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05정태인/새사연 원장
도대체 무슨 얘기를 했길래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자 선언>(흔히 "공산당 선언"으로 번역)은 "유령 하나가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2014년 또 하나의 유령이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의 분배문제를 다룬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Belknap Press 펴냄)이 그것이다. 

▲ <21세기 자본>(토마 피케티 지음, Belknap Press 펴냄). ⓒBelknap Press

▲ <21세기 자본>(토마 피케티 지음, Belknap Press 펴냄). ⓒBelknap Press

사실 주류경제학은 분배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수학적으로 보면 일정한 조건(실은 완전경쟁시장과 1차동차 생산함수라는 대단히 비현실적인 조건)이 만족된다면, 각 생산요소에 돌아가는 분배 몫은 한계생산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아서 보울리는 실제로 이 분배 몫이 일정하다고 주장했고("보울리의 법칙"), 사이먼 쿠즈네츠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본주의 발전 초기에는 분배가 악화되지만 일정 단계가 지나면 개선될 거라고 예언했다("역U자 가설"). 

이에 따라 성장에만 신경 쓰면 그만이고, 섣불리 분배문제를 건드렸다가는 상황만 악화시킬 거라는 주장은 지금도 주류경제학의 신조에 속한다. 이 같은 주장은 케네디 대통령의 "밀물이 오면 모든 배가 떠오른다"는 정치적 구호로 표현됐고 지금도 한국의 성장론자들이 신봉하는 교의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프랑스의 43살짜리 경제학자가 이 모든 주장과 구호를 단숨에 엎어버렸다. 그의 무기는, 어느 누구도 쉽사리 부정할 수 없는 장기 통계, 즉 역사적 사실이다. 그가 초점을 맞춘 수치는 "어떤 시점의 한 나라 순자산(피케티의 "자본")을 그 해의 국민소득으로 나누면 얼마나 될까?"(β=W/Y, W는 민간순자산, Y는 국민소득)이다. 

예컨대 한국의 2014년에 민간이 가지고 있는 부(순자산)를 국민소득으로 표현하면 몇 배나 될까를 표현하는 수치이다. β에 자산수익률을 곱하면 그 해 자산소유자들이 가져간 몫이 될 것이다(α=rβ). 그는 이 회계적 항등식에 "자본주의의 제1 근본법칙"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을 붙였다. 

<그림1>에서 보듯이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β는 19세기 말에 6~7배로 정점을 찍은 뒤 1910년에서 1950년까지 2~3배로 급전직하했다. 두 번의 전쟁과 대공황으로 인한 재분배정책 때문이다. 이 수치는 80년대부터 서서히 상승해서 현재는 4~6배까지 치솟았다. 또한 그는 자산의 수익률(r)은 역사 전 기간에 걸쳐 4~5%라고 계산했다(<그림2>). 

이렇게 그림을 그려 놓으니까 간단해 보이지만 선진국에서도 90년대 들어 발표하기 시작한 "국민대차대조표"(한국은 지난 5월 14일 최초로 잠정적인 대차대조표를 발표했다)가 없는 상태에서 이런 통계를 만든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지난한 일이다. 더구나 프랑스나 영국의 경우에는 1700년대부터 과거의 문헌을 뒤져서 이 수치를 추적해 냈다. 또한 세금자료를 이용해서 1% 단위로(심지어 0.1% 단위로) 각 계층이 얼마나 자산과 소득을 차지하는가를 추적했으니 당분가 어느 누구도 이 수치 자체에 대해서는 논박하기 어려울 것이다.  


▲ <그림 1> 유럽의 자본/소득 비율(=β) 추이 (출처 : Piketty, 2014, 26쪽)

▲ <그림 1> 유럽의 자본/소득 비율(=β) 추이 (출처 : Piketty, 2014, 26쪽)



<그림1>은 글머리에 제시한 주류경제학의 정설들을 뒤엎는 데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기실 1945년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의 30년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기간이라는 것이다. 이 시기는 "자본주의의 황금기", 프랑스의 "영광의 30년", 독일의 "라인의 기적"에 해당한다. "보울리의 법칙"이나 "역U자 가설"은 모두 이 짧은 기간에 해당하는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한계생산력설"에 대한 계량 연구도 이 시기의 안정적인 분배를 반영할 뿐이다. 1910년대부터 두 번의 세계전쟁, 대공황 이후 최고 한계세율이 90%가 넘는 재분배정책 등(피케티는 이를 자본주의의 내재적 성향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외부 쇼크"라고 부른다)이 이런 예외적 시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피케티의 이 얘기를 뒤집으면 우리나라의 진보 쪽이 그리는 "복지국가"를 이루려면 그만한 "외부 쇼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다음 단계는 도마-솔로우의 "장기 균형성장 조건"(β=s/g, s는 저축률, g는 경제성장률)과 현실의 수치를 비교하는 일이다. 피케티는 이 방정식에 다소 구질구질한 설명을 덧붙여(제5장) "자본주의 제2 근본법칙"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 보기에 자신의 통계와 이 "균형성장조건"을 비교했다고 하는 편이 더 올바를 것이다. 


▲ <그림2> 세계수준의 수익률(r)과 경제성장률(g) 추이  (출처 : Piketty, 2014, 354쪽)

▲ <그림2> 세계수준의 수익률(r)과 경제성장률(g) 추이 (출처 : Piketty, 2014, 354쪽)



만일 <그림2>처럼 경제성장률(g)이 자본의 수익률(r)보다 적다면 자산가들은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될 것이다. 경제성장에 의해 노동이 가져가는 소득보다 자산의 수입이 훨씬 많다면, 또 자산가들이 자신의 자산수입 일부를 저축해서 자산을 더 늘린다면 부의 집중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피케티의 추산에 따르면 세계 주요국의 인구증가율은 점점 더 낮아질 것이므로 성장률과 수익률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단, 위 그림에서 보듯이 자산수익률이 전 역사에 걸쳐서 4~5%라면 그렇다는 얘기다.(이 점이 앞으로 경제학계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이다) 

이제 누가 잘 사느냐, 못 사느냐는 재능이나 노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상속에 의존하게 된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가난한 젊은 귀족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검사가 될 것인지, 돈 많은 미망인을 유혹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라스티냑의 딜레마"). 21세기는 다시 그런 "세습자본주의"가 될 거라는 얘기다. 

피케티의 또 하나의 업적은 이런 상황을 기초로 해서 소득분위별 소득과 재산의 추이를 추적한 것이다. 국민계정 통계와 세금 자료를 엮어서 장기 통계를 추정했는데 현재 대체로 상위 10%가 순자산의 70%를 소유하고 나아가서 1%가 그 반인 30~40%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림3> 참조). 


▲ <그림3> 유럽과 미국의 부의 불평등. (출처 : Piketty, 2014, 349쪽)

▲ <그림3> 유럽과 미국의 부의 불평등. (출처 : Piketty, 2014, 349쪽)



미국의 경우에는 최상위 노동소득도 부의 불평등을 촉진하고 있다. <그림4>를 보면 미국에선 1970년대부터 상위 10%가 노동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이 가파르게 증가해서 이미 이전의 최고치였던 1930년대 수준을 넘어서 거의 50%에 육박하고 있으며 유럽도 80년대부터 이런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 중에서도 최상위 1%가 그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피케티는 최고경영자들의 천문학적 보수는 일종의 지대라고 단언한다. 스스로 임금을 책정하거나 비슷비슷한 부류의 인사들이 보수위원회에 모여서 자신들의 임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상위 10% 내의 소득분포를 분석해서 베커의 인적자본론도 비판하고 있다. 최상위 1%와 나머지 9%는 거의 비슷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도 (따라서 한계생산성이 비슷하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도) 그 내부에서조차 임금의 격차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자산과 소득의 상위 집중이 점점 더 커지면 당연히 정치와 사법부까지 부자들이 마음대로 뒤흔드는 유럽의 "벨 에포크", 미국의 "도금시대"(둘 다 대체로 18세기 말에서 1910년경까지)가 부활할 것이다. 피케티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상황이다.  

피케티는 그런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면 글로벌 자본세와 최고세율 80%에 이르는 누진소득세를 전 세계가 동시에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정책은 스스로도 유토피아적이라고 이름 붙였듯이 세계 각국이 동시에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피케티는 EU나 미국과 같은 거대 경제권이 선도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 <그림4> 유럽과 미국의 소득불평등(상위 10%의 소득점유율). (출처 : Piketty, 2014, 324쪽)

▲ <그림4> 유럽과 미국의 소득불평등(상위 10%의 소득점유율). (출처 : Piketty, 2014, 324쪽)



하지만 이 정책을 실행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동아시아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두 배 가량 높고 자산의 불평등은 선진국에 비해 덜 진행됐기 때문에 자본세의 세율이 그리 높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주류경제학의 대대적 반박, 자본수익률이 과연 일정한지에 관한 논쟁, 그리고 정책대안에 관한 논란이 이어질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 "빨갱이"라는 낙인찍기는 이미 시작됐다. 그들에게 "21세기 자본"은 유령인 것이다. 


한국의 피케티 비율 

지난 5월 14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아주 중요한 보고서, "국민대차대조표 공동개발 결과(잠정)"를 펴냈다. 이 두 기관은 국민계정 통계의 최고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국민대차대조표"(세계적으로도 이 표를 만들기 시작한 건 10년 밖에 되지 않는다)를 만들고 있다. 피케티의 자료 중 기능별 분배(자본 몫과 노동 몫의 분할) 역시 국민계정에 의존하기 때문에 한국은행과 통계청의 자료는 바로 피케티 지표들과 비교할 수 있다.  

이번 자료에서 직접 나온 수치는 β값의 근사치이다. 한은과 통계청은 우리나라의 국민순자산(국부)은 1경 630조.6조원으로 국내총생산(1,377.5조원)의 7.7배로 추계되었다고 밝혔다. 이 수치를 피케티의 비율로 바꾸려면, 1) 분자의 국민순자산에서 정부의 자산을 빼서 민간 순자산을 계산하고 2) 분모의 국내총생산을 실질국민총소득으로 바꾸면 된다. (처음에는 국내 총생산을 국민총소득으로 바꾸는 실수를 했다. 국제비교를 위해 피케티의 정의를 따른다면 감가상각분을 뺀 국민소득을 써야 했다. 노동연구원 이병희박사의 지적으로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처음 계산에 비해 노동소득분배율도 달라졌는데 피케티의 정의에 따라 자영업자의 소득을 전체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비례에 맞춰 새로 계산했다. 이 역시 이병희박사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치가 잠정치이고 피케티의 각 수치에 관한 해석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절대적인 수치보다 추세를 확인하기 바란다. -필자 주) 현재 한은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부록과 한은 통계 데이터베이스)로는 2000년에서 2012년까지 추계가 가능하다. 그 결과가 <그림5>이다. 


▲ <그림5> 한국의 β(=민간순자산/국민총소득) 추이 (작성 : 정태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 <그림5> 한국의 β(=민간순자산/국민총소득) 추이 (작성 : 정태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하지만 현재 한은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서 민간과 정부의 금융순자산의 시계열은 최근 몇 년밖에 찾을 수 없다. 민간의 금융순자산은 현실적으로 0에 가까울 것이고(외국에서 빌려온 돈을 제외하면 차입과 대출을 합하면 0일 것이다) 정부는 마이너스겠지만(정부의 채권 발행만큼) 어쩔 수 없이 금융자산은 제외했다.(만일 외환보유액이 정부자산에 포함된다면 이 주장은 철회되어야 할지도 모른다.-필자 주) 그러므로 금융자산까지 포함하면 β값은 <그림5>보다 조금 더 커질 것이다. 



▲ 세계 각국의 β 값 추이. (출처 : Piketty & Zucman, 2014, 「Capital is Back: Wealth-Income Ratios in Rich Countries 1700~2010」)

▲ 세계 각국의 β 값 추이. (출처 : Piketty & Zucman, 2014, 「Capital is Back: Wealth-Income Ratios in Rich Countries 1700~2010」)



<그림5>와, <그림6>의 2000년 이후 각국의 β값 추이를 비교해 보면 국의 수치는 일본과 이탈리아 정도로 높은 수준(5.6 또는 560%)에서 시작해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한국의 β값은 7.5로 선진국 중 최고치이다.

β는 민간의 순자산(부)을 한 해의 국민소득으로 나눈 수치이다. 당연히 이 수치가 크면 클수록 부의 집적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이 수치 자체가 분배 상황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국민 모두 똑같은 양의 부동산과 생산자본,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통계에서 개인별 자산분배를 알 수 있는 통계는 없다.


▲ 한국의 자산 지니계수. (출처 : 새사연)

▲ 한국의 자산 지니계수. (출처 : 새사연)



그리하여 다른 방법으로 한국의 불평등 정도를 추정했다. 한국 노동패널(가구) 2차~11차 자료를 이용해서 자산 지니계수를 구해 보면(<그림7>) 2000년대에 우리나라의 자산 소유가 점점 더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물론 피케티는 지니계수에 대해 "불평등에 대한 추상적인 불임의 견해"라서 오히려 현실을 호도한다고 비판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β는 19세기 말(유럽의 벨 에포크 시대, 미국의 도금시대)의 극심한 불평등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아이들은 "레미제라블" 상황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또한 <그림8>에서 보듯이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최상위 1% 임금이 노동소득에서 차지하는 몫도 급증하고 있다. 


▲ <그림 8> 우리나라 노동소득 하위 99%의 소득비중과 상위 1%의 소득 비중. (출처 : 이병희 외,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시장 연구'. 2013, 57쪽)

▲ <그림 8> 우리나라 노동소득 하위 99%의 소득비중과 상위 1%의 소득 비중. (출처 : 이병희 외,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시장 연구'. 2013, 57쪽)



이런 불평등 상황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국민총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은 한은의 계에서 (1-노동소득분배율)에 해당한다. 한은 통계에서 노동 몫은 피용자보수/국민소득으로 계산된다. 여기서 자영업자의 잉여 중에 어느 정도나 피용자 보수에 포함시킬 건지, 국민소득은 어떤 수치로 할 건지가 논란이 된다. 공식 통계인 한은의 노동분배율(노동 몫)은 자영업자의 잉여를 피용자 보수에 넣지 않는다. 2000년 이후 한은의 노동소득분배율은 대체로 60% 수준(<그림9>)이니까 자본 몫은 40% 정도가 될 것이다. 여기서는 피케티의 방식에 따라 자영업자의 소득을 전체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비율에 따라 나누었다(<그림9>). 

또 피케티는 노동소득분배율을 계산할 때 통상적인 요소소득국민소득이 아니라 국민순소득을 사용하였다(회계적 항등식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분모가 다르기 때문에 한은의 노동소득분배율과 교차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한 것은 피케티 비율의 국제비교를 위한 방편일 뿐이다. 


▲ <그림9>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 (작성 : 정태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 <그림9>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 (작성 : 정태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피케티 방식으로 α(=1-노동소득분배율)를 구한 뒤 β로 나누면 민간의 자산수익률 r을 구할 수 있다(r=α/β, 피케티의 '자본주의 제1근본법칙'). 그렇다면 한국의 자산수익률과 실질국민소득증가율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적어도 선진국들도, 한국도 인구증가율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g가 점점 낮아질 거라는 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위에서 구한 r과 g(한은 통계에서 실질국민총소득증가율을 택했는데 어느 수치를 택해야 하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를 비교해 보면 한국의 불평등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있다. (<그림2>에 비교해서 아래 <그림10>의 g의 모습이 변화가 심한 것은 <그림10>은 극히 짧은 기간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 필자 주)


▲ <그림10> 한국의 자본(자산)수익률과 실질국민소득 증가율.

▲ <그림10> 한국의 자본(자산)수익률과 실질국민소득 증가율.



<그림10>에서 보듯이 한국의 자산수익률은 전반적으로 경제성장률을 상회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r과 g는 적어도 몇 십년에 이르는 장기적 추세 속에서만 의미가 있기 때문에 어떤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장률 그래프가 시사하는 것처럼, 그리고 거의 확실한 우리의 인구증가율에 비춰 보면 r-g가 점점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통계가 없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1960년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였을 것이다. 해방 후 농지개혁을 한 데다 한국전쟁으로 지주계급이 거의 소멸했기 때문이다. 지주들에게 돈 대신 준 지가증권이 전시 인플레이션으로 휴지조각으로 바뀌었다. 지주계급이 산업자본이나 금융자본까지 모두 장악한 동남아나 중남미와 비교할 때 동아시아가 경제성장이 빨랐던 이유 중 하나이다. 

또한 70~80년대의 높은 경제성장률 때문에 자산 불평등은 그렇게 빨리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위의 그림들에서 확인한 것처럼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대단히 빠른 속도로 사정이 악화되고 있다. 피케티가 책 곳곳에서 되풀이한 경구대로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운다."

세월호가 우리를 절망케 했던 것은 뻔히 눈뜨고도 단 한 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한국의 피케티 비율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전부, 곧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피케티의 주장대로 과감한 자산재분배와 소득재분배가 답일 테다. 그 스스로 "유토피아적" 해법이라고 말하지만 우리 아이들에 대한 현재의 심정이라면 결코 못 할 일이 아니다. 아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다시 한 번, 문제는 정치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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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3정태인/새사연 원장

 

 

 

 위클리펀치 405호 : 세월호의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아이들 모두를 살게 할 상생의 길

 

 

 

 

 

 

6 3, 아이들이 그렇게 간 지 49일째 되는 날입니다. 불가에서 영가의 극락왕생이나 환생을 빌며 49재를 치르는 날이지요.식상하기 이를 데 없는 표현이라 해도, 하루종일 내리는 비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 이라는 가정 아래 온갖 다짐을 했습니다. 우리 곁으로 오기만 한다면 그까짓 등수가 무슨 상관이랴, 그다지도 하고 싶은 일을 왜 우린 그렇게 못 하게 했을까, 다시는 죽음에 이르는 경쟁에 들지 않게 하리라.

 

저는 그 40여일 동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공부했습니(이미 그 일부는 여러분께 보여 드렸습니다만 조금 더 정확한 수치와 논리,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쟁까지 정리한 충실한 보고서를 곧 보내드리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불평등으로 향하는 내재적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300년에 이르는 장기 통계로 보여준 책이지요. 한 때 시장경제의 힘으로 물질적 풍요를 충분히 이룬다면,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민주주의를 활짝 꽃 피운다면 사람들 간의 불평등이 해소되어 훨씬 나은 세상이 오리라는 건 꿈이라는 얘깁니다. 해서 피케티의 책을 지옥의 묵시록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피케티에 따르면 경제학자들이 낙관적 생각을 하게 된 건 1910년부터 1950년까지의 외부쇼크 때문입니다. 즉 두 번에 걸친 세계전쟁과 대공황이 자산/소득비율(현재의 자산을 1년동안의 국민소득으로 표현하면 얼마나 될까)을 형편없이 떨어뜨렸고, 그 이후 95%가 넘는 소득세나 노동조합의 강화 등 강력한 분배/재분배 정책을 사회가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다시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이 벌어지기 시작해서 과거 가장 불평등이 심했던 유럽의 벨 에이포크나 미국의 도금시대(19세기말에서 1910년까지)를 방불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자산의 수익률이 경제성장율을 상회하고(r-g>0, r은 수익률, g는 경제성장율) 앞으로 그 격차는 더 커질 테니(우리를 비롯한 선진국의 경우 인구증가율이 떨어질 게 틀림없으니까요)앞 날은 더욱 암담하다고 할 수 있겠죠.

 

우리나라의 불평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통계가 부실해서 장담할 순 없습니다만 한국은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에 속했을 겁니다. 농지개혁과 한국전쟁이 지주계급을 소멸시켰고 고도성장으로 인해 자산보다 소득이 더 빨리 늘어났으니까요.

 

하지만 최근에 발표된 한은과 통계청의 자료(“국민대차대조표”)로 피케티 비율을 계산한 결과 한국은 어떤 선진국보다도 자산/소득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우리가 최근 체험하는 것처럼 최상위 1%의 소득이 치솟고 자산불평등 역시 대단히 빠른 속도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상류층과 보통 사람들 간의 격차가 확 벌어지고 있는 거죠.

 

1970년대나 80년대에 비해서 우리는 물질적으로 훨씬 더 나아졌습니다. 아이들이 요즘 누리는 풍요는 우리 땐 상상도 못할 수준이죠. 그런데 왜 아이들은 훨씬 더 불행해졌을까요? 그게 단순히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나약해서일까요? 아이들은 우리가 학생일 때보다 서너배는 더 공부합니다만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몇십배가 될 겁니다.

 

혹시 피케티가 분류하는 상류층(10%)와 중산층(그 아래 40%), 그리고 하층(하위 50%)간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떻게든 상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아니 적어도 루저가 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아이들을 죽음의 경쟁으로 몰아넣고 있는 게 아닐까요? 과거에는 상중하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지금은 가히 조선시대처럼 신분의 차이가 난다고 해야 할 만큼 벌어졌으니까요.

 

해서 우리는 아이들을 경쟁으로 몰아 넣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모두 노력해도 1등부터 50만등까지의 등수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상대적 지위 경쟁은 끝이 없고 하위 50%는 말 그대로 하류층이 되고 맙니다. 우리 아이들 모두 사회라는세월호에 갇혀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가만 있으라”(“딴 생각하지 말고 공부만 해라”)고 얘기하고 있는 거지요.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줄이면 됩니다. 피케티는 각 사회가 어떤 제도와 정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훨씬 더 평등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피케티가 제안한 정책은 글로벌 자산세와 최고세율 80%의 소득세입니다만 평등을 이루기 위한 정책은 얼마든지 더 있습니다. 바로 새사연이 금년에 집중할 주제이기도 합니다.

 

새삼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이 글이 여러분께 전달될 오늘, 6 4일이 지방선거 날이기 때문입니다. 경쟁을 강화하겠다는 교육감 후보는 우리 아이들을 기어코 죽음으로 몰아넣겠다고 얘기하고 있는 셈입니다. 누가 이런 경쟁구도를 없애겠다고 얘기하는지 꼭 살펴서 투표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세월호의 아이들을 잊지 않고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길입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강요하는 현재의 경쟁 구도 하에서 우리 아이들 을 모두 살려낼 길은 불행히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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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9정태인/새사연 원장

 

 

우리가 ‘세월호’의 절망에 빠져 있는 동안 바다 건너에선 세계의 아이들 수십억명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라는 ‘묵시록’이 화제다. 이제 마흔을 갓 넘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의 자본>이 그것이다. 문체는 발랄하고 스스로 자신의 얘기는 묵시록이 아니라 낙관의 메시지라고 말하고 있지만….

 

피케티에 따르면 자본(이 책에서는 모든 자산, 즉 토지자산, 금융자산, 산업자산)의 수익률(r)은 자본주의 역사 내내 4~5%였다. 심지어 로마시대에도 그랬단다. 이런 상황에서 성장률(g)이 떨어지고, 자본/소득 비율(현재의 자산이 국민소득의 몇배인가)마저 올라가면 r-g가 커져서 부(자산)의 집중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얘기는 경제학의 정설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리카도, 마르크스 등 고전적 정치경제학자들은 물론 쿠즈네츠의 역U자 가설, 모딜리아니의 평생저축 가설, 베커의 인적자본론, 그리고 경제학의 기초 중 기초라고 할 만한 한계생산력설, 심지어 시장실패론까지 피케티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아마도 지금 생물학계에서 ‘집단선택이론’을 놓고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듯이 경제학계도 한동안 시끄러울 것이다. 어떤 이론을 들이대든 부의 집중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피케티는 ‘글로벌 자본세’(전세계가 모든 자산에 대해 세금을 매긴다)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앞에 글로벌이 붙은 것은 자본을 향한 각국의 경쟁적 구애 때문에 어떤 한 나라가 나홀로 세금을 매기지 못하는 상황 때문이다. 피케티 스스로 “유토피아적”이라고 수식어를 붙일 만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참여정부 초기에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이정우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 상위 1%에만 해당하는 종합부동산세를 제시했을 때 당시 한나라당과 언론, 심지어 당시 수도권 민주당 의원들까지 “세금 폭탄”이라며 반대했다는 걸 기억하는가? 글로벌 자본세는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할 수밖에 없는데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세계의 상위 1%가 가만히 있을까?

 

우리는 사회적 경제가 부의 집중을 막고 사람들의 창의성을 북돋는 또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경제는 기본적으로 자산의 공유에 기초한다. 특히 개인의 자산이 되어서는 안 될 자연자원을 공동체가 소유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을 모두가 똑같이 누린다면 부의 집중을 막는 것은 물론 다음 세대를 위해 자연을 보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상 딱 한번 자산의 재분배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는데 그건 두 번의 세계전쟁과 대공황을 겪은 뒤였다. 이런 비극을 거치지 않고 사회적 합의에 따라 자산 재분배를 할 수 있있다면 그 나라야말로 선진국이라 불러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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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7김병권/새사연 이사

 

반값등록금 문제에 관해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아래 정 후보)가 부정적인 발언을 하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아들의 '미개국민' 발언에 이은 후속편이라 불러도 좋을 법한 충격적인 발언이다. 

야당은 물론 시민단체와 누리꾼, 심지어 교수들까지 나서는 등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인 정 후보 측은 사과가 아니라, 발언 취지가 왜곡되었다면서 해명에 나서는 모양새다.

각종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정 후보가 지난 20일 서울 숙명여대에서 열린 서울권 대학언론연합회와의 간담회에서 한 발언은 이렇게 요약된다. 

우선, 반값 등록금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최고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떨어뜨리고 대학 졸업생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을 훼손시킨다, 학생 부담이 줄어드니 좋지만, '반값'이라는 표현은 최고의 지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고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히 '반값'등록금이라는 표현상의 문제를 지적한 것처럼 보인다.

 


정말 '반값'이라는 표현에 대한 지적뿐이었을까

그러나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시장 재직 중 서울시립대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인 것에 대해 비판하는 대목에서 정 후보는 "시립대 교수를 만나보니 대학 재정도 나빠졌고 교수들도 연구비와 월급이 깎여 좋아하지 않더라"면서 명백하게 반값 등록금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음을 밝혔다. 

더 나아가서 "등록금보다는 기숙사 문제를 해결해주고 장학금을 더 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며 "(등록금이 비싼) 미국의 대학들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대학의 힘으로 나라를 이끌어간다"고 주장했다.

결국 서울시립대와 같은 등록금 인하 정책에 반대하고, 나아가 등록금 인하 대신 다른 방안을 선호하고 있으며,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경우가 참조할 만한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정 후보는 대학 등록금 인하 정책과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련 언론보도를 왜곡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정 후보 발언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대학교육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나 서비스로 간주하고 있으며, 등록금을 그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시장 가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시장에서 거래하는 상품으로 만들어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면 그것에 순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시장주의자의 전형을 기업가 출신 정 후보에게서 보게 된 것이다. 마치 할인을 하면 싸구려 인상을 받게 되고, 상품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마음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고등학생 70% 이상이 진학하는 대학을 포함하여 국민들이 받는 전반적인 교육이 각자의 경제력에 따른 구매 대상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라는 관념이 정 후보의 머릿속에는 들어설 틈조차 없어 보인다. 정 후보만 빼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다 아는 우리나라 헌법 31조 1항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대학 교육은 가장 잘못 매겨진 상품 가격

사실 교육만이 아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수요 공급에 따라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 말고도 공공영역을 포함하여 대단히 광범위한 사회의 공간이 존재한다. 교육과 보건, 주거, 환경, 공동체 등 서울시가 당면한 주요 사안들은 하나같이 시장으로만 풀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서울시와 같은 공공기관이 상당부분 떠안아야 할 과제라는 말이다.

때문에 대학교육을 경제력에 따라 구매하는 대상으로 보고 대학은 이를 판매하는 기업으로 볼 경우 커다란 함정에 빠지게 된다. 시장 논리로 해석해 볼 때, 사상 최악의 상품에 사상 최고의 가격이 매겨진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바로 대학 교육이기 때문이다. 

대학 4년 동안 부모의 지원으로는 턱없이 모자라서 아르바이트와 대출까지 받아서 수천 만 원을 지불하고 구매한 대학 졸업장. 그런데 그 상품의 가치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나아졌는가. 확답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체감하는 사실이다. 시장 가격의 메커니즘이 전혀 원형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학졸업장은 더 이상 정 후보가 걱정하는 '사회적 존경심'의 상징이 아니다. 대학 졸업장은 졸업 후 취업과 일자리를 전혀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이처럼 사회적 지위도 일자리도 보장해주지 않는데, 왜 대출까지 끼고 수천만 원의 돈과 그보다 더 아까운 젊은 시간을 바쳐서 대학교육을 구매하는가? 이는 시장 논리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일반 상품은 가격만 비싸고 효용가치가 없으면 구매하지 않는다. 그러면 가격이 내려가거나 공급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등록금 가격이 끊임없이 오른다고 대학 진학을 포기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효용 가치가 거의 없는데도 구매할 수밖에 없게 내몰리고 있다. 시장의 수요, 공급 논리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 후보가 모르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미국 대학이 최고 대학? 미국 대학생은 최고 빚쟁이!

과도한 대학 등록금이 단지 대학뿐 아니라 청년세대 전체, 그리고 사회전체의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미국이다. 이 점에서 정 후보는 그 사례 국가를 제대로 짚었다. 단 최악의 사례를 최고의 사례로 들었다는 것만 빼고.

정 후보가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우리나라와 1, 2위를 겨룰 정도로 대학 등록금이 비싸다고 소문난 미국의 학생들도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빚을 내서 등록금을 내야 했다. 그 결과 정 후보가 상상하듯이 미국이 최고의 대학이 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학생들이 최고의 빚쟁이가 되어야 했다.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연방 학자금 대출금은 이미 1조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민간 대출까지 포함하면 1조 2천억 달러 이상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규모는 도대체 어떤 정도일까? 

이는 미국 전체 자동차 대출이나 신용카드 대출 수준을 넘는 것은 물론 최대 규모인 미국 모기지 대출하고 유사한 엄청난 규모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2010년에 1조 달러, 2013년에 1조3천억 달러이니 경제규모 15위 국가인 우리 국내총생산 금액을 미국 가정이 학자금 대출로 안고 있는 셈이다.

대략 학생 1명당 평균 약 2만5천 달러(한화 약 2500만 원) 정도의 부채를 가지고 있는 셈인데, 학자금 상환을 3개월 이상 연체하고 있는 청년들도 10%를 넘어가고 있다. 심지어 학자금 수혜자의 40% 이상은 아직 상환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신규 졸업생의 40%가 주택이나 자동차 등 주요 소비를 연기하고 있고 이는 미국경제의 회복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부채 상환 압력에 시달리는 미국 청년들이 결혼을 미루는가 하면,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경력에 도움이 안 되는 임시직을 전전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한 마디로 전체 세대의 문제, 나아가 사회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중이다. 이 문제가 국가적 중대 사안으로 떠오르면서 오바마 정부가 일부 면제조항과 분할상환제도를 도입하는 등 고심하고 있지만 대책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

 


정몽준의 진심, 그 철학이 더 위험하다

이런 상황은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식자들이 우려스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정 후보는 등록금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 대학을 닮아야 한다고 하니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다른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조차 반값 등록금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자체 선거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이 시각에도 성남시와 경기도를 필두로 '학자금 대출 이자 부담이라도 줄여주자'고 나서고 있는 중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유감스럽게도 정 후보의 등록금 발언은 왜곡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뼛속 깊이 내면화되어 있는 철학과 신념에서 비롯된 문제다. 교육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활동을 시장의 상품 거래로 해결할 수 있다는 기업인 출신의 사고 관념에서 발원한 문제다. 시장이 정해준 상품 가격에 손대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시장이 정해준 등록금 가격을 반값으로 할인하면 위신과 존경심이 훼손된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아마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와 우리 사회가 지금 안고 있는 가장 절박한 문제들은 그런 관념으로는 풀 수 없다. 세월호 참사가 지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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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정태인/새사연 원장

프랑스의 젊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이제 월드컵의 스타 축구선수만큼 유명인이 됐다. 그의 책 <21세기 자본>은 분배에 관한 이야기다. 1960년대 이래 분배 문제는 주류경제학에서 찬밥 신세였으니 상전벽해인 셈이다. 


이론적으로는 보울리가 “자본과 노동이 가져가는 몫은 일정하다”는 주장을 해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새뮤얼슨의 지지를 받았고(‘보울리 법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같은 상을 받은 쿠즈네츠는 “자본주의 발전 초기에는 분배가 악화되지만 일정 단계를 넘어서면 분배가 개선된다”는, 저 유명한 ‘역U자 가설’을 내놓았다. “시장에서 자본이나 노동은 생산에 기여한 만큼 보수를 받게 된다”는 ‘한계생산력설’은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온다. 따라서 “분배는 신경쓰지 말고 성장만 하면 된다”, “정부가 함부로 분배 문제에 개입하면 성장을 방해해 오히려 더 나쁜 상황이 올 것”이라는 주장이 50년간 우리를 지배했다. 피케티는 이런 ‘정설’들을 단숨에 뒤집었다.

그의 무기는 쉽게 부정할 수 없는 장기 통계, 즉 역사적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통계는 우리나라의 전 자본스톡(국부)을 한 해의 국민소득으로 나누면 얼마나 될까를 보여주는 β(=W/Y)이다. 이 수치에 자본의 수익률(r)을 곱하면 국민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α=rβ)이 된다(제1법칙). 그리고 역사에서 찾아낸 이 수치를 신고전파의 ‘균형성장 조건’(β=s/g, s는 저축률, g는 경제성장률)과 비교했다.

실제 서구의 역사에서 β, 즉 자본스톡의 상대적 크기는 19세기 말(프랑스의 벨 에이포크, 미국의 도금시대)에 6~7배에 달했고 1910년부터 1950년대까지 2~3배까지 뚝 떨어졌다가 1980년대부터 급격히 상승해서 현재는 5배를 넘어섰다. 또 그는 자본수익률(r)은 전 역사를 통해서 4~5%로 일정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하여 현재 선진국의 불평등 지표는 2차대전 후 최저치를 기록한 후, 1980년대부터 19세기 말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초에 분배가 개선됐던 것은 두 번의 전쟁에 의한 자본의 물리적 파괴, 그리고 뉴딜 등 사회개혁에 의한 자본 및 소득의 중과세(최고 부자에 대한 소득세가 90%를 넘었다) 때문이었다. 

또한 앞으로 경제성장률은 점점 더 낮아질 전망이므로 세계는 ‘잠재적으로 가공할’ 상황에 빠질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피케티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 14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은 ‘국민대차대조표 공동개발 결과’(잠정)에서 “2012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순자산(국부)은 1경630.6조원으로 국내총생산(1377.5조원)의 7.7배로 추계(잠정)된다”고 발표했다. 이 수치를 피케티의 정의대로 다시 계산하면 우리나라의 β는 약 5.6이 된다. 한편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노동소득분배율(1-α)은 60% 정도니까 우리나라의 α는 약 40%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r(=α/β)는 약 7.1%나 되는데, 이 수치는 세계 평균보다 훨씬 높다.


현재 우리의 β는 일본과 이탈리아 다음이고 α는 세계 1위일 것이다. 한은과 통계청 보고서의 부록을 보면 2000년 이후 이 수치가 대단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불평등은 선진국 어느 나라보다 더 빨리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아마도 1960년대에 우리나라의 β는 세계 최저 수준이었을 것이다. 농지개혁과 한국전쟁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불평등의 늪이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체감하고 있다.

세월호가 우리를 절망케 했던 것은 뻔히 눈뜨고도 단 한 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한국의 피케티 비율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전부, 곧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피케티의 주장대로 과감한 자산재분배와 소득재분배가 답일 테다. 그 스스로 ‘유토피아적’ 해법이라고 말하지만 우리 아이들에 대한 현재의 심정이라면 결코 못할 일이 아니다. 아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다시 한번 문제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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