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12정태인/새사연 원장

안녕하세요? 프레시안 조합원들께 경제뉴스 읽어드리는 정태인입니다. 이번 주에는 별다른 세계 경제 소식이 없군요. 이럴 때는 분명 무소식이 희소식입니다.

양적 완화 정책 유지, 그리고 공화당의 몽니 - 미국의 빚은 유지될 수 있을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30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월 85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사들이는 현행 3차 양적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기준금리를 0∼0.25%로 유지하는 초저금리 기조도 이어가기로 한 거죠.

이날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당) 등 공화당 의원들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해 리비아 벵가지 영사관 피습 사건과 관련한 정보를 더 제공하지 않으면 옐런 연준 의장 지명자 및 제이 존슨 국토안전부 장관 지명자의 인준을 보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당파 싸움이 미국 경제를 얼마나 위험하게 하는지에 관한 생각은 물론 꿈에도 못 하겠죠.

새 기사가 없어 약간의 여유가 있으니, 세계의 흐름을 읽을 만한 칼럼 두 개를 선물로 드립니다. 하나는 10월 31일에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올라온 누리엘 루비니의 칼럼이고, 또 하나는 10월 21일의 스티픈 로치의 글입니다.

(☞ Bubbles in the Broth) 
(☞ China's Wake-Up Call from Washington)

두 글을 이어서 읽으면, 현재 세계경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데요. 루비니는 우선 현재 각국 중앙은행이 사용하고 있는 각종 "비전통적 정책"을 소개합니다. ZIRP(zero Interest rate policy, 말 그대로 '제로 이자율 정책'), QE(양적완화, 이미 단기 이자율이 0인 상태에서 장기 이자율도 낮추려고 정부의 장기채를 사들이는 정책), CE(credit easing, 민간부문의 자본비용을 줄이려고 민간 자산을 사들이는 정책), FG(Foward Guidance, 사전 예고라고 번역할 수 있을까요?, 예컨대 실업률이 일정 퍼센트가 될 때까지는 QE나 ZIRP를 유지하겠다고 천명하는 것, 지금 연준이 하고 있죠), 그리고 NIPR(negative interest rate policy,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크루그만이 주장하고 있죠) 등입니다.

이런 정책들로 인해 금융시장은 이미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죠. 주가는 2009년 최저점에서 100% 이상 올랐고, 고수익 "정크 본드"의 발행 역시 2007년 수준으로 돌아갔으며, 저이자율로 인해 집값도 오르고 있습니다. 루비니는 이런 현상이 통화의 팽창이 실물경제로 흐르지 않고 자산시장을 배회하기 때문이며 이제 다시 거품을 걱정할 지경이라고 말합니다.

금융위기 이후에 도입된 거시 건전성 규제가 별로 효과가 없다면, 이제 중앙은행이 할 일을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을 상황이라고 루비니는 말합니다. 즉 경제회복을 위해 비전통적 정책을 계속 쓰자니 또 한 번의 금융위기가 걱정되고, 이 정책을 거둬들이자니 경제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는 거죠. 진퇴양난(進退兩難)인 셈입니다. 경제학자들은 그저 왈가왈부만 하고 있는 중이죠.

한편, 로치는 이제 미국과 중국의 밀월관계는 끝났다고 잘라 말합니다. 즉 과거에 엄청난 무역흑자를 낸 중국이 미국의 국채들 사들이고 미국은 그 돈으로 다시 소비를 늘리는, 이른바 '차이메리카(Chimerica)' 시대는 더는 지속될 수 없다는 거죠. 중국은 1994년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외환보유액의 60% 정도를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데 썼습니다. 중국은 위앤화 가치의 가파른 절상을 막을 수 있고 미국은 이자율(약 1%)을 떨어뜨릴 수 있었죠.

하지만 중국은 앞으로 수출주도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국내 소비를 늘리려는 쪽으로 정책기조를 바꿨죠(2011년 3월의 12차 5개년 계획). 로치는 채무상한 확대를 둘러싼 미국 양당의 지루한 힘겨루기가 중국에 명확한 신호를 보낸 셈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수입 수요가 늘어나긴 당분간 그른 것 같고 양당의 중국 때리기는 경쟁적으로 강해질 것이며, 달러 표시 채권은 휴짓조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제 중국은 통화 쪽에서도 위안화 국제화 등 홀로서기를 시도할 것이고 미국도 국채를 팔아 연명하는 일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즉 글로벌 불균형과 국제통화체제라는 면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고 양적완화와 같은 비전통적 정책이 더 이상의 침체를 막을 수는 있지만, 실물경제의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새로운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 경제학자들도 정확히 모른다는 데 진정한 문제가 있는 거죠.

물론 방법은 있습니다. 예컨대 다극 질서에 맞게 복수의 국제통화를 택하고 국제통화기금(IMF)에서도 미국이 거부권을 포기해서 거버넌스를 바꾸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미국이 누리던 특권을 일정 부분 포기한다는 걸 의미하죠. 자국의 디폴트 상황에서도 벼랑 끝까지 맞서는 미국의 정치가 이런 어마어마한 희생을 택할 수 있을까요? 불행하게도 다시 위기는 찾아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전환기 한복판에, 지리적으로도 양국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겁니다.

정부의 빚 - 정부는 한은에서 무제한 돈을 빌릴 수 있을까?

저는 이번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얘기 중 정부가 한은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정부가 올 상반기 한은으로부터 대출받은 금액은 '통합계정 60조 원, 공공자금관리기금 7조 8000억 원' 등 67조 8000억 원에 이른다는 겁니다.

노무현 정부가 5년간 한은에 대출받은 액수가 39조 5244억 원이고 이명박 정부는 131조 5560억 원이니 박근혜 정부는 6개월 만에 엄청난 돈을 한은에서 빌린 거죠. 5년으로 환산하면 330조 원이 넘습니다. 대출금에 따른 이자 지급액만 197억 원이나 됩니다.

기획재정부는 "2012년도 예산편성 당시 금년도 세입 확보의 어려움 등을 예상해 국회에서 일시차입 한도액을 증액을 결정한 데 기인했다"며 "금년도 세수 징수가 부진한데 경기회복 지원을 위한 재정조기 집행 확대로 인한 불가피한 일시 차입 증가"라고 설명했습니다.

(☞ 정부 6개월만에 한은서 67조8천억 빌려, 재정운용 논란)

이런 규모의 국채를 수시로 발행한다면 분명 국회에서 제동을 걸었겠죠. 아무런 제약 없이 이뤄지는 이런 정부 대출은 어떤 기준으로 규제를 해야 할까요? 이것도 경제학이 뭔가 얘기를 해야 할 일입니다.

재벌들의 빚 - 기업발 위기의 가능성?

4일 경제개혁연구소가 2007년 이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연속 지정된 40개 그룹의 연결 재무제표를 근거로 이들 대기업들의 재무구조를 진단한 결과, 무려 20개 그룹이 연결부채비율 200%를 초과하고, 이중에서 연결부채비율이 300% 초과하는 그룹만 9개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그룹도 10개나 됐습니다.

경제개혁연대는 현대그룹·한진그룹·두산그룹·동부그룹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했고 이외에도 효성·한국GM·한라·한진중공업·동국제강·대성 등도 부실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정도면 외환위기 직전 상황과 유사해 보이는데요.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가 워낙 좋아서 평균 지표는 괜찮지만, 위에서 거론된 재벌 중 한두 개만 도산해도 당장 우리는 금융마비 상황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의 얘기를 들어 보시죠.

(☞ [김상조의 경제시평]경제활성화? 부실기업 구조조정부터)

정부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해서 금융위원회는 부실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관리하기 위한 '관리대상 계열' 제도를 신설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위에 첨부한 '김상조 칼럼'은 정부의 이런 미봉책에 문제가 있으니 법제도적으로 확실히 부실기업처리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지금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기업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겁니다. 과연 그 정도로 급박한 상황인지는 더 자료를 봐야겠지만, 대기업들도 극단적인 양극화 상황에 빠져 있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기업부채가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은 가계부채보다 더 높다고 봐야겠죠.

아래로, 아래로 전가되는 가계부채의 위험

가계부채도 위험 수위에 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월 31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신용등급 중간계층(신용등급 10개 등급 중 5~6등급)의 대부업체 이용 비율은 2010년 13.4%에서 지난해 16.0%로 높아졌습니다. 신용등급 중간계층이 제도권 금융 밖으로 밀려나 대부업체에서 빚을 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은행은 2011년 가계부채 억제대책이 마련된 이후 금융기관들이 리스크(위험) 관리를 위해 대출 회수에 나서면서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위험한 가계대출을 거둬들이면 은행은 조금 더 안전해지겠지만, 이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중산층은 더 깊은 위험에 빠져들게 되겠죠.

(☞ 가계부채 불안 중산층도 덮쳐)

은행이 자신의 위험을 가계로 전가했다면 가계 내부에서도 빚의 전가가 일어납니다. 역시 한은의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 담보대출을 보유한 전체 집주인들 가운데에서 대출을 조기상환한 비중이 2009년 4.3%에서 2013년 상반기 26.8%로 급등했는데요, 전세를 재계약하면서 전세금을 올려 자신의 빚을 갚았을 거라고 한국은행은 추정했습니다.

즉, 집주인들은 전세를 올려서 자신의 주택 담보 대출을 갚고, 그러면 세입자들은 전세대 출을 늘려야겠죠. 결국 집 주인의 빚이 세입자의 빚으로 전가된 겁니다.

쓰다 보니 이번 주엔 빚 얘기로 도배를 하고 말았군요. 이렇게 얘기를 마무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래도 희망적인 기사를 하나 덧붙입니다.

서울시 은평구에서 '주민참여예산제'를 적극 도입했습니다. 우선 각 동마다 편성된 지역회의를 통해 주민제안사업을 취합합니다. 이렇게 모인 사업 중에서 어떤 사업을 우선 추진할지 2만여 명이 참여하는 현장·모바일·인터넷 투표를 통해 정합니다. 그러면 참여예산시민위원회가 구청이 작성한 예산안과 주민제안사업을 비교해서 예산을 편성합니다. 그렇게 2011~2012년 구청의 예산요구액 가운데 132억 원이 감액됐고, 주민제안 사업에 20억 원이 배정됐다는군요. 예컨대 상습주정차 위반구역 폐쇄회로텔레비전 설치, 불광천변 화장실 설치 등 생활밀착형 사업들이 추진됐다는 겁니다.

이렇게 시민들의 삶에 직결된 사업은 늘어나는 한편, 정치권·관료조직·건설업자·학자·언론 등 '5각 동맹'이 담합한 결과 생기는 불필요한 건설 예산은 줄어들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시민과 지자체가 정책을 공동으로 수립(co-construction)하는 거죠. 만일 시민밀착형 사업에 배정된 사업을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이 집행하면 그건 정책의 공동 집행(co-production)이 됩니다. 가장 큰 사회혁신은 이렇게 시민이 정책에 직접 참여하고 집행까지 하는 거겠죠.

 

(☞ "주민참여예산위 띄웠더니 꼭 필요한 사업만 쏙쏙")


 

 

 

*본 글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칼럼지인 <프레시안 뷰>에 기고되었습니다.

 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되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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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1정태인/새사연 원장

 

2009년이었을 게다. 탤런트 지진희씨가 주연한 KBS 2TV <결혼 못하는 남자>가 ‘초식남’이라는 용어를 사람들 입에 떠돌게 만든 것은. 2006년 일본의 칼럼니스트 후키자와 마키가 처음 사용한 말이라는데 “마치 풀을 뜯는 사슴처럼 남자다움에 구애받지 않는 온화한 남자를 가리키는 신조어”란다. 한 쪽에서는 어린 아이돌의 ’식스팩‘ 복근에 환호성을 올리고, 그 반대쪽에선 훨씬 많은 초식남들이 늘어가고 있다.

 

최근 영국 옵저버지 10월 20일자에 “젊은이들이 섹스를 중지했다면 그 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아비가일 하워스)라는 글이 실렸다. 이 르포가 소개한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 20대 초반의 일본인 4분의 1은 결혼하지 않을 것이고 이들이 아이를 갖지 않을 가능성은 40%라고 한다. 이제 초식남’ 현상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일본 가족계획협회에 따르면 올해16~24세 일본 여성의 45%가 “성적 접촉에 관심이 없거나 경멸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니 말이다.

 

정말 인간은 생물의 진화법칙을 벗어난 것일까.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생물은 자신이 살아남고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예컨대 서울의 대기오염이 심각해지면 남산 위의 소나무들은 솔방울을 주렁주렁 매단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이상헌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1993년의 평균 임금 수준이 지난 20년 동안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더구나 노동자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비정규직은 30대에 받는 임금이 평평한 고원처럼 40대 까지 이어지다가 50에 못 미쳐 내리막 길로 접어든다.

 

하여 “미래에 대한 약속은 접고, 결혼과 가족의 몽상은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초식동물 증후군은 ‘슬픈 합리성’의 결과라는 게다. 하지만 인간도 소나무의 법칙을 따른다면 이럴수록 아이를 더 많이 낳아야 하는 건 아닐까. 새로운 진화법칙이라도 생긴 것일까.

 

<결혼 못하는 남자>가 그러하듯 한국의 드라마나 연예 프로그램은 일본 것을 베끼는 경우가 꽤 있다. 현재의 일본 사회는 대략 10년 후의 한국을 보여주기 때문일 게다(그 시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서로 다른 사회로 갈라져 나가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지만). 일본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도 점점 떨어져서 1.2명 정도까지 떨어졌다. 두명이 한명 남짓한 아이를 낳는다는 얘기니 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필연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확실해 보인다. 과거처럼 가능한 한 많이 낳아서 설령 몇이 죽더라도 남은 아이의 숫자를 최대화하려는 전략은 이제 똘똘한 놈 하나로 승부하는 전략으로 바뀌었다. 예컨대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셋을 낳으면 이들은 모두 대학 입시경쟁에서 실패할 지도 모른다. 만일 승자독식의 사회라면 세명의 자녀는 ‘사느니, 죽느니만 못한 루저’가 될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삶은 자연선택의 법칙이 아니라 자본의 운동법칙을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업은 ‘참조 수익률’(대략 평균 수익률)을 기준으로 자본 증식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다. 2000년대 초중반처럼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의 수익률이 높다면 실물투자에 대한 흥미는 반감될 것이다. 또 지금처럼 미래가 불확실할 때는 투자를 미루고 미뤄서 침체가 더 길어지기 일쑤다.

 

만일 우리의 ‘생존 기준’이 어떻게든 살아남아 자손을 늘리는 게 아니라 ‘위너’가 되는 거라면, 그리고 부의불평등이 극심해서 그 위너의 기준이 평균 소득보다 훨씬 높다면 어떻게 될까. 존재해야 마땅한 그 자식을 위해서라도 섹스마저 잊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만일 공동체적 유대가 살아 있는 사회라면, 또 기본적인 사회복지가 잘 갖춰진 사회라면 ‘루저’가 존재하지 않거나 설령 그리 된다 해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사랑과 결혼, 출산을 위해서라도 사회의 불평등을 줄여야 하는 게 아닐까. 위너와 루저의 경계가 흐려진다면 우리는 자본의 법칙이 아니라 다시 자연의 법칙을 따르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위너와 캔디만 등장하는 드라마 또한 한번 더 생각해 볼 문제일 테다.

 

 

 

*본 글은 PD저널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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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5정태인/새사연 원장

 

“우리 선생님을 우리가 지키자”(서울 오류여중), “선생님께 배우고 싶습니다”(서울 송곡여고) “스승을 절대 내 줄 수 없다”(전남 순천 효성고) “우리 사랑으로, 우리 선생님을” “우리는 선생님을 사랑합니다”(광주 동아여중·고, 충남 도고중, 서울 대림여중, 경북 영천 금호여고, 전남 옥과고, 서울 공항고), “내 선생님을 끝까지 지켜내자”(목포 홍일고), “선생님과 우리는 하나”(온양여고), “선생님 없으면 우린 어떡해요”(대구 성화중) “우리는 참교육을 받고 싶다”(부산 동인고, 광주 송원여고), “학교를 떠나지 마세요”(대전충전실업고), “우리는 선생님을 찾고 싶습니다”(대전 신일여상).

1989년 봄에서 가을까지 대한민국은 아이들의 아우성으로 뒤덮였다. 아이들은 전국에서 해직된 1700여명의 전교조 선생님들을 눈물로 지키려 했다. 이 아이들의 절규가 없었다면, 선생님들은 1999년 전교조가 합법적 노동조합이 되기까지 10년을 견뎌낸 불굴의 힘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 후 24년, 합법화 14년 만에 박근혜 정부의 고용노동부는 최후 통첩을 전교조에 보냈다. 한 달 안에 전교조 규약을 개정해서 해직교사 9명을 조합원에서 빼라는 것이다. 전교조는 총투표로 이를 거부했고 그예 정부는 10월24일, “‘교원노조법상의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고 오후 2시 팩스를 통해 통보했다”.

그러나 그 ‘교원 노조법’ 어디에도 정부가 팩스 한 통으로 기존 조합을 불법으로 만들 근거는 없다. 오직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조정법’의 시행령(제9조 2항)이 있을 뿐이다. 전교조는 모법의 근거도 모호한 시행령 하나 때문에 6만명의 노동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본령인 “줄푸세”의 “세”(법을 세운다)가 겨누는 곳이 어딘지를 보여준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박근혜 정부 들어 전교조 관련 2회, 전공노 관련 1회 등 세 차례나 긴급 개입(urgent intervention)을 했다. 긴급 개입이란, 노동의 기본권 중 기본권인 87호와 98호를 다루는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2년이 걸리는 통상의 절차를 밟을 수 없을 만큼 엄중하고 신속한 행동이 필요할 때 사무총장이 직권으로 적용하는 절차이다.

ILO의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이미 전교조 케이스를 검토했고, 강력한 권고안을 내서 노동부 방하남 장관과 교육부 서남수 장관이 애지중지하는 시행령의 개정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가 전교조에 예의 ‘최후 통첩’을 보내자 이번에 또다시 긴급 개입을 한 것이다. 노동부는 기자 브리핑에서 이 긴급 개입을 “의견 조회”일 뿐이라고 창의적인 해석을 내렸지만 실은 “조속한 정책 변경”을 강력하게 촉구한 것이다.

ILO의 조치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방하남 장관조차 장관 국회인사청문회에서 “해고자, 구직자, 실업자의 노동법과 노동관계법상 법적 지위는 국제적인 기준도 있고 외국 사례도 있다”며 사회적 합의를 거쳐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핀란드의 교원 노조는 은퇴자뿐 아니라 예비 교사인 학생까지 조합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핀란드 교육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다는 말인가? 이게 노동 후진국이 아니고 무엇이랴. ILO 노동 대표의 성명이 언급한 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노동권 감시까지 걱정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상식에 비춰서 이게 국제 사회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나는 전교조가 지금 궁지에 몰린 것이 꼭 정부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교조가 현장의 ‘참교육’을 혹여 게을리해서 일반 국민의 눈에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귀족 노조’로, 또는 강퍅한 자기 이념의 추구에 몰두하는 ‘이념 집단’으로 비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전교조가 24년 전, 아이들의 눈물을 기억해 내기 바란다. “선생님 없으면 우린 어떡해요”, “우리는 참교육을 받고 싶다”라는 아이들의 아우성 없이, 부모들의 진심 어린 지지 없이 어떻게 박근혜 정부 5년을 견딜 수 있을까? 참교육 배지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던 아이들이 살 길이다. 전교조가 아이들의 마음속에 부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사회적 불평등, 학력 차별, 등수 경쟁, 획일적 교육을 사회에서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 본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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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정태인/새사연 원장

 

“내게 그런 핑계를 대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봐.” 1993년에 발표된 김건모의 ‘핑계’는 참으로 경쾌하게 슬픈 얘기를 눙친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만일 인간이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대로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 추구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면 더더욱 그렇다.

<국부론>(1776)보다 17년 앞서 출판된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상정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분명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 원리들이 존재한다… 타인의 비참함을 목격하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끼게 될 때 우리는 이러한 감정을 느낀다”로 시작한다.


 

스미스의 이 문장을 놓고 그 감정이 동정(sympathy)이냐, 공감(empathy)이냐, 그도 아니면 동료애(fellow-feeling)냐, 나아가서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강약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경우든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봐”가 그 밑에 깔려 있다. 이러한 감정을 전제하지 않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세상을 파국으로 몰고 가기 일쑤다.

이 아름다운 가을 산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는 밀양 할머니들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할머니들이 보상금을 노리고 있으니 두둑하게 돈을 주면 그만이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이들은 전형적인 님비 현상이라고 비아냥거린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머릿속에서 모든 인간들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그 세계의 경전인 경제학교과서는 고압송전탑이 자아내는 외부성(냉정해 보이는 경제학 용어지만 대대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을, 한전에 벌금을 물리거나 밀양 등의 피해주민에게 보상금을 주어서 해결하라고 속삭인다. 어느 쪽이나 전기를 사용하는 5000만명 국민이 밀양 등 고압송전탑 주위의 피해자들에게 돈을 주는 것이다. 

만일 전국의 피해 주민이 10만명이라면 1년에 전기료를 1만원 올려서 매년 500만원의 보상금을 줄 수 있다. 그렇게 돈을 많이 준다면 차라리 우리 동네에 송전탑을 세우겠다고? 그렇다면 경매에 부쳐서 가장 적은 돈을 제시하는 지역에 송전탑을 세우면 된다. 참여정부 시절에 ‘방폐장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다. 경매도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봐”를 시장 방식으로 실천하는 것일 뿐이다. 송전의 거리를 대폭 줄여서 전력낭비까지 막을 수 있도록 아예 수도권에 송전탑을 세우자는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역제안(경향신문 10월10일자)은 더욱 더 경제적이다.

하지만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보면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아이들이 암에 걸릴지도 모르는 위험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 외부성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원자력 발전이라는 대규모 전력생산이 고압송전탑을 요구하는 것이므로 각자 자기 지역에서 발전해서 소비하면 외부성이 없어진다. 태양광 등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생산한다면 금상첨화일 테고 전기 소비를 대폭 줄이는 것은 더욱 좋은 방법이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화려한 조명을 줄이고 집집마다 콘센트에서 플러그를 뽑는 것, 그리고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의 전기료 보조를 끊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외부성 자체를 없앨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기후온난화 등 에너지 문제를 생각해 보면 어차피 우리는 재생가능에너지의 분산 발전체제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 시민이 참여해서 정책을 공동수립(co-construction)해서 공공서비스를 공동생산(co-production)하는 21세기형 사회혁신은 우리를 이런 결론으로 이끌 수밖에 없다.

밀양은 우리의 에너지 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드는 선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언론은 밀양의 할머니들을, 배고픈 돼지에게도 모독일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만들고 있다. 우리 모두 막연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은연중 보조금이라는 ‘핑계’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도덕감정을 전제로 하지 않고 ‘국가의 부’를 추구하는 것은 위험하기 이를 데 없다. 성장 제일주의에서 벗어나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으로 경제관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창조경제’의 첫걸음일 테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귀도 쇠귀일까?

 

 

*본 글은 경향신문에 게재된 원고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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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5정태인/새사연 원장

경북 안동 병산서원의 부드러운 곡선과 여위어가는 강줄기, 그리고 영주 부석사 안양루의 날렵한 기와, 욕심을 한껏 부린다면 봉정사까지 그리운 때가 왔다. 단풍이 짙어지는 만큼 선량들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보좌관들은 부산해진다.

바야흐로 국정감사와 예·결산 심의의 계절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졌다. 지난 9월30일 미국 의회는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셧다운, 즉 정부 폐쇄다. 10월17일까지 정부 부채상한선 인상에 합의하지 않는다면 미국 정부는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진다.

17년 전, 미국의 마지막 정부 폐쇄가 있었던 그때 나는 미국에 있었다. 실리콘밸리를 연구하기 위해 국가로부터 돈을 받은(문민정부의 ‘세계화’ 전략의 일환이었다), 버클리 대학의 방문학자였다. 비자 문제로 이민국에 들락거려야 했던 나는 그 수많은 창구 중 단 두 개 열려 있는 창구 앞에 온종일 줄을 섰다. 바쁘고 돈이 없기도 했지만 국립공원마저 문을 닫아서 짬짬이 여행을 한다는 건 그저 꿈이었을 뿐이다. 이것이 정부 폐쇄다.

1980년대 이래 11차례의 정부 폐쇄, 또는 그 위협은 정부·여당의 상당한 양보를 끌어냈다. 2011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굴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1995년의 마지막 폐쇄는 호경기 때 일어났다. 경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나아가 공화당의 과잉 행동은 클린턴의 재선으로 이어졌다. 지금 미국 경제는 침체의 수렁에서 깔끔하게 벗어나지 못한 채 양적 완화라는 대량 수혈에 기대고 있다. 오바마 또한 이미 재선에 성공했기에 자신의 업적인 건강보험 개혁법(오바마케어)의 예산을 줄일 리 없다. 따라서 만일 이 사태가 상당 기간 지속된다면 당장 정부 지출의 축소부터 미국 경제의 숨통을 죄기 시작할 것이다.

디폴트는 바깥 사람들한테 빚 얻어서 흥청망청 잘살고 난 뒤 “나 돈 없으니 배 째라”고 하는 선언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마치 29만원밖에 없다던 한국의 어느 노인처럼 돈 없다고 나자빠지는 꼴이다. 위력이 현저히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달러는 여전히 세계의 기축통화이고 미국 재무부 증권은 마이너스 실질금리일 때도 너도나도 구입할 만큼 안전하다. 디폴트 사태는 이런 믿음을 뒤흔들 것이고 세계경제라는 배의 닻은 바다를 떠돌게 된다. 

도대체 세계경제를 담보로 공화당, 더 정확히 말해서 공화당의 일부 과격파는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그들은 재정건전성을 내세워 오바마의 의료개혁을 원점으로 되돌리려 한다. 과연 이런 행동을 미국 유권자들, 나아가서 세계의 시민이 용납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이런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 티파티의 지지에 힘입어 상원에 처음 입성한 테드 크루즈 의원도 그중 하나라고 영국 <텔레그래프>의 존 애블런은 말한다. 

정치는 이렇게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끄는 형국이다. 물론 정치와 경제는 언제나 얽혀 있다. 경제는 정치의 일부일 뿐인데 시장의 1원 1표 원리는 부자 편 결론을 내기 마련이다. 지난 30년 동안 시장에 모든 걸 맡겨놓자는 주장이 세상을 지배한 결과, 즉 사실상 지배계급의 전횡을 방치한 결과 대다수 나라에서 불평등이 극심해졌고 세계는 위기에 빠졌다. 정치의 1인 1표 원리가 부와 권력의 집중을 막아서 경제를 살릴 수 있다.

공약보다 축소된 복지 예산, 여전히 많은 ‘토건 예산’

한국에서는 국회가 정치 본연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까?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보면 한국 정치 역시 경제를 살리는 쪽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역대 최초로 100조원 복지시대(105조9000억원)를 열었다고 자랑하지만 절반 이상이 공적연금 증가, 건강보험 국고 지원 등 자연증가분이다. 오히려 기초연금과 4대 중증질환 본인부담액, 반값 등록금, 무상보육 등 복지 관련 정책들의 예산은 대선 공약에 비해 줄줄이 축소됐다.

한편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금년에 비해 4.3% 감소했다고는 하지만 액수로는 여전히 23조3000억원에 달한다. 2008년 본예산 19조6000억원이었던 SOC 예산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23조~25조원으로 정착한 셈이다. 국토와 강을 얼마나 더 훼손해야 경제가 활력을 찾을 수 있다는 걸까?

한국이나 미국 어디에서나 예산안 공방은 경제와 정치가 직접 어우러지는 현장이다. 특히 장기 침체 속에서 헤매는 지금, 정치는 더욱더 경제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 병산서원·부석사·봉정사의 가을은 여의도에서 국민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을 만큼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

 

 

 

 

*본 글은 시사인에 게재된 원고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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