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06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해 12월12일 미국 무역대표부의 웬디 커틀러 대표보는 “한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에 앞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이행과 관련한 우려 사항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산지 검증 완화, 금융회사의 고객 데이터베이스(DB) 공유, 자동차 분야의 비관세장벽 완화, 유기농 제품의 인증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한국) 상품이 한·미 FTA로 인한 관세 혜택을 받으려면 그것이 미국(한국)에서 생산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런 원산지 검증을 하는 곳은 관세청이다. 예컨대 한국에 수입된 오렌지 주스의 양이 미국 생산량보다 많다면 그건 분명히 원산지 규정을 어긴 것이다. 당연한 정부의 업무에 시비를 거는 건 주권 침해일 뿐이다.

커틀러가 마치 불법적 보호무역주의 조치인 양 ‘자동차 분야 비관세장벽’이라고 표현한 것은 환경부의 ‘저탄소 협력금’ 정책을 말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차량 구입자에겐 보조금을, 기준 이상인 경우엔 부담금을 물리는 정책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온난화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조치다. 미국 자동차 회사의 이익이 우리 아이들의 목숨보다도 소중하다는 얘기인가.

한·미 FTA와 한·유럽연합(EU) FTA는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정보를 해외에 위탁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금융거래 원장 같은 중요 정보까지 해외에 위탁하고, 재위탁의 범위도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제 당신의 개인정보 그 이상이 한반도를 뛰어넘어 미국이나 EU에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유기농 인증제를 2008년에 도입했다. 하지만 이 제도는 6년이 지난 지금도 실행되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의 요구 때문이다. 나아가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릴지도 모를 미국과의 ‘상호동등성 협정’을 체결한 이후에나 이 중요한 정책을 실행하라는 것이다. 그때까지 우린 어떤 식품이 진짜 유기농인지 알 도리가 없다.

우리는 2006년의 한·미 FTA 4대 선결요건을 생생히 기억한다. 이번엔 TPP 4대 선결요건이다. 한·미 FTA 협상, 체결, 재협상, 비준 전 과정에서 그랬듯이 더 많은 요구가 뒤따를 것이다. 

당장 의약품 가격제도, 쇠고기 완전 개방이 기다리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9월 약의 사용량이 일정 수준 이상 증가하면 약값을 인하하는 제도(사용량-약가 연동제)를 도입했다. 의료비에서 약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의 2배에 달하는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 정책이 파이자 등 다국적회사에 불리하다고 반대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1일 미국 농무부는 “광우병 관련 쇠고기 수입규제를 현대화하고, 국제수역사무국(OIE)이 정하는 기준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국제사회에 천명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쇠고기 시장을 활짝 열 테니 다른 나라도 이를 따르라는 얘기다. 2008년 5월의 촛불은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30개월 이상 된 미국 소의 고기를 수입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미국의 뜬금없는 이 수입규제 현대화가 제일 먼저 노릴 곳은 상식에 비춰 봐도 바로 한국이다.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광우병 위험물질이 무엇인지, 소의 어느 부위에 그런 물질이 있는지 누가 알려줬을까? 결국 2008년 촛불이 타오를 수 있게 한 사람은 누구일까?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 박상표 국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온갖 사이비 학자들이 곡학아세할 때마다 정확한 사실로 반박한 것도 그였다. 

그는 우리와 동물의 건강과 관련해 세계 전체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을 전광석화처럼 정리해서 알려주었다. 그는 실로 따뜻한 가슴을 지닌 부지런한 천재였다.

그가 떠났다. 이 추운 겨울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새로 통상정책을 맡은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담당 부처를 압박하고 있다. 우리는 박상표도 없이 미국의 압력을 막아내야 하고 TPP 협상도 감시해야 하며 국민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는 경제관료들을 비판해야 한다. 시민과 동물들의 생명은 그가 비운 바로 그 자리만큼 위험해졌다. 하지만 하지만…. 그대 잘 가라. 터무니없이 모자란 우리지만 당신을 기억하는 시민들과 함께라면 또 한번 일어설 수 있다. 그러니 마음 푹 놓고 그대 잘 가라. 더 이상 생명을 걱정할 필요 없는 그곳으로 그대… 잘 가라.


* 본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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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7정태인/새사연 원장

 

안녕하세요? 경제 뉴스의 맥을 짚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이번 주엔 KB국민, NH농협, 롯데 세 카드사의 고객 정보 유출 사태가 경제면과 사회면을 뒤덮었습니다. 해서 이 문제를 다루긴 다뤄야 하겠는데, 개인적으론 참 난감한 일입니다. 저는 오직 보통예금 통장 하나와 카드 한 장으로 금융과 연결되어 있고, 이 사건을 어떤 경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개인 정보 유출이 우리 사회에 던진 문제들

 

어쩌면 이 얘긴 정보사회론이라든가 IT 보안기술 전문가가 해설해야 할 사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건을 이해하려다 보니 일지도 평소와 다른 모습이 됐죠? 사건은 코리아크레딧뷰로(KCB)라는 신용정보회사의 박 모 차장이 세 카드사에 파견을 나간 데서 비롯됐습니다. 카드사들은 자신들의 카드 부정 사용 방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KCB에 용역을 준 거죠. 

 

보안 전문가인 박 씨는 이들 회사의 보안망을 뚫고 들어가 1억400만 건이라는 어마어마한 개인 정보를 빼낸 겁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휴대전화로 시시때때로 들어오는 "돈 빌리라"는 문자는, 어쩌면 이 정보를 산 곳에서 보낸 건지도 모릅니다.

 

단지 이들 세 카드사의 정보뿐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은행들의 계좌번호와 주소, 전화번호까지 모두 넘어갔고 이미 해지해서 고객이 아닌 사람들의 정보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의 개인 정보가 쓸데없이 저장되어 있었고, 또 효율성을 이유로 여러 기관이 공유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만큼 여기저기서 새 나갈 가능성이 높아진 거죠.

 

IT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금융기관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업무를 전산화했습니다. 하지만 정규직을 채용해서 전산망을 구축하고 보안을 관리하기보다 일체의 업무를 외주로 처리했습니다. 기획재정부나 금융감독기관은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를 하기는커녕 금융기관들의 요구에 따라 오히려 개인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금도 규제 완화만 외치고 있는 걸 보면 당시에 어땠을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대표적인 예가 금융지주회사법이죠. 이 법에 따라 금융지주회사들은 개별 자회사가 확보한 고객 정보를 다른 자회사에서 마음껏 쓸 수 있게 됐습니다. 또 보험업법 역시 수집된 고객 정보를 활용해서 동일인에게 다른 금융 상품을 팔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경제학에서 금융은 정보의 저수지라고 하는데 이들 법은 각 회사들이 그 저수지를 수익의 원천으로 사용하도록 조장한 셈입니다. 더구나 신용정보보호법 역시 위의 KCB 같은 신용정보회사들이 여러 금융 회사에서 받은 개인 정보를 다른 금융 회사에 판매하거나 가공된 정보를 비(非)금융기관에 제공하는 행위를 허용했습니다. 그러니 법과 정책이 개인 정보의 무분별한 수집과 유출을 조장한 셈입니다. 물론 금융 산업의 효율성이 목표였습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사실 금융권의 보안 사고는 거의 매년 일어났습니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검색 기구에서 "개인 정보 유출"을 쳐 보았더니 2002년부터 사건이 나오더군요. 최근의 굵직굵직한 사건만 해도 △2009년 7.7 디도스 사건 △2011년 현대캐피탈 △농협 전산 마비 사태 △2013년 3.20 사건 등이 있었죠. 그때마다 금융 당국은 △2009년 9월 금융 부문 디도스 공격 대응 종합 대책 △2011년 6월 금융 회사 IT 보안 강화 종합 대책 △2013년 7월 금융 전산 보안 강화 종합 대책 등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법과 규제는 고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1월 22일 기자 회견을 열어 "재발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정보 보유·유통·관리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며 '금융 회사 고객 정보 유출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는 △거래 종료 고객 정보 5년간 보관 △금융그룹 내 자회사 간 정보 공유 시 고객 동의 필수 △시스템 개발 등 외부 위탁 시 최고경영자(CEO) 사전 승인 △불법 정보 활용 금융 회사에 과징금 도입 등이 포함됐습니다. 이밖에 △정보 유출 책임자에 5000만 원 과태료 부과 △정보 유출 금융 회사 경영진 중징계 등도 있죠.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법적 문제는, 자회사 간에 정보를 공유할 때 고객 동의를 받는다는 제한을 둔 것 빼곤 전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신 위원장의 목표는 세계적 투자은행의 설립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서비스 산업 규제 완화를 역설하고 있으니까요.

 

특히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같이 소액 다수의 피해가 발생하는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되는 근본적 제도는 검토도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금융 소비자 보호 차원을 넘어서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과연 정보기술의 발전에 걸맞게 그에 따른 위험을 방지할 보안 기술을 확보했는지(예컨대 윈도우즈와 액티브 엑스의 문제), 또 개인 정보의 보안이 외주(하청-재하청-재재하청)에 의존해도 될 만큼 가벼운 문제인지, 금융 기관의 최고 경영자들이 보안 문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금융 감독 기구 등 정부가 기술적 문제는 물론 개인의 정보라는 인권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지 모든 것이 이제라도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야 합니다.

 

거의 2년에 한 번씩 종합 대책이 발표됐지만, 계속 이런 사건이 터지는 건 이런 문제를 모두 드러내고 해결책을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스위스에 나가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즉각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까지 했으니 오죽했을까요?

 

다보스의 '창조 경제'

 

그럼, 박 대통령은 스위스에서 무슨 일을 했을까요? 청와대 공식 브리핑에 따르면, 창조 경제에 대한 공감대를 기초로 양국의 협력 관계를 만들었다는 겁니다(이하의 내용은 스위스에 있는 ILO의 이상헌 박사가 현지 사정에 비춰 방문 결과를 해설한 내용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44차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일명 다보스포럼)에서 '창조경제와 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개막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44차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일명 다보스포럼)에서 '창조경제와 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개막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국이 사회 보장 협정을 체결했다는 발표가 우선 눈에 띕니다. 즉, 양국의 사업가나 기술자가 다른 나라에서 근무할 때 두 나라에 이중적으로 사회 보장 기여금을 내는 걸 피하자는 취지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적 혜택이 크다고 하는데, 한국인 중 여기 해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또 스위스는 웬만한 선진국들과는 이미 이런 협정을 맺었고, 최근에는 인도하고도 했다는군요.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항은 직업 훈련 제도입니다. 스위스의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안정성의 원천은 고급 기술전문가를 키워내는 직업 훈련 제도라는 건 맞습니다. 박 대통령이 직접 훈련 기관을 방문했고, 교환 프로그램도 만들었습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스위스가 이런 협력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고 자화자찬했죠. 하지만 스위스의 직업 훈련은 독일식 도제 제도와 유사합니다. 중학교부터 '기술 학교'와 '대학반'으로 나뉘죠. 기술직과 사무직의 월급 차이가 그리 크지 않으니, 꼭 대학을 갈 필요가 없으니까요. 스위스의 직업 훈련 제도가 한국에서 힘을 발휘하려면, 사회적 임금 격차부터 없애야 할 겁니다. 이 지난한 일을 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대학을 가야 일단 루저(loser)를 면할 자격이라도 생기는 세상이 계속된다면, 이번 '성과'는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의 한 사례가 될 게 뻔합니다. 과연 박 대통령의 다른 정책에 사회 불평등을 해소할 만한 게 있을까요?

 

박 대통령이 1월 22일 다보스 포럼에서 한 연설은 위 일지에 인용한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전히 창조 경제’가 무엇을 하자는 건지 모르겠는데, 우리 언론에 따르면 다보스에 모인 기업가들한테선 박수를 많이 받았다는군요. 그들은 과연 어떻게 이해한 걸까요? 이상헌 박사는 우리나라 박수부대가 동원된 게 아니길 바란다고 썼습니다.

 

[관련 기사] (☞ 박 대통령, 다보스포럼서 '창조 경제' 특별 연설)

 

다보스에서 박 대통령의 연설보다 더 화제가 된 건 옥스팜의 짧은 보고서였습니다. 옥스팜은 유명한 국제구호단체죠. 옥스팜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85명이 전 세계 70억 인구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맞먹는 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분히 다보스포럼에 모인 파워엘리트를 겨냥한 얘기죠. 세계의 1% 안에 드는 부유층의 재산은 110조 달러(약 11경7183조여 원)으로 35억 명의 전 세계 가난한 계층보다 65배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다며, 이런 경제적 자원 집중은 정치 안정을 불안하게 하고 사회 긴장을 조성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제가 누누이 강조한 것처럼 현재 세계경제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건, 이런 불평등이 계속 심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적 완화에 의존한 회복은 결국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만 부추기고 부와 소득의 편중은 점점 더 심해질 테니까요. 옥스팜의 이런 폭로는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겠죠. 관심 있는 분은 보고서를 직접 보시기 바랍니다.

 

[관련 글] (☞ WORKING FOR THE FEW)

 

 

 

 

*본 글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칼럼지인 <프레시안 뷰>에 기고되었습니다.

 <프레시안 뷰>는 조합원만 볼 수 있으나 일부 칼럼을 선별해 전체 공개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싶으신 분들은 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되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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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0정태인/새사연 원장

원전 공화국으로 역주행


안녕하세요? 경제뉴스의 흐름을 짚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굵직한 정책을 밝힐 때마다 대선 공약을 뒤집는 일은 이제 “비정상의 정상화”가 됐습니다.

 

에너지정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여파로 박 대통령이 대선 때 밝힌 에너지정책 기조는 “국민의견을 수렴하고,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 아래 재검토한다는 것”, 즉 축소한다는 것이었죠.

 

정부는 1월 14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2035년까지의 에너지정책 방향을 담은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했습니다. 이번 계획에 따르면, 최종 에너지원별 구성에서 전력 비중은 2011년 19.0%에서 2035년 27.2%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그리고 2035년 전력설비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26.4%에서 29%로 높이기로 했습니다. 전력 수요와 원전 비중이 동시에 늘어남에 따라 현재 보유하고 있는 원전 23기 외에, 건설 중이거나 건설계획이 나와 있는 11기를 더 짓고도 추가로 최소한 5기(150만㎾급 기준)의 신규 원전 건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직전 TV 연설에서 “최악의 정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는데, 그 “최악의 정치”를 매일 되풀이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지속 가능한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를 거쳐야 할까요? 박 대통령의 말대로, 국민의 의사를 물어서 최소한의 합의를 이뤄내야 합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앞으로 전력을 더 많이 쓰고 핵발전으로 이를 충당하겠다는 발표를 한 겁니다.

 

에너지 관련 세계적 학술지인 <에너지 정책(Energy Policy)>은 지난해 52호에서 ‘영국의 저탄소 경제 이행 경로’를 특집으로 다뤘습니다. 티머시 폭슨(Timothy Foxon)은 시장 주도 경로(시장규칙), 정부 주도 경로(중앙 조정), 시민사회 주도 경로(천 송이 꽃)를 제시했는데요(Foxon, 2013, Transition pathways for UK low carbon electricity future, Energy Policy, V52.), 다음 표는 이 논문을 요약한 겁니다.

 

 

<표1> 저탄소 경제로의 이행 경로

시장 규칙(시장)

중앙 조정(정부)

천 송이 꽃(시민사회)

가버넌스 원리

시장 논리 우위. 시장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상호 작용

정부 논리, 정부가 에너지 시스템을 직접 조정

시민사회 논리. 시민이 지방과 국가 에너지 시스템에 관한 의사 결정

핵심 기술

탄소 포획 및 저장 기술(CCS)을 갖춘 석탄과 가스, 원자력, 해양풍력(offshore wind)

석탄과 가스 CCS, 원자력, 해양 풍력, 내륙 풍력, 조력

육지 풍력, 해양 풍력, 재생 가능 CHP, 태양 PV, 조력

핵심 주체

기존 에너지 대기업

에너지 대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정부

ESCO(신생 기업, 기존 기업의 변화), 지역공동체, NGO

목표

2010년에서 2050년까지 전기 수요 50% 증대. 560TWh 공급

2050년까지 전기 수요 20% 증대, 448TWh 공급

2050년까지 전기수요 7% 감축, 328TWh 공급

위험 요인

CCS의 실패,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반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북부의 반대, 소비자 행동 변화 필요의 무시

CCS 실패, 저탄소 투자 증대에 따른 에너지 서비스 비용 상승에 대한 반대, 소비자 행동 변화 경시

분산 발전이 비싸고 건설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명 나는 경우, 지역 해법의 취약성(중앙정부와 대기업에 대한 여전한 의존), 최종 에너지 수요 감축 노력이 리바운드 효과로 상쇄되는 경우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기업과 정부는 전력 사용의 증가를 전제하는 반면 시민사회 논리는 전기 소비량의 감축, 시민들의 행동 변화를 전제로 합니다.

 

영국에서도 에너지 대기업과 정부의 시각은 대단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시장에 맡기자”라고 주장한다 해도, 결국 에너지 투자에 대한 보조금을 요구할 것이고 정부가 효과적으로 정책을 구사하기 위해서도 에너지 대기업이 결국 행동 주체로 나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대기업은 탄소 포획 및 저장(CCS : Carbon Capture & Storage)과 같은 기술의 발전, 핵 발전 등 중앙 집중형 대규모 발전과 고압 송전을 선호합니다. 반면, 시민사회는 분산형 소규모 발전과 공동체 내부의 소비를 주장하며 시민의 행동 변화와 근본적인 경제사회체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죠.

 

하지만 CCS의 상업적 이용이 실패한다면(불가능한 기술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핵과 석탄 중심의 중앙 집중형 발전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우리의 이행 경로는, 아니 전 세계의 이행 경로는 폭슨의 ‘천 송이 꽃’을 중심으로 삼아야 할 겁니다.

 

바로 이웃 나라 일본에서 핵 발전 문제가 터지고 태평양 건너에 있는 나라들도 생선을 먹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기는커녕 오히려 그 방향으로 나라를 끌고 가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요? 지난주에도 똑같은 한탄을 했습니다만, 박 대통령은 모든 분야에서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삼성과 현대 공화국으로 가는 대한민국

 

새해 들어 주가가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는군요. 작년 4분기 삼성전자의 ‘어닝 쇼크(예상 실적에 못 미치는 데 따른 충격)’가 출발점이었습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포스코·SK하이닉스 등 시가 총액 상위 5개 기업이 전체 시가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83%(지난해 말 기준)에 이르고 삼성전자 하나의 시가 총액이 전체의 15.47%에 이르렀으니까, 삼성전자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전체 주가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겠지요.

 

[관련 기사] (☞ 갈수록 커지는 ‘빅2’…한국경제 혁신 동력은 약해진다)

 

여기에 덧붙여, 1월 13일 기업경영 성과 평가 사이트 ‘시이오(CEO)스코어’가 발표한 수치들이 ‘삼성과 현대차 그룹이 한국경제에서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해도 괜찮을까’에 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발표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삼성과 현대차 그룹이 거둔 영업이익 합계는 43조1000억 원으로 국내 전체 법인(국세청 기준) 영업이익의 22.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8년의 11.2%에 비해서 두 배나 증가한 거죠.

 

과연 이 현상은 바람직한 걸까요? <한겨레> 곽정수 기자는 삼성과 현대차(또는 삼성)의 경제력 집중이 가져올 위험을 1) 경제성장 저해 리스크 2) 경제안정성 저해 리스크 3) 민주주의와 법질서 저해 리스크로 요약합니다. 이 주장에 덧붙여 약간의 해설을 덧붙이겠습니다.

 

[관련 기사] (☞ 삼성 ‘쏠림’과 3대 리스크)


1)의 위험은 삼성(과 현대차)의 실적과 임금이 압도적으로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거시 경제 전체에는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사실 삼성의 높은 수익률은 우리나라의 자원이 총집중된 결과로 볼 수 있죠. 그런데 어느덧 낙수효과, 즉 삼성이 고용을 늘리고 하청기업들과 이익을 공유해서 경제 전체에 이익이 골고루 돌아가는 현상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결국 삼성은 성장하고 다른 부문은 점점 더 취약해지는 현상이 벌어진 거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점이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의 위험은 삼성의 위기가 금융시장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을 말합니다. 작년 말에 나타났듯이 주가가 급락해서 패닉 현상이 나타날 수 있죠. 실물 면을 보더라도 반도체 가격 하락이 1997년 외환위기의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재벌 지배구조는 총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이죠.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 나라 전체를 뒤흔들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3)의 위험은 삼성이 정부와 국회는 물론 사법제도까지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미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로 잘 알려진 얘깁니다. 제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을 때도 삼성의 힘을 느꼈으니까요. 그런데 박근혜 정부처럼 투자활성화를 이유로 규제는 다 풀어주고 이에 저항하는 세력에는 법을 내세우는 걸 정책기조로 삼는다면, 이 나라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될 겁니다.

 

도대체 경제와 민주주의 모두에 해로운 일극(一極) 집중을 왜 방치해야 하는 걸까요? 진화경제학이나 복잡계경제학, 그리고 산업경제학 쪽의 최근 논문들은 경제의 다양한 구성이 형평성은 물론 효율성에도 훨씬 낫다고 주장합니다. 시민들 역시 삼성이나 현대차를 김연아 선수처럼 바라보는 시각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핀란드처럼 노키아가 망한 게 오히려 경제에 도움이 되는 그런 다양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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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의 늪에 빠진 청년과 서울 시민

 

기업은 나날이 성장하는데, 일반 시민의 삶은 점점 고달파지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재벌-경제관료-조중동’의 삼각동맹이 힘을 발휘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1월 10일 토닥토닥협동조합과 금융정의연대 등이 서울에 거주하는 35세 미만 미혼자 807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부채가 발생한 사유를 보면 교육이 39%, 가족문제가 17%, 생활비 부족과 창업이 각각 11%와 8%의 비율로 나타났습니다.

 

즉 대학에서 학자금 대출을 하거나 집안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청년들이 빚을 떠안게 되었는데, 지금처럼 청년 실업률이 높다면(2013년 8.2%) 연체를 할 수밖에 없고 이 빚을 갚기 위해 훨씬 조건이 나쁜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게 되는 겁니다. 그야말로 빚의 악순환입니다.

 

금융정의연대 최계연 사무국장이 청년부채 악성화를 방지하는 방안으로 '소득 수준에 맞는 원리금 면책과 6개월 단기로 완료되는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제시했습니다. 소득에 따라 채무를 빠른 시일 안에 조정해서 부채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겁니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학자금 대출을 졸업 후의 소득에 따라 갚는 방안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즉 많이 버는 사람은 자기가 빌린 돈보다 더 많이 갚고 그러지 못한 사람은 적게 갚게 함으로써 청년들 간 연대에 의해 과중한 채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죠. 이 방안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관련 기사] (☞ 청년부채 실상, 예상대로 참담했다)


아래 기사는 일반 시민도 별로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는 서울연구원 보고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 “빚 내서 빚 갚는다…” 부채상환의 악순환)

 

매주 희망적인 기사 하나 정도는 반드시 소개하겠다는 약속, 지킵니다. 주류업계가 재정을 끊어 '영구 폐원 위기'에 처했던 국내 유일한 알코올 중독 치료·재활 공익 병원인 카프(KARF) 병원을 성공회대학교가 인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이로써 '환자 강제 퇴원' 논란을 낳았던 카프 병원 폐업 사태는, 평소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았던 성공회대의 결단으로 일단락된 셈입니다. 하지만 술(과 담배)에 대한 세금을 강화하고, 이 세수를 바탕으로 정부가 알코올(니코틴) 중독 예방과 치료를 하는 것이 더 올바른 방향이겠죠.

 

[관련 기사] (☞ 성공회대, '영구 폐원 위기' 카프 병원 인수)

 

 

 

 

 

 

*본 글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칼럼지인 <프레시안 뷰>에 기고되었습니다.

 <프레시안 뷰>는 조합원만 볼 수 있으나 일부 칼럼을 선별해 전체 공개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싶으신 분들은 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되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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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7정태인/새사연 원장

 

해가 바뀔 즈음에 보통 사람들이 토정비결을 보듯 나는 경제전망 통계를 들여다본다. 유엔 경제사회국(UN DESA),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의 2014년 세계경제 전망치는 작년보다 확실히 나아졌다. 구매력지수를 사용하는 유엔의 경우 3.0%, 그리고 나머지 둘은 3.6%인데 어느 쪽이든 2013년 전망치(3분기까지의 실적 반영)보다 약 1%포인트 높여 잡았다.

세 기관이 보는 2014년 전망을 한마디로 줄이면 모두 “꽤 나아지겠지만 하방 위험은 상존한다”는 것이다. 작년보다 확실히 좋아 보이는 지역은 미국이다. 양적완화로 인해 풀린 돈이 주가와 부동산 가격을 부추기고 달러 가치가 떨어짐에 따라 수출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셰일가스 특수 또한 확실한 플러스 요인이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양적완화 축소는 작년 5~6월 같은 대혼란을 일으키지야 않겠지만, 미국의 내수와 수출 증가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고 공화당은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들이 2012년 말에 전망했던 작년 성장률은 3.5% 언저리였지만 실적치는 2% 후반대에 머물렀다. 바꿔 말하면 이른바 ‘하방 위험’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매년 예측이 빗나가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2009년 런던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한목소리를 냈던 금융규제 강화도 거의 진전이 없으니 버블은 또 한번 골칫덩어리가 될 수 있고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벌써 수명이 다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유럽의 역내 불균형이나 중국의 각종 격차를 해소하는 일도 실로 요원한 일이다.


만일 세계경제가 3.6% 성장한다면 지난해 12월27일의 정부 발표대로 한국 경제도 3.9%를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이건 전망이라기보다 차라리 희망이다. 지난 몇 년간 정부의 경제전망이 1% 이상 틀린 것은 투자와 소비, 즉 내수 증가율을 한껏 낙관적으로 보았기 때문인데 금년도 예외가 아니다.

설비투자 실적은 2012년 마이너스 1.9%, 2013년(3분기까지) 마이너스 1.6%였는데 정부는 금년에 6.2%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2012년 12월에 했던 2013년 전망치가 3.5%였으니 이번 수치 역시 미덥지 못하다. 박근혜 정부는 작년 네 번에 걸친 ‘투자활성화 대책’을 통해 몇 십년 묵은 재벌들의 숙원을 다 들어 주었다. 수도권 규제 완화 등 각종 규제완화, 나아가 지금 전방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공공서비스 산업의 민영화가 그것이다. 해서 이런 수치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지 않으면 정부의 희망은 한낱 꿈으로 판명날 가능성이 높다.

투자야 원래 ‘동물적 본능’에 따르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소비는 그다지 크게 출렁거리지 않는다. 2011년부터 3년 연속 정부는 민간소비가 3% 이상 증가할 거라고 예측했지만 실적은 1%대였다. 정부는 가계흑자율과 고용의 증가를 근거로 댔지만 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넘어 계속 증가하는 추세인 데다 사교육비, 의료비, 주택 관련 비용이 여전히 ‘등골 브레이커’인 한 다른 소비를 늘리기 어렵다. 또 고용이 증가하곤 있다지만 주로 50대 여성의 재취업이 늘어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요약하자면 별다른 대형사고가 터지지 않는다 해도 세계경제와 우리 경제 성장률은 3% 언저리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이 정도도 규제완화에 따른 건설경기의 덕을 톡톡히 본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이런 총량 수치와 관계없이 사회의 양극화가 더욱더 심각해질 거라는 데 있다. 빈부격차야말로 세계경제가 7년째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 가장 중요한 구조적 원인이다. 그사이 양극화는 더 심해졌고 따라서 세계의 총수요도 증가할 길이 없으니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의 ‘진격의 줄푸세’는 세계에서도 최악이다.

지난해 11월의 통계청 조사에서 국민 절반(46.7%)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층이라고 대답했다. 1988년 처음 조사를 실시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나아가 “일생 동안 노력하면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응답한 국민이 57.9%였다. 다음 조사에서 또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다. 일대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제발 ‘독재의 추억’을 벗어나 현실을 보기 바란다.


 

* 본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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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6정태인/새사연 원장

 

안녕하세요? 경제기사를 읽어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갑오년 새해 첫 주니만큼 2014년 경제 전망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큰 흐름에 관해 말씀드리려고 노력했으니, 제대로 했다면 1년 치 전망이라고 해서 별다른 얘기가 안 나올 테죠? 하지만 각 기관의 공식적 발표를 모아서 한번 훑어보는 것도 의미는 있을 겁니다.

세계경제 -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회복

우선 UN 경제사회이사국(DESA), OECD, IMF의 세계경제 전망을 살펴보면, 세 곳 모두 내년에는 성장률이 약 1%포인트 가량 올라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UN 쪽의 수치가 다른 것은 이 기관이 구매력 지수(PPP)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후진국들의 비중이 높아질 테니 세계경제의 경우엔 수치가 사뭇 달라지죠).


 

▲ 표1. 각 기관의 세계경제 전망 ⓒUN DESA, World Economic Situation and Prospect 2014, 12. 18 / OECD, Economic Outlook No14, 11.19 / IMF, World Economic Outlook, 10

 


지역별로 보면, 미국은 2% 중반대까지 성장하고 유로지역은 플러스로 반전하며 중국은 횡보할 것으로 전망됐군요.

세 기관의 보고서 제목을 보면 "세계경제는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신구 역풍에 대해 여전히 취약하다"(UN), "더 강한 성장이 앞에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위험도 공존한다"(OECD), "세계 성장은 저단 기어에 있다, 행위의 추동력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하방 위험은 여전하다"(IMF)입니다. 공통점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IMF가 말한 변화란, 선진국이 회복세를 주도하게 될 거라는 점입니다.

미국의 성장은 우선 양적완화로 넘쳐나는 돈이 주식시장을 부추겼고, 이제 부동산 시장도 들썩이는 데 기인한 걸로 보입니다. 다음으로는 달러화 가치가 떨어짐에 따라 수출도 증가했고, 미국으로 제조업이 되돌아오는 조짐도 일조했죠. 특히 셰일가스의 생산에 의해서 에너지 가격이 떨어진 것은 미국 특수라고 할 만합니다.

지난해 12월 23일 IMF의 라가르드 총재는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올리겠다고 발표하면서 그 이유로 양적완화 축소와 채무 상한선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일단 해소됐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양적완화를 월 100억 달러 만큼 실제로 축소했는데도 지난 5~6월과 같은 대혼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늦어지기만 했던 화폐의 유통 속도가 조금 빨라지기만 해도 단기 금리가 상승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런 회복이 2015년에도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세 기관 모두 회의적입니다. 우선 미국의 회복은 단기적인 자산효과에 기대고 있어서 거품이 더 커지는 걸 방치할 수 없을 테고 재정적자의 문제나 글로벌 불균형의 문제도 거의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미 스티글리츠나 블라인더의 글을 통해 소개해 드린 대로, 위기를 낳았던 금융 시스템의 규제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죠. 현재의 성장세가 꺾이거나 다시 버블이 터질 경우엔 또다시 금융위기로 발전할 가능성도 여전한 상태입니다.

유럽(유로 지역)의 문제는 더 근본적입니다. 언젠가 말씀 드렸듯이 공동의 통화를 쓰면서도 재정이 통일되지 않으면, 역내 불균형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력이 약한 그리스 등 남부유럽은 무역적자가 쌓일 텐데 똑같은 유로를 쓰니까 환율이 불균형을 조정할 수도 없습니다. 현재의 유럽이야말로 비전통적 금융정책(신용 확대+)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 재정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재의 통합을 다시 느슨한 상태로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죠.

중국은 3중전회에서 금융시장의 개방과 국유기업 개혁 의지를 밝히며 복지의 확대(국유기업 이윤의 30%를 연금 및 의료에 사용)를 통해 소비 주도 성장으로 이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만, 중국 내의 각종 불균형과 지방정부와 은행의 부실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 역시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UN과 IMF가 새로운 위험이라고 한 건 이른바 취약 5인방(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터키 등 국내외 적자가 많은 나라)이 양적완화나 원자재 가격 하락 등의 외부충격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때문입니다. 만일 이들 나라가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을 맞는다면, '음의 되먹임 효과(negative feedback, 복잡계 이론의 개념으로 두 요소 간 상호작용이 특정 상황을 진정시키는 방향으로 순환될 때를 말한다)'에 의해 모처럼 일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선진국 경제도 휘청거리게 되겠죠.

이들 세 기관은 모두 구조 개혁을 강조합니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만일 그 내용이 과거 IMF가 강조하던 금융시장의 자유화나 노동시장 유연화라면 강도 높은 구조개혁이 오히려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이들이 말하지 않은 진정한 구조적 문제가 더욱 악화될 테니까요. 그 문제란 전 세계에 걸쳐 나라 간 불평등, 그리고 나라 안의 불평등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미국 버클리 대학의 들롱 교수는 흥미로운 칼럼을 썼는데요. 위기 전후의 불평등 상황을 보면, 미래 경제사(經濟史)는 자본주의 사상 최대 위기를 1929년 대공황이 아니라 현재의 장기침체라고 평가할 거라는 얘깁니다. 위기 이후에도 불평등이 더욱 심해지는 한 장기적인 회복 역시 요원한 일이 되겠죠.


[관련 글] (☞ The Strange Case of American Inequality)


한국경제 - 성장률과 위험의 동반 상승?

 

▲ 표2. 한국 경제 전망 ⓒ 기획재정부, 2014년 경제전망, 12. 27

 


정부는 12월 27일 2014년 경제전망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10월의 발표와 거의 같습니다. 정부는 2012년 12월에 2013년 전망치를 1%포인트 낮춘 바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차기 정부의 부담을 없애려는 의도일지라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죠. 하지만 박근혜 정부 역시 정권을 잡으니까 미래가 장밋빛으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우선 과거의 행적을 보면 이번의 발표도 그리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 표3. 예산안 편성 시(매년 9월) 정부의 전망치와 실제치의 차이 ⓒ국회 예산정책처 '2014년 재정운용방향 및 주요 현안'(2013.8, p13)

 


국회 예산정책처가 정리한 표3를 보면 정부의 전망은 2011년 1.3%포인트, 2012년 2.5%포인트나 빗나갔습니다. 어디서 전망이 어긋났는지를 살펴보면, 매년 정부는 설비투자와 민간소비의 증가에 기대를 걸고 높은 성장률을 전망했다가 3년 연속 실적이 이에 못 미쳤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세계경제가 조금 나아질 테니까 이번엔 과거처럼 많이 틀리지는 않겠지만, 소비와 설비투자에 대한 과도한 낙관은 이번에도 반복된 걸로 보입니다.

우선 투자를 보면(표2 참조) 2012년 -1.9%, 2013년 3/4분기까지 -1.6%를 기록했던 수치가 2014년에는 갑자기 6.2%로 치솟는다고 전망했습니다. 2012년 12월의 2013년 전망치도 3.5%였는데 실적은 훨씬 못 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전망치도 그리 미덥지 않습니다. 정부 발표문을 보면, 1인당 GDP가 3만 달러로 오르려면 설비투자가 훨씬 더 많이 늘어야 합니다. 우리 경제의 생산성 역시 그렇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투자가 늘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거죠.

물론 투자는 기업의 '야성적 충동'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낙관적 기대가 차오르기 시작하면 갑자기 증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발표문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럴듯한 이유를 찾기 힘듭니다. "세계 경제의 완만한 회복세"(이 표현은 3년째 똑같습니다)로 인해 수출이 6.4%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유일한 근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수출의 50%가량을 차지하는 중국 등 동아시아가 특별히 수입을 늘릴 이유가 없는데(오히려 하방 위험이 더 큰데) 우리 수출이 3% 이상 증가할 거라는 기대는 과도한 게 아닐까요?

어쩌면 정부는 '투자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전방위 규제완화와 민영화 정책을 펴고 있으니까 재벌이 대규모 설비투자를 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이런 예측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소비는 더욱 문제입니다. 2011년부터 3년 연속 정부는 민간소비가 3% 이상 증가할 거라고 예측했습니다만, 실적치는 1%대였습니다. 투자와 달리 소비는 그다지 변화가 심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자산 가격이 상승해서 흥청망청하는 시기를 빼곤 그렇죠.

정부가 소비 증가의 근거로 삼는 건 물가안정과 고용조건의 개선, 그리고 가계흑자율의 증가입니다(p40). 하지만 1~2%의 가계흑자율 개선이 소비 확대로 이어지기는 대단히 어려워 보입니다. 가계 부채 1000조를 넘어 계속 증가하는 추세인 데다 사교육비·의료비·주택 관련 비용이 여전히 가계를 억누르고 있는 한, 소득이 조금 증가한다고 바로 내구재나 준내구재의 소비가 늘기는 어렵겠죠. 미래의 불안에 대비하기 위해 저축을 하거나 조금이라도 부채를 줄이려고 할 테니까요.

고용이 증가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정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50대 여성의 취업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50대의 재취업이기 때문에 임금이나 고용의 질이 그다지 높지 않을 겁니다.

기획재정부의 발표를 직접 보실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십시오.


[관련 기사] (☞ 정부, 내년 성장률 3.9% 전망…"경제 활성화ㆍ민생 안정'에 역점)


한국의 지뢰밭은 정부 스스로 만들고 있습니다.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 어떻게든 주가와 집값을 올리려는 정책은 더 많은 가계 부채를 만들어낼 겁니다. 재벌급 회사들의 경영상태도 그다지 좋지 못한 상태입니다. 좀처럼 위기 얘기를 하지 않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제2의 위기'를 예견할 정도니까요.

더구나 현 정부가 전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규제완화와 민영화는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더 심화시킬 겁니다. 한국 경제에서도 가장 큰 구조적 문제는 빈부격차입니다.

지난해 11월 통계청 조사에서 국민의 절반(46.7%)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층이라고 대답했습니다. 1988년 처음 조사를 실시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죠. 나아가서 "일생 동안 노력하면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없다"라고 응답한 국민이 57.9%였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행복은커녕 희망마저 잃은 거죠. 현재의 정책을 일관되게 그리고 지금처럼 무대포로(막무가내로) 추진한다면, 이 수치는 더욱더 높아질 겁니다.

 

 

 

*본 글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칼럼지인 <프레시안 뷰>에 기고되었습니다.

 <프레시안 뷰>는 조합원만 볼 수 있으나 일부 칼럼을 선별해 전체 공개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싶으신 분들은 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되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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