겠다고 보고했다. 대통령이 흐뭇해 한다. “FTA에서 그런 것도 다룹니까? 개성공단 인정 받으면 거 참 좋겠네”(48-49쪽).


그런데 그는 이미 2004년 6월에 한일 FTA에 관한 보고를 할 때 이미 “개성공단 제조상품의 한국산 인정”을 관철시키지 못하면 한일FTA를 중단시키겠다고 말했다(324쪽). 대통령이 건망증이 있었나? 참 시시콜콜한 걸 다 꼬집는다고 할이지 모르지만 김현종에게 싱가포르와의 FTA에 개성공단을 집어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건 바로 나였다. 또한 서해안 프로젝트 때문에 자주 만나던 싱가포르 대사에게 이 얘기를 강조한 것도 나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을 뿐이다.


반면 나는 한미 FTA에서 개성공단을 아예 꺼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 환경, 심지어 핵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개성공단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으로 결론난 한미 FTA는 앞으로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도 계속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개성공단이 자랑거리이다. 아Q가 따로 없다.


주지하다시피 김현종은 한일 FTA를 중단시켰다. “졸속 FTA를 타결하게 된다면.. 제2의 한일합방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309쪽) 그는 대통령 보고서에서 “부품소재...를 집중 보호해야 하며 자동차, 기계, 정밀화학도 경쟁력이 약해 보호가 필요함을 역설했다”(309쪽) 한편 그는 한미 FTA 때 엽계의 우려를 전달하러 온 화장품업 대표에게 실망한다. “(관세혜택으로) 일종의 ‘국민보조금’을 준 셈이었다... 그런 대기업의 간부가... 관세철폐가 되면 도태된다고 하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일이다”(178쪽).


그러나 화장품은 그가 한일 FTA 때 걱정한 정밀화학의 대표적 상품이고,  정밀화학은 정밀기계와 함께 한미 FTA에서 가장 타격을 받을 제조업 분야이다. 일반적으로 봐도 제조업의 물적 생산성은 일본이 미국의 약 80% 정도이고 한국은 기껏 40% 가량에 머무른다. 그런데도 일본에 대해서는 보호를 해야 하고 더 강한 미국에 대해서는 개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현종은 대통령이 자신의 이런 모순적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대통령은 2005년 2월 1일 “많은 보고가 있었지만 믿지 못하겠다. 정비서관이 한일 FTA를 검토해서 보고하라”고 나에게 지시했다. 그 해 5월에 내가 잘렸지만 나 없이 완성된 한일 FTA 보고서는 2006년 3월, 한미 FTA 반대 보고서와 함께 대통령에게 전해졌다.


한미 FTA 비판자를 쇄국론자로 몰아 붙이는 그가 왜 한일 FTA가 되면 ‘제2의 한일합방’이 된다는 극단적 상상을 하는 걸까? “노대통령은...선진 시스템을 갖춘 국가와 FTA를 체결해 우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59쪽). 그 역시 한미 FTA 청와대 브리핑 제1호에서 “한미 FTA는 낡은 일본식 법과 제도를 버리고 미국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받아 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뿔싸, 그 선진시스템이 붕괴한 것이 작금의 글로벌 금융위기이다.


아Q는 자신의 무지와 허세 때문에 사형을 당한다. 그러나 한국의 아Q는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 그래도 이 책을 보시려거든 먼저 아Q 정전을 읽는 게 낫겠다. 무려 500쪽에 달하는 이 책에 비해 아Q정전은 50쪽도 되지 않는다.

 

*이 글은 '이코노미 인사이트' 2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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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01 / 23      정태인/새사연 원장

비준만 남겨놓고 있는 한미FTA

 

“한미 FTA로 경제영토가 넓어집니다. 이제, 세계가 당신의 시장입니다” 요즘 지하철에 나붙은 광고 문구이다. 5년 전에는 이랬다. “한미 FTA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의 선택입니다” 당시에 함안의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자 쪼께 살까 싶었어요. 그랬두만은... 우찌 됐든 (FTA를) 끝내 막아서...행복하게 살아야 할긴데... 이런 말 저런 말 하면 눈물 나온다“ 평생의 노동으로 갈쿠리가 된 손으로 눈가를 훔치는 이 광고는 아무도 TV로 보지 못했다. 사실상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해 한미 FTA 국내 홍보비로 130억원을 책정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미국 로비비용으로 95억 5600만원을 사용했다. 그도 모자라 또 다시 2억 5천만원을 들여 이렇게 대대적 홍보에 나선 것이다. 그들로서는 ‘최후의 일격’인 셈이다. 한미 FTA는 이제 국회 비준만 남았다.

 

벌써 5년째 우리는 한미 FTA라는 유령과 싸우고 있다. 2006년 KBS 이강택 피디는 “나프타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KBS 스페셜)을 내보냈다. 카메라는 멕시코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줬지만 정부는 사실 왜곡이라며 반박했다. 이제 그 나프타는 17년이 되었다. 10년째였던 2004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논쟁이 벌어졌지만 15년째인 2009년에는 아무도 나프타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미국이 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멕시코는 -7.1%의 경제성장율을 기록했다.

 

NAFTA이후 멕시코에서 무슨일이 벌어졌는가?


정부의 광고대로라면 멕시코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경제영토를 가진 나라이다. 미국과 EU 등 “거대 선진경제권과 동시다발적” FTA를 맺었으니 대한민국 정부가 애면글면 추구하는 “FTA의 허브”다. 과연 1993년에서 2007년까지 멕시코의 수출은 311%(석유를 빼면 283%) 증가했고 외국인 직접투자 역시 3배나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1인당 국민소득 성장률은 연평균 1.6%에 불과했고(2000년에서 2009년까지 0.9%) 무역수지는 지속적으로 적자였다. 이 기간이 미국 사상 최장의 호황기였는데도 그랬다. 급기야 2008년 멕시코는 대기업의 외채를 갚느라 외환보유고의 1/3을 써야 했고 IMF와 미국으로부터 긴급 달러 수혈을 약속받아야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미국과 인접한 마킬라도라 등에 자동차, 전자분야 초국적기업이 너도 나도 투자를 했고 거의 전량 미국으로 수출했다. 그러나 멕시코의 전체 투자율은 2000년까지 미미하게 증가하다 이제는 오히려 20% 부근에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FTA로 인한 대대적 구조조정으로 멕시코 국내 제조업, 특히 부품산업이 붕괴했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옥수수농업은 말 그대로 궤멸했다. 이에 따라 실질임금과 고용은 여전히 1990년대 중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표1> 나프타의 성과

 

<출처> Deblock,C et.al.(2010), Nafta - A Model Running out of Breath, CESifo.

 

1960년대에 지어진 멕시코 인류학 박물관에 가면 그 수많은 부족마다 아주 다양하고 기막힌 옥수수 문양을 뽐낸다. 그러나 이제 옥수수의 원조 멕시코가 미국의 유전자 조작 옥수수로부터 토종 옥수수를 보존해야 하는 절박한 지경에 이르렀다. 자유로이 날아 다니는 벌과 나비를 무슨 수로 막으랴.

 

멕시코 국내 은행들은 민영화를 거쳐 미국과 스페인 은행에 인수합병됐다. 1997년 2%에 불과했던 외국인 소유 은행 자산은 이제 83%에 이르렀다. 한국 정부의 소원대로 선진 금융기법이 도입됐지만 부자 도시만 혜택을 누렸을 뿐 중소기업과 서민에 대한 대출은 오히려 줄었다. 민영화한 멕시코의 공기업들은 너도 나도 값싼 달러를 빌렸고 당연한 것처럼 파생상품에도 손을 댔다. 2008년 리만 브라더스 파산 이후 외국 은행들은 달러를 본국으로 보냈고 멕시코는 한국의 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동시에 맞은 상황에 빠졌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다르다?


5년 전에도 그랬듯 이제 정부는 멕시코와 한국은 다르다고 할 것이다. 물론 다르다. 그렇다면 미국을 능가하는 자원부국이고 유럽형 복지국가를 갖추고 있던 캐나다는 어떨까? 다행히도 캐나다는 멕시코와 같은 금융위기를 겪지 않았다. 캐나다 은행은 왕립은행(chartered bank)의 전통에 따라 자본을 도매시장이 아닌 예금으로 조달했으며 그림자금융 등 위험감수행위를 하지 않았고 정부의 자본규제도 바젤II보다 더 강했다. 즉 캐나다의 금융부문 만큼은 NAFTA의 민영화, 규제완화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프타 이후 캐나다의 1인당 경제성장율은 1.2%(2000년에서 2009년까지는 1.1%)에 머물렀다. 실질임금은 1996년에서 2006년까지 10년 동안 4% 늘어났을 뿐이며 제조업 고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아메리카의 복지국가 캐나다의 소득불평등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2008년 지니계수가 한국을 추월했다. 나프타 이후 캐나다의 공공사회지출/GDP 비율이 5%p 가량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실업급여의 축소가 두드러졌다. 캐나다도 점점 미국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OEDC 국가 중 멕시코가 나쁜 쪽으로 부동의 1위, 미국이 4위, 그리고 캐나다는 13위를 차지했다(한국은 14위).

 

미국과 멕시코의 생산성 격차는 줄어 들지 않았고 캐나다의 경우 2000년 이후엔 격차가 오히려 확대됐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를 맺으면 1%의 생산성이 향상돼서 경제성장율이 5% 가량 추가로 증가할 것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그런 신비스러운 일은 캐나다와 멕시코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프타는 두 나라에게 초헌법, 또는 외부헌법의 역할을 했다. 이 헌법은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지시하고 있다. 국가 내부에서 이런 정책기조를 강력하게 추진하면 추진할수록 이 헌법은 위력을 발휘한다. 투자자국가제소권은 강력한 무기이다. 2010년 7월까지 알려진 NAFTA 투자자국가제소 총 76건 중 환경보호 16건, 자연자원 15건, 건강 및 식품 7건, 부동산 6건, 조세 2건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한국 정부의 주장과 달리 환경과 공공정책에 대한 예외조항이 얼마든지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미 FTA는 복지 및 환경 정책의 강화를 가로막고, 줄어든 공공영역에 미국인 투자가 들어가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져도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장치를 나프타보다 더 강력하게 갖추고 있다.

 

물론 상대국의 기존 경제사회구조, 정부 규제나 복지에 대한 내부의 합의 정도에 따라 미국식 FTA의 영향은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과연 한국의 지배계급은 캐나다형일까, 아니면 멕시코형일까? 어느 쪽이든 복지의 확대는 불가능하지만 멕시코형이라면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보면서도 자본시장통합법, 의료채권법을 추진하는 한국 정부와 재벌이 이미 그 답을 알려주고 있다.

 

멕시코는 '허브'(중심)가 아니라 자신보다 강한 상대국의 수탈을 받는 ‘스포크’(spoke, 자전거 살)였다. FTA 전문 연구자 볼드윈은 멕시코가 “스포크 함정(spoke trap)"에 빠졌다고 묘사했다. 그리고 2009년 논문에서 그는 한국이 제2의 멕시코가 될 것으로 예언했다. 우리 스스로 왜 그래야 하는가? 국회는 비준하기 전에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이 글은 금요일(21일) 경향신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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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발표하는 한국경제 전망이 갈수록 낙관론으로 흐르고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2010년 한국경제 성장률을 5.8%로 상향조정하고 본격적인 출구전략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1분기에 이어 2분기 경제성장률도 6%를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목표치를 올려 잡은 것이다. 광공업 생산도 지난해에 비해 수개월째 20% 이상 늘어나고 있는 기조가 유지되고 있고 제조업 가동률은 80%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경제지표가 기대 이상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전체 지표의 상승은 대부분 수출 대기업이나 정부부문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반면 국민들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는 내수 쪽은 아직도 게걸음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수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서비스업은 여전히 전월 대비로 하강 추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국민들의 소비능력을 보여 주는 소매판매도 늘기는 했지만 지난 5월 전년 대비 3.6% 증가에 그쳤다. 경제성장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소비자 심리지수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소비자들이 전망하는 미래생활 형편의 경우 뚜렷한 개선의 조짐이 없다. 가계수입 전망과 소비지출 전망이 다소 오르기는 했지만 1~2% 내외에 불과하다. 우리 경제가 수출 대기업의 높은 실적상승세와 부진한 가계소득과 소비 사이의 격차가 지속되는 취약성을 구조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래의 경기를 예고해 주는 경기선행지수가 올해 들어 계속적인 하락세를 이어 가고 있는 중이다. 외형적인 경제지표도 하반기로 가면서 상당히 누그러질 수 있다는 예상이 가능하다. 여기에 유럽 재정위기 지속, 중국 성장률 둔화, 미국 경기회복 약화 등 외적인 환경이 결부되면 수출 탄력도 이전 같지 않을 확률이 높다.

우리경제의 하반기 전망 가운데 주목되는 부분은 부동산 경기와 주식 금융시장 동향이 될 것이다. 이미 올해 초부터 부동산 경기의 대세 하락을 전망하는 예측들이 줄을 이었고, 주택가격과 거래건수의 급감 추세가 나타나면서 실제 현실로 굳어지고 있다. 당분간은 부동산 경기의 반등을 예상할 수 있는 어떤 조건도 만들어지기 어렵게 됐다.

지난해 9월 이후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주식시장도 지난해와 같은 뚜렷한 대세 상승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위기 이전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펀드 투자 자금도 꾸준히 환매 경로를 밟고 있는 중이다.

왜 부동산 경기와 증권시장 동향이 중요할 수 있는가. 외환위기 이후 소득이 안정적으로 늘지 않는 고용불안 상황이 지속되자 우리 국민들은 금융회사 대출을 기반으로 부동산 시장과 증권시장 등에 투자를 대폭 늘렸다. 그 결과 지난 10년 동안 부동산 가격은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했고, 외환위기로 300선까지 밀렸던 주가도 2007년 한때 2천을 넘는 등 고속 상승세를 유지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펀드 열풍이 불자 거의 2천만 계좌에 가까운 펀드개설이 짧은 시간 동안 이뤄지기도 했다.

이는 국민들의 소득이 꾸준히 증가하고 부동산 가격은 안정되면서 실물 내수시장이 확장돼 갔던 90년대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한마디로 2000년대 한국경제는 국민의 실질소득과 실물경제의 성장이 아니라 부채와 자산시장의 거품에 의해 담보돼 왔던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현재 예금 취급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가계의 주택 관련 대출이 340조원에 육박한다. 개인들이 주식에 투자한 금액도 지난해 말 기준 시가총액으로 330조원을 넘는다. 펀드 환매가 지속되고 있다지만 아직도 국민들의 펀드 설정 잔액은 300조원이 넘는 실정이다. 국민들이 부동산 경기와 증권시장 동향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국민 생활에 이처럼 깊이 연루된 부동산 경기가 대세 하락 국면으로 접어들고 증권시장도 예전과 같은 고속성장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 과거처럼 다시금 이 시장을 부양해서 국민을 안심시켜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원래부터 자산시장의 거품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74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가 부동산 시장을 포함한 자산시장의 팽창을 근원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현실을 봐도 이는 명확하다.

국민들의 노동소득과 실물경제의 건전한 발전으로 되돌아가는 것만이 답이다. 그런데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자산시장의 거품이 꺼지는 것에 반비례해 국민소득이 늘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소득이 정체하고 있는 마당에 자산시장 거품도 꺼지는 초유의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국민들의 소득, 특히 노동소득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개선시킬지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고용시장 개혁이 향후 경제개혁의 핵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 매일노동뉴스 2010년 7월1일자 칼럼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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