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24정태인/새사연 원장

안녕하세요? 경제의 흐름을 짚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경제일지를 만들려고 인터넷에서 신문들을 뒤적이니 온통 걸리는 건 '문창극'이라는 이름입니다. 


문창극과 '국가 개조'


일제 강점기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인식, 심지어 6.25 한국전쟁에 대한 종교적 해석 등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의 경제관 또한 문제입니다. 2010년 3월 15일 자 '공짜 점심은 싫다'라는 그의 칼럼을 읽어 보시죠. 


[관련 글] (☞ [문창극 칼럼] 공짜 점심은 싫다)


우리는 문창극 후보자가 새누리당과 주류경제학계에서도 보기 드문 철저한 시장주의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복지국가를 비판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문구, "공짜 점심은 없다"(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 스웨덴의 위기를 비판할 때 '스웨덴 병'과 함께 인기를 끌었던 말이죠)를 아예 철학적 차원으로 승화시켜서 “공짜 점심은 싫다”까지 나아갔다고나 할까요?


요컨대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건 '공짜 점심'을 거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이에게 무엇을 먹이건 밥은 부모의 책임이라는 겁니다. "부자는 무상급식에서 빼자"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주장 역시 우파 포퓰리즘으로 비판합니다. 


한마디로 지극한 시장주의입니다. "시장에서 나타난 결과는 객관적이고 각 개인이 선택한 결과이므로 마땅히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질투와 시기의 산물이다. 무상으로 표현되는 어떤 재분배정책/복지정책도 개인의 인센티브(일할 의욕)를 떨어뜨려 경제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는 거죠. 


이런 분이 총리가 된다면 박근혜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나 '국가 개조'가 어떻게 진행될지 능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까지 '혁신'과 '개조'를 명분으로 규제완화와 민영화에 악용되겠죠.  


최경환이 더 문제다 


하지만 경제 문외한인 문창극 씨가 구체적인 악행을 저지르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 면에서 더 큰 문제는 최경환 부총리 후보자입니다. 그는 6월 13일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부동산이 불티나게 팔리고 프리미엄이 붙던 '한여름'이 아니고 '한겨울'"이라며 "한여름 옷을 한겨울에 입으면 감기 걸려 죽지 않겠나"라고 말했습니다. 다름 아닌 총부채상환비율(DTI)와 주택담보 비율(LTV) 얘깁니다. 은행에서 빚을 얻을 때 사려는 집값의 일정 비율 이상은 안 되며(LTV) 원리금 합계가 소득의 일정 비율을 넘어서도 안 된다(DTI)는 은행 대출규제를 문제 삼고 있는 겁니다. 


▲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된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연합뉴스

▲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된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연합뉴스


LTV와 DTI에 관해서는 저도 개인적으로 추억이 많습니다. 우선 제가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경제비서관(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차장)일 때 이 정책 수단이 처음 제기 됐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2005년 경제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부동산 경기 과열이었습니다. 당시 핵심 문제는 제가 대통령에게 설명 드렸듯이 "공급을 늘리는데도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은 그보다 빨리 수요곡선이 오른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 즉 투기수요 때문"이라는 데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투기수요를 잡아야 했고 그래서 등장한 게 종합부동산세였습니다.  


한편 수요곡선의 이동속도는 금융대출이 좌우합니다. LTV와 DTI는 이 속도를 늦추는 정책, 즉 능력이 없는 사람까지 투기에 참여해서 후일 파산하는 걸 예방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참여정부는 2006년 11월 이들 금융규제를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부동산 투기는 진정됐습니다. 어쩌면 건설 및 부동산업자, 정부와 청와대 내의 성장론자, 그리고 주류경제학자들이 종부세를 막느라고 힘을 다 빼서 이 두 정책은 무사통과 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LTV와 DTI는 4년 뒤, 2010년 초여름에 다시 한번 화제가 됐습니다. 그 해 7월 20일 이명박 정부의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은 DTI와 LTV가 "거시 건전성 규제 수단으로서 세계적인 모범 사례"라고 말했습니다(이후 그는 이 주장을 자신의 학술 논문에도 집어넣었습니다).


신현송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인복이었습니다. 세계 금융위기의 진단과 처방이라는 점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프린스턴대로 스카웃된 학자가 청와대의 보좌관이 된 건 참으로 기이했습니다. 제 의문을 풀어준 건 장하준 교수였죠. 이명박 씨가 현대건설 사장을 할 때 신 교수의 아버지는 부사장이었고, 이후 이명박 씨가 런던에 올 때마다 신 교수의 집에서 잤다나요(신 교수는 원래 옥스퍼드대 교수였죠). 신 교수는 이명박 씨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사이였답니다. 


이 개인적 인연이 이명박 정부를 수렁에서 구했습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신 보좌관은 2010년 '거시 건전성 규제 3종 세트(선물환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 부담금)'를 도입했습니다. 단기자금의 유입을 줄이는 정책이었죠. 당시에 저는 이 정책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의 이력을 알게 된 것도 "어떻게 이명박 정부에 이런 인물이 있을 수 있나"를 수소문했기 때문이니까요. 


신 교수가 LTV와 DTI가 '세계적인 모범'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것은 2010년 당시에도 정부 내에 DTI와 LTV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당시 한나라당 의원 출신인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2010년 7월 14일 "DTI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부동산 경기가 과열됐을 때 쓰는 것"이라며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어 있을 때는 신축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불을 지폈습니다. 당시의 건설업자들, 그리고 대부분의 경제성장론자들의 소원을 대변했던 거죠. 하지만 신 교수가 강력하게 막아서서 이명박 정부에서 이 규제완화 만큼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신 보좌관에게 이들 금융규제는 부동산 대책이라기보다 거시 건전성 규제(세계금융위기 이후 만들어진 용어로 거시 경제의 불안정성을 미리 예방하는 규제)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만일 2010년 거시 건전성 규제 3종 세트가 도입되지 않고 오히려 최경환 당시 지경부 장관의 주장대로 경기를 살리기 위해 LTV와 DTI를 완화했다면 한국은 이명박 정부 말기, 늦어도 박근혜 정부 초기에 심각한 금융불안에 시달렸을 겁니다.  


또다시 4년이 지난 지금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빚내서 집을 사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건설경기로 경제를 살리자, 그런데 공급을 늘리는데도 집값이 오르려면 2005년과 같은 투기수요가 필요합니다. 더구나 그때와 달리,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기꺼이 빚내서 집을 살지 의문이니 더 강한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마 이런 규제완화에도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더 강한 규제완화를 들고 나올 게 틀림없습니다. 


최 후보자 말대로 LTV와 DTI는 부동산 과열 때문에 도입된 정책이니 이젠 그 원인이 사라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 후보자가 2010년에도, 또 지금도 모르고 있는 것은 거시와 금융입니다. 지금 한국 경제의 최대 복병은 1025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에 도달한 가계부채입니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가구소득은 연평균 4.6%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가계부채는 연평균 8.4% 증가했습니다. 그 결과 가계 부채 비율도 꾸준히 올라 지난해 말 161.3%를 기록했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소비가 늘어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부동산 투기를 일으켜서 가계부채를 더욱 증가시키겠다는 정책은 당장은 경기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일반 서민은 움직일 것 같지 않고 자산가 계급만 일부 반응을 보일 것으로 보입니다만), 미래의 더 큰 폭탄을 준비하는 거나 다름없는 거죠. 


<조선일보>는 여야를 막론하고 강봉균, 한이헌, 권혁세 등 과거의 경제 관료들을 총동원해서 부동산 경기부터 살려야 한다고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말기부터 지금까지 부동산 규제는 계속 완화됐지만 아직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니, 이제 마지막 남은 금융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거죠. 


[관련 기사] (☞ "한국경제 남은 골든타임(선진국 경제로 진입할 마지막 기회) 2년뿐… 不動産부터 살려라")


불행하게도 박근혜의 청와대에는 신현송 보좌관이 없습니다. 지난 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을 때 현오석 부총리는 LTV와 DTI의 완화를 슬쩍 흘렸습니다. 당시엔 신제윤 금융감독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일제히 반대에 나섰죠. 가계부채와 은행의 거시 건전성이 문제라는 정답을 들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이들도 태도를 바꿨습니다. 신 금감위원장은 침묵하고 최 금감원장은 지난 17일 "LTV·DTI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말했죠. 불과 4개월 만에 우리 경제에 무슨 큰 변화라도 생겼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최 후보자가 실세이기 때문일까요?  


가계소득을 늘려야 할 시점에 가계 부채를 늘리는 정책에 일반 서민들이 현혹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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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정태인/새사연 원장

지난 5월 23일 목 빳빳하기로 유명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의 경제에디터 크리스 질즈(Chris Giles)가 칼을 빼들었다. 금년 초 미국에서 번역본이 출간된 후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책 <21세기 자본>이 표적이었다.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 아이들이 ‘레미제라블’이나 ‘왕자와 거지’의 시대처럼 극심한 불평등을 겪을 것이라는 피케티의 암울한 예언은 전 세계의 보수 언론과 주류 경제학자들을 자극했다. 하지만 여태 나온 비판은 기껏 ‘색깔 칠하기’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피케티의 비장의 무기인 장기 통계 자체를 문제 삼았으니 과연 <파이낸셜타임즈>답다.

 

질즈는 무려 9쪽에 걸쳐 피케티가 통계를 뻥튀기하거나 비교 연도를 잘 못 골랐으며 자기 마음에 드는 수치를 일부러 뽑아 썼다고 밝혔다. 그 중 결정적인 대목은 영국의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완화되었다는 주장이었다.

 

 

 ▲ 지난달 2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 피케티의 연구 오류를 지적하는 기사. 

▲ 지난달 2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 피케티의 연구 오류를 지적하는 기사.

 

그는 신뢰할만한 통계로 영국 정부의 ‘부와 자산 조사’(Office of National Statistics, Wealth and Assets Survey)를 꼽으면서 이 통계에 따르면 상위 10%에 집중된 부는 44%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케티의 71%에 비하면 현저하게 적은 수치다. 세계의 언론들은 이 주장을 받아썼고, 경제학자들도 이 기사를 인용해서 피케티에 대한 불신을 부추겼다.

 

일주일 뒤 피케티는 겸손한 어투로 10쪽에 이르는 반박문을 실었다. 핵심은 질즈가 불평등에 관한 시계열 통계를 작성하면서 과거의 수치는 세금 자료를 사용하고 최근 수치는 ONS의 센서스 자료를 이어 붙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소득을 직접 물어보는 센서스 자료는 부자들의 소득을 과소평가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최상위 구간이 ‘10억원 이상’이라면 50억원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나 100억원 이상의 억만장자도 이 구간에 체크할 수밖에 없고, 일반적으로 부자들은 자신의 소득을 줄여서 대답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세금환급자료는 국세청의 사후 검증이 있기 때문에 훨씬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통계의 앞부분은 세금자료를 이용하고 뒷부분은 센서스 자료를 이용한다면 당연히 불평등은 한결 완화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기실 센서스 자료와 세금자료를 동시에 고려해서 통계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 피케티의 핵심 주장이었다. 영국의 경우엔 앤소니 애트킨슨(Anthony Atkinson, 옥스퍼드대) 등과 함께 이 방법으로 10여년에 걸쳐 통계를 만들었다. 피케티와 동료들은 논문을 출판하면서 모든 자료를 인터넷에 액셀파일로 공개했다. 자신들의 오류가 있다면 지적해 달라는 것이고 다른 나라도 동일한 통계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계층별 재산소유 상태를 알 수 있는 통계는 한국은행, 통계청, 그리고 금육감독원이 2012년부터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가 유일하다. 이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의 상위 10%는 45%의 순자산을 소유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가 밝힌 영국의 수치와 비슷한데 이 역시 센서스 자료이다. 재산세 자료를 이용하면 한국의 이 수치도 70%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세청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한 우리가 이 의문을 풀 길은 없다.

 

고무적인 일도 있다. 지난 6월 16일 한국은행은 피케티 비율 중 하나인 β(=W/Y, 민간 순자산의 가치를 국민소득으로 나눈 값)의 통계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부의 불평등과 관련한) 논의가 합리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숫자를 만드는 우리가 시계열 자료를 만들어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뒤따랐다.

 

하지만 β는 국민소득 중 자산(자본)이 가져가는 몫을 보여줄 뿐, 계층별 불평등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예컨대 β값이 제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모든 국민이 부동산과 금융자산, 그리고 산업설비를 똑같이 소유하고 있다면 부의 분배는 평등한 것이다.

 

계층별 불평등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한은 등의 센서스 자료와 함께 국세청의 자료가 공개되어야 한다. 국세청이 한국은행과 같은 마음을 먹으면 얼마나 좋으랴. 실태를 알아야 논의를 하고, 필요하다면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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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8정태인/새사연 원장


“선거 다음 날인 6월5일이 마감입니다.” 내 원고 ‘담당’인 차형석 기자의 메시지가 전해진 순간, 이 글의 주제는 정해졌다. 내 아무리 경제 쪽 칼럼을 맡았다고 해도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주제를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여 밤새워 텔레비전에서 반짝이는 숫자들을 들여다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지만 마땅히 쓸 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선거를 치르면서 ‘이거다’ 싶었던 생각들은 그저 ‘감’일 뿐 아무런 근거가 없다. 예컨대 “베이비 부머인 50대는 여전히 여당을 지지했을 거다” “이번에 그나마 야당이 참패하지 않은 것은 세월호 탓에 30~40대 앵그리 맘들이 마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등등이 그러하다.

확실한 것은 17개 광역시·도 중 13개 지역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었다는 사실뿐이다. 세월호는 확실히 교육을 정치로부터 분리한 것처럼 보인다. 교육감 후보들의 정당 기호가 없다는 사실도 이런 결과에 일조했을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의 말대로 “한국의 역사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아니 나뉘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적어도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기만 하면’이라는 가정 아래 우리가 애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상상해보았을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비교 대상이 될 만한 나라 중에서 최악의 자산불평등을 가진 나라(내가 일하고 있는 연구원에서 계산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피케티 지수 β(민간순자산/국민소득)는 7.4로 이탈리아와 일본, 프랑스보다도 높다), 임금격차 또한 세계 최악의 수준이며,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대학 서열에 따라 정해지는 나라에서 현재의 극단적 경쟁 교육은 필연이다.


말코큰뿔사슴의 끝없는 ‘등수 경쟁’이 가져온 불행 


한국에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 경쟁은 50만명이 한꺼번에 치르는 ‘죄수의 딜레마’다. 암기식 입시교육, 나아가 사교육을 안 할 도리가 없지만 모두 똑같은 노력을 한다면 등수는 그대로일 것이다. 아이만 괴롭히고 성과는 없는 경쟁, 모두에게 손해인 경쟁에 우리는 아이들의 생명을 내맡기고 있다. ‘할아버지의 재산,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승리의 비결이라는 우스갯소리는 이 게임의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다. 안 할 도리가 없는 경쟁이지만, 보통 집안이라면 거의 100%의 확률로 패배가 정해진 게임에 아이들을 몰아넣고 있다. 등수 경쟁은 ‘상대적 지위 경쟁’이다. 경제학자 프랭크(R. Frank)가 <경쟁의 종말>에서 지적했듯이 가장 나쁜 경쟁이다. 말코큰뿔사슴은 우수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큰 뿔을 가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지만 결국 점점 큰 뿔을 가지게 된 이 종은 사자의 공격에 취약하게 된다. 등수 경쟁은 끝이 있을 수 없다.

애서모글루(D. Acemoglu)와 크레머(M. Kremer), 그리고 미안(A. Mian)은 2008년에 고강도 유인(high powered incentive)이 ‘노력의 구성’(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할 노력)을 왜곡할 수 있다는 글을 발표했다. 예컨대 의료 분야에서 의사가 병원 수입을 늘리도록 장려한다면 그들은 고가의 장비를 불필요하게 사용하려 들 것이고, 기소를 많이 하는 검사에게 승진 기회를 더 준다면 그들은 범죄자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교육 또한 그렇다. 학교들이 일제고사의 순위에 신경을 쓴다면 점수 올리기 좋은 과목만 집중적으로 가르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국의 교육 실태를 알았다면 이런 주장의 가장 좋은 증거가 되었을 것이다. 애서모글루 등은 수익성이 유일한 목적일 수 없는 분야, 즉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서는 ‘저강도 유인’을 사용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한다.

경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의 각종 불평등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피케티가 제안한 자산세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제아무리 진보적이라 할지라도 교육감 13명이 이런 근본적 치료를 하거나 대학입시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평소에 50만명의 등수를 매기는 일제고사를 없앨 수는 있으며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흡수하는 방법도 고안해낼 수 있다. 역사 교과서나 경제 교과서의 편협성을 누그러뜨릴 수도 있을 것이며 나아가서 ‘혁신학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기 교육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가 이런 개혁에 동의하게 된다면 비로소 우리는 아이들을 이 거대한 ‘세월호’에서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과연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13명 교육감이 그 답을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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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1정태인/새사연 원장

 

내가 힘닿는 범위 안에서 선거운동을 한 두 후보는 당선됐다. 출구조사부터 널찍한 폭으로 이기는 것으로 나왔기에 여느 선거처럼 바작바작 애가 타지도 않았다. 더구나 교육감 후보는 4%에서 40% 지지로 기적을 빚어내며 승리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기초선거 결과가 보도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도저히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

발단은 이랬다. 마포구 오진아(정의당), 구미시 김수민(녹색당), 관악구 나경채(노동당) 의원은 모두 한 뿌리 진보정당 출신 현역 의원들이었다. 지난 4년 동안 이들은 빼어난 성과를 거뒀고 주민들과 한 호흡이었지만 모두 낙선했다. 여기에 더해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과천의 서형원 후보(녹색당)도 낙선했다. 이들이 떨어진 이유는 도대체 뭘까? 흔히 듣는 답은 새정치연합과의 ‘후보 단일화 부재’이다.

진보정당은 교과서적 정당정치를 하는 곳이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가치와 비전, 정책에 관해 (간혹 과도할 정도로) 진지하게 토론하고 지역에 뿌리박으려 노력하는 정당들이다. 이들 정당은 기초선거의 정당공천제 폐지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들의 자랑스러운 정당은 후보의 발목을 잡았다.

도대체 정당이 뭐길래? 이 의문은 꼬리를 물고 점점 부풀어 올랐다.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도 이번 선거의 특징이다. 이들의 지지율은 4년 만에 평균 9.3%포인트 올랐다. 흔히 세월호 참사의 여파라든가 후보 단일화, 그리고 혁신교육의 성과를 이유로 든다. 하지만 진보정당들의 지지율은 모두 합쳐 10%도 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당선 교육감들의 성향은 새정치연합이라기보다 정의당이나 녹색당에 더 가깝다. 교육감 당선자들도 지지하는 당을 표기했다면 낙선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새정치연합 소속이거나 후보 단일화가 당선의 충분조건인 것도 아니다. 같은 새정치연합 소속이라 해도 박원순, 최문순 당선자와 송영길, 김진표 낙선자를 비교해 보면 누가 뭐래도 후자가 더 ‘진성 민주당’ 사람들이다. 즉 거의 같은 조건에서 시민들은 ‘비민주당’ 인사를 더 선호한 것이다.

침몰하는 세월호 사진 속에서 치른 선거임에도, 침몰하지 않은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전국적으로 “박근혜 마케팅”에 의존하고 일부 후보의 경우 네거티브에 목을 맨 것은 정상적인 정당의 행위가 아니다. 스스로 정당임을 포기한 덕에 파국을 모면했다.

이 모든 현상들의 배후에 갖가지 “정치 혐오”와 “정당 불신”이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정치는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 모두의 공익, 또는 공공성의 내용과 실현 방식은 정치(숙의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정당하게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가 암시하는 사회적 재난, 극심한 불평등이 불러올 경제적 위기(한국의 피케티 비율은 우리나라가 선진국 어느 나라보다도 자산 불평등이 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핵발전소의 당면한 위험, 나아가서 한 나라를 넘어서는 생태위기를 자동적으로 시장이 해결해 줄 리 없다. 오직 정치가 희망이고 이를 위해 존재하는 근대적 제도가 정당이다.


선거에서 개인의 도덕성과 능력은 매우 중요하며 이번 선거도 이를 입증했다. 하지만 서민적 엘리트라 해도 거대한 방향 착오를 일으킬 수 있고, 합당한 정책을 수행하려 해도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정치 엘리트의 견제, 정책 형성과 실현, 둘 다 정당이 해야 마땅한 역할이다.

그런데 이 당 저 당 할 것 없이, 지금 우리 정당들은 정치를 가로막는 존재가 된 것처럼 보인다. 독립지역정당의 합법화, 비례대표제의 대폭 확대와 결선투표제 도입, 직접 민주주의 제도의 도입 등 부분 해법은 수없이 제시되어 있다. 직접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거대한 위기와 맞서기 위해서도 현재의 정당정치는 총체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방향으로, 또 어떻게?” 이 의문이 한낱 시민을 가위처럼 짓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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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5정태인/새사연 원장
도대체 무슨 얘기를 했길래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자 선언>(흔히 "공산당 선언"으로 번역)은 "유령 하나가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2014년 또 하나의 유령이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의 분배문제를 다룬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Belknap Press 펴냄)이 그것이다. 

▲ <21세기 자본>(토마 피케티 지음, Belknap Press 펴냄). ⓒBelknap Press

▲ <21세기 자본>(토마 피케티 지음, Belknap Press 펴냄). ⓒBelknap Press

사실 주류경제학은 분배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수학적으로 보면 일정한 조건(실은 완전경쟁시장과 1차동차 생산함수라는 대단히 비현실적인 조건)이 만족된다면, 각 생산요소에 돌아가는 분배 몫은 한계생산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아서 보울리는 실제로 이 분배 몫이 일정하다고 주장했고("보울리의 법칙"), 사이먼 쿠즈네츠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본주의 발전 초기에는 분배가 악화되지만 일정 단계가 지나면 개선될 거라고 예언했다("역U자 가설"). 

이에 따라 성장에만 신경 쓰면 그만이고, 섣불리 분배문제를 건드렸다가는 상황만 악화시킬 거라는 주장은 지금도 주류경제학의 신조에 속한다. 이 같은 주장은 케네디 대통령의 "밀물이 오면 모든 배가 떠오른다"는 정치적 구호로 표현됐고 지금도 한국의 성장론자들이 신봉하는 교의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프랑스의 43살짜리 경제학자가 이 모든 주장과 구호를 단숨에 엎어버렸다. 그의 무기는, 어느 누구도 쉽사리 부정할 수 없는 장기 통계, 즉 역사적 사실이다. 그가 초점을 맞춘 수치는 "어떤 시점의 한 나라 순자산(피케티의 "자본")을 그 해의 국민소득으로 나누면 얼마나 될까?"(β=W/Y, W는 민간순자산, Y는 국민소득)이다. 

예컨대 한국의 2014년에 민간이 가지고 있는 부(순자산)를 국민소득으로 표현하면 몇 배나 될까를 표현하는 수치이다. β에 자산수익률을 곱하면 그 해 자산소유자들이 가져간 몫이 될 것이다(α=rβ). 그는 이 회계적 항등식에 "자본주의의 제1 근본법칙"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을 붙였다. 

<그림1>에서 보듯이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β는 19세기 말에 6~7배로 정점을 찍은 뒤 1910년에서 1950년까지 2~3배로 급전직하했다. 두 번의 전쟁과 대공황으로 인한 재분배정책 때문이다. 이 수치는 80년대부터 서서히 상승해서 현재는 4~6배까지 치솟았다. 또한 그는 자산의 수익률(r)은 역사 전 기간에 걸쳐 4~5%라고 계산했다(<그림2>). 

이렇게 그림을 그려 놓으니까 간단해 보이지만 선진국에서도 90년대 들어 발표하기 시작한 "국민대차대조표"(한국은 지난 5월 14일 최초로 잠정적인 대차대조표를 발표했다)가 없는 상태에서 이런 통계를 만든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지난한 일이다. 더구나 프랑스나 영국의 경우에는 1700년대부터 과거의 문헌을 뒤져서 이 수치를 추적해 냈다. 또한 세금자료를 이용해서 1% 단위로(심지어 0.1% 단위로) 각 계층이 얼마나 자산과 소득을 차지하는가를 추적했으니 당분가 어느 누구도 이 수치 자체에 대해서는 논박하기 어려울 것이다.  


▲ <그림 1> 유럽의 자본/소득 비율(=β) 추이 (출처 : Piketty, 2014, 26쪽)

▲ <그림 1> 유럽의 자본/소득 비율(=β) 추이 (출처 : Piketty, 2014, 26쪽)



<그림1>은 글머리에 제시한 주류경제학의 정설들을 뒤엎는 데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기실 1945년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의 30년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기간이라는 것이다. 이 시기는 "자본주의의 황금기", 프랑스의 "영광의 30년", 독일의 "라인의 기적"에 해당한다. "보울리의 법칙"이나 "역U자 가설"은 모두 이 짧은 기간에 해당하는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한계생산력설"에 대한 계량 연구도 이 시기의 안정적인 분배를 반영할 뿐이다. 1910년대부터 두 번의 세계전쟁, 대공황 이후 최고 한계세율이 90%가 넘는 재분배정책 등(피케티는 이를 자본주의의 내재적 성향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외부 쇼크"라고 부른다)이 이런 예외적 시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피케티의 이 얘기를 뒤집으면 우리나라의 진보 쪽이 그리는 "복지국가"를 이루려면 그만한 "외부 쇼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다음 단계는 도마-솔로우의 "장기 균형성장 조건"(β=s/g, s는 저축률, g는 경제성장률)과 현실의 수치를 비교하는 일이다. 피케티는 이 방정식에 다소 구질구질한 설명을 덧붙여(제5장) "자본주의 제2 근본법칙"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 보기에 자신의 통계와 이 "균형성장조건"을 비교했다고 하는 편이 더 올바를 것이다. 


▲ <그림2> 세계수준의 수익률(r)과 경제성장률(g) 추이  (출처 : Piketty, 2014, 354쪽)

▲ <그림2> 세계수준의 수익률(r)과 경제성장률(g) 추이 (출처 : Piketty, 2014, 354쪽)



만일 <그림2>처럼 경제성장률(g)이 자본의 수익률(r)보다 적다면 자산가들은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될 것이다. 경제성장에 의해 노동이 가져가는 소득보다 자산의 수입이 훨씬 많다면, 또 자산가들이 자신의 자산수입 일부를 저축해서 자산을 더 늘린다면 부의 집중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피케티의 추산에 따르면 세계 주요국의 인구증가율은 점점 더 낮아질 것이므로 성장률과 수익률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단, 위 그림에서 보듯이 자산수익률이 전 역사에 걸쳐서 4~5%라면 그렇다는 얘기다.(이 점이 앞으로 경제학계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이다) 

이제 누가 잘 사느냐, 못 사느냐는 재능이나 노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상속에 의존하게 된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가난한 젊은 귀족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검사가 될 것인지, 돈 많은 미망인을 유혹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라스티냑의 딜레마"). 21세기는 다시 그런 "세습자본주의"가 될 거라는 얘기다. 

피케티의 또 하나의 업적은 이런 상황을 기초로 해서 소득분위별 소득과 재산의 추이를 추적한 것이다. 국민계정 통계와 세금 자료를 엮어서 장기 통계를 추정했는데 현재 대체로 상위 10%가 순자산의 70%를 소유하고 나아가서 1%가 그 반인 30~40%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림3> 참조). 


▲ <그림3> 유럽과 미국의 부의 불평등. (출처 : Piketty, 2014, 349쪽)

▲ <그림3> 유럽과 미국의 부의 불평등. (출처 : Piketty, 2014, 349쪽)



미국의 경우에는 최상위 노동소득도 부의 불평등을 촉진하고 있다. <그림4>를 보면 미국에선 1970년대부터 상위 10%가 노동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이 가파르게 증가해서 이미 이전의 최고치였던 1930년대 수준을 넘어서 거의 50%에 육박하고 있으며 유럽도 80년대부터 이런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 중에서도 최상위 1%가 그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피케티는 최고경영자들의 천문학적 보수는 일종의 지대라고 단언한다. 스스로 임금을 책정하거나 비슷비슷한 부류의 인사들이 보수위원회에 모여서 자신들의 임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상위 10% 내의 소득분포를 분석해서 베커의 인적자본론도 비판하고 있다. 최상위 1%와 나머지 9%는 거의 비슷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도 (따라서 한계생산성이 비슷하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도) 그 내부에서조차 임금의 격차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자산과 소득의 상위 집중이 점점 더 커지면 당연히 정치와 사법부까지 부자들이 마음대로 뒤흔드는 유럽의 "벨 에포크", 미국의 "도금시대"(둘 다 대체로 18세기 말에서 1910년경까지)가 부활할 것이다. 피케티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상황이다.  

피케티는 그런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면 글로벌 자본세와 최고세율 80%에 이르는 누진소득세를 전 세계가 동시에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정책은 스스로도 유토피아적이라고 이름 붙였듯이 세계 각국이 동시에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피케티는 EU나 미국과 같은 거대 경제권이 선도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 <그림4> 유럽과 미국의 소득불평등(상위 10%의 소득점유율). (출처 : Piketty, 2014, 324쪽)

▲ <그림4> 유럽과 미국의 소득불평등(상위 10%의 소득점유율). (출처 : Piketty, 2014, 324쪽)



하지만 이 정책을 실행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동아시아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두 배 가량 높고 자산의 불평등은 선진국에 비해 덜 진행됐기 때문에 자본세의 세율이 그리 높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주류경제학의 대대적 반박, 자본수익률이 과연 일정한지에 관한 논쟁, 그리고 정책대안에 관한 논란이 이어질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 "빨갱이"라는 낙인찍기는 이미 시작됐다. 그들에게 "21세기 자본"은 유령인 것이다. 


한국의 피케티 비율 

지난 5월 14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아주 중요한 보고서, "국민대차대조표 공동개발 결과(잠정)"를 펴냈다. 이 두 기관은 국민계정 통계의 최고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국민대차대조표"(세계적으로도 이 표를 만들기 시작한 건 10년 밖에 되지 않는다)를 만들고 있다. 피케티의 자료 중 기능별 분배(자본 몫과 노동 몫의 분할) 역시 국민계정에 의존하기 때문에 한국은행과 통계청의 자료는 바로 피케티 지표들과 비교할 수 있다.  

이번 자료에서 직접 나온 수치는 β값의 근사치이다. 한은과 통계청은 우리나라의 국민순자산(국부)은 1경 630조.6조원으로 국내총생산(1,377.5조원)의 7.7배로 추계되었다고 밝혔다. 이 수치를 피케티의 비율로 바꾸려면, 1) 분자의 국민순자산에서 정부의 자산을 빼서 민간 순자산을 계산하고 2) 분모의 국내총생산을 실질국민총소득으로 바꾸면 된다. (처음에는 국내 총생산을 국민총소득으로 바꾸는 실수를 했다. 국제비교를 위해 피케티의 정의를 따른다면 감가상각분을 뺀 국민소득을 써야 했다. 노동연구원 이병희박사의 지적으로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처음 계산에 비해 노동소득분배율도 달라졌는데 피케티의 정의에 따라 자영업자의 소득을 전체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비례에 맞춰 새로 계산했다. 이 역시 이병희박사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치가 잠정치이고 피케티의 각 수치에 관한 해석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절대적인 수치보다 추세를 확인하기 바란다. -필자 주) 현재 한은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부록과 한은 통계 데이터베이스)로는 2000년에서 2012년까지 추계가 가능하다. 그 결과가 <그림5>이다. 


▲ <그림5> 한국의 β(=민간순자산/국민총소득) 추이 (작성 : 정태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 <그림5> 한국의 β(=민간순자산/국민총소득) 추이 (작성 : 정태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하지만 현재 한은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서 민간과 정부의 금융순자산의 시계열은 최근 몇 년밖에 찾을 수 없다. 민간의 금융순자산은 현실적으로 0에 가까울 것이고(외국에서 빌려온 돈을 제외하면 차입과 대출을 합하면 0일 것이다) 정부는 마이너스겠지만(정부의 채권 발행만큼) 어쩔 수 없이 금융자산은 제외했다.(만일 외환보유액이 정부자산에 포함된다면 이 주장은 철회되어야 할지도 모른다.-필자 주) 그러므로 금융자산까지 포함하면 β값은 <그림5>보다 조금 더 커질 것이다. 



▲ 세계 각국의 β 값 추이. (출처 : Piketty & Zucman, 2014, 「Capital is Back: Wealth-Income Ratios in Rich Countries 1700~2010」)

▲ 세계 각국의 β 값 추이. (출처 : Piketty & Zucman, 2014, 「Capital is Back: Wealth-Income Ratios in Rich Countries 1700~2010」)



<그림5>와, <그림6>의 2000년 이후 각국의 β값 추이를 비교해 보면 국의 수치는 일본과 이탈리아 정도로 높은 수준(5.6 또는 560%)에서 시작해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한국의 β값은 7.5로 선진국 중 최고치이다.

β는 민간의 순자산(부)을 한 해의 국민소득으로 나눈 수치이다. 당연히 이 수치가 크면 클수록 부의 집적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이 수치 자체가 분배 상황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국민 모두 똑같은 양의 부동산과 생산자본,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통계에서 개인별 자산분배를 알 수 있는 통계는 없다.


▲ 한국의 자산 지니계수. (출처 : 새사연)

▲ 한국의 자산 지니계수. (출처 : 새사연)



그리하여 다른 방법으로 한국의 불평등 정도를 추정했다. 한국 노동패널(가구) 2차~11차 자료를 이용해서 자산 지니계수를 구해 보면(<그림7>) 2000년대에 우리나라의 자산 소유가 점점 더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물론 피케티는 지니계수에 대해 "불평등에 대한 추상적인 불임의 견해"라서 오히려 현실을 호도한다고 비판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β는 19세기 말(유럽의 벨 에포크 시대, 미국의 도금시대)의 극심한 불평등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아이들은 "레미제라블" 상황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또한 <그림8>에서 보듯이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최상위 1% 임금이 노동소득에서 차지하는 몫도 급증하고 있다. 


▲ <그림 8> 우리나라 노동소득 하위 99%의 소득비중과 상위 1%의 소득 비중. (출처 : 이병희 외,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시장 연구'. 2013, 57쪽)

▲ <그림 8> 우리나라 노동소득 하위 99%의 소득비중과 상위 1%의 소득 비중. (출처 : 이병희 외,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시장 연구'. 2013, 57쪽)



이런 불평등 상황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국민총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은 한은의 계에서 (1-노동소득분배율)에 해당한다. 한은 통계에서 노동 몫은 피용자보수/국민소득으로 계산된다. 여기서 자영업자의 잉여 중에 어느 정도나 피용자 보수에 포함시킬 건지, 국민소득은 어떤 수치로 할 건지가 논란이 된다. 공식 통계인 한은의 노동분배율(노동 몫)은 자영업자의 잉여를 피용자 보수에 넣지 않는다. 2000년 이후 한은의 노동소득분배율은 대체로 60% 수준(<그림9>)이니까 자본 몫은 40% 정도가 될 것이다. 여기서는 피케티의 방식에 따라 자영업자의 소득을 전체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비율에 따라 나누었다(<그림9>). 

또 피케티는 노동소득분배율을 계산할 때 통상적인 요소소득국민소득이 아니라 국민순소득을 사용하였다(회계적 항등식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분모가 다르기 때문에 한은의 노동소득분배율과 교차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한 것은 피케티 비율의 국제비교를 위한 방편일 뿐이다. 


▲ <그림9>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 (작성 : 정태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 <그림9>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 (작성 : 정태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피케티 방식으로 α(=1-노동소득분배율)를 구한 뒤 β로 나누면 민간의 자산수익률 r을 구할 수 있다(r=α/β, 피케티의 '자본주의 제1근본법칙'). 그렇다면 한국의 자산수익률과 실질국민소득증가율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적어도 선진국들도, 한국도 인구증가율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g가 점점 낮아질 거라는 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위에서 구한 r과 g(한은 통계에서 실질국민총소득증가율을 택했는데 어느 수치를 택해야 하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를 비교해 보면 한국의 불평등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있다. (<그림2>에 비교해서 아래 <그림10>의 g의 모습이 변화가 심한 것은 <그림10>은 극히 짧은 기간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 필자 주)


▲ <그림10> 한국의 자본(자산)수익률과 실질국민소득 증가율.

▲ <그림10> 한국의 자본(자산)수익률과 실질국민소득 증가율.



<그림10>에서 보듯이 한국의 자산수익률은 전반적으로 경제성장률을 상회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r과 g는 적어도 몇 십년에 이르는 장기적 추세 속에서만 의미가 있기 때문에 어떤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장률 그래프가 시사하는 것처럼, 그리고 거의 확실한 우리의 인구증가율에 비춰 보면 r-g가 점점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통계가 없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1960년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였을 것이다. 해방 후 농지개혁을 한 데다 한국전쟁으로 지주계급이 거의 소멸했기 때문이다. 지주들에게 돈 대신 준 지가증권이 전시 인플레이션으로 휴지조각으로 바뀌었다. 지주계급이 산업자본이나 금융자본까지 모두 장악한 동남아나 중남미와 비교할 때 동아시아가 경제성장이 빨랐던 이유 중 하나이다. 

또한 70~80년대의 높은 경제성장률 때문에 자산 불평등은 그렇게 빨리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위의 그림들에서 확인한 것처럼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대단히 빠른 속도로 사정이 악화되고 있다. 피케티가 책 곳곳에서 되풀이한 경구대로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운다."

세월호가 우리를 절망케 했던 것은 뻔히 눈뜨고도 단 한 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한국의 피케티 비율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전부, 곧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피케티의 주장대로 과감한 자산재분배와 소득재분배가 답일 테다. 그 스스로 "유토피아적" 해법이라고 말하지만 우리 아이들에 대한 현재의 심정이라면 결코 못 할 일이 아니다. 아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다시 한 번, 문제는 정치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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