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3김병권/새사연 부원장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이후 우리 사회의 미래 전망에서 가장 애매한 대목은 '경제민주화'의 향방이다. 18대 대선에서 시대정신으로 부상했고 박근혜 당선자도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제시한 것이 경제민주화였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자 자신은 물론이고 소속된 정당의 성격이 경제민주화보다는 신자유주의를 뿌리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진정성 논쟁이 나왔고 집권 후에 과연 약속을 지킬 것인지 의문도 많았다.

일단 첫 시작은 희망적이지 못하다. 가장 기초적인 경제민주화의 관문이라 할 대형 할인마트 규제를 크게 후퇴시켰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법안처리를 미뤄 둔 유통산업발전법에서 저녁 10시부터 영업시간을 규제하자는 안도, 월 3회 이상 휴무를 규정하자는 안도 모두 새누리당에 의해 거부됐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당선자의 자발적 의지로 실현될 경제민주화는 거의 없을 것임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그렇게 간단히 집권당에 의해 박물관 속에 다시 봉인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경제민주화는 세계적 차원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극복하는 보편적 과제와 궤를 함께하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주의는 지난 30년 동안 무차별적인 무역과 금융의 세계화, 지속적인 감세와 규제완화, 공공부문의 약화와 민영화, 그리고 체계적인 노동권 약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구해 왔다. 30년 동안 추구된 신자유주의 결과는 세계적 차원에서의 ‘심각한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였으며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장기침체에 빠진 경기회복을 위해서도 불평등 해소는 점점 긴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99% 운동’이 제기되기 시작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거시경제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 사회의 경제민주화도 바로 이와 같은 세계사적 보편성 차원과 완전히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한국에 특수한 재벌 문제가 있으니 이를 서구와 같은 기준으로 맞추자는 따위의 97년 버전의 경제민주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신자유주의와 불평등에 저항하는 세계적인 움직임은 박근혜 정권 5년 동안 계속 확대될 것이며 당연히 우리 국민들의 경제민주화 운동도 계속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완전한 시장의 자유경쟁과 시장에 대한 정부 간섭의 최소화를 주장하기 때문에 독점 대기업의 시장 독식과 경쟁 제한에 대해 신자유주의도 반대한다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는 그들의 주장과 달리 그 어느 때보다 금융과 제조업 모두에서 독점 대기업의 시대였으며, 끊임없는 인수합병을 통해 독점화 수준을 글로벌 차원에서 확대한 시대다.

즉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로운 자본주의 모델이 작동하기 위해 실질적 경쟁과 많은 수의 경쟁이 필요하다던 이전의 입장을 포기하고 대기업 편향 정책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자유로운 경쟁이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를 확대시킨다는 개념 역시 포기했다. 대신 인수합병 등을 통한 거대기업의 출현이 설령 경쟁이 줄어드는 결과가 생기고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더라도,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경제 전반의 부를 확대시킨다면 소비자의 선택은 줄지 모르지만 ‘소비자 복지’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색다른 주장을 펴기 시작한다. 한국의 재벌들이 급격히 몸집을 키워 왔던 97년 이후 역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급격히 확대된 과정이며, 이 두 과정은 아무런 모순 없이 진행됐다. 따라서 재벌개혁과 신자유주의 극복이 하나의 과제로 제기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한국과 같은 신흥국의 독점 대기업은 선진국과는 약간 양상이 좀 다르다는 비판도 있다. 신흥국은 선진국을 추격하고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기꺼이 정부가 지원까지 하면서 독점 대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용인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이나 노동자 등이 얼마간 희생될 수 있지만 경제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제 삼성과 현대자동차와 같이 글로벌 기업 수준으로 한국 재벌이 성장한 상황이라면 어떤가. 그러면 당연히 국제 경쟁력을 위한 국내 경제주체들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국내 경제주체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지금의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그런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독점 대기업의 권력 확대는 자본주의 시장을 파괴할 뿐 아니라 정치적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에 또한 용인될 수 없다. 콜린 크라우치(Colin Crouch) 영국 워릭대 교수는 20세기 전반기에 발전한 미국의 고전적인 반독점법이 기업 권력의 대규모 축적을 깨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독점 대기업의) 권력의 집중이 심해서 효과적인 경쟁이 사라지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경제민주주의와 정치민주주의 모두에서 필수조건이었다. 보통사람들은 언제나 기업이나 정치인과 어느 정도 대등한 조건에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기업과 정치인에 의해 지배될 터였다.”(<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가(The Strange Non-Death of Neoliberalism)>, 84쪽)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1세기 초에도 거대 금융권력과 기업권력이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중이다. 그 가운데 한국의 재벌이 선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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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6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보수적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가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 등 노동자와 서민들의 절망이 절벽 앞에 서게 됐다. 그런데 퇴임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은 그렇다 치고, 100% 국민행복 시대와 중산층 70%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한 박근혜 당선자조차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노동자들은 아예 ‘장외 국민’이라는 말일까.

끝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대선 투표에 앞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모든 유권자 국민에게 배포된 박근혜 후보의 공약 홍보자료에는 ‘70% 중산층 재건을 위한 10대 공약’이 있었다. 이 가운데 여섯 번째 공약이 바로 ‘고용불안으로부터 일자리 지키기’다. 거기에는 분명 정년 60세 연장 등과 함께 ‘해고요건 강화’ 등 제도적 보호 장치 마련, 사회적 대타협 기구 구성 등의 내용이 들어가 있다. 부당해고된 한진중공업 노동자에게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공약 내용이다.

또한 박근혜 당선자의 일자리 공약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상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포함하는 비정규직 차별을 줄이는 내용도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렇게 공약 내용이 국민 기억에 생생한데도 당선되자 휴지 조각처럼 무시하는 상황이라면, 시간이 지난 후라면 어떨까. 애초에 노동과 관련해 약속한 것이 거의 없는 실정이지만, 그나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실천한다"고 강조해 온 박근혜 당선자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허상에 불과했던 것인가. 아니면 유독 서민·노동자에게 한 약속만 무시되는 것인가.

우리와 삶을 함께해 온 노동자들이 하나 둘씩 삶의 기대를 접는 올 겨울은 그래서 유난히 춥다. 도대체 기업에서 노동자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노동자 유권자는 어떤 존재일까. 진보에서는 ‘노동 존중’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히 노동만을 존중할 필요 없이 헌법에 보장된 인권과 노동권·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인정해 주는 사회를 기대하는 것조차 기득권층에게는 그렇게 과도하게 보이는가.

여기서 잠시 마저리 캘리(Marjory Kelly)가 10년 전에 미국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쓴 책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The Divine Right of Capital)>의 몇 구절을 인용하면서 과연 일하는 노동자가 대접받는 세상이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노동자들이 기업가로부터 흔히 듣는 얘기가 있다. “종업원은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적어도 기업 회계장부에서 보면 거짓이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리해고는 불요불급한 지출요인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산의 대량 파괴로 묘사돼야 할 것이 아닌가. 종업원이라는 자산의 대량파괴를 일삼는 정리해고를 하는 기업들은 거의 자살행위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한진중공업 기업가도 말로는 종업원을 가장 큰 회사의 자산이라고 말했을 것이고, 쌍용차를 포함해 정리해고를 일삼았던 적지 않은 기업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마저리 캘리는 냉정하게 우리의 현실을 지적한다. “기업 회계상으로 종업원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돈도 가치가 있고, 물건도 가치가 있으며, 아이디어(지적재산권)도 가치가 있고, 심지어 영업권처럼 뜬구름 잡는 것들도 가치가 있다. 이와는 정반대로, 종업원들의 가치는 마이너스다. 그들은 손익계산서상의 비용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비용과 관련되는 목표는 언제나 단 한 가지, ‘절감’뿐이다.”(마저리 캘리,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 64쪽)

한편 저자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현실과 정반대되는 사회를 상상하도록 해 준다. “노동법에 최고의 법적가치를 부여하면서, 주주의 소유권을 보이지 않는 손에만 맡겨 놓는 자유시장을 머릿속에 그려 보라. 이는 모든 사람들이 ‘종업원들이 곧 기업’이라고 믿는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세계에서 종업원들은 기업이라는 곳을 움직이는 주인공들이다. 그러므로 종업원들만이 이사를 선출할 수 있고, 기업의 목적은 종업원들의 수입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이론적으로 주주들은 협상과 계약을 통해 정해진 수익을 갖지만 실제로는 주주들은 계약조건을 수용하든가 그게 싫으면 그 기업을 떠날 수밖에 없다. (…) 신문지상에서 어떤 기업이 잘나간다고 할 때에는 곧 종업원이 잘나가는다는 것을 뜻한다. 주주들은 매년 배당수익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일부는 ‘자본해고’에 따라 수입이 종료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주주의 수익이 아니라 종업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최고 목표가 되는 그런 기업이 있는 사회, 그런 기업을 만드는 사회, 그것을 정치의 목적으로 하는 지도자를 꿈꾸고 그런 희망의 싹을 살리면서 다시 새해를 준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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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3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연말이 가까워 오면서 언론매체와 서점가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년 예측과 전망이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부 예외도 있지만 비관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유럽이 내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다가 미국과 일본 등 다른 선진국 경제의 회복력도 그다지 탄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BRICs의 고성장 동력도 이제 상당히 약해져 있는 상황이다. 우리 경제도 2% 초반 대에 불과한 올해의 경기 둔화 양상이 내년에도 유사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성장이 급격하게 꺾여 나가자 대기업과 보수진영에서는 다시 경제 성장이 중요하다는 화두를 꺼내들었다. 특히 경제 민주화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성장 담론을 재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얼마 전 전경련이  '경제민주화 아는 것만큼 보입니다 - 이슈별 오해와 진실' 이라는 자료를 발표하여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 내용의 첫 번째가 양극화 문제의 해법인데, 전경련이 제시하는 해법은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양극화 해소의 지름길”이라면서 1% 성장을 하게 되면 일자리가 6만개 만들어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경제 민주화를 성장론으로 대치해버리는 한국 재벌의 전형적 논리다. 지금까지 잘못된 성장론을 고집한 결과 나쁜 일자리만 늘어나고 바로 그 때문에 양극화가 심화되었는데 여전히 전도된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재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보수적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처음에는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더니, 지난 달 부터는 “경제 민주화와 성장이 함께 가야 한다”면서 성장론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장론의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경제 민주화의 내용은 부실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하나의 의문이 있다. 지금 세계경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대 침체 이후 장기침체 국면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위기 이전의 성장세를 되찾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당장 내년은 올해와 유사한 침체가 거의 확실시 됨은 물론, 차기 정부 집권 5년 기간 동안에도 침체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재계와 보수 세력, 그리고 박근혜 후보는 도대체 무엇으로 우리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것인가? 그들이 말하는 성장 동력, 성장 경로, 성장 전략은 무엇인가?  

알다시피 보수의 성장론은 양적인 GDP 숫자에 초점을 두는 양적 성장이다. 신자유주의 보수의 성장론은 노동의 소득 증대 보다는 자본의 투자 수익률에 집착하는 자본 친화적 성장이다. 보수의 성장론은 국가의 사회적 재분배 기능을 무력화시킨 불평등 성장이다. 이러한 성장은 세계적으로 한쪽에서는 저임금에 기초한 수출 주도형 성장 방식에 의해, 다른 한쪽에서는 소득이 아닌 부채를 동원한 소비로 성장하는 방식에 의해 구현되어 왔다. 바로 이런 성장 방식의 종말을 보여준 것이 2008년 금융위기이고 지금의 장기 침체다. 한마디로 보수적 성장론의 붕괴가 바로 지금의 세계경제 위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도대체 어떻게 성장을 시켜주겠다고 ‘공약(空約)’하는 것인가?

침체에 빠진 경제의 회복과 성장 해법은 더 이상의 보수의 수중에 있지 않다. 전통적으로 성장은 보수의 담론이라는 관념이 지금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진보가 성장 담론을 책임져야 한다. 보수의 양적 성장, 자본 친화적 성장, 불평등 성장과 달리 진보가 주장하는 성장은 질적 성장이다. 노동 친화적 성장이며 소득 주도형 성장이다. 기업 현금창고가 아니라 가계의 살림을 튼튼히 하는 성장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장이 불평등 완화에 기여하게 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 성장의 토대를 재구축하기 위해 경제 민주화가 필요한 것이다. 진보적 성장은 경제 민주화의 기반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처럼 경제 민주화와 성장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 나아가 진보의 성장은 지속 가능한 성장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은 경제적 측면과 환경적 측면에서 정의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은 주주를 위한 단기적 수익률 제고 보다는 장기적인 경제 주체들 사이의 관계 형성을 고려한다. 금융적 투기 보다는 장기적인 생산적 투자를 중시한다. 인건비용 줄이기에 집착하지 않고 안정된 노동시장 유지에 초점을 둔다. 이를 위해 탄탄한 공공지출을 통해 사회 안전망을 확보하고 공공교육을 확대하는데 정책적 비중을 둔다. 

또한 환경적 측면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미래 세대의 욕구 충족 능력과 여건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개발”로 정의된다.(1983년 유엔에 의해 지명된 브룬트란트위원회의 선언에서 제시) 다음 세대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삶의 토대로서 지금의 환경을 손상시키지 말고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석유에너지 고갈 위험과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 등의 최근 상황을 감안해볼 때 더 이상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외면한 성장론을 주장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성장론에는 이런 점들을 고려했다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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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6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친기업 정부를 내걸고 등장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한국경제가 가르쳐 준 교훈은 바로 “기업에 대한 자율규제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2012년 우리 사회에서 경제민주화 요구가 거세게 일어났던 배경이기도 하다. 금융시장과 독과점 시장이 특히 그렇다. 규제 풀린 금융시장은 대개 투기와 거품으로 치달으면서 경제 전체를 거대한 시스템 위기에 빠뜨린다는 것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생생하게 보여 줬다. 광범한 금융규제 논의가 다시 촉발된 이유다.

마찬가지로 규제체제가 사라진 독과점 시장은 대기업의 전횡과 이익의 편취,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킬 뿐 대기업의 성과가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낙수효과는 없다. 재벌체제에 대한 규제 시스템을 재구축하고 정부가 기업규제와 시장규제에 들어가야 한다는 경제민주화 여론이 형성된 배경이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연말이 가까워오고 대선이 임박하면서 경제민주화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겠다거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벌을 지나치게 규제하면 ‘기업이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논리가 횡행하면서 경제민주화는 사실상 실종되고 있는 상황이다. 재벌 대기업 규제의 칼날은 이미 무뎌졌으며, 그만큼 노동자와 상인 등 경제적 약자의 권리확대 법안들은 벌써 가로막히고 있다. (대)기업을 규제하고 기업의 핵심 구성원인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인가. ‘노동자와 사람이 먼저’이고 ‘기업은 사람들이 창조하고 통제하는 인위적 공동체’라는 기본적인 상식의 실현은 다시 먼 미래로 연기될 것인가.

지난달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공화당 롬니 후보가 선거 기간 중에 “기업도 사람이다(Incorporations are people)”는 주장을 해 논쟁이 됐던 사례를 상기하게 된다. 로스쿨 엘리자베스 워런 하버드대 교수는 기업은 사람이 아니라면서 롬니의 주장에 이렇게 반박했다. “사람은 심장이 있고 아이가 있고 일을 하며, 아파하고 슬퍼하며 춤을 춘다. 사람은 살고 사랑하며 죽는다. 이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기업을 위해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주장들이 왜 새삼 논쟁이 됐을까. 기업이 사람이라는 롬니의 주장은 단순히 기업이 영리 '법인(法人)'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본래 기업은 인간이 국가의 승인 아래 경제활동의 필요로 창조한 공동체다. 당연히 사람에 의해 조직되고 국가의 통제 아래 놓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치 독립된 실존을 가진 자연인처럼 기업을 대해야 한다면서, 기업의 자유활동을 규제하거나 통제하는 것에 대해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과 동일한 개념을 부여하게 된다. 이는 ‘자유로운 기업 활동’, ‘자유 시장’, ‘자유 무역’ 등이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처럼 신성시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기업도 사람이다’라는 개념이 굳어지면 기업에 대한 규제나 시장에 대한 적절한 개입을 통한 경제민주화는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기업이 먼저’라는 완고한 주장이 버티고 있다. ‘노동자가 살기 위해 기업도 있다’는 논리가 아니라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있다’는 논리가 압도하고 있다. 그러니 노동자와 상인을 살리기 위한 기업규제는 수그러들고, 경제 살리기는 곧 기업 풀어주기로 통하는 주장들이 난무하는 것 아닌가. 나아가 기업이 사람이라는 논리는 곧 기업의 유일한 주인이라고 강변되는 주주, 특히 대주주의 재산권과 자유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것은 부자의 권리와 자유이고 여기에 경제민주화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10년 전에 출판된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The Divine Right of Capital)’라는 책에서 마저리 켈리(Marjorie Kelly)는 기업에 대해 사람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라고 확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러므로 기업을 아우르는 더 큰 공동체가 그렇듯이 기업 또한 최선의 민주적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 그는 또한 “정부를 바꾸거나 폐지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기업을 바꾸거나 폐지하는 것 또한 국민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어쩌면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당연한 ‘민주적 상식’이 아닐까.

나라의 대표자를 뽑는 선거가 이제 눈앞에 다가왔다. 25년 전인 87년 민주화 항쟁을 통해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를 쟁취한 후 6번째 선거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치공간을 넘어 경제공동체인 기업 내에서는 약간의 주식을 매입해 소액주주가 되는 것 말고는 어떤 민주적 권리도 가져 본 적이 없다. 노동자 경영참여는 대선의 구호조차 되지 못한다. 하물며 “기업을 바꾸거나 폐지하는 것 또한 국민의 권리”라는 주장은 아득하기만 하다.

그러나 정치민주화라는 지렛대가 있어야 경제민주화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조금이라도 더 경제민주화의 의지가 있는 후보를 뽑아야 경제민주화를 시작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야 기업보다 사람이 먼저인 미래를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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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7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올 상반기 922조 원까지 늘어난 가계부채가 가계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심각한 부담이 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 가계부채는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오히려 늘어났다. 2007년 말 가계부채가 665조 원이었으니 2008년 이후 거의 40% 가까이 빚이 늘어난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 1분기부터 증가폭이 크게 둔화했다는 점이다. 이는 시중은행이 전년 대비 2% 이내 수준으로 대출 증가를 억제하고, 카드사도 정부 규제 등의 영향을 받아 대출을 억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사실 지금까지는 부채 증가가 가계의 취약한 소득을 보완해줘 가계의 구매력 확대를 가능하게 했다. 이에 따라 민간소비가 증가해 단기적으로는 내수에 기여했다. 은행들도 대출을 늘리면서 수익이 증대했고, 이 역시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가계부채가 일정 부분 내수를 끌어가는 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반전이 시작된 것이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돼 은행에서 가계로 흘러가는 추가 대출은 줄어든 반면, 가계가 은행에 되돌려줘야 하는 이자는 늘어났다. 한마디로 은행에 대한 부채상환 부담 때문에 구매력과 소비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은행들도 대출상품 판매를 추가로 할 수 없게 됐음은 물론이다. 가계부채가 상당 기간 우리 경제에 큰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채권 은행과 채무 가계의 관계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채에 취약한 계층을 중심으로 상환 불능 위험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저소득 부채가구, 자영업 부채가구, 내 집을 가지고 있지만 가난한 가구의 위험성이 크다. 이들이 바로 워킹 푸어, 자영업 푸어, 하우스 푸어라고 하는 3대 푸어 집단으로, 일을 해도 가난하고 자기 사업을 해도 가난하며 집이 있어도 가난한데, 여기에 빚까지 얹어지면서 고통이 가중되는 것이다.  

물론 1000조 원대 가계부채는 외환위기 이후 10년 넘게 누적된 결과며, 일차적으로 소득에 비해 과도하게 차입을 늘려온 가계에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때문에 지금 고통이 따른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돈을 빌린 가계만 책임이 있고 돈을 빌려준 은행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우리보다 먼저 가계부채로 파산을 경험한 미국의 경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금융개혁법에서 약탈적 대출 금지조항을 신설해 과잉대출을 규제하기 시작했음을 참고해야 한다. 차입자에게 감당할 수 없는 대출을 해줘 수익을 추구하고, 부실이 나면 국민 혈세나 마찬가지인 공적자금을 받아 연명하는 금융기관의 이런 행위를 포괄적으로 약탈적 대출로 간주하면서 규제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 은행도 예외가 아니다. 엄격하게 상환 능력을 검증하지 않은 대출이나 10년 이내 단기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부 일시상환대출, 과도한 수수료 등 금융소비자의 상환 부담을 키울 수 있는 대출 형태 등은 포괄적으로 보면 약탈적 대출 요소를 갖춘다. 가계부채 위험과 손실 부담을 은행도 함께 나눠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 또한 가계대출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가계대출이 감소되는 상황에서 우리만 가계부채가 늘어나는데도 “경제규모가 커지면 부채규모도 커질 수 있다”며 예방적 차원의 대책을 세우는 데 소홀했다. 아울러 저축은행 부실 우려나 신용카드사 과잉경쟁 등에 뒤늦게 개입함으로써 정책 효과를 반감시키기도 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이자가 높은 제2금융권으로 저소득층이 몰리는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키웠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계부채 실마리를 풀어야 할까. 먼저 집 한 채가 한 가계의 전재산이나 마찬가지인 우리 현실상 은행의 무차별적 압류조치에 대한 적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소한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채권자인 은행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아난 우리 은행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고려해봐야 할 문제다.


약탈적 대출 규제하자는 움직임도 있어


지난해 우리나라 은행들이 올린 엄청난 수익에 대해 언론에서 문제 삼은 적이 있다. 금융감독원 발표를 보면 2011년 은행들의 세전수익은 19조 원이다. 2010년 대비 46%나 상승한 규모다. 세금을 내고 손실대비준비금을 적립하고도 12조 원이나 된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010년 6.2%, 2011년 3.6%였다. 그런데도 은행은 이익신장률이 50% 가깝게 뛰어오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실적은 제조업처럼 해외 수출이나 기술혁신을 통해 달성한 것이 아니다. 예금 금리는 낮추고 대출 금리는 높여서 이익을 얻는 ‘땅짚고 헤엄치기’식 장사로 큰돈을 벌었고, 그것도 해외 시장이 아니라 가계부채가 심각한 국내 시장에서 벌어들인 수익치고는 지나치게 컸기에 비판이 일었던 것이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가계소득이 늘지 않고 부동산값도 오르지 않는데 가계대출을 늘렸다면, 신용과 담보가치 평가 등 상환 능력에 대한 엄밀한 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추정도 가능할 법하다. 최근 상환 능력을 엄격하게 고려해 대출을 해주고, 이를 어기면 상환의무를 소멸시키는 것까지 고려한 ‘공정 대출법’을 입법화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최근 우리 사회에선 금융, 특히 은행의 ‘공공성’을 부쩍 강조한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세미나를 통해 “국내 은행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내부관리 체계 개선, 사회적 책임 활동 체계화, 경영지배구조 개선 등 은행에 대한 공공성 요구에 적극 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은행들은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책임을 나눠지려는 자세를 보이고, 향후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글은 주간동아에 기고된 글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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