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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연 2014/[칼럼] 정태인 칼럼

[Weekly Punch] 세월호의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2014.06.03정태인/새사연 원장 위클리펀치 405호 : 세월호의 아이들을 생각하면서아이들 모두를 살게 할 상생의 길 6월 3일, 아이들이 그렇게 간 지 49일째 되는 날입니다. 불가에서 영가의 극락왕생이나 환생을 빌며 49재를 치르는 날이지요.식상하기 이를 데 없는 표현이라 해도, 하루종일 내리는 비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 이라는 가정 아래 온갖 다짐을 했습니다. 우리 곁으로 오기만 한다면 그까짓 등수가 무슨 상관이랴, 그다지도 하고 싶은 일을 왜 우린 그렇게 못 하게 했을까, 다시는 죽음에 이르는 경쟁에 들지 않게 하리라. 저는 그 40여일 동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공부했습니다(이미 그 일부는 여러분께 보여 드렸습니다만.. 더보기
[정태인 칼럼]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사회적 경제 2014.05.29정태인/새사연 원장 우리가 ‘세월호’의 절망에 빠져 있는 동안 바다 건너에선 세계의 아이들 수십억명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라는 ‘묵시록’이 화제다. 이제 마흔을 갓 넘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이 그것이다. 문체는 발랄하고 스스로 자신의 얘기는 묵시록이 아니라 낙관의 메시지라고 말하고 있지만…. 피케티에 따르면 자본(이 책에서는 모든 자산, 즉 토지자산, 금융자산, 산업자산)의 수익률(r)은 자본주의 역사 내내 4~5%였다. 심지어 로마시대에도 그랬단다. 이런 상황에서 성장률(g)이 떨어지고, 자본/소득 비율(현재의 자산이 국민소득의 몇배인가)마저 올라가면 r-g가 커져서 부(자산)의 집중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얘기는 경제학의 정설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리카도, 마르크스.. 더보기
[정태인 칼럼] '피케티 비율'과 한국 2014.05.20정태인/새사연 원장프랑스의 젊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이제 월드컵의 스타 축구선수만큼 유명인이 됐다. 그의 책 은 분배에 관한 이야기다. 1960년대 이래 분배 문제는 주류경제학에서 찬밥 신세였으니 상전벽해인 셈이다. 이론적으로는 보울리가 “자본과 노동이 가져가는 몫은 일정하다”는 주장을 해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새뮤얼슨의 지지를 받았고(‘보울리 법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같은 상을 받은 쿠즈네츠는 “자본주의 발전 초기에는 분배가 악화되지만 일정 단계를 넘어서면 분배가 개선된다”는, 저 유명한 ‘역U자 가설’을 내놓았다. “시장에서 자본이나 노동은 생산에 기여한 만큼 보수를 받게 된다”는 ‘한계생산력설’은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온다. 따라서 “분배는 신경쓰지 말고 성장만.. 더보기
[정태인 칼럼] '내 아이만' 살릴 길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 2014.05.15정태인/새사연 원장 아마도 ‘세월’을 외면하고 싶은 뻔뻔함도 있었을 것이다. 촘촘히 알파벳이 틀어박힌 685쪽이나 되는 두툼한 책을 정신없이 읽어내린 데는…. 지금 막 마지막 장을 덮은 책 표지에는 이라고 쓰여 있다. 요즘 전 세계, 특히 미국을 강타하고 있는 토마 피케티의 책 얘기다. 서문에 스스로 밝혔듯이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200년 되던 해,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에 피케티는 열여덟 살이었다. 이때부터 학문을 시작했다 쳐도 이제 겨우 25년, 자신의 첫 번째 저서에 감히 마르크스의 ‘자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의 무기는 장기 시계열 통계다. 각국의 공식 국민계정, 세금환급 자료, 17세기 이후의 각종 문헌, 프랑스.. 더보기
[정태인 칼럼] 누구의 책임인가 2014.04.22정태인/새사연 원장 화창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계절인데 우리 마음은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맨다. 뉴스를 볼 수도, 안 볼 수도 없다.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리면서 이 사회에 절망한다. 분노해야 한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누구의 책임인지 물어야 한다. 정치학자 보니 호닉이 명명한 “비상사태의 정치”가 발동되어야 한다. 지금이야 차마 입 밖에 못 내겠지만 주류경제학자들은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청해진해운은 망한다. 그것이 시장의 처벌이다.” 그럴 것이다. 시장은 모든 것을 “사후에 조정”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목숨은 돌아오지 않는다. 생명은 사후에 조정되거나 정산될 수 없다. 또한 시장은 시행착오의 메커니즘이다. 인간과 자연의 생명은 시행착오를 겪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