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24정태인/새사연 원장

안녕하세요? 경제의 흐름을 짚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경제일지를 만들려고 인터넷에서 신문들을 뒤적이니 온통 걸리는 건 '문창극'이라는 이름입니다. 


문창극과 '국가 개조'


일제 강점기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인식, 심지어 6.25 한국전쟁에 대한 종교적 해석 등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의 경제관 또한 문제입니다. 2010년 3월 15일 자 '공짜 점심은 싫다'라는 그의 칼럼을 읽어 보시죠. 


[관련 글] (☞ [문창극 칼럼] 공짜 점심은 싫다)


우리는 문창극 후보자가 새누리당과 주류경제학계에서도 보기 드문 철저한 시장주의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복지국가를 비판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문구, "공짜 점심은 없다"(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 스웨덴의 위기를 비판할 때 '스웨덴 병'과 함께 인기를 끌었던 말이죠)를 아예 철학적 차원으로 승화시켜서 “공짜 점심은 싫다”까지 나아갔다고나 할까요?


요컨대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건 '공짜 점심'을 거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이에게 무엇을 먹이건 밥은 부모의 책임이라는 겁니다. "부자는 무상급식에서 빼자"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주장 역시 우파 포퓰리즘으로 비판합니다. 


한마디로 지극한 시장주의입니다. "시장에서 나타난 결과는 객관적이고 각 개인이 선택한 결과이므로 마땅히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질투와 시기의 산물이다. 무상으로 표현되는 어떤 재분배정책/복지정책도 개인의 인센티브(일할 의욕)를 떨어뜨려 경제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는 거죠. 


이런 분이 총리가 된다면 박근혜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나 '국가 개조'가 어떻게 진행될지 능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까지 '혁신'과 '개조'를 명분으로 규제완화와 민영화에 악용되겠죠.  


최경환이 더 문제다 


하지만 경제 문외한인 문창극 씨가 구체적인 악행을 저지르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 면에서 더 큰 문제는 최경환 부총리 후보자입니다. 그는 6월 13일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부동산이 불티나게 팔리고 프리미엄이 붙던 '한여름'이 아니고 '한겨울'"이라며 "한여름 옷을 한겨울에 입으면 감기 걸려 죽지 않겠나"라고 말했습니다. 다름 아닌 총부채상환비율(DTI)와 주택담보 비율(LTV) 얘깁니다. 은행에서 빚을 얻을 때 사려는 집값의 일정 비율 이상은 안 되며(LTV) 원리금 합계가 소득의 일정 비율을 넘어서도 안 된다(DTI)는 은행 대출규제를 문제 삼고 있는 겁니다. 


▲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된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연합뉴스

▲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된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연합뉴스


LTV와 DTI에 관해서는 저도 개인적으로 추억이 많습니다. 우선 제가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경제비서관(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차장)일 때 이 정책 수단이 처음 제기 됐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2005년 경제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부동산 경기 과열이었습니다. 당시 핵심 문제는 제가 대통령에게 설명 드렸듯이 "공급을 늘리는데도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은 그보다 빨리 수요곡선이 오른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 즉 투기수요 때문"이라는 데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투기수요를 잡아야 했고 그래서 등장한 게 종합부동산세였습니다.  


한편 수요곡선의 이동속도는 금융대출이 좌우합니다. LTV와 DTI는 이 속도를 늦추는 정책, 즉 능력이 없는 사람까지 투기에 참여해서 후일 파산하는 걸 예방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참여정부는 2006년 11월 이들 금융규제를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부동산 투기는 진정됐습니다. 어쩌면 건설 및 부동산업자, 정부와 청와대 내의 성장론자, 그리고 주류경제학자들이 종부세를 막느라고 힘을 다 빼서 이 두 정책은 무사통과 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LTV와 DTI는 4년 뒤, 2010년 초여름에 다시 한번 화제가 됐습니다. 그 해 7월 20일 이명박 정부의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은 DTI와 LTV가 "거시 건전성 규제 수단으로서 세계적인 모범 사례"라고 말했습니다(이후 그는 이 주장을 자신의 학술 논문에도 집어넣었습니다).


신현송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인복이었습니다. 세계 금융위기의 진단과 처방이라는 점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프린스턴대로 스카웃된 학자가 청와대의 보좌관이 된 건 참으로 기이했습니다. 제 의문을 풀어준 건 장하준 교수였죠. 이명박 씨가 현대건설 사장을 할 때 신 교수의 아버지는 부사장이었고, 이후 이명박 씨가 런던에 올 때마다 신 교수의 집에서 잤다나요(신 교수는 원래 옥스퍼드대 교수였죠). 신 교수는 이명박 씨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사이였답니다. 


이 개인적 인연이 이명박 정부를 수렁에서 구했습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신 보좌관은 2010년 '거시 건전성 규제 3종 세트(선물환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 부담금)'를 도입했습니다. 단기자금의 유입을 줄이는 정책이었죠. 당시에 저는 이 정책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의 이력을 알게 된 것도 "어떻게 이명박 정부에 이런 인물이 있을 수 있나"를 수소문했기 때문이니까요. 


신 교수가 LTV와 DTI가 '세계적인 모범'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것은 2010년 당시에도 정부 내에 DTI와 LTV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당시 한나라당 의원 출신인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2010년 7월 14일 "DTI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부동산 경기가 과열됐을 때 쓰는 것"이라며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어 있을 때는 신축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불을 지폈습니다. 당시의 건설업자들, 그리고 대부분의 경제성장론자들의 소원을 대변했던 거죠. 하지만 신 교수가 강력하게 막아서서 이명박 정부에서 이 규제완화 만큼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신 보좌관에게 이들 금융규제는 부동산 대책이라기보다 거시 건전성 규제(세계금융위기 이후 만들어진 용어로 거시 경제의 불안정성을 미리 예방하는 규제)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만일 2010년 거시 건전성 규제 3종 세트가 도입되지 않고 오히려 최경환 당시 지경부 장관의 주장대로 경기를 살리기 위해 LTV와 DTI를 완화했다면 한국은 이명박 정부 말기, 늦어도 박근혜 정부 초기에 심각한 금융불안에 시달렸을 겁니다.  


또다시 4년이 지난 지금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빚내서 집을 사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건설경기로 경제를 살리자, 그런데 공급을 늘리는데도 집값이 오르려면 2005년과 같은 투기수요가 필요합니다. 더구나 그때와 달리,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기꺼이 빚내서 집을 살지 의문이니 더 강한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마 이런 규제완화에도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더 강한 규제완화를 들고 나올 게 틀림없습니다. 


최 후보자 말대로 LTV와 DTI는 부동산 과열 때문에 도입된 정책이니 이젠 그 원인이 사라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 후보자가 2010년에도, 또 지금도 모르고 있는 것은 거시와 금융입니다. 지금 한국 경제의 최대 복병은 1025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에 도달한 가계부채입니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가구소득은 연평균 4.6%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가계부채는 연평균 8.4% 증가했습니다. 그 결과 가계 부채 비율도 꾸준히 올라 지난해 말 161.3%를 기록했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소비가 늘어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부동산 투기를 일으켜서 가계부채를 더욱 증가시키겠다는 정책은 당장은 경기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일반 서민은 움직일 것 같지 않고 자산가 계급만 일부 반응을 보일 것으로 보입니다만), 미래의 더 큰 폭탄을 준비하는 거나 다름없는 거죠. 


<조선일보>는 여야를 막론하고 강봉균, 한이헌, 권혁세 등 과거의 경제 관료들을 총동원해서 부동산 경기부터 살려야 한다고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말기부터 지금까지 부동산 규제는 계속 완화됐지만 아직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니, 이제 마지막 남은 금융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거죠. 


[관련 기사] (☞ "한국경제 남은 골든타임(선진국 경제로 진입할 마지막 기회) 2년뿐… 不動産부터 살려라")


불행하게도 박근혜의 청와대에는 신현송 보좌관이 없습니다. 지난 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을 때 현오석 부총리는 LTV와 DTI의 완화를 슬쩍 흘렸습니다. 당시엔 신제윤 금융감독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일제히 반대에 나섰죠. 가계부채와 은행의 거시 건전성이 문제라는 정답을 들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이들도 태도를 바꿨습니다. 신 금감위원장은 침묵하고 최 금감원장은 지난 17일 "LTV·DTI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말했죠. 불과 4개월 만에 우리 경제에 무슨 큰 변화라도 생겼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최 후보자가 실세이기 때문일까요?  


가계소득을 늘려야 할 시점에 가계 부채를 늘리는 정책에 일반 서민들이 현혹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4.06.24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 5월 23일 목 빳빳하기로 유명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의 경제에디터 크리스 질즈(Chris Giles)가 칼을 빼들었다. 금년 초 미국에서 번역본이 출간된 후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책 <21세기 자본>이 표적이었다.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 아이들이 ‘레미제라블’이나 ‘왕자와 거지’의 시대처럼 극심한 불평등을 겪을 것이라는 피케티의 암울한 예언은 전 세계의 보수 언론과 주류 경제학자들을 자극했다. 하지만 여태 나온 비판은 기껏 ‘색깔 칠하기’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피케티의 비장의 무기인 장기 통계 자체를 문제 삼았으니 과연 <파이낸셜타임즈>답다.

 

질즈는 무려 9쪽에 걸쳐 피케티가 통계를 뻥튀기하거나 비교 연도를 잘 못 골랐으며 자기 마음에 드는 수치를 일부러 뽑아 썼다고 밝혔다. 그 중 결정적인 대목은 영국의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완화되었다는 주장이었다.

 

 

 ▲ 지난달 2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 피케티의 연구 오류를 지적하는 기사. 

▲ 지난달 2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 피케티의 연구 오류를 지적하는 기사.

 

그는 신뢰할만한 통계로 영국 정부의 ‘부와 자산 조사’(Office of National Statistics, Wealth and Assets Survey)를 꼽으면서 이 통계에 따르면 상위 10%에 집중된 부는 44%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케티의 71%에 비하면 현저하게 적은 수치다. 세계의 언론들은 이 주장을 받아썼고, 경제학자들도 이 기사를 인용해서 피케티에 대한 불신을 부추겼다.

 

일주일 뒤 피케티는 겸손한 어투로 10쪽에 이르는 반박문을 실었다. 핵심은 질즈가 불평등에 관한 시계열 통계를 작성하면서 과거의 수치는 세금 자료를 사용하고 최근 수치는 ONS의 센서스 자료를 이어 붙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소득을 직접 물어보는 센서스 자료는 부자들의 소득을 과소평가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최상위 구간이 ‘10억원 이상’이라면 50억원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나 100억원 이상의 억만장자도 이 구간에 체크할 수밖에 없고, 일반적으로 부자들은 자신의 소득을 줄여서 대답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세금환급자료는 국세청의 사후 검증이 있기 때문에 훨씬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통계의 앞부분은 세금자료를 이용하고 뒷부분은 센서스 자료를 이용한다면 당연히 불평등은 한결 완화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기실 센서스 자료와 세금자료를 동시에 고려해서 통계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 피케티의 핵심 주장이었다. 영국의 경우엔 앤소니 애트킨슨(Anthony Atkinson, 옥스퍼드대) 등과 함께 이 방법으로 10여년에 걸쳐 통계를 만들었다. 피케티와 동료들은 논문을 출판하면서 모든 자료를 인터넷에 액셀파일로 공개했다. 자신들의 오류가 있다면 지적해 달라는 것이고 다른 나라도 동일한 통계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계층별 재산소유 상태를 알 수 있는 통계는 한국은행, 통계청, 그리고 금육감독원이 2012년부터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가 유일하다. 이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의 상위 10%는 45%의 순자산을 소유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가 밝힌 영국의 수치와 비슷한데 이 역시 센서스 자료이다. 재산세 자료를 이용하면 한국의 이 수치도 70%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세청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한 우리가 이 의문을 풀 길은 없다.

 

고무적인 일도 있다. 지난 6월 16일 한국은행은 피케티 비율 중 하나인 β(=W/Y, 민간 순자산의 가치를 국민소득으로 나눈 값)의 통계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부의 불평등과 관련한) 논의가 합리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숫자를 만드는 우리가 시계열 자료를 만들어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뒤따랐다.

 

하지만 β는 국민소득 중 자산(자본)이 가져가는 몫을 보여줄 뿐, 계층별 불평등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예컨대 β값이 제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모든 국민이 부동산과 금융자산, 그리고 산업설비를 똑같이 소유하고 있다면 부의 분배는 평등한 것이다.

 

계층별 불평등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한은 등의 센서스 자료와 함께 국세청의 자료가 공개되어야 한다. 국세청이 한국은행과 같은 마음을 먹으면 얼마나 좋으랴. 실태를 알아야 논의를 하고, 필요하다면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겠는가.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4.06.18정태인/새사연 원장


“선거 다음 날인 6월5일이 마감입니다.” 내 원고 ‘담당’인 차형석 기자의 메시지가 전해진 순간, 이 글의 주제는 정해졌다. 내 아무리 경제 쪽 칼럼을 맡았다고 해도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주제를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여 밤새워 텔레비전에서 반짝이는 숫자들을 들여다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지만 마땅히 쓸 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선거를 치르면서 ‘이거다’ 싶었던 생각들은 그저 ‘감’일 뿐 아무런 근거가 없다. 예컨대 “베이비 부머인 50대는 여전히 여당을 지지했을 거다” “이번에 그나마 야당이 참패하지 않은 것은 세월호 탓에 30~40대 앵그리 맘들이 마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등등이 그러하다.

확실한 것은 17개 광역시·도 중 13개 지역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었다는 사실뿐이다. 세월호는 확실히 교육을 정치로부터 분리한 것처럼 보인다. 교육감 후보들의 정당 기호가 없다는 사실도 이런 결과에 일조했을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의 말대로 “한국의 역사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아니 나뉘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적어도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기만 하면’이라는 가정 아래 우리가 애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상상해보았을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비교 대상이 될 만한 나라 중에서 최악의 자산불평등을 가진 나라(내가 일하고 있는 연구원에서 계산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피케티 지수 β(민간순자산/국민소득)는 7.4로 이탈리아와 일본, 프랑스보다도 높다), 임금격차 또한 세계 최악의 수준이며,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대학 서열에 따라 정해지는 나라에서 현재의 극단적 경쟁 교육은 필연이다.


말코큰뿔사슴의 끝없는 ‘등수 경쟁’이 가져온 불행 


한국에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 경쟁은 50만명이 한꺼번에 치르는 ‘죄수의 딜레마’다. 암기식 입시교육, 나아가 사교육을 안 할 도리가 없지만 모두 똑같은 노력을 한다면 등수는 그대로일 것이다. 아이만 괴롭히고 성과는 없는 경쟁, 모두에게 손해인 경쟁에 우리는 아이들의 생명을 내맡기고 있다. ‘할아버지의 재산,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승리의 비결이라는 우스갯소리는 이 게임의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다. 안 할 도리가 없는 경쟁이지만, 보통 집안이라면 거의 100%의 확률로 패배가 정해진 게임에 아이들을 몰아넣고 있다. 등수 경쟁은 ‘상대적 지위 경쟁’이다. 경제학자 프랭크(R. Frank)가 <경쟁의 종말>에서 지적했듯이 가장 나쁜 경쟁이다. 말코큰뿔사슴은 우수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큰 뿔을 가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지만 결국 점점 큰 뿔을 가지게 된 이 종은 사자의 공격에 취약하게 된다. 등수 경쟁은 끝이 있을 수 없다.

애서모글루(D. Acemoglu)와 크레머(M. Kremer), 그리고 미안(A. Mian)은 2008년에 고강도 유인(high powered incentive)이 ‘노력의 구성’(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할 노력)을 왜곡할 수 있다는 글을 발표했다. 예컨대 의료 분야에서 의사가 병원 수입을 늘리도록 장려한다면 그들은 고가의 장비를 불필요하게 사용하려 들 것이고, 기소를 많이 하는 검사에게 승진 기회를 더 준다면 그들은 범죄자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교육 또한 그렇다. 학교들이 일제고사의 순위에 신경을 쓴다면 점수 올리기 좋은 과목만 집중적으로 가르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국의 교육 실태를 알았다면 이런 주장의 가장 좋은 증거가 되었을 것이다. 애서모글루 등은 수익성이 유일한 목적일 수 없는 분야, 즉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서는 ‘저강도 유인’을 사용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한다.

경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의 각종 불평등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피케티가 제안한 자산세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제아무리 진보적이라 할지라도 교육감 13명이 이런 근본적 치료를 하거나 대학입시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평소에 50만명의 등수를 매기는 일제고사를 없앨 수는 있으며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흡수하는 방법도 고안해낼 수 있다. 역사 교과서나 경제 교과서의 편협성을 누그러뜨릴 수도 있을 것이며 나아가서 ‘혁신학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기 교육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가 이런 개혁에 동의하게 된다면 비로소 우리는 아이들을 이 거대한 ‘세월호’에서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과연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13명 교육감이 그 답을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4.06.12이은경/새사연 연구원



장애는 빈곤의 절친한 친구

 

장애인이 있는 집은 가난하다당연하다소득은 낮고 지출은 많기 때문이다장애인은 사회적 편견이나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질낮은 일자리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장애로 인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작업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진다다른 가족은 장애가족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취직하기 어렵거나 시간제임시직밖에 구할 수 없다반대로 돈쓸 데는 많다장애는 추가 생활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의료재활사회적응이동재활보조기구주거비와 같이 장애로 인해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이제 장애는 빈곤의 절친한 친구가 맞는 듯 하다.

 

장애인이 있는 집은 가난하다당연하지 않다.


위에 설명한대로 장애인은 일자리에서 충분한 소득을 얻기 어려운 반면지출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들은 장애인이 있는 가구에게 사회적 지원을 한다장애는 개인의 탓이 아니기 때문에장애때문에 빈곤해지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장애로 기울어진 경기장을 평평하게 하기 위한 사회적 개입이 바로 복지다.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 의료민영화?


하지만 우리의 대한민국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잔인한 국가로 장애를 밝혀도 아무런 복지혜택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그러다 보니 보고된 장애인 규모는 국제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 1/3이 못되는 것으로 추정된다여기에 엄격한 기준으로 중증에 해당하는 장애인만 지원하는 선별(잔여적급여 덕분에 복지수급을 받으려면 가난해야 하고장애도 회복되지 않아야 한다그 결과 보고된 장애인의 25.7%만이 매우 적은 소득지원을 받고 있다단순 계산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인이 보고된 숫자의 2배면 전체 장애인의 13.4%, 3배면 8.9%정도만 소득지원을 받고 있는 셈이다.

 

소득에서 보장을 해주지 못하면필요한 서비스라도 제대로 주고 있을까? 2011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장애등록 이후 혜택을 받는 정도에 대해서는 받고 있다는 응답은 37.6%, ‘별로 받고 있지 못하다’ 62.3%로 소득보장에 비해서는 좀 높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의 서비스만 받고 있다사회 및 국가에 대해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사항은 소득보장(38.2%), 의료보장(31.5%), 고용보장(8.6%), 주거보장(8.0%)의 순으로 역시 소득과 의료가 장애인의 가장 큰 요구사항이었다하지만 정부의 대답은 장애인연금 개악과 장애인노인을 위한 정책이라며 포장한 의료민영화이다.


의료민영화장애인과 취약계층에게 치명적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의료민영화는 크게 의료기관에 자회사를 허용하고 부대사업을 광범위하게 풀어주는 것과 원격의료이다물론 그 외에도 신의료기술/의약품 신속허가제도나 법인약국허용외국인환자 유치를 위한 각종 규제완화 등의 독소조항도 꼼꼼하게 포함되어 있다.

 

먼저 병원이 영리자회사를 두고 부대사업을 확대하면 어떻게 될까지금도 수도권 대형병원에는 호텔급의 서비스와 멋진 가게들이 즐비하다대부분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거대한 병원을 지어놓았기 때문에 병원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운데다식당장례식장은행 등 다양한 서비스 시설을 완비해 놓아 병원 내에서 모든 걸 해결하게 된다하지만 고가의 임대료를 내고 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비싸다병원에서 판매하는 재활보조기구들 역시 질은 좋을지 모르나 시중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가격이다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은 이런 부대사업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다병원 옆에 숙박시설을 짓고 지방에서 몰리는 환자와 보호자관광객에게 호텔업을 하게 된다또한 병원과 연계된 제약회사의료기기회사소모품회사에서 제공하는 약의료기기재활용품 등을 판매하게 된다재활요양간병이나 돌봄 같은 서비스도 병원과 연계된 곳만 연결해줄 것이다그 결과는병원에 가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해진다.

 

반면동네에서 바로 갈 수 있는 저렴한 공공병원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진주의료원 폐쇄로 장애인 산부인과와 장애인 치과가 없어진 것은 그 신호탄이다이미 상당수의 공공병원이 산중턱고속도로 옆허허벌판 등 가기조차 어려운 곳으로 이전했거나 향후 이전할 계획이다버스도 다니지 않는 곳이 많다이유는 단순하다수익만을 기준으로 삼다보니 도심의 땅을 팔고 저렴한 곳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그 결과로 발생하는 의료접근성 문제에 대한 정부의 답은 확실하다원격의료!

 

원격의료장애인 의료문제의 해결책인가?


정부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이 원격의료를 통해 의료접근성이 향상될 것이라며 의료민영화의 대표적 정책인 원격의료를 장애인을 앞세워 추진하고 있다하지만 원격의료는 장애인 의료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제대로 된 원격의료를 위해서는 의료기관과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 기기외에도 생체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진단기기와 이를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이 같이 보장되어야 한다결국 돈과 사람이다정부는 모니터와 휴대폰만으로 원격의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이렇게 될 경우엄청나게 위험한 진료가 남발되거나결국 돈을 내고 기기를 전부 구입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주변에 갈 수 있는 저렴한 동네 병의원이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정부의 의료민영화는 결국의료기관의 대형화수도권 집중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정부 역시 그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끌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형편이다하지만 지금도 장애인들은 의료비 부담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없는 돈을 내고 가는 의료기관에서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고 있지 못하다.

 

2011년 장애인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년도보다 생활비가 더 든 장애인가구는 72%나 되는데세부내역을 보면 의료이용장애보조기구요양간병비로 전부 의료관련 비용이다또한 장애인의 70.0%가 자신의 장애상태와 관련이 있거나 장애 외의 다양한 만성질환을 앓고 있고 72.4%가 정기적 진료를 받고 있어 의료수요 역시 매우 높다하지만 18.9%가 최근 1년간 본인이 병의원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경험이 있었고가지 못한 이유로는 경제적인 이유가 58.7%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비 폭등과 의료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의료민영화 정책을 장애인을 위해서라며 추진하는 것은 거의 사기에 준하는 정부 행정권력의 폭거로 보아야 한다장애인의 의료문제를 해결하고 장애라는 이유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경제성장만이 정부의 역할이 아니고 의료민영화로 경제가 성장하지도 않는다이제 그만 의료민영화의 헛된 꿈을 버리고 진정한 국민 행복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4.06.11정태인/새사연 원장

 

내가 힘닿는 범위 안에서 선거운동을 한 두 후보는 당선됐다. 출구조사부터 널찍한 폭으로 이기는 것으로 나왔기에 여느 선거처럼 바작바작 애가 타지도 않았다. 더구나 교육감 후보는 4%에서 40% 지지로 기적을 빚어내며 승리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기초선거 결과가 보도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도저히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

발단은 이랬다. 마포구 오진아(정의당), 구미시 김수민(녹색당), 관악구 나경채(노동당) 의원은 모두 한 뿌리 진보정당 출신 현역 의원들이었다. 지난 4년 동안 이들은 빼어난 성과를 거뒀고 주민들과 한 호흡이었지만 모두 낙선했다. 여기에 더해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과천의 서형원 후보(녹색당)도 낙선했다. 이들이 떨어진 이유는 도대체 뭘까? 흔히 듣는 답은 새정치연합과의 ‘후보 단일화 부재’이다.

진보정당은 교과서적 정당정치를 하는 곳이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가치와 비전, 정책에 관해 (간혹 과도할 정도로) 진지하게 토론하고 지역에 뿌리박으려 노력하는 정당들이다. 이들 정당은 기초선거의 정당공천제 폐지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들의 자랑스러운 정당은 후보의 발목을 잡았다.

도대체 정당이 뭐길래? 이 의문은 꼬리를 물고 점점 부풀어 올랐다.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도 이번 선거의 특징이다. 이들의 지지율은 4년 만에 평균 9.3%포인트 올랐다. 흔히 세월호 참사의 여파라든가 후보 단일화, 그리고 혁신교육의 성과를 이유로 든다. 하지만 진보정당들의 지지율은 모두 합쳐 10%도 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당선 교육감들의 성향은 새정치연합이라기보다 정의당이나 녹색당에 더 가깝다. 교육감 당선자들도 지지하는 당을 표기했다면 낙선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새정치연합 소속이거나 후보 단일화가 당선의 충분조건인 것도 아니다. 같은 새정치연합 소속이라 해도 박원순, 최문순 당선자와 송영길, 김진표 낙선자를 비교해 보면 누가 뭐래도 후자가 더 ‘진성 민주당’ 사람들이다. 즉 거의 같은 조건에서 시민들은 ‘비민주당’ 인사를 더 선호한 것이다.

침몰하는 세월호 사진 속에서 치른 선거임에도, 침몰하지 않은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전국적으로 “박근혜 마케팅”에 의존하고 일부 후보의 경우 네거티브에 목을 맨 것은 정상적인 정당의 행위가 아니다. 스스로 정당임을 포기한 덕에 파국을 모면했다.

이 모든 현상들의 배후에 갖가지 “정치 혐오”와 “정당 불신”이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정치는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 모두의 공익, 또는 공공성의 내용과 실현 방식은 정치(숙의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정당하게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가 암시하는 사회적 재난, 극심한 불평등이 불러올 경제적 위기(한국의 피케티 비율은 우리나라가 선진국 어느 나라보다도 자산 불평등이 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핵발전소의 당면한 위험, 나아가서 한 나라를 넘어서는 생태위기를 자동적으로 시장이 해결해 줄 리 없다. 오직 정치가 희망이고 이를 위해 존재하는 근대적 제도가 정당이다.


선거에서 개인의 도덕성과 능력은 매우 중요하며 이번 선거도 이를 입증했다. 하지만 서민적 엘리트라 해도 거대한 방향 착오를 일으킬 수 있고, 합당한 정책을 수행하려 해도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정치 엘리트의 견제, 정책 형성과 실현, 둘 다 정당이 해야 마땅한 역할이다.

그런데 이 당 저 당 할 것 없이, 지금 우리 정당들은 정치를 가로막는 존재가 된 것처럼 보인다. 독립지역정당의 합법화, 비례대표제의 대폭 확대와 결선투표제 도입, 직접 민주주의 제도의 도입 등 부분 해법은 수없이 제시되어 있다. 직접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거대한 위기와 맞서기 위해서도 현재의 정당정치는 총체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방향으로, 또 어떻게?” 이 의문이 한낱 시민을 가위처럼 짓누르고 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